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동물

백령도(白翎島)와 왜가리 백로(白鹭)

한부울 2021. 2. 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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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白翎島)와 왜가리 백로(白鹭)

 

글쓴이:한부울

 

1.들어가기
2.백령도의 역사
3.왜가리와 백로(白鷺)
4.깃털사냥
5.버드 시티(Bird City)
6.마무리

 

1.들어가기

 

전 세계인들이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코로나19판데믹과 그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혁을 맞이해서도 특유의 진취력을 발휘하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빼어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여주어 어느새 선진국 이상으로 강해버린 한국의 위상은 전에 없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1950년 1인당 GDP가 876달러($)에 불과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족상잔의 참혹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오직 강건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70년이란 기간동안 앞 만 보고 걸어온 결과는 놀랍게도 2020년에서 G7 이탈리아를 제치고 당당히 선진국에 진입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세계인들의 칭송을 받을 만 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포위된 불리한 상황이며 더군다나 남북이 첨예하게 군사적으로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다른민족에게 찾을 수 없는 어려울수록 빼어난 능력이 발휘됨은 물론이고 세계문화를 재편할 정도로 거세게 부는 한류 바람과 함께 국력까지 크게 신장되고 강해지고 있는 한국인들을 세계인들이 경이롭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열등의식에 빠져 못마땅해 하는 골치아픈 이웃이 있는데 중공인민과 열도일본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참으로 기구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삼한체제 내 중앙정부가 존재하던 도시(경사)에 불과하던 중국이란 명칭이 삼한정치체제가 지리멸멸하면서 근세기에 서세들에 농간속에서 세계삼한은 좁은 한반도에 갇힘과 다르게 중국은 과대하게 확대 포장되면서 마치 중국 속에 조선이 존재한 것처럼 역사가 꾸며졌고 세계삼한체제내 한낱 정치세력에 불과하던 일본세력들이 체제를 뒤엎고 체제를 조각조각 분리시켜 힘을 빼면서 그들이 곧 거대한 국력을 가진 국가를 지배하는 것처럼 모든 구조를 변형시켰다는 사실은 어쨌던 현재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 본질의 핵심이 되어야 맞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기구함이란 것은 우리가 그러한 본질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역사의 진정한 가치는 2차세계대전 종식을 분기점으로 모든 것에서 잃어버렸고 사라진 것이 된다.

현재 세계사는 제대로 된 역사라 할 수 없다.

그렇듯 참담함에서 그래도 좀 진전이다 싶은 것은 한국통 또는 한국문화 전도사라고 알려진 미국 아시아 근동 언어학과 마크 피터슨(Mark A. Peterson)교수와 미국 UCLA 한국학연구소장 존 던컨(John B. Duncan)같은 미국인학자가 말하는 한국인들의 역사사실을 현 동아시아 역사와는 다르게 보려고 한다는데 있다.

어쨌던 서양인들의 그렇게라도 발전하는 시각은 미래관점에서 판단할 때 꽤 고무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학자들의 그러한 주장은 본질적으로 접근조차 안되는 겉핥기에 불과하고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매우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듯 시대적으로 한류가 생겨나고 국격이 높아지는 한국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미 본질의 역사가 그들에 의해 180도로 뒤집힌 사실을 놓고 보면 새로운 역사사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렇듯 믿음이 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들의 숨김없는 진실된 역사사실을 서양학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새로운 역사사실을 말하더라도 그들이 구축한 테두리와 틀 안에서 가능할 뿐이지 절대로 스스로 기반을 허물어버리면서까지 우리가 듣고싶은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기가 힘든다는 말이다.
그럴려면 서양인학자들에겐 남다른 용기와 양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존 던컨(John B. Duncan)교수 같은 경우는 근대 민주주의 바탕이된 국민주의와 내셔날리즘 생성에서 애초 동서양역사를 분리하고 조심스럽게 한국인역사관점에 접근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관점을 한국역사 8세기까지 끌어올리면서 일찍이 삼한(三韓)에서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정교한 중앙집권적인 관료체계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다른 것이며 한국인들 만의 체제 정체성이라고 하였고 이를 근세기에 서양에서 출현한 국민주의, 내셔널리즘이라는 운동과 비교하였고 학문적으로 어니스트 겔너(Ernest Gellner)와 자본주의의 본질인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을 주장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까지 거론하였으며 이같은 사실은 18세기 서양 속에 중국이라는 프랑스시대의 루이 15.16.17세때 체제가 ‘국민’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며 관주도 내셔널리즘이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그는 분명 하나의 체제에서 동양과 서양을 서로 분리하고 비교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다 아다시피 서양세력들의 정치체제가 완성된 시점을 프랑스시대로 맞추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체제가 되는 근원을 그곳에서 찾고 있으며 선진 서양정치문화의 바탕을 그기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본질적인 우월성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정치적인 체제에 대한 제도나 이념이 결코 서양에서 따로 생겼고 동양에서 따로 생긴 것이 아닌 하나의 체제, 하나의 세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대 흐름이었고 체제 연속성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숨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서양따로 동양따로가 아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하나의 체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세계사적으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다.
존 던컨(John B. Duncan)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에서 보면 놀라운 것은 한국인의 고대삼한 체제 연속성은 8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18세기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정치제도 자체의 뿌리가 삼한에 본질을 두고 있었던 것이며 삼한정치체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를 하나의 체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도이고 이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인 삼한체제 정체성은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며 세계정치제도, 오늘날 실천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킨 유일한 자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아직까지 서양학자 그 누구라도 우리의 숨겨진 역사를 용기있게 주장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좀더 솔직해지길 바랄 뿐이다.

