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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대의 수박 진위
글쓴이:한부울
1.한국인의 정통성
긴 시간동안 세계삼한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비록 한반도 거주하는 과정에서의 역사정체성이 모호한 것이 틀림 없지만 추호도 변할 수 없는 삼한역사의 통치자들의 고급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오래된 관습으로부터 묻어 나오고 표출되는 것으로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다른 나라사람들은 이를 한사코 부정하겠지만 그러한 뿌리깊은 역사성만은 그들도 무조건 부정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국뽕스러운 것을 떠나 진실로 한국인들은 특별한 민족이며 인류역사 시원을 가진 세계유일무일한 국민으로써 자부심을 가져도 부족할 것이 없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글쓴이가 세계삼한역사연구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결과를 돌출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하는데서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음을 스스로 자평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민족역사가 20세기초 갈기갈기 찢어지고 체면이 심하게 구겨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거대한 역사흐름의 과정이며 성숙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발전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때 특별히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고 특별히 애석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대신 다시는 그러한 힘겨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스스로 제어해야 함은 물론이고 자중하고 겸손해야 하며 지나온 역사를 깊이 반성을 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풀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그 어느 지구인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특별한 선민(選民)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높은 긍지를 가져도 무방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사실에서 간단하게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풀어볼 수 있다.
첫째로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제일 필요한 것이 배를 채우는 것, 즉 밥상문화라 할 때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일반적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여러나라 사람들은 그릇다운 그릇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만지고 입에 넣어 먹는 습관이나 숟가락은 없이 나무젓가락만으로 먹거나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다든지 우리처럼 밥상을 차리지 않고 땅바닥에 그대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 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 거의 우리들 처럼 세세한 반찬문화가 없다는 등 일상적으로 볼 때 차이나는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둘째로는 제사제도이다.
백과사전을 보면 제사(祭祀)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차례(茶禮)를 명절날이나 조상의 생일 또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따위를 맞아 낮에 지내는 약식 제사라 하였으며 제사(祭司)역시 원시 민족에서, 제의나 주문을 통하여 영험을 얻게 하는 사람을 말하고 또 유대교에서, 성전에서 종교상의 의식이나 전례를 맡아보던 우두머리를 제사라 하거나 사제(司祭)라 하는데 현재 카톨릭 신부(神父)를 사제라 하는 것과 일통한다.
이것은 서양인들은 부정하지만 태양신을 믿는 사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제(祭)를 주관하는 사람을 제주(祭主)라 하는 것과 종교적으로 동일하다 보는 것인데 현대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의 전통 제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형태를 낳은 것도 이와 비견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군의 정령을 부르는 행사, 즉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祭天’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하늘에 제사하는 일’이라고 풀이된다.
박용숙 교수는 글자 ‘祭’는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 제사(祭祀)라고 하고 ‘示’자 위의 그림은 오른 손에 고기(肉)를 쥐고 있는 모양이라고 하였으며 글자의 핵심부가 되는 ‘示’는 ‘천문을 살피면서 때의 변화와 길흉을 알리는 신사(神事) 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라고 했다.
다시말해 상고 삼대, 즉 환인, 환웅, 환검(단군)시대의 사적이 적혀 있는 역사서를 신사기(神事記)라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그는 祭天’을 일컬어 천자(天子)만이 행하는 의식이며 고대에 가장 중요한 제사의 하나라고 풀이했다, <廣雅 釋言>祭際也, 人神相接故曰際也./<尙書大傳, 洛誥>祭者察也 그리고 그는 ’示‘를 참작하면 이것이 별이라는 것을 헤아리게 된다 하였고 맞배지붕은 시베리아 샤먼(shaman) 즉 주제자(主祭者)들의 천막신전에서 그 정황을 헤아릴 수 있다 하였으며 샤먼은 천막의 중심기둥을 북두칠성으로 향하도록 하고 지붕을 피라미드모양으로 합쳐놓고 천막의 문을 비스듬히 열어 춘‧추분점에 해를 맞이했다 하며 이 원칙은 고대바빌로니아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적용된다."하였다.
