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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통음식 철갑상어알젓 캐비어(Caviar)
글쓴이:한부울
1. 뒤틀어진 조선의 생물기록
2. 철갑상어는 조선의 토산물 그리고 아스트라(Astra)
3. 철갑상어의 원산지
4. 우리사서에 등장하는 철갑상어
5. 조선 철갑상어알젓 캐비어(Caviar)
6. 마무리
1. 뒤틀어진 조선의 생물기록
조선전통음식이었던 철갑상어알젓이 캐비어(Caviar)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 토산물(土産物)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갑상어는 다른 숨겨진 역사생물처럼 과거 조선인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랑받았던 생물이라는 사실이 글쓴이에 의해 낱낱이 밝혀진다.
우리역사기록에서 전혀기록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역사농단세력에 의한 고의적인 누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누누이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본질의 삼한역사를 붕괴시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해야 할 이러한 사시들을 숨기고, 감춰놓았기 때문에 밝혀지는 사실마다 우리는 놀라워해야만 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만 하는 것들은 모두가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동안 벌어진 결과들이다.
글쓴이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들이 한낱 음모론(陰謀論)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참 진실의 역사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현상들을 비록 우리가 그 시대 살아 일일이 목격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연이치와 섭리에 의해 아직 살아 남아 있는 자취와 흔적들을 찾아내어 밝히고 있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해야 할일이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직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음모론 따위의 논제로 몰아 세워서는 안된다.
왕권 중심의 인본주의에 길들여진 기존 사람들은 물질욕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생소할 수밖에 없는 자본속성을 이용한 당시 고리대금업자들은 자본력을 독점하고 돼지같은 물질욕을 앞세운 파괴적인 공작, 물질을 추종하는 자들을 만들고 그들의 가식적인 교육으로 세뇌하였으며 검증할 수 없는 출판물을 찍어내고 사진을 조작하고 삽화를 그려 그것들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하면서 마치 천하의 진리인 것처럼 만들거나 또는 상식인 것처럼 꾸며 100년동안 그러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그 무슨 수로 그것들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오늘날 한반도 인들의 역사상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현재 교육자들은 물론이고 내노라하는 지식자들, 지도자들까지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인식하고 그것을 상식처럼 인정하는 세태에서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고 역사발전을 위한 명석한 판단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비록 진실이 눈 앞에 있어도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언제가는 모든 한반도인들이 역사 본질을 바로 볼 수 있겠지 하는 희망조차 없다면 더 이상 이런 수고스러움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식민지근성,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좀비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역사비전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서양인들이 하나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광분한 환경에서 무엇인들 온전하였겠는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글쓴이를 불필요한 강박관념에 의한 자기변명식의 피해의식이 강한자라고 할 것인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근세기에 자본을 잉태시키고 그것을 무기화한 서양인들의 출몰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오리엔트사상만을 애초부터 접한 우리들보다 인본철학이 한참뒤떨어져 민족성 결여로 나타나는 자신들의 열성적인 정체성을 대신 기독교를 앞세우게 된 것도 오직 유럽역사를 거머쥐고 우월적인 역사를 탈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오리엔트문명과 역사는 거대한 벽이었고 그들 전통성이 한낱 해적신분의 역사이었다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열등한 역사문제는 그들에게 시급한 현실문제로 다가갔을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근세기 역사분란은 그들의 의해 비정상적으로 생성된 난동이다.
또한 유럽사를 정점으로 그들만의 우월한 역사만들기에 집착한 것이 아마도 현실 문제를 그들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한 것일게다.
이미 이러한 진상들은 본 블로그 글 "삼한역사 말살의 도구로 사용된 삽화(揷畵)와 사진(寫眞)의 진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8"에서 풀어본 결과이지만 근세기에 서양인들이 그린 그림, 삽화, 그리고 나중에 사진 촬영물들은 그들의 근세역사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무소불위의 자본력을 가지고 역사를 농단하려드는 무도한 서양세력(고리대금업자를 포함한 부르조아)들의 광분했던 역사기록들은 우리에게는 암흑같은 역사 시대이다.
암흑이라 함은 기존 하나의 체제에서 비주류였던 그들이 주류역사를 없애버릴 수밖에 없었던 나름대로 그들이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해결해야 하는 현실문제라는 것이다.
옛 역사의 수많은 참 기록들이 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고 절단되고 망가졌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이 그들에게 장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근세기의 서양역사태동은 역사전쟁에서 이긴자의 역사라 할 수밖에 없고 그들입장에서는 응당한 전리품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나의 체제가 영위한 위대한 역사는 그냥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취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갈기갈기 찢겨 뜯기고 난 후 무엇이 남았을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라.
서양사를 들춰보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단어들이 있다.
선언(proclamation), 인디언에게 뺏을 수 있는 예약(indian reserve), 착각(misconception), 불확실한 권리(uncertain due), 매수한 구입(purchase), 할량(cession), 양도(ceded), 불평등조약(unequal treaty)등 따위는 전부 영토를 탈취하는데 필요한 알량한 단어들이다.
들춰보면 고려 속민이었던 여진어가 로망스언어군(Romance languages)으로 변이되어 나타난 기록들이다.
블로그 글 "여진어와 영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6"에서 밝혀 알았지만 여진어가 영어가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단어들이 기존역사에서는 생소한 언어이고 그들암의 언어로 족했으며 이러한 단어가 난발한데는 그들 나름대로의 열등의식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뻔뻔한 것이니 물론 숨기고 싶은 단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학자들은 물론이고 전문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들의 언어를 찾아 못 읽어서 환장이다.
때문에 이러한 단어들은 백과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대접받는다.
그만큼 세상이 서양인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가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또는 특별한 원인도 없이 사라진 사실들은 그러한 곡절과 정확하게 연결되는 것들이다.
이것을 나는 비정상적인 역사흐름이라고 한다.
한반도 역사가 스스로 말하길 삼한제국들이 본래 중국의 속국이었고 그로인해 의타심이 커진 나머지 나약해진 군왕이 난국을 주도했고 무절제한 파벌, 관리들의 붕당이 체제불안을 가속화시켜 붕괴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라고 1945년부터 아니면 1953년부터 지금까지 가르쳤으니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과연 일제식민시대가 무엇인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던 서양인들이 주도된 역사 시대이다.
그러함에도 전혀 능력이 없었던 현 열도일본인들에게 수난을 당했다고 1953년부터라 해도 초등학교 8년을 빼고 계산하면 현재 나이가 54세가 되는 것이니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시대의 년배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동란 시점에 남북한 병사들이 국문을 깨우친 사람이 약 25%라는 사실을 아는가.
나머지는 문맹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문이 아닌 다른 언어를 습득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한반도 사회체제 중추와 같은 계층들이 다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비상적인 범위에서 많이 배운만큼 머리가 그쪽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역사교육에 의해 지속적으로 세뇌가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참 진실의 역사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비정상적인 것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현재 누리고 있는 문명사회가 물질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하겠지만 따져보면 근본을 잃어버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스스로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누굴 탓하겠는가.
대다수가 이러한 물질침투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으니 비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론 초라하기 그지 없고 너덜너덜해진 우리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뿌려놓은 자본속성을 탓하기 전에 애초부터 악랄한 서양 적으로부터의 너무나도 허술하고 무방비한 역사적인 개념들을 개선하거나 추스리지 못했다는 것과 당시 하나의 체제의 주류였던 삼한인(三韓人)들의 시대적인 착오, 또는 분별력이 크게 모자랐다는 것은 후세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스스로 역사찾기와 함께 크게 반성할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서양인들이 과시하던 자본력이란 위력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삼한체제의 만다라 고급관리, 같이 부하뇌동하던 다수의 하급관리, 정치인, 교육자, 과학자, 철학자, 언어학자, 지리학자, 더하여 역사학자?까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도 이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세상이 빛처럼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시 급변하는 세계환경에 있었다고 총체적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바라건데 미래 우리가 새로운 역사개념으로 정신무장을 철저히 한다면 다시금 언제가는 이러한 시기와 기회가 꺼꾸로 서양인들이 아닌 우리에게 다시 반복되거나 회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을 희망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안타까운 우리의 처절한 역사를 보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희망의 날을 기다리지만 그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찬란하고 찬영했던 우리의 옛 역사를 복원하면서 나아가 추악한 물질이 아닌 인본주의를 앞세운 새로운 역사를 창출할 수 있다면 하는 글쓴이의 솔직한 바람이 아니겠는가.
혹 아는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학력을 가진 5000만의 우리가 단합하고 노력한다면 기필코 서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가 극복할 대상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 역사의 상대는 하찮은 열도인이 아니다.
열도인들은 그들도 정확한 역사를 모른체 스스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대신 그들은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리품을 챙겨받아 가지고 있다는 특혜가 있다.
마치 한반도를 식민한 구성원인냥 스스로 자만하고 건방을 떠는 것은 바른 역사에서 온당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처지도 어쩌면 우리와 같다.
천지를 모르고 건방을 떠는 열도정치인들을 보면 묘한 우스운 종족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리품은 결코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바보스러움이다.
서양인들이 아시아 일본을 만들어 믿게 끔 그들이 만든 전리품을 분배하여 아시아용으로 나누어 준 것을 마치 역사적으로 진짜인냥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들은 현명한 한반도인들이 언제가는 확실하게 깨우쳐 줄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우리가 비록 망가진 역사앞에서 선조에게 섭섭한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비난이나 질타할 수는 없는 이유는 삼한인이 위태롭게 생각될 때 선견지명이 있었던 옛 선인들이 우리에게 존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삼한역사는 서양인들이 극복의 대상으로 여길 만큼 매우 강대했던 것은 틀림없다.
삼한인들이 서양인들에게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우리의 선인들은 미리 예견하였음은 물론이고 병자호란, 임진왜란이란 뼈 아픈 경험을 통해 재차 발생할 수 있는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삼한인들에게 호소한 기록이 왜 없었겠는가.
북애자(北崖子)가 숙종(肅宗) 2년(1675)때 애민, 애족의 일념으로 후세에 남긴 기록이라고 하는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보면 당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였다.
그 첫 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 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인데,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 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萬里)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렵고,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생략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곧 바로 적의 병사가 멀리로부터 말을 몰고 와서 온 나라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고을을 불사를 것이니, 이것이 소위 지리적인 이익은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되는 바이다.
오호라!
이 몇 가지 일들 또한 어찌 쉽게 말처럼 되겠는가!
내가 동이의 사람됨을 자랑으로 여기기에 천하를 대함에도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내가 상고 시대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탄복하고 있지만,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어이하여 모두가 군사의 일에 힘을 써서 동쪽과 서쪽으로 적들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다시 부강의 강역으로 올려놓으려 하지 않는가?
오호라!
이 몇 가지 일들 또한 지금 비록 혀가 닳도록 말하지만 그저 죽은 아이 나이 헤아리기일 따름이니 다시 무슨 큰 이득이 있겠는가!
무릇 행운은 편중되지 않고 재주는 독점됨이 없기에 백성과 사물에게는 위난이 없을 수 없고 가문과 국가의 흥망은 반복됨이 무상하다 할 것이니, 지금 조선의 불행 또한 장래 행운의 실마리가 될 것인가?
내가 살펴보건대 인심은 분열되고 백성의 사기는 소침하니, 이에 붓을 던지고 길게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지금의 한 조각 진역(震域)과 한 줄기 유민(遺民)은 장차 어찌될 것인가!
장차 어찌될 것인가!
위 북애자(北崖子)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한 나라의 요건의 첫 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라 하여 당시 조선(朝鮮)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의 사실을 본 블로그 글 "조선강역(朝鮮疆域)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6 "에서 분명하게 밝혀본 사실이 있다.
몇 만리(幾於萬里)의 강역!
이것은 최소한 1만리 즉 약 4,000km 를 넘는다는 이야기다.
북아메리카대륙 동쪽 뉴욕에서 서쪽 센프란시스코까지의 직선거리가 4,152km 이다.
이러한 단어 문장은 한반도인들에게 아마도 꿈같은 이야길 것이다.
그러나 선조 삼한인들은 이러한 강역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역사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관할하고 소유하였던 것이다.
큰 나라로서 손색이 없었다.
본 블로그 글 "산양호(山羊湖)는 고트레이크(goat lake)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11"에서 밝혀본 사실도 다르지 않는데 조선 초기 문신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상소문에서 말하길 "본국은 안팎이 산과 강으로 되어 있어 幅員幾於萬里, 넓이가 기 만 리(里)이고, 兵一百萬 군사가 1백 만(一百萬)으로.."라고 상소한 사실들에서 결코 작은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함에도 선생께서는 그것이 온전한 것이 못 된다고 한 것은 삼한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화합을 잃고 본바탕을 망각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하였다.
때문에 선생께서 말미에 우리삼한역사의 전통적인 신(神)이시고 우주의 하느님이시며 불(火)을 주신 태양신인 환인(桓因)께 결코 미래 불안한 형국이 발생되지 않도록 간절하게 소원하고 소망한 것이다.
그러하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상황의 사실들은 이미 선생의 예언처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넓은 영토와 풍요한 지리적 여건이 충분했지만 삼한구성원들의 화합과 본 바탕을 망각한 것을 두고두고 질책하였다.
즉 관리가 금전에 팔리고 이윤에 눈이 어두웠으며 부패함과 소유욕에 빠진 것이다.
그렇듯 힘이 빠진 하나의 체제에서 서양인들은 쉽사리 조선 내부에 파고들 수 있었고 관리들을 부패하게 만들며 국민들을 현혹시켰던 것이 틀림없다.
이러함은 아무리 견고한 체제라고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밖에 없는 안으로부터 썩게 만드는 것은 아주 취약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구뿌려지는 금전에 의하고 물질욕에 의한 체제혼란 전염성은 고려천자도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삼한백성인들 어찌하겠는가.
상층부로부터의 혼란은 정치적인 혼란을 가중시켰을 것이고 마침내 체제의 분리를 조장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그들이 나서 미혹(迷惑)에 빠뜨리는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을 확산시켰으며 체제붕괴까지 부추기며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갖은 음모와 모략을 동원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프랑스대혁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체제전복을 노리는 것은 불온한 자본가들이 왕권을 무력화하고 독접적인 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금전을 동원하여 시민혁명을 일으켜 결국 제왕까지 교수형에 처하게 만드는 형국이었으니 북애자가 예언한 것처럼 하나의 체제 조선은 그길로 쑥대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근세기 프랑스대혁명이전 가장 핍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태인들은 이 시민혁명의 핵심이었다.
자본속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고리대금업으로 자본력을 점령하고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예수회를 앞세우며 그들만의 역사영역을 만든 것이 바로 오늘날 유럽역사이며 이것이 바로 세계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체제 역사가 그들에 의해 근세기에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충분히 유추할 수있다.
삼한역사는 하나의 체제를 구가하고 세계를 총체적으로 다스르렸기 때문에 서양인들의 극복대상이었으며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없어진 상황은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나의 체제란 바로 “동방의 밝은 등불, 또는 빛”으로 영명했던 코리아(COREA)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명칭은 비록 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어느싯점까지 자본력으로 장악한 서양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이것은 우리의 진정한 인본주의(人本主義:humanism)의 코리아가 아니었다.
서양인들은 어느날 갑자기 "COREA" 란 단어 대신 "KOREA" 를 만들었고 그것을 한반도에 던져 준 것이다.
일찍이 하나의 체제가 사용하던 "COREA"는 근세사 기록에서 조차 남겨두지 않고 사라지게 만든 것은 이미 서양세상이 되었다는 공식적인 확인이다.
자본력을 장악한 서양인의 코리아는 미국(美國)이고 영국(英國)이며 프랑스(佛蘭西)이고 러시아이며 독일이다.
이것들의 개체는 본래 국가가 아니라 고려영지의 작위를 가진 귀족들임을 알게 한다.
삼한(三韓)은 코리아로 상징되며 인도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가 읊은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 벽(narrow domestic walls)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시민혁명(French Revolution:1789-1794)의 주체가 유대인 부르주아(bourgeois revolution)라는 것은 이미 근세사에서 서양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프랑스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난 후 금융시장이 조성이 되었으며 그 금융시장을 지배한 세력들이 전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금융사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금융지주들임을 새겨들어야 할 문제들이다.
조선을 대신한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의 프랑스어 부르주아가 무엇인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다.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이러한 용어만 보더라도 당시 시민(市民)이라 함은 농민(農民)을 포함한 95%의 하층(무산계급:proletarian)국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한반도역사로 볼 때 이 부르주아들은 누구일까.
이것들은 이중복제 도플갱어(Doppelgänger)들이란 단어로 풀어볼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재까지 짐작되는 것은 동양사와 서양사를 따로 분리시켜 완성할 수 있는 요체로 이용된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도플갱어 역사의혹은 이미 본 블로그에서 4년전 2011.07.19 에 "사산왕조(Sassanid Empire)의 두여제와 신라(新羅)의 두여왕?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8 "이란 글을 쓰면서부터 주장한 논리이다.
현재 이러한 논리에 대해 여러각도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샴발라고구려님"과 "해피엔드님"이 본 블로그에 글을 지속적으로 연구물을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연구결과들이다.
그만큼 이중복제는 폭넓게 근세사에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한반도 역사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정조(正祖,재위:1776-1800)이후부터 1777년에 준동한 풍산홍씨(豊山洪氏)를 필두로 조선말기의 순조(純祖:재위1800-1834), 헌종(憲宗,재위:1834-1849)때는 세척세력인 안동김씨(安東金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등이 이와 같고 철종(哲宗,재위:1849-1863)시에는 풍양조씨(豊壤趙氏)가 이중복제의 인물임을 알 수가 있다.
그외 위 두 연구자가 찾는 것을 보면 수두룩하게 많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도 언제가는 검증에 의해 정립되어야 할 역사다.
지금까지 서양인들에 의해 파괴된 역사는 하나의 체제 역사다.
결국 서양세력들이 조선역사의 생물학적 근거를 파괴한 것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스스로 자아를 파괴한 것이지만 동서양 분리하니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들입장에서 목적을 이룬 것이다.
끊임없이 체제를 분리시키는 대립과 갈등을 야기시켜 시대말로 각종 충돌에 의한 발칸화(Balkanization)를 조장하고 조각조각 갈라지게 하면서 현혹과 미혹(迷惑)에 빠뜨리는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을 내세우게 하면서 수많은 국가를 생성시켜 좁다란 담 벽을 세우고 나누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무수히 건립된 국가들이라고 해야 한다.
