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철도 궤로 보는 북미삼한역사

한부울 2015. 6. 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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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궤(車軌)로 보는 러시아와 인도

 

글쓴이:한부울

 

1).척(尺)은 피트(feet)이다.
2).협궤(잉글랜드, 네덜란드, 일본)
3).러시아궤(1520 mm) 정체
4).러시아의 노농해방령과 미국의 노예해방선언은 같은 것이다.
5).인도궤(1676 mm)의 정체

 

척(尺)은 피트(feet)이다.

 

한국고전용어사전을 보면 궤()는 수레 바퀴와 바퀴 사이의 너비를 말하고 또는 도로의 너비를 일곱 대의 수레, 혹은 아홉대의 수레가 다닐 수 있게 만들던 제도라고 하였으며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궤는 수레 바퀴 사이의 너비를 말하는데, 승거(乘車)66, 옆으로 7촌을 각각 더하여 모두 8척이다.” 하였다고 적혀있다.

수레 바퀴와 바퀴 사이의 거리를 1()라 하는 것이다.

 

태종 15년 을미(1415,영락 13) 87(신미) 한성부에서 도로의 제도를 상언하여, 마땅한 것을 헤아려 시행하라고 명하다

漢城府上道路之制上言: “國中道路, 古有九軌七軌之說, 今無定制, 路傍居民不無侵削乞令禮曹稽古酌宜, 以定廣狹, 且川溝兩岸日縮, 倂令定制又開城下內外之途, 使掌城官吏巡察, 城郭頹處, 隨卽補缺命量宜施行

한성부(漢城府)에서 도로(道路)의 제도를 올리었다. 상언(上言)하기를,

나라 안의 도로가 예전에는 9()·7()의 설()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한 제도가 없어 길 옆에 사는 백성들이 침삭(侵削)함이 없지 않으니, 빌건대, 예조로 하여금 옛것을 상고하고 마땅한 것을 참작하여 넓고 좁은 것을 정하고, 또 개천 양쪽 언덕이 날로 줄어드니 아울러 제도를 정하게 하고, 또 성 아래 안팎의 길을 열고 성을 맡은 관리로 하여금 성곽의 무너진 곳을 순찰하여 그때 즉시 이지러진 곳을 보수하게 하소서.”하니, 마땅한 것을 헤아려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위 조선왕조실록 태종15(1415)기사를 보면 9()·7()가 나타나는데 승거(乘車)66촌 양쪽 7촌이 보태어 8척이라 하였으니 길이의 단위 척(=)은 30.30303 cm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수레의 넓이가 각 2.42m 이다.

놀랍게도 동양길이단위와 서양길이단위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여기서 알 수 있는데 1피트(feet=)30.48cm 이듯이 1 (=)30.30303 cm 라는 것을 알 수 있어 피트(feet)와 척()의 차이가 소수점에서 0.18cm정도차이가 날뿐 정수까지 계산한다면 거의 차이가 없는 단위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동양에서 사용한 척이 서양인들에 의해 피트로 불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사서기록에서 9()·7()라 하였으니 한대 마차길이가 약 2.42m 짜리의 승거 즉 수레가 7대나 9대가 동시에 나닐 수 있는 도로라고 하면 거의 16.94m~21.78m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대로(大路)의 너비는 56(17.48m)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보다 더 좁거나 더 넓은 도로를 이미 태종때(1415)부터 대로 넓이로 정해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궤란 용어는 과거 조선시대의 수레가 다니는 도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근세기에 들어 증기기관차 발명에 의해 철도가 생기면서부터 철로의 레일을 궤(:rail)라 한 것이다.

이 레일의 어원이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reille 'iron rod', from Latin regula 'straight stick, rule'.라틴어로 규칙(REGULA), 쇠막대'iron rod' 또는 단장, 지팡이등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철도역사는 1825년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부설되기 시작되었다.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1781-1848)이 손수 제작한 화물 전용 증기기관차 로코모션호(Locomotion)가 약 40km 구간을 시속 7-13km로 달리게 하면서부터 그의 아들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phenson:1803-1859)1830915일에 로켓호(Rocket)에 승객 36명을 태우고 항구도시 리버풀과 면화도시 맨체스터 사이 50km를 시속 46.8km로 달리게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동시에 1830년 미국에서도 뉴욕출신의 기술자이자 사업가였던 피터 쿠퍼(Peter Cooper:1791-1883)가 잡동사니 부품을 활용해 톰 섬(Tom Thumb)이라는 운송기관을 개발하여 볼티모어-오하이오 구간을 시속 28.8km로 달리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은 스티븐슨가와 불과 5년차이가 나지만 이를 다르다고 할 이유가 부족하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이때 영국이라 함은 잉글랜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브리티시라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러한 철도의 부설로 인해 당시 미국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1767-1845)은 1829년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마차로 한 달 동안 달려야 했던 테네시 내쉬빌(Nashville)에서 워싱턴(Washington,D.C)구간을 1860년대엔 철도로 단 3일이면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개벽(開闢)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067 mm(3 ft 6 in)케이프궤(협궤)
1,435 mm(4 ft 8 1⁄2 in)(표준궤)
1,524 mm(5 ft)러시아궤(광궤)
1,676 mm(5 ft 6 in)인도궤(광궤)

