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기후천문

현해탄(玄海灘)의 진실

한부울 2016. 2.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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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玄海灘)의 진실


글쓴이:한부울


우리가 역사 용어를 사용 함에 있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역사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인식하는 것에서도 원칙이 필요로 한 것으로서 식민사관으로는 도저히 이 임진왜란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문명지역을 장악하고 지배하던 대조선(大朝鮮)에 소속이 된 왜구(倭寇:wi:we)들이 임진년에 일으킨 반란을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정의해야 하는 것이다.

왜구라는 범위에 왜(倭:Wa)와 웨기(Waggie), 화(和:Wa)가 다 들어간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종려(棕櫚), 야자나무로 본 대한제국 http://blog.daum.net/han0114/17049487"에서 밝혔듯이 네덜란드인을 화(和:Wa)라 한 사실과 난장이나 할미새를 잉글랜드인들의 방언에서 왜(倭:Wa)와 웨기(Waggie)라 했음을 알 수가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난장이가 왜라는 의미와 상관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재 북유럽 쪽에 배치된 종족들을 호칭한 것에 가깝고 남아메리카대륙 동부에 거주하던 잉글랜드인 엘비언(Albion)과 포르투갈 및 네덜란드인이 여기에 포함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문음(漢文音)에서 정확하게 관동어 발음으로도 왜[Cantonese (Jyutping): wai1, wai2]라 하였음도 알 수가 있다.

근세기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 풍신수길(豊臣秀吉)은 본 블로그에서 포르투갈인이라고 하였지만 이 세력들이 조선(朝鮮)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왜노(倭奴)들에게 식별을 용이하게 하고 조선 각 지방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색칠한 지도를 왜노반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데서 볼 때 당시 왜군 군졸이나 군장들이 지도해독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때 색으로 그 방향을 정하고 그들을 유도했다고 보여 지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오방색(五方色)은 조선(朝鮮)에서의 동양철학 음양사상에서 상징성이다.

이것은 천지사방(四方天地)과 가우리, 가운데 땅, 가온 땅을 합한 것으로서 천지사방을 삼한에서 지배하는 것이니 만큼 그 가운데는 곧 중국(中國)이라 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때문에 중앙을 중심으로 사이(四夷)이라 하고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하였으며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 사승(使僧) 천장(天章) 등이 조선 성종 25년(1494)에 내빙(來聘)하여 그 글에 이르기를,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는 조선국(朝鮮國) 예조대인족하(禮曹大人足下)에게 받들어 올립니다. 대체로 삼한(三韓)은 만방(萬邦)의 우두머리이니, 많은 백성들의 영광입니다.

三韓者, 爲萬邦酋, 榮兆民群, 德澤遍四夷, 仁風齊二儀, 寔大矣哉!

삼한은 만방에 우두머리이고 많은 백성의 영광이라 하였으며 “덕택(德澤)은 사이(四夷)에게 두루 미치며, 인풍(仁風)은 이의(二儀)와 같으니, 크도다 만복(萬福)이 진중(珍重)함이여!”라고 경탄해 마지않았던 것을 본 블로그 2009년의 글 "삼한(朝鮮)은 만방의 우두머리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382"에서 알 수 있었는데 초기 중종반정(1506)이전까지 조선이 아니라 고려와 조선을 같이 이른 것인지 아니면 조선만을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삼한을 중국(中国) 또는 중화(中華)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 수가 있다.

아래 좌측 작은 국기는 다 아시다시피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1912년부터 1929년까지 존재하였다던 중화민국 국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곧 고려국기라고 보아야 맞다.

