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스페인은 삼한 코리아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한부울 2012. 11.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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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삼한 코리아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글쓴이:한부울

 

스페인의 땅은 신라 땅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487

 

1402년경 항해기술자 신라(新羅)인들이 나타났다고 하는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 스페인남부, 발렌시아주(Valencia)에 실라(silla)란 지명이 문신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의 땅은 신라 땅이다’란 글에서 이미 밝힌바가 있다.

또한 실제 코리아(coria)란 지명(地名)이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지방 카세레스(Caceres)주에 있으며 그곳 지척에 수도 마덕리(馬德里, Madrid)란 지명역시 우리에게 친숙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비야(Sevilla)남쪽에 코리아 델 리오(Coria del Rio)란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일본 무사들의 후예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다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과거 일본 사무라이 중 카톨릭(예수회, Society of Jesus)개종을 원하던 사람들이 일본 내(內)에서는 살기 힘들어 이 마을로 건너와 정착하고 살았다는 것인데 현재 일본이 열도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면 단순하게 ‘건너와서’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유럽 스페인과 현재 동아시아 열도라는 지리적인 한계에 대한 설명이 불분명하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결국 서세가 그들의 목적에 맞게 만든 근대사에 꿰맞춘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포르투갈인 카톨릭 예수회 항해자들과 일본인이 처음 접촉한 시기가 1563년이라고 하였는데 카톨릭 예수회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 1532-1597)가 당시 항해술로 보아 거의 불가능한 위치에 있을 동아시아 열도 일본에 상륙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이고 그는 1597년 7월 열도의 나가사키(長崎)에서 사망했다는 것에서 볼 때 이러한 근대사의 기록은 매우 독단적(獨斷的)이고 편의적인 설명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이야기다.

 

(coria)

 

(Coria del Rio) 

 

(silla)

 

 

단언컨대 동아시아대륙으로 들어 갈 수도, 나갈 수 없었던 시기가 바로 17세기였다는 점을 감안하고 이러한 사실을 이해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 당시 항해술은 신라에 의해 독점되었을 가능성이 넘치고 넘친다.

오죽했으면 콜럼버스가 태평양이 바다가 아니라 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이 이어져 있는 육지로 인식했다는 사실에서 보더라도 그렇고 지금은 그러한 인식을 콜럼버스 착각이라고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태평양에 대한 인식은 바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고 지리학 전문적인 학술도 전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침반이 등장한 것이다.

나침반은 신라의 발명품이란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도 되지 않는 동아시아 열도 일본에서 유럽 스페인까지 제집 드나들듯 지척간에 표현을 쓴다는 것은 맞지 않고 그러한 표현을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를 분석하는데 중대한 사고적인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엉터리같은 역사사실에서 볼 때 절대적으로 공평한 역사가 아닌 그들만의 역사 구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간에 카톨릭 예수회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다수 역사관계자들은 열도에 존재하던 일본인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포르투갈인이 일본인을 접촉하던 시점 1563년과 시기적으로도 매우 근접하고 동기 역시 조선을 상대로 이권과 이득을 취하고자 하던 해양세력들의 난동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체가 당시 포르투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왜노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조선에 존속된 상태에서 조직적인 반란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면 거대한 물리적 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거처없이 떠돌이식 전전하던 왜노입장이라면 당장에 조직적인 문제도 그렇겠지만 결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배후의 도움만 가지고 실행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모자라는 전쟁이라고 보인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이 지원하는 무기와 비용만을 받아 독자적으로 전쟁수행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인구적으로 따져 볼 때도 동원된 군사인원이 근 100만명이라면 당시 열도의 인력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를 동원해도 물자이동 무기이동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한 인구상황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확인 할 수 있었던 문제이다.

이것은 열도 일본인들이 전쟁한 것이 아니라 조선 주위에 있는 역사적으로 일본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모든 이해세력들이 모여 한판 치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역사전면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은 예수회를 자칭하던 서세가 중심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고 다만 역사만 열도 일본인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포트투갈 예수회가 일본으로 둔갑하여 당시 신라(新羅)를 상대로 하던 아니면 조선(朝鮮)을 상대로 하였던 간에 일본이란 주체는 동아시아 열도의 일본인이 아닐 가능성이 많고 그들세력은 동아시아 열도가 아닌 곳에서 활동하던 세력들이었음을 우리는 알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본 블로그가 탐구한 바로는 결국 지리적인 한계를 감안 할 때 일본인(현재 열도일본인이라는 범주의 경계를 넘어서는 관점)들은 특히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남만(南蠻)세력과 해상무역하던 세력들이라고 보이고, 남미(南美)브라질주변국, 중남부아프리카대륙등지에서 활동하던 세력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곳에서 존재하던 세력들이 가장 침범하기 좋은 장소, 즉 아메리카대륙을 침범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 아닌가 한다.

