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박하(薄荷:Mentha)

한부울 2017. 4. 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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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薄荷:Mentha)


글쓴이:한부울


1.유럽사가 뒤섞여 있는 삼한역사
2.신라박하(新羅薄荷)와 유럽박하
3.서양박하 페퍼민트
4.일본박하 이야기
5.개박하 이야기
6.결어정리


1.유럽사가 뒤섞여 있는 삼한역사


본 블로그 글 "석유(石油:petroleum)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7"에서 분석하고 정리하였듯이 신라는 비잔티움역사와 동일한 선상에 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삼한역사에서 신라를 합병한 고려는 비잔티움역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거대한 연합, 연방형태의 체제국가로 발전시켰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를 범위로 할 때 수많은 중국 정복국가명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
삼한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존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세계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인의 유럽사는 이러한 고려 연합이나 연방체제의 역사는 물론 문화 영역에서까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실임을 확증한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유럽사는 문화를 포함한 삼한역사를 근원을 깔고 있을 가능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이것은 마치 제로섬게임에서 1-1=0 가 되어야 한다는 공간법칙에 따른 이론으로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하나가 아닌 상태에서 두 개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역사공간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삼한역사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유럽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반대로 유럽사가 존재하였다면 더 이상 세계삼한역사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역사에 몰입되어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것은 삼한역사는 곧 유럽사라 해야 맞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명칭 “COREA” 혹은 "KORAI"는 유럽사의 상징이었다고 보는 것은 바로 근세기에 미국인 역사가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1843-1928)가 그의 저서[아시아역사:Asiatic history]에서 고려의 년도표기를 “United corea, or korai, 960-1392 AD”라 하였다는 것은 명색이 삼한의 최종 상속자로 밝혀진 우리가 비록 그동안 한반도식민사에 몰입되어 그런 역사를 속속들이 알 수 없었던 무능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상황은 미국역사가가 스스로가 그렇게 표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에 상응한 역사상황이 분명 연합이나 연방체제의 국가이었던 것이 틀림 없고 "석유로 본 새로운 역사"에서 언급하였듯이 유럽사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거의 신라, 고려역사가 유럽사와 같이 전개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삼한역사와 유럽사가 동일 선상에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반도에 코라이(KORAI)이란 지명이 무수히 명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고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신뢰 또한 존재하기때문에 결코 신라와 고려가 비잔티움이라는 본 블로그의 주장이 그렇듯 황당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유나이트 코리아(United Corea)는 코라이(korai)로 병용되었던 것과 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비잔티움제국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도시국가를 포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가벼이 볼 수는 없다.

어쨌거나 기록으로 보았을 때 신라 스스로가 어떤 프레임에 빠져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을 고려가 대신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종교를 포함한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 아우를 수 있는 연합체제나 연방체제였다는 사실이 틀림없다.

아마도 신라는 고대 원시종교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매개로 정책을 꾸렸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에서 심층분석하였듯이 신라승려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三聖紀全)상편 원문에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이라 하여 옛 조선(朝鮮)이 개국할 때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명이 흑수(黑水) 백산(白山)땅에 내려왔다"는 기록에서 흑수를 말하는 것이나 단군시대를 우리입장에서 단기(BC)2333년부터 기산하는 것에 의하고 동시에 유럽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이집트 역사를 나일강 지역(Nile River region)을 범위로 이집트 고(古)왕국(Old Kingdom of Egypt :BC2686–BC2181)이 존재하던 시기를 단기2686년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이 시간적으로 동일선상에 볼 수 있어야 하고 당시는 단군 탱그리(Tengri)와 같은 위치의 이집트 태양 신(神) 호루스(Horus)가 동일한 의미인 나르메르(Narmer)왕이 되어 이집트를 통일한 시기로 알려지는 것과 동시에 아랍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있는 피라미드 건설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시기 역시 같아 이러한 동서양 역사상황등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우리의 단군역사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한 것으로 단군연대를 기록으로 참작할 수 있지만 유럽사는 이러한 기록이 전무하기에 1949년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아드 리비(Willard Frank Libby:1908-1980)가 개발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放射性炭素年代測定法:Radiocarbon dating)에 의해 밝혔다고 하는 것이 고대 이집트역사 연대라고 정리되며 이것을 현대 과학적 분석방법이라고 호도하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유럽사만들기에 동원된 근세기의 여러가지 행태를 보면 이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한 측정년대가 유럽사만들기에 동원이 되어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된 역사개연성과 연속성, 그리고 지속성을 그들에 의해 원초적으로 파괴되고 대신 과학을 매개로 하는 수단이 담보가 되었다는 것은 굳이 음모설 등을 들추지 않더라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모순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본 블로그가 실시한 분석에서 그러한 중대성은 무수히 밝혔던 사실도 존재한다.

설명이 길어지지만 산업혁명이후부터 약 200년간 실시된 서양교육과 그것에 의해 재생산된 지식 근간으로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양인들의 역사주장을 그대로 검증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역사기록이 여러가지 음해설이 있다지만 이것이 서양인에 의해 파괴되고 남은 마지막 진실 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200년간 지속된 서양학습의 뿌리가 견고하다 하겠지만 기존 유럽사를 지탱하고 있는 근간을 확실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라면 이런 의혹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오늘날 유럽사는 그들만의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특별한 검증도 없는 일방적인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수많은 모순과 맹점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역사현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을 앞세운 서양인들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하는 과학적 지식은 오히려 글쓴이가 주장하는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오리엔트 문화에서 기초하고 근간을 세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본 블로그 글 "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 연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42"의 소제목"3)실증주의와 끼워 넣기한 유럽사"편에서 실제로 러시아학자들에 의해 폭로된 사실에서 보면 “1954 stonehenge being built”제목에 따른 사진과 함께 영국에서 스톤헨지(stonehenge) 데코레이션(decoration)작업이 진행되었던 사실이 백일하에 노출되어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당시까지 유럽사만들기에 혈안이 된 상황을 말해주고 있으며 분명 영국의 치밀한 계획과 주도아래 이렇듯 세계역사지명과 유적 옮기기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장면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볼 때 수많은 유적들이 산산이 조각나 있는 상태로 나뒹굴고 있는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들이 과연 온전한 제자리에 존재했던 유적들이 맞는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을 글쓴이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이 이러한 광경의 유적들을 과연 어디서 옮긴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겠지만 필연적으로 태고적 인류역사가 움턴 곳 북아메리카대륙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만 보더라도 유럽사만들기에 혈안이 된 서양인들의 무도한 역사 끼워 넣기가 얼마만큼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 중에 유럽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서 보더라도 서양인의 역사라고 하는 유럽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역사성에서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인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특히 현재 유럽대륙에 모여 있는 유럽제국들의 역사근원적인 문제의 바탕이 매매모호하다는 지적과 왠지 모를 민족성이결여 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의심하게 하고도 남는 것이다.

때문에 과연 유럽역사는 애초부터 아랍문화를 포함한 오리엔트의 진실 된 역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또는 독립적인 역사를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본 블로그를 통해서 글쓴이가 애써 생물학적, 지리학적, 기후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를 총칭한 삼한(三韓)이란 역사 프레임 자체가 너무 방대하다는 사실이며 이러한 역사바탕이 실체라면 결코 동양사에 국한하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사에 존재하고 있는 세세한 데이터가 부족한 일면이 있지만 스캐일자체가 삼한역사전체를 볼 때 마치 세계사를 보는 듯했다는 것이 글쓴이의 느낌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유럽사와 삼한역사의 공통점이랄까 또는 늘 글쓴이가 하는 주장 중에 하나인 하나의 체제에서 발생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 실체가 혼입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역사증거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지적을 부정만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전자에서 언급했지만 글쓴이는 역사기원을 찾을 때 진실된 역사개연성과 연결성, 그리고 지속성을 따지면서 마지막으로 자연결합성을 따져 결국 제일 꼭대기는 하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를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반복한 것이다.

그것이 삼한역사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놀라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무엇으로 밝힐 것인가.

능력을 의심하고 한스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첫째로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거리상 한반도와 유럽대륙의 거리가 서로 독립적 관계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하나는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세계삼한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서로 극과 극에 존재하던 아랍과 신라가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통국(通國)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산처럼 쌓이는 것도 이와같은 지리여건상 거리가 원만한 이해를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대 들어 초고속여객기 같은 운송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 역사에서 이동을 무심코 흘러버릴 수 있는 맹점이 사람들 내면에 존재하고 이를 그렇겠지 하면서 포기하거나 등식화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태고적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횡단하여 동(東)과 서(西)극단까지의 인간의 수단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거리임이 틀림없고 더군다나 무역으로 해소했다는 것은 경제이윤원칙을 따질 때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이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장사에 이윤을 전제하지 않을 때 어떻게 여행목적만을 가지고 행보가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합해 극동에서부터 소아시아까지 20,000리(里)되는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했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단번에 희석시킬 수 있는 대안이 바로 20세기 초부터 집중된 교육수단이다.

