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광물

해록석과 남동석 고려역사의 흔적

한부울 2020. 5. 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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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록석(海綠石:Glauconite)과 남동석(藍銅石:Azurite) 고려역사의 흔적

 

글쓴이:한부울

    

고대 페인트제조에 중요한 착색 원료인 무기물(inorganic), 천연안료(natural pigment)로 사용되었던  해록석(海綠石:Glauconite)과 남동석(藍銅石:Azurite)이 우리역사에도 끼쳤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분명히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해 한반도역사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 고구려고분벽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역사사실 등에서 이를 분명히 사용했다는 정황이 존재함에도 현존하는 유물 또는 유적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우리역사와는 동떨어진 문제라 하여 외면한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 두 광물은 수천 년 동안 이 찬란한 푸른 돌은 갈아서 물감과 직물의 염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외국자료에 나타남도 우리나라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서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밝혀보자.

바로 조선 말기에 실학자 한치윤(韓致奫:1765-1814)과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본기(本紀열전(列傳(연표 즉 기전체(紀傳體)로 기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1823) 궁실지(宮室志) () 기용(器用) 부채[]편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나타난다.

 

해동역사 29/ 궁실지(宮室志)

() 기용(器用)

부채[]

고려의 부채에는 종이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있다. 금광죽(琴光竹)으로 자루를 만들었는데, 마치 시정(市井)에서 만든 섭첩선(摺疊扇)과 같으나, 정교하고 치밀하여 중국의 것이 미치지 못한다. 부채를 펴면 폭이 3, 4척가량 되고, 접으면 겨우 두 손가락 너비만 하다. 그려 넣은 그림은 대부분 사녀(士女)들이 수레를 타거나 말을 타고서 답청(踏靑)을 하거나 습취(拾翠)를 하는 모양이다. 또 금가루와 은가루로 바탕을 꾸미고 은하수(銀河水), , , 인물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비슷한 형체만 대충 남아 있다. 이는 먼 고려에서 오는 도중에 마멸되어서 그런 것이다. 부채에 물들인 청록색이 아주 기이하여 중국에서 물들인 것과는 다른데, 오로지 공청(空靑)과 해록(海綠)으로 물을 들인다.

 

위 글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은 바로 부채에 채색을 한 청록색은 매우 기이하다고 했으며 이것은 당시 중국 즉 송조(宋朝:960-1279)에서 물들인 것과 차별이 있고 오로지 공청과 해록으로 물을 들였다고 되어 있는 부분인데 바로 안료(顔料) 청록색을 만드는 공청(空靑)은 남동석(藍銅石:Azurite)이며 해록은 해록석(海綠石:Glauconite)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녹색안료의 원료인 해록, 즉 해록석(海綠石)에 대한 기록은 이 해동역사에 기록된 고려부채가 유일하다.

 

이 광물은 한방의 약재로도 사용되었는데 예막(瞖膜) 즉 각막이 흐려지고 결막에 백막(白膜), 적막(赤膜)이 눈자위를 가리는 병을 삭히는 처방으로 이것들을 유발(乳鉢)에 넣고 몹시 보드랍게 갈아서 그릇에 넣어 두고 조금씩 눈에 넣는다[동의보감(東醫寶鑑)]고 알려진다.

空靑法木, 故色靑而入肝. 主靑盲, 明目去瞖膜, 瞳人破者, 再得見物. 其殼入磨瞖膏, 神效[本草]

특히 공청은 목()의 속성을 따르므로 약의 색깔이 푸르고 간()으로 들어간다. 주로 청맹(靑盲:녹내장)을 치료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예막(瞖膜)을 없애는데, 눈동자가 손상된 것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라고 하였고 이를 겉부분을 [긁어서] 마예고(磨翳膏)에 넣어 쓰면 효과가 매우 좋다라고 본초에서 말하고 있다.

또 공청은 청맹(靑盲:녹내장)과 귀먹은 증상[耳聾]을 낫게 하며 간의 기운을 보하고 눈에 열기로 핏발이 서고 아픈 것을 낫게 하며, 눈에 백태가 끼는 부예(膚瞖)를 없애며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추게 하고, 눈알 내장(內障)과 예장(瞖障)을 치료하는데 매우 중요한 약이며 눈동자가 상한 것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공청은 청색으로 속이 비어 있어 양매(楊梅)와 같은 모양이므로 양매청(楊梅靑)이라고도 부른다.

