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조선강역(朝鮮疆域)

한부울 2013. 6. 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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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揆園史話)가 말하는 조선강역(朝鮮疆域)

 

글쓴이:한부울

 

揆園史話

(1)夫朝鮮之地,北連大荒,則凍天氷地,斷我後退之路;西接蒙古,而萬里流沙,斷我左展之臂;西南隣漢土,而無泰岳峻峙‧長江大河之限,則其勢易於進攻,難於防守;東南阻大海,而無前進一步之土。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렵고,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왼쪽의 팔목을 해석하는 것으로 왼쪽은 서(西)쪽이며 오른쪽은 동(東)쪽으로 보아야 맞다.

서남(西南)은 한(漢)나라와 인접,  동남(東南)큰 바다가 막혀있다.

 

揆園史話

(2)余嘗論之,强國之要有三;一曰「地廣而物博」,二曰「人衆而合」,三曰「恒守其性而不失其長」。此所謂地利‧人和及保性也。而朝鮮,則得地利而不全,失人和而亡其性,此萬世之患也。何謂得地利而不全。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였다. 그 첫 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 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인데,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3)摩利之塹城壇,則經四千載而健存,漠南之長城,歷二千餘歲而猶崇墉屹屹,慶州之瞻星臺,過千數百年而尙巍巍然特立。然特立然則人之所肩擔手磨,規矩繩墨之者,能閱累千載而不滅,獨肩擔手磨,規矩而繩墨之之人生,則與腐血杇肉,盡消永滅於黃沙腐土之中,不曾精靈之有留耶? 

마리의 참성단(塹城壇)은 4천년이 지났지만 굳건히 남아 있고, 사막 남쪽의 만리장성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 쭈삣하게 서 있으며, 경주의 첨성대(瞻星臺)는 1천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즉 사람이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긴 것은 능히 수천 년이 지나고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유독 그것을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겼던 사람의 생은 부패한 피와 썩은 살과 함께 모두 사라져서 누른 모래와 썩은 흙 사이로 영원히 없어져 버렸으니, 일찍이 정령(精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위 세 문장은 규원사화에 기록된 것으로서 조선영역에 관한 주요부분을 발췌하여 올린 것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는 다아다시피 북애자(北崖子)가 1675년, 숙종(肅宗1661-1720,재위 :1674-1720) 2년때 애민, 애족의 일념으로 후세에 남긴 기록이다.

그는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진실의 역사이다.

 

이 세 문장 외 규원사화 전문에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종전에 알지 못하던 엄청난 역사사실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실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음이고 해방은 되었다고 하지만 근 70년 가깝게 반도역사로 인한 폐해에서 마구 시달려 오던 우리민족에게 등불과 같은 것으로서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긍지를 가지게 하였으며 또한 우리가 까맣게 모르고 있던 역사사실들을 명확하게 알게 한다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크다 할 것이다.

이 책을 우리가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것이며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위 문장 세개는 우리가 가장 민감하게 느껴야 하는 그래서 아직까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조선강역(朝鮮疆域)에 대해 설명한 것이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실제로 파악되는 지형적인 구도는 진실 퍼즐 조각 그림을 맞추는 것 같은 감동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위 지도그림은 규원사화가 기록한 문장 하나를 토대로 본 블로거가 그려본 것인데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알게 하며 이 기록이 지정하는 실체의 지형과 거의 일치함을 알게 하고 있다.

때문에 동아시아의 한반도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새삼알게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규원사화 (1)번 글에서 첫째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고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이 말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임을 알게 한다.
조선 북쪽에 대황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대황 다음에는 빙판같은 언땅이 거대하게 퇴로를 막고 있다는 말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 지형으로는 도저히 상상히 되지 않는 이야기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을 지정하는 것으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영역을 가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황(大荒)이 무엇인가?
사전에 보면 대황은 지극히 먼곳을 가리키고 황량한 초원을 뜻하는 단어이다.

