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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이도(Tornado)로 본 유럽지명과 모스크바(Moscow)지명
글쓴이:한부울
서문
토네이도와 발생역사
토네이도 후지타피어슨스케일
유럽지명의 혼란
모스크바 지명의 진실
모스크바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되는 이유
마무리
서문
소제:서세라고 알려진 컴퍼니의 분별없는 투기로 경제파탄을 몰고와 숙종이 급사한다.
근대사는 참 아이러니(irony)한데가 있다.
생각해보면 뭇사람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는 현재 사회가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첫째는 인간이 원초적으로 추구하는 물질본능에서 풍족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 부족으로 허덕이는 것 보다 낮다는 말이게다.
또한 만인이 평등하고 공평해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도 보인다.
그것은 상자속의 각성과 의도된 최면이 공기처럼 채우고 있는 자본에서 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대다수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자본의 노예라는 인식이 자뭇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만큼 과거 자본의 어원인 가축(cattle)를 모아 재산을 축적하는 개념과 다른 현재 자본력은 그야말로 인간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마치 신과 같이 대단한 것으로 발전이 된 것이 틀림없다.
서세들은 자본이 축적되면 이렇듯 거대한 힘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백날 인간정신의 정체와 도덕과 윤리의 근원만을 밝히려 노력하거나 그것을 가르칠려고 한 오리엔탈 문화와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오리엔탈 문화는 지나간 역사를 지배한 것이지만 서양문화는 오늘을 지배하는 것이된다.
참으로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왜 영혼을 사고 팔 수 없으며 도덕과 윤리를 평가하여 사고 팔 수 없는 것일까?
영혼과 도덕, 윤리가 금은보석과 같이 무게로 달아 팔고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고 말고 하는 것 모두를 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영혼, 도덕, 윤리를 필요이상으로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발생하여 다시 계급화가 될 것이 틀림이 없다.
이것은 인류가 언제까지고 해결될 때까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자본력(capitalism)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를 넘어 정치체제 및 사회체제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행사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정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론 물질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원초적 본능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세기 이전 봉건주의 사회에서 왕의 입만 쳐다보고 법을 알았고 그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의 세상에서 벗어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무(無)자본계층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95%일 수밖에 없다.
BC27년에서 AC476년 고대로마제국 당시 군에 입대시킬 자신들의 아들자식(proles) 이외에 부(富)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고 하였듯이 같은 인간으로 능력이 모자라 무산계급이 되어야 하는 자신을 어떤 때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
반면 자본계급을 나타내는 부르조아(bourgeoisie)라는 것은 부를 축적한 계급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언제나 안전하고 윤택한 성(城:bourg)내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기에 자본으로 인한 천한 것과 비천한 것이 안전한환경과 그렇지못한 신분으로 냉정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서양사가 말해주니 그렇게 아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조직이 필요하고 국가조직이 필요한 것은 인간 개인에게 그만큼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나 종교 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러한 자신보호욕구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매개체라고 어떤 자료에서 이야기 한 것 같다.
그 만큼 자본이 중요함을 서양사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렇더라도 당시는 물질이 지배한 세상이 아니라 그나마 도덕이 사회전반을 지배한 세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본을 가지고 힘을 쓰려 해도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물질만능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만큼 순수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때문에 서세가 근세기에 얄팍한 물질을 동원하여 이러한 순진한 의식을 파고 들어 그들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되기도 한다.
이러한 물질이란 자본력은 도덕적으로 흠이 많았을 서양세력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근세기 1917년 이러한 체제를 조롱하는 도표에 보면 왕뿐만아니라 귀족, 의회원, 법제관 종교지도자위에 최고 꼭대기에 자본력(capitalism)을 상징하는 돈다발이 올라 앉아 있음을 그려놓고 있다.
상황이 이러 했으니 서양인들이 믿을 것은 오직 자본이며 물질을 숭상하던 서양인들은 좀 더 큰 자본력을 축적하기 위해 회사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한 이야기다.
이것이 오늘날 주식회사 형태의 컴퍼니(company)다.
그러나 본래의 컴퍼니 어원은 '함께 빵을 먹는'것이라 하는 라틴어'compania'에서 기인하나는 것으로 프랑스어(compagnie)로 넘어와 '군인집단(body of soldiers)'을 뜻했다는데 "함께 먹기 위해 싸운다"는 전쟁터에서 결집력을 강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이 근세기 회사 틀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때 그냥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컴터니(회사)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에 태동하였다는 회사(會社,Company)
1. 포르투갈 동인도 회사(Portuguese East India Company:1628-1633)
2.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東印度會社)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 영어: Dutch East India Company:1602-1799
3. 프랑스 인도회사(France Company of the Indies, La Compagnie Française des Indes Orientales)
1684년에 설립된 미시시피회사(Mississippi Company:1684-1770)는
1717년에 서방회사(Company of the West)출발
1719년에는 동인도회사(Compagnie des Indes Orientales)와 중국회사(Compagnie de Chine)합병
4. 영국 동인도 회사(英國東印度會社:East India Company)
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1600-1708
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1708-1873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Hudson 's Bay Company:1670-1869)
5. 덴마크 동인도 회사
Ostindisk Kompagni:1616-1729
Asiatische Compagnie, Asiatic Company:1732-1772
6. 스웨덴 동인도 회사(Svenska Ostindiska Companiet:1731-1813)
7. 러시아아메리카회사(Russian-American Company:1799-1863)
위는 근세기에 대양을 누비며 이윤을 추구하던 회사이다.
이 회사들이 소멸되는 시점을 보면 거의 대조선이 해체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시작은 우리가 임진왜란을 알고 있는 일본과의 충돌시점 바로 이후부터라는 점도 알 수가 있다.
