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메밀(蕎麥)기원과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

한부울 2016. 3. 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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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蕎麥)기원과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


글쓴이:한부울


사서(史書)로 본 메밀

생물학적 판단

동서가 뒤바뀐 메밀의 근원지

삼한 사서(史書)가 알려주는 메밀의 근원지

기상학적인 면에서 바라본 메밀 근원지


머리말


하기사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역사와 생물간 자연이치의 합치점을 찾고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현 한반도 역사 전체를 갈아엎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 사람들은 워낙 긴 시간동안 주입식교육과 강제된 학습에 의해 관습처럼 길들여져 미래 역사의 암울함이 보이고 현재 의식의 폐해가 비등하며 깊어질 수록 모순만 쌓이는 문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곳곳에 산재된 역사적으로 혼란이 엄현히 존재함에도 이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메밀이라는 식물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물이다.

우리가 무심코 대하는 이 메밀에 상당한 역사적 모순과 의혹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메밀[蕎麥]분류체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평소에 알 수 없었던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시아대륙에서 사용하는 메밀과 북아메리카대륙의 메밀을 분류체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학명을 양쪽에서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글쓴이 판단에는 본래 전 세계 하나의 체제를 동서로 나누면서 발생한 모순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쓴이가 워낙 많은 생물들을 탐구형태로 접한 나머지 기존역사사실에 해당생물개체들을 역사에 대입할 때는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파악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다.

훤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개연성을 추적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다.

메밀[蕎麥]자체가 한방약재의 이론이나 기록 등을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찬 음식이라는 데는 거의 일치한다.

자연조화적인 측면과 인간생리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더라도 이 식물은 아주 따뜻한 아열대지방이나 열대지방에서 찾았을 법한 식재이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가 일상적인 면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메밀로 만든 음식 중 여름철 냉면(冷麵)으로서 한반도 전역에서 애용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족할 것이 없다.

이것을 그대로 역사에 대입할 때 많은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역사가 이미 철저하게 조작된 것임을 알 때 역사적인 음식이라고 치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냉면은 찬 음식이라 여름철과 기후와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냉면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는 냉장고도 없었고 얼음도 귀했을 때이므로 그냥 여름철 음식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지형사정상 여름철이라 할 수 있지만 그냥 여름이 아니라 매우 더운 날씨가 지속될 수 있는 아열대기후 또는 열대기후를 생각해댜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메밀국수를 먹으면 찬기운이 있어 시원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메일자체가 냉한 식물이라 하여도 기후가 추운 곳에서는 식생이 잘 되지 않다는 사실이 기록에서 엄연히 존재한다.

메밀이 척박한 기후나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서리가 내리면 메밀농사가 낭패를 당한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자료를 보면 메밀은 荞麦属(学名:Fagopyrum)是蓼科下的一个属,为一年生或多年生草本植物。该属共有15种,分布于欧亚温带地区 이라 하여 일단 일년생 또는 다년생초본식물(多年生草本植物)이라 했고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지역(欧亚温带地区)에 분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단 다년생(多年生)이라는 것은 기후가 아열대기후나 열대기후인 경우가 많다.

다년생을 여러해살이식물이라고도 하는데 거의 기온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기후조건아래 초본식물에서 지상의 줄기 등은 말라죽고 땅속의 뿌리, 뿌리줄기, 괴경, 비늘줄기 또는 구경(球莖) 등은 영양번식으로 생존한다고 백과사전에 되어 있다.

아시아용으로 분류된 속명(屬名)의 종(種)들은 서늘한 기후에도 자랄 수도 있다 하겠지만 온화한 기후를 전제한 온대지역을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냉한기운이 있는 식물은 따뜻한 지역에서 생장할 수 있는 조화가 더 크다할 것이고 따뜻한 기운이 있는 식물은 반대로 추운지방에서 생장할 수 있는 자연적인 조화의 어울림이 더 큰 것이라고 보는 것은 명확한 자연섭리의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이야기 했지만 아시아용은 대체적으로 서늘한 기후에 맞게 귀화한 측면을 생각할 수 있고 서양용으로 굳혀진 메밀 종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대륙 남부에 분포지를 형성하고 있다는 자연환경적인 문제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희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시아종은 전세계에 확산되어 분포지가 나타나지만 북아메리카대륙종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아메리카대륙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자연환경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후환경이 아열대와 지중해성기후라는 사실을 또한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늘 상 하는 이야기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시아용으로 굳어진 파고파이룸속(Fagopyrum)에 대한 것들은 신중국에서나 한반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메밀의 또 다른 에리오고눔속(Eriogonum)종들에 대한 자료들은 전무하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다.

임하필기(林下筆記)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에 "교맥(蕎麥 메밀)은 일명 숙맥(菽麥)이라고도 하고, 화교(花蕎)라고도 한다. 육방옹(陸放翁)의 시구에, “메밀꽃이 덮인 눈과 같다[蕎麥如鋪雪]”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세속에서는 목맥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에서 메밀에 여러명칭이 있음을 알 수 있으나 문제는 목맥(木麥)이라 했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초본이 아니라 목본이었을 가능성을 예단할 수 있게 하는 단초인 것은 분명하다.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한반도의 메밀은 초본이다.

위 신중국자료에서도 일년생 또는 다년생 초본식물(草本植物)이라 하였다.



그러나 위 사진의 그림처럼 북아메리카대륙 천지에 깔려 있는 또 하나의 메밀인 에리오고눔속은 목본식물(木本植物:woody plant, woody base of the plant)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즉 임하필기에서 말한 세속에 말하는 목맥인 것이다.

아래 사진은 한반도에서 유명한 냉면의 재료가 되는 메밀인데 아시아용 파고파이룸속의 학명 "Fagopyrum esculentum Moench"의 형태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위와 비교할 때 확연히 초본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벽려신지(薜荔新志)에서 말한 세속의 목맥(木麥)이 아니란게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평양(平壤)식이던 또는 함흥(咸興)식이던 냉면을 만들수 있는 식재가 되는 메밀의 생산지가 한반도가 아님은 물론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메밀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사서(史書)로 본 메밀




조선왕조실록 태종 5년 을유(1405,영락 3) 5월24일 (무오)

풍해도의 가뭄으로 보리 세를 면제하고 충청도의 메밀 씨를 운반시키다

○免豐海道麥稅。 漕運忠淸道蕎麥種三千石於豐海道。 豐海之民, 因旱失農, 故給種以耕也。

풍해도(豊海道)의 맥세(麥稅)를 면제하고, 충청도의 메밀씨[蕎麥種] 3천 석을 풍해도로 조운(漕運)하게 하였다. 풍해도 백성들이 가뭄으로 인하여 실농(失農)하였기 때문에 종자를 주어서 경작(耕作)케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서에서는 메일에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위 조선왕조실록 태종시기에 기사를 보면 풍해도(豊海道)에 가뭄이 있어 충청도에서 생산된 메일씨앗을 주어 경작케 하였다는 사실인데 구황작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메밀의 쓰임새를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이다.

풍해도는 요사이 우리가 황해도(黃海道)라고 하는 곳인데 바람이 많은 바다를 접한 행정구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황해도 역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따졌을 때 미시시피강이라는 사실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가 있다.

1405년 경 이곳에서 가뭄이 있었고 백성들을 위하여 정부는 보리 공세(貢稅)를 면제하고 충청도에서 생산된 메밀씨앗 3,000석(石:144㎏)을 보냈다는 기록은 매우 현실적인 기록임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메밀의 재배지가 충청도이었던 것은 확실하며 더 나아가 풍해도 역시 이와같이 재배지로 합당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9월21일(정사)

관서 지역 재실(災實)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평안 감사 홍양호(洪良浩)의 장계에,