안타까운 문제지만 그 결과 본래 고려, 조선생물은 영국 것이 되고 미국 것이 되었으며 프랑스 것이 되면서 동양이라한 아시아에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세우고 열도일본 것으로 만들고 신중국 또는 아시아러시아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나누어 다 가지고 난 후 한반도 코리아가 가지는 것은 물론 솔직히 서양인들에게 연구가치를 상실한 것들이다.
절대가치를 상실한 것, 보잘 것 없거나 형체도 분명치 않는 것, 서양인들의 생물학적 판단에서 시들한 것들만을 모아 우리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러니 세밀해야 할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 생물들은 도대체가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정도로 애매모호하게 이것도 같고 저것도 같은 식으로 엮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역사기록상황이 이번 주제 철갑상어기록실태이다.
조선(朝鮮)은 그야말로 좁다란 담 벽을 쳐 갈라놓은 한지같은 한반도에 박아 넣고 그곳이 삼한(三韓)본거지라고 가르치고 인식하게 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식민지역사이고 쪼그라들어 볼품없는 한반도 역사이다.
이런 역사에서 어찌 민족적 독창적인 철학이 생성될 수있고 빼어난 민족문화가 발아 할 수 있으며 미래역사를 어떻게 진보적으로 발전시킬 수가 있겠는가.
패배의식, 피해의식, 강박관념, 열등의식, 식민의식, 노예근성 따위가 움틀 수밖에 없다.
분명하게 이야기 하지만 삼한역사로 인해 우리가 느껴야 할 트라우마는 없다.
철갑상어 하나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길고 긴 서론이 필요하다는 자체가 서글픈 이야기다.
조선 토산물이었던 철갑상어라 할지라도 현재 역사상황과 서양인이 만든 분류체계에서 온전하게 그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 이 글을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갑상어가 조선의 토산물이라고 단언한 것은 바로 2009년에 "철갑상어(鱘:Sturgeon), 케비어(caviar)가 조선에도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604"라는 본 블로그 글에서 이미 밝혔던 바가 있다.
이때 주장의 글은 솔직히 철갑상어의 원산지라 하는 지금의 중앙아시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후 수많은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현 중앙아시아까지도 올바른 역사개념에 대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중앙아시아는 18세기의 서양지도를 보면 인디펜던트 타타르(Independent Tartary)라고 기재된 곳이다.
즉 이미 "독립한 타타르"라고 명기하고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하지만 지도제작시기에는 그들의 세상이 절대아니었다.
중앙아시아 또는 러시아 땅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조선인이라 하지 않고 고려인이라고 자칭, 타칭으로 불린다.
그것만 보더라도 조선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반도에는 조선인이 있었고 북쪽 두만강 국경만 넘으면 연해주인데 연해주에 한인을 고려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조선인들이 북쪽 두만강 국경만을 넘게되면 고려인되어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없다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대륙, 신중국 대륙, 한반도, 열도 등에서는 한국인들을 조선인이라고 지칭하길 좋아하고 북한을 스스로 북조선이라한다.
조선은 거대했지만 서양세력에 의해 내부로 부터 해체되었고 고려는 2차세계대전까지 존재하면서 서양세력들을 힘들게 했다는 논리를 적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도일본인들은 우리를 조선인이라 하면서도 고려인이라고 절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서양인들 대표언어 영어로 조선도 코리아 고려도 코리아, 신라도 코리아이다.
즉 삼한이 코리아이다.
일본인들에게 고려인은 신사를 둘 만큼 존경하는 의미가 있는 반면에 조선인은 경멸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의도적이라고 하겠지만 조선에 대해 반감을 가진다는 것은 서양세력들과 같다.
조선은 분명 서양세력들을 탄압했다.
무도한 해적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대륙에 아시아인들은 무엇이라고 불리었을까?
중국인(Chinese)이 아니면 코리안(Korean)이다.
인도인은 인디언과 발음이 같아 별도로 지칭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인도는 어쩌면 코리아이기 때문에 별도로 지칭하지 않았을 것인데 현재 인도아대륙인 인도의 근거지가 아니다.
좀 더 발전적으로 생각해보자.
중국인에는 서양인이 없었을까.
코리안들에게 서양인들이 없었을까.
북아메리카대륙의 코리안(Korean)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서재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아다시피 "K"(한반도)는 "C"(중앙아시아 또는 러시아)와 매우 다른 의미로 현 역사가 이야기 한다.
"김구"같은 인물은 "K"가 아니라 "C"와 관계되는 인물이 아닌가 한다.
이승만과 같은 개신교신자이면서도 적이었다.
중국인으로서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생활하다가 동아시아대륙 신중국으로 넘어들어 정치적으로 활동한 자들이 바로 손문,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등이다.
이들은 적어도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많은 역사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다.
신중국대륙이나 한반도, 열도에 존재한 조선인들은 역사에서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맞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이야기 하면 북아메리카대륙의 고려인(高麗人:COREAN)들은 한 때 버려진 민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가 고려인전체가 시련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려인이란 틀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을 나누고 보면 동양인들은 송환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반도에도 들어갈 수 없는 민족, 떠돌이 민족으로서 방랑인으로 개척지에서 온몸으로 싸워 개척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돌변한 것이다.
역사가 왜 중요한지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충분히 반성할 가치가 있다.
한반도에서 조선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어찌보면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의 수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한반도인들은 특별하게 잘못도 없이 서양인들의 찍힘을 받았고 경계에 대상이 되었으며 1948년부터 서양인들의 간섭과 감시속에서 끊임없는 분쟁과 내란으로 죽을 고생을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재임 :1933-1945)와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재임1924-1953)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것은 1937년에 있었던 고려인 송환문제였던 것 같다.
어째서‘ 당시 중앙아시아를 인간 쓰레기장’이라 했을까?
시대상황이나 서양인 시각에서 그렇게 불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지만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가 성행되었다는 사실과 본래 거주한 지역이 거의 북아메리카대륙이었을 알게 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서양인들에게 역사적인 의도성이 있는 지역으로 인간쓰레기장으로 불린 것은 실제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라고 여기기에 충분하다.
소위 영국인들이 근동가까이에 있는 이곳에서 러시아와 이권다툼을 벌렸거나 치열한 영역싸움을 사실화한 책이 바로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1930-2014)가 1990년에 출판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인데 자신이 알 수 없는 1800년 초부터 발생한 사실들을 1950년 처음 뉴욕타임지 기자생활을 하면서 20년간 더 타임스의 중동 및 아시아 특파원을 지내고 영국비밀정보원으로 활동한 경험과 피츠로이 매클린(Fitzroy Maclean)의 1949년 출판된 "동쪽으로 가는 길(Eastern Approaches)"를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시겼다고 하는데 참고했다는 매클린책 제목도 그냥 동쪽으로 가는 길임에도 기어코 "중앙아시아 여행기"라 하는 것도 기존 한반도에 맞춤의 서양방문자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이 피터 홉커스는 그레이트게임 이외 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f the Silk Road:1980)이란 책도 출한하였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레이트게임을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Najibullah)정권이 파슈토어(Pashto)로 번역했다고 한다.
즉 분리 독립의 조건이 홉킨스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다.
뒤늦게 인디펜던트 타타르(Independent Tartary)라는 단어와 정확하게 꿰맞춘 것이 된다.
이 사람은 이 한 질의 책으로 일약스타가 된 것은 물론이고 영국왕실아시아사무학회(Royal Society for Asian Affairs)로부터 감사훈장(Memorial Medal)까지 받았다고 알려진다.
제국주의 시기 대영제국은 인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영토 확장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고 러시아는 남쪽 부동항을 찾으려는 남하 정책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의 중앙아시아 내륙국들을 점령하고, 당시 페르시아로 진출하면서 영국과 충돌한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근동의 위치를 합리화 한 것이다.
하지만 본질의 사건장소가 이곳이 아닐 것이란 강한 추측이 글쓴이에게 존재하고도 남는다.
또한 '인간쓰레기장'이라는 명칭은 그들 역시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인도아대륙에 인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본 블로그의 글과 같은 논리로 보아도 그렇다.
글쓴이의 주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악라사(鄂羅斯)영역으로 대한제국의 8개연합국의 유민들이 미국과 협조국 소련에 의해 송환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분명한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송환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곳에 얼굴색이 검은 벽안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서는 미국인을 제외하고 기타 제 민족들을 추방시키기 시작하였던 것은 하나의 체제 조선이 붕괴되던 시기 1881년 이후인 1882년부터라는 사실을 본 블로그에서 수차이야기 하였다.
본 블로그 글 "북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사회주의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9"에서도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의 1차적색공포(赤色恐怖:Red Scare)기간을 1917년부터 1920년동안이라 하였는데 이때 사회주의자들의 추방령이 계속되었다.
또한 본 블로그 글 "아카시나무(洋槐,刺槐 Acacia)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2 "에서 아까시나무 속명을 명명한 프랑스 니스(Nice, France)출신의 마크 피티(Mark R. Peattle:1930-2014)는 특이하게 일본학(日本學:Japanologist)미국교수직에 있었는데 과거 이 사람의 선조가 1930년에 북아메리카대륙 시카코에서 쫓겨 추방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1937년 한국인의 강제이주 이후에 같은 방법으로 이주를 당한 민족들은 독일의 협조자라고 하였던 볼가 독일인(Volga Germans), 튀르크(Türk)의 크림 타타르족(Crimean Tatars), 이슬람의 체첸인(Chechens)와 인구시인(Ingush), 발카르인(Balkars), 몽골계 칼미크 인(Kalmyks), 그리고 동슬라브족의 우크라이나인(Ukrainians), 슬라브족 발트인(Balts)등, 시베리아로 소련정권이 그들을 퇴거를 시켰다고 하지만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이동된 것으로 동서양 분산책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이때 러시아가 소련화가 이루어질 때이며 이것을 위해 미국과 협조기 필요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부터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러시아 악라사땅에 거주하던 기존 인민들을 무차별 인간청소한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민족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송된 것인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송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할 때 북아메리카대륙에서 공산당을 추구하던 사회주의자들, 서부에 있는 이질적인 민족, 슬라브계 러시아인들조차도 이동되었을 것이란 예측을 할 수가 있다.
한인들의 강제송환기록을 찾아보면 소련에서 강제 이주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1937년 8월 21일이라 한다.
당시 소련내에 불안했던 정국을 알 수 있는 것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가 1937년 봄에 불어 닥친 소련 내에서 새로운 집단학살 또는 숙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1937년의 숙청은 3월 3일 스탈린이 볼세비키당(Bolsheviks:1903) 중앙위원회에 한 보고서에는 ‘당 사업의 부진과 숙적 트로츠키 및 다른 양면 주의자들을 청산할 방법에 대하여’로부터라고 기록된 사실은 이러한 추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자본주의보다 더 싫어했다는 숙적 트로츠키 제거를 빌미로 대한제국(고려인)잔여유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때문에 고려인이라고 하여 이것에서 제외될 수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 당시 소련이 자본주의 적들로부터 포위되어 있고, 소련 내에는 외국의 스파이들이 가득하다고 주장하면서 소련정부가 강제 이송한 고려인 18만명 중 충복했던 2500명의 고려지식인과 지도자들을 처형했다는 사실은 이를 뒤받침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코리언(corean)학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40"에서 2차대전 말미에 현재 러시아영토내에서 코리안들이 거의 6천만명 학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듯이 이와도 연결할 수밖에 없으며 수천만명의 타타르인들 행방과도 연결될 수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코리안학살을 서양인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로서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로 알려진 프란시스코 고야 (rancisco Goya:1746-1828)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의 학살(The Third of May)이란 제목의 그림작품 5점은 당시 나폴레옹에 의한 학살이라하지만 놀랍게도 동일한 파트의 제목이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1832-1883)의 1868년 작품 합스부르그 왕가(House of Habsburg)의 막시밀리안 대공인 '멕시코 황제의 처형(The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이란 작품도 그렇고 스페인 추상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노근리 학살'이라고 전제하는 1951년 작품도 코리안학살과 연계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으로 총체적으로 COREAN 학살이 서양인에 의해 진행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또한 가능하다.
이것은 아마도 라틴영토,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서부터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차지한 아시아대륙에서까지의 동양인과 서양인들을 가리지 않고 코리안(COREAN)들은 전부 학살에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명확한 증거들이다.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동양인 모습을 한 인물들은 전부 송환조치되었을 것이며 동양인이면서 별도로 취급받은 조선인들은 한반도로 속속히 들어올 수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처절한 식민지역사를 감내해야 한다는 조건이 그들에게 멍에처럼 지어졌을 것이다.
북미대륙서부와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 전체에서 당시 미국과 소련을 상대한 세력,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세력이 본 블로그가 주장하는 대한제국이라면 그리고 그 제국의 국명이 놀랍게도 "COREA"라면 사라진 이유가 전부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코리안들은 소련과 처절한 싸움을 하였을 수가 있다.
소련 사회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대한제국 구성원들은 외국 스파이고 소련의 암적인 존재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현재 근세사를 뒤덮고 있는 2차세계대전속에 소련과 독일전투장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이런 면에서 다시 해석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의문스러운 것은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한인들을 왜 중앙아시아 지역에, 그것도 인간쓰레기장이라고 하는 곳에 1937년 강제로 추방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1937년 7월 29일자 프라우다(Правда)지에는 "일본 비밀 정보부의 파괴적 행위”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일본은 불교승려나 어민 또는 한인이나 중국인으로 가장하여 국경지대와 연해주 내에서 소련에게 불리한 파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 불교승려, 어민, 한인, 중국인들을 마음대로 명령할 수 있는 주체가 과연 열도에 있는 일본인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절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지속적으로 밝혀야 할 이야기기 지만 글쓴이는 단언한다.
이것은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될 역사오류임에도 이것에 한반도인 전체가 역사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반도로 들어오는 조선인들의 조건적 서약이랄까 그것은 감내해야할 멍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 있는 러시아의 본질은 서양인 사회주의자들의 집합체일뿐이다.
그리로 레닌을 포함한 주도계층은 사화주의유태인들일뿐이다.
2. 철갑상어는 조선의 토산물 그리고 아스트라(Astra)
조선 성종14년(1483)에 조선을 찾은 명(明)나라 상사(上使)에게 어자젓[魚子鮓, 魚子醬]을 선물로 주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면 조선에서 철갑상어가 자연스럽게 토산물로 생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더하여 철갑상어가 한참 풍부했기에 잉여분을 소금에 절여 만든 식품 철갑상어 알, 젓(鮓,醬)을 궁궐식품저장소에 보관하면서 조선임금이 내방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었다고 보아야 맞다.
당연히 조선에는 철갑상어 알젓이 유명했을 것이고 찾은 내방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현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물론 지금도 철갑상어 알 절임식품을 캐비어(caviar)라 하고 이것을 세계인들에게 인기 있는 식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사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실록]成宗 158卷, 14年(1483 癸卯 / 명 성화(成化) 19年) 9月 20日(庚戌)
도승지를 시켜 상사·부사에게 젓갈 등을 주게 하다
○命都承旨李世佐, 贈上使銀口魚鮓ㆍ秀魚鮓ㆍ連魚鮓各四缸、魚子鮓ㆍ松魚鮓ㆍ鰱魚子鮓ㆍ刀稍魚鮓ㆍ蘇魚鮓ㆍ各三缸蝦魚兒子鮓六缸、全鰒魚鮓二缸、鹽水烹熟松茸二缸。 贈副使秀魚鮓三缸、銀口魚鮓ㆍ魚子鮓ㆍ松魚鮓ㆍ鰱魚鮓ㆍ蘇魚鮓ㆍ各二缸、鰱魚子鮓ㆍ全鰒魚鮓ㆍ刀稍魚鮓各一缸、鹽水烹熟松茸一缸。
도승지(都承旨) 이세좌(李世佐)에게 명하여, 상사(上使)에게 은구어젓[銀口魚鮓]·수어젓[秀魚鮓]·연어젓[連魚鮓] 각 4항(缸)과 어자젓[魚子鮓]·송어젓[松魚鮓]·연어알젓[鰱魚子鮓]·도초어젓(刀稍魚鮓)·소어젓[蘇魚鮓] 각 3항(缸), 하어아자젓[蝦魚兒子鮓] 6항(缸), 전복어젓[全鰒魚鮓] 2항(缸), 소금물에 삶아서 익힌 송이[鹽水烹熟松茸] 2항(缸)을 주고, 부사(副事)에게 수어젓 3항과 은구어젓·어자젓·송어젓·연어젓·소어젓 각 2항, 연어알젓·전복어젓·도초어젓 각 1항, 소금물에 삶아서 익힌 송이 1항을 주게 하였다.
위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은 도승지를 시켜 상사와 부사에게 임금이 젓갈을 주게 하였다는 설명이다.
위키만다린(Mandarin)사전에 보면 “魚子醬1.caviar”라 한 것으로 즉 어자장은 캐비어라고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철갑상어 알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캐비어(caviar)를 영어단어장에서 찾아보면 어류, 특히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것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이것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어자젓[魚子鮓, 魚子醬]이라 한 것이다.
鲊 [zhǎ] 젓-자 절인 생선.
酱 [jiàng] 장(醬). 콩이나 밀을 발효시킨 뒤 소금을 넣고 만든 조미료의 한 가지
음식 특히 생선 절인 것을 지금 대륙에서는 장(醬)이라고 하였지만 일찍이 조선에서는 자(鮓)라 했던 점이 다를 뿐이지만 모두 절인 생선을 말하는 것은 같다.
오히려 생선을 절인다는 것을 “자(鮓)”라고 쓰일 듯한데 지금 신중국 대륙자료에서는 갖은 채소를 절이고 보관한다는 장(醬)을 어자(魚子)에 붙여 놓았다는 것은 별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건대 식물이나 초류 절임음식은 장(醬)을 붙이고 어류는 자(鮓)를 붙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이 철갑상어[魚子]가 즐비하게 많이 산출되어 많은 량의 알로 젓을 만들 수 있었던 조선의 위치가 한반도는 분명 아니다.
이제부터 이 철갑상어를 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근원지를 세세히 따져보아야 한다.
철갑상어의 본 원산지는 모든 백과사전에서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지역으로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이란, 러시아, 카자흐스탄 연안의 카스피해(Caspian Sea)를 말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아스트라한(Astrakhan)이라는 고대도시가 있다고 알려진다.
지금은 러시아 연방에 있는 주, 카스피해 저지, 볼가강(Volga River)하류 삼각주에 위치해 있다.
