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올리브(olive), 감람(橄欖)이 있었던 곳이 바로 고려(高麗)이다.

한부울 2011. 11. 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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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olive), 감람(橄欖)이 있었던 곳이 바로 고려(高麗)이다.

단수수(盧栗, sweet sorghum/sorgho) 역시 조선 영역에서 났다.

 

글쓴이:한부울

 

 

 

일단 올리브라고 하면 올리브유가 생각난다.

사실 우리나라에 이 올리브가 알려진 것은 최근들어서이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일반 서민들이 마트(mart)에서 올리브유를 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라고 볼 때 올리브란 식물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생소하다고 해야 맞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올리브나무가 남유럽을 원산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올리브의 어원을 살펴보면 사전의 뜻에서 올리브 잎가지를 평화, 화해의 상징으로 나온다.

‡olive [ɑ́liv / ɔ́l-] n.

① 〖식물〗 올리브(나무) (남유럽 원산의 상록수); 올리브 열매.

② 올리브 잎으로 짠 고리, 올리브 잎·가지(평화·화해의 상징); 올리브 목재.

③ U 올리브색.

④ 달걀 모양의 단추[핀].

⑤ (pl.) 고기 저민 것을 채소로 싼 스튜 요리.

이 올리브를 유럽에서는 신성(神聖)식물로 받아들여졌다 한다.

올리브 잎가지를 평화, 화해의 상징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올리브를 우리삼한 역사서에서는 감람(橄欖)이라 하고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올리브의 특징이다.

올리브나무는 자가수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료에는 DNA가 동일한 꽃가루에는 반응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에 자가수분이 불가능하다했다.

자가수분은 유전적 다양성을 줄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식물은 기본적으로 자가수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였다

올리브는 끈질긴 생명력과 건강한 번식을 위하여 자가수분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였고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장 적절한 고도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변화가 아닌가 여겨진다는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매우 긴 수명을 가지며 20년이 지나야 비로소 성장이 되는데 약 35년-150년 산 된 나무가 가장 좋은 품질의 올리브 오일을 생산한다 했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2,000년 된 나무도 있다 한다.

자가수분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약 35년 이상된 나무에 좋은 품질이 열린다는 것은 원산지 이외 지역에서 번식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말해 올리브는 태생적으로 한반도에 성장 할 수 없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설마 이 올리브가 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나온다 하여 한반도 고려에 난 것이라고 상상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올리브를 우리사서의 기록을 찾아보니

선화봉사고려도경, 계산기정, 다산시문집, 성호사설, 완당전집, 해동역사등에서 올리브의 대한 기록이 나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알려진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올리브에 대해서 실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다.

그러함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실제 역사와 생활환경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반도 일반서민들 생활에 직접 맞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전 기록은 위에 열거했듯이 일상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친숙한 식물임을 알게 하고 있다.

기록에서 마치 스페인이나 레바논을 보는 듯한 것이다.

도대체 앞 뒤가 맞지 않으니 어떻게 된 영문일까?

한반도 역사를 가지고 무엇을 파헤치다 보면 늘 접하는 이상함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는 원래 우리의 역사 기록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이 된다.

즉 이 한반도는 우리역사의 근원지가 아님을 새삼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다.

 

먼저 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高麗)부인, 귀부(貴婦)의 화장은 향유(香油)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눈썹은 넓고, 검은 비단으로 된 너울을 쓰는데, 세 폭으로 만들었다.

폭의 길이는 8척이고,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이 땅에 끌리게 한다. 흰 모시로 포(袍)를 만들어 입는데 거의 남자의 포와 같으며,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넓은 바지를 만들어 입었는데 안을 생명주로 받치니, 이는 넉넉하게 하여 옷이 몸에 붙지 않게 함이다. 감람(橄欖)빛 넓은 허리띠(革帶)를 띠고, 채색 끈에 금방울(金鐸)을 달고, 비단(錦)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는데, 이것이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perfume (spice) bag]

 

여기서 올리브에대한 이야기는 뒤로 돌리고 먼저 검은 비단의 너울이라 한 부분에 대해서 따져 보기로 하자.

고려 귀부인들이 쓰는 너울 폭의 길이가 8척이라 했으니

후한척(後漢尺. 23㎝)과 진전척(晉前尺. 23.1㎝), 서진척(西晉尺. 약 24㎝), 동진척(東晉尺. 약 25㎝)을 적용하면 대략 2m 정도의 길이다.