이시기는 자본제국들이 역사를 한쪽으로 치우쳐 볼 수밖에 없는 편협적인 현대 인간들의 사고를 건드리고 시작했고 결국 그것을 쉽게 용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보는 비판적 시각은 현재도 전무하다.

19세기 산업발달에 의해 급속히 진보한 금속운송수단의 상황들은 그 이전 역사에 별 검증도 없이 그대로 대입시킬 수 있었고 유럽역사전체에 흐르는 맹점들을 일거에 합리화시키고 정당화한 단적인 예가 바로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라는 것이다.

유럽대륙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 열도의 나가사키 데지마(Nagasaki:長崎出島)상관까지 구글어스로 재어본 단순항해거리가 30,000km 가 넘는다.

이런 거리 안에는 죽음을 위협하는 한류(寒流)나 난류(暖流), 사막에서 불어대는 열사풍, 짙은 안개나 이상강수(異常降水), 갑자기 일어나는 해무(海霧)현상과 강풍, 모든 것을 삼키려 하는 소용돌이와 폭풍이 일어나는 곳이 한두군데도 아닐 것인데 버젓이 기록 상단에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1498년 인도양탐험을 시도했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끌고 간 선대를 살펴보면 기함인 산 가브리엘 호(São Gabriel:length 27m, width 8.5m)가 178톤, 산 라파엘 호(São Rafael:Length:25.7m, Beam:8.5m,Draft:2.3m)가 100톤, 팔리오 호(Bérrio)역시 100톤, 그리고 식량 운반선 산 미구엘(São Miguel)이 110톤 또는 200톤등 모두 4척이라 하였다.

불과 200톤 미만의 소형 갤리온(Galleon)의 범선(帆船)을 이용하여 인도양을 탐험하고 인도를 발견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언젠가 이런 반복적인 도전은 가능했겠지만 그것이 왜 하필이면 서양인들이 역사전면에 등장하는 데뷰무대구실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와 예수회가 주도한 유럽사만들기가 시작된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대조선의 임진왜란 발생시기와도 겹쳐 있다.

이를 곧이 곧대로 우리는 믿어야 했고 때문에 유럽인들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횡단에서도 그나마 연결이 가능한 북아메리카대륙을 비교하자면 동서4000km(10,185里)정도가 되어 흔히들 만리(萬里)정도가 되는데 이곳도 미시시피강을 횡단한다는 자체가 태평양과 상응하게 반응한 서양인들 입장에서 로키산맥이란 해발 4,000m 정도의 험준한 산등성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히 넘어 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서양인들이 북아메리카대륙에 들어온지가 1500년이라면 거의 대륙횡단철도가 1869년에 가능했던 것을 보면 거의 400년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인간이 사용하던 원시 이동수단으로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묘사는 언제든지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렴움이 있었는가를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1902년 당시 최대 18,000톤급의 코리아(korea)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2"에서 실제로 운송회사들이 태평양을 마음놓고 횡단하였다고 볼 수 있는 시기는 대체로 1914년 8월 15일 파나마운하(Panama Canal)가 완성되고 난 후부터라고 했다.

서양인의 역사 전반에는 자연의 무서운 힘을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현재 지형을 바탕으로 신라를 대입하면 소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가 20,000리(里)(8000km)가 되며 유럽 포르투갈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 25,000리(里:10,000km)가 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었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도저히 도식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난해한 문제가 있자 그때 그때 마다 물길을 타고 옮겨갔다고 둘러 된다.

10세기 통일신라 때, 아랍과의 통교가 가능했던 기록을 보면 본 블로그 글 "알타이(altai)가 어딘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3"에서 아랍의 지리학자 알 마크디시(Muḥammad Ibn Aḥmad al-Maqdisῑ)의 “창세와 역사서(966)”에 나오는 기록에서“중국 동(東)쪽에 신라(新羅)가 있는데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그곳이 공기가 맑고 재부(財富)가 많으며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이 또한 양호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신라인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며 식사 때는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라고 한 기록을 인용한바가 있다.

즉 금이 대량으로 생산되던 곳이다.

대량이라는 잣대는 바로 산업혁명의 발단이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골드러시의 역사상황이 바로 진실 역사의 표본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역사를 바르게 풀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 글에서 알타이를 글쓴이는 로키산맥이라고 결론지었다.

Turkic languages altin means gold and dag means mountain.
 "alt" (gold) and "tai" (suffix - "with"; the mountain with gold)
"Altai" means "Gold Mountain" in Mongolian

알타이는 몽골어로 금산(金山;gold with, mountain)이다.

본 블로그 글 "금산(金山)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지명역사사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1"에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옛 지명이 금산(金山)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아랍인들이 중국이라고 하는 설명에서 굳이 주석을 달아 동아시아대륙의 신중국을 강조해야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의 동쪽이라 한 사실에서도 현 동아시아대륙을 배제 하면 지형방향이 분명치 않다는 사실과 천자가 거했다는 큰 도시정도의 역사 인식에서 중국이 결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도 우리는 인식해야 할 문제이다.

때문에 현 동아시아대륙 신중국이 존재하는 곳을 대입하면 혼란만 생긴다.

근세기에 의도적으로 서양역사학자들이 중국의 실체를 부당하게 확대시켜 동양 역사자체를 가늠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어쩌면 삼한역사를 대체용으로 부각한 면도 없지 않다.

이러한 역사프레임은 바로 삼한역사가 동아시아대륙 한반도에 고착시켜야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본 블로그 글 "무열왕과 문무왕은 칼리프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392"와 사산왕조(Sassanid Empire)의 두 여제와 신라(新羅)의 두 여왕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8

" 글에서도 아랍통일이 곧 신라통일로 비춰진다는 사실을 알렸고 당시에 비잔티움제국에서의 연합이나 연방형태에 있었다고 볼 때 무열왕이 통일신라를 구축했던 제왕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과 알리(Ali ibn Abi Talib:656-661)가 아랍제국을 통일한 사실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으며 사산왕조의 푸란도흐트 (여제)와 아자르미도흐트(여제)가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과 진덕여왕(眞德女王)과의 동일인물이라고 한 사실에서도 결코 동아시아대륙 존재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때문에 신라와 아랍이 통교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의 체제라는 의미이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와같은 설명은 단번에 아랍과 신라가 같은 체제의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자료에 보면 서양역사(western history)를 학자들 간에 고전고대시대이니 중세시대이니 따위처럼 시대구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이 유럽역사의 근원적인 문제를 들어내는 것이고 17세기 유럽이니 18세기 유럽이니 하는 것과 같이 세기별 구분을 할 수밖에 없다거나 1, 2차 세계대전과 같이 현재 큰 사건주제로 나누어 시대를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등은 유럽역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사가 무엇인가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사에서 오리엔트문화라는 것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집트문화, 그리스문화와 로마문화전부가 그 범주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럽사 기원을 세울 수 있었던 바탕이 되고 서양인의 보루라고 알려진 그리스문화와 로마문화역사에서 중요한 끈은 오리엔트역사에서 찾았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유럽역사를 정리한 것을 보면 먼저 고대이집트(Ancient Egypt:BC3100-BC332)를 발판으로 그리스문화를 그 중심에 넣었고 그 다음 고대그리스(Ancient Greece:BC1100-BC146)를 이어가고 지금의 이탈리아반도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제국(Ancient Rome:BC8-AD1453)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본 블로그 글 "사산왕조(Sassanid Empire)의 두여제와 신라(新羅)의 두여왕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8"에서 지적한 사실이지만 서로마(西羅馬)는 백제(百濟)와 계보가 동일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과 또한 본 블로그 글 "동경반란(東京反亂)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십자군사건 http://blog.daum.net/han0114/17050494"에서 동로마 비잔틴제국은 통일고려라 하였던 것에서 중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왜 이런 역사현상들이 겹쳐 지적될까.