옛 이름은 하드지 타르칸(Khadzhi-Tarkhan)으로 아스트라한(Astrakhan)의 어원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중앙 아시아산 카라쿨 양털을 말하는 것이며 아스트라한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러시아에 소개되었던 이 양털로 만든 모피를 '아스트라한 모피'라 하였다는데서 유래한다고 설명된다.
카라쿨은 '검은 호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까맣고 곱실거리며 윤기와 광택이 풍부하다는 뜻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느낌상 아스트라한 주위에 흑색 강이나 호수가 분명하게 연결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inland sea of central Asia, 1580s, from Latin Caspius, from Greek Kaspios, named for native people who lived on its shores (but who were said to be originally from the Caucasus), Latin Caspii, from a native self-designation, perhaps literally "white."
그러나 카스피해의 어원을 찾아보면 1580년경에 카스피우스, 카스피오스(Latin Caspius, from Greek Kaspios)라고 하는 코카서스 출신 원주민 이름이라 하였고, 다른 쪽에서는 라틴어 카스피(Caspii)는 흰 색(white)의 뜻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는 큰 짠 바다라고 한다는 설도 있는데 큰 짠 바다는 염해(鹽海)이다.
때문에 현 카스피해는 엄밀하게 따지면 흑해, 흑하 와는 상관이 없다.
염해(鹽海:salt sea)를 산스크리트어로 바갈라(婆竭羅)라고도 하는데 현재 사해(死海:Dead Sea)라고 알려진 지명이나 카스피해 같은 지명등은 유타 주(State of Utah)의 로키산맥 중의 와사치 산맥(Wasatch Mountains)서쪽 기슭에 염호(鹽湖:salt lake) 그레이트솔트 호(Great Salt Lake)가 아니면 지금은 사라진 선사시대호수 카후이야 호(Lake Cahuilla)가 있었다고 하는 캘리포니아 주 임페리얼 카운티(Imperial County)와 리버사이드카운티(Riverside County)의 콜로라도 사막(Colorado Desert)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카스피해가 아니라도 사해는 이곳에 있어야 맞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중동에 있어야 할 요르단 강(Jordan River)이 그레이트솔트호에서 흘러 유타호수(Utah Lake)로 들어간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기독교 성지들이 모인 곳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도 아스트라한이란 어원을 해석해보면 결코 중앙아시아 카스피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스트라한(Astrakhan)의 진짜 어원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 에스트론(astron)의 의미로 풀이되어 바로 별(星:star)이다.
Greek astron meaning star.ἄστρον
고대 스칸디나비아인(Norse)은 아스트라(Astra)를 신성한 힘(Divine strength)이라 하였다.
Latin Meaning: From astralis meaning of the stars, derived from the Greek astron meaning star.
라틴어는 아스트라리스(astralis)의 의미로 별이라 하였다.
astral(adj.) Look up astral at Dictionary.com"pertaining to the stars," c. 1600, from Late Latin astralis, from Latin astrum "star," from Greek astron (see astro-). Meaning "pertaining to supersensible substances" is from 1690s, popularized late 19c. in Theosophy.
아스트랄, 아스트론, 아스트라리스 등 오감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초감각적인 물질을 바탕으로 하는 것과 관계한다고 주관적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1690년부터 19세기까지의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이라는 것으로 그리스어의 신(神:theos)과 예지(叡智:sophia)의 합성어이며 신(神)으로부터의 계시를 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신(神)의 심오한 본질이나 행위에 관한 지식이나 신비적인 체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알게 되는 철학적·종교적 지혜나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straeus
noun
a Titan
Titan, husband of Aurora, and father of the winds, which are hence called
위 라틴사전에 나오는 자료인데 또는 아스트라이오스(Ἀστερία, Astraios)는 그리스 신화의 밤하늘의 신이며 그 이름은 별의 남자의 뜻으로 nominative(주격) -eus, -eī 붙어 단수, 복수의 남성적인 되는 형태임을 알 수가 있다.
바로 타이탄(Titan)을 말한 것이다.
타이탄(Titan)은 지구(Gaia)와 하늘(Ouranos)의 아버지 태양을 말하는 것이고 곧 태양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스타라한(Astrakhan)은 과연 어떤 의미의 지명일지 판단이 가능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동방(東方:Orient)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면 동방이 어딘가?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맞다.
본 블로그 글 "대서양(大西洋)과 대동양(大東洋)은 같은 바다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15"에서 확실하게 정의한 것이다.
하지만 근세기 영국인들의 장난에 의해 근동이라는 말이 생성되면서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의 인더스강(Indus River)서쪽에서 지중해연안까지 펼쳐져 있는 지역이라 하였고 현재 이란(Iran),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시리아(Syria), 고대의 가나안이 살던 팔레스타인(Palestine), 아르메니아(Armernia), 소아시아(Anatolia) 및 아라비아(Arabia)와 이집트(Egypt)를 포함한 지방을 가리킨다한 것이다.
물론 근동(近東)은 아나톨리아와 레반트(Levant), 메소포타미아 등 유럽과 가까운 서(西)아시아 지역으로 정해지고 말았다.
덕분에 한반도가 극동(極東)이 된다.
극동이라 함은 동쪽의 맨 끝을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유럽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적 지칭이다.
유럽인들은 결국 천지방향까지 제멋대로 꾸며 놓은 것이 된다.
아스타라한(Astrakhan)은 동방한(東方韓)으로서 바로 동방의 천자가 있었던 지명일 가능성이 높고 삼한인들이 태양신 환인이 계시는 땅으로서 명명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아스트라한은 조선 영역 내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하나의 역사 지명을 파악하는데도 수많은 노력과 열성이 필요하다.
서구문화가 우리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상황에서 이와같이 찾지 않으면 찾을 길이 없다.
역사 흐름 자체가 서구, 즉 유럽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지식자들 어느 누구도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식이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을 막는 지식은 독과 같으니 알려 하지 아니 한만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이 동아시아국가들을 지칭하는 오리엔트 명칭으로 인식되고 모든 동양역사와 문화를 그곳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것은 그렇게 하여 빈공간이 생긴 곳에 과거 하나의 체제에서 비주류였던 그들의 자리가 생성된 이치이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이야긴가.
서양인들은 기록마다 이렇게 말한다.
동양이란 낯선 땅에 도착해서 동쪽(Orient)방향을 찾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하면서 그곳이 지금의 동아시아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한 이야긴가.
noun
the Orient, a.the countries of Asia, especially East Asia.
(formerly) the countries to the E of the Mediterranean.
verb (used without object)
to turn toward the east or in any specified direction.
adjective
Archaic. rising or appearing, especially as from below the horizon:
the orient sun.
1350-1400; Middle English < Middle French < Latin orient- (stem of oriēns) the east, sunrise, noun use of present participle of orīrī to rise; see-ent
위 영어자료를 보면 잡다한 이야기가 많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오리엔트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오류를 범했다.
글쓴이가 알기론 서양인들 사이에도 이 오리엔트개념이 다시 재 검토상황이 있었는데 네오팍스들에 의해 무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유럽대륙을 서양인들의 본거지로 만들기 위해 이 오리엔트라는 명칭은 매우 중요했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로마시대부터 동방(東方)을 지정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것을 근세기에 서아시아와 이집트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켜 근동이라 하면서 오늘날 유럽역사를 잉태하고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오리엔트는 13세기(1350-1400)에 프랑스고어에서 영어로 이입된 단어로서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기 때문에 고대 서양인들은 해가 뜨는 방향, 즉 지중해 동쪽 지역을 ‘오리엔스(oriens)’라고 불렀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지중해는 어디에 있는 지중해인가.
이것은 오늘날 근세사를 떠 바치고 있는 한계적 모순이라 할 수박에 없다.
이러한 오류를 바탕으로 근세기에 약삭빠른 영국인들은 근동(近東)을 만들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본 극동(極東)을 동아시아로 지정하면서 태고적부터 마치 동양인들만 오리엔트인 것처럼 인류역사본질의 의미를 크게 축소시켜버렸다.
3. 철갑상어의 원산지
철갑상어의 분류체계를 살펴보면 동물계(動物界:Animalia), 척삭동물문(脊索動物門:Chordata), 조기어강(輻鰭魚綱:Actinopterygii), 철갑상어목(鱘形目:Acipenseriformes), 철갑상어과(鱘科:Acipenseridae)에 속한다.
이 철갑상엇과(鱘科:Acipenseridae)에는 총 29종(種)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서 다시 아과(亞科)로 나누어지는데 철갑상어아과(鱘亞科:Acipenserinae)와 대패철갑상어아과(鏟鱘亞科:Scaphirynachine)로 나누고 다시 철갑상어아과(鱘亞科:Acipenserinae)에서 황속(鰉屬:Huso)과 철갑상어속(鱘屬:Acipenser)으로 나누며 황속(鰉屬:Huso)에는 줄철갑상어(Huso dauricus)와 지중해줄철갑상어(Huso huso), 2종(種)이 있고 철갑상어속(鱘屬:Acipenser)에는 19종(種)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한문용어로 황(鰉)이라 쓰며 속칭(俗名) 황어(鰉魚)라는 것은 ‘용상어’라고도 하고 ‘줄철갑상어’라고도 하며 신중국자료에는 달씨황(達氏鳇:Acipenser dabryanus) 즉 양쯔 철갑상어(Yangtze sturgeon) 또는 ‘한국 철갑상어’ 또는 ‘칼철갑상어’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한국철갑상어라는 명칭은 참 고민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도 다 잘아시다시피 한반도에는 철갑상어가 애초부터 서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멸종된 ‘한국종(種)철갑상어'를 복원한다고 2009.05.03 일자 충남도정뉴스에 기사화되어 있는것을 보면 어쨌던 복원연구가 뒤늦게라도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국철갑상어는 중국철갑상어(中華鱘:Acipenser sinensis)라고 한다.
도무지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길이 없다.
한반도 생물학 사정이 다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둥, 마는 둥이다.
양쯔 철갑상어(Yangtze sturgeon)의 최대 길이는 2.5m에 체중 200-500kg까지 성장한다고 알려진다.
중국철갑상어(中華鱘:Acipenser sinensis)는 평균수명 50~60년이며, 2~5m크기에 200~500kg으로 성장한다 하였으며 최대 크기는 체장 5m에 체중 450kg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나타난다.
실제로 황어(鰉魚)나 ‘용상어라고 하는 것은 최대 5.6m 길이의 최대 1,000kg 이상의 무게를 가진 철갑상어를 이르는 것이라고 19세기말, 20세기초에 발견된 표본으로 그렇게 알려진다.
1926년에 잡힌 한 벨루가철갑상어는 몸무게가 1000kg 에 이르며 180kg 의 캐비어와 688kg의 고기를 제공했다고 알려진다.
1892년에 오래곤주에서 잡힌 800kg의 흰철갑상어가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규모가 되었기에 옛날부터 황이라 하여 용철갑상어라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현재로서 전부 유라시아를 원산지로 하고 있는 칼루가와 벨루가 딱 2종이 있는 Huso 속(屬)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칼루가(kaluga)는 러시아 모스크바 서남쪽에 위치한 칼루가(Kaluga)지명과 동일하며 황속(鰉屬:Huso)의 1종(種)의 학명을 “Huso dauricus Georgi,1775”라 하고 이를 황(鰉)이라 하였으며 칼루가철갑상어(Kaluga Sturgeon)라고 하면서 또는 시베리아철갑상어(Siberian great sturgeon)라 한다.
나머지 한 종이 바로 벨루가(beluga)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은 이름조차 큰 철갑상어(Great Sturgeon)라 하여 학명 Huso huso(Linnaeus,1758)으로 나타나는데 지중해줄철갑상어(Huso huso)와 결부시켜 유럽생물학자 린네(Carl Linnaeus:1707–1778)가 학명을 붙인 것으로 흰철갑상어(Beluga sturgeon)라고도 하며 별칭으로 유라시아의 큰 철갑상어(genus of large sturgeons from Eurasia)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현재 유라시아나 시베리아를 포함한 러시아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황속(鰉屬:Huso)이라 하는 이 후소(Huso)속명(屬名)은 거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활동한 독일 동물학자 요한 프리드리히 브란트(Johann Friedrich von Brandt:1802-1879)에 의해 늦은 시기 1833년에 명명된 것이다.
특히 시베리아철갑상어라고 하는 칼루가의 서식처를 신중국 자료에는 흑수(黑水) 흑룡강(黑龍江)과, 아르군강(额尔古纳河:Argun River), 실카강(石勒喀河Shilka River), 오논강(鄂嫩河:Onon River)이라 하여 아시아 동북지역에 넣고 있다.
오논강은 1410년-1411년에 징키스칸의 옛 땅이라고 하는 악눈강(鄂嫩江)임을 알 수 있는데 이 강 상류평원까지 진격하여 번야스리(本雅失里)와 아루타이(Arughtai)의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하는 곳이다.
즉 악라사(鄂羅斯)의 땅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 흰 철갑상어라고도 불리는 벨루가(Beluga)는 뛰어난 품질의 캐비어(Caviar)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도 제일 비싸고, 알의 크기가 크고 맛이 뛰어나다고 알려지며 알 색깔은 연한 회색이나 진한 회색으로 나타난다고 되어 있다.
valuable source of caviar and isinglass; found in Black and Caspian seas
물론 이것은 지중해줄철갑상어라 하는 것처럼 서식하는 곳을 지중해와 가까운 지금의 흑해와 카스피해(Black and Caspian seas)라 하고 있지만 은근히 유럽산임을 강조한다.
하여간 신중국에서는 시베리아철갑상어라고 하는 줄철갑상어(Huso dauricus)를 황(鰉)이라 하고 또는 용철갑상어라고 하며 현재 전부 극동지역인 동북아시아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러시아나 신중국이나 이렇듯 철갑상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때문에 이러한 혼란을 정리할 수 없을까?
더 깊숙이 따져 들어가보면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하나 발견되는데 철갑상어아과(鱘亞科:Acipenserinae)에는 앞에서 설명을 한 2종(種)의 황속(鰉屬:Huso)과 각 종 이름의 19종(種)의 철갑상어속(鱘屬:Acipenser)이 있지만 북아메리카대륙에 대부분 서식하고 있는 철갑상어속(鱘屬:Acipenser)명들을 유럽생물학자 린네가 1758년에 명명했음을 알 수 있지만 오히려 유라시아가 원산지인 후소속(Huso屬)을 명명한 시기가 한참 늦은 1833년이며 이를 명명한 사람이 독일사람이라고 하지만 요한(Johann)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아 유럽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분류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의 원산지를 분리하는 문제에서 생긴 발단이라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소위 유라시아라고 하지만 어쩌면 급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 블로그에서 시베리아의 본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이 주장에서 보면 "원래 시베리아라고 하는 전체지역을 백리아(伯利亚)라 지칭했다면 서쪽(서백리아)과 동쪽(동백리아)이 있었다고 예견되는 단어이다. 이 단어 의미를 좀더 확대시켜 보면 분명 서백리아를 시베리아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동백리아는 베링해(Bering sea)를 넘어 알레스카와 지금의 케나다 지역이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백리아(伯利亚)는 아시아대륙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글쓴이의 주장과 다르게 무조건 서백리아를 시베리아라고 읽어 동백리아와 서백리아라는 본래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동시베리아는 사라지고 없다.
본질적으로 서백리아 즉 시베리아는 위 지도에 서쪽 파란 원을 그린 지역부분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시베리아는 서쪽으로 치우친 곳을 지칭한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버드나무 근원지를 소재로 한 본 블로글 "버드나무(朝鲜柳:Salix koreensis)모순과 시베리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2"에서 위 그림과 같이 나름대로 확증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베리아는 북아메리카대륙 북쪽 툰드라지역전역을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
그 지역은 바로 본래 용철갑상어의 서식처라고 할 수 있는 알래스카(Alaska), 유콘영토(Yukon Territory), 노스웨스트준주(Northwest Territories), 누나부트준주(Nunavut), 서스캐처원주(Saskatchewan), 매니토바주(Manitoba), 온타리오(Ontario)를 포함한 허드슨베이(Hudson Bay), 퀘벡(Quebec), 뉴펀들랜드 래브라도(Newfoundland and Labrador) 지역이어서 시베리아라 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수십번에 걸쳐 확인된 사실이다.
기존 철갑상어의 분류체계에서 또 하나 의구심을 낳게 하는 것은 철갑상엇과(鱘科:Acipenseridae)에서 철갑상어아과(鱘亞科:Acipenserinae)와 갈라지는 대패철갑상어아과(鏟鱘亞科:Scaphirynachine)에 대패철갑상어속(鏟鱘屬:Scaphirhynchus)과 의산(擬鏟)철갑상어속(擬鏟鱘屬:Pseudoscaphirhynchus)으로 나뉘고 대패철갑상어속(鏟鱘屬:Scaphirhynchus)은 거의가 절멸상태에 있지만 아메리카대패철갑상어(Scaphirhynchus albus:Forbes and Richardson,1905)와 삽코철갑상어(shovelnose sturgeon)의 학명 "Scaphirhynchus platorynchus(Rafinesque, 1820)"는 현재 미주리(Missouri)와 미시시피강 하류(lower Mississippi river)에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중국 자료를 따라 의산(擬鏟)철갑상어(擬鏟鱘屬:Pseudoscaphirhynchus)라 하였는데 이것은 중앙아시아철갑상어로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근세기에 분류체계가 급조되면서 비정상적으로 구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짧은꼬리철갑상어(短尾擬鏟鱘:Pseudoscaphirhynchus hermanni)와 아무다리야 철갑상어(絲尾擬鏟鱘:Pseudoscaphirhynchus kaufmanni), 시르다리야 철갑상어(鍚爾河擬鏟鱘:Pseudoscaphirhynchus fedtschenkoi) 등 3종(種)은 거의 지역적으로 구분이 불가한 것이며 이것들은 근동이라는 이상한 용어의 모순과 같이 자리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지중해라는 지명이 어떻게 유럽인들에게 이용된 것인지 그래서 지중해줄철갑상어(Huso huso)가 중앙아시아철갑상어들과 궤를 어떻게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래서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이 근세기에 근동이라 하고 오리엔트라고 하는 지역을 어떤 식으로 깔아놓았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타이탄(Titan)은 지구(Gaia)와 하늘(Ouranos)의 아버지 태양을 말하는 것이고 곧 태양의 신을 말하는 어원의 지명인 아스타라한(Astrakhan)이기때문에 서양인들의 주장을 따르면 결국 동쪽을 고스란히 잃어버리는 경우가 된다 할 것이다.
