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유구(琉球)는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이다.

한부울 2013. 3. 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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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 서변을 거쳐가는 강남길과 유구국(琉球國)

유구(琉球)는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

 

세조 8년(1462,천순 6) 2월28일 (계사)

유구국 사신 선위사 이계손의 문견사목(聞見事目)

臣據琉球國圖問, “自貴國至日本所經島名及國內頭頭地名”, 其答說與圖無異。但云“自朝鮮發向琉球國, 則從日本西邊, 向東南去。”此言與圖各異。臣更據圖問我前聞從日本西邊, 向西南去, 答曰, “向西南去, 則江南路也。”

신이《유구국도(琉球國圖)》에 의거하여 묻기를, ‘귀국(貴國)에서부터 일본(日本)에 이르기까지 경과하는 섬[島]이름과 국내의 두두지명(頭頭地名)은 무엇인가?’ 하니, 그 대답한 말이 지도(地圖)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르기를, ‘조선(朝鮮)에서부터 떠나서 유구국(琉球國)으로 향하려면, 일본(日本)의 서쪽해변(海邊)을 따라서 동남쪽으로 향하여 간다.’ 하였는데, 이 말이 지도와 각각 달랐습니다. 신이 다시 지도에 의거하여 묻기를, ‘나는 전에 들으니, 일본의 서쪽해변을 따라서 서쪽으로 향하여 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대답하기를, ‘서남쪽으로 향하여 가면 강남(江南)으로 가는 길이다.’고 하였습니다.

 

위 기록은 조선(朝鮮)초기 문신 이계손(李繼孫, 1423-1484)의 문견사목(聞見事目)이다.

선위사(宣慰使)는 여러 나라의 사신(使臣)이 조선에 입국하였을 때 그 노고를 위문하기 위하여 파견된 관리로서 이계손이 유국국(琉球國)사신에게 물어 적었던 기록이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에서 출발하여 일본 서쪽 해변을 거쳐 가는 방향에 따라 강남(江南)과 유구국(琉球國)으로 가는 행로가 크게 나뉘어 짐을 알게 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내용을 요점적으로 들여다 보면 아래와 같다.

 

신(臣)이 다시 지도에 의거하여 유구길을 물었는데 

나는 전에 들으니,

從日本西邊, 向西南去,

일본 서변(西邊)을 따라 서남(西南)으로 간다고 들었다.

答曰, “向西南去, 則江南路也

유구사신이 답하길 '서남(西南)으로 가면 바로 강남(江南)으로 가는 길이다’라 하였고

則從日本西邊, 向東南去

'동남쪽으로 가면 바로 유구국(琉球國)이다'라는 유구사신의 설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몇 가지 보충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서남쪽으로 가면 則江南路也 라하여 강남으로 가는 길이라고 기존 번역가들은 해석하였는데 이것은 강남이 그로 부터 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해석이라고 볼 때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강남(江南)길(路)이다’라고 읽게 되어 곧 서남쪽으로 가면 강남길(江南路)이라고 하여 으로가 붙은 것 보다 강남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본 서변(西邊)을 지나 서남(西南)쪽으로 가면 그곳 가까이에 강남(江南)이 있다는 말이 된다.

서남쪽에 도착지점과 강남(江南)은 그리 멀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리를 하면 조선에서 유구국으로 가는 길을 이계손이 유구사신에게 물었고 유구사신이 말하길 조선에서 일본 서변을 지나 서남쪽으로 가면 강남길에 당도하며 동남쪽으로 가면 유구국이라는 사실을 그림처럼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있는 일본과 유구의 위치가 과연 맞는가 하는 문제와 강남길이 또한 기록과 일치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아래 지도 그림을 가지고 살펴본다.

 

[클릭 원본]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그림1]

 

위 지도를 보면  이계손(李繼孫, 1423-1484)의 문견사목(聞見事目)이 기록한 사실을 토대로 볼 때 첫째 방향부터 뒤틀려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먼저 조선(朝鮮)에서 유구국으로 길을 찾을 때 일본 서변(西邊) 즉 서쪽 변두리를 지나가야 하는데 현재 열도의 서쪽 변두리가 애매모호 하기가 짝이 없다.