 

철로의 궤에서 궤간(軌間:rail gauge)에 따른 분류가 있다.

레일의 간격을 기준으로 크기에 따른 분류하는 것으로 보통 쌍궤철도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그 간격의 측정은 양 레일의 상부 안쪽의 거리로 하면서 광궤(廣軌표준궤(標準軌협궤(狹軌)3가지가 있다.

이것은 영국의 최초 철도가 채용한 궤간 “1435mm”이라 하여 이것을 표준궤라고 부르고 이 표준궤 보다 넓은 것을 광궤(廣軌:wide gauge), 좁은 것을 협궤(狹軌:narrow gauge)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모든 산업문명을 영국이라 칭하고 이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체제에서 일어날 이야기임이 틀림없는데 현재 잉글랜드라고 현대 모든 기록에서 말 하지만 이것은 근대사가 모호한 만큼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이를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국(英國)이라고 칭하는 동양명칭에는 잉글랜드(England) 말고 스코틀랜드(Scotland)가 있고 또한 웨일스(Wales), 아일랜드(Irish)가 있기때문이며 이와같은 복합적인 것은 대조선 순조재위 시작년도 1800년부터 크게 역사성이 일치하는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또는 그레이트 스테이트 또는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1800-1922)라 하기 때문이다.

본 블로그 글 "버지니아(Virginia)와 경주(동경)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5"에서 언급하였듯이 잉글랜드(England)의 별칭은 앨비언(Albion)으로 하고 이 앨비언은 남아메리카대륙 동부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며 또한 스스로도 영국이란 주권 국가의 명칭에 잉글랜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 전체를 영국(英國)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적잖은 혼란을 제공하기 때문에 정확할 수가 없다.

산업혁명이후 모든 국가수식어에 영국이라 칭하는 것은 다분히 하나의 체제에서 불려진 상징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협궤(잉글랜드, 네덜란드, 일본)

 

궤간 분류의 3가지 궤간의 명칭에서 제일 간격이 좁다고 볼 수 있는 협궤부터 그 역사성과 함께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협궤는 근대사를 만들면서 가장 유용하게 쓰였던 궤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협궤(狹軌:narrow gauge)는 부설의 용이성과 저렴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장점으로 하는 것은 위 주장을 뒤받침하는 것이고 차량규모가 작고 간단한 철도 경편철도용 또는 옛 식민지지역 또는 교통량이 한산한 구간, 산악 등 지형이 열악한 구간의 철도 부설에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새롭게 생성된 국가들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유럽제국, 한반도, 신중국, 일본열도 그리고 사할린과 특히 근대사와 맞춰 꾸며야 하는 모든 곳에서 이 협궤가 필요했다는 것이며 특히 유럽대륙의 스위스, 프랑스, 독일등에서 넓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것들이 현대에 들어서면서 전부 표준궤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또한 그 기록들을 일일이 찾아 보면 분명 이와같은 원칙이 숨어 있을 것이란 판단하는 것이다.

협궤의 편이성은 급격한 선형(굽어지는 지형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노반축조에 적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며 산악 구간과 같은 지형적인 조건이 열악한 경우, 또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노선의 경우에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자료에 나타난다.

운송수단이라고 할 수 있게지만 첫째 시공 또는 부설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는 것은 글쓴이가 보는 역사추이이다.

 

 

위는 이러한 궤간 세계분류표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나 유럽제국들이 손을 뻗친 곳은 전부 이 협궤들이 부설되었음을 알 수가 있으며 이것의 좁은 것은 597~610mm군과, 750~800mm, 891~914mm군이 있으며 대표적인 협궤간으로는 1067mm(케이프 궤간), 1372mm(스코틀랜드궤간), 1000mm(미터 궤간), 891mm, 763mm, 610mm 등이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브라질은 초기의 협궤 미터궤(1,000mm)를 따라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가 부설한 곳은 전부 협궤이다.

