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하노버(HANOVER)의 역사 의미

한부울 2015. 12. 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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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HANOVER)의 역사 의미

 

글쓴이:한부울

 

머릿말

대한국에 억지로 엉기려 했던 잉글랜드

한강(漢江)은 버지니아주의 제임스강.

소제(애팔레치아산맥은 파미르)

마무리

 

머릿말

 

한(韓, 漢)을 서양역사 지명 하노버에서도 찾을 수 있다.
Hanover was founded in medieval times on the east bank of the River Leine. Its original name Honovere may mean "high (river)bank", though this is debated (cf. das Hohe Ufer).
위 영어내용을 보면 하노버라는 명칭은 도시라고 하기 이전에 중세시대에 독일 라이네 강(Leine River)동쪽 제방에서 도시가 설립되었다고 하는 내용이지만 이것은 하노버 명칭이 중세시대에 비로소 발견되었거나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것의 오리지널 명칭은 독일어 호노베르(Honovere)라 하고 중세영어풀이(Middle English)에는 이를 "bank (plural banks)"라 하는데 이 뱅크는 "the bank of a river or lake"  강이나 호수의 둑, 제방; (둑처럼) 퇴적한 것으로 쓰였다는 알 수가 있어 대체적으로 강의 제방(堤防)도시란 의미가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사실상 이 하노버가 서양사에서 여러가지 역사사건을 가지고 있겠지만 지형적인 요소가 더 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하노버 명칭에서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웨스트버지니아주 "흰돌이 있는 곳(place of white stone)"의 뜻을 가진 캐너와카운티(Kanawha County)에 제방(堤防)마을이 있는데 이를 아래 위성사진에서 보듯이 이스트 뱅크(East Bank)라 하는 것에서 뱅크(bank)의 쓰임새를 알 수가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이스트 뱅크마을은 카나와 강이 흐르는 floodplain범람원(汎濫原)이다.

 

 

 

즉 하노버는 "high (river)bank"라 한 것처럼 강 제방, 뚝을 가르키는 명칭과 이 범람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명칭임을 알게 한다.

도대체 글쓴이가 하노버를 왜 한(韓, 漢)에서 역사성 찾아야 한다고 했을까?

본 블로그 글"HANCOCK과 HANKOOK https://han0114.tistory.com/17050783"에서 언급한 선(先天)역사에서의 명칭 음(音)이 후(後天)역사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적용하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역사라 할지라도 존재성이 가하다면 삼한지명으로 사용되던 명칭 음(音)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을 어느 정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럽사가 근세기에 만들어진 상황에서 그들이 도대체가 역사근원이 없는데 분명 이 하노버(HANOVER)역사가 존재할 턱이 없다.

현재 이 명칭이 유럽대륙 독일지명이나 아니면 영국왕가명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은 믿을 수 있는가에 문제가 없지 않다.

때문에 이 하노버란 명칭을 우리가 밝혀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명칭이 실제로 우리역사에서는 어떻게 쓰였고 그것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하노버는 강이나 하천 제방 또는 뚝으로서 높이 쌓여진 상태에서 범람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유럽대륙에 있어야 할 지명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버지니아주(Virginia州)와 그 남쪽에 붙어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North Carolina州)에 똑같이 하노버카운티(Hanover County)가 있다는 사실이다.

카운티는 군(郡)같은 것으로서 이 두 카운티가 똑 같이 강(江)을 중심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하노버는 강 동쪽에 카운티가 있고 버지니아주의 하노버는 강 북쪽에 위치함을 알 수가 있다.

 

하노버를 한 오버로 볼 것인가.

 

 

 

먼저 버지니아주의 하노버 카운티(Hanover County)를 백과사전을 보면 1720년 11월 26일 세인트 폴스 패리시(St. Paul's Parish)로 불렸던 뉴 켄트 카운티(New Kent County)에서 분리 설립되었고 지명은 독일의 하노버 선제후(Electorate of Hanover)에서 영국 국왕이 된 조지1세(George I,1660-1727,재위:1714-1727)를 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 블로그 글 "개암(榛:Corylus)으로 본 삼한 https://han0114.tistory.com/17049988"에서 잉글랜드왕가는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왕가의 앤(Anne)공주를 마지막으로 잉글랜드왕국으로 옮겨가는데 독일, 게르만계 공국의 선제후가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로 등장하고 그 첫 번째 주자가 바로 조지1세(George I,1660- 1727,재위:1714-1727)라는 사실이다.

