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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려몽 일본원정으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글쓴이:한부울
원본 2015.04.25 21:02 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대한제국 6편]
역사지명찾기결과
송고려, 원고려시대에는 세계 제1의 무역항 자이톤(Zaiton)-플로리다 마이에미(Miami)
루이지에나주(Louisiana)- 점성(占城:Champa)
경사(京師) 항주(杭州) 킨사이(Quinsay)-버지니아의 페테스부르크(Petersburg)
북평(北平)이라고도 하는 대도(大都:Great Capital) 캄발루크(Cambaluc)-워싱톤(Washington, D.C)
돌이켜 보면 본래 일본(日本)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포르투갈이었으며 네덜란드로 넘어가다가 잉글랜드에 귀속되었으며 이들이 자본으로 결집하자 유대인계 독일인이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유대자본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루미나티가 탄생하여 거대한 금융조직체가 만들었으며 그것의 힘으로 오늘날 서세의 파워 미국을 탄생시킨 것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의 막판 결집력은 자본주의로 나타났다는 것은 충분하게 이해되는 사실이다.
1.2차세계대전이 발발되기전까지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카리브해, 그리고 남아메리카대륙 브라질을 포함한 동북부를 중심으로 근거하면서 유대자본에 의해 세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1881년 하나의 체제였던 대조선을 감쪽같이 해체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막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들의 파워부리기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전세계국가들이 산업경쟁과 자본경쟁에 따른 물질풍요가 주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며 이를 따라 하나같이 자본주의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고 결국 유대금융자본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서세들이 세계금융자본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2차세계대전발생전까지 북아메리카대륙 마저도 완전하게 서세가 지배한 것이 아님도 알 수가 있다.
그것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여기는 동양땅이라고 불러야 하는 북아메리카대륙 미시시피강 서부와 중앙아메리카대륙 및 남아메리카대륙 서부에는 만국조천(萬國朝天)이라고 하던 대고려(Great Corea)가 스페인부왕령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기때문이며 서양땅인 아시아유럽대륙전체를 사서명 악라사라고 하고 서세명 그리트 타타르라는 주체가 장악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이것을 자본력으로 돌파한 사건이 바로 1.2차세계대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본래 한자로 일본(日本)을 가르키는 복건어(福建語:Hokkien) 지판국(Jih-pen-kuo)이라는 실체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는 것은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무역상의 아들이었으며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가 쓴 세계 불가사의서(世界不可思議書)가 정식명칭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동방견문록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 황금향인 지팡구(Cipangu. Zipangu)란 지명이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자료에 하나같이 꿰 맞춘 것 같이 등장하는 똑같은 일치된 내용이다.
황금향이라 하였으니 황금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이곳을 찾아 물욕에 어두운 많은 사람들이 벌떼깥이 모여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책 한 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이다.
일본이란 이름은 이렇게 서세들에 의해 물질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상징적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 본산을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을 서세 일본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고 역사지속적으로 일본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였던 세계삼한이 "하나의 체제"에서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황금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으로 하여금 원천적으로 생성되는 소유욕을 막았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 있는 서세집단, 해적이나 범죄집단들에게 이런 구체적인 소문전달은 불에 기름붓듯한 것으로 일시에 굳건하던 체제자체를 흔들 수 있는 기반으로서 충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온갖 쓰레기같은 자들이 넘쳐나도록 몰렸을 것이 틀림 없다.
966년에 펴낸 아랍의 지리학자 알 마크디시(Muḥammad Ibn Aḥmad al-Maqdisῑ)의 "창세와 역사서"에 황금이 지천으로 널려 있던 곳을 신라땅이라고 한 사실 또한 마르코 폴로보다 이른 시기이며 신라와 지팡구가 중첩이 된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페르시아, 사산왕조가 아랍이라면 신라이고 신라는 아랍을 정복한 세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당연하게 들리는 것도 있다.