이 아스트라한은 현재 카스피해 저지, 볼가강(Volga River) 하류 삼각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알려지는 것도 전혀 어원으로 증명되지 않는 현 카스피해 기슭으로부터 90km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주장에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이곳 카스피 해에서 잡히는 캐비어(魚子醬,caviar)의 가공지라고 자료 역시 근세기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고 전통적인 역사성을 증명할 길이 없다.
덧붙여 이야기 한다면 중앙아시아철갑상어속명을 명명한 사실에서도 북아메리카대륙을 원산지(native to North America)로 하는 대패철갑상어(鏟鱘屬:Scaphirhynchus)는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요한 야콥 헤켈(Johann Jakob Heckel:1790-1857)에 의해 1835년에 명명되었고 중앙아시아를 원산지(native to Central Asia)로 하는 의산(擬鏟)철갑상어(擬鏟鱘屬:Pseudoscaphirhynchus)는 아스트라한(Astrakhan)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아의 동물학자로 활동한 알렉산드르 니콜스키(Alexander Mikhailovich Nikolsky:1858-1942)에 의해 늦은 시기 1900년에 명명한 사실을 참고할 때 근원적으로 한 참 뒤진 것이므로 원산지 파악에서 북아메리카 철갑상어에 밀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근세기에 중복되는 것을 떼내고 하나를 급조했을 가능성을 예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중앙아시아(Central Asia)는 본래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한 지역임을 상시해야 이것이 본 정답에 이른 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단순하게 지금의 북아메리카대륙 미시시피강을 중앙아시아라고 할 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무수한 지류를 생각 할 때 가능성이 있으며 분명한 것은 그 동쪽 태양이 떠 오르는 곳, 오리엔트에 아스트라한이 있었다고 보아야 정확한 역사이고 잃어버린 동쪽을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Acipenserinae(亞科)
(1)Huso 속(屬)
Huso dauricus (Georgi, 1775) 칼루가(kaluga), Siberian great sturgeon
Huso huso (Linnaeus, 1758) 벨루가(beluga), Great Sturgeon
(2)Acipenser속(屬)
Acipenser baerii J. F. Brandt, 1869
Acipenser baerii baerii J. F. Brandt, 1869 (Siberian sturgeon)
Acipenser baerii baicalensis A. M. Nikolskii, 1896 (Baikal sturgeon)
Acipenser baerii stenorrhynchus A. M. Nikolskii, 1896
Acipenser brevirostrum Lesueur, 1818 (Shortnose sturgeon)
Acipenser dabryanus A. H. A. Duméril, 1869 (Yangtze sturgeon)
Acipenser fulvescens Rafinesque, 1817 (Lake sturgeon)
Acipenser gueldenstaedtii J. F. Brandt & Ratzeburg, 1833 (Russian sturgeon)
Acipenser medirostris Ayres, 1854 (Green sturgeon)
Acipenser mikadoi Hilgendorf, 1892 (Sakhalin sturgeon)
Acipenser naccarii Bonaparte, 1836 (Adriatic sturgeon)
Acipenser nudiventris Lovetsky, 1828 (Fringebarbel sturgeon)
Acipenser oxyrinchus Mitchill, 1815
Acipenser oxyrinchus desotoi Vladykov, 1955 (Gulf sturgeon)
Acipenser oxyrinchus oxyrinchus Mitchill, 1815 (Atlantic sturgeon)
Acipenser persicus Borodin, 1897 (Persian sturgeon)
Acipenser ruthenus Linnaeus, 1758 (Sterlet)
Acipenser schrenckii J. F. Brandt, 1869 (Japanese sturgeon)
Acipenser sinensis J. E. Gray, 1835 (Chinese sturgeon)
Acipenser stellatus Pallas, 1771 (Starry sturgeon)
Acipenser sturio Linnaeus, 1758 (European sea sturgeon)
Acipenser transmontanus J. Richardson, 1836 (White sturgeon)
Scaphirynachine (亞科)
(1)Scaphirhynchus속(屬)
Scaphirhynchus albus(S. A. Forbes & R. E. Richardson,1905)pallid sturgeon 절멸
Scaphirhynchus suttkusi(J. D. Williams & Clemmer,1991)Alabama sturgeon 절멸
Scaphirhynchus platorynchus(Rafinesque,1820)shovelnose sturgeon,
(2)Pseudoscaphirhynchus속(屬) 중앙아시아에 제한되어 있다.
Pseudoscaphirhynchus fedtschenkoi (Kessler,1872)Syr Darya sturgeon
Pseudoscaphirhynchus hermanni(Kessler,1877)dwarf sturgeon
Pseudoscaphirhynchus kaufmanni(Kessler,1877)Amu Darya sturgeon
우리가 과거 배운 것들이 엉터리라고 하여 역사 앞에서 그것을 이유로 여태 무지스러움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정확하게 알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과사전을 보면 철갑상어는 몸의 길이가 보통1.5m 정도라고 하며, 등은 잿빛을 띤 청색이고 배는 흰색이며 주둥이가 뾰족하게 나왔다고 되어 있어 주둥이 뾰쪽하게 나온 것과 사이드에 굳뼈들이 줄지어 있는 것은 다른 물고기에 비해서도 특이한 형태의 어류가 틀림없다.
이런 특별한 물고기는 분명 옛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여러종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때문에 옛 사람들은 이를 특이하게 지칭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정약전(丁若銓:1760-1816)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주둥이는 길고 뾰쪽하다 하여 '총절입'이라 하였고
한어자료에는 이를 아름다운 비늘 상어라 하여 금린사(錦鱗鯊), 뾰족한 것을 강조한 심어(鱘魚), 몸집이 거대하여 용상어라 하면서 심황(鱘鰉)이라 하였을 것이고, 몸빛의 등 쪽이 푸른 잿빛이라 하여 옥판어(玉版魚), 옆으로 납작하다하여 전어(鱣魚), 굳은 뼈질비늘판이 줄이 있다 하여 줄철갑상어, 빛을 머물고 있다 하여 함광(含光)이라 한다든지, 본초강목에는 홀연히 사라졌다 없어졌다 하여 홀어(忽魚), 누른 색깔이란 황어(黃魚), 심황이나 같은 황어(鰉魚), 그리고 우리말 경남방언에 “호랭이상어”라고 하여 전염병 천연두를 호란이라 한 것과 같아 공포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렇듯 다양하게 불리었다는 것은 그 만큼 종류(種類)가 다양했다는 말이 된다.
또한 범위가 넓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실제로 현재 분류된 것을 보면 상당히 많은 이름의 철갑상어가 존재한다.
총절입이나 호랭이상어라는 명칭은 순 우리말로서 어민들의 삶이 내포된 명칭이라 할 때 근원지 파악에서 이미 우리역사생물임이 밝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역사진실을 밝히는데 느낌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때문에 글쓴이가 일일이 살펴보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도 우리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마구 이렇다 저렇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리는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확증이 필요하고 뒤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논리적이지 않고 과학적인 검증이 없다면 한반도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만 부채질 할 뿐이다.
글쓴이 역시 수많은 심증적인 결론이 있어도 내뺃지 못하는 것은 이와같은 연구자들의 신중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철갑상어 역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미국의 DNA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분포지도를 참고하면서 중요종들의 원산지 파악에 들어간다.
19종 중 위에 것을 제외한 것 중에 1817년 이전 명명된 학명을 찾아보니 딱 3종이다.
이것은 경험상 거의 원산지 종에 들어갈 것이다.
[1]Acipenser ruthenus Linnaeus, 1758 (Sterlet)스탈렛철갑상어(小體鱘)
[2]Acipenser fulvescens Rafinesque, 1817(Lake sturgeon)호수철갑상어(湖鱘)
[3]Acipenser sturio Linnaeus, 1758 발틱철갑상어(鱘:European sea sturgeon)
그리고 1817년 이후 명명된 학명 중 우리역사와 관련이 잇있는 종 6종을 선별하였고 이것들 중에서 대서양철갑상어와 흰철갑상어를 관심있게 보아야 할 근원종이 아닌가 한다.
[4]Acipenser stellatus Pallas, 1771 스타리(starry) 철갑상어(閃光鱘:Starry sturgeon)
[5]Acipenser oxyrinchus oxyrinchus Mitchill, 1815 (Atlantic sturgeon)대서양 철갑상어(尖吻鱘)
[6]Acipenser oxyrinchus desotoi Mitchill, 1815 (Gulf sturgeon)만(灣)철갑상어(德氏尖吻鱘) [7]Acipenser transmontanus J. Richardson, 1836 (White sturgeon)흰 철갑상어(高首鱘)
[8]Acipenser medirostris Ayres,1854(Green sturgeon)녹색 철갑상어
특히 주걱철갑상어류(Paddlefish)북아메리카의 미시시피강에서 사는 주걱철갑상어(Polyodon spathula, Walbaum,1792)와 중국양자강에서 사는 중국철갑상어(Psephurus gladius E. von Martens,1862) 2종(種)이 있다는 것에서도 하나종을 두 개 종으로 나누려 했을 것이란 예측이 강한 대신 이 주걱철갑상어는 상당히 오래전에 화석으로 발견된 것이어서 역사성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현 신중국대륙의 주걱철갑상어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이름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되지 않을까 한다.
[9](가)Polyodon spathula, Walbaum,1792, (나)Psephurus gladius E. von Martens,1862
[1]Acipenser ruthenus Linnaeus, 1758 (Sterlet)
小体鲟(学名:Acipenser ruthenus)为鲟科鲟属其中一個種。分布于前苏联以及额尔齐斯河流域等
科學分類
界: 动物界 Animalia
門: 脊索动物门 Chordata
綱: 輻鰭魚綱 Actinopterygii
目: 鲟形目 Acipenseriformes
科: 鲟科 Acipenseridae
屬: 鲟属 Acipenser
種: 小体鲟 A. ruthenus
二名法
Acipenser ruthenus Linnaeus, 1758
교배종(Sturgeon hybrids)
Sterlet x Beluga (Huso huso) = (Bester)
Sterlet x Siberian [Russian] Sturgeon (Acipenser gueldenstaedtii)]
Sterlet x Diamondback
Hybrids are hardier than their parents
스텔렛 철갑상어(小體鱘)야말로 철갑상어의 근원지 파악이 반드시 필요한 종이다.
왜냐하면 이 종은 교배종이라 하여 벨루가[Beluga (Huso huso)]를 그속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 뿐만아니라 이 교배종에는 시베리아철갑상어도 존재하는데 다이아몬드철갑상어(Diamond sturgeon) 또는 러시아철갑상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마도 옥판어(玉版魚), 함광(含光)이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아래 분포지도를 보면 모두 북아메리카대륙 툰드라(Tundra)지역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동시베리아라고 알고 있는 곳과 본 블로그에서 압록강이라 했던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상류,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상류와 대호(Great Lakes), 그리고 호수 위니펙(Lake Winnipeg)에서 서스캐처원(North Saskatchewan)과 북쪽으로는 허드슨 베이(Hudson Bay)저지대까지의 분포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스텔렛은 거대한 철갑상어가 아니라 철갑상어의 일반적인 유라시아 종으로 작은 어종 중의 하나라고 하여 오히려 교배종들이 부모보다 더 거대하다는 부첨적 영어자료가 나타난다.
그것은 어딘가 모르게 헛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종은 상대적으로 3피트(91.44cm)를 초과하지 않는 작은 것으로서(relatively small), 다른 종에 비해 체고가 조금 높고 짧은 꼬리에 폭이 좁은 삐죽한 코를 가지며 무게 16kg의 보통길이 100~125 cm 정도로서 22~25년의 수명을 가지고 산란은 4월에서 6월초까지 15000~44000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철갑상어에서 양질의 캐비어와 아교재질인 부레풀(Isinglass)을 얻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 흑해(Black Sea), 아조프해(Azov Sea), 카스피해(Caspian Sea), 예니세이강 동쪽에서 시베리아하천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강에서 성장한 다음 바다에 내려가서 번식하는 강해성(降海性) 개체군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멸종했다고 하고 있으며, 현재는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하천 회유성(回遊性)의 개체군만이 생존하고 있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종 스탈렛(sterlet)이지만 양질의 부수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고기, 캐비어(Caviar), 부레풀(Isinglass)등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남획, 오염 등에 의해 개체가 줄어들었고 현재 국제자연보호연합에서 위기 종으로 정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감안하여 러시아에서 1869년 필리프 오브샨니코프(Filipp V. Ovsyannikov)가 처음 인공적인 종묘생산을 시작했다고 알려지는 것도 있다.
이러한 종묘생산은 특히 아시아대륙 러시아, 신중국, 중앙아시아제국가들이 생성된 시기이후 비로서 1950년에서야 치어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그대로 믿기가 힘든 것이다.
왜 러시아 생물학자들은 특히 다른 철갑상어에 비해 작은 종 스탈렛을 종묘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의문이 없지 않는 것이다.
만약 스탈렛의 원종이 거대한 지금 러시아나 유라시아대륙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원종을 복원시키기 위해 애를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것은 현실적인 지형환경의 문제가 수반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글쓴이의 판단은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에서 벨루가를 급작스럽게 러시아, 유라시아지역으로 분배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스텔렛 철갑상어는 종간 교잡종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고 스텔렛 철갑상어를 자연 서식지 이외의 곳으로 이식하는 실험은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고 있다고 알려지는 것이니 만큼 철갑상어의 본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에서 스텔렛 철갑상어를 보호하고 자원 조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이 종은 벨루가 [Sterlet x Beluga (Huso huso)]이름으로 실제 근원지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Acipenser fulvescens Rafinesque, 1817(Lake sturgeon)호수철갑상어
科學分類
界: 动物界 Animalia
門: 脊索动物门 Chordata
綱: 輻鰭魚綱 Actinopterygii
目: 鲟形目 Acipenseriformes
科: 鲟科 Acipenseridae
屬: 鲟属 Acipenser
種: 小体鲟 A. fulvescens
二名法
Acipenser fulvescens Rafinesque, 1817
다음은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는 종이다.
이 종 역시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심황(鱘鰉)일 가능성이 높다.
호수철갑상어(湖鱘)는 순수 담수어로 강해성(降海性) 개체군이 아니라는 사실이 의심쩍은 것이 사실이다.
북미의 5대호(五大湖)는 흑해와 마찬가지로 바다라고도 할 수가 있다.
물론 호수라 하였으니 호수에 갇혀 있다 하여 담수어라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고 사람과 역사가 변해버렸다.
현재 이종은 오대호와 미시시피강(江)상류에 서식 것으로 나타나며 앨라배마(Alabama)와 미시시피(Mississippi)주 남쪽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유역에서 발견되는 것에서도 이미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파악한 바로는 이 강은 양쯔강일 수가 있고 또는 장강일 수가 있는 곳이며 또한 중앙아시아의 제강일 수가 있는 곳이다.
그 만큼 미시시피강은 거대한 강이지만 지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호수철갑상어(Lake sturgeon)의 어원(Etymology)을 보면
a fish very highly esteemed in the age of the greatest luxury of the Romans
라틴(Latin) 속명 아치펜서(acipenser)는 명사로서 로마인들이 큰 사치스럽게 생활하던 시대에서 매우 높이 호평받었던 물고기의 어원이라 하였으니 이것을 오늘날 철갑상어라 하였다는 것이다.
fulvescens: From the words Acipenser , meaning sturgeon and fulvescens , yellowish
종명은 라틴어 풀바스테르(fulvaster)형용사로 의미가 누른빛을 띤(yellowish)것이며 이것은 라틴어(fulvus)가 근원으로 형용사 의미 '짙은 노란색(deep yellow)'으로 풀이된다.
호수철갑상어의 학명만 보면 색깔이 짙은 노란색을 띤 것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황어라 했을 가능성도 있다.
North America: St. Lawrence-Great Lakes, Hudson Bay, and Mississippi River basins.
이것의 서식처가 세인트 로렌스와 대호, 허드슨베이 그리고 미시시피강 유역으로 나타나는데 세부적으로 보면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아래 담수경계에 있는 대호(Great Lakes)와 디트로이트 강(Detroit River)에 서식하며 서쪽으로는 호수 위니펙(Lake Winnipeg)에서 북 서스캐처원(North Saskatchewan)과 남쪽 서스캐처원강(Saskatchewan Rivers)까지 도달하고 북쪽으로는 허드슨 베이(Hudson Bay)저지대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위 스탈렛의 분포지역과 별로 다르지가 않다.
몸이 대형이고 대략 원통형이며 피부에는 크고 딱딱한 대형의 비늘이 5열로 줄지어 있고 주둥이는 뾰쪽하고 입은 주둥이 아래쪽에 있으며 입 앞쪽은 4개의 촉수로 둘러싸여 있고 또한 꼬리지느러미는 부정형(不定形)이고 골격은 연골성이라고 자료에 나타난다.
북아메리카의 호수철갑상어는 산란에 적합한 온화한 수액이 없는 경우에는 파도치는 바위에서도 산란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담수어가 아니라 강해성(降海性)어종으로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것에 행동에는 도약하거나 바닥을 뒹굴기도 한다고 동물대백과(The encyclopaedia of animal, E.BANISTER저, 주성필역)에서 설명되고 있으며 놀랍게도 호수 철갑상어는 최대 2m 크기에 90kg까지 성장하고, 수컷은 55년 살 수 있으며, 암컷은 150년까지 사는 수명이 아주 긴 어종으로 알려진다.
최대의 호수철갑상어는 1922년에 잡힌 몸무게 140kg나 되며, 연령의 최고기록은 1953년에 과학자들이 캐나다에서 호수 철갑상어를 잡아 살펴본바 개체로서 154세라고 하였는데 1926년에 잡힌 한 벨루가철갑상어는 몸무게가 1000kg 에 이르며 180kg의 캐비아와 688kg의 고기를 제공했다고 알려지는 것에 크기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개체들이 현저히 감소되고 멸종위기까지 이른 것은 앞에서 언급한 서스캐처원, 미시시피강 등의 댐 건설이 주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철갑상어의 산란장으로의 이동하는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는 점은 공통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밖에 수질 오염과 남획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 스스로가 그만큼 제어할 수 없는 탐욕에 대한 것을 반성해야 할 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영어자료에 보면 이 호수철갑상어는 처음 어구를 손상시킨다고 하여 마구 죽였다고 알려진다.