“각 곡물로 말하면 조생종과 중생종 서(黍 기장)ㆍ속(粟 조)ㆍ직(稷 피)ㆍ당(唐)은 조금 여물었고, 조생종 도(稻 벼)ㆍ두(豆 콩)ㆍ태(太)ㆍ목화(木花)는 그다음이고, 만속(晩粟)ㆍ만도(晩稻)ㆍ목맥(木麥 메밀)은 또 그다음입니다. 각 읍으로 말하면 청천강(淸川江) 이남이 청천강 이북보다 낫고 협농(峽農)이 야전(野田)보다 못합니다. 벽동(碧潼)과 운산(雲山)의 우박 재해와 용천(龍川)의 홍수 근심은 실로 근래 없었던 일이니 이 세 읍은 우심재(尤甚災)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또한 위 일성록 기사를 나중에 다시한번 이야기 하겠지만 관서지역에 큰 재실이 있어 그 지역의 농사상황을 임금에게 보고 하기 위한 장계로서 관서지역에 분명 평안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평안도의 농사현황보고에서도 메밀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옥담시집(玉潭詩集)
만물편(萬物篇)○곡물류(穀物類)
메밀[木麥]
七月初耕種 칠월 초순에 밭 갈고 파종해
能專殿後權 곡물 중 가장 늦게 수확하지
玉花含露發 옥 같은 꽃은 이슬 머금고 피며
玄實冒霜堅 검은 열매는 서리 맞고 단단해라
作麵舂宜白 국수를 만들려면 희게 빻아야 하고
烹饅擣可千 만두를 삶으려면 천 번을 두드린다
衣皮何所用 그 껍질은 어디에 쓰이는가
藏蓄備荒年 잘 갈무리해 두어 흉년에 대비해야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응희((李應禧:1579~1651)옥담시집 만물편에보면 파종시기가 음력 7월이며 곡물중 가장 늦게 수확한다고 하였고 열매는 검은 것으로 껍질은 흉년에 대비한다고 했는데 검은 껍질을 까내도 먹을 만한 분량의 가루가 나오진 않는 것이 메밀이기 때문에 껍질자체가 메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껍질도 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가뭄이 있거나 수해가 있을 때 구황식물로서 존재했고 사람들이 죽지 못해 먹긴 하되, 늘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또 하나의 기록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인데 ‘일선으로 하늘을 엿봄’이란 좁은 산협(山峽)이나 동굴 사이를 통하여 하늘을 엿보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매우험준한 산악이 둘어쌓인 빛을 엿본다는 의미처럼 산골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洪錫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산협(山峽)에 사는 사람들은 10월 1일에 세시 음식으로 만두를 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날 메밀가루로 만두를 만들어 먹는데, 야채ㆍ파ㆍ닭고기ㆍ돼지고기ㆍ쇠고기ㆍ두부 등을 저며 소를 넣고 전골처럼 만들어 익혀먹는다 하면서 생김새가 원형, 반달형, 삼각형, 사각형의 변씨만두(卞氏饅頭)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이것을 고려 개성지방의 향토음식 편수라고도 하는데 편수라는 명칭은 명물기략(名物紀略)에 의하면, 변식(匾食)이라는 음이 바뀌어서 되었다고 하며 여름철 음식이라 하지만 여기서 변씨만두는 시기적으로 겨울철 만두이고 편수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월은 예로부터 신(神)과 조상(祖上)에게 감사하다고 하여 시월상달이라고 하며, 입동(立冬)과 소설(小雪) 절기가 있는 달로서 유일신(神)을 믿길 좋아 하는 서양인들의 음력 10월은 양력 11월 30일과 어울려 보통 서양인들의 세시풍속 만성절(萬聖節)을 들 수 있는데 아일랜드, 영국, 북부 프랑스 등에 살던 켈트(Celts)족은 11월 1일에 새해가 시작된다고 믿었고 1년의 끝은 10월 31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만두가 서양인들에게도 소이 세시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인들은 산협같은 곳에서 숨어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 변씨만두처럼 메밀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대고려라고 판단되는 아라사(몽고, 대비달자)의 영향을 받은 폴란드와 러시아에는 만두 피에로기(pierogi)가 전해지고, 고려소속이었던 여진이라고 판단하는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만두로서 가금류나 돼지고기 또는 각종야채를 넣는 사각형, 삼각형, 반달, 원형 등의 이태리의 라비올리( Ravioli)를 보면 개성만두라고 하는 편수 형태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서양인들과 고려는 합치점이 많고 그것의 합치점들은 현재 남아있을 것이 없지만 그래도 고려역사를 피해 달아났다는 자취나 흔적은 발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흔적들이 그들이 역사열등의식에 의한 무도한 발버둥쳤던 이유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8권, 지리지 토의(土宜)

경기 / 광주목 / 양근군(楊根郡) ·메밀[蕎麥]

충청도 / 청주목 / 청안현(靑安縣) 메밀[蕎麥]

함길도 / 함흥부(咸興府) 메밀[蕎麥]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38권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토산 메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 세종실록을 보면 메밀[蕎麥]에 대한 토의(土宜)지역을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함길도(咸吉道)를 말하고 있고 70년 뒤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지리지에는 전라도 제주목에서도 메밀을 토산으로 재배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2012년에 쓴 본 블로그 글 "비자(榧子)가 난 제주는 플로리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084"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물들을 비견하면서 제주목(濟州牧)은 플로리다(Florida)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역시 메밀의 분포지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세계삼한역사가 어느듯 결실을 맺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 엄청난 역사 고치기가 근세기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서양인들과 서양인들을 추종하는 동양인학자들에 의해 역사가 흔들림이 많았다면 세종지리지를 편찬한 시기인 1418년에서 1450년까지의 본래 역사 위치가 같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없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풍해도가 황해도가 되었다고 한 것도 워낙 미시시피강이 거대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분명 바다로 인식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서양인들의 기록이나 지도를 보아도 이와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들조차 미시시피강을 태평양으로 오인했거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역사에 인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넓혀졌으면 얼마나 넓혀졌고 좁혀지면 얼마나 좁혀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해도 한 예로 본 블로그 글 "가평(嘉平)은 시카고(Chicago)이고 풍성(風城) 또는 지성(芝城)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48" 에서도 바람이 강하여 풍성(風城)이라고 하는 시카고(芝加哥:Chicago)를 ‘윈디시티(Windy City)’라 한 것과 같은 것으로 미시시피강 상류에 풍성이 있었으니 미시시피강을 풍해라 한들 무엇이 이상한가.

함길도가 함경도라 개칭한 사실에서도 함길도가 함흥에서 길주까지의 길의 명칭이라 한 것도 한반도 지형상 매우 이상한 이야기지만 함경 또한 함흥에서 경원까지의 길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왕조실록은 한반도 지형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이 같은 사실들이 꼬여 풀리지를 않는다는 것도 역사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물학적 판단


사서의 이야기를 하다가 많이 옆길로 흘렀다.

다시 추스려 메밀의 정확한 생물학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 식물분류체계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식물분류체계를 보면 쌍떡잎식물강(雙子葉植物綱:Magnoliopsida), 석죽목(石竹目:Caryophyllales), 마디풀과(蓼科:Polygonaceae)에 속한다.

이 마디풀과는 신중국자료에 다년생정수식물(多年生挺水植物), 수생식물(水生植物)이라 하였고 1789년 프랑스식물학자이며 탐험가인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Antoine Laurent de Jussieu:1748-1836)에 의해 처음 과(科)가 명명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The name refers to the many swollen nodes the stems of some species have. It is derived from Greek; poly means many and goni means knee or joint.

이것의 어원(語源)을 보면 형태적으로 대다수 종(種)에서 줄기에 불룩한 다수의 마디가 있다는 의미가 있으며 그리스어(語)의 많다(多)는 의미의 폴리(poly)와 무릎과 관절의 의미인 고니(goni)의 합성어로 알려진다.

이 과(科)에서 약 50개 속(屬)으로 1200종(種:species)이 있으며 가장 큰 속(屬)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하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240 species)]이고, 밀원식물인 소리쟁이속[Rumex (200 species)], 열대아메리카원산인 코콜로바속Coccoloba(120species), 수료(水蓼), 택료(澤蓼), 천료(川蓼)라 하는 여뀌속[Persicaria(100species)], 칼리고눔속[Calligonum(80species)]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반면 같은 과(科)에서 동아시아용으로 정해진 메밀속 파고파이룸(Fagopyrum)은 고작 15종(種)이 있을뿐인 것은 후차에 끼어넣기 했을 공산이 큰 것이다.

일단 근원종의 가치는 과군으로 보았을 때 단연 북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하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임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메밀의 명칭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사라장[紗羅餐:Sarrasin]은 프랑스에서 흑밀(black wheat)이라 하는데 이것은 원래 거뭇거뭇하다는 의미의 중세에 이슬람교도들을 칭하던 용어로서 크레프(crêpe)를 만드는 식재였던 것은 틀림없다.

동서양 다를게 없는 것은 메밀씨앗을 통째로 찧어 가루를 내니 색깔이 거뭇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사라장은 어떤 학명이었을까?

놀랍게도 동아시아대륙용으로 굳어진 학명“Fagopyrum esculentum Moench(1794)”이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이외이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학명의 명명자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파악되는 분리주의자로서 독일(German)식물학자 콘라드 묀히(Conrad Moench:1744-1805)이라는 사실이다.

