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목화(木花, Gossypium)생산국이다.

한부울 2013. 9. 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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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木花, Gossypium)에서 얻는 해답 

 

글쓴이:한부울

 

서두
개방이란 허구
한반도 목화생산과 세계목화5위 생산국과의 차이
어멀리가 말한 세계 5위 목화생산국 목화생산국 한반도 코리아

세계 목화 생산근원지의 혼란
생물학적판단에서 밝혀진 목화근원지는 아메리카
오스트리아가 어찌하여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을까?
목포는 어딜 말하는 것일까?
결어

 

 

서두

 

비로소 먼 길을 달려 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이젠 생겼다.

왜냐하면 내가 예측하고 탐구한 사실에서 확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바로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우리의 모습 '코리아'가 본래 어디에 존재한 것인지에 대한 답을 이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 :1860-1939)의 글 ‘The face of Manchuria, Korea, & Russian Turkestan(1911)’란 영어원문본에서 코리아가 목화 세계5위 생산국이라는 확실한 문장을 보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방문한 코리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6

 

바로 위 글에서 어멀리 켐프의 ‘The face of Manchuria, Korea, & Russian Turkestan(1911)’ 63 p.원본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구하고 탐구하였다.

아마도 원문을 가지고 이렇게 확인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Korea is the fifth largest cotton producing country in the world, and now that it is opening up to trade, with fresh facilities of transport by land and sea, it is likely to make rapid progress.

 

개방이란 허구

 

물론 목화(木花, Gossypium)만을 따져 생물학적 판단으로도 분명 세계삼한역사관점과 부합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함에도 더하여 이러한 생물학적 판단을 뛰어넘는 요지의 문장"코리아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목화생산국"이라는 펙트는 기존 역사판을 뒤 엎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그것이 주는 사실적인 판단은 확고한 것이며 이제 더 이상 세계삼한역사란 자체를 누구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위 문장을 보면 "코리아는 세계에서 5 번째로 큰 목화생산국이며, 지금도 육지와 바다 교통의 새로운 시설이 있어 무역 개방되면 급속한 발전을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한 사실은 이미 코리아 땅에는 생산되는 목화를 운반하거나 수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육지나 바다의 교통시설 인프라가 새롭게 구축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스코틀랜드인 어멀리켐프는 역시 '개방(開放:open)'이란 단어로 당시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목적을 부각하며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가 있다.

개방(開放:open)은 문이나 어떠한 공간 따위를 열어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하게 한다는 뜻인데 나쁘게 이야기 하면 나쁜 의도이든 어떻든 누구든지 요구하면 열어 개방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모든 것을 개방으로 인하여 피해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일체 상관하지 말라는 도둑심보와 같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술수이다.

잘 아다시피 반도사에서 기록된 것을 보면 조선말이나 한말역사는 서양세력들이 요구하는 개방이라는 단어로 점철되어 있음을 잘 안다.

개방은 일방적인 요구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의 맛을 들인 거대세력들이 무법적으로 설쳤을 때가 바로 19세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자본의 속성을 제어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던 대조선은 난감한 입장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실제로 자본에 의한 폐해가 극심하다 할 정도로 문란했던 시절이라고 보아야 맞다.

여기서 개방(開放)의 상대를 대조선에서 명확하게 구분하고 했던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개방을 최소한의 질서를 담보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도 이와같은 이유였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처럼 수많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세계화의 질서적인 무역관계를 생각하고 개방이라는 단어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당시 코리아를 방문한 모든 서양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껄이던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실제로 코리아가 금단(禁斷)의 땅이라든지, 은자(隱者)의 땅이라든지 그런 단어를 사용할 만큼 개방에 인색했는가는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국가전체 피해가 막심하다고 판단했다면 자본력을 가지고 달려드는 세력들에게 금단, 은자라는 단어에 걸맞게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도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대조선이나 코리아가 상대할 수 없는 세력이나, 국가에 심대한 해가 될 수 있는 집단이라고 판단된다면 애초 문을 걸고 막거나 못들어오게 하는 것은 방어적인 입장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다.

금단(禁斷)은 어떤 행위(行爲)를 딱 잘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은자(隱者)는 숨거나 수수께끼 같은 사람을 말하는데 그들은 활개를 치고 마구 들어가고 싶은데 코리아가 막고 때문에 코리아는 숨었다는 조롱섞인 표현을 한 것이다.

대조선이나 코리아는 대표적으로 1866년 3월과 8월 두치례에 걸쳐 들어와 끝내 남원군 도굴사건을 벌렸던 범법자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1832-1903)같은 족속들을 막고자 하였던 것은 분명한 것이라고 판단 할 수가 있다.

현재 미국이 개방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테러범이나 국제범들은 아예 들어올 수 없도록 막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소유욕에만 가득찬 세력들에게 무분별하게 개방을 요구한다고 다 들어 줄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 바로 대조선이며 코리아라고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당시 물자와 자원이 풍부한 대조선이나 코리아에서 무법적으로 물품들을 구매하여 이문을 보고 다시 되팔거나 하여 국자재정을 축내게 하며 그들의 음성적인 거대자본을 동원하여 독점권을 확보하려 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이 금단(禁斷)이니 은자(隱者)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욕구해소의 불만에 의한 볼멘소리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반도역사는 개방이라고 하여 조선을 마치 미개한 것처럼 몰아가는데 동참을 한 것이다.

세계질서를 조정하고 담당하던 대조선과 코리아 입장이었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녹녹하게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은 명확한 이야기다. 

세계목화시장을 대조선이나 코리아가 지배한 입장에 있었다면 기존 시장질서를 해치지 않고자 했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서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란 판단이 가능하다.

이러한 고뇌에 찬 조치를 두고 금단이니 은자니 하여 마치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들이 가득찬 미개국이라고 왜곡하게 하여 그들이 나서 개방조치토록 하고 가르쳐서 깨우치게 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자만심에 빠져 여론을 호도(糊塗)하고 계몽(啓蒙)이란 단어를 떠올리겠금 하는 근세기 역사과정을 이렇게 매우 잘못된 역사가 점철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스코틀랜드인 어멀리 켐프는 코리아 땅에서 거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하는 엄청난 목화생산지를 실제로 목격했다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을 보고 쓴 문장이었음에도 이렇듯 미개한 국가로 언연중 개방이라고 하고 있으니 당시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한반도 번역인들은 어멀리가 말한 '세계5위 목화생산국'을 뻔히 들여다 보면서도 어찌하여 이러한 표현이 '한반도 코리아'인줄 알고 있었다고 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서 정말 한심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번역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면 반도역사에 관계없이 용기있게 이러한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리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행동은 여태까지 하지 않았다.

 

한반도 목화생산과 세계목화5위 생산국과의 차이

 

그렇다면 당시 어멀리가 코리아를 방문한 시기를 1904년에서 1909년까지라고 볼 때 세계5위 목화생산국은 과연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현재 세계목화생산 통계와 비교하여 보지 않으면 안된다 싶어 아래 2009년 세계목화생산상황표를 게시하였다.

 

Top ten cotton producers — 2009(480-pound bales)

1

China

32.0 million bales

2

India

23.5 million bales

3

United States

12.4 million bales

4

Pakistan

10.8 million bales

5

Brazil

5.5 million bales

6

Uzbekistan

4.4 million bales

7

Australia

1.8 million bales

8

Turkey

1.7 million bales

9

Turkmenistan

1.1 million bales

10

Syria

1.0 million bales


 

위 2009년 세계목화생산국상황을 보면 베일(bale)당 단위가 480파운드 즉 217kg 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통계에서 미국은 세계3위 생산국으로서 1,240만 베일이며 세계 5위는 브라질로서 생산량이 550만 베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자료를 보면 한반도에서 1969~1970년도 목화생산량이 7만 7천베일이라고 하고 있으니 세계와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수치임을 금방 한눈에 알 수가 있다.

