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한부울 2014. 8. 20. 15:43

**************************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

 

글쓴이:한부울

 

분리의 역사 근원적인 문제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
금대화 4가지 대표종(種)
마무리(발트해와 허드슨 만)

 

분리의 역사 근원적인 문제

 

조선금대화를 살펴보기 전에 역사 분리 근원적인 문제를 먼저 살펴보면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가 쓴 동방견문록(세계 불가사의의 書Livres des merveilles du monde)에 대해 지금까지 평하거나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들을 보면 거의가 이 견문록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기록이 분명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는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동방을 여행한 적이 없거나 마르코 폴로 자신이 실제로 여행하고 겪은 일을 쓴 기행문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어 쓴 것이거나 또는 그의 창작력이 뛰어나 그 자신이 지어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마치 역사기록으로 단정짓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때문에 서양인들이 근세기에 이런 조잡한 짓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생각하게 하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그 이유는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서양인들의 정체성세우기에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콜럼버스(C, Columbus)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의 동기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엉뚱한 황금의 땅, 시팡구(cipangu)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West Indies)의 금광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는 중요성 때문에 더욱 그런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착각지도를 보면 서인도제도상에 지팡구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에서 첫번째로 신뢰성을 잃고 있는 것은 바로 현재 열도 일본을 지팡구(zippangu, Jipangu)라 하면서도 그 실체를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힐 수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지팡구의 들쑥날쑥한 위치적인 모순과 함께 지팡구(zippangu, Jipangu)가 주는 명칭자체의 신뢰성문제도 크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일본 자퐁, 자포노이스(JAPON, Japonnois)음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결론지어진 것은 없다.

또한 마르코 폴로가 지금의 열도 일본을 황금이 가득찬 나라(Gold in unmeasurable quantities)라고 하여 황금향(黃金鄕)이라 불리었다는 지극히 불확실한 사실때문에 물욕에 빠져있던 콜럼버스뿐만 아니라 13세기(1274,1281)때 몽고(蒙古)가 큰 희생을 무릅쓰고 일본침공을 감행했다고 적었다는 사실에서 본 블로그 글 "어르쇠 흑요석(黑曜石)과 아라사(愕羅斯)정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1"에서 몽고는 아라사(愕羅斯)이며 대비달자로 불리었다는 사실과 또한  거란(契丹,Khitan:388–1211)족이었다는 사실, 유럽 게르만(Germanic peoples)으로 처리 되었을 가능성까지 말한바 있기때문에 그 위치가 절대로 동아시아대륙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이야기 한바가 있다.

문제는 아라사(愕羅斯)라고 하는 몽고의 역사위치가 북아메리카대륙 로키산맥을 발원지 미주리강(Missouri river)상류지역에서 북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종락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때문에 만약 몽고가 금을 취하기 위해 정벌을 감행했다면 그곳은"캘리포니아 황금의 땅"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캘리포니아(California)가 "황금향"이라 불릴 수 있었다는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마르코 폴로와는 다르게 아랍인들은 황금향(黃金鄕)을 신라(Shilla)라 하였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이것에서 신라(shilla)가 지팡구로 돌변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서양인들은 극동에 꾸겨 넣어져야 할 신라(新羅)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팡구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며 스페인과 신라가 엉켜 있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일본이라고 하는 실체가 본래 북아메리카대륙 서남부를 차지하고 있던 신라 땅 특정지역인 황금향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가란 가정또한 가능하다.

일본이란 명칭은 백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란 기록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역사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도역사는 고려(高麗)가 신라(新羅)를 합병시켜 통일했다고 적고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에 기원하는 거란국(契丹國) 요(遼:916-1125) 제왕 성씨가 왕(王)씨 즉 김(金)씨였다는 것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곧 거란은 고려이며 후 고려가 신라를 합병한 후 삼한통일을 한 역사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황금향(黃金鄕)이 신라라는 주장의 아랍인들의 기록들을 서양인들의 근대사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면 곧 황금향의 지팡구 이름은 신라(silla)의 영역 중 "황금향"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신라 역시 거대한 나라이기 때문에 각 지역명들이 각종 종족들간에 사용되었을 여러 언어의 명칭으로 다양했을 수 있는 가정이 있고 이런 다양한 지역 명칭들이 근세기 동양과 서양이 분리되면서 세분화되면서 각기 국명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하겠다.

