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화기삼(花旗蔘)은 고려인삼인가.

한부울 2017. 7. 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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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삼(花旗蔘)은 고려인삼인가.


글쓴이:한부울


1.화기삼(花旗蔘)에 대한 지형적 고찰

2.고려인삼과 아메리카인삼의 동일한 역사 위치

   개마고원(蓋馬高原)을 찾아
3.재배인삼 아메리카인삼의 역사 배경
4.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란 무엇일까?
5.아메리카인삼과 금강산인삼의 가변성
6.각종 인삼의 근원지와 학명의 모순

7.아메리카인삼과 고려인삼의 대체성
8.마무리


1.화기삼(花旗蔘)에 대한 지형적 고찰


화기삼(花旗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백과사전을 보면 화기삼(花旗參)을 동양삼(東洋參) 또는 관동삼(關東參)이라 하고 이것을 외국삼이라 명하면서 또한 서양삼(西洋蔘)이라 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진다.

동양삼이라 하고 동시에 서양삼이라 하는 것은 현 동서양 구분하는 역사상황아래 과연 가능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할 정도이다.

화기삼은 꽃의 깃발을 사용한 국가나 단체의 소속된 인삼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명칭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하지만 화기삼을 서양삼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도대체 광동삼이라 하고 동양삼이라 했다는 사실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글쓴이가 오래전부터 기존 근대사를 의심하고 보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산재되었다고 보기 때문인데 서양인들의 지나치게 삐뚤어진 서양역사 위주의 이기적 판단이며 오리엔탈리즘을 폄훼하는 저변에 깔여있는 그들만의 우월주의식 개념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현 아시아민족 즉 동양인들에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서양인들에게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반론적인 명칭이기도 하다.

서양역사를 보면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듯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겐 족쇄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세들이 만든 근대사가 생성되고 난 후 서양인(西洋人)들은 불필요할 정도로 오리엔탈역사문화를 배척하고 폄훼하거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인데 이것을 글쓴이는 그러한 족쇄가 그들에게 상존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던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삐뚤어진 생각들은 동양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했거나 아니면 서양역사 역시 동양 즉 오리엔탈문화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서양인들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용어에 상당히 민감하고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서양문화가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1935-2003)의 1978년 저서《오리엔탈리즘》에서 언급하였듯이 "서양인들이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사고양식"이라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양문화를 필요이상으로 깍아내려 그들 발밑에 두려 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글쓴이가 처음부터 서양역사전체를 의심하고 보는 것과 같고 세계삼한역사연구에 결과에서도 이와같은 그들만의 맹점을 밝혀 알 수 있었듯이 글쓴이의 주창한 것과 결론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즉 서양역사가 태동하는데 동양역사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으며 동양역사가 아니면 그들 역사가 완성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보기 때문에 서양역사학자들은 이런 면에서 상당한 열등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화기삼을 관동삼(關東參), 동양삼(東洋參)이라 하면서 서양삼(西洋蔘)이라고 동시에 명칭한 사실은 무엇인가 뚜렷이 서양삼이라 할 수 없었던 근본 원인이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위 여러가지의 이질적인 명칭들이 “하나의 인삼”을 지칭하였다는데 일단 놀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것이 기존 근대사를 바탕으로 하는 생물학적 판단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솔직히 현 동아시아역사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글쓴이가 주장하는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풀어 본다면야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하나하나 풀어보자.

먼저 광동삼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동양적이며 중국영역적인 문제의 지명이다.

마찬가지로 관동(關東)이라는 지명역시 지극히 동양사학적인 요소가 많다는 사실에 집중해본다.

여기서 한가지 전제 할 것은 관동(關東)은 발음상, 표의(表意)상 기준점이 역사변천으로 급속하게 변하면서 근세기에 지명이동과정에서 광동(廣東)으로 왜곡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할 수가 있다.

현재 신중국의 지명에서 광동은 넓다는 의미와 동남으로 바다가 둥글게 감싸 안은 것처럼 모습이며 또한 광(廣)은 주로 인명(人名)에 쓰인다 했으며 폭이 넓다, 수량으로 넓이 등으로 쓰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만 두고 보면 동아시아대륙의 광동과 북아메리카대륙의 광동의 모양이 거의 대칭적인 면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돌아가 관(關)은 특히 한반도에서는 령(嶺)과 같이 사용하는데 거대한 산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역사적 관념일 것이지만 왜그런지 알 수 없지만 작은 고개 등으로 축소시켜 적용하는 것도 원래 지명의미와 비교해 볼 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관이 쓰이는 것은 어디를 가거나 왕래할 때에 반드시 지나는 길의 경계 문(門)빗장이라고 하는데 이설이 없다.

령(嶺)을 한반도 지형에 맞게 '고개'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은 분명 넓은 영토에 적용하던 것임에도 한반도와 같이 동서가 좁은 곳에 적용이 되면서 의미가 축소되어 나타나고 있다는데 문제의 소지가 큰 것이다.

이러한 점은 누차 본 블로그에서 지적한 문제이다.

관의 본질은 연산(連山) 혹은 잇닿아 뻗은 산줄기로 해석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이고 또한 산맥이 아니면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이라고 글쓴이가 수차 이야기 했다.

예를 들어 관동대지진이란 명칭에서의 관동(關東)이라 함도 이와 같은 것으로서 현재 일본열도 동부 즉 동경(東京)서쪽에 무질서하게 운집해 있는 산들을 기준으로 지칭하는 관(關)이라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 꿰맞춘 듯하고 지형 모양에서 연산이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며 선이 굵게 들어나는 산맥 같은 것을 그곳에서 근본적으로 찾을 수 없다는 문제가 명쾌하게 지적되는 사실이다.

신(新)중국대륙에서도 보면 동쪽의 중원으로부터 서쪽의 협서(陝西)관중(關中)으로 통하는 관문이라 하였는데 중원이라 함은 천자의 직할령과 그 주변 사방의 봉건제후 영지 기(畿)까지를 말하는 것으로써 전통적으로 황하(黄河)의 중류(中流)와 하류(下流)지역을 찾을 수 있고 그리고 지금의 하남(河南)성 대부분과 산동(山東)성 서부(西部) 및 하북(河北)과 산서(山西)성 남부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이라 하고 있지만 현 신중국 지형인 동아시아대륙을 엄밀하게 따진다면 산맥이 북쪽으로 몰려 있는 것과 평지가 동쪽으로 치우치면서 황하강이나 양자강의 횡 폭을 넓게 만들어 강의 횡 폭 넓이 만큼 강남(江南)을 모호하게 만들고 명확하게 지명을 찾기가 힘드는게 사실이다.

중원과 강남은 실과 바늘 같은 지명이라 할 때 현재 강남을 강남이라 하지 않았다면 과연 강남지명을 제대로 찾을 수가 있었을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다.

이와같은 사실을 기존 재야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륙사관에도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볼 이야기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말하는 관동(關東)을 보면 고구려(高句麗)로 귀속된 예맥(濊貊)땅이라 하였고 강원도(江原道) 횡성(橫城)이라한 삭주(朔州)와 강릉(江陵)이라하던 명주(溟州)를 말하고 있으며 더 세밀하게 영서(嶺西)와 영동(嶺東)이라했고 고려(高麗) 성종(成宗)때는 서울 경기를 관내도(關內道:995-1106)라 하면서 이동[以東]지역의 땅을 강원도(江原道)를 말하면서도 관동(關東)이라 하였던 것에서 중간에 관서(關西)가 어중간하게 뭉쳐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뭉쳐 있다는 말은 지명들이 한반도 횡폭이 좁기 때문에 겹쳐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 지형이 왜 역사서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이러한 지형 한계점이 곳곳에 상존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예를 들어보면 바로 우산국은 명주(강릉)에서 정(正)동쪽에 있는 해도(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라 하였지만 우산국을 울릉도라 할 때 정동(正東)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울진(蔚珍)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전혀 맞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관(關)을 태백산맥(太白山脈)을 경계로 하더라도 동쪽을 영동(嶺東), 서쪽을 영서(嶺西)라 한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강원도 강릉시(江陵市)와 평창군(平昌郡)사이에 있는 고개, 대관령(大關嶺)을 기준으로 동쪽을 영동이라 하고 서쪽을 영서라 하는 것은 급한대로 만든 것에 불과할 뿐이다.

때문에 동아시아대륙에 존재하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는 관(關)이라고 하는 실체의 지명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우가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지스러운 것이다.

역사문제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입각하여 바라 볼 때 관(關)은 거대한 산맥을 통과하는 관문을 말하며 앞에서도 설명한 것과 같이 관(關)은 빗장, 잠그다, 막다 등으로 국경이나 국내 정치, 문화, 교통, 군사 따위의 핵심이 되는 곳 요지(要地)의 통로에 두어서 외적을 경비하며 그 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 등을 조사하는 곳으로 예부터 이런 목적으로 쓰였다는데 중대성이 있다.

한반도에서 지명이 잘못 쓰이고 있는 문제는 여러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본 블로그 글 "철(鐵:iron)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2"에서도 지적했지만 고려(高麗)때는 지금의 철령에 관문 철령관(鐵嶺關)이나 행정기구 명칭의 직할지(直轄地)인 철령위(鐵嶺衛)를 두었다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점령주체가 그곳 자원이나 인적이동량이 풍부했거나 요지의 땅이기 때문에 이을 관할하고자 한 것임에도 현 한반도 지형상황은 이와 같은 역사사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형태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철령(鐵嶺)이라는 지명에서 살펴보았듯이 근원적으로 철광석(鐵鑛石:iron ore)이 무진장 생산될 수 있는 지역이라야 하지만 한반도에 지정된 곳에는 풍부한 자원이랄 것이 없는 곳이다.

명조(明朝)때 기록은 어떤가.

압록강 상류(上流)라 함은 험준한 산맥이 빽빽이 들어서 물살이 급속한 곳임을 알 수 있고 압록강 서안이라 하는 것은 강 흐름이 현 한반도 지형처럼 가로, 횡이 아니라 상하, 세로로 흐르는 강을 말하는 것인데 압록강 서안일대(西岸一帶)에 철령(鐵嶺)을 두었다 함은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공간 속에 요동이존재하며 철령 서쪽에 또 다른 물길 요하(遼河)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유추할 수가 있다.

역사적 현실문제에서 반드시 감안해야 할 지형 상식 중에 당조(唐朝)를 지나 원조(元朝)에 이르러 원조(元朝)의 영토가 압록강을 넘어 남방까지 도달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사실에서 보더라도 남방이라는 지역을 오늘날 동서(東西) 폭이 좁은 한반도에 적용하게 되면 꼼짝없이 평양(平壤)이나 한성(漢城)까지 지척거리에 있어 이 때문에 온통나라가 늘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된 듯 오해가 따른 것이다.

실제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허허벌판 또는 대초원이었을 가능성과 압록강 남쪽에 곧바로 내려가면 평양이나 서울을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없는 역사상황에 대한 대사고전환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한반도 역사가 아닌 역사를 충분히 읽을 수가 있다.

만약 세계삼한역사전체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한반도 역사에 들어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피해역사, 자학역사는 애초부터 우리 상식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몇 가지의 지명만 가지고도 기존 역사와 완전히 다른 진단이 가능하다.

1388년 3월 명조(明朝)에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관할지역을 영유하기 위해 철령위(鐵嶺衛)설치를 통고하였으나 이에 맞서 고려에서는 본국이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한 최영(崔瑩)이 중심이 되어 요동정벌론(遼東征伐論)을 제기하였다는 사실에서 볼 때 그 만큼 중앙정부가 철령위를 차지하고자 한 중대성이 존재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이성계가 최영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과연 중화사대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중앙정부의 위엄과 권한을 보호하려 했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우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위치문제에서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요동(遼東)땅의 위치를 추측하게 하는 것은 당시 활에 입힌 젤라딘 성분 아교(阿膠:Donkey-hide gelatin)가 녹을 정도로 기후가 덥고 습해 명확하게 아열대지역임을 알 수 있어 이를 한반도 압록강 이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것으로써 기후학적(氣候學的)으로 보면 몬순기후(monsoon)임을 알 수 있다.

