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암염층(Salt Dome)과 로마 실체

한부울 2020. 10. 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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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염층(Salt Dome)과 로마 실체

소제:로마는 플로리다주에 기원전 500년경부터 존재하였다고 하는 마나소타문명(Manasota culture)권내 도시이어야 한다.

 

글쓴이:한부울

 

인류역사를 통틀어 소금의 이용은 문명의 중심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질 중 하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소금의 원천이 되는 장소나, 소금을 교역할 수 있는 장소 주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늘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몇번 살펴본 적이 있는데 본 블로그 글 "붕어(鯽魚:carassin, carrushens)와 발해(渤海)http://blog.daum.net/han0114/17050804 소제 6.염주(鹽州)와 디트로이트의 도시 소금광산"과 "운남성(雲南省)은 남아메리카북서부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801 소제 6.차마고도(茶馬古道)는 소금호수 부도호(浮圖湖)로 가는 길이다."라는 글에서 소금이야기를 해보았던 적이 있다.
소금역사를 서양역사에서 찾아보면 거의 대다수 유럽대륙의 소금기원역사를 다룬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 최초의 도시라고 알려진 불가리아의 솔니차타(Solnitsata)가 소금광산이었고 기원전 5400년부터 소금을 공급했다고 말하면서 인류의 소금 이용역사를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그렇다 하더라도 소금 기원 역사에서 북아메리카대륙의 기원이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고 빠져버렸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세계사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첫째 유럽대륙지질사보다 시기적으로 더 오래되고 지형적으로도 훨씬 더 넓으며 암염층이나 소금광산 등 소금출처가 유럽대륙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지질학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유럽대륙 소금 역사를 앞세운 것은 세계사가 얼마나 유럽대륙 위주로 꾸미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역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아메리카대륙역사를 유럽대륙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파악해야 하고 의당 유럽인들이 상륙하기 이전까지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이 발생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유럽인들의 이러한 유럽사 위주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의해 생성된 세계사는 결코 역사라고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아메리카대륙을 하나의 서양역사의 근원지가 아닌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신대륙이란 개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애초부터 붙들어 매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북아메리카대륙의 소금 역사는 독립전쟁(1775-1783)과 미영전쟁(1812)에서 브리티시가 혁명세력 소금수송을 방해했다던지, 미국병사들에게 정부가 임금지불능력이 없어 소금물로 대신했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곧 신대륙은 유럽인들로부터 역사가 생성되어야 했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움이 유럽사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근원적으로 신대륙이라 지칭했다는 것은 유럽사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에는 그들이 들어낼 수 있거나 들어낼 수 없거나 다 그 속에 포함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럽인 즉 서양인들이 가진 그릇된 역사 소유욕이라 할 수 있다.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러한 사실들을 지식화로 포장하여 이제는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때문에 이러한 거대한 장벽으로 산처럼 막혀 있는 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역사찾기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들은 20세기초 오리엔탈문명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이집트역사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바로 스미스소니언 학회(Smithsonian Institute)와 프리메이슨(Freemasons)그리고 예수회(Jesuits) 주도한 북아메리카대륙 그랜드캐년 탐험이 실행되었고 그 사실이 1909년 4월 5일 아리조나주 피닉스(Phoenix)시 관보(官報), 가제트(Gazette)1면 기사가 실리면서 알려지게 되는데 바로 이집트역사에 대한 계획이 진행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동양오리엔탈문화역사에 대해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들에게 심리적 강박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예수회가 개입한 것은 그러한 강박으로 인한 본격적으로 유럽사에 이집트역사 넣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또한 유럽사에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억지스러움이 있는 것과 동시에 유럽사의 왜소증과 삼한인에 대한 지배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발동되어 히스테리적 방어심리가 존재했음도 감지할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15세기 역사사실부터 예수회가 주도가 되어 고대그리스, 고대로마, 고대이집트를 포함한 고대사 모두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러시아의 수학자이며 신역사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의 주장을 감안한 것이며 근원적으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그동안 연구분석하고 결과물을 돌출한 배경으로써 서양역사의  전반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암염층 고대역사를 보더라도 중생대를 거론하는 북아메리카대륙에 대한 지질역사를 제쳐두고 신생대를 대입하는 유럽대륙에 대한 지질역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지질역사는 신대륙을 주창하는 유럽인들과는 매우 대비되는 문제이다.

