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동물

연(燕)나라와 제비(barn swallow)

한부울 2016. 8. 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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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燕)나라와 제비(barn swallow)


글쓴이:한부울


머리말

신중국과 한반도노정기의 불편한 상식

제비원산지 파악과 흥부가 제비의 근원지 확인

연나라와 삼한역사의 위치

사서로 확인되는 연(燕)나라

마무리


머리말


또 한 번의 8.15 광복절이다.

광복절 태극기 대신 일장기, 욱일기를 개시한 사건(?)이 인터넷 기사를 장식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연예인들이 개입된 사건이니 젊은 사람들에게 충격이 클 것이다.

당사자 연예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소속회사가 열도일본자본과 기획한 의도된 사건이라 할 때 이는 참으로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당사자들은 일단 이같은 의혹을 부정하겠지만 열도일본자본 노예들이 저지르는 것이라 할 때 파장은 일파만파가 될 것임도 예측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라 하여 국가관과 역사관을 무시하고 자본만을 추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믿지만 이러한 열도일본식민지역사에서 앞으로도 꼴통들의 무분별한 야스쿠니신사참배같은 속 끊여야 할 일은 비일비재할 것인데 하필 광복절을 이용했다는 것은 열도일본우익들이 개똥같은 역사를 사실화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며 우리의 약점 즉 트라우마를 건드리고자 하는 돼먹지 않은 장난이라 할 수밖에 없다.


매냥 같은 이야기지만 광복절은 위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민족에게 반복되는 트라우마(trauma)를 또 한 번 각인시키는 행사라고 생각되는 글쓴이의 특별한 상식에 있다.

그 만큼 피해역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바른 역사를 어느정도 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민족이든지 크던지 적던지 간에 역사 트라우마는 공히 다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렇듯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트라우마는 아마도 세계민족 어느 민족에게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가 우리 것이 아닌 것을 부여안고 이렇듯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열도일본인들은 지금 착각에 빠져있다.

마치 대조선을 붕괴시킨 역사주체가 열도일본 그들인 줄 착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서양인들이 물려준 앨비언(Albion)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마치 동양사에서 대조선을 겁박하던 세력으로 비춰지고 스스로 도취된 사실도 알련지 모르겠지만 헛된 꿈에서 깨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열도일본인들도 따지고보면 95%정도은 정상안데 5%가 말썽이다.

그중에 1%정도가 정치가의 세습으로 인한 권력자이거나 과거 자본주의 형식을 빌어 자본가들이 그세력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4%정도는 군중심리에 의한 추종자일 것이다.

자기역사도 아닌 것을 착각하여 자기역사로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명실공히 일제는 시어도어루스벨트가 존재한 미국이어야 한다.

이것이 본질의 역사이고 우리가 그나마 트라우마를 가질 수는 조건의 역사이어야 맞다.

열도일본인들은 아시아대륙 고려의 지배지영토로서 그 구성원들은 모두 고려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은 마땅히 존재해야 할 바른 역사적 정체성이 사라지고 없다는 이야기다.

정체성(正體性)을 사전에 찾아보면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 유기적인 결합성을 깨닫는 성질에 의한 동태적(動態的)인 개념으로 정리되지만 영어 “아이덴티티(identity)”는 일체감과 일치성, 동질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자아(自我)가 생성되는 토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차원에서 신원, 신분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협의의 역사라 한다.

그렇다면 국가와 민족차원에서의 광의의 정체성은 어떨까?

주체성과 자주성을 발효케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강한 애국(愛國)과 애족심(愛族心)이 생성된다.

대한민국 정체성은 무엇인가.

3.1독립을 깃 점으로 하는 1945년 이후의 정체성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체성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희한하게도 근세기 독립이란 틀을 깔고 있다.

누구로부터의 독립인가.

한반도인(韓半島人)들은 열도일본(列島日本)으로부터의 독립(獨立)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늘 상 열도일본인들을 상대로 역사 트라우마(trauma)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 말로 안되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랑스러웠던 과거 역사(歷史)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 정체성이 한반도 역사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것으로서 식민지역사와 피해역사만을 인정한다는 희한한 문제가 있다.

정치인들은 똑똑한 유권자(有權者)보다 어리석은 유권자(有權者)를 더 좋아하는 이치이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는 인정하지 않고 식민지역사와 피해역사만을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사람들이 하나같이 부정적인 것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할 수밖에 없다.

이것으로서는 강한 애국심과 애족심을 도저히 가질 수가 없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만을 부추길 뿐이다.

어찌할 것인가.

열도일본인들을 흠모하는 친일파들만 늘어나고 그 잘난 친일파들은 부끄러운 것보단 떳떳하다고 여긴다.

대한민국 정치토대로 더 이상 꿀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제 또 한 번 을사국치(乙巳國恥)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이완용과 같은 5적(賊)들이 넘쳐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례를 빙자하여 그들은 추호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비록 식민피해역사, 강박의 역사가 조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대한민국이 힘을 잃고 정말로 열도일본인들에게 예속(隸屬)되거나 스스로 산산조각이나 존재자체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 뻔하다.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막을 애국심과 애족심은 강요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랑스럽게 하는 철저한 역사교육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식민지역사와 피해역사만을 알고 있는 그래서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고 유민처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불쌍한 후손(後孫)들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잠이 뻔쩍 깨인다.


신중국과 한반도노정기의 불편한 상식


연(燕)은 바로 제비를 말하는 한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제비와 정서적으로 매우 친밀하다고 여긴다.

그것은 조선시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표상처럼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흥부전(興夫傳)에서 흥부와 놀부이야기 크라이막스(climax)에 선한 사람에게 복(福)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겐 징벌을 내리는 역할을 제비가 맡아 열연한 이유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약자입장에서 익조이고 길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제비의 이러한 권선징악의 속설은 한반도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이야길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중국기록만 보아도 제비는 예로부터 익조(益鳥) 및 길조(吉鳥)로 여겨져 왔다.

연미복(燕尾服;swallow-tailed coat)이라고 알려진 남성복식 중 최고로 예를 갖춘 복장이라고 알려진 모닝코트(Morning Dress)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 또는 관습적으로 좋은 일을 가져온다고 여기던 조류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봄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 준다고 하고 9월 9일(重九日)에 강남(江南)갔던 제비가 3월 3일(삼짇날)에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제비의 강한 귀소성과 함께 "9"와 "3"은 숫자적으로 신앙적 믿음이 있으며 무엇인가 제비로 하여금 강한 희망과 이익을 전달받을 것 같은 인간의 절박한 소망들이 어우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제비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농사가 잘 된다고 하여 이 새의 다산(多産)형태를 길조(吉兆)로 여겨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길조(吉鳥)로 환영을 받고 있으며 제비가 높이 날면 날씨가 쾌청하고 낮게 날면 비가 내릴 것이고 계속 지저귀며 낮게 날 때는 태풍의 예고라고 하여 기후변화의 지표로도 삼는다는 것은 한반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 모든 옛 사람들에게 퍼져 있는 동물숭배사상(動物崇拜思想)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신앙적인 믿음이라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동서를 막론하고 추앙과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그렇다면 흥부가에 등장하는 제비는 한반도가 귀소처(歸巢處)인가 하는 문제와 또는 한반도 제비가 신대륙 강남이라고 하는 양자강을 월동지역으로 삼았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에서 답을 구하는 생물학적 근거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제비의 종류도 많겠지만 일반적인 집제비라고 하는 종도 거의 북반구를 서식지로 삼기 때문이다.

