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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 연결
13). 대비달자 악라사와 대한제국
가. 유대인과 시온주의
나. 악라사와 대한제국
다. 대동아공영권
앞 글에서 보았던 사실에서 결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품고 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세계삼한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잉글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이란 명칭으로 근세기에 이를 소유한 것이다.
그냥 문서만으로 그런 형식을 찾은 것이 아니라 참혹한 살상을 바탕으로 한 것임은 물론이다.
사실상 유대 자본제국주의의 음모라고 여겨지는 것은 유대인 볼셰비키혁명세력들이 자행한 니콜라이2세 가족 무참히 살해한 결과이다.
당시 대고려가 마지막까지 잉태하였고 보는 로마노프왕조의 니콜라이2세를 처형함으로서 삼한계통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대신 이듬해 자본제국이 옹립한 1917년에 니콜라이2세와 쌍둥이처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erzogtum Sachsen-Coburg und Gotha)의 조지 5세(George V, 1865-1936,재위:1910-1936)를 대신 앉히게 됨으로서 왕가 이름을 노르만왕조 후신인 작센에서 윈저왕가(House of Windsor)로 바꾸고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왕과 인도의 황제(재위:1910-1936)를 차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거부한 히틀러를 지원한 왕위 계승순위 제1순위의 에드워드 8세(Edward VIII, 1894-1972,재위:1936.1.20-1936.12.11)가 월리스(Wallis, Duchess of Windsor,1896-1986)의 관계와 합쳐진 친나치적이라 하여 소환되었고 황색언론에 의해 나빠진 여론에 의해 하야하자 동생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1936-1952)가 그 뒤를 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영국일간지에서 오른손을 들고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당시 소녀는 현재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로 밝혀져 곤혹을 치루고 있다는 것도 이 당시 왕조역사가 얼마나 정체성을 잃고 혼란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1926~ ,재위:1952~현재)영국여왕이 1999년 4월 21일에 한국을 방문하여 나흘간 체류하면서 방한 일정은 영국왕실의 계획에 맞춰 의전행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안동하회마을만 방문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은 그들의 정체성이 물론 세계삼한역사에 있으며 대조선과 관계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따져보면 지금은 비난일색이지만 당시 영국왕실조차도 나치식경례를 일상적으로 하였다는 것은 아마 왕족들 사이에는 통용된 삼한역사 전통 경례방식이 아니었다는가 하는 것이다.
황색언론과 유대자본선전도구에 의해 나치만 붙이면 천하에 몹쓸역사가 되고 마는 것은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제노사이드행적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유대자본제국들이 제3제국을 제압하고 2차세계대전을 승리했다는 사실이 나치세력에게 덮어씌우기가 더 쉬웠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다.
붉은러시아와 소련태동과 함께 유대인들이 자행한 살상행위가 히틀러보다 덜했다고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대한제국을 찾다 보니 폴란드와 노보고로드(Novogorod)가 로마노프왕가와 밀접하게 얽힌다는 사실도 고려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베틴 가문(Wettiner)는 800여 년 동안 오늘날의 작센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왕후(王候)들, 그리고 유럽의 왕가들을 배출했으며.1697년부터 1763년까지 폴란드 국왕을 겸했다고 나타난다.
베틴 왕가의 분파로 알려지는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erzogtum Sachsen-Coburg und Gotha)는 북쪽방향의 의미가 강한 포르투갈(Portugal:Grande Porto)과 불가리아 그리고 영국을 포함한 나라의 왕족이라는 사실과 잉글랜드의 왕족이란 사실이 어느정도 일치한다.
즉 우리 삼한역사가 말하는 왜(倭) 세력들이며 작센왕가는 현재 벨기에의 왕가로 남아 있는 것도 쓸모가 없으니 벨기에로 팽된 것이다
가. 유대인과 시온주의
유대인들은 세계인류의 고고한 정신을 깨뜨리는 종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세기 어지러웠던 역사에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느 종족이 이처럼 세계사에 영향을 주려고 애를 쓴 적이 있는가?
마치 자신들이 일구놓은 역사를 되찾기나 하듯이 모질게 설쳐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근세사의 흐름자체가 유대인과 관계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성서라고 하는 바이블과도 억지로 일치시키려 노력에서 그야말로 모든 역사사건에 관계하는 것이다.
물론 카톨릭은 종교전쟁을 구실로 구종교와 신종교로 나뉘면서 타도의 대상이 되어 근세기 변혁에 함몰되어 정체가 되었다고 보이는 동시에 신종교라고 하는 기독교는 카톨릭의 자리를 빌어 선교란 포장으로 모든 것에서 공격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하나의 체제였던 대조선이 해체되던 19세기 말엽부터 유대인들은 제정주의 군주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강박관념에 의한 증오심만 키웠다는 것으로서 이시기에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하나의 체제 주요 인물들을 폭탄테러하거나 살해한 사건들이 폭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에 상징적인 것이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재위:1855-1881)가 링컨의 노예해방을 선언할 때인 1861년 똑같이 농노해방령(農奴解放令)을 선포하고 오히려 농노와 서민들에게 협조적이었지만 정작 유대인테러단체 일원이 자행한 폭탄테러에 의해 1881년 3월 13일 백주 대낮에 암살당한 사실을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유대인테러분자들은 지금의 SI(이슬람국가-급진수니파)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특히 유대정권에 이어 스탈린(Joseph Stalin:1878-1953)이 소련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 즉 1차 유럽동부에서 학살을 주도한 레닌정권이 있었고 1918년부터 러시아내전이 끝난 1922년까지 백색주의 말살이 그것이며 그리고 1922년부터 스탈린정권에서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암흑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스탈린의 정적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반역사적인 모든 것을 가차없이 살육하여 도려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가장 반인류적인 행위가 빈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다.