지금까지 표준궤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협궤를 고집하는 곳을 보면 600mm의 벨리즈, 니카라과, 프랑스령 기아나, 그리고 카리브해도서들이 거의가 이 궤이며 아프리카의 서사하라, 세네갈, 기니비사우, 니제르,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 중동의 에멘과 오만정도, 동남아시아의 파푸아뉴기니, 북유럽에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가 있다.

914-950mm의 과테말라, 엘살바드로, 콜롬비아, 아프리가의 에리트레아, 네팔이다.

1000mm(미터 궤간)은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볼리비아, 수리남이며 아프리카의 세네갈, 기니, 말리, 브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토고, 베냉, 카메룬, 이디오피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까지 이다.

그리고 일본과 호주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1067mm(케이프 궤간)를 보면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 코스타리가(1868), 남아메리카대륙의 에콰도르이고 아프리카의 수단, 남수단, 나이지리아, 가나, 시에라리온, 콩고, 앙골라,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잠비아,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1873),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일본(1872)이며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이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거의가 낙후된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볼 때 미국과 영국 즉 자본제국들이 의도적으로 근대사를 꾸미면서 부랴부랴 철도를 부설한 곳임을 알 수 있는데 네덜란드의 영원한 식민지라고 하는 인도네시아가 그곳에 들어가며 필리핀과 대만이 함께 들어가 있고 호주는 현재 표준궤로 대체되었지만 이 협궤가 역사에 남아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특히 이 케이프(1067mm:Cape)궤간의 역사를 보면 1795년 영국과 웨일스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1862년 노르웨이, 1865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의 주 퀸즐랜드(Queensland), 1868년 코스타리카,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1872년에 영국기술자에 의해 일본철도가 놓였고, 1873년에 남아프리카 케이프식민지(Cape Colony)에 세워졌다라고 자료에 적혀있다.

세계적으로 112,000km가 부설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며 22,301km이고 그 다음이 바로 호주로서 15,160km 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국을 대신한 일본과 호주에서 이 케이프궤가 많다는 것은 근대사의 또 다른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를 그만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일본냄새가 난다고 할 수 있는 곳으로 1890년에 이 케이프궤간으로 부설된 뉴브런즈윅주(New Brunswick)가 있다는 것은 일본이 잉글랜드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중국의 남만주철도를 보면 처음 러시아의 광궤(1520mm)로 부설되었으나 러일전쟁에 의해 일본에 의해 다시 케이프궤간(1067mm) 재부설했다는 것이다.

동청철로(東清鐵路:Chinese Eastern Railway)가 그것이다.

그 외 에스토니아, 아이티, 홍콩아일랜드, 영국 잉글랜드(England)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아이리시해() 중앙에 있는 맨 섬(Isle of Man), 네덜란드, 노르웨이, 파나마공화국, 사할린, 스와질랜드, 스웨덴, 터어키, 베네수엘라(현재표준궤)까지이다.

이것에서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가 맞아 떨어지며 의도적으로 부설했다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미국을 보면 캘리포니아(California), 덴버 트램웨이(Denver Tramway)의 콜로라도(Colorado), 메인(Maine)주의 뉴브런즈윅(New Brunswick), 네브래스카(Nebraska)의 커빙톤 콜럼버스 검은언덕철로(Covington, Columbus and Black Hills Railroad), 뉴저지(New Jersey), 뉴욕(New York)의 펠햄 공원 도시섬 철도(Pelham Park and City Island Railway), 오리건(Oregon),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들은 상당히 일제 냄새가 나는 곳이다.

캘리포니아(California)에는 현재 거의가 사라지고 없지만 1901년부터 운영한 로스엔젤레스전철(Los Angeles Electric Railway), 189374일에 오픈한 마운트 로우 레일웨이(Mount Lowe Railway), 오렌지 엠파이어 철도박물관(Orange Empire Railway Museum), 태평양전철(Pacific Electric), 포웨이미드랜드철도(PowayMidland Railroad), 샌디에이고전철(San Diego Electric Railway), 샌프란시스코 시영 철도(San Francisco Municipal Railway)등은 케이프궤를 처음적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1899년에 개통한 경전전차(京電電車)라고 한 노선 40.6km의 서울전차, 그리고 1916년부터 영업을 개시한 남전(南電)이라고도 한 21.7km의 노선을 부설한 부산전차(釜山電車), 1927년부터 점차부설한 13.5km 노선의 경성궤도(京城軌道), 19265월에 부설한 6.1km 함평궤도(咸平軌道)등과 함께 나타나 이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대상이다.

