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요동(遼東)이 어딘가?

한부울 2013. 4. 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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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遼東)이 어딘가?

 

글쓴이:한부울

 

강남(江南)과 요동(遼東)!

상식적으로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1)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중종 27년(1532,가정 11)2월30일

政院以漂流唐人姜福等招辭入啓

정원이 표류해온 중국인 강복 등의 초사를 입계하다

伐木人等, 或持斧、或持鏵、或持木弓ㆍ鐵箭, 問俺等曰: ‘汝等倭人耶, 㺚子耶?’ 姜福曰: ‘非是倭人、㺚子, 乃江南遼東人也。’ 多般哀乞, 伐木人新舊船, 各一隻到泊, 而新船九人, 固拒不應, 舊船六人許諾, 先饋俺等熱水, 又饋熟豆半升後, 伐木四日載船, 又待風三日, 第七日, 至二月初四日朝食時, 俺等同坐舊船。

벌목하는 사람들은 혹은 도끼를 가지고 혹은 솥을 가졌으며 혹은 목궁(木弓)과 철전(鐵箭)을 가졌는데 우리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왜인인가. 달자(㺚子)인가.’ 하기에, 강복이 대답하기를 ‘왜인도 달자도 아니고 강남(江南)의 요동(遼東)사람이다.’ 하고 여러 가지로 애걸하였다. 벌목하는 사람은 새 배와 낡은 배 각 1척을 바닷가에 정박(定泊)시켜 두었는데, 새 배의 9인은 거절하여서 응하지 않았고, 낡은 배의 6인이 허락하고 먼저 더운 물과 삶은 콩 반 되를 주었다.

 

(2)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선조 26년(1593,만력 21)10월22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들과 함께 왜적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하다

應南曰: “臣前爲濟州牧使, 粗諳水路。 自濟州往江南, 則頗遠, 自全羅道往遼東, 則甚近。 若由湖南, 直犯遼東, 則孰能禦之?” 上驚曰: “此言然乎? 雖不由西北, 亦可達於遼東乎?”

“신이 전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있었기 때문에 대강 수로(水路)를 알고 있는데, 제주에서 중국(X) 강남(江南)을 가려면 매우 멀지만 전라도에서 요동에 가기는 매우 가깝습니다. 만일 호남(湖南)으로 해서 바로 요동을 침범한다면 누가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하니, 상이 놀라면서 이르기를,

“이 말이 사실인가? 서북(西北)을 경유하지 않고도 요동에 갈 수가 있는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요동(遼東)은 한반도에서 압록강을 넘어 서북쪽에 위치한 신중국(新中國) 영역인 요동성(遼東城) 즉 요녕성(遼寧省)이다.

이 요동성(遼東城)도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시기, 모택동이가 대륙을 손아귀 넣고 난 직후인 1949년에 이 성(省)이 설치되었으나 한국전쟁(1950)이 끝난 시점인 1954년에 일부는 길림성(吉林省)에 병합이 되었고 나머지는 요서성(遼西省)과 합병하여 지금의 요녕성(遼寧省)이 되었다는 사실이 있으며 이 성도(省都)는 희한하게 안동(安東)이라 했다.

 

물론 반도사(半島史)적으로 보면 그곳 범주,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을 생각 할 수도 없다.

그곳에서 더 이상 서(西)쪽으로 내 뒷다간 한반도를 기준으로 하는 반도사가 천길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동(遼東)은 늘 상 조선(朝鮮)의 서(西)쪽 영역과 맞물려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요동(遼東)이 서쪽으로 더 나가면 조선(朝鮮)은 갑자기 한반도에서 탈출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도저히 함부로 벗어 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된다는 안타까운 족쇄에 묶여 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근세기 역사판짜기 주도자들은 이러한 갑작스러운 불상사를 막기 위해 모든 신경을 써 철저하게 위장하고 포장하여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 삼한 역사를 한반도에 묶어두려 했으니 그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까지 미친다.

어쨌던 요동(遼東)은 현재 한반도 북쪽이라고 보이지만 조선(朝鮮)의 서쪽이라고 하고 있고 이것을 서쪽변방(西邊)이라고까지 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모택동(毛澤東)이가 1949년 동아시아대륙을 차고앉는 순간부터 이러한 공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주로 조선인이라고 판단되는 무고한 수많은 인명을 전장터에 밀어 넣어 살상케 하면서 기억(記憶:recollection)을 지우게 하더니 1966년부터 근 15-16년 동안 공들이던 살인귀, 파괴자로 변이시킨 홍위병(紅衛兵)을 앞세워 대숙청이라는 명목아래 동아시아 신중국 대륙 전역에 걸쳐 어마어마한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할 수 있는 인문(人文)말살작업인 속칭 문화혁명(文化革命:1966-1976)을 통하여 기존역사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그 위에 다시 심고, 세우는 형태로 다각도로 공들였기 때문에 현재 후세인들은 그것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가?

그렇더라도 들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이다.

위 조선왕조실록편에 보면 난데없이 강남(江南)을 이야기 하면서 그곳에 멀지 않는 곳에 이 요동(遼東)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도대체 요동(遼東)은 북에 갔다, 남에 갔다, 고무줄 지명(地名)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어떻게 양자강 이남에 있었을 강남(江南)과 같은 지역에 있었다고 기록에 나타나는가 하는 말이다.

 

게시한 조선왕조실록(1)번 기사를 보면

政院以漂流唐人姜福等招辭入啓

제목‘정원이 표류해온 중국인 강복 등의 초사를 입계하다.’에서 강복은 중국인라고 변역하였지만 당인(唐人)이라 한 것을 보면 고려인(高麗人)일 가능성이 많다.