북반구라 함은 전 지구를 대상으로 삼을 때 확실한 근원지를 찾기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제비가 날씨가 추워져 강남(江南)으로 월정(越征)간다고 하여 신중국대륙 양쯔강 이남(以南)이라는 것도 참 이상한 이야기다.

제비는 멀리는 15,000km 를 이동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캐나다에서 아르헨티나까지의 거리인 것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 날아 굳이 신대륙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필리핀이나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날아갈 수가 있다.

흥부가의 노정기는 참으로 이해못할 이야기다.

판소리 흥부가(興夫歌)에서 다리가 부러져 흥부가 정성스럽게 치료하였던 흥부 집 제비는 추위를 나기 위해 강남(江南)으로 갔다가 이듬해에 보은(報恩)의 박씨를 물고 만 리(萬里)길을 날아오는 내용의 제비노정기는 바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만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틀림없다.

한반도 지형으로서는 여기서 말하는 노정을 그대로 애초부터 도저히 풀 수가 없는 난해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본 블로그 글"만리조선(萬里朝鮮) 제비노정기와 제비(家燕 : Barn Swallow)

http://blog.daum.net/han0114/17049629"를 통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해석해 보았지만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대륙의 지형에서 벌어진 사실임을 밝혔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흥부가는 특히 한반도인들에게 픽션이기 이전에 역사사실과 결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찌보면 한반도 제비는 생리현상을 그대로 표출하지 못하는데서 매우 불쌍한 제비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는 한강말고는 특별히 강남이라 할 곳이 없다.

때문에 신중국 양자강이남을 강남이라 하지만 기후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흥부가의 제비는 어쨌든지 중국 강남(江南)으로 매년 날아가야 하는 형편이고 보니 애처롭게 여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남해를 건너도 열도가 아니면 필리핀까지 적지 않는 비행경로이다.

때문에 한반도 역사를 만든 세력들은 아마도 신중국 대륙을 대상으로 하고 기어이 황해(서해안)를 건너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다이든지 육지이든지 가리지 않고 한반도 제비는 용감하게 신대륙을 온통 휘돌아 귀소성(歸巢性)만은 절대로 망각하지 않은 체 만리(萬里)길을 거뜬히 휘돌아 올 수 있었다고 하니 그만해도 다행스런 것이다.

길을 잃고 올 수 없었다고 가정하면 한반도인들이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한반도까지 오기 위한 만 리(萬里)길을 이러니저러니 한들, 비현실적이니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니 따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는 문제는 이런 모순이 있음에도 한반도 구성원들은 이를 철석같이 믿고 그것에 의해 한반도 사관이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제비노정기를 취재한 어느 일간지의 기자님의 말씀은 이렇다.

우여곡절 끝에 어찌하든지 서해안을 건너 강남으로 갔다가 다시 이듬해 강남에서 동정호(洞庭湖) 소주(蘇州)와 삼강(三江)지방의 여덟 곳 차례차례 구경하고 나서 남경누대(南京樓臺) 봉황대(鳳凰臺)에 잘 놀았으면 내처 동중국해(東中國海) 건너 조선(朝鮮)땅 지리산(智異山)향할 일이지, 엉뚱하게 갈지(之)자로(?), 내륙 유람에 날 가는 줄 모르고 호북성(湖北省)의 황학루(黃鶴樓), 안휘성(安徽省)의 계명산(鷄鳴山), 강서성(江西省)의 남병산(南屛山). 화중(華中)과 화북(華北)을 훌쩍 뛰어 생략하고는 만리장성(萬里長城)넘어 요녕성(遼寧省)의 갈석산(碣石山)까지 잘 오는가싶더니 도로 연경(北京)으로 내려와 장안(西安)과 낙양(洛陽)사이 동관(東關)까지 내려와서는 축지법 쓰듯 훌쩍 청나라 발상지로 알려진 흑룡강성(黒龍江省)의 영고탑(寧古塔)까지 올라갔다 그제야 압록강 건너 의주 통군정(義州統軍亭)에 다다른 것이라고 흥부가의 제비에게 투정을 한 것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희언(戲言)적인 표현이고 그가 신문기자라는 직업에 맞게 한담(閑談), 만담(漫談) 가십형태로 제비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듯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무척 혼란스러워 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반도 역사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의 마무리는 마침내 한반도에 들어와 흥부네가 살고 있던 곳에 안착했다고 하지만 한반도에 들어와서도 전라도 운봉(雲峰)과 경상도 함양(咸陽) 얼품(두 지역이 맞 닿은)지역에 이르기까지 괜히 쓸데없이 기자 말마따나 제멋대로 들락날락 제비 노정(路程)은 복잡기만 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평가들은 작가가 그린 노정 자체가 신대륙 중국지형이나 한반도 지형사실과 너무 동 떨어지면서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제비노정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갈지(之)자가 무엇인가.

만취한 사람이 자신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며 걷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기자 말대로 “강남에서 동정호(洞庭湖) 소주(蘇州)와 삼강(三江)지방의 여덟 곳 차례차례 구경하고 나서 남경누대(南京樓臺) 봉황대(鳳凰臺)에 잘 놀았으면 내처 동중국해(東中國海) 건너 조선(朝鮮)땅 지리산(智異山)향할 일이지...” 쓸데없이 여기저기 올라갔다 내려갔다 노정자체가 신대륙 지형에서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은 신대륙 지형에 지명역시 이상하다는 뜻이다.

한반도 역사가 그렇고 또한 동아시아대륙 역사가 그렇다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충분하게 검토하고 입증한바대로 엉망진창인 것은 근세기에 지명 옮기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벌어졌던 예고된 혼란인 것이다.

제비가 술에 취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쓸데없이 시간 소모했던 것일까.

펵션을 전제하고 소설을 쓰던 작가역시 상식적인 근거로 지명을 거명했을 것이다.

실제로 제비가 비행하는 노정을 인간이 어떻게 일일이 그것을 식별하고 검증할 수가 있었겠는가.

작가가 가지고 있던 지형적인 상식일 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르러 각 거명되는 위치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오래된 지형상식이 갑자기 갈지자 노정으로 비춰진 것이다.

픽션이니 작가마음이고 주인공인 제비 제멋대로 날라 다녔을 것이라고 하지마라.