 

이 공청은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1]조선왕조실록 현종(개수실록) 1년 경자(1660)28(계사)

도제조 이경석이 사신을 통해 안질 특효약을 구해 오도록 할 것을 진달하다

藥房入診時, 都提調李景奭陳達曰: "聞空靑, 治眼病甚竗, 而此物産於西蜀及辰州, 中國亦絶貴云使行雖已渡江, 請急馳諭, 或移咨以求之, 或給價以貿來" 上曰: "移咨未妥, 言于使臣, 使之覓來可也"

약방이 들어와 진찰할 때에 도제조 이경석(李景奭)이 진달하기를,

듣건대 공청(空靑)이 안질(眼疾) 치료에는 기막힌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서촉(西蜀)과 진주(辰州)에서만 생산되어 중국에서도 지극히 귀하다고 합니다. 사신 일행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습니다만, 급히 달려가 유시하여 이자(移咨)해서 구해 오거나 값을 주고 사오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이자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니, 사신에게 말해 구해 오도록 하라.”하였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현종(顯宗,1641-1674,재위:1659-1674)은 즉위년 초부터 눈병이 시작되어 괴롭혔고 눈에 대한 침 처방이 이어진 것은 물론, 눈을 씻어주는 세안탕과 사물용담탕(四物龍膽湯), 속효산(速效散), 자신명목탕(滋腎明目湯)처방이 반복되었지만 차도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위 기록에도 나타나지만 눈병에 좋은 광물성 약재인 공청(空靑)을 구하러 중국 서촉(西蜀)지역에 사신을 보내는 문제를 의논할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세심하게 판단해야 할 것은 중국 땅에 바로 서촉(西蜀)과 진주(辰州)를 포함하는가란 문제이다.만약 서촉과 진주가 중국땅에 포함되었다면 공청이 중국에서 귀하다 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진주(辰州)는 분명 고구려의 개갈모성(盖葛牟城)이라고 말하고 당 태종이 개주(蓋州)로 고치고, 발해도 그대로 따르다가 또 진주로 고쳤다고 말하며 지금의 개평현(蓋平縣)이라 하였다.

물론 당은 신라이고 또한 고려로 보아야 맞다.

 

[2]조선왕조실록 숙종 43년 정유(1717)722(갑술)

경기 감사 유집일을 체직하다

甲戌/藥房入診停受鍼, 受灸訖, 提調閔鎭厚言: "空靑點眼, 最有奇效, 載於古方或傳祖宗朝得來於中原云, 而傳說之言, 未可準信先朝移咨求得, 而終未果諸駙馬以使行往來時, 亦多方求貿, 而以眞僞難辨, 不爲買來云今若以聖患所須, 直爲移咨禮部, 請令公私藥局許賣, 則似可得來醫官中有曾前往來燕京, 與諸王相親者, 若於荒唐船被捉人押送時, 與齎咨官, 偕往貿來, 則似爲便當矣" 上曰: "別遺齎咨官可也

약방(藥房)에서 들어와 진찰하였다. ()을 맞고 뜬 뒤에 제조(提調) 민진후(閔鎭厚)가 말하기를,

공청(空靑)을 눈에 떨어뜨려 넣은 것이 제일 기이한 효험(効驗)이 있다고 고방(古方)에 기재(記載)되어 있습니다. 조종조(祖宗朝)에서는 중원(中原)에 가서 얻어오기도 했다고 전하기는 합니다만, 전해오는 말이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선조(先朝) 때에는 중국에 자문(咨文)을 보내어 구득(求得)하려 했으나 끝내 얻지 못했습니다. 부마(駙馬)들이 사행(使行)을 따라 왕래할 때에도 다방면으로 구득하려고 했었지만 진위(眞僞)를 분변하기 어려워 사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성환(聖患)에 필요하다는 것으로 바로 예부(禮部)에서 자문(咨文)을 보내어 공사(公私) 약국(藥局)으로 하여금 매입할 수 있게 해주기를 청하면 구득하여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관(醫官) 가운데 종전부터 연경(燕京)에 왕래하면서 제왕(諸王)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번 황당선(荒唐船)에서 체포한 사람을 압송(押送)할 적에 재자관(䝴咨官)과 함께 가서 사가지고 오게 한다면 편당(便當)할 것 같습니다.”하니, 임금이 이르기를,“특별히 재자관(䝴咨官)을 보내도록 하라.”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숙종 44년 무술(1718)314일의 기록을 보면 숙종의 눈병이 이 공청을 사용하므로써 나았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이 아니라 중원(中原)이라 하였고 그곳에서 공청이 구해지는 자체를 믿을 수 없다까지 하였다.

藥房入診 平安監司金楺 使所管成川別將 求空靑於採銅之時 果得一枚上送 藥房剖之 得漿汁 於是 藥房請入診 試點眼部

평안도 감사(平安道監司) 김유(金楺)가 관할하에 있는 성천별장(成川別將)을 시켜서 공청(空靑)을 동()을 채굴할 때에 구하였고 1()를 얻어서 임금께 올려보내 약방에서 이를 쪼개어 장즙(漿汁)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험삼아 안부(眼部)에 몇 방울을 넣었다는 기록은 있다.

