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깨달음

너와 나는 하나이다.

한부울 2006. 7. 11. 23:52
 

 

정말로 너는 나를 아는가?

너와 나는 하나다.

멋진 글로 글 놀음 하자는 것이 아니고 먼저 이글을 한번이라도 마음으로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이 너와 내가 하나란 것이 어렴풋이 보일 것이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너와 나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즉 시각적으로는 같지 않지만 동일인이며 같은 사람이다.

또 하나 명심하여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이란 지칭이다.

여기서 지칭하는 하느님은 특정종교의 하느님이 아니다. 여기서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은 옛 부터 우리민족이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가슴에 두 손 모아 자비를 바라며 성스럽게 경배하던 하느님 천지신명을 지칭하는 것이다.

여기엔 여타종교가 자리할 공간은 눈곱만치도 없다.

특별한 자격도 있을 수 없으며 기존종교인도 제약은 없다.

누구든지 마음으로 느끼면 되고 싫으면 그만두면 된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라.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괴롭다.

머리를 비우면 바로 마음도 같이 순간적으로 비워진다.

편하게 앉아 허리를 세우고 눈을 조심스럽게 감고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두지 말고 부드럽게 나를 느끼면 된다.

그러면 잠시 평온이 찾아든다.

어렵게 절차나 형식은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내가 편하면 된다.

그러는 순간 너는 느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은 새삼스럽게 나를 가슴에 살포시 껴안아보는 아주 초보적인 과정이다.

너와 내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알 수 있는 첫걸음이다.

잡다한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즉 이기를 잠시 물리치는 일이다.

또한 단순하게 “모든 것이 내가 하기 나름이다”란 말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희미한 빛을 눈꺼풀위로 서서히 느끼게 되면서 영감을 받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나를 알게 하는 단계이다.

그러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그렇게 자꾸 횟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규칙을 가지게 되고 법칙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말하는“복식호흡”이라하며 복잡한 절차를 찾을 필요가 없다.

단지 내가 눈을 감고 나를 느끼면서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나를 깨달게 되면서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가 있게 된다.

여기까지다.

이것만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고정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이미 하느님의 그늘 안에 들어서는 길이 된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나와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대화하는 상대가 바로 하느님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며 내가 곧 하느님이다”란 등식(현대적 용어)이 이루어진다.

참 좋은 만남이다.

절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대입하지 마라.

그럴 이유가 여기에는 없다.

하기싫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절대 구속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이 하는 쿨 한 생활 방식이다.

구질구질한것은 처음부터 마음에 맞추질 않는다.

이것이 전부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너와 나는 부질없이 바쁘지만 이제는 복잡한 삶에 지쳐가는 너와 내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를 결집하여야 한다. 

여기에 종교행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위, 종교, 사회관, 역사관이 다르다고 하여 못할 것이 없다.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면 누구든지 할 수가 있다.

바로 이런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순수하게 결집되어야 한다.

이 자세는 옛 조상님들이 세계를 다스리던 자세였고 뛰어난 에너지원을 창출하였던 모습이였으며 구속됨이 없이 그저 일상화 하였던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 옛 정기를 꺼집어 내는 것이며 그러한 정기를 온전하게 우리가 받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런 결집된 자세가 혼탁스러운 오늘 날에 반듯이 필요한 것이고 또한 옛 찬란한 영광을 다시 꽃피울 수 있는 에너지 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 눈을 감고 잃어버리고 있는 나를 한번 느껴 찾아 보자.

 

 

() 민족의 천지신명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