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3]1886년 코리아가 보유한 함선들

한부울 2015. 1. 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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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86년 코리아가 보유한 함선들

 

글쓴이:한부울

 

머리글
코리아 해군력
[A]방선(防船:guard-ships)48척
[B]건보트(gunboats) 병선(兵船)132척
[C]해안경비보트(coast-guard boats)사후선(伺候船) 254척
마무리

 

머리글

 

본블로그에서 심층적으로 연구한바에 의하면 삼한역사에 의한 하나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밝혀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근세기 역사에서는 그에 대한 자취, 자국,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도무지 역사학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서세가 장악한 근세기에 조직적으로 어떤 행위가 분명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연구를 하면서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삼한역사의 실체를 밝힌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묵은 종교갈등, 역사갈등, 영토갈등과 그에 따른 치명적인 분열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서 바로 세계역사정체성이 무너져 사라졌다는 이유가 제일 크다고 볼 수 있다.

정체성이 바로 정립되지 않을 때 불필요한 분열과 충돌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근세기에 물질자본을 등에 업은 서세들의 무지한 장난에 의해 세계역사정체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본 블로그에서 수많은 연관사실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그들에 의해 본래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마구 혼입되어 인류가 본시 가지고 있던 순수한 정체성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확히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류가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그리고 끝내 인류공멸을 막기 위해선 사라진 역사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이 극악한 분열과 충돌의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현재 중동은 과거 4대문명지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낙후된 곳이다.

곳곳에 넘쳐나는 검은 석유는 서양세력들의 자본집합장소로 변모시켜 일부계층만 호의호식하는 정신이 매마른 땅으로 거의 고착되고 말았다.

그곳에는 해묵은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종교갈등도 산적해 있다.

매일같이 각종파가 분열하며 그들이 서로 서로를 죽이는 피의 향연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젠 반서양세력이란 기치아래 젊은 목숨을 빌어 인명을 언제든지 참수라는 이름으로 살상할 수 있고 극악한 살상장면을 공개하여 서양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려고 안달하는 무리가 득세하고 있다.

그러면 다시 서양세력들은 그들의 잔악성과 폭력성을 테러라 규정하여 싹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따른 높은 여론을 조성하고 예산을 끌어들여 영토를 침략하고 다시 죽음의 향연을 벌이게 된다.

덩달아 무기산업은 발전하며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하게 되면서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세계자본시장은 끝없이 탄력을 받게 된다.

물론 무수한 신흥자본가들이 생성되며 끝도 없이 물질자본은 풍족하게 된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빈곤이 대다수가 되어 계층간을 또 다시 분열시키고도 있다.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는 세상, 분열의 악몽은 인류가 공멸할 때까지 끝이 없을 것이다.

본래 인류가 지향한 것은 욕망과 향락을 불러 일르키는 물질주의(物質主義)가 아니라 인문주의(人文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인들이 이러한 인본주의에 따른 본래의 역사정체성을 알턱이 없고 거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역사적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정신이 다같이 매마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질에 의한 이해타산이 전부이다.

서양역사학자들은 분열의 역사도 역사라 하였다.

더 많은 갈등과 충돌을 생성시키는 과정이 역사란 뒤에는 그에 따른 물질이윤추구가 목적임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세계인들은 그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체제, 하나의 역사에서는 역사갈등이 있을 수가 없지만 분열된 역사는 갈등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곧 진리와 같다.

예를 들어 서세에 의해 만들어진 열도역사를 철저하게 믿고 있는 열도일본 극우주의세력들은 늘 상 각색된 그들 역사위에서 위험한 칼춤을 추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이다.

물론 동아시아대륙에 새로운 냉전시대를 조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들이 장악한 미국과 그 밖에 서세들의 잘못이 크다.

물질만 중요하게 인식하고 우월주의에 빠진 서세들에 의해 사라진 하나의 체제, 하나의 역사찾기는 인본주의 정체성회복은 물론이고 곧 발생할 수 있는 인류공멸을 막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젠다가 아닌가 한다.

