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2]1886년의 조선해군력(朝鮮海軍力):92척의 전선(戰船)

한부울 2015. 1.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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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86년의 조선해군력(朝鮮海軍力):92척의 전선(戰船)

 

글쓴이:한부울

 

반도역사를 따르면 조선은 모든 것이 빈약한 나라라고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744년(영조20)에 편찬한 법전 속대전(續大典)에서 조선군선(朝鮮軍船)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선(戰船)은 가장 큰 대형 전투함(戰鬪艦)이고, 병선(兵船)은 중형 무장함(武裝艦)이며, 사후선은 대중형함에 한 척씩 부속되는 소형 부속정(小形 附屬艇)이고, 특히 거북선(龜船)은 전선과 동일한 크기의 특수함(特殊艦)이며, 방선(防船)은 전선보다 크기는 작지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중형 전투함(戰鬪艦)이라고 하였으며 이들 군선의 편제는 전선(戰船) 1척, 병선(兵船) 1척, 사후선(小形 附屬艇) 2척을 묶은 4척을 기본 단위로 하여 이들을 각 수영(水營) 산하의 각 진포(鎭浦)에 배치한 것이지만, 거기에 방선(防船) 1척을 첨가하거나 전선(戰船)  대신 거북선(龜船) 또는 방선을 대치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속대전(續大典)에서 이러한 군선들의 보유척수와 규모를 정한 것을 보면 매우 특이하다.

임진왜란(壬辰之役)이후 광해군(光海君,1575-1641,재위:1608-1623)때 '저판의 길이'를 기준으로 한다하여 가장 큰 전선을 70척, 다음 크기의 것을 55척, 가장 작은 것을 47.5∼50척으로 정한 바 있고 숙종 연간에는 이들이 각각 72.5척, 60∼65척, 57.5∼65척으로 늘어났다고 하였다.

함선 규모에서 구분을 "저판(底板)의 길이를 기준"으로 한다는 불명확한 기준점을 말하고 있는듯 한 것은 실제 저판(底板)이란 용어가 과거에 사용된 것을 나타나고 저판은 함저판(艦底板), 즉 보텀(Bottom)을 말하는 것으로 선복량(船腹量:Bottom) 선복(船腹:ship's space)의 총량 적재능력 톤수(Tonnage)를 옛날에는 전체길이(Length), 이물 선수(船首:bow)밑앞에서부터 고물 선미(船尾:stern)밑뒤까지의 길이와 선박의 폭(Beam)에서 선체의 최대폭의 길이를 재어 그 기준으로 계산 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톤수를 정한 것은 저판 길이를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것을 보면 근세사판짜기에서 각종언어로 다양하게 만들지면서 하나의 같은 기준도 이처럼 이질적으로 변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이 함선들의 승조원 즉 승원(乘員)에는 임진왜란 때의 판옥선 정원이 고작 125명 정도였고 숙종(肅宗:재위1674-1720)때 각급 전선의 정원은 각각 194명, 178명, 164명으로 증가되었다 하였으나 18세기 초 영국에서 함선분류를 하였던 6등급에서 함포20~28문 단층갑판구조에 승조원 140~200명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서양기준으로는 조선에서 제일 큰 판옥선이라 할지라도 승조원 정원이 194명이니 제일 낮은 6등급에 속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수치들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으며 앞서 올린 귀선(龜船)의 예를 들더라도 각 자료에서 말하는 승조원 숫자적개념이 근세기에 동서양이 나뉘어지면서 변형된 것으로 정상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원문]1886. corea:—military officers 11

코리아(조선):병편

By E. H. Parker, Esq.

The navy nominally consists of 92 line-of-battle ships [戰船] each manned by 80 men; 48 guard-ships [防船] each with 30 men; and 132 gunboats [兵船] each carrying 60 men; also 19 armoured ships [龜船], 254 coast-guard boats [伺候船], and several score more boats of various nondescript names. Though it is not so stated by the Chinese Commissioners, most if not all of these boats exist only on paper.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는 1886년 당시 조선(朝鮮)이 보유한 해군함선들을 각 종류별로[2]92척의 전선(戰船:line-of-battle ships), [3]48척의 방선(防船:guard-ships), [4]132척의 병선(兵船:gunboats), [1]19척의 귀선(龜船:armoured ships), [5]254척의 사후선(伺候船: coast-guard boats)

 

전선(戰船)이라 함은 해전(海戰)에서 해군(海軍)의 주력이었던 군용선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큰 대표적인 군선(軍船), 함선(艦船)을 말하는 것이라고 속대전에서도 그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 원문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1886년 당시 조선(朝鮮)이 보유하고 있던 전선(戰船)을 영국변호사겸 중국연구가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1849-1926)가 놀랍게도 "line-of-battle ships"라 하였고 보유척수를 92척이라 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line-of-battle ships"란 무엇인가?

