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광물

터키석(turquoise)과 청난석(靑蘭石)

한부울 2014. 1. 2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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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석(turquoise)과 청난석(靑蘭石)

 

글쓴이:한부울

 

터키석이란 무엇인가?
터키석이란 명칭은 과연 어떤 역사성이 있는가?
터키는 어디에 있어야 할 명칭인가?
터키석은 북아메리카대륙이 근원지인가?
북아메리카대륙의 터키석 분포지 왜 록키산맥 남부인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는 동홍해란 무엇인가?
결어

 

터키석이란 무엇인가?

 

 

터키석을 녹송석(綠松石)이라고 하며 송석(松石), 돌궐옥(突厥玉), 터키석(土耳其石), 터키옥(土耳其玉)등으로 불리며 대체적으로 푸른색의 보석, 청록색 빛을 띤 보석으로 상징된다.

 

백과사전에 보면 터키석을 영어로는“터쿼이즈(Turquoise)”라고 하는데 ‘터키석’을 뜻하는 중세 프랑스어 “Pierre Turqueise”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그리스어(Greece)로는 아름다운 돌(beautiful stone)의 뜻인‘Callaite’라 하였으며, 페르시아어(Persian)로는 페로자(Ferozah) 또는 피로자(Firozah)라 하여 푸른 터키석(Turquoise blue)으로 직역되며 성공(Prosperity), 행운(Fortunate)등을 의미한다는 것에서 페로자, 피로자는 음이 페르시아 음과 비슷한다는 점은 터키석의 상징성을 더욱 더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在西方,绿松石还是现代诞生石中代表十二月的诞生石,也就是水瓶座的星座石,象征着成功与必胜。

한어자료에도 보면 서방에서는 이 녹송석(綠松石)을 ‘행운의 보석’ 또는 ‘신(神)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보석’이라 하고 여전히 현대에 들어서도 탄생석 중에 대표로 취급되면서 12월 탄생석(誕生石)이라고 하며 이것을 곧 물병자리(寶瓶宮:Aquarius)의 '별자리 돌'로서 성공과 필승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료를 보면 터키석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보석 중의 하나라고 하며 세계에 알려진 최고(最古)의 가공된 보석 장식품으로 이 터키석과 금의 주물로 만들어진 네 개의 팔찌가 있었는데 이것은 5000년 동안 이집트 여왕의 미라 팔목에 끼워져 있었다 하였으며, 1900년경 발굴되었을 때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고 있다.

 

이에 더 하여 한어자료를 보면

在古波斯的历史中,绿松石被认为是具有神秘色彩的避邪之物,被做成护身符。曾在多处古波斯墓葬中发现绿松石饰物。

옛 페르시아(波斯)역사에서 이 녹송석(綠松石)의 신비스러운 색채 때문에 액막이 물건(避邪之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있고 호신부(护身符)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페르시아 묘장(墓葬)에서 녹송석(绿松石)의 장식물이 많이 나타났다고 하고 있으니 앞에 페르시아에서 이 터키석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在古中国,位于河南郑州大河村仰韶文化(距今6500-4400年)的遗址中,出土了2件绿松石制的28cm长的鱼形饰物。

또한 옛 중국에는 하남(河南) 정주(郑州)에 위치한 대하촌(大河村)의 앙소문화(仰韶文化)유적에서도 녹송석(绿松石)으로 만든 물고기 장식품이 출토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이 터키석(綠松石:turquoise)은 미국 인디언들에게도 매우 신성한 돌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때 인디언들은 이 터키석과 산호를 곱게 갈아 모래 페인트로 만들어 바싹 마른 땅에 페인팅을 하고 비가 내리도록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 사실과 미국 서남쪽과 멕시코에서는 터키석이 죽은 사람을 보호한다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서 묻는 풍습이 있다 하였으며 그리고 돈을 얻고 싶을 때는 터키석을 초록색 촛불 주위에 둥글게 삥 돌려놓는다든지 혹은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기도 했던 것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외 이 터키석은 독(毒)에도 반응하여 음식물 속에 들어 있는 독의 유무를 검사하는데도 이용되었다고 하였으니 지배자들의 정적에게 당할 수 있는 암살음모를 모면하는데도 쓰였던 것이 확실하다.

