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수박(西瓜:Citrullus lanatus :Watermelon) 대고려, 조선

한부울 2012. 12. 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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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西瓜:Citrullus lanatus :Watermelon)과 대고려, 조선

 

[서두(序頭)의 이야기]and the word "watermelon" was present in English dictionaries in 1615, according to the Dictionary of American Food and Drink by J. Mariani. 수박의 대명사인 워터메론(watermelon)이란 호칭은 요리 역사학자 존 마리아니(John Mariani)의 미국의 식품 및 음료란 사전에 의할 때 1615년 영어사전에 나오는 단어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수박인 워터메론(watermelon)이란 명칭에서 애써 1615년이란 년대를 강조한 부분이며 이때부터 수박이 정의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1604년 프랑스가 동인도회사(지금인도가 아니다)를 설립하였고 이어 1607년 영국에 의해 버지니아식민지의 재건이 시작되었으며 뉴욕에 네덜란드 식민지가 만들어 졌고 프랑스는 퀘벡시 점령등 특히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그리고 1612년에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구자라트(Gujarat)에 인도주재사무소 설립한다.1614년에는 영국인 스미스가 뉴잉글랜드를 탐험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으로 보자면 1615년 시기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덕천가강(徳川家康)에게 지시하여 왜란의 책임자를 숙청하고 자숙시킬 때이다.하지만 워터메론(watermelon)이란 명칭은 수박의 원종 명칭이 아닌 용어 혼란이 있다.The citron melon(Citrullus lanatus), or tsamma, is thought to be the original/ancestral variety of watermelon. 서과(西瓜)라고 하는 수박, 워터메론(watermelon)이 원종(原種)이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후 근세기에 식물학자들에 의해 분류체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이 다양성이 중복되면서 발생한 역사성 혼란이 반드시 있었다고 본다.

 

Watermelon=>Tsamma melon(Citrullus lanatus var tastius), The citron melon(Citrullus lanatus), or tsamma.

 

남아프리카산(産) 야생수박의 일종 tsamma 또는 tsama 라고 하는데 Tsamma melon 으로 읽고 이것을 수박(Watermelon)이라 하여 원종으로 취급하였으며 최종,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에 의해 학명 "Citrullus lanatus" 으로 명명되었다고 본다.툰베리에 대해 아래 한번 더 이야기 하겠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란 닉네임을 가질 정도라고 했으니 이 수박에 지대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 인 것 같다.
이것을 현재 우리는 서과(西瓜)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수박은 적어도 초기 BC2000년 재배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그 같은 흔적은 이집트의 나일계곡(Nile Valley)에 증거가있다고 한 조하리(Daniel Zohary)와 홉프(Maria Hopf)의 주장이 있지만 이것도 다시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이집트역사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집트 역사가 20세기 영국고고학자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한 때 이집트 주재 영국 군첩보부에 몇 년간 근무하였다고 하는 영국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1874-1939)가 십여년간 이집트 왕릉의 계곡에서 발굴조사를 하다가 영국인 귀족 카너본경(Carnarbon卿:1866-1923)의 후원으로 투탄카멘(Tutankhamon)의 무덤을 발견하였을 때가 1922년이었는데 이 때부터 이집트 역사가 갑자기 2000년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인류문명의 기원지로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고 그것을 사실로 규정하기 위해 음모가 자행되어 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의문의 죽음을 하였다는 사실이 있다.이집트 역사는 그래서 의혹이 많다는 것이다. 수박 역시 나일계곡(Nile Valley)에서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초기 BC2000에 이집트에서 재배되었다는 주장은 분명찮은 이집트역사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수박과 우리나라 기록들]

이제 부터 우리나라 사서에 나타나는 수박 기록을 한번보자.

