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교수 "일본, 100년 전과 똑같다"
[오마이뉴스] 2006년 10월 31일(화) 오후 06:02
▲ 10월 28일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프레스센터에서는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한일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2006 박철현
지난 28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본 도쿄 프레스센터에서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일 양국의 지식인 약 20여명을 비롯해 재일동포, 일본시민 약 2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심포지엄이 열렸다.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이하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 일본기독교협의회(NCC),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위원회, 재일대한기독교회, 피스보트, 6·15 공동선언실현 재일동포의 모임이 후원했다.
원래 이 자리에서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동아시아 평화와 한국, 일본의 역할', '한민족 네트워크'등이 주로 다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북한의 핵실험으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제재 및 한국에 대한 PSI(대량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요구 그리고 일본의 핵무장 논의와 같은 심각한 우경화 현상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내용들이 주로 다뤄졌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양국 지식인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패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통일운동가 정경모씨,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백낙청 서울대 교수, 오카모토 아쓰시 <세카이> 편집장, 타카하시 테츠야 동경대 교수, 핵 전문가 요시다 야스히코 교수, 역사인식 및 사상론의 윤건차 카나가와대 교수, 한홍구 교수 그리고 김석범씨와 박형규 전 이사장.
연로한 나이와 바쁜 스케줄 등 여러 요인들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이 참석한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금이 동북아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 1부에서 주제발표한 백낙청 교수(왼쪽)와 일본의 핵 전문가 요시다 야스히코 교수. ⓒ2006 박철현
"민주참여·시민주도의 전혀 새로운 형태의 통일을!"
1부 주제발표는 통일운동가이자 망명객으로서 일본에서 활발하게 문필활동을 하고 있는 정경모(82)씨와 6·15 공동위 남측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백낙청(68)씨.
정경모씨는 지난 89년 문익환 목사와 같이 방북, 김일성 주석과 토의하여 당시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초안 역할을 한 '4·2 공동성명'의 문안을 작성한 대표적인 민족주의자이다. 그가 집필한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찢겨진 산하>, <이제는 미국이 대답할 차례> 등은 386세대의 이론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씨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거대한 커넥션을 풍부한 논증과 논리로 증명하면서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이 커넥션이 더욱 강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1970년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땅을 밟지 못한 정경모씨. 82살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문필활동에 전념하는 최후의 망명객이다. ⓒ2006 박철현
또, 정씨는 전통적 질서가 무너진 후 폐허에서 새로운 형태의 국가, 즉 국민국가(Nation Station)가 탄생하는데, 한반도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일본은 페리 제독이 내항한 1853년 이후 근대국가로 나가 1868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근대국가가 세워졌고, 중국의 경우에는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9년이 지난 1949년에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선언한 것으로 양국은 국민국가를 건설했지만, 한국은 1875년 운양호 사건 이후 13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백낙청 교수는 "북한 핵실험과는 상관없이 남북간 평화통일의 원칙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어떤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상정 자체를 하지 말고 남북간 교류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년 당시 6·15 공동선언 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 제안과 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제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서로 두루뭉수리하게 합의를 본 이유가 바로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다, 사회민주주의다라는 결정을 짓지 말자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인 셈이다.
백 교수는 오히려 "기능주의적 접근을 경계하면서 4항에 명시된 남북의 경제협력, 문화, 스포츠 교류 등의 제반 협력을 해가며 자연스럽게 민중주도, 시민참여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통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미, 과거에도 일본 해군력 이용해 동북아 견제 시도"
▲ 일본의 현재 모습이 1백년전과 흡사하다며 이를 경계할 것을 역설한 리영희 교수. ⓒ2006 박철현
노구의 몸을 이끌고 현해탄을 건너와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일본이 100여년 전 일본과 똑같다면서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영미제국주의는 과거 일본의 해군군사력을 이용해 동북아시아를 견제하려 했다"면서 영·일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어 "특히, 1928년부터 계획된 범죄 행위인 만주사변을 일본의 죄로만 단죄하려 하는 경향이 짙은데, 사실은 미 제국주의와 일본의 범죄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아베 정권이 내놓고 있는 '아름다운 국가' 그리고 미국과 척척 손발을 같이 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이 100여년 전과 어떻게 그렇게 똑같을까 하는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내심 가지고 있는 무조건적·기계적 반일관을 넘어서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연대하여 100년 전 상황을 되풀이 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일본의 핵무장은 말도 안 된다"
1부 주제 발표가 끝나고 곧이어 이루어진 2부 패널 토론에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일본의 우경화, 천황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이어졌다.
1981년부터 통산 10년간 UN에서 근무했고, 특히 86년부터 89년까지 IAEA(국제원자력기구) 홍보부장을 역임한 바 있는 요시다 야스히코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은 마이너스가 더 컸지만, 잘잘못을 따진다면 핵실험을 원인은 미국 측에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실패한 핵실험이지만, 부시정권이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아마 계속 할 것으로 보여진다. 플루토늄 압축은 우라늄 농축과 차원을 달리하는 기술이며 게다가 미사일 탄두 장착까지 하려면 세계최고 수준의 핵기술 능력이 필요하다. 한번에 성공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요시다 교수는 "오히려 실패해서 더 위협적이 되버린 셈이다, 진짜로 미사일에 장착하려 한다는 위협을 (미국이) 느꼈을 테니까"라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 논의에 대해서 "절대 핵무장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핵 3원칙, 헌법, 사회여론, 중국과 미국의 견제등 절대 핵무장이 가능한 조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또 이미 미국의 핵우산 안에 들어가 있는데, 이런 모든 위험요소를 떠안고 일본이 핵무장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편,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백낙청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북한 내부의 상황에서 본다면 100% 비판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다만 외교적으로 볼 때, 그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가라는 점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백 교수는 일본을 겨냥해 "북한이 핵을 가진다면서 온종일 매스컴에서 집중포화를 쏟고 있는 일본이 자국의 핵무장 논의에 대해서 별 말도 없고 조용한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면서 "한일 양국은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라는 보다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에 대해 오카모토 세카이 편집장, 요시다 교수 등은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는 정말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부시 정권이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이 동북아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가장 급선무"라며 부시정권의 성의있는 해결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 총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비교적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대다수 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경청하는 청중들. ⓒ2006 박철현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 분사론은 가장 위험한 생각"
천황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 전문가인 도쿄대 다카하시 테츠야 교수는 한·일, 중·일 외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요즘 자민당 내부는 물론 야당인 민주당, 한국, 중국의 지식인들도 전범 분사론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A급 전범 분사론은 그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태평양전쟁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A급 전범으로 분류된 영령을 독립된 추도 시설을 지어 그쪽으로 옮기자는 의견이다.
그렇게 된다면 현직 총리도 자유롭게 야스쿠니 신사를 '순수한 순국선열 참배'라는 형식으로 찾을 수 있고, 외교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논의가 되고 있는 분사론 대상은 다들 1928년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 전쟁까지의 전범들인데, 사실 야스쿠니 안에는 그 이전의 식민지 제국주의 확립을 위해 동원되었던 수많은 침략자들은 한 번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태평양전쟁의 총책임자인 쇼와 천황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분사해버리면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격이고 앞으로 천황이 참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분사론에 강력히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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