이 컴퍼니의 당시 실상을 보면 대표적인 영국 동인도 회사(英國東印度會社:East India Company)라고 알려진 "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 [동인도제국 무역 영국상인연합회사]가 어떤 강력한 주체로 부터 1874년 강제해체되는 이유가 적시되고 있는데 그 주체는 영국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않고 그 내용을 보면 "회사의 전제(專制)와 독점(獨占)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 인도(印度)의 행정을 영국의회 감독하에 들어가게 하였고 1814년에 인도무역의 독점 폐지, 차(茶)무역의 독점폐지, 회사령(會社領)의 국왕에 이양 등의 조치를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1857년에 인도인 용병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영(反英) 세포이 항쟁(Indian Rebellion:1857-1858)으로 말미암아 영국정부는 그 책임을 동인도회사에 물어 회사운영을 정지시켰고, 회사가 통치하던 인도통치권 전반을 빅토리아왕에게 헌납하고 회사를 해산시켰다고 나온다.
거대한 인도(印度)를 영국회사가 맡아 지배하였던 것이다.
전제(專制)라 함은 즉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가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회사(會社)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과 회사(會社)의 판단만으로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사실에서 역사적으로도 당시에 얼마나 위험한 조직의 회사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며 독점(獨占)역시 다른 경쟁자를 배제하고 생산과 시장을 지배하여 이익을 독차지 하는 행위를 말할 때 그야말로 시장경제틀을 무너뜨리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누렸던 것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다.
이러한 괴물같은 조직이 컴퍼니가 되어 과연 역사적으로 누굴 이롭게 하였을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삼한인가 아니면 비 삼한인가?
위 회사가 다 비삼한으로 서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 회사들이 기록들을 보면 근대사의 판도를 가늠 할 수 있는 결정적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컴퍼니는 서양인들이 주축이 된 것이 사실이며 그들이 조정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조직을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다 흡수할 수 있는 블랙 홀과 같은 것이어서 엄격한 체제의 감시, 감독이 소홀한 당시 상황을 대입한다면 거의 종교의 힘보다 강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와같은 상황은 근세기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고 판단되는 컴퍼니 중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Hudson 's Bay Company:1670-1869)와 러시아아메리카회사(Russian-American Company:1799-1863)에서 무엇인가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많다.
다시말하지만 러일전쟁이라는 것은 아마도 위 두회사의 충돌을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만약 이러한 회사들의 무소불위(無所不爲)에 의한 경제파국이 낳은 그 여파가 더군다나 하나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던 대조선이라고 할 때 그것이 주는 피해는 거의 강력한"하나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컴퍼니가 주도가 된 버블경제사건을 예를 들 수가 있다.
1720년에 동시에 발생한 남해 거품 사건(South Sea Company:South Sea Bubble)과 미시시피 회사 거품 사건(Compagnie du Mississippi)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본다면 이 여파인지 알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숙종(肅宗,1661-1720,재위:1674-1720)이 사망하고 경종세자가 즉위하게 되며 반도사는 그의 조세정책 실패만을 언급할 뿐이다.
참으로 생각해보면 근세기에 하나의 체제에서 태양의 제국이며 오리엔트역사의 상징이고 삼한역사의 거대한 산맥인 대조선을 그들이 무너뜨리는데는 이러한 버블경제사건이 주효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어느 자료에 보니 서양인들은 오래전부터 오리엔탈 동양(Orient)역사에 짖눌려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한이 맺혔다고 하지만 보호되어야 할 인류사가 틀림없는데 이렇게 앙갚은 식으로 본질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마구 짖이겨 놓았다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
어차피 유럽사가 서양사고 세계사라면 그것은 근세기에 잘 꾸며진 기록들인데 지금와서 어찌하겠는가?
그렇지만 이 모든 역사사실이 유럽땅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것은 토네이도 발생역사를 따져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즉 유럽지명 모두가 북아메리카대륙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글쓴이의 평소 주장과 매우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부터 토네이도 사냥이다.
토네이도와 발생역사
토네이도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바로 토네이도의 특성이 있어 그것을 연구하면 모스크바를 포함한 유럽대륙지명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보면 토네이도(tornado)는 미국 중남부 지역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회오리바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왜 미국 중남부지역에만 이 토네이도가 발생된다고 알려졌을까?
백과사전들을 찾아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정리가 되고 있다.
대체로 봄과 여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먼저 지형지물이 높고 낮음이 있는 곳보다 지형지물이 없는 평원이나 평야에 많이 생긴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평원(平原)이나 평야(平野:plain)가 발달된 경우에는 하층에 고기압이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토네이도가 발달하기 쉽다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로키산맥(山脈:Rocky Mts)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대륙성 한랭기단(寒冷氣團:cold air mass)과 멕시코 만(灣)에서 북진하는 따뜻하고 습한 해양성 기단(海洋性氣團:oceanic air mass)이 지형적 장벽이 없는 미국의 대평원(Great Plains)에서 만나서 토네이도를 수시로 발생시킨다는 결론이다.
때문에 이러한 지형조건과 기후조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토네이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또는 국지적인 작은 규모의 용오름현상, 랜드스파우트(landspout)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회전속도가 초속30m가량으로 비교적 느리며 20분이내에 소멸되는 것으로 어디에서나 있을 수는 있다.
대기과학자들은 강력한 토네이도가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하는지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인 이론은 고온다습(高溫多濕)한 공기가 조건부 불안정 환경에서 상승할 때 형성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지면에 수직으로 발달해 산이나 큰 탑처럼 보이는 구름인 적란운(積亂雲:cumulonimbus)의 숨은열이 구름 속의 공기를 데움으로써 강한 상승기류가 발생하게 되고 이후 상승공기는 구름의 꼭대기 부근에서 천천히 회전하면서 이것이 점점 아래쪽으로 확장되어 깔때기 모양이 지면과 닿으면 소용돌이가 강하여 제트기가 날고 있을 때와 같은 굉장한 소리를 내며 토네이도가 된다고 정리되고 있다.
