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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khoomei)의 역사적 의미
글쓴이:한부울
머리말
흐미(khoomei)란 창법
구황금(口簧琴)이라 하는 주즈하프
미국 서부영화와 흐미의 관계
서부개척사와 조선역사충돌
마무리(몽고와 멕시코)
머리말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음으로 구성되는 음악은 본래 신(神)을 부르는 행위라 했다.
우리나라의 의식음악(儀式音樂)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목소리를 이용하여 내는 소리가 노래가 되었다는 것은 본래 신(神)을 부르는 행위로써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소리의 기능은 노동이나 인간 고통에 대한 승화차원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민요이다.
그러한 이유로 목소리가 악기와 동일하게 취급되거나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악기가 없이 소리 내는 농요(農謠), 어로요(漁撈謠)는 추임새가 반주 역할을 했다.
점차 악기가 발전함에 따라 굳이 목소리를 세밀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겠지만 대신 음악의 여러 장르가 새롭게 생성되고 그것에 맞춰 수많은 현대가수들이 탄생하였으며 그들의 독창적인 음악성에 환호하는 세대도 확대되어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라도 현대음악에 심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노래를 굳이 신(神)을 부르는 소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대중문화 밑바탕에는 이러한 정령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936년 빌보드 차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수라고 하기 보단 창극이나 오페라극단에서 소리광대이며 가극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였고 각종 독특한 소리기법들에서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판소리창법이나 이탈리아의 벨칸토(Bel canto)창법 등이 탄생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소리꾼이라고 하는데 판소리의 창법이 주는 호소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세계 어떤 가수라 할지라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기묘한 발성법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 아닐 수가 없다.
도대체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 기법의 기능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만 판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소리기법등장에 놀랄 수밖에 없는데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바로 몽골 투바족(Tuvans:Tuva)의 흐미(khoomei)의 발성법이다.
이 흐미의 주요한 발성법 세 종류의 기괴한 소리를 들어보면 판소리에서 찾을 수 없는 마치 신(神)을 부르는 듯한 독특한 소리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가 없는 인간의 능력을 감탄해 마지 않는 것이다.
이 소리는 정말 어디선가 꼭꼭 숨어 있는 신(神)을 찾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발성법임을 느끼게 했던 것이며 소름이 돋았을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인간이 어떻게 그러한 기괴하고 이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나날을 지나며 인내하면서 엄청난 연습이 없으면 불가능할 창법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우리에게도 대중적인 문화역사가 풍부했던 것은 틀림없다.
각 지방의 민요들이 있는데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하는 경기민요(京畿民謠), 전라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민요(南道民謠),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지역에는 동부민요(東部民謠), 황해도와 평안도지방의 서도민요(西道民謠)등으로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이를 뒤 받쳐 주던 전통악기로는 해금, 가야금, 대금, 소금, 단소, 피리, 태평소등이 있으며 네 군데 민요를 소화하는 소리꾼들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창법들도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각 창법을 보며 웅장하면서 호탕한 소리인 우조[羽調]를 많이 사용하고 발성초(發聲初)가 진중하다는 동편제(東便制)가 있고 슬픈 계면조의 노래가 대부분으로써 정교한 시김새(꾸밈음)를 사용하고, 가벼운 발성으로 일관하는 서편제(西便制)가 있다 하였고, 경기 남부와 충청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드름이 많고 노래라기보다는 글을 읽 듯하는 중고제(中高制)와 씩씩하고 호탕한 느낌을 주는 호걸제(豪傑制)가 있다고 하여 이러한 창법들은 모두 독창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라도를 중심으로 남도민요의 특징에서 음(音)이 옥타브 따라 내려올 때 눌러 내거나, 흘러내리거나, 굴리는 소리를 자유스럽게 구사함으로써 슬픈 감정을 자아내게 하며, 혹은 그러한 시김새가 구성진 맛을 나타내는 것처럼 소리꾼들이 목으로 만들어내는 창법은 매우 다양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것들이 판소리의 오래된 창법이라고 이름 한다.
이 경이로운 창법들은 판소리 소리꾼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기능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광대소리꾼이 아닌 명창(名唱)이라 귀하게 대접하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예능 보유자'인 인간문화재로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나라의 대중적 문화측면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이기는 하나 독특한 창법을 특징으로 하는 판소리가 어쩌면 몽골 투바족(Tuvans:Tuva)의 ‘흐미(khoomei)’와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역사성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없지 않다.
흐미(khoomei)란 창법
판소리 보다 훨씬 주술적인 의미가 강한 ‘흐미’가 세계삼한역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자.
‘흐미’를 우리말로 보면 조금의 감동이나 놀라거나 찔릴때 쓰는 ‘아이구’ 구어 ‘흐미’라 하는 전라도사투리처럼도 들리지만 동일한 의미인지는 아직은 알기 힘든다.
그러나 어문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토속사투리와 흡사하다는 주장을 인용할 때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한다.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흐미'의 어의는 본래 신을 찬미하는 감탄조에 따른 명칭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흐미’에 대해 설명한 백과사전을 보면 일반적으로 회메이, 후미라 하고 투바어(Хөөмей)로 회메이, 몽골어(Хөөмий)로 호미, 러시아어(Хоомей)로 호메이라고 하는데 몽골족, 투바공화국의 전통 음악의 일종인 목으로 하는 소리(노래)라고 정리되어 있으며 영어로는 회메이(khoomei)라고 쓴다.
이것의 창법의 특징은 마치 바위들 사이에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느낌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사물과 현상에는 정령(精靈), 즉 영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힘 또는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精靈信仰:Animism)을 나타내는 목소리로 알려진다.
