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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호랑이와 조선호랑이 찾기
글쓴이:한부울
서(序)
인도(印度)와 코리아
호랑이의 종(種)
알타이의 본질
1844년 국제환경
호랑이 먹이사슬
일제병탄기의 해수구제사업
호랑이는 아시아지역에서만 서식하였다?
마무리
서(序)
글쓴이가 제목에 한국호랑이만 찾을 것인가 했다.
그렇다면 한국호랑이 말고 또 우리와 관계되는 호랑이가 또 있단 말인가.
그렇다, 이름이 변형이 되었지만 조선호랑이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호랑이와 조선호랑이는 같은 것이 아닌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동부호랑이와 서부호랑이가 그것이다.
동부호랑이를 조선호랑이 또는 카스피해호랑이, 인도호랑이, 벵갈호랑이, 서부호랑이를 한국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라고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명확하게 근원적으로 생각해야 할 구분은 1844년 이후 세분화작업에 의해 생성된 종명들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해야하고 동부호랑이는 조선호랑이로 서부호랑이는 한국호랑이로 최종 단일 명칭으로 구분 정리되어야 마땅하다.
한국호랑이, 혹은 조선호랑이의 역사정체 찾기가 다른 생물체를 찾는 것 보다 어렵다는 것은 서세 주도에 의한 근세기 역사판짜기 과정에서 본래의 서식지를 인위적으로 엉뚱하게 변형시켜버린 생태 환경적 요소가 크기 때문이고 또한 생물학적으로도 한국호랑이의 개체 근원이 다른 개체인 것처럼 완전하게 변이, 변형시켜버린 상태에서 그것이 변한 원인 조차 찾을 수 없는 혼란 그 자체이며 이것은 역사를 잃어버리고 고유의 영토를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적, 숙명적흐름에서의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근원의 참 실체를 생물학계 전반에 걸쳐 생산된 엄청난 자료들이 그나마 찾으려 하는 모든 것을 방해하고 있고 진전을 철저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현재 남아 있다는 생태 기록과 생태적 기술 환경은 참 실체를 더욱 찾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곤욕스럽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실체를 막고 있는 이런 자료들이 눈덩이처럼 쌓이게 시작한 시기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재론한다면 서세의 생성과 함께 태생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예수회와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따진다면 중세 르네상스라 판단되지만 변혁의 큰 폭풍은 바로 유대인 산업부르주아(bourgeois)계급반란에 의해 발생한 프랑스혁명(French Revolution:1789-1794)을 지적할 수 있고 더불어 등장한 1799년에 쿠데타를 일으키며 제1통령에 취임한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1769-1821,재위:1804-1814)에 의해 대륙서쪽 영역에서의 영토주인들이 마구 바뀌기 시작하는 혼란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가 그러한 시각을 만들고 사실의 역사를 더욱 꼬이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폴레옹이란 존재는 어느날 갑자기 종속국(從屬國)으로 전락해버린 에스파냐(España)를 압박하여 북아메리카대륙 루이지애나(Louisiana)를 차지하고 1803년에 미국(米國:이주민)에게 한반도 넓이 10배에 달하는 2,147,000㎡를 단돈 $1500,000에 매각하는 이상한 조약을 맺게 되면서부터 역사굴레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되게한 장본인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폴레옹은 서세의 반란의 상징으로써 서세의 생성은 기존 체제의 반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4.19 이후 군사쿠데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이것들은 마치 숙주를 기다렸다는 듯이 먹어대는 기생충들과 다르지 않다.
선조 조상님들의 숨결이 녹아 있는 역사고유의 영토를 부르주아 자본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감히 돈으로 취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과 진배없고 또한 성스럽게 여기던 역사연속성이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해석해야 맞다.
한 뼘도 안되는 영토를 가지기 위해 수많은 군사들의 피와 땀이 옥토에 뿌려지고 그것을 담보로 모든 변환을 받아들리는 순리적인 역사바뀜도 없이 탐욕의 모태인 자본이라는 무기에 의해 한순간에 끊어지는 역조현상은 역사이치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인류가 겪은 변괴 중에 가장 씁쓸하고 황당한 변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이질적인 역사변혁은 역사 새판짜기를 불러왔던 것은 물론이다.
글쓴이는 지금도 변함없이 역사가 정상적인 흐름이었다면 이런 황당한 비국가대 비국가영토 할양따위의 거래는 도저히 발생할 수도 또한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마치 국가체제가 북아메리카대륙에는 아예 없었던 것처럼 미국영토를 할양과 매입, 그리고 무분멸하게 양도가 발생한 사실에 대한 사실적 검증이 필요한 것은 천리의 이야기며 정당한 이야기다.
근세기에 발생한 할양, 양도따위에 영토거래는 모두 무효화되어야 옳다고 보는 것은 국가공적인 재산이 사유재산처럼 함부로 취급되었거나 악용되었다는 사실의 역사가 이를 뒤받침하는 것이며 때문에 국가공권력으로 막아야 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의 단속이 존재했었다 하더라도 이긴자는 이를 아마도 삭제했을 것이다.
본 블로그 글 "나폴레옹이 주는 단서(端緖) 캘리포니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9"에서도 이에 대한 사실을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관점에서 풀어 보았지만 나폴레옹의 발흥은 역시 하나의 체제에서 발생한 체제불만자에 의한 반란임은 숨길 수가 없다.
그것에 동양인은 용서가 안되고 서양인은 용서가 되어야 한다는 어처구니 따위의 평가 잣대는 고려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삼한역사 속의 반란은 대다수 서양인에 의해 만들어진 쿠데타이다.
우리 한반도 역사책에서는 반란자가 의례이 한국인이라야 하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진실된 역사속에서 밝혀진 것은 푸른 색 눈동자의 백인이 주동자, 주모자가 된 것이 틀림없다.
대신 동양인들이 더 순종적이고 더 도덕적이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쿠데타가 프랑스어이듯이 서양세력들은 체제반란을 늘상적으로 여기던 것이기 때문에 그들 핏속에 불만의 씨앗들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순조(純祖1790-1834,재위:1800-1834)때 평서원수(平西元帥)라 일컫던 홍경래(洪景來,1771-1812)의 난(亂)이 나폴레옹난이라고 하였고 마찬가지로 서부지역에서 발생한 관서병란(關西兵亂)의 정주성 전투(定州城戰鬪:1811-1812)가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나폴레옹에 의해 발생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했고 발단의 사유와 결과에 따른 영향등에서 거의 일치된 사건임을 진단 한 것이다.
서쪽의 땅, 혹은 해지는 곳을 페니키아어 낱말 에레브(ereb)라 하였고 에렙 ereb =>아랍 arab =>유럽 Europe 으로 변한 것이라고 정리되고 있는 것을 대입하면 대륙 서부지역에 유럽제국이 생성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며 예수회가 등장하고 예수회가 양성한 선교사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소속 구성원들에 의해 체제전반적으로 점령당할 때 그동안 숨죽여 있었던 유럽인들이 이처럼 쿠데타로 발흥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또한 같은 시기에 청조(淸朝) 호북(湖北)서북부에서 청(淸)정부를 부정하고 ‘하나의 체제’를 인정하며 청조, 반권력 폭동이 발생하였던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이를 백련교(白蓮敎:White Lotus)의 난(亂)이라 하는데 백련교의 모태가 조로아스터교라 하는 것과 미래불인 미륵(彌勒:Maitreya)사상은 메시아(Messiah)를 뜻하는 것인 조로아스터교의 시조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ā)나 미트라 밀교(Mithraic Mysteries)의 미트라(Mithras)를 숭상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신라왕자인 궁예역시 미륵불로 상징되고 마찬가지로 미륵사상이 부흥한 신라(新羅)는 페르시아잔존세력이라고 유추할 수 있으며 또한 세계삼한역사 관점에서도 일맥하지만 미륵신앙은 불교의 원시경전(原始經典)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소승(小乘)이나 대승(大乘)을 막론하고 널리 시대가 근대기에 오면서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미륵불교는 원시종교로써 또는 조로아스터교 또는 미트라와 동일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기독교와 상반되는 종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서양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편향적은 활동 에서 중심을 찾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
모든 쿠데타가 어쩌면 뿌리 깊은 종교 갈등에서 유발된 것으로써 오히려 조선에서 정조(正祖)가 죽고 순조(純祖)가 즉위한 1801년(순조 1년)에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박해 사건이 발생한 이유에서 이와같은 여러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것들을 내부적으로 보면 조선(朝鮮)에서 내사노비(內寺奴婢)폐지 등 사회제도 개혁이 이루어지고 혁신의 운동이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서양세력들은 오히려 청나라라고 하는 중국보다 조선(朝鮮)에서 체제 흔들기와 전복 획책 시도가 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조선위정자들은 예수회를 제거하려 했던 사건이 아닌가도 한다.
조선(朝鮮)의 어설픈 조치로 결국 예수회는 정식적으로 전면에 나서며 자릴 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시각에서 출발할 때 또한 산업혁명(産業革命:Industrial Revolution)역시 이러한 흐름의 역사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예수회가 주축이 되어 만들기 시작한 근대사와 중세기사건들을 중심으로 고대사까지 역사자체가 뒤바뀌게 되었다는 설과도 맞물려 있다.
때문에 당시 하나의 체제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시기를 정점으로 하여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이 시기를 정확하게 위 사건들의 개요를 언급한 것처럼 1800년 이후부터이다.
이런 흐름은 어떤 기존 강력한 물리적인 힘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정도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란이 야기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자학적인 동양사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단어는 서세동점(西勢東漸)과 탈아입구(脫亞入歐)이다.
서세동점이기 때문에 탈아입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을 현재 열도일본이라고 하면 크게 영향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미 그들은 조선의 종속국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일본인들이 서양유럽세력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자본이란 무기를 업고 있는 엄청난 파향이 있었음을 예측할 수가 있다.
용어적으로 전자에 것은 ‘서세들이 동쪽을 점점 장악했다’는 말이며 후자의 것은 ‘스스로 아시아를 멀리하고 유럽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어구이지만 앞에 것은 지형적인 문제가 있고 후자의 것은 아시아가 과연 동아시아대륙을 말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알 수 없지만 근대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일본인들은 지금도 친서구적은 숨길 수가 없다.
본 블로그 글"유럽과 아랍의 근원 http://blog.daum.net/han0114/17050525"과 "아세아(亞細亞:ASIA)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6"에서 유럽은 아랍을 근원으로 하는 의미라 하였고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등에 업고 서양역사문화를 스스로 검증도 없이 만들었으며 열등하던 그들의 문화를 유럽문화로 만들고 동양문화와 다른 전통적인 역사라고 우겨가면서 이를 서양세력들의 문화적인 바탕 또는 근거라고 주장하고 사실화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실상 아세아는 땅과 땅 사이를 연결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연결하는 단어로 충분하였지만 이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역사로 대칭되면서 열등역사로 만들어진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결코 아세아(亞細亞)가 동양, 또는 아시아를 나타내는 말이거나 상징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니 잘못된 것이며 아마도 정상적인 세상이 갑자기 뒤바꼈다는 사실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근대사는 서양(西洋)이 동양(東洋)을 지배한다는 식으로 역사전체를 호도하고 와전시켰던 면이 많다.
자본을 무기로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을 서세 즉 서양인(西洋人)이라고 하여 힘센 놈이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에 식민주의를 합리화시켰고 그들의 부흥 역사를 개신교를 앞세워 개척의 역사 또는 프런티어 정신(Frontierism)이라 하여 탐욕과 파괴를 정당화하였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역사가 남김 고통들을 대략적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인도(印度)와 코리아
왜 타고르 시인이 코리아를 스스로 마음의 조국이라고 했을까?
조선이 코리아인가.
대한제국이 코리아인가.
어쨌거나 조선이나 대한제국이 타고르의 조국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왜 그랬을까?
본 블로그 글 "시성(詩聖)타고르의 정신적 지주(支柱)는?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1
"에서 말하길 문학가이면서 역사가이고 또한 종교인이었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의 정신적인 지주와 그의 조국이 코리아란 사실을 밝혀 알았던 것임을 알 수가 있었으며 재론한다고 하겠지만 그는 명확하게 코리아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엇 때문에 코리아를 자신의 조국(祖國)이라고 하였던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 부분적으로나마 풀어 본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작게나 큰 부분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귀화나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가 있었으며 이들을 귀화나 동화를 강요한 일본제국의 실체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점과 답을 얻기에 동분서부했지만 명확하게 영국인가 미국인가, 아니면 일본인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를 주저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근세기 역사는 혼란 스러운 것임이 틀림없다.
처음부터 동양, 서양이라는 이원법(二元法) 또는 이분법(二分法)인 근원이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마치 과거 문화부흥을 이룬 오래된 역사가 서양인들에 만들어진 것처럼 꾸며졌고 지난 역사를 애리하게 관찰하던 러시아의 수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가 새로운 역사(New Chronology)에서 주장했듯이 고대그리스, 고대로마, 고대이집트를 포함한 고대사전체가 예수회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중국이나 아랍의 역사 모두 17 세기부터 18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과감하게 토로한 것과는 다르게 그들 역사처럼 치장하고 도색된 것은 확인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나의 역사가 갈기갈기 찢어지게 된 사실을 정확하게 밝혔던 사실이다.
어느날 거처도 없이 떠돌이 이주민들 신분의 처지에서 근세기에는 제왕과 귀족, 종교최고관리자까지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무소불위의 무기가 되어 버린 자본을 손에 쥔 서세(西勢)가 되었고 마침내 서세동점이란 말과 함께 역사 전면에 등장하고서부터 모든 기존역사가 철저하게 종말을 고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창조된 서양우월주의역사가 함께 동시에 모든 것이 변형된 역사는 마침내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생물학분류체계까지 영향을 주면서 기존 생물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롭게 등장한 서세만의 생물학체계를 만들어 세계화를 구축했다는 것이 여기서 말할 핵심적인 이야기다.
이런 논점을 수백번 본 블로그에서 말하고 있지만 공허할 뿐이다.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 낸 한국호랑이의 개체를 정확하게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 서술한 내용과도 같다.
일제병탄기(日帝竝呑期)에 알다시피 한국호랑이가 철저하게 살육되어 사라지게 된 원인은 개체보호가 아니라 일제에 의한 통치목적에 의한 것을 알았고 생물학적 접근이 아니라 식민지정책에 일환으로 강제적으로 호랑이를 사라지게 만든 개연성등은 개체 말살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정당화하기위해 미화하고 서세가 목적한 바를 완성시켰으며 이러한 교묘한 장난질은 오늘날 한국호랑이의 개체파악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본 블로그 글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http://blog.daum.net/han0114/17050580"편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서세들의 행위는 북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식량이라고 주문하면서도 들소(野牛), 버팔로(buffalo)를 맹목적으로 말살한 행위와도 같은 것으로 기존의 무엇이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남겨두지 않겠다는 잔혹한 원칙이 그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말살정책이 그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은 기독교 신이 그들에게 내린 땅으로 착각하고 그러한 착각은 온갖 살육을 최선의 수단과 방법이라 판단했을 만큼 무지막지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북아메리카대륙의 이주민정치가들의 정책 입안에서 단순하게 이주민들을 위한, 이주민들에게 위험이 있을 수 있는 난폭한 야생동물들을 사라지게 만들 생각만으로 살육했을 것이란 생각은 매우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살육이 필요한 야생동물은 궁극적으로 돈이 될 뿐만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중요한 역사근원지 바꾸기를 위한 역사판짜기에 필요했으며 그것을 위해 기존 야생동물들은 철저한 희생물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현실적으로 따질 때 그것을 주도한 주체를 비록 우리가 일본제국(日本帝國)이라고 한정시켜 보고 있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세계삼한역사에서 왜(倭)라 했거나 동양사적으로 일본(日本)이라 한 실체는 이미 본 블로그 글에서 서세유럽식민제국(西勢植民諸國)전체의 역사프레임 틀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인도는 언제부터 붙여진 명칭일까?
글쓴이는 신대륙을 공시화한 제노바 해적출신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에 의해서가 아닌가 한다.
이것은 오래된 역사의 하나의 체제를 깨어 분리시킬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아메리카대륙 전체를 인도(印度)라 했다면 이는 바로 삼한(三韓)의 별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과 한문 인도(印度)의 음차(音借) 인디아(India) 역시 당시 서세(西勢)가 만든 명칭이라고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마도 서양인들에게는 이 인도란 명칭을 열등역사의 상징처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청조(淸朝)의 관리를 포르투갈어 만다림(Mandarim)하였다가, 영어로 만다린(mandarin)이라 한 사실과 언어 변음적인 문제에서 동일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문헌학자이며 페르시아와 터키어번역가인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1746-1794)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梵語)가 라틴어(Latin),그리스어(Greek:希臘語)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여 이를 인도유럽어족(Indo-European languages)이란 명칭이라 한 것도 인도와 유럽이 언어학적으로 합체되었다고 판단한데 있다.