본 블로그 글 "요동(遼東)이 어딘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2"와 연이은 글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에서 기존 동아시아 역사 만의 고착적인 문제점을 지적했고 역사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또 설명을 했다.

어차피 역사가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대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에서 우리가 패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이후의 역사는 삼한역사편이 아니었다.

최후 1945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점부터 한반도 역사가 만들어지고 심각한 조작행위가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관이나 령을 바탕으로 하는, 관동(關東), 관서(關西),  영동(嶺東), 영서(嶺西), 관내도(關內道)등의 지명 위치를 한반도 지형상황에 맞게 만든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한반도 내에 철령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일본역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나(池內宏:Ikeuchi Hiroshi:1879-1952)가 의도적으로 함경도 남부지역을 이야기하였고 반도사학자들은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현 강원 고산군과 회양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685m의 고개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말하면 그것이 역사가 되던 세상이다.

우리는 정보왕조라 하면 무조건 중국이라고 하고 이를 조공정치를 한다하여 속국처럼 이야기 하지만 알고 보면 정치체제가 하나의 체제였기때문에 특수한 관계설정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조와 원조가 그랬던 것처럼 명조(明朝)역시 고려나 조선의 영토를 확보하려는 욕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중앙정부 조정이 고려 혹은 조선을 근거로 정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동일한 역사체제속에서 움직였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식민지 역사는 기어코 이 관계를 종속관계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오히려 근세기에 삼한정치체제를 보고 서양역사학자들이 놀라며 당혹케 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체제속에서 서로 상대개체들을 존중하는 보완관계였을 것이란 사실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식민지역사를 고집하는 한반도 역사처럼 정복왕조라 하여 무조건 종속관계가 지속되었다면 이미 삼한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라진 정복왕조처럼 처지가 똑 같았을 것이 틀림없다.


                           


본래 관내도(關內道)라는 것은 경사 즉 서울이나 경기일대를 지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동쪽을 관동이라 했다는 이야기는 한반도 지형으로 이상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서울경기라 하는 관내도 경계 밖에 기준이 될 만한 산맥이 없고 태백산맥을 지정한다고 해도 관동과 관서의 나눔의 기준으로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과 령(嶺)이 있어 그것을 관(關)의 기준으로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는 사실들이다.

턱 봐도 우스운 것은 위 한반도 조선행정지도를 나타낸 그림사진에 경기도 지명에서도 좌도(左道), 우도(右道)라 하지만 오히려 방향에서 남도(南道)와 북도(北道)라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방향이 뒤틀어져 있다.

또한 관내도(關內道)란 역사지명 역시 좌도와 우도라 한 이상한과 같이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령(嶺)의 기준점이 도대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 등 열거하기 부족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기존 삼한역사를 보면 끊이지 않고 제시되는 관(關)을 중심으로 관북(關北)과 관서(關西) 그리고 관동(關東)이란 지명이 나타나지만 사실상 이것의 구분은 이름 뿐이며 한반도 지형상 삿갓에 양복을 입혀 놓은 것 같이 지형이 지명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실체의 비극이다.


그렇다면 글쓴이는 이 관(關)의 지명을 어디를 근거로 하는 것인지를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애팔래치아산맥을 관(關)으로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하면 정확하게 우리나라 사서(史書)가 말하는 지명들과 거의 일치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애팔래치아산맥 이동(以東)쪽에는 미국의 독립본거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근대사가 화려하게 꾸며진 산업경제가 활성화된 지형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자본이 집중되었던 곳이다.

그곳에 18세기 중엽부터 산업자본주들이 대거 생성한 곳이며 미국독립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13개주가 있고 미국의 경제성장을 선도하던 거대한 도시들이 여기저기 존재하였기 때문에 삼한역사의 서울경기가 그곳에 있었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는 한 나라의 중심지임은 물론이고 북아메리카대륙의 산업혁명지형에서 보다시피 근대 경제가 최고로 활성화된 지역임을 알 수가 있다.

더하여 애팔래치아산맥을 중심으로 온갖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뒤받침하는 것과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곳임을 통계자료까지 확인 할 때 이와 같은 글쓴이의 주장은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예부터 비교적 낙후되었다고 하던 관서(關西)지역에서 몰려드는 인구 이동을 최대한으로 막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한반도에서 관서(關西)라 함은 경기와 서울이 됨과 동시에 어중간하게 해서(海西)라 할 수 있는 황해도까지 얽혀 있어 소외지역인 관서라 하기에는 맞지 않는다.

1624년 관서(關西)지방에 도원수(都元帥) 이괄이 난(李适─亂)과 1811년 관서병란(關西兵亂)의 정주성전투(定州城戰鬪)와 관서괘서사건(關西掛書事件)의 주인공 홍경래가 바로 관서 또는 서북면 출신으로써 반란의 주요원인이었던 지역적인 차별과 중앙진출에서 소외받았던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곳이 바로 관서이다.

한반도역사 지형은 결국 관을 철령관으로 할 때 철령관 서쪽이 관서라면 서울이나 경기가 모두 관서로 오해되어도 할말이 없다.

고려 성종 때의 행정구역인 관내도 서쪽 지역이라는 의미도 무색하게 만든다.

그러니 현실적인 문제에서 보더라도 이런 역사사실들에서 그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는 것은 누가 뭐래도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역이며 분명한 것은 관은 서울과 경기를 보호하는 지명임을 알 수 있어 근대산업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요지임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때문에 관서가 그러하듯 관동은 서울 경기지역이다.

반면 한반도의 관동지역은 산간지방이라 하여 경제적으로도 제일 낙후한 지역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모순을 입증하는 것이다.

거짓 역사이지만 일본 지형을 보면 한반도와 반대로 관동지역에는 버젓이 동경(東京)이 존재한다.

동경이 무엇인가.

고려(高麗)사경(四京)중에 하나인 경주(慶州)이고 낙양(洛陽)이며, 장안(長安)이다.

옛 명 동경이었던 경주는 무려 17만 8936호(약 90만 명)의 인구가 존재했고 당나라 초기에 낙양 인구역시 100만을 넘었다고 했다.

그 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북아메리카대륙 관동지역인 13개주에 초창기 미국의 인구70%가 존재했다는 설명이 있다.

반면 관동이라고 하는 한반도 사정을 보라.

단번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고려(高麗)의 역사를 그대로 놓고 보면 한반도에 있기가 아까울 정도이다.

고려는 문화선진국이었고 우리의 자학적인 인식과 달리 글쓴이의 판단으로 세계제일의 문명국가 이었다는 확신이 있다.

세계 정치, 문화, 교통, 군사적으로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고려종이(高麗紙)와 닥나무(Broussonetia)근원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7"과 "고려금속활자발명과 구텐베르크와의 이상한관계 http://blog.daum.net/han0114/17050475"란 글에서 핵심적인 이야기를 이미 세세하게 설명하였지만 근세사가 하나같이 숨기는 것이고 이중으로 엮은 것이며 오늘날 금속활자발명을 유명서양정치인조차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역사진실, 역사사실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은 고려가 당시 선진문명국이나 선진문화국이었던 사실을 알 수 있고 서양문화가 바로 고려문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그대로 인정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서양인들에게 의도적으로 동양오리엔탈리즘을 깍아내리게 한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글쓴이는 서양인들이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COREA"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인들은 19세기후반까지 COREA 자체역사를 경외했을 것이다.

분명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인면에서나 과학의 진보적 발달과 아울러 물질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나 우월했을 것임을 알 수 있고 때문에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체제가 흔들리기 전까지 그렇듯 뛰어나 선도적인 역할하지 않았다면 비록 흔적, 자취로 남아 있는 거룩하고 훌륭한 이러한 역사기록이 남아 있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지금까지 관(關)에 대한 설명에서 이렇듯 글이 길어진 것은 현 동아시아대륙은 천하없어도 본질의 역사 지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며 화기삼이 광동삼이라 했다는 사실에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했다고 본다.

비록 광동(廣東)이라 했지만 결국 다량의 인삼생산의 위치가 관동(關東)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했다는 것과 즉 북아메리카대륙 애팔래치아산맥을 기준으로 하는 관(關)이라 할 때 광동(廣東)이나 관동(關東)은 절대적으로 위치가 다를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또한 고려인삼(高麗人蔘)이 동서양인 모두에게 귀했다고 할 때 밀무역이 성행했을 것이란 사실은 불 보듯 뻔하고 관리들이 관(關)을 통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값어치가 있는 물건에 대해 급속도로 증가하는 밀거래를 막으려했음도 알 수가 있다.

결국 인삼을 사고팔고 하는 상업자들은 인구밀집도가 높은 곳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사람들이 귀하게 찾는 고려인삼이라면 더욱 그러한 곳에서 이를 찾을 것인데 고려인삼과 대적될 수 있는 인삼 그것은 서양인들이 오매불망하던 실체로서 그들에게 호기의 상품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서양인들은 화기삼이라 하고 독립화했을 것이다.


2. 고려인삼과 아메리카인삼의 동일한 역사 위치


고려인삼이 귀했다고 하고 삼국시대부터 인삼무역이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자연 인삼 즉 산삼(山蔘)만을 가지고 그러한 수요를 충당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반드시 재배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기록이 한반도에 남겨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나 그 외 잡(雜)사서(史書)들 마저도 찾기가 힘든다.

아예 인삼에 대해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맞다.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전부 중국역사를 인용한 것일뿐 한반도 역사자체 사서에는 아예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술이 뛰어났다고 하는 일본에서 조선 생근(生根) 종자를 받아 1727∼1728년경에 재배를 하기 시작했다던 사실에 비교하더라도 역설적으로 고려인삼이 유명했던 만큼 본국 정책이 이러함을 외면할 턱이 없고 최소한의 고려나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재배했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한반도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취약성이랄 수밖에 없다.

宣和奉使高麗圖經 第23券 雜俗2 土産-人參之榦。特生,在在有之。春州者。最良。亦有生孰二等。生者。色白而虛。入藥則味全。然而涉夏。則損蠹。不若經湯釜而孰者。可久留。舊傳形匾者。謂麗人。以石壓去汁作煎。今詢之。非也。乃參之孰者。積垜而致爾。其作煎當自有法也。館中。日供食菜。亦謂之沙參。形大而脆美。非藥中所宜用。又其地。

1123년(인종원년)에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가서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당시에 이미 홍삼(紅蔘)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알려지는데 “인삼의 줄기[幹]는 한 줄기로 나는데 어느 지방이고 있으나, 춘주(春州) 것이 가장 좋다하였고. 또 생삼(生蔘)과 숙삼(熟蔘)두 가지가 있는데 생삼은 빛이 희고 허(虛)하여 약에 넣으면 그 맛이 온전하나 여름을 지나면 좀이 먹으므로 쩌서 익혀 오래 둘 수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란 내용이다.

명확한 내용이 아닐지라도 읽어 상황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의 사서(史書)가 되어버린 고려도경을 통해서만이 이러한 간단한 사실 조차도 빌려 확인해야만 할 처지이니 우리의 역사가 온전하다 할 수가 결코 없다.