 

때문에 이 터키석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신비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용기, 희망, 자신감과 하늘 신(神)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으며 또한 제왕들 지배의 상징으로 또는 전사와 사냥꾼에게 무적함을 나타내고 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신비스러운 돌로 알려졌고 푸른색과 녹색의 조용하고 강렬한 색상에서 지혜와 우주의 힘을 받아 영감을 얻는 기이한 돌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제사장들에게도 필수적인 물건이었음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게 한 것은 부적(簿籍)과 액막이(鎖片)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며 몸에 새로운 활력과 악몽에 벗어나고, 독살 또는 살인자로부터 보호받거나, 특히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난파선 선원들이 이것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푸른 돌’이 변색이 되거나 퇴색이 되면 이 모든 효력이 없어지고 보호막이 중단되거나 사라진다는 속설이 존재하는 돌이다.

 

터키석이란 명칭은 과연 어떤 역사성이 있는가?

 

                                         [Turquoise pendant and bracelet]

 

먼저 한문으로 왜 녹송석(绿松石)이라고 하였을까 궁금해진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소나무 잎’과 같은 ’녹색(綠色)‘을 띠는 ‘광물(鑛物)’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터키석(Turquoise-Turkish stone)은 녹색(green)보다는 청색(blue)을 더 귀하게 여기거나 가치있게 보았다면 녹송석(綠松石)이란 명칭도 근세기에 명명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청난석(靑蘭石)이 더 합당한데 말이다.

 

사실 왜 터키석이라고 하였는가에 대해서 모든 자료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명확한 것이 없다.

왜 터키석이었는가에 대한 근세사가 주장하는 것을 보면 본래 아랍이라고 하는 이집트(Egypt)에서 이 터키석이 생산되었는데 이집트에서 바라볼 때 지중해만 넘으면 유럽이라는 지형을 당시 유럽을 ‘아주 먼 미지의 나라’라고 여겼다는 것이고 ‘터키’는 ‘지평선 끝처럼’ 여겨 '해가 지는 곳'으로 인식되었다고 하여 이러한 관념적인 것 때문에 이 터키석을 ‘멀리서부터 온 이상한 보석’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하는 것에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그 당시나 현재도 아나톨리아(Anatolia)의 터키(Republic of Turkey:土耳其共和国)에는 이 푸른색의 터키석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터키석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단순하게 볼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분명 터키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터키에서 이 돌이 대량으로 생산되거나 최초로 터키에서 산출되었거나 또는 발견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단순하게 터키석이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 터키에서 산출된 줄 알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은 근원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단지 당시 이집트(Egypt)에서 산출되던 터키석임에도 이집트석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현재 아나톨리아반도의 터키를 경유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의미 하나만 가지고 터키석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인간이 오랜 전부터 모든 사물에 이름을 명명하는데는 어떤 원칙과 기준이 있었을 것임에도 이런 식의 명명이라면 근세기에 갑자기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근원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름이기도 한 것임을 추측할 수가 있다.

 

때문에 이 터키석이란 이름은 근세기에 돌발적으로 붙여진 것이거나 아니면 실제로 이 터키석이 발견된 근원지의 명칭이어야 하지만 아나톨리아반도의 터키에는 이 터키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또다른 터키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잇는 것이다.

즉 본래 터키의 위치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타톨리아반도의 터키(Turkey) 말고 진짜 터키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같은 터키(Turkey)의 혼란은 이 터키석뿐만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가 원산지인 칠면조(七面鳥)를 한문으로 화계(火雞)라고 하고 영어로는 터키(turkey)라고 한다는 사실에서도 지적한 바가가 있다.

 

터키는 어디에 있어야 할 명칭인가?

 

먼저 국역승정원일기 고종 30년 계사(1893) 기록에 분명 오스트리아가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다고 한 사실이다.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로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밝혀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국가적 위치에서 어떻게 유럽에 있는 오스트리아가 인도아대륙에 있는 인도와 아나톨리아반도에 있는 터키사이에 있었다고 할 수가 있는가?

오스트리아는 중앙아시아일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가 중앙아시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가?

이것이 근세사의 크나큰 모순인 것이다.

그렇다면 터키도 인도역시도 다른 곳에 있었다는 가설이 생긴다.

터키(Turkey)란 이름도 따져보면 1369년경 중세 라틴어 ‘투르크족(Truk)의 땅’이란 의미의 '투르키아(Turcia)'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며 투르크(Truk)는 고대 ‘튀르크어’에서 '용감한, 힘센'뜻이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이 투르크인들이 기원전 177년에 알타이산맥(金山)남쪽에 살던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 '투킨(tu-kin)'이라 하여 ‘돌궐족'을 말하고 있다. 

