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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소봉 대한국(大韓國)은 북아메리카대륙지배 명칭.
글쓴이:한부울
고종태황제실록[高宗太皇帝實錄]
고종 20권, 20년(1883 계미 / 청 광서(光緖) 9년) 6월 22일(경오) 4번째기사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이 체결되었다.
통상 장정(通商章程)
제41관
第四十一款, 准日本國漁船, 於朝鮮國全羅、慶尙、江原、咸鏡四道海濱, 朝鮮國漁船, 於日本國肥前、筑前、石見、長門、【對朝鮮海面處】出雲、對馬海濱, 往來捕漁。
일본국 어선은 조선국의 전라도(全羅道), 경상도(慶尙道), 강원도(江原道), 함경도(咸鏡道) 네 도(道)의 연해에서, 조선국 어선은 일본국의 히젠〔肥前〕, 치쿠젠〔筑前〕, 이시미〔石見〕, 나가도〔長門〕[조선해에 면한 곳], 이즈모〔出雲〕, 쯔시마〔對馬島〕의 연해에 오가면서 고기를 잡는 것을 허가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위의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에 41관의 내용을 보면 물론 임오군란
이후 일본에게 저 자세상태에서 맺은 조약이라고 하겠지만 일본어선조업권역를 조선에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네 개의 도(道)만을 한정시켰다는 것인데 사실상 이것은 당시 조선지형에서 바다와 접하고 있는 4개의 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한반도 지형에서 볼 때 바다와 접하고 있는 곳이 황해도도 있고 충청도와 평안도가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황해도와 충청도 그리고 평안도는 바다와 접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대한 강과 접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러분께 묻는다.
과연 고려때 5도 양계에서 바다와 접해 있었다고 판단되는 행정구역 해양도와 서해도는 이후 조선행정구역에서 황해도와 같은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물론 조선서쪽과 고려서쪽은 같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사실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같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는 조선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면 일본에게 조업권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멕시코만을 남해로 볼 때 전라도라 할 수 있고 플로리다를 포함하여 동해연안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로 대입하면 지형상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본 블로그 글 "순천(順天)과 해남(海南)은 남해바다 가운데 있다? https://han0114.tistory.com/17050688"에서 밝혀본 결과이다.
이 4개의 도(道)만 일본어선들이 조업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는 사실과 반대로 조선어선들은 조선해(朝鮮海)가 면한 곳으로 히젠[肥前], 치쿠젠[筑前], 이시미[石見], 나가도[長門]에서 그리고 이즈모[出雲], 쯔시마[對馬島]의 연해까지 조업권을 보장받는다는 조약에서 상방이 합의한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조선반도 또는 한반도의 지형에서 바다와 접촉하는 곳이 어떻게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만 있어야 하는가.
이 조일통상장정조약이 체결될 시에 조선은 분명 한반도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조약에서 부첨할 것은 조선해의 실체이다.
지금도 일본과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지만 현재 한반도 같으면 조선(朝鮮) 즉 한국과 일본(日本)사이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 하거나 일본해라 하고 있지만 사실상 1883년에 조일통상장정에 의한 조약에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동해(東海)또는 일본해(日本海)가 아니라 분명코 조선해
(
朝鮮海)라 했음을 상방이 합의한 조약에서 알 수가 있다.
도대체 일본이 꼼짝할 수 없는 이런 조약서까지 역사서에 번듯하게 있음에도 현 동해문제에서 조선해라 한 사실자체를 우리역사학자들이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독도문제나 동해문제에서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될 때 우리나라 역사학자 누구가 이에 정확한 답을 제시하거나 할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한반도 역사학자들은 과거 어떠한 역사문제도 결코 독자적으로 연구가 불가능하고 언제까지고 일본 역사학자들에게 매달려 종속관계에서 그들의 지시나 거짓 정보를 전달 받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한심한 신세들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이 조약에서 조선해와 접한 일본지명 히젠[肥前], 치쿠젠[筑前], 이시미[石見], 나가도[長門]역시 지금 일본열도에 배치된 위치라는 것을 보면 조선해와 면했다고 볼 수 없는 전부 열도 남쪽 쓰시마와 같은 방향이며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883년 당시 일본이 있었던 곳이 지금의 열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원칙적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라 함은 조선왕조의 태조부터 조선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순(年月日順)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한 역사서라고 정의 하고 있다.
철종이후의 고종태황제실록(高宗太皇帝實錄)과 순종효황제실록(純宗孝皇帝實錄)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규례에 맞지 않고, 일본인의 시각에 입각한 바가 많다고 보아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이다
때문에 고정편과 순종편은 아무래도 한반도 역사이동 이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가 있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전혀 고려될 수 없는 대상의 사서임에 틀림없다.
