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

한부울 2014. 4. 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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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

 

글쓴이:한부울

 

코리아지협과 한반도
세계 주요 지협(地峽:isthmus) 5 곳
중국, 역사와 기술: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 분석
중국의 예루살렘
해양세력들의 활동지역은 중앙아메리카이다.
근세기 만들기에 따른 위장된 자료가치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일치하는 지형
청(清)교도와 청(清)나라 후금의 만남
마무리-양쯔강은 리오 그란테강(Rio Grande)(19세기 중엽까지 코리아 경계선)

 

코리아지협과 한반도

 

이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은 우리에게 매우 낮선 용어일뿐만아니라 매우 충격적인 지형용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용어는 오래전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그것은 영국의 공무원이며 저술가로 알려진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1839-1900)의 여행기 중 1880년에 출간된 <중국, 역사와 기술: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에서 중국의 지리를 설명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물론 그가 동아시아대륙의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코리아를 방문하고 난 후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형적인 지식을 총동원하여 설명한 용어로서 바로 중국과 코리아 경계에 있다는 지형의 명칭이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대륙 한반도와 중국 경계라면 압록강이 전부인데 이 코리아지협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도깨비 방망이에 한대 세게 얻어 맞은 듯하다.

이러한 사실과 구분하였지만 이 책에 마지막 부록으로 처리되어 있는 목차 CHAPTEE I(281p)에서 CHAPTEE IV(332p)까지에는 한반도 모습의 코리아에 대한 기록이 있긴 있다.

그렇지만 이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그대로 믿기에는 한반도 지형사정이 그의 주장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맞다 안맞다를 떠나 도대체 한반도지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이란 용어도 문제지만 그의 글에서 설명한 부분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가 코리아지협이라는 존재지형을 분명하게 보았던 것은 틀림이 없는데 반드시 존재하고 있어야 할 한반도에는 정작 찾을 수가 없는 기막힌 현상을 우리는 맞이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협(地峽:isthmus)이란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적 판단을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먼저 육지 양쪽으로 해양(海洋)이나 해만(海灣)이 접근하여 육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지형으로 해석되거나 또는 대륙과 같은 넓은 두 육지사이를 연결하는 육지의 좁고 잘록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큰 대륙과 대륙 사이를 연결하는 잘록한 부분을 찾을 것도 없이 중앙아메리카대륙을 말하는 것이다.

전자의 해양과 해만이 접근하여 육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지형도 한반도에는 찾을 수가 없지만 대륙과 대륙의 육지를 연결하는 좁고 잘록한 지형은 더더욱 있을 수가 없다.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한반도에는 없는 지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한 것은 중국과 코리아 경계에 지협이 있었다는 사실이며 뿐만아니라 분명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이란 지형에 대해 그가 너무나도 자세한 내용까지 상식적으로 깊게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면 찰스 헨리 에덴이 보았던 코리아는 절대 한반도가 아니라는 명확한 사실에서 코리아가 한반도에 없었다면 역시 중국도 동아시아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 한번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이 밝혀짐에도 조금도 기쁘지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삼한역사 사실자체가 진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목이 아프고 팔도 아프고 생각도 아플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전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밖에 없는 한심한 반도역사 벽이 막고 있다는 서글픔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함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리아가 한반도가 아니라면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역시 동아시아대륙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근세기 운송수단이 강화되고 발달되기전까지 절대로 동아시아대륙에는 서양세력들이 지들말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들락거릴 수 없었던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얼신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나의 절대적인 판단이다.

그가 1880년에 이 책을 런던에서 출간했다고 하였지만 런던도 유럽 런던이 아닐 것이다.

그의 행선지를 잠시 간략하게 보면 출간년도 1880년 이전인 1863년에 처음으로 호주 모턴만(Moreton Bay)를 방문하고부터 그의 행선지가 모호해짐을 알 수가 있다.
spent two years at Mount McConnell under Ernest Henry and searched for gold at Calliope and Gympie in 1867.

1867년에는 호주 칼리오페(Calliope)와 짐피(Gympie)에서 금(gold)을 찾았고 탐험가 어네스트 헨리(Ernest Henry:1837-1919)와 멕코넬산(Mount McConnell)에서 2년간 허비했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돈이 되는 금이나 구리를 찾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본래 주행선지는 호주이다.

하지만 근세기 탐험가라는 가면을 쓴 그들의 속성은 숨길 수가 없다.

1867년 이후 2년간 금과 구리를 찾느라 허비하고 난 후 1870년에 수많은 여행기를 썼다고 하고 있다.

호주에 있었고 금과 구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호주에 들어가기 전에 동아시아대륙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사이 처럼 22.6 knots(41.9 km/h; 26.0 mph)의 첨단엔진을 단 수송선이나 여객선을 타고 세계곳곳을 방문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이 사람이 여행을 했던 시기가 1860년 후반이라면 1866년 무단으로 조선 땅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시민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난동을 부리다가 배가 침몰하는 사건을 우리는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사건이라고 하는데 이 함선의 구조를 보면 "two-cylinder geared" 엔진(Engine)에 겨우 speed: 11 knots 시속 20km 정도의 배수량이 614톤이고 길이가 약 39m 이며 승무원이 150 명 정도 되었다는 규모임을 알 수 있지만 천톤미만의 바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범선이란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영어자료에는 The 187-ton side-wheel steamer reportedly carried a cargo of cotton, tin, and glass, and was heavily armed.187톤으로 사이트 윌 스팀선으로 소문에 의하면 목화, 주석 및 유리 화물을 싣고 육중하게 무장하였던 운반선이라 하였다.

 

물론 이 배도 실제로 한반도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 때 스팀선(side-wheel steamer)은 해안이나 연안용이지 결코 태평양 횡단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이 배가 사건이 벌어진 2년 후 1868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윌밍턴(Wilmington)근처에서 1874년 1월 10일 침몰 할 때까지 생존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애초부터 제너럴 셔먼호 같은 규모의 배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크다로 할 수 있는 태평양을 횡단하거나 넘나들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국에서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말레카해협 그리고 지금의 남중해를 거쳐 한반도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그들의 선박조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해양시대라고 하여 그들 모든 활동이 만능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서양세력들이 지금까지 남겨놓은 모든 자료들은 이렇듯 조작되거나 새롭게 편집 만들어져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며 이러한 기록들만 역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삼한역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게 하는 것이기에 다시한번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이야기 들이다.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의 삼촌이 제독이었다고 하지만 실제 그가 여행기를 쓸 수 있는 곳은 어디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않을 수 없다.

