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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글쓴이:한부울
1. 유럽사의 불신
2. 유럽역사와 동아시아대륙역사의 숙명적 생성3. 천산은 북아메리카대륙 로키산맥에 있어야 할 지명이다.4. 조선패모(朝鮮貝母)학명으로 본 러시아인의 거란종락5. 흑룡강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6. 흑수백산은 삼한역사의 터전(불의 발견)
7. 진짜 조선패모(朝鮮貝母)란 무엇인가?
8. 결어
1.서두(유럽사의 불신)
그동안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한다고 글 올리는 사이클에서 많이 늦어진 것 같다.갈 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글 쓰기가 벅찬 것도 사실이고 이차저차 늦어지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번 글의 주제는 조선패모(朝鮮貝母)가 되겠다.이 주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천산, 백산, 백두, 곤륜산, 기련산, 삼위산, 흑수, 흑룡강, 티벳의 히마라야 까지를 포괄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를 하기 시작한 후 많은 세월이 흐른 만큼 성과도 있었다는 것을 자위할 수 있고 이제는 어느듯 말을 타고 본토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처럼 기분이 들 뜨지만 이제부터 더 어려운 길목에 접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기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세계삼한역사를 연구하면서 늘 상 가슴 한 구석에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궁금증이 뭉쳐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하여 유럽사가 근세기 길지 않는 짧은 시간에 감쪽같이 그렇게 뚝딱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수백년, 수천년의 이질적인 역사를 어떻게 뒤 바꾸어놓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이질적인 역사라 함은 바로 세계삼한역사를 말한다.유럽대륙을 생각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여기저기서 국경이라고 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들고 마치 하나의 나라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듯 무수한 전쟁과 갈등이 있었다고 하니 그러한 사건들이 있었다고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구도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영토경계구도 중 가운데 끼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은 국가 중 단연 '오스트리아'가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서양사에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거의 같은 취급을 하면서도 독일역사 안에 넣고 있지만 실제는 1.2차대전의 추축국(樞軸國)으로 최신 군함등을 보유하면서 다각적인 강한 군사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바로 본 블로그 글 "조선화융초(朝鮮火絨草), 에델바이스(edelweiss) https://han0114.tistory.com/17048893 "를 통해 알아본 결과이다.
우리나라 사서 승정원일기 고종 30년 계사(1893) 기록에 분명 오스트리아가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다고 한 사실이 있다.
또한 임진년(1832, 순조32) 7월에 영국 배가 홍주(洪州) 불모도(不毛島) 뒷바다에 표류해와 문초한 표선기에 영길이국 선원에게 묻기를 어느나라를 거쳐 왔는가라고 물으니
答有大小國。小國難詳。而大國一爲法蘭。二爲品松。三爲鵝羅斯。四爲粤地里亞。
지나온 길에는 “크고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큰 나라로 하나는 법란(法蘭 :프랑스), 둘은 품송(品松:프로이센), 셋은 아라사(鵝羅斯:러시아), 넷은 오지리아(奧地里亞:오스트리아)을 거쳐 왔습니다”라고 한 사실이다.또 한가지는 오스트리아의 라틴어가 오스트로(austro)인데 이것은 동양(East)이란 의미이다.즉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었다는 이야기다.그 나라의 인구통계를 보면 1780년에 11,723천명, 1880년 22,144천명, 1910년에는 28,572천명의 인구를 가진 국가로서 그 당시 인구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상위 크라스에 들 수 있는 상당한 인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나 현재 유럽대륙 중간에 끼여 있는 오스트리아는 1754년에 고작 2,728천명, 1880년에 4,963천명, 1910년에는 6,648천명으로 전자의 약 20%정도 수준밖에 되질 않는 나라로 나타나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즉 현재 오스트리아가 아닌 또 하나의 오스트리아가 존재하였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유럽사의 불신에 있는 중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만 그렇듯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우월성을 강조하던 그들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럽대륙 각나라가 가지고 있는 인구수는 실제 통계수자로 보면 보잘 것이 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그에 따른 증가폭을 감안하면 더욱더 현저하게 그 수가 부족하게 나타나는데 문화가 그들 보다 뒤 떨어진다고 하는 아시아제국들에 비해 형편없다고 할 수 있다. 중세기에 전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등 그 중심에 있었던 나라들 모두 작은 인구규모와 인구동향을 보면 심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종족보존(種族保存:preservation of the species)의 법칙이 인류가 생성될 때부터 존재한 자연에서 지극히 단절될 수 없는 하나의 이치라면 모든 것에서 우월하였던 유럽인들의 종족본능에 따른 번식력이 아시아인들보다 둔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래는 인구통계학(POPULATION STATISTICS)을 참고로 한 도표이다.
위 자료를 보면 유럽과 아시아 제국들의 1881년부터 현재 2010년까지의 인구변화 동향을 인구동계학자료를 바탕으로 집계하여 비교한 것이다.
1881년은 본 블로그가 특별하게 선정한 기준으로 대조선이 해체되는 년도를 기준으로 해본 것인데 많은 나라들 모두를 이 글에 다 설명할 순 없어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프랑스다.
프랑스는 나라의 명성답게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수준의 인구숫자가 위 도표에 나타나는데 1740년도에 이미 24,600,000명이란 거대한 인구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때이며 루이15세(Louis XIV:제위1724-1776)때이고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을 땐 조선의 영조(英祖:제위1694-1776)시대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인구가 270년이 지난 지금의 프랑스는 60,993,000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증가된 숫자는 3배가 못되는 숫자이다.
반면 아시아의 일본을 보면 거의 같은 년도 1721년에서 인구가 26,065,000명으로서 거의 근사치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현재 2010년 기준으로는 127,473,000명이란 엄청난 숫자로 불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배가 넘는 인구이며 증가 폭으로 따진다면 실로 다섯배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난 것이다.
프랑스는 전쟁과 전염병이 많았고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종족본능에서도 일본이 특이하게 프랑스보다 훨씬 강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크게 기본 틀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분명한 것은 유럽대륙의 서양세력들은 아메리카대륙을 기반으로 하던 세력이란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인구 규모로 유럽사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기존 고대부터 유럽대륙에 세워진 유적과 뛰어난 건축물, 문화가 존재하였다는데는 이설이 없다.이것을 한꺼번에 어떻게 하였을 것이란 추측은 무리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오히려 그것을 손쉽게 역으로 서양역사로 쉽게 탈바꿈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을 것이란 예상을 할 수가 있다.바로 그 당시까지 볼 수 없었던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생소하여 접할 수 없었던 문화충격을 생각할 수 있으며 그것을 접하므로서 인간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서 그때까지 단순한 기록과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왜냐하면 당시 대중들은 중요한 문화를 공유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산업발달로 인한 모든 재료 질의 발달을 들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한 거대한 그림 만들기 또는 대형 상징물 조성, 기념물만들기에 몰입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가 있다.왜냐하면 근세기 역사에서 증거로 내놓는 것은 모두 총천연색칼라, 색채 그림이며 손으로 그린 정교한 삽화이고 대형조형물과 어느시대의 역사 실체를 나타내는 기념물이기 때문이다.아마도 일부는 그림을 그려놓고 그대로 상징화된 조형물 또는 역사 기념물을 여기저기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도 할 수가 있다.레오나드로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2년간 완성시켰다고 하는 최후의 만찬(最後晩餐:The Last Supper) 같은 대형그림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신기하게 보는 대형 교회 또는 조각, 석상같은 것일 수도 있으며 전쟁의 기념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그것들은 현대인에게 문화, 교육적인 면에서 강력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 뻔하며 또한 심적으로도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일단 이러한 그림과 조형물, 기념물이 주는 것은 실제역사 이상의 다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고 생각해보면 정보에 어두웠던 당시 사람들에게 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현재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여기저기 역사 문화재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실제 눈으로 보거나 확인 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보았을 때 이러한 헛점을 이용하여 대중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널리 알리고 그들이 비꾸고자 하는 의도가 정당화되었을 것이며 또한 합리화하거나 사실화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그리고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것을 교육자료로 이용하여 자라는 세대들에게 산교육을 실시하였을 것이다.어떻한 목적에 의한 교육을 50년만 지속적으로 실시하면 기존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가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대조선이 해체된 시점인 1881년을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각적효과가 있는 대형그림, 조형물 또는 기념물, 그리고 이동가능한 신문삽화등은 당시 역사, 문화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대중들에게 주었을 것이란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생각해보면 더 많을 수도 있다. 우린 이런 잡다한 것들로부터 세계삼한역사를 결국 잊어버리도록 하는 최면에 걸려 지금까지 바보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2. 유럽역사와 동아시아역사의 숙명적 생성
왜 이토록 유럽역사에 집착하는가 하고 물을 것이다.그것은 나와 모르는 사람들, 자손과 후손 미래의 인간들에게 정신과 혼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앞으로도 끼칠 것이며 이것이 연결되어 우리의 민족성까지 지배하거나 조정당 할 수있다는 긴 터널과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유럽이 아랍이라는 사실도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그리고 아랍이 신라와 자꾸 대비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랍은 신라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근대사에서 대체로 수학력이 뛰어난 아랍문화가 있었다고 하여 유럽서양인들이 이를 흡수하고 받아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근세기 이전까지 수리학의 근원이 아랍에 있었다는 것은 곧 신라의 문화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이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바로 서양세력들과 열도일본군벌세력들이 근세기에 말도 안되는 엉터리같은 역사를 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을 묶어 철저하게 한반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영구적인 족쇄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존재한다.무엇때문에 이렇게 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자문도 해보았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역사 자체가 위태롭거나 최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요 포인트일 것이다.때문에 유럽인들에게 아랍(阿剌伯:arab)은 신라(新羅)보다 더 자유스러울 수 있는 명칭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아니 서양세력들이 그들의 힘에 의해 언제까지고 어떠한 제약도 없이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지칭은 신라보다는 그리스였고 아랍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그러나 한반도에 묶여 있던 삼한 특히 신라(新羅)는 당시 해양을 정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먼 항해술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나침반을 발명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들어났다.이것은 실로 인류에게 엄청난 발명인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중국의 발명품이라고 해버린 것이다.이것이 문제의 촛점이다.왜 중국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다고 본다.신라 문무왕 9년(669)1월에 중국 당(唐)나라 승려 법안(法安)이 신라에서 자석(紫石), 신나침반(新羅針盤)을 얻어간 사실과 동년 5월에는 신라(新羅)에서 신나침반(新羅針盤)두 상자를 당(唐)에 보냈다는 기록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신라가 상당히 과학적으로 진보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렇다면 신라 구성원들은 그에 따른 수학력, 그리고 지리학, 항해술등에서 탁월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능력은 장보고(張保臯:?-846)와 같은 항해자를 만들어 청해진(淸海鎭)을 구축하며 세계를 항해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며 두말 할 것도 없이 신라(新羅)가 전세계 해양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본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본 블로그에서 통일신라를 완성한 문무왕은 사산왕조(Sassanid Empire:224-651)의 '칼리프'라 하여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661-750)의 무아위야 1세(Muawiyah I ibn Abi Sufyan:661–680)'라고 하였다.