1123년에 쓴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보면 고려(高麗)의 과일에는 능금, 청리(靑李), 과(瓜)라 하여-살펴보건대, 과의 속명은, 서과(西瓜)는 수박이고, 첨과(甜瓜)는 참외이다.-복숭아[桃], 배, 대추가 있는데, 맛이 별로 없고 형체가 작다라고 하는 기록들을 볼 때 이미 1123년경 고려(高麗)에 수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기록에서 보면 세종5년(1423)에 환자 한문직이 주방을 맡고 있으면서 수박을 도둑질한 죄목으로 곤장1백대를 치고 영해로 귀향보냈다는 기사가 있고, 또 세조3년(1457)에 즉 단종 노산군(魯山君)이 있는 곳에 사철 과실(果實)을 따는 대로 잇달아 바치고, 원포(園圃)를 마련하여 수박[西瓜]이나 참외[甛瓜]와 채소(菜蔬) 같은 따위에 이르기까지 많이 준비하여 지공(支供)하라는 강원도 관찰사 김광수(金光晬)에게 유시(諭示)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연산군11년(1505)에 전교하기를,“이번 성절사(聖節使)가는 길에 용안(龍眼), 여지(荔枝)를 많이 사오고, 서과(西瓜), 감과(甘瓜) 및 각종 과일을 많이 구해 오라.”하였다는 기사와 중종28년(1533)에 왕이 선릉(宣陵)에 친제(親祭)하기 위하여 가는 도중의 쉬는 곳에서 서과(西瓜)를 바치는 자가 있었는데, 받아들이도록 명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1423년부터 1533년 사이에 기록인데 수박이 조선땅에 자랐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다른 기록은 허균(許筠:1569-1618)의 시문집 성소부부고 제26권 도문대작(屠門大嚼)에 西瓜。前朝洪茶丘始種于開城。考其年則殆先於洪皓之歸江南也。忠州爲上。形如冬瓜者爲佳。而原州次之。수박은 고려 때 고려의 원조(元朝)사관 홍다구(洪茶丘:1244-1291)가 처음 개성(開城)에다 심었다.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송대작가 홍호(洪皓:1088-1155)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 충주에서 나는 것이 상품인데 모양이 동과(冬瓜 동아)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이다.위 기록을 보면 처음 수박(西瓜)을 고려개성(開城)에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는데 도왔다고 하는 홍다구(洪茶丘:1244-1291)가 심었다고 한다.이 홍다구를 몽골인이라고 하는데 본관이 남양 홍씨라고 하는 것을 보면 고려인이다.반도역사에 따르면 원나라에 귀화한 고려인 홍다구(洪茶丘)는 1차 일본정벌(1274.10), 2차 일본정벌(1277)에 참가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를 엄밀하게 따진다면 대고려 소속 몽골군으로 보아야 맞다.
한어자료에도 ”在高丽和元朝仕官“에서 홍다구의 관직부여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데 분명 대고려 안에 있는 원조(元朝)벼슬아치임을 기록하고 있어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포괄적인 의미의 고려인이라고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어지는 수박기록에서 “~고려에 수박이 들어온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에서 홍호(洪皓)는 송나라 관원인데 1129年 5월 강남(江南) 건강(建康今南京)에서 왔다고 하였으니 그 보다 먼저라고 한다면 1129년 이전에 이미 고려(高麗)에 수박이 들어온 것이 된다.

앞에서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1123년에 고려(高麗)에 수박이 있었다고 했으니 거의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어쩌면 서역(西域, 西戎, 西蕃)에서 원나라로 전해 졌다고 하는 서과(西瓜) 즉 수박은 원나라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고려(高麗)에 전해 진 것이고 서과(西瓜)는 고려(高麗)에 생산 재배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形如冬瓜者爲佳。而原州次之~충주에서 나는 것이 상품인데 모양이 동과(冬瓜)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이다.”에서 수박은 아열대기후 여름작물, 또는 지중해지후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주(原州)를 현재 한반도의 강원도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이 때가 조선 17세기 초엽인데 지금처럼 비닐 온실로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한반도 강원도(江原道)는 분명 산악지대이고 냉한지인데 무슨 재주로 수박을 재배 할 수 있겠는가?기록한 대로 수박이 재배되었다는 대조선(大朝鮮) 충주와 원주는 틀림없이 아열대기후일 것이고 열대, 여름작물이 잘 자라는 기후였다는 말이 된다.대조선(大朝鮮)의 강원도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한반도 강원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 하나 수박기록으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1624년에 강홍중(姜弘重:1577-1642)이 쓴 동사록(東槎錄) 문견총록(聞見總錄)을 보면 일본에는 채소 가운데에는 수박(西瓜)이 없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 하였으며 반면 대마도의 재판왜 선좌위문(善左衛門)이 수박(西瓜)과 설탕을 세 당상에게 보내왔다는 기록을 보면 대마도에는 수박이 있었다는 것에서 일본(日本)과 대마도(對馬島)는 영역적으로 기후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정조(正祖)의 시문(詩文), 윤음(綸音:詔勅, 詔書), 교지(敎旨) 등(等)을 모은 전집(全集)홍재전서(弘齋全書)제52권에 보면 병진(丙辰)년 1796년에 정조대왕이 말하는데..목면(木綿)은 늦게야 서역(西域)에서 나왔으나 누구나가 모두 그것으로 몸을 감싸며, 수박[西瓜]은 근년에 회흘(回紇)에서 들어왔으나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 그 즙액을 마신다.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먼저 윤음(綸音:詔勅, 詔書)이란 용어가 어떻게 쓰였는가 한어자료에 보면 甚麼古代皇帝的說話稱為 고대황제의 설화(說話)를 칭하는 용어로서 황제의 칙령을 윤음이라 한다고 분명 명시하고 있다.그렇다면 정조의 홍재전서(弘齋全書)는 황제가 내리는 칙서(勅書)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그런 칙서에서 수박(西瓜)은 근년에 회흘(回紇:Uigur:烏护, 烏紇, 韦紇, 回鶻)에서 들어왔음을 확인 할 수 있게 한다.