그렇다면 근세기에 서양인들로부터 신라(silla)의 일개 지명은 지팡구(zippangu, Jipangu)가 되었다고 풀이가 가능하고 때문에 마르코 폴로의 진실되지 못한 주장은 이런식의 근대사 역사판짜기에 철저하게 동원되었거나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현대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당시 황금(gold)이 어디서 많이 산출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골드러시(gold rush)가 1848년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강(Sacramento江)근처에 있는 존 서터(Johann Sutter)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충분히 반증할 수 있는 정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의 서부 끝 캘리포니아(California)에는 지팡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곳은 신라(shilla)영역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지팡구를 표시한 서양 고대지도를 보면 태평양 한 가운데 북쪽으로 쏠려 그려넣어 마치 하와이 또는 열도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또는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의 착각지도(Mistaken Map)에는 지금의 카리브해에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처럼 그려놓고 애매모호(曖昧模糊)하게 설명을 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푸에르토리코 남쪽 육지에 콜롬비아(Colombia)는 고대 황금왕국이라 불리던 금가서랍(金加西蠟:Castilia Del oro)의 땅으로서  마테오리치(Matteo Ricci:利瑪竇 1552-1610)가 1602년에 그렸다는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에 그대로 버티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지팡구북쪽사람들은 식인습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위키자료를 보면 식인을 가리키는 영어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에스파냐어(Espanol,Castilian)의 카니발(canibal)에서 유래하였다 하였고 해적왕 잉글랜드인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1545-1596)가 활동하던 16세기경 서인도제도를 발견했던 에스파냐(Espana)사람들은 서인도제도의 카리브인들이 인육(人肉)을 먹는다고 믿었던 것에서 출발하여 카리브인을 지칭하는 'carib'라는 어원은 현재의 '식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정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콜롬버스 착각지도는 지금의 태평양이 완전히 무시되었고 북아메리카대륙과 아시아대륙이 붙어 있어 하나의 대륙으로 그려놓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서세 즉 당시 해적들이 16세기에 세계 온 대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하지만 결코 태평양을 바다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지리상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기 때문에 절대로 서양인들은 태평양을 찾지 않았고 또한 태평양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에 더 한다면 16세기 벨기에의 제도가겸 지리학자라고 알려진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1527-1598)의 1570년 지도를 보면 태평양을 가보지도 못한 지도임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는 아예 나타나질 않고 일본열도와 흡사하지도 않는 섬을 가지고 지금의 열도라 하면서 시팡구(Cipangu)라고 떠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애처롭고 측은하기까지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불과 30년 후 그려진 마테오리치(Matteo Ricci)의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보면 천양지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이것 역시 근세기에 그렸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바로 근대사의 있을 수 없는 맹점이고 크나큰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페인이라고 알고 있는 그래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가 마치 스페인 본래의 땅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는 것으로 서양인들의 고지도에 히스파니아로 불리는 이 히스파니아"Hispania"란 명칭을 다시 음미해볼 필요성이 있다.

서부 끝, 서쪽 끝 등의 이 말은 유럽역사와 직결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Hispania"라는 단어는 고대 로마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칭했던 "저녁의 나라" 헤스페리아(Hespe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고, 이는 냉정할 수 없는 감성적인 시(詩)적 용어라 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인(Ancient Greece:BC1100~AC146)의 개념에서 오히려 이탈리아(ltalia)를 "서쪽의 땅"이거나 "해가 지는 곳"으로 인식했다는 것에서 그리스어로 "Hesperia" 혹은 Εσπερία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유럽대륙의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더 서쪽이므로 헤스페리아(Hesperia)에 최종,끝마침이란 용어 울티마(ultima)를 더 붙였다는 것으로 정리하여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더라도 반드시 현재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이 그곳에 존재했을 것이란 단정지울 수 없다는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스페인이 유럽에 없었다면 한마디로 유럽사는 쪽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반도 내에 기원전 8세기경부터 있었던 고대로마(Ancient Rome)는 도대체 어떤 로마라는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또 다른 주장을 보면 스페인언어학연구원이던 헤수스 루이스 쿤치요스(Jesús Luis Cunchillos:1936-2006)가 스페인을"span"으로 보았다는 것으로 'spy, 즉 "쇠를 벼리다", "날이 무뎌진 연장이나 금속 따위를 날카롭게 만들다"에 해당하여 'Hspania'를 'i-spn-ya'로 풀어 그 의미를 "금속 따위를 벼르는 땅(대지)"이 된다 한 것에서 금속을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 열처리가 가능해야 하는데 이 "벼르다"는 결국 쇠를 만들기 위해"녹이다"와 같은 뜨거운 기후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어 지금의 캘리포니아의 어원과 맞아 떨어짐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cali→hot熱;fornus→forno→oven
스페인어 칼리엔테 포르나리아(caliente fornalia)와 라틴어 칼리다 포르낙스(calida fornax)는 뜨거운 오브(熱火爐:hot oven)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한가지 덧 붙인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남 캘리포니아의 토끼 귀처럼 늘어진 바하 캘리포니아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를 토끼의 땅("land of rabbits")으로 볼 수 있고 대륙의 끝이니 혹은 끄트러미 가장자리 모서리("edge")등으로 불리었다는 것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본 블로그가 연구하고 있는 모든 유럽식물종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와 겹쳐 있다는 사실을 증거로 할 수가 있다.