부첨할 것은 이 사람들은 프랑스대혁명시기부터 등장한 인물들이 태반인데 현재 거의 독일식물학자라고 알려지고 따져보면 모두 독일계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프랑스혁명은 유대인들의 해방과 거의 같은 취급을 한다.

사실 독일식물학자라고 역사적으로 설명되는 대다수가 하나같이 분리주의자로 인식되고 특히 근세기에 서세가 주도한 역사 만들기에 곳곳에 핵심적인 분야에 나타난다는 것은 이들인데 필요불가결한 추임새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묀히가 아시아종인 속명을 명명할 거의 같은 시기인 1803년에 프랑스 식물학자 겸 탐험가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1746-1802)에 의해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에 분포하고 있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의 표본 채취하였고 가장 일찍 명명했음은 물론이고 이 속명에서 가장 앞선 시기에 또한 학명 “Eriogonum tomentosum Michx”를 명명했다는 사실은 메밀의 당시 근원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때 아마도 프랑스인들이 메밀이라고 하는 사라장이 등장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고 동시에 이 속명이 명명되었을 것이란 가능성을 말할 수가 있다.

때문에 이 종이 주는 주요분포지,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 플로리다(Florida)주와 조지아(Georgia)주, 알라배마(Alabama)주,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주는 조선과 프랑가 합치된 역사개연성을 바탕으로 한다 하더라도 삼한역사 메밀 근원지와 동일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론 이 속명(屬名)을 다른 이름으로 야생메밀(Wild Buckwheat)이라고 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메밀(Buckwheat)이라는 것에는 동아시아용 속명“Fagopyrum esculentum”를 종자용(grain-like seeds) 또는 피복작물(cover crop)이라 하였고 속명 “Fagopyrum tataricum”은 분포지로 히말리야(Himalayas), 네팔(Nepal), 부탄(Bhutan), 인도(India)등 남아시아를 말하고 있으며 속명 “Fagopyrum acutatum”는 일본메밀(Japanese buckwheat)또는 벗긴 은메밀(silverhull buckwheat)등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이에 더하여 파고파이품속의 학명 “Fagopyrum leptopodum”를 작은야생메밀(小野荞麦)이라 하였다.

이미 작은 야생메일이라는 명칭자체가 후순위 밀려나 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이전에 야생메밀은 북아메리카대륙 학명 “Eriogonum tomentosum Michx”으로 굳혀진 것이다.

메밀의 근원지를 밝힘에 있어 아시아식물학자들이 엉뚱하게도 아시아대륙 메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최근 일본식물학자 오니시(Ohmi Ohnishi:1991)는 신중국 남부(南部)에서 메일의 원종을 밝히는데 학명‘Fagopyrum esculentum ssp. ancestralis’와 ‘Fagopyrum homotropicum’을 발견하였다 하였으며, 두 종(種)간의 유연관계를 살펴본 결과 보통 재배종메밀과 유연성이 아주 높고, 따라서 두 종 모두가 재배종 메밀의 원형일 것이라는 추측설이 있는 반면 종전 식물계 주장에서 보면 동형화주성(同形花柱性:homostylism)과 자식성(自殖性)을 가진 학명“Fagopyrum homotropicum”보다 종자용(grain-like seeds)이라했던 학명“Fagopyrum esculentum ssp. ancestralis”를 재배종의 식물학적 기원이라고 하였다는 사실까지 정리해 볼 수가 있다.

어쨌던 동아시아역사의 근원을 따지는 것은 몰라도 세계 메밀에 대한 근원종을 따지기엔 한참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아래는 아시아용으로 굳어진 파고파이룸(Fagopyrum)의 주요 학명의 분포지를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의 지도자료와 다스커버라이프의 지도자료이다.


蕎麥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石竹目 Caryophyllales

科: 蓼科 Polygonaceae

屬: 蕎麥屬 Fagopyrum

種: 蕎麥 F. esculentum

二名法

Fagopyrum esculentum Moench


[1]Fagopyrum acutatum Lehm-It is native to much of China, and to Bhutan, Nepal, India, Burma, and Vietnam, 학명부여자 독일식물학자 (Johann Georg Christian Lehmann:1792-1860)

tall buckwheat

분포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2]Fagopyrum esculentum Moench.1794-독일식물학자 (Conrad Moench:1744-1805) 보통종 Himalayas, primarily in Nepal, Bhutan and India,

蕎麥Buckwheat, Japanese buckwheat, silverhull buckwheat,


[3]Fagopyrum tataricum(L.)Gaertn-독일식물학자 (Joseph Gaertner:1732-1791) 달단종

east Asia, and is also cultivated in Europe and North America.

苦荞麦Tartary buckwheat, duckwheat, India buckwheat


아시아용 파고파이룸속의 종 학명별 분포지를 보면 [1]번 학명은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2]번 학명은 거의 세계전역에 분포지가 나타나 확산에 확산을 거듭하여 근원지 실체를 알 수가 없게 하는 것이다.

[3]번 학명은 타타르라고 하지만 오히려 유럽쪽에 강하게 나타나고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아시아란 의미가 전혀 사라지고 없다.

적어도 타타르가 있어야 할 곳은 몽고를 포함하고 시베리아전역이어야 한다.

첫째 분류학적으로도 메밀속이라 하여 파고파이룸속(Fagopyrum)을 동양역사에서 메밀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린네학회회원들에 의해 "APG 분류 체계(APG, Angiosperm Phylogeny Group)"가 새롭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는 1993년에는 마디풀과(蓼科:Polygonaceae Juss,1789)에는 43속(屬)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Brunnichia, Eriogonum, Persicaria 속등은 이 체계가 변동되면서 페밀리(科)의 지위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고 역시 단계통군(單系統群,monophyletic taxon)이 아닌 것으로 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43속에서 50속으로 늘어난 것은 루프레치아속(Ruprechtia), 에리오고눔속(Eriogonum), 코리잔테속(Chorizanthe), 퍼시카리아속(Persicaria), 싱아속(Aconogonon), 여뀌속 폴리고눔(Polygonum), 팔로피아속(Fallopia), 뮤렌베키아속(Muehlenbeckia)까지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50속을 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것들에서 글쓴이가 감히 느끼는 것은 하나의 역사, 하나의 체제를 동서양으로 분리하기 위한 후속 조치라는 이야기다.

무엇 때문에 같은 마디풀과에서 메밀이라는 종자를 놓고 에리오고눔속(Eriogonum)과 파고파이룸속(Fagopyrum)으로 나뉘어야 하고 또한 메밀(Buckwheat)에서 기어코 동아시아용 학명 파고파이룸속이 따로 필요했었는지를 알 수 없는 문제가 그것의 열쇠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본래 메밀을 프랑스어로 사라장[Sarrasin]이라 했던 것은 메밀이 어쨌거나 프랑스인이 발견한 사실을 부정하기가 곤란하다.

물론 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인 초본이냐 목본이냐 구분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를 근원으로 하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을 전부 목본이라고 단정내리기가 어중간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탐구한 결과 동아시아용으로 자리잡은 파고파이룸속(Fagopyrum)에서 메밀의 기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메밀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1789년에 식물학에서 처음 초유전자적인 명명법(suprageneric nomenclature)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프랑스 식물학자이며 탐험가인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는 마침내 마디풀과(蓼科:Polygonaceae)학명을 부여한 것과 크게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은 서양인들이 생물분류체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있다.

특이한 것은 프랑스혁명과도 동일한 시기이다.

현재 알려진 것은 프랑스인들이 사라장이라고 하는 흑밀(black wheat)도 동아시아용 속명인 파고파이룸속(Fagopyrum)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상 이와  다를 가능성도 많다.

프랑스인들이 시작한 학명이 사실이라면 이 프랑스인들의 삶속에 있는 사라장 역시 분류학적으로 속해야 할 진정한 속명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하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동서가 뒤바뀐 메밀의 근원지


앞에서 아시아용인 파고파이룸속을 알아보았으니 지금부터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의 근원지를 알아볼 차례이다.

에리오고눔속(屬) 종(種)에서 가장 일찍 명명한 학명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 플로리다(Florida)주와 조지아(Georgia)주, 알라배마(Alabama)주,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주를 분포지로 하고 있는 학명 “Eriogonum tomentosum Michx”이라 하였으며 이 학명의 명명자가 바로 프랑스 식물학자 겸 탐험가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 also spelled)라 하였다.

