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흰자작나무(白樺:Betula populifolia)는 박달나무(Korean birch)

한부울 2014. 4. 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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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자작나무(白樺:Betula populifolia)

소제:박달나무(Korean birch)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에 있다

 

글쓴이:한부울

 

머리말(core)
자작나무란
자작나무와 정령숭배
박달나무 어원
자작나무의 혼란
자작나무의 고유종(固有種)
마무리

 

core 란 단어?

 

"코레(core)",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코리아(corea, coree)"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이 단어 명칭에 상당한 경계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영어사전을 보면 1275–1325년 사이에; Middle English; 중세 영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이 설명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도 "core" 란 단어에 풀이에 확실성을 담보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옛 프랑스어의 몸(body)의 뜻 코어“cors” 또는 라틴어 몸(body)의 뜻 코르푸스“corpus”가 어원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란 삼한철학사상의 인내천(人乃天思想)을 말하고 있다.

라틴어 코르(cor), 코르디스(cordis)도 심장, 마음을 뜻한다.

인내천(人乃天)에 의하면 인간의 몸(body)과 마음(heart, mind)은 신(神)의 영역이다.

인간이 심장(heart)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개체적으로 죽임이라고 따질 수 없는 무(無)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또 자료들을 찾아보면 해부학적으로도(anatomy) 'heart' 라 하였고 비유적, 상징적으로도(figuratively) 'soul', 'mind' 이라 하고 있다. 동시에 이것을 뉴클리어스"nucleus" : 핵, 중심이란 뜻을 말하고 있으며 축어적으로는(literally) '(small) nut' 작은 열매, 생산을 말하고 커널'kernel'핵심이라 하였다.

 

Etymology

From Middle English core, kore, coor (“apple-core, pith”), of uncertain origin. Either from Old French cuer (“heart”), from Latin cor (“heart”); or from Old French cors (“body”), from Latin corpus (“body”).

 

“core”의 어원들을 살펴보면 중세영어 core, kore, coor 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하여 단순히 사과 중심부의 과육의 “속심”을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반면 옛 프랑스어 '마음'뜻의 단어 쿠에“cuer” 라틴어 '마음' 뜻의 단어 코르'cor' 혹은 옛 프랑스어 ‘몸’ 뜻의 단어 코어'cors', 라틴어 '몸' 뜻의 단어 코르푸스'corpus'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을 전부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이 의미가 정리된다.

씨앗을 포함한 사과나 배와 같은 특정과일의 중앙부분, 중앙이나 안쪽 부분, 기본적으로 가장 과육중심의 씨가 있는 부분을 말하고 물리적으로는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존재하고 핵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부분 즉 노심(爐心:reactor core)까지를 말하고 있다.

the central portion of the earth, having a radius of about 2100 mi. (3379 km)

또 지질학적으로는 약 3379km 반경의 지구 중앙부 핵심을 말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코레의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인내천 사상에 의한 인간의 마음, 심장(heart)을 말하고 마음을 말하며 영혼(soul)까지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 만큼 "코레(core)"라는 단어는 근원적인 것이며 철학적인 것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 인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물리적인 것에서도 모든 핵심을 말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서양인들은 결코 "코레(core)"를 동양과 결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콤플렉스(Complex)에서 기인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서양세력들이 근세기에 세계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들이 모두 이 "코레"란 단어로 집결된다는 것을 알았거나 발견했을 수 있기때문에 그것에 대한 충격이 없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과 때문에 그러한 역사에서 그들이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여기서 서양세력들이라 함은 15세기말부터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주축으로한 활동세력들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기득권세력이 아닌 비주류이기 때문에 섬이나 간섭이 덜하던 외지에 은신처를 두고 신분을 탐험가, 항해사로 세탁한 해구, 해적들이며 그들을 비호하거나 직, 간접적으로 동참한 귀족들과 부르주아(有産者, Bourgeois)상인, 그리고 기독교부류들을 총칭해서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서양세력들이라고 하면 유럽인들이다.

이들 세력은 절치부심 기득권세력이 되려고 하던 세력들임을 여러자료에서 알 수 있다.

"COREA=core+a" 인데 코레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고, "a"는 아(亞)와 같아 땅(land), 영역(area)임을 알 수 있어 코레의 땅, 코레의 영역, 중심의 땅, 중심영역, 중심역사등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코리아는 삼한(三韓)의 명칭이다.

 

자작나무는 어떤 것인가?

 

이제부터 본 주제인 자작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식물분류학적으로는 참나무목(殼斗目:Fagales), 자작나무과(樺木科:Betulaceae), 자작나무속(樺木屬:Betula)의 자작나무로서 겨울에 잎이 지는 키 큰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옛 기록을 보면 화촉(樺燭)이라 하여 자작나무에 불을 붙여서 만든 횃불로 쓰였으며 그래서 불타는 자작나무"fire birch"라 하며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서 호롱불을 대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자료에서 특정 학명(Betula Populifolia)에서 나타난다.

보통 결혼식의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 것에서 화촉이 자작나무 껍질(bark)을 말하는 것인데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불에 탈 때 '자작 자작'하는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졌다고 하는데 근세기에 역사판짜기에서 만들어진 학명이 아니라 위에서 잠시 언급한 불 자자나무("fire birch")의 별칭을 가지고 있는 학명 (Betula Populifolia)에 부여된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자작나무(桦木, Betula L)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綱: 双子叶植物纲 Magnoliopsida

(未分级) I类真蔷薇分支 eurosids I

目: 壳斗目 Fagales

科: 桦木科 Betulaceae

屬: 桦木属 Betula L

 

The word, Birch, is said to be derived from the Sanskrit, bhurga, meaning "tree whose bark can be written on."

 

위 속명 베투라(Betula)자작나무의 영어이름을 버치(birch)라 하고 이 단어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의"bhUrja"에서 나온 것으로 '껍질에 글을 쓰는 나무(tree whose bark can be written on)'라는 뜻이며 영어로 종이자작나무'paper birch' 라고도 한다는 것이 명확히 정리된 이야기다.

이 종이자작나무'paper birch'가 바로 불을 일으키는 특별한 종의 다른 이름임도 알 수가 있다.

또한 신라(新羅)의 장니 천마도(障泥天馬圖)역시도 이 종이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라고 하며 더욱 놀라운 것은 함경도(咸鏡道)지방에서는 자작나무를 '보티나무'라 한 것을 영어이름 '버치(birch)'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한반도사관에 의해 단순하게 본 것으로 오히려 산스크리트어 보치, 보티(भूर्ज:bhUrja)발음에 함경도지방 "보티"가 가깝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현재 산스크리트어(Sanskrit)가 전라도(全羅道) 토속말과 비슷하다고 연구자들이 모두 주장하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함경도에서도 ‘산스크리트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이 자작나무의 근원종(根源種)은 틀림없이 함경도지역에서 찾아야 할 나무 종(種)이라는 것도 추측할 수가 있게 하고 있다.