언어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존스는 이와 같은 사실을 연구하고 밝혀 알았던 장소 또한 인도라 하고 그가 머물렀다고 하는 동부 뱅골, 캘커타라 하는 곳도 진보적인 문명발달이 전제되었다 할 때 현재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인가 하는 문제에서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게 하는 문제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다르게 볼 수 있는 개요는 충분하다.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는 인도에서 법률, 음악, 문학, 식물학, 그리고 지리학을 연구했고 인도문학까지 탐구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으며 그가 근무한 뱅골 캘커타 윌리암포트(Fort William)에는 영국의 중추적 법원 기구 최고법원(Supreme Court of Judicature)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인도아대륙은 서양사가 말하고 있는 이런 사실과 무색하게 현재까지도 사회간접자본이 빈약하여 운송, 교통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비교한다면 상당힌 논점의 공백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존스는 인도에서 모든 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연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쨌던 간에 상당한 괴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다.
뱅골은 나라 이름이고 캘커타는 도시 명이라 할 때 이 나라와 도시는 선진문명을 기반한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때문에 뱅골이 존재하던 인도아대륙과 영국이 존재한 유럽(ereb:alab:Europe)간에 지금처럼 수만키로의 항로를 왕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서양사가 주장하는 것들은 현대판 소설과 같다.
늘 상 그들은 배만 타면 모든 것을 마치 신이 이루는 것처럼 무조건 이루어내는 희한한 재능을 가진 것처럼 미화하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말하고 있지만 글쓴이는 이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더군다나 선박기술이 미숙할 때인 15세기, 16세기 시기에 선박을 이용하여 왕래가 가능한 곳이 있다.
그러나 지구를 마음대로 항해할 수 있는 거리가 24,000km(61,111里)에 달하는 기나긴 항로라 하면 그것은 미친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기난긴 항로를 거쳤다 하여도 지금처럼 낙후된 환경인 인도아대륙에서 정상적인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고 24,000km이상 떨어진 유럽대륙에 있는 영국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무엇을 하기에는 넘어야 할 공간적, 시간적 장애가 말도 할 수 없이 컸을 것이란 짐작이 된다.
만약 유럽과 인도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언제든지 문화적으로 융합할 수 있고 이동이 자유로워 윌리엄 존스와 같은 유능한 인재도 발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진실로 그의 활동공간이 북아메리카대륙 구릉성(丘陵性) 산지가 많은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 캘커타가 존재하고 뱅골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본 블로그 글 "여진어와 영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6"에서 살펴보았듯이 어쩜 뉴잉글랜드가 여진9성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도 무리가 없을 성 싶을 역사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처럼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이 어릴 때부터 거주하고 연구하며 유명한 저서를 만들게 한 인도아대륙이 아닌 곳을 찾는다면 구릉성이 많아 계곡, 골이라 하였을 뱅골과 캘커타(Calcutta)가 뉴잉글랜드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판단을 해보는 것이다.
동인도회사가 지배한 시대를 영국이 지배한 시대(British Raj:1877-1947)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수도 캘커타(Calcutta:1877-1912)에는 당시 동인도회사를 위한 무수한 기관이 있었을 것이며 여러 박물관 도서관, 학자들의 연구소 등등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완비된 곳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유적들이 현재 인도아대륙 동부 서(西)뱅골 지역에 있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할지라도 전혀 문명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 연구가 가능할 턱이 없다.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뉴잉글랜드에 동인도회사(英國東印度會社: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1708-1873)가 설립되었다고 할 여지가 있고 또한 인도 뱅골 캘거타 역시 그곳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기때문에 필요한 인프라가 설치된 문화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귀족주의는 어떻게 설명될까?
사실상 브리티시라고 하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영국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지배한 것이 사실이라면 인도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영국이 브리티시인가 하는 문제와 동인도회사가 영국 잉글랜드 역할을 하였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세계금융을 설립하고 지배하던 자본주와 소유주는 동인도회사의 소유주일 가능성이 있고 이들은 회사가 가질 수 있는 무력을 통해 모든 것을 취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때문에 기존체제가 이를 해적단체로 규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회사가 창출한 결과물은 당시 힘이 없었던 하류의 백인귀족 작센코부르크 잘펠트(Saxe Coburg Saalfeld)에게 승계를 했거나 그렇게 승계할 수 있도록 동인도회사의 소유주가 유도했을 가능성도 있어 신흥귀족으로 추대받았을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귀족은 산업혁명에 의해 자본이 축척된 유럽금융지배세력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 해야 당시 상황들과 맞을 것 같다.
로트실트 은행 런던 지점의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2세(Nathaniel Mayer Rothschild:1840-1915)가 1885년에 귀족 직함을 수여받았다는 것은 역할에 대한 보상이 아니겠는가 한가.
1680년대 영국국왕 찰스 2세(Charles II,1630-1685,wodnl:1660-1685)가 동인도회사에 대하여 징병권, 사관임명권, 교전권(交戰權)등을 부여했다고 하지만 본 블로그 글 "하노버(HANOVER)의 역사 의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82"에서 바라본 것처럼 잉글랜드왕족은 삼한왕족계보를 도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스스로 귀족이 지리멸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특별하게 역사적으로 거론할 가치를 못 가진게 분명하다.
미일간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던 1858년 기간에 세포이항쟁(Indian Rebellion:1857-1858)이 발발되었고 조선(朝鮮)의 사위국(壻國:son-in-law)인 무굴제국(Mughal Empire, Gurkani:1526-1857)이 사실상 와해되자 게르만계하류귀족들이 금융자본에 의지하여 귀족권위를 합법화하고 동인도회사를 뒤로 물러나게 한 후 정부와 의회를 앞세워 역사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나타나는 모든 증거들을 만들고 취했다고 보이고 이를 스스로 대영국제국이라 칭하면서 실권 없는 서양 로얄 페밀리 상징으로 존속하게 했을 가능성을 생각 할 수 있다.
결국 본 블로그 글 "운남성(雲南省)은 남아메리카북서부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1"에서 논한 것과 같이 서양사에서 인도(印度)라고 하는 명칭은 북아메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 북부에서 근거한 사실은 숨길 수가 없으며 이를 인도아대륙으로 이동시킨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이다.
예를 들어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1746-1794)같은 사람과 같은 시대이긴 하지만 결코 인도에 간 이력이 없는 독립운동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1706-1790)이 미국독립에 대해 의견조율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실제로 그가 캘커타의 포트윌리엄(Fort William)의 최고 사법 재판소 판사로 임명된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를 감추는 것이며 또한 그가 24세때 이미 동양학(東方學,東洋學)에서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과 윌리엄 존스의 별칭이 윤스(Yoons)라고 발음했다는 사실 등은 동양적인 요소가 많아 아마도 그가 활동한 체제가 동양오리엔탈시대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물론 동양이라고 하면 지금의 아시아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윌리엄 존스의 인도유럽어족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는 미국의 언어학자 요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1745-1801)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인물인데 뉴잉글랜드 소속 코네티컷식민주(Connecticut Colony) 이스트윈저(East Windsor)출신으로 코네티컷주(Connecticut州)동부 및 뉴욕 허드슨강(Hudson江)유역에 근거하던 모히칸(Mahican)어(語), 그리고 알곤키안(Algonquian)어(語)와 온타리오(Ontario)호(湖)에 전통적으로 거주했던 이로퀴안(Iroquoian)어(語)가 인도유럽어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발표는 그들이 표본을 수집한 지역들이 전부 동부라는 사실과 월리엄 존스와도 지역적으로도 멀리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하플로 그룹[Haplogroup] R1(Y-DNA)을 가진 동부 인디언들은 백인 통혼 이전 사진을 보아도 안와상융기(眼窩上隆起, supraorbital torus)가 발달하였고 코가 좁고 높은 형질이 많이 보이는 백색인종, 유럽인종을 이르는 코카소이드(Caucasoid)적 특징이 있다라고 본 블로그에서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삼한역사가 곧 인도역사이라는 이야기며 여기의 구성원들은 모든 인종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인도가 코리아라는 것과 동일선상에서 볼 수가 있어야 한다는 최종 이야기다.
만약 하나의 체제가 존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말한 것처럼 하나의 발상지에서 나온 단일민족이 이웃민족들을 잇달라 침략하여 자기네 언어를 전파했으리라는 추측은 서세들은 말하기가 두렵겠지만 인도유럽어족의 공통된 조상이 스키타이족(Scythians)의 언어라 한 것처럼 1924년에 발견된 금령총 금관(金鈴塚金冠)은 북방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내외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라 한 점등에서 신라가 스키타이족이라 하는 것은 곧 유럽제국들은 신라(新羅)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설명을 피할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후세 신라(新羅)는 고려(高麗)에게 흡수되었고 우리는 이를 단순하게 고려라고 하지만 이는 대명칭 코리아이며 신성로마제국(Sacrum Romanum Imperium:962-1806)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벵갈, 벵골이라는 이름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것을 밝혀 알아야 조선호랑이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근대사는 이를 인도아대륙에 지명하고 고정하였지만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인(일본:서세연합체태동)이 벵골을 언급한사실과 또한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지명을 서세가 통칭 즐겨 사용하였다고 본다면 산스크리트어가 동양만의 언어가 아님도 알 수가 있고 뱅골이란 명칭도 어쩌면 포르투갈인, 스페인인들이 산스크리트어에서 인지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스페인어로 벵갈렌(Bengalen) 또는 더치 벵갈(Dutch Bengal)이라 하였고 이곳에 네덜란드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가 있었다고 알려지는 것이니 다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벵갈어(語)뱅갈리[Bengali:গঙ্গাহৃদ/ গঙ্গাঋদ্ধি/ গঙ্গারাষ্ট্র; Gangarid / Gangaridai / Ganga Rashtra]는 갠지스의 심장, 갠지스 강, 갠지스 국가란 의미가 있다.
Bengali:গৌড় রাজ্য], Gauṛa rajya)Gauda Kingdom meaning radiant kingdom (from Sanskrit गौड़ gauṛa "white, radiant, fair, golden", rājya, राज्य "kingdom, state"). Bengal is described in ancient Sanskrit texts as 'Gaud-Desh'.Gauṛa rajya -
또한 벵갈[Bengal]은 벵갈어(語)로 고우라 처(গৌড় রাজ্য,Gauṛa rajya)라 발음하는데 ‘가우다 왕국’을 의미하는 ‘빛나는 왕국’이라는 뜻이며 산스크리트어( गौड़) 가우라(gauṛa)"백색, 빛나고, 공정하고, 금 빛"을 나타내며, 힌두어 라자(राज्य)는 왕국과 국가를 나타내기 때문에 “가우다 왕국”을 의미하고 있고 산스크리트어의 문헌에서 '가우드데쉬(Gaud-Desh)'는 빛나는 땅, 또는 '고우라 라자(Gauṛa rajya)'로 발음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빛난다는 것은 새벽·여명·서광(see aurora), 오스(aus)즉 밝다라는 것은 전부 동쪽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은 갈리아(Gallia), 골(Gaul)과 가우리(Caule, Cauly)와 음(音)이 연결되고 코레, 코라이(Cores, Core, Coray, Conray, Corie, Coria, Corai)로 이어지는 어원연관성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추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지금의 벵골의 땅, 방글라데시를 빛나는 왕국이라 할 수 있을까.
특별한 큰 변괴가 없었음에도 동남아시아에서도 저개발국가 또는 빈곤 국가라는 사실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은 태조의 경제적인 형편 문제가 아니라 그들은 어딘가에서 옮겨져 가난한 것이며 한반도 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은 한반도인도 그들과 다르지 않게 가난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경제환경은 구성원들의 능력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아시아대륙은 선진문명의 터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의 큰 전쟁으로 어디선가 거의 옮겨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백색같이 빛나고 공정하며 금처럼 빛난 왕국은 과연 어딜 말하는 것일까?
이런 말은 역사문화의 발달을 추측할 수 있겠지만 지역, 지리환경적인 요소가 크다고 보면 대체로 빙산, 빙하 북쪽지역에서 지형환경적인 상징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벵골을 가우다, 가우디, 가우리, 가우드 처럼 다 같은 음(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음절은 가우디이며 즉 가운데 중심으로써 한자권 중국(中國)의 상징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신채호선생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의 주장과 같음은 물론이며 최초의 아라칸 국가의 창시자가 인디언이라 하는 벵골 아라칸인(Arakanese)과 고대 그리스 이상향의 나라 아르카디아(Arcadia, Arkadia)와도 비교가 된다.
아카디아는 아르카디아가 어원이라고 말해지는 것과 같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로써 아르카디아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렇다면 인도(印度)란 명칭에서 서세의 의도성이 없었다고 할 수가 없다.
인도(Indo), 인디아(India), 또는 인도네시아(Indonesia), 아메리카인디언(American Indian)이라는 명칭의 "indo"는 낙후의 상징성이다.
서세가 식민지지배 명칭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게 하는 열등한 역사 상징성으로 또는 이에 조작된 역사프레임이 있고 이 인도는 영국이 지배했다는 틀의 역사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치에 어긋남이 없이 역사판짜기가 단행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서두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그네가 주인을 내쫓는 경우에서 생성된 추악한 결과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부터 한국(韓國)호랑이를 조선(朝鮮)호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인도(印度)호랑이라 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의 생물학적인 분석에서 특히 아메리카 남북대륙 모두 스페인과 관계되거나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관할 지역이었다는 곳에는 “CORIA”란 명칭이 통일성이 있게 나타난다.
본 블로그 글 "COREA, CORIA, CORREA, KORAI의 실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1
"에서 밝혀 보았던 것처럼 "CORIA FAMILY"명칭의 기원을 일반적으로 서기1100년 이전이라 하고 이것이 가문(페밀리)이름으로의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에 이루어졌으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500~1600년 사이로 알려지는 것인데 이 시기는 신대륙발견(1492~1504)과 연결되고 있으며"CORIA FAMILY"명칭이 북아메리카대륙에 처음 정착한 것도 이 시기라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어쩌면 코리아가 이 시기부터 페밀리명칭으로 변환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혹 코리아 명칭에서 워낙 역사성과 신적인 성스러움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이를 동경했거나 추종하여 가문명으로 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 코리아란 명칭에 국한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오히려 코리아란 명칭이 친밀했고 오래전부터 서양인들 사이에 지칭되거나 사용되었던 명칭이라는 사실에서 동양권에서는 이 명칭이 오히려 낯설 수도 있다.
우리가 영어권에 언어에서 이 명칭을 뒤늦게 받아들인 경우이다.
이렇게 추단하는 것은 서양역사 중심에 코리아가 존재한 사실을 여러 면에서 밝혔던 바가 있기때문이다.
원시시대부터 인류에게 가장 삶과 관계가 있었을 구황식물 즉 구황작물에 대한 학명을 보면 디오스코리아(Dioscorea)라 한 사실과 스페인어 디오스(dios)는 신(神:god)이란 의미이므로 디오스의 의미를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할 때 "디오스코리아"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Dioscorea is a genus of over 600 species of flowering plants in the family Dioscoreaceae, native throughout the tropical and warm temperate regions of the world.
열대덩굴식물 야생 참마(wild yam)라 하는 디오스코리아는 서여과(薯蕷科:Dioscoreaceae)계통의 열대 및 온난한 온대지방에 서식하는 600여 종(種)의 개화 식물이라고 하여 마 성질을 가진 식물들이 거의 다 이 학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겪을 수밖에 없었던 굶주림이란 원초적인 고통을 생각 할 때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식물임을 알 수 있고 때문에 신을 코리아와 같은 수준에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도 한다.
이 외 학명에는 가우리센스(caulescens), 코라이엔스(coraiense), 코리아눔(coreanum)등의 종명이 붙어 있는데 공통적으로 코리아 명칭과 함께 정확하게 원산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국한하는 원산지가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지 원산지 종명(種名)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코리아란 명칭은 한반도에 국한된 명칭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과 글쓴이가 주장하는 하나의 체제를 코리아라 했을 가능성을 높게 진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근원적인 역사성이며 또한 끊어질 수 없는 역사 연결성의 증거라 할 수밖에 없다.
영어에서“CORE”가 중심 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의 어원으로 자릴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 코레가 모든 역사에 근원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은 라틴어(語),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하는 어원적인 것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본 블로그가 찾아낸 수많은 사실이 여기에 더하여 세계삼한역사의 산증인처럼 고고하게 빛나고 있다는 점이 대단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를 더 부첨한다면 라틴어와 그리스의 어원을 밝혀 아는 촉매역할을 하는 언어가 프랑스어라고 한다면 산스크리어트어의 어원 밝혀 아는 촉매역할의 언어는 한글이라는 설과 비슷한 이야기다.
