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문장으로 본 동질성

한부울 2011. 7. 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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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문장으로 본 동질성?

 

글쓴이: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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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白桦 Betula platyphylla)가 단목(檀木)이고 신단수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402


그냥 동질성만 따질려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 1845.03.10-1894.11.01,재위1881-1894)의 집권시기가 대륙조선(1392-1881)이 망한 시점인 1881년 이후부터 1897년 대한제국(1897-1910)이 건국되기까지 약 15-16년이란 의문의 공백 기간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흑하사변에서도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대륙조선말기에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은 아무래도 권력체제가 공동이나 동질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2월 11일 친러세력과 러시아 공사의 공모하에 고종과 왕세자가 궁궐을 벗어나 지금의 서울특별시 정동(貞洞)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간 사건[인터넷사전]

 

 

아관파천 당시에는 “파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이어(移御)하였다.

아관파천은 일제가 나중에 갇다 붙인 사건 명칭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친일 세력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당시 일본 제국과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심야에 러시아제국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였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러시아 공관으로 고종과 황태자가 들어 갔다는 것은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라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 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곳에 있었던 러시아제국 황제와 만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러시아른 고려대국 즉 중국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중국은 비잔틴을 점령하면서 중국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중해는 그냥 지중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고종이 의지 할 곳이 분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고종이 체류한 기간은 적지 않을 1년이란 세월이다.

한반도에서 러시아까지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고종은 러시아가 그것도 황제가 있었던 수도와 가까운 중조선 수도에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던 대륙조선 동국은 동양이라고 풀이 할 수있지만 그 권역에는 북아메리카도 들어간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성이 있다.

서세와 청군벌, 일제군벌 압박으로 청군벌과 남만 군벌에게 영역들을 하나 둘 씩 내주는 꼴을 당하고 난 후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조선에서 서쪽영역만이라도 지킬 요량으로 당시 대조선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또 다르게 서세와 대립하던 러시아제국과 이러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종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러시아는 러시아란 근세기 이름으로 조선이 망한 1882년부터 1894년까지 대한제국으로 탄생될 대국을 대임하였을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한반도에 대한제국 성립된 원인을 따진다면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고 하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이 발단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하고 아시아전역을 대상으로 한 영토분쟁의 혼탁한 국제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그러한 상황에서 보면 결국 한반도 주민들은 한반도와는 별도로 중앙아시아 한국에서 이동한 구성원들이고 여겨지는 면과 아시아대륙을 근거로 하는 한국의 존립문제를 고종입장에서 고려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다.

 

때문에 한반도에 대한제국 성립되기 전 이미 아시아대륙전역을 기반으로 한 대한제국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만제국과 러시아제국의 공통성이다.

절대절명의 위기에 있었던 전 아시아대륙 제 한국에 압력을 가해 오는 서양제국들에게 단합된 확실한 국가체제의 모습을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고 서양세력의 지속된 압박을 힘들게 견디고 있는 아시아대륙 특히 중앙아시아 제 한국들을 대한제국이란 체제로 통합한다는 확고한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사한을 가지고 고종은 러시아제국과 상의하였다고 보아야 맞다.

유라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안정은 러시아제국입장에서도 바라는 바였다고 볼 수 있다.
대한제국 당시 광무(光武) 5年(1901)에 제조된 동전 속 대한제국의 국장의 도안을 보면 왼쪽에 지구본, 오른쪽에 지휘장도, 독수리 가슴의 8개의 태극과 괘, 독수리 머리의 왕관 또한 러시아제국 문양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기억 할 것은 분명 흑하사변(黑河事變)에서 보더라도 대한제국은 1921년 6월 27일년까지 명맥을 어떤식으로 든지 유지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한 오스만제국(Osman Turk Empire)이 1920년 8월 10일에 세브르조약(Sevres 條約)을 맺음으로서 1922년에 해체(?)되어 멸망하였다는 사실도 중앙아시아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제 한국의 통치국 범주에서 감안해야 할 중요한 요소적인 상황이다.

이때 마지막 술탄 메흐메트 6세( VI. Mehmet,  1861-1926.5.16, 재위 1918-1922)가 폐위됨으로써 1924년, 칼리프제가 폐지됨에 따라 압뒬메지트 2세(Abdülmecit II, 1868-1944)에게 모든 권위를 넘겨주는 것으로 거대한 제국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런데 600년 긴 시간동안 아랍제국의 이슬람 술탄과 칼리프지위를 가졌던 오스만제국 문장에 모호한점이 발견이 된다.

