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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大都)와 가자미(川鰈-Platichthys flesus)가 주는 의미

한부울 2011. 10. 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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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大都)와 가자미(川鰈-Platichthys flesus)가 주는 의미

 

가자미(鰈)가 많이 났다고 하는 곳은 어디었을까? http://blog.daum.net/han0114/17049902

 

우리는 실제 대도(大都)가 어디에 있었는가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고려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상도(上都)라 하는 개평부(開平府)와 개성(開城)은 다른가?

대도(大都)와 한양이 다른가?

연다는 것과 크다란 의미는 같다.

고집하기 나름이다.

물론 근대사에서는 현재 대도를 북경 베이징이라고 고집하고 있다.

실제로 대도가 북경 베이징이 맞는가 하는데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속에 캄불룩, 참불룩(Cambuluc)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하였다.

그런데 쿠빌라이 수도 대도(大都)를 당시 캄불라, 참불라(Cambula)라 했다 한다.

이 캄불라, 참불라(Cambula)는 루마니아어(Română)인데 이상하게 옛날 백해(白海)라 하던 지중해연안에 자생하는 가자미(鰈) 학명(European flounder)과 연결되는 기이함이 있다.

갑자기 접역(鰈域)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옛 강역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마르코 폴로가 기록했다고 하는 캄불룩, 참불룩(Cambuluc)를 검색하면

Khanbaliq or Cambuluc ("great residence of the khan")is the ancient Mongol name for Beijing, the current capital of China.

“대도는 북경 베이징이다.”

하나같이 짜 맞춘 듯 똑같은 해석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어라 하는 캄불라, 참불라(Cambula)는 다양한 이야기가 내포된 명칭이다.

참불라(Cambula)는 루마니아어로서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관계로 로망스(Romanic, 로마)제어가 아닌 언어로부터 차용한 낱말도 많아 슬라브어 차용어가 가장 많고 터키어·헝가리어·알바니아어로부터 차용한 낱말들도 일부 있다 하고 있다.

이 참불라(Cambula)란 단어가 전설의 왕 아서왕과 연결되고 있다.

즉 켐런(Camlan) 이 참불라(Cambula)란 사실이다.

바로 아서왕이 캠런의 전투(battle of Camlan)에서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이 캠런이 참불라(Cambula)란 단어와 이어진다.

이 캠런(Camlan)의 위치만 알면 참불라(Cambula) 위치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서왕의 전설은 이 캠런(Camlan)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고 말았다.

 

아서왕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다.

500년경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침략한 색슨족을 물리친 싸움에 대한 기술이 있는데, 그 싸움을 지휘한 인물의 이름이 아서, 아르트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웨일즈 연대기》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침략한 색슨족을 물리친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약 20년간은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되었지만, 캠런의 전투(battle of Camlan)에서 모드레드와 아서(King Arthur)가 전사하여, 그의 왕국은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5세기~6세기 무렵의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섬에서 옛 게르만족의 연맹 부족 색슨족(Saxons)과의 싸움에서 크게 활약하여 용맹을 떨친 로마계의 군사 지도자 루치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Lucius Artorius Castus)를 아서와 동일 인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서 왕(King Arthur)이 등장하는 전설의 상당수가 켈트족(Celts)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많은데 최근 들어 흑해(黑海 Black sea) 동해안의 오세트인(Ossetians)의 나르트 서사시와 같은 기원을 갖고 있다는 설이 주목받고 있다 한다. 이 설이 특히 지지받고 있는 점 중 하나는, 아서 왕의 죽음과 나르트 서사시(Nartskie Skazaniya)의 바트라즈(Batraz)의 죽음 사이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5세기-6세기의 아서왕이 공교롭게도 활동시기가 고구려 장수왕이나 문자왕 또는 훈족의 영웅 아틸라와 연결되고 또 아발론(Avalon)이란 단어에서도 종국에는 아발스(Avars)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발론(Avalon)은 일종의 사후(死後)세계로, 영웅들이 죽어서 영생을 누리는 곳이라 했다.