생각해보라.
고려가 병합한 신라가 스페인부왕령과 관계하고 그곳에 황금향인 캘리포니아(California)와 콜럼비아(Columbia) 두 지역에 역사적으로 근거하는 것은 신라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근세기에 이 두 지역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황금(黄金)광산지역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검증이 되었다는 것이며 이곳을 마르코폴로나 마크디시가 황금향, 엘도라도라도 하였을 확률이 높고 이를 아랍인들이 신라땅이라고 주장한 사실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지팡구란 지명이 지협적인 것이라면 신라가 지배하던 땅임도 알 수가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골드러시(gold rush)로 여러면에서 확인 된 곳이지만 콜럼비아에 대한 사서기록은 조선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타나는 것에서 알 수 있는데 본 블로그에서 이를 해석하길 故生金较多。黄金本日精。白金本月华。故近赤道之地。多金銀也 '생금이 비교적 많이 나며 황금은 태양처럼 깨끗하고 백금은 달처럼 빛난다. 그곳은 적도 가까운 곳으로서 금과 은이 많이 나는 땅'이라 하였고 《地毬圖》呂宋國多黃金 '여송국은 황금이 많다' 하였으며 《職方外紀》北亞墨利加州內。金加西蠟地。金銀至賤。'북아메리카주내 금가서랍(金加西蠟:Castilia Del oro)은 황국왕국이며 금은이 지천으로 깔렸다'한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금가서랍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그린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서 남아메리카대륙 북부 콜럼비아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미 본 블로그 글 "금(金)으로 본 시팡구(Cipangu)와 여송국은 콜롬비아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421"에서 명확히 확인했던 사실이다.
어쩌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란 것은 동방(東方,東邦)을 바꾸려는 서세의 음흉한 계획에 의한 음모의 터널로서 시발점 즉 입구같은 것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고 하는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역시 이책에 현혹되었다 하여 연결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문에 그가 반드시 황금향을 향해 동인도제도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서양사학자들이 설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분히 신대륙발견이 종교적관념보다 물욕적인 재물탐욕에 의한 인간한계심리가 먼저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기독교가 물욕의 상징처럼 의도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계삼한역사를 탐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마르코폴로에 이어 콜롬버스마저도 서세가 기획한 역사판짜기에 그저 동원된 인물이라 할 수밖에 없고 가치를 논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인물들이다.
마르코폴로가 기록한 황금향이라는 지팡구가 기실 동아시아대륙에는 없었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캘리포니아와 컬럼비아 처럼 풍부한 황금광산이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이 숨기려고만 하는 아메리카대륙에는 황금향(黃金鄕), 엘도라도(El Dorado)라고 할 만한 곳은 참으로 지천에 늘려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골드러시라고 하면 근세기 1848년 이후에 등장한 용어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캘리포니아 콜로마(Coloma)에서 가까운 서터스 밀(Sutter"s Mill)이란 지역에서 1848년부터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같지만 아랍인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966년부터 전해진 소문, 풍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13, 14세기의 마르코폴로, 콜럼버스뿐만아니라 이와 비슷한 물욕에 어두운 자들이 목숨까지 담보하면서까지 그 이전부터 무작정 캘리포니아와 컬럼비아를 향해 무리지어 상륙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그곳은 인구밀집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서부가 개척되기 전이니 서세가 함부로 당도할 수 없었던 곳으로 상당기간 보호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황금향이 전혀 없는 동아시아대륙을 마르코폴로가 지정했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근세기에 거대한 자본을 손에 쥔 서세들은 결국 기독교 기원지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새벽녘부터 시작된 동방역사가 태고적부터 자리잡은 곳을 기존 역사문화가 없는 개척이 필요한 미개한 땅으로 만들고 그곳에는 원시인같은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물소를 양식으로 생존하던 신대륙이라 하여 그곳을 기독교기원지로 만들어야 했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동방이어야 하는 땅 아메리카대륙을 숨기는 대신 동아시아대륙을 동방이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마르코폴로 같은 거짓말장이가 필요하였으며 콜럼버스같은 어설픈 탐욕장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르코폴로가 간 곳을 동방이라 굳이 고집하는 것은 지금의 열도를 의식한 것이다.