 

백령도(白翎島)!

 

본 블로그 글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https://blog.daum.net/han0114/17050580 "에서 말하길 조선왕조실록 세종13년(1431)3월30일 기사에 호군(護軍)조심(趙深)을 백령도(白翎島)로 보내어 들소(野牛)를 색출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소 전염병이 기승을 부려 겨울부터 지금까지 산우(山牛)와 야우(野牛)가 병들어 죽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기록이 있다.

산우(山牛)와 야우(野牛)는 노력, 끈기, 투지의 상징인 버팔로(Buffalo)라 한 것이다.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 들소(野牛, 兕, bison) 글쓴이:한부울 1830년부터 미국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 강제수용을 하면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세 차례에 걸친 인디언 대학살과 인디언 식량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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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한과 가깝고 자주 국지전 같은 군사충돌이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군사적으로 관리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며 오늘날 남북첨예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되는 상태에서 장산곶 남쪽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 떨어져 남한의 서해 최북단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에 가까운 섬이다.

글쓴이가 이 백령도에 접근하게 된 동기는 백령(白翎)이라고 하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장 백령(白翎)의 한자어를 해석해보면 백(白)은 '흰 백'이고 령(翎)은 '새의 깃털'이다.
때문에 어렵지 않게 흰 색 깃 털 즉 백로(白鹭) 왜가리등이 섬에 우글거린다고 보아야 옳지만 백령도에 백로가 과거나 현재까지 우글거린다는 말은 못들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옛날에는 백령도가 본래 철새의 보금자리가 되어 한 때는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두루미와 백조가 있었다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이 주장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두루미와 백조가 아니라 백로이어야 한다.
개체숫자가 거의 수백만리라 한다면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새도래지(渡來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반도 백령도는 세계뿐만아니라 국내기록에서 조차도 그런 유명한 철새도래지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백령이란 명칭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자를 다시 풀어보았는데 翎 : 翎(령)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翎 羽也 (령 우야)(翎은 깃이다.)”라고 하였고 羽(우)가 새의 깃을 이르는 통칭으로 쓰이자 '날개 깃'이나 '꽁지 깃'을 이르는 글자는 '翎(령)'으로 썼으며 이 '翎(령)'은 관리 우두머리들[令]이 관에 꽂고 다니던 긴 새의 깃[羽]을 이른다고 하였다.
깃 털을 관(冠)에 또는 모자에 꽂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한반도 역사에서 주장하는 것은 보통 깃을 꽂는 다는 것은 벼슬을 하고 관지에 들어가는 것인데 백령도는 위치상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절제사(節制使) 등 소위 벼슬을 한 령(令)이 깃 털을 꽂고 굳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

현재도 인구가 6000명이 못되는데 당시에 그렇게 큰 관소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령도는 일반 사람들도 작지만 육지에서 거관들이 들락 거릴 곳이 못되는 척박한 섬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깃을 모자에 꽂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백령이란 의미에서 볼 때 이 명칭은 지금의 한반도 서해에 위험한 섬과 어울리지 않는 무엇인가 애써 알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고 사실상 섬의 태생적인 환경으로 볼 때 어색한 그래서 기존 명칭과 괴리가 많이 있는 명칭과 섬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명칭으로 따질 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옛날에 철새의 본거지가 되어 수백만 마리씩 떼를 지어 모였다면 왜 지금은 멸종된 것처럼 백로, 백조 따위를 찾을 수가 없을까?
철새가 6.25 사변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철새들이 더 이상 찾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6.25 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백령도에는 수백만 마리씩 떼를 지어 철새가 찾아 온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냥 그렇게 구전으로 이어 오고 있을 뿐이란 사실이다.

 

2. 백령도의 역사

 

백령도는 고구려(高句麗) 때는 곡도(鵠島)라고 불렸고, 고려(高麗) 현종 9년부터 백령도라 불렸다고 한다.
본래 백학도(白鶴島)라고도 일컬어졌는데, 이름에 관한 사또의 딸과 선비의 설화도 전해지며 고려 1018년에 백령진(白翎鎭)이 되었고 이 행정명이 조선때인 1428년에 황해도(黃海道), 장연군(長淵郡)에 속하였다고 나타난다.
고려사에는 백령도에서도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사람이 살았다고 하고 고구려(高句麗)에 때에는 따오기 섬, 즉 곡도(鵠島)라 불리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 신라(新羅)의 영토인 한주(漢州) 장구진(長口鎭)이 되었다가 고려(高麗) 태조 때 해주(海州)소속 백령진이 되어 '백령'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이 잠시 유배되기도 하였다고 기록에 나타난다.
이렇게 펼쳐지는 여러 명칭은 개별적으로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반도 지명에서 향상 지적되고 있는 것은 명칭과 지리, 지형이 따로 제멋대로 논다는 모순적인 사실이다.

