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계수나무(Cercidiphyllum)와 카누(canoe)의 노(櫓)

한부울 2012. 12. 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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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Cercidiphyllum)와 카누(canoe)의 노(櫓) 그리고 한국애찬(韓國愛讚:Love coria)

 

글쓴이:한부울

 

자작나무로 카누의 배를 만들고

계수나무로 카누의 노(棹)를 만들었다.

 

[반달 : 윤극영(尹克榮:1903-1988)작시-1924년 작]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계수나무를 보자면 먼저 "반달" 동요가 떠 오르는데 네이버사전에 보면 이 반달을 작시한 윤극영은 서울출신으로서 1917년 경성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1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음악학교(東京音樂學校), 동양음악학교(東洋音樂學校) 등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전공하였고 1923년 색동회 창립동인이었으며 조선가사를 붙인 찬송가곡이나 일본 노래뿐인 시대에 동요 창작을 시도하였고 이어 1924년에 서울에서 동요단체 ‘다리아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문화운동과 동요 창작과 작곡 운동을 전개하였을 시기에 이 반달을 작시한 모양이다. 하얼빈에서 예술을 하다가 1946년 만주 용정(龍井)에서 경비대에 붙잡혀 3년형 선고를 받아 복역 중 보석되어 1947년 천진(天津)에서 손수레를 끌다가 남한으로 탈출하였다는데 특이한 것은 1950년대 초 북경(北京)에서 조선족 김정평과 그의 아버지 김철남이 윤극영의<반달>을 중국어로 번역 편곡, 레코드로 취입하여 30년간 애송(愛頌)되다가 1979년에 <하얀쪽배:小白船>라는 제목으로 중국전국 통용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것으로 정리 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무엇 때문에 조선인(coria)이 만든 <반달>이란 동요에 중국인(chinese)들이 그처럼 애송을 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중국음악교과서에 수록까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중국이라 함은 신중국을 말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것은 한국애찬(韓國愛讚:Love coria)이라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그에 따른 역사문제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고 당시만 하더라도 신중국(新中國:new chinese)내에서도 좀처럼 희석되지 않는 상태로 정체성이 아직 남아 있는 많은 한국인이라고 하는 조선인(coria)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 판단이다.

 

한국애찬(韓國愛讚:Love coria)이란 명제에서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인물은 아리안(Aryan)족을 통한 바로 타고르(Tagore, 1861-1941)시인인데 그가 한국(coria)을 특별하게 애찬(愛讚)하였다는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비록 인도인(印度, India)이라고 하였지만 한국(coria)을 역사적으로 매우 잘 알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의 시 <동방의 등불>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두 구절에서 하나는"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이라고 하였고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란 구절인데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이라고 한 것은 코리아가 지식의 정체성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내포 한 듯하고 또 한 구절에서는 거의 울부짖음으로 와 닿는 그리고 그가 마치 한국인이었던 것처럼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표현한 사실에서 느낄 수있는 것은 그 역시 역사에 심취한 사람으로서 코리아를 통해 분명 동질성을 찾았다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찍이 아리안(Aryan)족이 숭배하는 신 베다(Veda)의 성전을 접하고 우울과 고민에 빠졌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같은 아리안(Aryan)으로서 아픔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같은 것은 <반달>을 통해 열광한 신중국 대중의 정서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In·dian

명사

1. 인도인

2. (구식 모욕적) Native American

3. (캐나다 영어) (이뉴잇(Inuit)이나 메티스(Metis: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아)가 아닌) 캐나다 원주민

[NOUN]An Indian is an Indian citizen, or a person of Indian origin.