바로 전열함(戰列艦)을 말하는 것인데 "ship of the line" 보다 발전된 용어라 할 수 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국가에서 사용된 목조 갈레온선(帆船:Galleon)이 발전함으로써 해전(海戰)에서 현측 함포(艦砲)를 나열한 일자진(一字陳), 종진(縱陣)형태로 사용한 전투함 화력 종류의 명칭이 바로 "ship of the line" 배가 늘어선다는 뜻의 최초 전열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크류(screw)가 장착된 증기선(steamship)과 함포가 커지면서 회전포탑이 등장하고 이것들이 장착되면서부터는 배틀 전선(戰船:battle ships)으로 변형되었고 배가 그냥 늘어선다는 의미의 해전에서 좀 더 강열한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이라는 뜻의 명칭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만큼 목제(木製)갈레온함선의 전열함 보다 화력과 규모가 크게 달라졌다는 뜻이다.

당시 에드워드 파커가 본 1886년은 시기적으로도 갈레온 시기를 넘어선 때다.

“92 line-of-battle ships”이라고 한 92척의 배틀쉽(戰船:battle ships)이 소속된 전열함(戰列艦)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정리하면 같은 전열함이지만 “Ship of the Line”은 16~19세기 동안만 사용된 것이고 이후 증기선(steamship)과 회전포탑(回傳砲塔:turret)이 등장한 후에는 "line-of-battle ships"라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해전에서 1880년부터 라인배틀(Line battle)에 참가하는 중형전함급의 배를 총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증기선과 회전포탑이 있는 배틀쉽(戰船:battle ships)들이 일자진을 종진으로 하여 일체이 뿜어내는 막강한 화력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전열함인 것이다.

물론 영국인들이 보기에도 당시 조선의 전선(戰船:battle ships)들이 강력한 전열함이었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엄청난 해군력을 볼 때 대조선이 해체된 경위가 궁금하다.

대조선은 어떤 치유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사실상 내분으로 인해 분리되면서 해체된 역사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식으로 대조선이 해체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이에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물질 형태 즉 영역적인 구분을 할 수 있는 토지, 각계구성원, 무기 등이 대조선이 관할하고 관리했다면 이것들의 개체 하나 하나는 절대 변하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있고 대신 관할하고 관리하던 체제만이 붕괴되었을 것이란 예측에서 그 체제가 가지고 있던 역사공간이 완전히 비우게 되는 제로게임(zero game)을 생각할 수가 있다.

"하나의 역사"를 유지하던 대조선이 해체되기 전까지 관할 한 모든 것의 행방을 찾는 방법은 바로 제로게임방식에 의한 결과에 대한 것을 역으로 추리해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조선이 보유하고 있었던 함선들도 대조선이 해체되었다고 하여 그것들이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되거나 폐기 되지 않았다면 그 기록들은 살아 있을 것이지만 본래의 대조선이 명명한 고유명칭과 소유권은 제로게임의 결과와 함께 모두 변경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해군력의 실체라 할 수 있는 각 종 거대한 전투함들을 하나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생성된 각 국호별로 전투함들의 명칭이나 소유권들이 변질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제로게임이란 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본 블로그가 아래 1886년까지 존속된 함선들의 위키자료 리스트를 시기적으로 추려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태로 나타나는데 명칭은 그렇다치고 예상대로 여러국명으로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같은 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국인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말하는 92척(隻)의 전선 보유 수자가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배틀쉽(battle ships)보유 수를 합한 것과 맞먹는 엄청난 척수이며 이것은 실로 대조선의 거대한 실체를 보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파커가 말한 전선의 보유 수자 92척 보다 4척이 많은 96척이란 수자가 다를 뿐이다.

