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홍모인과 일본인

한부울 2018. 10. 24. 20:37

*******************************

홍모인과 일본인

 

글쓴이:한부울


1.서론
2.붉은 머리의 역사
3.현재 붉은 머리 현황
4.고사(古史)에 등장하는 붉은 머리
5.북아메리카대륙의 붉은 머리
6.마무리

 

1.서론

 

늘상 주지하고 경계하는 이야기지만 유럽(Erub)이란 명칭은 근세기에 창조된 역사 프레임에 의한 가짜 틀이다.

먼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유럽역사를 진단을 해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다.

에럽(Ereb)이 아랍(Alab)으로 변했다는 설을 따른다면 유럽(Eurb)은 아랍(Alab)과 동일하다는 주장과 이것은 정확히 역사음모에 의해 분리된 오류의 역사로써 유럽과 아랍은 하나라는 묶음이라는 사실이다.

이 음모세력들은 즉 아랍을 만들고 그 위에 유럽이 올라 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동양사에서 삼한역사 내에 존재한 중국을 빼내면서 삼한역사를 쪼그라들게 만들었고 마찬가지로 삼한역사에서 아랍을 빼내고 그 자리에 아랍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유럽을 창출했다는 이야기다.

즉 삼한을 아랍으로 둔갑시켜 사라지게 만들고 그 위에 유럽역사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창조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포르투갈은 이미 에스파냐왕국에 점령당하여 망해버린 국가이다.

피지배민족 바스크(Vasco)의 귀족출신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설립한 예수회와 패망한 포르투갈은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에스파냐 즉 삼한에게 칼을 겨눈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개체들이 예수회를 앞세워 해양시대를 만들고 식민지제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것이나 또 다른 해양시대를 개척한 국가들이 오늘날 서양사의 주역이라고 하는 역사바탕은 이치적으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물론 본 블로그에서 2012년도에 밝힌 러시아 수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가 주장한 중국(中國)이나 아랍(ALAB)의 역사 모두가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것으로 1534815일에 군인출신 로마 가톨릭 수사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cio de Loyola, Ignatius of Loyola,1491-1556)에 의하여 창설된 예수회의 철저한 기획아래 완성된 음모라 한 사실도 이러한 정황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좀 더 들어가보면 유럽서양문화는 14세기~16세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문과 지식을 부흥하고자 한 르네상스 운동이라 한 사실의 대한 모순이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동양사의 춘추전국시대, 전한과 후한, 위오촉 삼국시대, 오호16국(서진과 동진)시대까지 모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역사와 묶인다.

그들은 비로소 서기 481년 건립된 프랑크왕국으로부터 시작한 역사가 그들의 문화이고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음모의 중심에 있는 예수회의 진면목을 한번보자.

The Jesuits became the shock-troops of the Counter-Reformation, showing remarkable energy and success.

위 영어자료가 말하길 예수회(Society of Jesus)는 대항종교개혁의 돌격대가 되어 주목할만한 성과와 힘을 보여주었다고 되어 있다.

즉 예수회는 처음부터 종교단체가 아닌 하나의 전투조직으로 나타나고 예수회 최고 수장은 전투하는 장군(the general)이라 칭했으며 나폴레옹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예수회는 종교 조직이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라고 한 사실은 기존 역사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시 르네상스문화가 그들에 의해 창출되고 서양사보다 훨씬 선진문화를 구가했던 동양사를 그들이 건너뛰면서 오히려 그리스, 로마가 오리엔탈 선진문화의 바탕임에도 그들 서양세력들이 이 오리엔탈문화를 탈취한 것이다.

또한 중세 시대 석공 길드 조합에서 시작한 비밀 결사대 프리메이슨의 한 엘리트지파이기도한 예수회는 이와같은 전투적 성향과 종교적인 힘을 이용하여 비밀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이러한 종교활동이 카톨릭 자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됨을 알아 교황 클레멘스 14(Papa Clemente XIV 재위: 1769-1774)는 교황 칙령(papal bull)으로 1773년 7월 21일 예수회 자체를 완전 폐지시켰다.

그러나 잔존한 예수회는 1776년 5월 1일에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예수회가 설립한 잉골슈다트 대학(University of Ingolstadt)의 종교법 교수 '아담 바이스하우푸트(Adam Weishaupt)'가 주동이 되어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설립된다.

이 비밀결사대 일루미나티(Illuminati)역시 당시 바이에른의 통치자가 된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Karl Theodor:1743~1799) 봉건주에 의해 불순 단체로 규정되었고 1777년  일루미나티를 포함한 모든 비밀 단체 활동을 금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예수회나 일루미나티를 포함한 그들의 비밀활동이 봉건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란 추측은 당연한 이야기다.

앞서 러시아 수학자 포멘코의 주장대로 생각한다면 중국과 아랍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주체에서 일개 부속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는데 거대한 주체는 물론 세계삼한이다.

세계삼한이 끝내 합체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다.

서양인들의 해양시대를 열었다고 하는 포르투갈의 초기의 모습은 사실상 국가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본 블로그 글 "서양인이 말한 압록강의 위치-미시시피강상류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6"에서 밝혔지만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新羅,B.C57~A.D935) 기간인 A.D930년과 950년 사이에 등장한 것으로 나타나며 오늘날 에스파니야의 핵심왕국이라 할 수 있는 카스티야왕국(Reino de Castilla:1037-1230)의 페르난도1세(Ferdinand I, ?-1065)가 포르투갈세력에게 영토를 그저 주었다고 한 사실과 페르난도는 고려시대의 송조(宋,960-1279) 영종(英宗,재위:1063-1067)과 동일한 계보라고 밝힌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에스파니아를 송나라와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은 남송이 피해 달아난 곳이 바로 여송(呂宋)이었고 이 여송을 스페인이 차지한다는 결과가 있다.
본 블로그 글 "COREA, CORIA, CORREA, KORAI의 실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1"에서 에스파니아(Hispania)는 “CORIA”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에스파니아는 신라(新羅)를 합병한 고려(高麗)라는 사실을 확인케 했다.

온통 삼한역사가 서양사에 흡입되어 잠식된 형태로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다.

포멘코가 음모라고 주장한대로 완성된 것이라면 아랍으로 분류되는 유럽문화를 손에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최소한 19세기 초까지 거주지가 없어 떠돌아다니던 유랑민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는 석공길드가 왜 비밀스러운 것인가를 잠시 살펴보자.

15세기부터 봉건 장원제도의 영주들이나 귀족들을 상대로 희귀한 물품이나 건강식품, 금은보석 따위, 각종 향료들을 수집하여 상업행위를 하던 세력들이며 이들은 최후 흉악한 해적행위를 마다하지 않았고 기존체제에 융합하지 못한체 늘 체제의 엄격한 제재가 미치지 못하는 카리브해 미지의 크고 작은 섬(島嶼)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족속들로써 엄격한 체제입장에서 보았을 때 향상 위험스러운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때문에 그들은 비밀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들도 세력규합이 필요함을 느끼고 15세기에서 16세기에 중상주의에 발맞춰 수공업자나 상인들이 상호 부조와 보호 및 직업상의 권익 증진을 위해 결성하였던 것인 바로 길드(Guild)이다.

이 길드(Guild)는 바로 예수회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발전하며 이것이 다시 일루미나티로 넘어가고 이들이 만든 주식회사가 가지는 권능은 하나의 국가를 초월할 정도였다 하였으니 그들의 초법적인 활동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 길드제도를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매우 뛰어난 제도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상 경쟁이 없는 상품은 발전을 기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특정인을 위한 상업행위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길드 수공업이 아닌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오히려 철저한 품질검사가 필요하여 길드제도의 장점이 필요하겠지만 길드가 가지고 있던 폐쇄성이나 독과점 경영은 매우 상거래 질서를 해치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회사경영의 목적은 한정된 거래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과 자본축적에 있었다면 대량생산의 시장 환경은 가격 경쟁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길드제도는 폐쇄성과 독과점 카르텔의 한계로 인하여 시장경쟁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물론 길드상인들은 폐쇄성과 독과점거래로 당시 엄청난 자본을 축적했고 고리대금업자가 기승을 했다고는 것도 알 수 있다.