아서 왕의 전설로 인해 유명해졌지만 아발론의 전설은 켈트 족의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아발론(Avalon)은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리는데, 그 중 유명한 것으로는

아발라흐 섬(Isle of Avallach),

아발라(Avallah),

사과의 섬(Isle of the Apples),

지하세계(Underworld locality),

바다저편(Over the sea),

이니스비트린(Ynisvitrin),

유리의 섬(Isle of Glass),

빛나는 섬(Shining Isle) 등등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모두 켈트 족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데, 그 중 '이니스비트린'은 '유리의 섬', 또는 '빛나는 섬'을 의미하는 게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섬은 유리처럼 빛나는 강 한가운데에 있어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서는 아발론이 저승의 군주가 거하는 명부(冥府), 즉 안운(Annwn)을 가리키며, 그 군주의 성과 탑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케르 위디르=Caer Wydyr, 즉 '유리의 요새' 그렇게 불린다고도 한다.

저승의 군주의 이름이 '아발라흐'로, 아발론이 간혹 '아발라흐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한편, '아발론'이라는 이름은 '사과의 섬'이라는 설도 있다. 이 의견은 두 가지 근거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데,

그 중 첫째는 고대 영국에서 쓰이던 켈트 어군(語群)의 언어들 중 대부분에서 '사과'를 뜻하는 말이 '아발론'이라는 지명과 무척 유사한 발음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고대 아일랜드 어에서 사과는 '아발(aball)'이었고, 중세 웨일즈 어에서는 '아팔(Afall)'이었으며, 고대 영어에서는 '아발(aval)', '아발렌(Avallenn)', 그리고 대륙의 켈트 어에서는 '아발로(Avallo)'였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켈트 족의 신화에서 '사과'가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는 것이라 했다.

실제로 켈트 족의 시인 탈리에신은 아발론을 '사과의 섬'이라 일컬었다 하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유연의 후예라고 하는 아바르족(Avars)의 어원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면
결국 참불라(Cambula)란 말은 아서왕의 전설과 켈트족과 백해란 지중해, 흑해로 좁혀진다는 사실이다.

 

켈트족(Celts)을 서양사에서 말하기를 고로(高盧), 갈리아(Gallia), 골(Gaul)족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강성했을 때는 북유럽 전체를 장악했던 민족으로서 갈리아 원 거주민은 인도유럽어족이라고 하였고 갈리아란 이름 자체가 켈타이(Celtae) 라틴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하였으며 이 켈트족이 수십여개의 부족국가로 마침내 갈라졌다 하고 있다.

또 갈리아, 골 지역에 근거한 켈트족은 정통적으로 다신교(多神敎)를 믿는 민족이라 켈틱 폴리티이즘(Celtic polytheism)이라고 한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냥 그들을 이교도로 불렀다 하고 있다.

정체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바로 고리(Gori, Gory), 골(Gaul, Gol), 구리(Guri, Gury), 코리(Cori, Cory), 코레(Core), 구려(colee), 고구려(高麗)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켈트, 켈타이(Celtae), 키타이, 케세이Cathay)와도 관계있다 판단한다.

 

그렇다면 대도(大都)라고 하는 참불라(Cambula)가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켈트족이 번성했던 곳일 수도 있다.

북유럽 갈리아족이 있었던 곳일 수도 있다.

 

[우리역사의 비빌]솔나무(2005-06-21)님의

쿠빌라이수도 과연 현 북경이였는가? 란 글을 보면 이런 의문을 일찍이 제기 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도를 첨부하였는데 아래와 같다.

 

 

본 지도를 보면 참불라(Cambula) 위치가 지금 베이징 북경하고 일치한다고 도저히 할 수 없는 동 떨어진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서쪽 흑해 지중해 쪽으로 치우침을 알 수 있다.