 

세인트 엔드류스 크로스 스코틀랜드 깃발[Flag of Scotland (Saint Andrew's Cross)]과 1712–1917 동안 사용된 러시아해군깃발(Ensign of the Russian Navy)이 동일하다는 것은 공통분모가 바로 고려(高麗)라는 사실이다.
고려(高麗)를 서양사람들은 
2009년도에 글을 쓴 본 블로그 글 "고려는 '유나이티드 코리아' 고려연합이다. https://han0114.tistory.com/17046399"에서 미국인 역사가 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1843-1928)가 그의 저서[아시아역사:Asiatic history]에서 밝혔던 사실인데 바로 "United corea, or korai"라 했다는 사실이다.
코리아(COREA)가 무엇인가, 대한국(大韓國)이다.
즉 포괄적인 국가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역사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잉글랜드와 미국이 탈취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만소봉 대한국(大韓國)은 북아메리카대륙지배 명칭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9"에서 언급한 사실이지만 고종(高宗)이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놔두고 대한국의 국명을 택할 때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한국은 세계를 통합하는 이름이라 당시 다른 각국나라가 이를 못마땅해 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상황이다.
본 블로그 글 "고려와 스코틀랜드, 원과 잉글랜드 그리고 로마노프
https://han0114.tistory.com/17050765"에서 잘 정리한 것이지만 유럽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잉글랜드왕조역사에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1603,재위:1558-1603)이후 끊어지고 스코틀랜드왕가로 넘어가면서 다시 하노버왕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맥을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다시 붙이고 꿰메고 하는 식의 역사이다.
잉글랜드왕가는 북유럽 노르만 왕조(Norman dynasty:1066-1154), 플랜태저넷 왕가(Plantagenet:1126-1399), 랑카스터(Lancaster:1399-1471)와 요크(York:1461-1485)이어졌다가, 튜더왕가(Tudor:1485-1603)에서 엘리자베스1세로 대가 끊기며 제임스 1세(James I)로 부터 시작되는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가(Stuart)에서 네덜란드왕가 오라녜나사우 왕가(Oranje-Nassau:1689-1702)로 잠시 이전되었다가 1707년 스튜어트왕가의 앤(Anne)에서 스코틀랜드왕가조차 단절되고 더 이어질 것이 없자 비로소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이란 체제 아래로 엮는 것이 1714년 부터이고 이것이 바로 여기서 언급하는 독일선체후 하노버왕가(Hannover)로 이어졌다가 프랑스 부르몽왕가가 단절되는 시기인 1837년에 윌리엄 4세(William IV)까지 이어지지만 다시 빅토리아여왕(Victoria,1819-1901,재위:1837-1901)에서 대가 끊기면서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erzogtum Sachsen-Coburg und Gotha)로 넘어갔다가 이름만 1917년 조지 5세(George V,1865-1936,재위:1910-1936)에 의해 윈저왕가(House of Windsor)로 바꾸는 형태의 왕가라는 사실을 우리가 꿰뚫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정리는 서양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조차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독일, 러시아 짬뽕이다.

 

스코틀랜드계 왕계보가 아니라면 결국 잉글랜드 왕가는 이때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또 하나의 하노버는 노스캐롤라이나주(州)의 하노버카운티 지명 앞에 뉴(New)가 붙어 뉴 하노버 카운티(New Hanover County)라고 하고 있지만 1846년에 제작된 북아메리카대륙 지도“Chapin's Ornamental Map Of The United States”에서 보면 뉴(New)란 단어가 붙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는 진짜로 만들고 하나는 가짜로 만든 것이다.

어쨌던 북아메리카대륙에 유럽과 비슷한 지명들은 전부 뉴(NEW)를 붙이고 있다는 이상함도 없지 않다.

어째서 유럽대륙을 원지명으로 만들고 북아메리카대륙 지명을 뉴(New)를 붙여 신대륙인 것처럼 만들려 했을까?