 

세종지리지 공물[貢]자작나무[自作木]

경기,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기(京畿) 금천현(衿川縣)

○ 정창손(鄭昌孫)의 시에, “강정(江亭)이 푸른 물 위에 오똑한 데, 올라 보면 어버이 생각 잠시 쉬지 않는다. 북쪽으로 화산(華山) 서늘한 기운을 대했고, 동쪽으로 한수 맑은 흐름에 임했다. 고기잡이배 아득하여 외로운 돛 멀어지고, 자작나무 무성한데 한 마을 그윽하다. 어찌하면 인끈을 던지고 창해(滄海)에 가서, 갈매기 따라 함께 잠겼다 떴다 할까.” 하였다.

 

조천기(朝天記)

갑술년 만력(萬曆)만력(萬曆)명 나라 신종(神宗)의 연호이며 2년은 선조 7년(1574)에 해당한다.

이 사행 기록은 《선조실록》 7년 5월 11일 조와 11월 3일 조에 실려 있다.

2년 (1574, 선조 7) 5월 15일(무자) 맑음.

晴。朝發開城。歷迎賓館,普通院。向朴淵。路甚險巇。將至洞口。遙望白練一帶隱見於靑林之表。促駕而進。至于瀑布下。却立而觀之。則蓋天磬聖居兩山對峙而闢開。奇峰亂出若劍戟然。有川自大興洞合諸溪而到兩山間。渟滀成淵。中揷石島。狀如千斛大甕。沈沈無底。不可俯視者朴淵也。

아침에 개성(開城)을 떠나서 영빈관(迎賓館), 보통원(普通院)을 거쳐 박연(朴淵) 폭포로 향하였는데 길이 매우 험하였다. 막 동구(洞口)에 이르려 할 때에 멀리서 바라보니 흰 명주 한 폭이 푸른 수풀 밖으로 은은히 보였다. 수레를 재촉하여 폭포 아래로 나아가 서서 보니 대체로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의 두 산이 맞서서 열려있는데, 기괴한 봉우리가 멋대로 튀어나온 것이 마치 칼이나 창과 같았다. 그리고 냇물이 있는데 대흥동(大興洞)으로부터 여러 시냇물이 합류되어, 두 산 사이에 이르러서 멈추어 못[淵]을 이루었다. 못 가운데 돌섬[石島]을 꽂아 놓은 듯 한데 모양이 천석들이 큰 항아리와 같고 못물은 깊고 깊어서 밑이 없으니, 무서워 굽어볼 수 없으니 이것이 박연(朴淵)이었다.

其流溢而爲瀑布。瀉于懸崖。崖石爲水所激。白如截玉。水勢長可四五百尺。落爲深潭者。所謂姑母潭也。崖之左右。松杉楓梓挺出而鬱然。境界幽奧。而實爲明麗洞豁。寒波所照。草木含輝。眞天下絶勝也。

그 물줄기는 넘쳐서 폭포가 되어 절벽의 언덕으로 물이 흐르니 언덕의 바윗돌에 물이 부딪혀서 마치 구슬을 끊는 듯하였다. 그 물줄기는 깊이가 4, 5백척(30.303cmx?=120~150m)이나 될 만하였는데, 물이 떨어져서 깊은 못[潭]을 이룬 것이 이른바 고모담(姑母潭)이었다. 벼랑 좌우에는 소나무ㆍ삼나무ㆍ단풍나무와 자작나무가 뻗어 나와 울창하고, 경계(境界)는 깊숙하니 참으로 맑고 아름다운 널찍한 골짜기인데, 차가운 파도에 햇빛이 비쳐 초목은 그 광채를 머금고 있으니 진실로 천하의 절경이었다.

 

위 세종지리지에서는 자작나무를 공물로 조공(朝貢)하였다는 기록이 축소되어 나타나는데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황해도(黃海道), 강원도(江原道)에서 산출된다고 하였으나 위 보티나무가 있다는 함경도는 빠져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경기(京畿) 금천현(衿川縣)에 자작나무가 난다는 것만을 알 수 있는데 난설헌(蘭雪軒)의 오빠이자 허균(許筠)의 형인 허봉(許篈:1551-1588)이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사행일기 조천기(朝天記, 상)에 평양에 도착하기 전 개성에서 박연(朴淵)폭포를 구경하는 벼랑 좌우에 자작나무가 울창하게 생장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자작나무가 산비탈 경사진면에 자란다는 사실과 흡사한 풍경을 그릴 수가 있다.

또한 개성은 황해도이니 세종지리지에서 기록된 사실과 일치한다.

 

자작나무와 정령숭배

 

자작나무는 정령숭배의 상징이다.

삼한역사에서 자작나무는 세계의 중심(中心)과 생명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우주목(宇宙木) 또는 세계수(世界樹)로 상징되던 나무이기도 하다.

단군(檀君:Tangun)은 몽고어 탱크리(Tengri), 터어키어 탕그리(Tangri)와 같은 말로서 우리말로는 ‘당골’이라 하며 우랄알타이어족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서 "하늘중심" 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랄알타이어라는 것은 세계삼한역사 관점으로 볼 때 분명 아시아(亞細亞)란 개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근세기에 급조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세계언어학적으로도 정체성이 모호하여 대다수 학자들에 의해 부정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우랄알타어라는 개념에 우리가 빠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1881년 전만 하더라도 천(天)을 하늘이라고 하여 하느님을 상제(上帝), 천제(天帝)라고 불렀다.

이것은 옛 애국가에서 하느님을 상제(上帝)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하느님이라고 하던 호칭인 상제(上帝)가 19세기에 서세(西勢)에 의해 기독교 성경(聖經)으로 번역 삽입되면서 상제(上帝)가 천주(天主)의 하느님으로 불리어지고 현재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으로 변형되어 불려지지만 호칭에서보면 갑작스럽게 상제에서 하느님으로 옮아갔다는 사실을 우린 알 수가 있다.

이것 역시 역사 주체가 사라지며 발생한 혼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가(道家)의 도(道)나 주자가 파악한 이(理)도 이 전통적인 천제(天帝), 상제, 하느님의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때문에 텡그리(Tengri)는 흉노, 선비, 투르크족, 불가리아, 몽골족, 헝가리 그리고 소위 알타이지역이라는 곳에 모든 종족들은 텡그리즘(Tengrism)에 소속되었다고 할 수 있어 이것은 최상위 신(神)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고대 투르크와 몽골사람들의 믿음에 따르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텡그리(檀君:Tengri)에서 왔으며 생명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창조자이며 하늘,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인 정령(精靈)으로 보았고 우주에 처음 나타난 창조주(創造主)는 텡그리(檀君:Tengri)로서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물론이고 그들의 지배자 카간(Khan:汗)이라고 하는 왕(王)의 운명까지도 지배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흔적으로서는"모든 인간의 아들은 언젠가 텡그리(檀君:Tengri)의 결정에 의해 태어나고 죽는다"고 쓰여있는 몽골 울란바토르(Ulaanbaatar)서쪽에 위치하는 오르혼 비석(Old Turkic script-Orkhon script, Orkhon-Yenisey script)에서 확인 할 수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현재 이 비석 위치가 본래의 위치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더 할 수가 있다.