자연이 내는 소리를 인간이 흉내 내는 소리(Sound mimesis in various cultures)인 것이다.
투바(Tuvans:Tuva)의 목소리 창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회메이는 낮은 목소리에 신디사이저 테라민(theremin)이 같이 연주하는 것과 같은 창법의 한 가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목소리 전부를 아울러서 칭하는 말이기도 하단다.
특히 투바(Tuvans:Tuva)의 목소리는 성대에서 나오는 밑 음(音)에 따른 배음(倍音:harmonic overtone)을 나게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동시에 여러 음정을 낼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그들의 음악은 초원과 말(馬:horse)에 관한 것이어서, 가사의 내용은 미국 서부(西部)의 카우보이(cowboy)음악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자료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오래된 동양인의 발성법을 역사가 뒤처진 카우보이들이 본을 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동아시아 몽골인의 정령신앙 믿음의 소리를 미국 서부 텍사스주 카우보이 음악에 접목시켜 따를 수밖에 없었을까?
세계삼한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래 미국 1920년대 텍사스의 카우보이 가수 아서 마일스(Arthur Miles)의 외로운 카우보이(Lonely Cowboy)라고 이름이 붙여진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을 한번 감상해보고 그 다음에 흐미 창법의 독특한 세 가지 발성법을 비교해 볼 수 있다.
Arthur Miles - Lonesome Cowboy Pt. II
Tuvan throat singing - Тувинское горловое пение - Хөөмей (회메이Khoomei)
Tuvan throat singing - Тувинское горловое пение - Каргыраа (카르구라Kargyraa)
Tuvan throat singing - Тувинское горловое пение - Сыгыт (스구트Sygyt)
Arthur Miles was a 1920s Texan singer of cowboy songs. He is credited with independently utilising a style of overtone singing, similar to the Tuvan style called sygyt, as a supplement to the normal yodeling of Country Western music. Two recordings exist that are attributed to Arthur Miles. The recordings are the first and second parts of a tune titled "Lonely Cowboy".
아서 마일스는 1920년대 텍사스의 카우보이 가수로 알려져 있고 서양음악을 보완하기 위해 몽골 창법 스구트(sygyt)라는 투반(Tuvan)스타일을 삽입하여 만든 노래로 투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위 동영상이 주요한 창법으로써 회메이(xмей), 카르구라(kargyraa), 수구트(sygyt)라 하여 세 가지이며 미국 서부(西部)의 카우보이(cowboy)음악과 비슷하다는 창법 역시 수구트(Sygyt:Сыгыт)인데 휘파람이란 뜻으로써 중간 음역의 기본음에 높은 음(音)을 같이 발성하는 창법으로 중간음역이 약하고 높은 음(音)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후메이와 다르며 수구트(sygyt)는 여름의 산들바람과 새들의 노래를 묘사한다고 되어 있다.
위 창법 세 가지 이외 보르방나드르(borbangnadyr), 즐란득(chylandyk), 둠죽타아르(dumchuktaar), 에젱일레에르(ezengileer), 칸집(kanzip)이 있는데, 이들을 세 개의 주요한 창법기술의 변형이라고 여긴다고 정리된다.
본래 투바(Tuvans:Tuva)의 창법은 많은 곳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지고 고대 티베트 승려들은 ‘가짜 성대’라 하는 카르구라(kargyraa)로 성대보다 아래 음(音)을 내는 창법을 받아들였으며 한편, 팔세토(假聲:falsetto) 이외에 높은 음(音)을 낼 수 있는 창법 수구트(sygyt)이 있다는 점이 현대들어 스트레스 해소나 심리치료, 명상음악 장르라 할 수 있을 미국의 뉴에이지 음악가(New-age musician)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미국의 뉴에이지 음악은 반 기독도적(反基督敎)색채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종교가 이질적인 것이라면 당연하게 뉴에이지의 색깔이 정령신앙(精靈信仰:Animism)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의미를 꺼려한다는 것이 현실이며 역사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굳이 외면하는 형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몽골과 이웃한 튀르크 민족들 사이에서도 투바(Tuva)의 회메이(Хөөмей), 알타이(Altai Kai:АлтайКАЙ)와 하카시아(Хака́сия:하카스공화국)의 카이(Кай)처럼 ‘흐미’와 똑같은 창법이 있다고 설명되고 있고 몽고 서쪽 알타이(Altay)지방에서 시작된 이 몽골 특유의 창법은 독특한 발성법으로 인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가장 큰 특징은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창법이라고 특징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구황금(口簧琴)이라 하는 주즈하프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의 목소리 창법인 회메이(khoomei)와 똑 같은 음(音)을 내는 작은 악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인데 이를 주즈하프(Jew's harp)라 하는 것으로써 편자형 따위의 금속테에 철사를 친 원시적인 현악기며 이빨과 이빨 사이에 물고 손가락으로 현(絃)을 퉁겨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Young man with Jew's harp by Dirck van Baburen 네덜란드 화가 디르크 반 바루렌(Dirck Van Baburen:1595-1624)
Jew's harp found in the US 1860s-CivilWar
위 사진은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때 발견한 주즈하프이다.
물론 이 악기(樂器)는 동양적인 냄새가 짙다.
중국자료를 찾아보면 이를 구황금(口簧琴), 또는 구황(口簧), 구현(口弦), 취금(嘴琴)이라 하여 오래되 민간악기라 하였고 주로 아시아(특히 동남 아시아, 동남 아시아와 남아시아, 북아시아), 아메리카대륙, 오세아니아(大洋洲) 및 유럽에 넓게 퍼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아프리카대륙에는 기록이 적다고 말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중국자료에서 명칭한 구황금이나 구황에서 황(簧)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궁중음악에서 쓰인 대표적인 아악기(雅樂器)의 하나인 생황(笙簧)의 황(簧)자를 명칭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볼 이야기는 아니다.