나침판 역시 분명히 신라의 발명품이지만 이슬람이란 아랍 상징성이 덧 붙여 놓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포괄적으로 페르시아(波斯:Persia)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불편한 것일 수밖에 없고 페르시아란 명칭 때문에 더 많은 진실의 역사가 그속에 묻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대 메디아(Medes:Median Empire)로부터 특히 3개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아케메네스제국(Achaemenid Empire)은 현재 북아프리카대륙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남유럽, 그리고 아시아까지 영역을 표시하고 그것을 3개대륙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 세개의 대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넓은 범위의 대륙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신라(新羅)가 아니더라도 서양인들에게 '아랍'은 그들에게 족쇄 도구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파르티아(Parthia:BC250–AD226), 사산왕조(Sasanian Empire:224-651), 이슬람제국이 이 페르시아란 단어에 포함되었고 또 고려(高麗)라고 판단되는 셀주크제국(Seljuq Empire:1037– 1219)까지 페르시아에 포함시켜 버렸다는 사실이 본 블로그에서 밝혀졌다.그후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1501-1736),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1794-1925), 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1925-1979), 그리고 이란(Iran)까지를 넣고 페르시아(波斯:Persian Empire)라고 해버린 것이다.깨끗하게 복잡하지 않게 정리 해버린 것이다.옛 그리스(Greece) 희랍(希腊)인들이 파사(波斯)라고 불렀다 하여 서양역사학자들은 페르시아(波斯:Persia)라고 통칭하여 부르지만 한마디로 뭉뚱구려 놓은 것일뿐이다. 또 희랍(希腊)이란 신라(新羅)를 지칭한 것으로서 이것에 의해 페르시아란 지칭자체가 모호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페르시아란 명칭은 근대사의 불편한 진실과 함께 상당히 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곧 페르시아(波斯:Persia)는 세계신라(世界新羅)문화의 프레임(frame)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신라(新羅)는 페르시아와 곧잘 비견되고 삼한의 신라(新羅)는 당(唐)과 충돌이 되는듯하면서도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질서가 있는 듯한 것을 보면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는 통일된 국가로 보아야 하고 결국 신라가 의지 할 수 있는 중국이란 당(唐)은 고려(高麗)인 것도 알 수가 있다.일본에서는 옛부터 한당(韓唐)을 카라(から)라 하였고 한(韓, 漢)도 카라(から)라 하였다는 사실에서 한(韓)은 삼한을 가르키는 것으로 삼한을 '카라'라 한 것이다.동아시아대륙사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한(漢)족도 카라라고 하였다지만 이미 오래전에 주위 번족들에 의해 소멸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주장한 사람은 대만인 심건덕(沈建德1947~)으로서 그의 조상은 복건장주(福建漳州)사람이고 자신의 혈통을 대만 파이완족(排灣族:Paiwan people), 시라야족(西拉雅族, Siraya)그리고 네덜란드인(荷蘭人)의 혼혈혈통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는 주장하길 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蕃)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는 말과 함께 今日的中國歷史以 漢族為中心,是假歷史。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라 단언하였으며 四千六百年歷史當中漢族被蕃族統治四千兩百年。4,600년 역사에서 한족(漢族)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니 실제 한족이 지배하였다는 시간은 전체역사의 10%도 될 수 없는 고작 400년뿐이라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역사의 10%를 가지고 중국이라고 행세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말이다.때문에 동아시아대륙사는 4,200년의 역사를 조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이것이 지금 동아시아대륙역사의 진상이며 동아시아대륙사가 가지고 있는 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서양세력의 자원으로 근세기에 만들어진 동양사는 이러한 굴레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는 한계와 지울 수 없는 낙인 찍혀 있다는 사실이다.근세기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1920년에 세계사강(The Outline of History, 世界史綱)을 출판했을 때 비로소 동양사와 서양사가 구분이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그렇게 만든 세계사는 한쪽만 가지고 판단 할 수도 없게 하였고 한편으로 감시고 견제인데 동서양사가 퍼즐을 맞추듯이 맞추었다는 것은 맞으면 같이 맞고 틀리면 같이 틀릴 수밖에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유럽사가 잘못되었다면 동양사도 필연코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두말 할 필요도 없이 본래는 세계의 역사가 하나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지배력에 의해 통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틀이며 그것을 우리는 세계삼한역사라고 하는 것이다.때문에 근세기에 날벼락을 맞은 것은 삼한역사일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세계삼한역사의 전통을 세습하며 내려오던 하나의 역사는 한반도에 꼼짝할 수 없도록 가둬놓고 그 하나의 역사를 동서양으로 분리하면서, 아시아역사와 아랍과 병행하는 유럽사를 나눌 때 부터 발생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퍼즐을 무슨 제주로 깨뜨릴 것인가? 동아시아대륙사에서 한족(漢族)이외 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라고 하는데 물론 동이(東夷)도 들어간다.흉노(匈奴), 선비(鮮卑), 저(氐族), 갈(羯族), 강(羌族)을 오랑캐 호(胡)라고 하는데 반도역사도 동아시아대륙사를 따라 오랑캐로 하였고 스스로 사대할 수밖에 없는 소중화속으로 들어가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그것을 일제가 노린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의 역사이며 그러한 사실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영(民勞)편 모전(毛詩故訓傳)에 "中國은 京師다"라고 이미 결론내렸던 이야기다. 중국은 동양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역사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해야 맞다.기어코 중국이라고 한다면 아메리카대륙 북과 남 중앙에 있는 땅, 그곳을 한 때 중국이라고 했을 것이다.중국이 지배한 것처럼 꾸민 동양사는 1881년 이후 서세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역사라고 해야 맞다.오히려 동양사와 서양사를 지배한 역사는 바로 오랑캐라고 하던 삼한역사로서 동아시아대륙사가 조작한 4200년간의 역사이며 그 역사가 동이(東夷)와 호(胡人)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을 대만학자 심건덕(沈建德)이가 용감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반도역사는 근원적으로 사대할 수밖에 없는 소중화사상을 버리면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 역사이다.때문에 초라하고 비루하며 역겹기까지 한 것으로 우리에게 모욕과 치욕만 남겨주는 것이다.그것은 일제가 타락한 반도역사를 원하고 그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胡)는 본 블로그에서 북아메리카대륙에 존재한 전통적 삼한의 이름이라는 사실도 명확하게 밝혔다.구려호(句麗胡), 조선호국(朝鮮胡國), 고려호(高麗胡) 다 마찬가지 이름이다.반도역사 말대로 따른다면 삼한역사도 오랑캐 역사가 되어야 맞다.그러나 그렇지 않다.주류가 비주류로 전락한 것일 뿐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 역사이다.동양사에서 없어서 안될 중국이란 명칭은 가공된 것이며 가공된 중국이 오랑캐라 한 것은 지금의 세계사를 잉태하게 한 근본이 될 수 있다.오히려 근원적으로 동양사와 서양사는 세계삼한역사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태생적인 것이 거의 같아 숙명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진실이 그 속에 존재할 뿐이다.
3. 천산은 북아메리카대륙 로키산맥에 있어야 할 지명이다.
제목부터가 센세이션하다.그렇더라도 유럽사 문제에 매달리다보니 서론이 길어져 감흥이 느슨해 졌다.유럽사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아무리 떠들어 봤다 소용이 없기 때문에 길게 매달려 본 것이다.천산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이렇게 결론부터 돌출하고 들어가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패모(貝母)의 생물학적 판단을 하기 위해 먼저 가장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지리 위치적인 문제를 먼저 풀어 놓고 최종 밝혀질 패모의 근원지가 이것과 일치한다면 더 이상 이론의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그리고 이에 대한 것은 상당한 자신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지형적인 바탕이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북아메리카인가에 대한 판근원적인 판단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지형적인 문제부터 하나하나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사실 폐병치료에 쓰인다는 약재 패모(貝母)는 뿌리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쌀 같은 주아(珠芽:bulblets)때문에 쌀(rice)이름이 붙었는데 라이스 릴리(rice lily), 북부라이스뿌리(northern rice-root), 인디언라이스(Indian rice), 야생라이스(wild rice)등이 있다.이 이름만 들어도 동아시아대륙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이 패모는 실제로 우리에게 낮선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패모라 하는 것은 근세기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로서 그 존재성을 충분히 예측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한반도에 자생되지도 않았던 조선패모(朝鮮貝母)는 어떻게 하여 생긴 명칭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반도역사만을 역사라 알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 입장에서야 도무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한반도 자료에서 조선패모(朝鮮貝母)라고 하는 학명을 찾으니 학명이 ‘Fritillaria ussuriensis’로 나오는데 이것의 종소명(種小名)은 우수리(ussuri)와 라틴어‘-ensis“가 합성어로 붙어 있다.
우수리(ussuri)는 동아시아대륙 중국과 러시아국경의 일부를 이루며 북류하여 아무르(Amur)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오소리강(烏蘇裏江)이라고 하며 영어로 '우수리'라고 한다.
식물 분류 근원지로 거의 흑룡강과 함께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다.
물론 라틴어형용사구에 접미사‘-ensis’가 붙어 있어“pertaining to,” “originating in,” ‘~에 속하다’, ‘~에 발원되다’등으로 쓰여 근원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조선패모(朝鮮貝母)는 우수리 근방에서 채취한 패모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우수리가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에 있는 지명의 위치에서 채취한 것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고 또한 정말로 우수리에서 이 식물을 채취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유럽사와 동아시아대륙사가 거의 같은 생성과정을 거치고 같은 운명이라고 할 때 거의 신뢰할 수 없는 것이며 불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대륙사가 말하는 그곳은 신라승려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三聖紀全)상편 원문에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이라 하여 옛 조선(朝鮮)이 개국할 때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명이 흑수(黑水) 백산(白山)땅에 내려왔다"는 기록을 전제하는 것으로서 조선의 시원을 밝혀줄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북동부에 위치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역사관이 맞을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대륙사학자들은 흑수와 백산을 동아시아대륙 북동부로 보았다는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흑룡강(黑龍江)과 함께 우수리를 엮어 놓았을 것이며 때문에 조선패모(朝鮮貝母)는 이곳을 근원지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물론 한반도가 삼한의 근원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흑수(黑水)와 흑룡강을 병용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흑수와 흑룡강은 같아야 하는가?
정말로 위치가 같은 동일한 곳의 지명이 맞는 것인가?
언뜻 흑룡강이라고 하면 강(江)색깔이 검은 색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고 옛날 흑수하(黑水河)에 흑룡(黑龍)이 살고 있었다는 구전(口傳)이 있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하기 쉽기 때문에 일단 흑수 또는 흑룡강이라고 하면 물 색깔이 검다는 것으로 같은 지명이라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동아시아대륙사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한계가 분명코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흑룡(黑龍)은 지명이므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야 하며 바로 '검은 산줄기', '검은 산맥'등으로 색깔보다 거대한 산맥줄기 또는 북방, 북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자료에 보면 풍수지리설에서 산(山)의 능선을 용(龍)이라고 부르는데 용(龍)은 그 변화가 무궁하여 바람과 구름과 비를 일으키며 높이 솟아 하늘을 날거나, 혹은 연못이나 바다 속에 잠복하여 있다가 갑자기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여의주를 물고 다니며 세상의 일을 주재(主宰)하는 성질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므로 산맥(山脈)을 용이라 부르는 것은 산맥의 흐름이 마치 용과 같이 천태만상(千態萬象)과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변화무쌍하므로 이를 용(龍)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때 홍수나 가뭄 등 천재지변에 따라 수시로 제의(祭儀)를 행하였으나 가장 많이 베풀어진 것은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기우제(祈雨祭)인데 이 기우제의 마지막 제차(祭次)인 오방용신(五方龍神)에게 제사할 때에는 동녘 들 밖에서는 청룡(靑龍)을, 남녘 들 밖에서는 적룡(赤龍)을, 서녘 들 밖에서는 백룡(白龍)을, 북녘 들 밖에서는 흑룡(黑龍)을, 그리고 중앙인 종루(鐘樓)거리에서는 황룡(黃龍)을 각각 만들어 놓고 제사하는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때 흑룡은 북방에 있는 거대한 산이나 산맥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어 단순하게 색깔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볼 때 거대한 산맥이나 특별한 산을 중심으로 흑수와 흑룡강은 갈릴 수밖에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대륙사에서 지정하는 흑수와 흑룡강을 동일한 지명으로 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구 두루뭉실 뭉쳐놓은 같은 지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때문에 근원적인 무엇을 찾아야 하는데 눈에 번쩍띄이는 자료가 있어 보니 기절 초풍할 이야기가 2002년 3월 21일자 대구[매일신문]지상에 나타난다.
바로 청조 건륭 28년(1763년)에 편찬된 지리서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에서 단군신화의 태백산 위치를 규명할 수 있는 삼위(三危)에 대한 기록을 원문에서 찾아낸 박은용 효성여대 교수의 발표내용이 기사되어 있는 것이다.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 4권(卷之四) (1763년)
古天山 東盡境(山海經) 三危山 西三百五十里 曰 天山 漢書 西域傳 西域 南北有大山 通典 始自張掖 而西至于 庭州 山皆周遍 一統志天山一名白山自哈密東北境綿亘而西。按天山爲西域大山自蔥嶺分支令自喀什噶爾之北迤東經鳥什
阿克蘓庫車哈拉沙爾闢展之北東入哈密巴爾庫勒界至塔勒納沁而止東西綿亘五千餘里皆曰天山則哈密巴爾庫勒屬諸山應爲。
"옛 천산은 동진경(山海經)에서 삼위산(三危山) 서쪽 삼백 오십 리에 천산이 있고 한서(漢書)서역전에 서역에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산(南北有大山)이며 통전(通典)에서 말하기를 장액(張掖)의 서쪽, 모든 산은 천산의 위용이 골고루 미친다 하였다. 일통지에서는 천산은 일명 백산이라고 하는데 합밀 동북경계에서 서쪽으로 끊임없이 뻗쳐 있다. 생각건대 천산은 서역의 큰산이며 총령에서 갈라져 나와 카시가르(Kashighar:喀什噶爾)에 이르며 북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동쪽으로 통과하며 아커쑤(Aksu:阿克蘇), 고차(庫車), 하라(哈拉), 사리(沙爾), 벽전(闢展)까지 펼쳐진다. 북동쪽으로 들어가 합밀, 파이고륵 경계에 이르고 탑특납심에서 그치고 동서로 길게 뻗어 5000리이다. 다 이를 천산이라고 하는데 합밀과 파이고륵에 속하는 모든 산들이 이에 응한다.
위 문장에서 눈에 번쩍 띄이게 하는 것은 바로 "(西域 南北有大山), 천산은 서역에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산"이라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보배같은 문장이다.
여러분은 왜 동아시아대륙사에서 서역(西域)을 완전히 아시아 서(西)쪽 끝단으로 빼낼 수 없었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가?
바로 신강성에 있는 천산(天山)이란 실체 때문이다.
지금의 천산은 신강성(新疆中部)에 우루무치(Ürümqi)에 있는 박격달봉(博格達峰:5,445m)을 말하며
발격달(博格达”为蒙古语,“神山”、“神居之所)은 몽골어로 '신산'이라고 하고 '신이 거처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이것은 몽골이라고 명칭을 붙인 것일 뿐 실제는 신시시원(神市始原)과 진배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산은 동아시아대륙에 있을 수가 없다는 확실한 결론을 위 흠정서역동문지에 의해 밝혀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동아시아대륙 천산산맥이라고 하는 곳에 천산이 있다는 것은 엉터리가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위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의 원문에 나타나는 바로 아래 문장 "南北有大山"남북(南北)으로 이어진 큰 산에 있다' 때문이다.
남북으로 연결되거나 이어진 큰산(大山)이란 해석이외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는 매우 간단한 문장이다.
도대체 서역(西域)이 어딘가?
중앙아시아로 서역을 내보내려 하였지만 그곳에 큰 산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천산산맥이 있는 신강성을 서역이라고 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천산산맥은 남북으로 걸쳐 있는가?
분명하게 남북이 아니라 동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가 있다.
거대한 산맥줄기가 길게 뻗어 있는 방향이 틀린다는 사실은 한서서역전에 기록과 달라 결코 서역이 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며 서역은 결코 동사이아대륙의 신강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아시아 전체를 둘러보아도 남북으로 이어지는 곳은 러시아 우랄산맥(Ural Mts)과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대설산맥(大雪山脈)뿐이다.
단순하게 남북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북해로 흘러드는 발원지가 될 수 없는 것이고 사천성에 있는 대설산맥 역시 천산이라고 하기엔 턱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동아시아대륙사는 서역은 신강성이고 신강성에 있는 천산산맥을 천산이라고 고집한다.