일본 현 열도가 남북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서도 아닌 엉거주춤한 형태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기우려져 있기 때문에 서쪽 변두리가 애매모호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충 현 큐슈섬의 서쪽변을 지나가보면 대륙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하는 길 역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억지로 방향을 끼워 맞춘다면 모를까 제대로 서남쪽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현재 동아시아대륙의 강남(江南)은 정서(正西)를 나타낸다.

분명 문견사목(聞見事目)기록에는 일본 서변에서 서남(西南)방향에 있어야 할 강남(江南)길이 아니라 온통 강남 전부를 지정되는 위치로서 정서(正西)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본래 기록한 형태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남길이 아니라 강남 동변 이라고 해야 할 이런 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강남길이라고 하려면 무언가 좁다란 길 같은 육지가 바탕이되고 생성되어야 하는 땅이나 지역일 텐데 동아시아대륙 강남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일본 서변에서 분명 동남쪽으로 가야 유구국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현재는 유구는 안타깝게도 동남쪽이 아니라 정남(正南)쪽에 유구라고 하는 오키나와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문견사목(聞見事目)기록과 전혀 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일본(日本)이 지금 열도(列島)에 역사적으로 근거한 것이라면 이러한 역사기록과 두 말 할 것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렇듯 역사기록과 위치가 다르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역사적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으로서 역사가 가지고 있는 진실성에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열도를 일본이라고 하는 모든 역사는 허구라고 판단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일본 열도 그 아래 몇 개의 작은 도서(島嶼)를 묶어 오키나와(Okinawa, 沖繩)라고 하며 그곳을 옛 유구국(琉球國)라고 하는 사실도 마찬가지라고 보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100년 만에 이렇게 간단하게 들통날 이런 엉터리같은 역사 구도가 어째서 필요하였을까?

그것은 아메리카대륙을 바탕으로 한 동방역사를 뜯어고쳐 동아시아대륙에 심어야 할 필요성이 신생세력인 서세에게 절실했다는 것으로서 근거지도 마땅하게 없는 동양계 왜구정치세력들을 앞세워 일본이라고 이름붙여 고려의 땅, 한반도에 삼한 역사 전체를 끼워넣기 작업을 하였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세계삼한역사를 작게 나누고 분리하여 세계삼한역사 전부를 엉터리 없게 고려영역의 일부인 작디 작은 한반도에 앉히면서부터 부득히 일본과 유구가 한반도 근역에 위치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이렇듯 엉터리 없는 그것도 전혀 사실 근거도 제시할 수 없는 거짓의 일본과 유구를 만들어 무조건 지정하고 그것을 동아시아역사라고 가르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상식화된 역사이며 이것은 그들의 철저한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해적집단들이 지배한 질서속에 어떠한 정의도 없었고 천리가 지켜지지 않는 세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한 부도덕한 논리가 만들어낸 고도의 사기 술책이었던 것이다.

 

본 블로그가 작성한 위 지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열도(列島)의 서변(西邊) 즉 서쪽 변두리 뿐만 아니라 현재 강남위치가 그렇고 일본 열도 서변에서 동남쪽에 있어야 할 유구국이 어떻게 정남쪽에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땅이 갑자기 서쪽으로 밀렸단 말인가?

참으로 답답한 것은 열도의 정남쪽에 위치한 몇 개의 작은 도서(島嶼)를 묶어 오키나와(Okinawa, 沖繩)라고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이 오키나와를 근세기에 갑자기 유구라고 한 것은 무엇인가 본래의 유구를 감추고자 한 것이 틀림 없다는 사실이다.

이 오키나와를 월래성(越來城)이 있었던 유구국(琉球國)이라 하면서 1875년 일본이 강제로 유구국에 군대를 보내어 주둔시켰다는 것이고 그 때부터 일본영토가 되었다는데 그 이후 그들의 조처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곳을 호차(胡差)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대륙사에 따르면 호차(胡差)란 호칭은 1875년 일본이 유구국을 점령하기 전 유구국이 늘상 조선과 중국에게 조공하였는데 이 때 중국에서 파견되어 온 사절(使節)을 이르던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세기에 일본은 서세비호로 갑자기 힘이 강해지면서 군대를 유구에 주둔시켜 점령하였고 이어 당연하게 중국조공 문화를 차단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조공문화의 하나인 호차(胡差)란 지칭을 더 이상 유구에 붙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일본이 점령하고서도 이곳을 호차라 하였다는 것은 일본이 중국 문화를 감히 차단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고 다르게 본다면 일본은 유구를 점령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 지금 유구와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유구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유구의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풀려고 한다면 동아시아대륙사가 아닌 다른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까지 추측 할 수 있어진다.