뒤가 켕기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주 하노버카운티보다 9년 늦은 1729년에 크레이븐(Craven)행정구역에서 배스(Bath)카운티의 뉴 하노버 행정구역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였으며 이 역시 지명은 당시 대영제국의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한국에 억지로 엉기려 했던 잉글랜드

 

역사적으로 보면 하노버(Hannover)는 영국의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Hanoverians)가 선제후(후에는 국왕)시절의 하노버 선제후령의 수도였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짬뽕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노버왕가의 전신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령(Herzogtum Braunschweig-Lüneburg)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est Augustus)가 시조라고 하였으며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공국도 엄밀하게 따진다면 독일제국(Deutsches Reich)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며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이 집권한 바이마르공화국(Weimar Republic:1919-1933)과 정치적인 역사사실관계가 연결되고 잉글랜드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은 어쨌거나 프랑스 브로몽왕가의 루이14세(Louis XIV,1638-1715,재위:1643-1715)와 정확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잉글랜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다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과 한 때는 프랑스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다시보는 숙종과 루이14세 https://han0114.tistory.com/17050505"와 "다시보는 영조와 루이15세 https://han0114.tistory.com/17050506 "그리고 "다시보는 정조와 루이16세 https://han0114.tistory.com/17050507" 시리즈물에서 보았듯이 프랑스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부터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3)까지 정확하게 조선왕조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부터 정조(正祖, 1752년-1800,재위:1776-1800)까지 얽혀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어찌보면 잉글랜드는 조선왕조에 눌려 있었던 사실이다.

하노버왕가의 모체가 되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령(Electorate of Brunswic

k-Lüneburg)이란 사실에서도 신성로마제국(Imperial State of the Holy Roman Empire:1692-1714)의 선제후이니 결국 고려의 조공국이며 이로부터 시작한 동군연합브리틴왕국(同君聯合, Personal union)과 그리이트 브리튼(Great Britain:1714-1800), 동군연합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Personal union with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807)까지 그들의 역사로 연결시켜놓고 있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하노버카운티 명칭은 잉글랜드의 조지1세(George I,1660- 1727,재위:1714-1727)의 선제후시절 수도명을 따른 것이라 한 것처럼 대고려 역사와 대조선 역사의 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세의 헛된 주장일뿐이다.

 

본 블로그 글 "만소봉 대한국(大韓國)은 북아메리카대륙지배 명칭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9"에서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맞물려 있는 시기에 브라운슈바이크(Duchy of Brunswick,1815-1918)와 뤼네부르크(Lüneburg)의 공작이었던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est Augustus:1629-1698)가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Hanover)로 옮기게 되면서부터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1641-1901)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에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이 공교롭게도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벌어졌다는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본 블로그 글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 https://han0114.tistory.com/13203353

"의 소제 "청(清)교도와 청(清)나라 후금의 만남"에서 청교도혁명이라 한 적이 있고 또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1642-1651)이라고도 하는 충돌에서 1차(1642-1646), 2차(1648-1649), 3차(1649-1651)의 결과가 찰스1세(1600-1649,재위:1625-1649)의 처형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마치 조선의 병자호란 때 제16대 임금 인조(仁祖,1595-1649,재위:1623-1649)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수모당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잉글랜드왕가는 스코틀랜드왕가에 피신에 있었다는 과정과 또한 일맥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때부터 만주족인 홍타이지(皇太極)숭덕제(崇德帝,1592-1643,재위1626-1643)가 국호를 청(淸)으로 개칭하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하노버왕가는 청(淸)으로도 분장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고려와 스코틀랜드, 원과 잉글랜드 그리고 로마노프 https://han0114.tistory.com/17050765 "에서 확실하게 고려와 스코틀랜드가 같고 역사가 동일하게 이어지는 것은 깃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여 그 동일성을 러시아지칭하는 로마노프왕가와도 연결되고 있음도 알렸던 사실에서도 하나의 체제 즉 코리아, 대한국이란 위상도 참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하노버는 수도를 옮겼다고 하였지만 무엇에 쫓겨 옮긴 것인지 아니면 어떤 강력한 세력을 제압하고 난후 그 터전으로 옮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하노버란 명칭은 한(韓, 漢)과 더 어울릴 수 있는 지명이다.