한반도에서 현재 목화생산은 그야말로 미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전 브리태니커가 말하는 한반도 목화 재배역사를 보면 1906년 한국에 육지면 재배를 시도한 일제는 1912년 본격적인 확장에 착수해 이후 3단계에 걸쳐 장려정책을 실시했다 하였으며 1912년 육지면재배 장려6개년계획(1912~1917)에서는 재배면적에 있어 육지면 10만 정보, 재래면 2만 정보 달성, 육지면 1억 근, 재래면 1500만 근의 수확을 목표로 했다 하였다. 계획의 중점지역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두었고, 전라도와 경상남도가 전계획면적의 85% 이상을 차지했다고 하였으며 1919년 육지면 재배장려10개년계획(1919~1928)에서는 면작 총면적을 25만 정보로 확장하여 면화 약 2억 5000만 근을 생산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재배면적은 1942년에 33만 2000 정보에 달해 목표에 근접했지만, 생산량은 육지면, 재래면을 합해 2억 1400만 근에 머물렀다라고 하고 있다.

 

위 내용을 보면 일제가 1912년부터 1917년까지 목화재배면적을 육지면과 재래면을 합해 12만 정보(町步)로 잡고 있어 이를 단위환산을 하면 1190 ㎢ 가 되는데 이것을 현재 로스앤젤레스면적 1290 km², 제주도1846 km² 인 것을 감안한다면 일제가 조성한 재배 면적이 어느정도인지 상상이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또 이곳에서 생산된 것이 육지면 1억근, 재래면 1500만 근을 수확했다고 하였으니 토탈 1억1500 근을 단위환산을 해보면 69,000톤(t)이 된다. 69,000 톤을 다시 베일로 환산하면 베일당 무게가 217kg 이니 이것으로 나누면 정확하게 317,972 베일이 된다.

현재 브라질이 세계5위목화생산국이라고 하였으니 생산량은 550만 베일이라면 1917년도 한반도 목화생산량이 위 환산된 수치가 약 32만 베일이 되어 브라질 생산량 550만 베일의 17배 정도로 보잘 것 없이 작은 규모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생산규모를 가지고 세계목화생산 5위국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코메디같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 :1860-1939)의 글을 확인하면 1911년에 펴낸 책에서 분명 조선의 면화생산능력이 세계에서 5번째라 하였다.

그렇다면 이미 그 이전부터 목화생산이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였다는 사실을 누구든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일제는 1912년 육지면재배 장려6개년계획(1912~1917)하에 재배면적을 육지면 12만 정보에 69,000톤(t), 32만베일만 수확했다 하여 그것을 코리아의 목화생산정책이라고 자랑하였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이 정책은 순전히 한반도에 국한한 것이지 코리아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코리아가 한반도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반도 역사가 도대체 무엇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지 우리는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치적으로 따져보아도 한반도 코리아가 될 수가 없다는 이치는 명명백백해졌다.

위 사전에서 말한 한반도 목화역사를 보면 어멀리 켐프가 코리아 방문할 때 한반도에서는 면화 즉 목화생산은 걸음마 단계였다는 것을 규모면에서도 금방 알 수가 있어 어멀리 켐프는 한반도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멀리 켐프가 분명하게 그의 저서에서 세계 5번째 목화생산국이라는 실체를 분명하게 보았다고 하였으니 그녀가 간곳은 한반도가 아닌 코리아에 방문한 것이 된다.

 

어멀리가 말한 세계 5위 목화생산국 한반도 코리아

 

한반도에 목화재배지로 남아 있다고 하는 곳이 바로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 1904년부터 면작시험장(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목포지장)을 설립했다고 하는 전라도(全羅道) 목포(木浦)이다.

그런데 현 한반도 목포시에 어디에도 그런 목화재배 대단지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현 목포시청 인근 대의동에 재배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한반도 목화 역사라고 하기에는 매우 부족하고 믿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이것은 목포(木浦)가 한반도 목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쓰던 광목(廣木, cotton cloth)은 흡습성(吸濕性)과 보온성이 풍부하고 튼튼하며, 비교적 값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반면 본바탕(生地)의 빛깔이 누런 데다 광택이 없고, 구겨지기 쉬우며, 세탁 등의 물처리에 따라 수축되기 쉬운 결점이 있다 하였다. 때문에 세탁하기 무척 곤란 했으며 흰옷 즉 백의(白衣)착용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고 하듯이 순 백의를 고집한 조선사람들에게 비판이 많이 따랐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세탁하고 난 후 수축할 염려가 있다하여 빨래를 널 때 늘렸뜨려 건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건조 후 수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기거나 밟아주거나 다딤이질을 하였으며 구김질이 없도록 다리미질을 해야 하는 번거러움등이 있었다는 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이 저렴하니까 일반 백성들은 일상적인 생활 옷을 만들거나 배개잇 이불, 요 홑청 등 많이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광목을 기계가 없을 때 목화에서 실을 뽑아서, 경사실에 풀(호부제)을 발라 끊어지지 않도록 야물게 한다음에 물레질로 밑실, 올실의 장력(張力, tension)를 당겨주고, 밀어주고 수없는 반복으로 베(생지)를 짰으며 베를 가공할수 있는 전문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큰 가마솥에 푹 삶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다음에 양재물(가성소다:NaOH)를 넣어서 베(원단)의 형태를 부드럽게 안정시켜 사용할수 있도록 마무리를 하였던 손이 많이 간 광목 천이라 하였다. 기억으로는 이 광목천으로 옛 어른들께서 평상시 착용하는 바지와 치마저고리를 만들어 입었고 까칠까칠하지만 아기 기저귀용으로 많이 사용하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사용되었다면 많은 경작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이런 베를 짜 우리민족만 사용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사서 어디에도 조선에서 생산된 목화를 수출했다고 하는 기록은 보이질 않는다.

 

한반도에 현재 목화사정을 살펴보더라도 형편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는데 2008 년 8월 13일 광주드림 채정희 기자의 기사를 보면 목화와 함께 30년을 보냈다고 하는 목포시험장 배상목(64) 전 연구원과 인터뷰한 내용이 아래와 같다.

 

목포시험장이 갖고 있는 목화 품종만 170여 종이라 하는데 하고 물었다.

그는 답할 길“이중 재래종은 38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외래종이고, 이 중 80%는 미국종이죠.”
목화 솜은 비슷하지만, 재래종과 외래종은 염색체부터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두 종간에 교배가 안되는 이유지요.”
재래종은 섬유장이 짧고, 강하다. 연곡수도 많다. 스프링처럼 뭉쳐 있다는 얘기인데 

“이불솜에 제격이구요.”
반면 섬유장이 긴 외래종이 방직공장의 주원료이고, 이 종 최고품질은 단연 이집트면이라고 했다.
목포시험장에서 최후로 개발한 품종은 ‘목포 8호’. 90년대 중반이었고, 이후론 신품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하였고
“한때 산업용으로 활용된 목화가 전성기를 지나고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한계’와 무관치 않으리라”는 것이 배씨의 추론이라고 정리 된다.

 

위 배상목씨의 인터뷰 내용중에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이중 재래종은 38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외래종이고, 이 중 80%는 미국종"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시 조선목화의 품종이 미국의 육지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실제 재래종이 많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꺼꾸로 극소수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재래종이라고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환경은 미국종이 대세로서 미국종이 재래종이 될 수밖에 없는 논리가 된다.