본 블로그가 지금까지 밝혀놓은 자료는 이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전한(前漢) 때의 외교가 장건(張騫:?~B.C.114)이 서역에서 나는 식물들을 채취하여 가지고 들락거렸다는 서역(西域)은 북아메리카대륙이며 북아메리카대륙에서도 '서쪽에 있는 땅'을 서역이라 하였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러한 주장은 수백가지의 생물을 통해 생물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명확하게 확인 하였기 때문에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하다면 이 한서서역전(漢書 西域傳)에 명확하게 "西域 南北有大山"이라고 한 사실은 이미 세계삼한역사찾기의 밝혀진 것이지만 한서에 나타난다는 것만 하여도 종결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본 블로그의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고무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모든 산맥들은 한서서역전(漢書 西域傳)에 기록된 사실과 다르게 남북(南北)이 아니라 동서(東西)이어졌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위성지도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 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알타이산맥(Altai:阿爾泰山脈)도 동서방향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이라 동서라고 해야 하며 앞에서 말한 천산산맥(天山山脈)도 동서이고 곤륜산맥(崑崙山脈)과 기련산맥(祁連山脈)뿐만아니라 세계지붕이라고 하는 히말라야산맥(Himalayas)까지도 동서(東西)방향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말하랴.
형편이 이러하니 동아시아대륙사 주체들은 속이 제속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신강성(新疆中部) 우루무치(Ürümqi)에 있는 박격달봉(博格達峰:5,445m)을 천산(天山)이라 하고 보니 이것을 또 백산(白山)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국 사학자들에게 실로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실로 난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삼위태백이라 하여 천산을 조선 시원이라고 한 것이기에 잘못하면 조선 땅이 신강성까지 와 닿게 될 수밖에 없는 미래의 제기될 수 있는 문제에서 중화역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부랴부랴 천산과 백산을 분리하였고 결국 백산은 동아시아대륙 북동쪽 끝으로 보내버리고 그곳에 대흥산맥을 설정하였으며 그 한참 아래에 있는 산을 백산이라고 하거나 장백산이라고 해버리니 이것을 반도역사에는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못을 박고 말았다.동아시아대륙사나 반도사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지지만
문제는 자연지형이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도 변할 수가 없다는 이치와 진리는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근본이 틀렸는데 이렇게 저렇게 옮긴다고 팥이 콩이 되고 또한 콩이 팥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대륙사가 말하는대로 신강(新疆) 투루판(吐魯番)지역이 서역(西域)이 되려면 한서서역전(漢書 西域傳)에 나오는 근본 자연 지형이치가 현재 지형과 어김없이 딱 맞아 떨어져 천산산맥이 남북으로 이어져야 했음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 한서서역전(漢書 西域傳)에 나오는 서역은 본 블로그에 주장한 것처럼 바로 남북으로 걸쳐 있는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로키산맥을 중심에서 찾아야 할 지명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거대한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곳을 동아시아대륙의 북동부라 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애초부터 흑룡강이니 흑수니 천산이니, 백산이니 하는 지명들은 동아시아대륙에서 찾는 것은 한마디로 가당찮은 이야기며 어처구니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금산(金山)이라고 하는 알타이산(Altai:阿爾泰山)도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알타이산맥이 될 수가 없다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좀 더 수치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동아시아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지형적으로 현격하게 비교 될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나는데 북동부 내몽골 지역에 대흥안령(大興安嶺:Greater Hinggan Range)산맥은 남북으로 약1,200km에 걸쳐 뻗어있다 하고 있지만 남북으로 걸쳐 있다는 산맥 선이 분명하지 않고 이 지역의 해발고도는 고작 1200~1300m로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2,035m 정도이다.
반면에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있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은 뚜렷하게 남북으로 짙은 녹색 묵으로 내리 그은 듯 연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총길이가 장장 4,500㎞에 걸쳐 길게 뻗쳐 북아메리카대륙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등줄기와 같은 거대한 줄기가 바로 로키산맥임을 알 수가 있다.
이 고봉군(高峰群)에서 최고봉은 4401m의 앨버트 산(Mount Elbert)이며 북미대륙에서 최고 높은 캘리포니아주의 휘트니산(Mount Whitney:4421m)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휘트니산은 로키산맥의 줄기가 아니라 시에라네바다산맥(Sierra Nevada)에 속하는데 역시 남북을 걸쳐 세로지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산맥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는 동서로 이어지는 산맥들은 아예 없다.
이것이 차이인 것이다.
로키산맥을 형성하는 고봉군들 모두가 거의가 4,000m에 육박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북쪽에서 룡처럼 뻗었다 하여 흑룡이라 했을 것이 틀림 없다.
더군다나 알레스카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는 태초의 백색을 간직한 듯 한 그야말로 신성스러운 산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기도 하다.
솔직히 풍수지리상 '흑룡(黑龍)'이란 지명이 붙으려면 바로 이러한 규모의 고봉군 산맥 줄기가 형성되는 곳에 붙어야 한다는 것이 이치적으로도 합당한 이야기다.
왜 이런 황당한 역사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서두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대조선이 해체되던 1881년 이후부터 자본력을 앞세운 서세의 지원으로 생성되기 시작한 동양 역사만들기와 신중국 만들기에 의한 결과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대륙 북동부 내몽골 지역에 대흥안령(大興安嶺:Greater Hinggan Range)은 거란족이 발흥한 곳으로서 대흥(大興)이라고 하여 흥안령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것 역시 대구[매일신문]위 같은 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있다.
신시개천경(神市開天經) 원저 신지혁덕(神誌赫德) P.4참조 p.83
원문: 下視三危太白, 三危, 山名, 非今外興安嶺也, 叉非今文化九月山也, 乃今支那甘肅界, 燉煌縣所在地三危山也, 本黎苗祖盤古, 初降之地是也”
아래를 보니 삼위태백(三危太白)이 보였다. 삼위(三危)란 산의 이름(山名)으로 지금의 흥안령(興安嶺)이 아니다. 또한 지금의 문화구월산(文化九月山)도 아니다. 지금의 지나땅 감숙성 경계이다. 이곳은 돈황현에 있는 바로 삼위산이다. 본시 구려(九黎)와 묘족의 조상 반고가 처음 내려온 땅이다.
바로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의 흥안령도 그렇고 한반도의 구월산도 모두 삼위태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동아시아대륙에 모든 지명이 믿을 수 없는 의심되는 것들 뿐임을 알게 한다.
4. 조선패모(朝鮮貝母)학명으로 본 러시아인의 거란종락
조선패모(朝鮮貝母)라 하고 신중국에서는 평패모(平贝母)라 하는 학명이 명명된 년도가 1859년이라면 생물학의 아버지 또는 시조라고하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의 학명시기 보다 늦다.
이 학명을 명명한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Karl Ivanovich Maximovich:1827-1891)가 식물채집
때문에 당시 중국을 방문했다고 하지만 방문한 곳이 실제로 동아시아대륙인지는 명확하게 들어난 것은 없다.
그리고 이 학명을 '한국약용식물사전'에 나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패모란 이름이 붙은 것치고 세세한 자료찾기가 쉽지 않다.
막시모비치(Karl Ivanovich Maximovich)가 1859년부터 1864년까지 지금의 동아시아대륙에 있었다고 하는 중국을 방문하였다는 사실도 영어자료에서조차 그의 행선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대륙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가 대조선이 해체된 1881년 이후부터라고 한다면 실제 그가 동아시아대륙에 있던 중국을 찾았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모순이 많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 있는 중국을 방문하고 이 조선패모를 채취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키 포인트이다.
그가 러시아인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바로 1740년부터 러시아행상들이 주축이된 모피장사협회가 활동하던 지역으로서 북아메리카대륙 브리티시콜럼비아(British Columbia)주와 지금의 워싱턴(Washington)주, 조금 더 나아가 아이다호(Idaho)주, 그리고 와이오밍(Wyoming)주 그기로 아이다호 주 바로 아래 캘리포니아 북부까지의 범위에서 활동했을 것이란 짐작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세계삼한 역사사실을 그대로 적용한다 한다면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지역이 전통적으로 거란족계로 ‘아라사(鄂羅斯)’ 불리던 대비달자(大鼻㺚子) 즉 러시아인 부락들이 있었다는 것을 들 수가 있다.
때문에 그 지역내에서 활동하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본 블로그의 글을 토대로 더 한다면 19세기 초엽 유럽대륙에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였다는 기록에서 유럽대륙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것도 앞전에 언급한 유럽사의 근워적인 불신도 있지만 유럽대륙에서의 영토구도상 스페인과 붙어 있는 구조의 프랑스와 동유럽이라 하여 엄청나게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러시아가 중간에 있는 여러나라들을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충돌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만약 러시아를 키타이 중국으로 보았다면 당시 기득권 역사 주체세력으로 설정했다는 설명이 된다.
그것이 삼한의 역사주체이든 고려든 또는 조선이든 상관이 없다.
프랑스라 하였지만 본래 프랑스가 조선이라는 것을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감안 할 때 삼한의 주체인 것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전향한 이탈리아 소지주 집안출신의 나폴레옹이니 엄밀하게 따진다면 전향을 거부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라 이름 하였다면 몰라도 나폴레옹이 전향한 나라가 프랑스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부르봉왕조(House of Bourbon:1589-1792)라 해야 맞다.
프랑스가 공격한 곳은 러시아라고 설정되는 것은 키타이 설정과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어쩌면 고려 내에 있는 몽골거란부락, 종락이었을 수도 있다.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대륙 모스코(Mosco)라는 지명이 아이다호(Idaho)주 스네이크 강(Snake river)위에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곳을 평안도라고 할 때 정확하게 정주(定州)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하게 있다고 본다.
본 블로그의 글 "나폴레옹이 주는 단서(端緖) 캘리포니아 https://han0114.tistory.com/17050659"란 글을 전제하더라도 당시 나폴레옹의 도플갱어(Doppelgänger)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평안도 출신 평서원수(平西元帥) 홍경래(洪景來,1771-1812)가 난을 일으켜 1811년 정주성(定州城)을 공격한 곳이 바로 이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냥 판단보다는 지금까지의 생물학적 판단이 매우 크다.
또한 나폴레옹이 1812년에 러시아를 침공(vasion of Russia)하면서 공격을 감행한 도시 모스크바(Moscow)도 이곳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주와 모스코는 같은 지명이며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모스코(Mosco)라는 지명은 위와 같은 사건과 비견할 때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는 일이다.
늘 주장하는 것이지만 하나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 삼한 영역에서 고을정도의 지나지 않던 이름이 어느날 갑자기 나라이름으로 둔갑한 사실과 그곳의 종족, 부락인들이 동시에 나라의 구성원으로 소속되게 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사실 모두가 근세기 이후 수많은 나라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기미년(1799, 정조 23) 2월[1일-6일]
옥하관(玉河館)이니, 예부터 조선 사신이 드는 곳이러니, 중간에 아라사[愕羅斯 러시아]에게 빼앗기었다 하니, 아라사는 한어(漢語)로 어르쇠라. 어르쇠는 흑룡강(黑龍江)북편 몽고(蒙古)의 종락(種落)이니, 크기 특별하게 크고 극히 흉악한 인물이라. 이러므로 대비달자(大鼻㺚子)라 일컬으니..[한국번역원역]
더욱이 위 조선후기에 서유문(徐有聞:1762-1822)의 무오연행록의 기행문의 일부를 발췌한 문장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라사(愕羅斯)를 대비달자(大鼻㺚子)라고 하여 몽고의 종락(種落) 즉 일개부락이라 하였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고려 땅에 소속된 것이라면 부락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몽고 부락에 있었던 사람들을 아라사 즉 어르쇠는 '유리거울'을 말하는데 '러시아'라고 하며 이곳을 거란구역이라고 한 것이 틀림이 없으며 이것들을 '키타이'라고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는 거란으로 비견되지만 일부종족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때 근세사에서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족 동호(東胡)라고 하는 거란(契丹:Khitan)이 키타이, 지나(支那) 또는 치니스탄(震旦)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을 것이고 중국이라 행세하도록 했던 것은 마땅히 삼한통치세력인 고려에게 붙일 명칭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거란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공격을 받고 일부가 복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예종(睿宗:1年)1469 년 6 월 29 일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상소문을 보면 요척륜불반(遼隻輪不返)이라 하여 요(遼:907-1125)나라를 고려(高麗)가 공격하여 참패시켜 처참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사례로 들 수가 있다.
이것은 종족에 의한 반란을 진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
키타이라고 하는 거란족이 근세기전까지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점도 아래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의 착각지도를 참고할 때 확인 할 수 있는데 조선패모(朝鮮貝母)학명을 명명한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Karl Ivanovich Maximovich:1827-1891)는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판단 할 수 있는 것이다.
5. 흑룡강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지금의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에 있는 흑룡강은 근원적으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앞에서 한서서역전(漢書 西域傳)에서 보았듯이 동아시아대륙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그렇더라도 아직 결론은 잠시 미루어야 하는 것은 아직 조선패모를 살피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다면 왜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이러한 시원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고인돌과 거석문화]를 쓴 변광현 교수의 글을 보면 특히 근세기에 들어 유럽역사 조작행위가 공공연하게 진행되었고 그러한 일이 실제 가능했다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 있어 일부 소개한다.
그는 말하길"대개 해외에 파견된 영국인들은 한결같이 모두 영국 군첩보부의 지시를 받거나 그 패거리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근 200년 동안 영국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집트와 크레테 문화에 대한 무엇인가를 속여서 자신들의 고대 역사를 조작하고, 더나아가 유럽의 고대 역사를 아시아 역사 이전의 것으로 조작하고자 한 것인데, 그 공작의 일환으로 진실된 입을 봉하기 위하여 발굴 관계자들을 하나씩 살해하고, 그 의문을 덮어버리기 위하여 군첩보부에서 언론과 소설가를 앞장세워 무덤의 저주라고 낙인을 찍어 끝까지 속인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2003-06-22 발표)"란 글을 보면 한마디로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발견자가 사실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에 대한 입막음을 해버린 것이다.