 

코리아 해군력

 

이미 본 블로그 앞선 두 편의 글에서 밝혔듯이 서양함선과 마찬가지라고 판단되는 장갑함(鐵甲艦:ironclad) [1]귀선(龜船:armoured ships)19척과 16세기 전열함(Ship of the Line)보다 더 진보한 [2]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 92척을 1886년 당시 코리아(高麗:corea)가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국(잉글랜드:England)사람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1849-1926)의 저서 중국선교보고(Chinese recorder missionary journal)중 4~5페이지 가량의 소제목“1886.corea:military officers"에 나타난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반도역사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야말로 경끼(驚氣)할 이야기다.

 

[원문]1886. corea:military officers 11

코리아(조선):병편

By E. H. Parker, Esq.

The navy nominally consists of 92 line-of-battle ships [戰船] each manned by 80 men; 48 guard-ships [防船] each with 30 men; and 132 gunboats [兵船] each carrying 60 men; also 19 armoured ships [龜船], 254 coast-guard boats [伺候船], and several score more boats of various nondescript names. Though it is not so stated by the Chinese Commissioners, most if not all of these boats exist only on paper.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1886년 당시 조선(朝鮮)이 보유한 해군함선들을 각 종류별로[2]92척의 전선(戰船:line-of-battle ships), [3]48척의 방선(防船:guard-ships), [4]132척의 병선(兵船:gunboats), [1]19척의 귀선(龜船:armoured ships), [5]254척의 사후선(伺候船: coast-guard boats)

 

위에 그 원문을 일부 게시한 것인데 전열함과 귀선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 외 코리아가 당시 보유한 함선으로 방선(防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도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건보트(gunboats)라 하는 소형 포함(砲艦) [4]병선(兵船)132척과, 가드쉽(guard-ships)이라고 하는 항만 또는 항구에서 주재한 일반목적 순찰과 호위선박인 [3]방선(防船)48, 그리고 끝으로 코스트가드보트(coast-guard boats)라고 하는 해안 경비 및 순찰, 운송 등에 사용되는 커터(Cutter)종류의  [5]사후선(伺候船) 254척을 보유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내용적으로 보면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 함선들을 어떻게 우리가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다.

여기서 잠시 지난번에 기술한 1886년 당시 코리아가 보유한 전열함(line-of-battle ships) 전선(戰船)92척에 대한 것에서 우리나라 사서에서도 어김없이 이와같은 사실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충청도(忠淸道) 보령현(保寧縣)편에서 1863년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현 서쪽으로 20리인 해변에 수영(水營)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본조 태조 5년에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두어 보령(保寧)을 관리하였고 세종(世宗) 3년에 도안무처치사(都安撫處置使)로 고쳤다가 세조 12년에는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고쳤으며 현의 속읍(屬邑)으로는 홍주(洪州), 태안(泰安), 서산(瑞山), 당진(唐津), 면천(沔川), 서천(舒川), 임천(林川), 한산(韓山), 비인(庇仁), 남포(藍浦), 보령(保寧), 결성(結城), 해미(海美)이고 속진(屬鎭)으로는 영보정(永保亭), 관덕루(觀德樓), 대변루(待變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이오도(離鰲島), 한산사(寒山寺)인데 본 영()과 속읍(屬邑), 속진(屬鎭)은 가지가지 모양의 전선(戰船) 92척을 가지고 있다 하였다.

전선 92척을 모두는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 나타는 것으로 바로 충청도 보령현 수영과 각읍진에 정박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와같은 사실을 영국이 에드워드 파커가 보고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제목으로“military officers”라 한 것을 보통 무관(武官)으로 번역하기 싶지만 영어사전에는“armed forces”라 한 것을 보면 조선 즉 코리아(corea)의 당시 군사력(軍事力)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우리가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기록인 것이다.

때문에 중국선교보고서에 비밀스럽게 기록하고 보고하였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전선(戰船)과 귀선(龜船)이외 당시 코리아가 보유하였다고 한 방선(防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A]방선(防船:guard-ships)48

 

방선(防船)은 한문으로는 방어하는 선박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지만 영어로 파커가 풀이한 것은 바로 가드쉽(guard-ship)이다.

가드쉽이란 항만 또는 항구에서 주재한 일반목적 순찰과 호위선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반면 한국고전용어사전을 보면 이 방선(防船)은 방패선(防牌船)이라고도 하였는데 조선시대 수군절도사인 수영(水營)에 배속되어 있는 전선(戰船)의 하나로 놀랍게도 뱃전에 방패를 설치하였다는 것이며 승무원은 본영 방패선은 55인, 각 읍진(邑鎭) 방패선은 31인이라 하여 차이를 두었고 전선보다 훨씬 작은 군선으로, 오히려 중형 무장함인 병선에 가까운 크기라 하였다.