백령(白翎)이란 이름 역시 그렇게 보아야 마땅하나 이러한 문제를 그냥 그렇다고 치부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곡도라 한 곡(鵠)도 오릿과에 속한 철새 고니를 이른다.
고니를 백조(白鳥)라 하고, 저어새과의 겨울 철새 따오기도 이 한자에 포함되는 의미이다.
따오기는 주영(朱鹮)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도화조(桃花鳥)라 하는데 일본봉두영(鳳頭鹮)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볼 때 이미 생물학적으로 일제에 의해 포괄적으로 조작이 이루진 것임을 알 수 있는데 1850년 독일인 드비히 라이헨바흐(Ludwig Reichenbach)가 속명(Nipponia)을 만들고 1835년 더치(Dutch)국적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에 의해 이 종(種)이 만들어졌으며 하여튼 약싹빠른 일본세력들이 이를 니폰아 니폰(Nipponia nippon)이란 종명을 붙여 일본화하여 '따오기'로 만들고 어떻게든 이것을 아시아종(種)으로 굳히며 일본이 조선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식의 생물학적 기반을 만든 것임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정조론으로 본 서구와 일본역사의 동질성 https://blog.daum.net/han0114/17050816 "소제 5) 일본과 친일성향의 생물학자에서 말하길 학명을 사용하며 명명한 친일생물학자들을 보면 '일본의 린네'란 별칭을 가지고 있던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1743-1828), 네덜란드의 동물, 조류 학자인 위에서 언급되는 콘라드 야콥 테민크(Coenraad Jacob Temminck:1778-1858), 일본생물학의 전문가인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1796-1866), 독일식물학자인 요제프 게르하르트 주카리니(Joseph Gerhard Zuccarini:1797-1848),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 관리자 독일인 헤르만 슈레겔(Hermann Schlegel:1804-1884), 네덜란드 출신 박물학자 마틴 후튠(Maarten Houttuyn:1720-1798)등을 이야기 하였으며 19세기에 활동한 친일성향의 생물학자들은 대다수가 네덜란드와 독일인이며 인도유럽어족(語族) 서게르만어파(語派)종족으로 게르만계 네덜란드(German-Dutch)로 구분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19세기에서 벌어진 사건 중 우리가 심각하게 판단해야 할 것은 바로 영국의 박물학자이며 우생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프랜시스 골튼(Francis Galton)의 영향이며 그의 사촌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이 1859년에 발표한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에 의해 기존 근원종까지 생물체계를 다시 정리하게 만들었고 이를 연계한 영국 출신의 사회학자이고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의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 .Social Darwinism)이 "우월한 사회나 국가가 열등한 사회나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들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약육강식의 식민지주의를 합리화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생물학적 조작이 거대하게 포괄적으로 실행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크레스티드 이비스(Crested ibis)이름으로 신중국, 한반도, 열도에 근원하는 것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을 이를 천연기념물 제198호, 주로(朱鷺)라고 하면서 '따오기'라고 옮겨 정리했다.
아래로 굽은 긴 부리가 특징이고 비번식기에는 대부분 흰색이라지만 회색에 가깝고 얼굴에는 붉은색 피부가 노출되어 주로(朱鷺)라 하는데 우리가 찾는 백령(白翎)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일본열도가 한반도에 가깝게 붙어 존재하는 것처럼 본래 지형 역사까지도 그런식으로 조작했고 근세기에 조선에 가깝게 일본이 붙어버렸다고 보는데 이렇게 까지 2차세계대전을 끝내고 정리가 들어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이 존재한 곳은 거대한 조선체제 내 하나의 세력일 뿐이지 영토적으로나 지형적으로 형체가 존재해던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영토적으로 조선에 가깝게 존재한 것은 그들이 하나의 체제인 조선으로부터 스스로 독립을 하고서 부터이고 조선과 거의 같은 범위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러한 구조는 모두가 서양세력들의 철저한 기획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일본이란 세력이 조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전세가 뒤바뀌게 되었는데 체제 주인인 조선이 해양세력들의 간계에 말려들어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틈을 타고 거대한 해양자본은 조선의 팔다리 다 잘라 버리고 자연체계근원이라 할 수 있는 식물체제까지 새롭게 그들 입맛에 맞게 구축한 것이며 그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몇번이나 되풀이하는 이야기지만 현재 일본열도인들은 해양세력들의 말단 계급이거나 노예신분이었으며 아마도 동양계 무사계급이란 한정된 범위을 벗어날 수가 없는 종족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짜 백색의 깃을 가진 철새 백로, 왜가리를 찾아야 한다.
사실상 한반도에 찾을 수 있는 백조나 따오기가 아니라 진짜 왜가리 백로(白鹭)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백조나 따오기 정도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본래 백학도(白鶴島)라 한 사실도 존해하는데 백학(白鶴)은 두루미과의 두루미를 말하는 것이다.
이 종(種) 역시 학명이 그루스 자포넨시스(Grus japonensis)라고 명명되었는데 서양일본학자들이 그냥 놔두지 않았고 실제로 모습을 보면 흰 백 깃털이 아닌 검은색이 꼬리와 목을 감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백로(白鹭)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어떻것이든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역사와는 무관한 것임을 알 수가 있어야 한다.
19세기 서양일본학자들이 전부 뒤틀어버려 한반도용 또는 아시아용으로 둔갑시켜버렸다는 사실 말고는 다르게 확인 할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을 종합할 때 한반도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생물학자들도 제대로 된 역사를 바탕으로 생물학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행태를 방치하고 무엇을 이야기 한들 전부가 엉터리가 되고 만다.

 

3.왜가리 백로(白鷺)

 

백로는 흰 왜가리(white heron)로 풀이된다.
라틴어로 '서쪽'이란 의미가 붙은 학명 아르데아 오키덴탈리스(Ardea occidentalis)의 큰 흰 왜가리(great white heron)는 미국 플로리다주(Florida州)와 플로리다 키(Florida Keys)열도산(産)인 대형 흰 왜가리를 말한다.
라틴어 아르데아(Ardea)는 로마(Roma)남쪽에 있는 라티움(Látium)을 말한다.
만약 플로리다주가 로마라고 한다면 또는 이탈리아로 한다면 남쪽 도시 프롤리다 키가 바로 라티움이라고 풀어 볼 수 있다.