그곳을"해돋는 땅"인 것처럼 날조하였고 몽고원정이 애초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현 열도일본을 맞추기 위해 모든 역사를 말도 안되게 엉터리로 맞추었다는 것 이외 다르게 볼 것이 없다.
서북부태평양 정면을 막고 있는 일본열도에 애초부터 피침역사가 없었다는 설정 또한 얼마나 해괴한 말 장난인가 알 수 있는 것은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상륙하고 예수회만 전파했다고 한다.
다른 곳은 그들이 도착하면 살상하거나 땅을 빼앗고 그곳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인데 유독 일본 나카시키는 예수회신성지같이 보호한다?
그 이전 이미 일본열도는 대고려 그리이트 타타르 땅이라는 것을 여러지도에서도 확인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지금 일본해가 "SEA OF COREA" 란 사실이 곳곳에 나타난다.
그것이 사실정황이다.
일본열도가 자리 잡은 것은 미국이 2차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역사 려몽일본원정 즉 1차 원군침일전쟁(元軍侵日戰爭)을 잠시한번 보자.
기존역사는 한반도와 열도사이에 대한해협을 지나 쓰시마에서 멀지 않는 후쿠오카 하카타(博多港)만에 갑자기 발생한 소용돌이 태풍을 신풍(神風)이라 하면서 신비하게 만들었던 역사이다.
이상하게 고려군은 보호되고 려몽원정군 중 특히 원군만이 전부 바다에 익사했다고 하여 이것을 가미가제(Kamikaze, 神風)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그들만의 역사소설같은 이야기일뿐이다.
실제로 이와같다면 지금 열도가 아니라 카리브해 근방에서 해마다 6월에서 12월까지 불어오는 하리케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1차원정을 상황을 [엔하위키]에서 다음같이 설명한다.
1274년 음력 10월 20일과 21일 사이 새벽, 하카타 만에 대폭풍이 몰아쳤고 이는 연합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함선 900척의 전함중 200척이 하룻밤 사이 침몰했기 때문에 연합국측에서는 철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다음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특히 음력10월20.21일은 양력으로 11월 26.27일이므로 11월 하리케인이 어디에서 주로 발생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놀랍게도 쿠바 한폭판을 가르고 있다.
려몽일본원정때 일본은 쿠바에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열도학자나, 친일역사학자들이 나서 열도를 일본 본거지라고 침을 팅기겠지만 이 자료 한방에 그러한 주장을 일쇄시킬 수 있는 근거로서 충분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확인 한 것이다.
이렇게 1차원정이 성과 없이 끝나자 다시 고려는 2차 공격하게 되는데 특이한 것은 려몽2차일본원정에서 함선 3500척에 강남군(江南軍)10만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도대체 강남군이 무엇인가?
현 동아시아대륙 양자강 이남을 강남이라 하는가?
이미 쿠바라고 한 마당에 그것이 통할이야기가 아니다.
이 강남에 대해 본 블로그에서 [1]"강낭콩(菜豆)으로 본 강남(江南) http://blog.daum.net/han0114/17050629", [2]"망강남(望江南:Senna occidentalis)으로 본 강남(江南)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0 ", [3]"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 "에서 이미 중앙아메리카의 후금(後金, 喉衿) 즉 목구멍 내로우넥(Narrow Neck)이라고 하였으니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명백백한 사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가 있다.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가 그린 위 지도가 비록 1474년에 재해석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메리카대륙을 통째로 빼먹은 것 같지만 중앙 바다를 대서양으로 본다면 거의 정확하게 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세학자들은 이 바다를 무조건 태평양으로 보려고 한 것이겠지만 바로 대서양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와같은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아메리카대륙에 인도(India)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이다.