삼촌이 제독이니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은 금물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을 때 호주역시 북미서부지역과 매치되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북미대륙 켈리포니아 멕코넬 산(McConnell Peak, a mountain in California)에서 금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본다면 그가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중아메리카대륙 멕시코만이나 카리브해 근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세계 주요 지협(地峽:isthmus) 5 곳

 

그렇다면 도대체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이 평소에 알고 있었던 중국과 경계에 있다고 하는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지형일까 궁금하다.

 

그래서 세계 주요 지협(世界主要地峽)들을 알아보면  동남아시아의 1.끄라 지협(Kra Isthmus)이 있고 아랍지역의 2.수에즈 지협(Isthmus of Suez)가 있으며 그리스의 3.코린트 지협(Isthmus of Corinth)과, 그리고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중앙아메리카대륙의 4.테우안테펙 지협(Isthmus of Tehuantepec)과 5.파나마 지협(Isthmus of Panama)이 있다.

위 주요 지협을 보면 위치 1, 2, 3은 육지 양쪽으로 해양(海洋)이나 해만(海灣)이 접근하여 육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지형을 말하는 것이며 위치 4, 5 는 대륙과 같은 넓은 두 육지사이를 연결하는 육지의 좁고 잘록한 부분의 위치장소이고 지형이다.

이 주요지협에 한반도가 나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은 오히려 당연하다.

 

육지 양쪽으로 해양(海洋)이나 해만(海灣)이 접근하여 육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지형으로 첫째

1.끄라 지협(Kra Isthmus)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와 아시아(Asia)를 잇는 지협이다.

 


2.수에즈 지협(Isthmus of Suez)은 지중해(地中海:Mediterranean Sea)와 홍해(紅海:Red Sea)사이를 가르는 좁은 땅으로, 아프리카(Africa)와 아시아(Asia)를 잇는 지협이다.

 


3.코린트 지협(Isthmus of Corinth)는 펠로폰네소스 반도(Peloponnese)와 그리스(Greece)본토를 연결하는 지협이다.

 

 

그리고 대륙과 같은 넓은 두 육지사이를 연결하는 육지의 좁고 잘록한 부분의 지형은 중앙아메리카대륙의 아래 두 지형을 찾을 수가 있다.

4.테우안테펙 지협(Isthmus of Tehuantepec)은 멕시코의 지협(isthmus in Mexico)으로 멕시코 만(Gulf of Mexico)과 태평양(太平洋:Pacific Ocean)사이에 놓여 있는 지형이다.

 

 

5.파나마 지협(Isthmus of Panama)은 카리브 해(Caribbean Sea)와 태평양사이의 남아메리카(South 南美大陸:America)와 북아메리카(北美大陸:North America)를 잇는 좁은 땅이다.

이것을 코리아지협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의 글에서 코리아와 관계되는 두 문장을 발췌하여 세세히 분석해보자.

 

중국, 역사와 기술: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 분석

 

그의 책 제목“중국 역사의 기술과 부속 코리아<China: 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

단원1(Chaptee I). — Origin of Name " China" — Its Geography and

Boundaries—China Proper,에 있는 아래 내용이다.

 

제목 China:

소제목 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

저자 찰스 헨리 이든(Charles Henry Eden:1839-1900)

발행처 M. Ward & Company, 1880 - 334페이지

 

[1]번문장

12page: China a Malay Name
13page:Boundaries.

Having arrived at the origin of its name, let us now turn to the geography of China. The Empire, situated in Eastern Asia, comprises the eighteen Provinces of China proper, Manchooria, Mongolia, Chinese Turkestan, Kokonor, and Thibet, whilst the Isthmus of Corea and the Loo-choo Islands are among its nominal dependencies.

It is bounded on the north and north-east by Asiatic Eussia, whose territory on the Pacific recently acquired from China touches the Corean frontier; east and south-east by the Yellow and China Seas; south by the Gulf of Tonquin, Assam, Slam, and Burmah ; and south-west and west by-India and the States of Independent Tartary.

 

[번역]“China”란 본래(origin) 이름이 유래하는 중국의 지리에 들어가보면 이 제국은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중국 본토(China proper)에는 18개의 지방이 구성되었으며 만주(Manchooria), 몽골(Mongolia), 중국령 투르키스탄(Chinese Turkestan), 코코노르(Kokonor,靑海:鹽湖), 그리고 티벳(Thibet),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과 류규제도(Loo-choo Islands)가 둘러쌓고 있는 것들은 이름뿐인 속국들이다. 유시아(Eussia?)의 북쪽과 북동부 제한하고 코리아(corea)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태평양연안에 땅을 습득하여 그것들을 전부 경계영역으로 하고 있다. 또 동쪽과 남동쪽에는 황해와 중국해가 있고 남쪽에는 통킹만(Gulf of Tonquin)이 있으며 아셈(Assam), 스람(Slam), 그리고 미얀마(Burmah)가 있다. 그리고 남서쪽과 서쪽에는 인도(India)와 타타르자치주(States of Independent Tartary)가 있다.

 

위 번역문을 보면 분명 18개의 지방이 있는 중국본토(中國本土)주위에 현재 동(東)아시아대륙에서 볼 수 있듯이 만주, 몽골, 투르키스탄, 청해호라고 하는 코코노르, 티벳을 열거했고 이 나라들이 전부 중국(中國)의 명목상 속국(屬國)이라고 하여 현재 동아시아대륙임을 의심할 수 없게 하였는데 유구국(琉球國)의 류규제도(Loo-choo Islands)는 현 오키나와제도라고 할 때 코리아주체들이 있었던 땅은 코리아지협이 대신 할 뿐 한반도 지형은 완전히 그의 글에서 빠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중국여행기를 쓴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왜 코리아 지형이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쌓이고 한 면(面)만 육지로서 중국과 이어진 반도(peninsula)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랬더라면 이러한 억측들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남서쪽과 서쪽에 인도(India)와 타타르자치주(States of Independent Tartary)가 있다는 글에서도 남서쪽에 인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과 같다고 볼 수 있으나 의문스러운 것은 중국본토 서(西)쪽에 타타르자치주가 있었다고 하였고 실제로 현재 동유럽 평원에 오히려 접해 있으며 볼가 강(Volga River)과 카마 강(Kama River)사이에 있는 것을 볼 때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중국 바로 가까이에 있엇던 것은 아님을 알 수가 있고 오히려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Kazakhstan)과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타지키스탄(Tajikistan)이 언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비추어 볼 때 절대로 현 동(東)아시아대륙에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한 현재 중앙아시아제국(諸國)들 역시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과 맞물려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근세기에 생성된 역사와 국가가 아닌 본래 근원지를 찾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도와 타타르가 현재 아시아대륙이 아니라면 결국 중앙메리카대륙에서 더운 기후를 가진 남쪽으로 남아메리카대륙 남서쪽은 인도(印度)로 서쪽은 타타르(Tatar) 즉 확대된 고려(高麗)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며 또한 신라(新羅)의 영역이라 할 수도 있다.

