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동물

붕어(鯽魚:carassin, carrushens)와 발해(渤海)

한부울 2016. 10. 2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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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鯽魚:carassin, carrushens)를 찾으니 발해(渤海)가 보인다.

 

글쓴이:한부울

 

1.서두
2.여와(女媧)와 여호와[Jehovah]
3.진흙(腐泥)과 퇴적암(堆積岩)
4.발해와 자자분(紫瓷盆)
5.발해(渤海)에서 난 붕어
(바이킹은 발해영역에서 활동한 세력이다.)
6.염주(鹽州)와 디트로이트의 도시 소금광산
7.결말

 

1.서두

 

뜸금없지만 종교(宗敎)란 무엇인가에 대한 잠시 생각을 한다.
단편적으로 사전에 정리된 것을 보면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설명된다.

문화체계(cultural system)는 특정한 근본원리에 의해 통일적으로 질서화한 사회 문화관계의 총체라고 또한 정리된다.

현대적인 정리가 그렇다.

종교에도 이제 규율과 체계가 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인류태고적에도 인간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제사장을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단군은 제사장을 의미하고,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를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종교 체계적인 면에서 단군왕검(檀君王儉)라는 체계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제정일치(祭政一致)라 하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레위(Levi)지파에게 제사장과 예언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왕적인 지위까지도 부여했다고 알려진다.

마찬가지로 브라만교(婆羅門敎:Brahmanism)가 힌두교로 발전하였는데 브라만(Braman)를 제사장이라고 하고 브라만(婆羅門)은 인도의 카스트제도 중에서 가장 상층의 계급으로 나타난다.

십일조(tithing)역시 실제로 신(神)에게 가는 게 아니라 빈민을 돕거나 신(神)의 일을 대신하는 사제와 레위(Levi)에게 돌아간다고 되어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종교(宗敎)는 제사장을 위한 문화체계이다.

국가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위험과 안전 그리고 전쟁의 공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정치체계이다.

종교는 나약한 인간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평화를 제공해 주는 체제이다.

종교는 국가 창건의 기초라고 하였다.

국가는 메인이라고 보고 종교는 실제로 인간이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神)의 초월적인 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리되기도 한다.
때문에 종교(宗敎)는 인간생활과 삶에 대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울 수 있으며 때문에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제공받는 대신 물질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가 있다.

국가는 세금을 요구하는 대신 종교는 기부금이나 십일조를 구한다.
현대들어 물질이 기하급수적으로 풍요해지고 잉여재산이 늘어나면서 믿음을 잉여물질로 대신하려는 심리가 묵언적으로 협의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원초적인 문제에서
물질은 인간에게 풍부해 질 수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고뇌나 죽음과 같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의 절대자에게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극한까지 경쟁에 내몰리는 가난한 인간들에게 닥치는 갖가지 문제 가운데 삶에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질좋은 삶이기 때문에 이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욕망은 어느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일게다.

때문에 종교는 개인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불안 심리에 의한 종교(宗敎)관념은 인류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정치와 종교는 아주 밀접한 연관 관계에 있다.

그러나 물질이 풍족한 현대에 들어 이러한 인간들의 심리적 약점을 이용하여 종교에 대한 믿음(faith)을 강요하게 하고 종교관념자체가 완전체의 물질화되었으며 제사장을 자임하는 종교지도자들이 포화상태가 되어 인간의 순수한 믿음을 사유화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잉여재산의 달콤함을 맛본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완전체 물질에 이미 길들여져 믿음보단 종교를 이기심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각자 유리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종교자체를 불신하는 위험에 도달한 것이다.

오늘날 이처럼 종교가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 그렇다면 신(神)은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개개인의 행동에 직접영향을 미치는 인격적인 신(神)은 상상할 수가 없다"라고 단언 하였으며 "인식할 수 없는 존재를 가정하거나 사실화하는 것은 세상의 질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 것이다.

그리고 우주적인 질서가 곧 신(神)이라 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종교적 감정이 불교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믿었다고 알려진다.

왜냐하면 '부처'는 스스로 마음에 존재한다 하였기 때문에 솔직한 감정표현이다.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다.

그가 이런말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태극이란 우주의 질서를 알 수 있는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형태가 없는 무(無)이며 우주의 오묘한 질서라고 정의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인식할 수 있는 형체가 있다는 유(有)가 무(無)에서의 거대한 우주속에 티끌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유(有)는 인식됨과 보이는 것이며 한계이고 무(無)는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는 무한이다.

마음 속에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주질서를 담은 큰 그릇의 무(無)와 같은 것이니 형체의 우상을 세우지 말라는 본질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종교는 물질탐욕에 변질되어 나타나는 유(有)를 한계로 하는 제사장을 위한 문화체계일뿐이다.

 

2.여와(女媧)와 여호와[Jehovah]

 

 

구약성서(舊約聖書)에 여호와[Jehovah]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2장7절)라 하였는데 이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유일신이라고 백과사전은 정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유대인을 서양인이라고 할 때 서양인들의 하나님이라는 실체는 이스라엘 민족 신(神)이라는 뜻이다.