크레타(Crete)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BC3650~BC1170), 의 중심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그리스 청동기시대의 고대 문명을 말하는데 그리스를 북경어로 희랍(希臘)이라 한다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희랍(希臘:arab)을 북경어로 시라, 실라(xila)라고 한다는 사실에서 고대에 신라(新羅), 실라(Shilla, Silla)가 맞다면 신라가 그리스란 사실과 그들이 발견한 것들은 신라의 역사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세의 대표 세력 영국은 유럽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첩보원을 동원해서라도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을 것이 뻔하다.
신라가 그리스라고 한다면 서양역사가 들어 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서양세력들이 그들의 역사를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암흑같은 상황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 전체를 근원적으로 파악을 해보면 서세가 준동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들의 우월성을 담보할 근거를 찾는 것일지언정 결코 삼한역사를 들어내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부유적들을 가공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고 그리스문화를 유럽사에 포함시켜야 했다면 신라의 자취를 뭉게버리고 감추어야 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는 유럽 구습(舊習)의 타파운동 계몽주의(啓蒙主義)에 의한 18세기부터 서양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시작된 고고학(考古學:Archaeology)이 주도했다고 보여지고 발굴을 빙자한 유물파괴 및 훼손 도난을 이유로한 인위적인 이동, 정립되지 않았던 방법에 의한 오류 등으로 발견되는 유물마다 이질적인 역사가 들어나자 당시 당황하던 서양세력들은 이 고고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그것을 합리화거나 정당화하는데 최상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불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성서고고학(聖書考古學)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아랍이 아닌 신라가 3개대륙을 지배했다면 아메리카대륙도 포함되었을 것이 뻔하다.
지금 본 블로그가 파악한 바로는 남아메리카대륙과 중앙아메리카대륙 그리고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남부와 서부를 점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현재 스페인의 점령지와 매우 흡사하다 한 것이다.
결국 1881년 결정적인 어떤 이유로 인하여 대조선이 해체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가 난도질을 당하면서 그들만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무튼 유럽 역사는 서양세력들에 의해 첩보원까지 동원되는 형태에서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하는 사실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유럽사가 그렇지 동양사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서양세력들의 지원으로 생성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언어도단이라 할 수밖에 없다.
유럽사와 동아시아대륙사는 근세기에 거의 숙명적인 만남이고 생성이었던 것이다.
黑龙江,因河水含腐殖质多,水色发黑得名。在中国古代文献中,黑龙江有黑水、弱水、乌桓河等诸多别称,公元13世纪成书的《辽史》第一次以“黑龙江”来称呼这条河流。满语音“sahaliyan ula(萨哈连乌拉)”,其中“sahaliyan(萨哈连)”意为“黑”,“乌拉” 意为“水”。蒙古语则称“哈拉穆连”。俄文音“阿穆尔”或“阿母”(Amure)。
그렇다면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흑룡강은 믿을 수가 없다.
위치가 동아시아대륙이든, 북아메리카대륙이든 앞에서 이미 흑룡강의 흑룡이란 지명은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지명으로서 북방 거대한 산이나 산맥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위 한어자료를 풀어보면 기존 동아시아대륙사와 마찬가지로 원래 흑룡강(黑龍江)은 물속에 부식질(腐殖質)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물의 색깔이 검다’하여 얻은 이름이라 하였으며 또 중국고대문헌 중에 흑룡강(黑龍江)에는 흑수(黑水)와 약수(弱水), 오환하(烏桓河)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13세기 유전되어 온 사서 요사《遼史》에 처음 흑룡강으로 칭한 것은 물이 흐름에 따른 것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주어에서 ‘사하렌우라(sahaliyan ula:薩哈連烏拉)’이라 하여 살합련(薩哈連)은 검다(黑)의 뜻과 오랍(烏拉)이란 물(水)의 뜻을 합쳐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몽골어로 칭하길 합랍목련(哈拉穆连)이라 하였고 신중국음으로는 아묵이(阿穆尔:āmùěr) 혹은 하모(阿母:āmù)이라 하여 러시아어 에로스란 뜻의 '사랑의 신'을 말하는 아무르(amur)라고 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신중국에서는 키타이, 거란이 칭한 '검은 물'이란 고유의 의미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흑수는 오히려 흑룡강과 다르게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发源于祁连山深处的黑水河(古称弱水),是我国著名的第二大内陆河,全长821 公里,流经青海、
甘肃,进入黑水城地区后,分为东、西两河,十二个支流,呈扇形流入古居延海,形成了“河湖岸带”、“湿地”,“荒漠戈壁”、“沙漠”四大生态系统。
《山海經·西山經》第二:「西南四百里,曰崑崙之丘…黑水出焉,而西流於大桿,是多怪鳥獸。」
勞山,弱水出焉,而西流注於洛。"黑水西出山, 黑河古称“弱水”发源于祁连山
위 한어자료를 보더라도 기련산 깊숙한 곳(祁连山深处)에서 발원하는 흑수(黑水), 흑수하(黑水河)는 고칭 약수(弱水)라고 하는데 대다수 "西流" 서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흑룡강과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예로 현재 송화강은 북류이지만 위 기록은 서류임을 알 수가 있다.모든 강 흐름이 뒤 틀려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유심하게 볼 것이 있는데 우리는 하(夏)나라 우왕(禹王) 또는 백익(伯益)이 저술한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地理書)라고 하는 산해경(山海經)을 잘 인용한다. 위 한어자료에도 보면 알 수 있는데 산해경에서 서산경 제2권에서 인용한 것인데 특이한 것은 이 산해경(山海經)에는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이 있고 산경(山經)에는 남산경(南山經), 서산경(西山經), 북산경(北山經), 동산경(東山經), 중산경(中山經)이 있으며 해경(海經)에는 해외남경(海外南經), 해외서경(海外西經), 해외북경(海外北經), 해외동경(海外東經), 해내남경(海內南經), 해내서경(海內西經), 해내북경(海內北經), 해내동경(海內東經), 대황동경(大荒東經), 대황남경(大荒南經), 대황서경(大荒西經), 대황북경(大荒北經), 해내경(海內經)이 있어 모두 합계 총18권(卷)으로 이루어진 사서이다.그런데 위 곤륜, 흑수, 약수, 흑하 등 지명등은 모두 서산경(西山經)에서 나타난다.이것은 어쨌거나 서쪽 산경(山經) '산줄기'를 지정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즉 동아시아대륙사에서 말하는 지금의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의 산경(山經)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은 흑룡강(黑龍江)은 압록강과 더불어 동일한 강으로도 알려져 있었다는 기록과 동류(東流) 즉 동쪽으로 흐른다고 분명하게 아래에 나타난다.
이 압록강에 대해선 곧 다시 한번 글을 올릴 것이다.
곤륜산 서쪽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흑수(黑水)와 압록강이라고 하는 동류의 흑룡강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第一集雜纂集第二十三卷
○文獻備考刊誤
輿地考 卷十五 十七號。
列爲三大水之鴨綠。疑今之黑龍江是也。黑龍其源甚長。且東流入海。
실학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등장하는 문장에서 주요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인데 이것을 풀어보면 "큰 세 개의 대강 중 즉 삼대수(三大水)에 속하는 것이 압록"이라고 하였고 "추측컨대 지금 흑룡강(黑龍江)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며 "흑룡강의 발원은 심히 길며 또 동쪽으로 흐르고 바다로 들어간다"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흑룡강은 압록강과 마찬가지로 동쪽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데 지금까지 반도역사는 한중경계를 이루며 정서쪽도 아닌 남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감쪽같이 압록강이라 하고 있으니 이러한 사실자체가 엉터리다.
만약 흑룡강이 한반도와 엇비슷하게 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였다면 흑수와 흑룡강은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거대한 백산과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흑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유당전서에 기록된 것처럼 흑룡강이 동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압록강을 말하는 것이며 또 다른 흑수(黑水, 黑水河) 즉 약수(古称弱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북아메리카대륙 워싱턴 주(State of Washington)와 오리건 주(State of Oregon)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서태평양으로 흘러드는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이라고 하고 싶다.
이 같은 사실은 서서히 증명해 나갈 생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原論有鴨綠東流。與黃河同之語。
"원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압록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말하며 그렇듯 황하와 같은 말이다."하였다.
내용을 심층적으로 풀어보면 '그렇듯(與)'은 앞문장을 연결하여 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이고 다음에 이어지는'같은 말(同之語)'이라는 단어는 약간의 논란이 있겠지만 즉 '황하와 같은 말, 또는 같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압록이라 하거나 황하(黃河)라 하거나 지칭은 '같은 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문장의 해독을 동아시아대륙에 넣고 도저히 풀수가 없다.
한반도 압록강과 동아시아대륙의 황하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지 황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찾는다면 압록이 될 만한 강을 아래 지도에 모두 그려놓았는데 거의 대부분의 강들이 황토물이 섞여 흐는 강임을 알 수 있고 전부가 동쪽으로 흐른다.
특히 와이오밍주를 통과하는 강들은 모두가 황토물이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황하(黃河)라고도 했을 것이 틀림없다.
황하(黃河) 역시 압록강과 같은 말이라고 한 사실은 반도역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절 초풍할 이야기겠지만 북아메리카대륙을 바탕으로 살펴본다면 쉽게 이해될 부분이며 지금까지의 이상한 역사 지형구도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황하(黃河)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미주리강(Missouri river)과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미주리(Missouri)'란 뜻은 본래 진흙탕물(muddy water)이었지만 큰 카누의 강(大獨木舟之河:town of the large canoes, Place of large canoes)이라고도 하였고 또한 연결되는 미시시피(Mississippi)'의 뜻도 아버지강(父河:The Father of Waters), 또는 물의 수원(水原:The Gathering of Waters)이라고 하였지만 빼놓지 않고 거대한 진흙(The Big Muddy)즉 황토물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외에 큰 강(大河:Big River), 오래된 강(老人河:Old Man River), 위대한 강(偉大之河:The Great River)등 다양하게 불리었음을 알 수 있지만 공통적인 명칭은 모두 황토물이 흐른다는 것이며 그래서 황하(黃河:The Big Muddy)라 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맑다고 해석되는 '압록(鴨綠)'이란 지칭도 미주리와 미시시피강을 함께 칭했을 수도 있겠지만 미시시피강만을 지칭한 이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뭏든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할 때 압록강은 여러가지 이름을 포함시켜 혼용했다는 것을 알 수있고 각 시대나 지배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불리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특히 압록강에는 거대한 산맥지류에서 파생하는 강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특히 미시시피강은 또 하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북쪽 미네소타(Minnesota)에서 흘러드는 수원을 "mini sota(흰거품 물, 하늘 빛을 띤 물, 하늘색 물=sky-tinted water)"라는 뜻을 보면 "하늘 빛"은 과히 압록(鴨綠)이라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느껴지는 뜻이다.
물론 로키산맥의 눈과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압록(鴨綠)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섭융례(葉隆禮)의 《요지(遼志)》長白山,在泠山東南千餘里,蓋白衣觀音所居。其山禽獸皆白,人不敢入,恐穢其間,以致蛇虺之害。黑水發源於此,舊云粟末河,太宗破晉,改為混同江。其俗刳木為舟,長可八尺,形如梭,曰「梭船」,上施一槳,止以捕魚;至渡車,則方舟或三舟。
장백산은 냉산(冷山)에서 동남쪽으로 1000여 리 되는 곳에 있는데, 백의관음(白衣觀音)이 사는 곳이다. 그 산에 사는 금수(禽獸)는 모두 흰색이며, 사람들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 산속에서 대소변을 보았다가 뱀 따위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이다. 흑수(黑水)가 이곳에서 발원한다. 옛날에는 속말하(粟末河)라고 불렀는데, 태종(太宗)이 진(晉)을 격파하고서 혼동강(混同江)으로 고쳤다. 그곳의 풍속에는 나무를 파내어서 배를 만드는데, 길이가 8척가량 되며, 모양이 베틀의 북[梭]과 같이 생겼으므로 사선(梭船)이라고 한다. 배 가장자리에 노를 하나 매달아 놓았는데, 단지 고기잡이를 하는 데 쓴다. 수레를 건넬 때에는 두 척의 배를 나란히 잇대거나 혹은 세 척의 배를 잇댄다.
또 하나 삼한역사가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것이 있는데 위 송(宋)수주(秀州)가흥(嘉興)사람, 섭륭례(葉隆禮:生卒年不詳)의 윗 글을 보면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바로 '미주리(Missouri)'의 뜻인 "큰 카누의 강(大獨木舟之河:town of the large canoes, Place of large canoes)"이라는 사실은 '베틀의 북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사선(梭船)이라 하였는데 이 모양이 바로 이 카누란 사실이다. 카누가 꼭 베틀모양같다고 할 수 있다.이것을 우리말로는 '마상이'라고 하며 한어로는 마상성(馬尙船), 마상진(馬尙津), 독목주(獨木舟)라고 하여 미주리강(Missouri river)을 중심으로 자생하는 '계수나무'로 만든 배와 노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본 블로그 글 "계수나무(Cercidiphyllum)와 카누(canoe)의 노(櫓) https://han0114.tistory.com/17050599 "란 글에서 이곳 가까이에는 평안도 의주(義州)가 있었을 것이란 추정과 함께 소동파의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도 여기서 그렸을 것이란 사실을 밝혔다.
물론 의주도 본 블로그 글 "멜론(甜瓜:melon)은 조선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이 최상품이다. https://han0114.tistory.com/17050686 "에서 밝힌 위치와 거의 가깝게 위치한다.
하지만 이러한 명확한 사실들은 근세기에 들어 알아 볼 수 없게 변질되거나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인 것 같다.