거의 길이가 2m 정도의 검은 비단 너울이라고 하였으니 늘어뜨린 모습이 고상하였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 너울로 부인의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이 땅에 끌리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평상시 알고 있는 조선여인의 장옷이 아닌 것이다.

바로 아랍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도르같은 너울인 것이다.

아랍지역의 여인들이 사용하는 너울은 보통 히잡(hijab)과 차도르(chador)가 있고 이는 무슬림 여성들이 외출시 착용하는 베일의 일종인데 히잡은 머리에 쓰는 스카프이고 차도르(chador)는 눈과 얼굴만 들어내고 온몸을 감추는 베일이다.

이것을 고려시대 때 비단 너울이라고 한 것이다.

바로 터키 여인들의 너울인 것이다.

 

 

 

                                                        [한반도표 너울]

 

우리가 아는 사극에 나오는 장옷은 한반도표 너울이고 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나오는 고려국 여인들이 사용한 너울은 터키여인의 너울처럼 고려연합제국표 너울인 것이다.

 

또한 고려부인의 허리띠를 감람(橄欖) 빛 올리브(olive)색을 하였다고 나온다.

 

 

 

 

그 색깔은 위의 그림과 같다.

 

검은 너울에 허리띠를 올리브색 허리띠를 둘렀다 하였으니 색깔의 조화가 기막히다.

여인의 신비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듯하다.

그기다가 향낭(香囊)까지 찼으니 얼마나 아름다웁겠는가?

그만큼 올리브색깔의 자연스러운 멋을 고려 여인들이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올리브가 고려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묻어있거나 친숙하게 다가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너울은 멱라(冪羅), 여화(汝火), 나화(羅火), 나올(羅亐), 너울립(羅亐笠), 개두(蓋頭), 개수(蓋首), 면사, 라우라고도 하였는데 영어로는 베일(vail)이다.

고려시대의 몽수(蒙首)이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두(蓋頭)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늘 사극에서 보는 개두와는 형질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보던 개두는 바로 한반도 역사의 개두(蓋頭)일뿐이다.

반도사에서 고려연합제국의 부족인 몽골제국에 지배받았다 하였기 때문에 몽(蒙)자만 들어가면 수동적으로 전해 받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몽(蒙) 역시 고려와 상맥(相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거짓역사가 아닌 진짜역사, 참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Veiled Turkish Lady-1880s Albumen Photograph

 

또 이 올리브를 다산시문집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거문고 즐기기를 감람(橄欖, 올리브열매)처럼 즐긴다고 한 구절에서 이 감람을 늘 가까이에 두고 즐긴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에서 생활에 직접적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식물이고 열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계산기정, 음식(飮食)편에 보면 여러 가지 즐기는 차를 설명한 것인데 이곳에서 감람차(橄欖茶) 즉 올리브차가 나온다.

이 올리브차도 조선인들이 즐겨 음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성호사설에 감람(橄欖)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보면

《이물지(異物志)》에 상고하면, “감람은 처음 입에 넣으면 조금 쓰나 물을 마시면 다시 단맛이 난다.”고 하였으니, 안자(顔子)가, “쳐다보고 올라갈수록 더욱 높고 파고 들어갈수륵 더욱 단단하며, 보면 앞에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뒤에 있도다[仰鑽瞻忽].”라고 한 말은 쓴맛에 비유할 만하고, “우뚝 선 것이 있는 듯하다[有立卓爾].” 한 말은 단맛에 비유할 만하겠다.

지금 당귀초(當歸草)도 역시 이 감람과 같다. 입에 넣고 씹은 후에 찬물을 마시면 맛이 이상스럽게 달고 시원하다.

 

위 성호사설의 글은 감람차를 구체적으로 늘 상용하던 깊은 맛을 재미있게 표현 한 것을 알 수 있다.

늘 평상시 마시던 차에 대한 설명이 날 수 없다.

 

특히 완당전집을 보면 이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 한 것인데

장기(瘴氣) 비, 장기(瘴氣) 바람, 장기(瘴氣) 열이 가을로 들어 다시 심하기는 하나 앞으로 이여드레만 지나가면 쾌히 청량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니 서풍을 손꼽아 헤아려 봄에 감람(橄欖)은 당연히 단맛이 돌고 단수수는 차츰 가경(佳境)으로 향해가니 밝은 대자리 성근 발에도 역시 이런 맛이 이는지요?