​본 블로그 글 "암염층(Salt Dome)과 로마 실체 https://blog.daum.net/han0114/17050866 "에서 플로리다주에서 로마와 견줄 수 있는 도시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마나소타문명(Manasota culture)권내 도시 탬파(Tampa)와 동시에 탬파북부에 가까이 있는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라 한 사실과 맞춰진다.

 

백로(白鹭)에는 왜가리와 백로로 구별될 수 있는데 다소 모호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생물학적 보다는 외모에 따라 구분하게 하며 백로라는 단어는 은 왜가리(silver heron)와 브러시(brush)를 모두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백로 깃털장식 에이그레트(aigrette)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것을 긴 필라멘트 깃털 백로(白鷺, egret)로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이그리트(egret)다.
백로(白鷺, egret)는 왜가리과(Ardeidae Leach, 1820)에 속하는 일부 새를 총칭하는 말이며 흔히들 왜가리과에 속하는 새를 총칭하여 백로(白鹭)라고 하기도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형태적으로는 키가 30-140cm 정도로 종(種)에 따라 차이가 크며 몸은 작은데 비해 머리와 다리가 매우 길고 날개가 발달했으며 날개 면적은 몸무게에 비하여 크며 날개를 서서히 흔들어 날 수 있고 꼬리는 작고 몸 빛깔은 암수가 비슷하며 백색·갈색·회색·청색 등이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라고 자료에 나타난다.
물고기 이외에도 가재·개구리·곤충 등을 먹고 해안 부근의 산림·소택지·갈대밭 등에서 서식하며 무리를 지어 번식하고 먹이를 구할 때는 단독으로 행동한다고 되어 있고 둥지는 나뭇가지를 쌓아 조잡하게 짓고 그곳에 청록색 또는 백색의 알을 3-7개 낳는데 17-28일 정도 알을 품고 새끼는 어미가 토해 낸 먹이로 자란다고 하였으며 부화하여 둥지를 떠나기까지 대형종이 60일, 소형종이 20-25일이 소요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몇 가지 백로(白鹭)가 한 속(屬)에서 다른 속(屬)으로 재분류되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솔직히 이런 사실들은 이미 분류체계시스템 자체가 특별하게 검증을 거치지 않고 서양학자들의 독무대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들끼리 어떤 짓을 하던 같은 부류의 역사관계자들 역시 별다르게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놀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어지럽혀 놓은 근본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리, 과학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백로에 대한 서양인들이 만든 분류학적으로 들어간 본다.

鹭科

科学分类
界: 动物界 Animalia
门: 脊索动物门 Chordata
纲: 鸟纲 Aves
目: 鹈形目 Pelecaniformes
科: 鹭科 Ardeidae Leach, 1820

동양에서는 해오라기(鷺)과라고 풀이되지만 영어 학명에는 왜가리과에 혼용된다.

왜가리과 학명은 1820년 브리티시 동물학자 월리엄 리치(William Elford Leach:1790-1836)에 의해 명명되었다.
이 사람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바라본 특히 본 블로그 글 "대승(戴勝)후투티(hoopoe)로 본 조선열수(朝鮮洌水)의 위치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7 "에서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열거한 조선열수(朝鮮洌水)와 관계가 깊은 대승(戴勝)후투티(hoopoe)를 명명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왜가리 역시 근원적으로 후투티와 같이 미시시피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감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의 거처가 흥미로운데 마지막에는 삶을 이탈리아, 몰타에서 살다가, 제노바에서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는데 그가 브리티시학자라는 것은 당시 하나의 체제에서 박물관을 맡아 연구하던 국비의 학자이며 그가 열성적으로 연구하다가 신경쇠약으로 그만두었지만 가장 노고가 많았던 학자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그가 연구한 곳이 유럽대륙이 아니라 미시시피강 주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면 플로리다까지 그의 영역이라 할 수 있고 아마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삶의 태반을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보며 하나의 체제를 구가했던 대조선(大朝鮮)의 동물학계에서 일한 사람이 아닌가도 한다.
글쓴이는 가끔 이런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도 서양인물들을 조명한다.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를 포함하는 왜가리과는 사다새목(Pelecaniformes:1891)에 속하는데 한때는 황새목(Ciconiiformes:1854)으로 분류하였다.
흔히들 왜가리과에 속하는 새를 총칭하여 백로(白鷺:egret)라고 하기도 한다.

분류체계는 동물계(动物界:Animalia) , 척삭동물문(脊索动物门:Chordata) , 조강(鸟纲:Aves), 사다새목(鹈形目:Pelecaniformes )의 왜가리과(鹭科:Ardeidae)로 분류되며 64종(種)이 인정되고 있다.
왜가리(herons)는 황새, 따오기, 저어새, 두루미(학)등 일부 다른 집단의 새와 비슷하지만, 목을 뒤로 젖힌 채 날아다니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왜가리과에서 황새아과(Tigriornithinae亞科), 해오라기아과(Botaurinae亞科), 백로아과(Ardeinae亞科)로 분류되며 이 중에서 백로아과(白鷺亞科:Ardeinae)에서 왜가리속(屬)을 찾을 수가 있는데 백로아과(白鷺亞科:Ardeinae)에는 13개 속(屬)이 있고 그 중에서 백로속(白鹭屬:Egretta), 왜가리속(鹭屬:Ardea), 황로속(黃鷺:Bubulcus), 중백로속(中白鹭屬:Mesophoyx)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음과 같이 나열할 수 있다.