口簧琴,又稱口簧、口弦、嘴琴,是一種古老的民間樂器,廣泛使用於亞洲(特別是東南亞、南亞以及北亞)、美洲 、大洋洲以及歐洲,非洲的記錄則相對較少。
口簧琴的樂器主體是一個一端固定於框式琴臺上,另一端可自由振動的簧片,樂器演奏者將琴臺置於雙唇之間,以撥動簧片或拉扯一根繫附於琴臺上細繩的方式,使簧片振動發聲,並以演奏者的口腔共鳴產生樂音。
中國的口簧琴
民族音乐学家從傳說中推測认为新石器时代晚期出現。先秦时期称“簧”,《诗经·小雅》:“巧言如簧。”约在唐宋时期有“竹簧”、“铁簧”、“铁叶簧”、“雅簧”等名,明清时期主要称“口琴”,现在通常称“口弦”。在中国少数民族地区流传广泛,各民族称呼不一。与古代汉文化的名称有密切关系。在流传有口弦的38个少数民族语言的汉译名多大100个以上。
簧在少数民族中是谈情说爱的乐器之一,还常被用来作为青年男女定情的信物。多片制的簧往往配有一个小竹筒,竹筒表面刻有精致的花纹,随身携带,以便在需要的场合演奏
위 중국자료에 보면 이 악기의 구조설명이 있는데 고정된 한쪽 끝에 곽(框式)을 세워 금대(琴臺)를 만들고 끝단을 갈라지게 하여 자유진동을 가능하게 한 황편(簧片)을 악기연주자들의 입술사이에 넣고 황편을 튕기거나 당기는 방식으로 황편(簧片)을 진동시키는 것으로 연주자의 입속에서 공명을 일으켜 음을 발생시키는 악기라고 설명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국립음악학자들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출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진(秦)시기에 황(簧)이라 칭하였다고 나타난다. 즉 시경소아(詩經小雅)편에 교언여황(巧言如簧)이란 기록이 있다 하였다. 당송(唐宋)시기에는 죽황(竹簧), 철황(铁簧), 철엽황(铁叶簧), 아황(雅簧)이라 하였고 명청(明清)시기에 구금(口琴)이라 하였으며 현재는 구현(口弦)이라 한다고 설명된다.
중국 소수민족지역에 널리 퍼져 있으며 각 민족의 명칭은 대체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고대 중국문화 명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였다.
이 소수민족이라는 것은 중국문화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이 황(簧)은 소수민족간의 사랑과 애정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청춘남녀간의 사랑의 표식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고도 하였고 이 공명 조각은 작은 대나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나무표면에는 절묘한 무늬를 새겨 각자 몸에 지니고 다니고 편의에 따라 연주에도 사용된다고 설명된다.
미국 서부영화와 흐미의 관계
그런데 놀랍게도 위 구황금(口簧琴)악기를 서양에서 ‘주즈하프(Jew's harp)’라 하면서 남부전쟁 이후18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에 등장한다.
주즈(Jew's)는 유대인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유대인하프’라 하였고 이 악기가 서부영화에 등장하였던 것을 보면 미국이주민들이 이를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주즈하프가 등장하는 서부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한번 보자.
마치 한족(漢族)의 "명문귀족(guest families)이라고 하는 객가(客家)를 하카(Hakka)라 하는 것처럼 들리는 후카(Huka)라는 이름이 현재는 알져지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만 어쨌던 후카 프로덕션(Huka Productions)이름의 회사가 제작한 미국 서부영화 롱 라이더스(THE LONG RIDERS)는 1980년에 제작된 월터 힐(Walter Hill)감독의 작품으로 미국시민전쟁(Civil War)이 끝난 후 서부로 가는 기차와 은행을 타겟으로 습격이 잦던 때인 1876년 9월에 이야기로써 살인자이며 강도고 의적(義賊)으로 민간에 알려지기도 한 제시 제임스(Jesse Woodson James:1847-1882)가 이끄는 무법갱단은 사형제도가 없는 미네소타(Minnesota)주 노스필드(Northfield)의 스퀘어 헤드(squareheads)에 있는 은행을 강탈하기 위해 가는 기차에서 아래 장면이 전개된다.
롱 라이더스(THE LONG RIDERS)동영상
제목:the Jew's Harp and another sings along.
위는 편집하여 주즈하프(Jew's harp)를 연주하고 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을 게시한 것이다.
인디언 혼혈 청년으로 분한 배역이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플레이밍 스타"Flaming Star"에서 노래 한 "A Cane And High Starched Collar"와 같은 음색이라고도 하며 영국민요 제목이 "내가 두고 온 소녀 "The Girl I Left Behind Me"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는 1650년경에 미국에 수입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으로서 미국 상비군(US regular army)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알려지는 노래이며 놀라운 것은 바로 주즈하프(Jew's harp)라는 입에 물고 있는 조그마한 악기로 특이한 음색과 구황금(口簧琴)이 말하고 있는 비슷한 음색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아시아의 투르크계 종족들은 코무즈(komuz)라고도 한다.