명명시기를 자료에는 1789년이라 하기도하고 1803년이라 하지만 이때가 프랑스 혁명시기이며 그가 루이 16세(Louis XVI)명에 의해 왕가건물(Bâtiments du Roi)감독아래 왕실식물학자로 임용되어 1785년에 미국으로 들어가 1785년-1791년 사이에 많은 식물표본을 만들고 프랑스로 많은 종자들을 옮겼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가 만든 학명(Eriogonum tomentosum)이 이 시기에 실행된 것이다.


The genus is found in North America and is known as wild buckwheat.

Scientific classification

Kingdom: Plantae

(unranked): Angiosperms

(unranked): Eudicots

(unranked): Core eudicots

Order: Caryophyllales

Family: Polygonaceae

Genus: Eriogonum Michx.


[A]프랑스 식물학자 겸 탐험가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 also spelled: Andrew Michaud:1746-1802)

Eriogonum tomentosum Michx. Wild Buckwheat 플로리다와 조지아, 알라바마, 사우스캐롤라이나

           


            

              conservation status/U.S. states and Canada provinces(Provincial Status (S Rank)


SH: Historical

미국 및 캐나다의 지방 자연 보전상태[Conservation status]를 나타내는 단계별 순위에서 SH:Possibly Extirpated (Historical)라는 것은 근절을 전제하는 것으로 역사(발생 위치를 변경하기 위한 것)에 관계한 근원을 근절, 또는 말살시켰을 가능성을 추측할 수가 있다.
특히 연보라색의 표시가 노스캐롤라이나주(North Carolina)에 나타나는 것은 세계삼한역사의 기(畿)의 땅임을 알게 하는데 소제 "기상학적인 면에서 바라본 메밀 근원지"에서 풀어 볼 이야기지만 여하튼 기존역사근원지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짐작컨데 이와같은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잇는 것은 확실히 들어나지 않지만 서양인들은 생물분류체계를 세우면서 기존역사사실을 감추었다는 사실과 의도적으로 생물근원지를 근절시켰을 가능성꺼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B]린네학회의 가치를 인식한 영국식물학자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James Edward Smith:1759-1828)

Eriogonum latifolium Sm. Seaside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parvifolium Sm. Seacliff Buckwheat 캘리포니아


[C]영국식물학자 동물학자, 토머스 너털(Thomas Nuttall:1786-1859)1808년부터1841년까지 북미에서 거주하며 탐구활동을 했다.

Eriogonum acaule Nutt. Singlestem Buckwheat 유타, 콜로라도


Eriogonum annuum Nutt. Annual Wildbuckwheat 북미 중부


[D]북아메리카 식물상(植物相)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한 미국의 식물학자인 존 토리(John Torrey:1796-1873)

북아메리카의 식물분포 연구에 종사한 미국의 식물학자 에이서 그레이(Asa Gray:1810-1888)

Eriogonum abertianum Torr. Abert's Buckwheat 남부

Eriogonum brachypodum Torr. & A. Gray Parry's Buckwheat 서부


위 게시한 것은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의 분포지도들이다.

우선 설명해야 할 것은 시대적으로 빠른 명명자 4사람을 나누고 각자 주요한 학명과 함께 분포지도를 첨부한 것이다.

[A]의 분포지도를 보면 프랑스 식물학자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가 가장 앞선 시대의 사람으로서 주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東南部)의 분포지를 나타내는 학명들을 명명했다는 사실인데 물론 세계삼한역사관점에 매우 중요한 학명이다. 그리고 [B] 린네학회의 가치를 인식한 영국식물학자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James Edward Smith)는 주로 서부(西部) 캘리포니아를 분포지로 하는 학명을 명명하였다. [C]는 영국식물학자 동물학자인 토머스 너털(Thomas Nuttall)인데 주로 북아메리카대륙 서중부(西中部)를 분포지로 하는 학명을 명명하였다.

마지막으로 [D]는 미국역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로서 미국의 식물학자인 존 토리(John Torrey)와 식물학자 에이서 그레이(Asa Gray)가 공동으로 명명한 학명인데 주로 서남부(西南部)를 분포지로 하는 학명을 명명하였다는 사실에서 근거한 분포지도이다.

거의 북아메리카대륙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차라리 깔끔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확한 메밀기원과 근원지를 밝힘에 있어 린네학회의 회원들이 주도가 되어 2009년 속씨식물 계통연구그룹(APG, Angiosperm Phylogeny Group)만들고 "APG III 분류 체계"를 세우면서 진정쌍떡잎식물군(Eudicots)내에 석죽목(Caryophyllales)을 세우면서부터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생성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학명 파고파이룸속(Fagopyrum)에 종이 15종에 불과하지만 이 아종(亞種)들이 동아시아대륙용과 중국용으로 만들어지면서 근원지가 동아시아의 북부 및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만주, 아무르강변 등으로 원산지가 매겨지고 알려져 있으며 한반도 지형을 기준으로 기후가 서늘한 곳이라 하여 옛적부터 구황식물로 자리매김하였던 메밀을 현재 함경도(咸鏡道)라 하거나 아니면 강원도(江原道)라 하여 평창(平昌)군 봉평(蓬坪)지역의 특산물로 자리 잡게 하였다는 사실도 현재까지의 이야기다.

솔직히 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의 메밀기원역사를 잠시 빌려보면 기존 역사와 다를바가 없지만 일반메밀은 BCE 6000경 동남아시아본토에서 먼저 길들여졌거나 재배되었을 것이란 사실, 그곳에서 티벳과 중앙아시아로 퍼졌으며 중동과 유럽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하고 있고 중국 서부 운남(雲南)지역에 이와 별도로 토착재배가 가능했던 것을 나타난다.

서양사중심으로는 중기 신석기시대에서 재배의 첫 징후가 아시아보다 늦은 BCE 5300 경 유럽 핀란드에서 나타나거나 또는 약 BCE 4000경에 발칸반도에서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메밀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선상에서 그리스 비잔틴제국으로부터 7세기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일본은 사실상 기원전 4000년 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주장을 그대로 믿을 천치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메밀 유적이 BC2600년경의 것이 발견된 사실등이 기원으로 알려지는데 사실상 이것들은 모두가 분류체계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에서 헛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아시아대륙에 중국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여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혼란이라 할 수 있다.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서기 713년경에 맹선(孟詵)에 의해 편찬된 식료초본[食療本草]에 메밀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이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6세기 북위(北魏)의 북양태수(北陽太守)였던 가사협(賈思勰)이 저술한 농업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잡설에 메밀 가꾸기에 대하여 상세하게 나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 한나라시대의 분묘에서 메밀이 출토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동아시아대륙 메밀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연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기원전 6000년 메밀에 대한 고리찾기에는 전혀 못 미치는 이야기들이다.


삼한 사서(史書)가 알려주는 메밀의 근원지


일성록 정조20년 병진(1796,가경 1)8월12일(갑신)

유원명(柳遠鳴)과 선전관 이갑회(李甲會)가 기보(畿輔)의 농사 상황에 대해 서계(書啓)하여, 경기 감사에게 다시 열읍(列邑)에 탐문하여 보고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〇 유원명의 서계에,

“신이 고양군(高陽郡) 하도면(下道面) 청담리(靑潭里)와 원당면(元堂面) 신원리(新院里)의 관전평(館前坪), 양주(楊州) 지역의 벽제리(碧蹄里)에 달려가 논밭의 각종 곡물을 자세히 간심(看審)하였습니다.(생략)

신이 도착한 곳에서 점민(店民)과 촌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자세히 물었더니, ‘금년 농사는 풍년 아닌 게 없어서 1년 농사로 거의 3년 치 수확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바람 때문에 약간 손실을 본다고 해도 보통 풍년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가을 들어 무더위가 심해서 더러 충해를 입을 염려도 있고 이번 바람이 농가에서 꺼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날씨가 시원해져서 도리어 깨끗이 씻어 주는 효과가 있었고, 또 간간이 북풍이 불었기 때문에 연달아 동풍만 분 것과는 달랐습니다. 잇따라 비만 조금 내려 주면 재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화는 이미 대부분 땄으므로 특별히 염려할 것이 없고 교맥(蕎麥메밀)은 꽃이 활짝 피었는데 바람이 도리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이갑회의 서계에,

“신이 동교(東郊)로 달려가 양주의 구지(龜池)와 진관(鎭關) 두 면에서부터 토원(兔院)과 평구(平邱)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간심하였습니다. 동교에는 대부분 조곡(早穀 올곡식)을 심었으므로 바람이 불기 전에 논곡식과 밭곡식이 모두 열매를 맺어 익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동풍이 연달아 불긴 했어도 특별히 눈에 뜨이는 피해는 없었습니다. 늦게 파종한 곡식도 대부분 영글었고 그 역시도 두드러지게 피해를 입은 곳은 없었습니다. 다만 늙은 농부들의 말을 들어 보니 그중에서 꽃이 피려고 하는 목맥(木麥 메밀), 아직 이삭이 패지 않은 늦곡식, 한창 열매를 맺고 있는 수임(水荏), 모내기를 늦게 한 논곡식은 비록 손실을 입을 염려가 있었지만 바람이 금방 그쳤고 이어서 비가 적셔 주어 저절로 살아났고, 목화에는 그 바람이 좋은 것이었다고 합니다.”하여, 전교하기를,“며칠 동안 바람이 세어 농사에 해를 끼칠 염려가 있었을 듯하기에 사관(史官)을 나누어 보내 근교(近郊)를 적간하게 했는데 그들의 보고 또한 전부 믿을 수 없다. 묘당에서 경기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 열읍(列邑)에 두루 물어보고 장계로 보고하게 하라.”하였다.