하노버(Hanover)를 한 오버(Han-over)로 읽고 한오버는 한강(漢江)을 건넜다거나 한(韓)을 극복했다거나 한(韓)의 위상을 그대로 하노버라 하면서 동양역사 전제를 차지하려 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건너다, 극복하다를 영어로 "go over"라 한 사실 또는 끝내다, 쓰러지다, over 라 한 사실들을 종합할때 오버는 극복했다는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벌어진 시기에 하노버로 수도를 옮겼다 하였으니 같다고 보고 청(清)의 홍타이지가 명(明)을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朝鮮)을 침공하였다고 하지만 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그리고 하노버카운티가 있는 버지니어주라 할 때 청(清)은 바다에서 제임스강을 타고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인조는 적어도 리치몬드에서 항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이곳에서 항전하다가 결국 청(清)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江華島)까지 함락하는 바람에 항복을 한다 하였다.

한반도 역사가 말한 것처럼 북쪽에서 청(清)이 밀고 내려온 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왕은 임진왜란 때처럼 몽진하면 된다.

임진왜란때 왜구들이 부산에서 공격하기 때문에 선조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한양(漢陽)에서 북진이 아니라 서진(西進)하여 몽진(蒙塵)한 곳이 의주(義州)라 했던 것처럼 이상한 지형을 놓고 한반도역사는 남쪽으로 도망갔다고 한들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본 블로그 글 "멜론(甜瓜:melon)은 조선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이 최상품이다.
https://han0114.tistory.com/17050686"에서 몽진(蒙塵)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 회진몽복(灰塵蒙覆)의 줄임말로 '먼지를 덮어 쓰다'란 의미이다.

즉 먼지를 덮어쓴다는 것은 거의 사막같은 지역을 먼지를 덮어쓰면서 수레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다.

분명 한반도역사에서는 서진(西進)이라 하였으니 한양에서 서진(西進)하면 경기도 서쪽 끝 바다말고 나올 것이 없음에도 그곳에 의주가 있다 하였다.

병자호란 역시 마찬가지로 남한산성에서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서술한 한반도역사는 남한산성 이남으로는 더 이상 인조가 피할 길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남한산성 이남은 특별한 큰 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한반도역사의 거짓 역사서술이라 하기전에 상황은 남한산성을 남쪽에서 공격하는 형태의 형편임을 짐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기로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 역시 함락했다는 것은 남한산성과 거의 같은 지형에서 강화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과 정 대비되는 곳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버지니아주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리치몬드 남쪽으로 제임스강(James River)이 갈로막고 있고 제임스 하구는 바로 적들이 침입할 수 있는 공간 체서피크 만(Chesapeake Bay)과 대서양이 남쪽으로 크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이 잉글랜드가 아니라 본 블로그 글"버지니아(Virginia)와 경주(동경) https://han0114.tistory.com/17050755"에서 밝혔듯이 브라질에 잠복해있던 앨비언(Albion)이라 하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강(漢江)은 버지니아주의 제임스강이다.

 

그렇다면 "하노버"의 한(韓, 漢)은 과연 한(韓)이어야 할까 아니면 한(漢)이어야 할까.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왜 여태 한(韓)과 한(漢)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까.

마치 코리아 영어스펠링에서 "C" 를 서양인들이 두려워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한(漢)이라고 하면 스스로 중국이라 한다하여 진실을 말하길 꺼려하는 나약한 역사학자 어줍잖음과 같은 이치이다.

한(韓)은 명확하게 본 블로그 글"만소봉 대한국(大韓國)은 북아메리카대륙지배 명칭
https://han0114.tistory.com/17050779 "에서 설명하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렇다면 한(漢)은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명문당신옥편(明文堂新玉篇:1952판)을 보면 "漢한 天河雲- 은하수  한 남자 賤 칭 놈, 한(賊-惡-常) 嶓冢水名-水"로 되어 있어 나라의 국명이 아님을 알 수 있고 파총수명(嶓冢水名)이라 하여 물이름이라 한 사실이다.

즉 한(漢)은 절대로 나라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오직 물이름이 전부라는 이야기다.

이러함에도 기존 신중국역사를 의식하고 일본역사를 의식하여 제대로 올바른 역사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한강(漢江)을 한수(漢水) 라고 하여 물이름 한(漢)을 썼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은 한수(漢水)가 파총산(嶓冢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면수(沔水)에 들어간다 말한다.(曰嶓冢之山 漢水出言 而東南流注于沔)하였다.