병선은 건보트라 하였다.

이와같은 말은 나중에 보면 맞아 떨어진다는 것도 알 수가 있는데 병선은 그렇게 크지 않는 함선이다.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인 전선보다 작고 건보트(gunboats)라 하는 소형 포함(砲艦) 병선(兵船)보다는 큰 군용선박으로, 을묘왜변(乙卯倭變)이후 제작되어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황해도(黃海道)와 평안도(平安道)를 중심으로 배치되다가 숙종(肅宗1661-1720,재위:1674-1720)이후 점차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등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며 속대전[續大典]에 규정된 각 지역별 방선 배치현황을 보면, 경기도 10, 충청도 21, 황해도 26, 평안도 6, 전라도 11, 경상도 2척 등 총 76척으로 나타나지만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수효는 증가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76척보다 늘었다고 하였지만 1886년에 척수는 48척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서를 번역한 자료를 보면 이 방선을 아주 형편없이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소위 방패선(防牌船)이라고 것은 선체의 상갑판 위 양쪽 뱃전에 적당한 높이의 방패판을 세워 적의 화살과 돌로부터 군사를 보호하였다고 하는 설명이다.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대가 훨씬 지나 진본한 환경임에도 화살 따위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그렇다.

우리나라 사서(史書)에 대한 번역본들을 보면 모두 한결같이 서양함선을 의식한 나머지 같은 류의 함선이라는 것을 들어내길 대체로 꺼려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함선들이 실제로 지역을 방어하는 방선임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도대체 당시 서양 어떤 배가 적탄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뱃전에 방패를 세운다고 하였던가?

참으로 해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폭약이란 개념이 전혀 무시된 이야기로서 그저 화살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물안에 개구리식 번역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초등학생수준의 생각이다.

가드쉽(guard-ships)은 전선을 호위하거나 연안 지역등 국지(局地:definite place)방위를 위한 임무를 띤 경비함(警備艦)을 말한 것이다.

기습적인 적의 공격에 대비해 연안 해상을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현재 군함 초계함(哨戒艦:Corvette)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USRC Harriet Lane
배수량:730 tons
길이: 177.5 ft (54.1 m)
선폭: 30.5 ft (9.3 m)
흘수: 13 ft (4.0 m)
추진: A double-right-angled marine engine with two side paddles (양쪽외륜)
속력: 13 knots (24 km/h; 15 mph)
승무원: 95 officers and men
무장: 4인치포1개
, 9인치포1개, 8인치포2개, 24파운드 황동곡사포2개(1862)장착

1859년 건조, 1881년 Abandoned at sea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나타남.

 

영어자료에 보면 1864년 미해군(U.S.Navy)병력이 51,500명과 700척의 함선, 그리고 대략 60척의 해안경비유형의 철갑함(裝甲艦:armoured ship, ironclad ship)등을 보유하였던 것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컸던 것으로 로얄네이비, 영국해군(Royal Navy)과 비교 된다고 하였다.

구선, 귀선(龜船)이 바로 철갑함(裝甲艦:armoured ship, ironclad ship)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분명히 알았다.

위 내용을 보면 영국해군을 로얄네이비(Royal Navy)라 하였다는 것인데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잉글랜드로 보기에는 문제점이 매우 많다.

그러나 로얄네이버의 깃발에는 붉은 십자기를 상징으로 한 것을 보면 코리아 상징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글 "붉은 십자기(red cross flag)는 조선(朝鮮)깃발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8" 에서
Cross of St George 혹은 St George's Cross깃발을 영국해군 로얄네이비 깃발이라고 하고 있지만 붉은 십자가 깃발(Red Cross flag)은 서양 특히 현재 잉글랜드의 전유물이라 할 수 없는 이유와 흰바탕에 붉은 흡사한 십자선을 그려놓은 깃발을 등대 역할의 작은 배, 등대선 깃발용으로 또는 출입국관리해군선박에 꽂는 깃발용으로 코리아(朝鮮:Corea or Korea)령내에서의 항로표식(航路標識:Beacon)을 제어 관리하는 깃발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설명한바가 있다. 또한 이 "Cross of St George"의 표식은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훈장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가 있다는 사실과 철십자훈장(鐵十字勳章:Eisernes Kreuz)등으로 프랑스, 독일훈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1807년부터 1917년기간동안 본래 러시아연방이 해체되기전까지사용한 훈장이라는 사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대한제국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코리아령내 출입국관리해군선박에 꽂은 것이라 한 것도 보면 이 방선과의 임무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조선 영내, 또는 코리아 영내 비밀스럽게 접근하거나 배회하거나 하는 세력과 불법 입국을 도모하던 세력들을 막기 위한 함선이 곧 방선이며 가드쉽(guard-ship)이다.