17세기 중엽 네르친스크조약(Treaty of Nerchinsk)의 간단한 사전 기록을 보면 당시 러시아가 흑룡강(黑龍江)방면으로 지속적으로 진출해 왔기 때문에 청나라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1689년 러시아가 아무르(黑龍江)강 방면으로 진출해오자 청군은 그 저지에 나서 러시아인이 구축한 알바진성(城:fort of Albazin)을 포위, 공격한 것을 계기로 1689년 8월 27일 이 조약이 맺어지고 두 나라의 관계가 조정되었다는 것으로서 이 네르친스크조약이 이루지며 문서가 작성되는데 이 문서에 라틴어와 만주어에서는 흑룡강을 "사하렌우라(薩哈連烏拉)"이라고 적었고 한문본에서는 흑룡강(黑龍江)으로 그대로 적었으며 러시아어본에서는 아무르라 하지 않고 석륵객하(石勒喀河)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만주어본 한문본에서는 석대흥안령(石大興安嶺), 라틴어본, 러시아어본, 프랑스어본에서는 "스타노보이(石山)"라고 적었다고 하는 것에서 생각 해 볼 때 흑룡강이 근세기까지 어떤 이유로든지 이름이 제대로 통합되지 못하고 정립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흑룡강보다 오히려 석륵객하, 석대흥안령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충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위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서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인 1689년이니 흑룡강이 있었다는 위치가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건 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때가 바로 반도역사에 말하는 청-러시아 국경분쟁(Russian–Manchu border conflicts, 1652-1689)때인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에 있었던 군사 집단 코사크(Kozacy)가 청나라를 침공하여 충돌하는 것에서 발단 한 것으로서 청나라의 강요로 출병하게 되었다는 2차에 걸친 라선정벌(羅禪征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清朝称他们为“罗刹”,朝鲜将俄罗斯译为“罗禅”、“貉车”、“虏车”、“老叉”、“老羌”、“车汉”等
라선(羅禪)을 지금의 러시아로 해석되고 있는데 당시 영고탑(寧古塔)근처에 사는 별종들이라고 하여 청조에서는 나찰(羅剎), 조선에서는 나선(羅禪), 학거(貉車), 로거(虜車), 노차(老叉), 노강(老羌), 거
한(車漢)등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조선의 총수병 즉 조총수(鳥槍手)을 천하무적이라는 사실이다.
1654년 나선정벌1차에 총수(銃手)병 100명과 지휘관:초관(哨官)50여명으로 7일만에 적을 거의 절멸을 시켰다고 나온다. 1658년 2차 때는 총수병 200명과 지휘관 60명으로 잔당을 모두 패퇴시키고 절멸시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효종(孝宗:1619-1659:재위1649-1659)말기 때로서 반도역사는 청나라의 강요로 출정하였다는 설명이다.
이것에서 나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청나라는 개별적인 국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며 아마도 고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본국에서 파병하라고 하면 안할 삼한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본국인 고려가 요청한 것이니 조선은 최고 고수의 조총병을 파견하여 그 결과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북방으로 러시아 종족들이 아마도 고려땅을 침범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물론 그곳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동아시아대륙이었다면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고유의 이름이 정립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각기 다른 이름으로 각 사본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건 위치가 여러가지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신생영토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고 당시 시각으로 보았을 때 지명에서 서로 각립하였다고 한다면 제대로 통일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는 자료를 보면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양한 종족들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때문에 근세기에 접근 할 수록 서로 다른 종족들이 지역의 통치권을 주장하게 되면서 1643년부터 러시아의 탐험가들이 산맥일대로 쏟아져 들어왔다는 것이며 이런 러시아종족들을 상대로 삼한 통치국에서는 무력으로 진압하여 1689년까지 쫓아내버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려와 조선에 의해 알바진 요새가 함락되고 거의 2세기가 지난 1858년, 아이훈조약(愛琿條約:Treaty of Aigun)으로 러시아는 마침내 흑룡강 주위 땅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근세사의 설명이다.
물론 아이훈조약이 적용된 곳은 실제로 사건이 발단되었다고 여겨지는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가 아니라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잡다한 세력들의 난립을 들 수가 있다.
특히 북아메리카대륙의 경우 분명코 고대로 부터 전해지는 지명이 있었겠지만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부터 과거 지명을 사용할 수 없게 하였을 것이 뻔한데 서세들끼리의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그것이 무슨 이유이든간에 미루어지면서 근세기에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대륙 북동부로 사건위치를 꿰 맞추기 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이었을 것이란 짐작이다.
때문에 네르친스크조약이 이루어진 곳도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일 수도 있고 나중까지 북아메리카대륙의 위치정립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다는 사실도 배제할 수가 없다.
6. 흑수 백산은 삼한역사의 터전이다.(불의 발견)
그렇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는 우리민족과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할까?우리민족의 천신(天神)이 하강한 땅을 태백(太白) 새벽, '샛별'이라고 사백력이라 한다면 삼위(三危)라는것은 세 개의 태백(太白)이어야 맞다.그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처음 빛을 밝히신 환인께서 온 천지가 흰색으로 뒤 덮힌 신성한 땅이 평평하고 물이 맑아 물자가 풍부한 곳으로 이전낙원(伊甸樂園)이라고 하였을 것이며 여기를 흑수(黑水) 백산(白山)이라 칭했다고 할 수 있다.
三聖紀全 上篇
安含老 撰-原文
吾桓建國最古有一神在斯白力之天爲獨化之神光明照宇宙權化生萬物長生久視恒得決樂乘遊至氣妙契自然無形而見無爲而作無言而行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群居于天界부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氏亦稱安巴堅也傳七世年代不可考也
[1]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群居于天界掊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氏亦稱安巴堅也傳七世年代不可考也
위 글은 신라 진평왕 때의 도승(道僧)이었던 안함로(安含老:579-640)가 쓴(撰) 삼성기(三聖紀全) 상편 원문에서 우리 삼한역사가 태동한 장면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매우 중요한 문맥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1]"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고 이를 환국(桓國)이라 하며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天帝桓因) 씨(氏:세습관명)라고 하면서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하였으니 환인은 일곱 대를 전하였지만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란 내용이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흑수와 백산이라는 곳에 조선의 백성이 될 수 있는 800명의 어린 소년과 소녀(童女童男) 또는 총각과 처녀가 땅에 내려와 터전을 닦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것을 이전원 또는 이전낙원(伊甸樂園)이라 한 것이다.
바로 인류의 탄생이며 문화창달의 시발인 것이다.
돌을 쳐 불을 만들고 그것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다는 것은 인류 문명을 처음 일으킨 것과 같다해야 맞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 불, 흙, 공기 4원소라고 생각한 것에서 보더라도 이 원소들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들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불(火:fire)이었다.
사전을 보면 약 260만 년에서 20만 년 전 사이 구석기시대로 추측되는 시대에 불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불은 구석기시대 이후에는 채난(採暖), 채광(採光), 조리(調理), 방위(防衛) 및 도구의 제작 등에 불이 이용되었으며 이것으로 현대에 이르는 급속한 인류발전을 이룩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처음 신석기시대에는 충격이나 타격에 의해서 인류 자신이 직접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발화(發火) 방법을 습득하였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위 문장을 보면 바로 우리 삼한의 조상인 천제환인(天帝桓因)에게서부터 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이것은 실로 엄청난 역사 사실이다.신석기시대를 지질학상 약 1만 년 전이라고 보는 것과 실증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우리의 환국(桓囯)은 가장오랜 옛날에 있었다. 한 신이 사백력(시베리아)의 하늘에 있어 홀로 화하여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라고 적고 있는 그 때 개천시기가 BC7197년라 하였으니 현재 서기 2000년을 더하면 거의 9000년이 넘는 것으로 지질학상 추정년도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라 할 때 환국이란 존재에 대한 신빙성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이렇게 만들어진 불로써 음식물을 익히고 요리하며 더 나아가 건조,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이 영양 섭취의 급격한 증대가 따랐고 그와 동시에 체구와 건강이 좋아지면서 생활 능력도 더욱 향상, 확대되었다는 학설은 거의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때문에 삼한역사발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던 터전과 바탕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우리삼한역사는 무엇보다도 불을 처음 발견했다는 인류의 근원을 알리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발견된 불은 높은 온도의 화로를 만들어 금속기구를 제작하였을 것이고 석기시대에서 금속기시대로의 발전하는 혁신을 낳게 했다는 것은 인류가 발전한 요소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음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이러한 문명발달을 말할 수 있는 역사는 세계에서 우리삼한역사가 유일한 것이다.이러한 개척과 도전정신, 창조력이 우리 세계삼한인들에게 있었다면 무엇을 하지 못하였겠는가?아무리 근세기에 서양세력들이 이리저리 갈라놓고 흩어버렸다 하여도 하나의 시원에서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 사실은 결코 감출 수가 없게 하는 증거들인 것이다.
때문에 동남동녀 800명이 흑수백산(黑水白山)땅에 내려왔다는 것은 인류가 시작된 것이라 판단할 수 있으며 환인께서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게 했다는 것은 인류발전에 따른 부정할 수 없는 인류문화창달의 역사를 시초로 이룩한 것으로서 여겨야 하며 그러한 역사 시원을 바탕으로 하는 삼한역사가 세계 우뚝 섰다는 것은 유물사관으로 보아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인류가 시작된 곳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역사의 태고적 발상지라고 할 수 있으니 그곳은 바로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이었을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대륙사와 반도역사에서는 백산(白山)을 장백산이라고 하고 흑수(黑水)를 흑룡강과 연결시켜 놓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시도한 의도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었더라도 그것은 우리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으로 전달되는 것은 삼한역사가치를 한마디로 좀스럽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한다.
[2]吾桓建國最古有一神在斯白力之天爲獨化之神光明照宇宙權化生萬物長生
우리 환국이 세워질 때 시베리아에 하늘을 홀로 변화시키며 최고 오래된 한분의 신(神)이 있었다.
그 신(神)은 광명이 우주를 비추게 하며 생물이 권리를 얻게 하였고 만물을 창생하였다.
또한 위 문장에 흐르는 의미는 한마디로 위대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겨야 하는 단어는 "在斯白力"인데 이것은 '시베리아'라는 특별한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라는 사실이다.
비록 시베리아가 가장 추운곳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상징되었지만 기실 본래의 뜻은 새벽녘, 세상을 여는 처음 장소라는 뜻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바로 환국(桓囯)이 처음 세워진 위치를 가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박용숙 동덕여대교수의 글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삼신(三神)에서 "‘새벽은 샛별로 태백이고 금성이다. <삼성기>는 금성(金星:Venus)을 새벽녘(斯白力)의 하늘을 빛내는 한 신령(神靈)이라고 표기한 것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새벽하늘을 빛내는 신령이라는 것은 태양신을 뜻하고 만물의 창조주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새밝-새밝음-새벽-斯白力-시베리아-서벌(徐伐)-서불-서라벌-경주(慶州)-금성(金星:Venus)로 공통분모가 '밝다'이다.
'새라', 신라(新羅), 사로(斯盧), 사라(斯羅), 서라(徐羅)와 같아 '밝' 태양으로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새벽, 밝다'의 시베리아(Siberia)를 사백력(斯白力)이라 했음을 알 수 있고 현재 러시아영토가 서시베리아(西伯利亚)라면 분명 동쪽에는 동시베리아(西伯利亚)가 있어야 했다면 알래스카를 포함한 캐나다 북서지역이 된다.
그것은 태양이 처음 뜨는 새벽땅, 세상이 시작된 땅을 북아메리카대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알레스카와 시베리아가 연결되는 바다가 베링해(Bering海)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백령(白令)이라 쓴다.
'백령'은 '백력'과 음이 다르지 않다.
새벽과 밝다와 연관되는 지명이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 흑수라고 판단되는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아래 금성(金星)이란 도시로 나타나는데 바로
오리건주 워싱톤 카운티의 킹 시티(King City is a city in Washington County, Oregon) 즉 왕(王), 군(君)이 있었던 도시라고 풀이 할 수 있다.이것을 지금 당장 경주(慶州)라 하거나 금성(金星)이라고 단정을 지울 수는 없다.하지만 이러한 자취는 바로 삼한역사의 잘 들어나지 않는 흔적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때문에 처음 환국(桓囯)을 건국하고 신시(神市)를 만들었다면 이 금성(金星)이란 지명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발흥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백력이라는 지명에서 왜 시베리아란 지명이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하는 가에 대한 답도 본 블로그에서 이미 발표한 것으로서 "버드나무(朝鲜柳:Salix koreensis)모순과 시베리아 https://han0114.tistory.com/17050602 "란 글에서이다.
금사(金史) 고려열전(高麗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金史高麗傳] 黑水靺鞨。居古肅愼地。有山曰 白山。蓋長白山。金國之所起焉。
"흑수말갈(黑水靺鞨)은 옛 숙신의 지역에 산다. 그곳에는 산이 있는데, 백산이라고 한다 하였으며 대개 ‘장백산(長白山)은 금나라가 일어난 곳이다"라고 정리된다.금나라는 금(金:Gold)이 많이 산출되던 곳이다.그곳은 물론 알타이가 있어야 하는 곳으로 본 블로그 글 "알타이(altai)가 어딘가?-용연향(龍涎香, ambergris) https://han0114.tistory.com/17050533 "에서 이미 다 밝혔던 바다.백산과 장백산은 어떻게 다를까? 백산은 말 그대로 사시사철 눈이 덮혀 있는 산을 말하는 것이며 장백산은 이러한 산들이 무리가 되어 길게 늘어서 있는 산맥군을 길 장(長)자를 써 장백산이라고 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때문에 동아시아대륙에서는 이것을 혼용하여 부르지만 이 지명은 엄연히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백산 3]
그렇다면 최소한 장백산은 하나의 산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말갈족(靺鞨族)은 남방 퉁구스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숙신(肅愼),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을 통털어 이르는 명칭이라고 하였으며 북아메리카대륙의 로키산맥군을 터전으로 한 종족들임을 이해 할 수가 있다.