단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의 글을 근세기에 수정하지 않았다는 조건에서 이다.

이 문장에서 더욱 이상스러운 것은 중국의 북쪽과 북동부에 유시아(Eussia?)에 제한된다고 하였으나 이"유시아"가 도대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래된 다른영어자료에 이 유시아"Eussia"란 단어가 나오는데 "Lake Baikal is in the part of Eussia called Siberia."즉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라 불리는 유시아(Eussia)지역에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본래 시베리아(Siberia)라고 불리던 것을 어느시점부터 "유시아(Eussia)"라 했던 같은데 유라시아(Eurasia)도 아니고 러시아(Russia)도 아니다.

본래 오스(Aus)는 "밝다", "여명을 보다", "새벽"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동쪽을 뜻함을 알 수 있으며 태백신(太白神)이 새벽으로 불리며 "사백력(斯白力)"으로 지칭되었고 그것을 근세기에 "시베리아"로 발음되었다고 할 때 모두 동쪽을 벗어날 수가 없는 지명들이다.

동쪽은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한다.

 

[2]번문장

15page:Exclusiveness.
16page:Provinces

The coast-line from the Isthmus of Corea to the Island of Hainan is about seventeen hundred miles long, being bold and rocky to the south, and abounding in numerous islands, bluff headlands, and sheltered inlets, lurking-places for pirate junks. From the mouths of the Yang-tse-kiang northward to the Shan-tung promontory the land is low, and continues so beyond the promontory until the mountains east of the Gulf of Liaotong are reached. The general appearance of the southern coast is barren and uninviting, being destitute of vegetation, and the same may be said of the Shan-tung promontory ; but the islands of the Chusan Archipelago are decked with green, and forests line the shore near the Corean boundary.

 

[번역]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에서 해남섬(Island of Hainan)까지 이어지는 해안선(coast-line)은 약 1700 마일(mile)정도의 길이로서 남쪽으로는 깎아지른 바위가 있고 수많은 섬들이 가득하며 높은 낭떨어지기(bluff:high cliff)돌출된 곶(岬)과 폭풍우를 피신할 수 있는 작은 만(灣), 해적 정크선(junks)들이 숨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양쯔강 북쪽을 향한(Yang-tse-kiang northward)입구에서 산동 곶(Shan-tung promontory)의 땅은 낮지만 곶이 계속되어 랴오둥만(Gulf of Liaotong)동쪽 산까지 이른다. 남부해안의 일반적인 형세는 식물이 결핍되고 척박하여 좋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동 곶도 그러하다. 그러나 주산군도(Chusan Archipelago)는 녹색으로 꾸며져 있고 코리아 경계가까이 해안에는 산림선이 있다.

 

그렇다. [1]번문장을 보면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절대로 동아시아대륙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다음 [2]번째 문장을 보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문장내용들이 넘쳐난다.

도대체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이 어디에 있었길래 동아시아대륙 남중국해(南中國海)에 있는 해남섬(海南省:Island of Hainan)까지 이어지는 해안선(coast-line)이 약 1700 마일(mile)이라고 하였을까?

그 거리가 키로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2,736 km의 거리이다.

물론 한반도에도 전남해남(全南海南)이란 지명도 있지만 구글로 제어보니 약 979km 로 나타나 위 거리에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같은 방법으로 중국경계 압록강을 기준으로 하여 남중국해에 있는 하이난 섬인 해남성까지 해안선 거리를 아래 [그림자료:1]과 같이 제어 보면 약 4,758km가 나타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거리를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해안선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림자료:1]

 

위 주요 5개의 지협에서 중동 2.수에즈 지협(Isthmus of Suez)과 그리스의 3.코린트 지협(Isthmus of Corinth)은 그냥 눈으로 보아도 일단 1700마일(2,736 km)이란 긴 길이의 해안선을 찾을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제외 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와 아시아(Asia)를 잇는 1.끄라 지협(Kra Isthmus)은 어떨까?

 

[그림자료:2]

 

그러나 코리아(corea)가 인도지나반도(印度支那半島)에 있었다는 가설이 존재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길이를 제어보니 근 4,000km 가 넘는 거리가 되어 2,736 km와 많은 괴리가 있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의 문장에서 중요하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코리아지협과 함게 등장하는 접속사 "whilst"이 주는 어감((語感)이다.

"whilst"는 while 과 같은 뜻의 영국식 단어로서 이 단어는 당시 상태에서 동시성(同時性)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며 코리아지협지명 앞에 붙어 있는 정관사"The" 역시 이미 알려져 있는 사물이나 지형, 집합 또는 한정된,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 그리고 대표적인 것이나 또는 하나 이상이 아닌 유일한 것에 붙는 것을 감안할 때 당시상황에서 이 지명은 최소한 영국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졌거나 또는 상식적으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던 지명으로 통용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바로 해양시대를 구가하며 서양세력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인이 주로 활동한 지역에서 불리던 지명임을 알 수가 있다.

 

중국의 예루살렘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는 중국영토(中國領土)와 연결된 코리아지협만 강조했을 뿐정작 코리아가 있었던 지형이 바로 반도란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틀림없이 현재 한반도가 코리아가 있었던 곳이 사실이라면 한반도란 사실만 명확하게 이야기 했더라도 이렇듯 세계삼한역사라고 하여 의혹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반도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은 한반도에 코리아가 적어도 이 책이 출간되고 난 후 벌어진 환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나는 생각컨데 이러한 모든 의혹은 바로 영국인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본다.

영국인 에덴은 당시 아마도 동아시아대륙의 한반도란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현재 영국인들의 근원자체가 매우 포괄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들이 쉼없이 들락거린 곳은 다름이 아닌 중앙아메리카대륙 또는 그 주위 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생물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근세기 해양새력들은 애초부터 동아시아대륙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특징적으로 지형이 반도란 명확한 사실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18세기까지 서양지도를 보면 한반도 의 지명이 구체화 되지 못했고 지금 일본 열도 역시 그랬다.