최소한 미해군이 보유했다고 하는 700척의 숫자는 1744년(영조20)에 편찬한 법전 속대전(續大典)에서 조선군선(朝鮮軍船)들의 함선 보유표를 보면 합계척수가 776척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어 코리아의 군사력과 비슷한 내용의 숫자이며 에드워드파커가 보았다고 하는 코리아의 48척의 방선(防船:guard-ships)숫자도 1880년 경비함선 척수와 일치하고 있다. 

By 1880 the Navy only had 48 ships in commission, 6,000 men, and the ships and shore facilities were decrepit but Congress saw no need to spend money to improve them.

미국은 위 로얄네이비(Royal Navy)와 비교할 수 있었던 군사력이 거의 1882년까지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사라졌다고 하였고 1880년 들어 48척의 임무를 띤 함선, 6000명의 병력과 해안 편의 수단의 노쇠한 함선들뿐이었으나 의회는 그것들을 억지로 경비까지 들여가며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거의 대조선이 해체되던 시점인 1881년 제임스 에이브램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1831-1881,재임:1881년 3월 4일~9월 19일)정부가 들어설때까지 140 척의 함선 중에52척만 운행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17척은 겉만 철갑한 것으로 남북전쟁에 사용한 철갑함 14척이 포함된 상태로 아주 열악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상하게도 1881년에 당선된 가필드는 그해 암살 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있었고 이어 부통령으로 지명된 체스터 앨런 아서(Chester Alan Arthur)가 승계하여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1883년부터 미해군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재건하기 시작하여 미서전쟁(Spanish-American War,1898)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본 사실들과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다.

1881년 하나의 체제 대조선이 해체되던 시점부터 미해군이 재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니 이 공백기간이 그대로 들어나고 있다.

어쨌거나 미국해군은 1865부터 1882년까지 공백상태(Decline of the Navy)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빈약한 형편에서 1871년 6월 10일에는 머나먼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한반도에까지 가서 그 유명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어설픈 한반도 역사인가를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B]건보트(gunboats) 병선(兵船)132척


건보트(gunboats)라 하는 소형 포함(砲艦)

병선

(兵船)은 방선(防船:guard-ships)보다 작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처음에는 잡용으로 쓰여지다가 점차로 전선(戰船) 또는 방패선(防牌船)의 보조적인 무장선으로 중용되기에 이른 것으로 각 수군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경무장선(輕武裝船)으로 취급되었다 하였다.
병선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 때부터 자주 나타나며 인조 때에는 이미 널리 보급되어 군무 외에도 미곡 운반 및 잡용에 쓰여지다가 점차로 군선으로서의 자리를 굳혀 숙종대에는 전선 또는 방선의 보조선으로의 자리를 굳혔다고 되어 있다.
병선의 구조는두 개의 돛대와 각 현 세 개씩 6개의 노(櫓)를 설치한 범노선(帆櫓船)이라 하였고 정조 때의 전라우수영지(全羅右水營誌)에서 승무원은 선장(船將) 1명, 사부(射夫) 10명, 포수 10명, 다공 1명, 노군 14명 등 모두 36명이 승선했다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각종 군선에 대한 논란이 심하였는데도 이 병선 만큼은 시종군무 외에도 군량미와 진휼미(賑恤米)의 수송 및 기타의 잡용 등에 활발히 이용되면서 조선말기까지 연명하였다고 설명된다.

그렇다면 건보트(gunboats)가 무엇인가 알아보자.

소형 포함(砲艦)이다.