또 금나라는 신라와 같다고 정리될 수 있으며 이 금나라(金:941-1234)를 망하게 한 몽골과 남송의 정체를 기어코 세계삼한역사적으로 따져 본다면 이탈리아 파르마 교회군(Captain General of the Church)과 스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본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으나 어쨌거나 이것들은 삼한조선으로 정리되어 전부 통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이들 세력들이 금나라(金:941-1234)을 차지하려거나 독차지하려고 한 주 원인은 바로 골드러시를 촉발시킨 황금(黃金)이다.이 황금은 근세기 이전까지 지배력으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근세기부터 사고팔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고 보아야 옳다.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지만 금산(金山)이라고 하는 '알타이산맥'은 금이 대량으로 산출되는 곳이기 때문에 근세기 1800년부터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가 발생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揆園史話
檀君紀
後世,其民漸徙黑水之地,遂以漁獵爲生,艱險儉嗇,麤健勁悍。雖强勇遠出於諸國,漸至不習文事。後世,漢曰挹婁,元魏曰勿吉,隋、唐曰靺鞨,稍與窮北蠻人相混,漸失其俗,頗有陵夷之歎。近古,金、女眞等,皆其後身,同族異稱也。
후세에 그 백성들은 점차 흑수(黑水)의 땅으로 옮겨가 마침내 어로와 수렵으로 생업을 삼으며 고생하면서도 검약하니 건장하고도 억세어 졌다. 비록 용감하게 멀리 여러 나라로 나아갔으나 점차 글은 익히지 않게 되었는데, 후세에 한(漢)나라는 읍루(挹婁)라고 일컬었고, 원위(元魏)때는 물길(勿吉)이라 하였으며, 수와 당나라는 말갈(靺鞨)이라 불렀으며, 점차 북쪽 끝의 야만인들과 서로 섞이더니 점차로 그 풍속을 잃어버리고 한탄스럽게도 자못 쇠미해져 갔다. 가까이는 금나라와 여진 등이 모두 그 후손으로 같은 족속을 달리 일컬은 것이다.
위 규원사화 단군기에서는 흑수 땅에 살았던 백성들은 모두가 조선의 백성인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말갈족(靺鞨族)이라고 하는 숙신(肅愼), 읍루(挹婁), 물길(勿吉), 여진(女眞)은 모두가 같은 삼한역사 아래 조선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늘어지고 길어졌지만 여기서 한가지만 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히말라야(Himalayas)의 근원이다.
히말라야산은 늘 티벳민족과 연결되고 티벳(Tibet)불교와도 연결되는 성스러운 산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티벳은 고대로부터 상그리라(Shangri-La)가 있다고 하여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서 특정한 세력에 의한 지배가 없는 곳으로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원한 나라라고 여겨었다.
그래서 본 블로그 글 "안식향(安息香)으로 본 삼한(三韓)영역 https://han0114.tistory.com/17048871" 에서 샹그리라(Shangri-La)가 있었다고 하던 티벳(Tibet)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안식향'을 가지고 따져보았다.
놀랍게도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지아코모 가스탈디(Giacomo Gastaldi :1500–1566)가 1546년에 제작한 지도(Universale Cosmographo)에 티벳이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하여 마테오리치(利瑪竇:Matteo Ricci, 1552-1610)가 그린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1602)에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 끝 캐나다 서부지역에 위치하는 아니암국(亞泥俺國:Anian)에서 ‘Anian’은 켈트어이면서 웨일즈어(Welsh language)로 강력한 힘, 즉 파워(power)'란 뜻임을 확인하였고 이것이 곧 대월씨국(大月氏國, 大月支)임을 알게 되었으며 물론 그곳에 티벳(Tibet)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 알레스카 북부좌단에서 아래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백산들이 거대한 룡처럼 늘어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곳 어딘가에 티벳이란 지명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티벳 가까이에 있는 백산들이 히말라야산맥이라는 설명이 된다.
그곳 알라스카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내에 '대산(大山)'이란 뜻의 데날리(Denali) 또는 매킨리 산(Mount McKinley:6,144 m)이 있다. 이 데날리(Denali)란 뜻은 애서배스카어(Athabaskan language)로 위대한 사람(the great one) 또는 높은 사람(the high one)이란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말로 '머리산'이라 할 수 있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 5
白頭爲東方諸山之宗, 而又是東人始降之地, 兼復, 元首檀君, 恒行祭天禮于其山, 當時之人, 名之曰頭山也,
위 규원사화 단군기에서 말하길 "‘백두'가 동방 모든 산의 으뜸이 되고 또한 동방의 사람이 하늘로부터 처음 내려온 땅이 되며, 게다가 더하여 으뜸 되는 우두머리인 단군이 항상 그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예식을 행하였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머리산(頭山)'이라 이름하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하였는데 머리산은 바로 "Denali"과 같다 할 수 있는 것이다.
from Sanskrit Himālaya, from hima 'snow' + ālaya 'abode'
또 히말라야(Himalayas)를 고대 산스크리트(梵語)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place, home, temple)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결합된 복합어라고 하였다.
또한 우리가 '희다'를 '희' 또는 '히'라고 읽고 산을 '마리'라 한다.
'히마라야'가 드라비다어(Dravidian) '히마라이'로 읽어지고 히 역시 희다(白)의 '히'이며 산(山) 역시 드라비다어(Dravidian)로 '마리, 마라이'라고 하니 '히마리' 히마라이''히마라야'로 나타나 모두 백산(白山)을 뜻한다는 것이다.
'눈(snow)이 거처(abode)하는 산'을 '신전으로 보았다는 것은 눈 즉 '흰백'을 '신'으로 보아 성스럽다(saint)하였다는 설명이 된다.
때문에 신의 거처로 보았을 것이다.
백(白)은 곧 신(神)이고 환인이시니 흰산(白山)은 같은 뜻이라고 할 때 백산 히말라야가 있어야 할 곳은 샹그리라(Shangri-La)가 있었다는 티벳(Tibet)이어야 하고 세상이 처음 밝아졌다고 할 수 있는 곳, 지금의 알라스카 또는 캐나다의 브리티스 컬럼비아주에 있는 거대한 백산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곳을 '머리산'이라 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이것을 볼 때 처음 동방에서 세상이 밝아 금성(金星:Venus)이 나타났다는 것을 새벽녘(斯白力)의 하늘을 빛내는 한 신령(神靈)이 나타났다는 것과 같게 보아 새벽이라는 사백력(시베리아)의 지명이 만들어 진 곳에 바로 히마리, 히마라야 즉 백산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며 그곳에 환국의 환인께서 신으로서 창조주로서 처음 백산에 내려오게되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할 것이다.
바로 동아시아대륙 북동부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임을 어찌 모른다고 할 것인가?
7. 진짜 조선패모(朝鮮貝母)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천산(天山)과 백산(白山)을 알아본 결과 위치가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답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옛 삼한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곳도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하는데 생물학적 판단도 그러한가 따져 볼 일이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 식물학자가 명명한 학명 "Fritillaria ussuriensis Maxim."는 단지 동아시아대륙을 근원으로 만들기 위해 생성된 것이라고 판단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Karl Ivanovich Maximovich:1827-1891)가 바로 거란족계열인 아라사(愕羅斯)사람이고 대비달자(大鼻㺚子)라는 사실이다.
거란(契丹)을 키타이(Khitan, kitai), 지나(支那) 또는 진단(震旦)이라 하였다고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키타이(kitai)란 명칭 자체가 고구려 또는 고려에게 복속되었다고 하는 키타이가 맞다면 그런 지칭은 고려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려를 치나스타나(Chinasthâna) 또는 치니스탄(震旦;Chinistan)이라 불렀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삼한(三韓)조선(朝鮮)을 다르게 표현한 명칭으로 진단(震壇) 또는 진역(震域), 진국(震國), 진단(震旦)이라 하였다는 것은 동방(震域, 震旦, 震檀)의 나라를 뜻하는 것이다.
팔괘의 진(震:☳)은 방향이 동쪽을 말하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양사나 서양사가 이야기 하는 거란(契丹)은 전통적으로 고려의 복속된 명칭이거나 종족명, 부락명 등으로 이해함이 맞다.
키타이를 복속시킬 정도의 고려와 조선은 얼마나 대단하였을까?
아래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조가 ‘나의 제갈량’이라고 했던 조선초기 문신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상소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예종(睿宗:1年)1469 년 6 월 29 일
○工曹判書梁誠之上書曰:
一, 議長墻。 臣竊惟本國, 表裏山河, 幅員幾於萬里, 戶數百萬, 兵一百萬, 堯與竝立, 周不爲臣, 元魏通好, 馮燕納款, 隋六師大敗, 而唐賓之, 遼隻輪不返, 而宋事之, 金稱父母之鄕, 元爲甥舅之國。 我大明高皇帝亦謂三韓, 非下下之國。
1. 장장(長墻)에 대한 의논입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본국은 안팎이 산과 강으로 되어 있어 넓이가 몇만 리(里)이고, 호수(戶數)가 1백 만이고, 군사가 1백 만으로, 요(堯)임금과 아울러 섰고, 주(周)나라에는 신하가 되지 않았고, 원위(元魏)와는 통호(通好)하였으며, 풍연(馮燕)에는 정성을 바쳤고, 수(隋)나라는 육사(六師)가 대패(大敗)하였고, 당(唐)나라는 손님으로 대우하였고, 요(遼)나라는 패군(敗軍)하여 처참하였으며, 송(宋)나라는 섬겼고, 금(金)나라는 부모(父母)의 고향이라고 일컬었으며, 원(元)나라는 사위와 장인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명(明)나라 고황제(高皇帝)도 또한 삼한(三韓)이라 이르고 하하(下下)의 나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글은 조선초기의 기록이라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내용인데 "삼한 본국은 안팎이 산과 강으로 되어 있어 넓이가 몇 만 리(里)나 되고, 호수(戶數)가 1백만호(戶)이며, 군사가 1백 만이라고 하였고 또 요척륜불반(遼隻輪不返)이라 하여 요나라의 '병거(兵車)가 한 대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거란(契丹)족 정복왕조인 요(遼:907-1125)나라를 고려(高麗)가 공격하여 참패시켜 처참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삼한 본국, 조선 본국이라는 것은 바로 고려를 지칭한 것이다.
본국의 넓이가 기만리(幾於萬里)라 하였는데 기만리는 사전에서 '만리(萬里)’의 몇 배가 되는 수라고 나온다.
도대체 만리의 몇배라는 것일까?
만리(萬里)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4,000km 이다.
과거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환국은 동서로 2만리(7,857km)이고 남북으로는 5만리(약20,000km)라 하였다.
남북으로 20,000km 라 함은 아메리카대륙 북쪽 알래스카 끝단에서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혼곶까지 직선거리가 약 16,000km 이다.
북아메리카대륙을 동서로 길이를 재어보면 약 4,300km 가 된다.
그리고 동쪽 버뮤다 섬에서 서쪽 하와이 섬까지 거리를 측정해보면 무려 9,000km가 넘는다.
만리도 아니고 기만리 즉 몇만리라 하였으니 본국의 영토 넓이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한반도는 남북(南北)길이가 3000리(里:1,200km)인 것을 감안하면 도무지 비교가 되질 않으며 놀랍게도 조선문신 양성지(梁誠之)가 밝힌 그러한 영토가 실제로 삼한 본국의 영토라 한 사실에서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이것을 천하라고 어찌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조선초기 1400년도경에 이러한 어마어마한 영토속에 군사 병력수가 백만명(1,000,000)이란 규모의 거대한 인구를 가졌던 나라였으니 이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우리들은 어찌 바보천치라 소릴 듣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군사 백만명을 상비군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군사를 먹이고 입히고 숙소를 장만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겠는가 상상해보라.
이런 모습이 진짜 고려이고 조선이라고 할 때 동서양사가 키타이(Khitan, kitai)라고 하는 거란(契丹)을 지나(支那) 또는 진단(震旦)이라 하였다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는 이야기다.
삼한 본국(本國)은 중국으로서의 위치에 있었고 당시 영토가 기만리 넓이나 되는 땅과 군사 1,000,000명을 상비군으로 소유하고 있는 삼한통치국(高麗朝鮮)은 명실상부 세계지배자로 군림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하니 당시 삼한 땅에서 조선패모를 채취한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Karl Ivanovich Maximovich:1827-1891)는 삼한 본국내에 있던 거란족이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동아시아대륙의 우수리 종이 아닌 진짜 조선패모는 어떤 종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것을 알아보기 전 우선 패모(貝母:Fritillariae)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本草纲目 草部第十三卷 草之二
贝母【释名】 (《尔雅》,音萌)、勤母(《别录》)、苦菜(《别录》)、苦花(《别录》)、空草(《本经》)、药实。弘景曰∶形似聚贝子,故名贝母。时珍曰∶《诗》云言采其 ,即此。一作虻,谓根状如虻也。苦菜、药实,与野苦 、黄药子同名。
본초강목에서는 패모를 근모(勤母), 고채 (苦菜), 고화(苦花), 공초(空草)라 하였다.
양(梁)나라 단릉(丹陵) 말릉(秣陵)사람 도홍경(陶弘景:456-536)은 마치 조개 알을 모아 놓은 듯한 모양이라 옛부터 패모라 하였고 명말기 호광(湖廣) 기주(蘄州)사람 이시진(李時珍:1518-1593)은 채소라 하였으며 일단 '등에(虻)'라 한 것은 뿌리모양이 '등에' 같기 때문이라 하였다.
본초강목에 다른 이름으로 고채(苦菜), 약실(药实), 여야고(与野苦), 황약자(黄药子)라 하였다는 기록과 브리태니커 사전을 보면 패모를 백합과(百合科:Liliaceae) 패모속(貝母屬:Fritillaria)에 속하는 관상용 식물을 모두 이르는 것으로서 패모속(貝母屬)은 약 80종(種)으로 이루어져 있다 했으며, 대부분 비늘줄기를 가지는 다년생초 즉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북온대지역이 원산지라고 밝히고 있으니 근사거리에 들어간다.