프리메이슨의 중세 석공길드 기원설이 내포하는 의미는 상거래에서 이런 비밀스러운 면이 많았으며 비밀조직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서양인들이 득세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고 부르조아를 낳아 프랑스혁명이 발생하도록 한 중상주의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영주들이나 귀족들은 사채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고 끝내 모든 것을 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정한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길드는 비밀을 보장하는 폐쇄성과 독과점적 단합에 의한 구조적 요구는 특징적인 폐단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폐단이 공공연하게 나타나 공존 아니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 의해 19세기부터 길드를 폐지하는 법령(法令)이 제정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지는데 이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폐단을 막고 엄격히 감독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하나의 체제가 요구한 법령으로써 길드상인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길드의 이러한 독점적 폐단은 그 이후 시정되지 않는 체로 주식회사 경영방식까지 옮겨지고 마침내 단합에 의한 불공정 폐단이 극에 이르자 1890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점규제법인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 만들어진다.

그때까지 길드 폐쇄성이 유지되었던 것이며 독점하던 서양인들은 엄청난 이윤과 이득을 취득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식으로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복리의 이식을 취하면서 거대한 자본괴물이 등장하여 급기야 자본으로 해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틀어쥐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역사 변혁을 만들고 변괴가 온천지를 뒤 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비밀스러운 단합이 가능하게 불공정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셔먼법도 소용이 없었고 1902년 이후 7년 동안 43개 독점기업을 제소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1858-1919,재임:1901-1909)'트러스트 파괴자(Trust Buster)'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지만 글쓴이의 판단은 거대한 자본으로 법을 장악할 수 있었다면 제소따위는 그냥 제스처에 불과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트러스트는 신뢰, 신용이란 용어로 쓰이지만 최대의 이윤을 독식하고자 하는 독과점단합의 기업합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자본은 더욱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경제전문가들의 이야기는 16세기~18세기에 접어들어 하나의 체제가 내린 중상주의(mercantilism)정책에 큰 혜택을 입은 상인들이 자본가가 되어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길드의 중요성을 떨어뜨렸다 하고 그래도 잔존한 길드는 계속 주식회사 자본가와 충돌하면서 존립을 과시하고 끝내 도태되었다고 하지만 서양자본가들에게 이 길드정신은 지속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세계사에서 유럽에 대한 우월역사에 대한 틀을 만들고 싶어하던 해양세력들은 이러한 발상으로 출발한 인류이동역사를 다시 창출하였고 그들만의 역사터전을 만들게 되는데 미국 형질인류(形質人類)학자 칼튼 S. (Carleton Stevens Coon:1904-1981)이 대표적이며 유럽대륙을 서양 코카서스(백인)들의 본질적 근원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버젓이 존재한다.

그것은 유럽대륙을 만들고 유럽역사를 등에 업는 기막힌 곡예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그의 주장을 보면 홍적세(Pleistocene)말기에 인간의 다섯 가지 지리적 인종의 분포도에서 몽골인(Mongoloids)과 코카서스(Caucasoids)가 자국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자연스럽게 발생하였고 몽골인들은 유럽으로 더 확장하지 못하고 아시아를 거쳐 아메리카대륙으로 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아시아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로 영역을 확장하였다는 주장을 폈다.

오스트랄로이드인(Australoids)들은 동양구와 오스트레일리아구 사이의 가설적인 경계선인 월러스 라인(Wallace's Line)을 건너 호주와 뉴기니를 점령했다고 정리하였으며 유럽 코카소이드들은 북쪽으로 밀려들었고 그들은 북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인류원인 코이코이인(Khoi-Khoi:Hottentot)과 산인(San:Bushman)인 카포(Capoid)를 몰아내고 케냐(Kenya)의 백인고지(White Highlands)와 탕가니카(Tanganyika)를 점령했다고 말하고 있다.

인류 원인인 본산지 아프리카 북부지역은 유럽인들이 애초부터 점령한 지역임을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되니 지금의 아랍은 고스란히 유럽권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그가 그어놓은 아시아와 유라시아를 경계선을 보더라도 너무 편의적이고 획일적이다.

흑인과 백인은 황인과 다르게 눈두덩이가 움푹 꺼져있으며 몸에 털이 많고, 두상이 장두형(長頭型)이라는 등의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유럽대륙이나 아프리카대륙 북부지역에 존재해야 할 장두형의 백인 미이라가 발견된 곳이 한반도란 사실과 타림지역에서 마찬가지로 백인미이라 발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시아극동인 한반도의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상자형 돌관(石棺)과 인골(人骨), 돌검(磨製石劍)이 출토되었고 이 인골 신장이 174m정도이고 두개골과 쇄골, 상완골 등 모든 부위에서 한국인보다 크고 두개장폭(頭蓋長幅)지수가 66.3으로 한국인이 단두형(短頭型)인데 반해 이 인골은 장두형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획일적인 주장은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코카소이드라고 알려진 스키타이는 삼한역사와 연관이 많다고 알려지는데 스키타이 유물 중에는 신라금관으로 알려지는 1921년에 발견된 금관총 금관(金冠塚 金冠), 1924년에 발견된 금령총 금관(金鈴塚 金冠)이나 고구려 황금관(黃金冠)인 불꽃무늬금관(火焰文金冠)장식과 매우 유사한 양식의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근원적으로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을 선으로 그어놓을 수 없는 선사시대때 인류 이동환경이라는 사실이다.

고인돌의 어원을 돌멘(Dolman)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켈트어(Calt)로 보고 있다.

이 고인돌 역시 한반도 및 극동아시아지역에 무수히 많을 뿐만아니라 영국을 포함한 유럽지역과 북아프리카지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유럽 신석기시대에 고인돌은 전형적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을 유추할 때 유럽과 아시아대륙 전반에 걸쳐 단일 역사장소로써 코카소이드와 몽골로이드가 혼재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합리적인 이야기다.

물론 유럽인들이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지만 백인들 모두가 유럽인이라는 등식은 참으로 서양인들만의 어줍잖은 이야기다.

또한 북유럽대륙에 검은머리의 몽골로이드가 존재했을 것이란 사실 역시 부정키가 어려운 것이며 본 블로그 글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로 본 대한제국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4 "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비달자(大鼻韃子)라고 하는 악라사(鄂羅斯)의 영토가 동서가 3만여 리(), 남북이 2만여 리()라 한 사실과 서쪽 끝에는 서양(西洋)이 접해 있다 한 사실은 오늘날 대서양(大西洋)과 접한 사실과 동일한 것에서도 검은얼굴의 대비달자가 유럽대륙까지 도발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가 힘든다.

그리고 검은 얼굴의 코카서스라고 할 수 있는 이 악라사를 아시아황인종인 몽골인이라 한 사실을 더 하면 대비달자는 얼굴이 검고 코가 높고 성질이 사납다라고 정리되어 있고 몽고인은 일단 광대뼈()가 높다는 것 이외 눈이 푸르고(眼碧) 구레나룻수염()이 붉은()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라고 한 사실과 배척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러할 때 코카소이드를 백인이라고 한정하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우리가 서양인으로 알고 있는 한자 호인(胡人)도 푸른 눈동자(靑眼), 벽안(碧眼)을 가졌다고 알려지고 옛 고려나 조선인에게 호()를 붙이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조선영내(朝鮮領內)에는 수많은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이 모여 합체된 문화를 창출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 많다는 것은 다문화적 환경임을 우리는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악라사(鄂羅斯)의 영토가 17세기~18세기 프랑스인들이 제작한 지도를 보면 모두 타타르(韃靼:Tatar)라 한 사실이 명확히 나타나고 그 뿐만아니라 콜럼버스의 착각지도[콜롬버스의 지리학 개념도]를 보면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도 타타르(Tatar)의 영역임을 알 수가 있다.