휘장은 있어도 뚜렷한 국장 또는 문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비잔틴 문장을 놓고 러시아와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휘장 또한 전통적인 독수리문양이 아니다.

어찌 된 것이다.

오스만이 독수리문양, 문장을 러시아에게 빼앗기고 사용할 수 없었다는 이야긴데 이것은 근세기 역사가 왜곡 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랍 칼리프의 전통적인 문양인 독수리를 비잔틴에 빼앗겨 러시아에 넘겨주었다는 것인데 비잔틴은 결국 오스만에게 1453년 5월 29일 점령되고 망하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독수리 문장은 당연히 오스만이 차지해야 하는 것인데 생뚱맞게 러시아가 차지하였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반도사에 의하면 한반도에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을 대한제국이 독수리문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위 문장관계를 섭불리 정리할 수 없는 구도가 되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근대사의 혼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한제국을 서양사학자들은 무엇이라 지칭 했을까?

대한제국 Great corea Empire?

그렇다면 고종이 찾아 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 1845.03.10-1894.11.01,재위1881-1894)에 대해서 알아보자.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는 부친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4.17-1881.3.13,재위:1855-1881)의 3남으로 본명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Рома́нов) 즉 로마노프 왕조의 13번째 군주이다.

 

부친 알렉산드르 2세는 유럽의 헌병이라 불리며 러시아 제국의 황제 겸 폴란드 왕국의 국왕이던 조부 니콜라이 1세(Nicholas I, 1796.7.6-1855.3.2, 재위1825-1855)의 뒤를 이어 37살 나이로 제위에 올라 니콜라이 1세의 군대식 통치와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왕국(Sardegna1720-1861), 오스만 제국을 연합국으로 상대한 크림전쟁(Crimean War, 1854-1856)의 패배로 인해 형성된 여론은 여러 개혁을 추진하게끔 만들었다.

 

부친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 해방을 비롯한 그의 개혁은 ‘대개혁’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러시아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1861년 3월 3일 농노 해방령(農奴解放令)을 공포하여 농노제 폐지를 선포했다

농노 해방령으로 인해 4,000만 명의 농노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며, 이는 후대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적 조치’로 칭송받는다.

농노제도가 철폐됨에 따라 종래 지주가 농노에 대해 행사했던 독점적 재판권이나 치안 유지에 대한 권한 등은 자동적으로 소멸되었고, 지주들이 누렸던 권위도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주들에게 일임되었던 지방행정은 1864년 젬스트보(zemstva. 러시아 제국과 우크라이나의 지방자치 기구)기구가 조직 재편되어 각 의석이 귀족과 관리에게 42%, 농민에게 38%, 상인과 기타 계층에게는 20%가 배정되었으며, 도로 건설, 의료, 식량, 교육 등과 같은 뒤처진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군대의 개편이 실시되어 이전까지는 하층계급만이 징병에 대한 부담을 지었으나 국민징병제가 실시되어 귀족과 평민에게도 군복무를 하게끔 만들었다. 복무기한도 25년에서 6년으로 축소되었고 병사들에 대한 대우도 훨씬 나아졌으며 훈련도 인도적 원칙이 강조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은 구체제가 세워놓았던 계급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혁신이었다.

즉 농노제도의 폐지는 자유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사 사이의 근본적인 차별을 없앤 것이었다. 때문에 기득권세력으로부터 그는 여러 차례 암살 위기를 넘겨야 했고 그가 가는 곳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881년, 알렉산드르 2세는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회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그날 농민의 힘으로 차르를 타도하고, 공화 정부를 수립하려는 농촌공동체를 기초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운동주체 나로드니키(Narodnik, 인민주의자)소속 그리네비츠키, 소피아 페룹스카야 등의 폭탄테러에 의해 폭살 당한다. 이같은 이유로 그들은 후에 황위를 이은 알렉산드르 3세의 더욱더 가혹한 전제정치에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고 조직도 분열했다.

 

사실 대륙조선(龍)이 망하는 시점과 결부되는 것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4.17-1881.3.13)는 헤센의 마리(Maria Alexandrovna, 1824.8.8-1880.6.8)와 결혼하여 6남 2녀를 두었다.

 

이름

생일사망

기타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브나

(Grand Duchess Alexandra Alexandrovna)

1842-1849

수막염 사망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

(Tsarevich Nicholas Alexandrovich)

1843-1865

류머티즘 사망.