1960년 이후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연간 500~900개 정도 발생하며 연평균 6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주로 사망자는 토네이도에 의해 파괴된 조각찌꺼기, 쓰레기파편에 의한 것인데 그 파편이 날라다는 거리가 1,100m 나 된다 하니 과히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자료에서는 토네이도가 전체적으로 뿜어낸 에너지를 합할 경우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약 600배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 열도 히로시마에 어떤 형태로 떨어뜨려졌는지 사실관계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자체가 불명하지만 일단 설명은 그렇다.
그렇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미국 대평원지역에서만 역사적으로 토네이도가 발생한 것에 대한 누적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있고 그것을 통하여 실제로 토네이도의 대규모의 발생역사가 어땠는지 알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본 블로그가 작성한 표로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토네이도 발생리스트 “1800-1949 토네이도 F5(EF5) tornadoes History” 를 위에 게시하였다.
이 표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점선을 표시한 북아메리카대륙 이외 지역이다.
1764년 독일 볼테크(woldegk)와 1800년 독일 하이니헨(hainichen)지방, 1845년 프랑스의 몬트빌 센마리팀(seine-maritime), 그리고 거의 85년이란 세월을 흘러간 후 1930년 이탈리아 우디네(udine)와 트레비소(treviso), 그 다음해 1931년 폴란드 루블린(lublin) 그리고 1946년에 폴란드 실롱스키에주의 크워츠코(klodzko)란 이름의 지역에서 "F5등급"의 토네이도가 발생한 것으로 데이터 처리 되어 있다.
1800년에서 1949년까지 전체 69건 중 6건으로 비율적으로 계산하면 8%로 나타나고 전체 발생 건수에서 92%가 결국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발생된 것이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위 데이터에서 토네이도에 인하여 발생된 인명손실 사망자 숫자를 따져보면 1800년에서 1949년까지 총 2,647명 중에서 위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인명손실이 6건의 100명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비율적으로는 3%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비율적으로는 전체 발생빈도수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을 만치 북아메리카대륙에서만 발생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일단 정리가 된다
리스트 중 가장 두드러진 피해상황으로는 1925년 3월 18일 미주리·일리노이·인디애나 주를 통과하면서 695명의 인명 피해를 낸 것으로, 이동경로 350km, 폭 1.5km, 시속 100km/h 였다는 사실은 토네이도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유럽대륙에서 발생했다는 자료를 일단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발생빈도수나 인명피해상황에서 전체데이터상 비교할 수 없고 데이터가 시대를 통하여 지속성이 없다는 것은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할 없다는 것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처럼 같은 지역에서 일년을 주기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데이터가 데이터로서 취약성이 분명하다.
통계의 정확성은 자료가치의 바로미터가 되기때문이다.
토네이도 후지타피어슨스케일
위 표는 후지타피어슨스케일표(Fujita–Pearson scale)이다.
이제 토네이도의 인간에게 주는 충격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도표이다.
토네이도의 세기에 따라 등급을 "F0~F5" 6단계 등급으로 나눔을 알 수가 있고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F0]는 바람속도 40–72mph(64~115km/h)이고 가벼운 피해정도를 나타내고, [F1]역시 바람속도 73-112mph(117~180km/h)로 허리케인이 시작하는 풍속정도로 지붕덮개를 걷어 낼 정도이거나 움직이는 차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으로 약한(weak)등급에 속한다.
그러나 [F2]부터는 강한(strong)것으로 분류되는데 [F2]는 바람속도 113-157mph(181~253km/h)로서 유개화차들은 뒤집힐 정도로 큰 나무들은 뿌리채 뽑히며 고층창문이 깨지고 파편이 광폭범위가 250 m까지 날아 피해를 입히는 경우이다. [F3]은 바람속도 158-206mph(254~332km/h)로 극심한 피해를 동반하는데 기차들이 뒤집히며 숲의 나무들은 대부분 절멸하고 무거운 자동차들도 솟아오르다 땅으로 쳐 박히며 피해위는 500m이다. 이제부터는 강한 것을 넘어 극심한(violent)으로 분류되는 [F4]는 바람속도 207-260mph(333~418km/h)로 지독한 피해를 낳게 되는데 건물들이 거의 사라지고 자동차들은 회전하며 미사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략피해범위가 900 m 로 알려진다. 마지막으로 더 높은 등급[F5]는 본 블로그가 작성한 "1800-1949 토네이도 F5(EF5) tornadoes History"의 리스트 데이터의 기준 값으로 한 것인데 바람속도가 261-318mph(419~512km/h)가 되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피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시속 500km 가 넘는 속도로 그것도 회전을 하면서 바람이 분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에 목조 가옥들은 거의가 날아가는 물론이고 상당한 거리까지 그 잔해가 비행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이 중상을 입고 자동차는 100m가량 솟구쳐 날며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라 할지라도 심하게 손상을 입히게 까지 하는 것으로 이것의 피해범위가 1,100m 라 하니 과히 파편이 그와 같은 거리까지 날라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이라 하지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위 게시한 “1800-1949 토네이도 F5(EF5) tornadoes History” 표는 위 마지막 최고의 등급인 것을 말하며 설명과 같이 제일 극심한(violent)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인명이 손상되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될 수가 있다.
유럽지명의 혼란
(1).독일 볼데크(Woldegk) 1764년 발생, 사망자 1명
(2).독일 하이니헨(Hainichen) 1800년 발생, 사망자 없음
(3).프랑스 몬트빌 센마리팀(Seine-maritime) 1845년 발생, 사망자 70명
(4).폴란드 루블린(Lublin) 1931년 발생, 사망자 6명
(5).폴란드 크워츠코(Klodzko) 1946년 발생, 사망자 없음
(6).이탈리아 우디네(Udine)와 트레비소(Treviso) 1930년 발생, 사망자 23명
위에 열거한 차례는 토네이도 발생리스트 “1800-1949 토네이도 F5(EF5) tornadoes History”상 유럽에서 발생한 사실만 발췌한 것이다.