더 나아가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방에도 북유럽대륙에 존재했다고 알려지는 바이킹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도 쿤이 그리고 있는 인종지도에서 획일적인 분포도를 고집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유럽대륙을 오마쥐려고 하는 서양인들의 무지한 발상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에서 현재 주장되고 있는 인류이동역사는 아시아대륙에서 북아메리카대륙으로 이동해 들어갔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서부 아프리카대륙에 존재하던 카포이드 인종(Capoid race)이 남아메리카대륙 동부 브라질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한 것으로 이것 역시 불분명한 것은 틀림없고 오히려 서양인들의 개척사에서 보았듯이 근세기에 무자비한 대량학살을 피해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아시아대륙으로 넘어 들어갔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세계삼한역사가 최초 시작된 역사장소가 어딘가에 따라 이 난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보았을 때 의심스러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2차 세계대전(二次世界大戰)이 끝난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전략 정보국(OSS)은 전 세계 도시항공지도를 제작하였고 이 작업에 아서 로빈슨(Arthur H. Robinson:1915-2004)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1938년 위스콘신 대학교-매디슨(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지리학석사학위를 받고 1941년 전략 정보국(OSS)에 합류하여 지도부장을 역임하였으며 로빈슨 투영법(Robinson projection)을 개발하여 1947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전략 정보국에서 실시한 5,000 장의 수작업한 지도 제작을 감독했고 1943년 퀘벡과 카이로에서 열린 연합군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944년에는 미국지도 제작국장을 역임하고 1946년 미국 육군으로부터 훈공장(勳功章:Legion of Merit)을 받았다는 인물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근세기 서양백인우월주의, 서양국수주의자들과 유럽 분리주의자들의 역사분탕질에서 그들만의 역사 새 판짜기가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완성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서양식민주의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저변에는 이와 같은 엉터리 이론과 분탕질들이 모여 유럽사조(思潮)를 만들었고 이것이 버젓하게 세계사(世界史)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이야기라 할 수 있다.

 

2.붉은 머리의 역사

 

위 서론에서 이야기한 짧지 않는 글을 바탕으로 붉은 머리의 역사를 살펴보자.

 

Red hair is a recessive genetic trait caused by a series of mutations in the melanocortin 1 receptor (MC1R), a gene located on chromosome 16. As a recessive trait it must be inherited from both parents to cause the hair to become red. Consequently there are far more people carrying the mutation for red hair than people actually having red hair. In Scotland, approximately 13% of the population are redheads, although 40% carry at least one mutation.

위 영어자료를 보면 붉은 머리카락은 16번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인 멜라노코르틴(melanocortin)1 수용체(MC1R)에서 일련의 돌연변이로 인한 열성유전(recessive genetic)특성이라 하였고 열성 특성으로 머리카락이 빨갛게 되도록 양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 하며 결과적으로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보다 빨간 머리카락에 대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인구의 약 13%가 적색 머리이지만 40%는 적어도 하나의 돌연변이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돌연변이라 함은 사전적 의미가 유전자를 이루는 염기서열의 변화로 유전정보가 변하면서 유전형질이 달라지는 현상이라 하고 있으며 우성이 아닌 열성유전자의 특성이라 하고 있다.

 

The non-tanning skin associated with red hair may have been advantageous in far-northern climates where sunlight is scarce. Studies by Bodmer and Cavalli-Sforza (1976) hypothesized that lighter skin pigmentation prevents rickets in colder climates by encouraging higher levels of vitamin D production and also allows the individual to retain heat better than someone with darker skin.

붉은 머리는 인간에서 가장 희귀한 자연 머리카락으로써 붉은 머리카락과 관련된 비()태닝(non-tanning)피부는 햇빛이 부족한 북부 기후에서 유리했을 수도 있고 1976년 월터 보드머(Walter Bodmer)와 카발리 스포르자(Cavalli-Sforza)의 연구에 따르면 가벼운 피부 착색은 높은 수준의 비타민 D’생산을 장려함으로써 추운 기후에서 구루병(佝僂病:rickets)을 예방하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보다 더 열을 유지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때문에 순수백인들은 북쪽지방을 근거로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동은 대륙을 불문하고 이러한 공식이 성립되어야 하며 유럽대륙북부 뿐만아니라 사실상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방에도 이러한 인종간의 활동이 존재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서의 바이킹 유물 발견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A DNA study has concluded that some Neanderthals also had red hair.

DNA 연구에 따르면 35만년전 유럽대륙에서 나타난 일부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독일 네안데르계곡의 화석 네안데르탈인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의 학설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인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rthalensis)’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지만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DNA(mitochondrial DNA)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붉은 머리를 만드는 페오멜라닌 유전자는 약 2만년전에서 4만년전 사이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로써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유전자 풀(gene pool)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The term redhead has been in use since at least 1510.

붉은 머리(redhead)라는 용어는 16세기초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적어도 부산포, 염포, 내이포 등 삼포(三浦)에서 일본인들에 인해 발생한 폭동인 삼포왜란(三浦倭亂)이 발생하고 포르투갈이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를 점령한 1510년 이후로 사용되어 왔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해양세력들의 부정적인 면과 그들에 의한 활동영역이 평소보다 넓게 퍼져나가는 것을 우려한 결과가 아닌가도 여겨진다.

Both the ancient Greeks and Romans described the Celts as redheads.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모두 켈트족을 붉은 머리라고 묘사했다.

게르만족과 이어지는 켈트족의 삼태극 문양은 그들의 상징성이 있다.

이 삼태극 문양은 삼한과도 관계가 깊은 것인데 기원전 390년에 켈트족(Celts)의 한 갈래라고 하고 골족이라고도 하는 갈리아족 즉 고구려인과 결부되며 그들의 제천사상은 북유럽을 근거로 하고 켈트족(Celts)이 지향하던 다종교, 다신교(多神敎)를 가르키기도 했다는 것은 삼한유민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켈트족은 고구려 백제 유민일 가능성도 있다.

고대 로마제국 갈리아의 원 거주민은 켈트족(Celts, Celtae)으로, 갈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켈타이(Celtae)'를 라틴어식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켈트족에는 과연 붉은 머리만 존재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은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그리스시인 제노파네스(Xenophanes)의 단편(短片)에는 발칸반도의 트라키아 인(Thracians)들을 푸른 눈과 붉은 머리로 묘사하였고 흑해를 거점으로 하던 고대 민족 부디니(Budini)와 훈족의 급습을 받아 4세기에 쇠퇴한 사르마트인(Sarmatians)들은 그리스 작가에 의해 푸른 눈과 붉은 머리를 가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Caucasian Tarim mummies have been found with red hair dating to the 2nd millennium BC.

토카리안(Tocharians)들 사이에서 붉은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는데, 토카리안들은 현재 중국의 북서쪽 지방에 있는 타림분지를 점령하였고 기원전 2천년의 붉은 머리카락의 백인 타림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이는 아시아대륙이라 할지라도 백인이 거주한 사실임을 알 수 있고 한반도 역시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기원전 1만년(萬年)전의 서양인미이라 발견은 유라시아대륙전체에서 혼재된 상태로 서로 인구이동이 가능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그리고 태평양지역에서의 적갈색(Reddish-brown:auburn) 머리카락은 키가 큰 편이고, 밝은 피부색과 직모 또는 곱슬머리가 특징인 일부 폴리네시아 인(Polynesians)들 사이에 일부 부족과 가족군(家族群)사이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며 폴리네시안 문화에서 붉은 머리카락은 전통적으로 고위 조상의 혈통과 통치의 표식으로 간주되어 왔다고 영어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3. 현재 붉은 머리 현황

 

지금까지 붉은 머리의 역사와 근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체적으로 북유럽군과 서게르만민족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현재 붉은 머리는 영국 제도(British Isles)를 중심으로 많이 나타나고 일반적으로 켈트족 국가(Celtic nations), 아일랜드(Ire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Wales), 콘월(Cornwall), 맨 섬(Isle of Man), 프랑스의 브르타뉴 반도(Bretagne)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영국(Britain's)DNA 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 인구의 34.7%가 붉은 머리카락에 대한 대립 유전자를 가졌다고 나타난다.

