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기후천문

IHO로 본 세계삼한역사

한부울 2012. 5. 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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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O에서 느낀 미국의 대한 섭섭함은 당연한 것인가?

 

글쓴이:한부울


국제수로기구(IHO:國際水路機構: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는 1921년 국제수로국(IHB)으로 창설되었다.
1889년 워싱턴 D.C.에서 국제해사회의(International Maritime Conference)가 열렸고, '영구국제위원회(permanent international commission)'를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190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항법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Navigation)와 191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해사회의(International Maritime Conference)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안이 이루어졌다.
1919년 영국과 프랑스의 수계(水界) 지리학자들은 국제 수경회의 소집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데 협력했다. 런던은 이 회의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선정되었고, 1919년 7월 24일 24개국의 수계(水界) 지리학자들이 참석한 제1차 국제회의가 개막되었다.

회의의 목적은 "모든 해양 국가들이 도표와 모든  수계(水界) 출판물의 준비, 건설, 생산에서 유사한 방법을 채택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 그 결과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장 편리한 형태로 만드는 것, 그리고 상호 교류에 대한 신속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모든 국가 간 수로 간행물(hydroographic information); 그리고 일반적으로 전 세계 수로 전문가들에 의해 수계 지리학 주제에 대해 수행될 수 있는 협의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것은 여전히 국제수로기구의 주요 목적이다. 총회의 결과, 상설기구가 구성되고 그 운영에 관한 법령이 마련되었다. 현재 IHO인 IHB는 1921년에 18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1921 with the following 18 Member States: Argentina, Belgium, Brazil, British Empire (UK and Australia), Chile, China, Denmark, France, Greece, Japan, Monaco, Netherlands, Norway, Peru, Portugal, Siam (Thailand), Spain and Sweden. Egypt, Italy and the USA joined the following year.
1921년 18개 회원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르헨티나, 벨기에, 브라질, 대영제국(영국 및 호주), 칠레, 중국,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일본, 모나코, 네덜란드, 노르웨이, 페루, 포르투갈, 시암(태국), 스페인 및 스웨덴.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은 다음 해에 합류했다.


IHO 총회에서 나는 간절히 우리나라가 지금의 동해를 동해라고 주장하지 않고 일본처럼 '고려해(corea sea)'또는 '한국해'라고 주장해 주길 바랬다.

물론 동해도 어려운데 한국해라고 하는 것을 들어 주었을리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요구해 보길 바랬다.

하지만 남의 나라가 만들어준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고 알고 있는 형편에 이렇게 고집해보았자 덕 될 것은 없다고 보이고 이미 서세들이 차지한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 여겨져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편파적이라고 할까 미국과 영국이 일본을 동조하고 나섰다고 하는 기사가 올려졌다.

전혀 한국입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서세가 장악한 기구에서 한국인들이 그동안 서세를 추종하면 변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과거 역사가 미심쩍어 일본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해야만 할 형편인 것이다.

과거 역사는 세계삼한역사이다.

순간 섭섭한 마음이라고 할까?

미묘한 어떤 감정이 일어나 이상하게 이성적인 중심을 잡고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보다 편파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과 세계삼한역사를 견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몇자 적지 않으면 안된다고 여겨 여기에 글을 써내려가 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끔씩 우리보다 일본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해서 섭섭함을 곧잘 들어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냥 우리가 일본보다 더 우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같은 느낌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아는 것이지만 1941년 일본이 치열하게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치룬 앙숙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고 반면 한국전쟁 때 미국의 도움이 컸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얼측보면 그렇다.

어쨌거나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여야만 했고 오죽 했으면 핵폭탄을 투하했겠는가 하는 짧은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다란 착각임을 알 수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역사는 근세기 특히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신생국가 역사인점에 같은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비주류였고 과거 음지의 기억을 가진 나라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역사와 관계 없이 그들이 합작하여 세계삼한역사를 지워버렸다는 사실에서 서로 동지애가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역사생성되는 과정에서 서로 돕고 도운처지에 있던 나라라고 해야 한다.