늘 상 글쓴이는 이러한 사실에서 역사적으로 당혹스러워 할 때가 많다.
동양인 몽골리안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가 유구한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 무엇때문에 이스라엘민족 신(神)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유일신(神)으로 받들어야 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원초적인 설명을 어느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엄연히 서양역사가 동양역사보다 시기적으로 후진이라는 역사사실을 전제하고서 볼 때 인종적인 이질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근대사라고 하는 세계사를 보면 분명 동양과 서양인을 구분할 뿐더러 절대로 하나의 역사속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분리시켰다는 원칙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주장들은 무엇인가 근원적으로 서양사는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반대로 본 블로그가 주장하는 모든 사실들은 하나의 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유일신(神)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애초부터 동서양인이 분리되지 않는상태에서 그것을 하나의 신인 하나님이 존재하였고 섬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서양인만의 유일신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 즉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신이 바로 각 종교와 정파를 뛰어넘는 하나의 유일 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이 오늘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호와[Jehovah]라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고 이해할 수 있는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독교인 유대교 이스라엘의 신이 어찌 유일신이라 할 수 있고 더군다나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서양인의 모습을 닮은 하나님을 동양인이나 흑인이 어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형채가 없는 하느님, 곧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하나님과 부처님은 우주의 질서이며 자연의 법칙, 이치와 그것이 곧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진리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민족신에서 출발한 우월한 종교와 우월한 역사관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한 것이다.
사라진 역사, 일찍이 하나의 체제에서는 동서양, 백인종, 라틴계인종, 황인종, 흑인종 할 것없이 모두 유일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을 받들 수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가 되어야 할 세계종교관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종교관과 유일신 하나님이 존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나 절대로 그것이 현 기독교라고 할 수 없는 문제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다시 말하지만 인류역사의 시발점은 바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만 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사가 지배하고 있는 근세역사에는 여러가지 원초적인 의문이 깔려 있어 불신만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세계삼한역사 속에 존재하던 삼한민족 신(神)은 세계신(神)이라 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 할 수 있는 답은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근세기에 들어닥친 신물질문명에서 낙오된 것이라고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는 갑갑함과 혼란이 없지 않다.
왜 우리가 타민족의 신(神)을 하나님이라 해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근세역사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와같은 사실에서 수긍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근원적인 종교적인 문제와 갈등은 세계삼한역사가 사라짐과 동시에 우리에게 갑갑함과 혼란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종교는 나약한 인간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속성이 있다.
근세기 우월주의에 빠진 서양인들이 설치는 시대는 한편으론 세상 말기와 같았으니 민족이 다르다고 하여 그것을 유일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당시 절박한 상황들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민족역사에서 창조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人間世上)을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매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환웅(桓雄)이 그의 무리 삼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tibet) 신단수(神檀樹)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도시국가)라 이름하니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라고 신시본기(神市本紀)에 나타나는 기록이다.
세계삼한역사의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 환웅(桓雄)시대때 여와(女媧)는 소호김천씨의 할머니이며, 중국의 삼황에 해당하는 태호복희씨와는 남매지간으로 중국의 전설상의 황제인 복희, 신농(神農)과 함께 삼황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복희의 아내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재야학자들은 모두가 전한시대의 사마천(司馬遷)이 중국의 옛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환웅천왕의 배달국 역사를 빼버리고, 반고(盤固)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에서 일견한다.

반고(盤固)는 환국의 우루국에서 대인 환웅을 따라 태백으로 오던 삼천무리중의 부장이었다.
글쓴이의 변할 수 없는 주장은 1910년 이후 혼란시대때 당시 국민당소속 사람들이 사마천을 빙자하여 근세기 신중국 만들기에 몰입하였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이완성된 것이며 이것을 사마천사기와 연결하면서 결국24사를 만들어내었다는 사실을 주장한 적이 있다.
물론 전한시대의 사마천이란 인물은 생몰년대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창세 여신, 여황(女皇), 여와(女媧)는 인류의 시조이자 모계사회의 수령이라고 알려진다.
이스라엘 창세의 신 여호와[Jehovah]와 비슷한 음(音)의 "여와"는 사람의 머리에 몸은 뱀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전설 속의 인물로 성은 풍(風)이고 여황 또는 여명이라고도 불렀으며 이가 곧 인류의 시조로 알려져 있고 이 세상에 하늘과 땅이 막 생겨났을 때 이것을 본 여와가 너무나 쓸쓸히 여겨 누런 흙과 물을 섞어 진흙을 만들고 여기에 끈을 늘어뜨려서 잡아당기니 진흙 덩어리들은 모두 인간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 사실을 백과사전에서 읽을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여송연(呂宋煙, Cigar)으로 본 이상한 근대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417"에서 말하길 환단고기에 환국력년을 63,182년라 하였으니 이것은 인류가 태생되고 난 후부터 역사로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放射性炭素年代測定法:Radiocarbon dating)에 의하여 구분하는 구석기시대 126,000년 부터 11,700년까지의 타란토절(Tarantian)과 일치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신석기시대를 지질학상 약 1만 년 전이라고 보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기록임을 알 수가 있고 또한 범어자료에는 환인천제가 지금으로부터 9,900년 전에 인드라(因陀羅:Indra) 석제환국(桓國),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Śakra Devānām-indra)을 세우고 뱀을 종족의 아이콘으로 썼던 구한족(九桓族)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다.

풍(風)은 우리 선조 중에 바로 전기한 9900년 전에 환국(桓國)을 세우는데 주축이 되었던 풍이족(風夷族)이 있었다 하고 이들을 풍이(風夷)라고 하였으며 하화족(夏華族)의 역사에서는 풍이를 풍씨(風氏)라고 한 것이다.
유태족(猶太族)은 서양인이 되어 풍이족(風夷族)의 뱀문화를 배척하였고 성경에 뱀을 사탄으로 기록하여 남겼다는 사실에서도 유태족이 주장하는 여호와는 풍족(風夷族)의 여와와 동일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근세기에 천지를 모르고 자만에 빠진 서양인에 의해 모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어느쪽이 과연 역사성이 있고 정통이라 할 수 있을까?
여호와는 본래의 풍이족인 여와를 모사하여 그들의 신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1776년 미국이 영국식민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독립전쟁을 일으켰을 때 분명 방울뱀을 모든 군기에 상징화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지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3.진흙(腐泥)과 퇴적암(堆積岩)


다시 붕어이야기로 돌아가자.

본 블로그 글 "붕어(鯽魚)로 본 삼한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3"에 이어 붕어 2탄이라고 하는데 1탄에서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한 붕어 근원지를 밝히려 하는 것이다.

진흙은 도토(塗土), 어니(淤泥), 이토(泥土)라고 한다.

서두에서 이야기 했지만 진흙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창세의 신화와 함께 인간의 몸, 세포를 진흙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화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물과 함께 짓이겨 곤죽같이 된 진흙을 생각할 때 이것을 감탕이라고 하는데 남녀가 점잖지 않게 온갖 음탕한 몸짓으로 잠자리를 하는 짓을 경멸스럽게 말할 때 ‘감탕질’이라 한다.