스코틀랜드(Scotland)는 또한 인구의 약 6%가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영국(Britain's)DNA 연구원 짐 윌슨 박사(Dr. Jim Wilson)2,343명의 표본을 사용한 결과 스코틀랜드에서 6%의 적색 머리카락 발생을 확인했으며, 35%는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Edinburgh)40%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노르웨이 남서부에 금발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머리카락의 발생률이 더 높다는 것은 ‘단일Y 염색체’ ‘하플로그룹(haplogroup) R1b-L21’로 알려진 부계 혈통의 비율이 더 높았다는 것이 최근에 발견되었고 이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켈트족이 바이킹에 의해 노르웨이 남서부로 아마도 노예로 끌려가면서 거기에서 붉은 머리카락의 빈도를 증가 시켰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바이킹의 영향이 유럽북부지역에는 상당히 강하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카잔(Kazan)과 페름(Perm)사이의 러시아 북부 볼가 분지[northern(Volga basin)]에 살고 있는 우랄 릭 부족(Uralic tribe)인 우드무르트(Udmurts)는 붉은 머리카락이 인구의 10% 이상의 많은 유일한 서구(西歐)에 살지 않는 유럽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단일Y 염색체’ ‘하플로그룹(a single Y-chromosomal haplogroup)"R1b"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공통조상을 공유한다고 되어 있으며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 나타나는 “R1b"와 같은 조상으로 사실상 확인할 수가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인 허드슨만(Hudson Bay)지역과 미국북동부에서 현대에 바이킹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붉은 머리 소유자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며 인디언과 프랑스 또는 스코틀랜드 계통의 유럽인 사이에서 생긴 캐나다의 혼혈인 메티스인(metis or Anglo-Métis)이 “R1b"계열이란 사실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The event, known as “Roodharigendag” in Dutch, occurs every September.

지금도 붉은 머리 축제’,네덜란드어로 루드하리겐다그(Roodharigendag)로 알려진 이 행사는 매년 9월에 네덜란드 마을 브레다(Dutch town of Breda)에서 열리며 전 세계 80개국 이상의 붉은 머리 소유자들이 대표로 모여든다.

In an article about International Kiss A Red Day, which is celebrated on January 12, the Telegraph reports that after Britain, countries that beat the global average are Iceland, Norway, Sweden, Finland, Northern France and the Netherlands. Heading south, the redheads become scarcer. In Italy, for example they are just 0.57% of the population.

112일에 열리는 국제 키스 레드 데이(International Kiss A Red Day)에 관한 기사에서, 텔레그래프는 붉은 머리를 가진 영국이외 세계 평균을 넘는 국가들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부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라고 보고했고 유럽 남쪽으로 가면 붉은 머리는 희소해지며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인구의 0.57%에 불과 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였다.

 

 

Belgium, north-western Germany and Jutland, i.e. where the percentage of R1b is the highest, and presumably the first region to be settled by R1b, before blending with the blond-haired R1a and I1 people from Scandinavia and re-expanding south to Germany during the Iron Age, with a considerably lower percentage of R1b and red-hair alleles. Red-haired is therefore most associated with the continental West Germanic peoples, and least with Scandinavians and Germanic tribes that originated in Sweden, like the Goths and the Vandals. This also explains why the Anglo-Saxon settlements on southern England have a higher frequency of redheads than the Scandinavian settlements of northeast England.

벨기에, 북서(北西)독일과 유틀란트 반도는 ‘R1b’의 비율이 가장 높고, 아마도 ‘R1b’에 의해 정착 된 첫 번째 지역이 스칸디나비아이며 이곳 출신의 금발 머리 ‘R1a’‘I1’사람들과 혼합되어 남쪽독일로 확장되기 전까지인 기원전 300년경부터의 철기시대에는 ‘R1b’와 붉은 머리 대립 유전자의 비율이 상당히 낮았다고 한다. 따라서 붉은 머리는 대서양 서부 게르만민족과 가장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동부게르만 반달족(Vandals)과 고트(Goths)같은 스웨덴을 근원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인과 게르만 족은 이와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남부잉글랜드의 앵글로 색슨(Anglo-Saxon)정착촌이 영국 북동부의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n)정착촌보다 더 높은 빈도의 붉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Wales), 콘월(Cornwall), 맨 섬(Isle of Man), 프랑스서부종단의 브르타뉴 반도(Bretagne)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Red hair is also common among Ashkenazi Jews. During the Spanish Inquisition, all those with red hair were identified as Jewish, while Spanish and Italian art, and even the plays of Shakespeare, used the trait to depict Jews.

또한 붉은 머리는 아슈케나즈 유대인(Ashkenazi Jews)에게는 일반적이라 했다. 아슈케나즈유대인이라는 것은 주로 라인란트(Rheinland)에 거주하는 독일유대인(German Jews)을 말한다.

본래 교회법률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카롤링거 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 샤를마뉴(Charlemagne,재위:768~814)가 경영하는 프랑크왕국의 땅으로 돌아온 많은 유대인 상인들은 돈 대출이나 고리 대금을 포함하여 금융 및 상업 분야에서 직업에 종사했다.

유럽 개몽주의에 영향을 받아 유태인해방은 18세기 프랑스혁명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서, 중앙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중세 이후 유대인권리를 제한하던 독특한 옷을 착용하는 것, 특별세금을 내야하고 비유대공동체로부터 고립된 민가에 살아야 하고, 특정직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법들이 모두 폐지되었다고 알려진다.

2차세계대전 당시 8백만이 유럽대륙에 거주했고 그 중 6백만이 학살당했다고 알려진다.

현재 미국의 아슈케나즈유대인은 약 6백만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페인 종교 재판에서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유대인으로 밝혀졌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예술,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유대인을 묘사하였는데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앵글로색슨계와 서부게르만 민족들에게 붉은 머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나 한편으론 붉은 머리가 많다고 하는 현재 네덜란드의 위치가 스웨덴을 포함하는 북 유럽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위치적 불합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며 아마도 네덜란드의 역사위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지역에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이것은 본 블로그 글 "오리엔탈역사문화의 인도(印度)지명이 아메리카에 있어야 할 이유 http://blog.daum.net/han0114/17049532"에서 충분히 밝힌바가 있다..

 

4.고사(古史)에 등장하는 붉은 머리

 

우리 고사(古史)에는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다산시문집(茶山時文集)에 나타나는 붉은 머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북학파라고 알려지는 실학자이며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로 나타나는데 이는 다중(多重)능력자로써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할 것이다.

이 한 사람의 이름 내부에는 또 다른 조선인들이 존재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난해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본다면 다른 조선인이라는 둘레에 서양인도 포함된다는 의미이다.

서교(西敎), 서학(西學)인 천주교(天主敎:Catholic)를 신봉하는 신서파(信西派), 남인(南人)들의 복잡한 혼맥(婚脈)과도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유럽 상인 길드를 지휘하던 거상들의 봉건귀족과의 혼맥(婚脈)과 동일하게 보는 경우가 있다.

1791년 신해진산사건(辛亥珍山事件)과 정조(正祖,1752-1800,재위:1776-1800)가 세상을 떠나자 1801(순조1) 신유박해(辛酉迫害)때 그의 두 형과 함께 경상도(慶尙道) 장기현(長鬐縣)에 유배되었고 곧 이어 발생한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의 여파로 다시 문초를 받고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그해 11월 유배지가 바뀌면서 유배생활을 18년간 하게 된 곳이다.

향상 눅눅하고 끈적끈적하여 장독(瘴毒), 장기(瘴氣)가 늘 창궐하는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장기(瘴氣)는 열대나 아열대 산림의 습하고 더운 공기를 말한다.

그것에 노출 되는 것이 장독(瘴毒)인데 장려(瘴厲)는 전염병 말라리아를 발생시키며 이것은 장기(瘴氣)에 의한다고도 했다.

장기(瘴氣)에 의한 장독이 심해져 열병으로 변하고 그것을 풍토병이라고 하는 것으로써 한반도에서는 당시 기후환경으로 찾을 수 없는 대단히 습한 기후에 따른 부패와 주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복합적인 질병이었다고 하기 때문에 경상도 장기라 하더라도 아열대기후라 할 수 있다.

일본 나가사키(長岐縣)도 장기현 인데 중간 한자가 다르다.

'' 갈림길, 산 이름, 울퉁불퉁하다 뜻이 있고 '' 갈기(말이나 사자 따위의 목덜미에 난 긴 털), 물고기의 등지느러미, 무지개의 구부정한 모양의 의미가 있어 앞에 길 장()자가 붙어 지명의 뜻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앞에 나가사키는 길 장()자가 어울리지 않고 후자의 기에 장()자가 붙어 긴 갈기, 긴 물고기 지느러미, 긴 무지개모양 등으로 지명이 확실하게 각인된다.