또한 "天’은 ‘一’과 ‘大’를 결합한 글자로 이때 ‘大’를 ‘크다’라고 읽으면 이 글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하늘’이라고 한다고 읽어야 하지만 이렇게 읽으면 이 글자는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애매모호해 <자전>에는 ‘大’와 ‘太’는 동일한 글자로 모두 금성이라는 별을 가리키는 글자로 흥미로운 것은 ‘大’가 이집트문자에도 5각별모양으로 별(星)을 지칭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갑골문자에서 글자 ‘天’을 구성하는 ‘一’은 ‘덮다’로 멱(冖)자가 되고 이것이 이집트문자에서는 북극을 가르키며 ‘大’가 별을 가리킴으로 ‘天’이 북극성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을 천정(天頂), 천(天: 하늘), 정(頂: 정수리)이라고 했던 것이 아닌하 하는 것이다.
단군의 정령을 부르는 행사, 즉 제천의식(祭天儀式)도 몽고어Tengri, 터키어 Tangri, 우리말로는 '당골'의 텡그리즘 (Tengriism) '단군사상'도 천(天)의 인상에 자연 현상의 주재자라고 하는 직관(直觀)이 결합되고 또한 인간의 도덕적 반성이 투영(投影)되어 천(天)의 신앙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흰자작나무(白樺:Betula populifolia)는 박달나무(Korean birch) https://han0114.tistory.com/17049402 "에서 밝혔듯이 삼한역사에서 자작나무는 세계의 중심(中心)과 생명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우주목(宇宙木) 또는 세계수(世界樹)로 상징되던 나무이고 단군(檀君:Tangun)은 하늘의 정령을 받은 주재자로써 자작나무를 중심으로 하던 정령숭배를 상징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단군(檀君:Tangun)은 "하늘중심" 이라는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 천제사상의 전통성으로써 1881년 전만 하더라도 천(天)을 하늘이라고 하여 하느님을 상제(上帝), 천제(天帝)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고로 우리가 하고 있는 제사는 태고적부터 인류에게 숭고하고 성스러운 행사임이 밝혀진 것이다.
지금 서양종교가 득세하는 현실도 그렇지만 종교에서 사제라는 직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사제는 주교와 신부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성직자들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사제(司祭)라는 것은 제(祭)를 지내는 행위인 것처럼 종교상의 제례 의식(祭禮儀式)을 맡아서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엄숙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즉 제(祭)는 제사(祭祀)를 이르는 것인데 태고적 인류사회에서는 제의나 주문을 통하여 영험을 얻고 성령을 통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하여 최고지도자 또는 통치자가 그 직을 맡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성스러운 제(祭)를 우리나라 사람들 만이 일상적으로 지내고 있으며 특히 부모나 조상을 섬기는 방편으로써 제(祭)를 지낼 때 정성을 다한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천제사상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관습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 왔으며 제사방법이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다른 민족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제수(祭需)를 진설(陳設)할 때 홍동백서(紅東白西), 동두서미(東頭西尾), 좌포우혜(左脯右醯), 조율이시(棗栗梨枾), 어동육서(魚東肉西)등 쉽지 않는 제사상차리기 법도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무시될 수 있는가.
즉 한국인 모두는 그날 만큼은 천제사상의 정통성의 제사장의 우두머리인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이다.
세번째로는 또한 앞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만을 말했는데 태고적 인류가 가진 선진고급문화라 할 수 있는 밥상문화에서 오첩이니 육첩이니 하는 반상(飯床)문화와, 다른 아시아권의 사람들은 나무로만 사용하는 식기를 쇠 숫가락과 젓가락, 쇠 그릇을 사용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전해오고 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삼한의 중심문화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쇠 식기(食器)를 사용하는 것은 서양인들이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사용했던 나이프와 포크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다.
생각해보라.
본 블로그 글 "환국(桓國)의 강역(疆域) https://han0114.tistory.com/17050704 "에서 우리의 삼한역사는 일만년(萬年:10,000)의 역사라고 했고 이것은 환인께서 세우신 환국 7세 역년 3301년을 시작으로 환웅(桓雄)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BC3898-BC2333) 18세의 역년 1517년을 더하고 또한 단군 고조선 47세의 역년 2,333년과 서기 역사 올해 기준으로 2021년까지 도합 9,172년의 역사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고고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더군다나 단군고조선 역사 이후 중국역사로 알려진 청동기시대인 은주시대(殷周時代 B.C:1800~770)가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은주시대가 바로 우리 동이문화란 사실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는 통치역사 천자가 지배하는 주체역사이고 선구적인 역사인 것이다.