물론 아시아면과 육지면이 질적인 면에서 현격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재래종이 이 정도의 비율밖에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재래종이라는 의미를 사실상 부여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면화 즉 목화는 전부 미국종이라는 사실을 이 인터뷰내용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코리아가 아닌 곳에 코리아 목화의 재래종은 필연코 아메리카종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한반도 목화사정이 1978년이후가 그렇다는데 그 이전 상황은 보지 않나도 상황은 이보다도 더 빈약 했을 것이란 사실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 목포에서 목화재배단지가 있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목포는 한반도 목포가 아니면 어딜 말하는 것일까?

결정적인 것은 한반도에 목화가 재배환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두산백과에서 말하고 있는데 '한국과 같이 온도가 낮고 성장기간이 짧은 곳에서는, 영양생장에 많은 시일을 소비하게 되므로 성숙이 늦어지기 때문에 솜이 열리기 전에 서리가 내리면, 섬유생산이 감소되고 탄력이 없는 불량면이 많아진다'하는 것을 보더라도 한반도 기후가 얼마나 목화생산에 열악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세계 목화 5위 생산국이라는 것은 만화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세계목화 생산근원지의 혼란 

 

목화 면직물의 역사를 보면 BC 2000년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인도의 인더스강(江) 유역의 신드, 모헨조다로(Mohenjo daro)에서 발생하여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퍼졌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Alexandros the Great:BC356-BC323.6,재위BC336-BC323)에 의해 이집트 등에 전해졌으며 그 후 남부유럽 스페인지방까지도 전파되었다고 했다.

특히 남아메리카의 잉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사이에도 사용되어 콜럼버스 도입설이 무색해지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전 부터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 목화근원지라고 알려진 아시아 인도에 재배된 시기와 같은 시기에 아메리카대륙에서도 이 목화를 생산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유럽쪽의 면화역사를 보면 그리스의 사가(史家) 역사의아버지(The Father of History)라고 하는 헤로도토스((Herodotos, BC484-BC425)는 양털보다도 좋은 털을 야생의 나무열매에서 얻어 의복을 만든다고《역사The Histories》에서 목화(木花)에 대해 기록하였다 하였고 목화가 지중해의 동방지역과 중근동에서 재배된 것은 BC 20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재배하여 의류 등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중대한 사실이라 하겠다.

여기서 다시금 살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중해 동방지역이라는 위치지명이다.

물론 현재까지 이곳을 동방(東方)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양, 동방(東方)이 아메리카대륙이란 사실과 매우 배치되는 이야기로 지중해 역시 아메리카대륙에서 찾을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

 

서양인들이 주장하는 목화근원지를 아시아 인도라고 하는데 이곳의 목화를 아세아목화 또는 인도목화라고 하여 기원전 수세기부터 목화공업을 유럽에 알렸다 하였으며 파키스탄 남부, 수도 카라치(Karachi)의 북북동 300km에 있는 ‘사자(死者)의 언덕’이라는 뜻의 모헨조다로(Mohenjo daro)라고하는 인더스문명 최대의 도시유적에서는 BC 2000년경의 지층에서 면사가 발굴되었다고 하고 있다.

마침내 세포이반란(Sepoy Mutiny:1857-1858)으로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여기서 생산되는 아시아목화를 얻어다가 파나마에서 재배하게 하고 이 목화를 다시 미국에 전했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상식이 저변에 견고하게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를 연장하여 볼 때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은  남아메리카대륙 서부의 페루에서는 아시아 인도의 아세아면을 BC1500년경부터 이용하였고 인도와 별도로 직물을 만들었으며 그 후 동남아시아, 아라비아, 아프리카 및 남부유럽으로 아시아면, 목화가 본격적으로 퍼지게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페루에서 목화가 이동된 이상한 경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페루에서 동남아시아로 중동에서 아프리카 남부유럽으로 그럴사하게 이동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시아 인도에서 페루로 넘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태평양은 근세기까지 횡단이 도저히 불가능한 대해였다고 믿는다.

아시아 인도에서 지형적으로 또는 위치적으로 동남아시아로 넘어가는 것이라면 자연스러운 경로가 될 수 있어 이해가 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근세기까지 함부로 왕래를 할 수 없었던 거대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페루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하였다는 사실은 아시아권에 있어 가까운 인도가 전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으로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경로라는 사실이다.

인도, 페루, 파나마, 미국 이렇게 볼 때 처음부터 아시아는 대상에서 빠졌을 것이라면 아시아가 아닌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와 중앙아메리카에 있었을 법한 인도에서 목화가 재배되어 남쪽으론 페루로 넘어갔을 것이고 북쪽으론 파나마를 거쳐 북아메리카 본토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렇다면 1740년경 북아메리카대륙 버지니아(Virginia)에서 처음 목화가 재배되었다는 시기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이미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 폭넓은 지역에서 곳곳에 재배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뒤받침하는 것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남부가 목화 주요 생산지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근대사가 아시아인도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전제하에 이런 부자연스러운 이동로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지형상 이치에 어긋나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만약 인도가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면 이동로의 그림은 순리적이며 매우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생물학적 판단에서도 이러한 이동경로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목화 근원지 자체도 명확하게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같은 혼란을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솔직히 아시아면과 육지면을 구분한다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 학명으로 구분한 것일뿐 목화란 식물이 처음 나올 땐 이것이 아시아면인지 육지면인지 특별하게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과거 BC2000년 전의 원시 목화가 아시아면인지 육지면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에서도 현재 학명으로 구분이 된다고 확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본 블로그 글에서 주장하기를 아시아란 아(亞)는 근원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온 단어이고 지칭이라 했다.

그런데 근대사가 비로소 생성되던 20세기때 역사판짜기하여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아(亞)가 아시아로 둔갑하여 버렸다는 사실과 1882년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신중국이 설립되면서부터 아시아대륙으로 명명되어 굳혀진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물학적판단에서 밝혀진 목화근원지는 아메리카

 

이러한 총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생산된 목화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에서 목화가 생산지역 즉 토산이라고 하는 지역이 아래와 같이 전라도 및 충청도만을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조건이 아열대나 열대지역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아래 기록만 따진다면 일제시대때 경상도, 운운하는 것도 역사사실과 다른 것이 된다.

 

세종지리지 목화토의(土宜) 자생 분포지

전라도 / 나주목

전라도 / 전주부

전라도 / 남원 도호부

全羅道 / 長興都護府

충청도 / 홍주목 / 보령현

충청도 / 공주목 / 임천군

 

그렇다면 한반도는 세종지리지에 기록된 목화 토의(土宜)의 생산지역이나 재배지역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역사찾기 하면서 느낀 것은 자연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한 원칙을 따른다면 전라도와 충청도의 기후가 아열대나 열대기후이기 때문에 목화가 대량으로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그렇게 생산된 목화가 세계5위생산국에 달할 정도로 곳곳에 재배가 가능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가 상식선에 이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말한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면화생산국이다’란 사실에서 한반도가 아니라면 과연 어딜 말하는 것인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에멀리 켐프가 본 코리아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목화 주요종의 근원지를 밝혀야 하는데 주요 목화종으로서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명명한 4가지 종을 발췌 그 4가지 종의 각각 근원지를 찾기 위해 DNA 분석을 바탕으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와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가 제공한 분포지도를 동시에 살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1.인도면(Gossypium arboreum L.)
2.해도면(海島綿 Gossypium barbadense L)
3.황면(Gossypium herbaceum L).
4.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 이다.