최두환선생의 주장을 빌리면 파총산(嶓冢山)을 파산(嶓山)-파메-파미르(Pamir)라 한 사실과 이것을 총령(蔥嶺)이라 한 사실을 전제할 때 세계지붕이라는 별명이 있는 파미르고원(Pamir Mountains)에서 한강(漢江)이 발원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한반도 역사 설명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현재 파미르고원이라 함은 중앙아시아의 톈산산맥(天山)이나 카라코람 산맥, 쿤룬산맥(崑崙), 티베트 고원, 히말라야 등의 산맥에서 힌두쿠시까지의 산줄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발원하는 강이 한강이라고 어떻게 우리가 믿을 수 있겠는가.

한강이 그곳에서 발원한다면 한강 북쪽 어디쯤에 한양이 있어야 하는데 현 동아시아대륙사에서 이런 주장이 용납이나 되겠는가.

전혀 역사사실과 동떨어진 역사가 현재 한반도역사, 열도역사, 동아시아대륙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s://han0114.tistory.com/17050693"에서 히말리아는 알라스카 또는 캐나다의 브리티스 컬럼비아주에 있는 거대한 군산들이라 하였고 백두산이라고 하는 ‘머리산(頭山)'은 매킨리 산(Mount McKinley:6,144 m)이라 한 적이 있다.

이러함에도 파미르까지 아시아대륙에 심고자 무리하여 그 주위에 있는 것을 모조리 집어 넣은 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어설픈 역사고침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파미르가 어디란 말인가?

바로 애팔레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이다.

제임스 강(James river)은 애팔레치아산맥,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s)의 앨리게니 카운티(Alleghany County)와 바터탓 카운티(Botetourt County)의 경계에 있는 아이언 게이트(Iron Gate)근처 카우패스차 강(Cowpasture River)과 잭슨 강(Jackson River)의 합류점에서 발원하는 제임스 강은 한수(漢水)가 파총산(嶓冢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면수(沔水)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소위 동한수(東漢水)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면수(沔水)는 넘쳐흐른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볼 때 이는 반일주조 사이클(Semidiurnal tide cycle)에 의해 만조(滿潮) 수위가 항상 증가하는 체서피트만(Chesapeake Bay)일 가능성이 매우높다.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버지니아주(Virginia州)의 하노버카운티를 보면 본래 하노버의 의미가 라이네 강(Leine River)뚝이나 제방이라 하였던 사실을 그대로 적용하면 제임스강은 라이네 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강을 건너 북쪽에 도시를 꾸민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산성이라 할 수 있는 리치먼드(Richmond)를 남쪽으로 두고 북쪽에 위치한 하노버카운티는 마치 한강(Han river)을 건너서, 한오버와 같은 의미로 크로즈업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한(韓)이라는 것은 크고(great) 하나(One setup)라고 하는 대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은 고구려시대 때 아리수(阿利水)라고 하였는데 이 "아리"는 크다라는 순우리말이며 물수(水)라 하여 아리수는 말 그대로 큰 강을 말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삼한역사에서 한강의 북쪽을 한양(漢陽)이라 한 것은 한강 북쪽 "양지바른 쪽"에 서울을 쓴다란 뜻으로 쓰였다 하고 한강의 남쪽은 한음(漢陰)이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리치먼드(Richmond)를 강도(River City), 남경(Capital of the South)이라 한 것처럼 한양을 조선시대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라 하였지만 고려가 개성을 서울로 두고 있을 때는 고려의 지배층들이 이곳을‘남경(南京)’이라 불렀다는 사실과 정확하게 매치된다.
리치먼드 역시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아메리카 남부 연합)의 수도로 사용되었고 이 도시는 사적(史蹟)이 풍부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한양을 다른 이름은 시대마다 달랐는데 삼국시대에는 위례성(慰禮城)·한산(漢山)·한성(漢城)·아차성(阿且城)·남평양(南平壤)·북한산주(北漢山州)·북한산성(北漢山城)·한양군(漢陽郡)등으로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한양부(漢陽府)·남경(南京)등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성부(漢城府)·한양(漢陽)·한경(漢京)·경도(京都)·경조(京兆)·경사(京師)·도성(都城)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고 백과사전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유럽사가 한양을 하노버라 하였다고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할 때 이상할 것이 전혀 없어보인다.