어쨌거나 19세기후반부터 신대륙역사는 미국남북전쟁을 깃점으로 하고 충돌역사만 들어내 놓고 있고 유럽대륙사보다 후순위로 밀어내려고 하는 의도가 늘 상 존재하고 그것들은 그들이 의도했듯이 오늘날 엄청난 역사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는 원초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서양세력들은 신대륙이라고 밀어내던 북아메리카대륙 그랜드캐년에 갑자기 관심을 가졌을까?

이런 점에서 보면 시기적으로도 1920년에 생성된 세계사강(世界史綱:The Outline of History)과 1922년에 등장한 간추린 세계사(A Short History of the World)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세계사전체를 의심하고 불신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세계사에 대한 오류를 먼저 파악해야 우리가 반드시 해결하고 완성시켜야 할 세계삼한역사문제가 하나하나 풀릴 수 있는 것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서양세력들이 세계사를 지배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거의 100년 넘게 흘렀다.

이제는 그것들이 온전히 지식화가 되어 이러한 역사오류를 뒤집을 수도, 제자리에 올바르게 세울 수도 없는 상황까지 왔고 그것들이 진실처럼 굳어져 버린 상태에서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본 블로그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미친소리마냥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허공에서 사라질 수 있겠지만 반드시 우리가 찾아 밝혀야 할 것들이며 밝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는 우리들의 한결같이 자세인 것은 확실하다.
유럽역사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파생된 것인가.
바로 그리스역사와 로마역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차선으로 이집트역사까지 끌어 당겨 넣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변광현교수의 주장을 모아보면 영국 군첩보부요원들의 주도하에 유럽의 모든 고고학자들이 지중해의 섬 크레타에 모여들어 유적 조사를 시작하였고 크레타(Creta)섬이 터어키영토에서 그리스 영토로 넘어간 때가 1913년인데 그로부터 영국인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십여년간 이집트 왕릉의 계곡에서 발굴조사를 하다가 투탄카멘(Tutankhamon)의 무덤을 발견하였을 때가 1922년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언저리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건이 바로 1909년에 발표된 그랜드캐년 탐험이다.

유럽인들이 이집트를 유럽사에 끌어넣으려는 동기는 이집트에 1798년에 등장하였던 나폴레옹의 행적을 핑계로 삼고 이집트역사를 유럽사에 올리고자 했으며 그로부터 유럽인들은 이집트에 있는 첨탑 오벨리스크를 경쟁적으로 떼어 나르고 이집트 고대유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인데 이러한 투탄카멘의 무덤 발굴에서 유럽인들이 기존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한 것이 틀림없다.

그로부터 크레타와 이집트 역사는 갑자기 영국 학자들에 의하여 2000년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인류 문명의 기원지로 여기게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유럽지중해문명이 생성되고 사실상 세계사 판짜기가 완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때문에 영국에서 유럽사로 이전된 이집트 문명을 기원전 4000년대 즈음으로 말하고 있으나, 변광현교수는 실제로 초기 이집트 문화는 기껏 올려 잡아도 중국 전국시대의 오월(吳越) 문화인 기원전 1000년대에서 기원전 500년대 안팎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또는 기원후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글쓴이는 나폴레옹이 원정을 한 이집트는 바로 그랜드캐년이라고 믿는 것이고 이집트가 그렇다면 로마와 그리스의 본래 역사위치까지 변조, 변질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소금이야기로 넘어가서 보면 유럽사에서 소금을 인류가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를 말함에 있어 바로 세계주역이었던 삼한인을 빠뜨린 상태로 유대인, 그리스인, 타밀인, 중국인(동아시아대륙:아시아종), 히타이트인들이 관여하였다 하였고 그들이 주도하여 다른 고대 민족들(세계삼한인 포함)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역시나 유럽대륙과 그 아래 보조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동아시아대륙권이란 수직 종속관계 역사 말고는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이 없다.