즉 중원에서 구하지 못한 것을 평안도 성천(成川)에서 구리()를 채굴하면서 공청(空靑)을 구했다는 사실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 정말 유일하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강원도(江原道)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에서 공청(空靑)이 생산되어 약재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려부채의 안료로 사용했다던 해록(海綠)은 해동역사(海東繹史)기록이외 조선시대때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것을 보면 공청(空靑)은 그래도 고려 부채 채색안료로 이어 조선시대에 약재로 사용한 기록이 있어 조선 땅에서도 분명 생산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해록은 고려에서만 산출되어 안료로 사용할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후세에서 조선왕조실록등을 전부 수정하고 고치지 않았다면 고려와 조선 영역은 달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이외 다른 곳의 자료에서 공청(空靑)과 해록(海綠)에 대해 설명한 것을 풀어본다.

 

(1)해록(海綠)은 해록석(海綠石),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이다.

 

아래는 대만대백과전서에서 나오는 글라우코나이트에 관한 자료이다.

 


위 자료를 그대로 우리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녹색석의 영문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글라우코스'glaucos''푸른녹색'을 뜻한다.

초기에는 바다의 녹석이 얕은 바다 침적물 속의 녹색 알갱이 구체를 가리켰으나, 이것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지금은 바다의 녹석을 철분이 많은 28면체의 운모(二八面體的雲母), 또는 철분이 많은 이래석(伊來石:Brindley et al.,1980) 푸석푸석한 석질(矽質)과 점토질, 탄산질(碳酸質) 침적암(沈積岩)에 분포하여 얕은 해상의 침적환경에서 형성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뉴저지 주(新澤西州) 버밍헴(伯明翰:Birmingham)산지가 있고 중국 요녕(遼寧), 하북(河北), 호북(湖北), 운남(雲南) 이외 일본이다.

[화학성분] : 규산염류(矽酸鹽類)염류, (K,Na)(Fe,Al,Mg)2(Si,Al)4O10(OH)2

[물리적 성질]:

1.정계(晶系):단사정계(單斜晶系:monoclinic system)-결정질 고체가 가질 수 있는 결정계의 하나

2.습성 및 광물집합체 : 구체형상(球體狀), 가끔 비슷한 운모 편상(雲母片狀) 또는 판상(板狀)

3.컬러:그린계열(藍綠色, 綠色, 黃綠色)

4.조흔(條痕,streak) :광물을 분말상태로 만들었을 때의 색-조흔색(條痕色, streak color)

5.투명도: 불투명부터 반투명까지

6.광택:토색 광택

7.발광성: 무형광(無螢光) 혹은 인광(磷光)

8.비중: 2.4-2.95

9.경도(硬度):2

10.해리(劈開:Cleavage)쪼개지는 특징: 아래쪽 바닥(底面:001)完全解理가 있다.

11.취성(fragility:脆性), 강인성(韧性): 취성(脆性)을 갖추다.

12.기타 물성(자성, 전기성 또는 방사): 없음

[산상(産狀)]: 해록석은 전형적인 기공의 공변 세포가 삭의 표피에 있는 표생(表生:phaneropore) 광물이다. 광물은, 침적암에서 자생하는 광물로, 녹색입자의 경우가 많은데, 현미경 관찰로는 둥근 공모양 환상(丸狀)이나 유사 운모집괴(雲母集塊)의 두 가지 산상(産狀)을 가질 수 있으며, 해록석은 푸석푸석한 토질이나 점토질 탄산염암, 사암(砂岩), 분사암(粉砂岩) 또는 얕은 바다 침적물에서 흔히 나타나며, 심지어 조개 화석(貝類化石)이나 유공충(有孔蟲:Foraminifera)에까지 이를 수 있다.

[용도(用途)]:

1.비료작물 생산량은 토양을 향상시키고 개선하며 높은 경제 효과를 낸다.

2.순수한 해록석은 안료(顔料)로 쓰이고

3.양이온교환 성질이 있어 경수연화제(硬水軟化劑,water softener)로 쓰인다.

 

 

 

 

 

영어자료를 보면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는 독특한 그린색계열의 철칼륨 층상규산염광물(層狀硅酸鹽鑛物,phyllosilicate mineral)로 매우 무르고(부서지기쉽고) 매우 낮은 내후성을 가지고 있다 하였고 내후성(耐候性:weather resistance)은 옥외에서 일광, 풍우, 무상, 한난, 건습 등의 자연의 작용에 저항하여 쉽게 변화하지 않는 성질이며 단사정계(單斜晶系:monoclinic system)의 기하학적 구조로 결정체를 이루고 있다라고 한다.