                                               [동아일보 1922.02.20 일자 컬럼]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고려인삼에 대한 우리 사서의 기록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위 사진은 1920년 2월 20일자 동아일보 컬럼기사인데 여기에 고려인삼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여 참고겸 이를 풀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世界一(세계일)의高麗蔘(고려삼) 專賣局高武事業課長談(전매국고무사업과장담)

1922년 02월 20일

인삼(人蔘)은 옛날부터 중국의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영약(靈藥)으로 성대하게 사용하였고 세계인삼(世界人蔘)의 소비지로 유명하지만 일본(日本), 미국만주(米國滿洲)의 인삼은 일반한약(一般漢藥)으로 재배하는 것이고 조선산(朝鮮產) 소위 고려인삼(高麗人蔘)은 일상음료증답용(日常飮料贈答用)으로 부호대관(富豪大官)사이에 상비되는 것인바 지금(今)에 중국(中國)의 수용상태를 보면 미국산(米國產) 수출량16만근, 1근이 20원(圓)내외이고 일본산(日本產) 수출량14만근, 1근5원(圓)내외이며 조선산(朝鮮產) 수출량3만근, 1근 150원(圓)내외이며 만주산(滿洲產) 수출량16만근, 1근의 8원(圓)내외 우(右)와 같아 수출량의 보면 최하위이나 가격으로 말하면 즉 기 품질(品質)과 공히 세계제일(世界一)이라 이와같이 그것은 이름이 높은 것에 반하여 한편 부정상인(不正商人)이 미국(米國) 또는 만주(滿洲), 일본산(日本產)으로 소위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 하여 판매하는 염려가 있어 융희2년[隆熙二年(1908)]즉 명치41년(明治四十一年) 이후 당국은 이를 관영으로 하고 개선하여 대정9년(大正九年:1920) 홍삼전매령(紅蔘專賣令)을 발하여 경기도(京畿道)개성군(開城郡), 장단군(長湍郡), 황해도(黃海道) 김천(金川), 평산(平山), 서흥(瑞興), 수안(遂安), 황주(黃州), 봉산(鳳山)과 평남(平南) 중화군(中和郡)의 각 주요산지에 이를 적용하였으니 개성(開城)에 홍삼제조소를 설치하고 홍삼생산량(紅蔘產額) 3만근(三萬斤)을 제조하여 약 이백만원(二百萬圓)과 홍삼분말(紅蔘粉末) 그리고 삼정(蔘精)의 소량을 얻었으며 기타 함경북도(咸鏡南北)를 제외하고 전매구역(專賣區域)외의 생산을 합할 때 약 삼백만원(三百萬圓)의 수확이 있을지며 또한 전매국(專賣局)은 홍삼제도 원료가 되지 않는 所白蔘(소위백삼)은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에 판매하게 하여 판매자는 근거지인 개성은 물론이고 조선내 전부(朝鮮內全部)와 일본은 동경(東京)을 필두로 대판(大阪), 나고야(名古屋), 북해도(北海道), 사국(四國), 구주(九州)에 판로를 있게 만들었는데 홍삼(紅蔘)은 1910년(明治四十三年) 이후 삼정(三井)과 특약(特約)이 성립되어 현재 삼정(三井)의 총판(總販) 즉 독점판매(都庫)가 되었는데 최근 이미 삼정(三井)은 판로확장을 잃어버린 상태임으로 이밖에 경작평수(耕作坪數)를 넓히지 아니할 것이지만 원래 그치지 않는 상인들의 견제책(牽制䇿)이었음으로 이익(利益)은 칠팔십만원(七八十萬圓)가량 이겠지만 어찌하였든 삼정(三井)으로 상해(上海) 즈푸(芝罘:煙臺), 광동(廣東), 반곡(盤谷) 랭군(Rangoon:蘭貢), 대북(臺北各地)에 분투하는 것은 이제까지 약학적효능(藥學的効能)의 증명이 불가능했지만 전통적으로 기 정력(精力)을 증강시키거나 혹은 엑쓰(X) 외과적효능을 인정함에 따라 모르던 사람도 상당히 이해가 있어 하지만 아직 수출되지 못한다고 한다.[정리 한부울:2017.07.05]


본래 인삼(人蔘)은 옛날부터 중국의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영약(靈藥)으로 사용되면서 중국이 세계적인 생산지가 아니라 소비지(消費地)로 유명했다고 말하고 있어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것은 중국이란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의미가 있고 그저 하나의 도시 정도로 축소되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인삼 종(種)에는 일본인삼(日本인삼)과 미국만주(米國滿洲)인삼은 일반한약(一般漢藥)으로 재배하고 조선산(朝鮮產) 소위 고려인삼(高麗人蔘)은 일상음료로 서로 주고받는 선물용으로 부호대관(富豪大官)사이에 일상적으로 상용되는 것이라고 명확히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여기서 축약 할 점은 일본인삼, 미국, 만주인삼은 재배인삼임을 알게 하고 고려인삼은 그런언급이없어 자연산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위 기사는 특별하게 1920년경 구체적으로 인삼물동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산(米國產)은 수출량이 가장 많은 16만근(萬斤)인 반면에 가격은 1근이 20원(圓)내외이고, 만주산(滿洲產)은 수출량16만근에, 가격이 1근의 8원(圓)내외이며, 일본산(日本產)은 수출량14만근에 가격은 1근 5원(圓)내외로 나타나 비교적 재배인삼으로 상당량을 수출하였음을 알 수가 있고 1근당 가격은 이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미국산(米國產) 20원이라 하였다.

이와 비교하여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조선산(朝鮮產)은 수출량이 3만근(萬斤)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1근당 가격은 미국산 약 7배보다 높은 가격인 150원(圓)내외라 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조선산(朝鮮產)은 소량의 수출에서 수요가 많아 어마어마하게 높은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부호대관들의 선물용으로 귀하게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세계제일의 인삼을 고려인삼임을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고려인삼(高麗人蔘)을 조선인삼이라고 하면서 일제는 1928년부터 브랜드(brand)화하여 고려인삼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1930년대 삼정(三井)무역회사 고려인삼광고]


장사꾼들은 이를 이용해 미국산, 일본산, 만주산을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 속여 팔기 때문에 1920년부터 홍삼전매령(紅蔘專賣令)을 발효하였고 경기도(京畿道) 개성군(開城郡)외 주요산지에 이를 적용하면서 개성(開城)에 홍삼제조소(紅蔘製造所)를 설치하여 주요산지에서 인삼 유출을 막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려인삼 즉 조선삼(朝鮮蔘)의 수삼으로 만든 홍삼은 본래 1895년(고종 32년)에 포삼(包蔘)법을 공포하였고 이미 전매법(專賣法)에 대한 바탕이 되었는데 대신 홍삼으로 쓸 수 없는 백삼(白蔘)은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에서 조선과 일본내지까지 판매하게 하였다는 것도 자료로 통해 알 수 있다.

아래는 고려인삼을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한 신중국 위키자료이다.

高丽参自古就有“一根高丽参如一串宝石”和“百草之王”的说法。高丽参含有34种人参皂苷成分远高于花旗参(13种)和三七参(15种)。另外人参皂甙 Ra、Rf、Rg3、Rh2为高丽参独有成分。

예로부터 한 뿌리의 고려인삼은 한 꿰미의 보석과 같다 하였고 동시에 온갖 풀의 왕(百草之王)이라 하였다.

从土中挖出的新鲜高丽参含有很多的水被称为“水参”是高丽参加工的原料。加工好的高丽参分

为红参、白参和太极参三种。

흙속에 채취하는 신선한 고려인삼에 물이 포함되었다고 칭하길 이를 수삼(水蔘)이라 하는데 이것은 고려인삼 즉 홍삼(紅蔘)의 원료라 한다.

红参是将水参热蒸、烘干后呈现红褐色的人参。高丽红参是人参皂苷含量最高的高丽参。如果不加说明,高丽参一般指代高丽红参。

홍삼은 수삼을 뜨겁게 열처리하는 것으로 불에 말리면 홍갈색으로 나타나고 고려홍삼은 인삼에 가장 높은 진세노사이드가 함유되었다고 알려지지만 설명이 불가하다 하였으며 성분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高丽参含有34种人参皂苷成分远高于花旗参(13种)和三七参(15种)。另外人参皂甙Ra、Rf、Rg3、Rh2为高丽参独有成分

고려인삼에는 인삼이 함유하고 있는 사포닌(Saponin)성분을 34종(種)이나 가지고 있으며 화기삼(花旗参)은 13종(種), 삼칠삼(三七参)은 15종(種)이고 그밖에 Ra, Rf, Rg3, Rh2 사포닌(Saponin)화합물은 고려인삼만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다고 하고 있으니 그 만큼 화기삼이나 중국인삼보다 약효가 월등하다는 이야기임을 알 수가 있다.

按照大小和质量,高丽参可以分为“天参”、“地参”、“良参”、“切参”和“尾参”五个等级。“天参”外形好,呈人型,有两个明显的粗支根,内部组织细密,是高丽参最高的等级。“地参”是仅次于“天参”的等级,外观呈人型有1-3个支根。“良参”外观略像人型,支根不发达,横切面有中心白或镂空。“切参”是高丽参主根切成的片。“尾参”是高丽参的支根。按照大小“尾参”可分为“大尾”、“中尾”和“细尾”。

약효가 이와 같아 품종을 세분하였는데 고려인삼의 등급에서 크기와 질에 따라 천삼(天参), 지삼(地参), 양삼(良参), 절삼(切参), 미삼(尾参) 5등급으로 나누는다.

천삼(天蔘)은 전체적 외형이 인체를 닮아 뿌리가 2가닥 또는 3가닥으로 다리를 연상시키는 것이 특징이며 X Lay 투시에서 내용조직에 구멍이 없고 치밀(세밀)하고 이것을 고려삼의 최고 등급이다 했으며 지삼(地蔘)은 1-3개의 뿌리가 좀 가늘고 외형이 인체를 닮아 조직의 치밀성도 천삼보다 못한 것이고 양삼(良蔘)은 외형에 흠집(뿌리가 덜 발달되고 횡단면중심이 희거나 누공이 있는 것이 있고 지삼보다 약간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며, 절삼(切蔘)은 뿌리를 떼버리고 몸통을 2등분한 것이고 미삼(尾蔘)은 홍삼제조과정에서 떨어진 뿌리를 말하는데 이를 나누길 대미(大尾), 중미(中尾), 세미(细尾)라 하였다.

이상 우리나라 자료가 아닌 거의 다른 나라 자료에서 그나마 고려인삼의 품질을 확인 할 수가 있다.


개마고원(蓋馬高原)을 찾아


그렇다면 과연 고려인삼이 생산된 역사적인 지역은 어딜 말하는 것일까?

[한국생활사:김용만]자료에 따르면 537년에 양나라 숙자현이 쓴 남제서(南齊書)‘고려전(高麗傳)’에는 “고구려에서는 은산(銀山)에서 은(銀)을 채취하여 재화로 삼았고, 인삼과 담비가죽 또한 그러하다.”는 기록으로 고려인삼이 세상에 알려진 시기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렇듯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우수했던 고려인삼의 원산지 문제를 따져보면 우리가 이해 못할 이야기가 많다.

여기서 한가지 더 부연할 것은 바로 담비가죽인데 고려가 대표하는 담비가죽의 원산지가 어디라 했던가.

본 블로그 글 "담비(貂:Martes)로 본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위치
http://blog.daum.net/han0114/17049856"에서 평안도(平安道)와 함경도(咸鏡道)라고 알려진 현재 캐나다 영역 동에서부터 서쪽까지 지역이라 하였다.

이를 가만히 돌아보면 서양인들이 최초로 만주라 했던 곳이 아닌가 한다.

만주에 대해 따로 이야기 하겠지만 만주는 근대적 지명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청나라 생성과 맞물려 있다.