솔직히 따져보면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중동까지 역사가 근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고 모두 서양문물과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이 세운 국가임을 알 때 온전한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열도 역사도 마찬가지다.

타고르의 유언처럼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즉 하나의 체제속에 비록 서양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역사가 존재했다고 하여도 분명 인류역사권내에 오리엔탈문명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중국문명 또한 일부분이었음에도 별도로 떼 내어 동아시아권에 넣고 유럽과 사이에 중동이니 서아시아이니 따위를 넣어 철저하게 유럽권내 종속관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소금은 아시리아인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민족에게 군사연습에 사용될 정도로 중요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소금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금은 바로 인류역사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금 조차 우선권을 확보하고 유럽 지중해 지질역사에 포함시켜 유럽인들의 전유물처럼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막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로마공화국(Roman Republic:BC509-BC27)의 초창기에는 로마의 성장과 함께 수도로 가는 소금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도로가 건설되었다고 알려지고 로마(羅馬:Rome)에서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로 이어지는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는 소금을 내륙으로 나르는 길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배경은 지중해에 암염층이 있었다는 사실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암염층의 크기를 따진다면 멕시코만의 암염층에 비교가 될 수 없다.

이 암염층의 규모는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중해의 해저깊이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y)주(州) 마젠타(Magenta) 앞 바다 수심이 2866m 이고 이탈리아반도 동해 아드리아해 해저깊이가 약 대륙붕깊이 200m이며 로마에 가까운 티르헤니아해(Tyrrhenian Sea)는 3875m수준이다.

반면 멕시코만 해저를 보면 최고 깊은 곳은 5203m이고 플로리다주 서남쪽 해저가 3584m 로 로마 서남쪽 바다와 같은 수준이다.

플로리다주에서 로마와 견줄 수 있는 도시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마나소타문명(Manasota culture)권내 도시 탬파(Tampa)와 동시에 탬파북부에 가까이 있는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이다.

그렇게 보면 해저 지형적인 문제에서 지중해와 멕시코만이 갇힌 대양이라는 점과 수심도 멕시코만이 더 깊다고 나타나지만 거의 서로 비슷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형적으로 깊이가 얕아 염도가 높은 아드리아해는 로마에 훨씬 가까운 티르헤니아해(Tyrrhenian Sea)의 그것들에 비해 생산성이 더 높은 태양열 온수지(池)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때문에 로마 주위가 자연적으로 암염층이 있는 지중해로 인해 소금이 풍부하였다는 이야기다.
하여 급여, 봉급,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라는 단어가 파생되었고 소금(salt:鹽)을 뜻하는 라틴어(Latin)에서 찾아야 하는 당위성과 그것을 유래로 한 오늘날 서양언어가 생성된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알게 하는 사실이다.
위 어원풀이 역시 로마 군단이 때때로 사병들에게 소금으로 임금을 지불하였다는 끈질긴 현대서양학자들의 주장에 나온 것인데 1812년 미영전쟁때 미국병사들에게 소금물을 주고 임금을 대신하였다는 기록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급여라는 소금 어원은 결국 당시에 귀중하면서도 풍부하였던 소금 구입을 위해 로마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인 "살라리움(salārium(n:the money given to the soldiers for salt)"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지는 것이다.

과연 지중해가 마땅히 그런 역사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지질역사로 넘어가보자.

지구나이는 45.4 ± 0.5억년(4.54×109년±1%)에 달한다고 자료에 나타난다.

때문에 소금은 고생대 지구 연령(地球年齡)의 매우 더운 시기에 크고 얕은 대양의 강수량으로부터 축적되었다고 알려지고 그 소금은 그 후 다른 퇴적물에 의해 묻히면서 현재는 소금 층의 다른 깊이에서 또는 소금 돔(salt domes)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으며 이를 암염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볼 것은 과연 바다에서 소금을 추출 할 수 있는 근원이 될 수 있는 해저, 해안의 암염층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다.