 

먼저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를 장기(瘴氣) ,장독(瘴毒)이라 하는데 분명 위 글의 장소 기후가 아열대기후인 올리브가 집중적으로 재배되는 지중해 연안 날씨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면 감람 즉 올리브열매가 단맛이 들 때로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서정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기록인 것이다.

올리브열매가 대부분 쓴맛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외적으로 어떤 올리브는 나무에서 익어서 단맛이 나는 것도 있다.

쓰지만 물을 마시면 단맛이 돈다는 것도 알게 하고 있다.

감람의 단맛을 못 잊어하는 듯한 글의 소제라고 볼 수 있다.

 

완당전집에서는 이 올리브 뿐만아니라 열대작물 단수수(盧栗, sweet sorghum/sorgho)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 한반도 고려에서는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올리브는 아열대지방, 단수수는 열대지방의 작물이다.

하지만 실제 완당전집에서 단수수의 단맛을 기다리는 듯한 표현이 강하다.

이 단수수(盧栗, sweet sorghum)는 노율(盧栗)이라고도 하는데 자료에는 사탕수수와 또 다른 식물이라고 하였고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지라 했다.

한해살이 재배식물이지만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아프리카이다.

1850년대 이후 미국에서도 재배되었다 한다.

단수수에서 추출하는 시럽생산은 앨라배마, 아칸소, 조지아, 아이오와, 켄터키, 미시시피,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테네시에서 재배하고 생산된다.

시럽과 핫 비스킷은 남부 미국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라 하였다.

시럽 팬케이크, 맷돌에 간 걸쭉한 죽, 태운옥수수 등은 핫 시리얼에 사용된다.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

 

 

 

단수수(sweet sorghum)는 수수의 변종으로 수수와 겉모양이 거의 같으며 줄기는 9∼12개의 마디가 있고 속이 차 있으며 높이가 3m이고 지름이 1∼2.5cm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50∼60cm, 폭이 6cm이며 끝이 처진다. 처음에는 잎과 줄기가 녹색이지만 적갈색으로 변한다.

꽃은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줄기 끝에 많은 수가 빽빽이 달린다.

종자의 색은 흰색·붉은 색·갈색·검은 색 등이다.

성장하는 동안은 강우량이 많아야 하지만 성숙기에는 적은 것이 좋으며 가뭄에 대한 저항성이 매우 강하다고 했다.

기후에 대해 잘 적응하므로 열대작물이면서도 온대에서도 재배하여 사탕수수보다 재배 분포가 넓다고 했다.

줄기에 10∼16%의 당분이 들어있어 감미료로 이용하는데 사탕수수와는 달리 비결정 포도당을 많이 가지고 있어 물엿과 같은 시럽의 원료로 이용한다.

가축사료로도 쓰이는데, 어린 식물체의 잎과 줄기에는 시안산 배당체가 들어있어 어릴 때에는 사료로 쓰기 어렵고, 높이가 1m 이상 자란 후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

종자는 녹말이 많아 가축의 먹이는 물론 식용한다.

당 발효를 거쳐 알코올 제조의 원료로도 쓰이고 퇴비·연료로도 이용한다. 단수수의 종류에는 당을 생산할 목적으로 재배하는 것과 사료용으로 재배하는 두 가지가 있으며, 당 생산용은 다시 설탕제조용과 시럽제조용으로 구분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조선 말기의 학자·서화가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시문집에서 나타나는 글인데 단수수란 의미는 매우 강하다.

김정희가 이 단수수(盧栗)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곳은 분명 한반도는 아닐 것이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올리브나 단수수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나 기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곳은 진정 한반도를 가르키는 것은 아니다.

올리브는 지중해연안을 가르키는 것이며 단수수는 아프리카를 가르키고 있다.

이러한 광역에 역사를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모두 고려와 조선이 관계되는 이야기다.

 

이와 더불어 끝으로 이러한 고려나 조선의 자연환경에서 나온 고려병(高麗餠)을 또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려병은 송편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수한 고려 빵이나 과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실제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 적어도 이 한반도에서는 없다.

高麗餠。卽松餠。粟切餠之屬也。高麗堡所賣。而依樣我國餠。故稱高麗餠。

고려병(高麗餠)은 즉 송병(松餠)으로 속절병(粟切餠) 등이다. 고려보(高麗堡)에서 파는 것인데, 우리나라 떡을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고려병이라 부른다.