또한 남부에는 망기(蠻子:蠻夷Mangi)가 있었으며 카스피해 이동쪽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강 두강을 포함하는 옥서스(Oxus)를 서쪽으로 두고 카불, 사마르칸트 도시를 두고 있는 차가타이 칸국(Chagatai Khanate)또는 중국이라고 하던 카타이(Cathay)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송고려, 원고려시대에 세계 제1의 무역항이라는 자이톤(Zaiton)이 플로리다 마이에미(Miami)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리고 루이지에나주(Louisiana)가 점성(占城:Champa)일 수 있고 마르코폴로가 방문했다고 하는 경사(京師) 또한 항주(杭州)로서 킨사이(Quinsay)라 하였다면 버지니아의 페테스부르크(Petersburg)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러시아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일 수 있으며 또한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을 접견했다고 하는 북평(北平)이라고도 하는 대도(大都:Great Capital) 캄발루크(Cambaluc)가 워싱톤(Washington, D.C)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모두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런 글쓴이의 주장에서 무한의 신뢰를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석고]
이렇게 종합할 때 열도일본을 지판국(日本國)이라고 하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이야기다.
어쨌던 마르코폴로로 부터 시작된 기획에서 출발한 것에서부터 이런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지팡구가 서세에 의해 어정쩡하게 지칭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각적으로 효과를 얻으려 한 것이 바로 유대자본에 의한 수많은 지도로 일본만들기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근세기에 일본을 동아시아대륙에 넣고 그린 지도들은 모두 이런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덧붙인 것이 해적들이 쓴 항해일지이며 그들이 마구잡이로 그린 삽화는 물론이고 온갖 각종의 쓰레기같은 질 낮은 책들을 이런 것을 자료라 하여 인쇄기에 넣고 마구 찍어 냈던 것이 오늘날 무슨무슨 기행물이라는 것이며 이것들에 의해 현재 동아시아대륙사 또는 지명으로 굳혀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현재 열도 일본은 서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인 비평가들 조차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그가 진실로 체험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의 말을 듣고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으니 조작, 날조가 의심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한 조작, 날조가 되었다는 증거들은 본 블로그가 미약하나마 지리, 생물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밝혔고 앞으로도 밝혀야 할 것들이 틀림없다.
우리 한반도인에게 또 하나의 문제작인 네덜란드해적출신의 하멜(Hendrik Hamel:1630-1692)의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 일명 "하멜표류기"역시 이와 똑같이 역사판짜기에 동원된 것으로서 이양선을 타고 코리아 땅에 온 선원(해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런 이유때문에 그가 책을 써 세상에 내놓으면서부터 이미 서세의 역사판짜기에 이용물로 전락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와같은 서세의 치밀한 기획에 의한 기행물들은 우리주위에 넘쳐날 정도로 현재까지 쌓여있다.
이런 것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인 흐름의 역사가 아닌 갑자기 얼토당토하지 않는 작위적인 역사가 한반도에 심어지게 되면서 한반도 삼한역사가 굳히기가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되었고 그와 동시에 동아시아대륙사만들기 역시 미국유학파 정치인들의 음모와 함께 진행되었다는 것을 충분하게 알 수가 있는 이야기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아시아대륙에 이승만박사 같은 미국유학파 정치인들이 제세상 만나것처럼 밀려든 결과는 서세가 지향하는 역사만들기에 일조한 것이 틀림 없다.
이미 다른 주제에서 밝힌 사실이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마르코폴로가 실제로 견문을 했다면 북아메라카대륙 서부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의 부근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난다.
착각이니 뭐니 하여 아래같은 지도를 그려놓은 것도 역시 우리의 눈을 흐리려고 한 것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지팡구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종족의 근원을 밝히는데 한 몫을 한다..