 

러시아궤(1520 mm) 정체

 

표준궤라는 것은 이를 덮기위한 것으로 흥미가 없으니 넘어가고 이제부터 광궤를 보자.

광궤는 크게 러시아궤(1520mm.1524mm), 아일랜드궤(1600mm), 이베리아궤(1668mm), 인도궤(1676mm)로 나눌 수가 있다.

협궤의 1372mm(스코틀랜드궤간)과 이 광궤에 속하는 아일랜드궤는 실제로 협궤 케이프궤라고 하는 잉글랜드궤가 사용한 케이프궤와는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광궤는 앞에서 협궤의 장점으로 부설의 용이성과 저렴한 비용이 든다고 하였으니 단점은 이와 반대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군사적으로도 궤간차이에 의해 이웃 국가간 방위목적도 있다 하겠다.

사실상 이 이웃국가간 방위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예를 들어 러시아를 이야기 많이 하는데 이 러시아가 이웃간 방어목적으로 유럽제국과 다른 궤간을 사용했다고 근대사가 말하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과연 유럽대륙인가 하는 점에서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철도를 부설하는 입장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러시아궤, 아일랜드궤, 이베리아궤, 그리고 인도(印度)궤가 광궤라는 점을 감안할 때 처음부터 부설한 곳은 노반이 안정된 곳이며 상당히 재정이 풍부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설혹 통토지역인 툰드라지역 또는 수원작용을 하던 늪지대나 초원지대, 또한 해안저지대가 노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광궤가 그것을 어느정도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와같은 환경조건에 대입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이 광궤를 부설한 나라들은 섬이나, 산악이 많은 지형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다는 것이며 첫째 광범위한 무역을 전제로 하는 국가로서 광궤는 많은 수송량을 담보하는 것이고 또한 일정을 맞추기 위한 대형기관차들이 가속력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것을 한편으로 표준궤와 차이점을 설명하는데서 특히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지방에 이 광궤가 부설된 점을 남쪽 저지대 연약한 지반 등과 같이 노반을 확보하기가 까다로운 구간의 경우 광궤를 부설하여 노반 공사에 드는 노력을 절감하려 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근대사가 이 광궤부설의 핵심을 국방상 이유를 크게 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알려진 바로는 러시아궤는 1520mm와 1524mm가 있는데 1524mm 형은 1842912일 표준으로 승인되었고 궤간의 선정 과정은 당시 교통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었던 파벨 페트로비치 멜니코프(Pavel Petrovich Melnikov:1804-1880)가 관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미국의 철도 공학자 조지 워싱턴 휘슬러(George Washington Whistler)를 고용하여 러시아의 총 거리 649.7km의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간 철도(St Petersburg to Moscow railroad)건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궤1,520 mm(4 ft 11 27⁄32 in)궤로 부설되었고 1842년 2월 1일에 1813년에 바르샤바공국(Duchy of Warsaw:1807-1815)의 베틴왕조(Wettiner)를 물리치고 폴란드 의회를 장악한 러시아 제국의 황제 겸 폴란드 국왕 니콜라이 1세(Nicholas I of Russia:1796-1855,재위:1825-1855)의 칙령으로 시작되어 10년 후인 1851년 11월 1일에 완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 구글위성지도를 보면 양 도시간 지형이 평탄한 지형임을 알 수 있는데 왜 철도완성이 10년이나 걸렸을까?
재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당시 러시아라고 했던 로마노프왕가가 재정이 위기였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첫번째 열차는 오전11시 15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났고 다음 날에 21시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하였으니 649.7km의 거리를 열차로 약 34시간 걸렸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궤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산재된 사실이며 처음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이 궤가 부설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국궤나 영국궤라고 해야 할 것인데 왜 러시아궤라고 하였을까?

이것은 현재 소련이었던 러시아로 맞추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고 로마노프왕가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려한 것일게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핵심적인 이야기다.

  

 

자료를 보면 이 러시아광궤를 처음 영국이라고 하는 잉글랜드가 1748년에 와일럼 왜곤와야(Wylam Waggonwaya)라 하여 이 궤가 현재 미국 앨라배마주 제퍼슨카운티에 있는 지명이기도 한 와일럼(Wylam)에서 레밍턴(Lemington)까지 석탄선적을 위해 부설되었다는 사실이다.