이제부터 위 열거된 유럽지명의 토네이도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자 함이다.
가공할 규모의 토네이도가 거의가 북아메리카대륙 대평원이 있는 중부지역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확실한 자연의 이치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의 섭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공할 규모의 토네이도가 유럽대륙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미 본 블로그에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생물학적 판단을 거치면서 수많은 연관된 사실을 파악한 결과 모든 유럽지명은 본래 아메리카대륙에 있었던 지명이었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렇다면 유럽지명은 그 바탕을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란 사실을 이제 입증할 때가 된 것이다.
이것을 더 깊게 보아 솔직하게 토로한다면 유럽대륙에 표기한 토네이도 발생사실도 아마도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발생한 토네이도의 데이터를 이식한 것일 수 있다는 짐작이 없지 않다.
하나의 체제를 흔들어놓고 분리시키면서 서양역사를 꾸몄듯이 근세기에 강력한 토네이도가 마치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것처럼 서양사만들기에 혈안이된 서세학자들이 나서 꾸미지 못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유럽대륙에 서양세력들의 국가 만들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양사를 기준으로 최악의 경우 서방국가들을 여기저기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면 서양사에 맞춰야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지 틀에 맞추려 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자연재해 경우에는 비슷한 지형과 기후대에서 서양사에 맞게 기록들을 조작하거나 증거를 만들 수 있다는 가정의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판단도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토네이도 생성 이유중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평원과 평야가 지속되어야 하고 공기덩어리 기단(氣團)의 진로를 막는 장해지형이 없이 탁트인 광활한 지역이 아니면 "F5단계"의 토네이도 발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근거아래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대체로 북쪽에서 몰려오는 건조한 대륙성 한랭기단(寒冷氣團:cold air mass)과 남쪽에서 북상하는 따뜻하고 습한 해양성 기단(海洋性氣團:oceanic air mass)이 서로 만나 조성될 수 있는 지형조건이 매우 중요하다는 원칙도 있겠다.
과연 위 토네이도 리스트에 나타나는 유럽대륙 지명에서 위 조건을 충족시킬 수있는 지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것에서 토네이도 발생 조건 원칙에 현저히 부족하거나 사실확인이 떨어지는 지형조건이 발생되는 지명은 본래 유럽대륙의 지명이 아니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지명들에서 결과적으로 글쓴이가 바탕으로 깔고 있는 북아메리카대륙, 유럽대륙사의 허구성이 밝혀지는 꼴이며 세계삼한역사관이 사실임을 입증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상황인가?
물론 이러하다면 모스크바 역시 유럽지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가질 수 있다.
[유럽 토네이도 발생 전체 개괄표] 모든 그림들은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위 [유럽 토네이도 발생 전체 개괄표]1764년부터 발생한 지명을 표시하였고 각 주요 지형물도 표시하여 지형도를 이해하기 싶게 만들놓은 것이다.
(1).독일 볼데크(Woldegk) 1764년 발생, 사망자 1명
먼저 유럽 독일 볼데크(Woldegk)지역에서 1764년 6월 29일에 F5등급 토네이도가 발생하여 사망자 1명의 인명손실을 낳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볼데크(Woldegk)지방을 자료를 검색하니 해안지대로서 지대가 낮아 1492년에서 1635년 사이 적어도 4 개의 풍차 건설 되었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1745년 토네이도가 발생하기 전에 네덜란드 스타일 풍차가 가동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해발고도 지표가 전체 길이 61km 범위내 59m 에서 138m 고도차이 밖에 나지 않는 것은 거의 편차가 없는 평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단 바다가까운 해안이라 로키산맥같은 건조한 대륙성 한랭기단이 조성될 수 없는 조건이며 더우기 아래 산맥이 막혀 습한 더운 공기가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토네이도 발생의 근원이 되는 따뜻하고 습한 해양성 기단(海洋性氣團)이 발생할 수 있는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에서 북진해야 하지만 거대한 산맥 두 개가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하나는 독일과 체코슬라비아 경계를 이루는 평균고도 1,000 m 의 산들이 1,700 km 길이로 동서로 막고 있는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s)이 독일과 체코 국경을 이루며 버티고 있으며 또 하나는 서쪽편에 약간 치우치고 있는 형태로 "산과 흰백"을 어원으로 하는 평균해발고도 2,500m의 이탈리아 북쪽 경계를 이루면서 1,200 km 길이로 뻗어있는 알프스 산맥(Alps Mountains)이다.
위 [유럽토네이도 발생전체 개괄표]를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지형형태로서 이러한 지형적 조건이라면 거의 습하고 따뜻한 해양성기단을 맞을 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비록 평원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산맥을 넘어야하기 때문에 하층 고기압(高氣壓:anticyclone)이 정체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독일 하이니헨(Hainichen) 1800년 발생, 사망자 없음
마찬가지로 위 볼데크(Woldegk)지방에서 남쪽으로 약간 벗어난 곳에 하이니헨(Hainichen)지역이 있는데 이지역에서 1800년 4월 24일에 F5등급 토네이도가 발생하였으나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데이터를 볼 수가 있다.
해발고도 지표가 전체 길이 40.8km 범위내 고도가 좀 높은 편으로 246m 에서 446m 낮고 높은 차이가 나는 것은 편차가 심하지 않는 평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로 남쪽 가까이에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s)이 시작되어 고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볼데크(Woldegk)지역과 마찬가지로 습한 더운 공기가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3).프랑스 몬트빌 센마리팀(Seine-maritime) 1845년 발생, 사망자 70명
위 프랑스 몬트빌 센마리팀(Seine-Maritime)에서 1845년 8월 19일에 F5등급 토네이도가 발생하였으며 사망자가 무려 70명이나 발생했다는 테어터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곳도 독일의 볼데크(Woldegk)처럼 지대가 낮은 해안이고 또한 로키산맥같은 건조한 대륙성 한랭기단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연합군이 워털루전투(Battle of Waterloo:1815.6.18)에서 승리한 후 1815년 6월부터 1818년 11월까지 영국에게 점유되었다던 곳이다.