이 주즈하프(Jew's harp)는 편자형 따위의 금속 테에 철사를 친 원시적인 현악기로써 이빨과 이빨 사이에 물고 손가락으로 현을 퉁겨 소리를 내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서양악기로 알려진 것임에도 놀랍게도 동양 알타이(Altai), 몽골족, 투바(Tuva)공화국의 전통 음악의 일종인 목구멍 소리 흐미(khoomei:Хөөмей, Хөөмий, Хоомей)와 같은 음색을 나타내며 또한 동양 중국악기인 구황금(口簧琴)을 소개한 설명과 같다는 사실, 그리고 투르크계 코무즈와도 비슷한 악기임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이에 한 가지 더 부연한다면 이 주즈하프는 유대인 하프라고 하는 것도 이상스럽지만 동양악기임에도 오히려 서양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동일하면서도 동일하지 않는 것을 동서양 차이 만큼 구분코저 하는 심리를 읽을 수 있는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바라 볼 때 매우 미묘하게 다가오는 것 중에 하나이다.
아래는 서양인들의 주즈하프에 대한 설명이 있다.
There are many theories for the origin of the name Jew's harp. According to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this name appears earliest in Walter Raleigh's Discouerie Guiana in 1596, spelled "Iewes Harp".
유태인의 하프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다는 전제와 함께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이 이름은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의 총신으로 북아메리카대륙 버지니아 탐험가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1552-1618)의 기아나 발견(Discouerie Guiana,The Discovery of Guiana:1596)때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이를 "Iewes Harp"이라 하였다 한다.
It has also been suggested that the name derives from the French "Jeu-trompe" meaning "toy-trumpet".
이 이름은 다시 프랑스어 Jeu-trompe 에서 파생되어 장난감 트럼펫(Jeu-trompe)이라 하였다.
e.g. that the instrument was actually made, sold, or imported to England by Jews, or purported to be so; or that it was attributed to them, as a good commercial name, suggesting the trumps and harps mentioned in the Bible.
이 악기 도구가 유대인에 의해 영국에서 만들어져 팔렸거나 또는 수입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성경에 언급되길 나팔소리와 하프를 암시한 사실을 또한 부첨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실제 정체가 애매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서양 자료가 동일하게 이 악기를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에 하나로 말하고 있고 중국자료에서 처럼 전국시대(B.C.403-B.C.221)시기인 기원전4세기경 중국에서 이를 연주하는 그림을 볼 수 있다 하였으며 이 악기에 대한 일반적인 영어 이름과 때로는 "유대인의 트럼펫"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나 유대교(Judaism)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This instrument is native to Asia and used in all tribes of Turkic peoples in Asia, among whom it is variously referred to as a temir komuz (literally, iron komuz), agiz komuzu (literally, mouth komuz), gubuz or doromb.
이렇게 볼 때 동서양이 하나의 악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악기는 아시아를 원산지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아시아의 투르크계 모든 종족이 사용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아야 할 대상이다.
투르크계에서는 이를 철 코무즈라 하는 테미 코무즈(temir komuz), 입 코무즈라 하는 아지즈 코무즈(agiz komuzu), 그리고 구부즈(gubuz) 또는 도롬브(Doromb)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알타이 코무즈(Altai khomus)
알타이 카무스(Altai khomus-kamus)
투르크계 Demir-khomus from Tuva, Demir-Xomus
슬로바키아(Slovakian)의 드럼비아(drumbľa)
코무즈 역시 앞에서 말한 구황 악기의 구조처럼 이빨사이에 끼우고 공명강(共鳴腔)을 만들어 손가락으로 튕겨 혀를 진동 시키면 꿀벌, 말벌, 파리의 흉내를 내는 윙윙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설명되며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여러 코무즈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악기는 한문으로 구금(口琴)이라 하여 동양적인 악기가 틀림이 없다는 것과 유대인 하프라고 하고 있는 것에서 역사혼돈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일부 악기제조사에서는 ‘유대인하프’란 이름을 상업적으로도 기피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특수한 종교관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별한 종교개념을 배제하고 나면 순수하게 역사만이 남는데 그 역사는 세계삼한역사를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인들은 이를 스토피 하프(Snoopy's Harp)라 하거나 영국의 하프를 주즈하프라 하지 않고 프랑스어인 겜바드(guimbarde)라 하며 입 하프(mouth harp)라 하거나, 북아메리카대륙 미주리주(Missouri州)남부에서 아칸소주(Arkansas州)북서부에 걸쳐 있는 고원지대 오자크 고원과도 악기가 연과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역명을 따 오자크하프(Ozark harp)라 하였으며 또한 어떤 세력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주스 하프(juice harp)등으로 명확하지 않지만 다양하게 불리었다는 사실 또한 알 수가 있다..
어쨌거나 앞에서 언급한 뉴에이지 음악의 색채처럼 자연의 소리이거나 또는 특이하게 심령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주술(呪術)이나 마술(魔術:witchcraft)과 관련이 있다 하고 샤머니즘 의식에서 흔히 사용되는 악기로 알려지고 있다.
서부개척사와 조선역사충돌
자연의 소리를 내는 기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입안에서 조그마한 악기를 물고 튕겨 내는 소리는 신(神)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였으며 이를 명확히 정령신앙(精靈信仰:Animism)에 사용되었을 것이란 짐작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또한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위에 예를 든 것처럼 미국 서부영화가 주는 의미는 기존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하더라도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측면이 비일비재함을 알 수가 있다.
이제 철부지 때 서부영화를 즐겨보던 것이 나이가 들어 서부개척사와 서부영화를 연계하여 볼 수 있었고 뒤늦게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볼 때는 후회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우리역사가 절단난 과정과 광경을 재미로 또는 흥미로 보았다는 사실에서 서글픔이 없지 않다.
특히 서부영화의 주 무대가 주로 텍사스(Texas), 뉴멕시코(New Mexico), 애리조나(Arizona)주라는 것을 상기할 때 이 지역들의 당시 정치적 환경과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짧은 역사에서 맨 먼저 이야기 되는 것은 바로 서부개척사이다.