여기서 글쓴이가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 기간동안 대한제국 바탕을 두고 활동하던 또는 역사복구를 위해 존재하던 진성 구성원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학살되었는지는 알길이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정권이 레닌치하에서 공공연하게 체카(Cheka)의 처형방식을 정당하다고 했던 만큼 그것에 의해 희생된 숫자도 참으로 어마어마할 것이란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던시기 1938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던 1953년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한제국 구성원들이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genocide)되었을 것이라고 추증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럽사에서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는 1차세계대전의 4국 동맹(同盟國:Central Powers:Quadruple Alliance)이라고 하던 합스부르크(Habsburg)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Austro-Hungarian Empire:1867-1918),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Turkish Empire:1299-1923), 불가리아(Third Bulgarian State:1878–1944)그리고 나머지인 독일제국(Preußen:Second Reich, or Imperial Germany)은 레닌이 귀국하여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고 스위스에 머물던 레닌이 자신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했다는데 있다.
사실상 4국동맹도 따져 보면 반 세계삼한역사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후 이를 레닌의 정적들은 독일에 후일 보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하는 것은 독일은 제정러시아를 싫어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는 이야기다.
왜 독일이 제정러시아 즉 로마노프왕조를 싫어 했을까?
반 독일적 사상을 가진 히틀러는 로마노프왕조를 어떤 역사적 의미로 부여했을까 궁금하다.
그러나 독일은 전통적으로 1881년 대조선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로므니아 왕가(House of Romania)와 같은 줄기로 호엔촐레른 왕가(House of Hohenzollern)들이 잇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본 블로그"오리엔탈역사문화의 인도(印度)지명이 아메리카에 있어야 할 이유 http://blog.daum.net/han0114/17049532" (7)나막신(clogs)과 게타(geta) 글에서 언급하길 화란(和蘭), 화인(和人)이라고 통칭되는 네덜란드인종도 독일게르만과 가까운 게르만계로서 언어, 문화, 생활의 유사성도 큰 편이라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독일이 패전하자 호엔촐레른가(House of Hohenzollern)의 아버지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ouse of Saxe-Coburg and Gotha)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당시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2세(Wilhelm II,1859-1941,재위:1888-1918)가 네덜란드로 망명하였고 당시 네덜란드는 망명한 독일황제를 비호까지 하였다는 것은 같은 부류의 왕족이라고 보지 않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2세가 레닌의 편의 돌보아주고 니콜라이2세를 제거토록 방치한 것이다.
제정러시아 즉 로마노프왕조가 멸망하고 독일에게 그에 따른 모든 기득권을 노린 것이라 할지라도 독일 빌헬름 2세(Wilhelm II)의 어머니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빅토리아 공주(Victoria Adelaide Mary Louise,1840-1901)인 반면에 빅토이아여왕의 둘째 딸이 헤센 대공비 앨리스(The Princess Alice:1843-1878)이고 그녀의 딸이 러시아 니콜라이2세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Alexandra Feodorovna:1894-1917)이다.
무엇이 기득권을 노리게 했던가?
또한 니콜라이2세(Aleksandrovich Nikolai II:1868-1918,재위:1894-1917)는 용(龍)을 문장으로 하는 로마노프왕가(House of Romanov:1613-1917)의 황제로서 결국 스코틀랜드와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나 고려(高麗)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로마노프왕가사람들이 유대인테러분자들에게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고려계라고 할 수 있는 의미가 분명하게 있다.
[The Romanov Coat-of-Arms]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근대사에서는 이것을 두루뭉실 섞어치기 하였기 때문에 아라사(俄羅斯)의 명칭이 열도일본이 이야기 하는 로서아(露西亞)와 섞이고 또한 유럽인들이 명칭하는 러시아와 혼돈되고 있으며 본래 악라사(鄂羅斯)는 역사적으로 절멸상태에 빠진 1914년 또는 1917년까지의 제정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로마노프왕가(House of Romanov)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상 러시아 문장(1883-1917)에는 게오르기(Georgi)가 위 로마노프왕가의 상징인 용을 창으로 찌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따져보면 본 블로그 "고려와 스코틀랜드, 원과 잉글랜드 그리고 로마노프 http://blog.daum.net/han0114/17050765" 소제 4.고려와 스코틀랜드, 로마노프 글에서 로마노프왕가(House of Romanov:1613-1917)는 본래 용(龍)을 문장으로 하는 것임을 알 때 현재 게오르기(Georgi)가 위 로마노프왕가의 상징인 용을 창으로 찌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근세기 레닌과 스탈린이 점령하에 변이되고 왜곡된 문장이라고 하였다.
냉전시대는 한반도 구성원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고들 말한다.
따지고 보면 냉전이라 함도 유대자본가에 의해 생성된 시온주의(Zionism)가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 또한 마음에 걸리고 이러한 상식이 대다수 역사비평가들의 중평이다.
시온주의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와 유럽을 휩쓸었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계기로 위기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에 의해 일어난 운동이라고 하지만 자본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를 희석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유대계 공산주의 혁명가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주도 주의를 만들고 이 이데올로기 혁명을 활성화시킨 것이 오늘날 냉전시대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러시아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팽배했다는 것은 바로 세계삼한역사본거지를 유대인들이 흔들어놓고 있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전폭적으로 체제전복을 노린 공산혁명가들은 유대자본을 매개로 하여 가장 지목이 되었던 현재 우리가 러시아라고 하는 "타타르 악라사의 땅" 동부를 향해 1차대전을 통해 장악한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동쪽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바람에 그곳에 정착하고 있던 8개연합세력인 대한제국이 붕괴되고 유대계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2차대전말미까지 소련이 시베리아전역까지 장악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본래 북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존재하던 볼셰비키세력들이 1918년 로마의 아들이라고 하는 로마노프왕조(House of Romanov:1613-1917)가 해체되면서 불쇼비키유대인정부가 탄생하고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전하는 천도(遷都)라 하였지만 러시아가 현 아시아대륙에 있게 하는 과정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 히틀러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이런 과정에서 온순하기만 했다고 말할것인가?