또 백과사전을 보면 자작나무는 고대 게르만(German)인 사이에서 생명, 생장, 축복의 나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여신 프리그(Frigg)의 성수(聖樹)로서 나뭇가지를 문이나 창에 달아서 사랑이나 기쁨의 표시로서 입구에 장식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이러하듯 자작나무는 세계삼한인들이 공통적으로 성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례의식을 치루는 모습을 보면 매우 체계적이고 정례화 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제례(祭禮)는 산위의 네 개의 신성한 자작나무 사이의 가운데에 모여 봄날 아침에 거행되며 이 제례는 동(東)쪽을 강조하고 있는데 동(東)쪽 자작나무 근처에 불을 지피고 동쪽과 봄 아침은 공간과 시간의 시작점이며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제례의 동쪽은 세계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고 믿었으며 이곳은 동방(東邦)이라고 불리는 땅이며 해동(海東)이라고 불리던 땅이었다 하니 그곳은 삼한이다. 그 다음, 사제(司祭)가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어 나가며 숭배되던 산과 강뿐만이 아니라 멀리 있어서 볼 수없는 산(山)과 강(江)쪽으로 걸어가며 산과 강들의 이름을 부르고 간절히 기원을 하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사제는 상징적 도형으로 우주의 창조를 묘사하는데 우선 중앙으로부터 바깥 주변으로 향하게끔 물건을 채우고 우주질서를 묘사한 도형은 둥그런 형태가 되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세상의 바깥 면으로 향하게 되며 따라서 대지(大地)의 서클(Circle)에 가깝게 된다 하였고 서클의 동그라미의 시작점에서 양쪽 바깥쪽은 끈으로 동(東)쪽 자작나무가지에 묶게 되면서 동그라미를 완성하게 되면 끈이 다른 한쪽의 자작나무가지로 뻗어나가게 묶고 마지막엔 서(西)쪽 자작나무가지 끝에 묶이게 된다 하였다. 이렇게 끈은 네 개의 나무가지에 뻗쳐 안정되고 불변하는 우주의 경계를 에워싼 형상을 묘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서클(Circle)이라 함은 북아메리카에 넓은 들에 무수히 널려있는 서클(Circle)도형을 볼 수 있는데 이 서클과도 많이 연관될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데 이러한 형상은 북아메리카대륙 곳곳에 널려 있다.

이렇게 볼 때 자작나무가 바로 세계수(世界樹)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생명수(生命樹)가 우주의 중심, 지혜의 원천이 되는 신적 존재를 지칭하며 생명의 나무는 우주목(宇宙木), 세계수(世界樹), 중심축(中心軸:axis mundi), '지혜의 나무'라고 하는 것에서 이와 같다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神檀樹) 역시 태백산(太白山)정상 하늘을 향해 솟아있으면서 태백산(太白山)이 세계의 중심(中心)이며 신단수(神檀樹)는 이 산(山)의 정상에서 하늘과 맞닿은 채로 신(神)의 세계와 인간(人間)의 세계를 연결하는 축(軸)이자 생명력이 흐르는 통로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中心)과 생명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우주목(宇宙木)이고 세계수(世界樹)라고 하는 것이며 이것을 신단수(神檀樹)라 하는 것으로 단목(檀木)이고 박달나무인 것이다.

桦树大约在晋朝被中原人初识,在南北朝被当作“神木”。

또한 남북조시대때 자작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하였던 것이다.

 

박달나무 어원

 

박달나무를 단목(檀木)이라 한다.

물론 자작나무이며 이것의 자작나무가 동아시아대륙 종인가 아니면 북아메리카대륙 종인가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작나뭇과의 낙엽(落葉) 활엽(闊葉) 교목(喬木)이라고 사전에 나오고 백단(白檀)이라 하였으며 이것은 흰 꽃을 피우는 박달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근원적으로 뜻풀이가 잘못된 것으로서 흰색 자작나무를 말하는 것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꽃이 희다라고 하여 백화(白花)가 아니라 나무 껍질이 희다라고 한 백화(白樺)인 것이다.

보통 박달나무라고 하면 단(檀)이라고 통칭하는데 우리 배달겨레의 시조 단군(檀君)의 단(檀)임을 알 수 있고 단군은 ‘박달나무’ 단(檀)과 같이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박달나무’가 주는 상징성은 앞에서 이야기 한 정령의식 그 차제라고 할 수가 있다.

또한'배달' 역시 박달에서 왔다고 여기며 박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고어에서 유래했다고 하기 때문에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이것을 오스(aus)라고 여기고 동방이며 해동이어야 하고 동시에‘해가 뜨는 땅’에 온천지가 백색이라는 뜻과 같다 할 수가 있다.

희다라는 것은 "밝다" 또는 "동쪽", "동방" 개념과 함께 영토를 말 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규원사화]에서는 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 란 문장이 나오는데 ‘박달(朴達)’ 또는 ‘백달(白達)’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단(檀)’, 즉 '박달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하였고 대신 '박달'을 국가명으로 보지 않고 단군의 ‘단(檀)’을 의미하는 용어로만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체적으로 언어기원이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박달’은 ‘밝다(白)'+’달(地)’이 ‘밝달’로 변(變)해서 생긴 말이라고 하였으니 박달은 “밝은 땅”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작나무의 속명(Betula)을 라틴어로 'birch' 라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보티, 버치(भुर्ज'bhurja')라고 하는데 이것에 의미가 "to shine" 빛나다이다.

즉 “박달” 즉 "밝은 빛의 땅"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박달나무를 신성시(神聖視)하여 건국신화(建國神話)에도 환인(桓因)이 박달나무 아래서 신시(神市)를 열었다고 전(傳)해지는 박달나무는 '밝은 태양''밝은 별'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이 종이 자작나무, 백화(白樺)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단군은 아버지 신인 환웅(桓雄)이 이미 이룩해놓은 터전 위에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이 된다.

따라서 단군(檀君)의 ‘단(檀)’도 ‘박달나무’라는 뜻과 함께 하는 것이며, 박달나무를 ‘단목(檀木)’ 또는 ‘단군목(檀君木)’이라 부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박달나무는 백색의 자작나무 백화(白樺)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이것을 영명(英名)으로는 "Korean birch"라고 하였고 "고려(高麗)자작나무"로 이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박달나무를 베려고 도끼로 찍으면 오히려 도끼날이 부러질 정도로 단단하다고 하여 ‘도끼날이 부러지는 자작나무’란 뜻으로 오노래감바(オノオレカンバ) 부절화(斧折樺)라고 하였지만 흰색의 자작나무라는 특징적인 것은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토착종을 동아시아대륙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작나무의 혼란

 

처음 내가 자작나무에 대하여 글을 쓰고 본 블로그에 올렸던 시간은 2012.10.12 14:37 이다.