Hispania may derive from the poetic use of the term Hesperia, reflecting the Greek perception of Italy as a "western land" or "land of the setting sun" (Hesperia, Ἑσπερία in Greek) and Spain, being still further west, as Hesperia ultima.
고대 그리스인이 이탈리아를 인식하는 개념에서(perception of Italy)"서쪽의 땅"이거나 "해가 지는 곳"을 의미했다는 사실과 그리스어로 헤스페리아(Hesperia:Εσπερία)로 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유럽대륙에는 본래 스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가 서쪽끝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전통적인 유럽인이라고 한다면 스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인이어야 맞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정을 이야기하면 고대로마가 이탈리아반도에 있었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끝에 로마가 있었다는 설명도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유럽역사구도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며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역사임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세계삼한역사연구를 하면서 일본역사를 근원적으로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특별히 뛰어난 역사 문화국도 아니고 뚜렷한 역사정체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동양사를 보면 거의 왜구와 해구의 분탕질의 역사만 가지고 있고 그들의 종족 본성의 근원조차 알 수 없는 결국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인들이 지금처럼 역사해택을 누리게 된 것은 다 서세(西勢)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근세기에 1872년 이후로 갑자기 성장하고 서양인들에게 역사를 인정받게 된 그들의 원동력을 우리가 냉정하게 볼 때 뛰어난 자립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근세기에 등장한 서세에 의해 몰락한 주체세력의 힘을 서세의 용인아래 그대로 넘겨 받을 수 있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서세가 용인한 것은 같은 인종도 아니고 같은 역사권에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엇때문에 서세(西勢)가 아시아국들 중에서 일본정치세력들을 선택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이것을 알기가 힘든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역사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부분을 일본정치주체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 때 동양사의 기본 정체성을 무시하고 1885년 부터 일본정치세력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서양인 개가 되길 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무엇때문에 일본인들이 결국 서양인들에게 칼날을 들이될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용인했던 것일까?

이것은 본 블로그가 파악한 것의 일부이지만 서세(西勢)가 세계질서를 지배하면서 들어난 것일 수 있는데 하나의 주체세력에게 역사적으로 귀속되었던 암울하던 시기에 서세들의 정체성이 희박하였다는데 있었다고 보이고 그 하나의 체제에 반하면서 지속적인 헹구질 속에 정치적인 음모, 약탈, 침탈, 노략질, 집단살인, 방화, 강간, 부녀자 납치 등 절대 도덕적일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서 들어낼 수 없는 전력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세계 하나의 역사를 동양과 서양으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서양인들의 정체는 17세기 황금기를 구가하던 해적들의 행태와 흡사함에도 그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그들의 신분이 반드시 세탁되어야 하기에 역사를 철저하게 그들 유리한 방향으로 꾸미고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무기는 엉청나게 불어난 자본이었다보 볼 수 있다.

엄청난 자금을 풀어 이러한 역사 분리작업에 의한 서세의 정체성 새로만들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신대륙이 필요하였으며 개척지가 필요하였고 탐험가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역사를 죄다 없애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고 라틴어, 히브리어, 로마어를 통해 각기 역사서를 재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서양역사는 이런식으로 그들이 만들어 차지하고 동양역사는 일본이란 혼돈체를 만들어 그들이 도저히 담아 갈 수 없는 16세기부터 자행되었던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동양사로 전가시키면서 현재 일본으로 나타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월한 서양인들으로 둔갑한 그들은 고매한 종교자로서 역사 개척자 또는 탐구자가 되었고 탐험가, 지리학자, 식물학자, 박물학자 등 과학자로 변신하였으며 또는 현대 군사기술을 습득한 총독이나 제독 그리고 사령관으로 출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주요 키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에 그들의 자원은 주체할 수 없도록 풍부하였기에 아마도 걸림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황금기를 구가하던 서세 해적들의 추악한 신분을 일본이란 동양사 속에 감추고 동양사에서 있지도 않았던 사건, 있을 수도 없었던 문제등을 만들면서 서양사에 비해 열등하게 동양사를 만들었다는 것은 뻔한 이치가 될 것이다.

 

동양인 일본정치세력을 용인하고 서세가 안고 갈 수 없는 역사사실들을 태반과 함께 동양인 일본정치세력들에게 던져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늘상 서양사가 동양사보다 우월하다는 것과 같은 공식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세계삼한역사는 한반도에서 꾸겨넣어지게 되었고 초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서세의 목적은 그렇게 달성할 수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삼한(三韓)이 중국이었지만 이것도 분리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신중국이 동아시아대륙에서 탄생하겠금 지원한 사실도 무시될 수가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 일본정치세력들은 서세 딸앙이가 되어 탈아주의(脫亞主義)를 표방하고 마치 서양인이 다 된 것처럼 연출하면서 결국 동양사(東洋史)를 개무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서세가 준 해택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때부터 동양사무대에서 일본정치세력들은 독불장군, 아하무인이 되었고 그들이 마음대로 떡 주물리듯 조정할 수 있었던 역사가 바로 동양사이고, 반도역사이며 그들의 일본역사이라는 사실을 자신있게 풀이 할 수가 있다.