지표고도는 전체거리 376km 에서 해안과 맞닫아 있기 때문에 최저 1m 에서 최고 230m 로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편차가 크지 않다고 보아 평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한냉기단과 해양성기단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폴란드 루블린(Lublin) 1931년 발생, 사망자 6명
폴란드 루블린(Lublin)에서 1931년 7월 20일에 마찬가지로 F5등급 토네이도가 발생하여 사망자 6명의 인명손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역시 지형조건은 독일의 볼데크(Woldegk)지방과 하이니헨(Hainichen)지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루블린의 지표고도를 보면 전체거리 63.5km에서 최저 159m, 최고 221m 로 조건은 독일의 볼데크(Woldegk)지방보다 약간 높은 곳이 있다고 하겠지만 거의 평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스라바(Bratislava)에서 시작된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s)의 주봉 2,655m 높이 게를라호프스키봉(Gerlachovský štít)이 남서쪽으로 290km 가량 떨어져 있어 거대한 산맥이 정남쪽을 막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5).폴란드 크워츠코(Klodzko) 1946년 발생, 사망자 없음.
1946년 8월 20일에 폴란드 실롱스키에주 크워츠코(Klodzko)에서 마찬가지로 F5등급의 토네이도가 발생하였지만 사망자는 다행히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의 유럽사가 조작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한 것은 바로 이 지역의 형태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위 크워츠코 지형세밀도를 보면 붉은 원을 그려놓은 곳이 바로 크워츠코인데 이곳은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s)내에 조성된 최적의 분지이다.
지표고도를 보아도 전체거리 23.8km 에서 최저가 281m 이고 최고가 산맥을 잇고 있는 곳으로 495m로 나타나며 지표고도표를 전체를 보면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 오막한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산지 내부에 있는 것을 산간분지(盆地:basin)라 하는 것으로 이곳은 언뜻 보기에 U자형 분지인 것 같지만 폐쇄형 분지로 보는 것이 맞다
앞에서 토네이도 생성시초로 하층에서 고기압(高氣壓:anticyclone)이 정체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산맥 등의 높고 낮은 지형지물이 많은 곳은 기압차가 생겨 바람이 발생하는 이유로 하층이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토네이도가 발생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물론 분지에서 한정 된 용오름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토네이도 최고 F5등급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분지에 토네이도가 발생한다는 이 어처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위에 글쓴이가 그린 세밀도를 한번 보면 동서남북 산 높이까지 그려놓아 이를 판단하게 하였다.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이것이 바로 유럽역사이고 서양사이며 세계사다.
기상학자가 아니라도 일반사람이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이것은 전혀 아니올시다가 아닌가?.
(6).이탈리아 우디네(Udine)와 트레비소(Treviso) 1930년 발생, 사망자 23명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우디네(Udine)의 지표고도를 보면 전체거리 35.5km 에 최저고도 78m 이고 최고는 153m 인것으로 나타나 이곳은 알프스산맥 동쪽 비탈지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대체적으로 고도가 높게 나온다.
그러나 편차가 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스듬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반면 트레비소(Treviso)는 우디네(Udine)와 비슷한 지표고도를 나타내지만 일단 아드리아해(Adriatic Sea)와 근접하여 거의 해안이라고 해야 한다.
지표가 전체거리 27.9km 에서 최저 1m 에서 최고 29m 이니 바다와 근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곳 두 곳에 동시에 1930년 7월 24일 같은 날 한꺼번에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하였으며 이 여파로 귀중한 생명손실이 23명이나 있었다고 데이터는 말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최소한 토네이도가 생성되려면 에너지 축적할 수 있는 거리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지형을 가만히 보면 낮은 구릉정도로서 해안에서 알프산자락까지의 거리가 60km 고작이다.
이 거리에서 토네이도 "F5 등급"이 생성되었다는 사실자체가 정말 의심스러운 것이다.
실제로 최근 뉴스를 보면 이탈리아 알프스산맥 남쪽 아드리아해(Adriatic Sea)와 터져 있는 롬바르디아(Lombardy)평원과 전체 370 km 길이의 포평원에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2013년 7월 30일 국내기사를 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강한 토네이도가 도시에 머는 동안 15분 만에 주민 12명이 다치고 차량들이 뒤집히는 피해가 속출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이날 발생한 토네이도는 모두 11개로 순간 풍속이 시속 180km가 넘은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하였다.
물론 1930년 보다 지구온도가 올라가 특히 유럽에서 더위가 일찍 찾아오는 기후환경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지만 일단 밀라노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는 발생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드리아해(Adriatic Sea)와 접해 동서로 길게 펼쳐진 평야로서 중앙에 652 km 길이의 포(Po:Padus)강이 흘러 포밸리의 70,091㎢ 유역을 이루면서 알프스산맥 남쪽기슭과 이어지는 롬바르디아평원(Lombardia平原)이 있는 곳에 밀라노가 있다.
서쪽 아드리아해(Adriatic Sea)에서 들어오는 습하고 더운 해양성 기단(공기덩어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형이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고 서북쪽에서 넘어오는 건조한 대륙성 한냉기단 즉 알프스산맥에서 넘어드는 찬 공기덩어리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낮은 평지(Bassa)에서 지형조건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 넓은 평원에서 하층 정체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2013년에 20분동안 발생한 토네이도는 생성 지형적 조건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쪽으로 산 42.5%, 언덕(구릉) 19.3%, 연안평지 38.2% 를 구성하고 평지라 해안에서 안으로 고작 16km 길이의 우디네(Udine)와 그 보다 더 해안쪽으로 치우친 트레비소(Treviso)에 최고 등급인 F5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허구이거나 거짓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1764년에서 1845년까지 독일과 프랑스, 1930년 이탈리아, 1931년과 1946년 폴란드라 하여 유럽대륙에서 최고등급의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하는 모든 사실들을 지명과 함께 지형조건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관찰해보았지만 그 중 어느 하나도 제일 중요한 토네이도 발생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지형조건이 맞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모스크바 지명의 진실
그런데 이상한 자료가 있다.