한반도역사라는 것은 1945년이후 한반도를 장악한 미군정 꼭두각시들에 의해 서세가 만든 서양사를 바탕으로 역사새판짜기 과정을 거쳐 동아시아대륙특성에 맞게 새롭게 창조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여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이라는 것은 미군정의 지시를 받고 한반도로 이동한 세력들이 본래 사관들에 의해 수정, 보정되던 것을 핑계로 삼아 한반도 사정에 맞게 가필 또는 조작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 한반도 역사학자들의 기막힌 신세를 탓하였지만 오늘날 아무리 뛰어난 역사학자라 할지라도 열본사학계의 허락없이 스스로 무엇을 찾아 역사를 말하기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큰 심각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식민지같은 사실이 없었지마 오히려 후세들이 가당찮은 한반도 역사로 인하여 이처럼 식민지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현재 사학계의 찌질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는 참으로 딱한 이야기가 있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만듬에 있어 과거 대한제국의 역사학자들이 참여하였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대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학자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버려 진짜모습조차 알 수가 없다.
혹은 한반도 이동이 본격화 될 때 죽임을 당하거나 아마도 회유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동양계 조선인들은 거의가 일본인으로 둔갑하였을 것이다.
이런 인사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친일파를 구별된다.
한발 더 나아가 볼 때 일제가 미국자본주라 할 때 그들이 고용한 용병세력이 일본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용병들이 혁명세력이 되어 그들의 세력이 크지자 나중에 미국도 그들을 어찌할 수가 없을만큼 세력이 강해졌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친일파라는 것은 곧 친미파를 말한다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반도역사만들기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은 일제(미국)교육을 받은 세력들로서 유학파라 한다.
역사사실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그들은 새로운 한반도역사를 창출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없었던 국가관이 투철했다고 볼 수 없다.
한반도에 자주독립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이 자주독립국가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서 한반도이거나 조선반도이거나 명칭조차도 우리마음대로 붙일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국명 COREA 에서 KOREA로 바꿔 부르면서 이미 코리아는 조선이라 천명한 것이다.
그것은 1945년 미군정의 이름이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在朝鮮美陸軍司令部軍政廳,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이었다.
어째서 엄현히 대한제국이 최종 우리역사국가명인데 이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조선이라고 하였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현재 열도일본인들 뿐만아니라 신중국사람들도 한반도라고 하지 않는다.
한(韓)반도 아니라 조선반도라 했다면 한반도역사가 아니라 조선(朝鮮)반도역사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이라 칭하길 싫어했다는 사실이다.
본래 대타타르영역이며 코리아의 대동아공영권에 속하던 한반도에 대조선과 대한국의 모든 역사를 한꺼번에 집어넣기란 사실상 살아있는 역사라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그들에게 다 죽은 죽검의 역사일 뿐이다.
때문에 미국에게 최후의 결전에서 패하면서부터 대한국은 공중에 떠 버리고 오직 그들에게 점령당한 조선이 존재할 뿐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 오리엔탈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자체가 서구역사가 태동할 수 없는 조건이다.
즉 그들은 북아메리카대륙의 동부가 극동이라는 사실을 지워버리고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열도에 여태없었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서 그곳을 극동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일본, 신중국이 극구 싫어 했던 대한국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高宗實錄 고종 34년(1897 /대한 광무(光武) 1년) 10월 11일(양력) 3번째기사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이하를 인견(引見)하였다.
上曰: “欲與卿等有所議定者矣。 今於一初之政, 百禮俱新, 自今肇禋圜丘之時, 宜用定有天下之號也。 大臣之意何如?” 舜澤曰: “國家, 因箕子舊封朝鮮之名, 仍以爲號, 未始爲切當。 今於邦舊命新之日, 定有天下之號, 應合典則矣。” 秉世曰: “天命維新, 百度皆新, 有天下之號, 亦宜新定。 自今伊始, 萬億年卜世祈永之本, 實在於此矣。” 上曰: “我邦乃三韓之地, 而國初受命, 統合爲一。 今定有天下之號曰‘大韓’, 未爲不可。 且每嘗見各國文字, 不曰‘朝鮮’, 而曰韓者, 抑有符驗於前, 而有竢於今日, 無待聲明於天下, 而天下皆知大韓之號矣。” 舜澤曰: “自三代以來, 有天下之號, 未有承襲于前者矣。 而朝鮮乃箕子舊封之號也, 堂堂帝國, 不宜因仍其號矣。 且大韓之號, 稽之帝統之國, 無襲舊者矣。 聖旨切當, 無敢贊辭矣。” 秉世曰: “各國人之以朝鮮稱韓者, 其祥已兆於平昔, 而政待天命維新之日矣。 且韓字扁旁, 因朝字扁旁, 亦奇合而不偶矣。 此萬世開太平之應也。 臣不勝欽仰攢頌矣。” 上曰: “有天下之號旣定, 圜丘壇告由祭文及頒詔文。 竝以大韓, 書之可也。”
상이 이르기를,
“경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려는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에 모든 예(禮)가 다 새로워졌으니 원구단(圜丘壇)에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하니,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하였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告由祭)의 제문과 반조문(頒詔文)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하였다.
