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서변(西邊)의 의미와 오대해(五大海)

한부울 2017. 4. 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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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변(西邊)의 의미와 오대해(五大海)


글쓴이:한부울


우리가 지난 역사를 냉정하게 따져볼 수 있는 것은 그래도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서(史書)를 기준으로 하는 검증밖에 없다.

도대체 한반도 서변은 어딜 말하는 것일까.

한반도에서 서쪽변방이라고 하면 떡 하니 가로 막고 있는 서해(西海)라는 바다 말고 경계를 두고 접해 있는 지역이랄 것이 없다.



2009년에 본 블로그글 "서쪽변방[西邊]-위화도, 대마도 조선서쪽변방?
http://blog.daum.net/han0114/17049695 "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이 1776년 이전에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별집 제18권 변어전고(邊圉典故) 서변[西邊]편에 나타나는 기록을 참고하여 개진한 결과 한반도 서변에 위치한 역사명칭들이 제각기 따로 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위 기록이 전하는 지명들을 하나하나 보면 압록강은 아시다시피 약간 기울어져 있지만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라서 서변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학자들은 이를 서변이라 취급하고 알 수 없는 궤변을 늘어놓기가 일쑤였다.

한반도 압록강을 어떻게 서변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한반도 지형 특성상 서변이라 할 수있는 공간이 없다.

압록강은 북변이다.

우리나라 한반도에 경계하고 있는 압록강이나 두만강 모두가 서변이라 할 수 없는 북변이다.

만약 한반도 서쪽에 존재하는 서해(西海 혹은 黃海)가 없고 신중국대륙과 육지가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곳 어디쯤에 경계가 있을 것이고 압록강이 세로로 흐를 때 가능한 이야기다.

또한 이 기록에서 말하길 서변에 경성(鏡城)과 경원(慶源)이란 지명이 있고 그곳에 1406년(태종6) 서북시장 무역소(貿易所)를 개설했다 하였지만 두만강을 중심으로 국경 무역이라 한 것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정확하게 북쪽에 위치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을 서북이라는 설명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압록강 내에 위화도(威化島)위치가 서변이라는 사실 또한 따져보면 앞에 설명한 압록강과 같은 이치에서 철저하게 어긋난 것이며 또한 서변이라는 공간도 없음에도 마치 서변에서 들락거렸던 중국인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조선인과의 관계 설정을 이야기 하는 것도 현 한반도 위치로는 설명이 불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서변에는 일본이라고 하는 왜국(倭國)이 존재했다고 하니 어찌 황당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 지도에도 명기하였지만 온통 한반도 서남쪽 목포지점에서 서변을 가늠할 수 있는 공간이랄 것이 없다.

모두 바다가 아닌가.

그럼에도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대마도가 서변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더하여 일본통신사가 서변으로 들락거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현재 오키나와라고 하는 유구국(琉球國)역시 대조선(大朝鮮)서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한반도 지형상황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한 것이다.

한반도가 마치 밀가루반죽처럼 수시로 이렇게 저렇게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해괴망측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역사기록들이 그나마 아직 남아 있어 한반도 역사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을 감쪽같이 숨기고 한반도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지금까지 한반도 식민지역사를 광변하고 있으니 기존 강단역사학자들이 어찌 한심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 손가.

이런 형편이니 어찌 내나라 역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재차 이야기 하지만 한반도 지형으로서는 서변이라는 설정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이 1776년 이전에 완성시켰다고 하는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 엉터리란 말인가.

전체 흐름의 역사 사실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어찌 지형과 자연이치를 배반하면서까지 엉터리로 기록할 수가 있겠는가.

위에 열거한 서변에 존재했다고 하는 압록강, 위화도, 서북무역소, 중국인이라고 하는 고려의 참위치, 그리고 일본이라는 왜국, 대마도, 일본통신사가 출입한 곳, 그리고 현 오키나와가 유구라고 하는 유구국의 위치등은 결국 한반도 서쪽 서해(西海, 黃海)의 한 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다.

말문이 막히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적은 여태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한반도 역사 펙트논쟁에서의 종결자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서변에 존재했다고 하는 왜국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세밀하게 기록에 접근해보았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日本)은 왜국(倭國)이라 하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동서(東西)에 분리되어 존재했을 가능성을 위 기록에서 분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것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데 하나는 고려동쪽에 있었던 왜(倭)와 조선 서변에 있었던 왜(倭)가 존재했다는 것이며 고려와 조선이 동시대에 존재한 것이라면 분명 왜국이 동서 두 곳에 존재한 것이 된다.