대만자료와 마찬가지로 글라우코나이트의 어원을 보면 그리스어 글라우코스"glaucos (γλαυκος)" 뜻 푸른(blue)이라는 의미에서 기원하고 일반적으로 금속광물의 청록색(靑綠:blue-green), 즉 운모처럼 광택(mica glimmer)이 나는 것과 청록색(靑綠:blue-green)을 가르킨다라고 하였으며 이 색상의 범위는 올리브그린(olive green)과 블랙그린, 산화(酸化)작용으로 노출된 표면의 노르스름하는 등 다양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광석(鑛石:ore)의 모스경도계(Mohs 硬度計)측정으로 경도가 '2' 이며 상대적 비중(sp. gr.) 범위는 2.4~2.95 이고 보통 암록색(暗綠色)의 둥근 부서지기 쉬운 알갱이(pellets)에서 발견되며, 모래알 입자 사이즈의 크기로 발견되는데 녹색을 포함한 아()염소산염(녹색도 포함) 혹은 점토광물과 혼동할 수가 있다.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의 화학식은 (K,Na)(Fe3+,Al,Mg)2(Si,Al)4O10(OH)2. 이고 글라우코나이트 입자는 녹색사암(), 해록석 실트암(微砂岩,siltstone) 그리고 해록석 사암(沙巖)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이며 글라우코나이트는 오래되고 폭넓은 의미에서 이회토(marl:점토와 석회로 구성된 흙)라고 불려왔다.

 

 

따라서 명칭"그린샌드 말(greensand marl:Glauconite)"에 대한 언급은 때때로 특정적으로 해록석(海綠石)으로 조회되고 고대에 바다였던 곳에서 채취한 가루인데 칼륨(potassium)이 조금 들어있기도 하지만 다양한 미량영양소(微量營養素:micronutrients)들이 들어있다 하였다.

만약 해록석 사암(Greensand)를 구할 수 없으면 말린 해초가루(Kelp meal)를 대신 사용한다고 하였다.

 

백과사전을 보면 해록석(海綠石),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는 철·칼륨 등의 함수규산염(含水硅酸鹽)으로 분류상 운모에 가까운데 항상 미세한 입상 또는 토상(土狀)으로 사암(砂岩:sandstone)등의 퇴적암과 합분(合分)이 되어 있어, 해록석사암(glauconitic sandstones)을 만든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녹색 또는 회록색을 띠고 얕은 바다나 조간대(潮間帶)에서 형성된 천해성(淺海性) 퇴적암(堆積巖)이나 화산쇄설암(火山碎屑巖)속에서 산출된다고 하였다.

또 해록석은 퇴적물과 동시생성광물인 칼륨을 함유하므로 칼륨-아르곤 연대 측정(Potassiumargon dating, KAr dating)으로 절대연대를 측정할 수 있으므로 지층의 연대측정에 가장 주목되는 광물이며 해록석의 개념에는 청록색의 운모질 광물이라는 뜻과 변화가 다양한 광물성분을 가지는 작은 녹색의 토상 필렛(pellet)이 속하기도 하고 해록석 필렛의 형성에 관한 견해로는 분뇨화석(糞尿化石, coprolite)의 변이, 유공충 외각을 채운 물질의 변이, 흑운모 판상체의 변이, 셰일(shale)필렛이나 해저 점토의 변이 등이 있다 하였으며 해록석 형성을 위한 미시적인 환경(微細環境:microenvironment)으로는 유공충(有孔蟲:Foraminifera)껍질의 내부와 분뇨 필렛 및 유기상을 포함하는 점토집괴(粘土集塊)등을 들 수 있다고 설명된다.

 

해록석(海綠石), 글라우코니티크(Glauconite)의 용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글라우코나이트는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녹사(綠砂), 녹토(안료)라는 이름으로 예술적으로 유성페인트(유화 물감)의 녹색안료(綠色顔料:green pigment)로 사용되어 왔으며 러시아의 "성상(聖像)그림(icon painting)"에 사용된 것이 한 예인데, 또 다른 널리 사용된 것은 중세 그림에서 인육(人肉)의 밑칠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지며 고대 로마령 갈리아(Gallia, Gaul)의 벽화에서 무기질 안료(inorganic pigment)로도 발견된다고 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녹색염료는 해록석이라는 원석에서 추출하여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고 칼륨은 교환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 이온교환제로서 경수(硬水)의 연화나, 칼륨비료로서 이용된다고 알려진다.

녹사(綠砂), 녹색사암()이라고 알려진 그린샌드(greensands)는 주로 미네랄 해록석(海綠石) , 칼륨(potassium), 철분(iron), 규산알루미늄(aluminum silicat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델라웨어 그린란드(Delaware greensands)에서는 해록석(海綠石) 함량이 90%를 넘고 나머지 10%는 주로 석영(quartz)이다.

거에 녹사(綠砂:greensand)는 델라웨어에서 저렴한 비료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유일하게 활동 중인 녹사광산(greensand mine)은 뉴저지에 있다.