위 기사를 보면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거의 1년간 어가를 러시아제국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이후 덕수궁(德壽宮)으로 돌아와 약 8개월 흐른쯤 고종이 쫓기듯이 나라 국호를 개명하는 작업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관파천도 본래 아라사공관을 뜻하는 아관(俄館)이라 하였지만 후일 한반도역사가 뒤에 파천(播遷)이 붙은 것은 일제란 프레임을 깔고자 러시아공관에 도망치듯이 어가를 옮겼다고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아관은 고려의 의정부(議政府)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의 여러가지 암시 중에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이 해체된 상태에서 체제가 변하면서 고종이 고려로 잠시 이동했거나 옮겨 사후의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또 다른 우리가 알 수 없는 역사반전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김홍집(金弘集:1842-1896)은 반역자로 취급되어 피살되었지만 브리티시의 로버트 케스코인 세실( Robert Gascoyne-Cecil)과 비슷하다는 것을 본 블로그 글 "김홍집(金弘集)과 로버트 케스코인 세실(Robert Gascoyne-Cecil) https://han0114.tistory.com/17050576"에서 밝혔고 또한 같은 시간에 반역자라는데는 청 군벌 이홍장(李鴻章:1823-1901)과도 흡사하다.
청은 고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등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본 블로그 글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로 본 대한제국 https://han0114.tistory.com/17050734"의 소제[대한제국의 생성과 아라사제국]에서도 고종은 고려로 들어갔을 것이란 주장을 하였던 바가 있으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조선(朝鮮)과 고려(高麗)는 별도로 존재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 당시 상황으로 보았을 때 조선황제는 인도코끼리로 비유된다는 점에서 미국대통령(경제권을 가진 정부수반)에게 장악되어 실권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고려황제는 대한제국이라 했을 가능성과 러시아란 이름으로 미국과 최수결판을 낼 때까지 잔존한 역사주체임을 감안해야 하리라고 본다.
이것의 역사바탕은 악라사와 아라사이며 이것을 서양지도에 대타타르라 한 것을 찾을 수가 있다.
今於一初之政, 百禮俱新
위 한 줄의 한문장은 고종이 대한국 국명을 개칭함에 있어 당시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데 "지금 많은 예와 모든 것들이 다시 갖추어져 새롭게 시작하는 정사(政事)"라고 하였다고 도대체 무엇때문에 조선(朝鮮)국명을 새롭게 개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실로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고종실록이나 순종실록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역사농단세력에 의해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조선과 고려가 각각 존재하였음에도 고려라는 실체가 조선으로 흡수되어 사라진 것처럼 처리된 부분이다.
그러나 근세기 사건전반에 걸쳐 고려는 청으로 분해 나타난다.
다만 고려를 숨기는 대신에 한반도역사에서는 친일파정권(김홍집:1897년,피살)과 친러파정권(尹容善:1897-1903)의 정권다툼으로 만들고 있다.
윤용선은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입법한 특별입법기관 법규교정소총재(法規校正所總裁)를 으며 국호를 개명하고 난 후 바로 대한제국 내각의 최고 책임자인 의정부 의정 대신(議政府議政大臣)이 된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명성황후시해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보면 [경향신문 2013.07.01]기사제목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생존 외교문서 발견"에서 1896년 2월6일 러시아 주재 독일대사 후고 라돌린(Hugo Fürst von Radolin:1841-1917)이 독일제국 총리 호엔로헤 실링스퓌르스트(Hohenlohe Schillingsfürst:1819-1901)앞으로 보낸 비밀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에서 “러시아 외교부 장관 알렉세이 노마노프 로스토브스키(Aleksey Lobanov-Rostovsky1824-1896)가 자신의 정보에 따르면 죽었다고 이야기되는 한국의 왕비가 아직 살아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고 적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고종이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느꼈다고 하는 위기의식은 조작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분명한 것은 대한국이란 국명은 조선과 달리 많은 국가들에게 그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도 확실한 체제보장을 할 수 있는 담보로 충분했던 것 같다.
그것의 원동력은 물론 힘이겠지만 바로 현재 역사에서는 러시아로 부각되고 있다.
고려를 분한 러시아가 서세들에게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던 조선 고종의 뜻을 담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자 했을 것이고 때문에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이 통합하는 과정을 전세계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국은 그리이트 코리아 그 자체로서 충분했던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고려와 조선이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계획하던 어떤 위험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 이후 이것을 빌미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에게 대한제국(고려+조선)을 통째로 넘겨주는 역사가 아니라 사기행동을 취하게 만든 것이다.
본 블로그 글 "태프트 가쓰라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은 없었다.https://han0114.tistory.com/17050751"에서 지적하였듯이 한반도역사에서는 이 밀약을 근거로 일제(열도일본)란 프레임을 가시화한 것이 틀림없다.