나가사키는 일본지명이고 장기는 혹 조선지명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이 문제는 나중에 또 거론할 것이다.

물론 기후상황에서 한반도 지형관계를 여기에 맞추려 하면 안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관료들이 귀양을 가게 되면 장독이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여 염라대왕처럼 여겼다는 기록이 비일비재하다.

기후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는 것인데 이 강진은 장기보다 더 심한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곳임을 알 수가 있으며 이 강진이 그의 외가(外家)가 있는 지역이었고, 외가의 장서량(藏書量)이 상당했기에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알려지며 유배를 마치며 결국 1819년에 목민심서(牧民心書)완성되었다고 한다.

 

[1]다산시문집 5권 시()

산행잡구(山行雜謳) 20. 318일 신유년(辛酉年1801)

瀲灩西池水 넘실넘실 서쪽에 있는 못물 /

無人話種蓮 연을 심자 말하는 자는 없고 /

年年破茅屋 세세 연년 다 깨진 초가집에서 /

但索築隄錢 둑 쌓을 돈만을 챙긴다네 /

 

沙上鮮魚市 모래밭 위는 생선 시장이요 /

橋邊濁酒家 다리 가엔 막걸리 집일러라 /

由來壚上女 언제나 목로집 계집들은 /

紅髮似夷鰕 붉은 머리털이 왜놈 종자 같아 /

 

臨水黃茆屋 물가에 자리 잡은 초가집 /

中棲賣藥翁 그 속에는 약장수 영감이 사는데 /

婆娑數枝柳 한들한들 버드나무 몇 가지가 /

搖作一簾風 바람결에 발처럼 흔들거리네 /

 

[2]다산시문집 5

()

채호는 흉년을 걱정하여 쓴 시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기근이 들어 들에 푸른 싹이라곤 없었으므로 아낙들이 쑥을 캐어다 죽을 쑤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釆蒿閔荒也 未秋而饑 野無靑草 婦人釆蒿爲鬻以當食焉] 기사년(己巳年:1809) 내가 다산의 초당에 있을 때인데, 그 해에 크게 가물어 그 전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을 거쳐 입추(立秋)가 되도록까지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없이 그야말로 적지천리였었다. 6월 초가 되자 유랑민들이 길을 메우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아프고 보기에 처참하여 살고 싶은 의욕이 없을 정도였다. 죄를 짓고 귀양살이 온 이몸으로서는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기에 오매(烏昧)에 관하여 아뢸 길이 없고, 은대(銀臺)의 그림도 바칠 길이 없어 그때그때 본 것들을 시가(詩歌)로 엮어보았는데, 그것은 처량한 쓰르라미나 귀뚜라미가 풀밭에서 슬피 울듯이 그들과 함께 울면서 올바른 이성과 감정으로 천지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오래 써 모은 것이 몇 편 되어 이름하여 전가기사(田家紀事)라고 하였다.

釆蒿釆蒿 다북쑥을 캐고 또 캐지만 /

匪蒿伊莪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로세 /

群行如羊 양떼처럼 떼를 지어 /

遵彼山坡 저 산언덕을 오르네 /

靑裙偊僂 푸른 치마에 구부정한 자세 /

紅髮俄兮 흐트러진 붉은 머리털 /

采蒿何爲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

涕滂沱兮 눈물이 쏟아진다네 /

甁無殘粟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

野無萌芽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

唯蒿生之 다북쑥만이 나서 /

爲毬爲科 무더기를 이뤘기에 /

乾之䕩之 말리고 또 말리고 /

瀹之鹺之 데치고 소금을 쳐 /

我饘我鬻 미음 쑤고 죽 쑤어 먹지 /

庶无他兮 다른 것 아니라네 /

 

[1]번 시()의 배경장소는 경상도 장기현(長鬐)임을 알 수 있고 [2]번 시()는 정약용의 외가가 있는 전라도 강진(康津)임을 알 수가 있다.

[1]산행잡구(山行雜謳) 20. 318일 신유년(辛酉年1801)의 싯귀를 보면 沙上鮮魚市 모래밭 위는 생선 시장이요 / 橋邊濁酒家 다리 가엔 막걸리 집일러라 / 由來壚上女 언제나 목로집 계집들은 / 紅髮似夷鰕 붉은 머리털이 왜놈 종자 같아 /

에서 보면 장기현은 어촌(漁村)임을 알 수 있고 어떤 다리 가엔 막걸리 주막이 있고 널빤지로 좁고 길게 만든 상이 놓인 선술집에서 시중들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들이 꼭 왜놈종자(夷鰕)같다 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장기현에 일본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일까?

나가사키라면 받아들일 것인가.

정약용은 왜놈종자를 이하(夷鰕)라 하였는데 이것은 낮춰부르는 별칭이라 할 때 정식으로 하이蝦夷이며 이 하이는 일본열도(日本列島)의 동북(東北) 지방(地方)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고 일본(日本)에서는 海老, , , ()”라는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에비’(えび)라고 발음(發音)하고, 모두새우라는 의미이며 또한 蝦夷’(하이)에미시’(えみし), ‘에비스’(えびす), ‘에조’(えぞ)라고 발음(發音)하며 야마토(大和)에 의해 이() 민족시 되었던 민족 집단을 일컫는 말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야마토)가 이()민족시 한 새우()종족은 어디에 위치한 민족일까?

하이(蝦夷)의 사람들은 짐승의 털로 옷을 짜입고 생선 기름을 먹는데 수염은 새우 수염처럼 길고, 다니는 데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으며 높은 산을 올라가고 험한 길을 다니는 데는 금수(禽獸)보다 빠르고 물밑으로도 다닐 수 있어 그 용맹스럽고 사납기가 비할 데 없다라고 다산시문집 제22/ 잡평(雜評) 이아정(李雅亭)의 비왜론(備倭論)에 대한 평()에서 말하고 있다.

일본 동북(東北) 지방(地方)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였으니 일본을 카리브해 수많은 도서라고 할 때 새우모양을 한 땅을 찾으면 된다.

바로 그랜드 바하마 아일랜드(Grand Bahama Island)이다.

이곳을 하이도(蝦夷島)라 한 사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조선에 붉은 머리의 일본종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다산시문집만 보면 이곳 일본출신의 붉은 머리 여자들이 장기에 들어와 주막집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2]번 시() 群行如羊 양떼처럼 떼를 지어 / 遵彼山坡 저 산언덕을 오르네 / 靑裙偊僂 푸른 치마에 구부정한 자세 / 紅髮俄兮 흐트러진 붉은 머리털 / 采蒿何爲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 涕滂沱兮 눈물이 쏟아진다네 / 甁無殘粟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 野無萌芽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

 

[2]번 시()의 배경장소가 경상도 장기현에서 유배지 이동으로 인하여 전라도 강진(康津)임을 알 수 있는데 이곳에 붉은 머리를 한 여자들이 쑥을 캐러 산위에 떼를 지어 오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1809년에 가혹한 가뭄이 있어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쑥을 캐러 산위로 오르는 풍경을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다.

이것과 관계가 깊은 글은 최근에 올린 본 블로그 글 "다북쑥과 새발쑥 그리고 대가뭄 http://blog.daum.net/han0114/17050825 " 을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분명 조선(朝鮮)땅 전라도(全羅道)이며 그리고 유배지 강진(康津)임에도 붉은 머리를 한 여자들이 떼를 지어 쑥을 캐러 산위로 오른다는 사실은 퍽 이채롭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번 시 글에서 경상도 장기현에서도 주막집에 붉은 머리의 일본여자들을 확인했고 [2]번글에서는 전라도 강진에서도 붉은 머리의 일본여자들이 쑥을 깨로 떼를 지어 산위로 오르는 풍경을 말하고 있는데 붉은 머리에 여자들이 남부지역에 상당히 많은 수의 일본여자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들은 곧 유랑민(流浪民:nomads)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왜 이 당시에 붉은 머리의 일본여자들이 조선 남부지방에 많았을까?