진흙으로 만든 남녀이니 온갖 음탕이 뒤 섞여 감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말이 얼마나 창세설에 가까운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또한 붕어가 사람에게 좋은 음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진흙 먹고 사는 것으로 삼한의 전통철학사상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토(土)' 땅은 만물의 근원이자 중심이라 하였으며 그리고 신체에서 위장(胃腸)과 비장(脾臟)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진흙이 토(土)이니 사람이 태고적부터 보양음식으로 붕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鯽:淡水鯽魚。身體側扁,頭部尖,背脊隆起,尾部較窄。陸佃《埤雅》云:“鯽魚,旅行以相即也,故謂之。”鯽喜偎泥,不食雜物,故能補胃。冬月肉厚子多,其味尤美。
위 신중국자료를 보면 즉어(붕어)는 담수어로서 몸은 옆면이 평평하다 하였고 머리는 뾰쪽하고 척추가 솟아오르고 꼬리부위가 비교적 좁다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관리이자 학자인 육전(陸佃:1042-1102)의 비아(埤雅)에는 즉어는 융합(融合)하여 일체(一切)하며 고로 설명하길 진흙(부니)을 가까이 하고 좋아하며 잡물을 먹지 않기 때문에 위를 보호하는데 좋다라고 하였다.

특히 음력 11월 동짓달에는 고기가 두텁고 알이 많아 맛이 좋다고 위 기록은 전하고 있다.

때문에 붕어는 생리적으로 진흙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진흙 과자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2010년 1월 12일에 규모 7.0의 강진이 아이티(Republic of Haiti)를 덮쳐 50만 명의 사상자와 1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연재해로서 이때 진흙에 물과 소금, 마가린을 섞어 말린 쿠키, 일명 진흙과자로 연명을 하였다는 보도를 우리가 접할 수 있었는데 우선 이것을 먹고나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항상 배가 부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기 때문에 옛부터 구황식품(救荒食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예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 사실이 있는데 아래 조선 중기 학자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시문집 미암집(眉巖集)에 잘 나타난다.


미암집(眉巖集)
○칠언고시(七言古詩)
남쪽 고향을 탄식하다〔南鄕嘆〕
南方連歲旱赫赫 남쪽 지방 해마다 가뭄으로 메말라 
千里彤雲渾一色 천 리의 붉은 구름 온통 일색이네 
泉枯井涸渴不堪 샘과 우물 메말라 갈증 견딜 수 없는데 
況見西成稻與稷 더구나 벼와 기장을 추수하겠나 
哀哉蒼生遇不淑 슬프다, 백성들 불행한 시대 만나 
呼天不聞空昏黑 하늘에 외쳐보나 들리지 않아 깜깜하네
剝囓草木噉泥土 초목을 뜯어 씹고 진흙을 먹으니
當秋人面黃而黑 가을이 되어도 사람 얼굴 노랗고 검네
赤子飢啼不忍聞 아이들 배고파 우는 소리 차마 못 듣겠고
婦女啜泣分南北 아녀자들 눈물 흘리며 남북으로 흩어지네

 

우리나라 남쪽지방에는 해마다 가뭄때문에 곡식을 접할 수 없어 "초목을 뜯어 씹고 진흙을 먹었다"고 기록된 것이다.

이런 지리적 환경적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역사 상황인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수가 없는 것은 특히 남쪽지방이라 하였던 사실에서 전라도나 경상도라 판단할 수 있지만 기장은 인도가 원산지로 알려지는 재배작물로 역사적으로 함경북도 회령읍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도 기장이 출토되었다는 사실과 주로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산간지대에서 재배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참고로 한다면 지형적인 환경이 한반도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5년 계묘(1423,영락 21)4월21일 (신미)
황해도 봉산 서면의 백토를 굶주린 백성이 쌀가루에 섞어먹다
○黃海道 鳳山西面白土、瑞興 南山白赤土味甘, 飢民堀取, 和米粉啖之 療飢。
황해도(黃海道) 봉산(鳳山) 서면(西面)의 백토(白土)와 서흥(瑞興) 남산(南山)의 백적토(白赤土)는 감미(甘味)가 있다 하여, 굶주린 백성들이 파서 쌀가루를 섞어 먹어 요기(療飢)하였다.

 

또한 위 조선왕조실록기록에는 굶주린 백성들이 백토(白土)쌀가루에 섞어 먹어 요기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반도 황해도(黃海道) 봉산(鳳山) 서면(西面)에 백토가 난다는 소리는 처음듣는 이야기다.

 

 

                                                 [White Butte in Slope County]

 

 

唐 苏鹗 《杜阳杂编》卷下:“ 渤海 贡马脑樻、紫瓷盆。”《新唐书·北狄传·渤海》
위 한어자료에 보면 당(唐) 소악(蘇鹗)이 지은 소설집 두양잡편(杜陽雜編)에 발해(渤海)가 당조에게 조공한 마노궤(馬腦:瑪瑙)와 자자분(紫瓷盆)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2012년 6월 21일에 작성한 본 블로그 글 "마노(瑪瑙, agate) http://blog.daum.net/han0114/17050524"에서 북미 미네소타주(Minnesota)의 마노(瑪瑙)가 쓰임새 때문에 인기가 최고라 하였던 것도 사실상 지리적환경이 한반도가 아니란 점을 알기 위해 밝혔던 내용이다.

백토(白土:White earth, terra alba)는 카올리나이트(kaolinite)와 하로이사이드(Halloysite)를 주체로 하는 백색점토(White Clay)로서 요업원료가 되고 탈색제(그림용 오일을 탈색),흡착력이 크기 때문에 백색 도자기의 원료로 쓰인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백자기가 얼마든지 산출될 수 있었던 조건이다.

다시 이야기는 돌아가서 이토(泥土)를 사전에 찾아보면 진 빛깔이 붉고 차진 흙이라 하고 질척질척하게 짓이겨진 흙을 말하는데 우리는 이를 진흙이라 하는 것으로서 진흙의 색깔이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띄지만 회색을 띄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진다.

진흙(mud)에 대한 지질학(地質學:geology)의 정의로는 암석이 풍화(風化作用:Weathering), 침식(浸蝕:erosion), 운반되어 생긴 암설 가운데 역(礫:gravel)이나 모래(沙:Sand)보다 작은 것을 말한다.
실트입자(약 0.05~0.005㎜)와 점토입자(약 0.005㎜ 이하)그리고 모래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지질학적으로는 쇄설퇴적물(detrital deposit) 즉 기존 암석의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퇴적물인 것이다.
크기는 1/16 mm(62.5μm)~1/256 mm(4μm)의 모래보다 미세한 것을 실트(微砂:silt)라 하고, 그 이하의 것을 점토(粘土:clay)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이것들은 도자기나 점토 세공에 쓰인다.
질척질척하게 짓이겨 지는 흙으로서 찰지고 곱기 때문에 토양 중 가장 미세한 입자이며 화학적 교질작용을 하고 물과 양분의 흡착력이 크다는 것이 점토 세공재료으로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도토(塗土), 어니(淤泥), 이토(泥土)라 하거나 우리나라 방언에서 구개흑, 국개흘, 구캐, 국해, 날흑, 딜흙, 조오덕, 지덕흘, 지더구흙, 지덕, 진득, 찌돌, 찌득, 쪼대흘, 해치, 개흙, 지득 또는 조대흙이라는 등 여러가지 명칭이 존재 한다는 것도 지방싸투리를 감안할 때 진흙이 상당히 많이 산출된 것임도 알 수가 있다.