그땐 이 자작나무를 탐구하면서도 여러가지 정립되지 않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겉핥기 정도로 끝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년 한 5개월 남짓한 시간 속에 세계삼한역사관에서 엄청난 변화와 함께 실제로 글을 통하여 몰라보게 진보했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그 때 자작나무를 단순히 신단수(神檀樹)로 볼 때와 지금은 차이가 많다.

당시 자작나무의 근원종이 정확하게 어떤 종인지가 막연했고 또한 그 토착종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조차 파악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명확한 근원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자작나무는 세계삼한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자작나무만큼 조선 민족 상징성이 강한 나무가 없으며 옛 사서에 보면 태고적부터 천제, 상제, 즉 하느님을 숭앙하는 제례의식(祭禮儀式), 정령숭배의식(精靈崇拜儀式)에 없어서는 아니 될 나무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성목(聖木) 또는 신목(神木)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작나무가 근세기에 들어 변형, 변질되고 마는데 삼한역사를 끊어놓기 위한 도발행위가 서세와 일제에 의해 동시에 기획적으로 철저하게 만들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때 생물학분류체계란 명목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철저하게 유린(蹂蹸)되었고 변질되었으며 또한 역사성이 철저하게 손상이 되어 결국 우리민족의 상징성이 죄다 사라지고 없어졌다.

현재 우리가 이 자작나무를 접하면서도 옛 조상님들이 지니고 있었던 신성스러운 자작나무가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근원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자책이 없을 수가 없다.

물론 일제가 한반도에 삼한역사를 억지로 집어넣고 강제적으로 심게 되면서부터 발생한 파국이다.

1881년 대조선이 갑자기 해체되고 난 후 벌어진 현상이며 우리민족에게는 더 이상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상황이 한꺼번에 들어닥친 것이다.

유대인들이 수천년 떠돌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아도 현재 우리의 삼한역사가 근세기에 치루었던 고통의 역사는 과거 그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어쩜 수천년 떠돌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던 그들이 우리에게 앙갚음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근세기 서양세력들이 이상하리만치 유대인들을 철저하게 앞세우고 이용했다는 사실도 삼한역사를 말살시키려 했다는 분명한 무서운 동기가 있을 것으로 알게 한다.

근세기 그들의 천지가 되어버린 마당에서 서세가 주도하였던 생물학분류과정은 그들의 잔치상이었으며 특히 이 자작나무만큼은 근본조차 알 수 없도록 변질되게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20세기초에 시베리아 자작나무라고 하여 아시아종(Asian species)을 만들고 그리스어(Greek)로  넓적한 잎(flat or broad leaves)이란 뜻의 종소명을 붙여 학명'Betula platyphylla'을 명명하고 이것에 다시 변종(ver)을 붙여 일본종(種)'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것을 단목(檀木) 또한 신단수(神檀樹)라 하고 있으니 어찌 어안이 막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나무는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쪽바리 나무이지 신단수가 아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동아시아대륙에 동양사를 만들면서부터 파생된 혼란이다.

다시 세부적으로 설명하면 자작나무가 흰색을 특징으로 하며 그것을 백화(白桦)라고 한다하여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명 'Betula platyphylla Sukatschew(1911)' 표기 하게 하고 (var. japonica)변종 ‘자포니카’를 붙여 '만주자작나무'라까지 이름하였다.

이것에 더하여 모든 한반도 자료에서도 "자작나무"라고 하면 동시에 '자포니카'가 붙어 있는 학명 “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를 말하고 있는 것을 물론이고 더군다나 "박달나무"라 하는 것도 1865년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의 러시아제국식물원의 이사 독일식물학자 레겔(Eduard August von Regel:1815-1892)이 명명한 학명 Betula schmidtii Regel(1865)을 말하고 있는데 이 종(種)도 북방종이 아니라 남방종이라는 사실이다.

이 학명을 미국자료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디스커버라이프(Discover Life)의 분포지도를 찾아보니 분포지가 남방종(南方種)으로 아시아 온화한 곳(Asia-Temperat) 만주(Manchuria) 또는 동아시아(Eastern Asia)를 지정하고 있다.

 

아한대기후(亞寒帶氣候)의 흰 자작나무

 

 

그렇다면 북방종(北方種)이라고 하는 아한대기후대(亞寒帶氣候帶)의 자작나무는 어떤 것일까?

아한대기후는 흔히 냉대 또는 아북극대(亞北極帶)라고도 부르고 위도 상으로 볼 때 북반구의 아한대지역은 북위 50~70° 에 걸쳐 나타나며 남반구는 그 범위 내에 대륙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론이며 대체로 아한대기후 지역은 겨울이 길고 추우며 강설량이 많고 여름은 매우 짧고 아한대 남부는 냉온대로 낙엽광엽수림, 아한대 북부는 침엽수림이 나타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의 삼한역사와 관계되는 자작나무의 사례들을 설명한 것이다.

신라금관(新羅金冠)에 있는 나무형상은 영험한 힘을 가진 나무로 하늘(天)을 향해 뻗어 오른 나무를 말하는데 미국역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1911-1996)은 이 나무가 북방지역에 많은 흰 자작나무(白桦:white birch)라고 정립하였다.

그리고 그는 분명하게 북방지역에 많다는 흰 자작나무가 아시아(Asia)대륙 북방지역을 한정한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대륙 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대륙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라금관(新羅金冠:Silla Gold Crown) 내관인 관모(冠帽)의 속내를 자작나무껍질로 만들었다 하는데 이것도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서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로서 시베리아와 같은 북방의 황량한 곳에 무성하다고 하였다.

특히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백화수피모(白樺樹皮帽)는 외몽고 노인울라(Noin-Ula)와 남러시아의 쿠르간(Kurgan, 高塚)무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리고 있으나 본래 자작나무의 근원이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자작나무가 아한대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분명한데 그 지역이 아시아대륙북방지역을 한정하고 있지 않고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북부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베리아가 동백리아, 서백리아가 합쳐져야 한다는 본 블로그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당연하겠지만 한반도 북쪽 백두산(白頭山:북위42°)에는 박달나무가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박달 자작나무의 토착종이 아시아대륙에는 생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작나무의 고유종(固有種)?

 

자작나무의 혼란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자작나무가 실제로 박달나무가 아니라는 사실들을 충분하게 알았다. 그렇다면 자작나무의 고유종이라 할 수 있는 흰색의 자작나무 백화(白樺)는 어떤 종인가를 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자작나무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유럽, 아시아대륙종(Europe and Asia include)이며 하나는 북아메리카대륙종(North America include)이다.