바로 멕시코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가뭄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조선 삼남지방 즉 하남도에 심각한 가뭄이 지속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다.

 

5.북아메리카대륙의 붉은 머리

 

본 블로그 글 "다북쑥과 새발쑥 그리고 대가뭄 http://blog.daum.net/han0114/17050825 "에서 다산 정약용이 그의 시()에서 말한 붉은 머리 여자들이 조선에 유랑민신세의 왜놈종자 즉 서양일본인이라 한 사실과 그 곳의 위치가 지금의 멕시코 해안과 북부지역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해안은 서양일본인들의 본거지인 카리브해 도서에서 밀려들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이고 그 해안에서 다시 북부지역으로 이동하거나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서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몰려들었을 수 있는 위치이다.
이것은 현재 멕시코 북부지역에 백인서양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통계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한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 붉은 머리(america red hair)의 상징성이라고 한다면 주로 미국초기 대통령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시에 붉은 머리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던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머리가 붉은 색이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숨기려고 흰색가루를 뿌렸다든지 흰색 배리스터 가발(barrister wig)을 사용 했던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역임한 워싱턴도 붉은 머리에 대한 사회편견에 신경이 쓰였던 것이 틀림 없다.

우리 역사에서 붉은 머리나 붉은 털을 가진 서양인을 홍모인(紅毛人)이라 하였는데 주로 네덜란드인을 가리키고 실제로 백과사전에는 홍모인(紅毛人)이란 구체적으로는 네덜란드 인 즉 화란(和蘭)을 가리킨다.’라고 정리되어 있다.

홍모[紅毛]라는 것은 붉은 수염, 붉은 머리카락, 붉은 털 이렇게 불릴 수 있는 명칭인데 조선시대(朝鮮時代)때는 머리털이 붉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서양 사람을 양이(洋夷)라 하는 것도 낮잡아 이르던 말이라고 했다.

서양이라고 하면 지금은 유럽대륙으로 총칭되지만 사실상 조선시대 때 양이란 명칭은 바다의 세력들을 말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양은 대륙이 아니라 물 즉 대양(大洋) 바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붉은 갈색 머리카락은 시리아 인, 레바논 인, 요르단 인, 팔레스타인인 중동사람들 사이에서 흔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의 아랍이란 틀을 씌웠다고 생각해보는 것도 앞의 유럽역사관에 따라 무리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북아메리카대륙 특히 뉴욕에 네덜란드인들이 주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네덜란드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1602-1799)가 매우 정상적인 펙트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거의 이 동인도회사는 서양일본세력들에게 상징적인 것으로써 기존 체제로부터 상당히 제한적으로 통제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며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 그들은 합종연횡(合從連衡)형태를 취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바로 1858년 안세이5개국조약(安政五カ国条約:Ansei Five-Power Treaties)이라는 것이며 이들 세력들은 독립적으로는 힘이 미치지 못하여 연합하는 형태를 취하고 그러한 연합형태의 힘을 빌어 하나의 체제인 대조선(大朝鮮)을 압박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글쓴이는 서양상업무역연합체, 일본무역회사연합체, 동인도회사연합체 등으로 호칭하는 것이다.

초기 해양세력들이 조직한 길드의 확대된 형태를 취한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다.

독일(Prussia)은 고려주체가 운영하는 상업체로 이때쯤 나타나고 그 이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1273-1918)로 나타난다.

대조선(大朝鮮)이 19세기초 브리티시로 나타나는 것과 다르다 할 수 있다.

 

동인도회사가 칙허회사라고 서양자료에는 당당하게 나타난다.

18세기초 그때까지 칙허는 그들이 비밀스럽게 거래하던 귀족이나 봉건주의 칙허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으로는 하나의 체제 영역인 무역거리가 빈번하고 자원이 풍부한 북아메리카대륙을 깃점으로 하는 무역으로부터는 그들의 행동을 자유스럽게 할 수만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바로 대조선은 그들을 감시하고 제재할 수 있었던 강력한 하나의 체제였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칙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때론 궁지에 몰렸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1858년에 그렇게 뭉치고 합체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것을 연합체일본이라 한다.

 

특히 이러한 서양일본인들은 어쨌거나 체제의 엄격한 제재를 피해 북아메리카대륙으로 모여들었고 앵글족,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더치(네덜란드) 사람이 가장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잉글랜드 앨비언(Albion)출신등이 버지니아, 메사추세츠에 많이 모여들었다는 사실도 그기에 더 할 수가 있다.

이들이 모두 서양일본인 즉 일본종자라고 보아야 할 개연성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체제에 반기를 든 그래서 왜놈종자라고 비하하는 종족들은 어떤 것인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지도자들의 붉은 머리 상황이 아래 자료에 나타난다.

Like Britain, America is another place that's had its fair share of red-haired leaders. In fact George Washington, Thomas Jefferson and Andrew Jackson were all red-haired. Even the famed discoverer of the Americas, Christopher Columbus, was a freckle-faced redhead.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붉은 머리의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몫을 차지했던 또 다른 장소라고 한 말은 미국 대통령들이 붉은 머리를 가졌어도 그곳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언질 속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앤드류 잭슨은 모두 붉은 머리였다고 알려진다.

미주 지역의 유명한 발견자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조차도 주근깨가 있는 붉은 머리였다는 사실을 자료는 알리고 있다.

즉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붉은 머리였다는 사실인데 또 다른 사진들은 흰머리색으로 붉은 머리를 감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대혁명가인 반기독교 이신론(理神論)자인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도 붉은 머리임에도 흰 가발을 즐겨사용 했음을 그림으로 알 수가 있다.

조선다능주의학자 다산이 말한 것처럼 그 만큼 어느시대에는 자신들의 붉은 머리가 부자유스럽게 그 사회가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며 그들 서양인들 사이에도 붉은 머리는 영혼이 없어서 불길하다는 미신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As a young man Washington had red hair. This fact often gets overlooked as he also used to powder his hair white, giving him the iconic look that we still associate with him today. His red hair seems to have been forgotten even by earlier historians, as I discovered from the following article, published in the New York Times in 1922. It stated:"Albert Bushnell Hart, Professor of Government at Harvard University, addressing a Washington's Birthday celebration here today, declared that the firs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ad red hair. "Although it has been ignored by posterity," he said, "Washington had red hair, covered by his wig"."

젊은 시절 조지 워싱턴은 빨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종종 그가 머리카락을 흰색으로 만들었던 것을 간과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와 연관된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922뉴욕 타임스에 실린 다음 기사에서 내가 발견한 것처럼, 그의 붉은 머리는 초기 역사학자들에 의해서도 잊혀진 것 같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버드 대학의 앨버트 부쉬 넬 하트 교수는 오늘 워싱턴의 생일 축하 행사에 참석하여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선언했다. "후세에 무시되었지만 워싱턴은 가발로 덮인 빨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Incidentally, I also came across a similar New York Times article, only this time about Robespierre. It stated that he had "blue eyes, carnation lips, and light chestnut hair." If this was the case it's interesting to note that Washington, Cromwell and Robespierre - the three respective leaders of the revolutions in England, France and America, were all owners of copper-coloured locks. The colour of revolution it would seem.

게다가 나는 프랑스 혁명의 주요인물 급진적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관한 비슷한 뉴욕타임스기사도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푸른 눈, 카네이션(담홍색)입술, 가벼운 밤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국, 프랑스, 미국의 혁명 지도자 3명인 워싱턴, 크롬웰, 로베스피에르가 모두 구리 색 자물쇠소유자 이었음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붉은 색은 혁명의 색깔인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Andrew Jackson was the seven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was nicknamed "Old Hickory." He was tall, with penetrating blue eyes and a shock of unruly red hair. He is now probably most famous for his opposition to the National Bank, believing it to increase the fortunes of an "elite circle" at the expense of the rest of the country.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7대 대통령이었고 "완고한 늙은이"라는 별명을 붙어있다. 그는 키가 크고 푸른 눈과 헝클어진 붉은 머리가 충격적이다. 그는 현재 국립은행에 대한 반대로 가장 유명하며 나머지 국가를 희생시키면서 "엘리트 서클"의 명운(命運)을 증가 시킨다고 믿고 있다.