[etc.] → see also Anglo-Indian

 

위는 타고르가 인도인이라고 하는 점에서 인도(印度)를 뜻하는 인디언(indian)이란 영어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인디언(Indian)은 앵글로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영어식으로 부른 것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현지에서 블랭킷 인디언(blanket Indian)이라고 하여 무조건 “미개화(未開化)된 아메리칸 인디언”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음도 알 수가 있는데 영어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印度)나 인디언(indian)이 같은 의미의 것이라고 한다면 인도란 명칭이 아시아에 국한되었다고 보고 인디언은 북미대륙이라하여 유구한 역사가 있는 인도란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혐하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인의 눈에는 역사명칭 인도를 인디언으로 통칭되며 이처럼 미개화된 민족이고 역사라는 개념을 각인시켜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그것은 그들의 일방적인 백인우월주의 또는 서양제일주의에 따른 교육에 의한 왜곡이라고 할지언정 필요이상으로 인디언(indian)이란 명칭을 폄하하고 있는 일체행위에서 역사문제가 객관적인 시각에서 뒤틀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어사전에 인디언(In·dian)이라고 하면 “Native American” 즉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을 구식모욕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왜 인디언(In·dian)이란 명칭이 그들에게 모욕적인 것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러함에도 앵글로 인디언(Anglo-Indian)이란 표현 또한 사용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 있다.

앵글로가 앞에 나와 있기 때문에 앵글로가 우선이지만 이 말뜻도 인도(india)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영국(Anglo)사람을 지칭하거나 영국인과 인도인의 혼혈아를 부를 때 사용하고 언어적으로 따질 때 인도영어를 그렇게 부른다고 하고 있다.

또 하나 혼혈 문제에서도 근세기 역사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는데 캐나다 원주민이라고 하는 혼혈인 이뉴잇(Inuit)이나 메티스(Metis)가 존재하였다는 사실 말고는 밝혀진 것이 없다.

여기에서 달걀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판단하는 것처럼 혼혈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동경한 아리안(Aryan)족을 연결하는 인도(印度)는 현재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과 북미대륙을 포함하고 원주민이란 개념의 명칭 “Indian”과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통칭 영국이라고 인식되는 앵글로(Anglo)와도 관계가 있으며 앵글로 역시 삼한역사와 연결됨으로서 결국 최종 고리는 코리아(coria)와 모두 연결된다.

때문에 민족, 종교, 인종, 국가의 엄청난 이질성이 있었음에도 한국애찬이 공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 근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을 애찬(愛讚)한 게오르규의 글에서도 알 수 있다.

1974년 우리나라를 다녀간 루마니아 망명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는 한국의 산하와 문화를 읊은 한국찬가(韓國讚歌)에서 그가 마치 한국(coria)은 루마니아 모체인 것처럼 질곡을 이겨내는 한국 역사 속에서 조국 루마니아를 느낀다고 말한 사실이 너무나도 이채롭다는 사실이다.

루마니아가 1945년 소련에 의해 공산정부가 세워지면서 비록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었지만 그가 분명 그 이전 역사를 알았다고 볼 때 루마니아는 삼한역사를 이어오던 오스만제국과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비로소 대조선이 해체되던 1881년 이후 신생세력들에 의해 루마니아왕국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이 있어 때문에 삼한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루마니아의 정체성이 어디에서부터 나온 것인지를 애써 파악 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그의 글 여기저기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인도인 타고르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게오르규의 한국찬가(韓國讚歌)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한 낱 일제에 의해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민족이라고 그저 동정적으로 한 치레였다고 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글에서 들어나고 있는 솔직한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이 공히 한국에 대한 역사적 존재성에서 매우 열정적인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찬가(韓國讚歌)에 몰입한 또 한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대상인 도쿄(東京)출신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유종열(柳宗悅, 1889-1961)인데 그의 이름도 조선인 이름과 비슷하지만 1920년대 우리 예술품과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그것이 인류최상(人類最上)의 예술품의 하나라면서 성찬(聖餐)해 마지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비록 일본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느낀 것은 한국 예술품과 도자기에서 풍겨나오는 문화의 우월성을 말한 것이고 현재 유럽 고 미술품들을 우리가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것처럼 그 역시 한국 예술품 또는 도자기에 그처럼 깊게 매료가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예술품과 도자기가 현재 한반도에 있는 예술품과 도자기를 말하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가 본 예술품이나 도자기는 우리가 여태 볼 수 없었던 것이며 아마도 그들 나라, 나라(奈良)현 동대사(東大寺)에 있는 왕실의 유물 창고 정창원(正倉院)에 꼭꼭 숨겨두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위에 열거한 타고르, 게오르규, 일본인 유종열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1920년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반달>이란 동요가 작시되던 시점 1920년대는 시대적, 역사적 대 변환기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에 중요한 국제사건으로서 볼 때 단연코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1299-1923)의 해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1차세계대전(1次世界大戰)에 의해서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보면 1차세계대전(1次世界大戰)은 신구세력간에 충돌이라고 본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사건이 시발로 약 900만명이 살상이 된 1차세계대전(1次世界大戰)에서 도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패전국이면서도 그래도 건재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 따져 볼 때 오스만제국은 개전 후 나중에 할 수 없이 끌려들어간 전쟁에서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고 국가자체를 잃고 말았다는 사실은 충돌구도에서 많은 것을 의심케 하는 것들이다.