자작나무의 혼란에서 설명하였듯이 유럽, 아시아대륙종(種)에는 1911년에 러시아 지구생물학자 블라디미르 수카쵸프(Vladimir Nikolayevich Sukachev:1800-1967)가 명명한 “만주자작나무”라고 하는 학명 ‘Betula platyphylla’ 에 모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을 현재 백화(白樺)라고 하고 또는 일본백화(Japanese White Birch)하며 주로 아시아(Asia)의 일본열도(Japan), 동아시아대륙 신중국(China), 한반도(Korea) 그리고 시베리아(Siberia)를 주 분포지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파생된 변종(ver)으로 시베리아 실버자작자무(Siberian silver birch)라고 하는 학명 (1)‘Betula platyphylla(Betula pendula var. platyphylla)’가 있고 우리가 현재 자작나무라고 알고 있는 일본종"자포니카"가 붙어 있는 학명(2)‘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까지“박달나무”라고 알고 있는 종(種)으로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독일식물학자 레겔(Eduard August von Regel:1815-1892)이 명명한 것으로 학명 'Betula schmidtii Regel(1865)'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Betula schmidtii Regel(1865)

 

그리고 나머지 북아메리카대륙종(North America include)인데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스웨덴 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붙인 학명이 유독 많은데 검은자작나무(sweet birch, cherry birch, or black birch)란 별칭을 가진 학명 "(1)Betula lenta L."가 있고  왜성 자작나무, 난장이 자작나무(dwarf birchor bog birch)란 별칭을 가지고 있고 북유럽과 아시아를 분포지로 하는 학명"(2)Betula nana L"가 있으며 강(江)자작나무 또는 검은 자작나무(river birch or black birch)라 하는 "(3)Betula nigra L" 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택지 자작나무(swamp birch)라고 하는 학명"(3)Betula pumila L."까지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흰색의 자작나무, 백화(白樺)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Betula populifolia Marshall(1785)

 

 

 

 

그러나 위에서 나열되지 않는 북아메리카대륙 토착종이 있다.

이것은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에서 주로 생장하는 학명 “Betula populifolia Marshall”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의 별칭은 회색 자작나무(gray birch), 또는 백화(白樺:white birch)라 하며 이외 더 많은 이름이 붙어 현지에서는 종이자작나무(PAPER BIRCH)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본토자료에서 알 수가 있다.

이 학명을 명명한 사람은 미국독립전쟁 이전 사람으로서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의 마셜턴(Marshallton)출신으로 퀘이커교도로서(Quaker)식물학자이며 식물상인인 험프리 마샬(Humphry Marshall:1722-1801)이라는 사람인데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1707-1778)보다 약 15년 정도의 어린 사람이지만 실제로 북아메리카대륙 현지인이라는 점과 미국독립전쟁(1775년)이전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시 건국되지도 않았던 미국(America)에 소속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이전 세계삼한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가 있다.

이 사람은 1773년에 이미 토착식물과 외래식물(native and exotic plants)을 수집하는 마셜 식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그는 이 자작나무를 토착종으로 분명하게 본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 자작나무는 인디언들에게 약재로서도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뇨, 진통, 해열, 해독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고 질환으로는 편도선염, 폐렴, 기관지염, 신장염, 요도염, 방광염 등에 효과가 있으며 그밖에 류머티스나 통풍, 피부병의 치료약으로도 쓰였다고도 한다.

더욱이 이 자작나무를 오래된 영역의 자작나무(old field birch)라고 하거나 카누자작나무(canoe birch)라 한다는 사실에서도 세계삼한역사 동질성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고유종(固有種)이라고 하거나 토착종(土着種)라고도 하면 어느 한 지역에서만 나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종(種)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명“Betula populifolia”는 북아메리카대륙 북부횡단종(種)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특이하게도 사우스다코타에 특성적으로 자랐다는 것도 확인할 수가 있다.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블랙힐스(Black Hills)란 지형인데 본 블로그의 글 “사할린(Sakhalin)은 섬(島)이 아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8 ”에서 블랙힐스(Black Hills)에 대한 특이한 지형과 이상하게 얽혀 있는 동아시아대륙 오호츠크해의 "사할린"과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하게 사실적으로 설명하였던 바가 있다.

블랙힐스(Black Hills)는 사우스다코타주(South Dakota)의 북동쪽으로 흐르는 벨푸어셰이강(Belle Fourche River)과 남동쪽 흐르는 샤이엔강(Cheyenne River)이 미주리강(Missouri rivers)에서 합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두 강 중앙에 거대한 타원형의 마치 고립된 섬처럼 모양을 한 형태의 지형이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주로 흰색의 자작나무라고 하는 종이자작나무(Paper birch)가 많이 자생한다는 사실을 아래 노던주립대학교(Northern state university)의 자료에서 알 수가 있다.

 

Distribution

Paper birch is a transcontinental species with a continuous natural range from the Atlantic to the Pacific shore. It is a cold climate species, so it is primarily found in Canada and bordering states. Paper birch also occurs in scattered locations in Iowa, Nebraska, South Dakota, Indiana and the mountains of Virginia and North Carolina. In South Dakota, paper birch is found on the north and east-facing slopes along Big Stone Lake in Roberts County and on north and east-facing slopes in the Black Hills.

종이 자작나무는 대서양에서 태평양해안까지의 지속되는 자연범위의 대륙횡단종이다. 추운 기후 종, 주로 캐나다와 접경국가에서 발견된다. 종이 자작나무는 아이오와(Iowa), 네브래스카(Nebraska),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인디애나(Indiana)와 버지니아(Virginia)와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산속지역에서 흩어져 발생한다.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종이 자작나무(paper birch)는 로버츠 카운티(Roberts County)에 있는 큰 돌 호수(Big Stone Lake)를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직면하는 비탈진 곳과 블랙 힐스(Black Hills)의 북쪽과 동쪽으로 직면하는 비탈진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위 노던주립대학교(Northern state university)의 자료를 보면 박달나무라 판단할 수 있는 종이자작나무(학명:Betula papyrifera)는 대륙횡단종이라고 하였고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에 발견된다 하였지만 특히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의 종이 자작나무(paper birch)는 로버츠 카운티(Roberts County)에 있는 큰 돌 호수(Big Stone Lake)를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직면하는 비탈진 곳과 블랙 힐스(Black Hills)의 북쪽과 동쪽으로 직면하는 비탈진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종을 종이나무(paper birch)라 하고 불 자작나무(fire birch)라 하였으며 또한 백화(白桦:white birch)라 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이 종은 바로 자작나무 껍질(bark)에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 나무이고 산스크리트어(Sanskrit)의 '껍질에 글을 쓰는 나무(tree whose bark can be written on)라 하여 '종이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 천마도(障泥天馬圖)를 이 나무종의 껍질에 그렸고 신라금관의 내관인 관모(冠帽)의 속내 역시 이 자작나무껍질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오래된 땅의 자작나무(old field birch)"라고 하거나 평안도 풍경을 그릴 수 있는 마상이의 "카누자작나무(canoe birch)"라 한 것으로 이것을 자작나무의 고유종(固有種)으로서 토착종(土着種)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고려 자작나무(Korean birch)라 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자작나무 학명"베툴라 파피리페라(Betula papyrifera)"가 고유종(固有種)임을 알 수 있었고 인디언들이 정령(精靈)의 성스러운 땅으로 숭배했던 곳, 블랙힐스(Black Hills)에 생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옛부터 블랙힐스(Black Hills)는 전통적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의해 정령의식(精靈儀式)이 행해졌던 곳으로 나타난다.