 

(A)백로속 (白鹭屬 :Egretta T. Forster, 1817)
大白鹭 Egretta alba Linnaeus, 1758 전세계
中白鹭 Egretta intermedia(Wagler, 1827) 중백로와 비슷한 분포(아시아전체)
黄嘴白鹭 Egretta eulophotes(R. Swinhoe, 1860)-Chinese egret 동아시아대륙 해안
白鹭 Egretta garzetta(Linnaeus, 1766)-Little egret 유럽, 아프리카 및 남동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에서 발견
岩鹭 Egretta sacra(Gmelin, 1789)-Pacific reef heron 태평양
雪鹭 Egretta thula(Molina, 1782)-Snowy egret 아메리카대륙


棕颈鹭 Egretta rufescens(Gmelin, 1789)-Reddish egret 중앙 아메리카 , 바하마 , 카리브해 , 미국 의 걸프 해안 및 멕시코에 거주


蓝灰鹭Egretta vinaceigula(Sharpe, 1895)-Slaty egret 남아프리카대륙
黑鹭Egretta ardesiaca(Wagler, 1827)-Black heron 세네갈 과 수단 에서 남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三色鹭Egretta tricolor(Statius Muller, 1776)-Tricolored heron 루이지애나, 멕시코만, 카리브해, 남아메리카대륙, 브라질


白脸鹭 Egretta novaehollandiae(Latham, 1790)-White-faced heron 태평양
小蓝鹭 Egretta caerulea(Linnaeus, 1758)-Little blue heron 미국 의 걸프 주 , 중앙아메리카 와 카리브해 남부, 페루, 우루과이


Egretta dimorpha Hartert, 1914-Dimorphic egret 아프리카대륙
Egretta gularis(Bosc, 1792)-Western reef heron,열대 서 아프리카 의 해안 , 홍해 , 페르시아만 (이란), 인도, 북미, 남미 및 카리브해 섬

 

(B)왜가리속 (鹭屬 :Ardea Linnaeus, 1758)
貝努鷺(Ardea bennuides)
Ardea intermedia-Intermediate egret
Ardea alba-Great egret or great white egret 대백로(great egret)Asia, Africa, the Americas, and southern Europe 아메리카 전세계


苍鹭(Ardea cinerea)Grey heron
黑冠白颈鹭(Ardea cocoi)Cocoi heron 남아메리카


巨鹭(Ardea goliath)Goliath heron
大蓝鹭(Ardea herodias)Great blue heron 북아메리카, 알래스카와 캐나다 남부 지방까지. 겨울에는 남쪽으로 플로리다, 멕시코, 카리브해에서 남미


马岛鹭(Ardea humbloti)Humblot's heron
白腹鹭(Ardea insignis)White-bellied heron
黑头鹭(Ardea melanocephala)Black-headed heron
白颈鹭(Ardea pacifica)White-necked heron or Pacific heron
白頸黑鷺(Ardea picata)Pied heron
草鹭(Ardea purpurea)Purple heron
乌灰鹭(Ardea sumatrana)Great-billed heron

 

(C)황로속 (屬 Bubulcus Bonaparte, 1855)
a. Bubulcus ibis
b. Bubulcus coromandus

 

(D)중백로속(中白鹭屬 :Mesophoyx Wagler, 1827)동 아프리카 에서 인도 아대륙 을 가로 질러 동남아시아 와 호주까지
a. Mesophoyx intermedia (Wagler, 1827)
b. Egretta intermedia (Wagler, 1827)

4. 깃털사냥

 

​정말로 백령도에서 수백만마리가 찾아오던 진짜 철새 백로(白鷺:egret)가 무엇인지 알았다.

외가리과에서 백로아과(白鷺亞科:Ardeinae)로 들어가 13개속에서 백로속(白鹭屬:Egretta)을 찾을 수 있고 그곳에서 설로(雪鹭)라 하는 에그레타 투라(Egretta thula Molina, 1782)-눈백로(Snowy egret)를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아메리카대륙을 분포지로 하는 백로이며 이 새는 놀랍게도 19세기 후반부터 발생한 깃털사냥(plume hunters)에서 최고로 희생을 많이 당한 새 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깃털사냥에 대상은 주로 백로(白鷺:egret)의 깃털이었는데 이것을 에이그레트(aigrette)라 하여 끝은 부드럽고 푹신한 것이 특징인 모자나 투구 등의 깃털장식에 사용되던 것으로 백로의 깃털을 마구잡이식으로 사냥하던 19세기 후반에 절정에 달했고 20세기 초에 끝이 났다고 알려진다.
19세기 후반까지, 깃털사냥꾼들은 눈처럼 하얀 백로(snowy egret)들을 거의 쓸어버렸다고 표현된다.
그리고 백로 개체군을 거의 멸종 시켰다고 알려지는데 이것 개체를 살펴보면 플라밍고(Flamingoes), 진홍저어새(roseate spoonbills), 대백로(great egrets), 공작(peafowl), 독일황후 새의 천국(The Empress of Germany's bird of paradise)이란 희귀종까지 깃털 사냥꾼의 인기가 대상이었다.

 


브리티시 여제 빅토리아시대(Victorian era:1837-1901)의 패션에는 실크 꽃 , 리본 및 이국적인 깃털 의 정교한 작품으로 장식 된 넓은 테두리가 있는 큰 모자가 포함되었고 이러한 패션은 놀랍게도 유럽이 아닌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에서 유행되었다고 한다.
깃 털은 종종 는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의 열대 습지 자연지대인 면적 13,000㎢ 이상인 에버글레이즈(Florida everglades) 습지(濕地)의 새들로부터 근원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오버 헌팅으로 거의 소멸되었다고 알려진다.
1900년까지 플로리다 해안 조류 의 95 %를 포함하여 매년 5백만 마리 이상의 새가 죽임을당했다.
이것이 바로 그 악명높았던 깃털사냥이라고 말한다.