이것들은 고유지명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그들이 동아시아대륙에 들락거렸다는 것은 뻥이란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서에 등장하는 홍모번(紅毛番)을 반도역사번역가들은 영국(United Kingdom)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해석한다.

또한 네덜란드라고 알려진 하란인(荷蘭人)도 영국인이라고 해석하여 절대적인 균형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형태를 볼 때 영국은 근세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해양세력들을 통칭해서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주요 집거지가 절강성(浙江省) 온주(温州)라고 한 사실에서 본 블로그에서 생물학적판단을 근거로 삼아 그들의 주요 활동지역이 중앙아메리카대륙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바로 중앙아메리카대륙의 온두라스(Honduras:뜻深邃)를 온주(温州)라 했을 것이란 가능성을 말한 것이다.

중국이란 이름의 근원지가 현재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기독교가 가장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라고 알려진 10/40 창(10/40 Window)이란 단어가 주는 포괄적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단어는 기후적으로 아열대기후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북위10°에서 북위40°까지의 지역내 기독교를 믿지 않고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를 신앙하는 곳이라고 하여 기독교인들이 명명한 것으로서 이것을 냉정하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는 바로 그 지역이 당시 서양세력들이 말하는 진(chin) 또는 차인(chine)이라고 하는 중앙에 있는 나라(中國)란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범위의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이라고 하는 기독교복음전파운동이 전개된 사실과 바로 중국의 예루살렘(jerusalem)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절강성(浙江省) 온주(温州)라는 사실을 여기에 더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영국(英國)이라는 실체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주로 항해를 하여 먹고 사는 집단으로서 배를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해양세력들을 총칭한 명칭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것은 어떤 식으로 가능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근세기에 생성된 국명임을 알 수 있고 그들의 근거지는 중앙아메리카대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말할 수가 있다.

 

해양세력들의 활동지역은 중앙아메리카이다.

 

해양세력이라 함은 단언적으로 해적신분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최근 본 블로그에서 북아메리카대륙은 세계삼한역사가 실제 존재했던 땅이었음을 집중적으로 밝혀었다.

3편으로 이루어진 "루이시리즈"를 시발로 최근 작품 제목"아무르 강(Amur river)과 코(nose):http://blog.daum.net/han0114/17050700" 와 "사할린(Sakhalin)은 섬(島)이 아니다:http://blog.daum.net/han0114/17050698" 그리고 "흰자작나무(白樺:Betula populifolia)는 박달나무(Korean birch):http://blog.daum.net/han0114/17049402", 또 "무릇 산자고(山茨菰:Scilla)로 본 신라(新羅): http://blog.daum.net/han0114/17049746" 등 그 이전에 더 많은 글이 있지만 지리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주요한 지명을 세밀하게 따져보았다는 의미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삼한역사와 충돌할 수 있는 지역도 북아메리카대륙과 가까운 지역이어야 한다.

그들은 쉽게 유럽대륙이 그들의 문화 역사의 본산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씨도 안먹힐 이야기다.

유럽은 본래 아랍이란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해가 지는 어둠의 땅"이었다.

그러나 자본역을 무기로한 해양세력들에 의해 근세기에 점령되고 그들의 역사가 만들어진 곳이라고 할 때 유럽대륙 북부에 본 블로그에서 밝혔듯이 일본 구주(九州)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조선초기에 "일본국구주도원수(日本國九州都元帥)가 토산물을 바치다"등 수많은 조공을 바치는 기록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 구주(九州)는 일본국의 한 지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근세기에 구주(歐洲)라고 하여 "구라파"란 한 사실도 무시될 수가 없다.

구주는 아시다시피 나라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감추거나 덮어버리기 위해 근세기에 서양세력들은 기존 역사와 완전히 다른 사진, 소설, 기행문 등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고 이러한 기행문 역시 그들의 불손한 목적을 위해 이용된 것임을 충분하게 유추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서양세력들이 코리아(Corea)방문기라고 하여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출판한 책들은 무수히 많으며 현재 이렇게 저렇게 번역된 책도 수를 셀 수 없을 만치 넘친다.

그러나 이렇듯 넘쳐나는 코리아 여행기의 작가들은 당시 과연 순수했었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각기 여행가, 텀험가, 항해사라고 하였지만 실제 신분은 대다수 금과 보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부류의 집단에서 한 일원으로서 관계하고 그러한 조직에서 항해를 할 수밖에 없는 신분으로 작고 큰 함선을 이용한 해적일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서양세력들에게 주요한 자료를 제공한 이러한 신분들은 기존 기득권에서 보았을 때 불손한 세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이 된 근세사에서는 전부 신분세탁되어 항해사로 둔갑하고 제독으로 변신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고 혹은 특정종교 선교사신분으로 지극히 도덕적인 이미지로 바뀌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역시 영국의 공무원이라고 하였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위장된 것으로 그의 이력을 보았을 때 다분히 물질욕에 사로잡힌 부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도 금이나 보석, 값나가는 광석을 찾아 헤메던 떠돌이 장사꾼일 수밖에 없고 또는 삼촌이 제독이라고 하였던 것을 보면 해적신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항해로 인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이득, 이문을 쫓았다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가 있다.

그때까지 기존 역사세력들은 물질을 탐하는 것은 막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코리아 땅에 방문한 수많은 이양선과 수많은 장사꾼, 선교사, 탐헝가, 항해사들은 물질을 습득하거나 취득하거나 탈취할 목적 이외 다른 것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관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기어코 위험을 무릅써가며 코리아 땅을 찾았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한반도에는 억지로 올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이다.

그들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항로를 보면 하나같이 틀에 짜여진 것처럼 열도 일본 나카사키를 거쳐 한반도로 진행하는 것이 통례처럼되어 있는 것도 그들의 본거지에서 멀지 않는 곳에 나카사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늘 상 현재 열도 일본 나카사키를 먼저 방문을 하였으니 이웃 가까이에 있는 한반도에 가지 않을 수가 없어 방문하였다고 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동아시아대륙 만들기에 나올 수 있는 프레임이다.