신채호선생이 주장한 “가우리”역시 이 코레의 범주에서 해석되었다는 의미라고 판단되며 이 언어자체가 인류의 중심, 또는 축을 의미하는 것이니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아(CORIA)란 의미도 고리(高離), 구리(句離:Guri), 구려(句麗:colee)나 고려(高麗)와 다르지 않고 또한 가우리(caule)와 다르지 않음에 있어 서양문헌에도 사람이 곧 하느님이란 삼한철학사상의 인내천(人乃天)을 말하고 있는 것은 실로 경탄해 마지않는 것이며 옛 프랑스어의 몸(body)의 뜻 코어“cors” 또는 라틴어 몸(body)의 뜻 코르푸스“corpus”가 “CORE”의 어원이라 하는 것은 신채호선생의 ‘가우리’의미를 상기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즉 우주의 중심이 태극이란 사실과도 일치하는 이야기다.
본 블로그 글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목화(木花, Gossypium)생산국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956”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아시아면이라고 알려지는 인도면(印度綿:Gossypium arboreum L)이 남아메리카대륙에 근거하고 육지면(陸地綿:Gossypium hirsutum L)이 북아메리카대륙에 근거한다는 사실도 이와 같은 상황 설명과 다르지 않다.
코리아의 목화 생산량은 당시 미국의 목화 생산량과 상당히 일치하는 것을 밝혔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서세들은 떠내기인 이주민에 불과하였지만 어느 시점부터 가짜주인이 진짜 주인인 것처럼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이제서야 진의를 깨우친다는 것이니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본래 주인이 쫓겨난 상황에서 왜 그런지 인구 증가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이주민이고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미국(米國)이 도발한 1812년 미영전쟁(War of 1812, American War of 1812 to 1815)시기 때 미국의 인구가 고작 700만명(7,239,900)이라 하였다.
이런 인구를 가지고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다차지하겠다고 난리였으니 얼마나 기발한 이야긴가.
반면 미국이 식민굴레에서 탈피하고자 한 영국 인구는 1811년 기준으로 11,970,200명으로 정확한 데이터가 서양인에 의해 밝혀져 있다.
영국 또한 이런 인구로 세계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했다는 것도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 이야기다.
반면 하나의 체제를 갖추고 세계삼한역사를 자랑하던 한국의 인구는 1881년부터만 나타나고 그 이전시기의 인구상황은 데이타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1881년이전 인구데이타가 서양자료에 나타나지 않을까?
그러나 조선의 종속국이었고 자치국이었던 일본은 1721년부터 인구데이타가 나타나고 1852년에는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인구가 무려 27,201,000명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지워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1812년때 겨우 700만명이었던 인구가 100년만인 1912년에 95,335,000명으로 기록되면서 거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를 나타내는데 자그마치 1216%(12배)비율로 계산되며 이것을 자연증가수치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이때 인구규모는 하나의 체제에서 조선인구설에서 1억명과 거의 흡사한 것이다.
미국과 비교가 되는 영국의 인구는 1912년에 41,123,500명으로 계산되어 100년 만에 243%(2.43배)증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 증가폭임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수치에서는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인들은 지금도 유럽이민자에 의한 이민증가라고 하겠지만 음성적인 인구가 양성적으로 바뀐다든지 아니면 구체제에 속하던 구성원들이 강압에 의한 전환이나 귀화, 동화한 인구가 포함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쩌면 서세는 내외면적으로 이전체제의 인적, 과학자원까지 정복하였고 삼한역사, 인도(印度)의 정체성까지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도 조심스럽게 짐작해야 한다.
1852년까지 세계무역거래 언어가 중국어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한문(漢文)과 한글을 사용하던 각계 인텔리전스(intelligence)들은 어쩔 수 없이 영어(英語)와 프랑스어로 사용언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삶의 큰 지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전환했어야 했고 도리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미국의 비정상적인 인구 증가에서 정상적인 인구증가율를 계산해보면 세계인구 통계에서 1800년에는 10억 명, 1930년에는 20억 명에 도달되어 매년 0.53%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어 이를 대입하면 1812년에 700만 명의 인구를 위 자연 증가율 0.53%를 적용하면 1912년에 미국인의 인구가 단순계산이지만 40,000,000명이 겨우 넘는다.
이것은 영국인구와 거의 일치한다.
그럼에도 미국인구가 1억 명 가까이로 증가되었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증가세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특히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발생한 근대사 전부를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되며 정확해야 할 인구수치가 이렇듯 상상 이상으로 어긋난다는 것은 상당한 역사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써 근대사 전체에 큰 영향을 음으로 양으로 주었을 것이라는 명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본 블로그에서 주장한 라틴어(프랑스어, 그리스어, 영어)를 사용하던 코리안(corian)이 존재한 사실도 마냥 그냥 흘려버릴 수만 없는 문제이며 이것과 더불어 한국호랑이 개체와 또 다른 개체의 근원이 되는 호랑이의 실체가 숨어있을 것임을 확신할 수가 있다.
호랑이의 종(種)
아래는 고종34년(1879년)에 대한제국건립시 국명 조선에서 국호를 변경하면서 고종이 대신들에게 하였던 말이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에서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라고 나온다.
즉 한(韓)은 영어로 "COREA"이다.
즉 상식적으로 하나의 나라로 통합된 하나의 체제를 서양인들은 COREA 라 했던 것이 분명하다.
호랑이를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어떤 사료에도 생물학적인 개체변화 동향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글쓴이가 늘 안타까워하며 의문시 하는 사실이다.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사료 중에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면 호랑이를 사냥한 사체에서 벗겨낸 가죽을 호피(虎皮)라 하여 근거지와 호피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호랑이 뼈를 약제로 삼아 호골(虎骨)이라 하면서 개체수와 생산지역을 나타내어 상황 정도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료(史料)는 임금에게 조공(朝貢), 즉 진상한 기록에 대한 일기 식 내용이 전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나라 사료에서 서양인들이 내놓은 생물학적 분류체계나 근거를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 기록들은 과학적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런 사료들이 남아 각 지방에 특산물을 백성들이 세금대신 임금에게 바치는 조공물이나 진상물의 기록임에도 이는 후일 조선(朝鮮)을 하찮은 조공국(朝貢國)으로 보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부담만 지우게 하는 것으로 가치를 논 할 수 없다.
지금도 조공에 대해 백과사전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종속국(從屬國)이 종주국(宗主國)에게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모든 행위라고 정리되어 있다.
참으로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많다.
하지만 최소한 생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료가 없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여도 잘못된 것이다.
물론 우리에겐 한문기록만 남겨져 있다는 불만도 있지만 세종지리지 이외 우리나라 최초 지리지라고 하는 세종 6년(1424)에 변계량이 의해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가 있고 1432년에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가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지리지라고 하는 1145년 김부식의해 편찬한 삼국사기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와 문종 1년(1451)에 세종의 명으로 만들어진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되는 과정에서 부속사료로 취급되었다는 점도 생성에서 이미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더 세밀한 자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호랑이를 우리는 범이라 하거나 19세기 이후 虎(범 호)와 狼(이리 랑)을 붙여 ‘호랑이’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알려지고 호랑이를 다르게 칡 범, 갈 범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호랑(虎狼)의 한문을 풀이해보면 이는 범과 이리를 동시에 칭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으며 어쩜 호랑이라고 하는 것은 타이거(Tiger)만 지칭한 것이 아닌 포괄적 명칭일 것이란 의심이 생긴다.
우리가 아는 ‘이리’는 분명 늑대(狼:wolf)이다.
우리말 ‘호랑이’는 범과 늑대를 총칭해서 지칭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무엇때문일까?
호랑이와 늑대는 불가분의 관계로 우리 조상들에게 비춰진 것은 아닐까?
'칡'이나 '갈'에서 칡은 황색계통의 색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갈은 붉은 색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갈 범이란 붉은 늑대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메리카붉은늑대(Canis lupus rufus)는 붉은 털, 은회색의 이마, 흰 다리에 있는 어두운 반점, 그리고 크림색의 배가 특징인데 미국 애팔레치아산맥을 중심으로 남동부에 서식하던 것들이며 자연번식지 파괴 때문에 1900년 중반까지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이를 미시시피 계곡 늑대(Mississippi Valley wolf)라고도 한다.
호랑이는 잠시 미루고 그렇다면 늑대에 대해 잠시 좀 더 살펴보자.
늑대 종(種)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조 후보는 북아메리카에서 마이오세(中新世:Miocene-약 2300萬年~600萬年)시기 서식한 토끼잡이늑대(Canis lepophagus)로 작고 좁은 두개골을 가졌으며 이 모습은 코요테(coyote)와의 유전적 관계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자료에는 정리되어 있다.
이 코요테는 북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 일대에만 분포하며 초원이리(prairie wolf:郊狼,草原狼,叢林狼,北美小狼), 아메리카 자칼(American jackal)이라고도 하는데 학명 카니스 라트란스(Canis latrans)라 쓰며 회색늑대(gray wolf)와 동부늑대(eastern wolf), 붉은 늑대(red wolf)와 비교 할 때는 작지만 같은 가까운 친척이라 할 수밖에 없다.
붉은 늑대
界: 动物界 Animalia
门: 脊索动物门 Chordata
纲: 哺乳纲 Mammalia
目: 食肉目 Carnivora
科: 犬科 Canidae
属: 犬属 Canis
种: 狼 C. lupus
亚种: 紅狼 C. l. rufus
호랑이 Tiger
科學分類
界: 動物界 Animalia
門: 脊索動物門 Chordata
綱: 哺乳綱 Mammalia
目: 食肉目 Carnivora
科: 貓科 Felidae
屬: 豹屬 Panthera
種: 虎 P. tigris
호랑이의 종에서 현재까지 정리되고 있는 아종은 총 9종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린네가 명명한 판테라 티그리스를 근거로 할 때 분류가 필요한 아종은 크게 3종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베리아호랑이, 벵갈호랑이, 그리고 카스피해호랑이이다.
호랑이를 범(虎), 이리(狼)하지 않고 타이거(Tiger)로 통칭하여 보면 호랑이는 생물분류 체계적으로 동물계(動物界:Animalia), 척삭동물문(脊索動物門:Chordata), 포유강(哺乳綱:Mammalia), 식육목(食肉目:Carnivora), 고양이과-묘과(貓科:Felidae), 표범속(豹屬:Panthera)에서 1758년 생물학의 아버지라 하는 린네에 의해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 Linnaeus, 1758)로 명명되었다.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어원에서 속명(屬名) 판테라(Panthera)를 표범속이라 한 이유가 아래에 나타난다.
The word Panthera is probably of Oriental origin and retraceable to the Ancient Greek word panther, the Latin word panthera, the Old French word pantère, most likely meaning "the yellowish animal", or from pandarah meaning whitish-yellow. The derivation from Greek pan- ("all") and ther ("beast") may be folk etymology.
The word specific name tigris derives from the Classical Greek language τίγρις meaning "tiger" as well as the river Tigris.
The Middle English tigre and the Old English tigras (a plural word) were both used for the animal. These derive from the Old French tigre, itself a derivative of the Latin word tigris. The original source may have been the Persian tigra meaning pointed or sharp and the Avestan tigrhi meaning an arrow, perhaps referring to the speed with which a tiger launches itself at its prey.
위 영어자료를 보면 본래 학명(學名)에서 속명(屬名) 판테라(Panthera)는 동양 원산지(Oriental origin)를 강조한 것이라 하였고 고대그리스(Ancient Greek) 단어 펜테르(panther), 또는 라틴어 펜테라(panthera), 고대 프랑스어 펜테레(pantère)와의 연결해서 “누른 동물(the yellowish animal)”을 뜻했거나 약간 희끄무레한 황색(whitish-yellow)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양자료에서 일반적으로 동양이라고 하는 것은 동아시아대륙이라고 보면 안된다.
대륙 동부를 뜻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즉 판테라의 속명에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누른 색, 또는 황색 계통의 동물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말은 우리가 호랑이를 칡범, 갈범이라 하여 범과 이리를 같이 병용해서 사용한 것과 똑같은 설명임을 알 수가 있다.
동양적 어원이라 한 서양 자료의 설명에서 느끼는 것은 동양 원산지(Oriental origin)를 현재 서양인 관점에서 판단하면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민감하게 풀이가 되고 있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서양인들의 역사문화가 스스로 얼마나 동양문화에 종속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가 동양문화와 접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 도시국가들은 이미 동양문화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위치적 문제에서 "해뜨는 곳" 또는 "밝다"의 의미가 신적인 존재와 묶여 너무나도 강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분명코 동양사고적 문화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스어 '판pan(all)'과 '테르ther(beast)'의 조립 파생된 어원은 '모든 동물'로 풀이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 속명(屬名)은 호랑이만을 지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고 최상위포식자라고 뭉뚱그려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앞에서 우리말 호랑이라 함도 범과 이리를 혼용된 어원에서 찾는 것과 거의 동일한 설명이다.
고양이과(貓科:Felidae)계통 속명으로 1816년 독일 자연학자 로렌츠 오켄(Lorenz Oken:1779-1851)에 의해 최초 명명되었고 영국분류학자 레지널드 이네스 포콕(Reginald Innes Pocock:1863-1947)에 의해 1916년 분류를 확대하여 사자(Lion:Panthera leo), 호랑이(Tiger:Panthera tigris), 재규어(Jaguar:Panthera onca), 표범(Leopard:Panthera pardus)을 넣고 개정하였으며 1929년에는 수마트라호랑이(Panthera tigris sumatrae Pocock)를 명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전(DNA)분석에서 눈 표범(snow leopard:Panthera uncia)도 2008년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평가자에 의해 표범속(豹屬)에 속한다고 정리되었다.
그 다음 종소명(種小名)인 티크리스(tigris)의 어원을 보면 고대그리스어 티그리스(τίγρις)에서 기원하고 중앙아시아 티그리스강(river Tigris)뿐만 아니라 타이거란 호랑이(tiger)단어 역시 이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며 중세 영어 티그레(tigre)와 고대 영어 복수단어 티그라스(tigras)등은 모든 동물에게 사용되던 명칭이라는 사실과 일치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동양이 아니라 고대 프랑스의 티그(tigre)에서 파생되었다 하여 이 어원은 라틴어 티그리스(tigris)의 파생어라 하였다.
원래 이 단어의 출처는 페르시아의 티그라(tigra)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의미가 뾰쪽하다거나 날카롭다는 뜻이며 아베스탄어(Avestan) 티크리(tigrhi)가 화살의 뜻이 있어 아마도 호랑이가 먹이를 채어 먹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라고 조심스럽게 풀이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는데 위 이것은 판테라(Panthera)라 마찬가지로 일정하게 한 종류의 포식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 표범속(豹屬)에 속한 모든 포식자들을 통칭한 명칭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종소명 티크리스 또한 특정한 영역보다 날쌘 의미를 부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래전 총기류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 호랑이와 그밖에 최상위 포식자들을 인간이 식별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고 위험스러운 것이므로 순간적으로 인간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며 이들 포식자들이 상당히 빠르게 느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The common name "leopard" /ˈlɛ.pərd/ is a Greek compound of λέων leōn ("lion") and πάρδος pardos ("male panther"). The name reflects the fact that in antiquity, a leopard was believed to be a hybrid of a lion and a panther. The Greek word is related to Sanskrit पृदाकु pṛdāku ("snake", "tiger" or "panther"), and probably derives from a Mediterranean language, such as Egyptian. The name was first used in the 13th century. Other vernacular names for the leopard include graupanther, panther and several regional names such as tendwa in India. The term "black panther" refers to leopards with melanistic genes. A term for the leopard used in Old English and later, but now very uncommon, is "pard". The scientific name of the leopard is Panthera pardus. The generic name Panthera derives from Latin via Greek πάνθηρ (pánthēr). The term "panther", whose first recorded use dates back to the 13th century AD, generally refers to the leopard, and less often to the cougar and the jaguar. Alternative origins suggested for Panthera include an Indo-Iranian word meaning "white-yellow" or "pale". In Sanskrit, this could have been derived from पाण्डर pāṇḍara ("tiger"), which in turn comes from पुण्डरीक puṇḍárīka (with the same meaning). The specific name pardus is derived from the Greek πάρδος (pardos) ("male panther").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포식자들을 통칭해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다음은 호랑이 더불어 지정되는 표범속(豹屬)에서 표범(leopard)에 대한 어원(語源)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표범의 이름을 레오파드(leopard)라 하는 것은 그리스어의 합성어로서 레온(λέων:leon)과 파르도스(πάρδος:pardos)로 인식되어 숫 표범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즉 레오파드의 원래 뜻은 숫표범을 뜻한다.