즉 여진터전이 곧 만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수조(隋朝) 한원(翰苑)의 고려기(高麗記)에는 마다산(馬多山)에 인삼이 많이 산출된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과 일반적으로 고려인삼의 자생지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만주, 연해주일대라 한 사실에서도 마다산을 현 개마고원(蓋馬高原)이라 하지만 이를 글쓴이 만큼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한반도 지붕이라는 蓋馬(개마)고원을 또 다른 이름으로 마다산이라 한 것을 보면 말이 많은 산, 즉 말이 뒤 덮여 있는 고원이라고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허목(許穆:1595-1682)의 시문집 기언[記言] 제30권 잡편 / 변새(邊塞)편에 보면 東女眞。靺鞨遺種。高句麗部落。地方三百里。東極于海。西至蓋馬山。南接于長,定二州地。本句麗舊地。라 하였는데 "동여진(東女眞)은 말갈(靺鞨)의 후손으로 고구려(高句麗)에 속한 마을이었다. 땅이 사방 300리로, 동쪽으로는 대해(大海)에 닿고 서쪽으로는 개마산(蓋馬山)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장주(長州)와 정주(定州) 두 고을을 접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이다."라 하여 동여진과 대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곳에 개마산이 있었고 또한 마다산이라 한 것이다.
만약 개마가 정말 백두산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1945년 이후 한반도에 만들어진 지명임을 알 수 있고 옛 개마에 대한 위치는 분명 동쪽과 대해에 맞닿는다 하였으니 조선 서북쪽에 있어야 할 백두산이라 하는 것과는 맞지 않는 설명이다.
한반도 백두산 지명을 붙이기 위해 개마고원을 끌어들였던 것이고 이 글에서 고려기(高麗記)에는 마다산(馬多山)에 인삼이 많이 산출된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과 또한 말이 많은 산이라는 의미가 본 블로그가 증명한 것처럼 훨씬 더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의 또 다른 개마라는 것은 엉터리다.



개마고원이라 함은 바로 마다산이라 하였으니 말이 많은 산이다.

캔터키주 동부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 of Eastern Kentucky)에 접해 있는 고원으로 여기서 마운틴 플레저 호스(The Mountain Pleasure Horse)란 말이 존재하는데 애팔래치아산맥의 원시 동물 유형으로서 밝혀지고 유전자테스트 결과 테네시보행말(Tennessee Walking Horse)과 로키산맥말(Rocky Mountain Horse)이 섞여 승마용인 아메리칸 새들브레드(American Saddlebred)로 나타난다 하였으며 이 혈통은 현재 180년 이상 추적이 가능하다라고 한다.
이상에서 알단 보더라도 고려인삼의 근원지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분명 한반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새롭게 인지해야 할 것은 바로 개마고원의 실체이다.

개만고원은 바로 마운틴 플레저이다.

또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존 중국사에 나타나는 기록에는 일반적으로 1500년전부터 고려인삼의 주요산지가 개성이라 하였으며 개성인삼(開城人蔘)을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 한 사실과 서긍(徐兢: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보면 고려 인삼의 줄기는 한줄기로 자라나며, 어느 지방에나 있는데, 춘주(春州)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한 것과 청주(清州)의 상당산성(上黨山城)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늘상 중국 사서로 보고듣고 있는 산서성(山西省)의 인삼이 좋아 상당삼(上黨蔘)이라 한 것과 역사성이 결코 다를 수가 없다는 것이며 이것들을 동일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상당삼(上黨蔘)은 비록 당조(唐朝)때 절멸했다고 하고 현재 이를 만삼(蔓蔘)이라 하면서 인삼이 아니라고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의혹이 짙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7세기 초 고구려(高句麗)는 현 조양시라 하는 요동성(遼東城) 유성(柳城)지역에는 한번에 2만 명의 돌궐 상인단(商人團)을 맞이할 수 있는 거대한 국제시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고구려에 인삼원산지가 그로부터 가까웠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를 현재 한반도 동북부와 만주, 그리고 연해주일대라고 얼버무리는 꼴을 보게 된다.
실제로 그곳에는 인삼이 많은 곳이 아니다.
때문에 실제의 위치를 감추려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동아시아대륙에서 고려인삼을 보았다 하면서 나중에 캐나다 동북부에서 그와 똑같은 인삼을 발견하고 그것을 오늘날 아메리카대륙 인삼이라 하고 마치 고려인삼이 북미에도 자생되는 것처럼 만든 과정이 이빨 맞추듯 하였다는데 짙은 의혹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런 명확한 내용을 보면 1714년 중국의 천문학자이며, 예수회 선교사 프랑스인 자르투(Pierre Jartoux:1680-1720)신부가 중국(中國) 동북부(東北部) 조선(朝鮮)국경이었던 달단지역(韃靼:韃僤)인 만주(滿洲)에 들어가 고려인삼의 자생지를 지도까지 작성하였고 그것을 런던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에 전달하면서 보고하였다.

그런데 난데 없이 캐나다 퀘벡주(Québec州)에서 선교활동 하던 프랑스 인종학자이며 선교사였던 라피토(Joseph François Lafiteau:1681-1746)신부가 이 보고를 접하고 원주민들을 통하여 수소문 끝에 몬트리올(Montreal)근교의 산지에서 고려인삼과 똑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인삼을 발견하였고 이를 린네(Carl von Linné:1707-1778)에게 전달하면서 결국 학명(學名) 파낙스 퀸퀘폴리움(Panax Quinquefolium L)이란 명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기록으로 말하고 있지만 마치 소설같은 이야기로 엮어 놓았다는 의혹이 짙은게 사실이다.

동아시아 동북부에서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로 건너 뛸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 고려인삼 효능과 버금가는 북미인삼, 즉 아메리카대륙인삼이라는 그것이다.
이것을 화기삼(花旗参:Panax quinquefolius)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의 고려인삼은 어떻게 변질되었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무한정으로 채취된 인삼들은 소비지인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하고 인삼상인들이 캐나다로 몰려와 본격적인 인삼(人蔘)채취 경쟁이 벌어지면서 엄청난 량(量)의 산삼(山蔘)이 시장으로 유출되었고 채취량이 줄어들자 미국정부(美國政府)는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인삼재배(人蔘栽培)를 활성화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1920년 2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보듯이 미국산(米國產)은 수출량이 가장 많은 16만근(萬斤)인 반면에 가격은 고려인삼의 7/1수준 밖에 되지 않는 20원(圓)내외였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일본산(日本産)이나 만주산(滿洲産)보다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고려인삼이 가격이 높았다는 것은 수삼을 가공한 홍삼(紅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고려인삼의 높은 값어치 때문에 1920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전매령(專賣令)이 시행되면서 일본무역회사 삼정(三井)에게 독점권을 부여하였지만 수삼(水蔘)으로 만든 홍삼(紅蔘)의 약학적 효능(藥學的効能)이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아 명성만큼 판로가 확대되지 못했음을 알리고 있으며 삼정(三井)의 독점권은 오히려 판로확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고 보면 당시 같은 시장에서 가격이 비록 낮지만 질이 떨어지는 것이 비록 재배인삼이라 할지라도 고려인삼과 진배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고려인삼이지만 고려인삼이 아닌 것 같이 만들어야 했을 서양자본주들은 삼한인삼과 종(種)이 다른 것으로 분류했고 고려인삼은 홍삼이라고 한계 덧 씌워 도태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실제로 미국인삼이라고 알려진 화국삼은 물론이고 동양삼, 서양삼, 광동삼이 삼한인삼이 아닌 듯이 떨어져 나갔으며 모두 역사가 같은 삼한 인삼임에도 분리시켜 그들의 말초적인 물질욕만을 채웠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3.재배인삼 아메리카인삼의 역사 배경


그렇다면 끝까지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메리카인삼이라 하고 북미인삼, 그리고 화기삼(花旗蔘)이라 한 변이된 실체를 생물학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근원을 살펴본다.

Hellenistic Greek πάναξ, variant of ancient Greek πάνακες.

New Latin, from Latin, a plant, panacea, from Greek panak-, panax, from panakeia

The English pronunciation derives from a southern Chinese reading, similar to Cantonese jên shên (Jyutping: jan4sam1) and the Hokkien客家 pronunciation "jîn-sim".[정리:한부울]

인삼속(屬:panax)의 어원은 헬레니즘 그리스어 파낙스(panax:πάναξ), 고대그리스어 파나케스(pánakesπάνακες)의미 '만병통치약' 또는 '모든 것을 치료한다'란 파나케이아(panacea)가 어원이라 하였고 진생(ginseng)은 차이니스어(Chinese語) 렌센'rénshēn' 인삼(人蔘)을 말하는 것으로써 렌(Rén)의미의 사람"man"과 센(shēn)의미의 초(草)뿌리"plant root",의 합성어로 '사람을 닮은 뿌리'라는 의미를 담아'사람의 다리가 갈라진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영어 진생(Ginseng)이라는 발음은 중국남부지방 광동어(廣東語)발음 젠센jên shên(Jyutping: jan4sam1)과 복건어(福建語:Hokkien)발음 진심"jîn-sim"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과거 광동과 복건지방에 장사아치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들이 부지기수가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들에 의해 그렇게 불리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고 이들 세력들이 동서양분리되면서 동양인 객가로 변신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가 있다.

동양인 객가들의 조상을 따져보면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피가 연결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생각할 점이 많다.

이것은 결국 서양인들에 의해 중국화된 남부발음이라고 했지만 글쓴이가 지금까지 설명을 한 관동의 남부지역과 일치한다는 언어적, 지형적인 근거가 상당히 존재한다.

花旗参(學名:Panax quinquefolius)是人参的一种。美国旧称为花旗國,花旗参由此得名,又称洋參、西洋参、野山泡参、广东人参,為粉光參的一種。原產於美國北部到加拿大南部一帶,以威斯康辛州為主。通常照產地分成(一般所稱的)花旗參與加拿大參;兩者雖然同種,但因為氣候影響,前者的參面橫紋比後者更明顯。 服用後有提神活血增智的效果,可用來作為日常保健用的食品。

위 신중국 자료에 보듯이 화기삼은 인삼(panax)의 일종이라 하고 미국의 옛 국가이름을 화기국(花旗國)이라 칭한 것에 따른 것으로 이 화기삼(花旗參)이란 명칭이외 양삼(洋參), 서양삼(西洋参), 야산포삼(野山泡参), 광동인삼(廣東人参)등으로 나타나며 이에 더하여 분광삼(粉光參)이라고도 하였는데 분광삼이라 한 것은 대만에서의 속칭(臺灣俗稱)즉 민간에서 칭하였던 것으로 재배삼(栽培蔘)을 말하는 것이며 아마도 대만(臺灣)역시 역사지형이 관동 남부에 존재한 지명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대만은 플로리다주가 의심되는 지역이다.

대만은 우리 역사의  제주와 매우 흡사하게 엮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산포삼이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야산에 생성하는 자연산 산삼을 일반적으로 포삼(泡參)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동아시아 동북지방이 아니라 캐나다 퀘벡주(Québec州)에서 채취한 사실과 일치하고 재배인삼을 분광(粉光)이라 하는 것과 미국정부가 재배를 권장했다는 사실과 닮아 있는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철령관이라고 판단하는 애팔래치아 산맥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남부에서 상당수가 생삼과 함께 재배삼도 여러 이름으로 거래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때문에 화기삼은 산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재배삼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어 해석의 폭이 상당히 넓어 단정적으로 ‘이것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이러한 넓은 해석은 동, 서양을 동시에 나타내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고 고려인삼을 말 할 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북미인삼에서 통산 산지(産地)를 나누는 것을 보면 화기삼(花旗參)과 캐나다삼(加拿大參)으로 나눔을 알 수 있다.

캐나다삼과 동남부인삼이 헷갈리지만 같은 것으로 동종(同種)으로 취급되는 것인바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 하면서 전자는 인삼(人蔘)제품 면에 횡문(橫紋)이 있어 특수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후자는 약효에만 설명이 되고 있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단적인 예가 몸이 나빠졌다가 좋아지는 현상인 명현(明顯)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복용 후 기운을 차리게 하여 인체 내 혈액순환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일상 보건용 식품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설명되는 것은 공교롭게도 고려인삼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加拿大目前是全球西洋參最大的生產國,平均年出口約2000噸,其中85%來自安大略省,15%來自卑詩省。安大略省之土壤、氣候、環境 都適宜培育西洋蔘,所以目前最廣為人知且推崇的是加拿大花旗參。而目前美國所出產的花旗參有多達95%來自威斯康辛州的馬拉松縣。

粉光參的價格以威斯康辛的花旗參為最高價,加拿大多倫多西洋參次之,然後是溫哥華西洋參。

캐나다는 지금 전 세계 서양삼(西洋參)의 최대생산국이며 년 평균 약 2000(噸:ton)중 85%가 온타리오주(安大略省:Ontario州)에서 생산되며 15%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卑詩省:British Columbia)인데 이곳은 토양, 기후, 환경에서 서양삼(西洋蔘)재배에 매우 적합한 것으로 이야기 된다.