 

1.인도면(Gossypium arboreum L.) Tree cotton, 

[분포지]  

India (Asia)
Madagascar (Africa & Madagascar)
Sri Lanka (Asia)
China (Asia)

 

2.해도면(海島綿 Gossypium barbadense L) CREOLE COTTON
Gossypium vitifolium; Gossypium peruvianum

科學
界: 植物界 Plantae
科: 锦葵科 Malvaceae
屬: 棉属 Gossypium
種: 海岛棉 G. barbadense

[분포지]

Belize (Mesoamerica)

Bolivia (South America)

Brazil (South America)

Chile (South America)

Ecuador (South America)

French Guiana (South America)

Gabon (Africa & Madagascar)

Guatemala (Mesoamerica)

Guyana (South America)

Honduras (Mesoamerica)

India (Asia)

Mexico (Mesoamerica)

Venezuela (South America)

United States (North America)

Panama (Mesoamerica)

Peru (South America)

Madagascar (Africa & Madagascar)

China (Asia)

Suriname (South America)

Colombia (South America)

 

3.황면(Gossypium herbaceum L). LEVANT COTTON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科: 锦葵科 Malvaceae
屬: 棉属 Gossypium
種: 草棉 G. herbaceum

[분포지]

Brazil (South America)

Gabon (Africa & Madagascar)

India (Asia)

Madagascar (Africa & Madagascar)

United States (North America)

China (Asia)

 

4.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 UPLAND COTTON
Gossypium religiosum; Gossypium latifolium; Gossypium punctatum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科: 锦葵科 Malvaceae
屬: 棉属 Gossypium
種: 陆地棉 G. hirsutum 

[분포지]

Belize (Mesoamerica)

Brazil (South America)

Canada (North America)

Costa Rica (Mesoamerica)

Ecuador (South America)

French Guiana (South America)

Gabon (Africa & Madagascar)

Guyana (South America)

Honduras (Mesoamerica)

Mexico (Mesoamerica)

Madagascar (Africa & Madagascar)

Panama (Mesoamerica)

Paraguay (South America)

Suriname (South America)

United States (North America)

Venezuela (South America)

Caribbean (Caribbean)

 

위 4 가지 종(種:species)의 분포지를 살펴보았는데 아래와 같이 정리 할 수가 있다.

 

1.인도면(印度綿:Gossypium arboreum L.)은 목화나무(Tree cotton)라고도 하는데 특히 구세계 열대와 아열대지역에서 자라는 종으로서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인더스 계곡의 하랍파(Harappa)문명에서 재배하여 목화섬유가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사실을 자료에서 전하고 있고 현재 분포지로서는 India (Asia), Madagascar(Africa), Sri Lanka(Asia), China(Asia)로 전부 아시아 권역을 지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2.해도면(海島綿 Gossypium barbadense L)는 프랑스이민계자손 목화(CREOLE COTTON)라는 별칭처럼 크리올사람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는데 크리올사람은 신대륙발견 후 아메리카대륙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과 프랑스인의 자손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엿으며 분포지로서는 중앙아메리카의 벨리즈, 과테말라(Guatemala), 멕시코, 온두라스, 파나마, 남아메리카로는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프랑스 기아나(French Guiana), 기아나, 베네주엘라, 페루, 수리남, 콜롬비아 등이며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신중국, 그리고 미국을 표시하고 있는데 거의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을 근거로 하고 잇음을 알 수가 있다.

3.황면(黃棉:Gossypium herbaceum L) 또는 다면(茶棉)이라고 하는데 누런 솜꽃을 피워내는 특이한 품종이라고 알려진 것으로서 조선 평안도에서는 재배되었으며 이것을 초명(草棉) 또는 인도면(印度棉)이라고도 하니 인도면과 중복되는 종으로 볼 수 있으며 특이하게 별칭으로 레반트 목화(LEVANT COTTON)라 한 것은 지중해 동부지방 여러나라를 뜻하는 '레반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과 역사적으로 볼 때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과 아라비아의 반 건조지역을 원산지로 볼 수 있다 하고 아마 처음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또는 아라비아 남부에서 재배하다가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터키, 북아프리카, 스페인, 우크라이나, 투르키스탄에 전해지며 마지막으로 중국에 전파되었는 것으로서 설명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기원후 약 600년에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것의 분포지로서는 아시아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가봉, 마다가스카르, 남아메리카는 브라질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미국을 지정하고 있는데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Mexico Baja California, Texas Arcola, Louisiana unspecified, Missouri, Alabama Chambers County, South Carolina, North Carolina, Connecticut Fairfield County, Puerto Rico, GUADELOUPE 이다.

4.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은 특히 북아메리카에서 많이 재배하므로 미국면이라고도 하며 별칭으로 고지대 목화(UPLAND COTTON)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종은 미국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수종으로서 생산의 거의 95%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이 종이 모든 생산에서 90%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멕시코  테후아칸계곡(Tehuacan Valley)에서 고고학적 증거가 5,000년전 이미 재배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모든 자료에서 거의 중남미에서 이 종이 18세기 미국으로 전해져 대량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의 분포지로서는 중앙아메리카 벨리즈,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이고 남아메리카로는 브라질, 에콰도르, 프랑스 기아나, 기아나, 파라과이, 수리남, 베네주엘라 이며 카리브지역과 마다가스카르 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미국은 서부의 캘리포니아, 남부의 텍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 동부의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매릴랜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그리고 중부의 미조리와 인디애나주를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반도에서는 목포를 이 육지면(陸地綿) 발상지라고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생각한다.

위의 4가지 목화 주요종의 분포지도를 살펴보더라도 아시아면이라고 하는 인도면을 포함하여 전 종이 아시아대륙을 빽빽하게 밀집되어 나타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아시아 인도를 근원지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 DNA 분석에 의한 근원지가 오히려 아메리카대륙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도 코리아 품종의 재래종이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을 이 육지면은 바로 우리가 널리 재배하였던 품종이 틀림없다고 판단되며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그녀의 저서 원본‘The face of Manchuria, Korea, & Russian Turkestan(1911)’란 글 63 p.에서 밝혔듯이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 면화생산국이다’라고 단언한 사실은 오직 육지면의 근원지에서 만이 코리아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2008년에 있었던 목포시험장 배상목(64)전 연구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목화 품종만 170여 종에서 재래종은 38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육지면이며 이 중 80%는 미국종이라고 했던 사실이 분명하게 있고 일제가 1912년부터 1917년까지 목화를 재배함에 있어 육지면 1억근, 재래면 1500만 근을 수확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비율적으로 따져보아도 육지면이 거의 80%~87% 를 차지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을 뒤받침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북아메리카 목화생산 사정은 어땠을까 한번 살펴보자.

그들의 기록을 들쳐보면 북아메리카 즉 미국에서의 목화생산은 1897-1898년에는 거의 300만 베일에 달했다고 하였다.

서두에서 이야기 한 2009년 세계목화생산국상황에서 세계 5위가 브라질로 나오지만 생산량이 550만 베일 수준과 거의 규모면에서 수치상 근사치에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멀리가 본 당시"코리아(COREA)" 목화생산은 거의 300만 베일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숫자는 어멀리 켐프가 코리아를 방문한 시기와 거의 10년 안쪽에서 일치한다.

만약 코리아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미국은 지금도 세계 3위에 목화생산국이지만 어멀리 말처럼 당시 코리아는 실제로 어마어마한 목화 생산국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어찌하여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을까?

 

적어도 목화 세계5대 생산국이라면 한반도 곳곳에 목화재배단지가 조성되거나 자연 대단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도 목포(木浦)뿐만 아니라 기후적으로 충분하다면 한반도 남부 곳곳에 목화재배 대단지를 목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그럴 자연환경도 될 수 없으며 그렇지가 않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저술한 서유구(徐有榘:1764-1845)가 1833년 전라관찰사 재직 중에 쓴 업무일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는데 “남원(南原)과 광주(光州), 옥과(玉果)는 전라도에서도 목화재배가 가장 성하다고 했으며 이들 고을엔 산이고 들이고 목화밭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하였던 것을 보아도 지금과는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했던 목화사정이 현재는 깡말라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갑자기 전멸해버렸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목화는 기본적으로 기후가 일단 열대와 아열대가 되어야 자랄 수 있는 작물이라고 했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붓통에 몰래 가지고 들어 온 목화씨가 인도 아시아면이라고 하였다.