영화 서부개척사(西部開拓史,How The West Was Won:1962)를 보더라도 미국 서부의 미개발지 광활한 땅을 향해 일반 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용기만 있으며 가족과 함께 동부 뉴욕을 떠나 서부로 향할 수 있었고 그들이 희망하는 것은 넓은 땅을 차지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진다면 기존역사주체가 지배하던 땅에서 미국이민자, 이주자들은 그냥 이방인이고 나그네일 뿐이다.
만약 정당한 법체계가 기존역사주체에게 존재하고 이를 엄하게 통제하였다면 서부개척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독립운운하고 있지만 어쨌던 비정상적으로 나라를 새운 것이다.
거대한 땅을 일시에 차지 하려면 어떤 기존 역사주체와 피나는 전쟁을 해야 하지만 서양인들이 곧잘 주장하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토지를 할양(割讓)받는 식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 솔직히 불만이다.
어떻게 수천년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영역을 국가와 국가간이라 할지라도 단순하게 합의만으로 그냥 넘겨줄 수 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말이다.
역사 상식적으로 적어도 수당이 만주 요동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거대한 전쟁을 치루었듯이 수많은 장비와 수백만 인원의 군사가 동원되어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치루어 승리해야만이 한쪽이 굴복한 상태에서 영토를 차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하여 동부13개주를 차지했다는 역사도 그렇고 그것을 기반으로 북아메리카대륙 전역을 할양으로만 차지할 수 있었던 근거의 역사사실이 불분명한 것 역시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 보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설쳐되던 곳이 과연 유럽지역이었던가.
아니다.
미국이주민들이 무작정 서부에 도착하면서 그곳 적당한 곳에 정착하고자 하여도 기존 소유지가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란 만만찮았을 것인데 이러한 문제를 다 비껴가고 마을을 꾸미고 도시를 만들어 스스로 보안관이 되거나 판사가 되어 자치을 했다고 할 때 기존 역사주체를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이를 무엇때문에 방관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법지대라 했던 것일까?
만약 기존 역사주체가 존재하던 땅이라고 할 때 졸지에 밀려드는 백인들에게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한체 땅을 내주어야 했다면 그래서 그것에 대해 아무런 보호나 지킴을 받을 수 없었다면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국가에게 애국심을 발휘할 어리석은 백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나라가 아니며 국가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당시 만약 조선인과 한국인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존재했었다고 할 때 당시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국가는 어떤 지경에 놓인 것일까?
1860년~1870년이라면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나 신미양요(辛未洋擾:1871)가 발생될 때인데 그렇다고 나라자체가 망할 수있는 형편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이런 상태에서 땅이 미국이주민들에게 마구 넘어갔다면 국민과 백성이 느끼는 무력감이란 것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국가의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당시 그런 상황을 조선이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를 시켰으며 이러한 부조리함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정말 궁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미국이 자랑하고 있는 서부개척사는 강탈의 역사이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법자시대라는 엄청난 역사 블랙홀 앞에서 무엇인가 티끌이라도 건져야 한다는 강박이 없지 않다.
이 시기는 기존 역사가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시기이다.
우리 땅임에도 개발지라 하여 한마디 반대도 할 수 없는 입장, 서부지역 넓은 광활한 지역에 가로 놓이는 철도시설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환경이었다면 그래서 정부에 하소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면, 엄청난 사욕에 눈이 멀고 일확천금을 노린 무법자들에게 한없이 내쫓기는 입장이었다면 더군다나 조선인이나 한국인들이 마음대로 총을 소지 할 수 없었던 엉뚱한 법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흰 옷을 즐겨입는 무기력한 멕시코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어서 당시 상황을 생각만 해도 암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1846년과 1848년 사이에 발생했다고 하는 멕시코-미국전쟁(Mexican-American War)을 끝으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서부지역을 평정했다고 알려지고 그래서 불과 70년 역사를 가진 신생국가로 북아메리카대륙의 거대한 땅을 한꺼번에 차지한 막강한 신흥국가로 존재했었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소한 남북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서부는 미국이 관할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과 때문에 경제권은 휘둘렀을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정치적 권한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음을 짐작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무법자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서부지역 영토를 거의 빼앗다시피 누군가에게 강제적으로 강탈했을 가능성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백인(WHITE)이라 하던 미국이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정치세력을 만들고 미국대륙전체를 통제했다고 보기에는 그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란 역사주체는 정체가 분명치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기존 역사주체를 어떻게든 소리 소문 없이 망가뜨리고 없애버렸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여겨지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 기존역사주체가 정치적으로 위기였다는 것은 기존 사실을 토대로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1863년부터 시작하여 1869년에 완공한 대륙횡단철도개설사업으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자본력을 이용한 토지 착취 바로 그것이다.
철도개설사업합법화한 토지에 대한 자본적 이득이 무기화 될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합법화된 토지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치 행정력과 경찰권이나 법 집행권을 그들이 소유하여 남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기존역사주체가 이를 극복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1862년 7월1일에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태평양철도법(The Pacific Railway Act)을 근거로 가설되는 철로주변 200feet(약 60m)의 땅이 철도회사에 무상을 주어지고 철도회사는 부동산회사를 만들어 분양을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연방정부는 모든 농민들에게 각각 160에이커(약 196,000평)의 공유지를 무상으로 불하하는 자작농법 또는 홈스테드법(Homestead Act:1862.05.20)발효하였고 이 법 때문에 2억7000만 에이커(미국전체면적 10%)이상의 공유지가 이주농민(미국이주민, 이민자)들에게 공여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즉 모든 농민이라고 하였지만 미국이주농민이다.