이 전쟁 결과 독일은 빌헬름 2세가 퇴위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는 사실과 주변국들을 독립시키거나 병합을 차단하였다는 사실이 있을 뿐 특별할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고 오스트리아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만 해체라는 수순을 밟았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며 그 외 동조하였던 헝가리, 불가리아 역시 제재(制裁)당한 것이라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미미한 수준의 영토 반환 한 것 말고는 가중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만제국만은 위의 나라와는 백팔십도로 다른 제재(制裁)를 당했는데 1920년에 1차세계대전(1次世界大戰)의 주요패전국으로서 지목당해 세브르 조약(Treaty of Sevres)의 볼모가 되었고 그결과 광범위한 영토를 상실하였으며 동시에 오스만제국의 해체란 강력한 제재(制裁)가 가해졌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볼 때 오스만제국은 매우 불공평한 처분을 당하였다고 볼 수 있는 시대상황이다.

 

이 <반달> 동요가 1924년에 작시되었다는 것에서도 위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한국을 애찬한 사람들이 활동한 시대상황과 연결 해 볼 때 과거 삼한의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라는 것을 감지 할 수 있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에서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이것은 발칸화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발칸화가 되기 전 코리아를 생각했다는 것일게다.

특히 게오르규의 한국찬가(韓國讚歌)에도 이와같은 의미가 있는데 한국을 반도에 있는 아시아의 귀고리라고 하면서 한국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깎여지고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것이라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누구로부터 깎여지고 만들어지며 가꾸어진 것이란 말인가?

이 표현도 발칸화와 비스한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나는 한국 민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였던가? 라고 반문하면서 그것은 학교 교과서에 그 이름과 그 역사가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당시 지도에도 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반도였다고 했다.

한국 즉 코리아가 그에 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분명히 그가 아는 역사상식에서 존재한 한국은 그처럼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고 결국 한국인을 살아있는 민족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것이라고 단언한다.

때문에 한국을 산 채 매장된 민족이라고 하면서 당시 안타까운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미국 월슨 대통령(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재임1913-1921)과 1919년 파리의 평화회의(Paris Peace Conference)의 의원들은 그들에게 이미 특별할 수 없는 한국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 것 같았으나 그 후 그들은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그런 냉혹한 조치가 내려져야 했을까?

이것은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세력에게 공히 코리아란 존재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삼한역사의 한국(coria)은 분명 존재했고, 인도(印度)라는 역사에서 인디언(indian)이란 명칭도 있었으며, 그리고 앵글로 인디언(Anglo-Indian)이란 개념도 분명히 존재하였지만  당시 한반도에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제질서를 담당하고 있던 세력에게는 한반도에만 한국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오르규는 그 이유로 그들은 침략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시 침략자란 실체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당시 세계질서를 지배한 세력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일본을 그토록 무서워했단 말은 언어도단이다.

일본은 그들이 만든 나라이고 그들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허수아비개념의 신생국일 뿐이었다.

실제 한국(coria)을 눈엣 가시처럼 본 것은 일본이란 나라를 쉽게 다스릴 수 있었던 서세라고도 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같은 신생세력들인 것이다.