이것들이 가르키는 진실이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똑 같은 문제를 전편 "1886년의 조선해군력(朝鮮海軍力)[1]: 귀선(龜船)과 거북선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2"에서 충분하게 설명하였고 이 글 말미에는 1886년 조선이 보유한 19척의 귀선(龜船)은 남군 철갑선 버지니아(CSS Virginia:4,100 ton), 북군 철갑선 모니터(USS Monitor:1003 ton), 그리고 카이로(USS Cairo:512 ton)와 같은 실제모형일 수도 있다 하였고 또한 독일제국이라고 알려진 독일장갑함(ironclad warships of Germany)의 16척이란 숫자와도 깊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기때문에 판단기준은 동일한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하겠다.

 

물론 작은 문제도 있다.

영국인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쓴 원문에서, 전선(戰船)을 설명하면서도“The navy nominally consists of 92 line-of-battle ships [戰船] each manned by 80 men”이라 하였던 부분에서 전선에 각 80명의 승무원을 태웠다(battle ships each manned by 80 men)고 한 사실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글쓴이 역시 이 80명의 승무원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인지 알 수가 없다.

명색이 전열함에 소속이 된 전선(戰船:line-of-battle ships)이라 하였건만 고작 80명의 승무원 운운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정성박사(한국국방연구원)의 글을 빌리면 18세기 초의 함선분류에서 함포(艦砲)100문인 군함은 1급(First Rate), 80~100문은 2급(Second Rate), 60~80문은 3급(Third Rate), 50~60문은 4급(Fourth Rate), 30~44문은 5급(Fifth Rate), 20~28문은 6급(Sixth Rate)으로 구분하였고 4급 이상의 갈레온선(帆船:Galleon)을 전투함(Battle Ship)으로 구분하여 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전열함(Ship of the line)으로 규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 다른 자료에 보면 19세기 초에 함선분류 한 것에는 함포숫자가 더 많아져 1급함은 함포(艦砲)100~130문 3층 갑판구조에 승조원 850~875명, 2급함은 함포(艦砲) 90~98문 3층 갑판구조에 승조원 700~750명, 3급함은 함포(艦砲)64~ 80문 2층 갑판구조에 승조원 500~650명으로 나타나고 4급함은 함포(艦砲)50~60문 단층 또는 2층 갑판구조에 승조원 320~420명이라 하였고 이 4급함까지 전열함에 포함된다 하였기 때문에 적어도 전열함이라고 하면 승조원은 최소 320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제일 먼저 함선 분류를 하여 등급까지 규정하였던 사실을 영국인 파커가 모를 턱이 없다.

그럼에도 80명의 승조원을 이야기하면서 전열함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모순인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쓴 숫자가 아니다.

당시 그가 조선(朝鮮)의 전선(戰船)을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이라 하였다는 것은 승조원의 숫자 역시 그들 규정에 맞게 적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같이 했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만약 실제로 파커가 책임질 수 있는 글이라면 전열함 소속으로 아무리 작은 4급함이라 하여도 320-400명이라 하였으니 최소한 승무원 숫자를 표시하려면 320면 이상의 숫자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함을 알수가 있다.

다시 함선분류 규정을 보면 그 외 전열함에 포함되지 못하는 프리깃함(frigate)의 5급함은 함포(艦砲)가 32~40문단층갑판구조에 승조원 200~300명이고, 끝으로 6급함은 함포(艦砲)20~28문 단층갑판구조에 승조원 140~200명으로 나타나 제일 작은 함선이라 할지라도 승무원이 최소 140명임을 알 수가 있기때문에 결론적으로 80 이란 숫자는 승조원의 숫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학을 연구하였다는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역시 근세기의 다른 서세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고 할 때 무엇인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려고 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고 이 원문에서 "명목상(nominally)"이란 단어를 사용한 점은 다분히 사실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가 있다.

 

또한 1886년이란 시기가 옛 전열함 갈레온을 정리하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선(戰船)부분에서 일본자료를 보면 전열함에서 장갑함(裝甲艦:ironclad)이 만들어지면서 1862년의 햄프턴로즈해전(Hampton Roads)이나 1866년의 리사해전(Battle of Lissa)의 결과로 비 장갑함은 장갑함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인식 퍼져 더 이상 목조(木造)전열함이 건조되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다.