일단 채굴을 하면, 녹사(綠砂:greensand)는 건조되어 토양 촉진제로 사용되며 물에서 철분을 제거하기 위해 주로 연수(軟水)장치에 사용된다. 최근의 연구는 녹사(綠砂:greensand)가 산업폐수와 매립지 침출수에서 나오는 중금속의 필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위 분포지도는 USGS 에서 발췌한 것이다.

1879년에 설립된 미국 내무부 산하의 연구기관인 미국 지질조사국(U.S. Geological Survey)에서 해록석(海綠石)즉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에 대한 분포지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클라우코나이트의 분포지가 미국북아메리카대륙에 한정되어 나타난다.

18721876년경 지질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모래 퇴적물의 광범위한 분포지 연구가 시작된 시기로써 제5챌린저호(HMS Challenger)에 탑승한 자연학자들에 의해 처음 연구탐사 끝에 알려졌다는데 시기적으로 미국지질조사국이 설립된 시기와 거의 같다.

 

위 지도에 표식이 있는 것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먼저 북아메리카대륙을 제외하고 인도아대륙의 오디샤주(Odisha) 자하르반다(Jharbandha)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전부 북아메리카대륙인데 서부로는 오클라호마의 와시토강(Washita River, Oklahoma), 위스콘신의 블랙강(Black River(Round Lake), Wisconsin), 그리고 버지니아의 채펄 크릭(Chapel Creek, Virginia)과 체스피크만(Chesapeake Bay) 중앙지점, 메릴랜드의 올드하우스크랙(Old House Creek, Maryland)과 타난스브랜치(Tarnans Branch)와  매사추세츠의 동팰머스(East Falmouth, Massachusetts)과 버저즈만(Buzzards Bay)이 분포지로 나타난다.

 

 

                                                          [challenger 1872]

 

이러한 챌린저활동은 17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조선동해에서 수많은 해상탐사가 시행되었던 사실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퇴적암 각종 광물 분포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 지도가 생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정확하게 조선 동부 해안에서 다량의 해록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서기록들은 어디에도 없다.

    

(2)다음은 남동석(藍銅石:Azurite) 아즈라이트이다.

 

우리나라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공청(空靑)은 남동광(藍銅鑛:Azurite, Azuirtum)의 광석이며 둥굴거나 또는 속이 빈 것이라 공청(空靑)이라 하였다.

 

남동석의 깊은 청색은 형언하기 어려운 자태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뽐낸다.

 

남동석(藍銅石:Azurite)는 구리 광석 퇴적물을 풍화하여 만든 순한 남색(藍色:deep-blue)색의 구리 광물(鑛物)이다.

19세기 초에는 프랑스 리용(Lyon) 근처의 쉐리 레 민(Chessy-les-Mines)지방에서 발견 이후 체실라이트(Chessylite)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 광물의 화학식은 Cu3(CO3)2(OH)2로 구리를 가지고 있는 함수(含水:Hydrated ) 탄산염광물(炭酸鹽鑛物:Carbonate Mineral)로 고대부터 알려져 왔으며, 그리스어(Greek) 명칭 쿠아노스(kuanos:κυανός: "deep blue", root of English cyan(청록색))와 라틴어(Latin) 명칭 카루알륨(Caurulum)으로 '플리니 더 엘더스의 박물지(Pliny the Elder's Natural History)'에 언급되었다.

고대부터 아즈라이트의 유난히 깊고 맑은 푸른색(clear blue)은 저습한사막과 겨울 하늘과 관련이 있다. 이 광물(鑛物)의 현대 영어 명칭은 아즈라이트(azurite)와 아즈레(azure)는 모두 또 다른 남색(藍色)(deep-blue stone)인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청금석:선명한 청색의 보석)의 퇴적물로 알려진 지역인 페르시아 라즈워드[Persian lazhward (لاژورد)](blue color)에서 아랍어를 통해 유래되었기 때문에 이 연관성이 반영된다.

이 돌의 비중은 3.83 정도이며, 모스 경도 3.5~4.0 범위에 오는 비교적 무른 광물에 속한다.

다른 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무르기는 하지만, 투명한 깊은 청색이 이 돌을 보석으로 사용하게 만든 주된 이유이다.

탄산염광물이기 때문에 산성용액이나 열에 취약하고 600°C가 넘는 고온으로 가열하면 CO2가 도망가면서 결정구조가 깨져, 아름다운 청색은 사라지고 볼품없는 흑색의 산화구리만 남게 된다.

또한 이 광물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청색의 안료로 사용해온 돌이다.

남동석으로부터 구한 녹색조를 띠는 청색은 화가들이 바다의 깊이 감을 살릴 때 즐겨 사용하는 색이며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eye shadow" 아이섀도, 눈꺼풀에 바르는 화장을 하는데 이 남동석(藍銅石)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청색을 낸다는 이유로 이 돌은 마운틴 블루(Mountain blue)’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세의 화가들 역시 청색을 내는데 이 남동석을 사용했고 이를 사용한 경우 세월이 지나면서 약간 녹색을 띠는 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안료로 사용된 남동석이 세월이 지나면서 공작석으로 오랜시간을 거쳐 풍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하였다.