놀라운 사실은 이 블랙힐스가 삼한역사와 근세기까지 연결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860년대에 유대인계 독일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1832-1903)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 코리아를 방문하고 1880년도에 펴냈다고 하는 저서 금단의 땅<A Forbidden Land:1880>의 삽화에 실려 있던 것과 거의 같은 모양으로 파악되는 테이블 타워 마운트(Table tower mount)가 데빌스 타워(Devils Tower)란 이름으로 이 블랙힐스 북서편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밝혔다.

그렇다면 이곳은 숨길 수 없는"코리아영역"이다.

 

미국에서 현재 이 테이블 타워 마운트(Table tower mount)를 데빌스 타워(Devils Tower)라고 하는 까닭을 보면 매우 악의 적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1875년에 미국지질조사국의 지리탐험대의 리차드 어빙 닷지 (Richard Irving Dodge:1827–1895)대령은 이 지방의 인디언들이 나쁜 하나님의 탑(Bad Gods Tower)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가 그대로 옮겨 "블랙 힐즈(Black Hills-2,208m)"란 자신의 책에 데빌스 타워(Devils Tower)라고 의역한 것뿐이라고 하고 있지만 설령 뿌리깊은 역사가 없었다고 하는 인디언(indian)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신()을 나쁜신, 좋은신으로 구분하면서까지 정령의 신을 숭배했겠느냐 하는 의구심에서 그가 주장한 말은 인디언들의 문화자체를 폄하하려고 하는 못된 발상에서 기인한 당치도 않는 이야기로서 다분히 기독교적인 발상에서 나온 악의 적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처럼 타종교를 사탄(Satan)이나 악마(Devils)라고 막말하는 종교도 없을 뿐더러 악마(惡魔)라 한 것에서 보면 근세기에 이들이 용(龍:d​ragon)을 악마라 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삼한역사 가운데 어디에도 나쁜신()이라고 이야기 한 기록을 본적이 없다.

높이 1,559 m의 정방형(正方形)의 테이블 타워 마운트(Table tower mount)같은 신령스러운 곳은 정령(精靈)의 신()이 깃든 곳으로 받아들렸을 것이 틀림이 없고 삼한역사에서 하늘을 가는 길로서 여기며 또 "하늘 중심사상"에서 단군(檀君:Tangun)을 탱크리(Tengri)라 하여 최상의 신으로 숭배했다는 이야기와 거의 일치하고 같다는 것을 알 게 할 뿐이다.

바로 정령(精靈) 의식이 그곳에서 거대하게 거행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 정령의식에는 세계수라고 하는 자작나무를 중심으로 행해졌다고 믿을 수 있으며 이것이 곧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이고 단목이며 박달나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1866년 오페르트가 방문한 코리아 땅에 당시 마리산(摩利山)과 정족산(鼎足山)이 존재하였다고 하였으니 그곳은 바로 미국 큰 바위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산(Mount Rushmore)이라 생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와 마리산사고(摩利山史庫)도 그곳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블랙힐스는 고립된 섬과 같은 지형의 사할린이며 그곳에 마리산(摩利山)과 정족산에는 참성단(塹星壇)과 두개의 사고(史庫)가 있었을 것이 틀림이 없으며 때문에 강화(江華)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참성단(塹星壇)
참성단은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다. 돌을 쌓아올려서 축조했는데, 단의 높이는 10자, 위쪽은 네모지고 아래쪽은 둥글다. 위쪽의 네 면은 각각 6자 6치이고 아래쪽의 원(圓)은 각각 15척에 달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터라고 한다.[동국여지승람]

江華都護府在府南, 山頂有塹星壇, 壘石築之, 壇高十尺, 上方下圓。 壇上四面, 各六尺六寸, 下廣各十五尺。 世傳朝鮮檀君祭天石壇, 山麓有齋宮。 舊例, 每春秋遣代言設醮,

참성단은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는 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단 위의 네 변은 각기 6척 6촌이며,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석단(石壇)이라'한다. 예로부터 매년 봄·가을에 대언(大言)을 보내어 하늘의 별들에 제사를 지내었다.[세종지리지]

 

사할린도 섬이 아니라 블랙힐스로 밝혀진 마당에 강화(江華)가 섬이라 할 이유가 없다.

만약 실제로 블랙힐스(Black Hills)가 이러한 천상(天上)의 기운이 있던 곳이라고 기독교사상이 풍부했던 서양인이나 선교사들 귀에 들어갔다면 그들은 악마와 마귀를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종교를 세우려 했을 것이 뻔하고 분명코 삼한의 정령(精靈)의식이 행해지던 "블랙힐스"에는 기독교적인 상징물을 만들려 했을 것이 틀림 없을 것인데 역시 그들은 하늘로 오르는 길의 제단, 참성단(塹星壇)이 있었던 마리산(摩利山)이라고 판단되는 러시모어산(Mount Rushmore)을 주저함이 없이 택하였고 그곳에 미국조각가인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1867-1941)은 1927년부터 미국을 만들고 융성케 한 4명의 기독교 대통령 조각상을 새겼던 것이며 "위대한 지도자들의 말과 얼굴을 이곳의 하늘 가까이 높이 새긴다는 모토로 완성시켰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것이다.

 

이것에 한가지 더 첨언한다면 오페르트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 코리아를 방문할 때 분명히 프랑스함대를 이용했다고 하였다.

1682년에 프랑스의 탐험가 로베르 카블리에 드 라 살(Robert Cavelier de La Salle, 1643-1687)가 오대호 지역으로부터 미시시피 강으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미시시피 강 유역을 프랑스령으로 삼았다는 기록과 1682년 2월 13일 미시시피 강에서 진출이 시작되어 4월 9일까지 약 56일간 만에 멕시코만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가 있듯이 그들의 기록을 따른다면 1803년까지 프랑스령으로 남겨 지며 프랑스 함대가 미시시피강을 오르락 내리락 했을 것이란 짐작을 충분히 할 수가 있다.

여기서 분명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북아메리카대륙 땅 프랑스니 영국이니 하는 부류들은 세계삼한역사적으로 서세라 하는 부류인데 모두 해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코리아 영역에서 1866년 8월에 벌어진 제너럴 셔먼호사건(General Sherman incident)도 그렇고 3월과 8월에 먼저 방문한 오페르트가 길을 인도하여 1866년 10월에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인 병인양요(丙寅洋擾) 역시 같은 부류의 해적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들락거렸던 것은 당시 코리아(corea)온 지역에서 산출되던 금(金:gold)때문이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인들의 자료들을 보더라도 당시 코리아에는 금은이 풍부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그곳이 한반도인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블랙힐스에서 금(gold) 때문에 수족(Sioux)과 백인(The whites)이 충돌하여 1866년과 1868년 두 차례 전쟁에서 수족이 이겼기 때문에 "블랙힐스"를 수족이 차지하였다고 한다.