반도사관으로 고려가 한반도에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시아면은 또 인도면(Gossypium arboreum L.)이라고 분류하는데 아시아와 인도란 지명이 겹쳐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지역적인 것을 근세사는 너무나도 강조한다는 이상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상식처럼 각인된 사실이다.

육지면(陸地綿:Gossypium hirsutum L)은 아메리카를 근원으로 하는데 이는 아시아면과 인도면과 적잖게 충돌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억지로 분류한다는 것은 근세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매우 힘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육지면이 아시아면 또는 인도면으로 분류될 수 있는 역사적인 혼란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인도면이라고 하면 원산지가 인도(India)와 파키스탄(Pakistan)이 되고 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이라고 하면 native to Central America, 플로리다 and possibly 멕시코(Mexico)지역이 된다는 설명이니 틀에 맞춰 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반도로 들어 온 목화가 아시아면과 인도면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반도사관에 기인한 것이다.

아시아면이 생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확하다는 이야기다.

문익점이 원나라로부터 가지고 들어왔다고 하는 목화씨는 바로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문제에서 인도가 아시아대륙이 아니고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면 순조롭게 자연스럽게 풀려질 이야기 들이다.

이제까지는 아시아면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시아 인도면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1881년 이후 1882년부터 생성된 신중국에 의한 대륙사관으로 보았던 것이고 세계삼한역사관으로 볼 때는 바로 아시아면을 아메리카면으로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중앙아메리카, 플로리다, 멕시코가 실제로 아시아면일 수 있고 인도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시아면과 육지면이 뒤바뀔 수 있다는 가정은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누런 솜꽃이라고 하여 황면(黃棉:Gossypium herbaceum L)를 초면(草棉) 또는 인도면(印度棉)이라고 한다는 사실도 위 네가지 주요 종의 꽃을 보면 거의가 같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조선역사에서 실제로 목포에서 재배하고 상선에 실어나르던 목화는 아메리카 미국에서 생산되던 육지면일 가능성이 매우높다.

아시아면이 결국 기후적으로 아열대, 열대지역인 중앙아메리카 원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문익점은 과거 인도 또는 천축이라고 여겨지는 아메리카 대륙 중앙이나 더 남쪽에 가서 목화씨를 얻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가 고려(高麗)인이지만 인도(印度)인이고 천축(天竺)인이며 가우리(Caule)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삼한(三韓)인이기 때문이다.

원나라는 원고려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지만 어쩌면 허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몰래 붓통에 넣어 가지고 들어 온 것이라고 기록한 것에서 원나라가 조선 북쪽에 있었는가 아니면 남쪽에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조건 원나라에서 가지고 들어왔다고만 하고 있으니 이러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화가 아열대와 열대지방의 작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밝혔듯이 중원이 중앙아메리카이고 강남이 그곳에 있으며 후금도 그곳에 있엇기 때문에 청나라고 하는 실체도 그곳에 있어야 맞다.

모두 중국이라고 한 사실도 중앙을 뜻한다면 근세기 부터 이곳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려가 중국이라는 이론도 없지 않다.

여기서 중국은 모든 나라들의 사이 즉 정 중앙에 존재한다고 하여 중국이라 했던 것인가 아니면 명실공히 모든 나라의 중심세력이 되어 곧 천자가 있어 중국이라고 했던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

서양세력들은 위치적으로 중앙(中央)에 있는 것을 중국(가운데 있는 나라)이라고 했을 가능성과 그냥 발음도 중국(中國)이라고 하지 못하고 무엇을 나누거나, 가른다는 지나(支那)를 시나(sina, cina) 또는 차이나(china)라고 영어로 호칭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기때문에 의미를 크게 둘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후금, 절강, 지나 등 중앙아메리카대륙에 근거하던 정치세력들이 지나(支那)라는 이름을 안고 동아시아대륙으로 넘어 들어간 것이라고 풀이가 가능하다.

이것은 근세기 역사학자들의 편의 따라 또는 그들 입장에서 유리하게 마음대로 섞어 사용하던 호칭이라고 생각된다 하겠다.

원나라가 가공의 나라가 아니면 목화가 재배하는 곳도 원나라가 지배했어야 맞지만 이상하게도 원나라는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하면서 대륙남부를 지배하지 못했다고 동아시아역사와 반도역사가 공히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찌 이상하지 않는가?

문제는 남아시아에 원나라의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받아왔다고 하였는데 정작 원나라는 남부에 있지 않았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조선이 아메리카에 있었는데 어째서 원나라가 아메리카에 없다는 것인가?

이와같은 사실은 근세기 역사재편과정에서 서세와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틀이 부숴진 것일뿐 실체는 문익점이 목화를 가져 온 곳이 원나라였다면 원나라는 북부보다 남부에 존재하는 실체란 말이다.

설령 그들이 만든 역사에서 원나라가 있어 그 원나라가 대륙전체를 지배하였다고 하였지만 정작 목화 원산지 인도, 파키스탄 , 동남아시아는 원나라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이상한 역사라는 것이다.

물론 '신풍의 땅(神風:kamikaze)'이라고 하여 일본열도 역시 제외시키고 있는 것도 또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다시말해 자연과학적으로 따져 보아도 원나라는 가공된 역사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도대체 문익점은 어디서 목화씨를 가지고 왔을까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고민은 하지 않겠다.

문익점이 가지고 들어 온 목화재배지역이 바로 고려영역이고 그곳을 원고려라 하며 중앙아메리카에 있어야 한다.

그 영역이 고려말 조선의 땅으로 처리 되었을 뿐이며 세종지리지와 다르게 신증동국여지승람이란 기록속에 지리지가 새롭게 재편된 사실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쨌서 같은 나라에서 지리서가 72년사이에 변동되어 새로 편찬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갑자기 변한 영역적인 문제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려는 북아메리카대륙서부와 아시아대륙은 물론이고 유럽지역을 포괄한 대국이었고 조선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를 중심으로 중부, 남부를 지배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현 아시아 인도대륙은 문익점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북아메리카대륙 남부나, 플로리다 또는 멕시코와 연결된다는 점을 파악하기에 이른 것은 실제로 놀라운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던 근세기 역사판짜기 할 때 일본정치세력이 열도에 꿰차고 들어 앉으면서 마치 원나라가 실존한 것처럼 만들었지만 그러나 가공의 나라가 필요하여 만든 것일 뿐이다.

고려와 조선을 한반도에 들어 앉혀야 했으니까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일본의 원(元)씨 정권을 마치 나라인 것처럼 내세워 그들이 근본이 있었음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지만 원씨는 서양인들의 이름으로 근세기에 생성된 신흥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길국(英吉利國), 홍모번(紅毛番)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원나라라 함은 일본에서 따온 것이라고 추리 할 수 있고 이것이 영국과 대입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근세기에는 그 지역이 멕시코로 변하였음도 간과할 수가 없다.

어쩌면 1846년과 1848년 사이에 있었던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으로 둔갑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곳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가 유럽으로 쫓겨들어가지 전에 20세기전까지 있었던 곳이며 그곳을 오국(奧國)이라고 명명한 것으로서 국역승정원일기 고종 30년 계사(1893) 기록에 보면 임금과 통역을 맡아 하던 벼슬아치 전어관(傳語官)을 통하여 영사와 대화하는 내용인데 그 대화를 요약하면 이 오국(奧國)은 오스트리아(奧地利)라하고 인도(印度)와 터키(土耳) 두 나라 사이에 있다 했으며 연전에 조선(朝鮮)과 조약을 맺은 나라라고 소개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어느 나라와 혼인하였소?”
하니, 영사가 아뢰기를,
“오국(奧國)과 혼인하였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전어관에게 명하고 이르기를,
“오국은 자주 국가이오?”
하니, 영사가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상이 전어관에게 명하고 이르기를,
“오국은 어느 곳에 있소?”
하니, 영사가 아뢰기를,
“인도(印度)와 터키(土耳) 두 나라 사이에 있는데, 연전에 조선(朝鮮)과 조약을 맺은 나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전어관에게 명하고 이르기를,
“그렇다면 이 나라가 바로 오스트리아(奧地利)라는 나라이오?”
하니, 영사가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어찌하여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다고 하였겠는가?