그런 맥락 아래 일제의 역사꾸미기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풍자한 것이 독일신조어 "변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고 동시에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나타난다고 믿어지는]것을 도펠겡어(Doppelgänger)라 했던 것이다.
어원으로 보아도 도플(Doppel)은 둘(Double)을 나타내고, 갱어(Gänger)는 걸어 다니는 사람(goer)이란 뜻이기에 어쩌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역사주체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몰락한 현실에서 역사란 의미가 퇴색되고 하나의 역사가 둘로 셋으로 세세하게 조각조각 나는 것에서 서로가 다른 역사라고 하였으니 이런 신조어가 생길만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역사에서 두개의 역사에서 하나는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리치(Matteo Ricci)식으로 얼만든지 분리 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점을 전체적으로 종합할 때 서세들이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수단과 방법이 철저하게 자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근대사와 찰떡처럼 붙어 있는 혼돈(混沌:chaos)그 자체의 "자폰(JAPON, Japonnois)"이란 이름이 일본(日本)이란 동양이름으로 생성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근대사의 큰 불행이라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신라(新羅:silla, shilla)가 소설쟁이에 의해 일개 지역적인 이름 지팡구(zippangu)로 둔갑하였듯이 삼한(三韓)의 일개 지역 자치구의 이름인 "일본"이란 명칭은 결국 세계삼한역사를 말살시킨 원흉으로 등장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를 이야기 해야 하지만 조선금대화가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분리 과정에서 생성된 원산지가 얼마나 엉뚱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

 

이제부터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금대(錦帶)는 "비단 띠"라 하여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신중국에서는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의 아름다움, 빈교(鬢嬌)라고도 하였다.

위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살펴보았듯이 병꽃나무(Weigela)라고 하는 이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를 주제로 삼는 순간 이 또한 서양세력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물론 이 꽃은 세종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이 없다.

이것을 고려양로(高麗楊櫓), 무병금대화(無柄錦帶花), 고려병꽃나무(Korean weigela)라고 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 식물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본자료에 양로(楊櫨), 십자매(十姉妹), 금대화(錦帶花), 빈교(鬢嬌), 해선화(海仙花), 일월화(日月花)라 하였다.

이 병꽃나무속(Weigela)를 분류체계적으로 보면 쌍떡잎식물강(雙子叶植物綱:Magnoliopsida), 산토끼꽃목(川續斷目:Dipsacales), 인동과(忍冬科:Caprifoliaceae), 금대화속(錦帶花屬:Weigela)으로 분류된다.

백과사전을 보면 길이 1~7㎝ 정도의 잎이 가지에 마주 달리고 끝이 뾰족한 넓은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잔톱니가 있고 앞뒷면에 잔털과 뒷면 잎맥에 퍼진 털이 있다 하였으며 5월에 잎 달린 자리에 꽃이 피며 노란 녹색이었다가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길이 3~4㎝ 정도의 꽃이 1~2송이씩 달리며 꽃자루에 잔털이 있으며 암술은 1개, 수술은 5개로서 꽃부리는 긴 종 모양으로 끝이 5갈래로 갈라져 연한 녹색이며 잔털이 있다 하였다. 열매는 9월에 바나나처럼 길고 굽어진 길이 1~1.5㎝ 정도의 긴 통 모양 열매가 붉은 갈색으로 여물다가 다 익으면 2갈래로 길게 갈라지고 날개 달린 씨앗이 나와 바람에 날려 겨울에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한다.

어린 나무는 회색빛 도는 갈색을 띠며 껍질눈이 많아 울퉁불퉁하고 묵을수록 짙은 회갈색이 되며 세로로 불규칙하게 갈라지고 줄기속 가장자리는 노란빛 도는 흰 갈색을 띠며 안쪽에는 푸른 연갈색의 넓은 심과 짙은 갈색의 심이 차례로 있고 한가운데에는 흰 갈색의 무른 속심이 있고 햇가지는 녹색을 띠다가 점차 붉은 갈색이 되며 묵을수록 회색빛 도는 갈색이 된다 하였다.

이것을 봄에 채취하여 반 그늘에 말리거나 생것을 쓰는데 약용으로 간염황달, 소화불량, 식중독에 사용된다고 나타난다.

 

이것의 서양자료를 보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학의 화학, 약제학, 식물학, 광물학교수 바이겔(Christian Ehrenfried Weigel:1748-1831)의 이름을 따 1780년에 툰베리(Thunberg)가 이 속명(屬名) 웨이젤라(錦帶花屬:Weigela)라고 명명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왜 하필 이사람의 이름이어야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금대화에서 첫번째로 눈에 띠는 학명 "Weigela coraeensis Thunb" 다.