바로 유럽사와 삼한역사가 겹쳐질 수밖에 없는 역사 근원적인 문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사의 시발이라고 하는 고대이집트의 시작년도가 기원전 3100년이라 하는 것도 이 시기가 삼한역사로 따진다면 신시시대(神市時代:BC3897-BC2333)10대 독로한(瀆盧韓) 갈고(葛古:BC3071-BC2971)시대이나 신시시대의 시작년도는 그보다 약 8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신시시대자료를 보면 갈고(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환웅은 배달국의 10대 환웅으로 기원전 3,171년에 등극하였으며 갈고 환웅은 서쪽 변경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충돌이 끊이지 않음을 염려하면서 갈고 환웅은 사신을 보내 신농씨(神農氏)를 문책하자 사죄하였고 제후국으로 조공을 바치면서 유웅국(有熊國)의 승인과 자치권을 요구하자, 특사를 파견하여 공상(空桑)을 국경으로 하도록 승인하였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공상협약(空桑協約)이라 하며 이 공상의 동쪽이 우리 쪽에 속한다고 되어 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北山经》:“空桑之山,无草木,冬夏有雪。空桑之水出焉,东流注于滹沱。” 空桑之山产琴瑟之材。
북산경에는 "공상은 산으로 초목이 없으며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눈이있다”라 하였고 "공상에서 물이 나는데 동쪽으로 흘러 호타(滹沱)에 쏟아진다."하였고 "공상의 산에서 생산되는 것은 금슬의 목재이다."라 하였는데 금슬(琴瑟)을 거문고와 비파라 하는데 비파를 호금(胡琴:비파)이라 하는 것은 삼한의 악기이며 유럽인들이 즐겨사용하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로 변천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블로그 글 "가문비나무-서양관악기의 재료가 된 고려운삼(高麗雲杉)
http://blog.daum.net/han0114/17050074"에서 밝혔듯이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등 악기의 재료가 가문비나무(雲杉)를 말하는데 바로 고려운삼(高麗雲杉:Picea orientalis (L))의 생산지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펜실베이니아 체스터(PENNSYLVANIA CHESTER)와 코네티컷의 페어필드 카운티(Fairfield County)이다.

델라웨어 강(Delaware River)과 허드슨 강(Hudson river)을 나일강과 비견될 수 있지만 우리가 잘 살펴야 할 이야기다.

이어 공상협약은 이후 350여년간 잘 지켜졌으나 헌원(軒轅)의 반란으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알려지는 것이다.

신중국사는 헌원황제(軒轅黃帝)를 하화(夏華)족의 시조라 하는 것이며 이를 유럽사에 대입하면 이때가 고대이집트의 하(下)이집트지역의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진압했다는 사실에서도 갈고 환웅(桓雄)이 당면했던 사실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다.

이러한 대입적 사실에서 보면 당시 지상에서 신(神)을 대신한다는 의미인 파라오(Pharaoh)라 한 것이나 이 파라오를 또 다른 명칭으로 '라(Ra:羅)즉 태양신의 아들'이라 한 사실, 그리고 신시시대 환웅과 비교하더라도 존엄성이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역사는 정사이고 우리의 삼한역사는 신화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한 이야기다.

환웅역시 태양신 탱그리의 지상 아들이 아닌가.

다시금 논하지만 유럽사의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한 러시아 수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의 새로운 역사(New Chronology)에서 주장한 사실을 반드시 감안해야 할 이야기로 고대이집트, 고대그리스, 고대로마를 포함한 고대사 모두가, 중세에 일어난 사건의 반영에 지나지 않았으며 또 중국이나 아랍의 역사 모두가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것으로 이러한 역사들은 15세기 바로 예수회(Society of Jesus)가 만든 음모라 한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본 주제 박하에 대한 생물학적 근원을 찾아 들어가고자 한다.


2.신라박하(新羅薄荷)와 유럽박하


고려 때의 박하를 이두향명(吏頭鄕名)으로는 방하(芳荷)라고 했고 이것을 영생(英生), 야식향(夜息香), 번하채(蕃荷菜), 인단초(仁丹草), 구박하(歐薄荷), 금전박하(金錢薄荷), 남박하(南薄荷), 승양채(升陽菜), 오발활(吳菝活), 발활(菝活)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음을 알 수가 있는데 현재 나타나고 있는 박하에 대한 총체적인 이름들이다.

「蔢」字在《康熙字典》的解释
【申集上】【艸字部】蔢
【唐韻】薄彼切,音婆。蔢蔢,草木盛貌。又【集韻】步臥切,音?。
【玉篇】蔢?,藥名。○按薄荷,見《本草綱目》。詳荷字註。其薄字或作菝,或作番,或作蔢,或作?,皆方書傳寫之譌,不必拘泥也。
백과사전을 보면 박하(薄荷)는 고려시대에는 향기롭다고 방하(芳荷)라고 불렀고 인도 지역에서 ‘파하’라고 부르는 것은 산스크리트어(Sanskrit)에서 유래한다고 했으며 15세기 초[사성통해(四聲通解)]에서는 영생이란 우리말이 기재되었고, 그로부터 10년 후의[훈몽자회(訓蒙字會)]채소편에서는 다시 박핫 파(蔢), 박핫 하(?-초(艸) 두가 있는 하(閜)자)자로 기재했다라고 설명된다. 

현재 신중국 베이징 발음은 박하를 보-거[bò‧he]에 가깝다.

발음상 산스크리트어가 오히려 우리나라 발음과 더욱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이렇게 이름이 다양했다는 것은 그 만큼 옛 생물학적 분류에서 종류가 많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며 분류학적으로도 매우 민감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산림경제 제4권
치약(治藥)
박하(薄荷) 영생이
圃中種蒔。可生啖。亦可作茹。夏秋採莖葉。暴乾入藥。本草
포전(圃田)에 모종하여 심는다. 생으로 씹을 만하며 또한 나물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여름과 가을에 줄기와 잎을 채취하여 볕에 말려 약에 넣는다. 《증류본초》


해동역사 제26권
물산지(物産志) 1
초류(草類)
박하(薄荷)
○ 신라의 박하는 줄기와 잎이 깨와 같은데 뾰족하면서 길며, 겨울을 나도 뿌리가 죽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에 줄기와 잎을 채취하여 햇볕에 쬐어 말린다. 신라 사람들은 이를 차(茶)로 만들어 마신다. 《본초도경(本草圖經)》


위의 산림경제와 해동역사에 나오는데 먼저 산림경제는 박하를 영생이라 하였고 생으로 씹을 수 있고 나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하였으며 해동역사에서는 신라박하가 있어 줄기와 잎이 깨와 같은데 뾰족하면서 길며 겨울에 뿌리가 죽지 않는다고 설명되며 신라사람들은 이를 차로 만들어 만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깨와 같다는 내용은 신라박하의 특성을 말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 깨는 우리가 차조기라 하는 것이다.

또한 박하를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보면 재배하는 약재(藥材)라 하여 영생이[薄荷]이라 하였고 조선(朝鮮)땅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경상도(慶尙道), 전라도(全羅道), 황해도(黃海道), 강원도(江原道)에서 약재로 생산된다고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세부적으로 각 지방으로 들어가 고을, 마을지명을 살펴볼라치면 더 이상의 들어갈 수가 없다.

즉 세부적인 고을 마을 상황은 사라지고 없다.

아예 세종지리지를 편찬하면서 빼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세종실록 지리지 상황이 그렇다.

때문에 1454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현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원본이 아니라 근세기 동양사가 만들어지면서 새롭게 짜집기하거나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문이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조선왕조실록 지리지의 각종 생물자료들이 이렇게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은 자료통계라는 관점에서 정확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한계를 알리는 것이다.

글쓴이가 지금까지 생물학적 분석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가장 기록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하는 조선왕조실록의 명제는 여기서 거론치 않더라도 왜 세종지리지가 서양 생물분류체계만큼의 세밀함을 따라 갈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어떻게 생물학적 토종식물들을 파악함에 있어 고을 현(縣), 마을 동(洞)단위의 정확한 데이터가 없이 그 보다 상위인 도(道)단위의 데이터가 완성될 수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조선왕조실록 지리지를 포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등 사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는 듯하고 실제론 한반도에 적용될 수 있는 것만 추려 간추린 것이라고 보지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를 서술한 역사서 해동역사(海東繹史)제26권, 물산지(物産志) 1, 초류(草類)편 박하 기록에는 놀랍게도 신라박하(新羅薄荷)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위해 본초강목을 살펴보니 분명 아래 신라박하의 설명이 있다.


[本草綱目]

時珍曰︰按蘇恭注薄荷云︰一種蔓生,功用相似。蘇頌《圖經》云︰胡薄荷與薄荷相類,但味少甘,生江浙間,彼人多以作茶飲,俗呼為新羅薄荷,《天寶方》所用連錢草是也。據 二說,則積雪草即胡薄荷,乃薄荷之蔓生者爾。又《仙庚辛玉冊》云︰地錢,陰草也。生荊、楚、江、淮、閩、浙間,多在宮院寺廟磚砌間,葉圓似錢,引蔓鋪地,香如細辛,不見 開花也。

[번역풀이]말하길 안소공(按蘇恭)이 박하라는 것은 일종 덩굴식물과 기능이 비슷하다 하였다. 소송(蘇頌) 도경[圖經]에서 이르길 호박하(胡薄荷)는 박하와 비슷하다. 단맛이 적다는 것이 구별되고 강소(江蘇)와 절강(浙江)사이에 자라며 많은 사람들은 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이것을 예부터 신라박하(新羅薄荷)라고 칭했다.[天寶方], 소위 연전초(連錢草)와 같이 사용된다. 그것의 두 가지 근거는 즉 적설초(積雪草)가 호박하(胡薄荷)로서 박하는 덩굴식물이다. 또한 선경신옥책[仙庚辛玉冊]에 축축하고 습기가 많은 땅에 자라고 그늘에 돋아나는 풀이다. 형(荊), 초(楚), 강소(江蘇), 회수(淮水)와 회하(淮河), 복건(福建), 절강(浙江)사이에 나고 궁궐, 내전, 절이나 관청 또는 사당의 벽돌과 섬돌사이에 많다. 둥근 잎은 동전과 같고 지면에 덩굴을 펴고 세신(細辛)의 향기와 같고 꽃이 피는 것은 볼 수 없다.