 

고려병(高麗餠)이라 하여 당시 고려연합제국에서 유명하였다면 당시 선진 고려땅을 방문하는 무역상인이나 여행객이나 관광객들이 이를 먹어보고 고려병(高麗餠)이라 했을 것인데 송편은 절대아님을 알 수 있다.

나름대로 독특한 빵이나 과자라고 생각되는데 정작 위 번역문에서 보다시피 우리의 민속학자들은 이것을 추석에 먹는 송편, 속절편 즉 떡이라고만 하고 있다는 한심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빵이 난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추석(秋夕)때 먹는 중국의 월병(月餠)처럼 단맛의 소(蓉)를 많이 넣어 만든 둥근 과자형태의 빵이 아닐까 생각된다는 점이다.

아니면 아랍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병 쿱즈(Khubz) 같은 대중적인 빵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고

고기와 치즈 야채같은 고명들을 올리고 전병을 접어서 구워내는 괴즐레메(Gozleme)가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아마도 터키나 아랍, 중앙아시아에서 유명한 빵이나 과자 성질의 형태를 찾아보면 고려병이 나올 것도 같기도 하다.

이 올리브가 고려에서 나왔다는 사실과 단수수가 조선인에게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작물이었다면 고려인이나 조선인들 가까이에 존재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곳이 바로 고려연합제국의 땅이고 대륙조선의 영역인 것이다.

어떤 형태의 빵인지 모르지만 실제 고려병의 실체가 나타나면 아마도 한국인들은 모두 놀라 자빠질 것이고 비로소 반도사가 거짓의 역사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제쯤 이러한 기막힌 역사현실을 알런지...답답한 마음이 한없이 든다.

우리의 역사 현실이 이러함을 어떡하랴.[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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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橄欖, olive)

 

橄欖(学名:Olea europaea),又稱油橄欖,古称齐墩、阿列布

分布-原产于地中海、亚洲和非洲

The olive tree, Olea europaea, is an evergreen tree or shrub native to the Mediterranean, Asia and Africa.

 

                                    油橄欖(Olea europaea),葡萄牙里斯本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双子叶植物纲 Magnoliopsida

目: 脣形目 Lamiales

科: 木犀科 Oleaceae

屬: 木犀欖屬 Olea

種: 油橄欖 O. europaea

 

二名法

Olea europaea L.

 

 

지중해지방이 원산이고 잎이 작고 단단하며 비교적 건조에 강하기 때문에 레바논에서부터 카스피해 남단 이란 북부지역에 주로 분포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재배된다.

올리브의 가지는 비둘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이다.

이는 구약에서 대홍수의 후 육지를 찾기 위하여 노아가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가지고 돌아온 고사에 의한다.

 

올리브는 자가수분이 불가능하다.

DNA가 동일한 꽃가루에는 반응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

 

자가수분은 유전적 다양성을 줄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식물은 기본적으로 자가수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꽃은 암술머리가 수술보다 높게 올라가서, 아래로 떨어지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지 않도록 한다. 붓꽃 같은 경우에는 암술머리와 수술 사이에 꽃잎과 같은 구조가 생겨서 둘 사이를 물리적으로 차단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올리브는 끈질긴 생명력과 건강한 번식을 위하여 자가수분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장 적절한 고도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변화가 아닌가 한다.

 

올리브는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이집트, 로마제국 때부터 거룩한 나무로 숭배되었으며 올리브 열매와 올리브 오일은 종교,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 올리브 나무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95%가 스페인, 이태리, 그리스 등지의 지중해 연안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 중 스페인이 최대 생산국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가 19세기말에 인상주의 그림을 그려 널리 알려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방 부슈뒤론 주의 도시 아를(Arles)에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고령인 잔 깔망 농부에게 121살 생일날 장수의 비결을 묻자“매일 올리브 오일을 먹어 오래 살게 되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근에 올리브 오일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장병, 동맥경화증, 위장병, 담석, 변비, 피부병, 식중독 등에 좋다는 사실이 임상적으로 증명됨에 따라 북유럽과 미국에서도 올리브 오일을 매일 먹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식용뿐만 아니라 치료용품, 화장용품, 제례용품 등에도 고대 때부터 사용되어 왔고, 상처를 소독하고 새살을 돋게 하는데 포도주와 올리브 오일만한 것이 없었다.