그러나 실제로 폭악하고 잔인하기가 히틀러못지 않았다.
본래 유대인들의 테러활동을 보면 특히 제정러시아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고 19세기에 들어 서고려의 대한제국의 주요인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Aleksandrovich Nikolai II:1868-1918)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학살한 장본인이 바로 유대인 볼셰비키 공산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위키자료에 나타난 니콜라이2세 일가족 학살장면은 다음과 같이 처참하게 기록하고 있다.
"1918년 6월 16일 한밤중에 황제의 가족들은 지하실로 옮겨지고 그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볼세비키 비밀경찰 체카(Cheka)소속 유대인 야코프 유로프스키(Yakov Yurovsky:1878-1938)가 이끄는 군인들이었으며 가족들은 상황판단하기도 전에 처형명령서가 읽혀졌고 황제짜르(Nicholas II)는 "뭐라고? 우리는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이에 대한 대답으로 유대인 야코프 유로프스키(Yakov Yurovsky)는 건총을 꺼내서 짜르의 얼굴에 쏘았다. 총알이 짜르의 뇌를 관통했으며, 그 자리에 있던 에르마코프 이름의 군인은 약 1.8 m 거리에서 황후(Alexandra Feodorovna)의 입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그 다음으로 유코프스키는 혈우병(血友病:Hemophilia)을 앓고 있던 황태자인 알렉시스(Alexei Nikolaevich)를 총으로 쏘았고, 그가 바닥에서 신음하는 동안 많은 총알이 다른 식구(4명의 딸)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주치의 세르게이 보트킨은 돌아서 도망가려고 했으나 목에 총을 맞았고 4녀 아나스타샤(Anastasia Nikolaevna)와 3녀 마리아(Maria Nikolaevna)가 주치의 옆에 쓰러졌으며 에르마코프는 요리사의 몸에 한 발을 쏘고 머리에도 한 발을 쏴서 죽였다. 또다른 누군가가 짜르의 하인을 쏘았으며 하녀인 안나는 첫번째 학살에서는 피해 보석이 들어있던 벼개뒤로 숨었으나, 결국 그녀도 총검으로 죽음을 당했고 이때까지도 황태자인 알렉시스는 신음하고 있었으나, 유대인 유로프스키가 머리에 총을 2발 발사하여 결국 죽게 만들었다. 4녀 아나스타샤는 이때 죽지않고 살았는데, 그녀의 콜셋에 보석이 박혀있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총알이 튕겨무사했지만 그녀를 뒤집자 통증으로 소리를 냈고, 학살자들은 라이플의 개머리판을 곤봉처럼 사용하여 타살하였다."[위키정리]
물론 위 상황설명에서 빠졌지만 장녀 올가(Olga Nikolaevna)와 차녀 타티아나(Tatiana Nikolaevna)역시 살해되어 어딘가에 버려졌다한다.
유대인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1870-1924)은 니콜라이2세 일가족을 무참하게 학살한 체카(Cheka)의 처형방식을 정당하다고 하였으며 그는 1920년 1월 12일의 연설에서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수천명을 쏘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체카(Cheka)의 숙청을 옹호하였고 또한 1921년 5월 14일 레닌이 의장을 맡고 있던 당 정치국은 체카(Cheka)의 즉결처분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통과시켰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이 체카방식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때 레닌세력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역사주체이었을 것인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The Bellamy dogma was popular in the U.S. and worldwide, influencing people living in the countries of the socialist Wholecaust (of which the Holocaust was a part): 65 million slaughtered under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蘇維埃社會主義共和國聯盟:USSR); 49 million unde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中華人民共和國:PRC); 21 million under the National Socialist German Workers' Party (國家社會主義獨逸勞動者黨:NSGWP). Their satanic leaders would not separate church and state, they combined religion with socialism, and they worshipped government. In 1939 the National Socialist German Workers' Party and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joined as allies to invade Poland in a pact to divide up Europe. After WWII, Stalin and Mao went on to kill even more people.
위는 미국인터넷 자료이다.
암호해독가(cryptographer) "만(卍)자의 비밀" 작가(author of Swastika Secrets) 렉스 큐리(Dr. RexCurry)의 글로서 위 유대인정부 소비에트연방시기에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거의 65,000,000명이 될 것이라 하였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만약 이런 수치가 사실이라면 2차세계대전때 히틀러에 의해 발생된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망정 레닌주도로 인해 살해된 이야기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묻혀 버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히틀러의 학살은 적어도 레닌볼셰비키의 이런 선주도 학살이 빌미가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근세기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시아 역사판짜기 일환으로 인간청소가 시작되었다.
위 자료에서도 1948년 이후 중공에서도 피바람이 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통계적으로 49,000,000명이며 독일 나치당(Nazi)에서도 21,000,000명을 인위적으로 학살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2차대전에서 모택동과 스탈린은 이 보다 더 많은 학살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체카(Cheka)처형방식에서 보면 거의 한 풀이와 비슷한 것이다.
냉전시대에서 동족상잔을 치루었던 한반도역사에서도 이들의 한풀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의 근세기 이후 허리가 짤리고 지금까지 같은 민족이면서도 어르렁거리는 처참한 몰골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유대인들의 역사한풀이는 어쨌던 간에 현재 열도일본인들의 역사열등사고와 비슷한 것으로 결국 유대자본에 의해 세계삼한역사말살이 한치에 어김도 없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진실을 어리석게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명확하게 목도하는 것이다.
로마노프 왕조(House of Romanov:1881-1917)는 대조선을 승계한 대한제국의 서토 황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 글 "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문장으로 본 동질성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4"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었다.