 

 

 

앞 그림 사진에서 보듯이 버지니아의 하노버카운티는 지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분명 제임스 강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정확하게 한양 위치이다.

솔직히 하노버가 본래 있었던 곳은 결코 유럽대륙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현재 하노버카운티라고 하는 버지니아가 더 역사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영국을 현재 잉글랜드라고 하지만 브라질에 잠복해있던 앨비언(Albion)들은 자주 제임스강 하구쪽으로 공격해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고 1812년 미영전쟁 때도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으로 공격해 들어왔다는 사실도 확인 할 수가 있다.

 

 

 

끝으로 확인 해 볼 것은 바로 인조가 강호로 피신한 왕실가족들이 있었다던 강화이다.

본 블로그 글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는 화부(華府)와 미경(美京), 화성돈(華盛頓)으로 불렸다. https://han0114.tistory.com/17050542 "에서 살펴본 것처럼 위 그림이 말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워싱턴D.C 정북(正北) 서스쿼해나 강(Susquehanna River)이 가로막고 있고 동쪽으로는 체서피크 만(Chesapeake Bay)이 대서양을 막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제임스 강(James River)과 그 강을 남쪽으로 물고 있는 도시, "river of city" 즉 강도(江都)라 하는 버지니아(virginia)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가 하면 북쪽으로는 거대한 애팔래치아(Appalachian Mountain)산맥이 단단하게 병풍역할을 하는 형세이니 어찌 글쓴이가 이를 강화부(江華府)라 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지형틀에서 남한산성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인조다.

그러나 결국 효종(孝宗,1619-1659,재위:1649-1659)의 북벌계획을 보면 1649년 5월 부왕 인조가 죽자 북벌론을 계획하였고 1659년에 북한산성 축성계획을 만들었으나 하지 못하다가 숙종 37년(1711)에 가서 비로소 축성시작하여 완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사실상 북쪽 현재 북아메리카대륙 뉴욕주, 매사추세츠주, 펜실베니아주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왕실이 피난한 강화부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북쪽 서스퀘해나강 이북에 반란세력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며 이 강화부가 함락하자 인조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정리되어야 맞다.

한반도 역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이제사 술술 풀리는 그야말로 당시 역사상황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러한 역사찾기가 왜 수고스럽기만 하겠는가.

동시에 보람도 있다.

하노버(Hanover)란 명칭은 인조를 곤란하게 하였던 이름임에 틀림없으나 청(淸)도 그렇다고 많은 것을 조선으로부터 얻을 수가 없었다고 생각된다는 점이다.

비록 삼전도에서 수모를 겪었다고 하겠지만 다시 오랑캐 청(淸)이 잉글랜드라 할 때 이 청(淸)은 스스로 만주국으로 불리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명 대신의 지위를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노버(Hanover)는 한(韓:Han)과 오버(越:over)의 합성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양을 월이 점령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고려 즉 코리아 대한국의 한(韓)을 굴복시켰다는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마무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역사이기에 글쓴이 주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쓴이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보고 그것에 맞게 추측을 한 것이다.

추측이라 하겠지만 지금까지 세계삼한역사 글을 써 오면서 글쓴이가 주장한 기본 틀은 별로 어긋난 적이 없었다.

고려(高麗)를 상대로 역성혁명을 시도했다고 하는 이성계 조선(朝鮮)의 제왕계보를 보면 크게 이성계(太祖,1335-1408,재위:1392-1398)의 자손과 인조(仁祖,1595-1649,재위:1623-1649)의 자손으로 나눌 수가 있다.

한반도역사에서 인조까지의 연대는 16대라고 알려져 있지만 방계(傍系)와 군(君)을 빼고 나면 이성계부터 9대손이 된다.

1.태조이성계-2.태종이방원-3.세종 이도(李祹)-4.세조 이유(李瑈)-5.성종 이혈(李娎)-6.중종 이역(李怿)-7.명종 이환(李峘)-8.선조 이연(李昖)-9.인조 이종(李倧)이다.

신성로마제국을 고려(高麗)로 보았을 때 신성로마제국의 9번째 선제후령이 인조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는 선성로마제국의 9번째 선제후령으로서 이를 하노버 선제후령이라 하는데 1803년 7월 5일 아르틀렌부르크 협정(Convention of Artlenburg)에 의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3만여 프랑스군이 하노버로 진군하여 하노버의 군대는 해산되었다 하였으며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됨과 동시에 망했다 하였으나, 1814년 빈 회의에서 재건이 결정되어 하노버 왕국으로 이어졌다고 유럽사는 말하고 있다.