위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궤 사정도 알 수 있는 지도를 보면 남부전지역이 모두 러시아궤이다.

때문에 이곳에 1524mm 궤가 부설된 내용을 보면 미국토목기사이며 1827년에 설립된 사우스캐롤라이나 운하와 철도회사(South Carolina Canal and Railroad Company)의 주임기술자인 호레이쇼 알렌(Horatio Allen:1802-1889)이 기술방법을 제시한 것을 참고로 부설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는 1837년에 이를 도입한 것이다.

러시아가 광궤를 선택한 것은 첫째 정치외교 또는 국방상의 이유로 적대적인국가의 철도편이 직결하거나, 영내 철도 구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고 에스파냐의 경우도 프랑스와의 단절을 위한 것이라 하였다는데 실제로 궤간 문제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동부 전선 보급망을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근대사는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굴절되었을 것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 러시아라고 하지만 로마노프왕가라고 하는 편이 훨씬 사실성에 가깝다고 보는데 일단 이해가 빠르게 하기 위해 러시아라고 통칭한다면 처음 러시아궤간을 설치함에 있어 독일과 오스트리아 기술자들이 1500mm 궤간을 제안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고, 당시 미국 남부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1524mm 궤간을 채택하였다는 사실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뻔하게 들어나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러시아가 어딘가?

현재 동유럽이며 아시아 대륙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무슨 정보 환경이 그렇게 빨라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의 설치된 철도 궤간사실이 순식간에 전파되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당시 로마노프왕조의 러시아는 유럽대륙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이거나 아니면 실제로 남부에 있었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 블로그 글 "1차려몽일본원정으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50 "에서 버지니아의 피터즈버그(Petersburg)를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하였으며

사실상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었던 곳도 본 블로그에서 수차 이야기 한 것이만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어야 할 도시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본 블로그 글 "무릇 산자고(山茨菰:Scilla)로 본 신라(新羅) http://blog.daum.net/han0114/17049746" 에서 1918년 로마의 아들이라고 하는 로마노프왕조(House of Romanov:1613-1917)가 해체되면서 불쇼비키유대인정부가 탄생하고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전하는 천도(遷都)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존재한다.

덧붙여 또 하나는 본 블로그 글 "토네이도(Tornado)로 본 유럽지명과 모스크바(Moscow)지명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3"에서 인간 누구도 감히 조작하거나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자연재해현상을 빌어 모스크바가 과거 있을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토네이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밝혔던 적이 있다.

로마노프왕가가 택한 1524mm 궤간을 사용한 것을 보면 과거 대조선이 운하건설을 시작한 파나마 철도를 들 수 있는데 1848년에 설립된 태평양우편증기선회사(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가 서부의 태평양연안로선과 동부 아틀란틱 코스를 이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까지 들어가자면 반드시 파나마를 횡단할 수밖에 없었으며 때문에 파나마횡단철도(Panama Canal Railroad:1850-1851:77km)를 1524mm 궤간으로 건설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북아메리카대륙 발트에 있었을 핀란드 역시 첫 철도가 1862년에 1524mm 궤간으로 부설되었다.

참고로 파나마운하(Panama Canal)는 대조선에 의해 1879년 굴착되었지만 1881년에 조선(朝鮮)이 해체됨과 함께 1889년에 사업자체가 붕괴되었고 그 이후 대조선을 장악한 세력들이 1894년부터 관할하면서 미국에 의해 다시 시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지역을 전통적으로 중앙권력이 장악했던 곳으로 바로 고려(高麗)가 있었던 곳을 본 블로그 글 "코리아지협(whilst the Isthmus of Corea) http://blog.daum.net/han0114/13203353"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스웨덴 역시 핀란드와 기차들을 연결하기 위해 이 궤간으로 부설하였으며 폴란드의 LHS, 실레시아(Silesia)지역에서 우크라이나(Ukraine)국경선까지 이 궤간철도가 이어진다는 것은 대동아공영권가 문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러시아의 노농해방령과 미국의 노예해방선언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곳은 바로 위 북아메리카대륙 지도에도 나타나지만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상황이다.