실제로 마르코폴로 역시 황금향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지도는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가 그린 것으로 스코틀랜드 지도제작자 존 바솔로뮤(John Bartholomew:1831-1893)가 제작한 아틀랜틱오션[Atlantic Ocean, Toscanelli, 1474]인데 수정된 것이라 한다.
위 지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메리카대륙은 통째로 빠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 지도에서 콜럼버스의 계산착오, 착각, 또는 오차를 말하고 있지만 마르코폴로가 말한 지팡구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는 곳은 쿠바와 달리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와 멕시코를 가르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청일전쟁은 고려(高麗)와 서세(西勢日本)의 충돌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 "에서 언급하였듯이 프랑스 지도제작자 니콜라 상송(Nicolas Sanson:1600–1667)이 1656년 그렸다는 지도에 나타나듯이 물론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는 육지에 붙어 있는 반도가 아니라 떨어져 있는 섬으로 그렸다는 것을 말한바가 있기때문에 지팡구처럼 섬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곳역시 본 블로그 글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8 "와 "청일전쟁은 고려(高麗)와 서세(西勢日本)의 충돌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이란 글에서 밝힌 것에서 최초 에스파냐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는 일국(日國)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국(日國)은 태양의 나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태양이 뜨는 곳의 의미가 아니라 "태양을 섬기는 나라" 즉 태양신(太陽神)을 받드는 나라를 일컫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비교해볼 수 있는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의 쇼토쿠태자(Shotoku)의 한문이름이 성덕(聖德)이라 함도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성(聖)을 산(san)으로 읽고 덕(德)을 토(to)로 읽는 것과 같이 예수회에서 말하는 세인트 성인(聖人:saint)이라는 명칭임에서 알 수가 있어 이곳을 근원으로 하던 에스파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곳 가까이에 캘리포니아에는 1848년부터 몰려든 골드러시의 땅 금(gold)광산이 지천에 널려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복건어 지팡구(Zipangu)라 하는 에스파니아(Hispania)땅일 가능성을 높여놓고 있으며 에스파냐란 어원에서도'태양이 떠 오르는 곳'이 아니라 '태양이 지는 곳(land of the setting sun)' 그리고 대륙 서쪽 끝(western land)가장자리에 있는 토끼의 땅(land of rabbits), 토끼의 섬(Island of rabbits)이라 했다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즉 초기의 에스파냐는 일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업다.
또한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라고 하는 베네치아(Ενετοί)의 어원이 라틴어 베네투스(venetus) 즉 푸른바다(Blue-sea)라는 뜻임을 알 수가 있어 실제로 깊고 푸른 바다(Deep Blue Sea)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곳 정확한 위치의 지명을 지중해(地中海:Mediterranean Sea)에만 찾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때문에 베니스가 있어야 할 바다는 아틀랜틱오션, 대서양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인식되며 지형학적으로도 대서양이 지중해보다 실제로 더 깊고 푸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베니스가 동로마제국에서 무역항구로서 콘스탄티노플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동로마라고 할 수 있는 신라땅인 대륙동부에 있어야 할 도시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의 도시(City of Water)라 한 것인데 이것 역시 현재 베니스(Venice)만의 호칭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의 도시(City of water or Metropolitan Waterfront)는 오히려 더 큰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이라고 하는 거대한 도시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도 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있는 뉴욕(New York)을 지칭하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관점도 참고해야 할 이야기가 분명하다.