위 내용은 2000년 6월 24일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의 기후역사란 기사인데 1904년 6월24일에 러시아 모스크바(Moscow) 카라챠로프(Karacharov)마을지역에서 토네이도(tornado)가 발생하여 24명이 사망한사실과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일어나는 토네이도이지만 여러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은 아시다시피 1847년 6월 3명의 시카고인에 의해 창간된 일간지로 미국의 10대 신문 중 하나이니 신뢰를 할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있지도 않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위 러시아자료 “English Russia(2014.06.29)”를 보면 위 시카코트리뷴과 같은 역사이야기가 나타난다.
년도 1904년은 시카코트리뷴의 기사와 같다.
러시아자료역시 1904년 모스크바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흔히 말하길 허리케인 또는 토네이도들은 모스크바시, 러시아 중앙에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1904년에 그것을 봤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고 공기를 소용돌이치게 하는 거대한 기둥은 모스크바의 교외에 발생하여 통과하면서 수십 또는 수백의 집들이 부서졌으며 열차들과 차들도 주위로 던져진 것으로 이 모든 것은 거위 알 크기의 싸락눈 폭풍우가 선행된 것이라 하였으며 게시한 사진에 실제 허리케인 기둥의 유일한 사진을 게시하였고 더 많은 사진들이 있다 "고 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자료에서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나는 것을 한편으론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위 출저도 알 수 없는 사진을 첨부하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토네이도 사진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태동의 문제이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두 개의 자료를 함께 올려 충분하게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자료에서 몇가지 지적을 한다면 시카코트리뷴에서는 일자를 1904년 6월 24일에 발생했다고 하였지만 또다른 구글자료에서는 1904년 6월 29일이라 하여 차이를 두고 있으며 시카코트리뷴은 사상자를 24명이라고 하였지만 구글과 러시아자료는 일제 대한 구체적인 기술은 없다.
어쨌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904년에 발생한 토네이도는 국제기상학회에 보고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러시아 자료를 보면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토네이도가 기차와 차를 던져다 하고 그 등급을 스케일에 찾아보면 [F3]정도로 바람속도 158-206mph(254~332km/h)로서 피해범위가 500m 정도가 됨을 알 수가 있으나 시카코트리뷴이 말하는 것은 인명손실이 24명이라고 한것에서 [F5]등급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것도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May 27, 1896 St. Louis - East St. Louis - St. Clair County F4 255 fatalities, 1000 injuries
[2]September 29, 1927 Webster Groves - St. Louis F3 79 fatalities, 550 injuries
하지만 꼭 [F5]등급이어야지 인명이 손상되는 것만은 아닌 것도 감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위 [1]과 [2]자료에서 보면 [F3]등급과 [4]등급에서도 인명손실이 많았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1896년 5월 27일에 발생한 미주리주(州,Missouri), 세인트루이스와 동부(East St. Louis) 그리고 세인트클레어 카운티(St. Clair County)를 강타한 토네이도는 [F4]등급으로 255명을 사망케 하였으며 1,000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미국역사상 3번째로 생명을 앗아간 토네이도로 기록되었으며 복구비용만 해도 자그마치 $2.9billion(1997USD) 우리나라 돈으로 2조9천억원이니 그 피해규모는 과히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토네이도 등급이나 규모로 따질 수는 없다고 하지만 어떤 지역의 토네이도라 할지라도 그 발생빈도수가 데이터가 되어야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04년이 기록도 남길 수 없는 먼 시기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년도 2월 8일은 그 의문스러운 러일전쟁이 발발하였으며 2월 23일 무엇인가 새롭게 이룩할 줄 알았던 대한제국체제아래에서 불과 7년도 되지 않는 시기에 망할 한일의정서 체결되었다고 하는 년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스크바란 주제에서 중요한 사실이 1904년 10월 15일 러시아제국 해군 발틱함대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위해 에스토니아(Estonia)수도 탈린(Tallinn)을 떠나 중국의 여순(旅順:Port Arthur)으로 출항했을 때라는 것 때문이다.
1904년에 토네이도가 일어났으면 러시아 모스크바에 똑 같은 규모가 아니라도 그와 비슷한 토네이도가 왜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모스크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대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지속적인 토네이도 발생사실이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는 것이다.
1764년 독일 볼테크 발생사실과 1800년 독일 하이니헨지방, 1845년 프랑스의 몬트빌 센마리팀에서 발생한 사실 그리고 85년이 지난 뒤 1930년에 유럽대륙 이탈리아 우디네와 트레비소에 발생한 사실 그 다음해 1931년 폴란드 루블린에서와 1946년에 폴란드 실롱스키에주의 크워츠코에서 발생한 사실등 따져 볼때 유럽대륙과 러시아 모스크바의 최고 등급의 토네이도 발생 빈도수가 단 한번으로 족하다는 것은 역사기록이라고 할 때 후대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거의 통계적이지 못한 사실을 역사라고 믿어야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세계삼한역사를 풀면서 느끼는 것은 서양인들이 남겨놓은 기록들을 다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중복된 기록일 수 있다는 의심과 의혹을 낳고 있는 것이다.
어디하고?