이곳을 한 때 서양인들에 의해 만주라고 통칭되었을 것이다.

이 만주는 캐나다 영토의 동서전체를 가늠하는 것이다.

대조선 남부에 거주하던 남만(南蠻)들이 근세기에 북아메리카대륙 북부로 이동하여 활동한 것으로 모든 것에서 알려지는 것과 같이 만(蠻)을 만(滿)으로 서양인들이 해석하고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을 또한 강하게 유추할 수 있다.
만(滿)은 본래 의미가 따뜻한 기후, 온화한 기후의 땅으로 물자가 풍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최대 넓은 지역의 사람들이 떠받드는 것은 캐나다의 화기삼(花旗參)이라고 확실히 하고 있다.

이 캐나다 화기삼은 거의 조선 동북부 지방과 비슷한 인삼이 자생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화기삼(花旗參)의 95%가 위스콘신주 마라톤카운티(Marathon County)에서 나온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의 위치가 고려의 청주(清州)이거나 산서성의 상당삼(上堂蔘)을 재배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사실에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이 재배삼이라고 하는 분광삼(粉光參)의 가격은 위스콘신(Wisconsin)주 화기삼(花旗參)이 최고가로 나타나고 그 다음은 캐나다의 토론토(Toronto)의 서양삼(西洋參)이며 그다음이 밴쿠버(Vancouver)의 서양삼(西洋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굳이 화기삼이라고 하면서도 서양삼이라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지만 화기삼은 그래도 종자의 근원이 고려인삼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확율이 높다.

그렇다면 위치적으로 남과 북처럼 위치가 분리되는 지형적인 의미에서 만주와 다른 광동삼(關東參)이라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광동삼은 관동삼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고 애팔래치아산맥을 기반으로 하는 재배삼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본초도경(本草圖經)에서 인삼 중에 하북(河北)이나 민절(閩浙)에서 온 것을 신라삼(新羅蔘)이라하였는데 민(閩)’은 오늘날의 복건성(福建城)에 해당하고, ‘절(浙)’은 절강성(浙江省)이라 하였으니 이 지명들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서두에서 화기삼이라 함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소산(所産)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서양삼이라고 하고 화기삼(花旗參)이라 하던 광동삼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관동(關東)이나 광동(廣東)이라 한 지역에 인삼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의심은 거의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조선삼(朝鮮蔘)이 중국사서에 한반도 동북지방에 다량 자생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면서 북미대륙 퀘백지방에서 이를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채취하게 만든 두 선교사의 이상한 역할에서 동일한 성질의 것임을 충분하게 예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삼 속 사포닌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스테로이드(steroid)계 화학 합성물로서 신체 내에서와 뇌에서 호르몬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정도다.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아직 불명이지만, 신경세포 접합부분인 시냅스(synapse)속에서 아세틸콜린(Ach)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와 대사를 촉진한다는 보고 있으나 인삼의 알려진 효능이 너무 광범위하고, 정확히 어떤 효과가 존재하며 어떤 원리로 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미완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어 동서양 학자들이 공동으로 이를 연구가 진행 될 때 혹 역사적인 근원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글쓴이는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4.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고려인삼만 알고 있다?

그런데 금강산인삼이라는 명칭으로 존재한 재배삼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好評(호평)받는 金剛山人蔘(금강산인삼)

1935.09.13. 동아일보 4면 사회 기사(뉴스)

【外金剛(외금강)】외금강온정리(外金剛溫井里) 유지(有志)의 발기(發起)로 6년전(六年前)에 금강산인삼재배조합(金剛山人蔘栽培組合)을 조직(組織)하고 삼종(蔘種)을 재배(栽培)하기 시작한바 금년(今年)부터 채취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 성적(成績)이 양호(良好)하여 약의 효능이 우월(優越)하므로 벌서부터 각지에 복약가(服藥家)는 추풍악(秋楓岳)을 탐승(探勝)할 겸사하여 통신(通信)이 환지(還至)한다는데 탐상일자(探蔘日字)는 금월(今月) 십오일(廿五日)이라하며 가격(價格)은 장래사업발전(將來事業發展)을 도(圖)키 위(爲)하여 특별염가(特別廉價)로 제공(提供)한다고 한다[정리:한부울]


위 그림과 기사는 1935년 9월 13일자의 동아일보의 컬럼으로 분명 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 금강산인삼은 재배삼임을 알려준다.

금강산을 영산(靈山)이라 하고 봄에는 금강(春金剛), 여름에는 봉래(夏蓬萊), 가을에는 풍악(楓岳), 겨울에는 개골(皆骨)이라 하였는데 외금강(外金剛) 온정리(溫井里)의 유지(有志)들의 발기(發起)로 1929년에 금강산인삼재배조합(金剛山人蔘栽培組合)을 조직하고 금강산인삼을 재배하였으며 1935년 비로소 채집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가을 금강산 방문기에 맞춰 각지의 부호대관(富豪大官) 복약가(服藥家)들이 금강산의 경치(景致)를 구경할 시 겸사하여 금강산인삼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기사이다.

우리는 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라는 존재자체가 희미하다.

그것은 역사가 한반도(韓半島)에서는 1945년 좀 더 늦게 본다면 1948년 분단이 현실화 되면서부터 아마도 남한쪽의 사람들은 금강산을 잊어버렸고 그곳에서 재배되었던 인삼을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때문에 불행하게도 금강산인삼에서 강(剛)이 빠져버리고 금산인삼(金山人蔘)이라 하여 70년대 다시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것을 금강산인삼이라 했다는 사실에 대해 명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명칭에서 본래 금(金)이 아닌 비단 금(錦)을 사용하는 지금의 충남 금산(忠南錦山)을 위주로 한반도 남쪽에서 유일한 인삼재배지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때문에 금산인삼(錦山人蔘)이라하고 금강산인삼이라는 온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의문과 함께 민족상잔에 의한 분단의 아픈 역사를 떠 올리게 하는 것이지만 개성과 금강산이 북한에 존재하는 현실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현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인들은 스스로 부정하고자 하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대조선이 붕괴될 시점이었던 1871년 신미양요부터 시작하고 최종 끝이 1953년 동족상잔을 마지막으로 겪게 한 큰 틀에서 이렇게 주도한 세력이 누구일까 궁금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의 의해 주도된 역사라는 것을 최소한 글쓴이 만큼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왜 이토록 철저하게 우리 역사를 유린하고 농단할 수밖에 없었을까?

다시는 날개를 펼 수 없도록 날개 쭉지를 꺽어놓고 그것도 부족하여 역사 뿌리마저 이처럼 철저하게 망가뜨린 이유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 아닌가.

같은 동양인에서 일본과 우리 한국을 미국인 시각으로 비교해볼 때 일본은 미국인들과 태평양전쟁을 직접적으로 치열하게 치뤈 종족임에도 오늘날 미국은 일본인들을 상대적으로 우대한다.

우리나라 역사가 왜 이토록 가혹한 처벌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1871년 이전 과거 역사환경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이다.

일본은 없었던 역사도 만들어 버젓이 자국국민에게 홍보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는 본질조차 감추고 어두운 역사만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이런 현실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그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 볼 이야기다.

아래 한국일보 기사는 그렇더라도 현 충남 금산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결국 금강산 뿌리 인삼임을 애잔하게 알리고 있다.

한국일보 2006.09.14.[금강산의 뿌리 인삼]의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9월이면 어두운 그늘에서 몇 년을 꼼짝 않고 땅의 기운을 뽑아 여물은, '신비의 약초' 인삼을 캐는 계절이라 하고 금산은 국내 3대 약령시 중 하나로 전국 인삼 거래량의 80%가 유통되는 인삼의 메카라면서 경제의 80%는 인삼, 약초와 연계된다고 하는 금산...예전 인삼 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소쿠리에 '개똥이네'등 이름표를 매달아 그날 인삼을 캐는 밭주인의 마당에 져놓는다. 오후 늦게 인삼을 캐온 주인은 인삼을 100개면 100개, 200개면 200개 씩 소쿠리에 담아놓는다. 마을 사람들은 삼이 든 소쿠리를 가져가 밤새 식구들과 껍질을 벗기고 잔뿌리를 다듬는다. 밭주인이 내준 푸짐한 밤참을 곁들여 가며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다음날 새벽, 마당에 멍석을 펼쳐놓고 이웃들이 손질해 가져온 인삼을 부려 숫자를 확인하고는 개당 2, 3원씩 품값을 쥐어준다. 인삼을 캔 밭은 동네사람들 차지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호미 들고 밭으로 가서 속에 남은 '인삼이삭'을 줍는다. 인삼밭을 지고 있지 않더라도 인삼 철이 되면 집집마다 삼껍질과 잔뿌리가 수북하게 쌓이는 것이다. 당시 인삼 수확기에는 전국의 엿장수들이 금산으로 몰려들었다고 하며 삼껍데기와 엿 바꾸러 오는 금산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또 다른 기사를 보면 인삼거래가 활발했던 금산시장(錦山市場)은 1935년부터 성황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당시 금삼증(錦蔘證)이란 인삼판매허가증이 위조가 많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알려진다.

해방 후 금산군(錦山郡)에 인삼재배면적이 가장 많던 때가 1973~1975년까지라고 알려지는 만큼 위 금산의 풍경은 아마도 그 때쯤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70년대의 세상이 그렇듯 각박하지 않았을 때이니 참으로 정겨울 정도로 순박한 광경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했던 재배삼, 금강산인삼의 이름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금강산인삼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솔직히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과거 금강산인삼에 대해 현재 연구하는 단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실제로 왜 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 일반인들에게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를 우리는 지금시점에서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본다.


5.아메리카인삼과 금강산인삼의 가변성


그렇다면 미국과 연계되는 역사만큼이나 끈끈한 아메리카인삼이 가지는 많은 명칭에서 역사 가변성을 이야기 할 수가 있다.

즉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시장 수요적으로도 일정한 조건에서 변할 수 있는 성질은 그 많은 명칭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메리카인삼은 그렇게 많은 명칭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도 조선인삼을 흉내 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주체적인 인삼을 대신하려고 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 블로그 글 “동청(冬靑)과 금강산(Blue Mountain)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2”에서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를 살펴본 결과 강원도(江原道)가 동쪽이며 동청(冬靑)이란 감탕나무, 붉은 열매나무를 뜻하는 것으로써 이것들이 위 분포지도가 나타나는 곳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라는 사실과 함께 동부에 존재하는 애팔래치아 산맥(Appalachian Mountains)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강원도 금강산이라 함은 바로 이 애팔래치아산맥을 말한 것임을 충격적으로 밝혔다.

또한 본 블로그 글 "금강초롱꽃과 북미초롱꽃 http://blog.daum.net/han0114/17049707 "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결과는 위의 사실과 결코 다를 수가 없다.