이것을 한어로 해선화(中文名:海仙花)라고도 하는데 세계삼한역사연구관점에서 볼 때 해(海)가 붙은 것을 보면 분명 삼한식물임을 알 수가 있다.

신중국에서는 이 원산지(原產地)를 전부 동아시아대륙(中國大陸東北,華北,蘇聯,朝鮮半島,日本)으로 표시하고 있고 더군다나 놀랍게도 한반도에서는 이 종(種)을"일본병꽃나무"라 하고 있다.

이 종명(種名)을 딱 보면 삼한(三韓) 이름임을 알 수 있지만 개념없이"일본병꽃나무"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한반도 식물학계의 현주소를 알 수 있으며 식물학을 역사와 같이 볼 때 엉망진창 그자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먼저 이 종은 1794년에 스웨덴의 식물학자이며“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 “일본의 린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1743–1828)"가 명명한 것임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 속명을 명명한 사람과 동일 인물임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이 사람의 행적을 보면 177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Dutch East India Company:1602)소속 함선(艦船) 의사(醫師)로 참여하고 1775년에 일본 나가사키(長崎:Nagasaki)에 도착하여 1777년 7월 떠날 때까지 식물을 수집했다는 사람으로 식물학분류에서 만큼은 친일적인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꽃의 색깔이다.

아래 한어자료에서 설명한 것을 보면 꽃이 초기 필때 흰색이고 황색 혹은 붉은 옅은 장미(玫瑰)색상에서 심홍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대체적으로 색상으로 볼때 초기에는 옅은 장미색을 꼽을 수 있고 계절이 지나면서 짙은 홍색으로 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금대화(錦帶花) 즉 웨이젤라(Weigela)속명에서 주요종으로 붉은 꽃을 골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4가지 종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 [1]Weigela coraeensis Thunb 1794, [2]Weigela florida (Bunge) A. Dc.1839, [3]Weigela hortensis(Siebold & Zucc.) K.Koch 1854, [4]Weigela japonica Thunb.1780 종(種)이다.

 

금대화 4가지 대표(種)

 

[1]Weigela coraeensis Thunb.

 

            [1900년 이전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DNA 분석 분포지도]

 

Common names:
koreanische Weigelie(Source: Zander Ency)–German
stor prakttry(Source: Vara kulturvaxt namn)–Swedish

Economic importance:
Environmental: ornamental(fide Dict Gard)

Distributional range:
Native:
ASIA-TEMPERATE Eastern Asia: Japan-Honshu[e.-c.]

Cultivated:
ASIA-TEMPERATE Eastern Asia:Japan
EUROPE
NORTHERN AMERICA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밴쿠버(Vancouver)

 

Weigela coraeensis Thunb.1794
中文名:海仙花
别名:朝鲜锦带花
异名:Primula planiflora Hand.-Mazz.
描述: Description
(1)落叶灌木,小枝粗壮,无毛或近有毛,高可达3m。叶宽椭圆形或倒卵形,叶子表面深绿,背面淡绿,脉间稍有毛。花数朵组成聚伞花序,腋生;花冠漏斗状钟形,初开时白色、黄色或淡玫瑰红色,后变为深红色,故又名二色锦带。蒴果柱形;种子有翅。花期5-6月。产于华东一带。朝鲜、日本也有分布。喜光,稍耐荫;北京地区可以陆地越冬;喜湿润肥沃土壤。分株、扦插繁殖。花色丰富,是江南地区初夏常用的花灌木。适于庭院、湖畔丛植;也可在林缘作花篱、花丛配植;点缀于假山、坡地,景观效果也颇佳[中国植物志:Flora of China]

낙엽관목, 작은나뭇가지는 굵고 단단하고 털이 없거나 있으며 3m 높이다. 잎은 큰 타원형(宽椭圆形)이나 또는 도란형(倒卵形)이고 잎의 표면은 어두운 녹색(淡绿)이고 줄기 사이에 털이 조금있다. 꽃의 꽃봉우리 수는 취산 꽃차례(聚伞花序)로 구성되고 액생(腋生)은 깔때기 화관에 종 모양이다. 초기 필때 흰색이고 황색 혹은 붉은 옅은 장미(玫瑰)색상이다. 후에 심홍색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이름으로 두 가지색의 금대(二色锦带)라 한다.삭과(蒴果)는 원통형이다. 종자에 날개가 있고 꽃 피는 시기는 5-6월이다. 화동(华东)일대에서 산출되고 조선과 일본에 분포한다. 양지식물(喜光植物)이며 작은 그늘에 견디고 북경지구(北京地区)것은 육지월동(陆地越冬)을 할 수 있다. 축축하고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고 그루를 나누는 꺾꽂이 번식이 가능하다. 꽃은 다양한 색으로 이것은 강남지구(江南地区)에서 초여름에 화관목(花灌木)으로 상용된다. 정원(庭院)에 적합하고 호반(湖畔)에 무리되어 자라며 수풀에 의지하여 꽃울타리를 이루면서 가산(假山)을 장식하거나 경사진 곳에 꽃을 심게 되면 풍경효과가 매우 좋다.