때문에 대한제국국기라고 볼 수 있지만 진실을 계속 밝혀나가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일제 괴뢰국이라는 만주국의 국기 역시 중앙인 황색을 바탕으로 나머지 네가지의 색이 좌측 모퉁이에 그려져 있는 것도 오방색의 의미 범위 내에서 존재할 역사주체의 상징이라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오방색에서 보면 동(東)쪽은 청(靑)색 봄(春)을 나타냈고, 남(南)쪽은 적(赤)색 여름(夏), 서(西)쪽은 백(白)색 가을(秋), 북(北)쪽은 흑(黑)색 동(冬)이며 중앙(中)은 황(黃)색 4계절 모두가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복희 팔괘 방위지도(伏羲八卦方位之圖)에 기초를 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 오방색을 정색(正色)이라 하고 정 방향의 색 이외 간색(間色)으로는 서방과 동방사이에는 벽색(碧色), 동방(木)과 중앙(土)사이에는 녹색(綠色), 남방(火)과 서방(金)사이에는 홍색(紅色), 남방(火)과 북방(水)사이에는 보라(紫色), 북방(水)과 남방(土)사이에는 유황색(騮黃色)이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당시 풍신수길이 만든 지도를 보면 서쪽을 나타내는 경상도 백국(白國), 남쪽을 나타내는 전라도 적국(赤國), 동쪽을 나타내는 충청.경기도 청국(靑國), 중앙을 나타내는 강원.평안도 황국(黃國), 그리고 북쪽을 나타내는 함경도 흑국(黑國), 정색이 아닌 간색으로서 동쪽과 중앙사이에 황해도 녹국(綠國)이라 표시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계산해 볼 때 동쪽 만큼은 정색과 간색이 있어 세분화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다르게 생각 해 볼 때 동쪽에 거주인구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사정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청구(靑丘)와 bule hill http://blog.daum.net/han0114/17050123"에서 일찍이 살펴보았던 대로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14년에 펴낸 지봉유설 제1권(芝峯類說卷一) 천문부(天文部) 별(星)편에 따르면 曰靑丘主東方三韓之國 청구의 주인(主)은 동방(東方)삼한이라 한 사실과 현재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 매사추세츠주에 노퍽카운티(Norfolk County, Massachusetts) 보스톤(Boston) 남부에 불루 힐 레저베이션(Blue Hills Reservation)있고 또 하나는 메인주의 부루 힐(blue hill maine)이 있는데 이 부루힐에서 직선 거리 약 48km 정도의 거리에 핸콕 카운티(Hancock County), 굴즈버로(Gouldsboro)타운에 코리아(COREA)마을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지만 이를 표시하고 보니 현재 우리 한반도 지형에서의 팔도와 매우 이질적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것도 점차 밝혀질 이야기다.



그렇다면 현재 현해탄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현해탄(玄海灘)을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첫째로 우리나라 즉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열도의 규슈 사이에 있는 해협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약 200km(120miles)너비로 평균 수심이 90-120미터(300ft)깊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바다에는 수심이 얕아 암초가 많기 때문에 바다가 검게 보인다고 하고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하다고 하고 있다.

그것 뿐만아니다.

더하여 망령이 되어버릴 식민사관이 또 나타나는데 이 바다는 우리민족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눈물과 통한의 바다이고 침략의 바다라 한다.

그러나 그런 식민지역사와 다르게 1938년 2월 29일 동광당에서 발행한 임화(林和:1908-1953)시집『현해탄』에는 “해협(海峽)의 로맨티시즘”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과 “현해탄”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작품에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신문명을 배워 오려는 청년들의 기상이 주된 내용으로 제시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근세기에 서양문물을 배우려 진취적인 기상을 말하는 것일게다.

이러한 사실을 읽을 수 있음에도 자학적인 역사사실과 비운이니 고통이니 하는 따위 식으로 이 현해탄에 온 조선민족의 초라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운 다름이다.

그러나 임화의 시 어디에도 이런 자학적인 사실이 없으며 대체로 평론들도 이를 당대 지성인들의 ‘현해탄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으로 단순히 일본편향성에 매몰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의미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현해탄이란 지명이 과연 현재 한반도 부산과 열도의 시모노세키(下關), 부산과 오사카, 그리고 부산과 하카다 사이에는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매일 수차례씩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는 바다가 맞는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현해탄이라는 것을 일본어 켄카이나다[‘Genkainada’]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이라 한 것이다.