그들의 역사가 일천한 것이나 그들의 역사가 초라한 것 모두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미국과 서세는 같다는 등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문제 만큼은 우리를 동조하지 않고 또한 동조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한 예로 1905년 가츠라-태프트밀약(The Katsura-Taft Agreement)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반도역사가 생성된 근원적인 문제가 그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당시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세력은 삼한역사를 근거로 한 세계삼한역사세력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 기득권세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1922년 이전의 역사가 그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으며 극복해야 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IHO 문제만 들여다 보면 그렇다.

IHO는 국제수로기구(國際水路機構,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의 약자인데 1967년에 모나코(Monaco)에서 열린 9차 국제수로회의에서 채택된 협약에 의거하여 1970년에 새롭게 출범하였던 기구이다.

이것은 보나마나 서세 활동을 정당화하던 기구이다.

오스만제국등 기득권세력들이 무너지던 1921년에 설립된 국제수로국(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이 국제수로기구의 전신이 되는 셈이다.

이 국제수로기구는 대항해시대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 서세들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인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란 유산에서 파생된 그들만의 수단과 방법을 정하던 기구였던 것이다.

그 시대 표면적인 것은 항해(航海, sailing)의 안전을 위해 해도(海圖)에 관한 부호(符號)와 약자(略字)의 국제적인 통일, 국제공동조사, 측량 및 해양 관측 기술개발을 목적으로 한 기구로서 근대사를 잉태하게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모체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쓴이는 지금 이러한 기구들이 만든 모든 자료들을 신뢰하지 않지만 어쨌던 누구누구가, 어디어디에서 항해하던 항해일지, 항해지도, 어디어디에 실행하였던 측량도, 측량일지, 그런 과정에서 생성된 삽화, 각종메모, 기록물 따위들을 근세기에 서세들에 의해 기획적으로 모집하고 수집하여 짜집기식 근대사가 이루어졌다고 해야 맞다고 보는 관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기에다 굳히기 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문명도구인데 1839년 구리 판을 이용한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1787-1851)의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촬영술이 발명되어 대중에게 널리 사용되면서 부터는 역사를 보고 그리는 삽화가 아닌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자연스럽게 실증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진이 근대사의 얼마나 영향력이 지대했는가는 다음번에 따로 이야기 하기로 하자.

사진 기술까지 확보되자 서양세력들은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실증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면서 역사 판짜기 혁신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고 이것에 고무되어 분할 역사가 틀이 잡히면서 서서히 근대사가 만들어졌으며 이것들이 모여 확고부동한 역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 글쓴이만의 것이라 해도 상관이 없다.

언제가는 이러한 주장이 명명백백 밝혀질 것이라고 믿기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1920년에 역사대관(Outline of History,歷史大觀)을 출판했고, 2년이 지난 1922년에 그것을 요약하여 간추린 세계사(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펴내게 되면서 전 세계 식민지사람들에게 교육으로 주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미 100년세월 가까이 도달했으니 엉터리역사라 하여도 이제는 사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해시대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를 영어로는 대발견시대(Age of Discovery)라 하고 또는 대탐험시대(大探險時代, Age of Exploration)라고 하는 것을 보면 현재 기득권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양세력들의 역사판짜기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즉 발견하면 내 것이되고 탐험하면 소유권이 인정되게 한 역사이니 그렇다.

이렇게 모든 환경이 역사 판짜기하기 좋게끔 조성이 되었다는 것을 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 근세기 역사는 이 대항해시대라고 하는 기간동안 모든 역사자료가 수집 완료된 시기로서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 기원이라 하면 15세기 후반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역사, 미지영토 탐험역사, 유럽이란 정치적 영역을 발생케 한 역사, 그리고 특히 무시 할 수 없는 노예무역이 생성된 정의가 사라진 시대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대항해 시대라고 그럴듯하게 부르지만 비판하는 입장에서보면 사실상 신대륙 발견의 시대도 아니었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도 아니었으며 다만 비유럽과 비기독교 세계 영역에 대한 식민지배의 시발점이었다고 보면 정확하다고 말한다.

더욱이 인류가 사리사욕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거나 하도록 한 시발점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냉혹한 비난도 존재하는 시대였다.