Martin Van Buren was the 8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e was only five and a half feet tall and had red hair and red sideburns. He was nicknamed "the Little Magician" and "the Red Fox of Kinderhook," partly because of his appearance and partly because of his political astuteness. However, he is probably more famous today for the Van Buren Boys episode of Seinfeld than he is for his time in office.

밴 뷰렌은 미국의 8대 대통령이었다. 키는 겨우 5.5피트(1.67m)밖에 되지 않았고 빨간 머리에 빨간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작은 마술사""킨더 후크의 붉은 여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분적으로는 그의 외모와 정치적 기민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사인필드의 반뷰렌소년(Van Buren Boys)에피소드에서 오늘 더 유명해 질 것이다.

Thomas Jefferson: In my opinion America's greatest president. Thomas Jefferson was pretty much the architect of modern America and served as President from 1801 to 1809. He also drafted the Americ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He was apparently very tall and bony in appearance and had red hair and a sprightly step. He also had a penchant for wearing red breeches, which were often ridiculed by his political opponents.

내 생각에는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3대 토머스 제퍼슨은 현대 미국의 건축가였으며 1801 년부터 1809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그는 또한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다. 그는 외모가 매우 크고 뼈대가 있었고 붉은 머리카락과 활기찬 발걸음을 가졌다. 그는 또한 종종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조롱당하는 빨간 바지를 입는 경향이 있다.

The discourse also contained some interesting information regarding the frequency of red hair in Virginia during the days of Jefferson."Red hair was another peculiarity of the Virginians. one who saw the Virginia troops pass through Petersburg on their way to join the army of Greene, told my informant that two-thirds of the officers had red hair. Jefferson, Campbell, the hero of King's Mountain, Arthur Campbell, John Taylor of Caroline, many of the valiant race of Green, had red hair."

담화에는 제퍼슨 시대의 버지니아에서 붉은 머리카락의 빈도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빨간 머리카락은 버지니아 인의 또 다른 특색이었다. 버지니아 군대가 피터즈버그(Petersburg)를 지나 그린의 군대에 합류하는 것을 보았던 사람은 내 정보원에게 경찰의 3 분의 2가 빨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퍼슨, 캠벨, 킹스 마운틴(King 's Mountain), 아서 캠벨(Arthur Campbell), 캐롤라인(Caroline)의 존 테일러(John Taylor), 그린의 용감한 인종 중 다수는 빨간 머리카락을 가졌다.

 

위 내용들은 전부 북아메리카대륙 유명인들의 붉은 머리 현황을 영어자료로 살펴보았다.

아니 북아메리카대륙이라기 보다 왜놈종자라고 하는 서양일본인들에게 나타나는 현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독립전쟁 이후 초기의 미국대통령의 약력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것이 많다.
지금이야 인권문제가 있어 그렇지 못하지만 조선시대 고서만 보아도 서양인을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았고 특히 홍모인이라 하여 매우 멸시하였으며 다산의 시문집에서만 보더라도 왜놈종자라 하여 멸시하였다.

이러한 차별은 서양인들의 극한 대립관이나 필요이상으로 적대시하며 반체제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은 조선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범 세계적인 경향으로 풀어 볼 수 있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인들이 서양인을 양이라 하거나 왜놈종자라 한 것은 당시 조선사회에서 어쨌든 붉은 머리칼을 한사람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우리나라 고서내용 뿐만아니라 서양인 백인들도 붉은 머리와 주근깨를 가진 사람을 생강이름인 진저(Ginger)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서양인간에도 이처럼 비하한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붉은 계통의 머리 소유자들의 통계를 보면 아일랜드인들이 많고 그 다음은 스코틀랜드이다.
그리고 미국의 버지니아주에는 상당히 많은 붉은 머리 소유자가 있었고 지금도 그 수가 미국 50개주에서 최고의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높았다고 판단되는 미국대통령 중에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1732 ~1799)은 놀랍게도 버지니아 웨스트모어랜드 출신으로 붉은 머리 소유자로 밝혀져 버지니아에는 붉은 머리가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대 존 애덤스(John Adams:1735~1826)는 붉은 머리는 아니지만 매사추세츠 만 브레인트리 출신으로 나타나고 3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1743~1826)은 버지니아주 구치랜드 카운티 출신으로 붉은 머리 소유자이다. 

4대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1751-1836)도 붉은 머리는 아니지만 버지니아 식민지 포트 콘웨이 출신이며 5대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1831)역시 버지니아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 출신으로 나타나 초기의 대통령 거의가 버지니아출신으로 나타난다.
6대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1767~1848)는 2대 애덤스와 마찬가지로 매사추세츠 만 퀸시 출신이고 7대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1767~1845) 역시 붉은 머리 소유자로써 스코틀랜드 장로교 이민자인 앤드루 잭슨 시니어와 엘리자베스 허친슨 잭슨 부부 사이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웩스호스 태어났고 그의 부모가 켈트족 아일랜드에서 이민자 출신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붉은 머리가 많이 나타난다는 켈트족이다.

특이한 것은 미국 8대 대통령인 첫 네덜란드(Dutch)계인,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1782~1862)은 1631년 북미에 와서 맨하탄 섬의 땅을 구입한 네덜란드(Dutch)부말센 마을의 코넬리스 마센(Cornelis Maessen)의 후손이다.

그의 어머니도 네덜란드(Dutch)출신이며 요하네스 반 알렌의 미망인인 마리아 호스라 알려졌다.

그는 어릴 때부터 네덜란드어를 사용했고 대통령이 되었어도 네덜란드어를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네덜란드인들이 차지한 뉴네덜란드(New Netherland)는 코네티컷(Connecticut), 뉴욕(New York), 뉴저지(New Jersey), 델라웨어(Delaware)주를 포함한 1600년대 초반 네덜란드 식민지로 알려지고 1648년 2천명에서 1660년 1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정착자의 절반 만이 네덜란드인들이지만 다른 절반은 주로 벨기에어를 사용하는 왈롱인(Wallonne)들과 프랑스 위그노(Huguenot)들이었다고 알져진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같은 언어군이다.

 

본 블로그 글 "루스벨트가와의 역사적 악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78 "에서 밝힌 사실들이지만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뉴암스테르담의 지주 클라에스 판 로센펠트(Klaes van Rosenvelt)손자였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어머니가 바로 위그노신자이다.
네덜란드인들은 미국독립전쟁으로부터 미국역사에 깊이 개입한 사실과 역대대통령들이 네덜란드계로 나타나는 것도 역사친밀성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네덜란드가 일본이라고 한다면 미국역시 이 범주에 넣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북아메리카대륙 붉은 머리 분포지도(North American Reddish distribution map)

 

애팔래치아의 스카치 아일랜드인(The scotch Irish of the Appalachian)

 

6.마무리

 

북아메리카대륙 붉은 머리 분포지도(North American Reddish distribution map)에 보듯이 진 빨강 표식이 되어 있는  켄터키와 버지니아경계와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 경계, 조지아북부경계 등 비율이 10~15% 가장 높게 나타나며 이것은 아래 애팔래치아의 스카치 아일래드인의 이동경로도에 나타나듯이 이들의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특히 북아메리카대륙 동남부전체와 텍사스동북부, 오클라호마, 아칸소,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앨라배마, 조지아, 플로리다 북부지방,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캔터키, 테네시, 미주리·일리노이·인디아나·오하이오 남부 등 약 5~10%의 비율로 나타난다.

 

그리고 바이킹 유물이 발견된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지역인 온타리오, 퀘벡남부,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과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 까지 넓게 분포지역으로 나타난다.