겐카이나다(Genkainada)를 풀어보면 “켄카이(Genkai)바다”라는 의미가 있다.

켄카이는 리미트(limit)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한계, 한정, 국한, 끝, 결과, 말단, 결말 등으로 쓰인다.

즉 한계(限界) 또는 경계(境界)의 바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거꾸로 일본인들이 이러한 한계와 끝, 국한, 결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의미이다.

우리민족에게 이 현해탄이라는 말은 그렇듯 비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분명 일본인들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 영역으로 그들이 들어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지만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바다의 환경과 그들의 운송수단 사정,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한계 즉 끝을 아마도 절실하게 고느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일본어로부터 생성된 단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현해탄(玄海灘)이란 한문을 풀어보면 일단 현해(玄海)라는 것은 “검은 바다”를 뜻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흑해 즉 흑류(黑流), 흑조(黑潮)라고 알려진 곳은 한반도 부산과 열도 시모노세키 사이의 바다가 아니다.

바로 열도 남동해에 자리잡고 있는 구로시오 해류(Kuroshio海流)를 흑조(黑潮)라 하는 것이다.

이것조차도 맞지 않는다.

이역지(異域志)에서 海皆绝碧,至洋则黑海,人谓无底谷也。라 하여 “짙푸르고 큰 바다 흑해에 이르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해저에 밑바닥이 없다”라고 한 사실에서도 밑바닥이 없다 한 것은 해심이 깊다 하여 흑해라 했던 것이다.

또 현해탄의 단어에서 현해(玄海)가 아니라 해탄(海灘)을 살펴 볼 때 해탄(海灘)은 해변의 모래사장, 또는 '백사장, 모래톱, 갯벌'등으로 해석되고 바다가 아니라 강일 때는 '여울'을 뜻하고 '건조한 사막'을 뜻하며 다른 해석으로는 '검은 바다가 끝나는 곳'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이다.

때문에 이러한 뜻을 종합하면 지금의 한반도 부산과 열도 시모노세키 사이에 있는 바다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지역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소위 해탄을 엄청난 파도가 몰아치는 거친 바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쨌던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현해탄은 우리말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현해(玄海)가 바로 검은 바다라는 의미 보다 아역지에서 말한 해저에 밑바닥이 없어 짙푸르고 큰 바다를 말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새삼스럽지만 현재 일본이 과거 여몽원정시에는 어디에 있었던가.

본 블로그 글 “1차려몽일본원정으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0”에서 1274년 1차 려몽일본원정시에는 11월에 발생한 하리케인이 발생한 지역으로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가 “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낙원”이라고 칭송한 곳, 분명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쿠바(Cuba)에 있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상학적으로 풀어본 사실이다.

물론 이후에 1492년 콜롬버스가 쿠바를 발견하고 상륙하고서부터 선주민이였던 타이노인(Taino)는 에스파냐인들의 혹정과 학대, 질병의 창궐로 몰살하였다는 사실이 있어 일본인들이 선주민이 아니었다는 것도 짐작이 가능하다.