심증적으로야 무엇이든 말 못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역사사실에 근거할 생물학적 판단이 자의적으로 흐르는 것에는 조심해야 할 이야기다.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주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위 일성록[日省錄]의 인용 자료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자연과학인 기상학적(氣象學的:meteorologischer)면을 간과할 수 없다.

위 기록에서 기상학적인 문제와 목화 생산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성록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경기지역 동교(東郊)에 목화(木花:Gossypium)와 메밀[蕎麥]이 재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세종지리지 기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경기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왕도(王都)주위로 오백리 이내의 기(畿)라는 땅이기 때문이다.

본 블로그 글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목화(木花, Gossypium)생산국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956"에서 당시 미국 목화 생산량과 코리아의 목화생산량에서 엇비슷하게 나타나는 사실과 그 목화 종이 북아메리카에서 95%를 생산하는 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의 종자임이 밝혀졌고 재배 생산지를 파악함에 있어 한반도에서는 주로 목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기실 텍사스(Texas)주가 목화생산에서 농산물의 생산1위를 차지하면서 특히 멕시코만(灣:Gulf)과 연결되어 '바다 없는 항구'라 명칭이 있는 미국 제1의 면화수출항 휴스턴(Houston)이라는 사실과, 그 외 대륙 남부 조지아주의 사바나(Savannah), 루이지애나주의 슈리브포트(Shreveport)와 앨라배마(Alabama)주의 모빌(Mobile), 이에 더 나아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까지 당시 코리아의 주요목화항구라고 의심해보았던 곳은 놀랍게도 현재 메밀생산지와 겹쳐딘다는데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위 일성록에도 등장하지만 경기도에 목화생산을 주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畿)와도 연결되는 이야기다.

본 블로그 글 "미국국명과 코리아(대한제국) http://blog.daum.net/han0114/17050745"에서도 1861.4.19 부터 북군(The Union:Confederacy)에 의한 남군봉쇄조치에서 남부맹방(南部盟邦:CSA)의 수로(水路)와 남군해안선 5,600km둘레의 항구(part of the Union blockade on ports)를 봉쇄조치(Scott's Anaconda Plan)한 것은 당시 목화주요 무역 항구들을 봉쇄하여 자금줄(경제행위)을 자르려 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는데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항구(Charleston, South Carolina)는 주요충돌지역으로 나타난다.

이 기(畿)땅을 더 확대한다면 남북전쟁 개전시기인 1861년에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CSA)의 임시수도가 앨라배마(Alabama)주 몽고메리(Montgomery)임을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상학적인 면에서 바라본 메밀 근원지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역사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기상학적(氣象學的:meteorologischer)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문제와 또 다른 비중적인 이야기가 된다.

앞에서 “사서(史書)로 본 메밀”소제목에서 일성록[日省錄]의 기록에서 정조16년(1792,건륭 57)9월21일(정사)에 관서(關西)지방에 재실(災實)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사뿐만아니라 1792년에는 음력 6월과 이어 8월에 이와같은 재실이 지역별로 재해에 대한 정부조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아래 대표적으로 5개의 기사다.


[1]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6월8일(을해)

경상 감사는 고을 수령에게 엄하게 신칙하여 집채가 무너지거나 떠내려간 민호에 대한 휼전이 혹시라도 누락되지 않게 하라고 명하였다.

청도(淸道), 자인(慈仁), 하양(河陽), 영천(永川), 신녕(新寧), 언양(彦陽) 등 6개 읍은 ‘25일 술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해시에 바로 그쳤는데, 전답 중에 피해를 입은 곳이 더러 많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각 고을에서 그간에 보고한 것을 보니, 15일과 16일 이틀 동안에 내린 비로 일로(一路)가 대부분 피해를 입었습니다. 23일과 24일, 25일에 비가 또다시 더 쏟아졌는데, 마침 알맞게 와서 다행스럽게도 작물이 씻기는 정도에 그친 곳도 없지 않았으나 물이 지나치게 불어난 곳은 터졌던 곳이 다시 터지고 잠겼던 곳이 다시 잠겨서 이앙한 볏모가 대부분 썩어 문드러져 실로 낟알 하나도 건질 가망이 없습니다. 조금 힘을 쓸 수 있는 곳은 직(稷 기장)이든 목맥(木麥메밀)이든 간에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물길을 트거나 방축을 쌓고 대신 파종하여 모두 폐기될 염려가 없게 하라고 연이어 신칙하겠습니다.”


[2]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 6월14일(신사)

기전(畿甸)의 수재를 당한 곳에 목맥(木麥메밀)을 대신 파종하는 일을 이전의 사례대로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 경기의 구관 당상(句管堂上) 서유방(徐有防)이 아뢰기를,

“기전에는 다행히 금년에 내린 비로 크게 수재를 입는 근심은 없었지만 산골짜기 고지대의 건조한 곳과 강에 인접한 침수 지역은 전부 폐기되어 애석합니다. 전에 이와 같은 때에는 목맥을 대신 파종하여 대부분 실효를 거두었으니 이전의 사례대로 도신에게 분부하여 각별히 수령을 신칙하여 착실하게 거행하게 하여 황무지로 버려두는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3]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9월14일(경술)

영남에서 재실(災實)의 등급을 나눈 것은 묘당에서 회계(回啓)한 대로 시행하고, 관동에서 재실의 등급을 나눈 것은 도백이 장계하여 청한 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강원 감사 윤사국(尹師國)의 장계에,

“올해 농사 형편은 사나운 바람과 찬비로 인해 한 도가 똑같이 재해를 입었는데, 바람이 매섭게 불기도 하고 가볍게 불기도 하여 재해 정도가 이에 따라 소소하기도 하고 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참혹하게 재해를 입은 읍이라도 피해가 조금 덜한 면(面)이 있고, 피해가 조금 덜한 읍에 또한 참혹하게 재해를 입은 면이 있으며, 한 면의 한 평(坪) 안에도 재실이 같지 않습니다. 규례대로 우심재읍과 지차읍, 초실읍으로 나누어 논열(論列)합니다.

평해(平海) 등 5개 읍은 우심재읍에 두고, 삼척(三陟) 등 15개 읍은 지차읍에 두고, 양양(襄陽) 등 6개 읍은 초실읍에 두었습니다. 5개 우심재읍은 장차 부근 고을의 환곡을 적절히 헤아려 옮겨 주어 넉넉하게 순차(巡次)를 안배하여 봄 이후에 쓸 식량과 종량(種粮)으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고 여겨 이미 본영으로 가면서 미리 계획을 세우고 본영으로 돌아간 뒤에 또 관문을 보내 여러 고을에 알렸습니다. 그중에 가장 빈궁한 자는 해당 읍의 수령과 상의해 편리한 쪽으로 식량을 구하여 공급할 계획입니다. 비록 지차읍이라 하더라도 매우 심하게 재해를 입은 면리는 환곡을 분급하는 절차와 식량을 구하는 방도를 또한 십분 잘 헤아려 일체 배분하겠습니다.