1864년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리안(Maximiliano I, 1832-1867)이 나폴레옹 3세의 추대로 멕시코 황제로 즉위했다는 사실이 있다.

바로 중앙아메리카 멕시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양쪽에는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터키"라고 분리하여 불리었던 것은 1923년 부터란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스만제국이라고 알려진 고려(高麗)를 터키라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결국 조선 남부는 아열대, 혹은 열대지방이며 그곳을 몽골 후신이라 하여 원나라라고 칭하여 역사를 조작하여 만들었으며 이 원나라 위치에 오국 즉 오스트리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공교롭게도 텍시스주(Texas) 휴스톤(Houston)을 옛날 이름이 몽고성(蒙古城)이라고 한 사실도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휴스턴(Houston)은 몽고성(蒙古城)이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5

 

여러번 언급한 사실지만 반도사를 잉태하게 한 모든 사서에 등장하는 일본은 세계삼한역사 변두리에 있었던 모든 왜(倭)를 통칭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상황에 맞게 조정하거나 적절하게 배분하였던 국명이라는 것을 이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하나하나 그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일본이란 명칭은 삼한에겐 적대적 상징으로 역사에서 마치 근세사가 등장 할 수 있게 자리를 제공하는 포괄적인 국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뚜렷한 역사가 없이 그저 조선 변두리에서 지저분하게 움직였던 역사말고는 역사랄 것이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고 더군다나 조선(朝鮮)의 서남(西南)쪽에 위치하였다는 사실은 현재 지형상 일본열도를 도저히 언급할 수 없는 결정적인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가공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세계삼한역사는 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게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전제한 것이기도 하다.

 

목포는 어딜 말하는 것일까?

 

목포면작시험장(木浦棉作試驗場)은 한반도에 정말 있었을까?

답은 단호하게'아니다'이다.

코리아가 세계5위 목화생산국이 되려면 그냥되는 것이 아닐터 수많은 종자를 분석하거나 연구하여 효율적인 재배가 가능하도록 노력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한 사실은 당시 코리아 정부정책속에서 마련된 것이 바로 목포면작시험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당시만 하여도 거대한 조직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목포면작시험장은 육지면의 본산인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하고 그것도 목화재배지로 집산지인 남부에 있어야 하며 한 발 더 나아가면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서 유명한 목화 항구지가 되어야 맞는 것이다.

세종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전라도 목포(木浦)역시 한반도가 아니라면 재론의 여지가 없이 그곳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있어야 맞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에 금강진(錦江津)이 일명(一名) 금천(錦川), 목포(木浦)이며, 혹은 남포(南浦)라고 하였다. 나주(羅州)는 전라도에서 가장 커서 땅이 넓고 백성과 물자가 번성하였으며 땅이 또한 바닷가라 벼가 많이 나고 물산이 풍성하니, 이에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며 사방의 상인들이 몰려든다 한 곳이다.

 

목포(木浦)는 물어보나 마나 분명 목화(木花)가 유명하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고 목(木)자를 땄을 것이고 동시에 물가 포(浦)를 따 붙인 지명이라고 할 때 목화가 생산이 많이 되는 지역인 북아메리카대륙 텍사스주(State of Texas)의 휴스턴(Houston)을 생각 할 수 있다.

재배생산면에서 텍사스주는 목화가 농산물의 생산 1위를 차지 한다고 하며 특히 멕시코만과 연결되어 있는'바다 없는 항구'라 하고 미국 제1의 면화수출항을 자랑하는 휴스턴(Houston)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외 조지아주의 사바나(Savannah)역시 유명한 목화무역항구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으며 루이지애나주의 슈리브포트(Shreveport)와 앨라배마 주의 모빌(Mobile)등을 의심해 볼 수가 있겠다.

 

결어

 

세종지리지를 보면 목화 토의(土宜)지역으로서 전라도가 주를 이루며 나주, 전주, 남원도호부, 장흥 도호부. 충청도 홍주목, 공주목에 집중적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나주(羅州)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나주(羅州)를 텍사스 주라고 생각한다.

적동(赤銅)이 생산되는 애리조나(Arizona)와 함께 신라(新羅)땅으로보기 때문이다.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그의 저서 ‘The face of Manchuria, Korea, & Russian Turkestan(1911)’에서 이야기 한 사실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면화생산국이다"란 펙트는 우리에게 위대한 역사에 대한 긍지와 자랑스러움 이외에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엄청난 역사 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틀림없다.

이것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코리아'라고 알고 있는 한반도는 언제쯤인가 서세의 손에 의해 이동된 곳으로서 본래의 어멀리(Emily Georgiana Kemp)가 본 '코리아'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목화가 세종지리지에서 유독 전라도와 충청도에만 집중되어 토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 지방이 바로 아열대, 또는 열대지역이라는 것을 확인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미 세계삼한역사관으로 볼 때 인도나 천축이란 지명으로 불리었던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이거나, 중앙아메리카, 또는 남아메리카대륙 북부를 잇는 폭 넓은 지역임을 본 블로그에서 여러차례 밝혔던 바로서 그것과 연계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때문에 아시아면이라고 하는 인도면(印度綿)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때문에 목화의 근원지역시 결코 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제부터 목화를 아시아가 근원지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은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 현재 목화가 주는 가치는 세계5위 생산국으로서의 코리아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고고하게 존했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삼한역사로서의 충분한 기본으로서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는 영광스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우리의 영혼까지 깊숙하게 파고들어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라고 믿어진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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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도면(Gossypium arboreum L.)

 


2.해도면(海島綿 Gossypium barbadense L)

 


3.황면(Gossypium herbaceum L)

 


4.육지면(陸地綿 Gossypium hirsutum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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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기유(日東記游) 제1권

조선 말기 고종(高宗) 13년(1876)에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이 체결되고 한일(韓日) 교섭이 시작된 후, 그 당시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갔다 온 김기수(金綺秀)의 일본에 대한 견문록

상략(商略) 6칙

使以修信名,修信者,講舊修好,敦申信義,辭命以導之,威儀以濟之,不激不隨,莊愼自持,苟不辱君命。庶幾其可耳。

사신 이름을 수신사라 하였으니, ‘수신(修信)’이란 구호(舊好)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며, 사명(辭命)으로써 인도하고 위의로써 이루어, 과격하지도 맹종하지도 않으며, 태도를 장중근신(莊重謹愼)케 하여, 임금의 명령을 욕되지 않게 해야 거의 적당하게 될 것이다.