만약 그들이 코리아를 집중적으로 방문할 시기에 코리아가 실제로 한반도에 역사주체들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이 출간 한 책 "CHINA"에 나타나는 "코리아지협"도 당연히 한반도에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코리아지협"이란 지명을 붙일 만한 지형이 없을 뿐더러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늘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한반도에 조선만들기 일환에 의한 것일 뿐이고 그것에 의해 조작된 임진왜란처럼 마치 열도 일본에 있던 풍신수길이 조선에 통고하길 감히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열어주고 비켜주지 않으면 쳐들어간다는 식의 따위에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역사라고 만들었으니 이러한 어설픔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반도를 왜 억지로 거쳐야 했을까?

전술적으로 따져 명나라를 기어코 목표라면 절대로 불필요한 전쟁은 피해야 했고 때문에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쳐 들어갈 이유도 없었으며 오히려 상하이나 절강성으로 들어가 명나라를 쳤다는 것이 순서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엉터리 같은 역사가 동아시아대륙사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주제는 이미 본 블로그 글 "믿을 수 없는 근대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7"에서 충분하게 설명한 이야기다.

거대한 폭풍과 태풍이 언제 어느시점에 불어 닥칠지 알 수 없는 바다항해조건에서 목숨을 담보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오직 여행기를 쓰기 위해 아니면 그들의 독특한 종교를 선교하기 위해 아니면 개방을 권유하기 위해 수만리 항해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도덕관이나 종교관을 보아서도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나쁘게 이야기 하면 무엇이든 힘없는 자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빼앗아 자기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해적신분이었을 뿐이다.

이 해적신분에 종교인이 있었다고 하여 본질적으로 다르게 볼 수는 없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고 하여도 그는 무차별적 살인과 학살을 일상적으로 자행했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들은 도덕적 관념이나 특별한 종교 개념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우선했으며 신분상승보다 더 한 것이 없었다.

반드시 배를 차용했다면 운송비를 만들어야 했고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려야 했으며 허구한날 해적이라는 신분 역시 달갑지 않았을 것이 뻔하고 해적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금화가 필요하였던 것으로서 무척 운이 좋았다면 한 밑천 크게잡아 떵떵거릴 수 있는 부자가 되고 귀족신분이 될 수 있었기때문에 그무엇보다도 간절했던 것이 물질욕이었던 것이다.

소위 18세기 말엽부터 등장하는 부르주아(有産者, Bourgeois)신흥세력이 그들의 미래 모습이다.

 

한결같은 주장을 보더라도 당시 코리아는 개방도 하지 않았고 가는 쪽쪽 선교사들을 무차별 처형하였으며 더군다나 목욕도 잘 하지 않는 미개인들만 사는 그곳에 무엇때문에 이처럼 불난 집 구경하듯 찾아 간 것일까.

단정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도 남을 충분한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선정부가 그들 말처럼 외국인의 왕래를 막았다는 것은 그들의 불손한 행위에 대한 경계이지 개방 따위에 낙후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듯 신분을 감추면서까지 들락거렸다는 것은 코리아(corea)에 가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인가 큰 메리트(merit)가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1832-1903)는 그의 책에서 코리아 땅을 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이라 하였으며 또한 "쿠빌라이(Kublai Khan 1215-1294, 재위1260-1294)이후 가장 눈부신 동양문명을 일구었다는 주장" 또한 코리아가 한반도처럼 자원이 빈곤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고 때문에 그들이 찾아 갈 수밖에 없는 진정한"코리아 땅"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금단의 땅"이니 "은둔이 땅"이니 하였다는 것은 지극히 모순된 이야기다.

그곳은 산악이 70%로 자원이 전혀 없었던 한반도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세기 만들기에 따른 위장된 자료와 가치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그들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 유명한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폴로(Marco Polo:1254-1324)의 '동방견문기'란 존재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본래 이 책은 세계 불가사의의 서(Livres des merveilles du monde)란 제목의 마르코폴로 여행기(The Travels of Marco Polo)로 더 잘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분명한 것은 근세기까지 여러번의 번역과 다양한 언어로의 출판되면서 본래의 뜻과 다르게 수정되고 왜곡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다 잘알려진 이야기다.

때문에 세계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지명인 동방(東方:Aus, east)이라는 명칭 역시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지금 아시아(Asia)의 극동지역에 고착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코리아지협 역시 엉뚱하게 동아시아대륙에 집어넣고자 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어쨌든 코리아지협이란 지명을 확실하게 알고 사용한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지 마르코폴로와 같은 역할과 이용을 당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국 공무원이며 저술가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종 소설과 수많은 여행기를 집필했다고 알려지고 실제로 1880년에 출간된 <중국, 역사와 기술:Historical and Descriptive; with an Appendix on Corea>과 이전에 발표했다고 한<일본, 역사와 기술:Japan, Historical and Descriptive>, <인도, 역사와 기술:India, Historical and Descriptive>을 잇는 시리즈형식의 책을 출간 한 것을 보면 그가 전제한 나라들을 방문하였던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아시아에 있는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코리아를 방문할 수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이야기지만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은 1863년 4월 6일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에 있는 만 모턴 베이(Moreton Bay)에 도착한 후 그곳의 선장 딸과 결혼하였으며 1867년부터 약 2년간은 1858년 멜버른에 먼저 도착한 탐험가 어니스트 헨리(Ernest Henry:1837-1919)와 함께 있었던 멕코넬 산(Mount McConnell)은 호주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멕코넬피크(McConnell Peak:2775m, a mountain in California)와 동명이산(同名異山)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의 멕코넬피크 부근 전체가 당시 골드러시로 홍역을 앓았고 1848년에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강에서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는 1874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Black Hills)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또한 그의 활동상황을 보면 공교롭게도 1866년 코리아를 방문한 독일계 유대인 상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가 활동한 시기와 같은 시기이며 그 역시 코리아를 방문했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 활동 범위도 같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오페르트와 똑 같이 코리아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치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한자도 틀리지 않는 것은 표현을 들 수밖에 없는데 코리아는 쇄국주의 정책으로 인해 어떠한 외국인도 아직 허가를 받아 전국을 순방한 적이 없는 “은둔의 국가”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페르트는 "금단의 나라"라 하였다.

그는 또 ‘코리아’는 중국의 조공국(朝貢國)이며 속국(屬國)임을 강조하였고 중국이 지어준 '카올리(Gāolí:)’라 한데서 고려(高麗)가 되었다 하였으며 ‘조선(朝鲜)’역시 중국에서 지어준 것으로 ‘고요한 아침’이란 뜻의 중국어 ‘차오신(Cháoxiān)’에서 왔다라고 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코리아에 대한 편견은 도를 넘는다.