때문에 최소 1867년부터 기존 목재 전열함들은 장갑함으로 구조변경이 시작되었고 아니면 폐선(廢船:scrapped)으로서 처리되던가 하여 어쨌던 1880년대 경까지 이래저래 사용되었으나 얼마가지 못했다는 것도 알수가 있다.

1886년이라면 이런 시기였다.

그 이후 1890년부터는 장갑함(裝甲艦, ironclad )대체된 것이 바로 전노급전함(前弩級戰艦:Pre-dreadnought)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쨌던 영국인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본 조선이 보유한 전선(戰船)은 바로 후기 더욱 강력해진 화력 중심의 전열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원문]1886. corea:—military officers 11

코리아(조선):병편

By E. H. Parker, Esq.

The army is supposed to number 989,376 men, cavalry and infantry, to wit (using the previously-described alternative names of each province) :
from which it appears that Tung King and Kwan Peh have no armies.
hu si 湖西 139,229 명
hu nan 湖南 210,574 명
ling nan 嶺南 310,447 명
hai si 海西 153,828 명
kwan tung 關東 46,839 명

Of the above,
416,685 belong to the 京案 or Seul commands
572,691 belong to the 外案 or local commands

 

1886년에 조선이 보유한 전선(戰船)규모가 이러했다면 그로부터 10년 후 갑오지역(甲午之役)즉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해군과의 규모를 비교하여 실제로 조선의 해군력이 어느정도인지 파악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1894년6월에서 1895년4월까지 발생한 갑오지역(甲午之役)의 자료를 보면 당시 청조(淸朝) 북양군(北洋軍)의 육군병력 수가 약 95만명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바로 위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의 원문자료에서 나타난 조선군사력에서 병력 수자가 나타나는데 10년 전이라 하지만 조선(朝鮮)군사병력수 989,376명이라 한 것과 거의 비슷한 숫자로 나타난다.

아마 이 숫자를 청군의 숫자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료에 일본육군병력수가 17만4000여명이라 한 것에서도 조선(朝鮮) 지방 호남(湖南)병력 210,574 명보다 적은 숫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기때문에 이 두 세력들은 조선의 실질 군사력과 비교하여도 형편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군력에서도 보면 중국이라 하는 북양함대(北洋艦隊)의 함선 보유척수가 99척인 반면 일본은 주력군함과 어뢰정을 합쳐 55척의 함선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앞엣 언급한 내용이지만 영국인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말한 10년전 조선의 보유함선 수는 전부를 합쳐 545척수(隻數)로 나타나기때문에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음을 알 수가 있다.

더하여 그로부터도 약 100년 이전상황을 기록한 속대전의 위 표를 보면 1744년에 776척이나 된다 하였으니 조선말 군사상황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수치임을 알 수가 있다.

 

갑오지역(甲午之役)대결상황에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보다시피 일본은 불과 4500톤급 미만에 순양함(Cruisers)11척과 어뢰정(魚雷艇:Torpedo boat) 22척만을 가지고 겁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 사실에서 보면 10년전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목격한 조선(朝鮮)에서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s) 92척의 전선(戰船)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어찌 이런 사실을 우리가 꿈엔들 알 수 있었겠는가.

 

 

                                                 [Matsushima(松島) cruiser]

 

 

                                                           [定遠號戰艦]

 

위 두개의 사진은 갑오지역(甲午之役)대결상황에서 일본과 북양함대의 대표적인 함선이다.

일본 순양함(Cruisers)  마쓰시마(松島Matsushima)는 4,285톤 규모의 마스트하나짜리이고 반면 북양함대의 주력함 정원철갑함(定遠號戰艦)은 7,355톤 규모의 마스트 두개짜리이다.

그렇지만 아래 영국의 국호를 가지고 있는 전선 즉 전열함 베틀쉽(Battle Ship)으로서 붉은 십자기가 그려져 있는"로드니 함선(HMS Rodney,1884)"은 10,300 톤급의 마스트가 세개짜리이다.