고대에서 표범은 사자와 표범의 잡종이라고 믿었고 고대그리스어 헬라어(Έλλας:Hella)는 산스크리트어 프리다쿠(पृदाकु:prdaku) 즉 뱀(snake), 범(tiger) 또는 표범(panther)과 관련이 있다 하면서 이집트인과 같은 지중해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 표범이란 용어는 13세기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표범의 다른 모국어는 그라펜더(graupanther)나 펜더(panther)라 하는데 이상하게도 인도동북부지역의 텐드와(tendwa)같은 지역이름도 포함이 되며 검은표범(black panther)이란 용어는 형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멜라닌 성분 유전자를 가진 표범을 의미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레오파드는 고대영어에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표범에 대한 용어는 파드(pard)인 것으로 나타난다.
["pard". Oxford English Dictionary (3rd ed.). Oxford University Press. September 2005. (Subscription or UK public library membership required.) OED gives examples of "pard" from OE until 1984.]
독일인 동물학자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앤토 마이어(Panthera pardus fusca Meyer,1794)에 의해 명명된 인도표범은 현 인도아대륙을 근원지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인도호랑이와 거의 같은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표범으로 알려진 재규어(Jaguar:Panthera onca Linnaeus, 1758)는 린네에 의해 명명되었는데 이를 아메리카 표범이라고 하고 표범을 뜻하는 그리스어 판티르(πάνθηρ)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어원에서 보면 판 πάν는 "모두(전부,전체)"를 뜻하며 티르"θηρ"는 야수(동물, 짐승)를 뜻한다고 되어 있어 사실상 표범이라는 명칭은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아메리카표범 중에 하나는 린네가 명명한 퓨마속(Puma:Felis concolor Linnaeus, 1771)이고 이 외형은 표범, 호랑이에 가까우나 서식지를 보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갑자기 줄어들어거나 감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 잔존하고 있는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과 중앙아메리카대륙 일부 그리고 남아메리카대륙전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범의 학명 판테라 파르더스(Panthera pardus)에서 판테라(Panthera)는 호랑이 설명과 같아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표범 펜테르(panther)의 용어는 일반적으로 아메리카호랑이, 아메리카표범이라고도 하는 퓨마(puma)와 북아메리카 남서부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Patagonia)까지 지역에서 서식하는 재규어(jaguar)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판테라(Panthera)의 기원은 인도유럽어족의 갈래인 인도-이란어(Indo-Iranian languages)로 흰색과 황색 또는 창백한 의미를 나타내고 산스크리트어에서 동일한 의미로 푼델카( पुण्डरकक:puṇḍárīka)라고 하는 호랑이에서 파생되었다고 설명되며 종명 파라더스(pardus)는 그리스어 파르도스(πάρδος:pardos)즉 수컷표범을 의미한 것이라고 설명된다.
서양인들도 호랑이와 표범을 거의 한 동물로 취급했던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어찌 보면 우리말 어원은 세계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보여지는 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식근원지를 알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호랑이와 연결되고 있는 대부분 포식자들이 아시아대륙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에 서식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호랑이의 단독 개체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 표범속(豹屬)에 속하는 호랑이 이외 사자(lion), 표범(leopard), 아메리카표범이라 하는 재규어(jaguar), 눈표범이라 하는 회색표범(snow leopard)이 여기에 속해 있고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에 서식처로 알려지며 먹이사슬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 alpha predator, super predator), 또는 정점포식자(top-predator, top-level predators)가 바로 이 표범속에 속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이를 거의 같은 분류체제에 있었다는 사실과 서식지가 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이다.
학명에 분류명명법을 보면 2명법(二名法:binomial nomenclature)을 원칙으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종(種)에 따라서 아종(亞種)이나 변종(變種:variety)이 있을 때에는 그 종(種)의 이름 다음에 그 이름을 표기하는데, 이런 형태를 삼명법(三名法:trinominal nomenclature)이라고 하며 이러한 예로 호랑이(en:Panthera tigris)라는 종(種)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고 아종(亞種)인 시베리아 호랑이는 기존 호랑이와 구분하기 위해 알타이카(altaica)를 붙여 “Panthera tigris altaica”로 명명한 사실에서 큰 의구심을 갖게 만든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삼명법은 현저한 변이 변종이 생성되었을 때 사용한다 하였지만 특히 호랑이를 분류함에 있어 이 삼명법이 남발되었음을 확실히 감지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째든 생물학의 시조(始祖)라고 알려진 린네(Carl Linnaeus, 1707-1778)가 1758년에 명명한 호랑이의 대표 학명(學名)은 속명(Genus)과 종명(Species)으로 분류한 이명법(二名法:binomial nomenclature)이다.
이것을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 Linnaeus, 1758)라 하여 호랑이를 하나의 종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왠지 갑자기 1844년부터 친일(서세연합세력)성향의 서양학자들은 호랑이와 표범에 대해 종(種) 분류군에서 변이(變異)가 심한 다형종(polytypic species)이라 하여 각각의 분화(分化)된 종(種)을 명명해야 한다면서 동물분류학에서의 삼명법(trinominal nomenclature)을 적용하였는데 바로 속명(屬名)+종소명(種小名)+아종명(亞種名)으로 배열하였다.
이때부터 심각한 본래 서식처가 변이되고 변질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나의 호랑이가 삼명법에 의해 벵골호랑이(Panthera tigris tigris Linnaeus, 1758)로 새삼스럽게 분류되면서 1815년 이것에 의해 독일 곤충학자이면서 동물학자인 요한 칼 빌헬름 일리거(Johann Karl Wilhelm Illiger:1775-1813)를 시작으로 1844년 네덜란드의 동물, 조류학자인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1778-1858)에 의해 카스피해호랑이(Panthera tigris virgata Illiger,1815)와 시베리아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 Temminck, 1884)가 삼명법으로 명명되어 아종으로 분류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벵골호랑이(Panthera tigris tigris, Linnaeus, 1758)
P. t. fluviatilis Sterndale, 1884
P. t. montanus
P. t. regalis
P. t. striatus Svertzov, 1858
시베리아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 Linnaeus, 1758)
옛날에(별칭)
P. t. amurensis
P. t. altaica (Temminck, 1884)
P. t. coreensis
P. t. mandshurica
P. t. mikadoi
†카스피호랑이(Panthera tigris virgata)
formerly:
P. t. lecoqi
P. t. septentrionalis
P. t. trabata
P. t. virgata (Illiger, 1815)
위 학명을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보았지만 이것들은 또 다시 분화를 하였는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갈갈이찢어졌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본래 벵골호랑이는 동부 호랑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린네가 처음 명명한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 Linnaeus, 1758)는 호랑이를 세부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하나의 종(種)으로 명명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지형적인 영향에 의해 체형과 표피색깔 모양이 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종(亞種)으로 분류한 이유가 서식지가 다르다는 이유가 크다.
때문에 서식지가 개정된 분류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개체 서식지 옮기기가 진행되었을 것임을 의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린네 이후의 학자들은 경쟁적으로 이를 다르게 표본을 수집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분류 상태를 보듯이 무분별하게 갈기갈기 찢기듯이 서식지를 종명으로 마구 남발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어 본래의 서식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행태적 행위가 학자가 가지고 있었던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서세의 궁극적인 목표가 ‘역사 새 판짜기’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에 본의 아니게 이용되었거나 스스로 협력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 이들 분류개정행위에서 들어나는 것은 린네(Carl Linnaeus)가 처음 호랑이를 분류체계화 한 후 약 50년이 지난 1815년에 독일 곤충학자이면서 동물학자인 요한 칼 빌헬름 일리거(Johann Karl Wilhelm Illiger:1775-1813)에 의해 카스피해호랑이(Caspian tiger)가 독립적으로 다시 분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일리거는 주로 아메리카대륙에서 생물체들을 연구하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카스피해호랑이를 분류했다는 사실은 퍽 그가 활동한 사실과 대치는 것이라 더욱 의심된다 할 수밖에 없다.
1811년에 그는 코끼리(elephants), 미국 매스토돈(American mastodon:Mammut americanum), 털이 많은 맘모스(wooly mammoth)에 대한 분류학적 긴 코 분류 장비목(長鼻目:Proboscidea)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또한 일반적으로 태평양 해마(Pacific Walrus:Odobenus rosmarus divergens)의 아종(亞種)을 묘사하였으며 남아메리카 동부에 서식하는 마코 앵무(Macaw, Primolius maracana, Vieillot, 1816)와 남아메리카대륙 북서(北西)지역의 안장 타마린(Saguinus fuscicollis illigeri, Pucheran, 1845)을 명명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중앙아시아 카스피해호랑이 표본을 채취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주로 아메리카대륙에서 활동한 이 일리거가 오늘날 유라시아지방에서 카스피해호랑이를 명명했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가 종명(種名)으로 사용한 “비르카타(virgata)"는 고대영어로부터 차입한 것으로서 가늘고 길다고 하는 의미의 가지, 막대, 야드를 나타내고, 고대영국의 면적단위의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서식지가 아닌 카스피해호랑이의 좁고 긴 줄무늬가 있는 형상을 토대로 아종명(亞種名)을 명명하고 아종(亞種)으로 분류하였다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카스피해호랑이를 페르시아호랑이라 하거나 카스피 해 동남쪽에 있었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한 주(州) '히르카니아(hyrcania)호랑이'라 했다고 알려지지만 두개골의 크기는 벵골 호랑이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유전 분석에 따르면, 시베리아 호랑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해지는 것이어서 형태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임에도 굳이 아종(亞種)으로 분류한 것은 서식지가 오늘날 흑해와 카스피해의 남부와 동부 강기슭 통로와 삼림,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중앙아시아, 아랄해 연안을 따라 발하슈호(Lake Balkhash)남부해안, 알타이산맥까지 영역에서 근거한 것이라고 규정짓음으로써 1970년까지 야생기록만 남겨두고 멸종된 것으로 간주한 것은 매우 불명확한 처리가 아닐 수 없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혹 카스피해가 유라시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글쓴이가 오래전부터 추측하던 허드슨베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것들은 글쓴이가 우려하고 있는 인위적인 서식지 옮기기 또는 본래 서식지 나누기 행태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또한 시베리아호랑이(Siberian tiger)도 이와 같은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며 본 블로그 글 전편에서 언급한 친일(서세연합체제)생물학자 네덜란드의 동물, 조류학자인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1778-1858)가 1844년에 분류 개정한 학명 “Panthera tigris altaica Temminck, 1844”에서 아종명(亞種名) 알타이카(altaica)라 했다는 사실은 소위 알타이를 시베리아와 동일시 하고 있는 사실도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알타이의 본질
그렇다면 테민크가 분류한 알타이의 본질을 밝혀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상 19세기는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하는 물질시대가 도래하여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크다.
물론 알타이와 함께 바라보는 것은 골드러시이다.
알타이+산맥이라고 명칭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지칭일까?
논하나 마나 중복되는 명칭이다.
이미 몽골어(Монгол)알타이 단어 하나에 금(金)과 산(山) 의미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구태여 산맥을 별도로 호칭한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산맥이라는 것은 후일 붙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alt" (gold) and "tai" (suffix – "with"; the mountain with gold)
19세기 황금에 의한 역사혼란은 사람들의 개념을 뿌리채 잡아 흔든 것으로 그 영향력은 기존 역사로 보아서도 지대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이러한 사실은 모든 경제문화와 역사까지도 서양학자들이 장악한 환경에서 무한의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무방하며 여기에서 그들에게 장애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 할 때 아시아대륙에 존재했다고 하는 알타이산맥에서 예부터 금(金:gold)이 존재했다고 하는 구전으로나 기록으로 그러한 내용이 수 백 년 동안 전해져 내려와 검증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래서 세계가 똑같이 산업혁명이란 인간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홍역 앓이에서 그것이 더욱 자극할 수 있는 여지가 되어 엄청난 방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면 당연히 세계적으로 1848년부터 불어 닥친 골드러시(gold rush)는 두 말 필요 없이 아시아 알타이 산맥에서 난리통이 났어야 했던 것은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고 해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1840년에 시작된 1차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아시아대륙 알타이 코밑에 있었던 중국이란 정부는 그 이후 수많은 시간 동안 사회 전반에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서양세력들이 중국침탈 목적이 알타이산맥의 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편수출이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중국사회가 그렇듯 혼란스러웠다면 그 이후라도 그들은 중국대륙북부 알타이산맥에 금이 있어 그것을 노려야 했을 터인데 그러한 소리는 여태 듣질 못했다.
왜 금이라면 자기 부모도 총으로 죽이는 그들이 왜 그렇듯 아시아알타이에 대해선 무심 했을까?
그것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캘리포니아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금산(金山) 즉 샌프란시스코 한문 명칭처럼 금이 많지 않았다는 결론이고 알타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골드러시가 발생한 곳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미 본 블로그 글 "알타이(altai)가 어딘가?-용연향(龍涎香, ambergris)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3"에서 충분히 따져 물었던 적이 있다.
번지수가 다른 골드러시가 발생된 것이다.
골드러시가 무엇인가.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풍랑에서 부(富)를 축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을 꾸며 황금(黃金)을 찾아 전 세계에서 벌떼처럼 무수한 사람들이 금이 나는 곳으로 달려들었던 사실을 말한다.
사실상 캘리포니아가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골드러시가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간략하게 보면 캘리포니아 콜로마(Coloma)에 가까운 서터스 밀(Sutter"s Mill)에서 시작된 이 사건의 발단은 개척자 존 서터(John Sutter)가 고용한 현장 감독이었던 제임스 마셜(James Marshall)에 의해 시에라네바다산맥(Sierra Nevada Range)에서 발원하여 샌프란시스코만(灣)으로 흘러 들어가는 아메리칸 강(American River)가에 건설하고 있었던 제재소의 방수로에서 빛나는 사금을 1848년 1월 24일에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이때 소위 금이 넘쳐 흘렀다는 표현으로 이를 상징한다.
이 골드러시(Gold rush:1848-1849)역사가 비록 2년이 체 되지 않는 짧은 것이지만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원인이 되었으며 급기야 이러한 산업파동은 북아메리카대륙 최초횡단철도(Transcontinental railroad:1863-1869)를 건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이다.
바꾸어 말하면 골드러시로 인하여 미국인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상을 단번에 점령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였던 것은 물론이다.
그 만큼 당시 금의 파괴력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볼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1902년 당시 최대 18,000톤급의 코리아(korea)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2"에서 밝혔듯이 횡단철도가 완성되기 전에는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태평양우편증기선회사(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가 운영하는 연안수송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이 회사는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수송선 보유척수를 늘릴 수 있었으며 횡단철도가 완성되던 1869년까지 3000톤급 미만의 구식 증기선의 일종 패들외륜선(paddle wheels)을 29척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패들외륜선은 1853년에 매슈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1794-1858)가 흑선(Blackship)이라 칭하기도 하는 2,450톤급의 전장길이 78 m, 폭 14 m, 홀수 6.25 m, 구식스팀엔진(Steam engine)으로써 당시의 범선형태와 동일한 것이다.
당시 패들외륜선들은 3000톤급 미만으로써 대양횡단용이 아니라 전부 연안용(for coast)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알아야 한다.
즉 흑선을 이끌고 일본 우라가(浦賀)로 들어간 페리는 결코 태평양을 횡단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다시말하지만 서부개척전에 미시시피강을 서양인들은 곧잘 태평양이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떤 식이든 관습은 무서운 것이다.
중국사서인 주서(周書)가 당시 키르키즈인을 얼굴이 하얗고 눈이 푸르다 한 것과 현재 키르키즈인들은 투르크라고 할 수 없는 몽골리안의 모습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 종족에서 결코 몽골리안이란 개념만 가지고 볼 성질이 아니며 터어키어(Turkic languages) 알튼"altın"은 금(金:gold)의 의미이고 다으"dağ"는 산(山)을 의미라 하여 알튼다으(altındağ)가 금산(金山:altındağ:golden mountain)을 말하는 것과 역사성은 공교롭게도 중복되는 것이 많다.
때문에 알튼(altın)과 알프스(alps)역시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 알프스에 대해 본 블로그 글 "흐미(khoomei)의 역사 밝힘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5"에서 밝혔던 적이 있다.
