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광대한 고려(高麗) 유라시아 역사

한부울 2011. 6. 19. 21:50

고구마는 Dios-corea 신이 내린 조선(고려)단감자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596

조선 충청도 하중부(河中府)로 본 소현세자와 강희제 http://blog.daum.net/han0114/17050219

한국호랑이(Felis tigris coreensis Linne)는 카스피해호랑이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49722

고려는 '유나이티드 코리아' 고려연합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6399

아먼드(扁桃 Almond)로 본 덕원도호부(德源都護府)가 聖地? http://blog.daum.net/han0114/1704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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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는 오스만제국(Sublime Ottoman State, 1299–1908)이다.

왜냐하면 아나톨리아(Anatolía)가 동방(Eastern)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자료에서 지중해와 유라시아, 중앙아시아에 고려(高麗) 자취가 몰려 넘쳐나고 있음을 본 블로그는 실질적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바로 셀주크제국(Great Seljuq Empire, 1037–1194)이 고려(高麗)라는 것이 들어나고 있다.

물론 그 이후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점으로 술탄국인 룸 셀주크제국(Sultanate of Rûm, 1077–1307) 역시 고려(高麗) 계보와 겹쳐진다.

고려(高麗)왕조 시작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사만 왕조(Samani dynasty, 819-999)와도 연결되고 있다.

한때 티무르에게 오스만제국이 당하는 것을 보면 꼭 고려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하여 점령하는 것과 시대적 상황이 매우 흡사하고 비슷하다.

오스만제국은 1389년에는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왕국을 필두로 한 발칸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시기에 티무르는 1386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등 지배하에 두었으며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유라시아 전체를 발칵뒤집어 놓고 끝내 오스만제국 앙카라까지 진격하고 점령을 한다.

티무르는 1400년 시리아 서북부도시 알레포, 다마스쿠스 점령하고 1401년에 바그다드를 취하고 1402년에 오스만 앙카라까지 쳐들어가 승리하여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1세를 포로하여 다음해 1403년까지 정중한 대우를 하지만 실의속에 빠진 바예지드 1세는 감옥에서 병사하거나 자살했다 한다.
또 오스만제국의 땅을 티무르가 취하지 않고 바예지드 1세의 세 아들들에게 분할하게 한다.

왜 티무르는 오스만제국를 점령하고 취하지 않았을까?

바로 티무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세사람 오스만 제국의 제4대 술탄 바예지드 1세(Bayezid I, 재위:1389-1402)와 서(西)차가타이한국의 2대 술탄이자 마지막 칸 마흐무드(Sultan Mahmud ,Mohammed II, 1388-1402) 그리고 고려 마지막 왕인 왕요(王瑤, 1389-1392)가 교묘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실제 위화도는 지금의 압록강과 함께 중앙아시아, 아나톨리아(Anatolía)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이렇게 보았을 때 고려는 정통적으로 서쪽 유라시아에 근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중앙아시아가 고려의 본 거지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중앙아시아가 이성계 티무르에게 점령당하고 고려가 이성계 군벌에게 지배당하지만 고려는 다시 회복하면서 비록 중원은 이성계에게 빼앗겼지만 명맥은 계속 유지 한 것 같다.

이성계 조선은 중앙아시아를 근거로 인도를 점령하고 이어 동남아시아를 건너 대륙 동쪽으로 근거를 자꾸 넓혀갔다고 보인다.

이성계 조선과 무굴제국이 연결된다.

무굴제국(1526-1858)은 티무르 왕조(1370-1507, 멸망1523)에 속한 바부르(Babur)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부르(Babur)는 원래 인도보다 사마르칸트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티무르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어했으나 두 번에 걸친 시도에서 오히려 페르가나 고향까지 잃어버린 바부르는 차선책으로 파니파트 전쟁을 통해 당시 쇠락한 델리의 로디 왕조를 멸망시키고 무굴 제국을 세웠다 한다.

바부르가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를 공격하다 막힌 것은 대륙조선(명 고려) 중종에게 막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중종은 전통 고려(투르계)일 수 있다.

때문에 이성계조선과 중종조선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체 모두를 대륙조선(corea)은 포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슬람교 수니파 교도인 바부르(Zahir ud-din Muhammad Babur, 巴卑, 译巴, 老虎 1483.2.23-1531.1.5, 재위1526-1530)는 아버지를 통해 티무르(조선)의 피를 이어받았고 그의 어머니를 통해 칭기즈 칸(고려)의 피를 이어받았다.

아버지는 한혈마(汗血馬)라고 불리는 명마의 산지였다는 페르가나(Fergana) 총독(Emir) 티무르계왕손 우마르 세이크 미르자(Umar Sheykh Mirza) 이고

어머니역시 페르가나출신 쿠틀라크 니가르 카눔(Qutlaq Nigar Khanum)이다.