 

[세계삼한역사연구차원에서 볼 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자료로서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어도 전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역사로 믿기에는 보존과정에서 결함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현재 반도역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은 1413년(태종 13)에 태조실록(太祖實錄)이 처음 편찬되고, 25대 철종실록(哲宗實錄)은 1865년(고종 2)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바탕으로 깔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탄생된 것이라고 강변한다.
실록(實錄)편찬 과정에서 보면 초초(初草), 중초(中草), 정초(正草)의 3단계로 나누어 초초(初草)는 각방의 당상(堂上)과 낭청(郎廳)이 자료를 분류하고 중요자료를 뽑아 작성한 초안이고 중초(中草)는 도청(都廳)에서 그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고, 정초(正草)는 총재관(總裁官)과 도청(都廳) 당상(堂上)이 중초(中草)를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며 검열하는 교열(校閱) 또는 교정(校訂)하였다는 것인데 이러한 작업이 일제 암흑기에 벌어졌다는 의혹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편찬과정에서 이러한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일제 강점기에 최종적으로 바로잡아 고치길 종용 또는 수정(修正)지시했다는 것이고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하여 고치는 첨삭(添削)등을 동원하여 총체적으로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것이다.
다시말해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역사를 보태거나 지워서 고치는 가필(加筆)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첨가하거나 삭감하는 첨감(添減) 또는 증삭(增削)을 자유자재로 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제강점기 이전 편찬과정에서 그렇게 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일제시대 이후에 전면적으로 감행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고(史庫)는 수많은 전란과 화재로 인하여 거의 소각, 소실되었다는 것을 약속이나 한듯 반도역사가 말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서가 온저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정에서도 이후 각 사고의 모든 실록(實錄)은 조선 말까지 완전히 보관되었다고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온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일제 병탄기 암흑시절인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위의 초초(初草), 중초(中草), 정초(正草)의 3단계를 명목적으로 다루어지면서 일제 총독부 정책이란 미명아래 무자비하게 파괴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마당이다.
더군다나 반도역사가 늘 상 주장하는 실록의 소실(消失), 이동(移動), 반출(搬出)된 과정도 믿을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 등 4곳에 사고(史庫)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불에 타버렸다는 것이고 춘추관(春秋館), 묘향산(妙香山), 태백산(太白山), 오대산(五臺山), 강화도 마리산(摩利山)에 새로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실록(實錄)을 보관하였는데, 춘추관실록은 이괄(李适)의 난(1624)으로 모두 소실되었으며 마리산 사고의 실록은 병자호란(1636)의 피해를 입어 현종(顯宗:재위1659-1674) 때 보수하여 1678년(숙종 4)에 가까운 정족산(鼎足山)사고로 옮겨졌다고 했다.
지금부터 내용이 중요하다.
결국 그러한 과정에 있었지만 이후 각 사고의 모든 실록(實錄)은 조선 말까지 완전히 보관되었다고 한 사실은 우리가 두고두고 새겨야 할 이야기다.
그런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1910-1945)동안, 암흑기인 식민지시대때 일제는 정족산, 태백산 사고의 실록을 아무런 이유없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 이관하였다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다시 이장하였고, 적상산 사고본은 이왕가(李王家)의 개인왕실도서관 장서각(藏書閣)으로 옮겼으며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도쿄대학(東京大學)으로 반출 즉 도둑질하였다는 것인데 이 도둑질 해 간 실록이 1923년의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때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고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꾸며 지어낸 거짓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오대산 사고본을 완전히 뜯어고쳐 반환할 시기만을 기다린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일본사학계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지 83년이 지난 2006년 초에 와서 갑자기 도쿄대학(東京大學)도서관 귀중(?)서고에 지진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 오대산(五臺山)사고본 실록(實錄)이 그대로 소장되어 있었다고 발표하고 우리에게 일부러 알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았을 때 이미 짜고 친 고스톱임을 알 수 있으며 83년 동안 그들이 의도하는 역사를 전부 뜯어고쳐 반도역사를 완성시켰다는 이야기가 된다.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친일사학계에서 이것을 환수해야 한다고 소리쳤고 천하에 다시 없는 애국하는냥 분산을 떨어 드디어  2006년 7월 도쿄대학으로부터 47책을 반환 받았다.
이것은 일제가 1910년부터 시작한 조선역사 말살의 종결편이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엉터리 반도역사의 참담한 뿌리가 된 셈이다.오늘도 내일도 약한 세에 허약한 현실을 인정하며 오직 진실된 역사 찾기만을 고집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어리석은 환수노릇이 결국 우리스스로를 반도역사로 완전하게 옭아메는 족쇄가 되었음을 알 때 정말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결론적으로 이러한 불편한 과정을 겪은 현재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는가?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그래도 온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일제에 의해 식민 병탄기가 시작되면서 일착 시행한 것은 바로 조선역사(朝鮮歷史)를 뭉개어 아주 없애 버리겠다는 말살(抹殺)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이 분명존재하고 이러한 사실은 반일 역사책에도 나오는 공공연(公公然)한 사실이다.
하늘이 도왔다고 보지만 이 말살정책은 1945년 그들의 전쟁패망으로 우리에게 해방이란 선물이 주어지면서 중단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해방후 이렇게 중단된 조선역사 말살정책을 막을 수 있는 철호기회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이데올르기에 빠져 친일청산을 확실하게 하지 못함으로서 다시 말살정책이 살아났으며 그 연장선속에서
안타깝게도 2006년에 일어난 환수사건으로 말미암아 일제가 시행한 조선역사말살정책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본다.그래서 이제 일제가 조작한 반도역사는 이제 누구도 건들일 수 없는 정사(正史)가 되고 말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오늘의 친일사학자들의 문제는 이렇게 짜고 친 고스톱처럼 오대산(五臺山)사고본 실록(實錄)을 2006년도에 환수한후 진의를 밝혀 국민에게 알린 적이 있는가 묻는 것이다.이것은 분명 직무유기인셈이다. 

