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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동, 적동석(赤銅石, cuprite)으로 본 신라(新羅)
글쓴이:한부울
우리는 유기(鍮器)라고 하면 놋쇠로 만든 각종 그릇이라고 알고 있다.
놋쇠는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여 주석과 아연 등을 섞은 대표적인 구리, 금속의 합금으로서, 각 성분의 비율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어 유석(鍮錫), 유철(鍮鐵), 진유(眞鍮), 황동(黃銅), 향동(響銅), 청동(靑銅)등으로 불렸으며 신라시대에 이미 유기(鍮器)를 제작하던 철유전(鐵鍮典)이 있었다고 하여 이미 전서(典書)가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또한 고려시대에는 상류층의 식기와 각종 불교공예품으로서 유기(鍮器)가 사용되었다는데 당시의 유기(鍮器)는 품질이 우수해서 신라동(新羅銅), 고려동(高麗銅)이라고 하여 외국에까지 수출도 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런 글을 짐작할 때 이미 수출상품 브랜드가 잡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답답한 것이 반드시 한반도에 세계적인 구리광산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반도사에서는 얼버무리고 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구리 브랜드가 신라동 또는 고려동으로 되려면 그 원료가 되는 구리광석이 채굴되는 세계적인 구리광산이 한반도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가 못하고 그러한 논리가 무색해질 수밖에 열악한 한반도 광물 환경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근원적으로 한반도에 질 좋은 세계적인 구리광산이 존재했다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볼 것이 있는데 아래 바로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저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적동(赤銅)이라 하여 홍동(紅銅), 적금(赤金)이라 하였고 가루를 뜻하는 설명(屑名)에는 동락(銅落), 동말(銅末), 동화(銅花), 동분(銅粉), 동초(銅砂)등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이시진(李時珍)은 또한 이 적동(赤銅)을 흡사 금과 같다(銅與金同) 하여 종금(從金)이라 하기까지 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들어나는 사실을 놀랍게도 신라동이라는 기록이다.
赤銅 [编辑](《唐本草》)
【釋名】紅銅(《綱目》)、赤金(弘景),屑名銅落、銅末、銅花、銅粉、銅砂。
時珍曰︰銅與金同,故字從金、同也。
【集解】弘景曰︰銅為赤金,生熟皆赤,而本草無用。今銅青及大錢皆入方用,並是生銅,應在下品之例也。
時珍曰︰銅有赤銅、白銅、青銅。赤銅出川、廣、雲、貴諸處山中,土人穴山采礦煉取之。白銅出雲南,青銅出南番,唯赤銅為用最多,且可入藥。人以爐甘石煉為黃銅,其色如金。砒石煉為白銅,雜錫煉為響銅。《山海經》言︰出銅之山四百六十七,今則不知其幾也。
《寶藏論》云︰赤金一十種︰丹陽銅、武昌白慢銅、一生銅、生銀銅,皆不出陶冶而生者,無毒,宜作鼎器。波斯青銅,可為鏡。新羅銅,可作鐘。石綠、石青、白、青等銅,並是藥製成。鐵銅以苦膽水浸至生赤,煤熬煉成而黑堅。錫坑銅大軟,可點化。自然銅見本條。《鶴頂新書》云︰銅與金銀同一根源也,得紫陽之氣而生綠,綠二百年而生石,銅始生於中,其氣稟陽,故質剛戾。《管子》云︰上有陵石,下有赤銅。《地鏡圖》云︰山有磁石,下有金若銅。草莖黃秀,下有銅器。銅器之精,為馬為僮。《抱朴子》云︰銅有牝牡。在火中尚赤時,令童男、童女以水灌之,銅自分為兩段,凸起者牡也,凹下者牝也。以牝為雌劍,牡為雄劍,帶之入江湖,則蛟龍水神皆畏避也。
赤銅屑 [编辑]【修治】時珍曰︰即打銅落下屑也。或以紅銅火 水淬,亦自落下。以水淘淨,用好酒入沙鍋內炒見火星,取研末用。[本草綱目]
[cuprite Arizona]
아니 한반도에 흔하다고 볼 수 있는 황동도 있을 것을 의심하는 현 상황인데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산출지를 자랑하는 적동이라니 이것이 도대체 타당한 이야긴가?