바로 북아메리카대륙기록하고 중복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고도 넘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유럽이나 모스크바의 지명문제만큼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급적 결론을 내리지 않겠지만 유럽대륙의 지명과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의 지명은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모스크바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되는 이유
모스크바(Moscow)라고 하면 우리는 러시아의 수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오하이오주(Ohio)의 클러몬트 카운티(Clermont County) 모스크바(Moscow)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또한 캔사스주(Kansas)의 모스크바시(Moscow), 마린주(Maine)의 모스크바타운(Moscow), 테네시주(Tennessee)의 모스크바시(Moscow)가 그렇고 모스크바(Moscow)지명의 각 주,시·카운티와 행정구역상 미편입지역(unincorporated)으로 아칸소주(Arkansas), 앨라배마(Alabama), 인디애나(Indiana), 아이오와(Iowa), 매릴랜드(Maryland), 미네소타(Minnesota), 미시시피주(Mississippi), 텍사스(Texas), 버몬트주(Vermont),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위스콘신(Wisconsin)같은 각주의 모스크바 뿐만아니라 그외 변형된 이름 미주리주(Missouri)의 모스크바 밀스(Moscow Mills)와 미시간주(Michigan)의 모스크바 타운십(Moscow Township), 미네소타주(Minnesota)의 모스크바 타운십(Moscow Township)까지를 다하면 그야말로 모스크바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많은 모스크바에서 우리가 관심있게 볼 곳은 오하이오주의 모스크바(Moscow, Ohio)와 펜실베이니아의 모스크바(Moscow, Pennsylvania), 그리고 아이다호주의 모스크바(Moscow, Idaho)가 있다.
먼저 오하이오주의 모스크바(Moscow, Ohio)는 신시내티(Cincinnati) 남동쪽 오하이오강(Ohio River)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모토가 바로 "a peaceful spot on the River" ‘강가에 있는 평화스런 장소’라고 하였다.
모토대로 강구릉지역에 지대가 높지 않고 면적은 193.1/km2 로 인구가 고작 185명이라는데 퍽 작은규모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Moscow, Ohio
History:Moscow was founded in 1816. The name may have been given to the town by French immigrants who were veterans of Napoleon's siege of Moscow.
On March 2, 2012, a tornado destroyed over 80% of the town and caused 3 deaths, as multiple tornadoes ripped through Indiana, Kentucky and Ohio.
위는 위키영어자료인데 1816년에 발견된 이 마을이름이 모스크바"Moscow"란 사실에서 역사적으로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1769-1821)이 이끌었던 1812년 보로디노전투(Bataille de la Moskowa)에 참가한 노병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지명으로 하였다는 설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도 퍽 이채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일단 관심지역으로 본 것이다.
도대체 어딘데 이런 이야기가 양산 된 것일까?
보로디노전투가 1812년이고 1816년에 모스크바라 하였다는 것은 실제로 가능할 듯한 이야기지만 도대체 대서양을 동네 얕은 개수나 하천처럼 여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대서양횡단을 밥먹듯이 하였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당시 운송수단인 배가 범선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목재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으로 궁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기사 서양인들의 주특기가 태평양과 대서양정도는 넘나드는 것은 식은 죽먹기란 이상한 용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양을 횡단하는 것이 어찌 용기만으로 될 수 있겠는가?
죽음을 담보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고 지 목숨 아깝지 않는 놈 없을 것이고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면 애초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를 마치 엣부터 마구 들락거렸던 것처럼 하고 있으니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아시아대륙으로 왜 넘어가지 않았겠는가 마는 감히 죽음을 담보하고서는 대양은 횡단할 수없었기 때문에 알레스카를 통해 힘들지만 아세아 대륙으로 넘어들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알래스카가 근세기 1800년초부터 활성된 것임도 알 수가 있다.
물론 대서양역시 횡단이 자유자재로 가능했다고 볼 수 없다.
유럽이니 어쩌니 하지만 결국 북아메리카대륙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에서 왔다갔다한 역사가 그들에게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프랑스의 러시아침공도 북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하고 나폴레옹도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활동한 것이다.
런던 화재사고도 그렇고 많은 사건도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동양한자역사와 서양문자라고 하는 영어 또는 라틴역사가 나뉘어지면서 마치 다른 역사인 것처럼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본 블로그글 “나폴레옹이 주는 단서(端緖) 캘리포니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9”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에서 말했듯이 나폴레옹을 평안도(平安道) 용강(龍岡)출신의 홍경래(洪景來)의 도풀갱어(Doppelganger)라 보아 결국 조선정부 토벌군은 홍경래를 정주성전투(定州城戰鬪:1811.12.30-1812.4.19)에서 정벌하여 소멸시켰다고 반도역사는 말하고 있지만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의 역사체계를 원칙으로 하고 기준으로 한다면 홍경래의 관서병란(關西兵亂)의 정주성전투(定州城戰鬪:1811-1812)와 비슷한 시기에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이끌었던 1812년의 보로디노전투 또는 러시아침공(vasion of Russia)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삼한역사관이다.
북아메리카대륙 현재 영어지명을 보면 수많은 지명들이 동일하다는 이상함을 누누히 이야기했다.
앞에도 열거한 사실과 같이 모스크바 하나의 지명만 하더라도 북아메리카대륙에 널려있다.
근세기 기록에는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지명만들기가 1776년이니 1800년이니 하고 있지만 아마도 대조선이 해체된 상징년도인 1881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명이름을 부랴부랴 부여한 것으로 보이며 넓디넓은 지역의 수많은 지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본래 지명의 토착적인 특성을 살릴 수가 없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신대륙이라는 서양역사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종전역사와 부득불 단절시키지 않을 수가 없어 그나마 남아 있었을 역사성의 있는 지명도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그들은 시급하게 그저 편한대로 여기저기 같은 지명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州)의 모스크바 역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1918년 이전 러시아와 이후 러시아가 같은 러시아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세부적으로 어떻게 따져 들어가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Aleksandrovich Nikolai II, 1868-1918,재위:1894-1917)가 유대계 붉은군대에게 처형당하면서부터 전혀 차원이 다른 러시아가 등장한 것이다.
아마도 대한제국은 니콜라이2세와 연결시켜야 할 문제의 역사이름이다.