 

[수박의 역사]지금까지 수박에 대한 우리 사서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엄중한 사실을 살펴보았다.이제 수박의 역사를 살펴보자.아래는 수박에 관한 영어자료이다.Watermelons have been cultivated at least as early as 2000 bC (there's evidence in the Nile Valley, as noted by Zohary and Hopf).
수박은 적어도 초기 BC2000 재배되었다(그 같은 흔적은 나일 계곡의 증거가있다고 Zohary과 Hopf의 기록에 의해 언급).
Several watermelon seeds were found in the tomb of Pharaoh Tutankhamen, as well as in other sites of the 12th Egyptian Dynasty, even though no literature nor hyeroglyphics sources depict or describe watermelons.
수박 씨앗은 더 여러문헌이나 그림에 묘사되어 있는데 수박을 설명하는 파라오의 무덤 상형문자(象形文字)에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재위:BC1361-BC1352) 투탕카멘(Tutankhamen)뿐만 아니라 이집트 제12왕조(12th Egyptian Dynasty, BC1991-BC1782)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한다.
Watermelons are thought to be native of the Kalahari desert in Africa,
어쨌던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칼라 하리사막이라고 한다.

One can find, still today, plants of what is believed to be the ancestor of watermelons, called Tsamma melon ( Citrullus lanatus var tastius ).
오늘날까지도 수박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학명(Watermelon=Tsamma melon =Citrullus lanatus var tastius)이다.

The Tsamma melon can also be found in Baja California(it was brought there by human intervention, though) and African regions such as Zimbabwe,

수박(Tsamma melon)도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비록, 인간의 개입에 의해 들어왔지만)와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The citron melon is native to Africa, probably the Kalahari desert
위 영어자료에서 보듯이 분명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칼라하리사막이라고 하였다.
칼라하리사막(Kalahari 沙漠)은 160만㎢ 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한반도 면적이 22만㎢ 이니 거의 7배 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서두에서 이집트 역사가 영국고고학자에 의해 2000년이 부풀려졌다는 사실과 함께 수박은 적어도 초기 BC2000년에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한어자료에서도 서역(西域, 西戎, 西蕃)으로부터 들어온 과일이라고 하여 서과(西瓜)라 하였다는 사실에서 과연 서역(西域)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서역에서 고려로 들어 간 것이나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간 것이나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곽박은 천축국(天竺國)은 서역(西域)에 있다고 했다.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호도(胡桃)종자(種子)를 가지고 온 기록이 있다.
본 블로그에서는 천축국(天竺國)이 아메리카대륙이라고 하였다.나중에 주장하겠지만 장건이 서역에서 구해 온 호도(胡桃)역시 호(胡)가 붙어 호가 서역을 대변할 성질의 것이라 보고 호(胡)가 호(湖)를 근거한다면 호수(湖水

)로 볼 수 있어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은 곳은 북아메리카대륙의 오대호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할 때 오대호주변에 호두 집산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곳을 서역이라고 한들 아무 이상할 것이 없다.