바부르의 혈통은 티무르와 차가타이-투르크(고구려)계에 속했으나 주변의 환경, 문화, 교육 등은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그는 그 문화를 존중하였고 이는 페르시아 문화가 인도아대륙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역시 우리가 보았을 때 다르게 볼 수 없는 역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어쨌던 이성계조선 무굴제국은 근세기 1858년까지 버틴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역성혁명을 하였기 때문에 같은 고려인으로서 백련교 수장인 주원장은 동국이라고 판단되는 지금의 대륙 양자강 남부를 점령하고서 이성계 즉 티무르를 바로 대우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리고 명은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 왕조 인도무굴제국 왕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굴왕조와 명고려는 중앙아시아를 고스란히 그대로 두고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무굴이 대륙동국은 명고려가 점령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그렇다면 오스만제국은 중앙아시아와 대륙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공백은 바로 새로운 조선, 중종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명고려와 혼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되지만 중종(中宗), 인종(仁宗), 명종(明宗) 3대에 걸쳐 이 노란자위땅을 차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더욱 동국으로 세력을 넓혔던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Great game 이란 이름으로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렸던 금쪽같은 땅을 무주공산으로 그냥 놔두었을리가 만무하다란 말이다.

결국 같은 시대, 같은 고려인인 이성계와 주원장은 서로 유라시아대륙 동서를 나누어 지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현재 사학가들이 대륙 명나라와 한반도조선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가 있다.

무엇때문에 티무르는 서양역사가들이 나라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티무르제국이라고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세 서양역사가들이 보았을 때 조선이라 할 수 없는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역사 상황에서 이성계 즉 티무르의 행동이 아주 이질적인 것이었다고 판단 할 수 있고 한편으로 풍전등화 격인 그들 서유럽을 구해준 은인으로서의 묘한 감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당시 티무르가 아니었으면 서유럽은 몽골제국의 공포를 재삼 떠올리게 할 몸서리쳐지는 오스만제국의 침공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투르크계이지만 고려라고 판단되는 오스만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 점령하고 마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독단을 저질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방역사가들은 동방 고려를 한반도로 이동시켜 만든 근세역사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틀을 깰 수 없어 그냥 티무르제국이라고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성계가 망하게 한 고려는 오스만제국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터어키인들이 고려를 형제국이라고 스스로 나설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은 결국 명고려를 흡수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 다시 동국에는 청조선이 생기게 된다.

조선의 강역은 지금으로 보아 중앙아시아한국을 통칭하였다고 보여지고 동국은 청조선이라고 하여 다르게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던 오스만제국과 대륙조선(청 조선을 포함)을 총칭하여 조선이란 칭호보다는 corea라 했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물론 오스만제국이라는 것은 서양역사학자들이 근세기에 갑작스럽게 만든 국명이라고 보이지만 청조선 역시 1881년 이후 동방이라 하여 한반도 조선과 완전히 분리하여 역사를 새롭게 만들 때 대륙조선 중앙정부 호칭에서 나라 국명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역사는 1881년까지이다.

이후는 힘이 완전히 빠져 쓰러지기 직전인 조선이 있었고 청조선과의 혼입, 한반도조선과의 혼입이 뒤 섞여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고 보여진다.

이후 대한제국(1897-1910)이 지금의 무한에서 한반도 넘어오기 전까지 존재하였다고 보인다.

대한제국은 결국 한반도에 묶여버리고 만다.

반도사와 똑같이 한반도 삼한이 생기고 고려가 생기고 조선이 생긴다.

고려는 투르크계라고 판단된다.

물론 조선은 투르크계와 몽골계가 병존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이 이 정도로 막강하였으니 왜구 일제는 조선을 못 깍아 내려 안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인들은 역사자체가 미개하고 천하고 굴욕적인 역사만 가지고 있는 한심한 나라라고 속여 열등감을 심어주고 자학하게 하여 왜구역사보다 나을게 없다고 인식하게끔 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니 꿈엔들 조선인들이 유라시아전역을 강역으로 하고 있었던 강력한 나라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당시 동아시아를 쥐락펴락하던 일제가 한반도 조선이 유라시아 전역을 영토로 한 나라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왜구무사출신 열도 일제가 받는 체면은 무엇이 되겠는가?

그들 나름대로 갈등이 많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 밝혀야 할 것들은 많다.

지금은 서세와 일제가 근세기들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뜯어고쳤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기어코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역사, 그러한 역사를 먼저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개괄적으로 풀어 놓은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 큰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분명히 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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