그러한 정통성 삼한통치역사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사실이 송조 주희(朱熹:1130-1200)가 편찬한 동몽수지(童蒙須知) 5장 잡세사의(雜細事宜)에서 무릇 음식을 먹을 때에는 숟가락을 들면 반드시 젓가락을 놓아야 하고 젓가락을 들 때에는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하여 젓가락 숟가락 문화를 가르침과 동시에 한손으로만 사용하라는 지침을 세계유일하게 우리만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 수 있으며 주희의 가례(家禮)에서는 밥과 국, 냄비류는 숟가락으로 먹고 다른 반찬들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예법을 이야기한 사실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만히 따르는 반상문화와 반찬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이러한 사실들은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선진문화이며 삼한중심정통성에 의한 특별한 한국인만의 문화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네번째로는 또한 본 블로그 글 "코라이(高麗 CORAY)의 해상무기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4 "에서 언급하였듯이 서양인들이 그렇게도 자랑하는 르네상스시대 때인 14세기에서 16세기에 서유(西儒:Western Confucianism)라고 하여 조선이름으로 활동하였던 예수회선교사들 이탈리아출신 마테오리치(利瑪竇, Matteo Ricci:1552-1610), 독일출신 요한 아담 샬 폰 벨(湯若望,Adam Schall von Bell:1592-1666), 벨기에출신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南懷仁:Ferdinand Verbiest:1623-1688)등이 그러하듯 한국유교문화에 심취하여 스스로 서유(西儒)라 한 것처럼 잘 발달된 선진문화가 당시 유교문화였고 유교에서는 가르치길 숟가락과 젓가락을 산자와 죽은자의 연결고리 라고 하였으며 밥과 국 위주의 제사상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조상의 선령을 상징한다 하였던과 같이 한국인만이 이러한 정통 유교문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상기해야 하는 것은 바로 CORE 란 핵심, 중심, 핵이라는 주요단어이다.
새삼스럽게 추언을 하지 않아도 CORE-A 란 의미가 우주의 중심, 인체의 심장(heart), 또는 세계중심이란 오래된 라틴어단어이기 때문이다.
2. 믿을 수 없는 수박역사
수박은 영어로 워터메론[watermelon]이라 하고 대표적인 학명은 시트룰루스 라나투스(Citrullus lanatus), 한문으로는 서과(西瓜) 혹은 수과(水瓜)라고 하는 수액이 많은 열대성과일이다.
이 수박에 대해서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12년에 "수박(西瓜:Citrullus lanatus :Watermelon) 대고려, 조선 https://han0114.tistory.com/17050080 "이란 본 블로그 글에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다.
수박의 대명사인 워터메론(watermelon)이란 호칭은 15세기 요리 역사학자 존 마리아니(John Mariani)가 펴낸 미국의 식품 및 음료란 사전에 의해 1615년 영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깃점으로 수박이 정의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 서양학자라 할지라도 수박 역사 흐름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그들이 밝히고 있는 수박에 관한 역사가 명확하지 않고 분명치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수박만 그런 것이 아니라 18세기 그들이 자랑삼아 하는 종의 분류시점부터 기록된 모든 생물들이 그러한 모호함을 다 가지고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을 글쓴이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18세기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1707-1778)는 '자연의 체계'를 바꾸고, '식물의 종(種)'을 분리하면서부터 '일본의 린네'란 별칭을 가지고 있던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1743-1828), 네덜란드의 동물, 조류 학자인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1778-1858), 일본생물학의 전문가인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1796-1866), 독일식물학자인 요제프 게르하르트 주카리니(Joseph Gerhard Zuccarini:1797-1848),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 관리자 독일인 헤르만 슈레겔(Hermann Schlegel:1804-1884), 네덜란드 출신 박물학자 마틴 후튠(Maarten Houttuyn:1720-1798)등 친일성향의 생물학자들이 우후죽순 나타나 세계삼한의 자연생태를 완전히 파괴하여 버렸으니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과(西瓜)라고 하는 수박이란 명칭은 서양에서 들어온 과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당시 역사주체라 할 수 있는 삼한역사 영역에서 서편에서 생산되던 과일이라고 해석될 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삼한의 본거지가 북아메리카대륙이라 기준 할 때 지금의 미시시피강의 서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것은 1667년에 영국인 지도제작자 존 오버톤(John Overton:1640-1713)이 제작한 지도를 보면 미시시피강을 서양인들조차 바다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 잣대를 모든 운송수단이 첨단을 걷는 현대환경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서양인들이 주장하는 15세기부터 세계대양을 제집들나들듯 헤집고 다녔다는 거짓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수박(watermelon)은 본래 원종(原種)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어지러운 세월이 지나면서 의도적이고 교묘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가 있다.