일본열도를 이야기하는 마당에서 너무 비약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세의 특히 일본만들기에서 이처럼 제멋대로 꾸미는 형태를 볼 때 베니스가 있었던 이태리라는 국명역시 조작, 날조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탈리아란 명칭이 생성된 곳도 알고보면 북아메리카대륙의 뉴욕을 점거한 조직인 마피아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 또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피아의 조직체를 보면 서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해적본거지 소굴에서 절대권력자가 있었다는 형태의 조직 종속관계, 그리고 자본력에 의한 조직체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피아(Mafia)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된 것은 1875년 이후라고 하고 있지만 1282년에 '시칠리아 만종사건(Vespiri siciliani)에서 반란인들을 지칭한 이름'이라 하였고 '본래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인 마피에(Mafie)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사병인 조직체 즉 현대말로 부르조아용병집단체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다시보면 프랑스가 조선역사의 일부라 할 때 미국 세인트루이스지명의 유래가 된 성왕(聖王:saint Louis) 루이9세(Louis IX,1214-1270,재위:1226-1270)의 동생 왕 카를로 1세Charles I:1227-1285)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으로서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원고려의 두 차례(1274년.1281년)의 일본원정과 일치하고 있다.
이 사건과 연결하고 보면 쿠바는 당시 시칠리아(Sicilia)라 하였고 그것을 동양사에서는 일본이라 했다는 것은 또한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도록 확인한 즉 쿠바를 시칠리아라했을 가능성은 넘치고도 넘친다.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다.
미국에 있는 시칠리아 사람 정착지를 보면 쿠바와 멀리 떨어지는 않는 루이지애나(Louisiana)와 텍사스(Texas)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미국동부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서부의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그리고 남쪽의 몇몇 부분을 포함하는 나라의 주요한 공업중심지들을 포함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은 유럽에서 이민형식을 빌어 대서양을 건넌 것처럼 하지안 기실 다른 주로 옮겼다는 소리이다.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의 석고모습을 보면 머리에 터번을 둘러쓴 것이 서양쪽의 관습과 매우 다른 것이다.
오히려 청일전쟁때 고려군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한 프랑스를 위해 활동한 이탈리아의 항해가 조반니 다 베라치노(Giovanni da Verrazzano:1485-1528)가 안틸레스제도를 항해했다는 사실과 플로리다에도 당도한 사실을 이야기 할 수가 있지만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이태리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전부 남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 또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와같은 사실들은 이탈리아의 생성까지 우리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는 옛 스페인부왕령이며 고려땅이고 그 후 대한제국의 영역이었다.
이 시칠리아에서 사용한 언어 역시 공용어로서 라틴어, 그리스어, 아랍어가 인정되었다는 것은 쿠바가 상업적인 도시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자본가 부르조아들이 생성될 수 있는 바탕임을 알 수 있으며 시칠리아의 앙주왕가(House of Anjou)는 중세 에스파냐의 왕국에게 병합된다는 사실까지 라틴제국의 고려와 중첩됨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방문한 코리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6" 에서 1911년에 방문한 어멀리 켐프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쓰는 언어는 알파벳이 스물다섯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한국인들이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임을 암시했다는 것을 알린 바가 있다.
이 주제와 약간의 벗어나는 것이겠지만 또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십자군(十字軍:Crusades)과 연결되는 사실에서 한반도 삼한역사에서 고려(高麗)왕에게 붙인 충(忠)자가 다분히 식민지사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서세 장난의 대표 상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십자군전쟁을 통하여 십자군이 고려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엮어 놓으려는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며 카톨릭 교황표식인 성(聖:sanit)을 국왕이름 앞에 붙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 글 "동경반란(東京反亂)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십자군사건 http://blog.daum.net/han0114/17050494 "에서 동경반란은 고려19대 명종(明宗,1131-1202,재위:1170-1197)시기 1190년 이래 약 15년 간에 걸쳐 전후 6,7차에 걸쳐 일어났으며 이것은 경상도지방의 민란으로 연결되며 민란 중심지가 고려의 동경(東京), 곧 경주(慶州)였고 반란의 기치가 신라재흥(再興)이었으므로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으로 부르기도 한 이 반란사건이 제4차 십자군전쟁(1198-1204)과 또한 연결되며 이 후 십자군의 활동과 고려를 공격하는 몽골군의 활동이 같다하여 몽골군과 십자군이 같다는 설도 제기한바가 있다.