혹 동서 모두를 일본으로 불리었을 가능성과 아니면 한쪽만 일본으로 불리었을 가능성이다.

동시에 왜국으로 불리었을 것이란 가정이 있지만 왜란 명칭에는 많은 종류의 서양세력들이 내재된 것으로 종교, 문화, 언어, 종족 또는 민족별로 최종 분리되어 존재하였지만 대조선에서는 통칭하여 왜 또는 일본으로 불리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아다시피 유럽국가들이 근세기에 우후죽순처럼 생성된 국가명들이 이러한 틀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제 조선과 일본의 지형을 말하는 것을 살펴보자.

조선 비변사가 편집한 비국등록(備局謄錄:1617-1892)에 일본이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데 비스듬히 뻗은 지세가 우리나라 동해와 서로 맞먹는다(日本在我國之東 橫亘之勢與我東海相値)했고 횡단(橫亘)이란 단어를 기존 번역에서 비스듬하게만으로 번역했지만 횡단의 바른 뜻은 가로 걸쳐(橫亘)있다는 것이며 횡으로 누워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한반도와 열도 지형세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동해와 서로 맞먹는다 하여 비슷하게 바로 서있다고 꿰맞추었지만 상치(相値)라 함은 서로 겹쳐있다거나 어긋난다는 의미로서 삐딱하게 누워있다는 이야기로 풀어 볼 수 있다.

즉 한반도가 남북이 곧바른 지형이라면 열도는 대칭적인 것을 벗어나 삐딱하게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어긋나게 있다는 의미가 더 보태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와 비교하면 위 그림에서 일본위치방향을 그렸듯이 역 방향이어야 맞다.

이와같이 방향에서 볼 때 북아메리카대륙을 기준으로 한다면 쿠바 섬의 방향과 거의 같은 것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대마도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보면 대마도의 머리는 부산에 접해 있고 꼬리는 거제도 등의 땅과 마주 대하였다(對馬島首接釜山 尾對巨濟等地)라 하였으며 바람이 세게 불고 약하게 부는데 따라 어떤 때는 영남에 정박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호남에 정박하기도 하여 배를 대는 곳이 일정한 곳이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된 사실에서도 냉정하게 풀어보면 현 대마도의 지형에서 머리가 부산에 접했다고 할 수 없고 거제도와 꼬리가 마주대하였다고도 할 수 없는 한반도 지형과 현 대마도를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또한 전혀 부합되지 않는 기록임을 알 수가 있다.

태풍이 불어 불시에 정박할 사정일 때 현재 지형상 대마도가 영남지역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영남지방에 정박이 가능하지만 호남지역까지 가기에는 상대적으로 너무 멀기 때문에 같은 조건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것도 일치하는 것이 없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전하는 기록들이 현재 지형과의 동떨어진 상황을 말하고 있는데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역사 근원이 한반도를 기반으로 하는 삼한역사가 이토록 지형 설명이 엉터리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존 역사기록과 일치해야할 한반도와 열도의 지형관계가 이렇듯 어긋나 있다는 것은 현 위치가 그 기록이 말하는 진정한 역사장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역사위치가 잘못되어 기록이 따로 놀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 말하고 있는 역사장소는 현 한반도가 아니며 서변에 존재했던 왜국이나 대마도가 열도에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허목(許穆:1595-1682)이 편찬한 미수기언(眉叟記言:1674)에는 흑치(黑齒)라는 일본의 왜(倭)가 창해(滄海)동쪽 발해(渤海)밖에 있다(黑齒者 東海蠻夷之國 在滄海東渤海外 亦曰日本之倭)하였는데 이것은 이미 본 블로그 글"붕어(鯽魚:carassin, carrushens)를 찾으니 발해(渤海)가 보인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4"에서 발해는 북아메리카대륙 오대호를 중심으로 동쪽에 치우쳐 있었다 하였고 발해 동쪽 밖이라면 메인주가 소속이 된 뉴잉글랜드라 한 것이다.

해동역사 속집 제9권 지리고(地理考) 9, 발해(渤海)편을 보면[신당서]발해열전을 인용하길“동경 용원부의 동남쪽 바닷가는 일본도(日本道)이다.” 하였는바, 그 지역은 지금의 조선동쪽 경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동경용원부라 함은 뉴욕주정도가 될 것이다.