퇴적암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 속에 작은 고체 입자들이 서서히 쌓이면서 형성된다고 알려진다.

수심이 얕은 바다가 건조한 대지 인근에 위치하고, 이 지역에 폭풍우가 자주 친다면 모래 입자들이 바다로 쓸려나가 조류와 중력에 의해 바닥에 쌓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각 모래층은 아래쪽에 있는 모래층을 누르고, 결국엔 몇천 년 전에 쌓여 있던 거대한 모래 덩어리를 눌러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는 석탄기에 형성된 퇴적암이 지층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오대호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남부에 그러한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자료에서 볼 수가 있다.

시카코는 이명이 "Windy City"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본 블로그 글 "가평(嘉平)은 시카고(Chicago)이고 풍성(風城) 또는 지성(芝城)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48 "에서 밝혔듯이 풍성(風城)이라 한 것은 그 만큼 바람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가 있다.

그 주위에 퇴적암의 강한 풍화작용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철(鐵:iron)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2"에서 알렸듯이 세계적인 주요철광산 (1)메사비산지(Mesabi range), (2)마켓산지(Marquette range), (3)메모미니산지(Menominee range), (4)고기빅산지(Gogebic range), (5)버밀리온산지(Vermillion range)가 밀집된 지역은 바로 슈피리어호(Lake Superior)서부지역과 미시간호(Lake Michigan)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했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저지대에는 광물연료가 다량 퇴적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석탄 퇴적 지역이 바로 애팔래치아 탄전 지역인데 켄터키주 동부, 웨스트버지니아주, 펜실베이니아 서부로 이어지는 이 탄전 지역이다.

때문에 오대호는 중생대부터 신생대에 이르는 퇴적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석탄, 철광, 석유등 연료광물자원이 주로 퇴적암층 내에 발달 부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물의 수원(水原:The Gathering of Waters)이라고 하는 지역 허드슨베이에서 오대호사이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미시시피강은 늘 거대한 진흙(The Big Muddy)즉 황토물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근대사를 보면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프랑스가 켈트어로 '진흙'이란 뜻을 가진 부로몽왕가(House of Bourbon)의 앙리4세(Henry IV of France:재위:1589-1610)의 집권이 시작되는 1589년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비록 서양사에서 북아메리카대륙의 선점의 역사를 말하고 있을 망정 근원은 진흙으로 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처음 프랑스인으로서 미시시피강을 탐험한 사람이 루이 졸리에(Louis Jolliet:1645-1700)라 하는 것과 그와 함께 탐험에 나선 카톨릭선교사 자크 마르케트(Jacques Marquette:1637-1675)는 오대호에서 위스콘신 주(Wisconsin)와 일리노이 주(Illinois)를 통해 여행한 최초 서양인이라고 알려진다는 사실도 우리는 서양사의 빈약한 역사사실을 추리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에 존재하는 국명 말레이시아어로 콸라(Kuala)는 해구(海口)란 뜻이고, 룸푸르(Lumpur)는 진흙이란 뜻에서도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가 위치한 곳이 바다와 연결된 해구에 진흙이 많은 곳임을 알 수가 있는 것도 이와같은 역사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위스콘신(Wisconsin)의 어원에서 마이애미 일리노이스(Miami-Illinois)인디언 단어 메스콘싱(Meskonsing)즉 붉은의미, 붉은 사암, 물이 모이는 곳(where the waters gather), 붉은 돌 지역(red stone place), 위대한 바위(great rock)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지브웨이(Ojibwa)족 단어의 변종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지명이 지리적환경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적인 예가 된다.

때문에 위스콘신은 상징성이 붉다 할 수 있다.

또한 백토(白土:White earth, terra alba)지역 역시 미국 미네소타주의 베커카운티(Becker County)의 화이트어스(White Earth)를 포함한 백토인디언보호지(White Earth Indian Reservation)가 있고 노스다코타주 마운트레일카운티(Mountrail County)에는 화이트어스(White earth)가 있으며 스로프카운티(Slope County)의 평원에 생성되는 고립된 외딴 언덕 1,069m의 화이트 뷰트(White Butte)가 솓아 있으며  퍼킨스카운티(Perkins County)에는 화이트힐(White Hill)이란 지명도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백색점토가 그것이다.

또한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강으로 미네소타강(Minesota River)의 지류인 174km 길이의 블루어스강(Blue Earth River)은 다코타 인디언들에 의해 마카토 오사 와타파(Makato Osa Watapa)라고 불리었고 이것은 푸른 점토가 모여 흐르는 강(the river where blue earth is gathered)이라는 뜻으로서 이 강으로 모여드는 상류에는 푸른점토가 무한정 퇴적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오대호근방에서 그린색 토양까지 발견된다 하였는데 바로 약 24억 년 전에서 21억 년 전 휴로니안 빙기(Huronian Glaciation)에 퇴적된 것으로 캐나다 온타리오 인근 니피싱호(Lake Nipissing)화산시 용암(lava:熔岩)에서 그린색(green)이 분출되었다고 설명되는 귀한 자료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점토들은 옛부터 도자기를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없어서 아니될 중요한 중요한 재료인 것이 분명하다.