실제로 금강(金剛)이란 명칭은 다이아몬드처럼 산이 날카롭게 삐쭉삐쭉한 형태를 나타내어 마치 찬석(鑽石)이라고도 하는 금강석(金剛石:Diamond)을 말 하는 것처럼 지명에서 강한 이미지가 존재하고 또한 애팔래치아산맥 중 실제로 다이아몬드(Diamond)가 다음 자료가 알려주듯 생산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이와같은 글쓴이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뒤받침 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금강석(金剛石)이 들어있는 암석을 킴벌라이트(kimberlite), 램프로아이트(lamproite)라고 부르며 다이아몬드를 함유하는 운모원석(雲母,Mica) 감람암(橄欖巖)을 킴벌라이트(kimberlite)라 하고 칼륨함량(potassium content)이 높은 화산암(volcanic rocks)을 램프로아이트(lamproite)라 하는데 100만년(萬年)전 대륙성 빙하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지형이 바로 버지니아(Virginia),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캐롤라이나 남북지역(North and South Carolina), 켄터키 동부(eastern Kentucky), 테네시주(Tennessee), 조지아주(Georgia), 앨라바마(Alabama)가 포함되고 있으며 바로 이 지역 전부가 애팔래치아산맥을 지형적으로 접하거나 품에 안고 있다는 사실이 이 행정구역의 모습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애팔래치아산맥을 기준으로 관(關)이 형성될 곳을 보면 웨스트버지니아 동부일대와 버지니아의 경계가 그렇고 캔터기 동부 경계에 관(關)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테네시 동부와 노스캐롤라니아 서부의 주 경계가 그런 관(關)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주 경계가 애팔래치아산맥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실제로 다이아몬드의 발견 기록을 보면 노스캐롤라이나주(North Carolina)에서 1800년 중반에 13개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고 알려지고 1924년에는 상당히 서부 쪽으로 떨어져 있는 아칸소주(Arkansas) 머프리스보로(Murrayreesboro)에 소재한 프레리 크리크 파이프 광산(Prairie Pipe Mine)에서 40.23캐럿의 엉클 샘 다이아몬드(Uncle Sam Diamond)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4년 후인 1928년 4월에 애팔래치아산맥에 갇혀 있는 듯한 웨스트버지니아주(West Virginia)의 피터스타운(Peterstown)에서 발견된 34.43캐럿의 펀치 존스 다이아몬드(Punch Jones Diamond)가 애팔래치아 산맥 충적층(alluvium:沖積層)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애팔래치아산맥은 본래 부루(blue)색이 강조되는 금강산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이 애팔래치아산맥을 중심으로 자생되는 인삼을 채취하거나 그 종자를 빌어 인삼재배에 들어갔다면 그 인삼을 금강산인삼(金剛山人蔘)이라 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동아일보[1929.08.26]의 “과학인삼(科學人蔘)은 어떠한 것인가”제목의 칼럼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내용이 있다.

한나라 말기에 완간된 본초학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지금으로부터 1800년전 중국의 산서성(山西省) 낙안(洛安)과 남만지방(南滿地方)에서 산출한다 하였고 위진(魏晋)시대 오보(吴普)의 오씨본초(吴氏本草)에는1500년전 직예성(直隸省), 광평지방(廣平地方)과 조선중부(朝鮮中部)에서 북부(北部)에서 산출된다 하였으며 5대(五代) 후촉(後蜀)사람 한림학자 한보승(韓保昇)이 편찬한 촉본초(蜀本草)에는 대행산맥(大行山脈), 산서성(山西省), 직예성(直隸省), 사주성(泗州省), 산동성(山東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였고 도경본초(圖經本草)에는 산동직예(山東直隸), 산서(山西), 복건지방(福建地方)에서 산출된다 하였는데 일본고기(日本古記)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繪:1712)에 보면 대행산맥(大行山脉)에서 산출하는 인삼(人蔘)에 대해 “功不如朝鮮自然生者” 라고 하여 “조선(朝鮮)에서 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 사실도 있다.

즉 대행산맥에서 나는 인삼 상당삼이 좋지만 조선(朝鮮)에서 나는 인삼(人蔘)보다 못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의 고려인삼 즉 조선삼(朝鮮蔘)을 신봉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고려인삼과 조선인삼을 통칭한 것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위 예를 든 사서들이 한시대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중복될 수 있다고 볼 때 조선(朝鮮)의 중부와 북부지방은 산서성 낙안과 직예, 광평 지방이 포함될 수 있고 또한 대행산맥 뿐만아니라 산동(山東)까지도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

산동(山東)이란 태산(泰山:1,533m)을 경계로 구분된 지명이라는 사실과 애팔래치아산맥 중 가장 높은 미첼산(Mount Mitchell:2037m)을 기준으로 할 때 산동(山東)이란 지명도 마찬가지로 관동과 구분이 되겠지만 역사 위치적으로 보면 동일한 범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명방식의 혼란은 여러 역사를 나눔에 있어 발생한 어쩔 수 없는 것일게다.


          


또한 동아일보[1934.05.11]일자 컬럼을 보면 인삼산지(人蔘産地)에 의한 명칭에서 고구려산(高句麗產)을 고려삼(高麗蔘)이라했고 현재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던 중앙조정이었던 인삼 소비지 옛 중국이라 한 곳에서 조선인삼(朝鮮人蔘)을 아직도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고 호칭 한다 한 것은 고려영역과 조선영역을 같이 취급하거나 관할지가 동일하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요삼(遼蔘)은 요동인삼(遼東人蔘)을 말했다 하였으니 이것 역시 조선인삼이며 이것을 만주산(滿洲產) 인삼(人蔘)이라 하면서도 신라삼(新羅蔘)이라 하거나 백제삼(百濟蔘)이라 하였다는 사실이 실로 어지러울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가 계속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서양인들에게 붙여진 만(蠻)에 대한 혼란이다.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중국에서는 명대(明代)까지 이 명칭이 남아 있었다고 알려지는 것은 결코 중국이라는 곳이 그처럼 넓지 않다는 것으로써 오히려 백제나 신라의 영역 더 넓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고 아니면 중국이 신라나 백제 속에 들어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때문에 도시정도의 역사지명이 변한 것이며 그것을 현재 중국이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천자가 있었을 대도시이니 소비층이 대단했을 것이며 그곳의 소위 고관대작 유지들이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요동은 고구려 땅이며 고려 땅이고 조선(朝鮮)이 지배하던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근대까지 남조선(南朝鮮)에서 산출되던 인삼을 라삼(羅蔘)이라 하였다는 사실도 바로 신라삼(新羅蔘)을 말 한 것으로써 새로 신(新)자가 붙은 신라는 한반도 용 신라일 뿐이다.

포르투갈 귀족들은 COREA 라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사실도 새길 필요가 있어 돈 주고 관직을 매관하였을 시라면 그들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것을 택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광동삼이란 명칭의 근원일 수도 있다.

당삼(上黨蔘), 로삼(潞蔘), 자단삼(紫團蔘) 전부 산서성(山西省) 태행산맥(太行山脈)일대에서 산출되는 것인데 특히 자단삼(紫團蔘)은 신라삼으로 나타나며 이것들이 오대(五代)때 탐하고 마구잡이 거두어들이는 짓과 산림개간(山林開墾)으로 감소되고 명조(明朝)에는 절멸하였으나 너무 유명한 결과 아직도 이름이 남아 있다 한 것은 지구 어디에서든지 간에 삼한역사는 지속적으로 존속되었다는 증거로서 똑 같은 다양한 인삼 종(種)이 산출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일본인삼이라고 하는 회진어종인삼(會津御種人蔘), 출운인삼(出雲人蔘)역시 조선인삼(朝鮮人蔘)이라고 일본 스스로가 정리하고 있는 상황들을 종합할 때 결국 산지를 따지면 인삼 모두가 거대한 삼한영역의 인삼이며 이것들은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이든지 간에 삼한의 영역에서 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역사가 바뀌어 나타나고 있지만 하나의 체제에서 관리된 것은 분명하다.


6. 각종 인삼의 근원지와 학명의 모순


이제부터 총체적으로 인삼의 생물학적 판단을 위해 분류체계에 들어간다.



[1]Panax L., 1753 Ginsengs(Chinese ginseng; Korean ginseng; Ginseng)

[2]Panax ginseng C.A.Mey.1843, 亞洲蔘、紅蔘、生晒蔘、山曬山蔘、石柱蔘、朝鮮蔘、野山蔘、人銜、鬼蓋、土精、神草, 在中国东北土名 봉추(棒槌) 아시아인삼이라고 하지만 분포지는 북아메리카대륙 동서부 다 나타난다는 것이 혼합종의 모습이다.(Asian ginseng, Chinese ginseng, Korean ginseng, Asiatic ginseng, Oriental ginseng)

[3]Panax japonicus (T.Nees) C.A.Mey. Panax bipinnatifidus 죽절삼(일본)

[4]Panax notoginseng (Burkill) F.H.Chen /San Qi 전칠삼(田七蔘) 삼칠삼(三七蔘)중국 남부지방(운남성)에서 생산되는 인삼의 한 종.

[5]Panax pseudoginseng Wall. 假人参Nepal ginseng, 히말라야삼, 네팔삼

[6]Panax quinquefolius L. (American ginseng)花旗参(學名:Panax quinquefolius)是人参的一种。美国旧称为花旗國,花旗参由此得名,又称洋參、西洋参、野山泡参 、广东人参,為粉光參的一種。

[7]Panax trifolius L.삼엽삼(三葉蔘): 북미 동부지역 인삼중, 국운남동 미국왜삼(美國倭蔘:Dwarf ginseng)북아메리카 북동부 및 애팔래치아 산맥의 저지대 중습지(中濕地, mesic woods)에서 발견된다.늦은 봄에 흰색의 꽃이 산형화서로 핀다.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용하였다


위 분포지도를 보면 아시아종 이외 모두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표식하고 있다.

인삼의 본래 근원지라는 이야기다.

위 총 8가지의 학명분류를 보면 린네가 명명한 인삼의 대표 인삼속(人蔘屬) 학명[1]Panax L., 1753,과 그 다음 아메리카인삼(花旗参)인 학명 [6]Panax quinquefolius L., 그리고 미국왜삼(美國倭蔘:Dwarf ginseng)이라고 하는 학명[7]Panax trifolius L.등 3종(種)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생물의 아버지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유럽생물학자 린네가 명명한 사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명 명명시기가 가장 빠르다는 사실도 동시에 감안한 것이다.

이를 판단할 때 린네(Carolus Linnæus:1707–1778)가 명명한 3가지 종(種)은 자연산으로 산삼(山蔘)일 확률이 높고 그 외 다수는 근세기에 산삼의 종자(種子)를 이용하여 번식시킨 재배삼(栽培蔘)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시아삼(亞洲蔘) 또는 홍삼(紅蔘), 생쇄삼(生晒蔘), 산쇄산삼(山曬山蔘), 석주삼(石柱蔘), 조선삼(朝鮮蔘), 야산삼(野山蔘), 귀개(鬼蓋), 토정(土精), 더군다나 신초(神草)라고 하고 중국동북원산지명에서 봉추(棒槌)라 하여 마치 고려인삼의 근원종인 것처럼 만들었지만 글쓴이가 보기에는 아시아 역사가 생성되고 난 후 본래 역사에 등장하던 인삼명을 마음대로 붙인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종을 명명한 시기가 1843년이며 이때 러시아 귀화한 독일인 칼 안톤 폰 메이어(Carl Anton von Meyer:1795-1855)가 명명한 학명[2]Panax ginseng C.A.Mey.과 동일한 인물로 몇 가지의 의문점이 들어난다.

사실상 일본인삼은 누가 뭐라해도 스스로가 조선인삼을 모방하거나 그 종자를 빌어 재배하였다는 사실 말고 근원이라고 할 만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조선 동북부지방에 방문하거나 탐험한 사실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소재를 파악해보면 1821년에 발트해(Baltic Sea)를 방문하고 1826년 몽고의 알타이산맥(Altai Mountains)과 카자흐스텝을 탐험 한 사실과 1829년 코카서스산맥(Caucasus Mountains)와 카스피해(Caspian Sea)서안(西岸)을 탐험하였다는 사실 말고는 북아메리카대륙을 방문했다든지 또는 그렇게 흔하게 서양인들 기록에 나타나는 한반도이야기는 발견할 수가 없다.

과연 그가 한반도동북부지방까지 와서 탐험한 사실이 있는가에 대해 확실한 것이 없다.

1844년에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과학 아카데미의 식물박물관의 임원으로 일을 하기 전인 1843년에 이 학명을 명명했다고 하는 것은 거의 그의 탐험이 마감되고 난 후 정리하였을 과정이라 할 때 더 이상 반문의 여지가 없다.