역사개념이 없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고 토로하는 것일 뿐이다.

제비노정기는 픽션이기이전에 역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갈지자의 노정이 동아시아대륙 역사가 되어 있고 한반도 역사로 각인되어 있다.

한반도에 귀소, 즉 돌아오는 길에 굳이 북쪽 압록강을 건너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한반도 지형을 맞춰 보는 것일 뿐 실제로 압록강은 제비가 강남갔다고 돌아오는 길 과정에 있을 뿐이다.

이상한 것이 전혀 없다.

압록강(鴨綠江)은 절대로 겨울철에 영하(-)20℃∼(-)30℃ 로 내려가고 압록강 북쪽이 척박한 지역인 그것을 제비가 건너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한다.

흥부가의 제비가 강남으로 간 곳은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이남이다.


제비원산지 파악과 흥부가제비의 근원지 확인


이제 생물학적으로 제비를 들여다 볼 차례이다.

생태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날개길이 11-12㎝, 꼬리길이 7-10㎝, 몸무게 12-22g 정도로 제비의 등은 금속성 광택이 나는 청색, 가슴은 밤색이며, 꼬리는 깊게 패여 있는 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으며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새로, 이동할 때나 번식 초기에는 암수 또는 단독으로 생활하나 번식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무리를 짓고 거의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으로 설명된다.

날아다닐 때는 날개를 펄럭이기도 하고 날개를 멈추고 미끄러지듯이 날기도 하며 번식이 끝난 6-10월 사이에는 평지의 배 밭이나 갈밭을 잠자리로 하며, 해가 진 후 수천 또는 수만(數萬)마리가 무리를 지어 모여들며 인가 또는 건축물의 적당한 부분이나 다리 등에 둥지를 짓고 산다.

둥지는 보통 한 집에 한 개이고 매년 같은 둥지를 보수해서 사용하고 어쨌든지 귀소성이 강하여, 매년 같은 지방에 돌아오는 예가 많은 것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산란기는 4-7월경이며, 한배에 3-7개의 알을 낳고 연 2회 번식하며 2회째의 산란은 1회의 새끼가 떠난 후 12-16일경에 이루어진다.

새끼는 알을 품은 후 13-18일 만에 부화하고 그 후 20-24일이면 둥지를 떠나며 암수가 함께 새끼를 기르는 것으로 해서 먹이는 파리·딱정벌레, 매미, 날도래, 하루살이, 벌, 잠자리 등의 날아다니는 곤충 등이며 일반적으로 월동지역은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남부, 인도, 동남아시아, 필리핀, 뉴기니, 남아메리카라고 알려진다.


제비 연(燕)은 영어로 "barn swallow"라고 한다.

이것을 가연(家燕)이라던가, 관음연(觀音燕), 졸연(拙燕) 등의 이름이 있다.

생물학적 분류체계를 보면 조강(鳥綱:Aves), 참새목(雀形目:Passeriformes), 제비과(燕科:Hirundinidae)로 분류하여 아일랜드동물학자(Irish)이며 정치가인 니콜라스 비거스(Nicholas Aylward Vigors:1785-1840)에 의해 제비과가 명명되었다.

이 제비과(燕科:Hirundinidae)에서 19속(屬:genera)의 83종(種:species)으로 나타나며 제비속(燕屬:Hirundo)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비(Barn swallow)는 가연(家燕:Hirundo rustica)종(種)으로 분류된다.

이 제비속에는 제비(家燕) 이외 13종(種)이 있고 그 종류는 일반적으로 생소할 수밖에 없는 붉은가슴제비(赤胸燕:Hirundo lucida)외, 앙골란제비Angolan swallow(Hirundo angolensis), 태평양제비Pacific swallow(Hirundo tahitica), 喜燕welcome swallow(Hirundo neoxena), 白喉燕white-throated swallow(Hirundo albigularis), 에디오피아제비Ethiopian swallow(Hirundo aethiopica), 線尾燕wire-tailed swallow(Hirundo smithii), 흰턱받이제비white-bibbed swallow(Hirundo nigrita), 얼룩날개제비pied-winged swallow(Hirundo leucosoma), 흰꼬리제비white-tailed swallow(Hirundo megaensis), 진주빛가슴제비pearl-breasted swallow(Hirundo dimidiata), 푸른제비blue swallow(Hirundo atrocaerulea), 검적갈제비Black-and-rufous swallow (Hirundo nigrorufa)등이 있다.

한반도에는 속명어원이 강뚝, 강기슭이라는 갈색제비속(Riparia)과 북반구 서식하는 일반 히룬도 제비속(Hirundo), 산간지대의 집이나 바위동굴에서 사는 흰털발제비속(Delichon)의 3속(屬) 4종(種)이 분포한다.

흰털제비는 린네가 1758년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라는 책에서 ‘Hirundo urbica’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술하였으나, 미국내과의사이며 동물학자인 토머스 호스필드(Thomas Horsfield:1773-1859) 와 브리티시 곤충학자 프레데릭 무어(Frederic Moore:1830-1907)가 1855년 이 새를 현재의 흰털발제비속에 두었다고 위키 자료는 말하고 있다.


家燕(Hirundo rustica),是在亞洲、歐洲、非洲和美洲常見的候鳥,屬於燕科燕屬。

科學分類

界: 動物界 Animalia

門: 脊索動物門 Chordata

綱: 鳥綱 Aves

目: 雀形目 Passeriformes

科: 燕科 Hirundinidae

屬: 燕屬 Hirundo

種: 家燕 H. rustica

二名法

Hirundo rustica Linnaeus, 1758


신중국 자료를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제비라 하는 것을 가연(家燕)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학명(學名)으로 히룬도 루스티카(Hirundo rustica)이다.

집제비라고 알려지는 린네의 흰턱제비(common house martin:Hirundo urbica)는 흰털발제비(Delichon urbica)이며 둥지입구가 터널형으로서 같은 집 제비(家燕:Hirundo rustica)의 사발형 둥지와 다른 종이다.



[1]Hirundo rustica rustica Linnaeus, 1758 Eurasian Swallow



[2]Hirundo rustica erythrogaster Boddaert, 1783



[3]Hirundo rustica savignii Stephens, 1817 Egyptian Barn Swallow



[4]Hirundo rustica transitiva (Hartert, 1910) Levant Barn Swallow

[5]Hirundo rustica gutturalis Scopoli, 1786 Amur Barn Swallow



[6]Hirundo rustica tytleri Jerdon, 1864



The barn swallow was described by Linnaeus in his Systema Naturae in 1758 as Hirundo rustica, characterised as H. rectricibus, exceptis duabus intermediis, macula alba notatîs. Hirundo is the Latin word for "swallow"; rusticus means "of the country".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학명 히룬도 루스티카(Hirundo rustica)를 일반적인 제비"barn swallow"라 하고 이것을 린네(Carolus Linnaeus:1707–1778)가 그의 저서 자연의 체계(自然系統:Systema Naturae)를 통해 1758년에 발표되었다고 알려지며 속명 히룬도(Hirundo)는 라틴어 제비(swallow)라는 뜻에서 가져온 것이고 종명(種名) 루스티카(rustica)는 국가 혹은 나라(of the country)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본 이야기의 주제인 연(燕)나라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고 있다.