 

Ariel-class gunboats, 복합건보트(Composite gunboat)

 

                                                           [HMS Coquette(1871)]
배수량: 430 tons
길이: 125 ft 0 in (38.1 m)
선폭: 22 ft 6 in (6.9 m)
흘수: 10 ft 3 in (3.1 m) max
추진: 1 × 2-cylinder horizontal compound-expansion steam engine (except Swinger - single-expansion),2 × boilers,1 × (hoisting) screw
Sail plan: Three-masted barquentine rig
바컨틴형:fore mast 에만 횡범을 장착하고 main mast 와 mizzen mast 에는 종범을 장치한 3본마스트형
속력: 9.5 kn (17.6 km/h)
승조원: 40 (later 60)
무장: 2 × 6-inch (150 mm) 64-pounder (56cwt) muzzle-loading rifles
 2 × 4-inch (100 mm) 20-pounder Armstrong breech loaders
1871-1873 펨브로크, 채텀 조선소(Pembroke, Chatham)건조
비용:14,500파운드
1871–1895 운행
공동구매자:영국해군(Royal Navy; British Navy)
브리티시상선(British Merchant Navy)

 

[RML 64 pounder 64 cwt]

 

[RBL 20 pounder Armstrong field gun]


Medina-class iron screw gunboat

 

                                                        [HMS Spey (1876)]

Ant-class gunboat
배수량: 386 tons (designed)
길이: 110 ft 0 in (33.5 m)
선폭: 34 ft 1 in (10.4 m)
흘수: 9 ft 6 in (2.9 m)
추진: 2 x 2-cylinder horizontal single-expansion steam engines
Twin screws
Sail plan: Barquentine(2 pole masts from 1892)
속력: 9 1⁄2 kn (17.6 km/h)
승조원: 51
무장: 3 x 6.3-inch (160-mm) 64-pdr muzzle-loading rifles
2 (or 3) x 4.7-inch quick-firing guns
파머스조선철강회사(Palmers Shipbuilding and Iron Company)에서 1876-1877 건조, 취역 1877년부터 1923년까지.

 

                                                 [QF 4.7 inch gun deck mounting]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당시 건보트(gunboats)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는 서양사기록을 보면 모두 붉은십자기의 로얄네이비(Royal Navy)소유로 나타난다.

만주국 군기(滿洲國軍旗:manchurian army red cross flag) 역시 붉은십자기다.

본 블로그의 글"청일전쟁은 고려(高麗)가 서세를 혼내주는 전쟁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 "에서 밝혔듯이 일본에서 벌어진 오닌의 난(應仁-亂:1467-1477)이 곧 잉글랜드 장미전쟁(薔薇戰爭:1455-1485)과 연결되며 역사장소가 중앙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일본이 중일전쟁(中日戰爭:1937-1945)에서 만주국을 포함시킨 것도 따져 들어가면 만주가 중앙아메리카대륙(Central America)에 있었다는 사실과 전부 부합되는 내용이다.

나중에 동아시아대륙사가 만들어지게 되면서부터 만주국이 열도일본으로 소속된 것처럼 만든 것이다.

북미서부지역과 중앙아메리카대륙을 스페인이점령했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고려(高麗)라 할 수밖에 없다.

고려가 스페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때문에 동남아시아 필리핀과 카리브해 쿠바에서 벌어진 동시전쟁(同時戰爭)인 스페인아메리카전쟁(Spanish-American War:1898년4월-8월) 즉 미서전쟁은 고려(高麗)와 미국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미국은 서세의 연합으로 나타난다.

일본은 동양명칭이지만 서세연합으로 처리된 명칭이기때문에 위와 대비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청일전쟁(淸日戰爭:Sino-Japanese War)을 스페인과 미국전쟁 혹은 고려와 미국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실처럼 미국의 해군력은 대조선이 해체되던 시점 1882년까지 매우열악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물론 1883년부터 해군력을 재건했다고 하고 있지만 위와같은 군사력이라면 고려를 물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1898년에 벌어진 미서전쟁(美西戰爭:Spanish-American War)에서 미국이 승리하였고 이후 중앙아메리카대륙과 북미본토에 존재하였던 고려의 함선과 해군력을 모두 미국이 접수해버린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전쟁역시 동아시아대륙사에서는 청일전쟁으로 각색된 것이다.