때문에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1914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유대자본으로 세워진 정권)는 로마노프와 완전히 다른 슬라브계라 하지만 기어코 따진다면 보트피플 루시(Rus)이며 몽고 대비달자와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으로 타타르라고도 할 수 없는 감춰진 유대인들임을 알 수가 있다.
글쓴이 현재 러시아는 유대인들이 만든 정권이라고 본다.
때문에 히틀러는 러시아를 증오한 것이다.
유대자본에 의해 생성된 이들 마르크스(Marx)주의에 의한 세력들은 유럽대륙 우크라이나에서 부터 시작하여 1905년 1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개선문(Narva Triumphal Gate)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사건과 이어 1917년 3월 8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2월혁명(February Revolution), 이어 10월혁명까지 등으로 제정러시아가 붕괴되고 볼세비키공산당 적군이 장악한다.
공산혁명세력들은 1차세계대전의 혼란을 틈타 민중을 선동하고 제정러시아를 완전하게 전복시킨 것이다.
이것의 혼란이 정녕 아시아대륙 유라시아땅에 발생했을까?
아니다.
이런 후에도 적백내전(赤白內戰:1917-1922)이라고 하는 러시아내전이 발생하여 백군은 1922년까지 버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백색군(白軍:White Army)백위대라고 하는 것은 적색파의 반대세력이라는 사실과 반공산주의로서 전통 군주국의 왕당파(王黨派:Royalist faction)를 말하고 이반 3세는 라틴어로 'Albus Rex' 즉 "하얀 짜르"라고 불렸고 이 하얀색은 붓꽃(Fleur-de-lys)문장을 사용하는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상징색이라는 것이다.
부르몽왕가는 루시14세부터 16세까지 숙종, 영조, 정조로 이어지는 역사 본 블로그 글"[1]다시보는 숙종과 루이14세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5 , [2]다시보는 영조와 루이15세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6 , [3]다시보는 정조와 루이16세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7" 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공교롭게도 조선(朝鮮)과 결합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비록 악라사(鄂羅斯)서부 영역에서 이런 민란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대한제국인 그리이트 타타르(Great Tartary)에 의해 옴스크(Omsk)를 수직선 기준으로 동경(東經)70도 선상(線上) 타스 강(Taz River)동쪽 시베리아 전체를 대동아공영권으로 굳건하게 지켰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본 블로그에서 생물학적판단에 의해 알아본 결과로서 동양에 알려진 음식으로 러시안스프, 라송탕(羅宋湯)이라고 하는 보르스치(borsch)스프는 사탕무(beet:Beta vulgaris)를 넣고 끊여 강한 붉은 색을 띠는 수프로서 우리 김치찌개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러시아와 폴란드의 대표적인 음식라 하며 처음 보르스치를 먹기 시작한 곳은 우크라이나로서 동유럽, 중앙유럽할 것 없이 선호하는 요리로서 먹을 때 사워크림(sour cream)을 곁들여 먹는 전통음식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사탕무(beet:Beta)의 근원지는 유럽대륙으로 나타나고 또한 해당없음(not applicable) 엑조틱(exotic) 이라고 보존상태(conservation status)를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캘리포니아에 나타난다는 것은 과거 러시아아메리카회사의 역사성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역사적 의미인 것이다.
즉 이러한 음식풍토는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에서 유럽대륙으로 옮겨 갔다고 볼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백군의 반유대인 포스트(White Army Propaganda Poster Of Trotsky)유대인들이 벌인 제노사이드(genocide) 참상
볼세비키(Bolsheviks)파의 유대계 공산혁명가 레닌(Vladimir Lenin)이 소련(Soviet Union)를 장악하고 이어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1878-1953)이 장기집권하게 되면서 어쨌던 이데올로기에 가장 심한 피해를 당한 역사주체는 대한제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 역사와 관계 되는 최후 한반도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이데올로기전쟁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동족상잔(民族相殘)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동족간 다시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상처로 남아 언제까지고 싶사리 화해할 수 없는 잠재적 민족내부 갈등으로 뿌리처럼 자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통합을 저해하는 주요원이 될 것이다.
하나의 민족성에서 화합과 단결을 막을 수 장애이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한반도 식민지사가 아니라 바로 세계삼한역사를 우리민족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유대인에 의해 만들어진 냉전시대가 결국 세계삼한역사를 왜소하게 만들고 결국 동강낸 것이다.
유대인들의 꼴같잖은 한풀이와 그들의 역사 어두운 부분을 가리려는 시온주의운동이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결국 그 결과는 앞에서도 보았지만 세계삼한인들의 무고한 희생이라 할 수밖에 없으며 한반도인들의 혼란된 역사개념만 심은 것이다.
문제는 유대인 비호세력인 미국과 잉글랜다가 2차세계대전을 승리를 이끌면서 승전국이 되었고 바로 유대자본이 장악한 미국과 소위 영국이기에 이 시온주의 운동의 새로운 후원자로 등장하였으며 1948년 이스라엘이란 국가건립까지 이어진 것임을 어렵지 않게 획인할 수가 있다.
이것이 근세기에 만든 그들의 역사결과물이다.
한쪽이 좋아지면 한쪽이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전제된 것이지만 쫓겨난 팔레스타인(Palestine)의 기구한 운명은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
역사와 전혀 관계없이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반유대인으로 몰려 피해를 본 경우라 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중동역사를 정상이라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중동역사가 정상이려면 홍해 구분에서 동홍해가 중동에 이름해야 하지만 본 블로그 글 "대서양(大西洋)과 대동양(大東洋)은 같은 바다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15"에서 보았던 것처럼 동홍해(東紅海)는 엄연히 북아메리카대륙 바하칼리포르니아 만(Baja California) 코르테스해를 지칭하고 있다.