또 패모속 식물은 아래로 숙여 피는 종(鐘)모양의 꽃이 대개 1송이씩 피고 잎은 줄기에 어긋나거나 돌려난다 하였으며 6장의 꽃덮이[花被]마다 아래쪽에 꿀샘이 있고 많은 종에서 꽃은 바둑판무늬가 새겨진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열매는 3개의 봉선이 있는 삭과(蒴果)로 많은 씨가 들어 있는데 뱀머리라고 하는 프리틸라리아 멜레아그리스 패모(F. meleagris)는 독성의 비늘줄기를 가지고 있고 프리틸라리아 임페리알리스(F. imperialis)는 강한 향기를 내는 식물로 원예용으로 재배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약재로 사용하는데 진해, 거담 및 젖이 잘나오게 하는 최유제(催乳劑)로 사용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Fritillaria is a genus of about 100 to 130 species of bulbous plants in the family Liliaceae, native to temperate regions of the Northern Hemisphere, especially the Mediterranean, southwest Asia, and western North America.
위 영어자료를 보면 ‘프리틸라리아’는 속(屬)에서 100~130종류가 있고 구근에서 생장하는 백합과의 식물로서 온화지역의 북반구 특히 지중해, 서남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를 원산지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를 원산지로 한다는 사실은 기존 자료에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애써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지만 모두가 근거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The name is derived from the Latin term for a dice-box (fritillus), and probably refers to the checkered pattern of the flowers of many species. Plants of the genus are known in English as fritillaries. Some North American species are called mission bells.
속명 프리틸라리아(Fritillaria)는 라틴어 프리틸루스(fritillus) 주사위 박스'dice-box'란 뜻을 가지고 있어 아마도 많은 종류의 꽃에서 바둑판무늬 페턴에 관련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때문에 영어로는 속명을 프리틸라리스‘fritillaries’ 라 한다 하였고 일부 북아메리카대륙 종은 전도, 선교 종(mission bells)으로 불리어진다고 하는 것에서 조선말기에 선교사들이 출현과 벌떼처럼 몰려든 사실을 떠 올리게 한다.
선교사란 용어는 근세기 역사를 오류투성이로 만드는데 일조한 중대한 역할자로 지탄받고 있으며 서양세력들이 준동하는데 앞잡이 역할을 했다고 하는 비판을 양심이 있는 역사학자들로부터 적잖게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선교사라고 하면 일단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가 된다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역사피해는 고스란히 삼한의 역사주체들이 다 부담하였음은 물론이고 선교사 이름으로 저질렀던 부정적인 행위의 결과는 죄다 삼한 사람들이 뒤집어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空草
1.荒草。 唐 李贺 《感讽》诗之三:“ 南山 何其悲,鬼雨洒空草。”
2.贝母的别名。见 明 李明珍 《本草纲目·草二·贝母》。
3.不拌料的牲口食草。《解放日报》1944.2.14:“出发到一定的地方,首先把槽扫净,喂点空草,一则给牲口解饥,另则借以换气休息。”
산림경제 제2권
목양(牧養)
말 기르기[養馬]
양마 총론(養馬總論)
遠行。到歇處良久。與空草熟刷刷罷飮。飮竟當飼。 神隱
먼 길을 갈 때에는 잠시의 휴식을 취하게 하고 공초(空草 패모(貝母)의 별명)를 주고 빗질을 하고 물을 먹이고 나서 사료를 준다. 《신은지》
또 위 한어자료를 보면 패모의 성질을 말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가축이 먹는 풀에는 이 패모를 절대 섞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먼길을 출발하여 도착한 곳에서 우선 깨끗한 구유에 한줌의 공초를 먹이는 것은 첫째로는 가축들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함이고 환기와 휴식을 위해서라고 하고 있어 산림경제의 기록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이 패모의 약효로는 주로 기관지 폐렴에 쓰고 혈압을 낮추며 강심 이뇨작용이 있다 하였으니 첩첩상중 거친 산악지대를 돌아 먼 길을 가고 오는 짐승들에게 적잖은 피로 회복과 스트레스 해소시키는 약재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제 조선패모라 한 학명이 무엇인가 밝혀내기 위해 생물학의 시조라고 하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명명한 학명을 중심으로 아래 5가지 패모 주요 종을 발췌하였고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분포지도로 각 종의 근원지를 살펴보았다.
[1]花贝母Fritillaria imperialis L. 1793
[2]花格貝母Fritillaria meleagris L.
[3]Fritillaria orientalis Adams. 1805
[4]Fritillaria persica L.– adıyaman (Turkish) 밴쿠버
[5]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 (L.) Ker Gawl. Indian Rice
[1]花贝母(学名:Fritillaria imperialis),又名冠花贝母、皇冠贝母、帝王贝母、王贝母,百合科贝母属植物,种类繁多,分布全球各地,原产土耳其南部
Fritillaria imperialis (Crown imperial or Kaiser's crown) imperialis means "showy".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未分级) 被子植物分支 Angiosperms
(未分级) 單子葉植物分支 Monocots
目: 百合目 Liliales
科: 百合科 Liliaceae
屬: 貝母屬 Fritillaria
種: 花貝母 F. imperialis
二名法
Fritillaria imperialis L. 1793
[2]花格貝母(學名:Fritillaria meleagris)是百合科贝母属的植物,又名阿爾泰貝母、小貝母、珠雞斑貝母、蛇頭貝母。
snake's head fritillary, snake's head (the original English name), chess flower, frog-cup, guinea-hen flower, leper lily (because its shape resembled the bell once carried by lepers), Lazarus bell, checkered lily or, in northern Europe, simply fritillary.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未分级) 被子植物分支 angiosperms
(未分级) 單子葉植物分支 monocots
目: 百合目 Liliales
科: 百合科 Liliaceae
屬: 貝母屬 Fritillaria
種: 花格貝母 F. meleagris
二名法
Fritillaria meleagris L.
[3]Fritillaria orientalis is a species of monocotyledon plant of the family Liliaceae, genus Fritillaria. It was described by Johann Friedrich Adam in 1805.
아담스(Michael Friedrich Adams:1780-1838) was a botanist from St. Petersburg, Russia
[4]Fritillaria persica L.– adıyaman (Turkish) 밴쿠버
[5]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 (L.) Ker Gawl. Indian Rice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科: 百合科 Liliaceae
屬: 贝母属 Fritillaria
種: 黑贝母 F. camschatcensis
Binomial name
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L.) Ker-Gawl.
Fritillaria camschatcensis has a widespread distribution
분포지:밴쿠버와 kamloops
위 5종을 하나하나 풀어보면 첫째 [1]학명 프리틸라리아 임페리알리스(花贝母:Fritillaria imperialis L. 1793)는 관화패모(冠花贝母), 황관패모(皇冠贝母), 제왕패모(帝王贝母), 왕패모(王贝母)라 하는데 자료에는 터어키남부를 근원지로 하고 있고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및 히말리아 산기슭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영명으로는 제국왕관 또는 카이저의 왕관(Crown imperial or Kaiser's crown)으로 부르며 라틴어 임페리알리스는 사치스러운(showy)뜻으로서 여우같은 냄새가 나서 쥐, 두더지등을 퇴치시킨다는 종이다.
위 1900년 이전의 분포지를 보면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와 중동 이란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히말리아를 표시하고 있어 대체적으로 자료의 분포지와 일치한다.
일본구주(日本九州)는 영국남부 또는 유럽북부이다.
두번째[2]학명 프리틸라리아 멜레아그리스(花格貝母:Fritillaria meleagris)는 알타이패모(阿爾泰貝母), 소패모(小貝母), 주계반패모(珠雞斑貝母), 뱀머리패모(蛇頭貝母)라고 하여 영어별칭'snake's head'와 같고 또 '북유럽패모'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북유럽을 분포지도에 보면 노란점이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섬나라 '영국남부'에 표시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종과 더불어 살펴보는데 특이한 기록이 있어 아래에 붙인다.
"일본구주는 영국섬과 북유럽이다"란 놀라운 사실이다.
세종 5년 계묘(1423,영락 21) 10월15일 (임술)
일본 구주 다다량덕웅·평만경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평만경이 예조에 글을 보내어 말안장을 청구하고, 인하여 토산물로 동(銅) 3백 근, 유황 5백 근, 서각 2본, 패모(貝母) 10근, 장뇌 5근, 소목 1천 근, 진피(陳皮) 50근, 곽향(藿香) 30근, 정향피(丁香皮) 1백 근, 마황(麻黃) 20근, 파극(巴戟) 10근, 백자다완(白磁荼椀) 10개, 청자다완(靑磁荼椀) 30개, 청자반(靑磁盤) 30개를 바쳤다.
바로 일본 구주는 유럽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위 조선왕조실록 세종5년 기록에서 '일본 구주'의 다다량덕웅·평만경 등이 토산물인 패모를 바치다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일본 구주'에 토산물로 패모가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일본 구주에서 이 패모를 조선에 방물로 바쳤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종 분포지도에서 '일본 구주'가 바로 섬나라'영국남부'와 '북유럽'을 정확하게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일본 구주'는 분명코 영국과 북유럽의 패모 근원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번째[3]학명 프리틸라리아 멜레아그리스(Fritillaria orientalis Adams.)는 1805년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아담스(Michael Friedrich Adams:1780-1838)에 의해 명명된 학명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아담스의 출신지라고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에서 'St'을 빼버리면 미국버지니아(Virginia)주에 있는 피터즈버그(Petersburg)만 남는다.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1900년 이전 분포지도에 북아메리카대륙 북동부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의 보스턴(Boston)에 노란 점이 나타나지만 바로 도시의 서부에 있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의 피츠버그(Pittsburgh)시가 있다. 그곳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원래 있었던 곳으로 20세기 초 러시아로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오리엔트라고 한 북아메리카대륙 북동부를 주의 깊게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네번째[4]학명 프리틸라리아 페르시카(Fritillaria persica L)는 "페르시안패모"라 하고 'native to west Asia and southern Turkey' 터어키 남부를 근원지라 하면서 일명 아드야만(Adiyaman)이라고 하는데 아드야만은 터어키 이스탄블에서 1200km 정도 떨어져있는 도시이름이다. 물론 1900년 이전 위 분포지도를 보면 아시아 터어키에 노란 점이 표시되고 있지만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밴쿠버(Vancouver)에 정확하게 노란 표식이 되어 있다는 점은 페르시아 또는 신라, 금나라 위치를 가름할 수 있는 자료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섯째[5]학명 프리틸라리아 캄차샤첸시스(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L.) Ker-Gawl.)는 한어자료에서'흑색패모(黑贝母)'로 나타나며 '인디언 라이스(Indian Rice)'라고도 하는 종으로 위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1900년 이전 분포지도에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 해안에 노란 점이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 말고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를 정확하게 가르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조선패모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만 실제 종소명 'camschatcensis'는 캄차카 패모(Kamchatka fritillary)의 kam-shat-KEN-sis 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동아시아대륙 캄차카 반도를 의식한 학명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상한 것은 캄차카 지명을 붙이고 왜 알레스카나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명은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실제는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동아시아대륙사 세력들은 이것을 동아시아대륙 동북부에 심어놓고 싶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원종은 본래 스웨덴 생물학자 '린네'가 표본을 채취한 곳임을 알 수 있는데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임을 알게 하고 있지만 그 이후 다시 영국식물학자 '죤 벨런덴 커 골러(John Bellenden Ker Gawler:1764-1842)' 의해 새롭게 명명된 것으로서 특히 이 학자의 이름이 붙어 있는 학명 중 논란이 지금까지도 대두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백합종 하이투백합(蝦夷透百合) 또는 흥안백합(興安百合)이라고 하는 모백합(毛百合:Lilium dauricum)이라는 종과 근원지를 하얼빈(Harbin:哈爾濱)을 나타내는 빈주백합(宾州百合:Lilium pensylvanicum)이라는 두 종에는 공히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 두 종의 근원지가 잘못되었다고 하여 오류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에 시베리아종이라고 하여 심기위해 섞어치기 한 것으로 실제 아래 빈주백합의 학명에서 종소명은 누가보더라도 '펜실베니아'란 지명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동아시아대륙 하얼빈을 근원지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근원지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고쳐 부르는 것으로 지금은 모백합(毛百合:Lilium dauricum)을 동아시아대륙 북동부지역에 나는 시베리아 백합의 정식학명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하이투 즉 하이(蝦夷) 역시 지금은 일본 열도의 혼슈 북쪽과 제해 도서를 합해 칭하는 것이지만 하이(蝦夷)란 지명은 반드시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어야 하고 바로 '바하마제도'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하마의 섬모양이 새우(蝦)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기때문이다.
바하마(Bahamas)가 바로 하이도(蝦夷島)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지명을 자연이치와 다르게 함부로 붙인다는 것은 역사를 배역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사는 지명들을 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옮겨간 곳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얼토당토하지 않는 지명들을 붙여 놓았던 것이다.
때문에 이 영국식물학자 죤 벨런덴 커 골러(John Bellenden Ker Gawler)의 이름이 붙어 있는 [5]학명 프리틸라리아 캄차샤첸시스(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L.) Ker-Gawl.)는 본래의 근원지가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기에 동아시아대륙 동북부인냥 고쳤다는 것은 조선패모란 사실과 함께 결국 조작되었을 개연성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8. 결어
결국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을 가지고 삼한의 역사근원지를 풀어보려고 애를 쓴 결과 상당한 결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조선패모(朝鮮貝母)의 진짜 근원종을 찾고자 하였으나 이 조선패모의 근원종이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를 근원지로 한다는 사실에서 삼한 역사 근원지와 연계할 수있다고 믿었다.
결국 조선패모는 동아시아대륙 우수리가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과 학명적으로도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를 근원지로 하는 프리틸라리아 캄차샤첸시스(黑贝母:Fritillaria camschatcensis(L.) Ker-Gawl.)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을 한어자료에서는 흑패모(黑贝母)라 하는데 역시 북쪽이란 개념의 방위색인 흑색의 이름을 강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흑룡강이란 상징성도 동일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는 천산(天山), 백산(白山)과 시베리아 사백력(斯白力), 그리고 백두(白頭)라고 하는 머리산, 또 하나의 거대한 백산(白山)인 '히마라야'까지 삼한역사 근원과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적잖은 충격도 받았다.
후일 한번더 정리할 시간이 갖게 되겠지만 일단 여기서 결론을 내려 본다.
