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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디(Zoysia tenuifolia, 朝鮮草, 高麗芝, 天鵝絨草)는 북미가 원산이다.
글쓴이:한부울
옛날 조선인들은 금잔디에 대해서 향수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금잔디가 조선인(朝鮮人)들에게 그만큼 친숙한 것으로 다가 간 것이 김소월의 시를 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금잔디와 본래 금잔디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실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제일 아래 첨부한 자료는 대만에 있는 진리대학교(眞理大學校)식물원연구자료에서 발표한 잔디 표본도인데 그기에서 조선초(朝鮮草), 고려지(高麗芝)라고 하였지만 실제와 다르며 일본잔디(Zoysia japonica)가 조선초와 뒤섞여 있음도 알 수 있다.
조선금잔디(korean lawn grass)를 학명 Zoysia matrella 라고 하였지만 실제는 학명 Zoysia tenuifolia(mascarene gress)가 맞는 것을 알게 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마구 뒤 틀여 있는 것이다.
또 우스운 것은 우리나라 한반도 계룡산 국립공원에서도 금잔디의 실체를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래 사진으로 알 수 있다.
위 사진을 보면 금잔디라고 하였는데 실제 잔디가 금잔디가 아닌 것이다.
한반도에 있는 금잔디는 모두 이모양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일제가 조선인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무시한 것이라고 밖에 이해 할 수 없어진다.
조선의 식물학자들을 허수아비로 여겼던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 잘 자란다는 누런 잔디를 야생잔디일 뿐인데 금잔디로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바로 위 사진들은 우리가 금잔디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원래 금잔디는 천아융초(天鹅绒草)이름 처럼 즉 비로드 융단처럼 부드럽다는 사실이며 아열대지방에서 잘 자란다는 것과 내한성에서 약하는 사실이 들어난 것이다.
우리가 금잔디에 대해서 평소 알고 있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다.
우단, 비로드, 벨벳(velvet)과 고니의 솜털과 같이 부드러운 융 같다 하여 한어로 천아융(天鵝絨)이라 하였다.
한어 명칭에서 그나마 실체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한국벨벳잔디(Korean velvet grass)하여 조선초(朝鮮草), 또는 고려지(高麗芝)라 하였던 것이다.
위 언급한 것처럼 이 잔디가 학명 Zoysia tenuifolia 이다.
Asiatic creeping perennial grass; introduced in southern United States as a drought-resistant lawn grass
위 학명의 근원지 설명인데 이 잔디가 아시아에 들온 다년생 잔디라 하지만 이것은 미국 남부지방(southern United States)에서 도입된 가뭄을 방지하는 잔디란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이 잔디가 바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금잔디라는 이야기고 김소월이 1925년에 발표한 개벽지(開闢誌1920.6)에 실린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민요조의 자유시라고 하는 금잔디란 이야기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임 무덤 가에 금잔디
켈리포니아 샌디에고(Zoysia grass in San Diego California)
샌디에고(San Diego)
멕시코 국경 북쪽 20km 지점에 위치한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선선한 지중해성 기후이며 연평균기온 13∼20℃의 쾌적한 기후 때문에 미국 굴지의 관광지, 임해(臨海)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1542년 포르투갈인 J.카브리요가 처음으로 발견했으며, 1769년 에스파냐의 포교소(布敎所)가 설립되었고, 주(州)에서 가장 오래된 백인 마을이 생겨났다. 1834년 멕시코의 지배하에 시가가 건설되었으며 1848년의 미국-멕시코 전쟁의 결과로 미국령이 되었다. 천연의 양항을 가진 오랜 해항도시이며, 참치 어업의 근거지이다. 또 배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석유의 적출항으로서도 유명하며, 수산물·과일·채소·육류 등의 가공업도 매우 발달하였다. 최근에는 항공기산업과 전자산업 등의 공업진출도 눈부시다. 또 육군과 해군의 거대한 기지가 있으며, 시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Zoysia tenuifolia Willd. ex Thiele 1836 MASCARENE GRASS
분포지
Louisiana Natchitoches Parish (루이지애나 내커터시 패리시)
LA(루이지애나)
Louisiana St. Charles(루이지애나 세인트 찰스)
FL(플로리다)
Florida Brevard (플로리다 브레바드)
Florida Palm Beach(플로리다 팜 비치)
Florida Monroe(플로리다 먼로)
Bahamas, Acklins and Crooked, Land Rail
Bahamas Mayaguana
PR
Suriname Paramaribo
Brazil Pará
위는 미국자료 Discover Life 의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학명 Zoysia tenuifolia 분포지도이다.