 

먼저 첫전째로 학명 "Weigela coraeensis Thunb"를 살펴보는데 놀랍게도 위 "USDA" 미국농무부(美國農務部: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의 네트워크 자료와 중국[中国植物志:Flora of China]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이 나타난다.

이 학명을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명칭을 독일에서는 "코리안 웨이젤라(朝鮮錦帶花)"라 하였다는 사실이다.

스웨덴에서는 "큰(stor) 웨이젤라"라 한 것을 알 수가 있고 이것의 중국자료를 보면 이 종(種)을 역시"해선화(中文名:海仙花)"라 하였으며 별명으로 역시 조선금대화(别名:朝鲜锦带花)라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일본병꽃나무"라 한 것은 어처구니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툰베리가 명명한 명명시기가 이 속명 웨이젤라를 붙이고 있는 종 중에 가장 빠른 1794년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원종이라는 것이다.

또한 위 1900년 이전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DNA 분석 분포지도를 보면 북아메리카대륙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밴쿠버(Vancouver)와 일본열도에 노란점이 표식되어 있음도 알 수가 있고 역시 일본열도에 노란점이 표식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일본병꽃나무"라고 하는 근대사의 위장된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 밴쿠버(Vancouver)에 표식만큼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간단하게 볼 수가 없게 하는 것이다.

 

[2]Weigela florida (Bunge) A. Dc.1839 Old-fashioned Weigela (붉은병꽃나무)

Alexander Andrejewitsch von Bunge (1803–1890)

 

 

Common names:
weigelia   (Source: BSBI ) – English
jin dai hua   (Source: F ChinaEng ) – Transcribed Chinese
liebliche Weigelie   (Source: Zander Ency ) – German
ō-beniutsugi   (Source: F Japan ) – Japanese Rōmaji
rosenprakttry   (Source: Vara kulturvaxt namn ) – Swedish

Environmental: ornamental   (most common in late 19th century fide Dict Gard)

Distributional range:
Native:
ASIA-TEMPERATE
China: China - Heilongjiang, Henan, Jiangsu [n.], Jilin, Liaoning, Nei Monggol, Shaanxi, Shandong [n.], Shanxi
Eastern Asia: Japan - Kyushu; Korea
Cultivated: also cultivated

 

두번째의 위 학명은 전통적인 웨이젤라(Old-fashioned Weigela)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영어명칭에서 알 수 있으며 "붉은병꽃나무"라 불리었고 1839년 발트 게르만계 식물학자(Baltic German botanist)이며 최고의 아시아, 시베리아 과학탐험대 일원이라고 하는 알렉산드르 번지(Alexander Georg von Bunge:1803-1890)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서 그는 1826년에 키르기즈 초원(Kirghiz Steppe)과 알타이산맥(Altai Mountains)을 과학탐험하고 1830-1831년에는 북경을 통과 시베리아에서 몽골식물(Mongolian flora)을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으며 다시 동부지역(eastern part of the region)알타이산맥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연구를 계속했다고 기록되었으며 1857-1858년에 호라산(Khorasan)과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에서 진행된 과학적 탐사에 참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미 본 블로그의 글 "알타이(altai)가 어딘가?-용연향(龍涎香, ambergris)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3"에서 알타이산맥이 북아메리카대륙 로키산맥이라는 점을 밝히바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위 1900년 이전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DNA 분석 분포지도를 보면 유럽에는 아일랜드, 잉글랜드, 독일과 스페인으로 나타나고 동아시아대륙에는 한반도와 열도와 특이하게 북경을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북아메리카대륙으로는 남부의 앨라배마주(州)의 터스컬루사(Tuscaloosa)와 동부의 코네티컷주(州)의 브리지포트(Bridgeport),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밴쿠버(Vancouver)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밴쿠버는 분명 북경과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3]Weigela hortensis(Siebold & Zucc.) K.Koch 1854, 열도일본, 골병꽃나무

 

 

Common names:

japansk gullprakttry (Source: Vara kulturvaxt namn ) – Swedish

Distributional range:

Native:

ASIA-TEMPERATE

Eastern Asia: Japan - Honshu [n. & c.]

전체 일본열도

 

錦帶花(學名:Weigela hortensis)為忍冬科之一種美丽的观赏植物。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綱: 双子叶植物纲 Magnoliopsida

目: 川續斷目 Dipsacales

科: 忍冬科 Caprifoliaceae

屬: 錦帶花屬 Weigela

種: 錦帶花 W. hortensis

二名法

Weigela hortensis Thunb.