1860년에는 이 철갑상어가 다른 물고기의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돼지 먹이로 주거나 혹은 땅을 파고 묻어 비료로 쓰이게 하였고 해안에 쌓여 건조되어 불태워졌으며 호수에 다시 던져지거나 죽였다고 하며 심지어 목재같이 적재되어 증기선(steamboats)의 연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기와 캐비어가 상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어업의 새로운 표적이 되면서 1879년에서 1900년 사이에 대호에서 잡힌 철갑상어의 어업은 년간 400만lb (1,800ton)에 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수치는 1998년 한해에 국제적인 합법거래량은 220톤(ton)의 캐비어로 집계로 한정되었다는 통계사실을 볼 때 캐비어가 몸무게의 약 10%정도로 차지하니 2,200톤의 철갑상어 어획량에서 비례할 때 1900년 인구 16억명과 1998년 인구 60억명에서 약 4배차이가 나는 인구증가의 현실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당시 철갑상어의 어획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비교하자면 1900년에 어획량이 철갑상어 550톤이면 족한 것인데 1800톤을 어획하였으니 남획이라 하는 것이다.
[3]Acipenser sturio Linnaeus, 1758 발틱철갑상어(鱘:European sea sturgeon)
科學分類
界: 动物界 Animalia
門: 脊索动物门 Chordata
綱: 輻鰭魚綱 Actinopterygii
目: 鲟形目 Acipenseriformes
科: 鲟科 Acipenseridae
屬: 鲟属 Acipenser
種: 小体鲟 A. sturio
二名法
Acipenser sturio Linnaeus, 1758
발틱이 어디일까.
현재 북유럽 발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본 블로그 글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8"에서 발트해(Baltic Sea)가 게르만어(Germanic languages)로 "Aust-marr"라 하여 동쪽호수(Eastern Lake) 혹은 동쪽바다(Eastern Sea)등으로 불리었다는 사실과 대입하여 현재 "유럽대륙의 발트"의 지명은 이와 같은 위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때문에 발트해는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허드슨 베이(Hudson Bay)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렇게 보면 처음부터 철갑상어의 원산지 파악에서 주요 3종만으로도 이미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은 특히 호수와 하천 등의 담수역이 많고 그 대부분은 빙하호(氷河湖:glacial lake)로서 지형은 높은 산은 없고 평야나 대지성(臺地性)토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지질학적으로 가장 오래되며 안정된 순상지(楯狀地:shield)에 속하며, 대침엽수림지대가 펼쳐져 있다는 지형특징은 바로 철갑상어의 근원개체들이 존재했을 것이란 판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압록이란 뜻과 거의 같은 빙하호의 수질은 철갑상어들이 서식하는데 가장 좋은 조건으로 양질의 서식처가 대표적인 것이 오대호라는 판단이다.
어차피 이곳에는 1900년 부터 현재 발틱이라고 알려진 스칸디나비아와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온 많은 이민들을 정책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알려진다.
북유럽만들기에 따라 다람쥐 채바퀴 돌듯 지명 옮기기가 시작되었다는 정황이 존재한다.
발틱철갑상어(Baltic sturgeon)는 유럽의 많은 해안에 있는 철갑상어로서 유럽철갑상어(European sea sturgeon)이라고도 한다.
쐐기 형의 머리는 끝이 길게 뻗어있고 얼굴에 감각기관으로 수염이 다수 있으며 등지느러미는 몸의 아주 후방에 있으며 큰 뼈 판에는 5개의 세로 선이 이어진다. 배는 노란색으로 등은 누르스름한 갈색을 띤 회색이다.
성장하면 보통 몸길이 1m~2m되지만, 큰 것은 3.5m에 달하고 평균 몸무게는 약 150㎏로서 315kg 나되는 개체도 있다고 알려지며 수컷은 12년~14년, 암컷은 16년~18년이 되어야 성숙해지며 수명은 40년이나 된다 하였고 전체길이 2.65m 인 발틱철갑상어의 경우에는 300만개 이상의 알을 낳을 수 있다고 알려진다.
흑해(黒海) 이외의 유럽해안에서 볼 수 있지만,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지역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른 철갑상어들처럼 해안으로부터 강 내륙에서 산란하며 수염을 사용하여 조개나 갑각류를 찾아 먹는 것으로 알려지는 습성들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19 세기 초반에는 캐비어를 얻기 위해 이것이 남획되었으나 이제 개체가 멸종위기에 처해져 1982년 이후부터 유럽에서 보호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1995년부터 보존프로젝트가 가동되어 2012년에 라인강(Rhine)가까이 네덜란드 동부 나이메헨(Nijmegen)에서 50 마리의 철갑상어를 재투입하였다고 알려지는 것은 근원적인 문제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발틱철갑상어는 대륙붕 위에 파인 수심 100m 이상의 해저, 해곡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알려지는데 결국 발트의 본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허드슨 베이(Hudson Bay)의 표면적1,230,000 km² , 수심이 평균100m라는 사실임을 알 때 이 종이 가장 편한 환경이 허드만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외 다른 종들은 설명과 특별한 사실만을 공개하고 대신 분포지를 빼놓지 않고 파악한 상태이다.
[4]Acipenser stellatus Pallas, 1771 스타리(starry) 철갑상어(閃光鱘:Starry sturgeon)
별모양 철갑상어(Starry/stellate sturgeon;Acipenser stellatus)는 등쪽에 표면이 단단하며 광택이 있는, 네모난 판자 모양의 굳비늘(ganoid scale)이 별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것을 함광(含光)이나 다이아몬드라 하지 않았겠는가 생각된다.
주로 유라시아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있는 내해(內海)아조프(Azov)해 및 카스피해의 분지에 서식한다 하였고 이 종의 고기는 최고의 맛을 가지고 있어 카스피지역의 비싼 음식으로 간주되며 고기는 구이, 냄비 요리, 후라이를 만들거나 훈제하여 먹고 몸은 거의 검은 색과 어두운 회색으로 나타나면서 굳비늘과 배는 흰색이라고 알려진다.
평균 50~100cm, 10~20kg 성장하고 최고 200cm에 80kg까지 자란다.
[5]Acipenser oxyrinchus oxyrinchus Mitchill, 1815 (Atlantic sturgeon)대서양 철갑상어(尖吻鱘)
분류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대서양 철갑상어는 외형상 보통철갑상어(Common sturgeon)즉 발틱철갑상어(鱘:Acipenser sturio)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에 놀란다.
실질적으로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보통철갑상어의 아종으로 분류된다고 하였다.
대서양 철갑상어는 대부분의 일생을 기수(汽水), 해수(海水:sea water)등에서 보내고 담수(淡水)에는 단지 산란 목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대서양 철갑상어의 최대 크기는 5.3m, 무게는 370kg, 나이는 60년 정도로 알려지나 일상적으로 어획되는 대서양 철갑상어는 크기 2m, 무게 60kg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산란 시기는 4월에서 7월 사이이며 수온은 13-22도, 산란장소는 유속 0.5-0.8 m/s 정도의 바위나 자갈이 있는 곳이다.
가끔 강어귀에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기수(汽水)지역에서의 산란이 보고 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란장에 수컷이 암컷에 비하여 10일 정도 빨리 도착하고 성숙은 지역적 차이가 심하여 수컷의 경우 7-9년 또는 20-24년 걸리기도 하며 암컷의 경우 9-15년 또는 24-28년 걸리기도 한다고 하며 반복산란주기의 경우 수컷은 1-4년, 암컷은 3-5년으로 나타난다.
산란한 난의 크기는 2.4-3.0mm 정도이며 어체중 1kg당 20,000개의 난을 산란하므로 암컷의 경우 약 600,000-2,000,000개의 난을 산란할 수 있다고 하며 수정에서 부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수온 16-19도에서 120-140시간 정도라고 알려진다.
난황(卵黃:yolk) 자어의 크기는 8-11mm, 무게는 10mg 정도이며 이후 9-11일이 경과하면 외부 먹이를 먹기 시작하고 부화된 치어는 담수에서 1-3년 정도 머문 후 강하구의 기수지역으로 이동하나 산란에 참여한 치어는 산란 후 바로 강을 내려간다고 되어 있다.
대서양 철갑상어는 캐비어나 어육용으로 중요한 어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300mt (톤Metric Ton)정도가 어획되 고 현재 미국에서 대서양 철갑상어의 어획은 금지되고 있으나 캐나다에서는 매년 60mt까지 어획한다.
1970년 말부터 미국에서는 대서양 철갑상어를 보호하고 있다.
대서양 철갑상어는 북미대륙의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 해안지역의 강과 연결된 하구에 서식한다.
그 범위는 플로리다 동부해안에서 뉴저지주의 뉴브런즈윅(New Brunswick)과 캐나다까지라고 알려진다.
최초에 정착민들이 미국에 왔을 때는 아주 많이 잡혔지만, 이후 남획과 수질 오염으로 개체 수가 대폭 줄어 현재는 멸종위기 종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래 만철갑상어와 형태적으로도 차이가 없다는 이상한 분류체계가 있다
[6]Acipenser oxyrinchus desotoi Mitchill, 1815 (Gulf sturgeon)만(灣)철갑상어(德氏尖吻鱘)
이 만철갑상어는 멕시코만과 페르시만을 혼동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마치 이것들은 역사혼돈상황과 흡사한 것이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대서양 철갑상어(尖吻鱘)와 형태적으로도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내부의 비장 길이(spleen length)로 구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본래의 지명이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것으로 멕시코만이란 지명과 페르시아만이란 지명들을 함께 의심스럽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본 블로그에서는 이 페르시아를 멕시코로 보았다는 사실에서 이같은 사실들이 매우 중요하게 와 닿는 것도 사실이다. 한 예를 들면 페르시아만철갑상어(Persian sturgeon:Acipenser persicus Borodin, 1897)는 암컷은 170cm, 숫컷은 157cm 이며 가늘고 긴 부피가 큰 몸집에 푸르스름한 색을 가지고 있으며
It is found in the Caspian Sea and to a lesser extent the Black Sea and ascends certain rivers to spawn, mainly the Volga, Kura, Araks and Ural Rivers.
이 종(種)이 발견되는 곳은 카스피해(Caspian Sea)와 흑해(Black Sea)에서 강으로 올라가 산란을 하는데 볼가(Volga), 쿠라(Kura), 아라스(Araks), 우랄강(Ural Rivers)로 나타나 이 지역을 페르시아만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만철갑상어는 갈퀴길이(fork length)의 비장길이가 12.3%인 반면 대서양철갑상어는 갈퀴길이(fork length)의 비장길이가 5.7%라고 나타나고 더 하면 머리길이, 지느러미 비늘 형태, 가슴지느러미 길이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만 철갑상어는 ‘멕시코 철갑상어’라고 부르기도 한다지만 ‘페르시아철갑상어’라고도 한다는 것은 거의 같은 종으로서 쓸데없이 분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근세기에 역사판짜기 장난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정리가 된다.
일단 알려지기로는 만(灣:Gulf)철갑상어가 멕시코만과 하천배수지역일부에 서식하는 종(種)이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하성(溯河性:anadromous)이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 기수지역에서 산란하고 서식한다는 사실은 결코 페르시아만의 서식처가 유라시아가 아닐 것이란 판단을 하게 한다.
때문에 이 종이 늦은 시기 1955년에 대서양철갑상어(Atlantic sturgeon, A. o. oxyrinchus)의 아종(亞種:subspecies)으로 분류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멕시코만철값상어의 서식처를 보면 미국 플로리다 서쪽해안 옛 해적들의 은거지인 스와니강(Suwanee River)에서부터 시작하여,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 멕시코만 동부와 중부의 해수(海水:marine water)에 전통적으로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스와니강과 미시시피 강은 만 철갑상어의 좋은 산란 장소라고 알려지고 있고 1.8~2m 크기로 성장하며 체중이 90kg에 도달하면서 최대 2.7m까지 성장하고 체중이 230kg 달하는 것으로 이 만철갑상어가 발견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평균 수명은 42년 이고 최대 70년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철갑상어의 모든 종은 가끔 물 밖으로 뛰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진다.
만철갑상어는 7월과 8월 동안과 초기에 연안 사양기간(飼養期間)동안에 점프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의사소통 및 그룹 응집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된다.
무거운 갑옷과 같은 철갑상어는 길에 있는 인간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는데 2015년 7월 2일에서 플로리다 스와니강(Suwannee)에 뛰어 드는 5살 소녀를 곧장 살해한 적이 있다고 알려지는 것이니 만큼 특히 남부지방 경남에 살던 우리의 선조들이'호랭이상어'라고 하여 천연두마마를 호란이라 하였듯이 공포스러워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7]Acipenser transmontanus J. Richardson, 1836 (White sturgeon)흰 철갑상어(高首鱘)
이 흰철갑상어야 말로 벨루가로 알려져 거대한 철갑상어로 알려진다.
흰 철갑상어는 ‘태평양 철갑상어(Pacific sturgeon), 오레곤 철갑상어(Oregon sturgeon), 콜롬비아 철갑상어(Columbia sturgeon), 새크라멘토 철갑상어(Sacramento sturgeon), 캘리포니아 흰 철갑상어(California white sturgeon)’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서식처가 아래 녹색철갑상어와 거의 같다.
북미서해안 알래스카 알류샨 열도(Aleutian Islands)에서 북부 멕시코, 중앙캘리포니아(Central California)까지 해안을 따라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지며 흰 철갑상어는 북미에서 가장 큰 민물고기로서 최대 6.1m 크기에 816 kg의 초대형 흰 철갑상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고 동물백과사전을 말하고 있다.
북아메라카의 흰철갑상어와 러시아의 벨루가철갑상어(Beluga sturgeon)는 세계최대의 담수어라고 하고 벨루가(Beluga), 칼루가(kaluga)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어종이라고도 한다.
1892년에 오래곤주에서 잡힌 800kg의 흰철갑상어가 시카고만국박람회The 1893 World Columbian Exposition, Chicago)에 전시되었고 그밖에 실제로 몸무게와 전체길이가 계측된 유일한 흰철갑상어는 캐나다와 미국사이를 흐르는 콜럼비아강(Columbia River)에서 1912년에 잡힌 것으로서 전체길이 3.8m, 몸무게 580kg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체 길이 1.8m인 흰철갑상어는 약 15~20년을 생존했다고 볼 수 있다.
[8]Acipenser medirostris Ayres,1854(Green sturgeon)녹색 철갑상어
이것을 우리나라 백과사전에서는 용(龍)상어라고 하는 특이함이 있다.
이것과 사할린철갑상어로 혼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녹색 철갑상어(Green sturgeon)의 어원을 보면 Acipenser medirostris, kaluga Huso dauricus, 칼루가와 동급으로 친다.
속명의 어원은 위 호수철갑상어(Lake sturgeon)와 같고 종명에서 medirostris: The specific name is derived from medirostris , referring to its moderate snout.
Greek 보통적당한-Metrio(Μέτριο:moderate) 주둥이-rýnchos(ρύγχος:snout).
그리스어의 '보통적당한 주둥이'를 가진 것으로 의미가 있다.
형태는 몸이 긴 원통형이며, 특징적으로 주둥이가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다고 알려진다.
녹색 철갑상어는 수염들이 길고 폭이 좁은 삐죽한 코의 일각에 보다 입과 더 가까운 것을 제외하고 흰색철갑상어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등지느러미 뒤편에 짧은 꼬리들은 흰색 철갑상어 보다 더 날카롭고 더 뾰족한 경향이 있으며 아래쪽에 있는 입 주변에는 4개의 수염이 있고 이빨은 없고 등지느러미는 몸의 뒤편에 있으며 등지느러미 연조수는 36∼40, 배측골판수는 7∼8개, 배측판과 체측판 사이에는 약 14개의 별모양의 인판이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 것으로 설명되며 몸의 등쪽은 청회색, 배쪽은 담황색, 몸통의 중앙에는 청회색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녹색 철갑상어는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과 태평양에 연결된 강에 살고 있는 종(種)으로 오리건(Oregon)주 남쪽(southern Oregon)에 있는 클래머스 강(Klamath River)과 캘리포니아북부의 새크라멘토강(Sacramento River),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이 주 서식지로 알려지고 녹색 철갑상어는 최대 70 년의 수명을 가지며 최대 길이 2.1m에 159kg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담수에서 가장 오래 사는 어류라 하였으며 녹색 철갑상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수염이 길고 입에 가까이 붙어 있다.
북미그린상어(North American green sturgeon)는 새크라멘토강(Sacramento River) 새크라멘도에서 산호아킨델타(San Joaquin Delta)사이에 샌프란시스코만하구(San Francisco Bay Estuary),
북부 독특한 집단 구성체 그린철갑상어(northern DPS of the green sturgeon)는 오리건 주의 로그 리버 (Rogue River), 클래머스 강(Klamath River), 노스엄콰강(Umpqua River)에 서식하며
North America: Aleutian Islands and the Gulf of Alaska to Ensenada, Mexico. Considered vulnerable in Canada.
이 종의 대체적인 분포지는 알류산열도, 알래스카만에서 멕시코 엔세나다까지 그리고 캐나다까지 범주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9]Polyodontidae Bonaparte,1838(Paddlefish)주걱철갑상어류
Polyodon spathula (Mississippi Paddlefish)
Psephurus gladius-Chinese Paddlefish
科學分類
界: 動物界 Animalia
門: 脊索動物門 Chordata
綱: 輻鰭魚綱 Actinopterygii
目: 鲟形目 Acipenseriformes
科: 匙吻鲟科 Polyodontidae
屬/種
匙吻鲟 Polyodon spathula
白鲟 Psephurus gladius
우리가 마지막으로 비교해 볼 것은 바로 주걱철갑상어류(Paddlefish)이다.
이것은 철갑상어목(鲟形目:Acipenseriformes)에서 주걱철갑상어과(匙吻鲟科:Polyodontidae)로 분류되는 것인데 철갑상엇과(鱘科:Acipenseridae)와 구분되며 이 과의 대부분이 절멸되었고 북아메리카의 미시시피강에서 사는 주걱철갑상어(Polyodon spathula, Walbaum,1792)와 중국양자강에서 사는 중국철갑상어(Psephurus gladius E. von Martens,1862) 2종(種)뿐이다.
이것의 속명 폴리오돈(Polyodon)의 어원(Etymology)을 보면 그리스어(Greek) 많은 포리스[polys(Πολύ :a lot of)]와 치아를 뜻하는 오도우스[odous(δόντια: teeth)]의 합성어이다.