카터스빌과 밴버트철도(Cartersville and Van Wert Railroad)에서 셀마 로마 달톤 철도(Selma, Rome and Dalton Railroad)의 구간은 조지아주(Georgia)전구간으로 마리에타(Marietta)에서 그레이스빌(Graysville)까지 이 궤간으로 부설되었으며 테네시주(Tennessee)의 치카모가(Chickamauga)에서 웨스턴 앤 애틀랜틱 레일로드(Western and Atlantic Railroad)의 종착역 채터누가(Chattanooga)까지 이 궤간으로 부설되었고 체로키철도(Cherokee Railroad)는 카터스빌(Cartersville)에서 테일러스빌(Taylorsville)까지가 이 궤간으로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의 듀케인 인클라인(Duquesne Incline), 머농거힐러 인클라인(Monongahela Incline)도 이에 포함된다고 자료에 나타난.

위 지도에 나타나는 북아메리카대륙 남부 철도상황에서 5 ft (1,524 mm) 궤간이 rail network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1861) 남북전쟁시 남부동맹철도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면 사실상 남북전쟁을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과 다른 전쟁임을 알 수가 있다.

남북전쟁은 미국에서는 노예해방전쟁이라고 한다.

당시 유럽경찰국으로 행세한 니콜라이1세를 뒤를 이어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재위:1855-1881)는 1861년 3월 3일에 농노제도를 폐지하고 농노해방령(農奴解放令)을 시행한 것이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가 그것을 수용하면서도 어찌하여 제정국가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는지 알 수 없는 역사상황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농노제도가 폐지되고 난 후 오히려 로마노프왕가에는 먹구름이 몰려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본가가 많은 미국에서도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자신의 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땅을 소유하더라도 규모의 따라 빈곤해질 수 있고 여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보여지지만 러시아농노들은 다시 지주밑에서 소작인이 되었다는 이상한 현상에서 땅을 버리고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농노들의 빈곤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러시아의 제정국가라는 프레임을 너무 빈약하게 몰아붙이는 결과라고 보이고 이것을 형식적 농노 해방이라 하여 결국 사회주의 혁명의 주도세력이 되었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자본제국의 시각만을 부각시킨 것이라곡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때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재임:1861-1865)이 똑같이 1863년에는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고,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의 통과를 주장하며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본 블로그에서 이 문제를 깊게 숙의한 적이 많은데 놀랍게도 미국대통령으로서 링컨이 재임하기 전 전임자인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1791-1868,재위:1857-1861)은 민주당출신으로서 공화당출신으로 교체되는 시기가 1861년 3월 4일이며 이것은 로마노프황제의 농노해방령(農奴解放令)을 발표하던 시점 1861년 3월 3일 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라고 하는 로마노프왕가의 농노해방령이나 미국링컨대통령이 처리한 노예해방선언이 무엇에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사건이다.

한쪽은 노농해방령이 사회주의 태동을 낳게 했다 하고 한쪽의 노예해방은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논리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우리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파악하고 결론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글쓴이는 미국대통령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의 재임이 끝나는 시점은 곧 노예가 해방된 사실과 일맥하는 것이고 미국태동의 근원적인 상징성과 다분히 많다는 사실고 함께 당시 제정군주국의 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농노를 없애고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바탕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도적인면 보다 체제흔들기였다는 것이며 사회주의 혁명을 자본주의와 유대인의 시온주의에 의해 생성된 것임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그 외 로마노프왕가가 채용한 1520mm 궤간을 사용한 국가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시,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조지아, 현재유럽독일, 홍콩, 카자흐스탄, 키르시스탄, 라트비아공화국, 리투아니아, 몰도바, 몽골, 폴란드, 슬로바키아공화국,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이다.

위 국가들도 거의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특히 독일이 러시아궤를 사용했다는 것도 참으로 알 수 없는 역사인 것은 틀림없다.

위 지도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이와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북아메리카대륙 남부 철도상황에서 5 ft (1,524 mm) 궤간이 "rail network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1861)" 1861년 남북전쟁시 남부동맹철도라고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겠는가.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

 

인도궤(1676 mm)의 정체

 

다음은 인도궤(1676mm)라고 하는 광궤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인도(印度)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 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인도역사를 지금까지 본 블로그에서 풀어본 결과 인도의 지배정체성을 보면 북아메리카대륙은 물론이고 남아메리카대륙 전역을 한 때 지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인도란 명칭이 세월이 가면서 변질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근세기에는 상징적인 명칭으로 회자된 것임도 알 수가 있다.