왜 우리나라 번역인들은 중국이란 글자가 원문에 없음에도 중국이라고 번역할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대사상, 모화사상 아무리 그렇더라도 원문 그대로 해석함이 맞는데 없는 사실도 꼭 첨가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원문에서 당인들은 스스로 왜인도 달자도 아니고 강남(江南)의 요동(遼東)사람이라고 한 사실에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요동사람들을 당시 조선 사관(史官)들이 정리하여 당인(唐人)이라고 결론짓고 있고 자료에 보면 요동사람들이 스스로를 고구려 땅이라고 하여 고려인이라고 하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어떻게 요동(遼東)이 강남(江南)에 있을 수가 있는가?

 

(2)번 기사를 보면

김응남(金應南:1546-1598)이 말하길

“신이 전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있었기 때문에 대강 수로(水路)를 알고 있는데, 제주에서 중국(X) 강남(江南)을 가려면 매우 멀지만 전라도에서 요동에 가기는 매우 가깝습니다. 만일 호남(湖南)으로 해서 바로 요동(遼東)을 침범한다면 누가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도 중국이라는 글자가 원문에 없는데 중국 강남이라고 번역한다.

참...

자 위 글을 한반도 지형을 바탕으로 그대로 따져 보자.

김응남이 제목목사로 있었기 때문에 수로(水路)를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제주에서 강남 가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제주에서 강남가려면 매우 멀다 했다.

당시 배 사정으로 보았을 때 항로 길이 약 500km되니 멀다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라도에서 요동에 가기는 매우 가깝다고 한 말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한반도 기준으로 동아시아대륙 양자강 이남을 강남이라고 할 때 강남(江南)가는 길은 말 그대로 수로(水路)로서의 정 서(西)쪽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생각에 따라 직선 항로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보아 멀다라는 의미를 쉽게 이해 할 수 없게 한다.

그것보다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현재 한반도에서 서(西)쪽이라고 할 수도 없는 위치에 요녕성(遼寧省)을 요동으로 본다면 한반도 전라도에서 요동(遼東)가는 길을 구글로 재어 보니 거리가 약 770km 로서 강남 항로 보다 약 200km가 더 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머니마니가 아니라 강남과 비교 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동은 강남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기어코 조선왕조실록 기사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긴가?

 

이러한 도식을 한반도를 기준에서 한다면 도저히 답을 구할 수가 없다.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조선 선조때 문신 김응남은 무엇 때문에 강남과 요동을 같은 지역에 있는 것처럼 하여 거리로 비교하는 것이며 김응남이 왕에게‘만일 호남(湖南)으로 해서 바로 요동(遼東)을 침범한다면 누가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반도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때가 때인 만큼 선조26년(1593)이면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이듬해이다.

마치 한반도 전라도, 호남(湖南)에 왜구가 있어 요동(遼東), 이북(以北)에 있는 조선(朝鮮)을 침범할 수 있다는 염려의 소리로 들린다.

이것이 어찌 한반도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긴가?

선조임금이 서천(西遷)을 하였던 어떻던 간에 조선의 영토가 요동(遼東)을 통해 들어 갈 수 있는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 할 수 있다.

만약 왜구가 전라도 서남에서 침범하여 들어왔다고 한다면 대각선으로 볼 때 호남을 거쳐 요동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호남(湖南)은 상당히 넓은 영역을 통칭하였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렇게 넓게 호칭되던 호남(湖南)과 요동(遼東)은 그렇게 멀지 않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르게 생각 해 볼 때 요동역시 호남과 비슷하게 넓은 영역을 통칭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는데 일단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로 나눔을 보면 넓은 지역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왜구가 남쪽 해안에서 침범했다면 호남(湖南)이라는 넓은 지역을 지나는 것으로 요동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고 전라도(全羅道) 즉 조선에 닿게 되는 것을 염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라도(全羅道) 역시 라(羅)는 태양, 또는 더운 것을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때 아열대기후 또는 사막을 안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강남과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문장은 현재 한반도에 조선(朝鮮)이 없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문장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곳이 한반도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遼 멀다.

辽远。-요원하다. 아득하게 멀다.

辽阔。-광활하다. 아득히 넓다.

 

요(遼)는 조선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넓은 지역이거나 동(東)에서, 서(西)까지 멀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글쓴이는 이것을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으로 보고 있다.

솔직히 한반도 제주에서 강남이라고 해봤다 양자강 이남이니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상해라고 한다면 멀다 했지만 실제 바로 코앞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가까우니 해방 전 임시정부를 만든 곳도 상해이지만 퍽 하면 한반도에서 피해 도착하는 곳은 상해였다.

그러나 오히려 전라도에서 요녕성(遼寧省)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전혀 지형적인 것에서 어긋나고 맞지 않는다.

 

왜 표류해온 당나라 사람 즉 고려인(高麗人) 강복이 스스로 왜인도 달자도 아니고 강남(江南)의 요동(遼東)사람이라고 했을까?

한번 반도사를 인정하고 요동(遼東)이 강남(江南)에 있을 수 있는가? 아주아주 쉽게 물어보라.

한반도 북쪽인 요동(遼東)은 ‘춥다’란 개념이 강하다.

하지만 강남(江南)은 ‘덥다’란 개념이 강하다.

극과 극의 기후인데 같은 지역이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위 두가지의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토대삼아 문제점을 돌출해 보았지만 분명 강남(江南)과 요동(遼東)은 같이 불렸거나 같은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강남은 제주에서 멀고 요동은 전라도에서 가깝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미련하게 자꾸 한반도를 떠 올리지마라.

이만큼 했으면 귀신이라도 알아 들었을 것이다.

조선 뿐만 아니라 강남, 요동 모두 북아메리카대륙을 그려야 한다.

본 블로그 글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을 참고하시라 하고 싶다.

그곳에 정답이 있을 수밖에 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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