알렉산드르 3세

(Tsar Alexander III)

1845-1894

러시아의 황제,

덴마크의 다그마르 공주와 4남 2녀를 둠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Grand Duke Vladimir Alexandrovich)

1847-1909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Grand Duke Alexei Alexandrovich)

1850-1908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Grand Duchess Maria Alexandrovna)

1853-1920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Grand Duke Sergei Alexandrovich)

1857-1905

 

파울 알렉산드로비치

(Grand Duke Paul Alexandrovich)

1860-1919

 


 

황태자 니콜라이가 22살에 요절하여 다른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드디어 뒤를 잇게 됐다.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 1845.03.10-1894.11.01,재위1881-1894)는 자유주의 사상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는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 러시아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본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형 니콜라이가 결핵으로 요절했으므로 그를 이어 황태자로 책봉된다. 이미 황태자 시절부터 반동세력에 가담하여 자유주의에 대항하였던 그는 선제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4.17-1881.3.13)의 죽음으로 국민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게 되어 더욱 태도가 확고해져 버렸다. 그는 전제군주제를 강화하고 수호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를 저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용납하지 않았다. 즉위 초기에는 선제가 만들어놓은 개혁의 분위기가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본격적인 반동정치로 일관하였다. 또한 후계자인 아들 니콜라이에게도 자신의 사상을 주입시킴으로써 훗날 러시아 혁명을 맞게 했다.

 

종교회의 의장인 콘스탄틴 파베도노스체프를 비롯한 알렉산드르 3세 정부는 의회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보통교육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오직 전제정치와 러시아 정교회, 그리고 국가를 우선시하는 국가주의만이 러시아를 보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혁명분자들의 활동은 물론 온건한 자유주의자들까지도 억압받고 투옥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여러 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검열제도가 강화되고 교육의 자유는 축소되었다. 젬스트보(zemstva)에는 점차 귀족층의 비중이 늘어났고 중앙 정부의 통제 또한 강화되었다. 1889년에는 지방관리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각 지방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부여하였다. 또한 반란에 실패했던 폴란드인과 유대인에게는 교육의 차별은 물론 제한구역을 두어 거주이전의 자유도 빼앗았다. 그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사이가 나빠, 1894년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으며, 프랑스의 자본을 끌어들여 시베리아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다.[위키참조]

 

위는 위키 자료를 참조한 것인데 이 같은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의 집권시기가 대조선이 망한 1881년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건국되기까지 약 15-16년이란 의문의 공백 기간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왜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겠으나 대조선의 존재부터 그냥 증발해버렸다고 표현 할 정도로 약 15-16년간의 역사사실은 이해 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한반도조선, 아시아 특히 대륙역사에서 러시아와 인접한 중앙아시아의 대한제국과 어딘가에 있었을 대조선이 그 기간동안 연기처럼 사라진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느낌이 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역학적인 문제에서 명칭만 다르게 나타났을 뿐 엄연한 실체가 같아 러시아로 둔갑하였거나 아니면 이것저것 표시하기가 뭐했으면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 버렸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보인다는 사실이 그 기간동안 어떤 식으로 든지 존재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조선이 1881년에 망한 후 건립된 대한제국(1897-1910)의 문장과 러시아 제국의 문장(1883-1917)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이 거의 비슷하거나 일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같은 것일까?

 

먼저 독수리 문장 상징성의 역사를 한번보자.

 

 

위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를 표현한 것인데 서양에서는 독수리가 오래전부터 황제(Emperor)를 뜻하는 권력 상징으로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손에는 번개를 들고 강력한 힘을 나타내었고 왼손에는 지구를 들고 세계를 지배하는 의미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독수리는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권력과 높은 이상 군주를 뜻한다고 하였다.

전제군주의 위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새인 것이다.

 

투르크계 민족들이 11세기 셀주크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이 독수리는 최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셀주크 투르크의 경우 왕국의 상징이 바로 이 독수리 이었고 이는 최고 지배자(술탄)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특히 초기고려라고 판단되는 셀주크(Seljuk, 1037-1157) 투르크 같은 경우 동쪽의 바그다드 칼리프(Caliph)를 의식하여 '우리는 현실(現實)세계와 신적(神的)인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동쪽과 서쪽의 지배자' 라는 의미로 쌍두독수리 문장(쌍두독수리 실루엣에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을 채택 하였다고 한다.