북아메리카대륙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서부전역이 본래 스페인식민지로 있었다는 사실과 이 지역들이 고려영역임을 알 수 있고 이 고려 땅은 바로 1898년 미서전쟁을 통하여 미국 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결과인 것이다.

미국역사를 들여다 보면 미국이 지금과 같이 발전하기까지 제일 중요하게 본 시기가 바로 미서전쟁이며 그 이후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고려와 전쟁한 역사가 분기점이었다.

이와같은 사실들은 모두 본 블로그가 그 동안 연구한 결과에 나타나는 개괄적인 확실성이 뒤받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얄네이비(Royal Navy)가 소유하던 소형 포함(砲艦) 건보트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해 보자.

잉글랜드사람 에드워드파커가 기록한 1886년에 당시 코리아가 건보트(gunboats)라고 하는 병선(兵船)을 132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동일 시기에 영국이라고 하는 로얄네이비(Royal Navy)가 소유하고 있었던 세부적인 사실과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본적으로 증기건보트(Steam gunboats)이며 코리아를 기준으로 할 때 1886년 가까운 시기별로 따져보면 첫째, 1886년 취역한 어뢰건보트(Torpedo gunboats) 1척이 있었고, 둘째, 1881-1885년 취역한 어뢰 램(Torpedo Ram)3척, 세번째, 1881-1882년 취역한 철연안용건보트(Steel coastal gunboats)로 3척, 네번째, 1867-1877년 취역한 강철연안건보트(Iron coastal gunboats)로 38척, 다섯번째, 1871년 취역한 아리엘급(Ariel class)에서 1886년 취역한 브램블급(Bramble class)까지의 복합스크류건보트(Composite screw gunboats)가 23척으로 등록되어 있어 이것들을 합하면 68척이 되고 코리아가 보유한 병선이 132척이라 하였으니 차감하면 64척이 남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얄 네이비 소유의 나무스크류용건보트(Wooden screw gunboats)에는 총 179척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가까운 시기별로 따지면 64척이 포함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 1854-1856년까지 건조된 건보트들은 모두 폐기되거나 매각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1886년이라면 거의 30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코리아가 가지고 있던 건보트는 바로 로얄네이비란 이름으로 나타남을 알 수가 있다.

 

[C] 해안경비보트(coast-guard boats)사후선(伺候船) 254척

 

코스트가드보트(coast-guard boats)라고 하는 것은 해안 경비 및 순찰

, 운송 등에 사용되는 커터(Cutter)종류를 말하는 것인데 이를 사후선(伺候船)이라 하였고 1886년에 코리아에서 254척을 보유했다는 사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보면1744년(영조 20)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 나타나 있는 군선은 전선(戰船) 117척, 구선(龜船) 14척, 방선(防船) 76척, 병선(兵船) 161척, 사후선 318척, 기타 90척 등 모두 776척인데, 그 중 사후선은 41%를 차지한다 하였다.
그 크기는 전라우수영지(全羅右水營誌)에 영광군과 함평현(咸平縣) 사후선의 치수로서 바닥의 길이 21척6촌(약 6.54m), 너비 8척4촌(약 252 cm)과 8척8촌, 선체의 높이 4척 등이 나타나 있고, 정원은 타공(舵工) 1명, 격군(格軍) 4명 등 5명이고, 무장은 하지 않았으므로 전시에는 정찰 및 탐망(探望)등에 활용되고, 평시에는 각 읍진의 잡용에도 충당되었으며 전투함이나 무장선에 반드시 부속되는 비무장 소형정이라 하였다.

 

그러나 똑같은 명칭이 함선은 미국밀수감시대(United States' Revenue Cutter Service:1790-1894)의 경비정으로 나타나며 거의 밀수를 막기위해 감시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매사추세츠 감시정(USRC Massachusetts)

 


뉴버리포트(Newburyport)조선조에서 1791년 건조 취역 1792년 운명매각
비용: US$2,050
스쿠너(Schooner:돛대가 두 개 이상인 범선)
배수량: 70톤
길이: 60 ft (18 m)
선폭: 17 ft 8 in (5.38 m)
흘수: 7 ft 8 in (2.34 m)
추진: Sail
승조원: 4 officers(4 crewmen, 2 boys)
무장: 선회포(旋回砲:swivel guns) 4-6개, 그 외 10정의 머스킷총(ten muskets)과 총검(bayonets), 20정의 권총(twenty pistols), 그리고 두정의 끌(two chisels), 한개의 날 넓은 도끼(one broad axe)