이 학명이 바로 조선초(朝鮮草), 또는 고려지(高麗芝)라고 하는 금잔디이고 이것을 위키 한어자료에서 확인해 주고 있다.
설명에 조선벨벳잔디(Korean velvet grass)또는 마스카렌 잔디(Mascarene grass)를 금잔디(Zoysia tenuifolia)라 하며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산(産)의 잔디밭에 알맞은 잔디라고 나온다.
가만히 보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금잔디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왜 우리는 바르게 아는 것이 없는가?
우리가 들어 귀에 익은 노래 메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이란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미국의 조지 죤슨(George Johnson)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이것을 우리나라 성악가 윤치호가 다시 개사하여 불렀던 것이 메기의 추억이다.
왜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로 개사를 했을까?
미국 메기의 추억이란 원곡 가사에는 금잔디란 단어가 전혀 없음에도 무엇때문에 "금잔디 동산"을 붙여 개사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서 서정적인 느낌은 미국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소월이가 읊은 금잔디와 윤치호가 개사한 금잔디는 같은 것이라고 해야 맞다.
혹 김소월이가 본 금잔디는 미국남부 샌디에고에 있는 가뭄을 방지 하는 금잔디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인이 미국 남부에 살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것인가?
왠지 모르게 조선 말기에 조선민중들이 미국대륙남부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자꾸드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반도에서는 자랄 수 없는 미국남부산인 금잔디가 본래 금잔디라니...
그것도 아열대기후와 내한성이 약한 잔디라니...
우리는 분명 금잔디를 내한성이 강한 잔디라고 배웠다.
우리나라 민족의 정서가 가득한 금잔디가 왜 미국 남부의 금잔디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조선인들이 미국남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물어본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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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
1922년 《개벽(開闢)》지에 발표.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2연으로 된 민요조의 자유시이다.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임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산천에도 금잔디
봄을 맞는 감격을 표현한 서정시로서 읽는 이의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져 주는 애틋한 시이다. ‘잔디/잔디/금잔디’를 한 줄로 쓰지 않고 석 줄로 쓴 것은 리듬의 효과와 잔디밭을 연상시키기 위한 배려로서, 이것은 소월이 형식미를 추구하는 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해준다.[네이버 백과사전]
메기의 추억
바리톤 윤치호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내 희미한 옛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워 만발 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지금은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 머리 백발이 다 되었다.
옛날에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메기 클락(Maggie Clark)은 1841년 7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지 죤슨(George Johnson) 이라는 청년으로부터 구애를 받는데 죤슨은 시인이었으며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고 있었다. 곧 그들은 약혼을 하였으나 메기는 폐결핵에 걸리게되고 조지 죤슨(George Johnson) 이 시를 쓰게된 시기가 바로 그녀가 병마에 시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1864년 10월에 마침내 그들은 결혼을 하지만 이듬해 그녀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다.
조지 죤슨(George Johnson)은 미국 디트로이드에 사는 친구 제임스 버터필드(James Butterfield)에게 이 아름답고도 슬픈 詩에 알맞는 멜로디를 붙여 줄 것을 부탁하여 이 노래가 완성된 것인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메기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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