명대(明代)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저술한 의서(醫書)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박하편에 나타나는 한 문장을 풀어보면 “당대(唐代) 소공(蘇恭)에 따르면 박하는 식물의 줄기가 덩굴져 나는 종류로 효용이 서로 비슷하다 하였고 도경(圖經)에서 말하길 호박하(胡薄荷)도 박하와 비슷하나 맛이 조금 달고 강소(江蘇), 절강(浙江)간에 나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민간에서 부르기를 신라박하(新羅薄荷)라 한다.”한 것이 보인다.

송나라 소송(蘇頌:1020-1101)의 저서 도경(圖經)에서 호박하(胡薄荷)라 한 것은 바로“신라박하”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해동역사 기록과 마찬가지로 신라 사람들은 박하를 차(茶)로 만들어 마신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서양 즉 유럽인과 생물수준이 거의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호박하(胡薄荷)란 무엇인가.

호박하의 호(胡)가 유별나게 눈에 들어온다.

본 블로그 글 "호(胡)는 북아메리카 대호(大湖)를 지칭한 것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3"에서 호의 파자가 월지국(月支國), 또는 달지국(達支國)에 이어 초승달 문양의 아사달(阿斯達)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서 동쪽을 뜻하는 의미가 강하고 
본 블로그 글 "석유(石油:petroleum)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7"에서 호천(胡天)을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의 광명(光明)의 신(神)이라 한 것과 같이 신라를 호라 한 것이나 아랍을 흡수한 유럽을 호라 한 것이나 같고 아랍의 신이 태양신을 믿는 것과 같이 태양이 뜨는 동쪽 하늘을 말하는 것은 모두 같은 종교적 신앙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 정리한바가 있다.


세부적으로 찾아보니 호박하(胡薄荷)는 바로 유럽박하라고 하는 학명 멘타 풀레기움(Mentha pulegium)이고 이를 별명으로 페니로얄(Pennyroyal)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호(胡)에 공통적으로 상징되는 것은 유럽임을 알 수가 있다.
이 호박하(胡薄荷)
모든 자료에 유럽박하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Greek)와 로마(Rome)에서 역사적으로 생육한 식물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또한 명확히 알 수 있는데 여기서 이름 자체만으로 신라와 유럽이 강하게 충돌하고 겹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唇萼薄荷(学名:Mentha pulegium),又称普列薄荷(Pennyroyal)、除蚤薄荷、胡薄荷

它也是一种传统的烹饪调料、草药和堕胎药。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脣形目 Lamiales

科: 脣形科 Lamiaceae

屬: 薄荷屬 Mentha

種: 唇萼薄荷 M. pulegium

二名法

Mentha pulegium(L.)


          



위 학명 분류상황은 바로 호박하라고 하는 학명 멘타 풀레기움“Mentha pulegium”의 신중국자료인데호박하(胡薄荷)라 하고 유럽박하로 알려지고 있는 이 종(種)을 일반적으로 페니로얄(Pennyroyal)이라고 하며 다른 이름으로 순악박하(唇萼薄荷), 제조박하(除蚤薄荷)라 하고 전통적으로 요리의 향신료, 약초(허브)와 낙태 유도하는 월경촉진제(Emmenagogue) 또는 인공 임신 중절약(Abortifacient)으로 쓰였는데 흥분을 상승시키고 발한을 촉진하는 가정의학품으로 사용되었다고 기록에 나타난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박하의 주요 성분 박하유(薄荷油)가 해열(解熱), 소염(消炎), 건위(健胃), 담즙분비(膽汁分泌) 촉진(促進) 및 위장(胃腸) 평활근(平滑筋)억제, 호흡기도(呼吸氣道)의 점액분비(粘液分泌)증가, 중추신경(中樞神經)흥분, 자궁수축(子宮收縮)등에 약리작용이 있다고 모든 자료에서 설명된다.

이 종(種)은 1758년에 생물아버지라고 통칭되는 린네(Carl Linnaeus:1707–1778)가 학명을 부여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린네는 박하에는 한 가지 종(種)밖에 없다고 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가 있고 만약 한가지 종이 이 멘타 플에기움이라면 호박하(胡薄荷)는 실제로 많은 박하종 중에 원종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호박하가 적설초라 하는 점과 꽃이 피는 것은 볼 수 없다 한 점이 이상하다.

호박하의 종명(種名) 플에기움'pulegium'은 벼룩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풀레스'pulex'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벼룩을 물리치는데 최고 puleium+regium(called as being good against fleas)라는 뜻의 합성어로서 옛날부터 구충제로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Pennyroyal /Pen`ny*roy"al/, n. [A corruption of OE. puliall royal. OE. puliall is ultimately derived fr. L. puleium, or pulegium regium(so called as being good against fleas), fr. pulex a flea; and royal is a translation of L. regium, in puleium regium.] (Bot.)
An aromatic herb (Mentha Pulegium) of Europe; also, a North American plant (Hedeoma pulegioides) resembling it in flavor.[1913 Webster]


본래 박하의 속명인 멘타(Mentha)는 그리스의 여신 멘테(Menthe)가 박하식물로 부활한 것이라 하여 박하 학명에 멘타(Mentha)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유럽인들의 박하와의 상징성이 매우 강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도 지옥의 신, 하데스(Hades)가 왕비인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눈을 피해 하데스(Hades)는 요정이었던 민테(Minthe)를 달콤한 향기가 있지만 볼품없는 꽃을 가진 식물로 만든 것이 박하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박하가 그리스신화와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위 분포지도"Discover Life" 자료는 남북아메리카대륙과 유럽대륙, 그리고 오세아니아대륙을 점으로 표시하고 동아시아대륙에는 열도에만 유일하게 표시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한반도는 표식이 없다.

반면 북아메리카대륙 미국영토를  기준으로 호박하(胡薄荷)가 자생한 곳을 표시하고 있는 곳은 동부의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니아, 매릴랜드, 델라웨어, 뉴저지로 나타나고 서부는 오리건, 워싱턴, 캘리포니아, 애리조나로 표시되고 있는데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캘리포니아이다.

그렇다면 기존 DNA 분포지도가 세밀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호박하가 애용되었던 유럽을 어디로 볼 것인가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유럽박하라고 하는 호박하(胡薄荷)가 유럽대륙의 로마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기원하였다는 사실을 전제 할 때 현재 여러기관에서 발표한 "DNA 분포지도"에는 로마가 있었던 이탈리아반도와 그리스(Greece)가 있었던 발칸 반도 지역에 멘타 플에기움(Mentha pulegium)분포표시가 다른 유럽제국들과 비교하여도 미미하게 나타나고 아예 나타나지 않는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다.

이것은 로마와 그리스의 존재한 위치가 잘못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런식으로 대입에 무리가 있다 하겠지만 본 블로그에서 식물의 근원지는 찾아 대입해 본 결과 이런 이상한 점을 무수한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과 이와같은 결과는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 유럽대륙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을 대입한다면 로마와 그리스는 호박하의 분포지도를 참고 했듯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와 동부로 확실히 양분되어 뚜렷하게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글쓴이의 매우 중요한 세계삼한역사분석의 결과다.

이를 진실역사와 절대적으로 부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겠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수많은 과학적 분석에서 그렇게 비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다.

호박하이며 유럽박하라고 하는 식물분류체계를 보면 피자식물문(被子植物門:Magnoliophyta), 쌍자엽식물강(雙子葉植物綱:Magnoliopsida), 꿀풀목(脣形目:Lamiales), 꿀풀과(脣形科:Lamiaceae), 박하속(薄荷屬:Mentha)으로 나눈다.

전자에서 속명 플에기움의 어원풀이 "puleium+regium" 에서 발견된 유럽페니로얄과 다른 미국산 페니로얄이라고 하는 박하종류가 있는데 학명 "Hedeoma pulegioides"이다.