그가 19세기 중엽(中葉) 고려인삼 즉 조선인삼에 대한 학명(學名)을 명명했다는 것은 분명 조선(朝鮮)북동부지역에 방문하고 초본을 채취하였다는 이야긴데 그의 탐험지가 전부 중앙아시아로 귀착되어 현 한반도 동북부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중대한 변곡점 즉 기존 역사사실과 다른 반전의 카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쓴이는 냉정하게 이러한 모순점을 찾아 반문하고 있다.

바꾸어 이야기 하면 그가 북유럽 발트해와 코카서스산맥, 카스피해, 그리고 카자흐스탄, 알타이를 탐험했다고 하는 것은 이동경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만 한반도 북동부와는 거리가 있어 어떻게 조선인삼의 초본을 채취했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가는 곳마다 조선인삼이 깔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근세기에 엉망진창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본 블로그 글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8 "에서 북유럽의 발트해(Baltic Sea)가 있을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허드슨베이(Hudson Bay)라 한 사실에서 똑 같이 1826년에 키르기스 초원(Kirghiz Steppe)과 알타이산맥(Altai Mountains)을 과학 탐험하였다는 알렉산드르 번지(Alexander Georg von Bunge:1803-1890) 역시 발트 게르만계 식물학자(Baltic German botanist)이며 바로 조선금대화의 대칭적 종(種)인 금대화(錦帶花)라고 하는 학명 “Weigela florida (Bunge) A. Dc 1839”를 명명했던 사람인데 두 사람 모두 유럽 발트해를 방문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곳은 북아메리카대륙 허드슨베이(Hudson Bay)이었음이 밝혀졌고 또한 좀 더 이른 시기겠지만 칼 안톤 폰 메이어(Carl Anton von Meyer)도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방을 탐험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그들은 애초부터 북아메리카대륙에서만 활동했지 아시아대륙으론 오지 않았다.

그는 한반도 동북부에 방문하고 탐험한 것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를 탐험하고 초본을 채취한 것이다.


7.아메리카인삼과 고려인삼의 대체성


전자의 분류학적 판단에서 학명자들의 활동지역이 불분명하거나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무조건 아시아대륙으로 몰아 근원적인 인삼토산지를 감추려는 행위임을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인삼이 자생되었던 지역이 결코 이렇게 저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장소가 북아메리카대륙이고 위치가 역사사실과 일치하지만 동서양 역사가 분리되면서 이렇듯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양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오리엔탈리즘을 훼손시키려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결국 동, 서양을 근본적으로 갈라놓고 이분적인 역사도식을 만들어 서양인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도 동시에 알 수가 있는 상황이다.

이미 서양인들이 이런 식의 엉터리 작업을 한지가 100년이 넘었다면 아직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진실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만 그렇더라도 본래의 하늘의 자연이치가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역사가 살아 있고 그것이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의 이치는 변할 수 없는 철칙이다.

특히 이 인삼의 문제에서 만큼은 워낙 특수성이 있는 것이니 서양인들 마음대로 그렇듯 무를 자르듯이 단절을 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있고 동시에 역사를 찾아 헤매는 글쓴이에게나 우리모두에게 큰 다행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위 DNA 바탕으로 한 디스커버리 라이프의 분포지도를 참고하면 인삼속(人蔘屬:Panax L., 1753)에서 근원지를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워싱턴 주에 나타나거나 캘리포니아 주에 조금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가 있다.

그 다음으로 고려인삼이라고 할 수 있는 학명 인삼(Panax ginseng C.A.Mey.1843)의 분포지는 한반도와 미얀마에 조금 나타나고 나머지는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의 뉴욕주(New York)의 뉴욕(New York City),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메이컨(Macon), 중부의 미주리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City) 서부의 캘리포니아(California) 앨러미다(Alameda), 워싱턴(Washington)의 킹(King)으로 나타나고 중국인삼(Panax notoginseng (Burkill) F.H.Chen /San Qi)은 신중국과 한반도 열도에는 정작 분포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반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뉴욕주(New York)의 뉴욕(New York City)에는 나타나는 모순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종이 남았는데 아메리카인삼(Panax quinquefolius L.)이라 하고 화기삼(花旗参), 광동인삼(廣東人蔘)라 하는 것으로 분포지도는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집중되고 있고 애팔래치아산맥과 메인주, 뉴헴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와 서부로는 위스콘신과 미네소타, 미시간와 인디애나에 넓게 퍼져 나타난다.

마지막 종(種)으로 미국왜삼(Panax trifolius L)이며 삼엽삼(三葉蔘)으로 불리는데 분포지도에서 보면 북미 동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북아메리카 동북부 및 애팔래치아 산맥의 저지대 중습지(中濕地)에서 발견되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위스콘신, 미시간, 오하이오, 웨스트버지니아동부, 펜실베이니아, 뉴욕, 델라웨어,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남부로서 이것도 비교적 넓게 퍼져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집중적으로 원산지가 나타나는 아메리카인삼은 왜 수많은 명칭을 가졌을까?

전자에서도 언급했지만 답은 역사가 장소가 같으므로 해서 중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를 기준으로 할 때 세상 사람들에게 인삼이 알려지고 그것이 애용되기 시작한 후로부터 1500년에서 1800년이라 하였는데 이 인삼이 자생하던 곳이 세계 유일 무일하게 삼한 땅이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고 철칙이다.

진시황이 탐낼 정도로 신비스럽고 영험이 있는 불로초가 삼신산(三神山)에 있어 서복(徐福)이 동남동녀(童男童女)오백명을 데리고 간곳이 영주(瀛洲)라는데 그곳을 동방(東方)이라 하였으니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불로초라 하는 것은 바로 인삼(人蔘)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오늘날 동서양인(東西洋人)을 가릴 것도 없이 무수히 많은 부호대관(富豪大官)과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오매불망 애타게 찾던 영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고려인삼이라는데 세계인들이 주목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근세기에 서양인 자본주들에 의해 브랜드화 되었다는 사실과 현재 표면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전매권행사를 감행하였다는 사실이 존재하지만 그때까지 어쨌든지 유명세가 1800년 동안 끊이질 않고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장수(長壽)는 인간에게 하늘이 내리는 복(福)이라 했으니 돈만 가지고 있던 나약한 인간들은 너도나도 이에 집착을 하지 않았을 수 없었다는 것이며 덩달아 고려인삼의 유명세는 하늘로 치솟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의학이 그렇듯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오죽했겠는가.

그것이 탁월한 효능의 인삼이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삼한 땅에서 자생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지나간 역사를 명쾌하게 다 알 수 없다 하겠지만 기존역사에서 인삼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고려인삼이라고 하니 그저 그러하였겠지 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역사성으로 따지면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세기에 고려인삼의 가치를 알게 된 서양인 장사아치들은 어떤 식으로 이에 달려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그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마지막 계급 신분일 수밖에 없었고 프랑스혁명도 신분제도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에 의한 것이라 하지만 당시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 상인(商人)이라 할지라도 신분은 제3신분에 해당하던 세월과는 그들이 대처하는 자세가 달랐을 것이다.

근세기에 고려나 조선이 옛날과 같지 않아 얼마든지 부패로 썩어 빠진 관리들을 그들이 마음대로 돈으로 주무를 수 있고 궁극적으로 고려인삼을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이것을 반강제적으로 빼앗아 이윤을 착복했을 것이 뻔한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그러한 이익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였겠는가.

아메리카인삼, 즉 미국인삼(American ginseng)과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조선인삼의 생태적, 형태적으로도 동일한 영역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본 블로그 글 "신라인삼(新羅人蔘)은 아메리칸 인삼(American ginseng)

http://blog.daum.net/han0114/17050124"에서 이미 이에 대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혔던 이야기이지만 다음과 같이 형태적인 사실에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즉 미국인삼이 오엽삼(五葉蔘:literally ‘five-leaved ginseng)으로 나타나고 오엽삼이라 함은 바로 신라인삼(新羅人蔘)을 말하며 이를 광동삼(廣東蔘)이라 했던 것이며 또 다르게는 조선오엽삼(朝鮮五葉蔘)이라 했던 것은 남조선(南朝鮮) 즉 조선남부에서 자생하는 것을 라삼(羅蔘)이라 했다는 사실과 거의 호칭의 과정이 일치한다.


                             

                                                                     [오엽삼]


어쨌든지 본래 인삼(人蔘)이라 하는 것은 생태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도저히 삼한역사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한 사실들을 한반도 사서가 아니라 중국 사서에서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운 것이다.

고려인삼(高麗人蔘)을 조선인삼(朝鮮人蔘)이라 하는 것도 사실상 따지고 볼 때 수많은 종(種)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며 그것이 현 상황처럼 수많은 종(種)으로 변한 것이라 할 때 원종을 밝혀 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희고 단단하며 둥글어서 백조삼(白條蔘)이라고 하고 속칭 양각삼(羊角蔘)이나 요동삼(遼東蔘)이라 하는 백제삼(百濟蔘)이 현재 감쪽같이 없어지고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신라삼(新羅蔘)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다는 사실까지 궁금한 것은 한도 끝도 없다.

상당삼과 버금간다고 한 발해삼(渤海蔘)도 이름조차 온데간데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밝혀볼 것인가.

생각해보면 조선인삼(朝鮮人蔘)을 홍삼(紅蔘)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는 지칭이다.

마땅히 고려인삼(高麗人蔘)을 홍삼(紅蔘)이라 하는 대칭적인 명칭도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홍삼(紅蔘)은 본래 인삼효능을 변하지 않게 하거나 오히려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로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보존 방법에 의한 명칭일 뿐 자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서양인과 자본주의제국 권력자들은 충분히 편법으로 이용하였을 수도 있다.

고려인삼은 서양삼에게 이관시키고 본질을 훼손하고 변질되게 한 것은 고려인삼이란 브랜드를 약화시키는 것이며 그 공백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넘어가도록 만든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본질의 인삼은 그들이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에게 홍삼만 남고 우리의 진짜 고려인삼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도록 변했다는 것은 역사농단에 의한 또하나의 비극이다.

그들은 고려인삼의 생물학적 위치를 빼앗기 위해서 중간에 홍삼(紅蔘)을 부각시켜 의도적으로 상품화하였지만 당시는 과학발달이 지금처럼 진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효능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효능 자료가 희소한 관계로 음복자인 부호대관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 때문에 고려인삼이란 고유의 우수한 브랜드가 엄청나게 훼손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미국인삼의 효력은 고려인삼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부각되면서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역설적으로 생각 할 때 고려인삼이라고 하던 홍삼이 별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생약(生藥)에서 미국인삼에게 밀려 났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아래는 미국인삼을 현재 과학적 기법으로 분석한 내용인데 오히려 고려인삼(高麗人蔘)보다 더 우수하다는 내용이 가득하다.

미국인삼에는 담마란계 배당체[dammarane-type ginsenosides]혹은 사포닌(saponins)을 주요 생물 활성 성분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20(S)-프로토파낙사다이올(PPD) 및 20(S)-프로토파낙사트리올(PPT)의 두 가지 분류를 포함하는 것으로 미국인삼은 연구에서 고려인삼보다 높은 Rb1, Rd(PPD 분류), Re(PPT 분류)배당체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를 함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고려인삼으로 보았을 때 매우 혼란스러운 이야기다.

일반적인 약물역학(pharmacodynamics)으론 PPD형 진세노사이드는 대부분 구강 내 세균(혐기세균)에 의해 PPD모노글루코시드인 20-O-β-D-glucopyranosyl-20(S)-protopanaxadiol(M1)로 대사된다고 알려지고 인간은 PPD형 인삼사포닌 섭취 후 7시간 프로토파낙사다이올(M1)이 혈장에서 검출되며 섭취 후 12시간부터 소변에서 검출되고 이러한 결과는 프로토파낙사다이올(M1)이 프로토파낙사다이올(PPD)유형의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의 최종대사 산물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면서 성분 작용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더하여 캐나다(Canada) 앨버타주(Alberta州) 에드먼튼(Edmonton)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페사 라이프 사이언스(Afexa Life Sciences Inc)에서는 감기에 특효가 있다는 콜드 에프엑스(Cold FX)가 북아메리카 인삼(North American ginseng:Panax quinquefolius)뿌리에서 파생 된 산물이라고 단정하였지만 확정적으로 테스트되거나 검증이 된 적이 없다고 하는 정도에서 평가한 만큼 그들 영역에서 자생하는 인삼이 얼마나 우수한 것인지를 알리려고 애를 쓰는 단면이다.