 

 

補脾. 此魚食泥, 故有補脾養胃之功. 作羹作蒸作膾皆佳[本草].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붕어는 진흙을 먹기 때문에 비를 보하고, 위(胃)의 기를 기르는 효과가 있다 하였으며 국을 끓여 먹거나 쪄서 먹거나 날로 회를 쳐서 먹어도 좋다 한 것이 보인다.
즉 붕어는 이 진흙과 가까이하고 진흙을 먹고 산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진흙이 있는 곳이 세계에 어디 한 두 군데인가 하는 물음이 있을 수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오대호는 250만년전부터 1만년사이 플라이스토세(洪積世:Pleistocene)의 빙기 중 마지막 빙기 위스콘신빙기(Wisconsin glacial stage)에 형성된 일련의 호수들 중 마지막 단계의 호수라 하는 사실과 약 10억년 전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알려지며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지역에서 땅이 갈라지며 엄청난 화산 활동이 있었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생겨난 고지대는 침식되고 마침내 침강하여 분지가 만들어졌고 그곳에 물이 채워져 슈피리어 호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대륙빙하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함에 의해서 그 지역의 지형을 변형시키고 거대한 계곡을 만들어 놓았다고 지질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같은 지질학적 변화가 미간호에도 상당히 밀려 퇴적암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독특한 퇴적암들이 형성했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다. 
이러한 형상들은 오대호의 저습지대에는 수생부식 부니(腐泥:sapropel)를 생성시켰을 것이며 붕어의 먹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부식은 치환성 염기와 암모니아를 흡착하는 능력, 즉 염기치환용량(鹽基置換容量)이 크다는 것으로 이를 생태적으로도 뒤받침하고 있다.

 

4.발해와 자자분(紫瓷盆)

 

 

 

이글에서 우리나라 기록에서도 보면 고려가 망한 후 조선인이 편찬했다고 하는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영일현(迎日郡)에 마노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며, 정조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섭라(涉羅)에서 마노가 생산되었다 것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함길도(咸吉道)에 마노석, 강원도 삼척에서 마노가 생산되었다 한 사실, 그리고 연산군조에 경상도 경주에 화마노(火瑪瑙)와 백마노(火瑪瑙)가 생산되어 조공했다고 기록된 것은 마노가 당시 우리나라에 많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마찬가지로 강원도 삼척과 경상도 울산군에 마노가 생상되었다는 것을 알려 조선왕조실록과 다르지가 않다.
그런데 발해 영역에서도 이 마노(瑪瑙:agate)가 생산되었다는 것은 또 다른 한반도가 역사성에 의해 결정되는 지리적 환경에서 강한 의혹을 낳게 하는 것이다.

전자에서 이야기 했지만 자자분이 생산될 수 있는 토양이 분명 오대호를 중심으로 서부와 남부에 널려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와 더불어 마노 역시 미네소타에서 생산되는 것이 쓰임새가 커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견주어 볼때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사실과는 현격하게 다른 지리적 환경에서 발해가 어디에 포진했을 것인가를 얼마든지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다.

참고로 자자분(紫瓷盆)은 순수한 자줏빛색으로 5말(90.195ℓ)정도 들어가는 크기에 안팎이 투명하고 두께가 1촌(3cm)정도가 되어 마치 기러기 깃털을 드는 것처럼 가벼웠다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얇디 얇은 자주빛의 사발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하니 그러한 도공술이 얼마나 섬세했는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앞에서 위스콘신은 오지브웨이(Ojibwa)족 단어로 붉은 의미(紅, 赤石之地)와 붉은사암(砂岩)이 모여 있는 곳임을 알 수 있고 더군다나 미네소타주 블루어스강(Blue Earth River)은 상류에서 모여드는 푸른 점토가 만든 색깔이라 할 정도로 푸른점토가 풍부했음을 알 수가 있다.

붉은 사암가루에 푸른점토를 섞으면 자줏빛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가 있었다고 하는 아시아동북지역에 이런 토양의 환경이 존재하는지 한반도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한 낱 일개 촌부가 이렇듯 역사사실을 밝히고 있음에도 어찌하여 내노라 하는 한반도 역사학자들은 이런 관찰력조차 없고 기존 식민지역사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만 있을까 짜증나는 이야기다.

본 블로그 글 "조선 철갑상어알젓 캐비어(Caviar) http://blog.daum.net/han0114/17050797 "에서 노스다코타주 리치랜드카운티의 와페턴(Wahpeton)까지 이어지는 북쪽 레드강(Red river:캐나다와 미국국경경계선지점)에서 흔히들 중국역사처럼 인식하고 있는 적벽(赤壁)을 찾을 수 있다 하였고 캐나다 민요 홍하의 골짜기(Red River Valley)의 무대가 위니펙 호수(Winnipeg Lake)란 사실에서 미네소타강으로 들어가는 상류지역임을 알 수 있었는데 여기가 곧 적벽(赤壁)을 연상케 한다는 사실까지 밝혀었다.

동서양 역사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오대호를 중심으로한 지역들이 모두 붉은 색의 지질이 지형형성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으며 적철광(赤鐵鑛)이 발견되었다는 곳이다.
이것은 적어도 발해가 이 도기, 자자분(紫瓷盆)를 제조하는데 토양적환경이 충분히 조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기러기 깃털을 드는 것처럼 가벼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감히 다른 종족들이 도전할 수 없는 도기의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으며 때문에 소위 중국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자자분(紫瓷盆)과 같은 도기(陶器)를 만드는 회령소(會寧燒)의 기원을 보면 아주 옛날 1500년 혹은 2000년 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하였으니 기원후부터 기원후(AC) 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고 특히 함길도(咸吉道)일대의 땅은 팽해(澎海)땅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세기말 여진족이 점령하여 청(淸)나라와 연결되는 듯 하였지만 청나라는 근세기에 분열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보아 뉴잉글랜드 즉 생여진으로 풀었던 것이 바로 어제와 같다.

이러한 역사사실에서 인종을 별도로 구분하여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언제 글쓴이가 말했지만 생여지는 새롭게 등장한 여진이며 숙여진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종족을 일컫는 것임을 설명한 바가 있다.

이렇게 간단한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이란 뜻조차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기존 역사계가 어느정도 함몰해 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조선 함길도(咸吉道) 팽해(澎海)에 회령소(會寧燒)가 있었다는 사실과 또한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본래 이곳은 고려(高麗)의 땅이었으며 속칭(俗稱) 오음회(吾音會)라 하였는데, 고려말 호언(胡言)으로는 알목하(斡木河)라 했던 회령도호부(會寧都護府)에서 도기소(陶器所)가 두 개소가 있어 매우 우수한 도기가 산출 되었다는 기록을 우리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팽해(澎海)라고 하면 물 부딪히는 소리가 나거나 물이 튀는 파도가 치는 바다를 뜻하는 지명(地名)임을 알 때 지리적환경을 설명한 것이라면 적어도 이곳은 거대한 바다 북해(北海)와 맞닿는 곳에 해안, 연안의 지명으로 빙하가 녹아드는 과거 허드슨베이를 북해라고 했던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5.발해(渤海)에서 난 붕어

 

바이킹은 발해영역에서 활동한 세력이다.