 


1870 년대에 시작된 깃털 패션 열풍은 너무나 널리 퍼져 1886년에 여성용으로 사냥되던 새들이 매년 5 백만 마리가 죽임을 당했고 그 결과 많은 종들이 멸종에 직면했을 정도이다.
플로리다에서는 북부에서 깃털사냥에 의해 쫓겨나 더 남쪽에 둥지를 틀도록 강요당했다.
에버글레이즈 물새의 깃털은 하바나, 뉴욕, 런던, 파리에서 볼 수 있었다고 알려진다.
여성복 사업에서 명칭되었던 깃털 또는 에이그레트(aigrette)는 1915 년에 온스당 32 달러($)로 거래되었고 그 깃 털은 가격은 금 무게의 약 2배에 달했다고 알려진다.

물수리, 오스프리(osprey)깃 (실제로 백로 깃털)은 1889년에 소멸될 때까지 영국군복의 장식용일부로 사용되었다.

밀렵꾼들은 새가 밀집하여 모여있는 곳에 무리로 들어가 ​총을 쏘고 깃을 깨끗하게 뽑아서 새들은 그대로 방치하여 썩게 만들었다.

전직 밀렵꾼의 말에 의하면 보호되지 않는 알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었고 부화한 새끼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굶어 죽거나 하였고 새들의 머리와 목이 수백마리씩 둥지에 매달려 있었다고 증언된다.​
밀리너리(Millinery) 여성모자 판매산업는 연간 1,700만 달러($17 million)규모의 산업으로 발전되었다.
1864년 12월부터 1885년 4월까지의 기간을 다루는 상업용 판매실의 한 카탈로그에는 다양한 묘사의 서인도 및 브라질 새 404,464마리, 동인도 새 356,389마리, 낙원의 새 6,828마리, 임페 얀 꿩 4,974 마리 및 아르 거스 꿩 770 마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조류 보호 왕립 학회 (RSPB)의 의장 윌리엄 헨리허드슨(William Henry Hudson:1841-1922)은 1897년 말에 앵무새 80,000 마리와 극락조(極樂鳥:Bird of Paradise )1,700 마리가 판매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공포스러움을 전달했다.
소위 오스프리 깃털을 공급하는 백로(egret)는 유행이 대단했기 때문에 1890년대부터 유럽과 북미에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알려진다.
런던 깃털 무역은 1 온스의 에이그레트(aigrette)깃털을 생산하기 위해 6개의 백로가 필요했다.

지난 30 년 동안 산업발달로 성장하던 중산층 출현은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기회를 제공했다.

세련된 엘리트를 모방 한 남성은 깃털 장식이 있는 둥근 챙이 있는 모자 페도라(fedora)를 선택했으며 여성은 다양한 새에서 가져온 번식 깃털의 "에이그레트(aigrettes)"로 머리, 모자 및 드레스를 장식했다.
이에 따라 여성용 모자가 커지고 모자 장식(드레스 군용 모자를 연상시키는)이 더욱 화려 해졌으며 깃털 무역은 더욱 사업을 확장했다.
1900년에는 83,000 명을 여성을 고용하였다.
"죽은 깃털"은 살아있는 깃털 판매가격의 5 분의 1에 불과했다.
대중들은 대서양 연안의 바닷새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더 빨리 백로를 멸종시키고 그것에 멈추지 않고 서해안 제비 갈매기, 논병아리, 백색 펠리컨, 장식용 깃털을 위한 신천옹과(Diomedeidae)에 속한 바닷새 신천옹(信天翁:Phoebastria albatrus)의 사냥도 확대되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매년 수백만 마리의 새가 깃털 사냥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보존 주의자들은 깃털 새와 장식용 깃털의 살인, 소유, 판매 및 수입을 방지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기 위해 고군 분투했다.

1918년 미국 연방 법률 철새보호를 위한 협약(Migratory Bird Treaty Act of 1918)이 제정되었고 이로써 깃털사냥이 끝나고 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번식 깃털로 옷차림을 꾸미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상 백령도의 백령의 백로, 흰 색 깃털을 가진 새라고 할 수 있는 눈처럼 흰 백로(Snowy egret) 즉 에그레타 투라(Egretta thula Molina,1782)는 당시 중산층이 생성되면서부터 유행된 깃털패션이 가져온 깃털사냥에 의해 이렇게 멸종된 것으로 자료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대조선 영역에서 이때쯤 서양자본 세력들에 의해 모든 곳에서 알게 모르게 병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직 물질만능주의 서양자본에 고용된 사냥꾼 또는 밀렵꾼들은 천지에 무서움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었고 아마도 양심이 있는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한데 이들 고용인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했을 것이다.

 

5.버드 시티(Bird City)


​버드 시티(Bird City)는 미국 루이지애나주(Louisiana) 이베리아 패리시(Iberia Parish) 해안가에 위치한 개인사유지의 야생 조류 보호구역으로, 타바스코 소스 상속자이자 환경보호론자인 에드워드 A. 매킬로니(Edward Avery McIlhenny:1872-1949)에 의해 설립되었다.

본 블로그 글 "타바스코 소스와 고추장 https://blog.daum.net/han0114/17050865 "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가족은 초도(椒島) 즉 고추 섬이라고 알려지기도 하는 에이버리 섬(Avery Island)을 소유했다.