그들이 비록 '알타티카'라고 하여 '시베리아호랑이'를 새롭게 창조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종(種)에서 아종(亞種)으로 구분하고 삼명법을 사용한 시베리아호랑이의 학명 “Panthera tigris altaica Temminck, 1844” 의 아종명(亞種名)에 알타이카의 명명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림 것으로써 명명백백 잘못된 과정에서 생성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과 함께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왜 시베리아를 아시아대륙에서만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입이 아플지경이지만 다시 거론하면 본 블로글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와 "버드나무(朝鲜柳:Salix koreensis)모순과 시베리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2" 그리고 "사할린(Sakhalin)은 섬(島)이 아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8"에서 이미 시베리아는 사백력(斯白力)이어야 하는 고유명사라고 주장하고 확인하였으며 삼한의 전통에 따라 빛 나는(to shine), 새벽·여명·서광(see aurora), 오스(aus) 밝다, 여명을 보다, 새벽이라는 뜻을 가져 태백신(太白神)이 사백력(斯白力)이라 지칭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가 있다.
서양자료에는 이 시베리아에 대한 어원이 명확하게 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도 그들에게 치명적인 명칭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 것이다.
그렇다, 시베리아는 타타르어로 "잠자는 땅(Sib Ir)"이라고 했고 투르크어(Turkic origin)로는"su(물)"과 "bir(야생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해뜨는 동쪽편이라 해야 맞다.
당시 물질가치를 가장 잘 챙겼다는 허드슨베이회사가 어디에 자릴 잡았던가.
서시베리아라고 하는 지금 아시아대륙이 결코 아니다.
1844년 국제환경
특히 알타이(altaica) 아종명(亞種名)이 부여될 시점인 1844년경에는 세계적으로 서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시기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건으로써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西部) 입구(入口)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서양인들이 황금의 꿈을 안고 몰려드는 골드러시(Gold rush:1848-1849)가 발생되었던 시기였다는 점, 그리고 그 이전부터 황금은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지속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1840년경부터 역사가(歷史家)들에 의해 옛 문헌들을 참고하면서부터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알타이가 어디에 있었던 것에 대한 사실 판단이다.
태평양을 넘어 동아시아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철저한 서세가 만든 역사프레임이다.
본 블로그 글 "버지니아(Virginia)와 경주(동경)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5"에서 밝혔던 것으로 사실상 16세기부터 서양인들의 관습적 지식에서 미시시피강을 태평양으로 보았다는 사실과 미시시피강을 건너 서부를 말하는 것과의 대치되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역사사실과 같은 것으로써 이것을 사실화할 수 있다면 세계삼한역사는 크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세의 역사프레임은 오늘날 한반도 역사가 생성될 수 있는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즉 골드러시의 시발은 기존 역사사실에 대한 지속성에 의한 확실성이다.
그리고 금에 대한 입소문은 대중편향성이 있기 때문에 막기도 힘든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산업혁명에 의한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 물질만능주의(物質萬能主義)가 팽배하고 모든 관계를 황금과 연관시켜 생각하려는 풍조와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에 의한 삶을 지배하는 것 중에 하나가 풍족함과 부유함이라 할 때 바로 황금이라는 가치를 최고로 여기던 시대이며 소유욕에 대한 집착이 컸던 서양인들에게 큰 욕망이 부풀렀던 시기였음이 틀림없다.
전자 소제 글 "알타이의 본질"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문제는 금이 넘쳐난다고 하던 알타이가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대륙가 아니라면 그래서 미시시피강을 건너 서부 로키산맥을 말한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애써 찾는 역사찾기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당시 역사학자들이나 지리학자 또는 생물학자들은 ‘금(金)이 나는 산(山)’ 알타이(Altai)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금(金)이 나는 역사근원지를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것들이 주는 결과가 골드러시이다.
또 한 가지 사회풍조에서 기존 역사에 먹구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진화론(進化論:Evolutinary theory)에 의한 백인들의 프론티어 변혁에 따른 살벌한 바람이다.
이때가 무법천지 서부활극시대이다.
진화론은 영국의 박물학자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1859년 저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에 의한 순수한 생물학설이라고 믿고 있지만 서세들이 주동이 된 서양 개념 즉 사고의 향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국주의,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합리화하고 집단학살(Genocide)과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예고하는 프론티어 사상을 창조하게 하였으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이를 시행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고 현실에 적응한 생명체가 생존할 가치가 있고 당연히 그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즉 그들의 목적과 목표를 위한 것이라면 꺼림낌이 없었다는 말이다.
비록 세계사 모든 것에서 서양인들이 오리엔탈역사문화에 그동안 뒤처져 있었다 하더라도 자본을 휘어잡고 있던 서세들은 이 모든 것을 서양쪽으로 뒤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야기다.
즉 우수한 인종은 언제든지 열등한 인종을 착취해도 자연규칙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며 한 생명의 번성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말살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당시 1844년경의 상황이다.
즉 힘이 없는 민족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완성된 것이다.
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시에 무소불위의 금융자본이다.
이 자본이 인종 우월성까지 판단하게 만든 것이다.
최신무기를 제조하고 또는 사들이고, 이를 위해 매장자원이 풍부한 영토를 속여 헐값으로 사들이며, 상대방 힘을 억제하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고 압력의 수단인 양병을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모든 비용은 서세의 금융자본이 담당했다.
더불어 당시 생물학계 상황을 보면 1801년 프랑스 식물학자 오귀스탱 오지(Augustin Augie)에 의해 식물의 계통도가 작성되고 같은 해 발표된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1744-1829)의 저서<무척추 동물의 체계:Système des animaux sans vertèbres>에서는 획득형질 유전설, 또는 발달과 퇴화의 학설 용불용설(用不用說)에 의한 진화론이 대두되었으며 1809년에 발표한 "동물철학<Philosophic Zoologies>"에서는 동물의 계통수가 작성되었다.
그런데 1800년대에는 과거의 환경 변동을 알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화석를 연구하기 시작하는 단계라고도 하였다.
계통도를 그리려고 하면 화석의 위치나 변화한 화석이 존재하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그려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인데 당시 존재하지도 또는 검증이 되지 않는 화석을 상상으로 그렸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움직임의 반향은 생물학계 뿐만 아니라 기존 프랑스혁명에 의해 위축이 된 제정체제(帝政體制)와 기존 종교계에도 무한의 압박과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이 프랑스 계몽사상의 흐름에서 탄생한 논리라는 사실과 이것이 프랑스혁명의 토양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프랑스혁명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일부계층 상업주의에 의한 체제반란 그 자체이다.
본 블로그 글 “다시 보는 정조와 루이(Louis)”글에서 프랑스혁명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지만 유대인 자본계급인 부르주아(bourgeois)가 주동이 된 체제반란이라 한 사실과 또한 본 블로그 글 "북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사회주의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9"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사실을 참고하면, 프랑스혁명은 그동안 억압되었던 무산계급층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사적인 해방이며 기회라 한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금융자본에서 자유로웠겠는가.
아니다.
당시 미국을 금융자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당시의 금융자본이라 함은 독점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인데 빌려주고 엄청난 이자를 취하는 노릇이다.
그도 미국자본주에게 단돈 1천 5백만 달러의 돈을 받고 거대한 루이지애나를 매각하는 어리석음도 그도 어쩔 수 없는 자본의 노예였다는 결론이다.
1800년대 루이지애나의 영토크기는 현재 미국 영토의 거의1/3 규모이며 이것은 2,100,000㎢ 로 한반도 넓이(222,135㎢)에 10배가 되는 영토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영토를 돈을 주고 받고 사고 팔고 했다는 것이니 근대사는 참으로 역사가 아니라 장사꾼들의 치부(置簿)일뿐이다.
즉 유대인 상업주의 식의 라마르크 생물학 접근은 유대인 사상가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유대인에 대한 해부학적, 생리학적 특성과 원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라마르크가 유대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화론에서 유대인종에 대한 편향성이 나타나는 이론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마침내 1844년에는 다윈의 진화론 ‘종(種)의 기원’을 촉발시켰다고 알려지는 무명의 저서<창조의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가 출간되는데 어떤 목적 세력들의 의도적인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오랑우탄이라고 적시하면서 당시 보수적인 학계와 종교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물론 이런 서양인들의 의도된, 들어나지 않는 단계적 주장들은 당시 엄격한 체제 규율에 위축되었던 진보 프론티어 세력들에게 큰 자신감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Great Flood of 1844, the biggest flood ever recorded on the Missouri River and Upper Mississippi River in terms of discharge.
더군다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는 1844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미주리강(Missouri river)과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으며 당시 주민들의 인심이 크게 이반(離叛)되어 흉흉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고 그래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같은 해 6월 6일에는 런던(유럽이 아닌)에서 125개국 5700만(萬)명의 회원으로 개신교 정체성을 가진 기독교 청년회(YMCA)가 창설되었다고 알려진다.
이 시기에 무엇보다도 동양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아편 전쟁(阿片戰爭,Opium Wars:1840-1842)이 있었고 2년 후 1842년 8월 29일에 영국과 남경조약(南京條約)을 맺었으며 1843년 10월에는 중영(中英)간에 호문조약(虎門條約:Treaty of the Bogue)이 맺어지고 1844년 10월 24일에는 중국과 프랑스가 황보조약(黃埔條約)을 맺게 되는데 청조(淸朝)는 광주(廣州), 복주(福州), 하문(厦門,Amoy下門), 녕파(寧波), 상해(上海) 다섯 개 항구를 개항하고, 영국(동인도회사)배의 통상을 인정하게 된다.
종전까지만 해도 동인도회사의 선박을 해적선이라 하여 통과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미국역시 이와 때를 맞추어 마카오 교외의 망하촌(望厦村)에서 망하조약(望廈條約:1844.7.3)을 맺게 되는데 오히려 중영조약(中英條約:Sino-British Treaty)의 조항보다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위 5개의 항구도시에 토지를 매입하고 교회와 병원을 세울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를 배울 수 없도록 한 법률을 폐지하여 미국인에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사실이 들어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인들에게 우대를 한 것이다.
당시 서양세력들이 외교와 교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중국어는 양이(洋夷:해적선을 운행하던 서양세력:동인도회사)들에게 막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아편전쟁은 하나의 체제가 무역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지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영국에게 부여한 동일한 대우를 받았으며 12년 후 조약을 수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난다.
무력을 앞에워 강압적으로 서양세력 국가명을 인정하라 하였겠지만 이 시기에 나타나는 유럽국가명을 그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체제에서 일관된 주장이다.
이것이 인정되면서 모든 서양세력들은 유럽국가로써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입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 할 수가 있다.
그해 12월 4일에는 제임스 녹스 포크(James Knox Polk,1795-1849,재임:1845-1849)가 미국의 11번째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미국대통령은 금융을 담당하는 경제수반이라 해야 맞다.
미국대통령의 지위나 권한을 오늘날 대통령의 지위나 권한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포크는 이때부터 오리건주를 미국영토로 소유화하고 1845년에 텍사스 공화국이 자발적으로 미합중국에 서명하도록 하여 텍사스 합병(Texas Annexation)을 이루고 1846년 멕시코 합중국(United Mexican States)과 미합중국 사이에 무력충돌(분쟁)속에서 미국(금융자본)이 끼어들기가 계속되면서 멕시코전쟁(Mexican-American War:1846-1848)이 발발된다.
단순히 “멕시코 전쟁”이라 하는 것도 미국이 끼어들기 한 것이 맞고 거의 남북전쟁 전까지 완전체가 못되던 미국(이주이민자조직)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여기저기 끼어들기가 심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지만 국가주체가 아니라 금융자본조직체가 이를 대신한 것으로 미국(자본)은 이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1812년 미영전쟁(American War,1812-1815)은 나폴레옹 전쟁(Napoleonic Wars,1803-1815)과도 얽혀 있고 근대사가 말하지 않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기적으로 볼 때 나폴레옹전쟁 6번째(1813), 일곱 번째와 마지막전쟁(1815)은 미영전쟁(1812)일 가능성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폴레옹Napoleon I,1769-1821재위:1804-1814)은 미국용병전사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지해야 할 것은 오리건주(Oregon州)영토편입과 텍사스주 합병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들이 아편전쟁과 무관한가에 대한 답이다.
청조가 1844년 망하조약에서 미국에게 5개의 항구도시에 토지를 매입하고 교회와 병원을 세울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것은 이러한 영토매입과 무관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일자가 일치하지 않고 약간의 년 수 차이가 나는 것은 먼저 동양사를 갈무리하고 나중에 서양사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의 간격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지만 북아메리카대륙에서의 영국의 자취는 1846년 오리건조약(Oregon Treaty:Treaty of Washington)북위49°와 북위 54°40′까지의 영토를 가지고 영국과 미국이 다투었다고 하는 것은 할양에 대한 서로 갈등이 아니었겠는가 한다.
영국이 서부를 영토관할지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허드슨베이회사의 활동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러시아아메리카회사와 서부에서 갈등할 때라고 보이며 미국은 대체적으로 자본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전부 역사가 나열되고 있다.
그들이 신대륙이라고 하여 북아메리카대륙 동부(東部)를 차지했다고 하는 사실은 인정한다 해도 서부(西部)전역을 점령하여 니꺼니 내꺼니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상대국이 사라진 이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 등은 무리가 있다.
사실상 이때부터 서부개척사라 하여 프론티어 정신만을 이주자들에게 요구할 때이며 서부활극과 더불어 수많은 기존 하나의 체제 구성원들이 떼 죽임을 당했을 것이란 짐작이 되는 바다.
하노버왕가의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이라고 알려진 명칭 뒤에는 청조(淸朝)나 중국(中國), 또는 조선(朝鮮)이 있고 청(淸)을 본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보면 북양정권(北洋政權), 북양군벌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혹은 오대호를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아일랜드(Ireland)인이 주축을 이루며 또 반대쪽인 오리건주(州)에는 중국인이라고 하는 청조사람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862년부터 시작된 대륙횡단철도공사에 동부의 아일랜드인과 서부의 중국인들이 철도공사인부로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대입할 수가 있다.
유니온퍼시픽철도(Union Pacific Railroad)지역은 비교적 평탄한 평야이기 때문에 철도 부설 인부도 키와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아일랜드 인부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센트럴퍼시픽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는 인부 구인난으로 키도 체격도 작고 허약한 중국 인부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료에 나타난다.
때문에 중국과 아일랜드인들은 체제속의 하나의 구성원으로 의심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오리건 준주(Oregon Territory)에는 중국인이 상당히 많았다는 이야기다.
즉 동아시아대륙에서 철도일자리를 찾아 태평양을 넘어간 것이 아니다.
당시 중국인들의 아편흡입상황을 보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뉴욕에서도 습용하였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찾을 수 있고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습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현재는 당시 사건의 진실성을 없애기 위해 사건 명칭도 여러 가지를 사용하여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본래 중국인들이 동아시아대륙에서 넘어 간 것이 아니라 기존 오래전부터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840년부터 시작된 골드러시는 분명 금이 나는 곳으로 온 지역의 서양인들이 몰려들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설령 그곳에 본래 동양인이거나 동양오리엔탈역사문화가 존재한 땅이라 할지라도 이런 환경이라면 총을 소지한 서양인들에게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을 수도 있는 것이며 자본을 손에 쥔 자본주들은 정부를 압박하여 금이 채굴될 수 있는 산을 매입하고 소유권을 주장했다고 하면 그래서 백인들만이 채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면 금을 만질 수 있었던 주체도 백인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조선체제나 대한제국체제에서 내치는 국왕이 하되 미국자본들이 경제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그들 마음대로 의회를 움직여 허수아비신세로 전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괴장히 높다.
이때를 프론티어정신으로 치장하고 체제가 방관할 때 어떤 식으로던지 살육이 곳곳에서 자행되었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소제 알타이 본질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1840년에 시작된 1차 아편전쟁은 이상하게도 서양세력들의 중국침탈 목적이 알타이의 금(金:gold)이 아니라 아편수출이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며 결코 동아시아대륙 알타이는 금이 무더기로 산출되는 곳이 아님이 분명하다.
아마도 19세기 발생한 중국역사 대부분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이거나 동부 북부일 가능성이 높다.
정리해보면 1844년의 상황은 자본에 의해 지배당할 처지에 놓인 모든 동양문화영역에서 절대로 불리한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Qing)나라라고 하는 중국체제를 청조(淸朝:Qing dynasty), 청정부(淸政府:Qing government)라고 하였지만 결코 임페리얼(Imperial)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조선(朝鮮)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부 텍사스와 멕시코는 1917년 손문이 대총통으로 하는 광동정부(호법정부)가 활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1844년에 네덜란드의 동물, 조류학자인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1778-1858)가 분류체계를 개정한 학명 “Panthera tigris altaica Temminck, 1844”에 알타이카(altaica)란 아종명을 붙이 이유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1758년 린네가 명명했다고 알고 있는 벵골호랑이(Panthera tigris tigris, Linnaeus, 1758)학명에서도 1815년 일리거에 의한 카스피해호랑이의 아종명 생성과 1844년에 시베리아호랑이 아종명 알타이카의 생성과 더불어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종명 벵골은 한참 늦은 시기인 1929년에 브리티시 동물학자 레지날드 인네스 포커쿡(Reginald Innes Pocock:1863–1947)에 의해 삼명법(Panthera tigris tigris)아래 아종(亞種)으로 삼은 명칭이라 한 것은 이전 벵골호랑이가 다른 명칭을 불리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호랑이 먹이사슬
이제는 이런 혼란된 분류체계속에서 호랑이 자체만으로 서식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와 밀접하게 관계되는 먹이사슬을 찾아 볼 수밖에 없다.