 

[신중국자료]自汉代起就有東北的游牧民族的居住的紀錄,歷史上曾經為渤海國(当时称为湄沱湖)遼、金、元和清的領土清代時當地屬吉林將軍管轄地。兴凯湖在唐代称为湄沱湖,因湖形如“月琴”,故金代有“北琴海”之称,清代改为兴凯湖。"兴凯"是满语,意为"水从高处往低处流"之意
한카호의 한어자료를 보게 되면 발해국(渤海國)당시에는 미타호(湄沱湖)라 하였고 당나라까지 호수형태가 월금"月琴”같다하여 이 이름이 이어졌고 금(金)나라때는 북금해“北琴海”라 칭했으며 청(淸)나라때는 만주어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흥개호(興凱湖)라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해동역사 제27권
물산지(物産志) 2
어류(魚類)
붕어[鯽]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미타호(湄沱湖)의 붕어이다. 《신당서(新唐書)》
○ 조선의 붕어는 길이가 한 자나 되는 것도 있다. 《조선부 주》

 

본 블로그 글 "붕어(鯽魚)로 본 삼한역사(1편)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3"에서 붕어의 특성과 붕어가 우리나라 역사에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그리고 현 한반도에서 말하는 붕어의 생물학 분류체계를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결국 아시아 종(種)과 한반도 종(種)을 나눔에 있어 근원적으로 부자유스러웠던 불편한 사실들을 밝혀보았으며 무엇보다도 알고 싶어하던 재래종인 토산붕어에 대한 진실과 문제점을 밝혀 생물학적면으로 현 역사상황을 전체적으로 풀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붕어를 밝혀보고자 했을 때 중심되던 욕심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발해(渤海)를 추적이었음을 이제사 고백한다.
발해(渤海)가 과연 한반도 역사와 동아시아역사가 주장하는 현재 아시아대륙 동북삼성 북쪽에 자리하고 현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영역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 하다가 붕어생태와 환경과 발해가 결부되는 점을 중요시하고 이를 검토한 결과 확신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어 2탄 연속의 붕어편을 시작하게 되었던 동기를 감히 언급하고 있다.
발해를 찾으면서 지금까지 글쓴이가 하나하나의 모든 글들은 정확하게 연결되고 이를 뒤받침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풀어 본 결과는 명실공히 이제 하나 하나 전부 사실로 입증되기 시작하였으며 결실로 다가옴을 느낄 수가 있다.

 

단언적으로 이야기 하면 발해가 있었던 곳의 붕어에 근거하고 그것이 근원이다 말할 수 있다.

발해(渤海)는 시작, 시동, 시발을 뜻하는 것으로 물이나 바다가 시작하는 곳을 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수원지(水源地)를 생각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 지명 수원(水源)역시 바로 이러한 자연이치의 지명이어야 맞는 것이다.

전자에서 진흙 즉 부니(腐泥:Sapropels)이 발생되는 지질학적 원리와 현재 진흙 생성이 오래전부터 축적 될 수 있었던 곳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알아보았다.

그리고 현재 북아메리카대륙의 오대호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가 있을 만큼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붕어가 왜 발해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가.

 

해동역사 물산지에 붕어[鯽]편을 보면 24사(二十四史)가운데 하나인 신당서(新唐書)기록에 발해 영역인 미타호(湄沱湖)의 붕어가 귀하다고 한 사실에서 오늘날 아시아대륙 동북 연해주 내륙에 있는 흥개호(興凱湖)라고 하는 한카호는 이 미타호(湄沱湖)를 가르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 동아시아 동북에 있는 한카호를 보면 지리학적으로 오대호처럼 수백만년 동안 빙하의 움직임이 없었던 곳이고 쇄설퇴적암(碎屑堆積巖)이 생성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발해가 자자분(紫瓷盆)을 생산할 수 있을 만큼 도기재료인 다양한 색상의 점토를 토양환경적으로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미 발해찾기를 염두에 두고 본 블로그 글 "철(鐵:iron)로 본 새로운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2"를 완성한 상태에서 볼 때 동북 9성(東北九城)에 들어가는 공험진(公嶮鎭)역시 한반도 함경북도 모양과 닯은 꼴인 애팔래치아산맥 북부고원 메인주(Maine) 어디쯤에서 찾아야 할 것임을 밝혔듯이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발해의 위치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지점이라는 것을 얼마든지 추정이 가능하다.
동북9성을 여진과의 강화(講和)에 따라 되돌려 주었다는 의미를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만 당시 정치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오늘날 바로 뉴잉글랜드(New England)생성된 이치와 거의 같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들 서양인들은 남의 땅에 터전을 세운 것이 그들의 근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험진을 알기 위한 두만강(豆滿江)의 위치를 메인 주(Maine)와 뉴브런즈윅(New Brunswick)사이 경계로 있는 세인트 진 강(Saint-Jean River)이라 했고 그 위 북쪽에서 동북(東北)쪽으로 흐르는 세인트로렌스강(Saint Lawrence River)을 소하강(蘇下江)이라 했던 것이 이러한 관점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제 여기서 밝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1편에서 정리하지 못한 붕어의 근원지를 밝혀야 하는 일이며 그 근원지 또는 원산지는 바로 발해(渤海)를 말하는 것이니 이를 동시에 밝히는 것이 된다.

           

 

지난 2백만년동안의 지질학적 기간 제4기(第四紀:Quaternary period)동안 형성된 물과 식물 그리고 동물과 미네날(Mineral)들이 혼합된 유기체 퇴적물이 호수나 늪에 부패와 분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식물의 유해(遺骸)가 진흙과 함께 물 밑에 쌓인 지층으로 남아 있는 것을 부니(腐泥:Sapropels)라 하는 것으로 지구 자원을 부분적으로 재생시킬 수 물질이라 하는 것이다.
이 퇴적된 부니가 바로 진흙이라 하는 것으로 가장 조밀하게 형성되고 축적되어 있는 곳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온대기후존[temperate climate zones]으로 나타나고 대표적인 지역은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반도, 프랑스, 독일, 폴란드, 발트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이며 무엇보다도 북아메리카대륙 캐나다와 미국의 오대호지역(Great Lakes Region)이라는 것을 위 영어자료에서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이다.