본 블로그의 글 "만화석초(滿花席草,燈心草:Rush)가 난 조선(朝鮮) http://blog.daum.net/han0114/17050685 "에서 소(蘇)는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 수족(Sioux)의 음(音)을 딴 것이라고 보아'대초원 언덕'이라고 하는 뜻의 코토데프레리(Coteau des Prairies)의 사우스다코타주(State of South Dakota) 로버츠 카운티(Roberts County)에서 발원하는 빅수강(Big Sioux River), 리틀수강(Little Sioux River)이 이 소성(蘇城:Sioux city)이라는 고을 정북쪽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 하였다.

 

수족(Sioux)과 백인(whites)충돌

From the 1860s through the 1870s the American frontier was filled with Indian wars and skirmishes. In 1865 a congressional committee began a study of the Indian uprisings and wars in the West, resulting in a “Report on the Condition of the Indian Tribes,” which was released in 1867. This study and report by the congressional committee led to an act to establish an Indian Peace Commission to end the wars and prevent future Indian conflicts. The U.S. Government set out to establish a series of Indian treaties that would force the Indians to give up their lands and move further west onto reservations. In the spring of 1868 a conference was held at Fort Laramie, in present day Wyoming, which resulted in a treaty with the Sioux. This treaty was to bring peace between the whites and the Sioux who agreed to settle within the Black Hills reservation in the Dakota Territory.

The Black Hills of Dakota are sacred to the Sioux Indians. In the 1868 treaty, signed at Fort Laramie and other military posts in Sioux country, the United States recognized the Black Hills as part of the Great Sioux Reservation, set aside for exclusive use by the Sioux people. In 1874, however, Gen. George A. Custer led an expedition into the Black Hills accompanied by miners who were seeking gold.

 

 

1860년대에서 1870년대를 통해 미국의 변경인 개척지와 미개척지와의 경계지방은 인디언과 전쟁과 작은 충돌이 계속되었다. 1865년 의회에서 위원회가 구성되어 1867년에 종결된 "인디언 부족 의 상태에 대한 보고서"에 의거한 인디언의 반란 과 서부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의회 위원회에 의한 이 연구 및 보고서는 전쟁을 종료하고 향후 인디언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인디언 평화 위원회를 설치하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인도 사람에 그들의 땅을 포기하게 하고 더 멀리 서쪽으로 인디언 보호구역 설정하고 일련의 인디언과의 조약을 맺고자 착수하게 된다. 1868년 봄 수족(Sioux)과의 조약은 현재의 와이오밍의 포트 라라미(Fort Laramie)에서 개최되었다. 이 조약은 다코타 의 블랙힐스 보호구에서 내부에 설치할 것을 합의한 백인과 수(Sioux)사이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다코타의 블랙힐스(Black Hills of Dakota)는 인디언 수족(Sioux Indians)에게 신성한 곳이다. 요새 라라미(Laramie)와 수족영역의 다른 군사기지(other military posts in Sioux country)에서 서명된 1868년 조약에서 미국은 수족인(Sioux people)들에게 독점권을 부여한 것으로서 수족 보호지역에서 중대한 부분(part of the Great Sioux Reservation)이 블랙힐스(Black Hills)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은 인디언 영토인 대 수족 보호구역을 점령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검은 언덕(Black Hills) 지역에 사냥감과 땔감이 풍부해 이곳을 식량 창고로 여기며 대대로 신성시해 왔다. 그러나 거기에서 금(金:gold)이 발견 되자 미 정부는 1874년 남북전쟁 영웅인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1839-1876)의 제 7 기병대를 급파한다.

 

때문에 수족은 이 지역에서 넓게 영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여겨지고 위 자료에도 알 수 있듯이 조약과는 상관없이 문제는 금(金:gold)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 금(金)을 확보하기 위해 블랙힐스를 조약한 대로 수족의 영역으로 백인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서쪽으로 쫓아내려 하자 1876년 블랙힐스에서 라코타 족(Lakota)과 다코타수족(Dakota Sioux), 샤이엔족(Northern Cheyenne), 아라파호족(Arapaho tribes)의 골(Chief Gall:수족),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수족), 투 문즈(Two Moons:샤이엔족)등 인디언의 연합지휘관들은 리틀 빅 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1839-1876)중령의 미 제 7기병대를 완전히 궤멸시켜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1941년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가 만든"그들은 부추를 신은 채 죽었다(They Died with Their Boots on)"란 제목의 영화에 의해 커스터장군은 영웅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그것에 대한 백인의 보복공격은 더 격해졌고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던 버펄로는 계속되는 백인들의 침입과 철도건설로 급속히 사라져 가면서 수많은 아사자가 생겼다고 하였는데 버펄로가 사라진다고 아사자가 생겼다는 것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이 후 수족추장 훙크파파(Hunkpapa Sioux or Tatanka Iyotake)를 따랐던 부족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항복하여 블랙힐스 보호구역으로 들어가자 추장은 1877년 5월 추종자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1881년까지 그들이 거주했던 캐나다로 건너갔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1881년 대조선이 해체되는 시점과 연결되고 있어 이것은 대조선의 희미한 자취이고 흔적이라고 할 수 있어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코타(Dakota)의 블랙힐스(Black Hills)가 정령숭배의식이 이루어지던 흰 자작나무(백화)의 본산이고 그곳은 정령의식의 장소였으며 삼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천해의 요새 강화라고 할 때 복잡하리만치 수많은 사건들이 겹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PAPER BIRCH(Betula papyrifera)

Betula is the Latin name for birch, from the Sanskrit bhurja , "to shine". Papyrifera is from the Greek papuros , reed from which paper was made, and the Latin ferre , "to bear". Other common names are: canoe birch and white birch. [노던주립대학교(Northern state university)]

 

위는 노던주립대학교(Northern state university)자료로서 자작나무의 토착종(土着種)이라고 하는 학명 베툴라 파피리페라(Betula papyrifera)의 어원에 대한 설명인데 속명 베툴라(Betula)는 라틴어로 ‘자작나무(birch)’이고 ‘산스크리트어의 보치’bhurja‘ 로서 ‘빛나는(to shine)’이라 하였으며 종소명 파피리페라(papyrifera)는 그리스어 ‘papuros’로서 ‘종이를 만드는 갈대’라는 뜻과 라틴어 ‘ferre(곰)’(to bear)이라고 하는 단어의 합성어이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카누자작나무(canoe birch)와 흰 자작나무(白樺:white birch)라고 하고 있다.