본 블로그 글"철(鐵:iron)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2"에서 동북지방의 생여진(生女眞)은 고려 함경도일대에 걸쳐 거주한 동여진(東蕃)을 말하는 것이며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주를 합하여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 하였다고 밝혔던 바가 있다.

이것은 지극히 고려를 추종하던 여진세력으로써 잉글랜드 생성과 맞아떨어진다.

이를 왜국이라 하거나 나중에 일본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조선 서변의 왜국과는 동일하게 볼 수가 없다는 것으로 또 하나의 왜국이 존재했음도 알 수가 있다.

소위 서남지방에 살던 여진을 숙여진과 생여진의 구분이다.

왜기(倭記)에 기록을 보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왜국(倭國)이 조선과 그 사이에 오대해(五大海)가 막혀 있어서, 4천리(1,632키로)나 된다고 하였으며 만약 크고 작은 계절풍인 신풍(汛風)을 만나면 5일이면 갈 수가 있다 하였다.(倭與朝鮮隔五大海 名四千里 若逢大小迅風 五六日可至)는 이야기가 있다.

왜국과 조선을 막고 있는 것은 현재 동해라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오대해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오대호(五大湖:Great Lakes)이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지금까지의 글쓴이의 노력이 헛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치밀한 분석에 의해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여진이었다.

이 생여진은 발해를 찾게 만들었고 이어 뉴잉글랜드가 생여진임을 알게 되었으여 비로서 오대해(五大海)가 정확하게 왜국과 연결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현 한반도와 열도의 지형 관계를 보면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할 수밖에 없음에도 이렇듯 꿰맞추다보니 백일하에 탄로가 나버렸다.

괜히 어렵게 찾을 수밖에 없었던 한반도 역사 모순의 이유가 이렇듯 식민지역사의 무리한 꿰맞추기와 역사조작이 이루어진 결과로서 우리에게 전혀 불필요한 난해함과 혼란만을 주었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하는 식민지사(植民地史)가 이렇듯 어디에서 맞지 않는 모두 엉터리라는 사실이 명명백백 밝혀지고 말았다.

글쓴이는 대조선의 서변이라고 하는 서쪽 경계와 동쪽, 양쪽에 일본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이를 일본이라 하지 않고 왜라 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한편으론 중세기 영어를 사용하던 여진이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는 오히려 일본보다 폭넓게 사용했을 것이며 나중에 점차 조직이 국가로 변모해가면서 왜국이나 일본으로 불리며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근세기에 인종, 종교, 문화, 언어별 수많은 국가가 생성될 때 서양국가라는 것들은 모두 왜(倭)명칭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세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정확한 세계삼한역사관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쪽에는 뉴잉글랜드로 통칭될 수 있고 서쪽이나 남쪽에는 멕시코 또는 네덜란드계 독일, 오스트리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그곳은 전부 코리아의 영역이다.

또 한가지 더 참고할 것은 신유한(申維翰:1681-1752)이 쓴 해유록(海游錄:1715)에 따르면 수(隋)나라 대업(大業)연간에 왜황(倭皇)이 사신을 보내 국서(國書)를 전했다는데, 그 국서에, “해 뜨는 곳의 천자는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隨大業中 倭皇通使書云 日出處天子 致書于日沒處天子)”라 하여 왜황(倭皇)이 동쪽에 있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즉 일본왕은 동(東)쪽에 위치하였고 서(西)쪽에는 수(隨)나라가 위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열도를 해뜨는 곳이라 하고 동아시아대륙 신중국 땅을 해지는 서쪽이라 했다는 말은 현 역사에서조차 그러한 언급자체가 없는 것이어서 대입자체가 불가하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좀 더 확대해보면 해뜨는 쪽이 북아메리카대륙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기에 남아메리카대륙 동부가 본래 해양세력들의 본거지라 할 때 대입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海游錄)은 결국 동아시아대륙 역사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따져보니 기존 역사가 참으로 우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하여 오늘날 역사가 이토록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는지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의심케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무리를 하기위해 간단하게 서변(西邊)을 바르게 정리가 필요가 있다.

현재 황해나 대한해협처럼 바다가 아니라 육지나 강(江)에 접변해 있는 것을 말하는 서쪽 변방이라는 서변은 서쪽의 변두리, 서쪽 부근 근접해 있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이고 한반도 처럼 서쪽에 큰 바다와 같은 넓은 경계지역을 두고서 서변이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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