 

본 블로그 글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8"에서 주장했듯이 발트해가 있을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허드슨베이(Hudson Bay)라는 사실과 고대 노르드어(Old Norse)로 "간드빅(Gandvik)"라 하였는데 이를 한편으론 백해(白海:White sea)라 하였고 또는 위험한 바다라 하여 뱀 만(Bay of Serpents)이라 하였으며 형태적으로도 "바다의 입구" 또는 "내해(inlet of the sea)"로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고 하여 허드슨베이를 발트라 하였던 적이 있다.
이에 확신을 더하는 것은 발트를 동해(東海)라고 칭하였던 언어군에서 네덜란드어(Oostzee), 노르웨이어(Østersjøen), 덴마크어(Østersøen), 독일어(Ostsee), 스웨덴어(Östersjön), 아이슬란드어와 페로어(Eystrasalt) 그리고 핀란드어까지의 이들 종족 또는 민족들은 근원적으로 허드슨 만 서쪽에 포진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문에 그들 언어로 발트를 동해(東海)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원은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의 근원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 분명하다.

현 북유럽에서의 생존역사를 어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북아메리카대륙 허드슨 베이는 그들에게 발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유럽국가들은 모두가 발해에 소속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북유럽의 바이킹 역사까지도 의심케 하는 것으로서 바이킹의 활동지역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허드슨베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현재 미국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된 바이킹 유물과 유적이 난데없이 허드슨베이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혈통적으로는 게르만족 노르드인(Norsemen)이고, 언어적으로는 노르드어(Old Norse)를 구사한 바이킹(Viking)은 9~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하고 약탈행동을 일삼아 식민지로 만들었던 세력이다.

 

6.염주(鹽州)와 디트로이트의 도시 소금광산

 

 

 

 

                                        [주요 소금광산과 북미에서 건조 소금 생산 현황]

 

붕어의 원산지가 어딘지를 이제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붕어의 원산지는 자연스럽게 발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곳은 다름아닌 오대호가 250만년전부터 1만년사이 플라이스토세(洪積世:Pleistocene)의 빙기 중 마지막 빙기 위스콘신빙기(Wisconsin glacial stage)에 형성된 일련의 호수들 중 마지막 단계의 호수에서 완전히 빙하권에 있었던 슈피리어호(Superior Lake)가 첫째이며 두번째는 미시간호(Michigan Lake)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동역사 지리고(地理考) 9
발해(渤海)
염주는 본디 발해의 용하군(龍河郡)이다. 옛 현은 4개로 해양현(海陽縣), 접해현(接海縣), 격천현(格川縣), 용하현(龍河縣)인데, 모두 폐지되었다.
《신당서》 발해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예(穢), 맥(貊)의 옛 지역을 동경(東京)으로 삼고는 부의 이름을 용원부(龍原府)라고 하였으며, 또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하였는데,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를 관할하였다.
○ 용원부의 동남쪽 바닷가는 일본도(日本道)이다.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속한 염주(鹽州)는 용하군(龍河郡)이라는 곳으로 발해 62주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다. 발해는 그 지역을 나누어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설치하였다.
○ 염주성(鹽州城)이 개주의 서북쪽에 있다. 《요사》 지리지를 보면, 염주는 개주에서의 거리가 140리로, 본디 발해에서 설치하였으며, 용하군이라고도 한다

 

목은시고 제24권 시(詩)
得西海按廉金震陽書。云送乾鹿。然鹽州鮒魚。又所欲者。因賦一首以寄。
서해 안렴사(西海按廉使) 김진양(金震陽)의 서신을 얻었는데, 노루포[乾鹿]를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염주(鹽州)의 붕어[鮒魚] 또한 먹고 싶은 것이기에 인하여 한 수를 지어서 부치는 바이다.

 

 

 

위 해동역사에 보면 발해에 본디 용하군(龍河郡)이라고 하는 염주라는 지방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를 동경이라 하였으며 또 용원부(龍原府)라 하였다.

고려말 대학자이자 문호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시집 목은시고(牧隱詩藁)에 염주(鹽州)의 붕어[鮒魚] 또한 먹고 싶은 것이기에 인하여 한 수를 지어 보낸다 한 기록에서 염주의 붕어 또한 맛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염주(鹽州)는 어딜 말하는 것일까?

염주(鹽州)란 바로 소금도시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미시간호 미시간주에는 소금도시 디트로이트(Detroit)가 있다.

본 글 파트 제일 위 그림지도를 보면 오대호 주변에 고드리치(Goderich), 디트로이트(Detroit), 오지브웨이(Ojibway), 클리블랜드(Cleveland), 페어포트(Fairport), 햄프턴코너스(Hampton corners), 랜싱(Lansing)등 7개의 소금 암맥광산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암맥은 표면 300m(1000 feet)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즉 도시 아래에 암맥이 널려 있다는 말이다.

The onondaga New York Salt Works (1654 - 1926)
Salt Production in Syracuse, New York ("The Salt City")and the Hydrogeology of the onondaga Creek Valley

미국 소금 역사를 보면 1654년 뉴욕의 오넌다가족(Onondaga族)들이 염류천들로부터 끓인 소금물에 의해 소금을 처음 제조하였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주민들이 1755년에 웨스트버지니아의 흰돌이 있는 곳의 뜻을 가진 캐너와카운티(Kanawha County)에서 소금을 제조하였고 루이지애나, Michigan, 오하이오주, 펜실베니아, 켄터키, 인디애나, 일리노이 그리고 미주리에서 1790년과 1860년 사이에 소금을 용광로 끊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882년에 미시간주(Michigan) 세인트 체어(St. Clair)에서 처음 암염 광상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곳은 디트로이트시와 근접한 곳이다.

 

 

                                   [The Giant Salt City 1200ft Beneath Detroit]

 

거대한 소금도시는 디트로이트 지하 365.76m에 있는 모습을 우리는 위 그림 디트로이트 암염갱(Detroit salt mine)이 떤 모습인지 알 수가 있다.

디트로이트 도시 지하에 이 암염갱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약 4억년전, 소금 예금들의 대단한 팽창은 디트로이트시를 포함하여 미시간(Michigan)호수 아래에서 암맥이 생성된 것이다. 오랫동안 침전물들은 증발하여 수평으로 소금 침대들로서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을 소금의 지하 도시라고 하는 것이다.
1914년까지, 암염갱은 매개월 8,000 톤의 암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과 미국에서 제일 큰 암염 산지 중의 하나가 도시의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이한 형상이다.