신중국 위치자료에서 고려인삼에는 인삼이 함유하고 있는 사포닌(Saponin)성분을 34종(種)이나 가지고 있으며 화기삼(花旗参)은 13종(種), 삼칠삼(三七参)은 15종(種)이고 그밖에 Ra, Rf, Rg3, Rh2 사포닌(Saponin)화합물은 고려인삼만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다는 사실과 예로부터 한 뿌리의 고려인삼은 한 꿰미의 보석과 같다 하였고 동시에 온갖 풀의 왕(百草之王)이라 하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실제로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인삼 중에 과거 고려인삼처럼 우수한 효능을 가진 인삼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홍삼이 우수하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하지만 파급력이 옛 고려인삼만 하겠는가.


                     

                                      [애팔래치아와 오자크(Appalachia Ozarks)]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밝힘 속에서 오엽삼(五葉蔘)의 신라인삼(新羅人蔘)도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명명한 근원종(根源種)인 아메리카 인삼이라고 하는 학명 "Panax quinquefolius"과 동질의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만주삼을 고려삼이라 하는 것과 고려삼에는 백제삼이나 신라삼이 포함되어 나타나고 더 하여 발해삼까지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이를 명확하게 구분지울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사실에서 이것을 또한 화기삼(花旗參)이라는데 부정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화기, 꽃의 깃발을 사용하던 곳에 나는 인삼이니 화기삼이라 한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시비 걸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역사야 어찌되었던 지금은 미국 영토가 아닌가.

위 분포지도에 나타나지만 화기삼이라 하고 미국인삼이라 하는 것은 미국의 동부와 중부 그리고 일부 캐나다 남동부(southeastern)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기록을 참고 할 수 있고 특히 미국의 애팔래치아지역(Appalachian)과 오자크지역(Ozark regions)의 낙엽활엽수(deciduous forests)숲 속, 그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하는 점들은 아마도 고려인삼이 발견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는데 미국 내 근원지에서도 인삼이 절멸이라는 글자와 함께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이렇게 삼한의 인삼역사가 종결되는 것이구나 하니 글쓴이의 글 놀림이 그저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서서히 줄어드는 개체에서 특성적으로 보면 매우 한정된 성장환경이라 하고 상업시장에 의한 수요로 인해 일부지역에서는 멸종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걱정스러움이 자료에서 함께 묻어난다.

비록 미국인삼이라고 하지만 근원종의 관리상황을 보면 절멸위기(endangered)에 있는 주(州)는 동북부의 한반도 함경도 같은 메인주(Maine), 로드아일랜드주(Rhode Island)로 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하였으며, 취약지역(Vulnerable)으로 인식한 주(州)는 뉴욕(New York),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이고. 위험직면(Threatened)에 처해 있는 주(州)로는 오대호남부 미시간(Michigan), 뉴햄프셔(New Hampshire)를 꼽았으며 특별관심(Special Concern)지역으로는 코네티컷(Connecticut),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그리고 중남부지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와 테네시(Tennessee)등이다.

노스캐롤라니아주와 테네시주는 애팔래치아산맥을 주 경계선으로 두고 있는 그야말로 관(關)형태를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결국 고려인삼, 조선인삼의 약효가 다 해가고 있다는 암울한 이양기다.

그렇더라도 이 지역들은 옛 조선 동북부지역으로 내 눈에 비춰지니 어떻게 하겠는가.


8.마무리


서두에서 화기삼의 정체를 알기 위해 먼저 화기삼(花旗蔘)명칭이 품고 있는 관동(關東)이란 역사지명을 좀 더 깊숙하게 이치적으로 풀어 고찰하였다.

결국 한반도 지형상 역사기록에서 말하고 있는 관(關)과 령(嶺)을 스스로 품기에는 지형적인 한계가 분명하게 있고 실제로 가로 횡(橫)폭이 너무 좁아 엉터리없이 이리저리 억지로 꿰맞춘 조악한 역사의 지명상황을 객관적으로 풀어보면서 한숨도 지어보았다.

고려(高麗)때는 철(鐵:Fe)이 많이 생산되던 철령에 관문 철령관(鐵嶺關)을 설치하거나 행정기구 명칭의 직할지(直轄地)인 철령위(鐵嶺衛)를 두었다 하는 것은 자원이 풍부하거나 요지(要地)의 특수하게 관리할 수 있는 땅을 관할하고자 한 의미가 있었다는 할 수 있을 것인데 현재 한반도 지형상황은 이러한 역사이치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란 점을 강조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는 우리가 알다시피 가로 횡(橫)의 거리가 불과 약330km(840里)미만으로 짧아 우리역사서에서 말하고 있는 해서(海西)나 해동(海東), 그리고 관서(關西)나 관동(冠童), 그런 형편에 더 하여 영서(嶺西)와 영동(嶺東)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을 수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한반도 역사는 어지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위는 고려사 26권(高麗史 五十六券)에 나오는 고려 건국(高麗建國)시 영토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위 기록에서 우리가 한자도 빼놓지 않고 전부 우리 머릿속에 암기하여야 할 이야기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고려영토를 설명한 것을 보면 3면이 바다로 막혀 있고 한쪽 모퉁이에서 육지가 잇닿는 거리의 폭이 만리(萬里)라 한 사실이다.

이 길이는 북아메리카대륙 동과 서를 가름하는 길이이다.

한반도 사관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옛 고구려 땅에 신라와 백제가 있었고 신라(新羅)를 항복시켰으며 백제는 당(唐)나라가 아니라 고려(高麗)가 멸망시켰다고 하였다.

즉 당(唐)이 고려(高麗)였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지명들이 있는데 바로 관내(關內), 중원(中原), 하남(河南), 강남(江南), 산남(山南), 양광(楊廣)등이며 지금까지 본 블로그의 통해 설명하고 있는 관, 령 바로 선춘령(先春嶺)은 애팔래치아산맥 북단(北端)을 이야기 하였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위 열거한 지명들은 중국사서에 나올 법한 지명들이다.

본 블로그에서 글쓴이가 주장하길 옛 역사지명은 함부로 마구 멋대로 붙여 짓는 것이 아니라 했다.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라던가 아니면 자연의 이치와 섭리 등을 전부 종합하고 자연철학을 모아 그야말로 신중하게 지명을 지어 중복됨이 없이 독창성이 강한 지명이 될 수밖에 없다.

지명에 대해서는 서양에서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펜실베이니아 주 타이터스빌(Titusville)의 인근 하천지명이 ‘기름 냇물’의 뜻을 가진 ‘오일 크리크(oil creek)’로 오래전부터 불리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고려의 영토가 만리라고 하니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시 본 블로그 글 “만리조선(萬里朝鮮) 제비노정기와 제비(家燕 : Barn Swallow) http://blog.daum.net/han0114/17049629“와 ”산양호(山羊湖)는 고트레이크(goat lake)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11“을 보면 조선(朝鮮)초기 세조(世祖)때 문신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상소문에 ”조선의 영토 폭의 거리가 약 만리(幅員幾於萬里)“라 하였던 기록이 있다.

서두에 게시한 한반도 조선(朝鮮)역사행정지도를 보면 이 기록과 비교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대체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행정지도를 보면 좌도(左道)라 하고 우도(右道)라 하였는데 우리의 일반적인 지도를 보는 방향 상식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고 거꾸로 볼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되어있으며 소위 한반도 모화사관(慕華史觀)이나 조공사관(朝貢史觀)으로 중국이 한반도 북방에 있었다고 가정하고 방향을 틀어 북쪽에서 보는 관점이라 할지라도 경기도(京畿道)에 좌도(左道), 우도(右道)의 구분은 오히려 남도(南道)와 북도(北道)가 합당할 정도의 행정지도형태가 일률적인지 못하면서 무엇인가 어거지로 갖다 붙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삼한역사의 바탕이 되고 본거지라 하는 한반도의 지형상황이 이러한 형국이니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어쩌면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한반도 사관에 묻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왜곡되고 긴 시간이 흘러 그런 사실들이 이제 상식화되고 정당화가 되었지만 결국 우리가 바르게 각성하지 못할 때 영원히 식민지역사의 종속이 될 수밖에 없고 불필요한 자학과 피해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서두에서 언급하였지만 되풀이 해보면 요동(遼東)은 우리역사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영역으로써 대고구려가 존재할 때부터 고유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한 도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중국이란 주체가 말하길 요동은 고려와 조선의 땅이라 하였고 멸망해버린 백제와 신라 땅이라 하였으나 그 요동이 한반도 지형상황에서는 도저히 들어갈 공간이 없는 관계로 어중간하게 지금은 요동성(遼東城)말하고 요동반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요(遼)가 있으려면 요하(遼河)가 있어야 하는데 요동만으로 들어가는 요하는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강이 아니라 오히려 남과 북을 가르는 것이어서 역사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지명으로 존재할 뿐이다.

앞으로 신중국세력들에 의해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할 뿐 우리에게 실로 암울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당시 고려말기 요동정벌(遼東征伐)을 생각하면 요동에 무엇인가 고려를 위협하던 역사주체가 존재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요동정벌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계군사가 압록강을 건너 요하의 동쪽편인 요동 땅으로 들어갈 때 군사들의 활에 입힌 젤라딘 성분 아교(阿膠:Donkey-hide gelatin)가 열에 녹을 정도로 기후가 덥고 습했다는 사실에서 이것을 기후학적으로 보아도 금방 아열대기후 지역임을 알 수 있지만 그러한 기후환경이 지금은 추위가 엄습하고 찬바람이 겨울 내 불어대는 척박한 곳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

늘 상 우리 조상님들은 서양인들을 왜라 하여 한사코 경계했다.

한반도 압록강을 넘으면 그곳에 더운 날씨가 전개되는 요동이 있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이야긴가.

본 블로그 글 "당리화(棠梨花)와 압록강 http://blog.daum.net/han0114/17049507 "에서도

조선부(朝鮮賦) 글에서 보면 동월(董越)은 황제의 특채된 사신으로 조선 한성 궁궐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길을 떠나 추운 북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따뜻한 남쪽으로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리화가 남쪽에서 피는 꽃이며 동월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당리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실제로 압록강은 한반도 북쪽에 있는 압록강처럼 강을 넘으면 추운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지형환경이 아니라 강이 종으로 세로로 흘러 남북의 구분이 있을 수 없으며 동월이 압록강을 건넌 곳은 남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압록강을 건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반도 지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이야기다.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들어가면 실제로 조선선비들이 귀양살이를 하게 된 지역으로 늘 상 공포의 전염병인 장려(瘴厲) 즉 말라리아를 옮길 수 있는 장기(瘴氣)가 성행하던 곳이라는 것을 사서기록들을 참고 하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 지형으로는 이를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때문에 요동정벌에서 활의 아교가 녹는 것을 여름철 장마기라 하면서 실제의 아열대기후를 숨기고 덮어 버리는 역사의 왜곡은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고려인삼은 선교사들이 무수히 조선 땅에 들락거리던 시절 조선 동북부(東北部)에 무수히 자생하였다고 하였지만 한반도 동북부 함경북도에 인삼이 그렇게 많이 자생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만주 연해주라고 하지만 그곳도 이와 같이 고려인삼이 무수히 자생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되고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화기삼이 무수히 자생하는 곳, 그곳이 조선의 동북부이고 또한 아메리카인삼이 재배되는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이 바로 고려인삼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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