위대한 치료제. 올리브의 열매와 올리브 오일을 사용해‘푸딩&올리브 Spring’과 비타민 가득 담긴 시금치와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블랙 뽀빠이’, 올리브와 새우가 만난‘새우 올리브 조리빵’제품을 소개한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주는 유럽에서 나오는 올리브 중 3분의 1을 생산한다.[인터넷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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橄欖(学名:Olea europaea) 

 

 

 

                                         An ancient olive tree in Pelion, Greece

 

                                             Olives being home-pickled

 

           Olive tree “Olea europea” on Bar, Montenegro which is over 2,000 years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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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고려도경 제20권

송(宋)나라 휘종(徽宗)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徐兢 1091∼1153)고려 인종 1년(1123)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책.

부인(婦人)

귀부(貴婦)

婦人之飾。不善塗澤。施粉無朱。柳眉半額。皁羅蒙首。製以三幅。幅長八尺。自頂垂下。唯露面目。餘悉委地。白紵爲袍。略如男子製。文綾寬袴。裏以生綃。欲其褒裕。不使著體。橄欖勒巾。加以采絛金鐸。佩錦香囊。以多爲貴。富家藉以大席。侍婢旁列。各執巾甁。雖盛暑。不以爲苦也。秋冬之裳。間用黃絹。或深或淺。公卿大夫之妻。士民游女。其服無別。或云王妃夫人。以紅爲尙。益加繪繡。國官庶民。不敢用也。

 

부인의 화장은 향유(香油)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눈썹은 넓고, 검은 비단으로 된 너울을 쓰는데, 세 폭으로 만들었다. 폭의 길이는 8척이고,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이 땅에 끌리게 한다. 흰 모시로 포(袍)를 만들어 입는데 거의 남자의 포와 같으며,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넓은 바지를 만들어 입었는데 안을 생명주로 받치니, 이는 넉넉하게 하여 옷이 몸에 붙지 않게 함이다. 감람(橄欖)빛 넓은 허리띠(革帶)를 띠고, 채색 끈에 금방울[金鐸]을 달고, 비단[錦]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는데, 이것이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부잣집에서는 큰자리를 깔고서 시비(侍婢)가 곁에 늘어서서 각기 수건(手巾)과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데 비록 더운 날이라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가을과 겨울의 치마는 간혹 황견(黃絹)을 쓰는데, 어떤 것은 진하고 어떤 것은 엷다.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처와 사민(士民)의 처와 유녀(遊女 기생)의 복색에 구별이 없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왕비(王妃)와 부인(夫人)은 홍색을 숭상하여 더욱 그림과 수를 더하되, 관리나 서민의 처는 감히 이를 쓰지 못한다.’고 한다.

 

[주]너울은 멱라(冪羅)라고도 한다. 당대(唐代)에 중앙아시아에서 당에 들어온 것으로, 신라 때 이를 사용하였느냐는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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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정(薊山紀程)제5권

조선 순조 때 동지사의 서장관 서장보(徐長輔)를 따라 연경(燕京)을 다녀온 문신 이해응(李海應 1775-1825) 사행 기록을 1804년 편찬

부록(附錄)

음식(飮食)

茶有各種。其名不一。如龍井茶是上品。只杭州有一畒田取種。又銀鎗茶,松蘿,碧蘿,春茶,旗鎗,式彝,大葉,香片,湘潭,老君眉,橄欖茶,普洱茶,白毫茶,靑茶,黃茶之屬。是也。黃茶則燕人無吸者。只賣於遼瀋市上。又東八站茶貴處。或以炒米代之。謂之老味茶。

 

차에는 갖가지 종류가 있어 그 이름은 하나만이 아니다. 용정차(龍井茶) 같은 것이 상품인데, 오직 항주(杭州)에 1묘(畝)의 밭이 있어 씨를 받는다. 또 은창차(銀鎗茶)ㆍ송라(松蘿)ㆍ벽라춘차(碧蘿春茶)ㆍ기창(旗鎗)ㆍ식이(式彛)ㆍ대엽(大葉)ㆍ향편(香片)ㆍ상담(湘潭)ㆍ노군미(老君眉)ㆍ감람차(橄欖茶)ㆍ보이차(普洱茶)ㆍ백호차(白毫茶)ㆍ청차(靑茶)ㆍ황차(黃茶) 따위가 이것이다. 황차는 연경(燕京) 사람 중에는 마시는 자가 없고 오직 요동과 심양(瀋陽)의 시장에서만 팔며, 또 동팔참(東八站)은 차가 귀한 곳이라, 혹 쌀을 볶아 차를 대신하니, 그것을 노미차(老味茶)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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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14권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저술한 방대한 분량의 전집