호박하라고 하는 유럽페니로얄의 분포지가 대부분 유럽대륙을 표시하고 있는 사실에서 볼 때 특정구역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포괄적인 형태로 나타나 진위를 밝히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유럽이란 지역을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자들간에 박하의 분류체계가 정립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페니로얄 학명 "Hedeoma pulegioides"이 해답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아래에 적시한 미국페니로얄이 그것이인데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분포지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어쩌면 세종지리지가 언급한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경상도(慶尙道), 전라도(全羅道), 황해도(黃海道), 강원도(江原道)에서 약재로 생산되었다고 하는 분포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학명은 이상하게도 애초부터 우리나라 식물백과사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페니로얄[American pennyroyal]

Hedeoma [genus name] is a corruption of Greek hedyosmos (mint) which itself is derived from Greek hedy- (agreeable, pleasant, delightful, sweet) and -osme (smell, fragrance) components with reference to the leaves. [See Hedeoma.]

Hedeoma pulegioides

Kingdom: Plantae
(unranked): Angiosperms
(unranked): Eudicots
(unranked): Asterids
Order: Lamiales
Family: Lamiaceae
Genus: Hedeoma
Species: H. pulegioides
Binomial name
Hedeoma pulegioides(L.) Pers.

Hedeoma pulegioides distribution.png

Synonyms
Cunila pulegioides L.
Melissa pulegioides (L.) L.
Ziziphora pulegioides (L.) Desf.


                         



헤데오마(Hedeoma:屬,1806)란 속명은 1806년 유럽중부 폴란드 포메라니아(Pomerania)의 균류학자 크리스티안 페르손(Christiaan Hendrik Persoon:1761-1836)이 명명한 것으로 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hedyosmos] "박하"라는 의미가 있고 그리스의 [hedy] "쾌적한, 상쾌한, 유쾌한, 향기로운" 의미와 [osme] "냄새, 향기"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향기로운 냄새란 뜻이다.

이 또한 그리스와 연결되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안 페르손은 본 블로그 글 "배롱나무-백일홍(百日紅, Lagerstroemia) 의미하는 인도위치 http://blog.daum.net/han0114/17049525"에서 그가 남겨놓은 식물학 자료가 특별한게 없다는 것과 대체로 린네가 1758년 명명한 학명을 후순위에서 명명한 사실이 많은데 북아메리카대륙의 식물들을 아시아지역으로 근원지를 변경한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이 헤데오마속명 또한 1806년에 명명했고 헤데오마(Hedeoma)를 다른이름으로 가짜 페니로얄(mock pennyroyal), 북미인디언 여자박하(squaw mint), 금계국(tickweed), 고약한 향(stinking balm), 모기초(mosquito plant), 거짓 페니로얄(false pennyroyal), 미국 거짓 페니로얄(American false pennyroyal)등으로 불리며 화학식[C10H16O]의 무색기름 풀레곤(pulegone)성분이 풍부한 에센셜 오일이 추출되는 것으로 상쾌하며 강한 허브향과 민트향의 향기를 가진것으로 설명된다.

특히 이 종은 독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풀레곤 성분은 에폭시드(epocide)로 대사되어 간에 독성이 작용함을 알 수 있고 페니로얄 복용과 관련된 사망 사고들이 보고 되었으며 풀레곤 24g에 상당하는 양을 복용한 후에 사망한 18세 여성의 경우에서 이 여성은 혼수상태 또는 떨리는 증상을 반복했고 메스꺼움과 복통으로 괴로워했으며, 대량의 간 조직 괴사와 신장기능 부전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native to eastern North America, from Nova Scotia and southern ontario west to Minnesota and South Dakota, and south to northern Georgia and Arkansas.

미국레니로얄이라고 하는 이 종(種)의 분포지로 북아메리카대륙 북동부의 노바스코샤(Nova Scotia), 온타리오남부(southern ontario), 서부의 미네소타(Minnesota),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남부로는 조지아북부(northern Georgia), 아칸소(Arkansas)로 나타난다.

미시시피강의 이동쪽이다.


3.서양박하 페퍼민트


백과사전을 보면 박하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보고 태고시대에 중국에서 인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된 것을 서양박하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대륙 박하가 유럽박하도 아니고 서양박하가 되었다는 이상한 설명이 된다.

물론 서양박하와 유럽박하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보기에는 명칭이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서양박하를 페퍼민트(Peppermint)라 하고 페니로얄(Pennyroyal)을 유럽박하라 한다.

이 유럽박하를 신라박하 또는 호박하(胡薄荷)라 한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하지만 호(胡)가 가진 역사의미가 "UNITED"를 등식하고 그렇다면 연합이며 연방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유럽역사가 탈취하고 있는 세계삼한역사의 중심적인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어쨌던 현재 분류체계에서 서양박하는 페퍼민트(Peppermint)라 하는 학명 멘타 피페리타[Mentha piperita(L.)]로 정리된다.

한문으로는 랄박하(辣薄荷) 또는 호초박하(胡椒薄荷)라 하는 것으로 수생박하(水薄荷:Mentha aquatica)와 녹양박하(绿薄荷:Mentha spicata)의 교잡종으로 알려진다.


            

                           페퍼민트(Peppermint)  [Mentha ×piperita L. Georgia Clarke Athens] 

                                   water mint[수생박하(水薄荷:Mentha aquatica L.)]

                                     Spearmint[녹양박하(绿薄荷:Mentha spicata L.]


수생박하(水薄荷:Mentha aquatica)와 녹양박하(绿薄荷:Mentha spicata)의 교잡종이라는 것은 잡종(雜種)과는 다른 것으로 동일 종 내에서 서로 다른 품종이나 재배종 사이의 교잡종을 말한다.

수생박하의 원산지는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남아시아로 나타나며 발트해 스웨덴과 핀란드의 지역이 기원이다.

녹양박하의 원산지는 [native to much of Europe and Asia (Middle East, Himalayas, China etc.)]유럽과 중동, 히말리아 그리고 아시아로 통칭된다.

위 박하 세 그림 중 제일 상위 표본그림은 페퍼민트(Peppermint)이며 그 아래 두 그림은 수생박하와 녹양박라 하는 것으로 각각 어떤 형태의 박하인지를 알 수 있게 게시한 것이다.

특히 제일 상위표본 서양박하인 학명 멘타 피페리타(Mentha piperita(L.))는 박하표본 지역이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대륙 조지아주(Georgia) 클라크카운티(Clarke County)의 군소재지 아테네이다.

바로 그리스 아테네란 지명이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은 아테네라 하지 않고 '애선스'라 발음하는데 이것 역시 의심받을 만한 자료이다.

이것은 미국인을 포함한 서양인들이 실제 아테네를 감추려고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클라크 카운티는 미국도시가 그러하듯 그 이전 역사는 인디언 역사라 하여 깡그리 무시되고 생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카운티가 1801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면서 선을 긋고 있으며 그 이후역사는 다 아다시피 미국독립전쟁과 연결시켜놓고 있다.

이곳은 공교롭게도 아편전쟁(阿片戰爭:Opium Wars:1839-1842)이 일어나던 시기 1841년에 철도가 건설되었고 북부군인들은 이곳에 1866년 초까지 주둔하였으며 1871년 11월 24일에 주 군 소재지가 왓킨스빌(Watkinsville)에서 아테네(Athens) 즉 애선스로 옮겼다고 되어 있다.

애선스는 곧 아테네(Athens)라 생각되기도 하다.

린네가 이 페퍼민트(Peppermint)라 하는 학명 멘타 피페리타[Mentha piperita(L.)]를 하나의 종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페퍼민트는 현재 교잡종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점이 린네가 말하는 하나의 종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린네가 말한 하나의 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辣薄荷(学名:Mentha × piperita,又名胡椒薄荷,英语:Peppermint)唇形科年生草本植物,是一種被廣泛種植的杂交薄荷,原产于欧洲,可用於食物的調味料。这个薄荷品种是由绿薄荷(Mentha spicata,英语:Spearmint)与水薄荷(Mentha aquatica,英语:Watermint)杂交而成的.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脣形目 Lamiales
科: 脣形科 Lamiaceae
屬: 薄荷屬 Mentha
種: 辣薄荷 M. × piperita
二名法
Mentha × piperita L.


위는 서양박하라고 하는 페퍼민트(Peppermint)의 DNA 분포지도이다.

글쓴이가 처음 서양자료를 통해 밝혔던 것들은 그래도 감추려 하지 않았을 때 데이터라 솔직히 건질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이러한 역사찾기 움직임을 마치 인식하듯이 얼마전부터 초기의 자료들을 명형시켜 명확한 사실과 지리적 상황을 알 수 없도록 랜덤(random)처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3-4년전에 보는 자료와 많이 다르다.