결국 주걱철갑상어의 치아가 많은 것을 의미한 것인데 성인철갑상어는 오히려 치아가 부족하다고 알려지고 어린철갑상어는 작은 치아가 많다고 알려지지만 미시시피주걱철갑상어(Polyodon spathula)의 종명(spathula)는 주걱(spatula)이란 의미와 많은 치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한 종, 동아시아종으로 굳어진 학명 "Psephurus gladius"는 중국주걱철갑상어(Chinese Paddlefish)라고 하고 라틴어 종명 글라디올러스(gladius)의 의미는 칼(sword)이다.
즉 칼철갑상어라는 또 하나의 칼철갑상어(達氏鱘:Acipenser dabryanus)가 이미 존재한다.
이것을 양쯔철갑상어(Yangtze sturgeon ; Acipenser dabryanus)라고도 하는 것이다.
어쨌던 이중 삼중 중복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근세기 특히 철갑상어의 분류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주걱철갑상어는 결국 북아메리카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백악기에서 시신세(3800만~1억3500만년전)동안 화석종에서 이 주걱철갑상어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상당히 오래 된 종이다.
주걱철갑상어류는 주둥이가 길고 편평하며 폭이 넓어 쉽게 식별이 가능하고 입은 주머니모양이며 힙을 벌린 채 헤엄쳐 갑각류나 그 밖의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다고 알려진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주걱철갑상어는 탁한 강이나 저수지에 서식하며 전체 길이가 1.5m 이상이고 몸무게는 최고 80kg에 이르며 야행성이 있어 낮 동안에는 깊은 늪 바닥에서 쉬는 것으로 백과사전은 전하며 산란 행동이 처음 관찰된 것도 1961년이라 한다.
수온이 10도씨에 이르면 성어는 자극을 받아 상류의 얕은 곳에서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하성이 있다고 알려진다.
배의 노와 같은 형태인 위턱의 기능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5가지의 가설이 있다 하였는데
첫째.무리쳐 헤엄치는 플랑크톤을 전기적으로 탈취하는 장치라고 하거나 둘째.거대한 입에 가해지는 압력을 저항하면서 머리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횡형기(橫型機)라 하고 세째.플랑크톤을 거르기 위한 장치, 네째. 흙을 파는 장치, 다섯째.수초나 조류로부터 작은 동물을 내쫓기 위한 장치 등이다.
그러나 이것과 달리 중국주걱철갑상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하니 실제로 신중국대륙에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鱘屬(Acipenser)
西伯利亞鱘(Acipenser baerii)시베리아 철갑상어(Siberian Sturgeon)
貝加爾湖鱘(Acipenser baicalensis)바이칼 철갑상어
短吻鱘(Acipenser brevirostrum)단비철갑상어
達氏鱘(Acipenser dabryanus)칼철갑상어
德氏尖吻鱘(Acipenser desotoi)만(灣) 철갑상어 또는 멕시코 철갑상어
湖鱘(Acipenser fulvescens)호수철갑상어(북미의 5대호와 미시시피강(江) 상류에 서식)
俄羅斯鱘(Acipenser gueldenstaedtii)러시아 철갑상어
中吻鱘(Acipenser medirostris)용상어 여기서 아시아종으로 분류한 것이 바로[其亞洲族群現已認為是一個分裂的種米氏鱘]사할린철갑상어(Sakhalin Sturgeon)이다.
納氏鱘(Acipenser naccarii)이탈리아 철갑상어
裸腹鱘(Acipenser nudiventris)쉽프 철갑상어
尖吻鱘(Acipenser oxyrinchus)대서양 철갑상어
裏海鱘(Acipenser persicus)페르시안 철갑상어
小體鱘(Acipenser ruthenus)스텔렛 철갑상어
史氏鱘(Acipenser schrenckii)아무르 철갑상어
中華鱘(Acipenser sinensis)중국 철갑상어
閃光鱘(Acipenser stellatus)스타리(starry) 철갑상어
鱘(Acipenser sturio)발틱철갑상어
高首鱘(Acipenser transmontanus)흰 철갑상어
4. 우리사서에 등장하는 철갑상어
이상으로 많은 철갑상어종을 서식처나 기타 형태적인 면을 들어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실제로 각 종을 분석하여 보았을 때 나타나는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라는 확증이 강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각 주요종에서 문제는 억지로 분류시킨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자료라고 할 때 동양사서에서는 어떻게 이 철갑상어를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래 글은 시대를 넘나드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고려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첨(李詹:1345-1405)의 문집으로 쌍매당협장집(雙梅堂篋藏集)의 글 일부을 게시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서에 철갑상어의 존재확인 유무가 애매하던 차에 이 기록을 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한국번역원에서는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이 간단한 문장 하나를 해석해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상한 마음으로 답답한 글쓴이가 우물판다고 우선 해석을 해보았다.
雙梅堂先生篋藏文集卷之二
觀光錄
山東回還。記所見聞。
朝鮮遠在天東方。別作一區山水鄕。八歌初聞贛楡縣。練樹試識盧家莊。荔枝堆盤氣味絶。柑子滿籃顏色黃。一柯春風過楊子。江深未見得鱘鰉。
[해석]조선은 먼 하늘 동쪽 천동(天東) 방향에 있다. 풍광이 별천지를 이루는 산수향(山水鄕)이 있는데 팔가초문(初聞)에 이를 감유현(贛楡縣)이라 한다. 노가장(盧家莊)에는 남부지방에서는 흔히 심어 가꾸던 나무 멀 구슬나무, 고련수(苦練樹)가 있고 흙더미 소반에 담긴 여지[荔枝]맛과 냄새가 으뜸이다. 홍귤나무의 열매(柑子)는 풍요가 넘치며 황색이 진하고, 한 줄기의 춘풍은 양자(楊子)를 지나니 강(江) 깊은 곳에서 아직 보지 못한 철갑상어(鱘鰉)을 얻는다.
이상한 것은 분명 조선관리가 중국을 다녀와서 기록한 것인데 첫문장부터 꺼꾸로 조선을 설명하는 이상한 기록이다.
관광록(觀光錄)의 객관적인 개체 인물은 분명 이첨이다.
물론 작가가 이첨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산동회환(山東回還) 즉 산동에서 돌아온 이첨은 그곳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기록 한 것일게다.
현 신중국대륙과 한반도를 설정해 놓고 보면 산동반도에서 한반도 한양으로 돌아온 것이니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첫 문장에서 "朝鮮遠在天東方"이라 하고 조선을 내부적으로 묘사한 것을 두고 보면 참으로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설마 朝鮮遠在天東方 과 그 이후에 나오는 문장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전혀 다른 의미의 문장과 문장을 구태어 연결할 턱이 없다.
반도학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중국인들의 글이나 그림을 그대로 모사했다고 하는 논리를 적용하더라도 누구의 글을 모사했다고 하는 근거가 없고 모사따위를 생각하기엔 문장에서 주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인물이 이첨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꼽는다면 이첨이 하륜(河崙)과 차운한 시가 많다 한 것에서 하륜의 글을 모사했다고 볼 수 있지만 하륜은 분명 중국인이 아니라 이첨과 같은 시대의 고려인이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첨과 하륜은 조선인이 아니다.
고려인이 조선(朝鮮)을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첫 문장에서 조선(朝鮮)은 멀리 천동(天東)방향에 있다 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산동(山東)에서 돌아온 곳이 한반도가 아니라면 그곳은 바로 산동을 동쪽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어야 맞다.
이곳을 중국이라고 한다면 바로 고려가 중국이다.
즉 조선 산동에서 돌아와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이야기가 아닌가.
위 글 쌍매당협장집(雙梅堂篋藏集)은 백과사전에 이르길 고려 말 조선 초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1345-1405)의 문집이라 하였고 저자의 시문(詩文)은 아들 이소축(李小畜)에 의하여 태조,세종 연간에 편찬,간행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하였으며 권1~2는 후손 이석찬씨 소장 필사본이라 하였다.
편찬은 조선때 이루어졌지만 작가가 관광록을 집필할 때 조선인이 아니라 고려인으로서의 자격으로 집필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권2는 관광록(觀光錄)으로 1400년 계품사(啓稟使)로, 1402년 하등극부사(賀登極副使)로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시(詩)를 모은 것이라 하였으며 후반부에는 하륜(河崙)과 차운한 시(詩)가 많다 하였다.
그렇다면 1402년까지 고려인과 조선인이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이첨은 고려인으로서 관광록을 집필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한반도 역사관점에서 볼 때 매우 혼란스러운 이야기다.
하륜(河崙1347-1416) 또한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조선 초 이방원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왕권강화의 기틀을 다지는데 공헌한 사람인데 결국 고려를 배신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고려인은 고려인이다.
이들이 배신하고 조선을 도와 결국 조선사람이 되었다고 하여도 고려는 존재한 것이다.
차운(次韻)이라 하는 것도 일단 남이 지은 시(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시(詩)를 지었다 하는 것인데 없는 내용을 있도록 조작하였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운이 빌미가 될 수 있다 하겠지만 한반도 역사가 주장하는 중국은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혹 이와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번역원에서 이를 번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린 언제까지 이러한 혼란에서 올바른 역사를 보지 못한체 어리석게도 수명을 다한체 죽어야 하겠는가.
그러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중국[中國]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이첨이나 하륜이 배신한 고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첨이 보고듣고 기록한 기소견문(記所見聞)은 결코 신중국 산동에서 보고 들은 기록이라 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산동은 한반도 조선의 서쪽에 있기 때문이고 조선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朝鮮遠在天東方。
위 문장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 보자.
조선 산동에서 돌아온 그는 "조선은 먼 하늘 동쪽 천동(天東)방향에 있다."면서 그곳에는 산수향도 있고, 그 산수향을 감유현이라 하며, 또한 노가장이 있는데 그곳에는 고련수나무가 있으며 더하여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생육되는 여지(荔枝)맛과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였으며 카리브해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귤나무열매(柑子)가 있음은 물론이고 정말 놀랄 이야기는 양자강 깊은 곳에 그가 평소 보지 못했던 심황(鱘鰉) 즉 철갑상어가 서식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은 놀라운 사실을 기존 역사학자들은 그대로 중국의 풍경을 읊은 것이라 할 것이다.
해석을 못해 그런 말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지식의 기득권이 그 만큼 무섭다는 이야기다.
물론 평생먹을 밥줄이기 때문이다.
알아도 그들이 영유하고 있는 기득권이 해체될 수 있는 위험성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은 민족성이나 애국심보다 돼지속성같은 이기심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여지(荔枝)가 무엇인가.
荔枝与香蕉、菠萝、龙眼一同号称“南国四大果品
역사에서는 여지를 바나나, 파인애플, 용안과 같이 남국(南国)의 4대과(四大果)품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함께 전한다.
여지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1)태종3년(1403)에 고려 말과 조선초기의 문신(文臣) 설미수(偰眉壽:1359-1415)가 여지(荔枝)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2)태종11년(1411)에는 어떤 사신(使臣)이 알 수 없으나 그로부터 여지(荔枝)를 임금이 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3)태종12년(1412)에는 임금이 검교(檢校)한성윤(漢城尹)에게 여지(荔枝)를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4)세종7년(1425)에 정사(正使) 윤봉(尹鳳)이 임금에게 이 여지(荔枝)를 바쳤다 하며, (5)예종1년(1469) 황해도 출신 명나라 환관이라고 하는 정동(鄭同)이 왕에게 이 여지(荔枝)를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하니 여지가 조선에 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산이 높고 물이 맑아 빼어난 산수 풍광을 자랑하는 산수향(山水鄕)이라 하던 산동성관할 감유현(贛楡縣)은 현재 신중국대륙의 강소성 연운강시 감유현(江苏省连云港市的赣榆县)으로 되어 있다.
근세기 서세에 의한 동양역사 새판짜기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남부지방에서 심어 가꾸던 나무 고련수(苦楝樹)라 하는 멀구슬나무(Melia azedarach L.)역시 분포지로 따진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생육하던 식물이다.
산동은 아열대지방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지금 신중국 산동지방이 아열대지방인가.
아니다.
위 기록에 풍요가 넘치고 황색이 진하다고 한 홍귤나무(Citrus deliciosa)는 아시아지역에는 생장하지 않는 것으로 지중해 만다린(Mediterranean Mandarin)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열매(柑子)인데 운향과에 속한 상록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파악되며 높이가 2미터 이상이고 기부(基部)에서 가지가 나누어지며, 잎은 작고 날개가 없으며 3.6월에 흰 꽃이 피는데 열매는 귤보다 작지만 향기와 신맛이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이 오늘날 만다리오렌지(橘子:Mandarin orange)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카리브해지역(이탈리아)에서 처음(1810-1818)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들의 선친들이 알려지지 않는 상태로 자몽(Grapefruit)과 비슷한 종이라고 알려지며 오렌지 에센셜 오일(Orange Essential Oil)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사실은 조선 양자강에서 서식했다는 심황(鱘鰉)은 담수어철갑상어가 아니라 바닷물고기로서 강에서 성장한 다음 바다에 내려가서 번식하는 강해성(降海性) 철갑상어로서 이러한 기록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조선왕조실록]成宗 158卷, 14年(1483 癸卯 / 명 성화(成化) 19年) 9月 20日(庚戌)
도승지를 시켜 상사·부사에게 젓갈 등을 주게 하다
○命都承旨李世佐, 贈上使銀口魚鮓ㆍ秀魚鮓ㆍ連魚鮓各四缸、魚子鮓ㆍ松魚鮓ㆍ鰱魚子鮓ㆍ刀稍魚鮓ㆍ蘇魚鮓ㆍ各三缸蝦魚兒子鮓六缸、全鰒魚鮓二缸、鹽水烹熟松茸二缸。 贈副使秀魚鮓三缸、銀口魚鮓ㆍ魚子鮓ㆍ松魚鮓ㆍ鰱魚鮓ㆍ蘇魚鮓ㆍ各二缸、鰱魚子鮓ㆍ全鰒魚鮓ㆍ刀稍魚鮓各一缸、鹽水烹熟松茸一缸。
도승지(都承旨) 이세좌(李世佐)에게 명하여, 상사(上使)에게 은구어젓[銀口魚鮓]·수어젓[秀魚鮓]·연어젓[連魚鮓] 각 4항(缸)과 어자젓[魚子鮓]·송어젓[松魚鮓]·연어알젓[鰱魚子鮓]·도초어젓(刀稍魚鮓)·소어젓[蘇魚鮓] 각 3항(缸), 하어아자젓[蝦魚兒子鮓] 6항(缸), 전복어젓[全鰒魚鮓] 2항(缸), 소금물에 삶아서 익힌 송이[鹽水烹熟松茸] 2항(缸)을 주고, 부사(副事)에게 수어젓 3항과 은구어젓·어자젓·송어젓·연어젓·소어젓 각 2항, 연어알젓·전복어젓·도초어젓 각 1항, 소금물에 삶아서 익힌 송이 1항을 주게 하였다.
문제의 철갑상어 알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종14년에 명나라인지 아니면 고려인지 알 수 없지만 상사와 부사에게 어자젓(魚子鮓) 항아리(缸)를 성종 임금이 선물했던 사실을 기억하면 그렇게 놀라워 할 이야기만도 아니다.
여기에서 철갑상어에 대한 근세기 조선 잡서(雜書)들의 기록을 한번보자.
[가]연행일기 제2권
임진년(1712, 숙종 38) 12월[1일-15일]
13일(임술)
밤에 비장을 만나러 바깥채로 가니 방에 책자 하나가 있는데 ‘당(檔)’ 자가 씌어 있었다. 뜻을 물으니, 주인은 ‘관문서[文字]를 말한다.’고 하였다. 펴 보았더니 왕래한 인마의 인원수와 연월일시를 아주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혹은 ‘공간(公幹)’ 혹은 ‘상용(上用)’이라 칭하여 모종의 물건을 갖고 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심양이나 영고탑, 아니면 조룡강(鳥龍江)의 장군들에게 가져간 것으로, 상용(上用)한 물건은 인삼, 도로어(魚), 야구채(野韭菜 들부추), 학령(鶴翎 학의 날개), 심어(鱘魚), 잣[松子], 매[鷹]였다. 도로어가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큰 물고기로 조룡강에서 난다고 하였다. 심어 역시 큰 물고기로, 길이가 길[丈]이 넘으며 색은 청황색인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되어 있다. 학령은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더니, 화살의 깃을 만든다고 하였다. 또 야구채는 토산물이기 때문에 진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가]조선 숙종 때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김창집(金昌集)의 군관인 김창업이 1712년(숙종 38)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 30일까지 5개월 동안 청나라를 다녀온 사행일기를 보면 심어(鱘魚)가 기록되어 있는데 길이가 길[丈]이 넘으며 색은 청황색으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되어 있다 하였다.
길 장[丈]은 일척(一尺)의 10배로서 3.33m 이다.
청황색의 3m 넘는 철갑상어이다.
이것은 거의 벨루가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서 잡히는 흰 철갑상어와 비슷한 이야기다.
[나]무오연행록 제3권
무오년(1798, 정조 22) 12월[23일-30일]
25일
관에 머물다. 광록시(光祿寺)로부터 사송(賜送)한 심황어(鱘鰉魚) 한 마리를 보내었으니, 길이가 한 발이 넘고 머리는 뾰족하며 비늘이 가늘고 맛이 매우 괜찮으니, 곧 북해(北海)에서 나는 고기라 하더라.
[나]서유문(徐有聞:1762-1822)의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은 1798년(정조22)10월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 兼 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연행(燕行)하였던 작자가 다음해 4월 초2일 복명(復命)하기까지 왕복 160여일을 일기로 쓴 기행문이다. 광록사(光祿寺)로부터 사송(賜送)한 심황어(鱘鰉魚) 한 마리를 보내었으니, 길이가 한 발이 넘고 머리는 뾰족하며 비늘이 가늘고 맛이 매우 괜찮으니, 곧 북해(北海)에서 나는 고기라 하더라하였으며 사송(賜送)이라 함은 임금이 신하(臣下)에게 물건(物件)을 내려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사원의 이름 광록사(光祿寺)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고 머리는 뾰족하다는 것은 호수철갑상어(Lake sturgeon)Acipenser fulvescens Rafinesque,1817 또는 대성양철갑상어”등 몸집이 큰 철갑상어임을 알 수가 있다.