어쨌던 18세기 이후 생물학자들에 의해 분류체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조선과 상대적으로 일본이란 체제를 만들어 일본성향을 띄우고 한군데 몰았다는 것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근원적으로 신대륙이란 개념 속에 모든 기존 역사를 지워버렸다는 사실도 이참에 우리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유럽인들이 역사적으로 발판을 삼은 것은 바로 신대륙이란 개념설정이다.
자연생태계를 멸할 수 없는 것처럼 자연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다면 어떠한 역사의 흐름도 조정할 수 있다는 판단은 당시 서양학자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페너다임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대륙이란 장막을 덮고 북아메리카대륙의 역사를 숨겼을 가능성과 아메리카대륙 전체를 신대륙이란 이름으로 판을 짜기위해 그들은 어떠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박은 이러한 이유때문에 더욱 의심을 받는 과일이다.
도대체 아메리카대륙에서 수박의 원종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끝까지 우기고 있는 서양학자들의 사고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들의 이론 처럼 수박은 건조한 지역에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좋은 과일이기 때문에 원종이 탄생했다면 건조지역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애써 꿰맞추고자 하는 아프리카대륙만 건조한 지역이 될 수 없다.
아메리카대륙에 건조한 지역을 넓고도 광대하다.
그리고 아프리카대륙에 있었다고 하는 사바나기후지역도 시간과 환경이 변했다고 하지만 인류태고적부터 존재한 지역이라고 글쓴이는 감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코끼리(象, Elephantidae, elephant)가 남미에 없는 이유 https://han0114.tistory.com/17050586 "에서 아메리카대륙에서 찾을 수 없는 코끼리 근원조차 그들이 숨기고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1918년에 발표한 기후 구분인 쾨펜의 기후구분(Köppen climate classification)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대륙에 존재한 사바나기후가 정확하게 남아메리카대륙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끼리 근원조차도 속이는데 수박 따위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미국자료에서 수박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박은 특히 미국과일로 여겨지고 미국인들이 수박 이름인 시트룰러스 라나투스(Citrullus lanatus)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에 대한 어떤 독특한 주장도 할 수 없고 더군다나 신대륙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고 못을 박고 있다.
다만 수박은 선사시대부터 재배되어 왔고 수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알려져 왔으며 고고학적 증거는 이집트인들이 5,000년도 더 전에 수박을 재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수박은 고대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며 수박의 씨앗과 잎이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주장들은 서양인들이 배포한 자료 어디에나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위키백과에서 보면 특히 나일강 계곡에서 시트룰러스 라나투스(Citrullus lanatus)와 시트룰러스 콜로신티스(Citrullus colocynthis)가 재배되었다는 증거가 기원전 2천년부터 발견되었으며, 두 종의 씨앗은 이집트 12왕조(Dynasty XII:BC1991-BC1802) 즉 단군세기 8세 우서한(于西翰)에서 12세 아한(阿漢)시대까지의 유적지와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지는데 수박은 수분 함량이 높아 재배되어 건기에 먹을 수 있도록 저장되었으며, 식량은 물론 물을 저장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되었고 사해 지역에서도 고대 밥 엣-드라(Bab edh-Dhra), 텔아라드(Tel Arad) 정착지에서 수박 씨앗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등 역사적 위치를 현대 지역에 놓고 그것을 고착화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리비아 남서부에 위치한 선사시대 고고학 유적지인 우안 무허기악(Uan Muhuggiag)에서 5000년 된 야생 수박 씨앗이 다수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글쓴이의 판단은 이집트가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라는 점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서양과학자들은 수박이 어디서 처음 자랐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며 각자 주장이 다른데 아프리카, 남아시아, 인도,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을 포함했을 것으로 추측하거나 북아프리카, 근동, 중동을 말하고 더하여 수박은 지중해와 다른 무역로를 따라 있는 나라들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왔다고 추측하고 있을 정도로 유독 아메리카대륙만은 고스란히 빼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아랍어, 베르베르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사르디니아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된 수박에 대한 단어들 중, 어떤 뿌리 단어들도 관련이 없거나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유전자(DNA)감식에 의한 원종이 어떤 것이며 근원지가 어딘지 특별히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본 블로그 글 "금련화(金蓮花)와 석가(釋迦)탄생지 인도(印度)는 어딘가. https://han0114.tistory.com/17050855 "에서 에서 인도는 남아메카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가 있다.