또 백과사전에 보면 투르크(Türk)란 용어는, 동양 문헌에서는 6세기 중국의 주서(周書)에 나타났다고 하고 서구문헌에서는 비잔틴 역사학자 아가티아스(Agathias, 536-582)의 작품에서 최초로 언급되었으며 동시에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명칭인 투르키예(Türkiye)라고 했으며 투르크란 단어가 최초로 국가의 공식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오르혼(Orkhon)비문에 괵-투르크(Gök-Türk)라 하여 돌궐제국(突厥帝國)이라는데 합치된 정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더하여 유럽과 아랍이란 이름 역시 이러한 혼돈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앞서 본 블로그글 "유럽(Europe)과 아랍의 근원 http://blog.daum.net/han0114/17050525 "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아랍은 유럽이다’란 사실과 궤를 같이 하는 사실이다.

근세사에서는 아랍(Arab)이란 낱말의 기원을'유목하는 사막의 거주자'라고 한다지만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이것이 모두 아랍(Arab)이란 설명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돌궐의 전신인 흉노를 유목인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핵심은 아랍(Arab)이나 유럽의 어원이 '땅 서쪽 끝, 해가지는 곳'이라고 하는 한계에 대한 명확성이다.

유럽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사람들이 황혼, 해지는 서쪽(dusk)등을 나타내는 에렙(Ereb)이라고 하는데서 출발하였다고 할 때 ereb->arab 에럽(Ereb)이 아랍(Alab)으로 변했다는 설을 따른다면 유럽(Eurb)은 아랍(Alab)과 같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다시말해 아랍의 이집트가 아니라 유럽의 이집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가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펙트이다.

이것이 근세기에 서양신흥세력들에 의해 대대적인 역사판짜기를 통하여 변질되었다는 설명이다.

하나의 것을 여러개로 분리하면서 생성된 혼돈들인 것이다.

현재 각 나라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놓고 보면 유럽에 있을 오스트리아가 중앙아시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바르게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문제는 투르크라 하면 돌궐제국이었다고 오르혼(Orkhon)비문에 나타나는 것을 전제로 터키가 본래 아나톨리아에 있었던 것이 확실한가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한 명확성이 없다면 이집트의 아랍과 오스트리아의 유럽으로 갈라져 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터키석은 북아메리카대륙이 근원지인가?

 

북아메리카대륙은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1492년)하기 이전에 역사는 전무하다는 것이 근세사 정설이다.

그럼에도 자꾸 북아메리카대륙에 콜롬버스가 발견하기 이전에도 인디언역사 말고 고도의 발전된 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자꾸 자꾸 들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석의 터키(Turkey)는 투르크(Türk)를 말하는 것이며 투르크는 돌궐(突厥:tūjué)을 말하는 것이라고 모든 사서에 정설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돌궐이 금산 즉 알타이산, 남쪽에서 발흥한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동아시아대륙 알타이 산맥 남쪽은 돌궐의 발흥지라면 지금 알타이산맥에는 옛날부터 이 터키석이 산출되거나 생산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틀리는 이야기다.

이미 본 블로그의 글 "용연향(龍涎香, ambergris)으로 밝힌 “알타이(altai)가 어딘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3”에서 분명코 알타이(altai)가 금산(金山)이라면 금(金, gold)의 산지(産地) 북아메리카대륙 로키산맥(Rocky Mts)이 되어야 맞다고 한 사실이 있다.

그렇다면 터키석이 산출되었다는 아랍의 이집트와 터키는 최소한 록키산맥의 남쪽에 위치해 있어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6세기경 돌궐제국도 록키산맥 남쪽에 있어야 맞고 그렇다면 콜롬버스가 주장한 북아메리카대륙의 역사가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새빨간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뒤받침하는 아래 한어자료가 보인다.

绿松石是象征美国亚利桑那州,内华达州和新墨西哥州的州石。

녹송석은 미국 애리조나주(Arizona州)의 상징이며 네바다주(Nevada)와 뉴멕시코주(New Mexico)의 주석(州石)이라고 한 문장이다.

이 세개 주가 모두 록키산맥의 남쪽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모든 자료에는 이 터키석이 이집트, 중동지역, 중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산출되는 터키석은 빼먹은 것일까?