이 항해시대때 서양세력들은 노예무역을 통해 자본을 쌓았으며 강제이주를 통해 신대륙과 신역사를 창조하고 개척하였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도덕성이란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던 시대였다.

 

때문에 이 항해시대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역사 오류는 안보아도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은 이러한 오류에 대해서 걸러낼 수 있는 정화역할이나 필터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지적받을 상황이다.

그러한 감시기구가 있을 수도 없었고 설령 그러한 비판 세력의 감시기구가 있어 반대자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세에게 남아났을 리가 없다.

오직 그들의 영역을 넓히고 표시하고 인정받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그것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기구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제수로기구(國際水路機構,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는 서양역사의 보루라고 할 수 있고 첨병이라해도 심한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역사사실에서 기초가 된 해도나 측량자료에 등장하는 무슨 용어 또는 부호, 약자, 기록사실등은 설혹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로 고쳐 질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고 현재 동해문제도 그런 선상에서 난감하게 바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일본이 현 동해를 일본해라고 우기고 주장하는 것도 그와 같은 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주장을 미국과 영국이 비호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일본인들이 그들의 고유 역사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근세기에 서양세력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가짜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역사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은 가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임에도 그들은 사실이라고 고집하는 것이고 사실의 역사라고 믿고 싶은 것이며 사실인 것처럼 우기는 버릇은 다 그런 심리적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이런데서 조악한 그들의 심리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일이며 진실에 의한 역사진단이다.

그러한 뻔뻔스러운 방책조차 없다면 일본은 역사문제에서 당장 디디고 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서양세력이 만든 역사가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가 일천한 역사라고 해도 그들은 관계치 않는다.

우기면 그만이다.

세계질서가 미국, 영국, 서양세력들의 언제까지고 중단없이 지배되는 것이라면 그런들 수정되거나 고쳐질 이유가 없는 것이며 그렇듯 정의와 상관이 없는 것이고 기존 역사사실은 그들에 의해서 확실하게 지켜 질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저질스러운 독선이니 이치에 없는 어거지이니 망언이니 우리는 항거하지만 일본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코웃음을 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본정치지도자라면 상식적으로 갖추어야 추억한 덕목인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 인민들에게 존경받는다는 어처구니도 없지 않다.

 

이미 근세기를 거치면서 역사가 만들어질 때 정의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오직 힘이 있고 자본이 풍부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이상이 없었던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의 역사 삼한역사는 그들에 의해서 제로게임의 대상이 되었고 제로게임에서 더 이상 이설을 달 수 없도록 패배한 사실이 있어 억울하고 섭섭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모든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거나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양세력들은 그들 역사에 준한 한반도 역사를 일제에게 만들게 하여 먹이처럼 던졌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감사하게 받았다.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이 없다.

때문에 서양역사를 근본적으로 고치거나 수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들 서양세력들이 만든 원칙속에 우리의 애절한 분노와 거짓에 대한 분통, 그리고 진리를 토대로 한 항거 또는 항의를 언제까지고 찝찝한 기분으로 배설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세계삼한역사에서 보듯이 명백한 세계역사오류가 분명하게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든 틀은 우리가 마음대로 깨뜨릴 수가 없다.

우리의 역사임에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다짐하면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동지나해가 Blue Sea 였고 COREA SEA 였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8856

[클릭원본]

                                           [1830 F.J. Huntington Hartford 위싱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와 동해문제를 이야기 해보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 2012년 4월 26일 국제수로기구(IHO)18차 총회는 세계의 바다 명칭을 결정하는 표준, 준거(準據)로 사용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라는 해도집을 발간하기 위한 총회인데 이 총회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동해문제로 충돌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해를 일본은 과거 해도집에 등재가 된 일본해를 변함없이 고집하는 것으로 충돌하여 이번총회에 이 문제를 결정할 것을 결의하였지만 결국 새롭게 발간될 국제표준 해도집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개정안(제4판)에 종전과 같이 처리되면서 우리가 주장하는 동해결정은 2015년 총회까지 다시 보류결정 되었다.

소위 달라진 것이 없는 결정이다.