근세기에 역사판짜기 시점에서 부랴부랴 원래 있었던 곳에서 지우고 지금 북경 쪽으로 밀어내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다.

때문에 쉽사리 찾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알 수 없다고 포기하고 말 것인가?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서가 있다.

바로 백해(白海)라는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한 물고기 가자미 학명(European flounder)을 찾아 근원지를 살펴보면 대도(大都)라고 하는 참불라(Cambula)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판단이 가능하다.

 

이 정도에서 쿠빌라이가 고려대왕 충렬왕이란 사실을 한 번 더 밝힐 필요가 있다.

본 블로그 글에서 원나라 태조 쿠빌라이는 연호를 두 번 사용하는데 중통(中統,1260-1264)과 지원(至元,1264-1271)이고 2대와 테무르 역시 연호를 두 번 사용하였는데 원정(元貞,1295-1297)과 대덕(大德,1297-1307)이라고 했다.

결국 복잡하게 나누고 달고 한 것인데 원나라의 두 왕 재위년도는 1260년부터 1307년까지이다.

그리고 반도사에서 고려 25대왕 충렬왕(忠烈王) 역시 1차 재위년도(1274-1298)와 다시 2차 복위년도가 (1298-1308)으로 나온다.

1260년부터 1307년까지와 1274년부터 1308년까지 바로 재위년도가 겹쳐진다.

다시 말해 쿠빌라이는 고려 충렬왕인 것이다.

쿠빌라이와 도저히 다를 수가 없다고 판단되는 동일인물은 바로 고려 시호(諡號) 충렬경효대왕(忠烈景孝大王)이며 휘(諱)를 왕거(王昛)로 사용했다던 고려충렬왕이 세운 수도는 과연 어딘가 따져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곳이 전통적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것이다.

 

대도를 캄불룩, 참불룩(Cambuluc)이라고 했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의 행로를 살펴보면 지금 베이징 북경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가 남쪽 변두리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하서(河西)지방에 도달하여 감주(甘州)에서 l년 간 체재한 다음, 쿠빌라이(世祖)의 여름궁전이 있는 상도(上都)에 도착하여(1274)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하는 기록에서 하서(河西)의 하(河)가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지역인 시르다리야(Syr Darya)강과 옥서스(Oxus)강이라고 하는 아무다리야(Amu Darya)강 사이이기 때문에 하서(河西)라 함은 바로 이 두 강의 최단 왼쪽지역이 되는 것이므로 카스피해(Caspian Sea)와 아랄해(Aral Sea)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도(上都)라 한 여름궁전(summer palace)은 다름 아닌 돌의 도시(石國)라고도 하는 현재 타슈겐트(Tashkent)에 시토라이 모히호사(Sitorai Mohi Hosa-Emir's summer palace)란 궁전임을 알 수 있다.

그곳에 있었던 쿠빌라이를 마르코 폴로가 알현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베이징이니 북경이니 하는 말은 얼토당토 아닌 것이고 다 근세기에 급조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대도(大都)가 있어야 한다면 열개자를 사용한 상도(上都)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이제 이만하면 대도가 어디쯤 위치해야 하는지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다.

그 범위는 서유럽이나 지중해 연안, 흑해 연안, 아니면 좀 더 북쪽 킵챠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쿠빌라이 칸이 세운 수도 대도(大都: 或称大都,突厥语称为“汗八里”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可汗之城”,帝都之意)는 겨울수도라고도 했다.

그러니 일단 북쪽을 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1267년, 원(元) 왕조의 시조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중도의 북쪽 자리에 칸발리크(汗八里, Khanbaliq) 혹은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립하고 원래 수도였던 몽골 고원의 카라코룸으로부터 천도하였다 한다. 이곳은 전통적인 중국의 수도들보다 북쪽에 위치했지만, 원 왕조의 발원지인 몽골 고원에 가까워서 몽골족의 지원이 용이했기 때문에 수도로 선택되었다 하였다.