 

[푸에르토리코-필리핀 거리: 거의 30,000km] 이 거리는 범선으로 거의 7-8개월 걸릴 거리이다.

 

[푸에르토리코-푸에르토리코 지구를 휘돌 때거리 :40,000km] 

 

본 블로그에서 호차(胡差)의 호(胡)는 청(淸)나라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고려(高麗)를 지칭한 것이고 또한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과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호차(胡差)는 고려의 사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호가 있었던 아메리카대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구국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세력 일본이 아니라 고려의 땅으로 흡수된 것이라는 설명을 대신할 수 있어진다.

만약 유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중앙아메리카대륙 카리브해라면 일본이 아니라 곧 스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집어본다.

왜냐하면 대조선이 해체 된 후 모든 땅이 분리 될 때 최고점인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미서전쟁(美西戰爭:Spanish-American War)라 하여 쿠바(cuba)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데 서인도제도가 있는 카리브해의 쿠바에서 남아메리카대륙 남쪽 끝 혼곶(Cape Horn)을 휘돌아 다시 북진하여 서태평양의 필리핀이란 공간까지 가서 동시전쟁을 치룰 밖에 없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4개월 남짓한 같은 시기에 벌어진 동시다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전쟁발생원칙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당시 모든 시간적, 공간적인 문제점을 초월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분명하게 있다 할 것이다.

당시 아무리 우수한 함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1900년까지 전함이 만톤을 넘지 못한 수준이며 동시다발전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초강대국으로서 막강한 화력을 가진 현재 미국 자신도 섣불리 치룰 수 없는 부담스러웠을 전쟁 방식인 것이다.

하물며 19세기 말에 과연 이러한 구도가 가능하였는지 재검토 되어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컨데 이러한 전쟁구도는 허구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파나마운하(Panama Canal)가 완성된 시기가 1914년 8월 15일인데 중앙아메리카대륙에서 곧 바로 태평양을 거쳐 서태평양 지금의 필리핀으로 군사이동이 가능했다는 것은 정말로 황당한 설정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위의 두개의 구글 사진을 올렸는데 첫번째는 파나마운하가 개통되기 전이니 남아메리카대륙 혼곶을 휘돌아 필리핀까지의 도착 점을 그려 본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필리핀 거리가 거의 30,000km나 되는데 이 거리는 당시 쾌속선이라고 하는 범선으로도 거의 7-8개월 걸린다는 사실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찰한 결과이다.

전쟁기간이 고작 4개월인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30,000km 라는 것은 지구전체를 휘도는 직선거리가 약 40.000km 이니 얼마나 먼 거리인가를 짐작 하고도 남는다.

이것을 어떻게 믿으라는 이야긴가?

이러한 역사구도는 있지도 않는 사실을 역사라고 꾸민 그야말로 거짓스럽고 허구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연장시켜 이야기 한다면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패한 후 항복시기를 미국에 간청하여 조정했다고 한 사실이 있다는데 이것 역시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패전한 마당에 패전 시기를 조정해달라고 승전국에 간청할 수 있는가?

배알도 없는 족속이 저지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근세기역사가 모두 이와같은 황당한 이야기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게 패전시기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삼한역사 한반도 구축이란 명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고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가 깊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바로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추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찍이 파나마운하 준공날짜 1914년 8월 15일을 맞추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스페인드로 가려진 고려로부터의 그들 신생서양세력들이 나름대로의 독립을 상징한 것이라고 풀이 되며 이것에 일시를 일제가 맞춘 것이라고 할 때 정말 맥빠지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사라진 역사 세계삼한역사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세계삼한역사를 지우기 위해 억지로 꿰맞춘 듯한 역사사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다시 돌아와 유구가 있었던 곳, 특히 중앙아메리카대륙 카리브해(Caribbean Sea)에서 쟁탈전이 있었다는 것은 유구를 스페인이 점령하였는데 동의하며 이것은 곧 고려임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라고 하기 보단 고려와 미국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선은 1881년에 해체되었지만 고려는 1922년까지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필린핀은 동아시아대륙의 필리핀(Philippines)이 아니라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임을 확신한다.