사실상 현재 러시아는 레닌과 소비에트연방의 스탈린에 의해 사라진 역사이다.
대한제국 역시 일제와 미국에 의해 사라진 역사이다.
이러한 프레임을 깔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와 대한제국이 사라진 상태이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소련도 불리할 것이 없고 미국 역시 골치아픈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어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
때문에 아관파천이 이루어져야 할 당시의 역사상황을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당시 조선과 고려를 위협하던 세력 즉 일본(미국자본주)로부터 위험한 상태에서 자구책을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는 문제로서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 틀림없다.
본 블로그 글 "청일전쟁은 고려(高麗)와 서세(西勢日本)의 충돌 https://han0114.tistory.com/17050727"과 "텍사스 롱혼(Texas longhorn)과 청일전쟁 https://han0114.tistory.com/17050728에서 주장했듯이 청나라의 정체가 고려라는 사실과 일본의 정체는 바로 멕시코와 쿠바의 반혁명세력 또는 미국자본주가 고용한 용병세력이라 한 적이 있고 청일전쟁이 발발된 지역이 바로 텍사스주였다는 사실도 밝혔던 적이 있다.
동아시아대륙에서 일어난 사건들 모두가 북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힘이 약해진 상태에서 이들 자본력을 동원한 세력들에게 궁지에 몰려 어쨌던 정치적으로 쫓긴 고종은 아관파천때 1년동안 고려(高麗)영역으로 들어가 이 모든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1년후 2월 20일에 덕수궁으로 환궁하였고 그해 10월에 국명을 개명하게 이른 것이다.
이 개명작업은 바로 종래 세계역사전체를 끌로가던 팍스코리아 실체 조선과 고려가 국명으로 합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명을 개칭할 당시 신하들이 말하길 조선이란 국호(國號)가 옛 기자가 봉해졌을 때 칭호라 하였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고종 역시“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은 삼한이 통일된 것 자체가 대한(大韓)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대한국, 대한제국이란 명칭은 서세들의 반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고종이 말하길 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상에 새삼스럽게 따로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찬 어조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인 1899년 양력8월 17일자 기사를 보면 비로서 대한국법제를 공표하게 된다.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
第一條, 大韓國은 世界萬國에 公認되온바 自主獨立 온 帝國이니라。
제1조 대한국(大韓國)은 세계만국에 공인된 자주독립(自主獨立)한 제국(帝國)이다.
第二條, 大韓帝國의 政治由前則五百年傳來시고 由後則亙萬世不變오실 專制政治이니라。
제2조 대한 제국(大韓帝國)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래 되었고, 앞으로 만세토록 불변할 전제정치(專制政治)이다.
第三條, 大韓國大皇帝게서無限온君權을 享有시나니 公法에 謂바 自立政體이니라。
제3조 대한국 대황제(大皇帝)는 무한한 군권(君權)을 지니고 있다. 공법에 이른바 정체(政體)를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第四條, 大韓國臣民이 大皇帝의 享有신 君權을 侵損行爲가 有면 其已行未行을 勿論고 臣民의 道理를 失者로 認지니라。
제4조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가 지니고 있는 군권을 침손(侵損)하는 행위가 있으면 이미 행했건 행하지 않았건 막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한다.
第五條, 大韓國大皇帝게서 國內陸海軍을 統率서 編制를 定시고 戒嚴解嚴을 命시나니라。
제5조 대한국 대황제는 국내의 육해군(陸海軍)을 통솔하고 편제(編制)를 정하며 계엄(戒嚴)과 해엄(解嚴)을 명한다.
第六條, 大韓國大皇帝게서 法律을 制定서 其頒布와 執行을 命시고 萬國의 公共法律을 効倣사 國內法律도 改正시고 大赦特赦減刑復權을 命시나니 公法에 謂바 自定律例이니라。
제6조 대한국 대황제는 법률을 제정하여 그 반포와 집행을 명하고 만국(萬國)의 공통적인 법률을 본받아 국내의 법률도 개정하고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복권(復權)을 한다. 공법 이른바 율례를 자체로 정하는 것이다.
第七條, 大韓國大皇帝게서 行政各府部의 官制와 文武官의 俸給을 制定或改正시고 行政上必要 各項勅令을 發시나니 公法에 謂바 自行治理이니라。
제7조 대한국 대황제는 행정 각부(各府)와 각부(各部)의 관제와 문무관(文武官)의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하며 행정상 필요한 각 항목의 칙령(勅令)을 발한다. 공법에 이른바 치리(治理)를 자체로 행하는 것이다.
第八條, 大韓國大皇帝게서 文武官의 黜陟任免을 行시고 爵位勳章及其他榮典을 授與或遞奪시나니 公法에 謂바 自選臣工이니라。
제8조 대한국 대황제는 문무관의 출척(黜陟)과 임면(任免)을 행하고 작위(爵位), 훈장(勳章) 및 기타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박탈한다. 공법에 이른바 관리를 자체로 선발하는 것이다.