이들은 이러한 토지를 공여받는데 등록지 10달러, 토지권리증 발부수수료 6달러, 토지중계인수수로 2달러의 비용만이 들었을 뿐이다.
이런 해택을 미국이주민들 수백만명이 해택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전체면적 쓸만한 땅 10%가 그냥 넘어가버린 것이다.
권력주체를 생각해 보면 본래 역사주체 군주의 제정권한(帝政權限)이 축소되면서 내탕금(황실재산)을 재정골갈을 빌미로 끊어버린다든지 경제적으로 압박을 주면서 연방정부의 권한이 확대시키는 형국이었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고종이 1903년부터 1906년까지 상하이 덕화은행(德華)을 경유하여 독일 베를린에 있는 디스콘토게젤샤프트(도이체은행전신)에 100만 마르크(500억원추정금액)를 비자금으로 맡겼지만 이를 일제가 강탈해 간 사건을 볼 때 재정압박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자행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연방정부를 장악한 세력이 미국이주민 정치세력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미국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수반과 경제수반으로 그 권한만 가지고도 황실을 충분히 제어했을 것이란 예측도 가능하다.
이러한 환경들이 바로 당시 주요한 역사적인 위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환경에서 만약 북아메리카대륙 특히 서부에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도시(대전, 보은, 아산, 천안, 북청, 신의주, 영흥, 신안주, 황주, 풍천, 용천, 함남, 함흥, 안변, 풍산, 백마, 신태인, 방현)의 이름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그 도시들의 상황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오밀조밀하게 오늘날처럼 도시와 마을이 곳곳에 이어지고 마을과 도시, 도시 간에 정보가 빨라 금방 그때 상황변화를 감지하는 시대가 아니라 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처럼 발달이 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운송수단자체가 초보단계라 할 때 그래서 지배계층이나 특수계층인들 끼리만 공유하던 시대에서 동떨어져 있었다면 100km[250리(里)], 또는 200km[500리(里)]밖에 있는 상황을 일반인들이 간단히 알기란 솔직히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도보로 움직인다 하여도 기존 긴 역사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녀 본 길을 따라 왕래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길을 접촉하지 않는 서양인 즉 미국인들과는 절대로 마주칠 기회가 적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 미국도시는 횡단철로를 따라 생성되면서 주변 땅들은 상업지역으로 변모하자 바둑판처럼 도시계획에 맞춰 시작한 시기가 동시기 19세기 중엽부터라고 할 때 엄청난 변화가 불었을 것이란 예상을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서부 개척시대 때 미국이주민들은 위 영화처럼 서부로 무작정 들이닥쳐 기존 역사주체의 관리가 세세하게 미치지 않거나 또는 농사가 잘되지 않는 한지(閑地)의 땅을 차지하여 한동안 자치적으로 마을을 꾸미거나 소도시를 설립한다 하여도 이를 알기도 없고 막을 방법도 없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과는 멀리 떨어지거나 중앙행정관리가 미치지 않는 한적한 유휴지가 있고 토지대장상 등재가 되지 않는 곳이 곳곳에 넓게 퍼져 있었다면 그래서 그곳에 철로가 생기면서 미국이주민들이 손쉽게 안착하고 나름대로 마을이나 소도시를 꾸며졌다면 빠르게 진행하는 산업발달과 확충되는 자본력으로 도시가 몰라보게 빠르게 확장하였을 것이고 마을이 군소도시가 되고 기존 작은 마을을 흡수하거나 통합하면서 기존 역사에 남아 있는 명칭의 도시들은 자연적으로 소멸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오래된 사진들에서 서울의 풍경을 한 컷 한 컷 볼 수 있지만 600년 역사도시치고 하나같이 더럽고 추잡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적어도 600년도시라고 할 때 하수시설등이 유럽못지 않게 발달했을 것이란 짐작은 왜 하지 못할까?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죽어가는 도시 바로 그것이다.
19세기 초 서울이라고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지만 글쓴이는 미국의 큰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미 개발지역으로 내 팽개쳐 진 것이며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없을 도시로 이렇듯 한반도에 존재했던 도시로 남아 있을 뿐 실체는 먼지처럼 사라지거나 흡수되어 지금은 자취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가 글쓴이의 상상으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기록에 남아 있는 수많은 도시들이 본래 땅에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만 한반도에 사라진 도시들이 치밀한 계획아래 새롭게 생성되었다고 한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과연 이런 사실을 조선인이나 한말 한국인 중에 권력이나 특정계급소유자가 아닌 일반 민중들이 얼마나 알고 있었고 이를 설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오히려 생명을 부지 할 수 있는 일에만 골몰했을 것이 틀림없다.
설혹 소수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기억으로 남겨진 상태로는 생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동란은 이러한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해결한 모멘트로 이용되었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북아메리카대륙 전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재했다고 할 때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한글판 신문보도가 있었지만 아마도 극 소수였다는 사실과 일반백성들의 문맹율(文盲率)이 높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글판 뉴스매체가 이런 보도를 할 수 없었겠지만 보도가 가능했다 하더라도 사실상 실효성이 전무할 수밖에 없다는데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러한 불리한 환경으로부터 산업발달과 함께 정치 환경이 갑자기 변하면서 나라전체가 남의 주머니로 넘어간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일반민중들은 어디론가 자꾸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양인 얼굴을 하고 있는 조선인과 한국인들은 참으로 불행한 역사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는 조선인과 한국인들은 얼마든지 현실에 적응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밀려나 나그네가 되고 이방인취급을 받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대다수 조선인이나 한국인들은 정체성을 핑계삼아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변화된 정치환경을 적극 수용하고 적응하려 하였을 것이며 미국이주민과 가능하면 융합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모색했을 것이며 그리고 역사적인 조국은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또한 높은 것으로 유추할 수가 있다.