위 지도를 보면 중국에서부터 넘어들어간 것이 서양박하라 하였던 것과는 달리 중국대륙과 인도아대륙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와 유럽전체가 빽빽하게 밀집상태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와같은 현상에서 과연 중국과 인도가 현재 위치가 맞는지 의심하는 세계삼한역사관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박하는 옛부터 설사약으로 달여 먹는 풍습이 있었고 습기가 적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점으로 보아 아주 오래 된 작물로 나타나며 BC1000∼600년경에 이미 이집트에서 재배한 흔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4.일본박하 이야기



Mentha arvensis(L.) – corn mint, wild mint, Japanese peppermint, field mint, banana mint

野薄荷也称土薄荷、玉米薄荷,是薄荷属下的一种。其范围遍及环北方带,在有湿润土壤的欧洲、西亚、东亚都有分布,东至西喜马拉雅山脉和西伯利亚的东部,以及北美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脣形目 Lamiales

科: 脣形科 Lamiaceae

屬: 薄荷屬 Mentha

種: 野薄荷 M. piperita

二名法

Mentha arvensis(L.)


일본박하는 한반도 박하와도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수많은 변종을 가지고 있다.

백과사전에서는 변종들의 명칭을 야식향(夜息香), 번하채, 인단초(仁丹草), 구박하(歐薄荷)라 하는데 구박하라는 것은 오늘날 구(歐)를 유럽이라 하기 때문에 또 하나의 유럽박하인데 위 페니로얄(Pennyroyal)과 혼란이 있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찾아본 결과 구박하(欧薄荷)는 학명 "Mentha longifolia (L.) Huds.(syn. Mentha sylvestris)"로 나타나고 말민트(horse mint)별칭이 붙어 있는데 분포지가 아프리카북부와 남부로 나타나며 이를 유라시아 야생 박하(longifolia)라 하는데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로 귀화한 식물로 나타난다.

위자료는 멘타 어벤시스(Mentha arvensis)의 분류자료와 분포지도이다.

멘타 어벤시스는 일본박하라고 알려지는데 실제로 현재 열도를 일본이라 하기 때문에 일본열도용은 학명 M.arvensis var. piperascens Malinv. ex L. H. Bailey 이라 하여 자연적으로 변이 된 학명에 var. 가 붙어 변종(變種, variety)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이것은 어쩌면 근대에 들어 동아시아품종(種)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것이다.

특히 백과사전을 보면 한반도(韓半島)에서는 박하를 이 한 종(種)만을 선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를 일본박하(Mentha arvensis L.) 또는 그 종간잡종(種間雜種)등을 말하는 것도 이상하며 이것의 지상부(地上部:above ground)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일본박하((Mentha arvensis Linné var. piperascens Malinvaud ex Holmes.1882)를 정식으로 사용하며, 중국은 신중국 대륙만의 중국박하(Mentha haplocalyx Briq.1914)를 사용한다고 백과사전에 정리되어 있다.

중국박하의 학명은 제네바(Geneva)와 베를린(Berlin)에서 자연과학 교육을 받았고 꿀풀과의 털향유(鼬瓣花屬:Galeopsis)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 스위스식물학자 겸 음악가 존 브리케(John Isaac Briquet:1870-1931)에 의해 1914년에 명명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중국을 박하의 세계최초 기원지라고 설명되는 것과 괴리가 있다.

때문에 적어도 1914년까지 중국박하의 학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일본박하 이외 명칭으로 이를 야박하(野薄荷), 토박하(土薄荷), 옥미박하(玉米薄荷)라 하고 다년생(多年生)초본식물으로서 습윤(濕潤)토양의 유럽, 서아시아, 동아시아와 동서(東西)히말라야산맥, 시베리아동부 그리고 북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하는 이 종은 1758년 린네가 명명했던 것이 분명한데 무엇때문에 일본박하라 하였는지가 궁금하고 전자에서 설명했지만 현재 열도일본종은 놀랍게도 일본박하의 변종인 것을 말하고 있는데서 적지않는 혼란이 있다.

실제로 일본은 열도에 존재하는 일본이 맞는데 어찌하여 일본박하의 변종을 열도일본에 지정하고 원종은 오히려 북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은 열도일본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가 의심스러운 것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이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다 할 것이다.

arvensis[adjective]

a Latin word meaning ‘of the fields’, used in many genetic names of plants

mentha arvensis[n]European mint naturalized in United States

원칙적으로 일본박하의 종명(種名) 어벤시스“arvensis”의 라틴어 의미는 들판이며 많은 식물의 유전자 이름으로 나타나는 멘타 어벤시스(Mentha arvensis)를 일본박하라고 하는 것은 곧 유럽박하(European mint)를 말하면서 나아가 미국 귀화식물이라고 하는 뜻이 더 보태져 있다.

유럽박하라 하니 페니로얄과 같이 취급되겠지만 이와는 다른 유럽이주민들의 박하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것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풀어보면 근원적으로 유럽에서 북미(北美)대륙으로 귀화하거나 또는 이주해 들어간 이민자들에 의해 이식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실제로 미국이주민 즉 유럽인들을 일본(日本)이라고 명명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글쓴이는 일본이란 명칭이 근세기에 유럽인과 미국인들에 의해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근세기들어 워낙 역사전반에 걸쳐 뒤바꿔치가 이루어져 감추진 실체를 찾으려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판단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유럽이민자를 일본이라 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사실상 처음 유럽이민자들은 기존 거주민들의 낯선 이방인들에게 특별한 견제심이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이 배타적으로 변해 거주민들에게는 험오스러움이 뿌리깊게 각인되었을 것이란 판단을 하게 하며 때로는 거주민과 충돌을 자행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임진왜란은 대조선으로부터 자치형태의 정부권한을 승인받고자 이러한 이주민들의 결집된 반란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그것에 대한 대조선의 강제한 제약이 매우 강했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2차세계대전시 영국과 미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잽(jap)이라 하고 경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주류로서의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역사주체는 그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본인들을 경멸한 것이라고 하였을 때 역사주체권에서 오래전부터 각인된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JAP'은 본래 유대계 부유한 여자(Jewish American Princess)를 칭하던 명칭이었으며 이것과 비슷한 정서가 우리 삼한역사에서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일본인들의 습성을 질타하는 일본 놈, 왜놈 같이 지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동서양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부터 관습적으로 습성이 경멸스러운 행위를 하던 도적이나 해적들을 대상으로 칭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인데 역사주체입장에서 거류민들을 대상으로 이런 경멸적인 호칭사용이 가능 했을 것이란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잽(JAP)이라고 하는 의미는 남의 뒤퉁수를 치는 사람을 칭하던가 또는 미국속어에 나타는 것과 같이  'pull a ∼' '갑자기(숨었다가)기습하다로 나타난다.

마치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습성이다.

근세기들어 영국(?)인이 가장 경멸적으로 사용했던 것이 열등하고 모자라다(an epithet of inferiority)라고 하는 더치:dutch란 호칭이다.

이것은 네덜란드(dutch)와 북아메리카대륙의 주인이 된 미국(米國)을 지정했던 것이라고 판단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프랑스 앙리4세(Henri IV de France,1553-1610,재위:1589-1610)와 잉글랜드 제임스 1세(James I:재위:1603-1625)로부터 배척당하던 종족 위그노(Huguenot)족의 피난지였다는것을 알 수 있어 위그노족의 본거지가 아니었는가 하며 위그노 전쟁(Huguenot Wars:1562-1598)시 위그노인 최대 약 4백만명이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로인해 약 25만 명에 달하는 위그노(상공업자)들이 네덜란드, 영국, 신대륙의 식민지, 프로이센으로 빠져나갔고 그러한 여파로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1648)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가 있는데 이러한 전반의 요인들이 함께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임진왜란 후 정치적 정리 단계였던 1608년의 기유약조(己酉約條)와 마주친다.

본 블로그 글 "루스벨트가와의 역사적 악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8"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조상이 위그노유민이었다는 사실과 위그노 신자(Huguenot)인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은 삼한역사와 깊은 악연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 일본박하의 변종을 지정하는 것이나 신중국대륙에서 중국박하(Mentha haplocalyx Briq.1914)를 지정하는 모양들은 근원적으로 동아시아역사 존재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여러가지 역사상황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다.

또한 근원적으로 일본박하(Mentha arvensis)의 영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아메리카대륙 중부을 뜻하는 옥수수박하라고 하는 콘민트(corn mint)라 하거나, 야생박하(wild mint), 들판박하(field mint), 바나나박하(banana mint)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북아메리카대륙 중부지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백과사전에서는 이 종의 분포지를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산(産)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인해야 할 것이다.


5.개박하 이야기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바로 개박하이다.