나찌정권의 유대인대학살(holocaust)이라고 하여 홀로코스트가 상징이 되고 이미 반인류사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대조선과 대한제국이 연달아 쓰러지면서 역사 말살에 의한 코리안학살이 실제로 어느정도였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을 뿐만아니라 이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실로 안타나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더 참혹하고 더 처참하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지만 이미 그들이 모든 주요정보를 장악하고 그것을 통제하고 막고 있으니 우리가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게 탄압하는 짓을 보면 그들이 감히 누구를 비난하고 과거 역사를 탓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어쩌면 히틀러보다 더한 잔인하고 폭악성이 있어 수많은 범죄사실이 있었음에도 근대사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고려의 니콜라이2세 가족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그냥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력을 가지고 제국주의를 도모하며 인류전체를 파괴하려는 그들에게 반하는 세력들은 아마도 미래에도 똑같은 짓으로 제거하려 들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 악라사와 대한제국
강원감영 막비 출신인 박사호(朴思浩)의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에 악라사는 대비달자이며 몽고인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하였다.
대비달자라고 하는 몽고인은 일단 광대뼈 관(顴)이 높다는 것 이외 눈이 푸르고(眼碧) 구레나룻수염(髥)이 붉은(紫)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이 자료 이외 악라사 서부에는 검은(烏)얼굴을 가진 인종이 대체적으로 많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안사고(顔師古:581-645)가 쓴 한서(漢書)주석편
漢書卷九十六下,西域傳第六十六下[一]師古曰:烏孫於西域諸戎其形最異。今之胡人青眼、赤須,狀類彌猴者,本其種也。 "
북아메리카대륙을 동으로 보면 아시아대륙은 도리없이 서쪽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오손(烏孫)을 설명하였을 때 서역을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로 보았기때문에 글쓴이는 오손을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로만 보았다.
하지만 오손이 악라사라고 하면 그 범위가 훨씬 넓어지고 서쪽 방향이라고 할 때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아시아대륙 쪽으로 넘어갔을 개연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악라사(鄂羅斯)땅에도 오손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할 때 여러 융(戎)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는 것과 지금의 호인(胡人)이 청안(靑眼)과 붉은수염의 형상이 원숭이(彌猴)종류와 같다는 것과 같다 한 것들이 현재 러시아인들의 붉은 수염을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오손도 대비달자와 비슷한 모습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백러시아계의 인종이 러시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오손같은 검은 얼굴의 푸른 눈을 가진 악라사주체들의 극단적인 운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블로그 글 "고려인 송환 완료 http://blog.daum.net/han0114/17050102"에서 살펴보았듯이 1937년에 벌어진 한인 강제이송문제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소련정부가 일제와 연해주 한인들이 연계하는 것을 막고 소련동부지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표면적인 이유를 붙이지만 대고려연합체세력을 차단하기 위하여 적성(敵性)민족으로 낙인을 찍어 정치적으로 압박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기술하였다.
동양인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만 고려인이라고 할 것인가?
반도사관에서 벗어날 때다.
러시아의 남부에 있었다던 코사크(Cossacks)군사집단은 터키(투르크)-슬라브민족 출신이라 하였고 러시아의 토종인 키예프 루시(Kievan Rus:882–1283)는 북유럽 보트피플이면서 몽골인에게 지배되어 고구려와 맥을 같이 하는 메르키트족(Merkit)인 몽골타타르에 동화(同化)된 것이라고 하였다.
런던에서 1799년 출판 제작한 고티에[Gaultier, abbe(Aloisius Edouard Camille:1746-1818 ]지도를 보면 18세기 말엽까지는 서양에서도 아시아대륙 전역에 대달단(大韃靼:Great Tartary)이라 하고 세부적으로 시베리아 혹은 루시안타타르(Siberia or Rufsian Tartrary)를 북쪽으로 나누고, 중앙아시아부분에 타타르자치국(Independent Tartary), 동아시아대륙에는 차이니스타타르(Chinese Tartary)라고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생각배보면 차이니스타타르는 우리의 모습을 분명히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정러시아의 역사변곡점인 1914년 이후의 역사는 이들의 역사가 아님을 알 수가 있지만 그것은 현재 서부러시아 즉 동유럽에 준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던 이동쪽 역사는 악라사를 바탕으로 지속되어 대달단에서 고려 후신인 대한제국이란 역사주체가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대동아영역으로 삼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으며 이것을 자유중국이라고 하여 오색깃발을 사용하는 중국으로 표시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러시아인들은 굳이 원류(源流)을 루시라고 고집하는 것은 동슬라브(East Slavs)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가 있고 또한 인종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맞춰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은 얼굴의 푸픈눈을 가진 대비달자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본 블로그 글 "[5]정리-1차세계대전 장소는 북아메리카대륙일 가능성이 높다"에서 언급하였듯이 1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유대인들은 모두 독일계 유대인이었고 아일랜드계 및 스칸디나비아계 미국인들은 제정(帝政)러시아(악라사 또는 대한제국)에게 한결같은 반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당시 미국이 제정러시아를 돕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고 나타난다.
로마노프왕조를 자본조직체 일루미나티가 미국이었다면 유대인들은 일루미나티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일게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비주류였다는 것이 하나의 체제에 원한을 품을 일인가?
유대인의 시온주의는 이기심에 따른 세계를 지배하는 그들만의 바탕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정의가 무엇인가?
그들을 비호하고 그들이 마음대로 소유하고 그들이 무엇이나 결정하는 것이 정의인가?
어떤 학자는 시온주의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서 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확인하며 만족을 얻는 심리적상태 이데올로기 메카니즘 기제(機制:mechanism)라고 고급스럽게 지적했다.
한마디로 자기 위주의 신앙같은 사상이라는 것이다.
시온주의에서는 자신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미지를 부각시킨다고 하였고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른 민족을 억압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떠한 시련을 그들에게 존재했다 하여도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인 역사해석은 곤란하다는 것이 역사비평가들의 이야기다.