 

USRC Vigilant
USRC Active
USRC General Green
USRC Scammel
USRC Argus
USRC Virginia
USRC Diligence
USRC South Carolina
USRC Eagle

 

 

 

 

 

 

 

위 크기를 보면

속대전(續大典)에는 7m 도 못되는 크기를 말하고 있으나 실제 미국의 연안감시정을 보면 18m 로 속대전에서 말하는 것보다 크고

승조원 숫자만큼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물론 속대전에서 말하는 사후선이 곧 코스트가드보트(coast-guard boats)라는 것이다.대신 크기가 현저하게 작게 나타나는 것은 후세 일제역사학자들의 의해 수치를 축소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어쨌던 서양함선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그렇지만 이미 에드워득파커가 공인한대로 사후선은 코스트가드보트일 수밖에 없다.고려(高麗)라고 판단되는 코리아에서 사후선(伺候船) 254척을 보유하면서 주로 밀수감시를 하였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 수가 있는 것은 위에서 방선을 이야기 하면서 코리아의 출입국관리해군선박을 말한 것과 같이 모두 출입국관리를 위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이와 더불어 또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 사후선을 전투함이나 무장선에 반드시 부속되는 비무장 소형정이라 하였지만 비무장하고 어떻게 밀수꾼들을 막을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생각 해볼 문제이다.위 미국의 해안감시정과 같이 기본적인 무기만큼은 감시정에 장착하거나 승조원이 소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마무리

 

금까지 귀선, 전선, 방선, 병선, 사후선까지 살펴본 결과 실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역사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서양함선과 코리아 함선이 과연 같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가 있다.

이에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특히 한반도에 이양선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627년 인조5년 10월 네덜란드 3인이 제주도 표류하면서 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1886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거의 260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이러한 시간은 얼마든지 서양배의 장점을 보고 수정하거나 고쳤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 이양선을 보고 우리나라 선박기술자들이 무엇인가 기존 함선과 차이와 문제점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조선이 미개하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본 블로그가 관찰한 역사사실에 비추어 절대로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오히려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서세보다 앞서 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배 건조기술이다.
항해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선술에서도 삼한의 나라들이 압도적이라 할 정도로 매우 우세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었도 적어도 서세가 가진 조선술과 거의 비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반도역사가 조선인을 어쨌던 우물안에 개구리식 표현을 써 바보천치로 만들다 보니 이런 아둔한 문제점을 발생시킨 것이다.
한반도 뿐만아니라 열도일본도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다고 하는 무역항 나카사키에 들어오는 배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며 더군다나 중국이라고 하는 동아시아대륙 남부에 근세기 이전부터 물밀듯이 몰려든 서양함선들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쳐다보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시까지 판옥선을 고집한 모두가 대양을 항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면 서양배들을 모방하여 고쳤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조선술이 낙후되었으면 따라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였을 것이며 좀 더 앞서나가기 위해 진보된 기술을 습득하려 애를 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12세기나 15세기 그리고 18세기까지 배 모양이 한결같은 판옥선의 모양을 고집했다는 것은 싶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언제나 삼한나라변방이나 해안에서 해적들이 들끊고 때문에 이것들을 퇴치하기 위해 직접 공격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러자면 해적처럼 날랜 함선이 필요하고 각 대양을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어야지만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다 할 때 더군다나 중국이었다면 보다 조선술이 크게 발달하여 서양배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조술과 조선술이 발전해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대륙사에 기록된 함선이나 모든 배들을 보면 넙적하게 펼쳐만든 저속형 배들 뿐이니 답답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동서가 유별나다고 하지만 지금같이 판옥선이니 무어니하여 서양배와 모형이 완전히 다른 엉뚱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이야기라 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진실된 역사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 한다면 조선의 함선이나 서양의 함선의 모양과 쓰임새가 거의 같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까지 영국변호사이며, 중국학을 연구하던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1849-1926)가 1886년에 쓴 "중국기록과 선교보고(CHINESE RECORDER MISSIONARY JOURNAL)"에서 “1886. corea:military officers”란 소제목으로 기록된 사실에서 놀라운 코리아의 해군력을 3차례나 걸쳐 나름대로 세밀하게 알아보았다.