그러나 놀랍데도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寶藏論》云︰赤金一十種︰丹陽銅、武昌白慢銅、一生銅、生銀銅,皆不出陶冶而生者,無毒,宜作鼎器。波斯青銅,可為鏡。新羅銅,可作鐘。
《寶藏論》은 서진(西晋)의 철학자 승조(僧肇:374∼414)가 지은 불교서적인데 이 서적의 발간년도는 알 수 있으나 광조공유품(廣照空有品)과 이미체정품(離微體淨品), 본제허현품(本際虛玄品)의 3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물품서적이다.
이 책에서 말하길...파사청동(波斯青銅) 즉 페르시아의 청동은 거울(鏡)을 만들 수 있고 신라동(新羅銅)은 종(鐘)을 만들 수 있다 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기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구리가 아니라 귀하디 귀하다고 여겨지는 적동(赤銅)을 신라동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여태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에서 신라동, 고려동이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동(銅)이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시진의 본강강목에 서진 철학자 승조가 쓴 보장론에서 이와같이 언급하였다는 사실은 위 의문을 단번에 밝히는 촛불이 된 셈인 것이다.
그렇다 바로 신라동은 적동을 일커었음을 알수 있는 것이다.
이 적동이 조선에 산출된 사실이 기록이 또 있는데 조선광물지(朝鮮鑛物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의 동(銅)광석은 주로 석영암맥(石英岩脈)에서 산출되며, 적동석, 휘동석(輝銅石), 남동석, 반동석, 테트라헤드라이트, 황동석, 황석석(黃錫石), 발레리아이트(valleriite)등의 광종별로 주요산출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것은 우리나라 한반도 특히 구리광산이 있다고 하는 부산, 경남지역의 토질은 주로 화산암(火山岩, volcanic rocks)과 화강암(花崗岩) 및 퇴적암이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조선광물지에서 구리광산은 석영암맥 즉 규암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규암(硅岩:石英岩:Quartzite)은 다 알다시피 단단한 암석이다.
한반도 사정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어쨌던 조선에는 적동석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자료에서는 한반도의 동(銅)광산이 경상남도 일대에 밀집 분포하였으나 소규모 맥상(脈狀)광체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개발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1978년 이후에는 주로 연, 아연을 개발할 때 부산물로서 구리를 생산해 내고 있을 뿐이고 한반도에서 산출된다는 것은 황동석(黃銅石)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적동은 과연 무슨 이야긴가?
분명 조선광물지에는 커프라이트(cuprite), 즉 적동석(赤銅石)이 산출되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한반도와 일치하는 것이 없다.
자연구리 즉 자연동(銅)은 세계 산지라고 한다면 손을 꼽을 정도이다.
물론 한반도는 근처에 들어갈 수도 없다.
우리나라 역사를 볼 때 기원전 1천년 경부터 청동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낙랑시대의 유적에서는 동족(銅簇), 동인(銅印), 동기(銅器)등이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라와 고려시대의 범종은 고대 일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당시에는 신라동, 고려동이라 하여 주나라와 원나라에 각기 수출된 역사사실(史實)이 있어 신라와 고려시대 때 동(銅)광업(鑛業)이 성행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의 동(銅)은 일찍부터 중국에서 질이 좋은 청동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자세히 따진다면 청동이 아니며 동국여지승람지리지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구리는 굳고 붉은 색이 나서 식기나 수저 등에는 모두 이것을 사용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 청동(靑銅)이 아니라 적동(赤銅)임을 알게 한다.
명(明)사신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서도 고려동(高麗銅)의 질이 우수하여 당(唐)과 송(宋)에서도 우리나라의 유(鍮)와 동(銅)을 사다가 화폐 또는 그릇을 만드는 원료로 썼다 하였으니 평범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질 좋은 구리가 산출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에도 광종(光宗, 925-975:재위949-975)시 958-959년에 후주(後周), 그리고 1262년에 원나라와의 동(銅)거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데나 나는 그런 구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발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바랄뿐이다.
이어지는 자료를 보면 그 뒤 15세기까지 조선에서 동(銅)의 캐스팅(casting) 즉 주조(鑄造)기술이 좋아서 일본인들이 종(鐘)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계속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 황제라 칭하던 태종(太宗:1367-1422)조, 1417년에 대마도주가 동(銅) 5백 근을 보내 주종(鑄鐘)을 부탁하였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것은 철뿐만 아니라 구리 주물기술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이 분명하다.