한 도의 재결 총수는 627결(結) 69부(負) 7속(束)으로, 원래 획정한 재결과 비교하면 추가된 수효가 227결 69부 7속인데, 특별히 수효대로 추가로 획정하도록 허락한다면 삼가 상세히 재부(災簿)를 살펴보아 실제에 따라 재결을 배분하겠습니다. 전재(田災)는 342결 64부 2속인데, 단지 이렇게 논열하오니 삼가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올해 두(豆), 태(太), 목맥(木麥메밀) 및 피당(皮唐 겉수수), 당미(唐米 수수쌀)를 본색으로 정해진 수량대로 거두는 것은 형세상 거행할 도리가 없습니다. 거두어야 할 것 중에 초실읍은 4분의 1을, 지차읍은 3분의 1을, 우심재읍은 절반을 다른 명색의 여유 있는 곡물로 준절(準折)하여 대신 거둘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 영월(寧越)의 전미(田米 조)가 도리어 다른 곡식보다 좋지 못하여 그에 상당하는 곡식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영월은 이미 우심재읍이니 그 절반까지는 백성의 바람을 따르고 내년 가을을 기다려 본색으로 바꾸기 위해 또한 대신 거둘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

경외(京外)의 배소로 보내는 죄인은 우심재읍과 지차읍에 배소를 정하지 말고, 노비를 추쇄하고 빚을 징수하는 것은 우심재읍, 지차읍과 초실읍을 막론하고 내년 가을까지 막게 해 주소서.”

하여, 전교하기를,

“‘전답에 추가로 재결을 배분하는 일까지 아울러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라.’라고 회유(回諭)하라.”하였다.


[4]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 9월21일(정사)

관서 지역 재실(災實)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평안 감사 홍양호(洪良浩)의 장계에,

“각 곡물로 말하면 조생종과 중생종 서(黍 기장)ㆍ속(粟 조)ㆍ직(稷 피)ㆍ당(唐)은 조금 여물었고, 조생종 도(稻 벼)ㆍ두(豆 콩)ㆍ태(太)ㆍ목화(木花)는 그다음이고, 만속(晩粟)ㆍ만도(晩稻)ㆍ목맥(木麥메밀)은 또 그다음입니다. 각 읍으로 말하면 청천강(淸川江) 이남이 청천강 이북보다 낫고 협농(峽農)이 야전(野田)보다 못합니다. 벽동(碧潼)과 운산(雲山)의 우박 재해와 용천(龍川)의 홍수 근심은 실로 근래 없었던 일이니 이 세 읍은 우심재(尤甚災)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순안(順安)천(肅川)ㆍ숙천(肅川)ㆍ안주(安州)ㆍ가산(嘉山)ㆍ정주(定州)ㆍ곽산(郭山)ㆍ선천(宣川)ㆍ철산(鐵山)ㆍ의주(義州) 등 읍은 연해의 답(畓)이 해일의 피해를 입었고 일찍 가뭄이 들었던 포구의 전(田)이 다시 장마와 세찬 바람에 상하여 수확한 볏단이 태반은 알이 차지 않았으며, 태천(泰川)ㆍ구성(龜城)ㆍ영변(寧邊)ㆍ희천(熙川)ㆍ은산(殷山)ㆍ덕천(德川)ㆍ영원(寧遠)ㆍ맹산(孟山)ㆍ양덕(陽德)ㆍ강계(江界)ㆍ삭주(朔州)ㆍ위원(渭原)ㆍ초산(楚山) 등 읍은 처음에는 바람과 홍수에 상하고 나중에는 서리와 우박의 피해를 입어 각 곡물이 시들고 손상되어서 말라 죽은 것이 거의 반이나 되니, 이상 22개 읍은 지차(之次)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평양(平壤)ㆍ강서(江西)ㆍ용강(龍崗)ㆍ삼화(三和)ㆍ함종(咸從)ㆍ증산(甑山)ㆍ영유(永柔)ㆍ중화(中和)ㆍ상원(祥原)ㆍ삼등(三登)ㆍ강동(江東)ㆍ성천(成川)ㆍ자산(慈山)ㆍ순천(順川)ㆍ개천(价川)ㆍ박천(博川)ㆍ창성(昌城) 등 읍은 각 곡물이 처음부터 잘 익었고 비바람이 재해가 되지는 않았으므로 들에 수확한 곡식이 집채만큼 쌓여 있어서 백성들이 먹고살기 어려운 탄식이 없으니, 이상 17개 읍은 초실(稍實)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5]일성록[日省錄]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10월30일(을미)

충청 감사 이형원(李亨元)이, 도내의 집채가 떠내려간 민호와 집채가 무너진 민호에 대해 환곡과 신포(身布)를 정감(停減)한 수효를 급히 장계하였다.

충주(忠州)의 집채가 떠내려간 민호와 집채가 무너진 민호 가운데 대호와 중호인 22호에게 올해의 환곡을 정퇴하고 - 미 1섬 3말, 조 77섬 7말 6되, 태 1섬 3말 4되, 두 8말, 목맥(木麥메밀) 2섬 13말이다.


위 일성록[日省錄] 5개의 기사를 일자별로 보면 [1]1792년6월8일(양력7월23일), [2]1792년6월14일(양력7월29일), [3]1792년9월14일(양력10월29일), [4]1792년9월21일(양력11월5일), [5]1792년10월30일(양력11월14일)로 나타난다.

위 5개의 기사에서 피해지역을 살펴보면 [1]번은 경상도, [2]번의 경기, [3]번은 강원도, [4]번은 평안도, [5]번은 충청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관서라는 것은 충청도와 평안도임을 알 수가 있다.

피해상태를 보면 1792년 당시 관서(關西)지역에 우박, 바람, 홍수 등에 큰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과 정부가 이 재해로 인한 농사상황을 알기위해 조사를 지시하고 평안감사가 메밀 등의 재배상황을 알리고 있다.

또는 집채가 떠내려간 민호와 집채가 무너진 민호, 해일의 피해를 입었고 홍수로 인한 침수 그리고 세찬바람으로 인한 농사피해가 나타나며 강(江)에 인접한 침수지역등 엄청난 수해(水害)로 인한 재실(災實)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이때도 군역탕감 등급을 예외없이 적용하였는데 재해 상태를 보아 최고 우심재(尤甚災), 지차(之次), 좀 피해가 덜한 지역을 초실(稍實)로 나누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경상도(慶尙道)에서도 메밀을 재배했고, 기전(畿甸) 즉 경기(京畿)에서도 메밀을 재배하였으며 관동(關東)인 강원도(江原道)에서도 메밀을 재배하였고 평안도(平安道)에서도 메밀을 재배하였으며 충청도(忠淸道)에서도 메밀을 재배하였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위 일성록을 유심히 살펴보면 문제의 1792년 한해에 조선(朝鮮)각도(道)에 집중된 두 번의 자연재해 실체를 발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음력6월(7.8월)을 기준으로 하는 피해와 음력 8월(10월)을 기준으로 하는 피해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대체 이것이 무엇일까?

놀라지 말자. 허리케인이다.

18세기 때 애틀랜틱 허리케인[Atlantic hurricanes(tropical cyclones) in the 18th century]의 발생사례를 자료에서 찾아보니 양력으로 정확하게 1792년 8월 1일에 카리브 제도(서인도 제도)의 소앤틸리스 제도(Lesser Antilles)에서 발생한 사실이 있고 또 하나는 1792년 10월29일에 쿠바의 하바나(Havana, Cuba)에서 발생한 자료가 나타난다.

위 일성록[日省錄]재해일시 상황과 비교하면 시간적으로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1]번1792년6월8일(양력7월23일)기사와 [2]번 1792년6월14일(양력7월29일)기사의 재실 상황은 1792년 8월 1일에 카리브 제도(서인도 제도)의 소앤틸리스 제도(Lesser Antilles)에서 발생한 하리케인과 연관시킬 수 있고 [3]번 1792년9월14일(양력10월29일), [4]번 1792년9월21일(양력11월5일), [5]번 1792년10월30일(양력11월14일)재실 상황은 1792년 10월29일에 쿠바의 하바나(Havana, Cuba)에서 발생한 하리케인과 연관시킬 수가 있다.

소앤틸리스제도에서 발생한 일자와 너무 좁혀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한쪽 기록이 다를 수 있다 하겠지만 두번째 쿠바 하바나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일자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이 두 차례의 거대한 하리케인을 현재 애틀랜틱 하리케인(Atlantic hurricanes)이라고 함을 알 수가 있다.


1792 August 1, Lesser Antilles N/A Several ships destroyed

1792 October 29, Havana, Cuba


1792년은 정조(正祖,1752년-1800,재위:1776-1800)재위시대이며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재위:1774-1793)와 역사적으로 얽혀 있고 프랑스역시 자연재해로 인해 빈곤누적·기근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조선과 상당히 역사적으로 겹쳐진다는 것은 이미 본 블로그를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더불어 메밀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사실도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식물학자 분리주의자라고 판단할 수 있는 독일인(German) 콘라드 묀히(Conrad Moench:1744-1805)과 프랑스인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1746-1802)가 활동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물론 이 시기는 프랑스혁명(French Revolution:1789-1794)이 발생한 시기이다.