제(題)

장상인(藏上人)의 병풍(屛風)에 제함

바람 피하기를 원거(爰居 새 이름)처럼하고, 비 피하기를 개미처럼하고, 더위 피하기를 오(吳)나라 소처럼 하는 것은 역시 내가 싫어하는 바와 어긋나는 것이고, 글을 감자(甘蔗 사탕수수)처럼 즐기고, 거문고를 감람(橄欖 감람나무의 열매로 맛이 좋음)처럼 즐기고, 시를 창잠(昌歜 창포 김치)처럼 즐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대로 된 것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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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星湖僿說) 제6권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책

만물문(萬物門)

감람(橄欖)

퇴계(退溪)는 간재(簡齋)의 시에,

감자를 먹으면서 아름다운 경지가 멀다고 하지 말라 / 莫言啖蔗佳境遠

감람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것을 모두 먹게 된다 / 橄欖甜苦亦相幷

라 한 말을 인용하였다. 《이물지(異物志)》에 상고하면, “감람은 처음 입에 넣으면 조금 쓰나 물을 마시면 다시 단맛이 난다.”고 하였으니, 안자(顔子)가, “쳐다보고 올라갈수록 더욱 높고 파고 들어갈수륵 더욱 단단하며, 보면 앞에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뒤에 있도다[仰鑽瞻忽].”라고 한 말은 쓴맛에 비유할 만하고, “우뚝 선 것이 있는 듯하다[有立卓爾].” 한 말은 단맛에 비유할 만하겠다.

지금 당귀초(當歸草)도 역시 이 감람과 같다. 입에 넣고 씹은 후에 찬물을 마시면 맛이 이상스럽게 달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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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전집(阮堂全集) 제4권

조선 말기의 학자·서화가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시문집

서독(書牘)

기십삼(其十三)

장기 비 장기 바람 장기 열이 가을로 들어 다시 심하기는 하나 앞으로 이여드레만 지나가면 쾌히 청량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니 서풍을 손꼽아 헤아려 봄에 감람(橄欖)은 당연히 단맛이 돌고 단수수는 차츰 가경(佳境)으로 향해가니 밝은 대자리 성근 발에도 역시 이런 맛이 이는지요?

삼가 묻노니 가을 초에 영감의 정후 동지(動止)가 두루두루 안길하신지 우러러 비외다. 근자에 들은 바 선비들에게 과제(課題)를 매우 부지런히 하여 심지어 관동(官僮)의 무리들에게까지도 역시 능히 수서(殳書)를 쓰고 경병(競病)의 시를 배우게 한다니 매우 좋은 일이구려.

사람의 재주는 각기 천분(天分)이 있고 당초에는 남ㆍ북의 한계가 없는데 특히 눈 밝은 사람의 개발ㆍ인도가 없었던 것이지요. 과연 혜식(慧識)이 초월하고 특이한 자가 있는지요.

이 고장의 큰 병폐는 안일한 데에만 주저앉고 태산의 정상을 향하여 다시금 한 걸음 더 내딛고자 아니 하니 매양 탄식하여 마지않사외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적에 자못 구경(九經)의 빛을 보여 주고 문선(文選)의 이(理)를 설명해 주었는데 모두가 당황만 하고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마치 모기부리가 철벽을 만난 것과 같았으며 혹 와서 묻는 것이 있다면 이는 《사요취선(史要聚選)》 따위였고 아니면 무슨 글제의 서두와 목을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는 것뿐이었소. 대개 그들의 평소 견문이 옛 삼가 촌락의 도도평장(都都平丈)에 벗어나지 못하니 그럴 밖에 또 있겠소. 만약 관사(官師)의 존위에 처하여 큰 역량으로써 바람을 일으켜 한 번 외치는 일이 있다면 제(齊)가 변하고 노(魯)가 변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이 생각되었는데 영감의 이 행사를 듣고서는 눈을 닦고 기다리외다.

누인의 병은 이 마지막 더위를 당하여 더하기만 하고 덜함은 없으며 집소식조차 사뭇 막히니 아득아득 북쪽만 바라볼 따름이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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