第九條, 大韓國大皇帝게서 各有約國에 使臣을 派送駐紮케, 시고 宣戰講和及諸般約條 締結시나니 公法에 謂바 自遣使臣이니라。
제9조 대한국 대황제는 각 조약국에 사신을 파송주재하게 하고 선전(宣戰), 강화(講和) 및 제반 약조를 체결한다. 공법에 이른바 사신을 자체로 파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이러한 관례법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레이트 코리아를 다시 세우고자 햇던 것일게다.
위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입법한 특별입법기관 법규교정소총재(法規校正所總裁) 윤용선(尹容善)이 주본(奏本:제후(諸侯)가 황제(黃帝)에게 올리는 글)을 올리고 이어서 황제에게 알리길 "나라를 세운 초기에는 반드시 정치(政治)가 어떠하고, 군권(君權)이 어떠한가 하는 것으로 일정한 제도를 만들어 천하에 소상히 보인 뒤에야 신하와 백성에게 그대로 따르고 어김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태조대왕(太祖大王)은 천명을 받들어 왕업을 창시하여 왕통을 전하였으나 아직도 이러한 법을 정하여 반포하지 못한 것은 거기까지 손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폐하는 뛰어난 성인의 자질로서 중흥의 업적을 이룩하여 이미 보위에 올랐고 계속하여 국호를 개정하였으니, ‘주(周) 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명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억만 년 끝없는 행복이 실로 여기에 기초하였으니 선왕조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일이 오늘을 기다린 듯합니다. 이것이 이 법규 교정소를 설치한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조선500년 기간 동안 나라의 현대처럼 변한 기본법제가 마련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렇더라도 옛 관료체제제례를 주도한 동이족인 주(周)나라의 명(命)을 따라 오늘에 와서야 이와 같은 관례를 행한다는 이야기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 조선(朝鮮)이 서세들에게 장악된 형편이었으니 기막힌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모든 국가들이 조선이라 하지 않고 한국(韓國)이라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라는 것은 바로 코리아(COREA)라 지칭했다는 것이다.
1897년 비로소 개칭을 단행한 대한국은 조선 500년 전통을 이었다고 했고 만세 불변할 전제정치(專制政治)임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왜 전제정치가 계속되어야 하는가라고...한반도 구성원들은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삼한의 전통적인 정치이념은 서양의 공화국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고종실록에 기록된 법제조항이 과연 온전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위 법제를 총 정리하여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황제는 무한한(無限) 군권(君權)향유와 육해군(陸海軍) 통솔권 그리고 계엄과 해제권, 법률을 제정반포, 집행과 개정,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복권(復權)을 고유권한으로 하며 관제와 문무관(文武官)의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 행정상 필요한 각 항목의 칙령(勅令)을 발하고 문무관의 출척(黜陟)과 임면(任免)을 행하며 작위(爵位), 훈장(勳章) 및 기타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박탈, 사신을 파송주재하게 하고 선전(宣戰), 강화(講和) 및 제반 약조를 체결하는 권한 등을 정한 것이다.
조선은 왜 이런 관례법규를 갖추지 못했을까?
윤용선이 말하길 "거기까지 손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지만 지금처럼 외교관례를 추구할 많은 국가들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고종황제가 이때 위 법제를 제정한 법규교정소(法規校正所)를 연견(迎見)하였던 기록이 있다.
이 기관은 전장(典章)·법률을 개정하는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로서 조직은 총재와 의정관, 그리고 위원들로 구성되어 국가 관료대상으로 훈장(勳章), 연금(年金)의 수여(授與), 치탈의 가부를 판정(判定)을 담당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0명의 의정관(議政官)명단을 보면 서정순(徐正淳)·이종건(李鍾健)·이윤용(李允用)·권재형(權在衡)·박용대(朴容大)·르 장드르[이선득(李善得):Charles W. Le Gendre]·브라운[柏卓安:J. McLeavy Brown]·성기운(成岐運)·김영준(金永準)·그레이트하우스[구례(具禮):Clarence R. Greathouse]등으로 나타나는데 이윤용은 처음 아관파천을 이범진, 이완용과 함께 모의한 인물이며 특히 주목 할 것은 10명(名)의 의정관 중에 외국인이 3명(名)이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프랑스 파리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한 샤를 기욤 조제프 에밀 르 장드르(Charles William Le Gendre,1830-1899)라는 사람은 미국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며, 1872년부터 1875년까지 일본의 외교고문으로 있었고 1890년에 조선(朝鮮)공사였던 김가진(金嘉鎭:1846-1922)의 도움으로 조선에 와서 내무협판(內部協辦)이 되었던 인물로서 한국명이 이선득이라 한다. 다음 맥리비 브라운(John McLeavy Brown:1835-1926)은 아일랜드출신으로서 영국재정고문이며 조선(朝鮮)에 와서 해관(海關)을 지위하는 총세무사(總稅務司)를 담당하였고 한국이름은 백탁안이다.