 

아랍지역의 경우 이슬람 이전부터 독수리 상징(Quraish hawk)을 사용하였는데 오늘날에도 아랍의 예멘, 시리아, 아랍 에미리트연합 등 여러 국가의 문장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아랍세계에서이슬람시조, 예언자, 성자라고 하는 마호메트(Mohammed, Muhammad, Mahomet 571-632.)의 부족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akkah) 근교에 거주하였던 부족 쿠라이시(Quraish)의 전통적인 상징이 바로 이 독수리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때문에 그들은 칼리프의 법통이 그들 부족에 의해서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쌍두독수리의 개념은 로마에서 건너온 것이 아닌 아랍지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설이다. 동로마 제국이 쌍두독수리를 국장으로 채용하면서 신성로마제국에 처음 도입한 사람은 지기스문트 황제(Sigismund von Luxemburg,1368-1437)라고 하고 1401년에 문장으로 제정, 143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하였으니 아랍전래설이 맞는 것 같다.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의 경우 이는 보호자(protector)를 의미하는 상징이라고 하고 있다.

이 독수리는 아메리카대륙 인디언들에게도 신성함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날개에 그려진 문장에 관계되는 지역 또는 국가는 피보호국이라 해석이 가능하다.

제국적인 상징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그 예가 바로 러시아 독수리문장과 대한제국의 독수리 문장이다.

 

러시아 독수리문장을 먼저 살펴보면 킵차크 칸국(金帳汗國)으로부터 벗어난 러시아 최초 국가 모스크바 대공(1340-1547)의 이반 3세(Ivan III, 1440-1505)가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395–1453)이 무너진 후 마지막 비잔틴 황제의 조카딸이자 전임 비잔틴 황제의 딸인 소피아 공주와 결혼한 것을 내세우며 비잔틴의 후계임을 자처하였고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 및 그리스 정교의 옹호자를 자처하며 로마 황제의 쌍두(雙頭) 독수리를 러시아의 문장(紋章)으로 하여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로서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스만제국과 근본적으로 풀 수 없는 원한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 이야기다.

오스만의 항의와 상관없이 러시아는 1472년에 이 쌍두독수리 문장을 채택하였는데 이후 러시아 제국의 짜르(Tsar, 황제)의 상징으로 이 쌍두독수리가 확고히 자리잡으며 러시아 제국이야말로 동쪽(비잔틴 제국)과 서쪽(로마 혹은 서유럽)을 모두 아우르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독수리에는 오스만은 들어갈 곳이 없고 오직 러시아가 독차지하는 꼴이다.

 

니콜라이(Nicholas)와 게오르기(Georgi)는 똑같이 말을 관장하는 신(神)인데 그 기능에 있어서는 서로 중첩된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점은 니콜라이(Nicholas)는 민중의 신(神)으로서 온화함을 가르키고 게오르기(Georgi)는 상류층의 신(神)으로 처벌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게오르기(Georgi)는 제국의 신으로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 사용되던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말 탄 신(神) 게오르기(Georgy)가 창을 들고 근원적인 동양개념이지만 실제 영국문장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사악한 것으로 모는 것이라 신빙성이 없는 표현 사악한(?) 용(龍:삼한, 대조선)을 찌르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쌍두독수리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게오르기우스(Georgios)를 종교적으로 볼 때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라틴어이며 지금까지 전해오는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은데 이는 언제나 삼한, 또는 대조선을 적대시하는 상징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볼만 한것이다.

                                               [모스크바 대공(1340-1547)의 문장]

 

                                                        [비잔틴제국의 문장]

 

위의 그림은 모스크바의 문장이며 아래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브고로트(Novgorod:러시아 연방 북서부에 있는 주도. 일멘호(Lake Ilmen)에서 볼호프 강이 흘러나오는 바로 위쪽에 강을 끼다)를 병합하고 그리스 출신 왕녀와 결혼한 이반 3세(Ivan III, 1440-1505)가 모스크바공국(Grand Duchy of Moscow1340-1547)시절 즉 15세기 말에 비잔틴으로부터 계승받은 문장이다.

이렇게 두 가지 모양을 합한 한 문장이 17세기부터 러시아를 상징하는 공식문장이 되었다.

 

                                                    [17세기 러시아제국 문장]

 

홀 – 세속통치자의 권위

황금구(黃金球) – 전세계의 그리스도교화를 상징

3개의 왕관 – 통합된 러시아

 

이때에는 왕관과 홀(笏:고대 군주와 신하가 조정에서 서로 만날 때 손에 쥐고 있던 좁고 긴 패), 황금구(黃金球)가 추가되었다. 쌍두독수리의 머리 위에 각각 작은 왕관이 있고, 그 두 왕관 위에 하나의 큰 왕관이 설정되었다. 독수리의 오른쪽 발에는 홀이 쥐어져 있고, 왼쪽 발에는 황금구가 쥐어져 있으며 홀은 세속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고, 황금구는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 하겠다는 상징으로 지구 위에 십자가가 놓여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세 개의 왕관은 통합된 러시아의 국가를 상징하였다.