염분이 많이 축적된 큰 분지를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은 아래와 같다.

위 지도에서 먼저 멕시코만의 루안솔트바진(The Louann Salt basin)을 볼 수 있다.

쥐라기시기(Jurassic period)는 중생대(中生代, Mesozoic Era)의 두 번째 시기로, 2억년 전부터 1억4500만년 전까지 지속된 지질시대를 말하며 예를들어 보면 이 시기에 한반도가 황해와 동해의 구분 없이 중국, 일본 열도와 맞붙어 있었던시대였다.
루안솔트바진이 생성된 시기가 바로 쥐라기 중기(Middle Jurassi)의 1억6천만전과 4백만년[166.1±4.0 Ma(백만년)에서 163.5 ± 4.0 Ma]사이를 말하는 캘로비안(Callovian)때 형성된 것으로 멕시코만 해안과 해저에 널리 퍼져 있는 증발 잔류암(蒸發殘留岩:evaporite)지대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지중해의 메시니안 소금(Messinian Salt)지대는 신생대 제3기를 다섯으로 나눈 때의 네번째시대 약 2300만 년 전부터 600만년 전까지의 지질시대인 미오세(中新世:Miocene)때 지중해가 말라붙으면서 두꺼운 소금층이 형성되었고 소금 돔의 형성을 촉발시켰다고 자료들은 알리고 있다.

그렇게 대입하면 거의 1억4천만년 정도의 차이가 나고 멕시코만의 암염층 생성이 훨씬 앞 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위 세계소금 분포지도에 소금덩어리란 어원을 가진 할로키네틱(halokinetic)은 대체적으로 바다에 소금덩어리가 있도록 융기가 발생한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지중해(Mediterranean sea)의 메시니안 소금(Messinian Salt)지대를 보면 초록색으로 나타내는 컨버전트(convergent)수렴지역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융기 후기지질대인 멕시코만 쥐라기 루안소금분지(Jurassic Louann salt)와 브라질동부의 압티안소금분지(Aptian salt basins east Brazil), 그리고 서아프리카의 압티안소금분지(Aptian salt basins west Africa)의 3대소금분지가 공통적으로 크게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곳이 바로 (1)멕시코만 쥐라기 루안소금분지이다.

Fig. 1 Global occurrence of salt-bearing sedimentary basins. Salt diapirs are shown in magenta. Black ellipses outline three deep-water salt tectonics regions referred to in text: 1, Gulf of Mexico; 2, Brazilian Atlantic margin; 3, West African Atlantic margin

지중해 메시니안 소금분지와 그연안에는 멕시코만의 루안솔트바진(Louann salt basin)에서 엄청나게 나타나는 솔트바이어피어 즉 암염층(岩鹽層):솔트돔(salt dome)의 표식이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나 티르헤니아해(Tyrrhenian Sea)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한 위 지도로도 확인된다.
이것은 지질학적으로 소금이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던 만큼 들어나는 상황은 지중해보다 오히려 멕시코만 분지가 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말하는 로마역사에서의 로마와 가가운 소금도로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유럽대륙에서도 암염층이 강하게 나타나는 유럽북부지역에서 페름기 체크시타인 슈퍼그룹(Permian Zechstein Supergroup)지대 주위를 감안해야 하하는데 페름기라 함은 고생대의 마지막 기(紀)로 2억 9,890만년 전(298.9 Ma)부터 2억 5,190만년 전(251.902 Ma) 사이의 시기를 말하기 때문에 지중해보다 훨씬 앞서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름기 체크시타인 슈퍼그룹 주위 암염층 즉 솔트돔이 생성되었다고 하는 독일이나 폴란드에 로마같은 역사가 존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온화한 기후를 가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로마역사라는 점을 감안 할 때 유럽북부지역은 그러기에는 거리가 있고 로마역사를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지중해와 기후와 지형이 비슷한 멕시코만의 암염층분지는 다르다.