나머지 한사람 그레이트하우스(Clarence R. Greathouse:1846–1899)는 켄터키 출신으로 1890년 내무협판(內部協辦)에 이어 우정국총판직과 1896년에 고종법률외교고문으로 외국과 분쟁을 담당하고 각종 조약협약 및 체결과 한국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인물로서 한국이름이 구례라 하였다.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이름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적어도 한반도역사가 이야기 하듯이 자국의 이권획득 및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활동했다는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특히 프랑스인 장드르는 일본을 배척할 것을 한결같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글쓴이의 판단은 이들 모두가 대조선인이거나 대한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우리가 한반도로 역사이동이 타에 의해 진행되면서 도리없이 외국인이 되어버린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조선이나 대고려인들의 기록이나 자료들은 한반도사관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힘이 없으니 서양인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의타적인 매우 암울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근세기들어 온 세계가 벌에 쏘인 듯 너도나도 발칸화가 시작되면서 대소국가들이 나눠지고 조각조각분리되면서 수많은 조약이나 외교문제에 따라 복잡한 관계가 생성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환경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체제가 통제하던 상태에서 국가간 분쟁이 그렇듯 많지 않았을 것이고 외교관례가 빈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도의 시성(印度詩聖)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가 그의 시(詩)에서 읊었듯이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가 있었으니 그 코리아에서는 지식이 자유스럽고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세계가 좁다란 담벽으로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이 바로 코리아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하나의 체제를 이야기 한 것이다.
코리아(한국) 삼한주체들이 주도하는 체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그곳은 한없는 자존의 땅이라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무어이든 해서 안될 것이 없는 희망의 땅을 말하고 있으며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천리와 진리가 살아 있어 옳고 그름이 분명한 도덕과 윤리로 굳어진 땅, 그리고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곳을 자유의 천국이라 하였다.
이런 체제의 코리아가 조각조각 분리되지 않았을 때는 서세가 난리를 치는 시대처럼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고 갈등이 적었을 테니 국가간 서로 조약이 부평등하게 체결된다는 것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세계통치국이었던 조선이나 고려는 갑자기 변화하는 국제문제에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우리 역사주체들이 국명을 한국(韓國)이라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조선이란 국명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하나의 체제를 강조했던 것이다.
한국의 한(韓)은 하나의 역사주체가 가져야할 총제적 의미가 다 들어 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명칭임을 다시 알게 하는 것이다.
韓
明文堂新玉篇(1952판)
韓한 국명 萬所封 한나라 한(금-河南省中部, 及 山西省 澤路地方)朝鮮國名 三-나라이름 한 (今 京畿, 忠淸, 慶尙, 全羅等地)朝鮮改稱 大-한국,
위 명문당신옥편에 보면 한(韓)은 첫째 만소봉(萬所封)이라 하였다.
본 블로그 글 "종려(棕櫚), 야자나무로 본 대한제국 https://han0114.tistory.com/17049487 "에서 한(韓)을 만소봉(萬所封)이라 한 것은 만(萬)자는 완벽, 완전하다는 완(卍)자와 함께 쓰는 단어로서 '절대',또는 '대단히 많다'는 뜻으로 쓰이며 소봉(所封)은 "봉(封)하여 관리하다"란 뜻이어서 즉 만소봉은 '수많은 나라를 세워 관리하다'란 뜻이라 하였다.
이것은 소위 세계삼한역사를 가진 주체로서 하나의 역사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틀림없다.
한(韓)의 본음은 크다 대(大), 환(桓)이었다 하고 음이 같은 한(漢,汗)등은 그 연원이 같다라고 나온다.
근본인 정원(井垣)우물난간이라 하고 또 대국의 울타리(fence)라고도 한다.
소도경전(蘇塗經典) 본훈(本訓)[蘇塗經典本訓第五, 三一神誥 第五章 人物篇]에
" 故地有三韓爲辰弁馬三京之韓, 韓卽皇也, 皇卽大也, 大卽一也 " 옛 땅에는 삼한이 있었는데 진변마(辰弁馬)한과 3경(京)을 한(韓)이라 하였고 한(韓)은 황제(皇帝)를 뜻하고 황(皇)은 크다(大)이며 크다는 것은 하나를 말함이다라 한 것이다.
또한 한(韓)은 한(桓)에서 생겨났으며 그러므로 한(韓)의 본체는 한(桓)이고 한(桓)의 근본은 하나(一)이며 또 한(韓)은 하나(一)이고 하나(一)는 하늘(天)이라 하였고. 하늘(天)에서 생긴 글자가 간(干)이고 간(干)은 한(汗)이 된다 하였다.