그는 한반도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생산되었다고 하였는데 한반도 지형이나 기후상 다양한(?) 농작물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인삼만은 빼놓지 않는다.

인종문제에서도 코리아인을 현재 동양인 모습의 몽골족이나 일본인과 “똑같다”라고 하지 않고 “유사하다”라고 하였으며 코리아는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이 지배적인 정서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이것들은 한반도 조선만들기에 특징적인 주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편견은 선을 넘어가는데 “다양한 복식과 모자가 특징적이며, 머리칼을 자르지 않고 목욕도 잘 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옛 고구려인들은 당시에도 목욕을 너무 자주 한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사실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다.

개방도 하지 않고 개몽이 되지 않아 미개한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엉터리 없이 코리아가 미개한 나라인 것을 인정하더라도 1868년 오페르트의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南延君墳墓盜掘事件)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어쩌구 저쩌구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도적이고 해적이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감히 남의 나라에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침범하여 도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시대에도 용서가 되기 힘든 불손한 세력이며 요사이 미국처럼 여권을 내주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역사는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리아정부가 허가하던 말던 관계없이 그들은 무단 침범하였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탐험가, 항해사, 선교사라면 무조건 미개인이란 딱지를 붙여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관념은 지극히 잘못된 파렴치한들의 소행임을 알수가 있다.

누가 문명시민인가?

기존 역사에서는 그들을 해적이라고 하는 부류에서 넣고 경계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와같은 개념은 당시 무법천지로 날 뛰던 서양해양세력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차이나(china)란 제목의 책 역시 런던(London)에서 1880년에 출간한 것이지만 거의 같은 묘사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 당시 유행적인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오페르트의 금단의 땅<A Forbidden Land>역시 뉴욕(New York)에서 출판된 것과 같은 1880년이라는 사실은 1881년 대조선이 해체될 시점과 맞추어 볼 때 이러한 역사 만들기에 따른 위장된 자료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서양세력들의 대표주자인 영국인들의 활동범위가 중앙아메리카대륙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일치하는 지형

 

그렇다면 코리아지협은 어떻게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일치하는가?

[1]번과 [2]번 문장에서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해지는 것은 위치 4, 5의 위치에서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충분하게 인지된다.

바로 대륙과 대륙사이 같은 넓은 두 육지사이를 연결하는 육지의 좁고 잘록한 부분을 코리아지협(地峽:Isthmus of Corea)이라고 했을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 지도를 참고삼아 중앙아메리카대륙을 자세히 한번 볼 필요성이 있다.

 

[그림자료:3]

위 [그림자료:3]의 지도처럼 대륙과 대륙사이를 이어주는 육지의 좁고 잘록한 부분을 위 붉은 점선 상자에 넣어 볼 수 있는데 이 속에는 테우안테펙지협과 파나마지협이 포함된 것이다.

테우안테펙지협을 멕시코지협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코리아지협이라 하였을 것이라고 보지만 나는 두 지협을 모두 합해 코리아지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며 코리아지협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중앙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림자료:4] 

 

[2]번문장을 세부적으로 보면 무엇보다도 1700마일(2,736 km)길이의 해안선을 찾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놀랍게도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과 해남섬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그러한 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해남은 어딜을 말하는 것일까?

동아시아대륙으로 보면 남중국해에 하이난섬이다.

그러나 남중국해 하이난섬(Hainan island)은 결코 해남이라고 하기 힘든다는 사실은 해남이라는 한자를 그대로 순응한다면 "큰 바다 아래의 있는 땅"이어야 하는데 현재 남중국해의 하이난섬은 큰 바다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대륙 아래에 있는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한문으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위 육지가 광서(廣西)땅이니 광남도(廣南島)라고 하여야 맞다.

인도(印度)차이나 반도(半島) 북부(北部) 홍강(紅河:red river)하류지방을 광남(廣南)이라고 한다.

해남(海南)은 글자 그대로 큰 바다 아래의 섬이 아닌 그냥 땅을 지칭한 것이다.

인조 때는 전남도(全南道)를 광남도(光南道)라 한 적도 있다.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軍政編)4

해방(海防)

남해(南海)

南海之岸。自慶尙道東萊南乃浦至全羅道光陽。向西乍轉而南。自順天至海南。其地之深入海曲者。東萊則多大,沒雲臺也。熊川則安骨,新門也。漆原則龜山也。固城則統營及所非浦也。晉州則末文也。昆陽則露梁及西面也。順天則左水營,古突山也。興陽則全縣及鉢浦,蛇島,鹿島也。長興則會寧浦也。靈巖則葛頭也。海南則於蘭也。

 

남해의 해안은 경상도 동래의 남내포(南乃浦)에서 전라도의 광양(光陽)에 이르며, 서쪽으로 가다가 곧 남쪽으로 돌아서 순천(順天)으로부터 해남(海南)까지에 이른다. 지면이 해면으로 깊이 들어간 곳으로는 동래는 다대포(多大浦)와 몰운대(沒雲臺), 웅천(熊川)에는 안골(安骨)과 신문(新門), 칠원(漆原)에는 구산(龜山), 고성(固城)에는 통영(統營)과 소비포(所非浦), 진주(晉州)에는 말문(末文), 곤양(昆陽)에는 노량(露梁)과 서면(西面), 순천(順天)에는 좌수영(左水營)과 고돌산(古突山), 흥양(興陽)에는 현의 전부 및 발포(鉢浦)ㆍ사도(蛇島)ㆍ녹도(鹿島), 장흥(長興)에는 회령포(會寧浦), 영암(靈巖)에는 갈두(葛頭), 해남(海南)에는 오란(於蘭)이 있다.