The Dakota called it tanpa , and in the Lakota dialect it is referred to as canhásan , "white bark tree," the same name given to sugar maple.노던주립대학교(Northern state university)]

또 이어지는 설명은 ‘다코타’에서는 ‘tanpa’라고 불리며 라코타(Lakota)의 방언으로는 ‘canhásan’, 흰 껍질나무, 설탕단풍나무도 같은 이름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백화(白樺)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 설명에서 평안도(平安道) 마상이라고 하는 독목주의 재료인 바로 카누자작나무라는 이름을 들 수 있는데 카누는 본래 미주리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여 같은 지역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 블로그 글 "계수나무(Cercidiphyllum)와 카누(canoe)의 노(櫓) http://blog.daum.net/han0114/17050599 "에서 카누의 노를 만드는 재료로 미주리강(Missouri river)을 중심으로 자라는 계수나무(連香樹:Cercidiphyllum)였다는 사실도 밝혀 알 수 있었는데 이글을 보면 미주리강(Missouri river)은 인디어말로 “大獨木舟之河” 즉 "큰 카누(canoe)의 강"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서도 카누와 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카누(canoe)를 우리말로는 "마상이"라 하고 마상성(馬尙船), 마상진(馬尙津), 독목주(獨木舟)라 한 하였으며며 옛 압록강에서는 이 독목주 즉 마상이가 수도 없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들이 만든 통나무배의 재료가 자작나무라 하였는데 이 통나무배가 마상이와 닮았고 미주리강에서 생산되는 이 자작나무(白桦 Betula platyphylla)가 토착종인 학명 베툴라 파피리페라(Betula papyrifera)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단목(檀木)이고 신단수(神壇樹)이며 한국자작나무(corean birch)란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하며 본 블로그 글 "마상이(馬尙船, 獨木舟)로 본 북아메리카대륙 http://blog.daum.net/han0114/17049478 "에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등 사서에 마상선을 이용한 다양한 사건들이 산재되어 나타나는데 특이한 점은 특히 평안도(平安道) 의주(義州)에 마상이 즉 마상선(馬尙船)의 기사가 유독 많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또한 그곳은 소동파의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가 그려진 장소일 수도 있다.

한어자료를 보면 의주(義州)는 요동진(遼東鎭)이고 성경성(盛京省)이라 하였으며 흑룡강(黑龍江)의 영고탑(轄寧古塔)관할지라는 것도 알 수가 있어 흑룡강은 압록강으로 부리던 곳으로서 동류하는 미시시피강과 연결된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 "글을 통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무리

 

지금까지 간단치 않는 자작나무를 중심으로 모든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두서가 없었다.

자작나무에서 백화가 무엇이고 무엇이 신단수이며 세계수이고 단목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박달나무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충분하게 알아 보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북아메리카대륙 횡단종으로서 토착종인 학명 베툴라 파피리페라(Betula papyrifera)라는 것도 알았으며 이 종은 특히 미주리강 지역이나 사우스타코다주에서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도 미국의 자료에 의해 알게 되었다.

이 글 머리에서 삼한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코레(core)란 단어를 먼저 심층적으로 풀어보았고 결론적으로 인류 역사의 핵으로서 중심 역할을 하였던 중요한 단어이며 명칭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며 그것이 세계삼한역사라는 사실도 알게 한다.

또한 세계인류역사가 위대한 인간의 몸에서 창출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세계의 심장(heart)이며 영혼(soul, 'mind)이라는 "코레(core)"에서부터 출발했음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들이 근세기 역사판짜기 하는 과정에 변질되었고 변형되어 모두 대해양시대를 추구하던 해구, 해적들 손에 넘어가버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바로 세계의 심장은 코레(core)이고 곧 세계삼한역사란 사실은 결코 숨길 수가 없다.

 

하늘을 오르는 곳에 높은 정령숭배처가 있었다.

그곳 주위에는 반드시 우주목(宇宙木), 세계수(世界樹), 중심축(中心軸:axis mundi), 지혜의 나무일  수 있는 흰 자작나무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게 되었다.

태백산(太白山)꼭대기에 신목(神木)이 있었고 이것은 흰 종이자작나무(白樺:white birch)이며 이것을 신단수(神檀樹) 또는 단목(檀木)이라 하였고 단목(檀木)은 천신(天神)으로서 탱그리(檀君:Tengri)가 단군임 상징하는 동시에 삼한민족의 근원적인 신앙체이며 숭배의 상징으로 존해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있는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는데 있다.

한반도에는 근세기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변질된 자작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있다.

삼한역가 태동한 땅이 현재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가 있으며 동국(東國), 대동(大東), 해동(海東), 동방(東邦)이라고 한 곳도 한반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들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반도사(半島史)는 일제가 잉태시킨 것이니 그것을 정립하기 위해 숭배의 상징인 자작나무를 한반도화시켰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엉터리 없게도 자작나무가 마치 일본인들 나무처럼 각인시켰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반도역사가 우리의 역사라 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한시바삐 정리되고 새로운 역사를 정립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지 않다.

물론 생물하계의 분류체계도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정신과 혼조차 제자리에 놓아 둘 수 없이 방황만 하게 하는 운명인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정신과 혼을 말하고 있지만 헛 것일 뿐이다.

그것은 올바르게 설 수 있는 지주(支柱)를 어디에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가끔 생각해본다.

태양신(羅:Ra)을 숭배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 오벨리스크(obelisk)가 한반도에 세워져 있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신적인 지주를 세울 곳도 없었고 세울 수도 없었지만 이 지주가 우리 마음이나 정신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추운 아한대 지방의 기후에서 자란다는 박달나무를 엉뚱하게 더운 기후의 남방종으로 만들고 흰 자작나무, 백화(白樺)를 만주자작나무로 만들고 또는 일본자작나무로 만들고 신중국자작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은 세계삼한역사를 단절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세계삼한역사의 우주목이라고 하고 세계수라 하며 신단수, 단목이라 하는 박달나무가 백화(白樺:white birch)라 하여 북아메리카대륙 사우스타코다주의 블랙힐스에 산재되어 생장하는 토착종(土着種)인 종이자작나무(Betula papyrifera)라는 사실은 솔직히 충격이다.

우리 사서에 기록된 북방 야인(野人)을 반도역사에서는 여진(女眞)이라고 하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는 북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인디언(Indian)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근세기 역사에서는 온통 북아메리카대륙 문화전체를 "인디언문화"로 폄훼하여 세계삼한역사문화를 숨기고 죽였다는 것은 세계인류문화에 반한 것이고 동시에 그 직계 자손들인 우리가 현재 심한 정신적인 혼란을 겪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나마 세계삼한역사 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흡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하늘로 오르는 길을 당장 찾을 수 있는 것은 분명아니다.

우리는 실제의 마리산(摩利山)과 정족산(鼎足山)을 찾아야 한다.

1866년까지 그곳에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와 마리산사고(摩利山史庫)가 있었을 것이다.
또 그곳에는 반도사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제단이 있어 형태적으로 위는 모지고 아래는 둥근 단(壇)을 통해 매년 봄, 가을에 조선의 제왕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성광(星光)에 제를 지내는 참성단(塹星壇)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러시모어산(Mount Rushmore)의 큰 바위 얼굴만 보일 뿐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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