결국 19척의 귀선(龜船)이라 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이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고 전통적으로 철갑선이었다는 사실과 귀선(龜船)은 분명히 장갑함(armoured ships)이었으며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발생한 남북전쟁때 사용되었던 남군의 철갑선 버지니아(CSS Virginia)와 같은 모형의 함선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 2편에서는 주로 거대한 전투함 전선을 살펴보았는데 코리아가 당시 보유한 92척의 전선은 바로 17, 18세기에 유행한 "ship of the line"도 아닌 19세기에 유행한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이었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다.
놀랍게도 당시 92척이란 척수는 서세라고 하는 영국과 프랑스외 기타제국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선 수와 맞먹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당시 세계 함선기록에 등재된 전선을 다 포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3편에서는 1886년 당시 코리아가 보유했다고 하는 나머지 소형함선들을 살펴본 결과 첫째로 방선(防船)이라 한 것을 반도역사에서는 단순하게 이를 적의 화살이나 돌 따위를 막기 위해 함선 뱃전에 방패를 설치하였다는 따위의 방패선이라 하였지만 그와같은 사실은 바른 설명이 못된다.

방선은 에드워드파커가 가드쉽(guard-ships)이라 한 것처럼 북아메리카대륙 연안에서 해상공격을 경계하는 임무의 소형 함선을 말하는 것으로 요사이 초계함 같은 것이다.

당시에 배수량:730 tons 규모의 미국 헤리스 레인(USRC Harriet Lane)같은 가드쉽(guard-ships)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해안담당하는 경비함이 당시 코리아에는 48척이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는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건보트라고 하는 포함(砲艦)이다.

특징적으로 포함이라 함은 강기슭이나 해안의 수색과 정찰 및 경비를 맡아보는 날쌔고 작은 군함을 말한다.

1886년 코리아가 이 병선(兵船) 즉 건보트(gunboats)를 132척이나 보유했다고 한 것이다.

물론 현재 로얄네이비(Royal Navy)이름으로 등록된 430톤 아리엘급(Ariel-class gunboats)과 386톤 메디나급(Medina-class)의 복합 또는 강철스크류건보트와 같은 것이라고도 판단이 가능한 것이라고 본 블로그는 보았다.

기본적으로는 건보트는 증기건보트(Steam gunboats)로서 코리아 병선에도 어뢰건보트, 어뢰 램, 철연안건보트, 강철연안건보트, 복합스크류건보트등이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해안경비보트(coast-guard boats)이라고 하는 소형 감시정인 사후선(伺候船)을 알아보았는데 이것을 당시 코리아가 254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반도역사는 규모에서 같은 레벨의 서양감시정보다 아주 작게 묘사하였고 한사코 무장선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어떤 소형경비정 또는 감시정이라 할지라도 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선 작은 무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무장이다.

이것 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고깃배로 다를 것이 없다.
이에 대한 영어자료를 보면 미국 강이나 해안에서 밀수꾼들이 넘쳐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찰하거나 탐망하여 그들을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소형감시정들 모두가 작게 크게 무장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1790년부터 구성되었다고 하는 미국밀수감시대(United States Revenue Cutter Service)소속 소형감시정으로서 위 사진과 같이 매사추세츠감시정(USRC Massachusetts)이 있는데 1792년 취역하고 1792년에 매각된 배로서 승조원은 반도기록과 같은 4-6명선이며 무장은 선회포가 4-6개 장착되었으며 그외 머스킷 소총과 피스톨등으로 간단하게 무장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라도 무장해야 밀수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무리 복작한 역사라 할지라도 간단한 이치를 벗어나 생각할 수 없으며 보편적인 상식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이 주는 이치와 상식을 벗어나는 역사는 참된 역사라 할 수 없다.

거짓역사이다.

반도역사가 그렇다.

붉은십자기를 사용하는 로얄네이비(Royal Navy)의 역사주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코리아(corea)라 해야 한다.

한반도가 아닌 서양인들이 코리아를 방문하였다고 하는 그 장소에 존재하였던 코리아를 말하는 것이다..

거대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코리아,

코리아는 세계삼한으로서 하나의 체제, 하나의 역사로 보지 않을 수가 없기에 또 한번 느껴 본다.

실로 위대한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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