 

위 만기요람의 군정편 해방 남해(南海)를 설명한 기사인데 위 내용에서도 보면 해남(海南)을 섬(島)이라고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남해의 해안은 경상도 동래의 남내포에서 전라도의 광양에 이르며 서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돌아간다는 곳에서 순천부터 해남까지라 한 사실이다. 이것을 본 블로그 글 "순천(順天)과 해남(海南)은 남해바다 가운데 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88"란 제목에서 한반도 지형에서는 도저히 적용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식의 비판을 남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해남(海南)이라는 지명자체는 지금의 남중국해의 하이난 섬(海南省:Island of Hainan)도 될 수 없을 뿐만아니라 한반도의 해남(海南)도 더욱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남(海南)이 있으려면 적어도 멕시코만 아래 혹은 카리브해의 아래 육지 도시를 말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멕시코의 베라크루즈(Veracruz) 또는 한참 더 내려가 파나마(Panama)를 이야기 할 수 있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만이 만기요람의 해방편에서 설명하는 지형구도와 일치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림자료:4]에서 보면 아래 해안에서 파나마(Panama)에서 후금((喉衿:後金:Narrow Neck) 노란선까지 길이를 재어보니 약 2, 769km 로서, 1700마일(2,736 km)거의 근사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림자료:5]   

 

또 하나의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이 될 수 있는 지형은 바로 후금((喉衿:後金:Narrow Neck) 노란선, 테우안테펙지협(Tehuan-tepec地峽)에서 북쪽으로 진행되는 멕시코 북서부 소노라(Sonora) 티뷰론 섬(Tiburon Island)까지의 해안선 거리를 재어보니 [그림자료:5]에서 보듯이 약 2,777km 인 것을 감안 할 때 역시 1700마일(2,736 km)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청(清)교도와 청(清)나라 후금의 만남

 

이렇게 풀어보니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을 지칭한 곳을 지정한다면 중앙아메리카대륙 (A)해안선과 (B)해안선을 둘 다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위 [그림자료:4]에서 노란 선을 표시한 테우안테펙지협(Tehuan-tepec地峽)의 좁은 목덜미, 후금(喉衿:後金Narrow Neck)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청나라 후금(後金:1616-1636)시대는 잉글랜드왕국(England)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1533-1603,재위:1558-1603)에 이은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재위:1603-1625)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다르지만 근원적으로 근세기역사가 하나의 역사를 분리해서 만든 것이라고 볼 때 그렇다.
이때부터 영국에서 성공회로 개종하라는 강요하는 사태와 함께 1620년 청교도들은 이러한 박해를 피해 메이 플라워 호(Mayflower)를 타고 자유를 찾기 위해 일본 구주(북유럽)에서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나 정착한 그곳을 처음 퓨리턴(Puritan:清教徒) 즉 청교도라고 불렀다는 것인데 현재 북아메리카대륙 메사츄세츠(Massachusetts)의 플리머스(Plymouth)이다.

퓨리턴(Puritan)를 왜 청교도라 했을까?

깨끗한 종교, 깨끗하지 않는 종교가 있을까?

바로 청교도를 청(清)나라와 대칭되는 판박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아메리카대륙 영국의 청교도들이 들이닥친 바다가 동해(東海)이고 청해(淸海)이다.

청(清)이 19세기말엽 영국정부일원으로도 행세 한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가 일찍이 파악한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당시 청 정부(Qing Government)라고 지칭되던 청군벌(清軍閥)의 대표격인 이홍장(李鴻章:1823-1901)이 1896년 영국을 방문하고 당시 영국여왕으로부터 빅토리아 훈장(Royal Victorian Order)을 수여 받았다는 사실에서 동양의 중국이라는 청나라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정체성에서 대단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마치 빅토리아가 중국여제가 되어 대조선을 없애버리고 영국을 만든 공으로 이홍장에게 대훈장을 수여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나라(明朝1368-1644)가 후금에 의해 공식적으로 멸망한 때가 1644년이다.
청교도혁명이라 하고 또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1642-1651)이라고도 하는 충돌은 1차 (1642-1646), 2차 (1648-1649), 3차 (1649-1651)의 결과로 
찰스1세(1600-1649,재위:1625-1649)가 처형되는데 마치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仁祖, 1595-1649,재위:1623-1649)을 보는 듯하다.

그의 아들 찰스 2세(Chalres II,1630-1685,재위:1660-1685)는 추방되어 스코틀랜드를 다스리게 된다.
반면 명나라의 숭정제(崇禎帝:1611-1644,재위:1628-1644)는 자살하고 만다.

그러니 영국의 찰스1세, 조선의 인조, 명나라의 숭정제는 모두 하나의 역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대륙사에서 1644년은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해라고 하지만 영국에서는 의회 공화제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다르다.

아마도 대조선은 이 때부터 공화제를 하였을 것이 틀림이 없다.

잉글랜드연방(Commonwealth of England:1649-1660)의 통치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1599-1658)은 청나라 순치제(順治帝:1638-1661,재위:1643-1661)와 비슷한 시기에서 집권체제였음도 알 수가 있다.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는 남명(南明)의 마지막 홍광제(弘光帝:1607-1646)와 같다.

 

이러한 사실들을 두고 볼 때 서양세력들이 지칭한 중국(china)이라는 실체에는 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대체로 지역적인 의미에서 중앙을 지칭한 면이 많다.

특히 중국이란 국명이 호칭된 곳은 중앙아메리카대륙 후금(喉衿:後金:Narrow Neck)을 중심으로 한 것임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이 중국(中國)이 주는 본래 의미는 근세기 들어 퇴색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삼한역사와 연결될 때는 정치적으로 가운데 중(中)을 의미한 것으로서 고려(高麗)를 ‘천하의 가운데 중심’이라고 하여 ‘가우리’라 하였으나 서양세력들이 이야기 하는 중국은 아메리카대륙에서 북과 남을 연결하는 목구멍과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결국 중앙 즉 "middle" 이어야 하고 "central"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후금이 발생하였고 청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본 블로그에서 생물학적 판단을 근거로 한 결과이다.

‘차이나’란 칭호의 가장 오랜 기원은 고대 인도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여러자료에 보면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 이미 중국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의 로마자 표기 Cina:가 보인다고 하였으며 동아시아대륙사에서는 이후 후한(後漢)시기부터 시작된 산스크리트어의 불경(佛經)을 한역(漢譯)작업하는 과정에서 ‘지나’는 지나(支那), 진나(眞那), 사나(斯那), 지난(脂難)등으로 음역(音譯)되었고 이것을 다시 진단(震旦), 진단(振旦), 진단(振丹), 진단(眞丹), 신단(神丹), 신단(神旦), 전단(栴丹)등의 표현으로 음이 동일하게 나타나 이를 ‘지나스탄나(CinasthAna)'이란 축약한 음역(音譯)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진(Čin), 지니스탄(Činistan), 지나스탄(Činastan)등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범 세계적인 용어임을 알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퇴색되기 전에는 중앙의 땅이었기 때문에 붙인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하나의 왕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치적으로"가우리"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거란(契丹)을 근대사에서 키타이(Khitan, kitai), 또는 지나(支那) 또는 진단(震旦)이라 하였던 것에서 볼 때 키타이(kitai)란 역사 자체가 가운데의 뜻이 강한 고구려 또는 고려에게 복속되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사서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면 본래의 키타이나 진단이란 명칭은 바로 삼한고려를 지칭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려를 치나스타나(Chinasthâna) 또는 치니스탄(震旦;Chinistan)이라고 했다는 것은 삼한(三韓)조선(朝鮮)을 다르게 표현한 명칭으로 진단(震壇) 또는 진역(震域), 진국(震國), 진단(震旦)이라 하였다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동방(東邦)이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팔괘의 진(震:☳) 역시 동쪽 방향을 의미한다.