백과사전을 보면 박하 잎을 이용한 채유(採油)를 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것은 1750년경이며 독일은 1770년, 미국은 1812년, 일본은 1817년으로 나타나고 한반도의 경우는 호남지방에 개박하라는 재래종이 있었으며 이 종도 중국을 거쳐 약용으로 매우 오래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나 채유 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10년경이라 하는 것은 한반도 박하 역사는 그렇듯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개박하는 꿀풀과(唇形科:Lamiaceae)의 형개속(荊芥屬:Nepeta)의 캣트민트(Catmint) 즉 고양이박하라고 하는 학명(Nepeta cataria L.)인데 본래 박하속 멘타(Mentha)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貓薄荷(學名:Nepeta cataria L.),又稱貓穗草、荊芥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Angiosperms
綱: 雙子葉植物綱 Eudicots
目: 唇形目 Lamiales
科: 唇形科 Lamiaceae
屬: 荊芥屬 Nepeta
種: 貓薄荷 N. cataria
二名法
Nepeta cataria L.


개박하는 묘박하(貓薄荷:CAT-MINT, Catnip;Catmint)라 하는데 위는 이것에 대한 DNA 분석 분포지도와 분류체계자료이다.

DNA 분석에 의한 분포지도를 보면 동아시아대륙 보다 북아메리카대륙과 유럽지역에 밀집되어 나타나지만 백과사전에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가 원산지이며 프랑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재배한다고 설명되고 있으며 묘박하 즉 '고양이박하'에는 고양이가 흥분하게 하는 물질 네페탈락톤(nepetalactone)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개박하(Nepeta cataria)는 독일어 켓츠민츠(Katzenminze)Botanik: Pflanze der Gattung Nepeta aus der Familie der Lippenblütler.라하고 박하 꿀풀과(Lamiaceae)의 형개속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멘타속과 다르다.

이 학명자료가 칼 폰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1753년에 발표한 식물의 종(Species Plantarum)에 나타나지만 이미 1738년에 부제(不齊)수상화서[interrupted spike]형개속이라 묘사했었다는 사실을 별도로 설명하고 있다.

혹 그는 이 종을 이미 박하라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서양박하니, 유럽박하니 일본박하니 하는 따위보다 앞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호박하를 적설초라 하는 것과 같은 종이 다른 박하인셈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 자연과생태를 참고하면 고양이에게 물려서 상처 난 곳에 박하를 짓이겨 즙을 바르면 낫는다고 기록했고 박하의 또 다른 한자명 묘박하(猫薄荷)라 한 것과 의미가 같다 했으며 고양이가 박하 종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동서양 모두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며 특히 개박하 즉 영어명칭 "캣닢(catnip)"이란 단어가 공교롭게도 우리말 '깻잎'과 같다라고 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상해 했다.

물론 이것은 깻잎이라고 우리가 호칭하는 것과 관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캣닢(catnip)을 ‘박하 향이 나는 야생 박하 종류’를 통칭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개박하(Nepeta cataria)와 함께 박하 향이 풍부한 박하속(Mentha)과 인접하는 분류군으로 나누지만 동일한 종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우리가 즐겨찾는 깻잎은 분명 들깨(Perilla frutescens var. japonica)의 잎이라고 하는데서 또 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들깨에 대해 본 블로그 글 "차조기(紫蘇:Perilla frutescens)와 북미동부 http://blog.daum.net/han0114/17049661"에서 밝혔지만 페밀라 자소(紫蘇:Perilla frutescens)라고 하는 것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가 원산지라 했다.

만약 영어 캣닢(catnip)이 깨잎 즉 차조기와 혼입된 것이라면 어떤 이유에서 의도적으로 분류체계를 다르게 꾸몄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또한 동일하게 개박하 역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가 기원지로 나타난다는데 이상함이 더한다.

사실 이와같이 기존 분류체계에서 학명 박하속(Mentha)과 다른 형개속(荊芥屬)의 개박하가 오히려 박하보다 상위 근원지 종(種)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이 호박하(胡薄荷)를 신라박하라 하고 유럽박하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Greek)와 로마(Rome)박하라 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천보방(天寶方)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전초(連錢草)가 그것이라 한 기록과 이 이설(二說)에 의하면 적설초(積雪草), 즉 호박하(胡薄荷)로서 박하(薄荷)의 만생(蔓生)하는 것을 지칭(指稱)한 것이 이것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 연전초나 적설초는 글쓴이가 파악해본 결과 박하속과 같은 꿀풀과(脣形科:Lamiaceae)의 병꽃풀속(活血丹屬:Glechoma)으로 나타나고 이것을 혹은 금전박하(金錢薄荷), 연전초(連錢草)라 하거나, 그 외 활혈단(活血丹), 금전애(金錢艾), 파동전(破銅錢), 적설초(積雪草), 마제초(馬蹄草)라 하는 등 다수의 다른 이명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를 학명 Glechoma hederacea(L.)라 하며 결국 형개속(荊芥屬)과는 다른 종이다.


[ground-ivy, gill-over-the-ground, creeping charlie, alehoof, tunhoof, catsfoot, field balm, and run-away-robin.]


어쨌든 박하는 유럽과 로마, 그리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혹은 남부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자꾸 유럽을 이야기 하고 서남아시아를 원산지라 하면서 북아메리카대륙에는 이민자들에 의해 귀화식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 따져 들어가면 북아메리카지역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을 근원지로 나타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물론 박하종이 수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지금의 서남아시아, 히말라야, 티벳, 중앙아시아 등은 아시아대륙으로 남아 있고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나타나고 있음도 역사위치관계상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학명 분류에서 속(屬)이 다르지만 박하와 같은 가족이라 하는 병꽃풀속(活血丹屬:Glechoma)도 호박하와 다르지 않고 엄밀하게 따진다면 분류체계적으로 속명이 다른 형개속(荊芥屬)개박하와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유럽고대국가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서 생성되었고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신라박하라고 하는 전통적인 명칭이 유래하였다 한다면 무리한 접근일까?


6.결어정리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아도 유럽역사에 포함되고 있는 이집트역사, 그리스, 로마역사전체가 삼한역사와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될 수가 없다.

이러한 본 블로그의 역사사실 주장은 생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기존 편협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진실가치를 세세하게 밝혀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호박하(胡薄荷)라 하고 유럽박하 또는 페니로얄(pennyroyal)은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기론 한반도 역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박하 향기는 툭!~ 건드리면 머리를 맑게하거나 싱그러운 박하 향기, 상쾌한 향, 아이스크림, 박하사탕, 껌, 담배와 같은 현대인 기호식품의 첨가물로도 쓰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우리 삼한역사와 깊게 연관되었다고는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이 박하를 요리의 조미료, 술의 첨가재료, 허브차, 아로마(Aroma)등에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우리와는 별천지에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하로 인한 모든 인간 삶의 자취가 놀랍게도 서양인이나 유럽인을 한정시킬 수 없는 그 바탕에는 깊이 삼한역사가 자리잡고 이루어진 삶의 일 부분이라는데서 글쓴이 역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신화 헤르메스신(Hermēs)의 아들인 엘레우시스 신의(神儀:Eleusinian Mysteries)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쓴 호메로스(Όμηρος:BC 8C)의 데메테르 찬가[Hymn to Demeter]에 의하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지상을 헤메다가, 그녀를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농업의 지혜를 주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렸다고 하는데 가뭄이 든 아티카(Attica)의 엘레우시스의 왕비 메타네이라(Metanira)집에 왔을때 데메테르는 키케온((kykeon)을 대접받았다는 죽이 바로 박하로 만든 죽이다.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박경귀'의 글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비로운 종교의식이었던 엘레우시스 비밀스러운 의식(Eleusinian Mysteries)을 설명하는데 "~비의(秘儀)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사제들을 통해 데메테르 여신에게 봉헌물을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 텔레스테리온 성전에 들어서 제일 먼저 입구에 있는 코레 상에 걸어둔 청동 대야에 담긴 정화수에 손을 씻고 입장했을 것이다. 비의(秘儀) 입문의식은 이틀 밤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째 밤에는 신입 신도들인 미스테(Myste)를 위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들은 하루 동안 금식을 했다가 물, 귀리, 박하로 만든 키케온(kykeon)이라는 죽 같은 음료를 마셨다. 이어 사제들이 가져온 바구니 속의 성물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나서 의례적인 구절을 소리 내어 외었고 사제들을 따라 신성한 노래를 불렀다."다고 되어 있다.

또한 고대 아테네 에클레시아(Ecclesia) 도시국가의 시민회의에서 키케온을 마셨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키케온은 신라박하로 만든 것일게다.
특히 삼한역사 명칭인 코레에 대한 상징성과 일치하는 것은 엘레우시스비의가 치루어진 텔레스테리온(Telesterion)신전(神殿)은 4방 약 55m의 정방형이며 7열7본, 합계 49개의 기둥을 세운 넓은 방으로서 입구에 입상인 코레 상과 그곳에 걸려 있는 청동 대야가 상상된다.