황(荒)의 본 뜻은 '풀이 땅을 덮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역사에서는 이것을 북대황(北大荒)이라 하여 현 동아시아 흑룡강성(黑龍江省) 눈강(嫩江) 유역을 말하거나 흑룡강 곡지(谷地) 및 삼강평원(三江平原)의 일억(一億)여 묘(畝, 英亩, acre) 즉 일억 에이커에 달하는 광대한 황무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황은 황무지라기 보단 황량한 초원을 말하는 것으로서 풀이 덮혀 있는 땅이라 하였고 글자 앞에 큰 대가 붙어 거대한 초원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황량한 초원 즉 대초원은 협소한 흑룡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거대한 북아메리카대륙 중부(中部)에 있는 그레이트 플레인스(Great Plains), 즉 대평원(大平原)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바로 풀이 덮혀 있는 땅, 대초원(大草原)인 것이다.

북아메리카(North America)에 있는 대초원 프레리(Prairie)와 그레이트플레인스(Great Plains)를 한번 보자.

 

대초원 프레리는 대륙 로키산맥 동부에서 미시시피강(江) 유역 중부에 이르는 2m 내외 풀 즉 장초

(長草)가 자라는 온대 초원지대이며 동서길이가 약 1,000km, 남북길이가 약 2,000km나 된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자료1]

 

그레이트플레인스(Great Plains)는 북아메리카의 중앙, 로키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대평원으로서 네브래스카 주, 노스다코타 주, 뉴멕시코 주, 몬태나 주, 사우스다코타 주, 오클라호마 주, 와이오밍 주, 캔자스 주, 콜로라도 주, 텍사스 주와 캐나다의 매니토바 주, 서스캐처원 주, 앨버타 주를 말하는 것으로 스텝 기후로 단초(短草)초원을 이루는 곳이며 길이가 3,200 km 이고 넓이가 800 km로서 면적은 1,300,000 km²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자료2]


때문에 너무나도 넓고 먼 곳이기 때문에 대황이라고 표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조선강역은 대초원을 넘어 빙판같은 언 땅이 퇴로를 막고 있다고 하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역사에서 흑룡강 지역을 보면 그 넘어 빙판같은 땅이라고 하면 시베리아를 꼽을 수 있는데 시베리아는 흑룡강성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은 지도로 알 수 있다.

황무지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래 지도를 참고 하더라도 동아시아대륙의 흑룡강성은 규원사화가 말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고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다'는 지형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곧바로 확인 할 수 있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그림1]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그림2]

 

그러나 북아메리카대륙의 지형은 거의 흡사하게 규원사화가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

이어 조선 땅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고 이어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다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한반도 서쪽에 몽골이 있다니 말이나 되는가?
한반도 서쪽에는 서해가 있지 않는가?
정말로 놀라운 기록은 그 다음에 펼쳐지는데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 즉 조선의 왼쪽 팔뚝을 끊는다 고 하고 있다.
한반도 서쪽에 무슨 사막이 있어 팔뚝을 끊을 정도란 말인지 이런 이상한 구도에 말문이 막힌다.

이것만 보더라도 결코 한반도를 묘사한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서쪽에 팔뚝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쪽 사막도 조선 땅이라는 말과 같다.

조선의 팔뚝이니 그렇게 해석해야 함이다.
팔 뚝에 손까지는 있다는 것을 생각 할 때 몽고 역시 조선 손과 같다고 여길 수 있고 또한 몽고 역시 조선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다.

때문에 몽고는 고려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자료3]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자료4]

 

그러나 북아메리카대륙을 보자면 위 내용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막이 왼쪽 팔뚝을 끊어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네바다주, 유타주의 거대한 대야 또는 접시라고 풀이 되는 그레이트 바진(Great basin), 남쪽으로 이어지는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의 모하브사막(Mohave), 그리고 애리조나주, 바하칼리포르니아 주 남부, 멕시코 소노라주의 소노란사막(Sonoran)을 들 수 있는데 전체 이어지는 폭 길이가 약 3,000 km 정도이니 만리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위 첨부한 미국거대한 사막의 열감지지도를 보면 1805년-1806년의 기후형상을 보더라도 미국서부지역은 사막이 될 수있는 범위가 광범위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기록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인데 조선 서남쪽에 한나라가 인접하였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우리가 다 아다시피 과거 역사에서 서해 즉 황해를 넘어 대륙이 한나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서남쪽에 한나라가 인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 다른 것이다.