일단 호랑이에게는 천적(天敵:natural enemy)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상대 적(敵)이 존재했는데 큰 버팔로(large buffalo), 코끼리(elephant) 그리고 곰(bear)으로 나타나고 이것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북아메리카대륙을 근거로 하는 동물이다.
본 블로그 글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http://blog.daum.net/han0114/17050580"에서 북아메리카대륙 들소와 유럽들소가 교잡에 의해 혼종이 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이야기 했고 유럽들소는 이른 19세기에 멸종되었으나 약간 늦지만 북아메리카들소는 20세기 초까지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사실을 볼 때 비록 북아메리카대륙들소 보다 유럽들소가 몸 집 큰 것이라 하지만 본래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을 근거로 하는 들소를 유럽들소라 하였으며 북아메리카대륙의 들소는 서부지역으로 몰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였다.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의 식민지 13개주는 마치 유럽국가들을 떠 올리게 하는 역사사실들이 많다.
야우(野牛)라고 하는 들소 역사 역시 모순이 없지 않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록키(Rocky)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북아메리카지역, 특히 서부평원에 수천만 마리(5000만 마리)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유럽들소니 북아메리카들소니 하지만 북아메리카대륙을 서식지로 하는 들소일 것이라 확신이 있다.
더군나다 캐나다 서부 앨버타(Alberta)주 남서쪽에 있는 헤드 스매시드 버펄로 지대(Head-Smashed-In Buffalo Jump)지역은 버펄로(아메리카 들소)의 뼈가 여전히 많이 발견되는 곳으로 알려지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1811년에 독일 곤충학자이면서 동물학자인 요한 칼 빌헬름 일리거(Johann Karl Wilhelm Illiger:1775-1813)가 코끼리(elephants), 미국 매스토돈(American mastodon:Mammut americanum), 털이 많은 맘모스(wooly mammoth)에 대한 분류학적 긴 코 분류 장비목(長鼻目:Proboscidea)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전자에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호랑이 먹이사슬을 이야기 하는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다.
그가 학명을 부여키 위해 분명히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에서 표본을 취했다는 사실 등은 긴 코 분류, 장비목의 코끼리 역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서 서식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곰은 본 블로 글 "황금곰(金熊:Golden Bears)과 함길도(咸吉道)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0"살펴보았듯이 "Ursus arctos arctos Linnaeus, 1758 Brown Bear"은 '빨리 흐르는 강'의 뜻인 서스캐처원주(Saskatchewan)지역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곳은 바로 황금곰(金熊:Golden Bears)이 서식하기 좋은 서식처임을 알 수 있었고 주 남부에는 프레리(Prairie)초원이 있고 북부에는 침엽수림(針葉樹林:coniferous forest), 중간부의 이행대인 혼합림(混淆林:mixed forest)이 구성되고 있어 포식자 최상위에 있는 동물들이 서식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They range from tropical forests, evergreen forests, ravines, woodlands, mangrove swamps, grasslands, savannas, and rocky country. Some other preferred habitats include dense thickets, long grass or tamarisk shrubs along river banks.
대체적으로 상대적인 적이 최상위포식자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호랑이의 서식지를 살펴보면 열대임야, 상록수림, 협곡, 삼림지대, 맹그로브 습지, 목초지, 대초원, 그리고 바위가 많은 곳과 강둑들을 따라 난 조밀한 덤불, 긴 잔디밭 또는 위성류(渭城柳)관목이 있는 곳이라 하였다.
Humans have also altered the natural habitats of tigers by their destruction and encroachment on the tigers' feeding range; humans are destroying their habitats by cutting down trees, moving into their preferred locations, polluting the water and air, and hunting their prey.
인간들은 호랑이 번식하는 곳에서 호랑이들의 자생지들을 바꾸고 나무들을 절단하여 번식지들을 소실시키거나 인위적으로 근원서식지를 이동시켰으며 물과 공기를 오염시켜 호랑이를 제거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예상된 우려는 호랑이의 절멸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Superstition has surrounded tigers for centuries; their body parts are used in Asian medicines. Necklets of tiger claws are thought to protect a child from "the evil eye"; tiger whiskers are considered either a dreadful poison (in Malaysia), a powerful aphrodisiac (in Indonesia), or an aid to childbirth (in India and Pakistan); the bones, fat, liver and penis of a tiger are prized as medicines.
물론 인간의 잔인성도 여기에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위 자료의 설명에서 보면 호랑이의 신체가 약제로 사용되었고 호랑이 발톱은 목걸이가 되어 흉안(凶眼)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호랑이 수염은 무시무시한 독약으로 간주되거나 강력한 최음제로 인식되었고 또한 출산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약제를 위해 무차별 사냥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란 추측 또한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호피나 호골등이 진상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약제등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는 일이다.
그외 약제용으로 사용된 호랑이의 뼈, 지방(fat), 간장(liver) 그리고 음경이 있는데 보신용으로 귀한 약제로 취급되었을 것이 뻔하다.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호랑이 절멸을 유도한 것은 상업주의에 빠진 인간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병행해서 알 수가 있다.
이제는 그렇다면 호랑이 먹이사슬에 대해 알아보는데 호랑이 서식지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호랑이의 먹이사슬이기 때문이다.
Tigers prey on deer, moose, rabbits, birds, fish, bear, elk, lynx, hares, pigs, cattle, goats, and some smaller animals. The main food of tigers are buffalos, antelopes, and rodents.
그것들을 보면 사슴(deer), 큰사슴(moose), 토끼들(rabbits), 새들(birds), 물고기(fish), 곰(bear), 엘크(elk), 시라소니(lynx), 산토끼(hares), 돼지(pigs), 소(cattle), 염소(goats), 버팔로(buffalos), 영양(antelopes), 그리고 설치류동물(rodents)등으로 열거된다.
글쓴이 판단에서 이미 호랑이의 적이라 할 수 있는 큰 버팔로, 코끼리, 그리고 곰까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또는 북서부에 서식지로 삼고 있는 것은 실제로 먹이사슬로 나열된 위 동물들의 근원 서식지와 동일한 영역에서 서식했을 것이란 충분한 짐작이 가능하며 때문에 근원적으로 호랑이의 자연스러운 본래의 서식지가 먹이사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산재하는 곳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본다.
그처럼 왜 먹이사슬이 중요한가.
한 생물개체를 인위적으로 이동 또는 말살했다 하여도 먹이사슬 모두를 제거할 수 없는 것이며 자칫하면 생태계의 균형을 깰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의 100% 증명이 될 수 있는 근거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알아볼 것은 호랑이와 늑대가 공히 먹이로 하는 설치류 호저(豪猪:porcupine)이다.
이것을 가시 도치류 또는 퀼 돼지(quill pig)라고 하는데 A species of New World porcupine, 신대륙호저라고도 하며 캐나다호저(Canada porcupine)라고 하는 것으로 학명은 린데가 1758년에 명명한 에레티존 도르사툼(Erethizon dorsatum Linnaeus,1758)이다.
물론 이 호저는 북아메리카대륙을 서식처로 하고 있는 북아메리카대륙호저(North American porcupine)이다.
호저들은 여러 가지 자연번식지를 가지고 있는데 밀림, 툰드라, 목초지 그리고 사막 관목 공동체를 포함하여 발견되며 특히 알래스카의 흰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에 서식하는데 이는 호랑이 영역과 겹쳐진다.
이 북아메리카대륙 호저는 아메리카 인디언(원주민)의 바구니들과 옷과 같은 것들을 꾸미는데 딱딱한 깃촉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놀라운 것은 이 호저가 북아메리카대륙에서만 서식하는 설치류라는 점이다.
The name "porcupine" comes from Latin porcus pig + spina spine, quill, via Old Italian—Middle French—Middle English. A regional American name for the animal is quill pig
(crested porcupine)North American porcupine (Erethizon dorsatum),
어원에서 보면 포큐파인(porcupine)은 라틴어 포르쿠스 픽(porcus pig)의 주격으로 수컷 돼지 또는 '가시돼지(Quill pig)'로 불린고 porcus(a tame swine)1.a tame swine, a hog, pig 2.hog 3.the sea-hog, porpoise 라틴어 spina spey-(“sharp point”).spine 의미가 모두 날카로운 가시를 말하고 있다.
Natural predators of this species include fishers (a cat-sized mustelid), wolverines, coyotes, (Gray wolf)wolves, American black bears, and cougars, as well as humans.
The only known avian predators of this species are golden eagles and great horned owls.
그런데 이 호저는 같은 포식자, 호랑이와 늑대를 동시에 천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호저의 자연포식자들은 호랑이 이외 대부분의 캐나다와 미국 북부 지역의 북방수림 지역에서 발견되는 포어성(捕魚性)동물인 아메리카담비(美洲貂:American Marten)가 있으며 다음은 툰드라지대 이외에 스칸디나비아반도, 러시아, 알래스카의 침엽수림등에서 발견되는 울버린(Wolverine:貂熊,狼獾)이 있고, 북미 서부 대초원의 “이리(狼)”라고 하며 교랑[郊狼:Canis latrans 혹은 초원랑(草原狼), 총림랑(叢林狼), 북미소랑(北美小狼)]등으로 불리는 코요테(coyotes)가 있다.
그런데 교랑의 랑은 바로 호랑이의 랑이 바로 그것이며 북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 일대에 분포한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다.
이것은 호저와 지역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회색늑대
科学分类 编辑
界: 动物界 Animalia
门: 脊索动物门 Chordata
纲: 哺乳纲 Mammalia
目: 食肉目 Carnivora
科: 犬科 Canidae
属: 犬属 Canis
种: 狼 C. lupus
二名法
Canis lupus Linnaeus, 1758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하게 관찰할 것은 호저의 천적에서 먹이사슬 첨단에 속하는 학명(gray wolf:Canis lupus),[a] also known as the timber wolf or western wolf, 이라 하는 "회색늑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있었던 아종(亞種)을 카니스 루푸스 찬코(Canis lupus chanco)라고 하고 티벳늑대, 한국토종늑대, 몽고늑대 등으로 불린다.
본 블로그 글 "회색늑대(Canis lupus coreanus)를 모계로한 진돗개와 딩고(澳洲野犬,dingo) http://blog.daum.net/han0114/17048784 "에서 한국늑대(Canis lupus coreanus)는 대한민국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는 것인데 북아메리카 대륙 북부지역에 남아 있는 바로 학명 카니스 루푸스 찬코(Canis lupus chanco)와 같이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고 한 적이 있다.
또 하나의 포식자 곰(熊)은 미국 및 캐나다의 대부분 주에 발견되는 아메리카 흑곰(American black bears, Ursus americanus)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리고 쿠거(Cougar) 또는 팬서(Panther)라고도 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인 퓨마(Puma, Puma concolor)가 있다.
가만히 보면 호랑이와 회색늑대의 먹이사슬 호저의 포식자들은 거의 대부분 북아메리카대륙을 서식처로 하는 동물들이다.
그런데 호랑이만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아예 빠져 버렸다는 것을 누가 곧이 듣겠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특히 회색늑대(Canis lupus, wolf, 또는 gray/grey wolf)는 북아메리카, 유라시아, 북아프리카 황무지에 서식하는 개과의 종으로 이리나 말승냥이로도 불린다.
영어의 "wolf"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의 "wulf"로, 이는 고대 게르만어파 "*wulfaz"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하며 또 이는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wlqwos"/"*lukwos"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되면서 상존지역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아니면 서부라고 판단한다.
고대 영문학에서는 앵글로색슨 왕과 그 전사 이름의 접두사와 접미사에 "wulf"라는 명칭을 붙여졌으며 그 예로, Wulfhere, Cynewulf, Ceonwulf, Wulfheard, Eanwulf, Wulfmeer, Wulfstan, Aethelwulf 등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으며 이도 근원으로 따진다면 뉴잉글랜드가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던 이런 식을 따져보면 북유럽권의 역사가 모두 북아메리카대륙과 연관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또한, 늑대와 관련된 이름으로 기독교화 이전 게르만족의 전사들 이름에 Wolfhroc(Wolf-Frock), Wolfhetan(Wolf Hide), Isangrim(Grey Mask), Scrutolf(Garb Wolf), Wolfgang(Wolf Gait) and Wolfdregil (Wolf Runner) 등으로 늑대와 관련된 이름을 붙여졌다고 알려진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독일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이 북아메리카대륙 중북부지역이며 호랑이 서식처와도 연관되고 있는 사실도 알고보면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라틴어의 “lupus”는 사비니인(Sabini)의 외래어로 에드워드 톱셀에 따르면 원래 이 말은 그리스어로 사자발을 뜻하는 λεοποσ(leopos)과 빛을 뜻하는 λουκᾶς(loukas)에서 두 단어가 합성어로 되었다고 하였으며 라틴어 사전을 보면 카니스(canis)는 개(a dog)를 의미하고, 루푸스(lupus)는 늑대(a wolf)로 풀이되고 있다.
그것은 개나 늑대나 같은 동종으로 보았던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북극늑대(C. l. arctos)는 북극의 높은 섬에 생존하고, 동부늑대(C. l. lycaon)는 북아메리카 동부 숲에서 서식하였으며, 멕시코늑대(C. l. baileyi)는 멕시코 등지의 남쪽에 서식하는 것으로 공히 회색늑대(Canis lupus)종(種)이다.
동부늑대와 멕시코늑대는 일부 원시적인 특성과 체계적인 친화성을 가지고 있어 같다해야 맞다.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의 화석에서 북극늑대와 비슷한 툰드라늑대(C. l. albus)가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약 480만 년 전부터 약 4천 년 전)후기에 큰 크기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의 대형 회색늑대의 아종(亞種)이 남아 있으며 현재 늑대는 더는 그곳에 거주하지 않다 하지만 오래전에는 빙하 주기에 의해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하고 있으며 멕시코늑대와 비슷한 작은 늑대가 캔자스와 남부 캘리포니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는 플라이스토세 후기 늑대들의 북극 생활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며 유랑 생활을 하며 따뜻한 곳에서 대량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정리된다.
특히 옐로스톤 강에 서식하던 늑대(Yellowstone Wolf)들의 역사를 보면 서부 산악지대 와이오밍(Wyoming), 몬타나(Montana), 아이다호(Idaho)에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을 1871년 그랜트 대통령에 의해 지정되었고 그 때 늑대들이 감소세에 있었지만 정부가 특별히 보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은 미국대통령이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는 사실도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
1883년 1월, 내무행정장관은 공원에서 사냥을 금지하는 법규를 발표하였으나 이 규칙은 늑대, 코요테, 곰, 퓨마 그리고 다른 작은 약탈자들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으며 1886년 8월 1일에 미육군(米陸軍)이 공원관리를 인수한 직후, 관리관인 무스 하리스(Moose Harris)는 어떠한 야생 생물이라 할지라도 공공 사냥을 금지하였고 최소한 1914년까지 어떠한 늑대도 사살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도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을 실시하였다는 사실이다.
1907년에 서부가축 및 축산업자들의 정치적 압력은 미국 연방 정부 내 내무부 산하기관인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을 움직여 결국 동물 피해 통제라는 공동프로그램에 의해 제정된 해로운동물통제법(Animal Damage Control Act)은 1907년 39개의 국립산림에서 1800마리의 늑대와 23,000마리의 코요테를 살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호랑이가 빠졌다.
회색늑대가 있었으면 호랑이가 없었을리가 없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1933년까지 유지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동안 해로운동물이라는 명목아래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었을 것인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더불어 생각할 것은 호랑이가 아예 빠졌다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회색늑대는 원래 북위 20°이북의 모든 지역에 서식지가 있었다고 알려지지만 지금은 절멸에 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북위 20° 이북의 모든 지역이라는 것은 북아메리카대륙 대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늑대는 모든 곳으로 퍼져 미국 남동부에서 시에라네바다 산맥 서부 캘리포니아, 멕시코 열대 및 아열대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또한, 늑대는 동부 뉴펀들랜드 섬, 밴쿠버 섬, 서부 알래스카 남동부 섬, 북극 제도, 그린란드 등 주요 섬에서도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지니 번식력은 대단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늑대가 지금은 멸종단계에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북미의 늑대는 인간 인구의 증가와 농업의 확대와 동시에 개체수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에 늑대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부와 오대호 지역 북서부 지역을 제외하고 미국 동부에서 멸종했다 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870년에서 1921년 사이 뉴브런즈윅 주와 노바스코샤 주에서 늑대가 멸종했으며 1911년에는 뉴펀들랜드 주에서 멸종했다.