 

                                                     [18세기 러시아제국 문장]

 

18세기에는 문장에 색깔이 추가되었는데, 쌍두독수리는 검은색으로, 바탕은 노란색으로 처리되었고, 게오르기는 빨간색 바탕에 청색으로 칠해 졌다.[Uni Russia]

 

그렇다면 이제 러시아제국의 문장과 대한제국의 독수리 문장을 한번 비교해 보자.

 

                                                [러시아 제국의 장(1883-1917)]

 

위 러시아 제국의 문장을 보면 추가된 홀(笏:mace)과 황금구(黃金球) 그리고 왕관 이외에 독수리 날개에 붙여놓은 8개의 문장(紋章)이 특이하게 보인다.

이것은 러시아제국의 보호국 문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7세기 러시아문장과 18세기의 러시아 문장은 바탕 색깔만 다른데 대륙조선이 망했다고 여겨지는 1881년 부터 아니 정확하게 1883년 부터 없었던 보호국 문장 8개가 덧 붙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한제국 문장인 독수리 양날개에 태극문양 8개가 있는 것과 똑 같다.

결국 "Rus" 차르로 부터 시작된 로마조프왕조(Romanov, 1613-1917)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 1845.03.10-1894.11.01,재위1881-1894)의 집권시기와 너무나도 닮았고 거의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제국문장에서 위 8괘 도표로 본 이상한 점은

독수리머리 쪽 방향이 북쪽 방향 감(坎) 아니라 남쪽 방향 (離)를 표시하는 것을 보면 독수리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르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행방향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한제국의 국장(1897-1910)]

 

또한 러시아제국의 문장과 같이 대한제국의 문장 역시 태극이 8개가 나란히 새겨져있다.

이것은 대한제국이 보호할 8개의 나라 또는 국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8개의 국가는 어디 어디 일까?

물론 중앙아시아의 한(汗), 국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제국문장 독수리 오른쪽에 지휘봉 홀을 들고 있는 반면 대한제국문장 독수리 오른쪽에는 칼을 들고 강대한 무력 즉 힘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내포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마냥 한반도에 갇혀 있을 문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러시아제국문장 독수리 왼쪽에는 지구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황금구 즉 정교의 총본산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한제국 문장 독수리 왼쪽에는 명확한 지구가 들여져 있다.

바로 그리스 제우스 신이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의 표현과 똑같은 것이다.

바로 삼한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고종이 찾아 간 곳 러시아는 다르다고 할 수없고 러시아제국 문장과 대한제국의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동질이라 할 수밖에 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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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삼았다고 여겨지는 한국들

코칸드(Kokand)한국(汗國1710-1886) 우즈베키스탄 동부도시

부하라(Bukhara)한국(汗國1500-1920) 우즈베키스탄 동남부도시

히바(Khiva)한국(汗國1511–1920) 우즈베키스탄 남부고대도시

크림(Crimea)한국(汗國1443-1783) 우크라이나 바흐치사라이(Bakhchisarai)가 중심지였고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합병

간자(Ganja)한국(汗國1747-1920)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아스트라한(Astrakhan)한국(汗國1466-1552)

카잔(Kazan)한국(汗國1438–1552)

시비르(Sibir)한국(汗國1440-1598)

 

한국은 태극이라

한(韓), 한(汗), 태극(太極)이다.

그래서 대한제국 독수리 날개의 태극이 8개라...

 

中國古代民族 關係史硏究

小數民族關不自外于中華族,始西遼稱桃花石汗, 卽中國汗, 設明他也承認是中原王朝的一介汗.

소수민족처럼 중화민족은 바깥에서 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 에서는 서요(西遼)라 칭한다.일명 복숭아꽃과 같다고 하여 석한(石汗:굳세고 단단한 한국)이라 한다. 즉 중국은 한(汗)이다. 설명할 것도 없이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중원에 있었던 모든 왕조(王朝)는 하나의 한(汗) 즉, 한국 이었다.[한국(汗國)은 한民族이다-朴民宇]

 

태극도설(太極圖說)-주돈이(周敦頤1017-1073) 북송(960-1127)의 유교 사상가라고 하였는데 정확하게 이야기 하여서는 주돈이는 대 고려 사람이고 도교(道敎)사상가라고 해야 맞다.