Weigela species are used as food plants by the larvae of some Lepidoptera species including Brown-tail.

 

[4]Weigela japonica Thunb.1780

 


Common names:
japanische Weigelie   (Source: Zander Ency ) – German
japansk prakttry   (Source: Vara kulturvaxt namn ) – Swedish
Economic importance:
Environmental: ornamental   (fide Dict Gard)
Distributional range:
Native:
ASIA-TEMPERATE
China: China - Anhui, Fujian, Guangdong, Guangxi, Guizhou, Hubei, Hunan, Jiangxi, Sichuan, Zhejiang
Eastern Asia: Japan - Kyushu; Korea
Cultivated: also cultivated

 

골병꽃나무라 하는 학명[3]Weigela hortensis(Siebold & Zucc.) K.Koch 1854,과 [4]Weigela japonica Thunb.1780 는 마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듯이 일본을 근원으로 하는 기본 틀을 맞추기에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래도 분포지도를 살펴보았는데 [3]학명 "Weigela hortensis"는 완전히 일본 열도를 나타내고 있어 변종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분포지도를 보아도 그러한 틀 맞추기에 급급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Weigela hortensis(Siebold & Zucc.) K.Koch" 가 때로는 "Weigela hortensis Thunb."이라고 하여 툰베리가 명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학명 "Weigela japonica Thunb.1780" 과 중복된 느낌을 주고 있고 이 두 학명 모두가 동아시아 열도 일본을 근원지로 하는 것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짙게 나고 있다.

 

마무리(발트해와 허드슨 만)

 

금대화(錦帶花)의 4가지 대표종(種)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동아시아 열도 일본을 근원지라고 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 별칭 해선화(海仙花)라고 하는 [1]번 학명 Weigela coraeensis Thunb 1794, 과  붉은병꽃나무 또는 전통적인 금대화라고 하는 학명[2]Weigela florida (Bunge) A. Dc 1839, 를 세계삼한역사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만족할 수밖에 없다.

19세기에 주요한 식물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웨덴 학자 툰베리가 비록 친일인사라고 하지만 1780년에 종명 "japonica"를 명명하였다는 것에서 이것이 일본 열도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 1794년에 그는 같은 속명에서 종명 "coraeensis"라는 명칭으로 또 하나의 금대화를 명명했다는 것은 그가 바로 이 종의 원산지인 "cori, core, corai"를 상당하게 염두에 둔 것임을 알게 한다.

고대 라틴어에서 ~ensis 가 접미사(Suffix)로 역할 할 때는
-ēnsis m, f (neuter -ēnse);1.Of or from a place.

장소,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cora(e) "코리아 땅(ensis)"에서 자라는 식물임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금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위 1900년 이전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DNA 분석 분포지도를 참고 한다 하더라도 한반도가 아니라 오히려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임을 알 수가 있으나 [2]번학명 Weigela florida (Bunge) A. Dc.의 한어자료 설명에서 이 금대화가 공통적으로 북경지역과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로 북경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분명 양지식물(喜光植物)로서 북경지구(北京地区)의 것은 육지월동(陆地越冬)을 할 수 있으며 축축하고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동아시아대륙 북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삼한의 북경을 말하는 것으로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북쪽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심하게 살펴볼 것이 있다.

이 학명(Weigela florida)을 명명한 알렉산드르 번지(Alexander Georg von Bunge:1803-1890)는 발트 게르만계 식물학자(Baltic German botanist)라고 하였는데 발트해(Baltic Sea)가  게르만어(Germanic languages)로 "Aust-marr"라 하여 동쪽호수(Eastern Lake) 혹은 동쪽바다(Eastern Sea)등으로 불리었다는 사실을 자료에서 알 수 있는데 현재 "유럽대륙의 발트"의 지명은 이와 같은 위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발트해가 있을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허드슨베이(Hudson Bay)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보아도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에 거란 즉 아라사 대비달자가 있었던 곳이라 한 곳이 미주리강 상류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동쪽 호수나 바다는 바로 캐나다 북동부에 있는 얕고 넓은 만(灣:bay) 허드슨베이(Hudson Bay)임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고대 노르드어(Old Norse)로 "간드빅(Gandvik)"라 하였는데 백해(白海:White sea)라 하였고 또는 위험한 바다라 하여 뱀 만(Bay of Serpents)이라 하였으며 형태적으로도 "바다의 입구" 또는 "내해(inlet of the sea)"로 묘사하여 그렇게 불리었을 것이란 짐작케 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조건에서 정확하게 모두 충족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지도를 펴고 살펴볼 때 절대 틀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위 한어자료에서 설명한 발트 게르만계 학자 "알렉산드르 번지"의 행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아시아대륙이 분명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1826년에 키르기스 초원(Kirghiz Steppe)과 알타이산맥(Altai Mountains)을 과학탐험하였다 하였고 1830-1831년에는 북경(北京:Peking)을 통과하여 시베리아(斯白力:Siberia)에서 몽골식물(Mongolian flora)을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다 하였으며 다시 동부지역(eastern part of the region)알타이산맥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연구를 계속하였다는 사실과 1857-1858년에 호라산(Khorasan)과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에서 진행된 과학적 탐사에 참여했다고 한 사실까지 모두 그가 위치 하였던 곳은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임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들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알타아산맥이 로키산맥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놀랄 것도 없다.