옛날 바다였다가 육지가 된 곳의 경우 지하에 소금이 굳어 돌이 된 소금광산이 생성된다.

이를 캐거나 광산 안에 물을 집어넣어 녹인 소금물을 채취하여 정제하는 방법이 있고 암염 역시 전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심지어 디트로이트처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암염광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광산 중 하나가 디트로이트시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어 만약 발해가 오대호를 영역내에 두었다고 한다면 염주(鹽州)는 디트로이트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7.마무리

 

 

 

위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근원지 분포지도 자료 Discover Life 의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유럽종, 유럽붕어라고 하는 학명 Carassius carassius, Linnaeus, 1758 의 분포지도가 보다시피 유럽대륙이 아니라 분명히 일리노이주(Illinois)에서 시카코 아리아(Chicago area)를 정확하게 가르키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이다.

이것은 유럽붕어의 근원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노이주에는 유럽이주민 독일인 즉 게르만인이 많이 거주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참붕어의 진실에서 보았듯이 한반도에서는 이제 재래붕어를 찾기엔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는 재래종이라고 하는 참붕어가 사라지고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신 우리가 실망할 것도 없이 그렇게 찾고 싶어하던 발해(渤海)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사실에서 전하는 붕어들을 만날 수 있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글쓴이는 이것을 재래종이라고 하고 싶다.
붕어를 본 사실에서 적어도 발해(渤海)는 오대호(Great Lakes)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동부에 연해주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동역사 속집 제9권 지리고(地理考) 9, 발해(渤海)편을 보면[신당서]발해열전을 인용하길동경 용원부의 동남쪽 바닷가는 일본도(日本道)이다.” 하였는바, 그 지역은 지금의 조선동쪽 경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것은 뉴잉글랜드와 일치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동아시아 역사(신중국, 한반도, 열도)에 들어나고 있는 정례화된 서술들은 다분이 아시아대륙에서 동아시아국가 만들기와 열도에 일본만들기에 일환이라 볼 수 있어 대비조차 하기 싫지만 현재 발해를 오대호를 중심으로 본다 할 때 일본의 본질은 바로 뉴잉글랜드의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대입하면 일본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본 블로그 글 "버지니아(Virginia)와 경주(동경)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5 "에서 뉴앨비언(New Albion)이라 주장했던 사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로서 사실상 일본은 거주지가 없이 해적신분으로 떠돌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종족으로서 현재까지 밝힌 바로는 서양인이라고 하는 해적들이 본래 거주한 곳은 남아메리카대륙 동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갈인들로부터 시작된 본래 거주지는 아프리카 서해안이라 해야 맞다.

솔직히 서양역사는 애초부터 동양역사만을 그대로 걷어내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곧 탐욕의 상징인 일본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가 않다.

때문에 영국역사와 일본역사는 근세기에 더욱 동질성이 많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발해의 연해주에 대해서 이미 2012.10.26에 올린 본 블로그 글
"연해주(沿海州)와 쌍성雙城)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http://blog.daum.net/han0114/17050581"에서 밝혔던 사실이지만 연해주(Maritimes)란 용어가 고유명사처럼 취급되는 바다의(of the sea)란 의미를 가진 마리팀즈(Maritimes)명칭 내에 바다와 접하고 있던 캐나다 동부 중 뉴브런즈윅(New Brunswick)주, 노바스코샤(Nova Scotia)주,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주가 고스란히 들어가 연합형태 영역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글쓴이를 한 번 놀라게 한바가 있다.

이를 적용할 때 이 글을 적용한다면 발해영역과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된다.

그러나 현재 서양사가 이야기 하는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이곳은 서양인들이 들이닥치기전에 근 3000년동안 아메리카원주민이라고 알려진 미크맥족(Mi’kmaq)과 맬리시트족(Maliseet)의 영토였다고 하고 이 평화로운 곳을 방해한 세력이 1524년에 프랑스의 왕에 의하여 의뢰받고 항해한 이탈리아 탐험가 지오반니 베라자노(Giovanni Verrazano:1485–1528)에 의해 발견되어 그때부터 프랑스 이주민들이 정착했다고 알려지며 그곳의 지명을 풍요한 곳(a place of abundance)이란 의미인 아카디아(Arcadia)라 했다는 기원이 있으나 글쓴이는 이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이것을 프랑스로 아카디(Acadie)라 하였다는 것은 맞지 않는 것으로 이 어언의 기원 역시 미크맥족(Mi’kmaq)의 언어라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의 역사는 뿌리가 없는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아카디의 본래 의미는 대서양 해안전체를 나타나는 명칭이라는 설도 있어 삼한역사와 깊이 관계되는 명칭이 아닌가도 한다.

문제는 프랑스인으로 알려지면서 역사와 그 구성원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1604년 프랑스인들을 구성으로 아카디아(Acadia)에 들어와 점점 늘어나고 이들을 아카디안이라 하였는데 프랑스와 인디안전쟁 ( French and Indian War:1754-1763)에서 승리한 잉글랜드에 의해 이원적인 주권으로 있던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수많은 아카디아[Acadia(French: Acadie)]주민들이 곳곳에서 체포되거나 살해되었고, 프랑스나 영국 또는 더 남쪽에 있는 식민지로 배에 태워져 추방되었다고 알려지며 그 이후 1763년부터 이 모든 지역이 잉글랜드에 의해 관리되었다고 근세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서양 해안 북쪽으로 옛날 그리스 명칭"Arcadia(Ἀρκαδία)"을 적용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 것은 근원을 말하는 것 같으며 이 명칭은 이상낙원인 유토피아(Utopia)의 뜻이 있다고도 하는데 문명에 손상되지 않는 자연속의 낙원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쨌던 지금까지 긴 밝힘의 길에서 보았다 시피 결코 발해는 발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북유럽군을 그대로 역사속에 간직하는 역사로서 통째로 증발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발해는 아마도 근세기 서양인에 의해 철저하게 역사가 조작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또 하나의 역사, 바이킹 역사까지 발해가 가지고 있을 확율이 높기 때문이다.

바이킹은 9세기에서 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는 것과 같이 발해역시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에 존속하며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라고 알려진다.
시기적으로 동일한 역사장소라면 중복되는 역사이다.

상당히 진척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다시 찾을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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