호수철갑상어의 서식처가 앨라배마(Alabama)와 미시시피(Mississippi)주를 포함한 남쪽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유역에서 발견되고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과 대호(Great Lakes)그리고 디트로이트 강(Detroit River)에 서식하며 서쪽으로는 호수 위니펙(Lake Winnipeg)에서 북 서스캐처원강(North Saskatchewan river)과 남쪽 서스캐처원강(Saskatchewan Rivers)까지 도달하며 북쪽으로는 허드슨 베이(Hudson Bay)저지대에서 발견된다 것은 북해(北海)를 말하는 것이다.
허드슨 만(灣)을 북극해의 일부로 본다는 1921년에 설립된 국제수로기구(IHO:國際水路機構,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의 규정이 아니더라도 옛 부터 그곳을 북해(北海)라 하였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다]계산기정 제5권
부록(附錄)
음식(飮食)
北俗不食生物。如脯肉佐飯魚膾之屬。皆不喫。
鱖魚,鰡魚, 俗名秀魚 重唇魚,鯉魚,鱓魚,鮒魚,膾殘魚, 俗名白魚 白魚魴魚及俗名苧蛤,竹蛤。皆市上所賣。皇帝所賜鱘鰉魚。非燕產。卽係獺子歲貢云
북쪽 풍속은 날것을 먹지 않고, 포육(脯肉)ㆍ자반(佐飯)ㆍ생선회 등도 다 먹지 않는다.
쏘가리[鱖魚]ㆍ유어(鰡魚) 속명은 숭어[秀魚]ㆍ중순어(重唇魚)ㆍ잉어ㆍ선어(鱔魚)ㆍ붕어ㆍ회잔어(膾殘魚) 속명 뱅어ㆍ백어(白魚)ㆍ방어(魴魚) 및 속명 저합(苧蛤 모시조개)ㆍ죽합(竹蛤 긴맛)은 다 시장에서 파는 것이다. 황제가 하사한 심황어(鱘鰉魚)는 연(燕)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곧 달자(韃子)들의 세공(歲貢 매년 바치는 공물)이라 한다.
[다]1804년(순조4)에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 연경(燕京)을 다녀온 이해응이 쓴 기록임을 알 수 있는데 이 계산기정에서도 황제가 하사한 심황어(鱘鰉魚)는 연(燕)땅, 북경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대비달자(大鼻韃子)들의 세공(歲貢)이라 한 것은 본 블로그 글 "어르쇠 흑요석(黑曜石)과 아라사(愕羅斯)정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1"에서 몽고는 아라사(愕羅斯)이며 대비달자로 불리었다는 사실과 아라사(愕羅斯)는 한어(漢語)로 ‘어르쇠’라 하는데 ‘어르쇠’는 흑룡강(黑龍江)북편 몽고(蒙古)의 종락(種落)을 말하는 것이니, 크기가 특별하게 크고 극히 흉악한 인물인지라 이러므로 대비달자(大鼻㺚子)라 일컬었다.”한 것을 풀어봤던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어르쇠들의 거주하는 곳을 미주리강(Missouri river)상류 옵시디언절벽(Obsidian Cliff)라고 하였으며 이곳은 바로 서스캐처원(Saskatchewan)과 접해 있는 곳이니 곧 남 서스캐처원강과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 거대한철갑상어 스텔렛 철갑상어(小體鱘)에서 교잡종이라고 하는 벨루가[Beluga (Huso huso)], 그리고 호수철갑상어(Lake sturgeon), 발틱철갑상어(Baltic sturgeon)까지 모두 여기 서식처로 알려진 곳이니 만큼 대비해 볼 수 있다.
이상으로 위 잡서에서 기록된 철갑상어는 여러 종을 살펴본 것과 크게 다르지않다.
다만 이 철갑상어가 신중국대륙이 아님은 알아야 할 것이다.
5. 조선 철갑상어알젓 캐비어(Caviar)
캐비어생산역사에서도 할말이 많다.
실제로 러시아가 캐비어 역사를 주도하는 것 같지만 19세기부터 미국에서 산출되는 캐비어들은 세계 90%를 차지했다고 하고 그것을 러시아캐비어로 소비자들에게 공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때 년 600톤 이상의 캐비어를 생산했다고 하니 그 량이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이태리계 사람으로 19세기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간 존 F 마리아니(John F Mariani)의
미국식품과 음료 백과사전(Encyclopedia of American Food and Drink)에서 캐비어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캐비어란 단어의 기원을 보면 1560년에 자료기록에 나타나지만 16세기 이태리에서 철갑상어의 알을 소금에 절인 사실이 있고 기원이 불확실하지만 페르시아어 또는 터어키어(Turkish) 카비야르(khavyar)의 어원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인간의 캐비어 대부분의 소비는 분명 중동과 동유럽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캐비어의 제조상황을 보면 보통 한 마리의 철갑상어에서 알이 차지하는 비중은 체중의 약 10%정도라고 알려지고 철갑상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도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추출은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캐비어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있는 철갑상어의 배를 갈라 얇은 막으로 쌓여있는 알집을 꺼내고 알 주위의 세포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레크타’라는 장치 위에서 알과 막을 분리시키며 찬물에서 여러 번 부드럽게 씻어 물기와 거품을 제거한 후 3%의 소금을 넣어 절이는데 이 과정은 캐비어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대단히 신속하고 민첩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은 마치 안동고등어의 간잡이처럼 대부분 ‘캐비어 마스터’라고 불리는 장인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염장이 끝난 캐비어는 4℃정도의 온도에서 보관되며 공기와의 접촉을 피하면서 일주일 정도 숙성이 끝나면 완성된다.
숙성 과정을 거친 캐비어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까지 보관이 가능하며, 알의 크기가 균일하고 윤기가 흐를수록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존 F 마리아니의 글에서 캐비어는 점심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무료 맥주안주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에는 진미식품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때는 주로 뉴욕주의 허드슨 강(Hudson River)에서 잡힌 철갑상어가 사용되었고 고기는 알베니쇠고기(Albany beef)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알베니란 말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Namibia)에 네덜란드인들의 근거지를 두고 있었고 1863년에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뉴욕 알베니(Albany, New York)에 들어가 모호크족네덜란드(Mohawk Dutch)라 한 사실과 남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근거지로 하고 있었던 앨리온들이 버지니아를 뉴앨비언(New Albion)이라 한 것은 모두가 서세의 급조된 지명들임을 알 수가 있다.
1880년대에, 뉴저지에 작은 도시는 델라웨어강(Delaware River)으로부터 채취된 캐비어는 하루에 15차량의 기차적재하물들에 의해 뉴욕과 유럽도시로 보내어 졌다 하였다.
유럽도시로 보내졌다는 주장은 헛소릴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대서양횡단을 자유스럽게 할 수있었던 것은 1900년 이후부터로 보아야 하기때문이다.
이문제도 본 블로그 글 "1902년 당시 최대 18,000톤급의 코리아(korea)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2"를 참고해주길 바란다.
미국 캐비어는 "대서양 철갑 상어(또는 바다 철갑 상어)로부터 얻은 것인데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고용된 영국의 탐험가이며 항해가인 헨리 허드슨(Henry Hudson:died 1611)에 의해 1609년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때 인디언들의 식품으로 취급되었지만 많은 백인정착민들 사이에서는 음식대용 물고기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 세기의 말, 미국은 세계에서 캐비어 90%를 차지하는 공급자였다 하는 것은 백인정착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1873년 독일 이민자 헤니 샤흐트(Henny Schacht)는 델라웨어 강(Delaware river)에서 잡은 철갑상어를 파운드 당 1 달러에 유럽시장에 출시하고, 펜실베니아 근처 체스터(CHESTER)에서 캐비어 가공장을 건설하였고 7 년후 다른 공장을 뉴저지 베이 사이드(Bay Side)에 오픈하면서 사업은 약25년동안 크게 성장했다고 말하고 있다.
철갑상어 어업은 1888년,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에서,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을 따라 또 다시 설립되었고, 1892년에는 600lb(2,720톤)를 어획했다고 "존 F 마리아니"는 그의 저서에서 알리고 있다.
By 1900 these too were depleted almost to the point of extinction, although the state of Pennsylvania that year reported that 90 percent of so-called Russian caviar sold in Europe and the U.S. was coming out of the Delaware river.
그런데 그의 글 중에 위와같은 이상한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1900년에 이르러 철갑상어가 거의 고갈되다시피 감소되었다는 사실과 비록 펜실베니아주(state of Pennsylvania)의 자료이기는 하나 1년에 유럽과 미국에 팔리는 이른바 러시아 캐비어 90%가 델라웨어강(Delaware river)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즉 러시아캐비어를 만들기 위해 90%를 델라웨어 강에서 어획된철갑상어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이야긴가.
미국땅 펜실베니아에서 당시 동유럽에 있었던 러시아가 무슨재주로 왔다갔다 할 수 있었으며 강력한 정치적인 작용이 없이 러시아캐비어를 미국땅에서 생산하여 유럽독점판매가 가능했다는 것인지 글쓴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여 러시아가 당시 미국보다 재정이 좋았다고 하는 자료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철갑상어의 각국상업구역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철갑상어 역시 유럽이니 뭐니 하지만 한군데 즉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만 벌어진 결과라는 것을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글에서 당시 러시아캐비어란 상표 또는 브랜드가 최고였다는 말이다.
자꾸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당시 러시아의 정치 주체가 과연 어떤 역사주체였을까?
현재 아시아자리잡고 있는 사회주의체제국가 러시아는 절대아니다.
미국땅에서 생산되는 철갑상어를 모조리 매수하고 거의 독점하다시피할 수 있는 것은 미국자본이 강력했다는 것도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본 블로그 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4"에서 1898년 8월 29일, 러시아의 차르(Tsar)인 니콜라스 2세(Aleksandrovich Nikolai II,1868-1918,재위:1894-1918)가 마치 중화(中華)를 기반으로 '세계중심위치'에 있었던 것처럼 세계만국평화를 걱정했고 때문에 그가 이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를 제안했으며 미국이 존재하였음에도 이를 성사시켰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세계지도국으로 존재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대한제국(COREA:고려)이라 한 것이다.
미국남북전쟁이 끝날 시점 1868년 11월 29일-12월 11일까지 러시아제국 샹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무기감축선언이 있었다.
이때는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재위:1855-1881)가 주관한 것으로서 아마도 황제라고 하지만 대한제국의 집정관으로 존재했을 것이란 추측이 강하지만 그는 조선이 해체되던 시점인 1881년에 유대인사회주의테러단체 소속원에게 암살당한다.
또한 알렉산드르 2세는 아브라함 링컨과도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러시아제국이 주도한 무기감축선언때 참가국을 보면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ia-Hungary), 바이에른(Bavaria), 벨기에(Belgium), 덴마크(Denmark), 프랑스(France), 브리튼왕국(United Kingdom(representing the British Empire), 그리스(Greece), 이태리(Italy), 네덜란드(the Netherlands), 포르투갈(Portugal), 프러시아(Prussia), 통일독일동맹(the North German Confederation(Greater Prussia)), 러시아(Russia), 스웨덴노르웨이(Sweden-Norway), 스위스(Switzerland), 오스만(the Ottoman Empire), 그리고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로 나타나는데 당시 미국과 일본등은 참석조차 할 수 없었던 처지로서 개최국에서 초대하지도 않았고 주요국으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해야 하는 것은 브리튼왕국(조선)과 네덜란드(미국, 일본)이다.
미국과 일본은 네덜란드로 통합된다는 면이 많다.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재위:1855-1881)가 당시 유럽금융세력들의 협박 받던 링컨을 도와 뉴욕항에 함대를 정박시키고 무력시위를 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러시아는 북아메리카대륙에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본 블로그 글 "철도 궤로 보는 북미삼한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2"에서 러시아궤(1520 mm)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철도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또한 본 블로그 글 "북미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사회주의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9"에서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사회주의자들이 오늘날 러시아구성원일 가능성까지 주장한 사실 또한 이와 같은 범주에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쨌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캐비어생산이 찰갑상어 고갈로 막히자 이후부터는 러시아땅에서 캐비어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러시아캐비어를 만들어 다시 북아메리카대륙 미국 땅과 유럽에 공급하였다고 하지만 이 지역도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이거나 알레스카 북부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미국의 철갑상어 산업이 쇠퇴하게 되자 캐비어 가격은 엄청나게 뛰었고 러시아캐비어를 미국에서 오히려 수입하게 이르렀다는 주요 요지임을 알 수가 있다.
그때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북미를 떠난 것이다.
6. 마무리
글쓴이도 모르게 이렇게 길어진 글을 이제 마무리하면서 정리해야 한다.
시간이 없어 자주 글을 못쓰는 죄송스러움이 향상 있다.
어쨌던 믿을 수 있고 정확한 글을 올리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보아주면 좋겠다.
새로운 역사찾기라란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구나 쉽게 결론을 내리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면 내용이 충실하지 못해 더욱 더 역사찾기가 힘들어질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글쓴이가 한 소재의 글을 쓰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간도 길어진다.
혹 글쓴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한다.
책임감도 없지 않다.
이 모든 수고스러움은 최소한 한반도 역사와 다른 그래서 진실의 역사를 찾아 밝히려 하는 글쓴이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이해 해주길 바랄뿐이다.
역사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반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이해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원칙을 삼을 수 없다면 역사찾기는 한낱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긴 글을 쓰고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 신중해서인가.
아무튼 이 글을 이제 마무리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동물백과사전( E.BANISTER)에서 발견한 것인데 다음같은 문장이 있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가 1855년에 저술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내용에서 철갑상어를 물고기의 왕이라 한 글 귀이다.
On the white sand of the bottom
Lay the monster Mishe-Nahma,
Lay the sturgeon, King of Fishes;
Through his gills he breathed the water,
With his fins he fanned and winnowed,
With his tail he swept the sand-floor.
There he lay in all his armor;
On each side a shield to guard him,
Plates of bone upon his forehead,
Down his sides and back and shoulders
Plates of bone with spines projecting!
Painted was he with his war-paints,
Stripes of yellow, red, and azure,
Spots of brown and spots of sable;
And he lay there on the bottom,
Fanning with his fins of purple,
As above him Hiawatha
In his birch canoe came sailing,
With his fishing-line of cedar.
The Song of Hiawatha, by Henry Wadsworth Longfellow,
Chapter VIII: Hiawatha's Fishing
[번역]바닥의 하얀 모래에 괴물 미쉬나마(Mishe-Nahma)가 논다.
이 철갑상어는 물고기의 왕이다;
아가미를 통해 물을 품고 지느러미로 돌려 키질하는구나.
꼬리와 모래바닥을 휩쓸었네.
갑옷과투구가 있는데 양면에서 보호하는구나.
이마는 골판이고 측면과 뒤면, 어깨 아래로 등뼈가 돌출된 골판이네.
치장색은 노란색, 빨간색과 하늘색의 줄무늬이며 갈색반점과 검은얼룩이 있도다.
바닥에서 보라색 지느러미는 팬을 돌리는구나.
서양삼나무의 낚싯줄에 자작나무 카누를 타고 오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영웅 하이어워사인가.
위 시를 한번 풀어보니 시감(詩感)이 절로 통하는 것 같다.
미쉬나마(Mishe-Nahma)는 호수철갑상어라 하였고 이를 물고기의왕(King of fishes)라 하였으니 인디언 영웅 하이어워사와 같은 비유를 한 것이다.
이 거대한 물고기는 북아메리카의 초기 탐험가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A typical adult Mishe-Nama is about 30 feet long and weighs 2 tons. Larger specimens can only be found in the largest of freshwater lakes.
일반적으로 성장한 미쉬나마철갑상어는 30피트(9m)길이의 2톤무게(30 feet long and weighs 2 tons)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이 거대한 표본들은 거대한 민물호수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동물백과사전에 1953년에 과학자들이 캐나다에서 호수 철갑상어를 잡아 살펴본바 개체로서 154세라고 하였고 1926년에 잡힌 한 벨루가철갑상어는 몸무게가 1000kg 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이것과 비교할 때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옛 부터 북아메리카의 지도에는 강, 만, 호, 폭포등에 철갑상어(sturgeon)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가 수없이 많다 하여 실제로 찾아보니 참으로 많다.
지명 [toponym, 地名]
Sturgeon, California, a former settlement
Sturgeon, Kentucky
Sturgeon Township, St. Louis County, Minnesota
Sturgeon, Minnesota, an unincorporated community
Sturgeon, Missouri, a city
Sturgeon, Pennsylvania, a census-designated place
Sturgeon Bay, Wisconsin
Sturgeon Creek (Michigan)
Sturgeon Bay, Wisconsin
Sturgeon Pool, a reservoir in New York state
Sturgeons Bar, a bar or island in the Detroit River
Sturgeon County, a municipal district in Alberta, Canada
Sturgeon (provincial electoral district), a Canadian former electoral district
Fort Sturgeon, an 18th-century trading post in what is now Saskatchewan, Canada
Sturgeon Lake(Ontario, Alberta)
Sturgeon River(Alberta, Michigan)
북아메리카대륙에 철갑상어 지명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역사적으로도 철갑상어가 정착민들에게 깊은 공포스러움과 함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사실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미국동물백과사전에서는 현재 가장 크다는 것이 길이5m ;무게1,000kg 정도이다.
하지만 서정시라고 하지만 기록일진대 이것보다 롱펠우는 한 배가 더 길고 컸다 하였으니 참으로 괴물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미국시인의 롱펠우의 글은 바로 철갑상어의 근원지가 북아메리카대륙 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철갑상어의 원산지를 한반도 백과사전에서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지역이라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이양기다.
도대체 북아메리카대륙이 무엇때문에 이렇듯 밝힐 수 없는 것들이 산재된 땅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번듯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우고 싶은 서양인들은 인디언 이외 역사가 없는 것으로 신성한 땅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이란 역사적 어감은 잔인함보다 그들에게 신성한 땅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그들의 본 근거지를 신비롭게 만들면서 쉽사리 허접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싫었다는 설명이 된다.
어쨌던 철갑상어의 원산지는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이란, 러시아, 카자흐스탄 연안의 흑해와 카스피해(Caspian Sea)를 말하고 있고 또한 이곳에 철갑상어의 가공지 아스트라한(Astrakhan)이라는 고대도시가 있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거짓임이 밝혀진 것이다.
아마도 철갑상어의 가공지는 최초의 서양인들이 철갑상어를 잡앗던 곳에 분명하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라시아라고 하는 아스트라한은 결코 아니다.