고려는 아시아대륙을 기반한 제국이었다고 할 때 유럽대륙까지 포함할 수 있고 때문에 고려의 서쪽은 바로 아메리카대륙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문집 임하필기 제32권 순일편(旬一編) 서과(西瓜)편에서도 서과는 원(元)나라 세조(世祖)때부터 중국에 들어왔다고 하였고 호교(胡嶠)의 함로기(陷虜記)에, 광순3년(廣順三年:953)내가 회흘(回紇)에서 서과 종자를 얻었는데 말[斗]같이 큰 열매가 달려 서과라 불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서과(西瓜)는 호교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과는 원(元)나라 세조(世祖)때부터 중국에 들어왔다고 하였다는 것은 원나라가 결코 중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이 서과(西瓜)는 회흘 즉 지금 위구르(Uigur)에서 고려로 들어왔다는 기록을 앞에서 확인 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로 수박이 전래된 위구르는 지금 서장자치구에 있는 위구르(Uigur)는 아니라 현재는 북아메리카대륙으로 들어가는 위치나 아니면 무어족이 침입한 스페인지역 또는 수박원산지라고 하는 남부 아프리카에서 전래될 수 있는 아프리카 북부 어디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이어지는 영어자료에서
It appears this fruit was largely unknown in other Mediterranean cultures of the time, but they were certainly cultivated in Asia (China in particular) by the end of the 9th century AD The fruit was introduced to Europe by the Moor invasion in the 13th century, ...
最初由地中海沿岸传至北欧,而后南下进入中东、印度等地,四五世纪时,由西域传入中国

영어자료에서 수박이 지중해 문화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나타나고 수박은 13 세기에 무어의 침공(Moor invasion)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며 당시 9세기말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재배되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하였고

한어자료에도 최초 지중해연안 그리고 중동, 인도등지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도 거의 일치한다.
이 수박은 13 세기에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신라인이라고 파악되는 무어(Moors)의 침공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다는 이야기가 수박의 전래과정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어인(Moors, 摩爾人)이란 용어는 이슬람계인으로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여왔으며
罗马人把他们称作“毛利人”。这个词源自希腊语“毛罗人
한어자료에서는 로마인들은 그들을 소위 "모리인".그리스어 "모라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호교(胡嶠)의 함로기(陷虜記)에, 廣順三年(953)“내가 회흘(回紇)에서 서과 종자를 얻었는데..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사실도 당시 9세기말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재배되었다는 것이 확인 된다고 보아야 하며 그 기록까지도 수박이 고려
까지 들어오는 과정상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문제는 고려가 있는 한반도까지라고 하니 어렵게 이리저리 땜방을 치고 있지만 사실 고려제국이 유럽대륙까지라고 할 때 답을 쉽게 나온다.

 

(1)Citrullus colocynthis, Colocynth
(2)Citrullus lanatus, Bitter Melon
(3)Citrullus vulgaris
 
(1)Citrullus colocynthis (L.) Schrad. COLOCYNTH
Wild Watermelon; Vine of Sodom; Bitter cucumber; Bitter apple; Cucumis colocynthis L;

 

(2)Citrullus vulgaris Schrad. ex Eckl. & Zeyh

 

(3)Citrullus lanatus (Thunb.) Matsum. &. Nakai BITTER MELON
Camel melon; Wild Melon; Pie Melon; Afghan Melon; Bastard Melon; Piemelon; Watermelon; Momordica lanata Thunb; Cucurbita citrullus L; Colocynthis citrullus L Kuntze; Citrullus vulgaris Schrad; Water Melon; Citrullus vulgaris; Momordica lanata

 

또 한가지 툰베리와 일본과에 의혹인데 이 수박의 대표학명 Citrullus lanatus (Thunb.) Matsum 에서 명명자인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1743-1828)를 관찰 할 수가 있다.

이 수박이 아프리카 남부가 원산이라고 하였으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 라는 칭호를 받은 툰베리가 학명 명명자라고 하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는 이야기가 된다.

이 사람은 스웨덴의 식물학자로서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Uppsala University:1477)에서 린네(Carl Linnaeus, 1707-1778)에게 배웠고 1771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의(船醫)가 되었으며 1775년에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1777년 7월 떠날 때까지 식물을 수집하였다는 것이고 스웨덴에 돌아와 1784년에 일본식물지(Flora japonica)를 출판하였다.

나는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지금 열도에 무슨 희귀한 식물이 있어 툰베리같은 식물학자가 나가사키에 들어와 거의 7년 동안 생활하면서 식물표본을 수집하였고 그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일본의 린네"란 칭호를 받았으며 끝내 "일본식물지"까지 출판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산처럼 많다.

당시 열도 일본에는 어떤 희귀한 식물들이 섬에 깔려 있었길래 당대 유명식물학자, 툰베리 이외 지볼트, 주카리니까지 서로 경쟁적으로 몰려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여러분을 이러한 점을 어떻게 보는가?

또한 툰베리의 행적이다.