或云倭,則洋之茅也,鬼而倀也,賊而諜也,嶺湖之吉貝,關海之繭絲,湖西南之秔稻苧葈,關東北之金銀銅鐵,虎之皮,熊之膽,鹿角之茸,皆彼之所大欲也,其言甘如飴,其貌欣欣如曩日之識,而其情則叵測也,

어떤 이가 말하기를,

왜인은 서양의 앞잡이[前茅척후(대)]이니, 귀신이면서 창귀(倀鬼)이고, 적(賊)이면서 간첩인 것입니다. 영남ㆍ호남의 길패(吉貝 목화(木花))와 관동(關東)ㆍ해서(海西)의 견사(繭絲), 호서(湖西)ㆍ호남의 갱도(秔稻 메벼)와 모시[苧枲], 관동(關東)ㆍ관북(關北)의 금ㆍ은ㆍ동ㆍ철과 호피(虎皮)ㆍ웅담(熊膽)ㆍ녹용은 모두 저들이 크게 욕심내는 것입니다. 그 말은 엿처럼 달콤하고 용모는 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기쁜 기색이지만, 그 실정은 헤아릴 수 없으니 그대는 저들을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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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0년 을묘(1555,가정 34) 4월20일 (갑신)

경상도 감사에게 풍수해가 심한 각 고을을 각별히 구황하게 하다

 ○慶尙道咸安、昌原, 連四日大雨, 漆原、密陽、草溪, 連二日大雨, 洛東江水泛溢, 田多沈沒, 玄風江邊麥田沈沒。 東萊連二日雨下如注, 堤決堰破, 狂風暴作, 大木多拔, 麥禾皆仆。 晋州, 連二日大雨, 川渠漲溢, 宜寧, 連二日大雨, 川渠漲溢, 麥田沒沈, 黍粟、稷稻、木花田, 皆覆沙。 慶州、連二日大雨, 川渠漲溢, 田皆損傷。 傳于政院曰: “慶尙道連年失農, 艱待兩麥之熟, 而復有風水之災, 如是慘酷, 自上至爲哀慘。 其令本道都事, 更爲審考, 詳悉馳啓, 被災等官, 各別救荒事, 下書于監司。”

경상도 함안(咸安)·창원(昌原)에 잇달아 4일이나 큰비가 내리고 칠원(漆原)·밀양(密陽)·초계(草溪)에 잇달아 2일간 큰비가 내려, 낙동강(洛東江) 물이 넘치고 밭이 대부분 잠기었으며, 현풍(玄風)에서는 강 가의 보리밭이 잠기었다. 동래(東萊)에서는 잇달아 2일간 물을 쏟듯이 비가 내려 제방이 터지고 둑이 무너졌으며 광풍(狂風)이 몰아쳐 큰 나무들이 많이 뽑히고 보리가 모두 쓰러졌다. 진주(晉州)에도 잇달아 2일간 큰비가 내려 내와 도랑이 넘쳤다. 의령(宜寧)에도 잇달아 2일간 큰비가 내려 내와 도랑이 넘치어 보리밭이 잠기고 기장·조·피·벼·목화(木花) 밭이 모두 모래로 덮이었으며, 경주(慶州)에도 잇달아 2일간 큰비가 내려 내와 도랑이 넘쳐 밭이 모두 손상되었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경상도는 해마다 농사를 망쳤기에 간신히 양맥(兩麥)이나 여물기를 기다렸었는데 다시 풍재(風災)와 수해가 이처럼 참혹하니 위에서 지극히 애처롭고 참혹하게 여긴다. 본도(本道)의 도사(都事)로 하여금 다시 잘 살펴보아서 상세히 치계(馳啓)하게 하고, 재해를 입은 고을을 각별히 구황하라고 감사(監司)에게 하서(下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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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0년 을묘(1555,가정 34) 4월23일 (정해)

강원도 고성 등지에서 일기가 불순하여 곡식 및 목화나 삼이 크게 손상되다

 ○江原道高城、通川下雨, 山上雨雪。 金化霜降。 平安道定州等九官, 雨雹交下。 定州有黑蟲, 小如稷糠, 侵食春牟, 漸至焦黃。 木花及麻子, 爲半損傷。

강원도 고성(高城)·통천(通川)에 비가 내렸는데 산 위에는 눈이 내렸다. 금화(金化)에는 서리가 내렸다. 평안도 정주(定州) 등 아홉 고을에 비와 우박이 섞이어 내렸다. 정주에는 피의 겨[稷糠]와 비슷한 작은 흑충(黑蟲)이 생겨 봄보리를 갉아 먹었으므로 점점 보리가 누렇게 말라 갔다. 목화(木花) 및 삼이 절반이나 손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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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 임진(1592,만력 20) 8월15일 (임인)

중국의 목화를 사 놓았다가 공이 있는 장사들에게 주라고 명하다

 ○上命遣譯官, 多貿木花于天朝, 預造襦衣, 分給有功將士。

상이 역관(譯官)을 파견하여 중국에서 많은 양의 목화(木花)를 사들여와서 미리 유의(襦衣)를 만들어 두었다가 공이 있는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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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萬物門)

목면(木棉) 

우리나라 면화(棉花)는 즉 고려 문익점(文益漸)이 중국에서 수입해다가 퍼뜨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면화를 목면(木棉)이라고들 하나 그 실은 목면이 아니고 바로 초면(草綿)인 것이다. 우공(禹貢)의, “그 광주리에 담은 공물(貢物)은 직패(織貝)이다.”라고 한 그 주에, ‘직패는 비단 이름인데 자개 무늬를 놓아서 짠 비단이다. 《시경》에, 「이 패금(貝錦)을 이루었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남쪽 오랑캐도 목면이 정하고 좋은 것은 역시 길패(吉貝)라고들 한다.’ 하였다.

《광지(廣志)》에 상고하니, “오동나무 잎에 끼어 있는 흰털을 모아 가는 실[毳淹]을 뽑아서 베를 짜낸다.” 했고, 배씨(裵氏)의 《광주기(廣州記)》에는, “남쪽 오랑캐는 누에를 기르지 않고 목면을 따서 솜을 만든다.”고 했으며, 《남사(南史)》에는, “고창국(高昌國)이란 나라에 실올처럼 생긴 풀 열매가 난다. 그 이름을 백첩자(白疊子)라고 하는데, 베를 만들 수 있다.” 하였다.

중국에서는 이 백첩자를 외국 물산이라 하여 다른 털을 보태서 가는 모직(毛織)을 만든다. 《사기(史記)》에, “탑포(毾布)ㆍ피혁(皮革)이 천 필이다.”라고 했는데, 배인(裵駰)은, ‘탑포는 백첩자다.’ 하고, 안사고(顔師古)는 ‘백첩자가 아니다.’ 했고, 〈장수절(張守節)은〉 ‘백첩은 목면으로 짠 것이니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동(桐)은 동(橦)과 통하고 일명 반지화(斑枝花)라고도 하니, 즉 목면이다, 촉도부(蜀都賦)에, “베 중에 동엽포(橦葉布)도 있다.”라는 것이 역시 이것이다.

엄(淹)자는 즉 엄()자인데, 손으로 실올을 뽑아 낸다는 것이다.

《통감(通鑑)》에, “양 무제(梁武帝)는 목면으로 검은 장막을 만들었다.” 했고, 사조(史炤)의 《석문(釋文)》에는, “강남(江南) 지방에는 목면이 많이 생산되는데, 봄 2~3월이 되면 씨를 뿌린다. 싹이 난 후에 한 달을 지나서 세 차례만 김을 매면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은 네 조각으로 찢어지고 그 속에서 솜과 같이 생긴 흰 숭어리가 제대로 터져 나온다. 지방 사람들은 쇠로 만든 씨아로 그 씨를 빼버리고, 솜과 같은 것만 모아서, 자그마한 대나무 활로 활줄을 잡아 당기면서 뭉실뭉실하게 탄다. 모두 일정하게 타진 후에 솜을 말아서 대통처럼 속이 비게 만든다. 물레[紡車] 가락에 대고 돌리면 저절로 실오리가 뽑혀 나오는데, 베틀에 짜서 베를 만든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 면화(綿花)라는 것이다.

이로 본다면, 중국서도 이 초면(草綿)을 더러 목면이라고 했던가 보다.

나의 의견으로는, 이 면화란 것이 본래 두 종류가 아닌 듯하다. 남쪽 지방은 기후가 따스한 관계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높이 커서 목면으로 되지만, 중국에 들어가면 기후가 고르지 않은 관계로 해마다 심기 때문에 초면으로 되었을 것이다.