본 블로그 글 "토네이도(Tornado)로 본 유럽지명과 모스크바(Moscow)지명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3"에서 토네이도(Tornado:龍捲風,羊角風)의 실체를 밝혔다는 사실과 "겨울폭풍(winter storm)에 의한 해일(海溢)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0"에서 밝혔던 겨울폭풍의 실체와 이에 더하여 "1차려몽일본원정으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0"에서는 여태 한반도와 열도로 알고 있던 역사지형도식을 완전히 엉터리란 사실까지 밝혔던 사례가 있지만 이 또한 북아메리카대륙 기상학적인 문제와 합치된 이야기들이다.

또한 그러한 성과와 못지 않게 이 허리케인의 재실 상황의 밝힘은 본 블로그에서의 또 하나 개가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좀 더 확실한 사실을 뒤 받침하기 위해 위 거대한 두 차례의 하리케인의 이동상황을 1차려몽일본원정시 려몽군에게 피해를 준 발생한 태풍을 하리케인을 밝혔던 것처럼 그림으로 도식해 보았다.

1792 Oct 30-31 Storm passed just east of Charleston causing considerable damage in and around Charleston harbor.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자료에 나타나는 내용을 보면 1792년 10월 30일과 31일 사이에 폭풍으로 인하여 사우스 캐롤라니아주의 찰스턴 항구 주변에 상당한 손상을 초래하고 동쪽 찰스턴 통과했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0월 29일 쿠바 하바나에서 하리케인이 발생하여 하루 이틀사이에 찰스턴 항구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증거이다.

하지만 1850년 이전 하이케인 상황은 지구상에 어떤 자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1792년 하리케인의 움직임 상황은 우리가 1850년 이후 자료를 통해 추측해야만 한다.

1890년에 허리케인 이동상황을 비견할 수가 있다.

믿을 수 있는 자료는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 1850년부터 하리케인 발생상황을 토대로 만든 매년 월별 하이케인 통계에 의한 발생한 장소와 이동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위 그림은 1890년 소앤텔리스 제도로부터 발생된 허리케인의 이동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애틀랜틱 허리케인[Atlantic hurricanes] August(8월), October(10월), 발생 이동로]


위에 글쓴이가 도식한 자료그림을 보면 소앤틸리스 제도로부터 발생한 허리케인이 정확하게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하류 루이지애나(Louisiana)주로 들어가 관서(關西)지역을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관서(關西)는 본 블로그 글 "겨울폭풍(winter storm)에 의한 해일(海溢)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0"에서 이미 애팔래치아 산맥[Appalachian Mountains]을 령(嶺)이나 관(關)이라 하였고 이를 기준으로 동쪽을 영동(嶺東), 관동(關東)과 강원도(江原道)라 하였던 적이 있다.

솔직히 우리가 대관령(大關嶺)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관과 령의 합성어임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 해발고도 고작 832m이며, 고개의 총연장이 13km 정도의 대관령이 아니라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으로서 평균 높이는 1,000m 내외로 총연장 2,600km에 달하는 곳을 말하는 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글쓴이는 파미르라고도 했다.

본 블로그 글 "하노버(HANOVER)의 역사 의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82"에서 한수(漢水)가 파총산(嶓冢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면수(沔水)에 들어간다하여 이를 동한수(東漢水)라 한 사실에 비추어 파총산(嶓冢山)을 애팔래치아산맥으로 본 사실도 그러하다.

그 주위를 어찌 기(畿)라 하지 않겠는가.

고구려시대 때 아리수(阿利水)가 한강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관(關)이 그렇다면 관서병란(關西兵亂)의 정주성전투(定州城戰鬪:1811-1812)와 관서괘서사건(關西掛書事件)의 주인공 홍경래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나폴레옹이라 할 때 프랑스가 관서에 존재했다는 가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과 연계하면 바로 모스크바가 보이고 또한 프랑스가 보인다.
이러한 사실도 본 블로그 글 "토네이도(Tornado)로 본 유럽지명과 모스크바(Moscow)지명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3"과 "나폴레옹이 주는 단서(端緖) 캘리포니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9" 에서 충분하게 설명한 바가 있다.
그것뿐만아니다.
1624년 관서(關西)지방에 도원수(都元帥) 이괄이 난(李适─亂:1624)을 일으켜 춘추관(春秋館)사고가 소실되었다고 한 사건역시 이와 같은 구도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서양사에서는 현 북아메리카대륙 루이지애나땅의 원주인이 바로 프랑스라 하였다.

1803년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땅을 매입(Louisiana Purchase)한 지역의 땅은 참으로 엄청난 넓이의 규모임을 알 수가 있다.
몬타나주, 노스타코타, 미네소타, 사우스타코타, 와이오밍, 콜로라도, 네브라스카, 아이오와, 미주리, 아칸소, 캔사스, 오크라호마 그야말로 이 모든 땅을 단돈 7800만프랑($15,000,000)으로 통째 매입했다
고 하니 참으로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미국은 공주 워먹은 것이다.

만화같은 역사를 어찌 역사라 할 수 있겠는가.

일성록[日省錄]에서 1792년에 발생한 재실(災實)이라 한 것은 자연재해로서 애틀랜틱 허리케인[Atlantic hurricanes]이 틀림없고 기록된 8월의 재실상황은 관서[關西]지역으로서 충청도(忠淸道)와 평안도(平安道)가 위치한 지역이며 10월 발생한 재실상황은 허리케인 이동경로에 따라 경상도(慶尙道)와 경기(京畿)와 관동(關東)지역의 강원도(江原道)까지 역사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가 있다.

물론 프랑스 식물학자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1746-1802)와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Antoine Laurent de Jussieu:1748-1836)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처음 메밀을 발견하고 표본을 채집한 곳으로 바로 플로리다와 조지아, 알라바마, 사우스캐롤라이나라는 것과 일치하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삼한역사기록과 더불어 생물학적 판단, 그리고 기상학적 판단을 더하니 부족할 것이 없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항상이 모양이다.

위 사진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나게 하는 현재 한반도 강원도(江原道), 평창군(平昌郡), 봉평면(蓬坪面) 태기산(泰岐山:1,261m)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메밀이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했고, 이후 일본으로 전했다고 함에도 일본에서의 메밀 기원을 기원전 4000년으로 보고 있다 하니 무엇인들 열도인들 손에서 들어가면 온전한 것이 없다.

조작의 역사이니 그들 마음먹은대로 고치면 되는 역사다.

백과사전을 보면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 메밀에 대한 기록은 고려 고종(高宗) 연간에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간행된 한국 최고(最古)의 의서(醫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하였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잘 견딘다고 되어 있지만 서리에 약하다는 사실을 옛 기록에 의해 확인했다.

파종해서부터 약 2개월 후 수확할 수 있고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대지방이나 높은 산지에서도 잘 자라므로 옛날부터 구황작물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그런 사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시아용으로 굳어진 초본식물계통의 파고파이룸속임을 알 수가 있엇다.

세종 때에 펴낸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에도 구황작물로 기록되어 있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8월은 많은 땀을 흘리고 더위에 지치기 쉬워, 자칫 소화 장애나 식욕부진을 야기하기 쉬운 계절에 많은 사람들이 원기회복과 입맛을 돋우기 위해 메밀냉면을 찾는다.

물론 메밀은 성질이 서늘하여 찬 음식에 속하기 때문이라 하고 메밀과 같이 서늘한 성질을 가진 음식은 체내에서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배변을 용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동의보감]에서 전하며 메밀이 비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되게 하는 효능이 있어 1년 동안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체기가 내려간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메밀냉면은 열를 내리고 더위에 가장 알맞은 음식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종자의 열매는 메밀쌀을 만들어 밥을 지어 먹기도 하는데, 녹말작물이면서도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 B1·B2, 니코틴산 등을 함유하여 영양가와 밥맛이 좋고 메밀가루는 메밀묵이나 면(麵)을 만드는 원료가 되거나 프랑스의 거뭇거뭇한 팬케이크 크레프(Crepe)원료이기도 한 것이다.

메밀묵과 냉면은 한국인에게 없어서 안될 음식이다.