주석(州石)이거나 주(州)의 상징이라고 할 정도라면 보통 산출되는 것이 아닐 터인데도 완전히 빼버렸다는 것은 근세사를 바르게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콜롬버스의 역사는 날조되었을 개연성이 산처럼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쨌던 근세사는 아메리카대륙을 근거로 하는 것은 비상(砒霜:독약)처럼 여겼음을 알 수가 있는 것다.

The Zuni believe blue turquoise is male and of the sky and green turquoise is female and of the earth.

또 위 영어자료를 보면 애리조나(Arizona州)북동부에 사는 아메리카 인디언인 주니족(Zuni)은 푸른 터키석은 남성(male)과 하늘(sky)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여겼고 녹색 터키석은 여성(female)과 땅(earth)을 나타내는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도 도저히 터키석 역사에서 무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이 터키석은 오래 전부터 신성한 돌로 귀중하게 애용되었다는 것을 설명이 있었다.

물론 기원으로 따지면 기원 전 3,000년경부터 사용된 터키석은 이란의 네이샤부르(Neyshabur)와 미국 남서부, 북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시베리아, 유럽 등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여러 지역에서 공히 난다 하였지만 그 중 가장 우수한 것은 이란에서 산출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란 북동부의 메슈드(Mashhad)근처에는 수많은 터키석 광산을 들고 그것만을 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이 현대 이란을 고대 페르시아 또는 파사(波斯:Persia)라 한다는 것이며 이 파사의 본래 위치가 현재 이란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것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신라와 연결되는 끈을 놓을 수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대목이다.

   

북아메리카대륙의 터키석 분포지 왜 록키산맥 남부인가?

 

중국에서는 6세기경 출몰한 돌궐제국이 발흥한 곳은 금산(金山) 즉 알타이(altai)산 남쪽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본 블로그에서도 금산이라고 하는 알타이가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록키산맥 남쪽에 터키석이 대량으로 산출되어 그것을 터키석 또는 돌궐석이라 했던 것이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이 터키석이 실제로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 남부에 산출되는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아래 터키석이 산출되는 북아메리카대륙의 분포지도를 참고한다.

 

Turquoise mines in the USA:

Ajax Turquoise(Nevada)

Bisbee Turquoise(Arizona)

Blue Diamond Turquoise(Nevada)

Blue Gem Turquoise(Nevada)

Boulder Turquoise(Nevada)

Carico Lake Turquoise(Nevada)

Castle Dome Turquoise(Arizona)

Cerrillos Turquoise(New Mexico)

Canyon(California)

Cripple Creek Turquoise(Colorado)

Crow Springs Turquoise(Nevada)

Damele Turquoise(Nevada)

Easter Blue Turquoise(Nevada)

Enchantment Turquoise(southern New Mexico)

Fox Turquoise(Nevada)

High Lonesome Turquoise(southern New Mexico)

Indian Mountain Turquoise(Nevada)

Kingman Turquoise(Arizona)

Lone Mountain Turquoise(Nevada)

King Manassa Turquoise(Colorado)

Morenci Turquoise(Arizona)

Number Eight Turquoise(Nevada)

Orvil Jack Turquoise(Nevada)

Paiute Turquoise(central Nevada)

Pilot Mountain Turquoise(Nevada)

Red Mountain Turquoise(Nevada)

Royston Turquoise(Nevada)

Sleeping Beauty Turquoise(Arizona)

Stennich Turquoise(north central Nevada)

Stormy Mountain Turquoise(Nevada)

Tyrone Turquoise(New Mexico)

 

위에 보듯이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특히 서남부의 유명 터키석 광산(鑛山:mines) 29개 중 북아메리카대륙 네바다주(Nevada)에 60%가 넘는 18개가 몰려 있어 가장 많은 광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음이 애리조나주(Arizona)이고 그 다음이 뉴멕시코주(New Mexico)로 나타난다.

이 3개주가 모인 곳은 정확하게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 남부이다.

이곳에 돌궐족이 발흥한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터키석 광산이 밀집된 지역임을 알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돌궐(突厥:552-744)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튀르크(türk)의 가차(假借)식 표기이며, 주서(周書)의 이역(異域) 돌궐(突厥)열전편에 “돌궐은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라 하였기 때문에 흉노의 후손이다.

흉노(匈奴)는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중국 북부지방을 활동하던 유목민(잠재적, 아랍)이라고 하였으며 이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진시황(秦始皇,BC259-BC210)이 쌓은 성벽을 이은 것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흉노는 431년에 멸망하면서 중국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흉노(匈奴)와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있다.