바로 이 푸에르토리코가 끈을 잡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부터 미국의 실제 영토가 되었다.

미국과 전쟁을 치룬 스페인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확실하게 신라와 연결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다.

삼한역사에서 보면 신라는 고려에게 분명코 합병당한 나라이다.

때문에 스페인의 땅은 신라땅이지만 결국 고려 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가 당시 얼마나 숭상받았던 나라인가는 현재까지 일본이 고려의 사자상 또는 고려견을 신봉한다는 사실과 또한 통하는 이야기다.

 

스페인은 삼한 코리아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92

 

그렇다면 일본(日本)과 유구국(琉球國)은 도대체 어디에 있어야 맞는가?

 

이것을 판단하는데는 본 블로그가 연구하고 주장한 토대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수많은 시간을 통한 수백 종에 이르는 식물, 동물들을 대상으로 생물학적 분석, DNA 분석 자료에 따른 지리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는 나름대로 담대한(?) 주장을 거듭하였는데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위의 의문점을 돌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적기에 사용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일본과 유구, 남만(南蠻), 남번, 섬라(暹羅)등의 위치를 짐작하기에 충분한 여러 글에서 나타난 사실들을 고려 할 때 일본과 유구는 모두 아열대, 열대기후에서 사방이 바다로 접한 섬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남아메리카대륙 이었고 실제로 기후적으로 보았을 때 동인도(東印度)제도 보다는 서인도(西印度)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매번 지적하였다.

특히 일본과 유구는 아열대 또는 열대기후와 사면이 바다라는 지형적인 환경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섬라(暹羅)와 적미(赤眉) 그리고 남아메리카 http://blog.daum.net/han0114/17050125

아선약(阿仙藥)이 밝혀주는 섬라(暹羅)의 정 위치는 남아메리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90

토마토(tomato)의 원산 남미(南美)는 남만(南蠻)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57

 

그러한 사실과 함께 아래 본 블로그가 작성한 지도 그림을 참고한다.

 

[클릭 원본]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그림2]

 

위 지도는 무엇보다도 비교를 용이하게 하였다.

본 글 첫머리에 자료 조선왕조실록 기록인 세조8년(1462)기사 유구국 사신 선위사(宣慰使) 이계손(李繼孫, 1423-1484)의 문견사목(聞見事目)이 기록한 일본과 그리고 강남(江南), 유구국(琉球國)이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가 면밀하게 살펴 본 결과 위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림1]에서 지적된 위치 문제에서 뿐만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방향까지 감안하여 최대한으로 정확성을 찾으려 했다.

 

일본이 쿠바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구도상 보면 그렇게 됨이 옳고 그렇게 구도를 그리고 방향을 맞추어 보면 모든 것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유구가 실제 위치한 곳으로 바로 일본 서변을 지나 동남쪽으로 방향을 재어보니 바로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가 나타나는데 특이하게 영어명칭에 바람(風, wind)이 붙어 있다.

놀랍게도 일본에서 유구를 琉球之海中道路 하는데 유구의 바람은 바다의 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다.
1609年萨摩入侵琉球时期的故事
또한 1609년 살마가 유구를 침입한시기에 고사로서 유구의 바람(琉球之風)이라고 하는 극이 현재까지 일본에 전해진다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역시
바람(風)이다.

이렇게 볼 때 정말로 놀랍게도 유구와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는 바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확인된다.

 

다시 유구(琉球)의 한어풀이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원이라는 구형의 뜻이다.

 

 

琉 유리 류
유리. 돌. 규석(硅石). 나라 이름.
球 구. [원형의 입체물] 공. 볼(ball).