그리고 북부 로키산맥에서 늑대는 1920년대에 사라졌다고 알려진다.
이것에 운명은 호랑이 신세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여진다.
1850년에서 1900년 사이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 남부(南部)에 늑대가 멸종했고 대평원에서 늑대 개체수(個體數)의 감소는 1860년-70년 사이 아메리카들소 등 다른 먹이의 개체수(個體數)감소와 맞물려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1900년에서 1930년 사이 야수 종(種)을 멸종하기 위한 집중적 육식 동물관리프로그램으로 인해 사실상 미국 서부와 캐나다 국경 인근 부분에서 멸종되다시피하였고 회색늑대는 알래스카와 미네소타 주 북부를 제외한 모든 연방 및 주에서 멸종되었다고 나타난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1900년부터 1930년까지 멸종하기 위한 집중적 육식 동물관리프로그램으로 멸종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가 있다.
이를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907년부터 시작된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이 실시한 해로운동물통제법(Animal Damage Control Act)에 의한 관리는 바로 일제가 실시한 해수구제사업과 동일한 것임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일제병탄기의 해수구제사업
일제병탄기의 1915년부터 실시된 해수구제란 실체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도대체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이란 무엇일까?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발행 잡지‘조선휘보(朝鮮彙報:1915-1920)’에 따르면 이 사업에 경찰관과 헌병은 3321명, 공무원 85명, 사냥꾼 2320명, 몰이꾼 9만1252명이 1915년부터 4220일간 동원됐다고 하였으니 일수가 11년 205일이며 1926년 까지 사업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사업의 명칭에서 보면 해로운 짐승들을 몰아내어 제거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전자에서 이야기 한 미국(米國)연방정부 내 내무부산하기관인 미국 어류(魚類) 및 야생동물관리국(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이 실시한 동물피해 통제라는 공동프로그램에 의해 제정된 해로운동물통제법(Animal Damage Control Act)과 거의 같은 성질의 정책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마저 한반도 일제(日帝)와 북아메리카대륙 미국(米國)의 연결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해수구제사업의 목적에서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즉 미국은 상업주의의 이유가 분명한데 이 동물피해통제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서부(西部)가축 및 축산업자들의 정치적 압력이 컸기 때문이라지만 한반도 일제(日帝)는 조선인민들이 맹수들에게 피해가 막대하여 이를 막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에서 추구한 정책 목적 자체가 차이가 분명하게 있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가 말하는 일제에 대한 것들은 거의가 허수가 많다.
미국정부는 맹수들이 가축을 해치고 축산업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가축시장과 축산육가공품에 대한 안전한 공급보장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이미 폭정과 압정을 마다하지 않는 강압정책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식민지 인민 따위가 걱정스러워 이런 정책을 펼친다는 것은 매우 기만적이며 위선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정책자체의 진위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잡지 '조선휘보(朝鮮彙報)'에 따르면 1915~1916년 사이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의 공격으로 사상자 351명이 발생했고 가축 피해도 1만3830마리에 달했다고 하였다.
위 기록을 보면 일제도 맹수들의 공격으로 가축피해가 많아지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결국 미국과 동일하게 가축업자와 축산업자들을 위한 정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만 굳이 인민을 위한 것이라 포장하였다.
미국과 일제는 어찌하여 이렇듯 하나인 것처럼 역사에 나타나는가.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학자들은 엉뚱하게도 일제병탄기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실시한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사람들이 맹수들에게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여 인민생활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이를 합리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가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역사는 참으로 응대할 수 없는 소설같은 것이다.
누가 이처럼 거짓을 지어내고 날조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기발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식민지기간동안의 해수구제사업으로 인하여 한반도 내의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포식동물들이 거의 절멸에 이르렀다는 현실적인 의문에 당위성이 완성된 것은 틀림없다.
애초부터 한반도에 호랑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호랑이의 근원종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호랑이”라고 하거나 “조선호랑이”라고 하는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실제로 한반도에 호랑이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동아일보에서 확인할 수 있어도 몸집이 남중국호랑이 크기 정도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 모든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제정책에서의 대상이 된 동물은 미국의 동물피해 통제라는 프로그램에 대상이 된 동물들과 같이 거의 절멸했다는 결과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은 이로 인해 거대한 생태계가 뒤틀려지면서 자연재해가 발생했고 자연계가 난리가 났지만 오히려 서세 생물학자와 역사학자들에게는 철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과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여론이며 종전 생물학체계에서 새롭게 분류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발상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었고 너도 나도 표본을 찾아 그들의 이름을 올리기에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 당시 생물학계 상황이라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자연 생태학적인 책임감 따위가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때문에 특히 1844년부터 서세학자들은 이러한 환경을 이용하여 생물분류체계에 집착하였다는 것도 납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기존 생태계를 흔들고 새롭게 표본이 만들어지는 곳에 오히려 신대륙(新大陸)이라는 프레임의 역사는 걸맞게 변이를 재촉할 수 있었으며 모든 영역에서 이 파급의 효과는 지대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미국이나 한반도 정책입안자들에 의해 실행되었던 것은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들을 생태계가 위험함을 감수하더라도 완전한 절멸을 권장했거나 유도했다는 것이므로 맹수나 포식자들의 씨가 마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왜 호랑이가 없어야 하는가.
이렇게 없어진 것이다.
한국호랑이의 근원종(種)을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재 미국을 보면 주요 맹수나 포식동물들은 거의가 사파리공원(Safari park)이나 동물원에서 개체수를 조정해가며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일반 산야(山野)에는 맹수나 포식동물은 포획의 대상이며 일반인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1910년부터 서세연합체제(西勢聯合體制)의 우두머리가 되어 버린 미국(米國)은 대한제국을 조정하며 일본을 가칭했다면 이것은 명확히 의도된 역사판짜기에 따른 본래 역사장소 감추기를 위한 술책이 그 이면에 무차별적으로 실행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일제에 의해 1915년 호랑이 11마리, 다음해에는 13마리를 잡는 등 공식 통계로 약 200마리가 잡혔다고 알려지고 기록에 남기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호랑이 500마리, 표범 3000마리 이상이 일제에 의해 잡혀 멸절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였다.
늑대 같은 경우에는 약 1,400마리가 포획되었다.
또한 토목공사나 삼림벌채로 인한 서식지의 파괴도 컸고 곰 역시 약 1,000마리 가량이 포획되었다고 알려진다.
곰(熊:bear)이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늑대가 1,400마리가 포획되었다는 사실에서도 그냥 늑대라고 했지만 이 늑대는 회색늑대(Canis lupus:gray wolf)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조선(朝鮮)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시식해 ‘조선을 먹는다’는 정치적인 행사에 정호군(征虎軍)이 사냥한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1917년 12월7일 조선호텔에서 야마가타 정무총감을 포함해 실력자 120명을 초대해 열었고 같은 해 12월20일 도쿄제국호텔 대연회장에는 체신대신, 농상무대신, 육군대장 등 정재계 요인 2000여명이 참석하여 시식회를 열었다고 알려진다.
호랑이 고기는 육회용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이 요리가 특색요리로 존재한다.
그것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데 생육, 생달걀, 양파, 소금, 후추, 및 기타양념이 들어간다.
스테이크 타르타르(steak tartare)와 흡사하고 특히 독일인들이 많은 노스 다코타(North Dakota),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위스콘신(Wisconsin) 및 미네소타(Minnesota), 미주리에 특산물이며 이 음식의 원조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의 클라크(Clark)인 것으로 나타난다.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주 브라운카운티(Brown County)에 애버딘(Aberdeen)과 케슬러(Kessler's)식료품 가게에서 공급한다고 되어 있다.
The definition of tartare is a type of ground raw meat or fish with seasoning.
참고로 타르타르(tartare)의 정의는 조미료가 들어간 생고기 또는 생선의 일종이라고 설명된다.
본래 스테이크 타르타르는 프랑스어로 필레 아메리칸 프리파리(Filet américain préparé) 즉 미국식 안심요리라는 뜻이라고 자료에 나타난다.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은 타타르인들의 요리로 보는 것이 옳다.
서로 감추기에 급급하지만 대체로 독일인과 일본인이 여기서 이처럼 묶여 나타난다.
해수구제에 대한 정책을 정당화한 프랑스기사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La regne du tigre en Corée Death / Being Eaten Alive:“La regne du tigre en Corée” (Korea under Japanese rule; after the Japanese ban on owning weapons, the Koreans are seen as defenseless).
한국은 호랑이 왕국(La regne du tigre en Corée)이란 제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909년 12월 12일 발간된 일간지인 르 피티 주르날(Le Petit Journal:1863-1944)의 삽화가 있는 부록에 남겨진 호랑이의 민간인 습격 그림과 그것에 따른 설명에서 정부는 조만간 전국적으로 공포에 쌓인 호랑이와 늑대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해수구제사업이며 해로운동물통제법(Animal Damage Control Act)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는 아시아지역에서만 서식하였다?
이런 모순된 주장은 어떻게 생성 되었을까?
호랑이는 아시아대륙에만 서식했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입증에만 몰입된 나머지 생물생태학적인 사실을 경시하는 서양인학자들의 사고가 그렇다는 것이며 매우 아시아적인 이야기로 그야말로 편집증환자가 할 수 있는 주장이다.
호랑이는 애초부터 아메리카대륙에는 살지 않았다?
참으로 코메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호랑이는 수영도 곧잘 한다.
어딜 못가겠는가.
미안하지만 호랑이는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해수구제로 사라지기 시작하여 서부의 호랑이마저 가축및 축산업자들의 정치적 압력으로 사라지게 만들어진 것이 확실하다.
동부는 본래의 호랑이가 서식한 곳으로 소위 벵골호랑이라고 하고 인도호랑이라고 불리던 특히 산악 북부지역이 대표적인 서식처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바로 애팔레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을 중심으로 서식하던 호랑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와 회색늑대는 동반된 포식자들이다.
이 회색늑대를 말승냥이(timber wolf)이라고도 하는 것도 본 블로그 글 "화기삼(花旗蔘)은 고려인삼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1"에서 개마고원(蓋馬高原)을 마다산(馬多山)이라 하여 말이 많은 산, 즉 말이 뒤 덮여 있는 고원이라고 해석된다 하였던 것처럼 캔터키주 동부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 of Eastern Kentucky)에 접해 있는 고원에 마운틴 플레저 호스(The Mountain Pleasure Horse)란 말이 존재한 것에서 애팔래치아산맥의 원시 동물 유형으로서 밝혀지고 유전자테스트 결과 테네시보행말(Tennessee Walking Horse)과 로키산맥말(Rocky Mountain Horse)이 섞여 승마용인 아메리칸 새들브레드(American Saddlebred)로 나타난다 한 이 혈통 추적에 결과에서 보았듯이 말 생육의 근거지로 개마고원이라 했다는 사실에 더하여 회색늑대 즉 말승냥이가 가장 활동이 많았던 곳으로서 추측이 가능한 것은 회색늑대의 별칭 말승양이 풀이에서 보면 그렇다.
일찍이 린네는 동부 시베리아호랑이를 벵골호랑이(Panthera tigris tigris, Linnaeus,1758)로 분류하였다고 보이지만 1844년 변이된 진화론 주장에 영향을 받은 서세학자들이 본격적으로 학명을 새롭게 분류하기 시작한 결과 동부의 벵골호랑이와 서부의 시베리아호랑이가 등장한 사실이다.
물론 시베리아라 함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툰드라 지역 전역을 말해야 옮지만 현 시베리아를 지칭하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서부를 시베리아라고 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서부(西部)시베리아호랑이가 아종(亞種)으로 구분 될 필요성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보고 이때부터 뚜렷한 연고사실이 없음에도 여기저기 서식지를 아시아대륙으로 옮기며 서세생물학자 너도나도 아종을 명명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욱 이상한 것은 브리티시(British)생물학자 레지널드 이네스 포콕(Reginald Innes Pocock,1863-1947)에 의해 동부(東部)시베리아호랑이를 뒤늦은 1929년에 수마트라호랑이(Panthera tigris sumatrae Pocock,1929)라고 새롭게 명명함과 동시에 벵골(Bengal)이란 학명을 만들어 삼명법으로 시베리아호랑이와 다른 아종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현 캐나다 동부 동물원의 호랑이가 모두 수마트라호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마트라호랑이라 함은 바로 인도네시아를 서식처로한다는 이야긴데 인도네시아는 열대성기후의 지역이다.
그런데 추운날씨의 지역인 캐나다동물원에서 사육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것은 호랑이가 추운 날씨를 근원으로 삼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게 한다.
알타티카를 붙여 1844년에는 시베리아호랑이만 분류된 사실은 어떤 것도 개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시베리아호랑이를 굳이 알타이라 했다는 사실도 서부시베리아호랑이를 생성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는가 판단되며 이것이 아시아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1929년 이때부터 인도(印度)명칭이 아시아쪽으로 옮겨지면서 전체 생물분류체계가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인식되는 부분이다.
오늘날 호랑이는 아시아에만 퍼져 서식한다는 사실에 어느 누구도 크게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시아대륙생물학자가 감히 서세학자가 장악한 현 과학계기득권에 함부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연구와 발표를 의무로 해야 할 과학자가 바른 말을 못했어야 어찌 학자라고 할 수 있겠는지 생각 해 볼 문제이다.
그렇다면 북아메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에는 원초적으로 호랑이가 없었던 것일까?
호랑이가 한국 땅에서 번식이 컸었다는 것을 한반도를 의식하여 아시아지역임을 구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 하겠지만 엄격하게 이야기한다면 한반도에 한국호랑이가 서식했다는 사실자체가 엉터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입하기는 무리가 따르지만 한반도에 큰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아마도 이러한 프레임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사실이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호랑이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호랑이가 한반도에 서식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라 아닐 수 없다.
먹이사슬만 보면 그렇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가 있다.
한반도가 세계에서 천예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이며 본질적으로 인류 기원이 확실한 땅이라고 떠든다면 그것을 어찌 정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에는 자원이 풍족하지 못해 원초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왜 믿으려 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자원만으로 살던 시대와는 큰 차잉가 있겠지만 가난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 아시아대륙 남쪽인 인도나 인도네시아에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를 중심으로 퍼졌다는 남방기원설도 그렇지만 북방설이 유력하다고 정리되고 있는 문제도 아시아대륙에만 시베리아가 있다고 하는 잘못된 상식에 의해 파생된 오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툰드라지역은 시베리아라 하지 않는지 그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 소제 "알타이의 본질"에서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시베리아가 아시아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에서는 일찍이 생물학적으로 버드나무가 시베리아에 있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대부분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에 생육한다는 사실을 밝혔던 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백력이라고 하는 시베리아의 어원에서도 빛 나는(to shine), 새벽·여명·서광(see aurora), 오스(aus) 밝다, 여명을 보다, 새벽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바로 태양이 뜨는 동쪽이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북아메리카대륙을 깃점으로 하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솔직히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동시베리아와 서시베리아가 존재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지만 본래 시베리아는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맞다.
호랑이 시베리아산(産)의 화석종(種)은 수십만년전의 것으로 가장 오랜 것이기도 하겠지만 문제는 확실히 현생의 호랑이와 연결이 닿는 것으로 간주된다.
시베리아가 아시아대륙에만 있으니 호랑이가 아시아대륙에만 서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정체가 밝혀지면 이 모든 사실은 허구가 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화석동물을 동정(同定)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기타의 이론(異論)도 없지 않으나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적어도 시베리아산(産) 화석이 현생의 호랑이와 동일종으로 인정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몇 가지 논거를 들면 첫째 더운 동남아시아의 호랑이는 낮 동안 깊은 숲속이나 물가에서 지내며 숲에 숨어드는 것은 잠복대기를 하고 있다가 기습사냥을 하는 생존상의 필요에서일지도 모르나 그렇게 어두운 숲속을 좋아하는 것이 습성이라 가정해도 북방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알려진다.
때문에 남방에서의 이와 같은 행동은 더운 날씨 때문에 피서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니 남방기원설은 근원적으로 약하며 이는 호랑이가 더운 데보다는 추운 지방의 동물이란 것을 시사하는 것인데, 호랑이가 실제로 추위보다는 더위를 못 참는다고 되어 있다.
또 한가지의 모순은 호랑이가 인도에는 있고 스리랑카에는 없다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본래 스리랑카의 포유동물은 인도 대륙과는 공통종 또는 근연종(近緣種)이어서 코끼리, 멧돼지, 늘보, 곰, 표범 따위는 두 곳에 다 있는데, 호랑이만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보르네오는 스리랑카보다도 포유동물상(相)이 특수하고 지형역사(地史)적으로도 오래된 것인데, 여기에도 호랑이는 없다는 남방기원설이다.