지질학적으로 소금의 질도 좋다고 알려지며 암염층이 집중적으로 나타나 세계에서 석유시추를 최로로 한 곳도 바로 멕시코만 암염층 분지의 루안솔트바진 영향권 내에 있는 해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러한 글쓴이의 짐작이 맞다면 이것은 세계사 전체를 부정해도 무방한 엄청난 역사반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 미로에 빠진 역사에서 더군다나 현실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고, 또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역사사실에서 절대적인 검증방법은 바로 자연과학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검증과정과 과학적 사실에서 현저히 벗어난다면 결국 기존역사사실들을 크게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소금이란 한정된 주제로 파악하고 검증하는 것이지만 인류역사에서 가용성으로 절대적인 소금을 바탕으로 한 검증에서 이처럼 크게 어긋난다면 실제로 세계사의 중심이 되고 유럽역사의 근원이라고 한 로마역사의 근원을 당장 의심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늘 글쓴이가 하는 이야기지만 기존 역사를 대하면서 우리는 내정해져야 하고 솔직해져야 한다고 누누히 말하고 있다.

어떤 근거도 없이 보태거나 빼거나 인위적인 것이 바탕이되면 더욱 안된다.

더군다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유럽인들이 만든 세계사는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지식화가 되었고 진실처럼 고체화된 상태가 아닌가.

위 지도는 멕시코만 지역의 루안소금분지(Louann salt basin)를 세밀하게 탐사한 지도이다.

붉은 표식이 바로 암염층, 솔트돔(salt dome)인데 깊은 해저뿐만아니라 해안에도 광범위하게 표식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과학의 진실 현장이다.

로마 공화국의 초창기, 로마의 성장과 함께 수도로 가는 소금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도로가 건설되었다 사실여부와 실제로 로마에서 아드리아 해로 이어지는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라는 소금도로가 과연 어디에 존재했어야 했을까?

소금돔(salt dome)은 지름이 1㎞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수직 원통 모양을 하고 있고 암염돔과 유사하며 주성분이 염(鹽)인 다른 지질구조로는 암염돔과 성인적으로 관계가 있는 암염베개 및 암염벽과, 상부로 이동하는 염(鹽)이 관통하면서 동시에 습곡된 암염배사(岩鹽背斜)등이 있다고 백과사전에서 전한다.

셰일(shale)이나 석고와 같은 다른 물질이 암염돔 및 이와 유사한 구조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이를 암염층 다이아피르(diapir)라고 하는데, 이는 '뚫다', '관통하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디아페이레인(from Greek diapeirein, “to pierce”)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금 층은 퇴적물로 덮여 점점 더 큰 과부하 아래에 묻히게 된다.
위에 쌓인 침전물은 압축을 거치게 되어 밀도가 증가하여 부력이 감소하게 된다.
쇄설성과 달리 압력은 결정 구조로 인해 소금 밀도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이는 결국 위의 침전물보다 부력이 더 커지게 되며 소금의 연성은 처음에 그것이 탄력적으로 변형되고 횡방향으로 흐르게 하여, 밑에 깔린 침전물로부터 위로 쌓인 침전물은 분리된다고 알리고 있다.

소금은 위의 침전물보다 부력이 크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 중대한 단층 현상이 발생하여 소금의 하단 표면에 영향을 미친다면, 소금은 암염베개를 형성하면서 수직으로 흐르고 이러한 소금 암염베개의 수직적 성장은 위 표면에 압력을 발생시켜 연장 및 단층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이렇게 생성되는 것이 암염돔이다.
전형적인 암염돔은 높이가 지하에서 최소한 2㎞ 이상이며, 어떤 것은 10㎞ 이상에 달하기도 한다고 알져진다.
북아메리카 멕시코 만 연안에서 나타나는 암염돔의 코어는 대부분 순수한 염화나트륨(NaCl), 암염(岩鹽:halite)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량의 수화된 황산 칼슘, 경석고(硬石膏.無水石膏:anhydrite) 및 미량의 다른 광물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흰색의 순수한 암염층이 검은색의 암염과 경석고 층에 협재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도 자료는 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것은 바로 암염층의 발견과 함께 탄화수소 석유산업의 시발점이다.