 

유구는 유리의 원형, 돌 원형, 나라이름으로서의 원형 등으로 해석할 수 있어 모든 것에서 둥근것을 나타냄을 알 수가 있는데 역시 유구라고 판단되는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의 모양을 보면 명백하게 원()를 표시하듯 각  섬들이 둥글게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마치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에서 사용한 진법 학익진(鶴翼陣)의 모양처럼 반원 형태로 바람을 싸고 있는 듯한 형태를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도 수긍하기가 부족하다면 네덜란드가 일본으로 둔갑하는 이야긴데 리워드 제도(Leeward Islands)는 바로 유구라고 판단되는 원드워드 제도의 북쪽 여러섬들이다.

이 섬들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속령들이라는 사실에서 특히 네덜란드는 한문이름이 화란(和蘭)이라 하였다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동양계 일본인들이 스스로 화인(和人, 倭人)이라고 하여 네덜란드인인 것처럼 하였다는 사실에서 네덜란드가 현 일본으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을 수 없는 근세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이한 혼란스러움이라 할 수 있다.

 

자 이 이상 더 무엇을 말하랴.

 

 

그렇다면 정말로 분명해 진다.

일본이라고 보아야 하는 쿠바(cuba)서변을 지나 동남쪽에 유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강남을 확인 할 차례이다.

강남길이라고 판단되는 곳은 바로 남, 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좁은 지대, 사전에서 말하길 지리적으로는 테완테펙지협(Tehuantepec地峽)과 파나마지협 사이의 지역을 말하고 일반적으로는 멕시코 남부를 제외한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의 6개 공화국 및 벨리즈를 가리키는 중아메리카대륙에 기다란 곡선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강남로(江南路)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다음편에 곧바로 강남(江南)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한다.

 

이렇게 볼 때 문견사목(聞見事目)에 기록된 사실은 모두 깨끗하게 증명이 되었다.

다만 그 기록은 현 동아시아대륙을 말한 것이 아니라 중앙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역사기득권 가진 그들이 동아시아대륙에 일본과 유구가 있었다고 하여도 이제 소용이 없는 일이다.

기득권 역사는 만고(萬古)의 모순덩어리다.

앞에서 유구가 중국에게 조공할 때 중국사신을 호차라고 한 것에서 일본이 중국조공문화라 하여 차단했다고 하였지만 1875년 일본이 유구를 자국영토로 삼았음에도 느닷없이 호차(胡差)라 한 사실은 자기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가 혼란을 느껴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호차(胡差)의 호는 청이 아니라 바로 고려였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또한 북아메리카대륙에 있는 오대호 근역을 나타내는 상징 호(胡)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엉터리인 것은 현 동아시아대륙에 일본과 유구가 없었다는 것이 본질이다.

아무리 맞추어 보려 해도 역사상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이제 대낮같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대륙에 있다는 강남 역시 본질이 아니라는 결론이 생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할 때 조선은 북아메리카대륙에 존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일본, 유구, 강남은 이러한 조선과 근접한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일본과 유구 역시 중앙아메리카대륙 아열대 및 열대기후 카리브해를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역사찾기에서 실제로 큰 발견은 유구가 바로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란 사실을 밝히고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본 열도 아래 오키나와가 유구라고 여태껏 우격다짐 속에 어쩔 수 없이 배웠는데 유구가 실제로 카리브해의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란 사실은 그야말로 기절 초풍할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놀라기도 했지만 여태 속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말문이 막혀 먹었던 것이 소화조차 되질 않는다.

하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는 그렇게 놀랄 일만도 아님도 알았다.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나름대로 이렇듯 중요한 부분을 밝혀나가는 입장에서 볼 때 한편으론 역시 부듯하고 보람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새롭게 알린다는 자체가 중요하고 매우 흥분되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놀람에 앞서 우리는 이제부터 긴 잠에서 깨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하는 충격을 받았다고 본다.

사라 없어져야 할 반도역사는 우리에게 암적인 존재이고 폐해만 가져다 불 뿐 존재할 가지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한껏 폭을 넓혀서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수 있는 넉넉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싶다.

그것이 토대가 되어 미래 위대한 삼한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같이 해본다.

이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엉터리같은 반도사관에서 깨끗하게 벗어나는 일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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