인접(隣接)은 이웃하여 있거나 또는 옆에 닿아 있다는 뜻이다.
닿다 하였으니 거의 붙었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한반도 서남쪽에 한나라가 붙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바다가 있을 뿐 한나라가 붙어있다고 해서는 안될 말이다.

도무지 한반도 지형은 맞아 들어가는 것이 없다.
이 한나라와 조선 사이에는 태산의 험준함도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다 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서해를 생각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육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문장에서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 들어난다.

바로 조선 동남으로 큰 바다에 가로 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는 땅이라고 한 사실이다.
물론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다.
그래서 특별하게 서남, 동남으로 갈라 놓을 이유가 없을 뿐더러 동남쪽이라고 지칭할 만한 곳도 없다.

그냥 서해가 있을뿐이고 남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동남쪽에 바다가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은 바꾸어 이야기 하면 서남쪽에는 육지라는 말이 된다.

때문에 서남쪽에는 한나라가 인접하였다고 했다.

 

이상의 기록된 사실과 밝혀진 내용만을 가지고 우리는 조선강역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사실을 모자라지 않고 충분하게 그려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그림3]

 

그렇게 그려보니 북아메리카대륙이다.

무엇이 부족한가?

 

이에 덧붙여 규원사화가 조선 서남쪽에 한(漢)나라가 인접했다고 한 것에서 한나라는 한족(漢族)을 말한 것인데 이 한족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a)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蕃)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b)古時華夏人種稱呼洛陽盆地四周的外國人為,東夷、西戎、北狄、南蠻。這些外國人,土地大,人口眾多,後來輪流統治「中國」四千多年,人口居於少數的漢族,血統上早已溶入居於多數的異族當中,亡國也亡種,那裏還有漢族?所以,今日的中國歷史以漢族為中心,是假歷史。以下就分析中國自稱的五千年歷史當中,每一時期統治者的血統真相。

옛날에 화하인종은 낙양분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라 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 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그곳에 한족이 있겠는가?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아래 분석은 중국이 자칭하는 5천 년 역사에 있어 각각의 한 시기의 통치자의 혈통의 진상이다.

(c)四千六百年歷史當中漢族被蕃族統治四千兩百年
4,600년 역사에서 한족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다.

 

위는 한어자료에 등장하는 한족에 관한 자료인데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고 있다.

조선과 인접한 곳, 서남쪽에 있었다는 한족과 조선 사이에는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다하여 아주 평평한 지대 육지임을 알게 하였다.

그곳은 바로 멕시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 한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곳 한족은 주위 번족에의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12억명이란 숫자의 한족이 빽빽하게 집거하고 있다는 것이고 1964년 기준으로 통계를 보면 신중국 인구의 94%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이미 근세기 되기전에 한족이 소멸했다고 자료에 나오는데 어찌하여 지금의 한족이 어마어마한 숫자 12억명이나 된다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술에 가까운 사실이다.

근세기라면 적어도 1881년 이전이라고 할 때 그 이후에 한족이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는 이야기다.

역사에서 분명히 사라지고 없는 종족을 새롭게 만들어 요술을 부린 것이다.

번족에 소멸되었다는 나라가 규원사화에서는 조선 서남쪽에 인접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아시아역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한족은 허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조선과 한족은 어디에 있어야 맞는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진실과 합치한다.

위 본 블로거가 그려 놓은 지도와 북아메리카대륙 지도를 겹쳐 놓으면 하나같이 일치한다.