이 명칭이 명확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이용한 서양세력들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실록 1832년 영길이국표선기(附英吉利國漂船記)에 의해 영길이국을 비로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때 영국 즉 잉글랜드는 남아메리카대륙 브라질을 포함한 동부지역을 점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고 이 때 인도는 남아메리카대륙에서조차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지경까지 몰리게 된 것도 따져보면 빅토리아시대에 들어 역사음모꾼들에 의해 인도역사자체를 가지고 너무 무도하게 장난을 친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본 블로그 글 캘리컷(Calicut:古里)이 있었던 곳 브라질 쿠리치바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9”에서 충분히 설명한 이야기다.

 

인도(印度)에 최초로 철도가 부설된 것은 1853년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나타난다.

또한 1676mm의 광궤로부터 610mm의 협궤에 이르는 4종류의 궤도폭을 함께 수용한 나라로서 특이하며 총연장의 80%가 광궤(1676mm), 17%가 중궤(1000mm)이며 나머지가 협궤이다

인도철도(IR)는 자료에 보면 2003년 기준 총 선로연장 108706km, 영업거리 약 63122km, 단일 경영체제로는 아시아 최대 철도망을 보유하고 있고 직원수는 160만명에 이른다고 하였으며 광궤(45624km), 표준궤(14364km), 협궤(3315km) 3개의 궤간을 영업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인도의 경우 이 같이 다른 종류의 궤가 산적한 것은 잘못된 역사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해야 맞다.

근대사를 바탕으로 잠시보면 영국은 무굴제국을 어쨌든 굴복시키고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 국왕과 무굴제국 황제를 겸임하고자 하면서부터 모든 이와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여왕이 인도여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에 대해 본 블로그를 통해 충분하게 알 수 있었던 바다.

글쓴이는 근세기말 유대자본에 의해 끼워넣기 한 왕가가 바로유럽왕가 일 것이란 판단이다.

하노버왕가와 혈통으로 전혀 통하지 않는 빅토리아여왕이라는 것을 상기 할 때 기존 왕통과는 별개의 인물일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인도대륙에서 영국의 영향력은 캘리컷, 봄베이, 캘커타, 델리 등과 같은 일부도시였고, 나머지는 대영제국에 우호적인 지방 영주들의 세력권에 놓여 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하나의 체제가 붕괴되어 이를 증명할 길이 없는 약점을 잡고 인도를 지배했다고 하니 그런 것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온당치 않는 결과이다.

영국의 행정력과 군사력으로는 총독부를 세우고 시골 곳곳까지 완벽한 통치력을 구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이 상식이다.

이런 간접통치 방법을 써서 명목상으로 인도는 영국땅이란 공식을 만든 것은 사기가 아닌가.

그렇다, 근대사는 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알려지기로는 인도정부에서 인도의 상징성이 있는 인도궤(1676mm)를 전국토에 다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공사를 하는 모양이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30년동안 계속 공사중이라고 어떤 자료에 나타나는 것처럼 기존 역사를 뜯어고치고 바르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인도궤의 역사를 보면 처음은 스코틀랜드에서 사용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던디와 아브로스철도(Dundee and Arbroath Railway:1836-1847), 그리고 왕궁까지 연결된 아브로스와 포퍼철도 (Arbroath and Forfar Railway:1838- )라 한다.

또 이 인도궤를 북아메리카대륙에는 지방궤(Provincial gauge), 포틀랜드궤(Portland gauge), 텍사스궤(Texas gauge)라 하는 것이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명칭들이다.

 

처음 인도에서 10대 총독 제임스엔드류 브룬램지(James Andrew Broun-Ramsay)에 의해 표준궤(1,435 mm)가 아닌 안전성을 위하여 인도궤를 결정했다는 시실이다.

인도총독이 왜 이같은 결정을 하였을까?

 

분명 식민지 통치에 재정자금이 많이 소요되었을 것인데 어찌하여 다른 식민지처럼 협궤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는 두고두고 논쟁의 될 소지가 있다 할 것이다.
또한 당시 인도궤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동인도철도회사(East Indian Railway Company)와 대인디언 반도회사(Great Indian Peninsula Company)가 1849년 인도정부를 상대로 맺은 것은four feet, eight and half inches gauge 즉 표준궤(1,435 mm(4 ft 8 1⁄2 in)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논쟁이 있어 1,829 mm(6 ft)궤와 1,676 mm(5 ft 6 in)궤를 두고 1,676 mm 인도궤가 결정되었고 이것을 광궤(broad gauge)라 하거나 1850년대 최초 봄베이와 마하라슈트라주(州) 서부 탄(Thane)을 달리는 광궤라 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문제는 다시 북아메리카대륙이다.