위에 게시한 "암염층 세계적 퇴적분지 지도"를 보면 암염층 발견지역을 주요 세군데로 꼽았고 그곳은 바로 (1)멕시코만 쥐라기 루안소금분지(Jurassic Louann salt)와 (2)브라질동부의 압티안소금분지(Aptian salt basins east Brazil), (3)서아프리카의 압티안소금분지(Aptian salt basins west Africa)를 꼽고 있다.
물론 지중해(Mediterranean sea)의 메시니안 소금(Messinian Salt)지대는 빠졌다.

2차세계대전(WWII)이후 연안 석유 탐사의 확대와 해양 지구물리학적 방법, 특히 다채널 지진 반사 기법의 개발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많은 대륙 여백에서 소금돔을 생성케 하는 암염층(salt diapirs)의 발견으로 이어졌다.(그림:암염층 세계적 퇴적분지 지도)는 것이 위 지도를 파생시킨 설명이다.

최근 심해 석유 탐사가 심해지면서 수심 3000m 이상에서 암염층(salt diapirs)이 드러났다

다시한번 더 지중해와 멕시코만의 암염층 지질역사를 보면 지중해는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신생대 미오세시기이며 멕시코만 암염층은 중생대 쥐라기시기로 약 1억4천만년이나 크게 앞서 생성된 사실을 강조하게 만든다.

암염층에 의해 발견되는 석유산업에서도 유럽역사와는 상반되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01년 텍사스주 보몬트(Beaumont, Texas)에서 발견된 스핀들톱 돔(Spindletop Dome)이며 이것이 바로 암염층으로 인해 발견된 세계 최초의 석유시추인 것이다.

이 시추로 인해 소금은 탄화수소 축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후 염분을 함유한 퇴적분지에서 세계 최대의 탄화수소지역(world’s largest hydrocarbon provinces)이 발견됨으로써 그것이 확인되었다.

만약 지중해에서 암염층이 그렇듯 세계역사에 오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영향력이 있었던 분지였다면 최초석유시추가 멕시코연안의 루안소금분지(Jurassic Louann salt) 내에 속한 텍사스의 보몬트가 아니라 아마도 유럽대륙연안 어느도시에서 석유시추가 이루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세계사가 말하는 유럽대륙의 지중해가 아니라 그들이 신대륙이라고 취급하고 제외시켜버린 멕시코만의 루안소금분지 암염층에서 이러한 세계최초의 석유산업을 이끌게 되었고 현대 석유산업에서도 독보적으로 미국이 앞서하는 위치에 있게 한 것은 진실된 진정으로 존재한 로마역사를 결코 벗어난 현상이 아닌 것이다.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소금 구조지질학에 대한 주된 관심은 석유산업(石油産業:petroleum industry)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모든 소금에 의한 상황은 분명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기존 세계사가 근원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변광현교수가 주장한 사실처럼 세계사가 서양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조작된 사실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상태이다.

과연 로마는 실제로 어디에 존재했겠는가.

글쓴이는 플로리다주에 기원전 500년경부터 존재하였다고 하는 마나소타문명(Manasota culture)권내 도시임을 확신한다.
그렇다, 이러한 지질학적 분석에 의한 소금생성의 지질역사 뿐만아니라 자연과학적인 분석과 검증은 앞으로 더 많은 의혹을 밝혀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에게 늦게 나마 밝은 눈을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본다.
우리는 이러한 근원적인 역사 문제를 앞으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역사를 연구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소금의 역사는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매우 중요한 소재이고 주제이다.

앞으로 이 글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실을 밝혀내길 스스로 다짐해본다.

하나하나 빛처럼 밝혀지는 역사사실 앞에서 겸손해지려 노력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사실을 두고 비웃겠지만 그럴 수록 세계사는 거대한 반전 흐름앞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추호도 망설임 없는 각고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인식하면서 세계삼한역사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써 더 높은 긍지를 스스로 가져본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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