1918년에 현 모스크바로 붉은 군대가 수도를 천도(遷都)하기 전까지 이전 수도로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명칭에서 앞에 세인트(St)을 빼버리면 미국 버지니아(Virginia)주에 있는 피터즈버그(Petersburg)가 된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에서 이미 벌써 이야기 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하나 더 볼 것은 피터즈버그가 아닌 그와 비슷한 어음인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州), 피츠버그(Pittsburgh)가 있다는 것과 모스크바는 똑 같이 연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 피츠버그(Pittsburgh)역시 부랴부랴 서양인 이름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영국의 정치가 백작 윌리엄 피트(William Pitt,1708-1778)의 이름을 1758년에 따 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신빙성이 없어보인다.
마지막으로 아이다호주의 모스크바(Moscow, Idaho)을 보자.
아이다호주의 모스크바(Moscow, Idaho)는 본 블로그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서 조선 정주성과 연결된다고 하였다.
먼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았을 때 정주성(定州城)이 평안도(平安道) 남서해안에 위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책에서도 알 수 있고 또한 일찍이 발해의 지방행정구역으로서 발해가 조선 북방 서쪽지역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북경사신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하여 옛날에는 파지(巴只)라고 칭하거나 선위(宣威)라고도 하였다는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즉 파지(巴只)는 여러뜻으로 쓰이지만 여진이나 말갈계통의 지명으로 알려지며 선위(宣威)는 고구려계통의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1413년(태종 13)에 평안도의 정주(定州)와 군명이 같다고 하여 정평(定平)으로 개칭하였다는 것은 평안도와 함경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여지고 조선에 두 개의 정주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조선의 광역을 보았을 때 정주의 위치가 매우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파지(巴只)가 정주(定州)의 옛 지명이라 하는 것이나 선위(宣威)가 함경도(咸鏡道) 정평(定平)지역의 옛 지명이라 하는 것도 엄밀하게 보자면 다를 수 있는 지명이라고 할 때 평안도 정주와 함경도 정평은 적어도 동서로 나누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정주성(定州城)은 서여진이나 말갈 계통의 지명임을 알 수 있고 조선(朝鮮) 서(西)쪽에 평안도에 위치한 것이 틀림없다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에서 모스크바 즉 정주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의 이야기다.
지금 살펴보려고 하는 서부지역 아이다호주(State of Idaho)의 모스크바(Moscow)가 바로 정주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곳은 남북전쟁 이후 광부와 농부가 도착하기 시작했다는 곳으로 천국, 지상낙원(hóg héaven)등으로 불리던 것을 우체국이 1872년에 개설되었을 때 파라다이스 벨리(Paradise Valley)라 한 것과 지명전통성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어사전에 보면 정[定]은 "안정되다. 진정되다. 가라앉다(平定, 定理, 定義, 定律, 定局, 定論)"등으로 나타나며 바름을 좇다(從正)。“正”亦兼表字音。本义:安定;安稳 등으로 나타나며 정(定)은 안정되다는 것이 주 의미라면 안정이라는 것은 옛역사가 더 절실했다면 평화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안방정국(安邦定国)이라 하여 국가를 안정시키고 공고하게 하는 땅(州), 즉 정주(定州)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천국, 지상낙원 또는 파라다이스 벨리와 뜻이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다.
그 이후 1875년에 모스크바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하는 곳이 바로 아이다호주의 모스크바(Moscow, Idaho)이다.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명명에 대한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에서 러시어인들의 이주자가 명명했다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모스크바 주제로 한가지만 언급하고 마치겠다.
이렇게 보면 모스크바지명이 부여되어 있는 현재 러시아는 근세기에 세워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즉 1918년 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Aleksandrovich Nikolai II, 1868-1918,재위:1894-1917)가 유대계 붉은군대에게 처형당하면서부터 전혀 차원이 다른 러시아가 등장한 것이라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 이전 수도가 되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가 있었던 그곳에 진정한 러시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무리
이상에서 유럽지명과 모스크바지명까지 사실상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 자연재해 특히 토네이도를 바탕으로 충분하게 살펴보았다고 자부한다.
독일 볼데크(Woldegk)와 하이니헨(Hainichen), 프랑스 몬트빌 센마리팀(Seine-maritime), 폴란드 루블린(Lublin)과 크워츠코(Klodzko), 이탈리아 우디네(Udine)와 트레비소(Treviso)까지 그리고 더하여 아이호와주의 모스크바까지 모든 지명들은 북아메리카대륙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곳에서 찾아야 지명임을 알게 한다.
자연의 이치는 속일 수도 숨길 수도 없는 것이다.
토네이도는 역사적으로도 다른 곳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 대평원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단언컨데 굳이 역사성이라고 한다면 단절이 아니라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게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오리엔털 역사가 서양사에 찢겨 버리고 사라진 것은 단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절은 삼한역사에서 비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속된 역사성은 믿음을 주고 신뢰를 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역사성은 조작, 바꿈의 역사로 등장하였고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로 나타난 것이다.
얼마나 오리엔탈문화에 찌들었으면 이렇게 까지 하였을까?
문제는 어긋난 내셔널리즘이다.
당시 하나의 체제, 하나의 나라에서 분리, 분열되어 오직 민족주의 ,국민주의 국가주의에 몰입되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였으니 무엇을 더 못하였겠는가?
여기서 종교분리가 되고 인종분리가 되었으니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가 하나의 체제, 하나의 역사를 그리면서 처절하게 그의 시(詩)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조국 코리아!"라고 가슴으로 소리쳤을까?
다시한번 음미해보자. 본 블로그 글"시성(詩聖)타고르의 정신적 지주(支柱)는?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1"에 있는 아래 문장을 다시 음미해보자.
위 낱낱히 밝혀진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 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그곳은 오직 "나의 아버지, 나의 조국, 코리아(My father, my country. Corea)라고 읊었다는 사실을...그리고 가슴으로 소리쳤다는 사실을...[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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