툰베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 라는 칭호를 받아가며 책을 출판하기는"일본식물지"는 출판하였는데 왜 "아프리카 식물지"는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실 식물분류학적으로 따진다면 일본 열도보다는 아프리카대륙에 더 많은 희귀한 식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본다면 당시 일본은 아프리카 남부에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 라는 칭호와 함께 “일본의 린네”란 칭호를 함께 달고 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서역은 천축국이라고 했다.천축국은 아메리카대륙일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천축(天竺), 조선(朝鮮), 인도(印度)의 공통성과 일치하는 점도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 게시한 DNA 를 바탕으로 한 미국자료 Discover life 수박 분포지도를 참고하여 찬찬히 한번 살펴보자.

 

(1)Citrullus colocynthis:은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호주 그리고 스페인을 가르키고 있으며 미대륙은 서부지방을 표시를 하고 있다.
(2)Citrullus vulgaris:은 북아메리카대륙전체를 표시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특히 불가리스란 단어가 유럽에 친숙한 것이 아니라 북아메리카 대륙을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채롭다.

(3)Citrullus lanatus:이것은 툰베리가 명명한 학명인데 예상대로 남아프리카에 중점적으로 표시되고 있으며 아메리카대륙과 호주대륙 거의 전대륙에 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According to online sources, watermelons have been introduced to North America in 1500, and Indians were found cultivating them by French explorers in the Mississippi valley.
온라인 자료에 따르면 수박은 1500년 북미에 소개 되었다고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Indians)이 미시시피 계곡(Mississippi valley)에서 재배하는 것을 프랑스 탐험가(French explorers)에 의해 발견되었다 한다.

1615년 영어사전에 워터메론(watermelon)이란 명칭이 등장하던 시기 이전이다.

프랑스는 정조와 루이16세, 영조와 루이15세, 숙종과 루이14세와 얽혀 조선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

1500년 북미에서 수박재배하는 것이 발견된 시기에 조선,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1507)에 수박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또 신사임당(1504-1559)의 그림으로 알려진 초충도병풍(草蟲圖屛風)의 '수박과 들쥐'라는 그림에 수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미 수박의 재배가 보편화 되었음을 알 수 있고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미국수박이 소개된 시기와 조선에서의 수박기록과 그리고 이후 프랑스와 조선이 관계하는 역사가 같다는 사실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서과(西瓜)라고 하여 처음 수박이 전해진 곳이 막연하게 서역(西域)이라고 하였고 그 서역(西域)을 천축국이라고 하였으며 천축국(天竺國)은 현재 인도아대륙이라고 하고 있지만 분명 아메리카대륙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수박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분명하진 않지만 회흘(回紇)에서 고려로 전래되고 재배되었다는 사실에서 고려와 조선이 아열대기후를 포괄한 지배권역을 생각할 때 얼마나 방대한 영역을 가진 나라인가를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식물로서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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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5년 계묘(1423,영락 21) 10월8일 (을묘)

주방을 맡은 환자 한문직을 귀양 보내다

환자 한문직(韓文直)이 주방(酒房)을 맡고 있더니, 수박[西瓜]을 도둑질해 쓴 까닭에 곤장 1백 대를 치고 영해로 귀향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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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3년 정축(1457,천순 1) 6월23일 (을묘)

강원도 관찰사에게 노산군에게 자공하는 물자와 기거 절차를 아뢰게 하다

○諭江原道觀察使金光睟曰: “魯山君處四節果實, 隨所得連進, 爲設園圃, 如西瓜甛瓜至於蔬菜之類, 多備支供。 且每月差守令問起居, 其支供物數、起居節次, 月季錄啓。”

강원도 관찰사 김광수(金光晬)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노산군(魯山君)이 있는 곳에 사철 과실(果實)을 따는 대로 잇달아 바치고, 원포(園圃)를 마련하여 수박[西瓜]이나 참외[甛瓜]와 채소(菜蔬) 같은 따위에 이르기까지 많이 준비하여 지공(支供)하고, 또 매월 수령(守令)을 보내어 그 기거(起居)를 문안하게 하며, 그 지공(支供)하는 물자의 수와 기거(起居) 절차(節次)를 월말에 기록하여 아뢰어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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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11년 을축(1505,홍치 18) 4월6일 (신유)

성절사 가는 길에 용안·여지 등의 과일을 사오게 하다

○辛酉/傳曰: “今聖節使之行, 多貿龍眼、荔枝以來。 西瓜、甘瓜及各種果多覓來。”

전교하기를,“이번 성절사(聖節使) 가는 길에 용안(龍眼)·여지(荔枝)를 많이 사오고, 서과(西瓜)·감과(甘瓜) 및 각종 과일을 많이 구해 오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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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28년 계사(1533,가정 12)9월11일 (경술)