Barn swallows are a common group of birds, with six different subspecies found throughout the northern hemisphere (see range map above). only one subspecies, Hirundo rustica erythrogaster, is found in North America; the others are distributed throughout Europe, Asia, and the Middle East. Most importantly for us, these different subspecies have evolved recently, perhaps as recently as the last 10,000 years (which is a very short time, evolutionarily speaking).


위 영어자료를 보면 제비는 북반구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여섯 가지의 아종(亞種)으로 일반적인 그룹이라고 하였고 다만 한 가지 아종(亞種)인 “Hirundo rustica erythrogaster”는 북아메리카대륙(North America)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다른 것들은 유럽, 아시아, 중동지역에 걸쳐 분포한다고 하였다.

제비 기원은 약 일만년(一萬年)을 말하고 있고 지금까지 수많은 아종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어쨌든지 제비의 생물학적 기원은 거의 10,00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비는 인류역사와 함께 생활했던 것은 분명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비의 제비속(燕屬:Hirundo)종류들의 근원지, 네티브(Native)가 본래 아프리카대륙이라고 한 것은 인류생성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확장되어 아메리카까지 범위를 확대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글쓴이는 인류생성이 아프리카대륙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아래는 북반구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여섯 가지의 아종(亞種)을 하나하나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1]Hirundo rustica rustica Linnaeus, 1758 Eurasian Swallow

이것은 유라시아제비라는 별칭을 가지는 것으로 린네가 학명을 명명한 것이다.

위 분포지도 채색된 그림을 보면 붉은 색이 유럽대륙과 유라시아지역 전체를 표시하고 있다.
[2]Hirundo rustica erythrogaster Boddaert, 1783 Barn Swallow

린네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명명된 것으로 이 시기는 분명 코리아 시대이며 코리아인에 의해 분류된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위 분포지도 채색된 그림에서 초록색으로 북아메리카대륙 툰드라지역을 제외한 전지역과 멕시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 시에라마드레 산맥(Sierra Madre Occidental)이동지역까지를 경계로 한다. 어쨌든지 이 종을 제비(Barn Swallow)라고 한다.
[3]Hirundo rustica savignii Stephens, 1817 Egyptian Barn Swallow

이집트제비라는 별칭의 종으로 위 분포지도 채색된 그림에서 갈색으로 현 이집트 일부분만 조그맣게 나타내고 있다.
[4]Hirundo rustica transitiva (Hartert, 1910) Levant Barn Swallow

이것은 역시 채색그림에서도 볼 수 있고 학명 명명시기조차 근세기에 아루어진 것이라 존재감이 없다.

레반트(Levant)라 하여 지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들어나는 근원지라는 개념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는 서양위주의 역사 근동(近東)의 팔레스타인(고대의 가나안)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춰질 뿐이다.
[5]Hirundo rustica gutturalis Scopoli, 1786 Amur Barn Swallow

굳이 이것은 동아시아지역 종으로 구분된 듯한데 분포지도 채색그림에서 푸른색으로 동아시아대륙전체를 표시하고 있지만 강남을 경계로 하는 양자강범위까지를 그려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글쓴이가 말한 흥부가의 강남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6]Hirundo rustica tytleri Jerdon, 1864

마지막으로 분포지도 채색그림에서 보라색인데 북아메리카대륙 처럼 툰트라지역을 제외하고 유라시아지역와 아시아지역을 빼고 난 후 나머지지역으로 억지로 꿰 맞춘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볼 때 실제로 가장 제비근원지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종은 물론 북아메리카대륙을 근거로 하는 [2]Hirundo rustica erythrogaster Boddaert, 1783 Barn Swallow 임을 밝힐 수가 있다.


gutturalis or saturata

Hirundo rustica gutturalis Scopoli(1786): East Himalayas to ne Myanmar, Japan, Korea; >n Australia

Hirundo rustica [saturata or mandschurica]: Northeast China; >SE Asia

gutturális (gutturalis) 헝가리어=throaty

Gutturalis - German to English=guttural 목구멍, 인후의 소리


한반도의 제비 종(種)은 왜 구체적이지 못할까?

동아시아대륙에 묻혀 갈 뿐 흥보가가 알려지는 영향력에 비해 보잘 것이 없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제비 속명을 세 가지라 하고 제비속(燕屬:Hirundo)을 말하고 있지만 동아시아대륙에 위 그림 자료에서 보듯이 가연(家燕:Hirundo rustica)종 중에서 히룬도 루스티카 구투랄리스“Hirundo rustica gutturalis”아종(亞種)에 대해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밝힌 사실이 없다.

아마도 북아메리카대륙 접근은 금기시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이 종(種)은 이탈리아 내과의사 및 동물학자인 지오바니 스코포리(Giovanni Antonio Scopoli:1723-1788)가 1786년 명명한 것으로 그는 주로 아메리카대륙에서 서식하는 조류 등을 연구한 학자인 것 같지만 국적도 그렇지만 여러 자료에 나타나는 사실 또한 엉뚱한 곳에 그를 집어넣고 있다.

그가 명명한 “Hirundo rustica gutturalis Scopoli(1786)”의 종명 구투랄리스(gutturalis)는 일반적인 라틴어 사용과 다르게 옛 헝가리어와 독일어로 나타나고 공히 목구멍과 인후를 말하고 있어 본 블로그 글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에서 이야기한 목구멍은 요해처로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중앙아메리카대륙 역사상징과 맞아 떨어지고 있지만 굳이 동양 종(種)으로 만들고 있으며 히말리아 산맥과 미얀마(Myanmar), 열도, 한반도, 인도(印度亞大陸)를 서식처라 하고 월동(越冬)지역 범위를 스리랑카에서 인도네시아, 뉴기니 섬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포함시키고 있으니 아시아종으로서의 한계는 어쩔 도리가 없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아메리카대륙 알라스카 주(Alaska)와 워싱턴 주(Washington)까지 서식지를 확대하는 것에서도 의심을 크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아시아 종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것 이외 동양 종(種)으로 만주를 기원지로 하는 학명 "Hirundo rustica mandschurica 1934."가 늦은 시기에 또한 명명되었고 이 역시 유라시아제비(Eurasian Barn Swallow(Hirundo rustica saturata. Ridgway(1883))와도 섞이면서 혼란을 더하고 있다.