7세기 또는 9세기에 인도에서 수박이 재배되고 있었다고 하였고, 아마도 실크로드를 따라 10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수박 생산국인 중국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다.
비단길, 비단로(緋緞路)라 했던 실크로드 역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역사명칭이다.
몸에 착 달라붙는 고급스러운 섬유 실크(silk)가 등장할 당시는 실로 혁명적인 섬유발전인 것이다.
한무제(漢武帝)때 장건(張騫)에 의해 서역개척이 이뤄졌고, 당(唐), 송(宋)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된 문명, 문화, 경제, 육상교역이 바로 실크로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선진문물교역을 위한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 교역량과 유동인구가 가장많고 당시 가장 번창해야 하며 지극히 왕래가 자유롭고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렇듯 외지고 사람이 힘겨워하던 험한 길을 로드실크라고 가르치는 현대사가 얼마나 순리의 역사성과 자연이치를 망각하고 있는지 우리는 반드시 바르게 느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물론 한문의 서과(西瓜)의 hsi-kua (pronounced “she-gua”)라 발음하는 의미가 서쪽에서 나오는 메론“melon-from-the-west”으로 번역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16세기 러시아대공국 이반 3세(Ivan III:1462-1505)의 통치 기간 동안, 요리를 포함한 국내 규칙과 지침서에 수박 껍질을 보존하는 지침이 나와 수박 껍질을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여겨져왔다고 알려지고 북아프리카에 존해했다던 무어인(Moor)들이 남유럽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에 열매를 소개하였으며 961년 코르도바(Córdoba)와 1158년 세비야(Sevilla)에서도 열매를 재배했다는 증거가 있디 했으며 그것은 남유럽을 통해 북쪽으로 퍼져나가 수박이 쉽게 뿌리를 내리고, 매우 인기를 끌었으며,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 후 중부 유럽에서 헝가리인들은 적어도 12세기부터 수박을 먹어온 것으로 보이며 그것의 이름이 "그리스 멜론(Greek melon)"을 의미하는 괴뢰그딘네(görögdinnye)라 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난제를 판단하는데 과거 선진문화의 산실이라고 서양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로마와 그리스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면 이러한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일부의 주장이지만 로마와 그리스 아테네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A 14th-century watermelon harvest from the Theatrum Sanitatis
11 세기 아랍 의학 논문(Theatrum Sanitatis:健康全書)에서 수확한 14세기 수박
몇몇 나라에서 만들어진 중세 필사본에는 수박의 삽화가 있다.
실비아 러브그렌(Sylvia Lovegren)의 저서 멜론: 세계사(Melon: A Global History)에 따르면, 북유럽에서 수도사이자 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1193-1280)가 수박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묘사했다고 알려진다.
16세기 말까지, 유럽의 식물학자들은 과육이 하얀 이국적인 수박, 씨앗이 녹색인 수박, 씨앗이 모두 흰색인 품종 등 다양한 품종을 설명하였고 목록화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흔히 수박은 마침내 16세기 말인 1597년에 영국에 도착했는데, 수박 도입 후, 그것은 주로 온실에서 특산 과일로 재배되었고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쯤에서 음식 작가 존 마리아니(John Mariani)가 "수박"이라는 단어를 1615년 영어사전에 처음 등장했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에서야 비로소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수박을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로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수박이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한 시기는 17세기이후가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서양인들에 의해 노예화된 아프리카인들은 북미의 동부, 서인도 제도, 그리고 브라질 전역에 수박 씨앗을 널리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아메리카 경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에서 1629년부터 시작되었고 "Watrmillion"은 "watrmillion Ryndes"를 지칭하는 법정공식 문서로서 1647년 버지니아의 동부해안(Eastern Shore of Virginia)에서 자라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A 16th-century Korean scroll by Sin Saim-dang
위 그림은 미국 "Watermelon Times"에 실린 제목 History: Watermelon’s Backstory Has Deep Roots.의 자료이다.
그리고 그 기사에 실린 역사사실을 위에 개략적으로 간추려 올린 것이다.