 

이정도로 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수나무(Cercidiphyllum)는 핵심쌍떡잎식물군(核心真雙子葉植物:core eudicots)에 범의귀목(虎耳草目:Saxifragales), 계수나무과(連香樹科:Cercidiphyllaceae)의 계수나무속(連香樹屬:Cercidiphyllum)이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Cercidiphyllum)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과(連香樹科:Cercidiphyllaceae)의 계수나무(連香樹:Cercidiphyllum)가 있고  한약재 계피를 생산하는 녹나무과(樟科:Lauraceae), 녹나무속(樟屬:Cinnamomum)의 계수나무(肉桂:Cinnamomum cassia)가 있으며 또 하나는 녹나무과(樟科:Lauraceae), 월계속(月桂屬:Laurus)의 월계수(月桂樹:Laurus nobilis)가 있다.

이 3종 모두 계수나무라고 하지만 <반달> 동요에 등장하는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과(連香樹科:Cercidiphyllaceae)의 계수나무(連香樹:Cercidiphyllum)뿐이다.

 

이 계수나무에 얽힌 전설에서 상아(嫦娥, 姮娥, 嫦羲)설화가 있는데 서왕모(西王母)로부터 불사약을 구해온 예(羿)에게서, 항아가 그 불사약을 훔쳐 달(月)로 달아나 두꺼비, 섬여(蟾蜍)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왕모(西王母)가 신선화(神仙化)되면서 차츰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살고 있다는 지금의 전설로 바뀌었다 한다.

구전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아련히 그리면서 이상향(理想鄕)을 상상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이 계수나무는 한반도에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에 수입하여 심기기 시작한 일본의 나무로 보는데 이것을 그들 말로 가쯔라(Katsuratree)라 하였고 이 가쯔라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을 학명 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1846) 또는 Cercidiphyllum magnificum Nakai 로 명명한 것이다.

특히 이 학명에 등장하는 명명자가 특히 일본을 부각시키며 삼한역사를 말살에 기여한 지볼트(Siebold)와 주카리니(Zucc) 이름이 붙어있고 또한 일제총독부 어용식물학자 나카이(Nakai)이름도 붙어 있다.

즉 한반도에 가쯔라라 하는 계수나무는 삼한역사기록에 등장하는 계수나무의 원종(原種)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수나무(連香樹)

科學分類

界: 植物界

門: 被子植物门

綱: 双子叶植物纲

目: 虎耳草目

科: 連香樹科:Cercidiphyllaceae

屬 : 連香樹屬:Cercidiphyllum

Cercidiphyllaceae Siebold & Zucc., 1846年

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 (1846)

Cercidiphyllum magnificum Nakai

 

사가시집 제51권

시류(詩類)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

玉堂學士東坡仙 한림학사 동파 신선은

風流人物天下先 풍류와 인물이 천하에 으뜸이었는데

赤壁形勝擅黃州 적벽의 뛰어난 경치 또한 황주의 으뜸이라

天敎一謫逍遙遊 하늘이 한번 그를 유배시켜 노닐게 하였네

蘭槳桂棹截江流 목란 상앗대 계수의 노로 강물 가로지를 제

(생략)

蘭槳桂棹截江流 목란 상앗대 계수의 노로 강물 가로지를 제...는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余懷 望美人兮天一方

“이에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고조에 달하여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계수나무 노(桂棹)와 목란 상앗대(蘭槳)로, 맑은 물결을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나의 회포여, 하늘 저 끝에 있는 미인을 그리도다.’ 하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平安道]

요동진(遼東鎭)은 의주(義州)

[산천]○ 장성(張珹)의 시에, “압록강 멀리 만경(萬頃) 물결은 오늘 아침 또다시 사신[使星]을 싣고 지나네. 물새들 있는 곳에 바람 물결 고요하고, 물가 풀꽃 있는 곳에 비와 이슬이 많구나. 계수나무 노가 물길 타니 깃과 같이 가볍고, 운산(雲山)이 보이는데 소라같이 푸르구나. 봉지(鳳池)와 용소(龍沼)를 떠난 지 오래인데, 머리 돌리니 그 감개를 어찌하랴.” 하였다.