이런 설명에서 보면 중국을 어디에 두고 보아야 하는 것이 판단의 최종 답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란 지중해를 가운데 바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한이 있었던 곳은 중앙아시아가 중심이 된다면 중앙아시아를 중국이라 했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북쪽지역을 찾아야 할 것이다.

元惠宗至元六年(1340年),大都城中有大约一百万人

대도 역시 1340년에 100만에 이르렀다 한다. 그만큼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쿠빌라이 칸이 있었던 곳을 설명함에 있어 근대사에서는 늘 지금의 몽골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만주도 마찬가지지만 몽골지역 역시 근대사 설명과는 다르게 현재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상당히 이동하여야 타당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1368년, 주원장의 세력이 대도에 이르자 원나라 황제 토곤 테무르는 대도를 버리고 북쪽의 몽골 고원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대도는 주원장에 의해 베이징으로 개칭되었다.[위키]

이것이 날조 인 것이다.

 

대도(大都)의 폐기(廢棄)와 개건(改建)

元惠宗至正二十八年(明太祖洪武元年,公历1368年)夏,朱元璋遣将领徐达、常遇春率军北征,七月抵达通州,至正二十八年闰七月二十八日(1368年9月10日),元惠宗令淮王帖木儿不花监国,携后妃、太子、公主自健德门出城北逃,前往上都避难。至正二十八年八月初二日(1368年9月14日),明军攻陷大都齐化门,由此入城。明朝洪武元年八月十四日(1368年9月26日),明太祖将大都改名为北平。

洪武四年(1371年)将此段新城墙以北的元大都城垣废弃(외벽폐기)

永乐十九年(1421年)朱棣迁都北京后(천도),将北京城南墙南移二里(북경성 남쪽 담 2리로 이전)

 

자 그렇다면 대도의 위치를 확실하기 위하여 백해(白海)라고 한 지중해연안에서 자생한 넙치 가자미류 천접(川鰈:가자미-접)European flounder (Platichthys flesus)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만약 이 천접이 대륙동해쪽이라면 지금의 베이징이 맞고 아니고 지중해연안이라면 베이징이 분명이 아니라고 결정할 수 있다.

 

단군신설(檀君新說)에 우리나라 역사적인 이름으로서 다르게 불리던(異稱) 것은 접계(鰈系), 접역(鰈域), 접국(鰈國), 접허(鰈墟), 접해(鰈海), 가자미가 많이 나는 고향 접수지향(鰈水之鄕)이라고 하였다.

접역(鰈域)은 가자미 모양으로 생긴 지역이라는 뜻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고대 우리의 영역을 찾기 보단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해석이라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접역은 가자미가 많이 나는 곳을 통칭해서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한 것이다.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萬物門)

접역(鰈域)

우리나라를 접역이라 하는 것은, 《이아(爾雅)》에 상고하니,

《爾雅‧釋地》提到:「東方有比目魚焉,不比不行,其名謂之鰈。南方有比翼鳥焉,不比不飛,其名謂之鶼鶼。」

“동방(東方)에 비목어(比目魚)가 있어, 이름을 가자미[鰈]라 하는데, 서로 나란히 하지 않으면 다니지 못한다.” 하였고, 곽박(郭璞)의 주에, ‘생긴 모습은 소의 지라와 같은데, 비늘이 잘고 빛깔은 붉고 검으며 눈은 하나다. 두 마리가 서로 합쳐서 다니며 입은 배 밑에 가깝게 붙었다. 지금 사람은 동해(東海)에서 속칭 가어(嘉魚)라는 것을 가자미라고들 한다.’ 하였다.

 

여기서 동해와 서해를 한반도를 기준으로 해서는 답이 될 수 없다.