왜냐하면 인도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메인주를 깃점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메인 센트럴 철도회사(Maine Central Railroad Company)가 생성된 이유가 물론 운행이윤이 있었겠지만 경제인프라문제에서 국가가 이를 추진한 것이라고 보이는 점이 없지않다.

마침 캐나다에서 년중 되풀이하여 발생하는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이 겨울 동결된다는 문제에서 벗어나 대서양 항구를 설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과연 이러한 인프라구축을 할 수 있었던 주체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

영국정부인가? 아니면 미국정부인가? 아니면 제삼우리가 찾을 수밖에 없는 정부인가?

그러는 과정에서 수많은 철도들이 이러한 목적지에 맞춰 몬트리올(Montreal) 혹은 퀘백(Quebec)과 함께 메인(Maine)주에서 인가되었고 몇몇 더 많은 철도는 뱅고르(Bangor)와 퀘벡(Quebec)사이 인접한 중간, 메인 주 북부 무스헤드호(Moosehead Lake)의 거대한 호수 해안기슭까지 건설할 것을 제안되었다고 한다.

대서양 항구 도시로 포틀란드(Portland)를 설치한 후에, 세인트 로렌스 아틀란틱철도(St. Lawrence and Atlantic Railroad)에 의해 포틀랜드궤(Portland gauge)를 사용했다는 것이 나타나며 이를 통해서 내륙 무역을 집중하기 위하여 철도를 설치하고 1846년부터 시작하여 포틀랜드에서 몬트리올까지 완성되었고 1853년 개통하여 캐나다 그랜드 트렁크 철도회사(Grand Trunk Railway:GT)에 즉시 임대되었다고 하는 내용의 자료를 볼 수가 있다.

물론 이렇게 사용되고 설치된 인도궤는 즉 포틀랜드궤(Portland gauge)는 1873년이후부터 표준궤로 바뀐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1]안드로스코긴 켄느벡(Androscoggin and Kennebec Railroad:A&K).

Locale:central Maine

Dates of operation;18471862

Track 4 ft 8 12 in (1,435 mm)

gauge standard gauge , converted from 5 ft 6 in (1,676 mm) by 1871

 

[2]퍼노브스컷 켄느벡철도(Penobscot and Kennebec Railroad:P&K).

Locale central Maine

Dates of operation 18451862

Track 4 ft 8 12 in (1,435 mm)

gauge:standard gauge , converted from 5 ft 6 in (1,676 mm) by 1871

 

[3]메인 센트럴 철도회사MEC:Maine Central Railroad Company)

Locale:Maine-New Brunswick-New Hampshire-Vermont-Quebec

Dates of operation:18621981

Successor:Guilford Transportation Industries

Track gauge:4 ft 8 12 in (1,435 mm) standard gauge ; originally 5 ft 6 in (1,676 mm) gauge

Length:1,121 miles (1,804 kilometres)

Headquarters:Portland, Maine

 

[4]세인트 로렌스 아틀란틱 철도(SLR, SLQ:St. Lawrence and Atlantic Railroad)

Locale:western Maine-northern New Hampshire-northeastern Vermont

Dates of operation:1853

Track gauge:4 ft 8 12 in (1,435 mm) standard gauge , 5 ft 6 in (1,676 mm) broad gauge until about 1873

Headquarters:Auburn, Maine and Richmond, Quebec

 

물론 사기업이라고 하겠지만 적어도 메인 센트럴 철도회사(Maine Central Railroad Company)는 관 주도 기업임을 예상할 수가 있다.
이 회사는 1862년에 A&K[1]와 P&K[2]철도를 통합하였으며 1870년에는 포틀랜드와 켄느벡철도(Portland and Kennebec Railroad:1836.4.1), 1871년에 안드로스코긴 켄느벡(Androscoggin and Kennebec Railroad, A&K:1847)을 임대까지 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1871년에 가서 비로소 메인 센트럴 철도회사(MEC)는 표준궤로 개조했다고 하지만 미국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고 하는 남북전쟁이 끝나고서이다.
또한 남아메리카대륙에서 무굴제국이 존재한 역사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뒤받침하려면 이 인도궤가 있어야 마땅하다.
역시나 남아메리카대륙 남부에 폭넓게 위치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이 인도궤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무심코 볼 수 있었겠지만 이러한 철도 궤가 세계삼한역사를 확신케 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나타났음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천지신명님께 전하고 이를 나름대로 정확하게 밝혔다는 희열을 또 한번 느껴보는바이다.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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