위 열거한 사실과 같이 우리나라의 근원적인 역사는 뚜렷하게 적동을 말하고 있고 주물기술이 상당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반도역사가 말하는 것은 이와 동떨어지는 어설픈 사실만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반도사의 어설픈 기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동(採銅), 용광로를 이용한 야동(冶銅)사업은 고려 5백년 동안에 쇠퇴일로를 걸었다....조선 초에 이르러 국산동(國産銅)의 산출이 전무하여 그렇게 뛰어난 광업기술, 주물기술까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고 반도사가 오직 한반도 고려 또는 조선을 심기 위해 얼마나 한심한 작태를 여지껏 보여준 것인가를 우리는 새삼스럽게 알게 한다는 사실이다.
반도사를 굳히기 위해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반도 역사란 거짓 역사사실이 단번에 탄로 날 일이니 급기야 사서에 등장하는 자연생물, 무생물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에 바빴던 것이 바로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반도역사라는 것이다.
분명히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적동(赤銅)이라하여 신라(新羅)에서 적동(赤銅)이 산출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리고 이것을 신라동(新羅銅)이라 하였으며 이 신라동(新羅銅)으로 종(鐘)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 사실이 낱낱히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허접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광물사의 기록인 것이다.
Cuprite is found in the Ural Mountains, Altai Mountains, and Sardinia, and in more isolated locations in Cornwall, France, Arizona, Chile, Bolivia, and Namibia나미비아.
產地:赤銅礦可於烏拉山脈、阿爾泰山脈、以及薩丁尼亞島中開採而得,而英國康和郡、法國、美國亞利桑那州、智利、玻利維亞、澳洲南部、中國甘肅、江西、雲南、以及納米比亞則只能在較偏僻的地方中開採而得
신라동(新羅銅)이라고 할 수 있는 적동광(赤銅礦)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위 영어자료와 한어자료를 보면 공히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은 대륙별로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우랄산맥,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산맥, 아탈리아의 사르데냐섬, 그리고 영국 콘월지방, 프랑스, 미국의 애리조나, 남미의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지역에서 발견된다고 하였으니 대륙별로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위 산출지역중에 하나 또는 다수가 신라영역이었음을 동시에 알 수 있는 내용인 것이다.
[네이버사전]적동광(red copper ore) 커프라이트(cuprite)는 1845 년에 명명된 이름인데 구리 함량에 대한 라틴어 구리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과 화학성분은 Cu2O로서 구리의 산화광물이라는 점이며 대개는 괴상(塊狀), 입상(粒狀)을 이루며, 팔면체 또는 육면체의 작은 결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드물게는 세침상(細針狀)을 이룬다.
굳기 3.5∼4.0, 비중 5.7∼6.1이고 결정형을 나타내는 것은 심홍색이며 반투명하고 금속광택이 강하지만, 괴상인 것은 암갈색이며 불투명한 것으로서 조흔색(條痕色)은 적갈색이다. 특히 세침상인 것은 침동석(針銅石)으로, 비홍색(緋紅色)에 견사(絹絲)광택이 있다.
자연동이나 황동석의 동황화(銅黃化)광물이 산화되어 생성되며, 동광상의 노두(露頭)나 산화대(酸化帶)에 자연동, 휘동석, 코벨라이트, 공작석, 갈철석 등과 함께 산출된다.
순수한 것은 88.8%의 구리를 함유하여 중요한 구리광석이 된다.
위 백과사전 자료 중에 "순수한 것은 88.8%의 구리를 함유하여 중요한 구리광석이 된다"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분석한다면 신라동(新羅銅)은 아무 곳에서서나 산출될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 수 있고 특정지역은 분명히 신라영역과 근원적인 영토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신라(新羅)는 분명이 태양(太陽)을 정체성으로 하는 나라임을 국명에 그대로 나타난다.
바로 라(羅:Ra)이다.
라(羅)는 종교적인 상징성도 있지만 태양열이 직접적으로 와 닿은 곳으로서 기후적으로도 건조하거나 덥거나 하는 지역임을 알게 한다.
전라도(全羅道) 역시 지명의 뜻이 전지역이 신라지역이란 의미를 보태어 기후적인 영역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적동광의 산출지 러시아의 우랄산맥,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산맥, 아탈리아의 사르데냐, 그리고 영국 콘월, 프랑스, 미국의 애리조나, 남미의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지역 중에서 도 가장 세계삼한 역사관점에서 볼 때 근원적인 역사사실관계가 일치하는 곳은 미국의 애리조나와 남아메리카대륙의 칠레 그리고 볼리비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리조나(Arizona)는 대륙 위치에서 서남쪽이니 전라도(全羅道)란 지명에 들어 갈 수 있는 지역이다.