또한 당시 가미가제(Kamikaze, 神風)라고 하는 폭풍역시 다름이 아닌 우리나라 말로 싹슬바람, 폭풍의 신, 강대한 바람을 뜻하는 에스파냐어의 우라칸(huracan)에서 나온 말로 하리케인(Hurricane)이라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현재 열도인들은 이것이 마치 신성바람인 것처럼 부풀려 해독하고 있다는 점도 참으로 우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흑해, 흑류 또는 흑조(黑潮)라는 것은 바로 멕시코만난류(墨西哥灣暖流:Gulf Stream) 또는 '걸프 스트림'을 가르키는 것으로 본 블로그 글"흑조(黑潮)의 진실이 주는 일본의 정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9"에서 충분하게 알아본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어떻게 현해탄을 한반도 부산과 열도의 시모노세키 사이에 있는 바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 붙인다면 흑해(黑海)라 할 수 있는 곳을 정확하게 위치를 찍어 볼 수 있는데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남부 심해들이 넓게 퍼져 있는 바다를 말한 것이며 그 중에 북아메리카 바진(North American Basin)같은 곳은 해심(海深) 6,995m 깊은 곳이라 위성에서 보아도 시커멓게 짙은 바다를 알 수 있듯이 옛사람들이 충분히 밑바닥이 없다고 여길 정도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우리가 본 블로그 글"루스벨트가와의 역사적 악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8"이란 장문의 글에서 오래 묶은 한이 서양인들 가슴에 문신처럼 남겨져 역사의 음침한 함정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핍박받는 한은 우리민족에게만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던 사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서양인들 가슴 저 밑바닥에 가지고 있던 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즉 서세라고 알려진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조선 또는 삼한에 향한 역사적인 깊은 상처의 한(限)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은 해양세력인 서세들의 조직적인 대 반란으로서 지배주체인 대조선의 정책에서 불만하여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7년 전쟁이라고 하는 임진왜란은 바로 위그노탄압과도 연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배주체인 조선이 상당한 피해를 보았던 것은 사실이나 반란을 일으킨 서세 즉 일본인들은 사실상 조선 땅을 밟을 수조차 없는 철저한 제약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물론 주모자와 그 반란 동조세력들은 무참히 처형당했을 것은 뻔하고 그 식솔들조차 노예나 관노신세로 전락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그노(Huguenot)탄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숙종이라 비견되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14세에 의해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문명지역의 통제권자인 조선의 막강한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위그노탄압은 적어도 임진왜란 기유조약이 맺어진 1609년부터 1789년 프랑스혁명까지라고 보는 것이니 만큼 180년간의 속박이었던 사실이다.

그나마 그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한 인물이 바로 에도막부(江戶幕府) 1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었던 네덜란드인 덕천가강(徳川家康:1543-1616)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비탄이 그 자체가 아니었겠는가.


위 그림에도 정확히 알 수 있듯이 한반도 부산과 열도 시모노세키 구간을 현해탄이라 하는 것은 현 역사가 식민사관에 빠져 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현해라 하는 것처럼 깊고 검은 바다인가 하는 점이다.

이 구간을 보면 얕은 대륙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해저 깊이가 200m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옆 그림을 보면 카리브해(흑해)에는 심해(深海)깊이가 푸에르토리코 해구(Puerto rico trench)는최고 깊이 8,380m가 되며, 최저 나레스평원(Nares Plain)의 깊이 5,462m 로 나타난다.

솔직히 200m 와 비교할 수 없는 깊이다.

최소한 미국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신생국가 일본(日本)은 서양 여러 해양세력들의 검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페리의 흑선(黑船) 함포외교사건(1853)이전까지 아마도 위 그림의 붉은 화살표처럼 멕시코 만을 건너 뉴올리언스(New Orleans)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또는 쿠바 북쪽 흑해라 할 수 있는 그레이트 바하마뱅크(Great Bahama Bank)를 건너 북미동부해안지방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와 같은 비탄의 검은 바다를 현해탄이 아니라 현계탄[玄界灘]이란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글쓴이의 이런 추론은 거의 99% 정확할 것이다.

식민사관을 늘 문제가 된다.

학자들 조차 이러한 사실을 옳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얼마나 피폐가 심한가를 알 수가 있다.

제대로 역사를 좀 알고 논해야 할 것인데 백과사전도 마찬가지고 주위에 우리가 찾아볼 자료가 이렇듯 형편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현해탄이란 말을 쓰지 말고 이 말은 일본인들에 의해 불리었던 것으로 켄카이 나다(Genkai Nada-’げんかいなだ) 또는 현계탄[玄界灘]으로 불리어야 하고 그들에게 장벽 같은 한계가 있었던 당시 그들에게 건너갈 수 없는 파도가 센 먼 바다가 막혀있었기 때문에 자학적으로 붙여진 것임을 알 수 있어 비탄에 빠졌던 것은 우리민족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역사사실을 찾아 밝히는 것이 바로 세계삼한역사연구의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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