이스라엘 에일랏 지역의 구리광산에서는 이들 남동석과 함께 지표 근처에서 풍화작용의 결과로 2차 광물로 생성되는 공작석, 터키석 그리고 크리소콜라가 섞여 있는 녹색 돌이 산출된다고 알려지며 이들 중 아름다운 색상을 가진 돌은 보석으로 사용되며, ‘에일랏 스톤(Eilat stone)’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며 이 돌은 이스라엘의 국가보석으로 지정되고 솔로몬 왕의 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말하고 있다 

남동석(藍銅石:Azurite)은 공기가 불안정하지만, 고대에 푸른안료(blue pigment)로 사용되었다.

아즈라이트는 시나이(Sinai)와 이집트 동부 사막(Eastern Desert of Egypt)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하고 있고 스퍼렐(F. C. J. Spurrell:1895)이 다음과 같은 예에서 보고한 바가 있다.

, 고대이집트의 고고학적 유적 메이둠(Meidum)에서 제4왕조(Fourth Dynasty:B.C 2613~B.C 2494)때 팰릿(pallet)으로 사용된 고둥 껍데기가 그것이고 제5왕조(Fifth Dynasty:B.C 2494~B.C 2345)때 미이라(mummy) 얼굴에 걸친 천과, 그리고 18왕조(B.C 1543~B.C 1292)의 벽화가 바로 그것이라 했다.

그것들은 촘촘한 정도와 탄산동(碳酸銅:copper carbonate)의 기본적인 함량에 따라, 광범위하게 우울한 기분을 준다.

마운틴 부루(岩群靑:mountain blue) 또는 아르메니아산 돌(Armenian stone)로 알려져 왔으며, 그 외에도 이전에는 아즈로 델라 마그나(Azurro Della Magna:Magna Azuro:이탈리아)로 알려졌다.

기름과 섞으면 그것은 얕은녹색(slightly green)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으며 계란 노른자(egg yolk)와 섞으면 녹회색(green-grey)이 된다고 알려진다.

그것은 또한 블루바이스(blue bice)과 블루버디터(blue verdite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녹청 그림 물감은 보통 화학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안료를 가리킨다.

남동석(藍銅石:Azurite) 색소의 오래된 예는 공작석(孔雀石)이라고도 하는 말라카이트(malachite)로 풍화되기 때문에 더 녹색을 띠게 될 수도 있다 하였다.

 

 

 

라피스 라줄리(群靑色안료)는 주로 중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에서 공급된 반면 아즈라이트는 당시 유럽에서 흔한 광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상당한 규모의 퇴적물(deposits,岩盤)이 프랑스 리용(Lyons)근처에서 발견되었고 12세기 작센(Saxony)의 은광(銀鑛)에서 채굴되었다고 한다.

본래 안료 군청색(群靑色)은 남동광(藍銅鑛)에서 얻거나 염기성 탄산동(鹽基性炭酸銅)과 수산화동(水酸化銅)을 혼합해서 만든다.

광석에 열를 가하는 것은 아즈라이트(Azurite)로부터 천연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群靑)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비용이 비싸지만 첸니노 첸니니(Cennino d’Andrea Cennini)가 기술한 바와 같이 더 많은 안정된 블루색소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울트라마린은 열을 견디는 반면 아즈라이트(Azurite)는 검은 산화동(酸化銅)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즈라이트를 가볍게 가열하면 일본회화기법에서 사용되는 남색(藍色:deep blue)안료가 생성된다. 

Malachite and Azurite

It could also cure diseases of the eye. More important, however, it was believed capable of protecting from the evil eye and bringing good luck.[p189][Colored Gemstones: The Antoinette Matlins Buying Guide]by Antoinette Leonard Matlins

또 옛날 사람들은 공작석 말라카이트와 남동석 아즈라이트는 눈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하였고 사악한 눈(凶眼)으로부터 보호받고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즈라이트가 대제사장들과 사제들로부터 그들의 신()을 의식하는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 색소를 이용하여 그들의 이마에 유아신(幼児神) 호루스의 보호 눈(eye of Horus:Wedjat)을 그렸다. 오늘날 아즈라이트는 비슷한 목적에 기여한다고 믿어지고 있지만, 더욱 집중되어 지구상에 천국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의 내적 빛의 원천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하였고 고대 로마인들은 이집트인들뿐만 아니라 더 큰 통찰력, 비전적인 힘, 특히 최면술에 아즈라이트를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케루륨이라고 불리는 아즈라이트는 치유 의식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이 찬란한 푸른 돌은 갈아서 물감과 직물의 염료로 사용되었다.