특이한 점은 위 기사에서 특별히 한국 즉 코리아라고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위 신사임당의 그림이 마치 미국인의 역사작품처럼 당연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
결국 미국 수박역사를 이야기 하면 자연스럽게 신사임당의 수박그림이 떠올려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이 시기에 미국동부에 바로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 출신 이이(李珥) 율곡(栗谷)의 어머니 신사임당((師任堂申氏:1504-1551)이 최소한 존재했다고 보아야 하고 그가 그곳에서 생산되던 수박을 자연스럽게 두루마기에 그려 놓은 동양화가 된 것이다.
우리는 살아생전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기사에서 우연히 신사임당의 수박그림을 곁들인 것이라고 하지말라.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는 사실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뒤이어 이자료는 아메리카대륙의 수박역사를 말하고 있는데 1650년에는 페루, 브라질, 파나마에서 재배되었다는 사실과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과 플로리다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1600년대 중반에서야 수박 재배한 사실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 탐험가 마르케트(Marquette, Jacques)는 1673년 미시시피 강 계곡에서 아메리카 인디언(Native Americans)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는 수박을 발견했다고도 했으며 그리고 10년 후인 1683년에 스페인 사람들은 오늘날의 캘리포니아로 멜론(수박) 씨앗을 가져왔다고 되어 있다.
이것을 서과(西瓜)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본 블로그가 찾은 결과에서 볼 때 이렇게 흐트러진 역사에서 조그만한 가능성 조차도 찾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수박은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1743-1826,재임:1801-1809)때 미국식 정원과 미국식 식탁에서 빠르게 등장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상으로 수박의 미국 역사를 살펴보았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에서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미국자료는 당연히 신사임당의 수박그림이다.
그 그림에 수박은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미국산 Scaly Bark. Watermelon 이기때문이다.
3.1908년대의 한국 수박
한국일반적인 수박모양 사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1908년도에 촬영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수박의 그림이다.
위 사진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라이브러리(USC Libraries) 디지털도서관에서 발견된 사진이다.
사진이력:
Title:Produce and other food stuffs, Korea
Temporal Subject:1908 to 1922
감리교성공회(Methodist Episcopal Church)촬영
저장소(Repository Location):테네시주도(州都) 내슈빌(Nashville, Tennessee)
기부자(Contributor):Blood-Taylor, Nellie (compiler), Taylor, Corwin (compiler), Taylor, Ewing Bevard (donor)
콜렉션:Corwin & Nellie Taylor Collection
이 디지털 이미지는 메릴랜드주(Maryland) 록빌(Rockville)의 코윈/넬리 손자 유잉 베바드 테일러(Taylor, Ewing Bevard)가 캘리포니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공원 캠퍼스에 있는 한국학도서관에 기증했던 그림이다.
위 제목 "한국의 생산품과 다른 음식재료들(Produce and other food stuffs, Korea)"이란 사진 속의 표식이 있는 수박을 보면 참으로 특이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매우 큰 장방형으로 검고 거친 껍질을 가지고 있는 수박으로 특이한 점은 굴곡이 깊게 파여 있고 가끔 줄무늬가 보인다는 점이다.
위에서 사진을 제시하였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우리가 즐겨먹던 수박과는 차이가 많다.
이것은 전라도 무등산수박과도 비슷하지만 무등산 수박에는 특별한 무늬가 없다.
그런데 깊게 파여진 굴곡선과 겉 표면에 얇은 무늬들이 나타나는 것은 앞서 제시한 미국자료에 나타난 신사임당의 수박그림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이것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게 하는가.
그래서 찾아보니 미국 특히 북아메리카대륙에 자란 다음과 같이 붉은 선 내에 생긴 두 가지의 수박이 나타난다.
이것은 비늘껍질수박이다.
이 수박을 미국인들은 아래와 같이 묘사를 하는데 다음과 같다.
Scaly Bark.Watermelon
This is truly a mouthwatering heirloom variety. It has a crisp, juicy flesh and such a sweet flavor. This historic variety was displayed at the Atlanta Exhibition in 1881. It remains in choice eating condition from ten to fifteen days after being pulled… Skin is smooth but looks as if it rough like tree bark.