삶의 질을 택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역사 정체성에서 굳이 이질감이나 차이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인물들은 거의가 친일파라고 해야 하며 또는 동양인이 아닌 서양계 조선인과 한국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친미주의자들도 이 분류 속에 포함될 것이다.
일제(日帝)란 단어는 우리가 벗을 수도 없는 멍에로 언제까지나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고통이라 했다.
이러한 상황을 글쓴이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자주자주 되뇌고 있지만 참으로 괴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마무리(몽고와 멕시코)
결국 이러한 사태를 짐작할 수 있는 요인으로 미국 서부시대에 명성이나 평판을 얻은 미국 국경지방의 무법자 또는 법률가를 지칭하는 총잡이들이 황금을 얻기 위해 짐승처럼 설쳤다는데 있을 것이다.
이들을 중앙정부가 뚜렷하게 막을 방도가 없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의로 방치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때문에 그들 스스로 자치 경찰권과 법률 권한을 소유하게 되면서 그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권력이 남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으며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토지 소유권도 마음대로 주물렀을 가능성도 있다.
서부의 무법자들은 총잡이일 뿐만 아니라 법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권력을 취했다는 것은 단순하게 총잡이라고만 할 수 없는 법률 집행관(lawman)으로써 경찰관이나 보안관과 같은 법 집행하는 관리(law-enforcement officer)로 행세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며 수많은 조선인과 한국인들이 이런 식에 제도하에 그들 손아귀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도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다.
특히 무법자나 법집행관들은 남북전쟁(The Civil War:1861-1865)때 계급장을 달고 있던 장교나 일반병사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사실과 전문고용가, 사업가, 의사까지 직업도 다양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는데 이들에게 역사나 국가정체성 따위가 있을리가 없다.
때문에 미국이주민 정치세력들은 이를 충분하게 최종 목적을 위해 이용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가 있다.
대다수가 일확천금을 노렸고 은행, 기차, 그리고 역마차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였으며 주요 범죄자들은 특히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기회를 찾던 백인들에게도 범행을 자행했다는 것을 보면 그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특히 텍사스(Texas), 뉴멕시코(New Mexico), 애리조나(Arizona)주, 그리고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멕시코인 들과 아메리카 인디언을 상대로도 살인과 강도짓을 자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피해를 본 사람들 속에 수많은 조선인이나 한국인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정리를 하면 무법자들이 설쳐 되었던 북아메리카대륙 특히 남부지역은 당시 정치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사 배경장소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본 블로그 글 “휴스턴(Houston)은 몽고성(蒙古城)이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5”에서 한어자료를 통해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지역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되는 지역임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休士頓的官方綽號為 太空城(Space City),因為它是約翰遜航空中心的所在地,任務監控中心也設在這裡 因此,(休斯敦)是在月球上說的第一個詞。許多當地人喜愛稱作(牛沼城)。其他綽號還有 全球城市, H鎮, 腳爪城 或 蒙古城。
"휴스턴(Houston)시당국의 닉네임은 우주도시(Space City)이며 존슨 우주 센터(Johnson Space Center)소재지로서 임무 조정 센터(Mission Control Center)제어 장비가 설비되어 있기 때문에 휴스톤(Houston)은 달(月球)탐험에 상징적인 곳의 이름이며 많은 현지사람들은 우소성(牛沼城)이라 칭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였고 다른 별명으로는 갤베스턴섬(Galveston islands)이 평행사도 장벽처럼 되어 있는 모양이 비춰지는데서 H진(鎭)이라 하고, 각조성(腳爪城) 혹은 몽고성(蒙古城)이라 한다"고 나온다.
텍사스지역은 분명 몽골영역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자료에서 텍사스(Texas州)의 휴스턴(Houston)을 몽고성(蒙古城)이라 했다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 2014년에 올린 글 "1902년 당시 최대 18,000톤급의 코리아(korea)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2"에서 밝히길 태평양우편증기선회사(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가 1901년에 코리아호와 시베리아호(Siberia:11,284t) 그리고 1904년에 몽골리아호(Mongolia:13,639t)와 만주리아호(Manchuria:13,639t)의 이름으로 운송선을 만들어 운행하기 시작했고 1914년 8월 15일 파나마운하(Panama Canal)가 완성되기 전까지 카리브해를 포함한 북아메리카대륙 동서연안을 항로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연안을 항로로 삼은 이처럼 적지 않는 선박을 굳이 동아시아대륙 지명을 붙여야 했던 사실을 의심했던 적이 있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글쓴이는 절대로 위 지명은 동아시아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흐미, 호메이(khoomei)가 몽골족, 투바 공화국의 전통 음악의 일종인 목으로 하는 노래라 했기 때문에 몽골역사와 연관되는 것이 틀림없으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서부 카우보이 음악에 흐미의 창법이 삽입되었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몽골관습이 그곳에 남아 있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엄밀하게 보자면 13,000톤급의 거대한 선박의 몽골리아호라고 명명한 이유와 일맥하는 이야기다.
때문에 텍사스주는 몽골 고유영역일 가능성이 본 블로그 글을 통해 상당히 진척이 된 상태에서 이런 사실들을 재 확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올린 본 블로그 글 "1926년 마이애미 허리케인(Miami hurricane)로 본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4"에서 멕시코만 상해(上海)에 위치한 텍사스주(Texas州)를 몽고(蒙)라고 지도에 표식하였다는 사실도 이와같은 역사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뿐만아니다.