만주종이나 아무르종이 같은 법도 한데 굳이 나누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여튼 서양세력들이 그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한 기획아래 역사새판짜기 농단을 실행했었겠지만 그들 역시 양심이 있었다면 인류사인 하나의 체제, 하나의 역사를 분리하는데서 갈등했을 것이 분명하고 수많은 모순을 동반한다는 사실에서 아마도 심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하였음도 견지할 수가 있다.


연나라와 삼한역사의 위치


앞에서 속명 히룬도(Hirundo)는 라틴어 제비(swallow)라는 뜻에서 가져온 것이고 종명(種名) 루스티카(rustica)는 국가 혹은 나라(of the country)라는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에서 적어도 가연이라고 하는 일반적 제비, 학명 히룬도 루스티카(Hirundo rustica)가 서식하던 곳에 연(燕)나라가 존재하였을 것이란 또 하나의 역사사실을 유추할 수가 있다.

라틴어 사전을 보아도 루스티쿠스(rusticus)는 형용사로 국가에 속하는(of or belonging to the country)으로 나타나며 명사로는 촌뜨기 또는 시골사람(a countryman)으로 정리되고 있다.

때문에 분명 라틴어가 말하는 것은 제비의 종명 루스티카(rustica)가 나라를 뜻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한어 고서에서 연(燕)나라 한 사실과 일치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연(燕)나라는 기원전과 기원후 각각 존재하던 나라명칭이다.

기원전 1046년이니 단군조선 26세 추로(鄒魯)재위 69년시기이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동생 소공석(召公 奭)이 세운 나라로서 지금의 하북(河北)북부를 영토로 하고 북경(北京)을 수도로 하였는데, 기원전 222년에 진시황(秦始皇)에게 멸망하였던 역사 기록이 있고 후자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때, 선비족(鮮卑族)의 모용씨(慕容氏)가 건설한 나라로서 4세기 초에서 5세기 초에 걸쳐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 북연(北燕)이 있었다고 역사는 말한다.

번한세가 하편(番韓世家 下)을 보면 기묘년(BC222)에 번한이 교회에서 몸소 밭을 가꾸었고 을유년(BC216)에 연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연나라는 조선의 후국일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지는 것이다.

연(燕)은 북경(北京)을 대신하는 이름이라고 알려진다.

이것은 주(周)를 전통적인 중국으로 보았고 또한 연나라 역시 중국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반면 한자“오래 고(古)”가 조선(朝鮮) 앞에 붙어 역사사실성을 현저히 훼손시켰다고 보고 있는 것은 고대조선(古代朝鮮)이나 현대조선(現代朝鮮)도 하나의 체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러 다민족(多民族), 대소(大小) 후국(侯國)들을 다 포함한 다국가(多國家)임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밝혀져 있기 때문에 이것들은 후세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먼저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하면 "오래 고(古)”를 조선 앞에 붙여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선입견인지 알 수없지만 이병도 외 친일사학자들은 아마도 한반도 조선을 생성시키기 위해 당시 어떤 거대한 국가체제를 갈기갈지 찢어 나눠야 할 형편이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우선 명칭 부여가 곤란하기 때문에 모던조선의 명칭을 빌어 고조선이라 했을 것이다.

왜햐하면 모던조선은 이미 중국 속국으로 충분하게 자료가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떠한 논리도 그들은 대비할 자신이 있었지만 고조선이라 명명한 시대는 워낙 역사가 간단하니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란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고조선이란 명칭은 한반도 조선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서기1920년을 깃 점으로 아무튼 서양세력들에 의해 삼한역사가 축소된 것은 분명하다.

1920년은 누차 이야기 한 것이지만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이고 역사학자라고 하는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1920년에 역사윤각이란 풀이의 세계사강(世界史綱:The Outline of History)을 출판하였던 시기이다.

그는 엄밀하게 따진다면 일개 소설가일 뿐이다.

사회주의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회원이며 유대인들의 시온주의(Zionism)를 동조했으며 뉴 리퍼블릭(New Republic)은 근본적으로 세계연방(World federation)이 아닌 세계국가(world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대다수 비평가들은 시온주의를 서양인들이 주조하는 인종차별주의라고 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바탕아래 세계사를 출판하면서 영국인들은 본격적으로 서양사 기틀을 완성한 것이다.

조선이 기존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았을 때 서양인들에게는 아마도 극복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글쓴이의 매우 절제된 판단이지만 일단 고조선(古朝鮮)이라는 명칭은 당시 국가체제를 갖추었다고 하는 모든 개체들을 일거에 합칭(合稱)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이것을 분리하지 않으면 그들이 기독교 역사생성자체가 아마도 불가능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굳이 오래 고(古)를 붙였다는 것은 이러한 존재성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키거나 약화시켰을 것이라는 판단이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필요이상의 설레발 뒤에는 축소된 한반도 역사와 또 다른 우리가 감히 알 수 없고, 감히 근접할 수조차 없는 하나의 체제 역사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거대하게 온 세상을 휘감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게 진단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에서 밝혔듯이 우리민족의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이 하강한 땅을 태백(太白) 또는 새벽'샛별'이라고 하였고 사백력(斯白力)이라 하였다는 것과 삼위(三危)라는 것은 세 개의 태백(太白)이 모인 곳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처음 빛을 밝히신 천신(天神:indra) 환인(桓因)께서 온 천지(天地)가 흰색으로 뒤덮인 곳을 신성한 땅으로 여기시며 터전으로 삼았음은 물론이고 또한 평평하고 물이 맑아 물자가 풍부한 곳을 이전낙원(伊甸樂園)이라 하여 그곳을 흑수(黑水) 백산(白山)이라 칭하였다는 것을 알 때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북부 알라스카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내에 '대산(大山)'이란 뜻의 데날리(Denali) 또는 매킨리 산(Mount McKinley:6,144m)이 존재하고 이 의미가 애서배스카語(Athabaskan language)로 위대한 사람(the great one) 또는 높은 사람(the high one)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곧 우리말로 '머리산'과 같은 것임을 알 수가 있으며 그것의 상징은 바로 환인을 뜻했음은 물론이다.

태양신을 우리 곁에 두고 모셨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나라가 또는 국가가 존재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하나의 체제가 아니고서는 역사적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곧 인류시원의 역사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에 활자화되어 서양 것이 되어버렸으니 잃어버린 것이다.

하느님도 서양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잃어버린 것이다.

정녕 인류시원지(人類始原地)가 이전낙원이니 환국(桓國)이며 환인께서 동시에 천계(天界)에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고 통솔하였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인류시원역사가 우리 삼한의 역사라는 사실에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환국(桓國)은 7세(七世) 역년(歷年) 3301년을 존속하였고 건립연대가 BC7197년이라 한 것도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충분히 밝혀본 이야기다.

그리스 고대도시 국가 아테네(雅典:Αθήνα)는 BC1500년이 건립 년대이고 유럽역사를 접목하고 있는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BC3500년경부터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BC4500년경부터 조그마한 마을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BC3500년경에서야 비로소 도시의 형태가 이루어졌다고 서양사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환국이 BC7197년에 건립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류시원이 어딘지가 분명해진다.