어쨌거나 기존 역사에 피해가 없는 민족이 어디있겠는가?
유독 유대인들만 상처가 있는 것이 아닐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희생만 부각된 역사가 존재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근대사가 지향하는 모순이고 불공평한 편향된 역사사실이라는 중대한 결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전 인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19세기말엽 하나의 체제에서 엄청난 포악성은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잘 나타난다.
이와같은 짓은 분명 인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오직 그들의 시온주의(Zionism)를 완성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으로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자본력은 세계를 그들의 손으로 지배하고 정복하는 제국주의만들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들만을 위한 돼지심보라는 것이다.
근세기에 대한제국 말살을 위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추려보면 1881년에 해체된 대조선(大朝鮮)세력들을 규합하려고 한 대한제국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고 미국이라고 판단되는 쿠바용병 재펜(japan)세력이 중국인 고려(高麗)를 자극하여 전쟁을 벌리며 체제를 흐트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약 9개월간 충돌한 것이 바로 청일전쟁(淸日戰爭)이라는 것인데 일본이란 미국, 잉글랜드, 네덜란드 세력이 하나의 체제에 도전한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대륙사는 이 청일전쟁을 1881년에 해체된 조선천지(朝鮮天地)지배권을 놓고 충돌한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대조선 땅이 어디냐고 묻지 않길 바란다.
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을 탐하던 서세들이 이 청일전쟁을 빌미로 하여 군항을 확보하기 위한 쿠바(Cuba)공격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고 근대사는 쿠바인들에 의한 스페인(SPAIN)반란한 사건이라 하였지만 바로 만국조천(萬國朝天) 고려(高麗)로 인식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조선과 고려가 주체성을 잃고 쓰러지나 삼한세력들은 대한제국 건립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이것을 위해 비밀리에 유대자본세력들의 방해를 피해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통하여 1897년 10월 12일에 마침내 대조선의 영역을 바탕으로한 대한제국(大韓帝國)이 건립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다.
서세와 최후의 결전에서 삼한역사주체는 바로 대한제국이다.
대한제국은 과거 조선과 고려 세력들을 통합하고 합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1년후 1898년 미서전쟁(美西戰爭)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또 한번 대한제국의 시련이 닥친다.
미국이 쿠바에서 도발하여 스페인을 쫓아내는 것 같지만 바로 대한제국의 대동아공영권 영역을 하나하나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러일전쟁은 용병대리전쟁(代理戰爭)으로서 멕시코만에 있는 포트아서(旅順軍港:Port Arthur)를 멕시코친미세력인 재펜(japan)으로 이름하고 기습공격하게 하여 러일전쟁(俄日戰爭)이 1904년 2월 8일에 발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누누히 밝혔던 바이다.
이 와중인 1905년 1월 22일 대한제국(악라사)에서 피의 일요일사건(Bloody Sunday)이 북아메리카대륙의 피터즈버그인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있었고 이것에 의해 대한제국 영토인 멕시코와 텍사스주를 멕시코반란세력들에게 공여한다는 조약 즉 1905년 7월 29일에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이 이루어졌으며 이어 싸움을 붙여놓고 말리는 형태를 자본조긱인 일루미나티가 개입하여 1905년 9월 5일에 강화되면서 동시에 1905년 11월 17일에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다는 을사늑약(乙巳保護條約)이란 헛된 역사를 만든 것이다.
실제로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치명적인 상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가 아님도 알 수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소한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939년 9월까지 대한제국의 영토상황을 한번 되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
본 블로글 글 "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문장으로 본 동질성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4"에서 제일 위 문장은 로마노프왕조(House of Romanov)의 1613년부터 1917년까지 사용하던 문장임을 밝혔던 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를 표현한 장면에서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독수리가 오래전부터 황제(Emperor)를 뜻하는 권력 상징으로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고 제우스의 오른손에는 번개를 들고 강력한 힘을 나타내었고 제우스의 왼손에는 지구를 들고 세계를 지배하는 의미로 표현한 것으로 나타내어 로마노프왕조문장도 같은 의미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노프왕조가 로마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게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고려라고 판단되는 셀주크(Seljuk:1037-1157)왕조의 투르크 같은 경우 동쪽의 바그다드 칼리프(Caliph)를 의식하여 '우리는 현실(現實)세계와 신적(神的)인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동쪽과 서쪽의 지배자' 라는 의미로 쌍두독수리 문장(쌍두독수리 실루엣에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을 채택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신라라고 본 블로그가 주장하였고 고려는 이를 흡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악라사의 로마노프 왕조의 문장에서 쌍두독수리는 대한제국의 동토와 서토를 총칭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임을 알 수가 있으며 특히 가운데 (B)형태 게오르기(Georgi)가 용을 창으로 찌르는 모습과 함께 '제국의 신'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1914년 이후 유대정권 소련에 의해 문장이 초기의 문장과 달리 기독교적인 것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다는 것으로 로마노프의 고유문장에 용은 분명 동양문화를 이야기 한 것이다.
대신 대한제국 문양 가운데는 태극문양이 재해석되었다고 해야 맞다.
위 광무5년 1901년에 발행되었다는 대한제국문장(1897-1910)이 새겨진 코인(COIN)을 보면 쌍두가 아닌 하나의 독수리에서 정중앙 게오르기 대신 8괘 도표가 새겨져 있고 특이하게 독수리머리 쪽 방향이 북쪽 방향 감(坎) 아니라 남쪽 방향 리(離)를 표시하는 것을 보면 독수리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으는 형상이다.
협의적으로보면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에서 남부로 재통합을 이루던가 아니면 광의적으로 보면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남아메리카대륙으로 재통일을 염원했던 것이다.