선릉에 친제를 하다

○庚戌/親祭于宣陵。 昧爽動駕, 有獻西苽於道次者, 命受之入幕次。 傳于政院曰: “前於黃豆等, 有獻西苽者, 給物, 今亦依例給之。

선릉(宣陵)에 친제(親祭)하기 위하여 이른 새벽에 어가(御駕)가 출발하였다. 도중의 쉬는 곳에서 서과(西瓜)를 바치는 자가 있었는데, 받아들이도록 명하였다. 막차(幕次)에 들어가 정원에 전교하기를,

“전에 황두등(黃豆等)에서 서과를 바친 자에게 물건을 내렸었으니, 이제도 그 예에 의하여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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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록(東槎錄)  

3월 5일(계축)

문견총록(聞見總錄)

일본은 나라 형상이 인(人) 자와 같다~(생략)

대개 날짐승 가운데에는 꾀꼬리와 까치가 나지 않고 매도 또한 드물었으며, 길짐승 가운데에는 범ㆍ표범이 나지 않았다. 과실 가운데에는 잣[栢]과 호두가 나지 않고, 채소 가운데에는 수박[西瓜]이 없었으며, 음식물 가운데에는 벌꿀이 나지 않았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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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록(東槎錄)

임술년(1682, 숙종 8)6월 26일

○ 대마도주가 사람을 보내어 문후하고 각각 삼중(杉重)과 술통을 보내왔다. 세 당상에게도 이와 같았다. 재판왜 선좌위문(善左衛門)이 수박[西瓜]과 설탕을 세 당상에게 보내왔다. 선좌위문은 자못 착한 사람이다. 나는 평복으로 대마도주에게 가서 감사를 표했다. 봉행왜가 나와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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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집 제1권  시(詩)

이 영덕(李盈德)이 수박을 보내면서 시가 있었으므로 거기에 차운하다.

西天入個白獅子 서역에서 여덟 개의 백사자가 들어왔으니

須識如來普濟心 석가여래의 널리 구제한 마음을 알아야 하리

病暍無緣蘇肺氣 더위를 먹고 폐기를 소생시킬 길이 없었더니

園丁持惠當千金 원정이 갖다준 수박이 천금에 해당하겠네

수박[西瓜]이 원래 서역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한 말인데, 백사자(白獅子)는 수박의 별칭(別稱)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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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6권  

설부(說部) 5

도문대작(屠門大嚼)

西瓜。前朝洪茶丘始種于開城。考其年則殆先於洪皓之歸江南也。忠州爲上。形如冬瓜者爲佳。而原州次之。

수박[西瓜] :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 개성(開城)에다 심었다.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 충주에서 나는 것이 상품인데 모양이 동과(冬瓜 동아)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이다.

洪茶丘(1244年~1291年),先后在高丽和元朝仕官(고려의 원조사관)

洪皓(1088~1155)乐平市(江西省东北部)洪岩镇岩前村人, 宋代词人(송대작가)

曾任宁海主簿(官職名稱)、秀州司录(官職名稱)。南宋建炎三年(1129年)五月,宋高宗准备将都城由杭州迁往建康(今南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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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제32권  

순일편(旬一編)

서과(西瓜)

어떤 사람이 서과는 원(元)나라 세조(世祖) 때부터 중국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초기에 절강(浙江)의 순안(淳安) 사람 방기(方夔)는 이미 시를 짓기를, “줄줄이 이어진 꽃 무늬 적삼은 침에 젖어 푸르고, 가닥가닥 붉은 속살은 멍이 들어 붉구나.[縷縷花衫粘唾碧 痕痕丹血搯膚紅]”라고 하였으니, 이때 절강에 이미 서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원나라 초기에 중국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나라 말기 방회(方回)의 시에도, “서과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옥같이 푸른 껍질을 자르네.[西瓜足解渴 割裂靑瑤膚]”라고 하였고, 또 문신국(文信國)의 시에도, “금 패도를 꺼내어 푸른 옥병을 자르네.[拔出金佩刀 斫破蒼玉甁]”라고 하였으니, 들어온 지가 오래된 것이다. 호교(胡嶠)의 함로기(陷虜記)에, “내가 회흘(回紇)에서 서과 종자를 얻었는데 말[斗]같이 큰 열매가 달려 서과라 불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서과는 호교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금 서과는 이미 천하에 퍼졌다. 대만(臺灣)에서는 가을에 심어 시월에 채취하며, 공물로 서울에 들여보내 납월(臘月) 묘제(廟祭)의 쓰임에 대비한다. 대만은 민해(閩海) 동쪽에 있으니 또 동과(東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기의 석산(石山)과 호남의 무등산(無等山), 평안도의 능라도(綾羅島)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씨가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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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李], 배[梨], 대추[棗], 능금[來禽], 외[瓜]

○ 발해의 과일에는 환도(丸都)의 오얏과 악유(樂游)의 배가 있다. 《신당서》

○ 고려의 과일에는 능금, 청리(靑李), 과(瓜) -살펴보건대, 과의 속명은, 서과(西瓜)는 수박이고, 첨과(甜瓜)는 참외이다.-, 복숭아[桃], 배, 대추가 있는데, 맛이 별로 없고 형체가 작다. 《고려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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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제52권  

책문(策問) 5 

남령초(南靈草) 신구선(新舊選)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 ○ 병진년(1796)

왕은 말하노라.