그 이후 인류시원지(人類始原地)에서 점차 해뜨는 동(東)쪽으로 이동했던 것이 분명하며 이렇게 옮겨지면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까지 도달하여 전통적으로 동이계(東夷係)가 동국(東國)을 휘어잡을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나의 체제가 영토를 옮긴 것이 아니라 지배자가 옮겨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시기에 서양교육에 몰입된 당시 얼빠진 역사학자들에 의해 고조선(古朝鮮)이라 하여 고(古)자 안에 이 모든 인류시원의 역사를 집어넣게 되면서 거대한 역사는 아예 생략하고 축소시켰던 것은 어디까지나 서양학자들이 그들의 종교생성역사, 유럽생성역사를 집어넣기가 곤란했던 것이거나 불편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그들에 의해 모던(modern)조선(朝鮮)은 한반도에서 축소되었을망정 거대하기가 이를 때 없는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를 포함시켜 놓은 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한반도에 집어넣기에는 무리가 따른 역사임을 그들이 어찌 몰랐겠는가.

하지만 동아시아에 중국을 만들고 삼한을 만들어야 했다면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살펴보면 신라나 고려가 한반도 조선에 넣어질 만큼 작은 역사가 아니었다.

고려(高麗)자체만 하더라도 유나이티드(United) 즉 연합, 연방국가 이었다는 사실이 본 블로그 글 "고려는 '유나이티드 코리아' 고려연합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6399"에서 충분하게 밝혔으며 미국인 역사가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1843-1928)가 그의 저서[아시아역사:Asiatic history]에서 “United corea, or korai”라고 하였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 연방은 마치 현재 영국을 영연방국가라고 부르는 것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 이를 이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상 이 “United” 란 의미는 서양인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것이고 이것을 그들은 지속적으로 모방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청나라 말기인 1822년에 위원(魏源:1794-1857)이 지은 '해국도지(海國圖誌)'에 미국을 아묵리가(亞墨利加), 미리가(美理哥), 아미리가(亞美里加), 미리견(美利堅·彌利堅·米利堅)등 여러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나 1855년까지 화기국(花旗國)이라고도 했던 것은 실제로 미국인들에게 독립적인 국가명이 정립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미국이 독립 후 사실상 국가면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United State"로 상당기간 동안 국가명칭으로 사용하였다는 것도 이와같은 이치에서 볼 수밖에 없다.

익숙한 코리아가 들어가는 연합형식을 빌리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707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동군연합하면서 지칭한 국명역시 브리튼연합“United Britain”,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다.

코리아는 아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에서 체제의 절정을 구가했을 것이다.

고려(高麗)는 신성로마제국과 잘 비교되고 또한 1707년 잉글랜드 역사자체를 구하는 스코틀랜드로도 비춰진다.

고려보다 빠른 시간대에 생성된 신라를 껴안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신라(新羅)가 어떤 역사이던가.

신라에는 유럽인들에게 아마도 모체라고 느낄 수 있는 역사 DNA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러각도에서 읽을 수가 있다.

새신(新)의 신라(新羅)가 아니라 태양신의 신라(神羅)로 해석되기도 하고 이슬람국가 역사를 또한 상징하기도 한다.

아랍역사가 곧 유럽역사이다.

본 블로그 글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지는 열도가 아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98

"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산제국(Sasanian Empire:224-651)과 앞선 제국 파르티아(Parthian:BC247-AC224)와 연결되고 그 이전 셀레우코스제국(Seleucid Empire:BC312-BC63)과도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 때 실제로 한반도 인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역사인 것이 틀림없다.

신라의 역사는 거의가 서양역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유럽여행가들의 여행기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어디가나 신라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신라(新羅), 고려(高麗), 조선(朝鮮)은 세계를 포괄하며 시대별마다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들을 하나의 체제로 다스렸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어쩌면 삼한은 연합, 연방의 상징적인 명칭일 수가 있다.

그리고 신라, 고려, 조선을 이러한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명칭으로 존재하게 했고 그래서 오늘날에 다만 동양어 명칭으로서 우리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유럽사가 끼어들기 위해 이 삼한역사(三韓歷史)를 축소시켜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역사흐름 속에 그들의 역사를 끼워넣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게다.


사서로 확인되는 연(燕)나라


이제부터 연나라의 고서기록들을 살펴보자.

특히 고조선은 지역으로 연(燕)나라에 가까웠다는 기록이 있다.

연나라는 후국(侯國)이다.

수많은 후국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사기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에 의하면 ‘燕東有朝鮮’ 연(燕)나라 동쪽에 조선(朝鮮)과 요동(遼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이렇게 조선은 한낱 극동만을 차지하는 나라인 것처럼 호도하기 시작한 때의 기록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래 내용만 보더라도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다.


사기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BC 334년경)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南有呼沱易水地方二千餘裏帶甲數十萬車六百乘騎六千匹粟支數年。南有碣石、雁門之饒,北有棗栗之利,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此所謂天府者也。


위 전국시대의 종횡가인 낙양(洛陽)사람 소진열전(蘇秦列傳)을 잠시 풀이하면 동쪽으로 조선(朝鮮)과 요동(遼東), 북쪽으로 임호(林胡)와 누번(樓煩), 서쪽으로 운중(雲中)과 구원(九原), 남쪽으로 물갈래 호타(呼沱)와 역수(易水)가 있다."라고 하였다.

북쪽의 임호(林胡)라 함은 숲과 호수로 북아메리카대륙 오대호와 대초원을 생각할 수 있으며 누번(樓煩)은 옛날 산서성(山西省)이라 하였던 것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을 말한 것이고 서쪽으로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서남지형방향의 멕시코와 운무림(雲霧林)이 가득찬 중앙아메리카를 말한 것이며 남쪽으로 호타(呼沱)라 하는 것은 물이 세찬 거대한 포구(浦口)를 말하고 역수(易水)는 일수(溢水)로서 물을 넘겨서 잠기게 하는 곳을 말하는데 사시사철 홍수로 넘쳐 흐르던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하류를 지목한 것이다.

이 몇 구절 되지 않는 글 속에 이미 역사가 풀어져 해쳐진다.

“연나라의 영토가 이천여 리(里)에 달했으며 갑병 수십만과 전차 6백승(乘), 기병 6천기(騎)으로 수년을 버티었다”하였다. “남쪽에는 갈석(碣石)이 있고 불문(佛門)을 이르는 평안한 안문(雁門)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의 수확이 있어 백성들이 비로 경작하지 않더라도 대추와 밤 수확만으로 충분할 것이니 소위 천혜의 땅, 땅이 비옥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라 하였다.

갈석과 불문(佛門)은 바로 만주땅을 이야기 한 것이다.