때문에 서양역사학자들은 5세기 유럽전역을 초토화시키고 게르만민족대이동을 발발케 한 훈족침략에서 훈족의 전신을 흉노라고 하며 훈족을 고구려유민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도 가치있게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흉노의 '흉(匈') 또한 '훈(Hun)'을 중국어 음차로 부른 명칭이라는 설도 있다.

 

동(東)아시아대륙사를 보면 수(隋)왕조 초기에 돌궐이 금산(金山)지역 즉 알타이에서 동서(東西)로 나뉘어 발흥하였으며 당(唐)태종(太宗)은 정관(贞观)4년(630)에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당(唐)고종(高宗)이 현경(显庆)4년(658)에 서돌궐(西突厥)을 멸망시켜 나머지는 중앙아시아로 흩어졌다 하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진다면 신라에게 망한 고구려가 돌궐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라역시 당나라로 둔갑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즉 신라(新羅)와 당(唐)은 같다고 해야 맞다.

또한 신용하 교수에 따르면 돌궐(튀르크)민족의 발상지‘위투켄(Utukan)'산(山)은 고조선말로 ‘우뚝한’ 산이며, 지방민들은 ‘박달’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하였다.

돌궐족의 발상지를 우리는 금산(金山), 황금(알) 산(타이)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을 현지인들이“박달 산”이라고 한 사실까지 보태면 분명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은 박달산이라고 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돌궐은 동시대에 고구려라고 해야 맞다.

이때 돌궐인 고구려가 당인 신라에 밀려 베링을 건너갔다면 동아시아대륙 역사가 고구려에 의해 다시 탄생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돌궐이 고구려이며 신라가 고려와 합병하였기 때문에 고려가 튀르크였던 것이고 투르키아(Turcia), 투르크족(Truk), 터키(Turkey)임이 밝혀진 것이다.

아마 고구려, 고려가 가우리 즉 중앙, 가운데 핵을 나타낸 것이라면 터키(Turkey)는 또 다른 별칭으로 불렸던 것이 틀림이 없다.

 

북아메리카대륙에 있는 동홍해란 무엇인가?

 

칠면조(火雞屬 Meleagris Linnaeus, 1758)는 오래 전부터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 의해 사육되어 왔는데 뒤 늦게 콜럼버스가 뛰어들어 그가 북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1492년 이후부터 전세계에 보급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고 유럽에 알려준 사실은 어쩌면 이 칠면조의 역사의 아주 미약한 부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원산지로 하는 칠면조(七面鳥)를 영어로 터키(turkey), 또는 turkey bird, wild turkey 라고 한 사실은 무엇으로도 해소하기가 힘든 이야기다.

무엇때문에 아무런 연고가 없을 '터키'란 이름을 명명했을까 하는 의문은 좀처럼 해소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대륙 록키산맥 남부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가 산지이며 근원지인 푸른색 돌을 아무런 근거가 없을 터키석이라고 한 사실 또한 그렇듯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국역승정원일기 고종30년 계사(1893)기록에서 분명 오스트리아가 인도(印度:India)와 터키(Turkey)사이에 있었다고 한 사실까지 이렇게 들어난 사실들을 종합할 때 근세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주장하는 이 모든 사실들은 크나큰 모순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우리가 지금부터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터키석도 칠면조처럼 아나톨리아(Anatolia)의 터키 땅에 근원적으로 근거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터키(Turkey)라고 하는 것은 어떤 큰 근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근세사에서 말하기를 터키와 가까운 이란과 시나이반도에서 이 터키석이 산출되기 때문에 옛 오스만제국시 그 지역도 오스만제국 영역에 포함되었고 오스만을 투르크라 하였기 때문에 터키석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차한 부연 설명까지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근원적인 문제를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위 세 개의 지도들이 개시되어 있는데 제일 먼저 것은 17세기 중국예수회가 그린 세계지도라고 판단된다. 다음 것은 지구만국산해여지전도(地球萬國山海舆地全圖:1785)이다. 마지막은 것은 일본에서 만든 만국산해지구여지전도(萬國山海地球輿地全圖)이다.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동홍해(東紅海)라는 지명이 난데 없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캘리포니아만(Gulf of California, Sea Of Cortez)에 적혀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원래 동홍해(東紅海)가 있었고 후 근세기에 서홍해(西紅海)가 생겼다라고 추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들은 홍해(紅海)라고 하면 지금의 중동에 있는 홍해(紅海)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도들을 보았을 때 어쩌면 동홍해가 본래의 홍해라고 불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것을 원칙으로 할 때 근본이기 때문이다.