태극 8괘의 문양이 로마노프왕조문장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것은 바로 8개의 연방국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왼쪽 상단부터 아래쪽으로 용(Zilant)문양의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수도 카잔(Republic of Tatarstan, Kazan), 폴란드(Poland), 크림반도 케르소네소스(Chersonesus), 키예프 대공국(Kiev:882-1283)과 블라디미르 대공국(Vladimir:1168-1389)그리고 노브고로드 공화국(Novgorod Republic:1136-1478), 핀란드(Finland), 그루지아(Georgia), 시베리아(Tsar of Siberia), 아스트라칸(Astrakhan)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다른 해석이 요구되는 것이겠지만 일단 독수리 태극문양을 보면 정중앙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면 남(南), 서남(西南), 서(西), 서북(西北), 북(北), 동북(東北), 동(東), 동남(東南)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악라사영토에서 8개의 연방이 위치하는 위치라고 할 수가 있으나 현재 알려진 것은 이와 같지가 않다는 것은 본래 영역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본 블로그 글 "대한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문장으로 본 동질성 http://blog.daum.net/han0114/17050384"에서 살펴보았던 8태극의 8개의 연방국가가 코칸드(Kokand)한국(汗國1710-1886), 부하라(Bukhara)한국(汗國1500-1920), 히바(Khiva)한국(汗國1511–1920), 크림한국(汗國1443-1783), 간자(Ganja)한국(汗國1747-1920), 아스트라한(Astrakhan)한국(汗國1466-1552), 카잔(Kazan)한국(汗國1438–1552), 시비르(Sibir)한국(汗國1440-1598)등을 다시 살펴보아야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가 제일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대조선이 1881년에 해체 된 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Alexander III,1845-1894,재위:1881-1894)가 거의 청일전쟁까지 집권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고 실제로 러시아즉 로마노프왕조는 대한제국의 역할을 대임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다.
[멘셰비키(Mensheviks:1903)의 1917 알렉산드르 케렌스키(Alexander Kerensky:1881-1970):치하의 임시 정부의 문장]
위 문장을 보면 황제왕관과 모스크바 공국의 문장, 각 지역 문장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적어도 모스크바역시 나중에 생성된 도시임을 알 수 있고 게오르기(Georgi)가 용을 창으로 찌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로마노프문장이 소련치하에서 많은 변형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 이후 멘셰비키는 볼세비키에 의해 장악되고 볼세비키에 의해 학살된 니콜라이 2세(Nicholas II,1868-1918,재위:1894-1917)는 1914년까지 대한제국의 서토(西土)를 관장한 황제임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러시아제국문장 독수리 오른쪽에 지휘봉 홀(笏:mace)을 들고 있는 반면 대한제국문장 독수리 오른쪽에는 칼을 들고 강한 무력 즉 힘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러시아제국문장 독수리 왼쪽에는 지구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황금구(黃金球) 즉 정교의 총본산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한제국 문장 독수리 왼쪽에는 명확하게 지구(地球:earth)형상이 들여져 있어 대한제국은 세계를 다스리던 주체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문장은 그리스 제우스(Zeus) 신(神)이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의 상징이라는 것과 동일한 상징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 대동아공영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대한제국의 실체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느껴볼 필요성이 있다.
아래 대동아공영권지도를 보면 1905년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미시시피강, 이서지역땅이 고스란히 참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쿠바까지 영역에 넣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본래 대고려의 영역은 라틴제국의 스페인부왕령(Spanish east indies are part of the viceroyalty of New Spain)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고려의 동토(東土)로 존속되었고 또한 본 블로그 글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로 본 대한제국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4"에서 이야기 한 대달단(大韃靼:Great Tartary)지역을 고려의 서토(西土)로 존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토에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볼 때 강원감영 막비 출신인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心田稿)의 출시가 1828년이니 그때까지 대달단의 영토는 유럽대륙을 포함한 지금의 아시아대륙전체의 땅으로 확인되며 동서가 3만여 리(里), 남북이 2만여 리(里)지역이라 하였고 그 영역은 근세기의 서양지도 "그레이트 타타르"라고 표시한 영역과 같은 것으로 유럽대륙은 잘라먹고 축소된 것이지만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어마어마한 넓은 지역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세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북아메리카대륙을 이미 서세에 의해 농단상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잉글랜드의 저널리스트인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가 쓴 "Great game" 이란 책을 보면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1807년부터 1842년까지 전략적 경쟁상황을 그린 것인데 잉글랜드를 대영제국이라 하여 부풀린 것이 있지만 개략적인 것은 알 수가 있게 하는 것이다.
대 타타르라는 지명이 콜럼버스의 착각지도 속에 북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에 나타내었다는 것은 마르코폴로가 여행기 등장하는 것이며 동아시아대륙 타타르를 북아메리카대륙에서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란 판단을 할 수 있다.
어쨌던 이 모든 것들은 근세기에 마구 섞여 놓아 알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악라사가 몽고이며 고려로서 고려국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었고 후신인 대한제국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이관되었을 것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이것을 바로 대동아전쟁시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이라 하였던 것이 틀림이 없다.
이 대동아공영권은 결국 일루미나티의 자본으로 무기생산을 주도한 세력인 미국과 유대인들이 만든 정권 소련이 이 지역을 양분하고 소유하게 된 전쟁이 바로 2차세계대전임을 알 수가 있다.
열도일본을 대한제국 대신에 등장시킨 것은 바로 미국의 생각이며 그것은 일루미나티가 추구하는 것으로서 세계사의 재편을 감안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라 할 수있다.
대한제국의 시리즈 글을 마치면 진주만공습과 태평양전쟁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미국이 지배할 수 있는 영역에서 동아시아세력권에 일본열도를 두고 그곳에 친미정치세력들을 포진시켰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후에 이러한 미국의 조망권에 한반도 남부가 포함된 것이다.