본 블로그 글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에서 말했듯이 만주(滿洲)는 문수보살(文殊師利:Manjusri)을 신봉하던 민족이 사는 땅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원시불교(原始佛敎)시원의 땅일 것이라고 했고 기후가 덥고 따뜻한 곳일 가능성과 여름 과일처럼 달다, 묘하다, 훌륭하다란 뜻에서 복덕(福德)과 길상(吉祥)이 더해진다고 하였으니 만주(滿洲)는 천혜(天惠)의 땅, 물자가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가 가장 좋은 적합한 지역이라는 사실과 이런 지역을 토대로 고대인도(印度)가 발상(發祥)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했던 것을 기억할 때 갈석이나 불문은 동아시아대륙의 척박한 지역인
한반도 북쪽 요동(遼東), 즉 요하의 동쪽지방 요녕성(遼寧省)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현재 개간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요녕성(遼寧省)은 대추와 밤이 생산되지 않는 척박할 수밖에 없는 땅이다.

왜 이런식의 막가는 역사가 한반도인들에게 주워져야만 했을까.

간단하게 보아도 밤나무는 산기슭이나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은 땅에서 잘 자라며 대추나무는 땅을 가리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토양층이 깊고 물이 잘 빠지는 땅에서 잘 자라고 해 빛을 많이 요구하므로 비탈진 땅의 동남쪽, 남쪽, 서남쪽의 바람이 적게 부는 곳에서 잘 자란다고 되어 있다.

특히 동해(凍害), 겨울추위에 취약한 것이 바로 대추와 밤이다.

좁게보아도 뉴멕시코지역이나 텍사스이다.

이와같은 사실에 서글픔이 앞선다.


지금까지 한반도 인들은 옛 연나라는 요녕성 주위에 있었다고 교육을 받았다.

기원전260년 신중국지도를 보아도 소위 북경이라고 하는 옛 삽주 계(薊)를 수도로 하는 지금의 요녕성이 틀림 없다.

참으로 복잡하지 않는가.

결국 연(燕)나라가 실제로 위치한 곳을 알기 위해 앞에서 제비원산지를 밝혀보았다.

역사는 십중팔구 반드시 생물학적 판단과 일치한다.

연(燕)이라고 하는 제비의 본래 서식지와 대추 또는 밤의 생육 근원지는 이미 본 블로그에서 수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탐구한 사실이며 이는 모두 아메리카대륙을 지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들어난 사실 확인을 우리가 스스로 감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역사는 자연을 거스릴 수가 없다.

이것은 철칙이다.


위만은 기자(箕子)의 후손 기준(箕準)의 권력을 찬탈했다고 기록되었다.

기원전 195년경에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은 1000 여명을 이끌고 요동, 요녕성(遼寧省) 고조선에 망명하여 준왕(準王)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초대국왕이라고 알려진다.

기자조선은 고조선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도 위만조선은 도대체가 정체가 불명하다.

사실상 환단고기에서는 기자조선자체를 불신한다.

위만조선이 멸망 할 때 우거왕의 아들 장이 한무제(漢武帝)에게 투항하고 기후국(幾侯國)에 봉분되어 한무제가 연(燕)나라 지역을 다스렸다고 나타난다.

한반도 역사가 말 하길 연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이란다.

때문에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사학(植民史學)의 일환으로 중국인(中國人) 위만(衛滿)이 고조선을 식민통치한 것이라 평하였던 문제가 여기에 있다.

고조선도 중국의 식민지였으니 현대조선도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것으로부터 한반도역사는 속국(屬國) 또는 종속국(從屬國)이란 기구한 역사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위만조선이 실제 했었는가 어디에 물을 것인가.

일제사학자들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그러나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코리아(KOREI, COREA)가 인류사 시발점으로부터 세계를 지배하던 하나의 체제에 따른 하나의 역사라고 전제하고 단언한다면 위만조선이라는 실체가 존재했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래는 조선왕조 정조실록으로서 어째서 삼한이 하나의 체제 즉 연합이나 연방형태의 국가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올려본 것이다.


[朝鮮王朝實錄]정조실록 52권, 정조 23년 12월 21일 갑진 2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중추부사 홍양호(洪良浩)가 상차하여 《흥왕조승(興王肇乘)》 4편(編)을 올리면서 아뢰기를,

"洪惟我東方有國, 粤自邃古, 檀君首出, 箕子東來。 自玆以降, 分爲三韓, 散爲九夷, 及至羅、麗, 始得混一, 而其敎則儒釋相半, 其俗則華戎交雜。 然而地近燕、齊, 星應箕斗, 故檀氏之起, 竝於陶唐, 箕聖之封, 肇自周武。 蓋其風氣相近, 聲敎攸漸, 衣冠悉遵華制, 文字不用番梵, 或稱小中華, 或稱君子之國, 與夫侏?左袵之俗, 逈然不同。 而第自王氏之世, 壤接靺鞨, 媾連蒙元, 故禮敎不興, 倫紀不明。 擊剌以爲能事, 叛亂殆無虛歲, 檀、箕之遺風, 漠然不可見矣。

"삼가 생각건대 우리 동방에 나라가 있게 된 것은 상고시대로부터인데 단군(檀君)이 맨 먼저 나오시고 기자(箕子)께서 동쪽으로 건너 오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삼한(三韓)으로 나뉘어지고 구이(九夷)로 흩어져 있다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로 섞여 살게 되었는데, 그 사상으로 말하면 유교(儒敎)와 불교(佛敎)가 반반을 차지했고 그 풍속으로 말하면 중국과 오랑캐의 것이 서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역적으로는 연(燕)나라·제(齊)나라와 가까웠고 성수(星宿)를 보면 기성(箕星)과 두성(斗星)의 분야에 해당되었다는데, 옛적에 단군께서 나라를 일으키신 때는 도당씨(陶唐氏:요(堯)임금)때와 일치하고 기자께서 봉해지신 것은 주(周)나라 무왕(武王)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체로 그 풍토가 중국과 서로 비슷한데다 중국의 교화를 점차로 입게 된 결과 의관(衣冠)도 모두 중국의 제도를 따랐고 문자도 오랑캐의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혹은 소중화(小中華)라 칭하기도 하고 혹은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일컫기도 하였으니, 왜가리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깃을 다는 저 오랑캐의 풍속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런데 다만 왕씨(王氏:고려)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말갈(靺鞨)과 국경을 접하고 몽고족(蒙古族)인 원(元)나라와 혼인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예교(禮敎)가 일으켜지지 않고 윤기(倫紀)가 밝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치고 찌르는 것을 능사로 삼아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해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단군과 기자께서 남겨주신 풍도를 까마득히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위 글에서 우리가 주지해야 하는 것은 중국이라 번역했지만 실제로 화(華)이다.

이 화(華)는 대체적으로 고려를 대변한 명칭임을 여러각도에서 살펴보았던 적이 있다.