본 블로 글 "사할린(Sakhalin)은 섬(島)이 아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8 "에서 먼저 북아메리카대륙 사우스다코타주(South Dakota)의 블랙힐스(Black Hills)가 사할린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아무르(Amur river) 역시 미주리강(Missouri rivers)과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이라는 사실과 그와 동시에 미시시피강 하구 뉴올린어즈(New Orleans)가 바로 아무르강(Amur river)하구(河口)임을 알 수 있었으며 오호츠크해(Okhotsk sea)도 바로 미시시피강을 근원으로 하는 오호타(Okhota)가 퉁구스(Tungus)말로 강(river)이라는 뜻에 부합하면서 이를 "거대한 강"이라 한 것과 일치하는 것은 미시시피강도 거대한 강이라는 의미가 함께 있어 동일한 의미를 판단할 때 오호츠크해는 아무르강 즉 미시시피강이 흘러드는 곳 멕시코만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으며 더하여 아무르 하구의 니콜라옙스크항(Nikolayevsk)을 외만주(外滿洲)라 했던 것과 같이 뉴올리언즈(New Orleans)를 외만주로 보았던 것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중삼중으로 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검토할 수있는 것은 진실성에 부합한다고 보아 명확한 것이라고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붙인다면 위 외로운 카우보이 노래 끝단에 흐미와 다른 듯하지만 평원의 말을 주제로 하는 흐미와 별개의 발성법이라 할 수 있는 요들송(Yodel:Jodel)이 짧게 가미되어 있다.
흐미는 지금까지 풀이 한 대로 옛 몽골인들이 신을 부르는 목소리로 그에 대한 역사성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역사사실이다.
그러나 알프스 요들송이 서양인들이 즐겨 부르는 카우보이 노래 속에 삽입되는 것은 흐미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흐미와 함께 요들송이 가미되어 있다.
요들송(Yodel:Jodel)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지방의 주민들 사이에서 불리는 전통 민요 가운데 한 장르로서 일반적으로 흐미 발성법 보다 난이도가 낮은 것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알프스 지방의 토속적 창법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
먼저 이 알프스(Alpes)의 어원을 살펴보면 프랑스어(French), 노르만어(Norman), 포르투갈어(Portuguese), 스페인어(Spanish) 모두 똑같이 :From Latin Alpēs, from albus (“white”).라틴어(Alpēs)에 근원하는 것으로 흰색(white)을 의미한다.
Uncertain, possibly ultimately from Proto-Indo-European *h₂el- or from a non-Indo-European source. Compare Middle High German albe (“high mountain”), whence German Alb (“mountainous area”).
또한 독일어(German)어원을 살펴보면 고대인도유럽어의 근원자체가 불확실하지만 독일 'albe'의 높은 산이란 의미와, 독일어'Alb'의 의미로 '산이 많은 지역'으로 어의를 풀이하고 있다.
즉 알프스라 명칭은 흰색의 높은 산으로서 산들이 많은 군집형태의 산맥을 총칭하는 명칭임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알타이(altai)가 어딘가?-용연향(龍涎香, ambergris)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3 "에서 밝혔듯이 알타이(Atai)란 단어가 황금의 산이듯이 어떤 산맥이 아니라 산맥에 부분적인 요소가 있으며 때문에 본 블로그에서 살펴본대로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하는 산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프스 역시 이 지역에서 이름하고 있는 산의 이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알타이는 부분적인 요소가 강한 명칭인 반면에 알프스는 전체를 나타내는 명칭이다.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북부지역에는 높고 흰산이 많다.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 "에서 히말리야도 찾았고 백산도 찾았으며 천산도 찾았다.
유럽대륙에 있는 알프스 산에 대한 위치역사를 완전하게 부정하기 싫지만 지금까지 밝혀 본 사실에서 신중하게 재고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목소리 발성법에서 이처럼 기괴하고 놀라운 다양성이 있는 기법들은 난이도가 높아 어려운 것에서 부터 단계가 낮은 발성법까지 존재한다고 할 때 동양사적 정령신앙이 바탕이 된 것이 틀림없는데 필요에 의한 같은 환경이라면 생성될 수 있는 관습적인 행위나 방법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동일할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흐미와 요들은 같은 태생적 논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목소리로 낼 수 있는 독특한 창법 기능을 고안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첫째 정령 신을 매개로 한다면 서양인들의 종교관보단 상대적으로 정령신에게 유연성이 있는 동양인들의 사고가 더 합당하다 할 때 정령 신으로 다가서는 것은 흐미나 요들이 동일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목소리 기법과 기능의 차이가 없을 수가 없겠지만 생성의 근원은 동일 선상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굳이 요들송은 서양인들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고 이중적으로 보기때문에 발생하는 편협에 따른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상식선에 알고 있는 사실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들송의 알프스는 유럽대륙에 있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여도 지금까지 밝혀본 사실과 정령 신에 가까운 동양적 사고가 훨씬 적합한 것이라면 부정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자연은 역사를 부정하지 않겠지만 역사는 언제든지 자연을 부정할 수가 있다는 전제가 현실 역사를 깨우치고 있다.
자연을 역행하고 이치를 말살하려는 서양역사는 온 천지를 거짓 역사의 악취로 진동을 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자료들을 감안하여 보면 텍사스주는 몽골영역이 확실하고 그곳에는 코가 크고 검은 얼굴의 악라사(愕羅斯), 어르쇠라고 하는 대비달자(大鼻㺚子)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이들이 현재 멕시코인으로 둔갑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 흐미의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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