홍해는 서양역사를 태동하게 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점인데 성경 출애굽기의 모세와 홍해의 기적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홍해란 명칭 자체도 여러가지 의혹을 낳고 있는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히브리어 얌수프(yam suph)을 '붉은 바다'가 아니라 '갈대 바다'라고 의역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는 말이다.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형적으로 단순하게 볼 때 켈리포니아만(Gulf of California)을 과거 동홍해라 했다는 사실은 일단 충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갤리포니아만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찾아보니 also known as the Sea of Cortez or Sea of Cortes or Vermilion Sea 라고 하여 주홍색바다를 칭하는 버밀리언 해(Vermilion Sea)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북아메리카대륙을 기준으로 동쪽을 동해 즉 대동양이라고 하였고 북아메리카대륙 서쪽 바다 서해를 소동양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소동양이라는 바다의 적도 남쪽을 태평양이라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지금의 서태평양 즉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가 있는 곳 전체의 바다를 소동양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지금의 태평양은 본래 소동양이라는 지칭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일단 동양은 북아메리카대륙을 기준으로 한 것임을 틀림없다 할 수 있다.

결국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사람들이 황혼 또는 해지는 서쪽(dusk)등을 나타내는 에렙(Ereb)이라고 하는 곳, 즉 아랍(Alab)은 지금의 유럽대륙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유럽이 아랍이었던 것이다.

 

결어

 

우리는 지금까지 터키석에 대해 알아보았고 터키석이라고 불리었던 이유도 알아보았다.

결론적으로 터키석은 돌궐옥(突厥玉)이었고 고려돌이었던 것이다.

터키(Turkey:土耳其)는 근세기에 만들어진 지칭이다.

그러나 돌궐(突厥,Turks:552-744)이 트루크라고 한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또한 돌궐(突厥)을 흉노(匈奴)라고 했다는 사실과 이 흉노(匈奴)를 서양역사학자들은 고구려유민이라고 한 사실 까지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돌궐이 발흥한 알타이산이 있고 그 산을 우리민족들은 박달산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터키석이 무진장하게 산출된다는 로키산맥 남쪽이라는 위치가 일치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여러가지 조건으로 확인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직 한가지가 남았다.

바로  세종지리지 경기 강화도호부편에 江華都護府…土産靑蘭石<産摩利山西海濱 可刻碑 獻陵神道碑 用此石 마리산 서쪽 바닷가에서 나는데, 비문을 새기기에 좋다하여 청란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란석(靑蘭石) 무엇일까?

마리산(摩利山)을 말하고 있다.

푸른 색의 터키석, 매우 독특한 돌이며 신성한 보석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청란석(靑蘭石)이 이 터키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란이라는 것은 어감적으로 둥근 또는 면이 부드러운 선을 대체로 의미하는 것이라면 터키석의 모양과 진배가 없다.

더군다나 청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터키석의 푸른색 또는 청록색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화도가 문제이다.

강화(江華)가 섬(島)이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차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강화는 시대에 따라 여러 위치에서 존재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추측에는 강화와는 별도로 불리었던 심도(沁都), 심부 (沁府), 강도 (江都)가 그것이다.

아마도 제왕들이 위기때 마다 피신을 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을 강화라고 하여 여러 위치에서 두고 상징적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때문에 강화를 찾아야 하지만 강화는 삼한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한 곳 이상의 숫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왕이 천도(遷都)를 하거나 서울를 옮겼을 때 경기도가 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세계삼한역사를 분석하면서 느끼는 것은 늘 서울이 옮겨질 때마다 경기도 옮겼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강화에 있었던 청난석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또한 반도역사에서도 이 터키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중에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여러 점의 팔찌가 출토되었다고 하였으며 무덤 주인공의 왼팔에서 출토된 옥이 박힌 금팔찌로서 감옥금팔찌라 불리우는 것인데 이 팔찌는 넓고 길쭉한 금판을 붙여 만든 것으로, 표면의 돌기 속에는 녹색의 터키석, 회색 또는 검은색 보석을 박아 금빛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신라라고 판단되는 페르시아의 터키석도 돌궐이 발흥한 곳과 머지 않는 곳에서 산출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이집트의 터키석, 페르시아의 터키석, 그리고 돌궐의 터키석 이 모든 것은 다를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한곳에서 출토 된 것으로서 이것을 현대들어 터키석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셰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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