캐나다 서부지역인 브리티시컬럼비아, 알버타, 그리고 워싱턴 동부, 아이아도, 몬타나서부, 오레콘동남부, 네바다, 캘리포니아북부, 아리조나서북부, 유타 서남부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북아메리카대륙을 대상으로 붉은 머리의 분포지가 어떻게 포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본 블로그 글 "여진어와 영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6"에서 밝혀 본 것으로써 동양사의 여진족이었던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 서게르만어군의 앵글로프리지아어(Anglo-Frisian languages)계통도 내에 포함되는 언어군을 붉은 머리 군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네덜란드어가 서(西)게르만어군의 북부 플랑드르(Flandre)으로 분류되는 것과 고대영어가 서(西)게르만어군의 앵글프리지아어족(Anglo-Frisian)로 구분되는 것에서 붉은 머리는 대서양 서부 게르만민족과 가장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위 자료를 인용하더라도 조사의 신빙성은 높게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중엽에 중국 청나라가 여진어(女眞語)를 청학(淸學:滿洲語學)으로 개칭 고쳐 불렀다는 것도 같은 시기 조선에서 실학파로 분류된 북학파(北學派)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글쓴이는 북학파의 핵심적인 것이 선진문물과 고급기술이라 할 때 분명 이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문제이며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 산업발전이 크게 나타난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으로 북학파의 실체를 보면 당시 한양의 상공업 발전과 직간접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 주로 상품의 유통이나 생산수단의 발전을 주장한 학파인데 중상학파(重商學派)라 하고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등은 상업을 영위하던 지식자들이다.

때문에 북학파들은 상당히 선진문물과 고급기술에 흠취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북학의[北學議]를 쓴 박제가가 정조2년(1778)에 사은사 채제공을 동행하여 이덕무와 함께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편찬한 책인데 농사, 누에치기, 가축 기르기, 성곽 축조, 집 짓기, 배와 수레 제작부터 기와, 인장, 붓, 자를 제작하는 방법을 일일이 적어 참고하도록 하였는데 사실상 이렇게 기술이 진보되었다고 하는 청나라는 1910년에 허망하게 망하고 오히려 서양산업혁명과 자본의 중심이라고 하는 미국과 영국은 번창하여 오늘날 선진국으로 군림하는 것 자체가 북학파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동아시아역사와 한반도 역사가 주장하는 역사 사실은 이치적으로 맞아드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정말 황당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나라가 여진어를 청학(淸學)이라고 개칭한 것이나 한반도 조선사에서 청나라를 북청(北淸)이라 하여 북학이라 한 것은 영어권의 학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만약 여진어(女眞語)가 고대 영어라고 하고 청학(淸學) 역시 영문학이라면 북학파가 주장한 북학(北學)은 미국영국이 가지는 선진기술이며 즉 서양학(西洋學)이라 볼 수 있고 서교(西敎)가 서학(西學)이라고 칭했다면 바로 천주교(天主敎)와 연결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다산(茶山)이 서교(西敎)와 관계가 있어 유배를 당한 것처럼 서학과  친밀했었다는 반증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조선시대 유형원(柳馨遠:1622-1673), 이익(李瀷:1681-1763)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했고 북학파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실용지학(實用之學)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실학을 집대성했다 하였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 함은 사전적 의미가 풍요로운 경제와 행복한 의·식·주 생활을 뜻하는 용어라 하였는데 이것은 서양실증생활과학과 경공업발달입문기술서 정도로 취급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본 블로그 글 "소화기와 자명종(問辰鍾:鬧鐘)으로 본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818"에서 왜 조선과 서양국은 서로 과학 기술을 공유하며 공생공존하려 했을까? 하는 질문에 하나의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고 조선 영역내 서쪽에 있는 도시에 사는 서양인들이라고 할 때 그들의 소속은 하나의 체제속에 존재해야 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으며 그들의 기술이 앞섰다면 조선에서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하고 그것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하였고 당시 조선은 많은 문물을 공개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 체제였으며 상대적으로도 공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기술을 공급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하였다.

 

때문에 산업혁명이후 서양인들이 보유한 기술선진문물을 습득하려고 노력한 조선시대의 실학전체를 다시 규명해야 할 문제가 대두된다.

 

비록 서양인들이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과거 못된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왜놈종자란 이미지는 조선인들에게 깊이 새겨진 주홍글씨와 같은 것이 아니었겠는가 한다.

결국 현재까지 나타난 것에서 볼 때 거의 조선시대 사람들이 양이(洋夷)라 하거나 홍모인(紅毛人) 그리고 왜놈종자라고 한 것 전부 붉은머리와 관계되고 조선시대에서 가장 경계하는 종족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는 사실이다.

 

본 블로그 글 "버지니아(Virginia)와 경주(동경)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5"에서 밝혔듯이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1540-1596)를 한반도사 임진왜란에 등장하는 가공인물 풍신수길(豊臣秀吉:1537-1598)이라 한 것은 왜놈종자로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역시 붉은 머리의 소유자이다.

또한 해적왕 드레이크를 물신양면으로 지원했다고 하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1세((Elizabeth I, 1533-1603,재위:1558-1603)가 위 그림에도 알 수 있듯이 붉은 머리의 소유자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늘 임진왜란을 판단할 때 왜란은 조선내 체제속에서 발생한 내란이라는 역사사실은 그들도 조선인체제속에 한 구성원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조선에 대항하는 붉은 머리의 소유자들이 이와같은 반체제 성향이 짙은 종족이었다고 한다면 잉글랜드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오늘날 국가로 인식되고 있지만 대조선 내에 속한 역사 개체로써 조선체제 하에 존재했던 세력임을 알 수가 있다.

이들 속에 붉은 머리는 아슈케나즈 유대인(Ashkenazi Jews)같은 종족, 비밀리 상거래를 하는 길드 조직체 일원이나, 사채고리대금업자이거나 주식회사를 가지고 있던 부르주아(bourgeois)이거나 모두가 조선체제 속에서의 서양일본세력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붉은 머리 소유자들이 오늘날 버지니아에 많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와 맞물려 있음이 틀림없고 남아메리카대륙 북동부지역을 거점으로 한 엘비언(Albion)들의 최종 정착지가 바로 버지니아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파악이 실증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또한 근대사적으로 보면 러시아(Russia)는 루시(Rusi)를 바탕으로 하는 명칭이라 하지만 일본이 말하고 있는 로서아(露西亞)가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에서의 "Russo"라 한 것은 본 블로그 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4"에서 말했듯이 Russo is an Italian surname meaning red-haired. Another variant is Rossi (Central and Northern Italy). It is derived from the nickname "rosso", meaning red, 루소(Russo)는 붉은 의미가 강하고 또는 붉은 머리를 가진 이탈리아인의 고유 별명(surname)이라 하였으며 러시아공국(Russian Principalities)을 설립한 바이킹족인 고대스칸디나비아인의 노를 젓는 사람들(the men who row)이라고 하여 해양세력임을 나타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고대 시칠리아의 귀족 별칭이라는 사실과 붉은 머리, 붉은 상징성이 해양세력과 도 정확히 연계되고 있음도 알 수 있고 본 블로그 글 "1차 려몽 일본원정으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0"에서 쿠바와 시칠리아가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는데 이 또한 해양세력들이 활동한 지역과 일치하고 있다.


끝으로 흥미로운 것은 지난 역사에서 기존체제를 부정하던 세력들은 전부 붉은 머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리티시에게 반란을 도모한 미국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그렇고, 잉글랜드 찰스1세(Charles I)에게 반기를 든 크롬웰이 붉은 머리이고, 프랑스 루이16세(Louis XVI)에게 반란을 도모하고 처형장으로 내몬 로베스피에르 역시 붉은 머리 소유자로 밝혀졌다.
그리고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신대륙이라 하면서 원주민들을 집단 학살 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붉은 머리이다.

해적왕 드레이크도 붉은 머리이다.

적어도 글쓴이는 미국독립과 당시 국가설립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한 미국역사에서 초기의 미국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모두가 거의 붉은 머리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도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란, 저항의 유전자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은 너무 잔혹했다.

머리가 붉다는 편견이 아니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본 상징성 때문이다.
기존체제역사와 정반대 쪽에 있었던 모든 체제 반란인들은 흥미롭게도 붉은 머리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부스러져 먼지처럼 사라진 역사를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 수많은 자국을 찾아 헤메고 있을 뿐이다.

근세기 이전 하나의 체제에 불만을 가지거나 반란을 도모하고 급기야 행동으로 옮긴 붉은 머리 서양인들은 오늘날 신대륙 문명을 만들었고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이어받은 우월한 유럽인되어 버렸다.

다산이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서양인들을 왜놈종자라고 한 엄중한 부르짖음은 지금도 가슴을 치는 듯하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