조금도 이설 달 것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선은 당시 위기에 봉착한다는 것이 규원사화의 기록인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규원사화 문장 (1)번에 이어 (2)번으로 옮겨가보면 또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였다. 그 첫 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 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 이것은 지리적인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위 세 가지 조건을 갖추었던 조선이 흔들린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다 해도 온전한 것이 못 된다고 했으며, 조선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라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반도 삼한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현재 역사를 볼 때 이 걱정이 거의 맞아 들어 간 것이 된다.

그래서 북예자는 고민하고 걱정을 한 것이다.

200여년 후를 꿰 뚫고 본 것이다.

당시 땅이 넓어 인종, 종교가 다양하고 서로 이해관계와 관습이 달라 화합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때문에 삼한역사가 제공한 본바탕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그에 대한 근심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다.

마치 현 한반도 사정을 이야기를 미리 들여다 본 것 같기도 하다.

풀어 이야기 하면 당시 조선은 땅을 넓으나 이것을 충분하게 유지 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존재했다는 사실과 함께 서로 화합하지 못했음도 알 수 있다.

때문에 강한 나라의 요건을 갖추었지만 인종, 문화, 종교간 갈등이 증폭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이야기다.

숙종 때라면 유럽역사를 겹쳐 놓을 때 많은 삼한 역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가 밝혔던 바이다.

규원사화의 작가 북애자(北崖子)가 존재한 시기는 1675년으로 바로 숙종(肅宗1661-1720,재위 :1674-1720)때 일임을 알 수 있고 그가 느끼기에 당시 조선인들이 국가관에서 상당히 혼란이 있었음을 예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컨데 이때부터 조선사회에서 균열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마지막으로 규원사화는 조선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예를 들어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3)번 글을 보면 "마리의 참성단(塹城壇)은 4천년이 지났지만 굳건히 남아 있고, 사막 남쪽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 쭈삣하게 서 있으며, 경주의 첨성대(瞻星臺)는 1천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다"란 글이다.

이 문장에 등장하는 건축물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모두 삼한 역사 건축물임에 틀림이 없다.

순서대로 치자면 4000년을 지탱해온 참성단(塹城壇) 이어 2000년을 서 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그리고 1천수백년이 지났음에도 솟아 있는 첨성대(瞻星臺)를 알리고 있다.

아마도 한족이 만들었다면 만리장성은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다.

1675년에도 4000년 견디어 남았다던 마리의 참성단(塹城壇)은 현재 강화도 마니산 산정에 있는 제천단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위 건축물들은 1675년까지 조선 강역에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문제는 사막남쪽에 있었다던 만리장성(萬里長城)이다.

2천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쭈삣하게 서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삼한이 필요에 의해 구축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지도상 연장 길이 2,700㎞이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사막 남쪽이라고 포괄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형상임에도 만리장성이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있어야 한다는데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분명 사막남쪽을 강조한 것을 보면 사막도 만리이지만 이 사막을 경계로 하는 장성 역시 만리라고 상징적으로 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게 볼 때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만리장성은 모택동이에 의해 발생되었다던 대문화혁명기에 수많이 인명이 살상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등 억측이 존재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사막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문제도 더 상세하게 세밀하게 한번 더 추적하고 검토할 필요성이 있으나 규원사화가 적시하는 것에서 볼 때 삼한 건축물이 확실한 것 같다.

마리의 참성단(塹城壇), 경주의 첨성대(瞻星臺), 사막남쪽의 만리장성(萬里長城) 모두 이름난 삼한의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며 얼어붙은 빙판 같은 땅이 퇴로를 끊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고 만리에 뻗친 사막이 왼쪽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태산의 험준함,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는 평범한 육지가 있고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나아갈 수 없는 땅임을 알았다.

지금까지 이와같은 조선강역을 세세하게 알아 보았고 그러한 조선은 강한나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존재했었다는 사실 또한 알아보았으며 또한 조선의 오래된 건축물이 무엇인가도 알아보았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며 진실의 역사로서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 할 이야기들이다.

조선강역은 위의 글을 전제로 한다면 분명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맞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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