이 십자군을 지휘한 베네치아(venezia)에 의해 라틴제국(Empire of Romania:1204-1261)이 잠시 50년 남짓 세워졌다는 것을 서양사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몇천년이 이어지는 세계삼한역사에서 50년이란 것은 지배로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서양사를 만들기 위해 흔적을 남겨놓고자 한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서양사에 의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십자군이 공격한 곳이 바로 이집트라 하였으니 동경(東京:慶州)을 이집트라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십자군과 몽고가 같게 엮었다는 것은 쿠빌라이가 존재한 대도에 서양역사 십자군 흔적을 남겨 찾으려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태양신을 받들었던 이집트가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가 없다.
물론 마피아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지명 시칠리아 역시 삼한역사와 관계설정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칠리아의 앙주왕가(House of Anjou)역시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와 같이 붓꽃(Fleur-de-lys)문장을 사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으로 라틴제국을 지배한 대고려(大高麗)를 애려사(愛麗絲)라 하여 따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는 표식이다.
어쨌던 충(忠)을 성(聖)으로 해석하길 바랬다는 것은 일제(日帝)가 얼마나 한반도 역사를 기독교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바로 한반도 역사를 만든 주체가 일제라면 이 일제가 열도일본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이처럼 역사기술에서 기독교적인 상징이 필요할 정도라면 일제(日帝)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열도일본인이라고 볼 수 없고 기독교적인 주체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주지케하는 사실이다.
일본이란 이름은 고려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명이다.
그렇다면 박경리선생이 말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서 근원적인 한(恨)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일본 즉 "JAPAN"은 서세들에게 상징적인 명칭일 수밖에 없겠으나 열등한 명칭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세계를 장악한 서세가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서양 나누어 놓은 동양역사에서 열등할 수밖에 없는 열도일본인들에게 물려 준 것이다.
이것이 이 주제 서두에서 말한 구팽(狗烹)한 일본이 오늘날 서세 유럽인이라는 것이다.
측은하게도 남에게 늘 약점을 잡히지 않게 자신 감정을 속여가며 약게굴면서 겉으론 철저한 것 같은 열도일본인들은 숙명적으로 서세의 영원한 노예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열도일본인들이 역사에서 열등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바로 서세들이 역사에서 열등했던 것이다.
장문에 가까운 "대한제국"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서세들에게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것은 해적출신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근원적인 문제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열등 의식정도가 컸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아메리카대륙을 신대륙이라고 하면서까지 그들의 기독교적인 근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의 워낙 초라하고 열등한 역사로 인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무도한 해적출신 콜럼버스를 기독교 영웅만들기에 주요인물로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은 인물보다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독교 십자깃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십자군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러한 열등의식이 발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근세기 두번의 큰 역사전쟁에서 서세가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열등적인 역사인식은 현재까지도 그들에게 지문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결코 역사승리가 그것들을 완전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역사열등증후군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한풀이가 우리를 향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십자군이란 실체자체를 러시아역사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는 완강히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그리스도( Jesus Christ)역시 12 세기의 인물로 주장하고 콘스탄틴노플(Constantinople)에서 기둥에 묶어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刑罰)로 죽었다고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악라사관기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벌거벗은 몸에 유혈이 낭자하며,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엄연히 한 죽은 사람이다..."한 것은 십자가에 예수와 같으며 이를 악라사인들은 중국에서 피살된 악라 태자(鄂羅太子)라 하였고 혹은 이를 이마두(利瑪竇)가 피살된 상이라고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이마두의 또 다른 이름이 예수회 소속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란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대고려시대때 그들이 감히 고려에게 저항하거나 지배하는 상상력을 이처럼 십자군전쟁으로 이미지화하거나 상징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의 역사열등의식에서 그나마 마음을 안정하게 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라는 종교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서세들 역시 역사열등의식은 버릴 수 없는 문신 같은 것일게다.