無極而太極: 무극이어서 태극인데

太極動而生陽: 태극이 움직이어 양을 낳은다

動極而靜: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하게 되고

靜而生陰: 고요하게 되면 음을 낳은데

靜極復動: 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一動一靜: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해지는 것이

互爲其根: 서로 그 뿌리가 되면서

分陰分陽: 음으로 나누어지고 양으로 나뉘어져서

兩儀立焉: 양의가 서게 되는 것이다

陽變陰合: 양이 변하고 음이 합쳐져서

而生水火木金土: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다.

五氣順布: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순조로이 퍼짐으로써

四時行焉: 사철이 운행되는 것이다

五行一陰陽也: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陰陽一太極也: 음양은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太極: 태극은

本無極也: 본시 무극이다

五行之生也: 오행이 생겨남에 있어서

各一其性: 각각 한 가지 그의 성품이 나고 난다

無極之眞: 무극의 진리와

二五之精: 음양오행의 정기가

妙合而凝: 오묘하게 합쳐지고 엉기어서

乾道成男: 건의 도는 남자를 이루고

坤道成女: 곤의 도는 여자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二氣交感: 두 기운이 서로 느끼어서

化生萬物: 만물을 변화 생성케 되는데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만물은 끊임없이 서로 생성하면서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다

惟人也得其秀而最靈: 오직 사람만은 그 중 빼어남을 얻어서 가장 신령스러우니

形旣生矣: 형체가 생성되고 나서는

神發知矣: 정신이 앎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五性動而善惡分: 다섯 가지 성품이 움직이어서 선함과 악함이 나누어지고

萬事出矣: 만사가 출혈하게 된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 성인께서 중정과 인의로써 그것들을 안정시키고

而主靜立人極焉: 고요함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우셨다

故: 그러므로

聖人與天地合其德: 성인이란 천지와 그의 덕이 합치되고

日月合其明: 해와 달과 그의 밝음이 합치되며

四時合其序: 사철과 그의 질서가 합치되고

鬼神合其吉凶: 귀신과 그의 길흉이 합치되는 것이다

君子修之吉: 군자는 이를 닦음으로써 길하게 되고

小人悖之凶: 소인은 이를 거슬림으로써 흉하게 되는 것이다

故: 그러므로

曰立天道: 말하기를, “하늘을 서게 하는 도는

曰陰與陽: 음과 양이라는 것이오.

立地之道: 땅을 서게하는 도는

曰柔與剛: 부드러움과 강함이라는 것이오.

立人之道: 사람을 서게하는 도는

曰仁與羲: 인과 의라는 것이다”고 하였다

又曰原始反終: 또 말하기를 “사물의 시작을 추궁하여 사물의 끄트머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故: 그러므로

知死生之說: 죽고 사는 이론을 알게 되는 것이다”고도 한 것이다

大哉: 위대하다

易也: 역이여

斯其至矣: 이것이 그 지극함인 것이다

 

태극(太極) 즉 무극(無極)에서 음(陰)과 양(陽)이 생기고 음양(兩極)은 양효(陽爻)와 음효(陰爻)로 나뉘어 사상(四象)을 나누고, 또 사상은 팔괘(八卦)로 분화 되는데, 태극(太極)은 천지(天地)가 개벽하기 이전의 상태로서 우주 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를 일컬음이요, 사상(四象)이라 함은 음양(陰陽)의 네 가지 현상으로 대양(大陽), 대음(大陰), 소양(小陽), 소음(少陰)을 일컫는다. 주역에서 팔괘(八卦)는 자연계와 인사계의 모든 현상을 음, 양을 겹쳐서 여덟 가지의 상(象)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으로 나타낸 것으로 하늘과 땅을 비롯하여 천지자연의 현상을 상징하는 외에 여러 가지의 상징과 의미를 표시한다.

 

이름

표상

자연

성정

가족

방위

건(乾)

하늘(天)

건(健)

아버지

서북

태(兌)

늪(澤)

열(悅)

소녀

리(離)

불(火)

려(麗)

중녀

진(震)

번개(雷)

동(動)

장남

손(巽)

바람(風)

입(入)

장녀

동남

감(坎)

물(水)

함(陷)

중남

간(艮)

산(山)

지(止)

소남

동북

곤(坤)

땅(地)

순(順)

어머니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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