같은 섬이라도 월리스선(Wallace's line)의 서쪽인 수마트라 자바 발리 섬에는 호랑이가 있는 것은 대륙에서 이동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
동부 및 동북 아시아대륙도 그에 딸린 섬인 해남도, 대만, 일본 및 사할린에는 호랑이가 없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옛날 시베리아의 생물상은 현재와는 달리 기후가 따뜻하고 초목이 무성해 대형 사슴의 일종인 무스(moose)나 순록 등 호랑이의 먹이 감이 많았지만 지금은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호랑이의 개체수가 많아지고 오늘날과 같이 그곳의 기후와 생물상이 변화되면서 먹이감이 줄어들자 호랑이는 타 지역으로 이동하며 분포를 확대해 갔다고 설명되는데 이것에는 역사성과 여러가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숨어 있는 이야기다.
티벳고원을 분포의 공백지대로 남기고 주로 중국대륙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남하했다는 것도 그렇고 한편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카스피해 주변과 파키스탄으로 서진해 남하한 것들과 인도에서 만났다고 되어 있으나 뚜렷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이렇게 퍼진 호랑이들이 지역적 변이로서 고정된 형질(形質)을 가지게 돼 현재의 호랑이에서 보는 지방적 아종(亞種)이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률적이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아시아대륙에서 동쪽이나 서쪽에 차이가 무엇이 있을까?
오히려 서쪽이 건조한 지역이 아닌가.
오늘날 아시아에 편중된 호랑이 서식지 문제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물론 복잡한 조건이나 다양한 과정이 있었을 것이며 각 아종의 형질을 계통적으로 변이되었다고 하겠지만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이동시켜 단절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100년 전만 해더라도 약 100,000마리의 호랑이가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 조사 결과, 전 세계 단 3,200 마리만 남아있음을 확인했고 이것은 97%의 호랑이가 멸종되었다고 결론내려진다.
그것도 아시아대륙에만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니 이를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이것은 생태 환경적으로 본래 서식지와 비교하여 부족한 것이 많아 호랑이가 자연 사멸되었거나 환경적으로 도태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호랑이 먹이사슬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인간들은 호랑이 번식하는 곳에서 호랑이들의 자생지들을 바꾸고 나무들을 절단하여 번식지들을 소실시키거나 인위적으로 근원서식지를 이동시켰으며 물과 공기를 오염시켜 호랑이를 제거했다고 말하고 있다.
19세기 말엽부처 시작된 서양인들에 의한 기존역사 파괴와 생태질서파괴에 이어 그 자리에 새로운 역사판짜기 일환에 의한 그들의 부질없는 욕심을 채워 넣었던 것이 오늘날 생물학분류체계이다.
호랑이가 아시아대륙에만 서식한다는 사실과 호랑이 개체가 95%가 감소한 원인은 고의적이라 할 수 있는 개체 감축과 축소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변질에 의해 자연적 감소현상을 이야기 하지만 근원적인 원인이나 그에 따른 이유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더군다나 현재 활동범위는 호랑이가 많았던 시기의 7%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했고 전부 아시아대륙으로 방글라데시, 부탄, 캄보디아,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러시아, 태국, 베트남 등에 존재할 뿐이라 했다.
무엇인가 자연이치에 맞지 않을 것 같은 결과가 아닌가.
왜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포식자로 타고난 맹수라고 하는 호랑이가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생존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메리카대륙을 신대륙으로 가름하고 모든 역사를 만든 것에 비유해야 할 이야기다.
의문을 가지지만 누구하나 이에 적극적인 답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아메리카대륙에 상당히 많은 근원종의 호랑이가 생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류사가 아메리카대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학자는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했다 하더라도 그동안 동양인 생물학자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사실에 동의하면 안된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비판을 하지 않는 학자가 과연 올바른 학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서양학자들 못지않게 거의가 서양교육을 받았고 때문에 서양학자들을 암묵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서양학계에 인정받으려면 오히려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연히 들어나는 의문점을 쓸데없는 망상이라 치부할 것이고 서양인들이 완성시킨 분류체계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조차 터부시 할 것이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현재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기초가 되는 생물학 자료들은 19세기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토대이고 바탕이며 근거로써 실체가 그것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래 과학지식까지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인 생물학자나 과학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아메리카대륙에는 호랑이 근원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가.
서양학자들이 심어놓은 허수들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마무리 정리
소제 “호랑이의 먹이사슬”에서 호랑이의 먹이사슬을 살펴보았지만 개체들을 보면 사슴(deer), 큰사슴(moose), 토끼들(rabbits), 새들(birds), 물고기(fish), 곰(bear), 엘크(elk), 시라소니(lynx), 산토끼(hares), 돼지(pigs), 소(cattle), 염소(goats), 버팔로(buffalos), 영양(antelopes), 그리고 설치류동물(rodents)로 나타난다.
버팔로(buffalos)에 대해 본 블로그에서 알아본 결과는 본 블로그 글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http://blog.daum.net/han0114/17050580"에서 아메리카의 야우(野牛)라고 하는 버팔로 들소 역사에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에서 록키(Rocky)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북아메리카지역, 특히 서부평원에 수천만 마리가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 알았다.
그리고 위에서 직접적인 먹이사슬의 주요하게 본 것 중에 하나는 설치류동물 중에 호저(豪猪:porcupine)이다.
이 호저의 천적 중에 하나가 바로 회색늑대이다.
이 회색늑대가 호랑이와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물론 회색늑대는 호랑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예는 드물지만 호랑이 사체를 청소하는 일에 회색늑대가 담당했다 한다.
그리고 호랑이와 회색늑대의 경쟁적인 먹이 또한 바로 호저이다.
호랑이에게 가장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동물도 호저이며 호저가시에 찔린 호랑이의 절망적인 선택이 바로 인간사냥이라 알려질 정도인데 늙어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호랑이가 공격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모든 호랑이가 인간을 마구 해친다는 설은 잘못된 것이다.
호랑이가 인간을 습격하는 이유에는 인간스스로가 호랑이 서식지를 파괴하는 경우와 먹이의 감소에 따라 호랑이의 이동이 시작되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고 가축을 잡아먹다가 급기야는 인간마저도 습격하게 되며 그리고 호랑이가 질병, 부상, 노화 등으로 인해 쇠약해지면서 공격하기 쉬운 인간을 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으며 위 2가지 경우에서 얻어진 경험을 통해 인간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달려드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미국 로키산맥을 근거로 하는 옐로스톤 회색늑대는 유명했다 한다.
이 회색늑대가 20세기 초 인위적인 개체 줄이기 정책인 해수구제나 해로운동물통제법에 의해 멸종까지 이르게 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2014년 1월 10일자 조흥섭기자의 기사를 보면 윌리엄 리플(William J. Ripple:1952-)미국 오리건 주립대 교수 등 연구진은 지난 10일치 <사이언스>에 실린 총설 논문을 통해 세계의 대형 포식자 실태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폭넓게 분석한 사실을 밝혔는데 1995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회색늑대를 복원한 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으며 단지 먹이인 엘크가 줄어든 것만이 아니며 사슴이 뜯어 먹어 자라지 못하던 나무들이 무성해졌고, 이는 다시 생태계에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냈고 결국, 회색늑대는 식물이 저장하는 탄소의 양을 늘려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영향을 완충하는 구실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퓨마가 지금은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반작용으로 사슴이 급증했고 사슴은 어린나무와 풀이 돋는 강변에 출몰하여 큰 나무뿌리가 지켜주던 강둑은 약해져 홍수에 쓸려 내려갔다고 되어 있다.
결국 퓨마가 있어 강둑을 지켜 준 셈이다.
이와같이 최상위 포식자는 수효도 적고 넓은 지역을 배회하며 많은 양의 고기를 먹기 때문에 쉽사리 인간이나 가축과 갈등을 빚어 결국 해수구제(害獸驅除)등에 의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연구진들이 연구한 결과에서는 최상위 포식자가 목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에서 실은 그렇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맹수가 야생 초식동물을 솎아주어 풀의 생산성을 높여주고 초식동물의 질병이 가축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 줘 오히려 목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주며 물론 가축을 잡아먹는 등 직접 피해는 존재한다지만 이런 비용과 장기적 편익에는 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특히 일제가 벌렸던 1915년부터의 해수구제사업의 예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1907년부터 실시된 해로운동물통제법(Animal Damage Control Act)에 의해 1911년에 뉴펀들랜드 주에서 회색늑대가 멸종하고 북부 로키산맥에서 1920년대에 사라졌다는 것은 이에 의해 20세기 초엽인 1930년대의 "먼지폭풍 황진(黃塵:dust storm)의 놀라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3"에서 알아본 자연의 무서움이 생성되게 하였으며 본 블로그 글 "1926년 마이애미 허리케인(Miami hurricane)로 본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4"와 미시시피 대홍수(Great Mississippi Flood of 1927)가 발생한 기후 자연의 현상 이면에는 이러한 과학적인 불균형이 발생한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자료에는 이러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없겠지만 호랑이 등 해수구제사업 후 일기현상과 자연현상이 어떻게 변이되어 나타났는지에 대한 상황을 검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연현상을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호랑이 먹이사슬에 속한 엘크(elk)에 대해 알아보자.
엘크에 대해 다시 글을 올리겠지만 우선 호랑이의 먹이사슬 개념에만 먼저 알아보면 놀랍게도 우리나라 사서(史書)에 “큰 사슴”이라 하여 기록된 것을 찾을 수가 있는데 글쓴이는 이를 무스(moose)라고 확신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스와 엘크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해동역사 물산지(物産志)총론에 조선에는 포(麅)가 많다 하였다.
포는 큰 사슴이라 하였고《조선부》 자주(自注)에, “포는 노루와 같은데, 뿔이 하나이고 그 고기는 매우 맛있다. 산에서는 포가 나지 않는다.” 하였다.
狍子 번체 麅子
1.노루의 일종
2.노루의 한 종류
[포]큰 사슴(麠屬); 노루(鹿屬) (麃와 同字)
鹿(사슴록) + 包(쌀포) [ 복사용 문자 : 麅 ]
5획 (총16획) elk ホウ·しか páo
麅鹿賞(포록상) 淸代, 每年 12月에 王이 大臣 등의 三品 이상된 者에게 賞䁑하는 賞與를 말함.
麅 (radical 198 鹿+5, 16 strokes, cangjie input 戈心心口山 (IPPRU), composition ⿸鹿包)
1.roe deer, Capreolus, a small spotted deer found in N.China
비록 뿔이 하나라고 하여 헷갈리게 하고 있지만 위 한어사전에는 포자가 노루일종이라 하였고 또는 큰 사슴이라 하였으며 엘크라 한 사실이 나타난다.
결정적으로 영어사전에 엘크에 대한 설명에서 보면 북 유럽이나 아시아에 사는 큰 사슴이라 하였고 북미에서는 이를 무스(moose)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스는 엘크이다.
moose (North America) or elk (Eurasia)
북아메리카대륙 무스에서 유일 종이 바로 말코손바닥사슴(Alces alces Linnaeus, 1758)또는 북아메리카대륙 큰 사슴이다.
말코손바닥사슴은 유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와 폴란드 동부에 걸쳐 살며, 시베리아를 거쳐 동쪽 지역까지 분포하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남쪽으로는 미국의 유타 주와 콜로라도 주의 로키 산맥에 걸쳐 서식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서에 등장하는 포가 엘크인지 무스인지를 밝혀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북아메리카대륙의 무스 서식지는 밴쿠버섬(Vancouver Island)을 제외한 모든 캐나다 영역이며 알래스카(Alaska)가 대부분이고 뉴잉글랜드북부(northern New England), 뉴욕위쪽(New York), 록키산맥 위쪽(Rocky Mountains), 미네소타북부northern Minnesota, 위스콘신 북부northern Wisconsin, 미시간(Michigan)의 어퍼 반도(Upper Peninsula), 슈 피리어호(Lake Superior)의 아일 로얄(Isle Royale)등으로 열거된다.
무스는 서쪽 록키산맥에서 남쪽으로 범위를 확장했고 1868년에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서 처음 목격 된 후 20 세기 초 유타 주(Utah州) 유인타 산맥(Uinta Mountains)의 북쪽 경사면으로 확장되었다고 알려진다.
결론적으로 최상위 포식자들의 먹이사슬도 그렇지만 특히 호랑이의 먹이사슬에서 보면 주요한 먹이들은 전부 북아메리카대륙을 서식지로 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사실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독일인들의 집산지라고 알려진 곳에 아직도 호랑이 육회음식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밝혀 알았다.
그곳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노스 다코타(North Dakota),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위스콘신(Wisconsin) 및 미네소타(Minnesota), 미주리[Missouri]이다.
이곳이 어딘가.
조선(朝鮮)에서 호랑이 많았다고 하는 함경북도, 함경남도 등은 위 지역에서 찾아야 할 지명들이다.
본 블로그 글 "함경(咸鏡)의 빙하와 움푹들어간 땅, 끼어있는 바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7"에서 함경도의 함경(咸鏡)이 바다빙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함(咸)은 바닷물을 의미하는 것이며 허드슨만(Hudson bay)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캐나다서부지역은 옛날 빙하의 침식을 받은 많은 호수들이 있고 5대호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습지 및 초원을 볼 수 있어 이것을 담고 있다는 뜻의 함(咸)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하였으며 경(鏡)은 ‘거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이 경(鏡)도 잔잔하다와 맑다는 뜻도 있어 바다가 ‘거울처럼 맑다’든지 또는 ‘잔잔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순백의 차갑고 깨끗한 빙하(冰河)를 떠올리게 하여 함경은 바다빙하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였다.
그렇다면 호랑이가 많이 서식했다고 하는 함경도는 캐나다일대이고 그것이 남쪽으로 남하 한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부첨할 것은 왜 조선호랑이가 벵골호랑이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조선에서 백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이는 벵골호랑이만이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에 답으로 말할 수 있다.
조선에서 신령한 동물로 취급받은 백호(白虎:white tiger)는 주로 벵골호랑이의 루시즘(leucism)형질 발현으로 백색 털인자가 발현된 흰 호랑이이라고 밝혀졌고 recessive mutant of the tiger 호랑이의 열성돌연변이라 하였으며 알비노증(albinism)즉 색소결핍증과는 다른 것임을 말하고 있다.
[A white tiger at the Cougar Mountain Zoo]
위 미국 동부 워싱턴 이사콰란 도시에 쿠거 마운틴 동물원에는 백호가 있다.
전해오는 사서를 보면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선생이 저술한 야사(野史)에 선조 33년(1600년) 경자(庚子)에는 자기 향리에서 수백의 인명을 해친 큰 백호(白虎)가 횡행하여 방어사(防禦使) 원신(元愼)이 잡으려고 고심을 하다가 못 잡고 나국(拿鞫:체포심문)까지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범이 다니는 길에 틀을 차려놓고 기다리는데 걸려서 틀을 달고 산으로 뛰는 호랑이를 활로 명중하여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한 예는 광해군 2년 경술(1610) 7월 13일(병진)에 중국책사(冊使)가 조선관리에게 흑백 호피(黑白虎皮)와 같은 물품을 계속 바치도록 독촉하였다 하였는데 이는 조선에서 흑호와 백호가 존재했었다는 반증이다.
끝으로 호랑이에서 우리 한국호랑이만 이야기 하고 있지만 호랑이는 근원적으로 동부호랑이와 서부호랑이가 조선과 고려(COREA)에서 똑같이 서식되었거나 관리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동부호랑이는 바로 조선호랑이며, 서부호랑이는 고려호랑이 즉 한국호랑이라 해야 본래 서식지와 일치하고 합당하다 할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동부[벵갈호랑이-BLACK PINE ANIMAL SANCTUARY, ALBION, INDIANA]인디애나주
동부[벵갈호랑이-POPCORN PARK REFUGE, FORKED RIVER, NEW JERSEY]뉴저지주
동부 [벵갈호랑이-THE WILDCAT SANCTUARY, SANDSTONE, MINNESOTA]미네소타주
서부 [시베리아호랑이-SAFE HAVEN WILDLIFE SANCTUARY, IMLAY, NEVADA]네바다주
서부 [시베리아호랑이-Calgary Zoo in Calgary, Alberta]캐나다 앨버타주
서부[시베리아호랑이-THE WILD ANIMAL SANCTUARY, KEENESBURG, COLORADO]콜로라도주
서부[시베리아호랑이-WILDCAT RIDGE SANCTUARY, SCOTTS MILLS, OREGON]오리건주,
서부 [시베리아호랑이-Young Siberian tiger dies at Greater Vancouver Zoo]벤쿠버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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