경기(京畿) 여주목(驪州牧), 충청도(忠淸道) 공주목(公州牧)등에서 산천을 읊은 시구에 계수나무 노가 물길을 타니 등으로 불린다.

 

위 사가시집(四家詩集)은 1776년에 책으로 엮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4인의 시선집이다.

여기에 기록하기를 소동파의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에 "蘭槳桂棹截江流 목란 상앗대 계수의 노로 강물 가로지를 제"라는 글이 있고
그 아래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平安道]의주(義州) 산천편에 장성(張珹)이 읊은 시에도 "계수나무 노가 물길 타니 깃과 같이 가볍고, 운산(雲山)이 보이는데..."란 글이 있다.
소선이 본 적벽의 그림(蘇仙赤壁圖)과 평안도 의주(義州)의 산천에서 계수나무가 있었고 여기서 자라는 계수나무로 노(櫓)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Cercidiphyllum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이 노(桂櫓)를 만들었다고 하는 계수나무는 어디를 원산지로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인데 이 계수나무의 원산지가 정확하게 밝혀지면 그곳이 소선이 본 적벽(赤壁)이 있었던 곳이고 평안도 의주(義州)가 있었던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는 미국자료 Discover Life 의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학명 계수나무속(連香樹屬:Cercidiphyllum)분포지도를 보면 록키산맥을 중심으로 대단위 분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반면 19세기 식물학자 지볼트와 주카리니 또는 나카이가 명명한 학명 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1846)이 근거로 하고 있는 도 일본(japon)은 분포지가 대단위로 형성된 것이 분명아님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단지 아시아지역에는 사천성(Sichuan)과 일본열도, 그리고 북유럽에 각각 몇점씩 표시되어 있을 뿐임에도 그들은 현재 열도 일본이 원산지인것처럼 학명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근세기 분류학체계가 정상적이지 못하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반면 북아메리카대륙에서는 대단위 분포지로 전역에 나타나는데 동부에 PA, District of Columbia, NY, Pennsylvania Philadelphia, Massachusetts Berkshire, MA, Connecticut Tolland County 등이며 서부에는 거의 록키산맥을 상류로 하는 강(江)을 중심으로 대단위 분포지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불가리아가 연상되는 몬태나주(Montana) Madison County, 와이오밍주(Wyoming), 남북 다코타주(Dakota), Washington King, PENNSYLVANIA CHESTER, Missouri Saint Louis City, OH 등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곧 미주리강(Missouri river)을 중심으로 계수나무가 자랐다는 것이며 이곳에 계수나무로 노(櫓)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단 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이 미주리강(Missouri river)은 인디어말로 “大獨木舟之河” 즉 큰 카누(canoe)의 강이라고 하였고 이 카누(canoe)를 우리말로는 마상이라고 하며 한어로는 마상성(馬尙船), 마상진(馬尙津), 독목주(獨木舟)라고 하였다.

본 블로그의 고객 비룡님은 이 계수나무는 카약 즉 카누의 노를 만드는 나무재료라는 것이고 외국자료에 카약은 인디언 에스키모인들이 북미대륙에서 사용하는배라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마상이라고 하는 카누의 노(櫓)는 북아메리카대륙 특히 미주리강을 원산지로 하는 계수나무로 만든 것이니 조선기록에 나오는 마상이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며 적벽(赤壁)이 여태 양자강에 있는 줄 알았지만 고서 소동파의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에 나오는 계수나무의 노(櫓)가 미주리강에 근거를 둔다고 할 때 적벽을 양자강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이것과 더불어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平安道]의주(義州)에 나오는 계수나무 노(櫓) 역시 근원이 미주리강 지역에서 나는 계수나무라고 한다면 평안도 의주 또한 이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이 정도까지 갔다면 무엇인가 잡힐 듯하지 않는가?

단정을 내리기엔 아직 무리가 없지 않다.

앞에서 게오르규, 타고르, 일본인 유종열이 왜 한국애찬에 열을 올렸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만큼은 풀어 질 수 있는 계기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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