섬유소 함량이 높고 루틴(rutin)이 들어 있어서 구충제나 혈압강하제로 쓰이는데, 이 루틴을 생산할 목적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루틴에는 염증과 염증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줄여주는 요소 플라본 글리코시드(flavonoid glycoside)가 함유되어 있고 모세관 혈관을 강화시키며 특히 뇌 속의 출혈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 메밀이 많이 생산되는 강원도·함경도·평안도 지방에서는 메밀로 만든 막국수나 냉면이 향토음식으로 발달하였다고 알려지기 때문에 한반도 지형사정과 맞지 않는 자연환경임을 알 수 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어찌하겠는가.

기후환경이 뜨거운 햇빛에 의해 열기가 강하면 혈압이 상승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라 하면 바다가 있는 해안은 온대 습윤 기후(溫帶濕潤氣候)로서 건기가 거의 없고, 온화한 것이 특징이나 여름철에 강수가 다소 집중되고 추운 겨울과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에 피해를 많이 입는다는 것이 흠이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사실상 한방에서 기록된 사실이나 실제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성분에 의한 종합적인 상황에서 굳이 메밀냉면이 필요한 지역은 매우 건조하거나 열기가 가득한 기후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한 기후조건에서 한반도 평안도이어야 하고 함경도야 하며 또한 산지가 91.75%를 차지하는 강원도이어야 하는가에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북동부지역은 온통 험준한 산악지대가 있는 평안도사람들은 겨울에 메밀국수를 먹었지만 대부분의 면은 여름 별식이라고 한다.

한반도 함경도를 보면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대륙성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은 매우 춥고 비가 매우적은 곳이지만 건조지역이라고까지는 아니다.

반면 위 메밀의 최초분포지가 나타나는 북아메리카 남동부, 남부, 남서부, 서부는 기후가 한반도 사정과 매우다르다.

북아메리카대륙 남동부는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며, 벼농사나 낙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목화산업이나 기타 작물재배가 활성화 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허리케인이 처음 상륙하는 플로리다 남쪽 끝 지역은 하와이처럼 열대기후라는 특색이 존재한다.

특히 중반기 메밀 학명이 미국식물학자에 의해 많이 부여된 캘리포니아(California)주를 분포지로 하는 다수의 종(種)이 집중되는 것도 해안은 여름에 기온이 높고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으로 건조한 건기가 지속되며, 겨울에는 다소 따뜻한 우기가 된다는 것이 특징이 있는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

하반기 메밀 학명이 집중되는 남서부 텍사스(Texas)주는 여름은 무덥고 겨울에는 남쪽은 온화하지만 북쪽은 추운데 최저 평균 -1℃이며 1년 중에서 여름이 가장 길고 건조한 기후이다.

뉴멕시코(New Mexico)주도 고원지대로서 위도로는 남쪽에 속해도 더위가 심하지 않다 하였고 건조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된다.

애리조나(Arizona)주는 선인장이 많은 특징의 사막 풍광을 생각할 수 있고, 뜨거운 여름과 온화한 겨울 날씨로도 유명하지만 지역에 따라 변화가 심해서 북쪽고원에 위치한 플래그스태프(Flagstaff)같은 지역은 겨울의 최저 온도가 섭씨 -8℃까지도 내려가고 굳이어(Goodyear)는 여름 평균온도가 42'C 입라고 자료에 나타난다.

사실상 메밀의 근원학명(根源學名)이라고 하면 마디풀과(蓼科:Polygonaceae Juss)의 북아메리카대륙에만 분포지가 나타나는 특색이 있는 에리오고눔속(Eriogonum)의 종들이어야 맞다.

특히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메밀의 근원지는 'Eriogonum tomentosum Michx'가 확실하다.

이 속(屬)이 옛 평양이나 함흥에서 유행한 메밀냉면의 재료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종(種) 속(屬)에 세종지리지가 기록한 경기, 경상도, 충청도에서 토의(土宜)메밀이어야 하고 또한 일성록(日省錄)기록에 나타나는 재실(災實)실체는 물론이고 농산물 또한 이 종속의 분포지 위치와 동일하거나 같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이러한 결론에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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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주요학명자료[한부울:정리]

[1]프랑스 식물학자 겸 탐험가 앙드레 미쇼(André Michaux, also spelled: Andrew Michaud:1746-1802)

Eriogonum tomentosum Michx. Wild Buckwheat 플로리다와 조지아, 알라바마, 사우스캐롤라이나

[2]린네학회의 가치를 인식한 영국식물학자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James Edward Smith:1759-1828)

Eriogonum latifolium Sm. Seaside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parvifolium Sm. Seacliff Buckwheat 캘리포니아

[3]영국식물학자 동물학자, 토머스 너털(Thomas Nuttall:1786-1859)1808년부터1841년까지 북미에서 거주하며 탐구활동을 했다.

Eriogonum acaule Nutt. Singlestem Buckwheat 유타, 콜로라도

Eriogonum annuum Nutt. Annual Wildbuckwheat 북미 중부

Eriogonum brevicaule Nutt. + Shortstem Buckwheat 서부

Eriogonum caespitosum Nutt. Mat Buckwheat 서부

Eriogonum cernuum Nutt. Nodding Wild Buckwheat 광범위 서부

Eriogonum effusum Nutt. Spreading Buckwheat 중부

Eriogonum flavum Nutt. + Alpine Golden Buckwheat 광범위 서북부

Eriogonum glandulosum (Nutt.) Nutt. ex Benth. Acorn Buckwheat 캘리포니아, 네바다

Eriogonum heracleoides Nutt. + Wyeth's Buckwheat 서부

Eriogonum longifolium Nutt. + Longleaf Buckwheat 남부

Eriogonum microthecum Nutt. + Slender Buckwheat 서부

Eriogonum ovalifolium Nutt. + Cushion Buckwheat 광범위 서부

Eriogonum racemosum Nutt. Redroot Buckwheat 남서부

[4]북아메리카 식물상(植物相)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한 미국의 식물학자인 존 토리(John Torrey:1796-1873)

북아메리카의 식물분포 연구에 종사한 미국의 식물학자 에이서 그레이(Asa Gray:1810-1888)

Eriogonum abertianum Torr. Abert's Buckwheat 남부

Eriogonum alatum Torr. + Winged Buckwheat 남부

Eriogonum brachypodum Torr. & A. Gray Parry's Buckwheat 서부

Eriogonum dasyanthemum Torr. & A. Gray Chaparral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deflexum Torr. + Flatcrown Buckwheat 남서부

Eriogonum ericifolium Torr. & A. Gray Yavapai County Buckwheat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Eriogonum greggii Torr. & A. Gray Gregg's Buckwheat 텍사스

Eriogonum hemipterum (Torr.) S. Stokes + Chisos Mountain Buckwheat 텍사스 황토색

Eriogonum incanum Torr. & A. Gray Frosted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inflatum Torr. & Frém. Desert Trumpet 남서부

Eriogonum kingii Torr. & A. Gray Ruby Mountain Buckwheat 네바다

Eriogonum lachnogynum Torr. ex Benth. + Woollycup Buckwheat 남부

Eriogonum leptocladon Torr. & A. Gray + Sand Buckwheat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뉴멕시코

Eriogonum leptophyllum (Torr. & A. Gray) Wooton & Standl. Slenderleaf Buckwheat 로라도, 유타, 애리조나,뉴멕시코

Eriogonum lobbii Torr. & A. Gray Lobb's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lonchophyllum Torr. & A. Gray Spreading Wild Buckwheat 남부 광범위한

Eriogonum marifolium Torr. & A. Gray + Marumleaf Buckwheat 서부 캘리포니아

Eriogonum nutans Torr. & A. Gray + Dugway Buckwheat 서부캘리포니아

Eriogonum pharnaceoides Torr. + Wirestem Buckwheat 서남부

Eriogonum pusillum Torr. & A. Gray Yellowturbans 광범위한 서남부

Eriogonum reniforme Torr. & FrémKidneyleaf Buckwheat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Eriogonum tenellum Torr. + Tall Buckwheat 남부

Eriogonum thomasii Torr. Thomas' Buckwheat 남서부

Eriogonum thurberi Torr. Thurber's Buckwheat 서쪽으로 치우친 남부

Eriogonum trichopes Torr. Little Deserttrumpet 광범위한 서남부

Eriogonum truncatum Torr. & A. Gray Contra Costa Buckwheat 캘리포니아

Eriogonum umbellatum Torr. +Sulphur-flower Buckwheat 광범위한 서부

Eriogonum watsonii Torr. & A. Gray

Eriogonum wrightii Torr. ex Benth. +Bastardsage 남부 [세계삼한역사연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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