당시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이던 조지 3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많은 수의 군인들이 영국으로 이민하여 독일 근위군단을 구성하였단는 것은 이때부터 이질적으로 변화한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후 독일 근위군단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와 싸운 유일한 독일 군대가 되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는 사실이다.

이들은 후일 워털루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알려진다.

1837년 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 빅토리아가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하자 살리카 법에 의해 하노버 왕국의 군주 지위는 윌리엄 4세의 동생이었던 아우구스트에게 이양된다.

1866년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와중에 프로이센에 합병되었다는 것이 하노버 역사이다.

참으로 독일은 세가지 이름 게르만(German), 저지섹슨(Low Saxon), 샤테르란트 프리지아(Saterland Frisian)이 모든 이름들이 전부 네덜란드와도 엮이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풀 수 없는 역사개체이다.

어떨때 하나의 체제에서 속하다가 어떨 때 하나의 체제에서 반대위치에 있었고 최종 2차세계대전에는 완전히 이단아처럼 기록이 남겨져 있다.

북아메리카대륙을 미시시피강을 경계로 동쪽은 조선이 경영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반대편 서쪽은 바로 고려가 장악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한국 내에 중국이 있으며 이를 대한제국이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 대한제국은 1939년까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 일부영역에서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하지만 조선이란 영역에서 예부터 한국(한국)이라 지명은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한을 아주 넓고 거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이름 붙이기에 애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미시시피강 이 동쪽에 한국이라고 하는 핸콕이란 지명도 많았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동부 경기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하노버란 지명도 여러 번 중복되게 사용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바로 조선과 고려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며 명이 존재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경기에 한강이 흘렀다.

경기라 함은 천자(天子)가 도읍한 경사(京師)를 뜻하고, ‘기(畿)’는 ‘천자가 거주하는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이내의 땅’을 의미하여 또는 경현(京縣), 적현(赤縣)과 기현(畿縣)이라 하였다는 사실이 있고 이를 중국이라 했다는 것은 모전(毛詩故訓傳)에서도 나타나는 중국은 경사(京師)라 하여 하나의 도시정도를 나타내는 이야기다.
이것이 오늘날 경기도(京畿道)라 하는 것은 이와같은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이지만 수도가 있는 곳으로서 옛 한양이 건재했다는 것만은 알리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아메리카 남부 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수원인 잭슨 강을 포함하여 전체 길이가 715km로 흐르는 제임스 강(James River)을 남쪽으로 두고 배수진을 친 사실이 알려진다.

이를 남한산성이라 해도 진배없다.

또 머리말의 그림사진을 보면 또 하나의 노스캐롤라이나주, 하노버카운티가 윌밍턴(Wilmington)에서 정남쪽으로 흐르는 노스이스트케이프피어강(Northeast Cape Fear River)동쪽에 있는데 강 하구로 들어서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이곳에는 피어곶(Cape Fear)이 있다.

 

 

 

이 피어곶은 본 블로그 글 "골드러시(gold rush)와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 號)사건
https://han0114.tistory.com/17050516"에서 밝혔던 것처럼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이 있는 한반도 대동강이 아닌, 1874년 1월 10일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피어곶(Cape Fear)에서 침몰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장소이다. 이 또한 한반도 역사가 말하고 있는 사실성에서 상당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끝으로 이 글을 정리하자면 머리말에서 하노버를 호노베르(Honovere)라하여 “high(river)bank”라는 의미가 있고 이것을 독일어로 높은 해안(das Hohe Ufer)를 말하고 있는 것은 특수한 지형 형태적인 문제에서 높은 제방을 쌓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라 하였던 만큼 바로 일년내내 하리케인이 근접하는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특히 반일주조 사이클(Semidiurnal tide cycle)에 의해 만조(滿潮)수위가 항상 증가하는 체서피트만(Chesapeake Bay)에서 밀려드는 역류현상이 발생할 때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제임스강안 지역임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제임스강을 주위로 있는 도시들은 이런 범람을 막기위해 제방을 높이 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아마도 하노버란 지명은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도 받았던 지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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