여기서 미국과 영국은 일본 편을 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당장에 틀을 깨뜨릴 수야 없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좌절하기 보다 우리나라의 주장이 비록 인정되지 않고 보류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되었다는 점에서 총회 회원들이 결정하기가 어려웠다고 본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국제지위가 일본을 상대 할 만큼 높아졌음은 물론이고 또한 국제적으로 볼 때 미국과 영국이란 세력에 관계없이 우리를 동조하는 세력도 그 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국제적인 영향력 면에서도 일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만큼 과거 식민지 시대와 다르게 일본과 맞 상대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동안 국력신장이 많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문제는 2015년 다시 우리나라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문제 말고도 일본과 대립되는 역사문제는 많고도 많다.

그렇지만 그러한 대립에서 미국이나 영국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독자적으로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반드시 동해가 아니라 한국해로 명명해야 한다는 목표를 다시금 세울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서구세력들은 일본을 상대로한 역사문제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옛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 원칙이 있는 것이다.

막연히 우방이란 따위에 우리 스스로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 서양세력들이 그런다고 해서 특별하게 우리가 섭섭해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세계삼한역사관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역사틀 속에 있었던 세력이었다.

그런데 옛적에 지워버렸던 것을 다시 꺼내어 우리를 지원하거나 동조해 줄 일이 만무하다.

이후라도 우리나라의 주장인 동해가 해도집에 단독 표기된다는 결정 가능성은 그들이 거부한다면 거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보다 나라의 힘이 더욱 커지면 이러한 원칙도 무시될 수 있겠지만 남북한이 갈라져 힘이 분산된 지금은 아니다.

이 동해문제뿐만아니라 일본과 결부되는 모든 역사문제가 다 그런 모양새로 갈 확률이 높다.

당장 동해문제에서는 아마도 절충안이 통과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해와 일본해 양립하는 문제로 충돌은 일단락 될 것이라고 본다.

여기까지 볼 때 어쨌던 일본은 역사문제만큼은 서양세력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서 보는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미국과 영국이 왜 일본을 비호하지? 란 어리석은 의문따위는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발 섭섭한 생각 또한 안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섭섭함이라는 것은 근세기에 생성된 그들의 역사 태동과 뿌리 깊은 관계가 있고 그것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난해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처지가 바뀌었다고 보아야 맞다.

결국 미국, 영국, 일본이란 틀에서 서구세력이란 구도가 그려지고 과거 그들의 근대사가 생성 될 때부터 그들끼리 서로 부정 할 수 없는 원칙이 나름대로 기준이 세워져 서로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역사문제만큼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원칙에서 근대사가 만들어졌고 그들만의 고유의 틀을 우리가 눈치없게 나서 한순간에 깨뜨려버리려고 하였으니 그들입장에선 그야말로 가당찮은 이야기가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프로이센(Prussian), 마지막 오스만제국까지 기득권세력들이 무너지던 1921년에 설립된 국제수로국(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이 현 IHO가 되었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만든 기득권의 틀일 뿐이다.

그러니 20세기 초 제국시대때 그들은 이러한 틀을 만들어 철저하게 이용하였으며 그 당시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비밀스러운 역사를 그들은 공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은 또 다른 기득권 세계전쟁이 일어나 그러한 틀이 일시에 뒤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지속될 틀이고 비록 그들이 나중에 영토싸움이나 이해관계 다툼이 있다고 해도 그러한 역사 생성의 법칙 또는 원칙에서 서로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바보가 아니면 할 수가 있는 이야기다.

기존 지명의 문제는 근대사의 문제이고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현재 처해진 역사인식은 우리에게 불만 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할 그들이 만든 역사이다.

때문에 아무불평없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면서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확고부동(確固不動, firmness)한 원칙의 사실이다.

다시말하지만 또 다시 기득권쟁탈 전쟁이 없는 한 그 원칙은 계속 갈 수밖에 없다.

 

한반도역사를 가진 잘못이며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힘을 키우고 나라가 번창하여 한반도에서만 만족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하고 다시 세계지도국이 된다면 모든 것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는가?

참아보돼 현명해야 할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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