근본적으로 유라이사 또는 중앙아시아를 철갑상어의 원산지로 고집하는 것은 서양역사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근세기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던 지명들을 근동이라 하여 그곳에 옮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되돌릴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쓸데없이 생물학분류체계를 바꾸어 세우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 뻔하다.
북아메리카대륙 곳곳에 많고 많았던 철갑상어는 산업발달과 물질문명이 날로 급변하면서 철갑상어가 고갈되자 다른 서식처가 존재하길 미국본토인들은 바랐을 것이다.
미국의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더 이상 빼앗기고 실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라란 국명은 어쩌면 미국에게 유익한 국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옛 영토주인이었던 과욕하지 않고 절제했던 조선인들에 의해 일부 먹을 만치 어획하여 소금에 절여둔 캐비어같은 귀한 절임 음식들이 서양인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그것은 거의 사치품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 오늘날 철갑상어의 멸종을 앞당기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절제의 미덕을 알았던 것임에도 조선 귀족들이 습취하는 캐비어가 서양인눈에는 사치품으로 여겨진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조선 성종은 내방하는 귀한 사신들에게 이 캐비어를 항아릿씩 선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근세기들어 산업발달이알 명목으로 철갑상어의 비늘은 깍는 도구로, 기름(오일)은 약이나 연료로 고기는 식량으로 알(eggs)은 캐비어로 또는 가죽과 뼈에서 추출하는 젤라틴(Gelatin)까지 효과적으로 상업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며 폭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기도 힘들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철갑상어가 얼마나 남획되었는가에 대한 예로서 북아메리카에서는 동력선으로 많은 철갑상어류를 저인망으로 잡을 수 있었다 하고 이러한 어유를 연료로 사용한 동력선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이런식으로 철갑상어의 쇠퇴를 가속시켰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없는 물질욕구에 의한 잔인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갑상어를 감소시키는 계기가 된 또 하나의 제품은 앞에서 말한 젤라틴의 등장이다.
젤라틴은 서양인들의 사치가 심해지자 철갑상어의 가죽, 연골과 척추등을 삶아 만든 젤라틴이 포도주의 청정제(淸淨劑)로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물질 입자를 응집 침강시키는 청징제(淸澄劑)나 잼과 젤리제품으로써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1885년에는 약 1350kg의 젤라틴을 추출하기 위해서 3만마리의 철갑상어가 필요했다는 통계가 얼마나 많은 철갑상어가 하릴없이 남획되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이런식으로 1885년까지 수천, 수만마리의 철갑상어가 어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2000톤 이상의 훈제된 철갑상어가 오하이오 주(State of Ohio)의 선더스키(Sandusky)에서 팔려 여러 도시로 나누어졌다는 사실도 동물백과사전에서 정확히 찾을 수가 있다.
선더스키는 휴런족(Huron)이 쓰던 웬다트어(Wendat)로 'saundustee'가 어원으로 물(water),또는 찬물(cold water)의 의미가 있어 빙하수를 근거로 하는 지명이다.
즉 오대호가 근원이다.
캐비어를 가공하는데 하드슨만 보다 못하지만 그런대로 양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빙하수이기 때문이다.
선더스키에는 이리호와 연결하기 위해 레일을 깔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을 1835년에 설치한 메드강과 이리호철도(Mad River and Lake Erie Railroad)라 하며 이것을 이용해서 이리호에서 잡힌 철갑상어를 운반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독일 이민자 헤니 샤흐트(Henny Schacht)가 동부 델라웨어 강(Delaware river)에서 잡은 철갑상어를 가지고 펜실베니아 근처 체스터(Chester)에서 가공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운영했다는 사실과는 시기적으로 앞선이야기다.
그렇게 볼 때 만약 조선에서 철갑상어를 어획하고 염전가공을 하였던 장소를 찾으려고 한다면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위 본 블로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삼각대를 이루는 곳이다.
물론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에 있다고 하는 아스트라한을 그곳에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유라시아 보다 훨씬 동쪽이기 때문에 어원과 맞아 떨어진다.
에스트론(astron)의 의미가 바로 별(星:star)이라 했고 타이탄(Titan)은 지구(Gaia)와 하늘(Ouranos)의 아버지 태양을 말한 태양의 신을 섬기는 곳,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체스터에 가공공장을 설립했던 독일인은 7 년후인 1890년에 뉴저지 베이 사이드(Bay Side)에서 가공공장을 차려 운영하다가 철갑상어가 동부에서 고갈되자 상업에 손길이 닿지 않았던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노스웨스트준주(Northwest Territories)를 시작으로 컬럼비아강에 다시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였으니 북아메리카대륙이 철갑상어의 서식처로서 근원적인 원산지임을 충분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보역시 " F 마리아니(John F Mariani)가 쓴 미국식품과 음료 백과사전(Encyclopedia of American Food and Drink)"통해 안 것이지만 실제로 많은 것들은 새롭게 알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러시아 연방에 있는 카스피해 저지대, 볼가강(Volga River)하류에 있는 아스트라한(Astrakhan)이란 고대도시는 위 지도그림처럼 삼각형을 유지하는 오하이오주의 선더스키(Sandusky)이거나 아니면 델라웨어강에서 하류 펜실베니아의 체스터(Chester)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뉴저지의 베이 사이드(Bay Side)또는 네덜란드인이 처음 개척한 도시 베르겐(Bergen)을 범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도시들은 구태어 오스트라(Austra)라 하지 않아도 오스트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근세사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오리엔트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오류를 범했다.
오리엔트는 13세기(1350-1400)에 프랑스고어에서 영어로 이입된 단어로서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기 때문에 고대 서양인들은 해가 뜨는 방향, 즉 지중해 동쪽 지역을 ‘오리엔스(oriens)’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지중해는 아마도 오대호가 아닌가 한다.
이 오대호에는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무수한 역사가 존재한다.
이렇게 명확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 근세사를 떠 바치고 있는 역사지식의 한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바탕으로 근세기에 근동(近東)이 만들어지고 중동이 만들어졌으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가 그려지고 유대인들의 약속의 땅(Promised Land)이라고 하는 가나안 땅이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후 삼한역사의 땅의 본거지라 하면서 극동(極東)을 동아시아를 만들고 한반도에 갇둬버린 것이 오늘날 한반도 역사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흑해 또한 의문이 많다.
오늘날 흑해를 검은 석유가 매장되었기 때문에 흑해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흑해라는 것은 보기에는 검은 흑색의 바다가 아니라 깊고 깊은 곳으로서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가 더 강해야 한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
그것은 빙하수가 모인 깊고 깊은 곳을 말하는 것임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본 블로그에서 흑룡강을 밝혀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로키산맥 설산에서 녹아 흘러 기나긴 꼬리를 이어가는 미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오늘날 처럼 기분 내키는데로 지명을 정하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등을 전부 종합하고 자연철학을 모아 신중하게 지명을 정한다.
때문에 역사를 지명으로 찾을 수 있도록 이치를 맞춰보면 일치하여 찾을 수가 있다.
1931년 장려화(臧勵龢)를 포함한 미국유학자, 국민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신중국을 만들면서 제일먼저 작업한 것이 바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편찬이었다.
그만큼 지명사전은 역사 옮기기에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흑해(Black Lake)란 단어와 흑하란 단어가 집중된 곳은 바로 빙하수가 모인 오대호를 중심으로 하는 곳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호수철갑상어, 발틱철갑상어, 스텔라철갑상어 서식처 주위에 나타나는 지명들을 보면 세인트 로렌스강변 브록빌 에서 남쪽에 뉴욕주(New York)의 흑해(Black Lake)가 있고 미시간주(Michigan)의 흑해(Black Lake)가 있으며 흑하(黑河:Black River)는 캐나다(Canada)에 뉴펀들랜드 래브라도(Newfoundland and Labrador)에 흑하, 온타리오(Ontario)의 흑하, 밴쿠버이슬란드(Vancouver Island)의 흑하, 미국오대호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미국 철갑상어 서식처 앨코나 카운티(Alcona County)의 휴론호(Lake Huron)의 지류 흑하, 고게빅 카운티(Gogebic County)의 슈퍼리오호(Lake Superior)지류의 흑하, 매키낵 카운티(Mackinac County)의 미시간호(Lake Michigan)지류의 흑하, 미시간호 지류 사우스웨스트(Southwest Michigan)의 흑하, 온타리오호 지류 뉴욕주(New York)의 흑하,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의 위스콘신(Wisconsin)주 지류 흑하 등 수많은 흑해와 흑하의 지명이 유라시아의 흑해를 무색할 정도로 정확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석유가 매장되어 검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진리 역사지명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 우리가 찾고 싶어하는 조선의 철갑상어들의 서식처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2007년 1월 13일 강원도 고성군 대진항 앞바다에서 잡힌 철갑상어(Acipenser mikadoi
Hilgendorf, 1892)는 사할린 철갑상어(米氏鱘)라고 하는데 이것을 용상어라고 하면서 뚜렷한 특징이 가슴과 배사이의 푸른색 띠와 반달 모양의 꼬리모양, 등․가슴․배에 형성된 굳비늘 수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과거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용상어임을 최종 확인하였다고 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왠걸 우리나라 한반도에 철갑상어가 서식할 수 있는 곳인가.
도대체 어느쩍에 이야긴가 말이다.
근세기 분류체계가 역사신판짜기와 함께 사할린 철갑상어(Sakhalin sturgeon ; Acipenser mikadoi)를 ‘용 철갑상어’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우리 고사에서 말하는 용상어가 될 수가 없다.
어찌 오늘날 분류체계의 헛점을 말하지 않겠는가.
철갑상어 원산지를 말하면서 만철갑상어가 대서양철갑상어의 아종으로 등재되고 이것이 페르시아만철갑상어(Persian sturgeon;Acipenser persicus)와 거의 같은 형태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 현재 분류체계이다.
도대체가 정확성의 중심이 날라가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중국 철갑상어(Chinese sturgeon ; Acipenser sinensis)역시 오늘날 신중국의 양쯔강에 서식하는 종으로 알려지고 양쯔 강의 댐 설치와 경작용 비료의 살포, 염색공장 폐수 배출 등으로 멸종 위기가 있었고 때문에 멸종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애초부터 신중국 양쯔강에 중국철갑상어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아시아종으로 분류된 똑같은 양쯔철갑상어(Yangtze sturgeon ; Acipenser dabryanus)는 ‘한국 철갑상어’ 또는 ‘칼상어’라고도 부른다 하였고 최대 길이 2.5m에 체중 200-500kg까지 성장하는 것을 알려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임에도 어떻게, 왜 멸종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한 자료조차 없음에도 유독 용상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이러한 것들은 짜집기역사와 함께 급조된 것이기 때문에 원칙이 사라진 것과 같다.
흑룡철갑상어(Amur sturgeon ; Acipenser schrenckii)는 어떨까?
본 블로그에서 흑룡강을 어디라고 했던가.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내용이지만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과 "사할린(Sakhalin)은 섬(島)이 아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8"라는 글에서 충분하게 설명하였던 것으로서 흑룡강은 미주리강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바가 있다.
근세기 역사사실에서 무엇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흑룡강이나 사할린이나 새롭게 만든 지명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앞글에서 호수철갑상어를 설명하면서 이야기 한 것이지만 미국 북부 미시간주(州)의 셰보이건 카운티(Cheboygan County)와 프레스크 아일 카운티(Presque Isle County)에 있는 호수를 블랙호수라고 하는데 이것은 블랙강(Black River)분수령의 가장 큰 수역으로, 로어블랙강(Lower Black River)과 셰보이건강(Cheboygan River)을 통해 휴런호(Lake Huron)로 흘러나간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블랙이라 한 지명의 의미를 석유운운하지 않는다.
호수 남동쪽 끝의 오너웨이주립공원(Onaway State Park)에서는 캠핑, 수영, 낚시를 위한 장소가 제공되고 이 블랙호(Black Lake)에서는 호수 철갑상어 얼음낚시가 겨울에는 허용된다고 알려진다.
흑해라고 하니 유라시아의 흑해만 바른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 철갑상어에 대해 아직 할말이 많지만 여기서 죄다 할 수는 없다.
못다한 것은 2편을 마련하여 다시 올리겠다.
철갑상어의 개체가 급격히 감소한 형상은 인간의 제어할 수 없는 끝없는 물질적 욕구도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경문제라고 알려진다.
다시 한번 보자.
미국 32대 대통령이며 우리와 악연이 있는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1882-1945,재임:1933-1945)는 1928년부터 시작된 대공황(大恐慌)을 극복을 위하여 취임하지마자 대규모 공공사업인 뉴딜정책(New Deal:1933-1936)을 시작하였는데 첫해부터 수많은 댐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철갑상어의 이동길이 철저하게 봉쇄되어 멸종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다.
1900년부터 미국내에서 생산되는 철갑상어가 급감하여 러시아산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그 러시아가 어딘가를 묻지 않을수가 없다.
러시아캐비어가 아무리 유명하지만 미국 펜실베니어주 델라웨어강에서 생산되는 철갑상어 90%가 전부 러시아캐비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철갑상어의 원종이 멸종되어 다시 복원하기 위해 1950년부터 종묘생산에 결실을 보아 오늘날 그대로 시베리아니 어쩌니 하면서 철갑상어를 그들의 영토에 뿌려놓을 수는 있어도 원종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그 이전에 언감생심 어떻게 미국땅에 내다 팔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일본은 1988년부터, 중국은 1992년부터 양식을 시작했다고 알려지는 것도 따져보면 북아메리카대륙을 근원지 역사에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재 우리나라 한반도에서는 뒤늦게 한국철갑상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영동내수면연구소와 경기도 화성, 전남 구례 등 3개소에서 종묘생산 및 양식을 실시하고 있으나 연구목적이외 영리를 목적으로 한 양식은 환경부 등에서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라 하니 한반도 관리들은 참으로 느긋하다 못해 만만디라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콩이 튀지만 우리나라 양반들은 그렇듯 관심이 없다.
하기사 무슨 역사를 알아 적극적이겠는가.
철갑상어의 인공적인 종묘생산이 시작되었던 시기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1869년 필리프 오브샨니코프(Filipp V. Ovsyannikov)에 의하여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시베리아철갑상어나 벨루가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질적인 사실이 많다.
시기도 그렇지만 굳이 소형이라고 하는 스탈렛(sterlet)을 택한 이유가 분명치 않다.
1875년 미국에서 호수철갑상어(Lake Sturgeon)를 터어키 식물학자, 동물학자 콘스탄티누스 라피네스크(Constantine Samuel Rafinesque-Schmaltz:1783-1840)가 종묘생산을 시도했다는 사실에서도 미국에서 왜 터어키인이어야만 하였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혹 삼한인은 아닐까.
동물, 식물, 언어학자,인류학, 지질학까지 통달하였으니 천재라 할 수밖에 없고 마치 정약용(丁若鏞,1762-1836)과 같은 인물이다.
생존했던 시대가 비슷하기때문에 혹 정약용의 도플갱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터키인은 삼한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1886년에는 독일에서 일반철갑상어(Common Sturgeon)즉 유럽해철갑상어(European sea sturgeon)를 대상으로 종묘생산을 실시했다고 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북아메리아대륙 산일 것이다.
이첨(李詹:1345-1405)이 쌍매당협장집(雙梅堂篋藏集)에서 이야기 한 조선 땅, 양자(楊子)를 지나니 강(江) 깊은 곳에서 아직 보지 못한 철갑상어(鱘鰉)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한국철갑상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지금 쫓겨난 후손들은 갈길몰라 하지만 하늘에 계신 선조들은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시겠는가.
롱펠로(Longfellow)시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철갑상어와 마찬가지의 영웅 인디언 하이아와사는 서양삼나무 낚싯줄을 가지고 자작나무 카누를 타고 온다고 하였다.
온다고 하는쪽은 동쪽일까 서쪽일까?
서쏙에서 동쪽으로 온다는 말일게다.
본 블로글 "계수나무(Cercidiphyllum)와 카누(canoe)의 노(櫓)
http://blog.daum.net/han0114/17050599 "에서 미주리강(Missouri river)을 중심으로 계수나무가 자랐으며 이곳에 계수나무로 노(櫓)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리었고 미주리강(Missouri river)은 인디언말로 “大獨木舟之河” 즉 큰 카누(canoe)의 강이라고 한 것으로 이 카누(canoe)를 우리말로는 마상이라고 하며 한어로는 마상성(馬尙船), 마상진(馬尙津), 독목주(獨木舟)라 하는 것인데 평안도 의주(義州)땅, 요동진(遼東鎭)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사용하는 작은 거룻배라는 것을 본 블로그 글 "마상이(馬尙船, 獨木舟)로 본 북아메리카대륙 http://blog.daum.net/han0114/17049478 "말한 적이 있다.
미주리강은 본래 인디언들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땅이고 요동진이다.
그리고 이곳 어딘선가 소선적벽도(蘇仙赤壁圖)가 그려졌다는 배경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멀지 않는 노스다코타주 리치랜드카운티의 와페턴(Wahpeton)까지 이어지는 북쪽 레드강(Red river:캐나다와 미국국경경계선지점)에서 찾을 수 있고 캐나다 민요 홍하의 골짜기(Red River Valley)의 무대가 위니펙 호수(Winnipeg Lake)에서 미네소타강으로 들어가는 상류지역임을 알 수있는데 곧 적벽(赤壁)이라는 사실이다.
블로그 글 "참나무(橡, 橡樹, Oak)와 메티스인(metis or Anglo-Métis) http://blog.daum.net/han0114/17050569"를 통해 말한 적이 있는 메티스인에 대해서도 미국국경과 캐나다국경 접한 지점에서 우리가 무심할 수밖에 없는 역사, 1816년 유럽인과 인디언의 혼혈인인 메티스인(Metis)의 세븐오크스 학살사건(虐殺事件, Seven Oaks Massacre)이 있었던 곳으로서 어쩌면 메티스인은 삼한인일 가능성도 많다고 하였다.
메티스인과 비슷한 얼굴을 한 연예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전통적으로 길이 9m, 무게 2톤이나 되는 한국철갑상어가 노닐었다는 것을 어찌 우리는 믿지 못할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어자젓[魚子鮓, 魚子醬]은 캐비어(caviar)이므로 이 캐비아가 그냥 생산된 것은 아닐터.
한국철갑상어의 알로 어자젓 즉 캐비어를 만들고 성종은 내방한 사신에게 한 항아리씩 선물했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려는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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