한(桓)은 최초의 만물이 하늘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므로 환(桓)은 나무가 하늘에서 땅에 이른 모양이라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한(韓)에서 하나를 말하고 있으며 바로 크다(big)와 하늘(sky)을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때문에 고종황제가 기어코 개칭한 국명 대한국(大韓國)은 하나의 역사체제를 나태내는 상징성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로 고려와 조선을 합했으니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
또한 이러한 주체(主體)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또는 그레이트 스테이트(Great State), 북아메리카대륙에 독립한 초기의 미국을 대공화국이라고 햇듯이 그레이트 퍼블릭(Great Republic)과 같은 뜻이고 또는 2차세계대전 독일이 제3제국(第三帝国:Drittes Reich)의 깃발에서 만(卍)자를 사용하여 "하나의 제국"을 상징 했던 것처럼 만소봉의 진의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게르만종족이라고 하는 독일(獨逸)자체가 고려(高麗)와 연결되는 신성로마제국(神聖羅馬帝國:962-1806)에서 근원을 가진 것이 틀림없고 독일제국(獨逸帝國)의 호엔촐레른 왕가(House of Hohenzollern)역시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조선(大朝鮮)은 반도역사에서 의외로 특별하게 망했다는 기록이 별도로 나타나는 것이 없다.
반도사학자들이 그렇게 유도한 것일뿐 실제로 허망하게 망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한 예를 들자면 본 블로그 글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목화(木花, Gossypium)생산국이다.
https://han0114.tistory.com/17049956"에서 조선의 목화생산력이 어느정도인지 살펴보았고 세계목화생산국인 미국당시 남부의 생산력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하였던 바가 있다.
안타깝지만 1881년에 해체되었다는 것은 이런 대조선의 상징성이 와해된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물론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있었을 대조선은 이시기부터 이미 서세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각유럽국가들로 무수히 갈라지는 형태에 있었다는 것도 여러가지 자료에서 감지할 수가 있다.
조선이 동양문화의 산파에서 서양문화산파로 둔갑시키는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씁씁한 역사사실이 아닐 수 없다.
미대륙 동부를 장악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0-1922)과도 정확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도 본 블로그 글 "방울뱀(Rattlesnake, 響尾蛇)으로 본 마지막 대조선(大朝鮮) https://han0114.tistory.com/17050522"에서 충분히 확인한 바가 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맞물려 있는 시기에 브라운슈바이크(Duchy of Brunswick,1815-1918)와 뤼네부르크(Lüneburg)의 공작이었던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est Augustus:1629-1698)는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Hanover)로 옮기게 되면서부터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1641-1901)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은 조선왕조 16대 인조(仁祖,1595-1649,재위1623-1649)로부터 시작된 계보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때부터 만주족인 홍타이지(皇太極)라고도 하는 숭덕제(崇德帝,1592-1643,재위1626-1643)가 국호를 청(淸)으로 개칭하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하노버왕가는 청(淸)으로도 분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하노버(Hanover)는 한(韓:Han)과 오버(越:over)의 합성어라고 보았을 때 거대한 역사를 그들이 넘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즉 하노버는 한을 넘다, 한을 벗어나다, 등으로 쓰였을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 https://han0114.tistory.com/13203353"에서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이상스럽게도 청나라 북양군벌(北洋軍閥)의 이홍장(李鴻章)은 1896년 영국을 방문하고 당시 영국여왕으로부터 빅토리아 훈장(Royal Victorian Order)을 수여받기까지 하였는데 그 이유가 가당찮게도 영국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1912년에 신해혁명(辛亥革命)결과라고 하지만 청나라가 영국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니 그동안 이홍장은 영국을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후세 중국인들은 이홍장을 매국노로 비판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웠다 한다.
대신 김홍집을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기록에 적혀있다.
그리고 영국은 청(Qing)을 지칭할 때 청정부(Qing government)라 한 사실도 새겨볼 이야기다.
또한 본 블로그 글 "여진어와 영어 https://han0114.tistory.com/17050716"에서 만주족을 여진어를 쓰는 여진족이라 하였으니 하노버로출발한 영국과 청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처럼 한(韓)을 상징하는 만소봉(萬所封)의 실체는 이런 복잡함을 다 수용하는 국호이다.
근세기 역사농단세력이었던 서세들은 대한국의 영어명칭"COREA"란 명칭사용을 막았다는 사실 또한 이런 맥락과 같다.
1878년 5월 뉴욕에서 선대이메거진(Sunday Magazine)에 의해 마지막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타나 소멸된 명칭임을 강조하고 있는데서 이러한 인위적인 삭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본 블로그 글 "COREA, CORIA, CORREA, KORAI의 실체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1"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코리아(CORIA)는 스페인을 포함하는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와 남아메리카대륙 서부전역을 식민지지배체제의 주체임을 알 수가 있었다.