 

마무리(19세기 중엽까지 코리아 경계선)

소제:양쯔강은 리오 그란테강(Rio Grande)일 수밖에 없다.

 

[그림자료:6]

이상으로 많은 사실을 종합하여 볼 때 코리아지협은 본래 코리아가 가지고  있었던 영역에 의해 붙여진 지명임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본래 코리아가 가지고 있었던 영역이란 것은 무한이라고 보고 싶다.

실제 위 코리아지협일 수 있는 도식을 그려본 결과 그 해안선에는 수많은 만과 내만이 있을 뿐만아니라 헤드랜드(岬:headland)와 프로몬토리(串:promontory)가 수도 없이 많음도 알 수가 있다.

코리아를 방문한 일본인의 기록을 보면 만(灣:bay)과 내만(內灣:back bay)에 대응한 헤드랜드(岬:headland)와 프로몬토리(串:promontory)때문에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미로와 같은 해안선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섬들이 있었다고 하여 마치 현 한반도 남해안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반도 남해안의 길이가 약 366km 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2,736 km 길이에 비교될 수는 없다.

또한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반도 지형이 코리아지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지리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이기 때문에 논란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사전에 보면 곶(岬:promontory)을 라틴어로 포로몬토리엄(prōmontorium)라고 하고 영어 케이프(cape)의 뜻이다.

指陸地突出的尖端,尤以海岬為主。

한어자료에도 육지에서 돌출된 첨단이나 특이한 바다의 갑(岬)을 말하고 있다.

사전에 보면 케이프를 곶(串, Cape)이라고 하는데 바다 또는 호수 쪽으로 튀어나온 모양을 한 육지로, 3면이 물로 둘러싸인 땅을 말하고 갑(岬), 또는 단(端)이라고도 하며, 등대가 설치된 경우가 많다 하였다.

즉 만(灣:Bay, Gulf)은 물이 육지에 굽어들어 온 곳을 물굽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반대말이다.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의 [2]번문장을 보면 코리아 지협의 남쪽으로 수많은 섬이 있으며 가파른 절벽(steep), 낭떨어지기(bluff:high cliff)처럼 돌출된 곶(岬)과 해적 정크선(junks)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만(灣)이 수도 없이 많다 하였다.

실제로 1700mile 해안선을 살펴보면 그 말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양쯔강 북부(Yang-tse-kiang northward)을 향하고 있는 입구에서 산동 곶(Shan-tung promontory)의 땅은 낮지만 곶이 계속되어 랴오둥만(Gulf of Liaotong) 동쪽 산까지 이른다 한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풀어 볼 것도 없이 중앙아메리카대륙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할 때 양쯔강은 리오 그란테강(Rio Grande)을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리오 그란테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고 강 입구는 북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리오 그란테강의 입구인 하구 지역은 실제로 땅이 낮다.

랴우둥만(灣:Gulf)은 본 블로그의 글 "아무르강(Amur river)과 코(nose) http://blog.daum.net/han0114/17050700"에서 밝혔듯이 멕시코 만(Gulf of Mexico)이라 할 수 있고 동쪽 산(山)은 애팔레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 앨라바마(alabama)까지가 그려지게 된다.

그가 설명하는 그대로 중앙아메리카대륙 남부해안의 일반적인 형세는 식물이 결핍되고 척박하고 좋지 않다고 하였던과 마찬가지이며 산동 곶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서와 산동은 5000m 고봉들이 즐비한 시에라마드레(Sierra Madre)산맥 동쪽을 산동(山東)이라고 하였던 바가 있으니 본 블로그 글 "튤립(鬱金香:Tulip)이 알려주는 놀라운 지명의 실체 http://blog.daum.net/han0114/17049671"에서 언급한 이야기다.

결국 다 세계삼한역사연구에서 밝혀진 내용들이다.

반면 주산군도(Chusan Archipelago)섬은 녹색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하였는데 아직 주산군도(Chusan Archipelago)만은 어딘지 밝혀낼 수가 없었다.

 

[그림자료:7]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은 완전히 세계삼한역사 연구의 피날레를 장식하고도 남음이 있다.

and forests line the shore near the Corean boundary.

바로 코리아의 경계에 가까운 해안에는 삼림선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Big Thicket: It has historically been the most dense forest region in what is now Texas, though logging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dramatically reduced the forest concentration.

위 미국자료를 보면 사우스이스트 텍사스(Southeast Texas) 해안 평지에는 빅 티켓(Big Thicket)이란 삼림선(forests line the shore)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인 찰스 헨리 에덴(Charles Henry Eden)이 보았던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을 적용하면 그이 모든 묘사가 일치하고 정확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그림자료:8]

 

[그림자료:9]

 

[그림자료:8]에서 보듯이 코리아 경계가 1860년경이라면 대체로 텍사스 해안 삼림선을 주위에 강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 노란 선을 그린 것처럼 경계선을 그을 수가 있겠다.

이것은 바로 [그림자료:9]에서 :1776년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간에 분쟁 등을 끝내는 공식적인 합의 영역를 보면 텍사스주에서 스페인 영역과 프랑스가 나뉘는 경계선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이 경계선이 일치하는 것으로 바로 코리아경계선임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프랑스 영역이 조선영역과 남쪽경계선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멕시코 지역이 중국 즉 중앙제국 만주세력이 있었던 곳으로 풀이된다.

1821년에서 1823년까지 멕시코 제1제국(Primer Imperio Mexicano)은 중앙제국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코리아지협은 19세기의 영역과 상관 없이 오래전부터 중앙아메리카대륙 남부해안선을 코리아지협이라고 했음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결국  코리아지협(Isthmus of Corea)이란 어마어마한 지형용어를 가지고 밝혀 본 결과 세계삼한역사연구의 근원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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