뉴올리언스에서 서쪽으로 약 130마일(2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섬의 면적은 2,200(acre)8.9km²)이고 가장 넓은 지점은 약 2.5마일(4.0km)이다.

소택성(沼澤性)의 호수 느리게 움직이는 진흙투성이 늪지와 소금습지 등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다.

매킬로니는 1895년경 무성한 열대식물 때문에 정글가든으로 알려진 250(acre)1.0km²)규모로 피난처를 설립했는데, 이는 19세기 말 깃털 사냥꾼들이 새를 쫓는 동안 미국남부에 서식하던 깃털을 세우며 눈처럼 흰 백로(Snowy egret) 즉 에그레타 투라(Egretta thula Molina,1782)를 거의 쓸어버린 것에 대한 대응으로 만든 것이다.

매킬로니는 걸프 해안을 수색했고 몇 마리의 살아남은 백로들을 찾아냈고, 그는 그것을 사유지인 에이버리 섬으로 가져갔다.

그곳에서 그는 새들을 "플라잉 케이지"이라고 불리는 새가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형의 새장에서 풀어주었고, 새들은 곧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가을에 매킬로니(McIllhenny)는 월동하기 위해 새들을 놓아 주었다.

그가 바라던 대로, 새들은 봄에 다시 에이버리 섬으로 돌아왔고, 더 많은 흰 백로들을 데리고 왔다.

이러한 패턴은 1911년까지 약 10만 마리의 백로들에게 피신처가 되고 여름 보금자리 역할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의 설립 예가 되도록 하기 위해 미국 테오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Jr,1858-1919)는 한때 버드 시티를 "이 나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보호구역"으로 언급했다.

​테오도어 루즈벨트는 현재 미국역사에서 26대 대통령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자연보호주의자라고만 하였지 대통령이란 언급이 없다.

본 블로그 글 "루스벨트가와의 역사적 악연 https://blog.daum.net/han0114/17050778 "에서 테오도어 루즈벨트는 프랑스의 칼뱅파 신교도인 위그노 신자(Huguenot)인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고 서양일본세력 더치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신자이기도 했던 이사람은 정확하게 영국빅토리아시대(Victoria,1819-1901,재위:1837-1901)를 마감하는 시점에 미국대통령에 취임하여 1909년에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쓰게하고 정권이양을 강요한 한일병합에 본질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써 판단된다고 했으며 때문에 대조선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일제가 아니라 미국(米國)에게 이양하면서 미국인들이 실제로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실상 이 당시에 존재했었다고 알려지는 대통령이란 제도역시 오늘날 대통령권한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마치 대한제국을 경찰국가형태에서 정권을 이양받고 대한제국체제의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으로써 결국 당시 미국대통령이란 경찰권과 가진 것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가설을 글쓴이가 오랜기간동안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들여다본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것일 수는 있겠지만 여하튼 당시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정권이양하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군사적 충돌없이 모든 것을 넘겨준 것이 이러한 추측을 낳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 블로그 글 "루스벨트가와의 역사적 악연"에서 언급하였지만 일제에 의해 1909년에 강요된 기유각서는 300년전 광해군 원년(1609)에 대조선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세력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기유조약(己酉條約)을 맺게 하였는데 이것과 상반되는 역사 한 풀이임을 알 수가 있다.

1609년에 체결된 기유조약은 위그노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과 연결되는 것으로 루스벨트 어머니가 위그노신자임을 감안 할 때 이는 반드시 단순히 한반도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임진왜란만이 아님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자면 대조선 모든 형태의 정치성은 본 블로그 글 "다시보는 숙종, 영조, 정조와 루이 3편시리즈"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듯이 프랑스 루이14.15.16세와 프랑스혁명당시의 역사상황과 판박이다.

때문에 미국인학자 ​존 던컨(John B. Duncan)이 삼한(三韓)에서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정교한 중앙집권적인 관료체계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주장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시대의 태동한 정치 관주도 체제로 근대 민주주의 바탕이된 국민주의와 내셔날리즘 생성과 결부시키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환경에서 버드시티도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멕시코고추소스 타바스코 소스 상속인이자 자연보호론자인 에드워드 에이버리 매킬로니(Edward Avery McIlhenny)가 설립한 버드 시티(Bird City)야생조류 보호구역에서 집중적으로 보호한 조류가 바로 쇠백로, 눈처럼 흰 백로(snowy egret)로 학명 에그레타 투라(Egretta thula)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백령도(白翎島)에 백로(白鹭)가 존재했다는 것은 역사기록상 명확하고 분명한 것 같은데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가 아니라 이미 1918년 이전 역사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백령도 ​그 당시 상황을 풀어보면 매킬로니가 조류학자 프레 더릭 쿡(Frederick Cook:1865-1940)을 따라 경험한 1894년 북극 탐험북극 탐험이 끝난 후, 에이버리섬으로 돌아올 때 백로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을 알아차렸고 이로 인해 그는 깃털사냥으로 마구 포획되는 백로 구출작전에 들어가면서 1895년경 에이버리 섬에 버드 시티 야생조류 보호소를 설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류에 관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여 매킬로니는 거의 멸종이 되다시피하였던 (A)백로속 (白鹭屬 :Egretta T. Forster, 1817)의 눈 해오라기(雪鹭:Egretta thula Molina, 1782) 즉 미국쇠백로(Snowy egret)를 멸종으로부터 구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1910년에 매킬로니와 스미소니언 연구소회원이었던 찰스 윌리스 워드(Charles Willis Ward:1856-1920)역시 습지 5만7000에이커(230㎢)를 매입하고 이후 추가로 1만3000에이커(53㎢)를 매입했으며, 1911년 11월 4일 그들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루이지애나주에 이 습지를 바쳤다고 나타난다.
매킬로니는 금융가, 철도 경영자 러셀 세이지 부인(Olivia Sage)을 설득해 1912년 7월 22일 아일랜드(marsh Island) 7만5000에이커(300㎢)를 매입하고 록펠러 재단은 인근에 있는 8만6000에이커(350㎢)를 추가로 인수했으며 이로 인해 약 174,663acre(706.84km²)의 새 보호구역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위와 같은 면적은 현재 대마도(쓰시마)섬의 면적과 거의 같다