어쨌던 조선패모가 채취되거나 자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근원지는 동아시아대륙 북동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천산(天山)이 있어야 할 곳은 한서서역전에 "天山 漢書 西域傳 西域 南北有大山 "이라 한 것처럼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의 로키산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한문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하릴없이 마취되어버린 반도역사란 함정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동시에 생물학적 판단에서 조선패모(朝鮮貝母)의 본래 근원지까지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라고 하는 것에서 삼한의 근원지 확신도 갖게 된 것이다.
그곳에는 아라사(愕羅斯)라고 하며 대비달자(大鼻㺚子)라고 하는 러시아인들의 종락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런 부락들이 근세기에 버젓이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16세기초엽부터 동인도회사라고 하다가 근세기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등 유럽대륙의 나라로 둔갑한 사실과 다르지 않다.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Hudson 's Bay Company)는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면에 러시아아메리카회사(Russian-American Company)는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에 근거를 두고 모피장사하던 회사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북아메리카대륙 동부는 영국과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지만 북서부는 러시아가 강하다.러시아가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 영토를 지배한 근거는 바로 이 러시아-아메리카 회사(Russian-American Company)가 활동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도 하다.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에 1740년부터 모피장사협회에 의해 교역소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1799년 본격적으로 러시아-아메리카 회사(Russian-American Company)가 설립되기 이전까지는 러시아의 황제 허락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온다. 이것은 모순덩어리의 엉터리같은 사실이다.그냥 그렇게 러시아와 연계시킬 수밖에 없는 근세사가 가지는 속성에서 나온 것으로 투르크계족 타타르족(Tatarlar)과도 연결된다.지금 러시아란 명칭도 신라역사와 대칭될 수 있는 페르시아 명칭에 마구 분리시킬 수 없는 애매한 성질의 역사군을 모두 몰 때려넣은 것과 진배없음을 느낀다.그 후 러시아는 알래스카에 모피상회사가 활동한 지역이라고 하여 독점권을 획득했다는 것이며 1804년부터 이 회사의 경영자가 된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바라노프(Alexander Andreyevich Baranov:1746–1819)에 의해 1812년부터 1841년까지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포트로스(Fort Ross)를 관리했다 한 것이다.어쩌면 19세기 초엽에 코리아방문으로 떠들석한 사건들은 이것에 기인할 수도 있다.이러한 사실도 풀어 놓을 것이다.러시아아메리카회사가 장사를 위해 활동하던 것이 관리가 되어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를 통째로 지배권에 넣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과거 역사성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영토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이야기다. 물론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기존 역사주체가 사라진 마당이니 장사아치들의 서세가 좌지우지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땅을 사고 팔고 하는 상식이 기존 역사성을 탈피할 정도로 발전하였다고 보이지만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는 유럽서양세력들에겐 한지와 같은 곳이기도 하였을 것이라고 판단 할 수가 있다.러시아 말고는 서세들에게 손이 덜 미치는 곳이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때문에 먼저 차지하면 임자라는 공식에서 러시아회사가 독점권을 가졌다고 볼 수가 있다.이것은 서양세력들이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였다고 할 때부터 엉켜버린 역사의 흐름이다.과거 역사가 없는 것처럼 꾸미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라야 했을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차마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아직도 쉽게 납득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알라스카 매각사건인데 그 내용을 간단하게 들여다 보면 1867년 러시아제국이 아닌 위 모피장사협회가 낳은 러시아아메리카(Russia america)회사가 나서 거대한 알레스카 땅을 미국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슈어드(William Henry Seward:1801-1872)에게 불과 미국달러 720만달러를 받고 팔았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문제이다.알레스카를 그냥 주다 시피하고 대신 무엇을 얻었을까?삼한역사 속에 있었던 서시베리아와 지금의 러시아 땅이 아니었을까 한다.어쨌던 대한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본 블로그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을 때 삼한 테두리에 몽고 종락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도 포함되었던 세력들임을 알 수가 있지만 일찍이 러시아제국이 북아메리카대륙에 존재하였다는 이야기는 없다.때문에 러시아는 나라가 될 수가 없다.단지 몽고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그에 대한 설명에는 부족하다.러시아는 당시 Romanov” means “son of Roman" '로마의 아들'이라는 뜻의 로마조프왕조(Romanov, 1613-1917)로 불렀으니 하는 말이다.현재 러시아란 존재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혹이 많이 있지만 1918년 모스크바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명칭에서 앞에 세인트(St)을 빼버리면 미국 버지니아(Virginia)주에 있는 피터즈버그(Petersburg)가 되며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州), 피츠버그(Pittsburgh)가 생각나게 한다.그런데 1918년경 지금 러시아로 옮기면서 이 도시가 북쪽항구로 변하고 모스크바(Moscow)가 수도가 된다.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조선평안도 평민출신 홍경래(洪景來,1771-1812)가 난을 일으켜 1811년 공격하였던 정주성(定州城)이 모스크바란 사실도 참고되어야 할 이야기다. 여기서 더하여 마치 고려가 신라를 합병한 것처럼 비잔티움제국인 동로마를 점령하고 합병시킨 오스만제국은 1922년에 해체되었고 동시에 로마조프왕조도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를 깃점으로 붉은군대라고 하는 소련이 등장하면서 역사는 꺼꾸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물론 러시아는 소련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며 아시아대륙에 안착한다.북아메리카대륙 역사는 근세사에서 많은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최종적인 결론이 앞으로 어떻게 내려지든지 간에 틀림 없는 사실은 세계삼한역사의 시원이 그곳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세계삼한역사를 연구하면 할 수록 의문은 더욱 많아지고 생각할 것도 많다.때문에 나는 이것을 파헤쳐야 하는 무진장한 보고라고 하고 싶고 그기에 메달리지 않을 수 없다.아마도 이 보고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는 것은 어쩜 나의 거스럴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운명이 아닌가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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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域(북아메리카대륙 서부)
新疆地名漢譯集錦
烏魯木齊︰源于準噶爾蒙古語“紅廟子”之意。維語現意為“優美的牧場”。
烏拉泊︰蒙古語“紅色靶場”的意思。
克孜勒塔格︰維語“克孜勒”即紅色,“塔格”意為“山”,“克孜勒塔格”就是“紅山”。
克拉瑪依︰維語“克拉”即“黑”的意思,“瑪依”即“油”的意思,克拉瑪依即“黑油”的意思。
哈密︰古稱昆莫、昆吾、伊吾、伊吾盧、哈密力、哈梅里、哈密里 。由“昆莫”轉音而來,意為“太陽升起的地方”;一說由突厥語“庫木爾”轉來,意為“沙子多的地方”。另一說,哈密由“哈勒密”轉來,“哈勒”有“盼望”、“望墩”之意。
巴里坤︰一說由蒙古語“巴爾庫勒”轉音,意為老虎腿 ;一說由突厥語“巴爾庫爾”轉來,“巴爾”意為“有”,“庫爾”意為“湖”。“巴爾庫爾”就是“有湖”的意思。
伊吾: 一說蒙古語“旋風”的意思,一說蒙古語“山疙瘩”的意思 。
吐魯番︰一說突厥語“富庶豐饒”的意思;一說是維語“吐爾番”轉來,“都會”之意;另一說由維語“吐藩” 轉音, 意為“水果多的地方”。還有一說,是回紇語“最低的地方”。
善鄯︰維語讀作 “皮前”、“闢展”,突厥語草堆、草垛的意思 ;一說,“善鄯”為“潰逃”之意,漢滅樓蘭國,改稱善鄯。一說唐設“蒲昌縣”,維族人稱之為“闢展”、“皮禪”,意為芨芨草、蒲葦 。
托克遜︰一說該地名與維語的“九”、“九十”有關,相傳從吐魯番遷九十戶居民于此,逐演變而來;一說唐代在此設“天山縣”,維族人將“天山”讀成“托克遜”。
阿爾泰︰也譯作“阿勒泰”,突厥語“金子”的意思。 奎 屯︰蒙古語“冷”的意思。
喀什︰全稱“喀什噶爾”,“喀什”維語“各色”的意思,“噶爾”,“磚”的意思,全稱意為“各色磚瓦房”;一說 “玉市”的意思。
阿克蘇︰“阿克”維語“白色”之意,“蘇”維語“水”之意,“阿克蘇”即“白色的水”的意思。
庫車︰波斯語“庫”是“此地”的意思,“車”是坎兒井的意思。“庫車”即此地有坎兒井的意思(因為縣城附近有坎兒井的遺跡)。
拜城︰維語叫做“拜依”,意為“富有、富裕”。
察爾其︰蒙古語“牧羊者”之意。
康其︰維語“礦工”、“采礦人”的意思。
溫巴什︰維語“十個頭”,引意為“十戶”、“十戶長”。
烏什︰維語“峰巒飛峻”之意。一說由“烏什.土魯番”簡化而來,意為“三個土魯番人”。
沙雅︰維語“沙”,部長(伯克)之意,“雅爾”,體恤之意,即伯克體恤的意思。
阿瓦提︰維語“繁榮、發展”的意思。
腦阿巴提︰塔吉克語“新繁榮”的意思。
亞吐爾︰維語 “岸上的烽火台”之意。
巴什蘭干:維語“驛站的上面”。
克孜爾尕哈︰維語意為“女兒留下”;一說是“紅嘴老鴰”的意思;也譯為“紅色哨卡”。
喀拉蘇河:維語“黑水河”的意思。
克孜勒蘇︰維語“紅色的水”。
阿 圖 什︰柯爾克孜語“嶺”的意思。 英 吉 沙︰維語“新城”的意思。
塔什庫爾干︰塔吉克語“塔什”,即“石頭”,“庫爾干”即“城堡”的意思,合之,就是“石頭城堡”的意思。
博爾塔拉︰蒙古語“銀灰色的草原”的意思。
察布查爾︰錫伯語“糧倉”的意思。
巴音廓楞︰蒙古語“廓愣”,河流的意思,“巴音”,富饒的意思,“巴音廓愣”即“富饒的河流”、“富饒的流域”的意思。
庫爾勒︰維語“眺望”、“張望”的意思。
孔雀河︰維語叫做“昆其得里亞”,“昆其”維語“皮匠”的意思,“得里亞”維語“河”的意思。合之意為“皮匠河”。將“昆其”諧音譯成漢語“孔雀”,將“得里亞”直譯為“河”,于是便成了“孔雀河”。
羅布泊︰蒙古語“匯入多水之湖”的意思。
伊犁︰維語“伊犁”含有“寬闊、舒適”之意;準噶爾蒙語“伊犁”即“伊勒”,是光明顯達的意思。
伊寧︰維語叫做“固爾扎”,是準噶爾蒙古語“盤羊”、“大頭羊”的意思。
那拉提︰蒙古語“有太陽”、“陽光照臨”的意思。
烏拉斯台︰蒙古語“有山楊樹的地方”。
闊什塔格:維語“雙山”的意思。
準噶爾︰蒙古語“左翼”、“左手”的意思。
巴音布魯克︰蒙古語“泉源豐富”之意;哈薩克語“富饒的泉”
塔克拉瑪干︰一說維語“永遠的家園”之意;一說蒙古語“進去出不來”的意思;還有說是維語“過去的家園”、“往日的家園”、“被遺棄的土地”之意;另一說是維語“地下有珍寶”的意思。
塔里木︰維語“無韁野馬”的意思;一說是“土地”的意思;還有一說是“河流匯集”或“支流、分支”的意思。
恰里蓋勒克︰維語“鳥兒的巢穴”。
喀迪爾庫都克:維語“立著一根木樁的井”的意思。
牙通古孜︰維語意為“野豬出沒的地方”。
慕士塔格︰柯爾克孜語“冰山”的意思。
博格達;蒙古語︰“神山”、“聖山”、“靈山”的意思。
克孜利亞︰維語〞紅色懸崖〞。
汗泥拉克︰維語“帝王草場”的意思。
吐洪托乎拉克︰維語“高土包子”。
達阪︰維語“風口”、“山口”的意思。
艾丁湖︰維語“月亮之湖”的意思(“艾依”,維語“月亮”)。
庫木庫都克︰維語“沙井”的意思。(維語“庫木”即沙子“庫都克”即井的意思)。
喀喇昆侖︰突厥語“黑色岩石”的意思。
庫魯克塔格︰維語、蒙古語“干旱之山”的意思。
庫木吐爾︰也寫作“庫木吐拉”,維語“沙漠中的烽火台”的意思。
科克塔拉︰蒙古語“青色的草原”之意。 察布查爾︰錫伯語“糧倉”的意思。
阿斯塔那︰維語“京都”之意。
喀拉庫爾︰維語“黑色的湖”。
覺洛塔格︰維語“草木不長的荒山”之意。
博斯騰湖︰維語“綠洲之湖”。
雅丹︰維語“險峻的土丘”。
庫米什︰維語“銀子”的意思。
賽里木︰哈薩克語“祝福”、“祝願”的意思;一說是蒙古語“山脊上的湖泊”的意思。
喀納斯湖︰維語“美麗富饒而神秘”的意思。
馬納斯廓勒︰蒙古語“馬納”即巡邏的意思,“斯”即人,“廓勒”即河流。合之,即“河濱有巡邏的人”。 克孜庫爾干︰維語“姑娘城”的意思。
阿力麻里︰維語“隻果”。
奧依塔克︰古突厥語“群山中的一片窪地”的意思。
于田︰藏語“產玉的地方”。
蘇滿塔什︰維語“有文字的石頭”之意。
紅其拉甫︰波斯語“要命的山溝”的意思;一說是維語“血溝”的意思。
呼圖壁︰蒙古語“有鬼”的意思。
洛浦︰維語“隨游牧而聚集的地方”。
扎格斯台︰蒙古語“有魚的地方”。
阿勒通勒克︰哈薩克語“有金子的地方”。
拜什托格拉克︰維語“五棵胡楊樹”。
喀拉巴格︰維語“黑色林園”,即“蔥郁林園”的意思。
帕米爾︰波斯語“平頂屋”的意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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