많은 문명에서, 그것은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마야인들은 아즈라이트를 사용하여 심령적이고 신비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영감을 주며, 생각을 통한 정보, 지식, 지혜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해록석은 공청보다 약재로 알려지지 않는대신 안료로는 폭넓게 동서양 할 것 없이 사용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아즈라이트가 천상의 문을 열었다고 믿고 아즈라이트를 천상의 돌(Stone of Heaven)이라고 불렀다 한다.

공작석(孔雀石)에 들어 있던 물의 일부분이 없어져서 이루어진 탄산염 광물. 단사 정계에 속하며 기둥 또는 덩어리 모양으로, 푸르고 투명하다. 공작석과 함께 동광맥의 산화대(구리광상(鑛床)지대)에서 발견된다.

안료나 채료를 만드는 데 쓴다.

유명한 광상으로는 남서아프리카 나미비아(Namibia)의 추메브(Tsumeb), 프랑스의 셰시(Chessy), 미국 애리조나주(Arizona)의 비스비(Bisbee)등이 있다

남동석은 고대 동양의 벽화와 15~17세기 중엽까지 유럽 회화에 청색 물감으로 사용되었다.

    

 

 

위 공청(空靑)은 남동광(藍銅鑛:Azurite, Azuirtum)의 USGS 광물 분포지에서 보면 대체적으로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집체된다.
본 블로그에서 찾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본 무수히 많은 자료속에서도 이와 같은 위치에 고려라고 판단한 사실이 많았음도 부정할 수가 없다.

[1]와이오밍주, 유타주에 걸쳐 있는 플레이밍고지저수지가 겹쳐지는 그린강(Green River) 동편

[2]유타주 중남부에 있는 강 더티데빌강(Dirty Devil River)과 콜로라도강(Colorado River)가 만나는 지점에서 콜로라도강쪽 중류 지점

[3]콜로라도주 중부에 있는 파크 카운티(Park County)에 흐르는 미들포크사우스플랫강(Middle Fork South Platte River) 동편 그리고 북아메리카대륙 이외에는 내몽고 아라산좌기(阿拉善左旗)서편과 아프가니스탄의 라크나(Rakhna)에 나타난다.

하지만 해록석이나 공청, 그리고 공작석이 구리광맥에서 뭉쳐 나타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세종지리지에 강원도(江原道)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에서 공청(空靑)이 생산되어 약재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위 해록석에서 함께 추출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3) 단청(丹靑)으로 본 역사와 마무리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단청채색이 된 영주 부석사 조사당(趙師堂), 안동 봉정사 극락전(極樂殿), 예산 수덕사 대웅전(大雄殿)등이 현존하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고려시대때 목조건물에 사용한 안료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지금 남아 있는 건축물들은 이러한 안료 정체를 밝힐 수 없는 그야말로 모조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단청(丹靑)의 기원은 중국 서한시대(西漢,前漢:B.C 202~A.C 9)묘의 부장품인 가옥형 토기에 칠해진 단청을 근거로 고대에도 단청이 사용된 점을 진단할 수 있다 하였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삼국사기(三國史記:1145), 삼국유사(三國遺事:1281)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사료들을 통해 단청이 조선시대에도 활발하게 장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三國史記 卷第三十三 雜志 第二 옥사(屋舍) 진골의 가옥에 대한 규정에서 금(金)·은(銀)·유석(鍮石)·오채(五彩)로서 꾸미지 못한다 하였고 이 오채를 단청으로 보았으며 단청의 안료가 비싼 외국산 재료라는 점을 들어 '진골 이하는 오채로서 꾸미지 못한다.'라는 말이라고 해석했으며 때문에 귀족이 아니면 단청을 할 수 없다는 제한 사항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단청(丹靑)을 다른 명칭으로 단확(丹雘)·단벽(丹碧)·단록(丹綠)·진채(眞彩)·당채(唐彩)·오채(五彩)·화채(畫彩)·단칠(丹漆)이라 하였고 이 중 오채가 단청인 것이다.

단청(丹靑) 안료는 광물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암채(岩彩)라 할 수 있는데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단청에 칠한 물감이 어떤 것인지 분석자체가 불가능하여 전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하여 서양측에서도 특별하게 건축물이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니고 이집트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과 오래된 벽화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실제적으로 단청 역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삼국시대의 여러 벽화고분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하였고 특히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당시의 건축양식과 단청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다양한 채색무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것을 통하여 단청안료를 오래전부터 생산하고 사용한 사실을 유축하는 수준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전해지지 않지만 목조건축물 또는 석조건축물이 장엄하게 채색되게 하거나 조상, 공예품 등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폭넓게 사용된 암채 안료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송조(宋朝) 사신(使臣) 서긍(徐兢;1091-1153)이 고려(高麗)송도(松都)에 머물면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인들은 궁실(宮室)을 수축하기 좋아하며, 왕이 거처하는 궁궐의 구조는 둥근 기둥에 모난 두공(頭工)으로 되었고, 날아갈 듯 연이은 대마루는 울긋불긋 문채나게 꾸며졌다.”고 기록하여, 12세기 전후의 고려시대 궁전의 건축에서 다양하고 울긋불긋한 문채를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특별한 안료가 사용되었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사실이다.

