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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원조 - 고조선과 고구려

한부울 2006. 12. 28. 23:26
 

갑옷의 원조 - 고조선과 고구려  

[한겨레신문] 2006년 12월 07일(목)  

 

“갑옷과 말갑옷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원조다.”
고대 한민족의 무구가 북방민족이나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것이 중국에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는 8일 언론인회관에서 열린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의 논문 ‘고대 한국갑옷의 원류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논문을 보면, 고조선의 영역에 있던 숙신에서 뼈갑옷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진서 동이열전 숙신씨전)

또 고조선 영역인 대목단둔, 범의구석, 흑룡강성 경화 유적 등에서 장병형 뼈갑편이 출토되어

한민족의 뼈갑옷 생산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까지 소급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쪽은 기록이 없을 뿐더러 서기전 1300년경에 조성된 상왕조의 왕실 무덤에서 출토된 게 가장 이른 시기다.

그것도 가죽 갑편이다.

왕실의 무덤에서만 발견된 점과 가죽 갑편의 형태가 고조선의 뼈갑옷의 장방형인 점에서 고조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가죽갑옷의 잔줄무늬와 구름무늬는 고조선영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문양과 일치한다.

철갑 역시 고조선의 것이 중국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 1호묘 출토 철갑은 장방형의 철편을 물고기 비늘처럼 엮은 것으로 서기전 3세기 고조선 후기에 철갑이 생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중국은 춘추시대까지 철갑을 만들지 못했다.

섬서성 임동 출토된 진나라 무사도용은 모두 가죽갑옷을 입고 있다.

서한 초기에 이르러 철갑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그나마 고조선의 것이 갑편을 쇠줄로 연결한데 비해 가죽끈이나 비단끈으로 연결하는 형태였다.

또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 보이는 철 말갑옷은 중국 북조 초기에 속하는 초역파 1호 고분의 철갑옷 말도용보다 훨씬 앞선다.

강원도 철령 유적에서는 안악고분보다 앞선 서기 3세기경의 철갑옷말 모형이 출토되었다.

5~6세기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중국 및 북방의 말갑옷은 귀막이와 볼 보호용 구조면이 있는 고구려의 말투구와 달리 모든 부분을 철갑으로 감싸 말의 움직임이 불편한 형태다.

박선희 교수는 우리 복식학계가 아직 중국과 북방복식 영향론을 펼치고 있으며 방송드라마에도 그대로 반영돼

이 드라마들이 중국에 방영될 경우 뜻하지 않게 동북공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