왜냐하면 애리조나는 신라(新羅)의 일부영역이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적동광(赤銅礦)의 산지로서 오래전부터 적동(赤銅)으로 유명한 지역이였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기록을 보면 명(明)사신 동월(董越)이 쓴 조선기행 조선부(朝鮮賦)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다.
五金莫究所產,最多者銅 :(地產銅最堅而赤。食器匙筯皆以此為之,即華所謂「高麗銅」也。) 五色各隨所用,所禁者紅。(以王服御皆紅,故禁之。)
다섯 가지 금(金)에 있어서는 그 캐는 곳을 자세히는 모르나 가장 많은 것은 구리이다. 땅에서 캐는 구리가 가장 단단하고 또 빛이 붉다. 밥그릇과 수저는 다 이것으로 만드니, 즉 중국(華)라고 하는 고려동(高麗銅)이 그것이다.
반도 번역에서는 늘 상 "중국(華)에서 이르길 고려동(高麗銅)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는데 본 블로그는 이것을 "중국(華)이라고 하는 소위 고려동"이라고 표현한다.
다시말해 화(華)는 고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동월이 간 곳 그곳은 애리조나와 멀지 않는 곳임을 추측할 수 있다.
또 한어자료에 아래와 같은 놀라운 자료가 있는데 이 기록을 보면 회교도가 몸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하는 물을 담는 그릇을 고려동(高麗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这是回族等穆斯林日常生活中必不可少的传统盥洗用品。有首回族花儿唱道:“紫铜、青铜、高丽铜,黄铜打下的汤瓶。吃喝不成都能行,没把汤瓶是不行。”
즉 물을 담는 그릇 양병(湯瓶)을 한어사전에 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되고 있다.
1. 더운물을 담는 데 사용하는 아가리가 크고 한쪽에 손잡이가 달린 사기 그릇.
2. 회교도가 몸을 깨끗하게 하는 데 사용하는 물을 담는 그릇
고려동으로 만든 대야, 양병(湯瓶)을 회교도인들이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바로 신라동, 고려동이 나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회교도인들이 밀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라나 고려 가까이에 페르시아를 포함한 회교국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신라를 고려가 통합하였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상기할 수가 있다.
바로 서남아시아를 말하는 것이지만 애리조나를 그려본다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임을 알 수 있고 칠레와 볼리비아를 그린다면 그곳 가까이에 회교국이 있었다는 사실도 추정이 가능해 진다.
다시말해 서남아시아의 회교국들이 근세기에 이곳에서 옮겨간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제 신라동, 고려동의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하였다.
진실된 역사는 언제나 자연의 이치를 기반으로 하는 가능성을 멀리 할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연의 산물에서 발견되는 이치를 현재 역사사실과 동떨어지는 이야기니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적동(赤銅)이 신라(新羅)에서 산출되기 때문에 신라동(新羅銅)이라 하였던 사실과 이 신라동(新羅銅)으로 종(鐘)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 사실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명(明)사신 동월(董越)이 쓴 조선기행 조선부(朝鮮賦)에 붉은 빛이 나는 고려동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기원전 1천년 경부터 청동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낙랑시대의 유적에서는 동족(銅簇), 동인(銅印), 동기(銅器)등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일치하는 것이고 신라와 고려시대의 범종은 고대 일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였다는 사실이 일치하는 것이며 신라동, 고려동이라 하여 주나라와 원나라에 각기 수출되었다는 사실이 일치한다.
또한 명(明)사신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서도 고려동(高麗銅)의 질이 우수하여 당(唐)과 송(宋)에서도 우리나라의 유(鍮)와 동(銅)을 사다가 화폐 또는 그릇을 만드는 원료로 썼다는 사실이 맞아 떨어지며 15세기까지 조선에서 동(銅)의 캐스팅(casting) 즉 주조(鑄造)기술이 좋아서 일본인들이 종(鐘)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계속되었다는 사실과 근세기까지 조선광물지(朝鮮鑛物誌)에 우리나라에서 동(銅)광석이 산출되었는데 바로 적동(赤銅)인 적동석과 그 외 것들이 산출되었다고 열거한 사실 등을 종합하여 비추어 볼 때 한반도에서 동광산(銅鑛産)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임을 물론이고 세계적인 적동산출지를 찾지 않으면 안되게 하고 있다.
반도역사가 이렇게 분명한 사실마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거짓을 기술한 것임을 알게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한반도에 한정되지 않는 바로 세계적인 광물차원에서 광물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세계삼한역사 찾기가 아닐까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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