1.2차대전에서 서세연합국이 모두 승리한 사실을 역사전쟁이라 하여 그들은 의미를 찾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삼한이 지배하던 하나의 체제에서 그들은 양지에 나타날 수도 없고 음지(陰地)에서 해적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환경을 생각할 때 오히려 근세기 이후 우리민족이 느끼는 역사트라우마보다 그들에게 역사가 주는 심적인 고통이 한층 더 심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강박은 고스란히 루스벨트 악연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이 다음 5편에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근대사로 연결된 주요 원인으로 글쓴이가 바라보고 있는 사실의 주요 요체라 할 수가 있다.
[대한제국 5편]서두에서 박경리(朴景利:1926-2008)선생의 유고집 ‘일본산고(日本散考)'에 나타나는 '증오(憎惡)의 근원(根源)'은 기실 열도일본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세들에게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 심증적인 것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하나 더 말하자면 바로 왜(倭)나 왜구(倭寇)라고 하는 호칭이다.
열도일본인들은 서세가 만들어준 일본역사에 많이 적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나, 왜구호칭은 역사사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하지말아야 할 비하호칭이다.
이러한 호칭들이 근본이 없는 현재 유럽인들과 열도일본인들을 가슴아프게 했다는 것을 충분하게 짐작할 수가 있다.
그들이 잘난척할때 우리는 "왜놈"이라고 한번만 호칭하면 그들의 호기가 깡그리 묻혀버린다.
현재 "japan" 를 "jap" 이라고 하여 유럽인들이 열도일본인들을 비하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이것 역시 돌고돌는 역사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서세는 이제 열도일본을 쿠팽할 때 쓴다.
이 호칭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열도일본인이겠거니 하였지만 바로 서세(西勢) 음(音)으로 화(和:Wa)라 하였음인데 이것을 곧 왜(倭)라 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또한 스스로가 조선인의 양반계급 제도권에서 남반(南班)이라 하였던 것을 보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조선남방(朝鮮南方)에서 왜가 스스로 반(班)을 반(盤)으로 번(番)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였으며 근세기에서는 외번(外番)이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서양 번족이 앵글족(angle) 즉 잉글랜드인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방언에서 왜(倭:Wa)와 웨기(Waggie)라 한 것을 그대로 따른 음(音)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 유럽인들이 열도일본인들을 잽(jap)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잉글랜드와 크게 구별이 되지 않는 네덜란드 사람들 조차 화(和:Wa)라한 것 역시 우리나라 역사기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본래 생업으로 해적질을 일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삼한역사에서 근본이 없다 하였으니 번듯한 역사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들에게 근본이 없다고 한 삼한역사를 근원적으로 질시했을 것이 뻔하고 그로 인하여 깊은 열등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을 것이며 세계삼한역사를 동강내어 그들 것으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마침내 근세기말 처지가 한순간에 바꼈을 때 세계삼한역사 말살에 칼대기를 망설리지 않고 또한 무자비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우리역사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결국 그들의 도가 넘는 한(限)풀이에 철저하게 당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역사가 교훈적으로 주는 것은 어쟀던 나라가 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많은 거부감이 따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 일본 열도인들은 아무리 우리와 연결시켜보아도 사실적인 역사관계설정에서 특별하게 갈등이 있을 소지가 없다.
오히려 잘못된 역사로 인하여 그들이 잘못된 상식으로 마치 서세가 만들어놓은 거짓 역사놀름에 빠져버린 것이 오늘날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탈아입구 또는 서세를 지향하는 정신적인 자세가 동양적이지 않고 서양지향적임을 알 때 철저하게 유대자본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고 서양인들의 똥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 것이 그들의 병폐라면 병폐이다.
물론 일제 망령에 의해 놀아나는 양아치 정치집단들은 논할 대상이 아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그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바르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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