...목면(木綿)은 늦게야 서역(西域)에서 나왔으나 누구나가 모두 그것으로 몸을 감싸며, 수박[西瓜]은 근년에 회흘(回紇)에서 들어왔으나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 그 즙액을 마신다. 물품이란 진실로 사용에 편리하고 생활에 윤택한지를 따질 뿐이니, 굳이 옛날과 지금,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거론할 필요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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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西瓜 Watermelon)

 

 

 

 

 

 

 

 

 

 

                                              [2005년 세계 수박 생산지]

西瓜(学名:Citrullus lanatus),是葫芦科一种原产于非洲植物或其果实

最初由地中海沿岸传至北欧,而后南下进入中东、印度等地,四五世纪时,由西域传入中国,所以称之为“西瓜”。

 

Watermelon (Citrullus lanatus (Thunb.) Matsum & Nakai, family Cucurbitaceae) can be both the fruit and the plant of a vine-like (scrambler and trailer) plant originally from southern Africa,

 

科学分类

界: 植物界 Plantae

门: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纲: 双子叶植物纲 Magnoliopsida

目: 葫芦目 Cucurbitales

科: 葫芦科 Cucurbitaceae

属: 西瓜属 Citrullus

种: 西瓜 C. lanatus

二名法

Citrullus lanatus(Thunb.) Matsum. & Nakai

异名

Citrullus vulgaris

 

主要产地

中国目前的西瓜产地分为南北二地,

南方以海南岛为主要产区,海南岛依其独有的气候一年四季均盛产西瓜。

北方以湖北为西瓜主要的产区,主要集中襄樊的宜城市地区。

 

 

 

수박은 남아프리카 원산의 한해살이 덩굴식물, 또는 그 열매를 말한다. 열매의 속살은 식용하는데, 붉거나 노란색을 띠며 달다.

 

생태 : 덩굴에는 거친 털이 있으며 단면은 마름모꼴로 길이는 7m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며 긴 심장꼴이고 깃모양으로 3-4개로 깊게 갈라진다. 잎겨드랑이에서 덩굴손이 나와 물체에 휘감긴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리고, 노랑으로 지름 3.5cm이며, 꽃부리는 5개로 갈라진다. 암수딴그루이며 5-10마디마다 암꽃이 달리며, 수꽃은 품종에 따라 양성화가 달린다. 열매는 개화 후 약 30일이면 익는다. 열매는 400-1700개, 보통 700개 정도의 종자가 있다. 종자는 납작한 달걀꼴이나 긴 타원형이고 씨앗 껍질 색은 검정·회색·갈색으로 여러 가지이며, 크기도 품종에 따라 다양하다.

쓰임새 : 수박의 열매는 대부분이 수분 91%이고 탄수화물이 8% 함유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잘 어울리는 열매채소이다. 먹을 수 있는 부분 100g 중 붉은 열매살에는 380㎍, 황육종에는 10㎍의 카로틴이 함유되어 있고, 비타민 B1, B2가 각각 0.03mg 함유되어 있다. 또한 시트룰린이라고 하는 아미노산을 함유하여 이뇨효과가 높고, 신장염에 좋다고 하며 열매즙을 바짝 졸여서 엿처럼 만든 수박 당은 약용에 쓴다. 특히 수박은 이뇨·지갈(止渴)·해서(解暑)의 작용이 있어 소변불리·수종·신장염·고혈압·서열번갈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자는 뽑아서 소금기를 가하고, 종파를 벗겨 배(胚)를 먹는데, 먹을 수 있는 부분 100g 중 단백질 30.1g, 지질 46.4g, 칼슘 70mg, 인 620mg, 철 5.3mg, 카로틴 15㎍ 외에 비타민B1, B2, 니아신 등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가 높은 식품이다.

품종 : 한국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대략 둥근 모양인데, 긴 타원형인 품종도 있다. 열매껍질의 색깔도 짙은 녹색에서 녹색·노랑·흰색 등이고, 세로줄무늬 모양도 굵은 검정에서 가늘고 엷은색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며, 이러한 것들이 품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열매살의 색깔도 빨강·노랑 외에 진홍·귤색·흰색 등이 있다. 현재 주된 재배 품종으로는 신대화3호를 중심으로 한 대화계 품종간의 1대잡종들로 열매 살은 선홍색이고 열매껍질에 호랑이무늬가 있다.[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