결국 유럽나라제국들은 이렇게 볼 때 북아메리카대륙 허드슨 만을 중심으로 하여  배열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은데 동해(東海)라고 칭하였던 언어군들 네덜란드어(Oostzee), 노르웨이어(Østersjøen), 덴마크어(Østersøen), 독일어(Ostsee), 스웨덴어(Östersjön), 아이슬란드어와 페로어(Eystrasalt) 그리고 핀란드어까지의 종족 또는 민족들은 허드슨 만 서쪽에 포진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동해(東海)라 했을 것이나 실제로 유럽군들은 모두 남쪽에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발트를 서해(西海:Läänemeri)라고 한 에스토니아어(Estonian)를 사용한 종족은 물론 동쪽에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현재 유럽대륙의 제국들은 발트해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혀 맞지 않는 구도임을 알 수 있는데 위 지도를 보면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

또 금대화(錦帶花:Weigela)는 1845년에 북중국(North China), 코리아(korea), 만주(Manchuria)를 방문한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이며 식물사냥꾼(plant hunter)인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1812-1880)에 의해서 알려졌다고 하였는데 물론 서양인들에게 알려진 것임을 알 수 있고 1842년 8월 아편전쟁(阿片戰爭)이 종결되고 남경조약(南京條約)체결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서세들이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이들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가 식물수집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때 금대화(錦帶花:Weigela)가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포춘에게 발견된 금대화가 정확하게 [2]번학명 Weigela florida (Bunge) A. Dc.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학명의 명명시기가 1839년이라고 하였으니 이미 유명식물학자들로부터 채집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유독 유럽인들에게는 늦게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스웨덴 학자 툰베리에 의해 속명(屬名)이 명명된 시기가 1780년이란 점을 비교하여도 상당히 늦은 시기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할 때 툰베리가 명명한 [1]명학명인"Weigela coraeensis Thunb.1794"를 그들은 어렵사리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을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라고 하였으며 또한 삼한이름인 해(海)를 붙여 해선화(海仙花)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 그들은 삼한 조선이나 고려인 코리아를 찾아 들어간 것이다.

식물사냥꾼(plant hunter)인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이 중국에서 차(茶)를 훔친 이야기는 아직도 유명하다.

당시 중국은 차(茶)의 재배와 제다(製茶)등 차(茶:tea)와 관련된 기술을 일종의 국가 기밀로 취급할 정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서세들은 그것을 파헤치려 안달을 하고 있었으며 비로소 1848년에 식물사냥꾼인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은 몽골의 고관으로 변장하고 중국본토로 들어가 차(tea)종자와 차 재배기술을 몰래 빼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북경으로 들어 갈 때 스코틀랜드인 포춘이 몽골 고관으로 변장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의외이야기로 몽골인들이 스코틀랜드인과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인종적으로 중국 땅에서 쉽게 구분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변장사건을 예를 들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용(龍)문장의 브리티시를 상대로 1773년에 벌어진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들 수 있는데 이때도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주민(미국인)들이 아메리카토착민으로 위장하여 몰래 들어가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앞에 상황과 같은 것으로서 미국인과 아메리카토착인들 서로가 인종적으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아메리카토착인들도 서양인처럼 모습이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우리가 동양인으로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게 인종구분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화 된 아메리카토착인 인디언을 생각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정말 혼돈이다.

현재 한반도 식물학자들이 [1]학명인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를 "일본병꽃나무"라 하고 있는 것이나 당시 인종을 동양인과 서양인조차도 구분할 수 없었던 상황을 보더라도 사실적인 역사라고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판단된다.이것을 바로 역사 도펠겡어(Doppelgänger)라 하지 않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끝으로 안타까운 이야기 한가지만 더 하자.충남 공주시 계룡면(鷄龍面) 금대리(錦帶里)에 있는 평야를 "금대들"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금반형의 명당이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금대리라 지어졌다 하고 전면의 평야를 "금대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금반형(金盤形)이라 하는 것은 풍수지리설로 "임금이 금으로 만든 상에 밥을 먹는 형국"이라 하여 그렇게 붙인 이름이라 하겠으나 따지고 보면 금대리는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가 피는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지명들은 아주 오래된 역사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 사람들은 이 금대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명유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고 보이지만 이러한 마을의 유래에서 근거가 없을 리가 없다. 한문도 금대(錦帶)라고 쓰는 것을 보면 금대화(錦帶花)가 피던 마을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