과연 이 화(華)는 단군을 윗대로 계율을 엄격히 규제하던 세력 중심으로 요(堯)와 주(周)가 모두 동이계(東夷係)임과 역사주체로서 존재가 확인되는 것으로서 화(華)는 고조선의 영향권에 있었던 사실이며 후대에 지방은 조선, 중앙은 고려로 계보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역사명칭이다.

기자가 동쪽으로 건너 왔다는 표현은 서쪽에 있었던 엄청난 지배자가 동쪽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다.

본래 서쪽은 인류발상지인 환국(桓國)이 있었고 또한 고조선의 발상지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환국(桓國)의 강역(疆域)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4 "에서 풀어본 바에 의하면 아메리카대륙 전체가 환국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의 기록은 바로 하나의 체제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긴데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로 섞여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연합이나 연방형태에서 고도로 발달된 하나의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사상으로 말하면 유교(儒敎)와 불교(佛敎)가 반반을 차지했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체제에서 문화전반적인 것에서 통일을 추구하면서도 각자 종교적인 자유를 허용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연합체 형태이다.

풍속으로 말하면 중국과 오랑캐의 것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는 사실 또한 우리가 한반도 역사에서 배운사실과 현저히 다른 다문화포용정책이다.

선진문화와 후진문화를 동시에 수용하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종교를 유석(儒釋)이라고 하였는데 바로 서양유교(西洋儒敎)만이 아니라 동양유교(東洋儒敎)까지를 포함한 삼한종교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불교(佛敎)라 한 것도 용(龍)과 뱀(巳)을 모두 숭배하는 힌두교만이 아니라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을 포함한 종교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속에는 배화교(拜火敎:示天敎)라고 없을 손가.

이것이 어찌 한반도 역사란 말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왕족혼인에 의해 합병함으로서 연합코리아(UNITED COREA)가 되고 그때부터 예법과 도덕, 예교(禮敎)가 일으켜지지 않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즉 윤기(倫紀)가 밝혀지지 않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코리아란 삼한에는 이미 동서양의 혼인이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머지 않아 서양인들이 추구하는 물질이 체제를 물들이면서부터 굳건하던 하나의 체제가 여러가지 복합적인 메카니즘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에 따른 불만들이 증폭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밑바닥부터 혼란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을 보라.


마무리


                         [resident(거주), breeding(번식), winter(월동), migrant(이주)]


이제 마무리를 짓자.

연나라가 어디에 있어야 할까?

그렇다고 하여 북아메리카대륙 전체를 이야기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현재 북경을 옛 이름으로 유주(幽州), 유연(幽燕), 계현(薊縣)이라 하였다.

번역원의 해석을 보면 석목(析木)이라함은 중국의 유연(幽燕) 지역을 가리킨다 하였는데 본디는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십이진(十二辰)으로는 동북(東北)방향의 인(寅)이고, 이십팔수(二十八宿)로는 미수(尾宿)와 기수(箕宿)의 사이에 속하는 것은 조선과 같다 하여 같이 접했다고 하며 이곳은 유연의 분야(分野)에 해당되므로, 유연 지방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고 하였다.

이것은 석진(析津)과 같다.

더하여 현 신중국역사를 보면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과 고신씨(高辛氏) 제곡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 민족들의 시조가 되었다 하였다.

분명한 것은 조선과 중국이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신중국사 만들기는 중국을 조선과 분리시켜 동아시아대륙 전체라 하고 있다.


우리가 왜 여태까지 제비 근원지를 살폈겠는가.

일반적으로 제비"barn swallow"라 하고 사발형태의 둥지를 만드는 제비, 또한 흥부가에 등장하는 제비는 히룬도 루스티카(Hirundo rustica)라고 할 때 속명 히룬도(Hirundo)는 라틴어 제비(swallow)라는 뜻에서 가져온 것이고 종명(種名) 루스티카(rustica)는 국가 혹은 나라(of the country)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여기서 알고자 하는 연(燕)나라의 위치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근원지 밝힘에 있어 히룬도 루스티카(Hirundo rustica)중 6종류의 아종(亞種)에서 1783년 네덜란드 내과의사 및 동물학자 피터 보다르트(Pieter Boddaert:1730-1795)에 의해 명명된 학명 "[2]Hirundo rustica erythrogaster Boddaert, 1783 "는 일반적으로 제비(Barn Swallow)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위 형태의 제비로서 신빙성이 상당하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툰드라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과 멕시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 시에라마드레 산맥(Sierra Madre Occidental)동쪽지역까지를 경계로 하면서 바로 강남이라고 할 수있는 지역으로 북쪽으로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이 흐르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양자강과 비교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The name "erythrogaster" is derived from the Greek words "erythros" meaning red, and "gaster" meaning belly.

이 학명의 종명인 “erythrogaster”에서 그리스어 “erythros”는 붉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gaster" 는 볼록한 배, 둥그런 부분, 블룩하다는 의미가 있어 전체의미는 붉은 배를 가진 제비로 이해되는 종명인데 위 [2]제비사진에 등장하는 제비의 배와 똑 같아 믿음이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나라는 북아메리카대륙에 존재했던 것은 틀림없다.

서두에서 살펴본 신중국과 한반도 지형으로 전혀 일치하지 않던 제비노정기의 로정을 다시금 위 북아메리카대륙에서만 서식하는 "[2]Hirundo rustica erythrogaster"를 흥부가의 제비주인공으로 하여 월동지인 남아메리카대륙[winter:월동]에서 중앙아메리카를 지나 멕시코거치고 북아메리카대륙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정확하게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전라도일 수 있는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서 서남쪽으로 강남으로 갔다가 다시 이듬해 강남에서 동정호(洞庭湖) 소주(蘇州)와 삼강(三江)지방의 여덟 곳 차례차례 구경하고 나서 남경누대(南京樓臺) 봉황대(鳳凰臺)에서 호북성(湖北省)의 황학루(黃鶴樓), 안휘성(安徽省)의 계명산(鷄鳴山), 강서성(江西省)의 남병산(南屛山)를 거치고 이것에서 화중(華中)과 화북(華北)을 생략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며 다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넘을 수 있는 위치가 어딘가를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하고 조선과 경계에서 있었던 요녕성(遼寧省)의 갈석산(碣石山)에서 연경(北京)으로가 장안(西安)과 낙양(洛陽)사이 동관(東關) 즉 관동과 같을 수 있으며 이곳을 지나 흑룡강성(黒龍江省)의 영고탑(寧古塔)당도하고 그곳에서 가까운 압록강 건너 의주 통군정(義州統軍亭)에 다다른 것이 실제로 어딘가를 우리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참고로 제비를 국조(國鳥)로 여기는 국가는 바로 오스트리아(奥地利:Austria)와 에스토니아(Estonia)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오스트리아는 멕시코 중심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찾아야 할 국명임을 알 수가 있다.

끝으로 오스트리아와 에스토니아를 굳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찾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다음 글에서 하고자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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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운남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