옛날 명당(明堂)은 쑥대[蒿]로 기둥을 만들었다 하니,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에 상고할 수 있다.

교ㆍ광(交廣) 지방에는 가자(茄子)가 나무를 이루므로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게 된다. 한 5년쯤 지나면 나무가 늙고 열매가 잘 열지 않으므로 베어 버리고 새로 심는다 하니, 초면(草綿)이 목면(木綿) 되는 것과 뭐 다르겠는가?

번우(番禺) 지방에는 본래 푸르고 붉고 흰 세 종류의 목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특히 그 흰 것만 전한다고 한다.

구준(丘濬)은 이르기를, “면화는 원(元) 나라 때 비로소 중국에 들어왔다.”고 하였으니, 무엇을 의거해서 그렇다고 했는지? 가소로운 일이다. 《속박물지(續博物志)》에는, “면화 종자는 번우 사신 황시(黃始)가 갖고 온 것이라 하여, 지금 광주(廣州) 지방에 그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 준다.”고 하였으니, 광주에서 황시의 공로를 대우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문익점을 대우하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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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견별록(聞見別錄)  

주계(州界)

기내도(畿內道) 5주(五州)

攝津州。東抵倭京。西抵幡摩。南抵和泉。北抵山城。屬郡十四。產木花。 水田一千一百二十六町

섭진주(攝津州) : 동쪽으로는 왜경(倭京), 서쪽으로는 번마(幡摩), 남쪽으로는 화천, 북쪽으로는 산성에 이름. 소속된 군은 14군이고 목화(木花)가 생산됨. 수전이 1천 1백 26정.

번마: 버어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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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Gossypium)

무궁화목 무궁화과의 섬유작물. 주요재배종에 4종류가 있다.

에티오피아 남부 원산으로, 서아시아에 분포된 황면(G. harbaceum)과

인도에서 재배되는 인도면(G. arboreum)은 모두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퍼져 있어 아시아면이라고 불리고 있다.

해도면(海島綿;G. barbadense)은 중남미지역이 원산지이고 카리브해 일대에 분포되었으며, 16세기에 아프리카에 전해져 이집트면을 낳았다.

육지면(陸地綿;G. hirsutum)은 중남미에서 전해져 18세기 미국에서 대량 재배되기 시작하여 남아메리카·소련·동남아시아·이집트를 제외한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 널리 재배되고 있다.

현재 주로 재배되고 있는 목화는 한해살이초본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키가 0.6~1.2m이다. 잎은 품종에 따라 2~4개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며 길이는 5~10㎝, 여름에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결과지(結果枝)가 나와 각 마디에 꽃이 핀다. 꽃은 3개의 포엽(包葉)에 싸여 있고 안쪽에 꽃받침이 있다. 꽂 잎은 5개로 육지면은 백·황백색, 아시아면은 황·백·홍색이며, 개화 후 모두 붉게 변색된다. 줄기는 약 6㎝, 자화수정(自花受精) 후에 생기는 삭과는 길이 3~4㎝로 복숭아 열매 모양이고 녹색이며, 속에 3~5칸이 있고 1칸에 7~8개 정도의 씨앗이 생긴다. 성숙하면 삭과는 갈색이 되어 벌어지는데 이것을 개서(開絮)라 한다. 각 씨앗의 표피에 섬유털이 생기고 이것이 흰 덩어리가 되어 개서에 의해 노출되어 부푼다. 씨 껍질의 섬유는 긴 것으로 해도면이 5㎝, 육지면은 3㎝, 아시아면은 2㎝ 정도이다. 섬유는 전체가 꼬여 있는데, 꼬임은 제사(製絲)에 중요한 성질로 해도면이 가장 많고, 아시아면이 가장 적다.

섬유를 빼지 않은 씨를 실면(實綿)이라 하고 실면에서 씨를 제거한 것을 조면(繰綿) 또는 목화(木花)라 한다. 섬유를 뺀 씨는 면실(綿實)이라 하며 16~20%의 단백질과 12~20%의 기름을 함유한다. 목화는 생육에 고온이 필요하므로 연평균 15℃ 이상인 열대에서 온대의 남부에 걸쳐 재배된다.

한국이나 미국의 재배 북방한계(北方限界)는 북위 37˚이다. 일조(日照)를 많이 필요로 하여, 생육기간의 40%이상, 특히 결실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한다. 미국 남부의 목화지대가 적지로 알려져 있다. 늦여름부터 가을에 개서한 실면을 손이나 기계로 따서 공장에 보내 조면기로 목화를 얻는다. 조면율은 육지면이 30~35%, 아시아면이 25~30%이다. 목화는 이어짓기 장애가 적은 작물이며 토양에 대해서도 적응성이 크다. 산성에 약하나 염분에 대해서는 각종 작물 중 가장 강한 편이므로 염분이 많은 알칼리성 토양에서 재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목화는 면사·면직물 등 방적용으로 쓰이며, 섬유가 짧거나 품질이 열등한 것은 이불솜·탈지면 등으로 이용하는 외에 솜화약(火藥)이나 각종 충전재(充塡材)로 사용된다. 면실은 압착 또는 용매추출(溶媒抽出)에 의해 기름을 짠다. 면실유는 품질이 좋고 값이 싸 튀김기름 등에 많이 사용된다. 냉각법으로 고형분을 제거한 것은 샐러드유·마요네즈유에 적합하며, 또한 마가린 원료가 되거나 동물성지방과 섞어 라드(lard)도 만든다. 기타 비누 원료에 쓰이고, 기름을 빼고 난 씨 껍질은 사료나 비료로 이용된다.

[역사]목화의 재배와 이용의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그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며, 인도 모헨조다로유적(현재 파키스탄領)의 BC 2500∼BC 1500년경의 지층에서 면사가 발굴되었다. 따라서 목화가 고대로부터 인간에게 이용되어 왔고 인도·페루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직물을 만들었음이 밝혀졌다. 인도는 기원전 수세기부터 목화공업으로 유럽에 알려졌으며, 그 후 동남아시아·아라비아·아프리카 및 남부유럽으로 목화재배가 퍼졌다.

이집트에서는 고대부터 섬유작물로 아마(亞麻)가 생산되었지만 기원전부터 목화가 이용되었다. 중국에서는 11세기경부터 중요한 작물로서, 특히 화중(華中)·화남(華南)에서 재배되었고,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부터 중남미·서인도제도 일대에서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서구인들의 손에 의해서 카리브해제도(諸島)의 목화, 즉 해도면이 서아프리카나 수단에 전해져 이집트면이 탄생되었다.

남아메리카의 목화는 페루에서 BC 1500년경부터 이용되었고, 미국에서는 영국이 파나마에서 재배한 인도의 목화가 1740년경 버지니아지방으로 전해져 재배가 시작되었다. 1793년 조면기가 발명되어 영국의 랭거셔에 대방적업이 일어나자 미국은 원면(原綿) 공급지로서 대규모 기업재배가 실시되었다. 이후 육지면은 세계 각지의 열대·아열대 여러 나라에 퍼져 생산되었다.

한국에 목화가 전래된 것은 1363년(공민왕 12) 원(元)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던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 가져온 후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이 재배에 성공, 경상도 산청(山淸)에서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정천익의 아들 문래(文來)가 제사법(製絲法)을 발명하였으며, 그의 손자 문영(文英)은 면포 짜는 법을 고안하였다. 문익점이 가져온 아시아면은 방직원료에는 부적당하였기 때문에 점차 육지면으로 대체되어 1904년부터 목포(木浦) 면작 시험장(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목포지장)에서 육지면 품종 육종시험을 실시하고 있다.[야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