동해는 광의적으로 태평양, 협의에는 대륙 동해라 해야 하고 서해는 광의적으로 대서양, 협의적으로는 지중해라고 해야 옳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The European flounder (Platichthys flesus) is a flatfish of European coastal waters from the White Sea in North to the Mediterranean and the Black Sea in South. Introduced into the USA and Canada accidentally through transport in ballast water.

It is a well-known food fish.

 

Scientific classification

Kingdom: Animalia

Phylum: Chordata

Class: Actinopterygii

Order: Pleuronectiformes

Family: Pleuronectidae

Genus: Platichthys

Species: P. flesus

Binomial name

Platichthys flesus(Linnaeus, 1758)

Platichthys속

川鰈-Platichthys flesus (Linnaeus, 1758).

강도다리星斑川鰈-Platichthys stellatus (Pallas, 1788)

 

 

Classification / Names

Actinopterygii (Ray-finned fishes) > Pleuronectiformes (Flatfishes) > Pleuronectidae (Righteye flounders) > Pleuronectinae

Size / Weight / Age

Max length : 100.0 cm SL male/unsexed; common length : 40.0 cm TL male/unsexed; max. published weight: 7,000 g; max. reported age: 50 years.

Length at first maturity

Lm 30.4, range 30 - 35 cm

Environment

Marine; brackish; demersal; oceanodromous; depth range 0-200m, usually 10-50m

Climate / Range

Temperate; 2°C-15°C; 73°N-20°N, 47°W-45°E

Distribution

Northeast Atlantic: Greenland and Norway south to Morocco;

Spain and France in the western Mediterranean.

Also known from the White Sea and Estonia.

 

한어로 천접(川鰈)이라고 하는 가자미(European flounder) 학명(Platichthys flesus)의 원산지와 근원지가 fishbase.com에서 북대서양에서 그린란드, 노르웨이남부에서 모로코, 지중해 서쪽 스페인과 프랑스 그리고 발트해 연안과 백해에서 나온다 했다.

접, 가자미가 나는 곳이다.

European coastal waters from the White Sea in North to the Mediterranean and the Black Sea in South.

또한 위키 영문자료 역시 지중해에서 북쪽백해(白海) 그리고 흑해(黑海)남쪽 유럽연안지역에 난다 하고 있다.

여기서 백해는 노르웨이 바렌츠 해(Barents Sea)에 있는 백해를 말한 것이다.

이 백해도 지중해를 백해로 하다가 근세기에 북반구 노르웨이로 의도적으로 옮긴 것이라고 보인다.

위키에서 지중해를 옛 현대 히브리어로 독일어의 "미텔메어"(Mittelmeer)에서 그대로 차용하여 "가운데 바다"(Hayam Hatikhon)로 칭하고 터키어에서는 지중해를 "하얀바다"(Akdeniz)로 즉 백해(白海)로 불렀으며 현대 아랍어에서는 "하얀 가운데 바다"(al-Baḥr al-Abyaḍ al-Mutawassiṭ) 백중해(白中海)라고 불렀다 하였다.

터키가 지중해를 백해라 하였다는 것은 아마 고려때 지중해를 백해라 한 것 같다.

그리고 가자미가 나는 곳 그곳은 바로 지중해, 흑해(黑海), 발트해(백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렇다면 이 가자미가 났던 곳을 우리는 접역(鰈域), 접국(鰈國), 접허(鰈墟), 접해(鰈海)라 할 수 있고 대도(大都)역시 가자미가 나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대도와 가자미가 우리에게 주는 큰 의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Chataio" on Fra Mauro map (ca. 1450). Note that the south is on top

 

chataio는 원나라때(원고려) 서양인들에게 불려진 것 같다. 여러 서양고지도를 보면 Cathay는 chataio(원나라)때로 부터 유래된 것 같다.

 

Gerardus Mercator's placing of the "Kingdom of Cathay" (Cathay Reg.) on the Pacific Coast north-east of China remained typical for a number of maps published in the decades to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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