때문에 조선반도 또는 한반도 구성원들이 “COREA”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유태인 자본에 의해 장악된 뉴욕 황색신문, 헝가리 유대인출신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발행한 뉴욕 월드(New York World,1860-1931)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발행한 뉴욕저널(New York Journal:1895-1937)들에 의해 한반도 국가명 "KOREA"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때부터 서세들은 대한국의 역사를 축소시키기 광분했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국제공식화되었던 것은 1945년 이후 한반도에 조선(朝鮮)이라 하여 "KOREA"라 하던 때부터이다.
물론 얄타회담이다.
그렇다면 대한국(大韓國)이라한 "COREA”는 적어도 한반도 또는 조선반도의 역사명칭이 아님이 확실하다.
고종황제가 그토록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에서 볼 때도 이미“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세상에 새삼스럽게 따로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무한의 자신감은 우리가 반도역사에 비록 빠져 함몰되어 있다 하여도 이를 좀처럼 부정하기 힘든 역사 사실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대한국(大韓國)이나 코리아라고 하는 명칭은 1945년 2차세계대전으로 오그라 질대로 오그라진 형태의 한반도역사의 호칭이 아니라 적어도 고종이 국명(國名)을 개칭할 때 만소봉(萬所封)이 주는 자신감과 국가위치가 지금처럼 초라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형태의 역사라는 것 쯤은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다.
대한국(大韓國)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고 하는 것은 제정정치를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국가명칭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 한다.
과연 우리가 만소봉을 거느릴 수 있는 국가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열도일본 정치인들조차 제어할 수 없는 나약한 국가가 곧 대한민국인 아닌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과거 고종(高宗)황제가 조선(朝鮮)에서 대한국(大韓國)으로 개칭할 때 만소봉의 역사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질 않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미 본 블로그는 코리아가 있었던 곳은 북아메리카대륙이란 사실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글을 작성하였고 본 블로그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수많은 놀라운 글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추측이나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많은 과학적 자료를 통하여 비록 미미하다 하지만 하나하나 밝혀가는 것이 지금까지 그렇게 어긋나거나 틀린사실이 적다.
그것들은 절대로 허접한 것들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압록강을 미시시피강 상류임을 확신하는 글을 연달아 올렸다.
제목 "서양인이 말한 압록강의 위치-미시시피강상류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6"과
"압록강 자치(Korea taimen)는 갈색송어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7"이다.
이 두개의 글은 절대적인 압록강실체를 역사사실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담보하는 것으로 사실관계에서 솔직히 자신감이 넘쳐난다.
더 이상 코리아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없었다고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북아메리카대륙을 만소봉의 코리아라 한 것은 바로 대조선을 이은 대한국(大韓國)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2차세계대전말미까지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대만인들은 한국인들을 소위 질시하는 면이 많다.
그것은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중국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코리아가 그들이어야 하는데 한반도가 코리아라고 하는 것에서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근세기에 미국과 러시아 또는 영국으로부터 비호를 받고 대한국을 쳐내는데 앞장선 세력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한반도인들에게 질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신 그들은 열도일본인들을 좋아한다.
그것은 역사반대급부이다.
그리고 따져보면 근세기라 할지라도 역사공간에 근본도 없는 열도일본인들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그들은 선조들 대다수가 대한국의 일부로서 소속된 종족에 불과할 뿐이다.
대한국(大韓國)이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패북으로 사라진 1945년에 한반도에는 어쨌거나 조선(朝鮮)이 있어야 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日本)이 대한제국 즉 한국(韓國)의 국권을 강탈하면서 칙령 제318호를 발동할 때 "한국(韓國)의 국호(國號)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朝鮮)이라 칭한다."라 했다는 사실은 낳지도 않는 애를 임신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지만 한국의 국호가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아니면 조선과 함께 대한국을 같이 통째로 구어 삼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한반도 구성원들에게 만소봉의“COREA” 가 아니라 오그라진“KOREA” 라는 사실을 뼈속깊이 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일제 늪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도록 치욕적인 노예근성을 끊임없이 한반도 구성원들에게 심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감히 북아메리카대륙을 더 이상 삼한역사근원지라고 꿈꿀 수 없게 만들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철저했다.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에 지식자들조차 이러한 사실을 알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대한국(大韓國)이라 했을까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조차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 역사터전임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전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그곳을 조선반도(朝鮮半島)라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한반도(韓半島)라 해야 하는 것인지 역사농단세력들에게 어느쪽이 더 유리한가의 답만 남았던 사실들이 1953년 민족동란을 거치며 북쪽은 조선, 남쪽은 한국으로 자리잡으면서 마침내 그들이 골치아파하던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가 아니라 조선반도라는 명칭을 언제까지라도 가지고 가고 싶을 것이다.
그것을 현재 우리역사 비극의 꼭지점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조선반도에 조선과 한국을 끌어넣고 한꺼번에 일제(日帝)가 식민지했다고 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최선이었던 것을...[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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