대한제국의 영역을 다시 이야기 하면 막비 박사호가 쓴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에 악라사의 땅 동남쪽에는 유구(琉球)와 안남(安南)이 접해 있다고 하였는데 글쓴이의 판단으로 이 유구는 "인도네시아"를 말했을 가능성이 높아 서인도제도와 대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악라사 동북쪽에는 몽고가 접해 있다 한 것은 우리모습의 고려(高麗)사람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토 서쪽 끝자락과 서남쪽에는 "크고 작은 서양(西洋)이 접해있다" 하였는데 '큰 것'은 바로 현재 유럽대륙을 동쪽에 두고 있는 대서양(大西洋)을 말하는 것이며 '작은 것'은 현재 아라비아해(The Arabian Sea)를 소서양(小西洋)이라 한 것으로 실제로 악라사 즉 대한제국의 영토 범위가 대동아공영권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로 본 대한제국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4 "의 악라사(鄂羅斯)의 영토와 위치 편에서 충분히 알아본 사실이다.
대동아시아공영권(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의 영역은 어떨까?
놀랍게도 태평양을 중심으로 넓은 사각형에서 동쪽으로 북아메리카대륙 알레스카(Alaska), 캐나다의 유콘준주(Yukon Territory), 노스웨스트준주(Northwest Territories)를 포함하고 그레이트슬레이브 호(Great slave Lake) 이서(以西)쪽, 브리티시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 엘버타주(Province of Alberta)를 포함하고 다시 남쪽으로 미국의 워싱턴주(State of Washington)와 오리건주(State of Oregon)반을 가르고, 아이다호(State of Idaho)북부와 몬태나(Montana)서부를 포함하면서 캘리포니아주를 비껴나 서해안을 그리고 하와이를 포함하지만 정작 코리아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서부지역인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멕시코가 빠졌다는 것은 또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다.
바다로 벗어나 아메리카대륙 태평양 연안에서 바다 남쪽을 지나 과테말라(Guatemala)남북을 동쪽으로 가르고 벨리즈(Belize)남쪽을 통과하여 동쪽으로 가 플로리다 남쪽 바하마(Bahamas)를 포함한 쿠바(Cuba)전 지역과 도미니카(Dominica)를 포함하고 다시 카리브해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 동쪽 끝으로 남아메리카 대륙 베네수엘라 과나레(Venezuela Guanare)를 경계로 한 서부전역과 콜롬비아(Colombia)의 전역 에쿠아도르(Ecuador)까지의 영역을 포함한 중앙아메리카대륙전체에서 일본(japan)으로 행세한 멕시코를 제외한 엘살바도르(Elsalvador), 온두라스(Honduras), 니카라과(Nicaragua), 코스타리카(Costarica), 파나마(Panama)가 공영권에 들어가고 남극에서 꼬리 있는 북부지역과 남극 서부쪽 해안을 감싸고 돌아 신라가 점령했다고 하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뉴질랜드(New Zealand)과 그 남쪽 바다를 남쪽한계 내에 넣고 서북쪽으로 인도양(印度洋:India Ocean)으로 나가 동경(東經) 70도 선상에서 직선으로 북상(北上)하여 모리셔스섬(Mauritius)을 안쪽으로 포함하고 그 경계선으로 곧장 위로 올라가 다시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Indian subcontinent)전체를 넣고 다시 북상하여 서파키스탄(West Pakistan)중앙을 가로질러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동부를 포함하고 타지키스탄(Tajikistan),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을 넣어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가 쓴 "Great game"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가 말한 지역범위가 현저히 다르고 이어 카자흐스탄(Kazakhstan)을 반을 갈라 러시아 땅 옴스크(Omsk)를 기준으로 곧장 올라가 북쪽 북해(北海:North Sea)에 다다르는 것으로 그곳을 경계를 이루면서 동경(東經)70도 선상(線上) 타스 강(Taz River)동쪽 시베리아 전체를 대동아공영권에 넣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한부울:대한제국 글에서 참조]
Maximum extent of japanese power as envisaged in plans drawn up in december 1941 and January 1942. showing some 'frontier' cities and islands of this future empire.
위 지도의 설명을 보면 일본의 미래제국으로서의 전력최대범위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하였는데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는가?
이와같은 구도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제국으로 때려 잡았지만 실제 대동아공영권이 이와같다.이것이 비록 1차세계대전을 통해 유대정권인 레닌(Vladimir Il'Ich Lenin:1918-1924)과 소련(蘇聯:Soviet Union:1922-1991)에게 영토를 다수 뺏았겼다 하지만 러시아 땅 이르티시 강(Irtysh River:石河)을 끼고 있는 옴스크(Omsk)의 이동쪽은 건재했다는 것이며 실제로 대한제국의 영역범위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도 미국주장과 다른 사실을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전통적인 식민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는 빠져있지만 1898년 미서전쟁에 의해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차지했다고 하는 바하마(Bahamas)를 포함한 쿠바(Cuba)전 지역과 도미니카(Dominica)는 대한제국의 영역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대동아공영권에 넣고 있다는 것은 쿠바를 미국이 2차세계대전 전까지 완전하게 점령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태평양전쟁에서 필리핀탈환작전으로 필리핀해전(Battle of the Philippine Sea)을 일본과 치뤘다는 것은 어쩌면 푸에르토리코 마저도 대동아공영권에 넣을 수 있지만 넣지 않았다는 것은 또다른 변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기존 태평양전쟁을 무색하게 하는 이야기다.
미국의 증오의 대상이 대한제국이었다는 사실과 때문에 대동아전쟁 상대가 대한제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2차세계대전 당시 재팬(japan)은 유령국가로서 모든 무기가 대한제국의 소유였다는 사실등은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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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 연결 총편에서 14).한반도에 내려진 불합리 부터 17). 마무리까지 다음 글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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