​당시에 이런식으로 이런 저런 땅이 서양세력들에게 넘어가게 된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마무리

 

그렇다면 백령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본 블로그 글 "타바스코 소스와 고추장 https://blog.daum.net/han0114/17050865 " 말미에서 언급하였듯이 옹기에 담는 고추장과 아메리카흰오크나무인, 참나무 통(oak barrel)에 담는 타바스코 소스가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 것처럼 옛 부터 고추밭이 있었다고 하고 암염(岩鹽:Halite)이 섬 전체에 매장되었다고 하는 아이버리 섬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매킬로니가의 소유지 아이버리 섬(Avery Island)은 참으로 특별하다고도 했다

그곳에는 900년된 부처상(900-year-old Buddha)이 존재한다는 사실인데 900년이라면 기준년도를 2010년이라 하니 1100년 경으로써 그 시대는 정확하게 고려시대이다.

백령도의 기록을 보면 고려(高麗) 현종 9년(1018)부터 백령도라 불렸다고 하고 백령진(白翎鎭)이 되었다.
부처를 숭상하는 숭불정책을 사용한 고려(高麗) 태조 때 해주(海州)소속 백령진이 되어 '백령'이라는 이름을 취했고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941)이 잠시 유배되기도 하였다고 기록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백령도에 부처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위 구글 지도에 표식을 하였는데 아마도 아래 한반도 백령도 짤린(무엇때문에 짤라놓은지는 모르겠지만)고지도 내에 보면 도식이 거의 구글 글쓴이가 표식한 구도와 비슷하고 또 글쓴이가 푸른 점선으로 이어 놓은 원 내에 무엇인가 처음 그려 놓고 지우 듯한 푸른 윤곽이 남아 있는 것인데 이러한 윤곽에서 소제 5. 버드시티 에 올려놓은 구글사진에 나타나는 마시섬(Marsh Island)가 아닐까 한다.
백령, 대청, 소청 크기에 비례한 마시섬의 크기와 윤곽이 매우 흡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버리 섬에는 부처상 이외 4마일(mile)의 자갈길은 거대한 참나무와 악어, 거북이, 물떼새로 가득 찬 작은 호수 주위에 깔려 있고 희귀한 야자나무와 선인장, 대나무 60종, 동백나무 700여종을 비롯해 둘레가 23 feet(7m)이고 300년 된 나무 클리블랜드 오크(Cleveland Oak)가 있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곳이 아닐 수 없다.

본 블로그 글 "제색(諸色)이 명색(名色)으로 돌변한 이유 https://blog.daum.net/han0114/17050867 "에서 언급하길 약천집에 등장하는 1618년 광해10년 무오(戊午), 1627년 인조5년 정묘(丁卯), 1636년 인조14년 병자(丙子)년에 발생한 여진족 후금(後金, 喉衿)의 누루하치(奴児哈赤) 침입사건에서 볼 때 분명 침략경로는 한반도 지형기준으로 서북쪽 의주를 거쳐 안주, 평양, 평산, 토산, 개성을 거쳐 한성에 들어왔고 이어 강화도까지 쳐들어 갔다고 기록된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들 세번의 침략 경로가 모두 황해도 해안이라고 하는 것은 한반도 지형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이야기임을 알 수가 있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대조선을 위해 후금여진족을 상대로 전투를 하였고 그들의 시체가 황해도 해변 백사장에서 쓰러져 썩은 뼈다귀가 되었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 자체가 한마디로 엉터리라는 것 말고는 대변할 것이 없는 것이다.
반드시 황해도 해안이라는 것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후금세력들이 몰려 들어올 수 있는 바다를 접하고 남쪽 정면으로 맞닫은 해안이 아니면 도무지 이를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약천집에서 말하는 역사기록들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서두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지금 한반도 백령도에서 백령의 지명원천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백령도라 함은 백로를 말하고 위 분포지도에 나타나듯이 북아메리카대륙 남부해안지역을 번식지로 하고 있는 설로(雪鹭) 눈처럼 하얀 백로(Snowy egret) 즉 에그레타 투라(Egretta thula)가 수백만마리 모여드는 그런 곳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황해도 백령도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백로가 모여드는 곳임을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본 블로그 글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https://blog.daum.net/han0114/17050634 "에서 후금이 멕시코 중앙아메리카대륙 목구멍과 같이 생긴 요충지(要冲, 要地)라 하여 과테말라(Gwatemalla), 벨리즈(Belize), 온두라스(Honduras), 엘살바도르(El Salvador), 니카라과(Nicaragua), 코스타리카(Costa Rica), 파나마(Panama)가 속해 있는 육교처럼 좁다랗게 길게 뻗어 이어진 중앙아메리카라고 하였던 바 이곳에서 조선으로 쳐들어온 것이라고 할 때 3차례 걸쳐 침략한 경로가 바로 지금의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 남쪽 해안임을 알 수가 있다.
그곳에는 지금의 한반도에서 찾을 수 없는 황해도 해안과 각종 섬들이 모여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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