이것은 정말 군침이 도는 귀중한 품종이다. 아삭하고 육즙이 많은 과육과 달콤한 맛이 있다. 이 역사적인 품종은 1881년 애틀랜타 박람회에 전시되었다. 또는 1885년을 말하는 자료도 있다. 수확 후에도 10일에서 15일 사이에 최상의 상태로 남아 있다. 껍질은 매끄러우나 마치 나무 껍질처럼 거칠다.
4.나가기
실로 오랜만에 글쓰기를 해보았다.
나름 삶의 핑계를 대보지만 부질없는 변명이라 죄송스러움만 앞선다.
매일같이 찾아주시는 동지님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과 매번 훌륭하신 댓글을 챙겨보며 일일이 답해 드리지 못하는 게으름과 부끄러움도 함께 가진다.
여하튼 글을 자주 못올려 죄송한 마음이다.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매일같이 올려도 부족할 것인데 게으른 탓에 마음만 앞 서 갈뿐이다.
이 글을 계기로 반성을 해본다.
2012년 글에도 말했지만 수박 역사에서 우리나라 기록으로서는 중국전래를 앞선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고려는 서양인들에게 중국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1123년에 쓴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보면 고려(高麗)의 과일에는 능금, 청리(靑李), 과(瓜)라 하여-살펴보건대, 과의 속명은, 서과(西瓜)는 수박이고, 첨과(甜瓜)는 참외이다.-란 기록이 제일빠르다.
그 이후부터 조선왕조실록기록에는 세종5년에 수박을 도둑질한 주방을 맡고 있던 한문직을 영해로 귀향보냈다는 사실, 세조3년 단종 노산군에게 수박따위를 바친 강원도 관찰사 김광수의 이야기며, 연산군11년 성절사편에 전교하길 서과와 각종과일을 구해오라는 사실 등 조선과 외국방문하는 과정에서 수박이 자주 다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었으며 이미 허균(許筠:1569-1618)의 시문집 성소부부고 제26권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수박은 고려의 원조(元朝)사관 홍다구(洪茶丘:1244-1291)가 처음 개성(開城)에다 심었다는 사실들도 알 수가 있었다.
"고려에 수박이 들어온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에서 홍호(洪皓)는 송나라 관원인데 1129年 5월 강남(江南) 건강(建康今南京)에서 왔다고 하였으니 그 보다 먼저라고 한다면 1129년 이전에 이미 고려(高麗)에 수박이 존재했었다는 것인데 앞에서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1123년에 고려(高麗)에 수박이 있었다고 한 것과 거의 시기적으로 일치한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강남(江南)이라고 하는 곳도 본 블로그에서 따져보건데 중앙아메리카대륙이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쨌던지 유통과정을 보면 그런 도식이 나온다.
다시말해 수박은 고대인도가 존재한 남아메리카대륙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다는 사실임을 쉽게 알 수가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중앙아메리카대륙을 통해 북아메리카대륙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과정이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신사임당이 강릉에서 거주한 사실과 위에서 보았던 수박 두루마기 그림이 미국산 비늘껍질수박(Scaly Bark.Watermelon)이라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기존 역사를 이러한 안목으로 보려면 서양인들이 떠들어대는 사실들을 기준으로 해서는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들도 수박의 근원지를 확실히 밝히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이와같은 세계사의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신사임당이 머물었던 강릉은 어딜까 궁금해진다.
북아메리카대륙에 수박이 들어온 시기는 신사임당 수박 두루마리 그림이 그려진 시기보다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그들 주장대로 최소 1615년을 기준으로 따진다 하여도 신사임당의 사망시기가 1551년이고 그보다 빠른 시기에 작품활동했을 것이라 여겨져 신사임당이 그린 수박그림은 이미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재배되던 수박 그림이며 그 그림속에 수박은 당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재배되던 비늘껍질수박(Scaly Bark.Watermelon)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초의 재배지역이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 매사추세츠(Massachusetts)라 했고 그곳에서 1629년에 최초로 경작 되었다 한 것은 그들이 만든 신대륙이란 페러다임속에 가두어버린 서양인들의 주장일뿐임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겨울폭풍(winter storm)에 의한 해일(海溢)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https://han0114.tistory.com/17050720 "에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을 령(嶺)이라 한다면 동쪽 땅 영동(嶺東)지역이라 판단했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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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dolston님의 블로그)선생님으로부터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라이브러리(USC Libraries) 디지털도서관자료와 "https://maidennoir.co.kr/1247 [편린] 1910년대 대한민국의 풍경"을 기증받았습니다. 감사의 말씀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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