본 블로그 글 "붉은 십자기(red cross flag)는 조선(朝鮮)깃발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8"에서 붉은 십자기 역시 해상 코리아 깃발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당시 전열함에는 마스트가 두개짜리도 있고 세개짜리도 있겠으나 규모가 이와 같다는 것은 조선의 전열함도 영국함과 다르지 않다고 할 때 가히 어마어마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모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쪼그라들었다고 생각하던 모든 우리의 역사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지금부터라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재고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 또 있는데 갑오지역(청일전쟁) 당시 일본은 전함을 보유할 만한 재원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문에 할 수 없이 대형함선(Battle Ship)에 대항하여 소형의 빠른 전함, 특히 순양함과 어뢰정을 선호했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1895년까지 일본이라고 하던 왜()가 감히 조선을 농단할 수 있었던 입장이 분명코 아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같은 그들의 빈곤한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일본세력들은 19세기 프랑스의 청년학파(Jeune Ecole)주의를 따랐다고까지 하였다.

그것을 현재 근세사에서는 일본이 당시 프랑스 흉내를 내었다고 말하지만 아마도 프랑스란 국호를 사용하게 된 세력은 조선이나 고려에서 일본이 아니라 바로 왜()라 하였던 그 세력이라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중국문헌에도 갑오지역 시기에 일본이라 하지 않고 그냥 왜()라고 만 칭했다.

당시 청일전쟁 때 우키요에(浮世繪:Ukiyoe)화가 삽화그림을 보면 일본군인들의 모습에서 나폴레옹모자를 착용한 서양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10년전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목격한 조선(朝鮮)의 92척 전선(戰船)을 일본의 보잘 것 없는 11척의 순양함에다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북양함대라고 하는 북양에 한정된 해군력을 견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당시 세계를 포괄하는 우월한 해군력이고 군사력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위표에 나타나는 일본이나 청나라의 해군력에서 주력함선들은 솔직히 조선의 전열함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도 명확한 사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영국인 변호사이며 중국학연구가 에드워드 파커(Edward Harper Parker)가 1886년 조선군사력을 조사하고 난 그로부터 10년 후 청일전쟁 즉 갑오지역이 발생하였지만 그것에서 들어난 일본과 북양함대의 함선 수치나 규모를 보면 조선에 비해 그야말로 보잘 것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확인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남아 있는 우리나라 사료에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없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서양함선자료에서 정말 세세하게 또는 자세하게 기록이 남겨진 것과 비교하면 반도역사가 말하는 전투함들은 세부적으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조차도 할 수 없게 하는 이상한 사료들만 존재할 뿐이다.
톤수가 몇톤이며 어느 건조창에서 건조하였고 그것이 언제 취역을 하였고 폐선이 언제 되었으며 어떤 무기를 탑재했는가 등 가장 기본적인 각 함선들의 설명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은 일부러 빠뜨리지 않았다면 옮겨 쓰거나 편집하는 과정에서 빼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와같은 사료들은 명칭만 사료일 뿐이지 역사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분명히 1744년(영조20)에 편찬하였다고 하는 속대전에 다수의 전투함이 있었다고 하였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사실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점은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최소한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외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수도 없다.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역사기록은 정당한 역사 기록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있었다고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역사기록이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기록이기때문에 일제에 의해 농단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진정한 역사사료라고 할 수 있겠는가.

특히 반도역사가 말하는 조선말기는 세상말기 처럼 인식되게 하는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사실 확인할 것처럼 조선말기라고 하던 1886년때 조선해군력이 이렇듯 엄청나다는 것은 절대 반도역사를 꺼집어 낼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당시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변호사까지 하던 사람이 기록한 자료이다.

과연 태양이 지지 않던 나라가 어떤 실체였을까?

반도역사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자존의 역사가 아니라 지질이도 못난 역사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이러한 반도역사를 배우고 신봉한다.

한마디로 반도역사는 황당하다 할 수밖에 없다.

지질이도 못난 역사라고 알고 있었다는 사실자체가 화가 나는 일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군력과 군사력을 가진 역사 대조선이 말해주는 것은 역사의 참 진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것이다.

그동안 반도역사로 인해 우리가 너무 많은 심리적 상처와 마음의 피폐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얼마나 무익하고 부질 없는(useless)것인가를 새삼알게 하는 것이틀림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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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Ajax, 1880(Ajax class ironclad battleship), 8,510 tons 345,

HMS Anson, 1886(Admiral-class battleship), 10,600 long tons, 530

 

 

HMS Superb,1875(Belleisle class)9,710 tons, 654

 

HMS Rodney,1884(Admiral George Brydges Rodney)10,300 tons,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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