그것뿐만아니라 해동역사에서 기록하고 있는 고려부채가 중국 그것과 차별이 있게 채색을 한 청록색은 매우 기이하다고 한 사실은 이를 확신하게 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밝혀본 사실을 종합할 때 해동역사가 기록한 고려시대때 사용되었을 것이란 안료에서 광물 동청과 해록은 분명 고려시대때 영역에서 분명히 산출되고 생산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이 있었으면 하지만 현실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니 이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좀 더 나아가보면 본 블로그 글 "터키석(turquoise)과 청난석(靑蘭石)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0 "에서 영어로는 터쿼이즈(turquoise)라 하고 한어로는 녹송석(绿松石), 송석(松石), 돌골옥(突厥玉)이라 하는 터키옥(玉) 또는 터키석(石)인데 이것이 놀랍게도 험한산지가 많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 애리조나주(Arizona州)의 상징이며 네바다주(Nevada)와 뉴멕시코주(New Mexico)의 주석(州石)이라고 한 문장과 네바다(州)(Nevada), 유타(州)(Utah), 아리조나(州)(Arizona), 콜로라도(州)(Colorado), 뉴멕시코(州)(New Mexico)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과 특히 북아메리카대륙 서남부의 유명 터키석 광산(鑛山:mines) 29개가 몰려있다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어자료[대만教育部國語詞典重編本]에는 해록석(海綠石)의 산지를 북아메리카대륙의 켈리포니아(California), 워싱톤(Washington), 애리조나(Arizona), 유타(Utah), 콜로라도(Colorado), 와이오밍(Wyoming),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미주리(Missouri), 미시시피(Mississippi), 미네소타(Minnesota),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와 동부쪽으로 뉴저지(New Jersey)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본 블로그 글 "올리브(olive), 감람(橄欖)이 있었던 곳이 바로 고려(高麗)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443 "에서 밝혔듯이 올리브색감을 고려 여인들이 즐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였고 올리브가 고려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유기물안료가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해록석(海綠石)이 산출되었다고 한다면 오리브그린색을 굳이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 암채(巖彩)로 채색을 하였을 것이란 추측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오늘날 터기여인과 고려여인이 풍습적으로 같은 전통을 이어온 사실을 언급하면서 검은 너울에 허리띠를 올리브색 허리띠를 둘렀다 하였으니 색깔의 조화가 기막히다 하였고 그기다가 멋을 부릴 줄 아는 향낭(香囊)까지 찼으니 얼마나 아름다웁겠는가? 했다.

그만큼 올리브색깔의 자연스러운 멋을 고려 여인들이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터키여인들이 쓴 너울은 멱라(冪羅), 여화(汝火), 나화(羅火), 나올(羅亐), 너울립(羅亐笠), 개두(蓋頭), 개수(蓋首)라 하여 영어로는 베일(vail)이라 하는데 이 단어 보일(voile)은 오드니(odhni)와 같고 히잡(hijab), 리탐(litham), 야크마크(yachmak), 차르샤프(tcharchaf)라 다양하게 불리는 것은 고려와 같다.

고려의 부인들이 나들이할 때 검은 라(羅)로 만든 몽수(夢首)라는 것을 머리에 썼는데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국상 때에 왕비 이하의 나인들이 머리에 쓰는 쓰개라 하여 개두(蓋頭)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는 사실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아야 할 이야기들이다.
투르크민족은 고구려에 포함된 민족이어야 하고 투르크민족 중 터어키란 명칭이 근세기에 불려 이것이 소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명칭으로 뿌리내렸지만 이것은 2차 세계대전 후 뒤 바뀐 국가위치변경에 따른 것이라고 할 때 실제로 터어키가 존재해야 할 위치는 생물, 무생물이 말하는 원산지 위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위 (1)해록석(海綠石), 글라우코나이트(Glauconite)과 (2)공청(空靑)은 남동광(藍銅鑛:Azurite, Azuirtum)의 USGS 의 분포지와 터키석이 가르키는 곳은 바로 고려(高麗)영역이라고 해야 맞다.

본 블로그 글 "조선강역(朝鮮疆域)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6 "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북애자(北崖子)가 1675년때 애민, 애족의 일념으로 후세에 남긴 기록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조선광역을 나타내는 기록에서 서쪽을 몽고와 접했다 한 것을 고려라고 보았다는 사실과 연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고려(高麗)는 산지가 대체로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어 퇴적암 탄산염 광물(carbonate mineral)들이 많았던 곳이므로 이러한 광물들이 생산되거나 산출되어 안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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