코레 상은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봉납된 시원(始源), 태고(太古)를 뜻하는 아르카익기(期)의 제작된 소녀상(少女像)으로 페플로스의 코레(Peplos Kore)라 하는 것이다.

이 소녀상이 그리스 신화의 신전 텔레스테리온(Telesterion)입구에 장식되었다는 사실과 그 상에 걸어둔 청도대야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정화수를 붓고 손을 씻어 정화했다는 것은 매우 신성스럽게 여겼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삼한천신이다. 

이미 코레(Kore)에 대해 본 블로그 글 "코라이(korai)는 그리스(Greece)에 어떤 의미로 존재했을까? http://blog.daum.net/han0114/17050473"와 "양배추(Cabbage)는 고려채(高麗菜)라 하였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610", 그리고 "
COREA, CORIA, CORREA, KORAI의 실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1" 충분하게 개진한 내용이다.

이런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고 인류의 삶과 터전에서 녹아 있는 신라박하가 유럽박하라는 사실은 아무리 부정해도 그리스 역사는 결코 삼한역사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신라박하라 하는 기록이 명대(明代)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저술한 의서(醫書)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이를 뒤받침하듯 숙종때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엮은 농서 겸 가정생활서 산림경제(山林經濟)와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를 서술한 역사서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도 이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한반도 역사에만 국한 시키고 보았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본초강목에서 신라박하(新羅薄荷)라고 하는 호박하(胡薄荷)는 지금까지 앞선 분석에서 유럽박하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는 곧 페니로얄(Pennyroyal)이며 이 페니로얄은 유럽페니로얄과 미국페니로얄로 나뉘어지는데 유럽박하 분포지가 로마나 그리스 지역보다 그 외 유럽대륙 다른 곳에 넓게 퍼져 나타난다는 것은 생물학적 판단에서 유럽박하란 역사 근원성이 현 로마와 그리스 위치와 상반되는 이상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미국페니노얄이 신라박하의 근원찾기에서 근접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위에 게시한 분포지도는 물론이고 여타 여러 분포지도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므로 본래 근원지가 북아메리카대륙임을 은밀하게 알리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또한 이것에 더하여 본초강목에서 천보방(天寶方)을 인용하길 적설초(積雪草)가 호박하(胡薄荷)라 한 사실에서도 이를 분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가짜 페니로얄(mock pennyroyal), 북미인디언 여자박하(squaw mint)등으로 불리는 미국가짜페니로얄(American false pennyroyal) 학명 헤데오마 풀레기오이데스"Hedeoma pulegioides"로 나타남도 알 수가 있었다.

바로 박하속과 거의 같은 성질의 페밀리 꿀풀과(脣形科:Lamiaceae)의 병꽃풀속(活血丹屬:Glechoma)이며 이를 천보방에서는 활혈단(活血丹), 금전애(金錢艾), 파동전(破銅錢), 마제초(馬蹄草)라 이름한 것으로 이를 묶어 분류체계에서 박하속과 다른 병꽃풀속으로 나뉘었다는것을 알 수가 있고 이 헤데오마속(Hedeoma)의 주요 분포지 또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지역임이 들어난다.


 

   [Sinkholes east of Bowling Green, in the Pennyrile region of western Kentucky, U.S.]


페니로얄 분포지에 대표적인 곳이 바로 켄터키주(Western Kentucky)서부의 페니로얄고원(Pennyroyal Plateau)이 그곳이다.
반면 미국가짜페니로얄과 종이 다른 학명 글레코마 헤데라체(Glechoma hederacea)라 하며 이를 별칭으로 조선광대수염 혹은 덩굴광대수염, 둥근 잎과 작은 보라색꽃(rounded leaves and small purplish flowers)의 박하, 포복식물, 장군덩이 등으로 불리는 것이다.

반면 한문명칭은 적설초(積雪草), 금전애(金錢艾), 금전박하(金錢薄荷)라 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의 분포지는 현재 기록에서는 유럽과 서남아시아라고 하지만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 이외의 대부분의 지역에 분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글레코마(Glechoma)속의 한 종을 조선광대수염(Glechoma grandis)이라 하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만 현재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에 정확하게 분포표식이 밀집되어 나타나는 것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Europe and southwestern Asia but has been introduced to North America and is now common in most regions other than the Rocky Mountains

이러한 사실에서 볼 때 동부는 페니로얄이 대세였고 서부는 글레코마 헤데라체로 나뉜다.
물론 페퍼민트라고 하는 서양박하도 별도로 존재하고 이에 더하여 일본박하도 있어 살펴보았지만 현재 동아시아대륙에서 생장하고 있는 박하들은 전부 변종이거나 이식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현재 박하식물 대다수가 교잡종으로 나타난다.
본래 박하 잎을 이용하여 채유 박하기름을 얻기위해 재배한 것으로 알려진 개박하는 유럽박하라고 하는 페니로얄과 또 다른 것이며 꿀풀과(唇形科:Lamiaceae)의 형개속(荊芥屬:Nepeta)의 캣트민트(Catmint)라고 하지만 이것은 깨잎의 발음과 같다 하여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가 원산지인 페밀라 자소(紫蘇:Perilla frutescens)까지가 그대로 연결되는 신기함도 없지 않다.

이러한 현상들은 따로 따로 분리될 것이 아니라 같은 범주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현재 변종이나 교잡종들이 분열되어 이것인지 저것인지 구분이 불가할 정도로 수많은 종들이 이합집산하였다고 하지만 최소한 린네가 처음 박하식물을 분류한 것이 1738년이라는 사실에서 이때까지 박하의 토종은 하나였지 않겠는가 한다.

field mint, Mentha arvensis (European mint naturalized in United States)

영어사전에서 보면 토종박하(field mint)를 일본박하라 하였고 이 일본박하는 유럽박하가 미국에 귀화한 식물 종이라고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온 마당에 토종박하는 현재 열도일본종이라고 하면 안된다.

결코 이 모든 식물들은 북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과 또한 역사적으로도 삼한역사와 깊이 관계한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페니로얄과 페퍼민트기름은 주로 천연 살충제로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향긋한 향기는 수면을 도와 사람의 피로를 제거하여, 정신을 맑게 하면서 안정을 취해주고 차로 마셔 두통 감기를 났게 하고 해독, 위를 튼튼하게하며 소화촉진하는 등 민간의약으로도 넓게 사용되었던 박하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의약품으로 취급되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동양 한방에서는 박하잎을 말려 발한, 해열, 진통, 건위, 두통, 인후통, 피부염, 해독제등으로 사용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는데 이런 사실에서 동양자료와 서양자료가 따로 있다 하여 분리된 역사라고 단정지울 수없다는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잎을 주무르거나 갈아 으깨서 박하소스, 박하젤리에 사용하고 양고기요리 등에는 빼놓을 수 없다 하였으며 특히 아랍의 여러 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음료로서 박하차를 마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신라사람과 거의 같은 습관이다.
이렇게 만든 차를 그리스어 티산니[πτισάνη (ptisanē)Pearl barley]라 하거나 영어로는 티잔(tisane:茶劑)약용음료로 보리차와 비슷하게 인식되는데 어쨌거나 이것들은 박하 차이다.
버지니아에서 이주민들은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하여 건조한 박하를 사용하였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박하를 장례식 의식들에 사용되었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는 박하가 신라사람들에게 차로 애용되었다는 간접적인 기록말고는 이러한 사소한 이야기는 아예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 한반도 역사가 실체가 없는 구름 같은 것이다.
오늘날 에센셜오일을 이용하여 아로마 테라피에 사용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신화로 알려진 박하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탈취제라 하였다.
기원전 1550년께 이집트에서 재배했다는 기록과 함께 기원전 1200~1600년대에 고대 이집트의 오래된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신라박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쟁 중에 박하를 먹거나 심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박하가 몸을 차게 하고, 군인의 용기와 정신도 냉각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종합할 때 현 박하 기원이나 분포지를 바탕으로 중국기원을 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중국을 신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라를 합병했던 고려로 볼 것인가만 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역사를 신라나 고려와 비교하면 더욱 본 블로그가 주장하는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역사에 접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려가 연합이나 연방을 뜻하는 것은 서양 잣대로 이해된 것이겠지만 동양으로 보았을 땐 이것을 중국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의미가 도시국가들을 통합하거나 연합하여 연방체제국가를 만든 것은 이민족들을 침략하여 하나의 체제밑에 둔 중앙집권체제 중국이라 한들 무엇이 차이가 있겠는가.

본래 고구려, 고려(高麗)를 '가우리'라 하는 것은 가운데를 의미하고 중앙을 나타내며 고려를 영어로 'COREA '라 하는 것은 중세영어가 "CORE"가 어원이라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속, 중심부, 핵심으로 나타나듯 중국의 지명인 가운데 중(中)을 의미하는 것이니 삼한의 고려가 중국이라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아니라는 말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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