결국 일본후예들이 위의 근거지에서부터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동아시아 열도에 있었다고 하는 일본이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짚고 넘어 가야하는 것에서 신라(新羅)가 근세기 역사에서 스페인(spain)으로 둔갑한 것이사실이라면 비록 코리아(coria)지명이 몇 군데 남아 있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지역을 완벽하게 통치한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면 삼한역사주체가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 동양인으로 한정하려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서양(東西洋)을 구분하는 지칭은 근대사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면서 기원을 예수회로 정하고 그것을 정점으로 출발될 때부터라고 볼 수 있고 시기로 따진다면 1차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1920년 이후 갑작스럽게 세계사가 정립 되어야 하면서부터 생성된 지칭임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

그 주체가 바로 현재 기독교 예수회라고 하는 종교 집단세력이 선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일본 후예들이 예수회 개종을 위해 정착하였다는 사실도 근세기에 서세가 만든 역사 구도와 일치하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이동(移動) 속성상(屬性上), 1402년 처음 신라인(新羅人)들이 발렌시아(Valencia)에 도착하였다면 그 이후 서쪽에 있는 이 코리아 델 리오(Coria del Rio)까지 갈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북쪽으로 떨어진 카세레스(Caceres)주 코리아(coria)에도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집단적 이동성은 전쟁으로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1402년의 신라(新羅)는 당시 조선시대가 도래한 것이어서 역사적으로 이미 사라진 세력이다.

그렇지만 여러자료에서 조선(朝鮮:1398-1881)이 존재할 때 신라(新羅)역시 어딘가에서 공존하였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에서 밝혀지고 들어나는 사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힘들게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의 퍼즐(puzzle)을 맞출 때 기존 역사 구도에서 맞추려하니 자꾸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때도 신라인(新羅人)들은 실제로 대동양(大東洋)이라고 하였던 대서양(大西洋)을 중심으로 아메리카대륙과 유럽대륙 그리고 아프리카대륙을 넘나 들었던 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조건에서 해양술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세계인들 중에 그것도 날고 긴다 하던 항해를 녹으로 삼던 일체의 무리들을 제치고 신라인들이 나침반(羅針盤, compass)을 발명한 것이다.

필요에 의해 발명한 것이다.

과거 서세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식민지시대를 창달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때 나침반이 얼마나 중요하였겠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정보에 앞서가는 세력들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밖에 없는 이치라는 것을 대입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이치이다.

본 블로그가 오랜 시간을 통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삼한역사(三韓歷史)에서 특히 신라(新羅)계가 스페인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이러한 지명에 의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도 여러 가지 종(種)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터넷자료를 인용하면 미국 등 세계 각 국의 코리아(Corea)란 성(性)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페인계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이러한 사실은 진위를 불문하고 매우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카스티야문장:Arms of the Crown Castile with the Royal Crest]

 

스페인계 코리아(Corea)는 스페인 북부의 카스티야(Castile)지역에서 나왔다고 한다.

1085년에 스페인 중부지방 톨레도(Toledo)를 카스티야왕국(Kings of Castile)의 히메네스왕조(Jiménez Dynasty), 알폰소 6세(Alfonso VI, 1072–1109)가 정복하여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 카스티야 왕국(Kings of Castile)은 중세 유럽, 이베리아반도 중앙부에 있었던 왕국으로서 특히 종교적으로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국가들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축출하는 718년부터 1492년 기간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에서 주도적 역할을 완수하였고 훗날 아라곤 왕국(Kingdom of Aragon:1035-1715)과 통합하여 통일 스페인왕국의 핵심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Coria was taken twice during the Reconquista, firstly after 1085. It was lost to the Almoravids just after 1109 and unsuccessfully besieged in 1138. The second and permanent conquest was after a two-month siege in 1142.

 

또한 이 카스티야왕국은 근세사에서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하였고 프랑스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고 있는 합스부르크왕조(House of Habsburg)와 이어진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카스티야왕국은 유럽역사의 근원적인 고리가 되었음도 알 수가 있다.

결국 이 카스티야왕국이 신라계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키 포인트이다.

스페인계 성(性)에서 특히 코리아란 명칭이 특별한데 이것을 보면 Correa, Corea, Correas, Correaz, Coreas, Coreaz, Correass, Coreazz, Coria 등으로 나타나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삼한(三韓)명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수의 다양한 변종의 성(性)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계열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많은 성씨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이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코리아(Corea)라는 성(性)은 아주 오래 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이들이 신대륙(新大陸)이라고 하는 북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간 것도 1534년이라고 하니 일찍이 북아메리카가 코리아(Corea)라는 성(性)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대륙에 관한 것으로 뉴욕의 뉴로셀(New Rochelle)은 신라사이(新羅謝爾)라 했다는 사실을 본 블로그에서 밝혔다.

 

뉴욕의 뉴로셀(New Rochelle)은 신라사이(新羅謝爾)라 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46

 

이 도시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위그노교도들이라고 하는데 루이14세가 1685년 개신교 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퐁텐블로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을 발효하여 본격적으로 개신교도들을 탄압하던 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그노교도 100만명이 망명하였다는데 이때 이 뉴로셀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Calabria)주 알비(Albi)지방엔 코리아(Corea) 성(性)을 가진 집단촌(集團村)있다 하였고 이 마을 가까운 곳에 실라국립공원(Sila National Park)이 있다.

또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 중에 이탈리아 상인이 쓴 기행문에 임진왜란 당시 포로였던 조선인(朝鮮人) 노예(奴隸)라고도 하는 안토니오 코리아(Antonio Corea)에 대한 기록이 있다지만 노예였다는 사실을 뒤 받침할  어떠한 증거도 발견된 것이 없다는 것을 보면 다분히 서세와 일제가 근세기에 장난 친 것에 불과한 것으로서 우리가 믿지 않는 편이 맞을 듯하다.

 

어쨌거나 삼한의 역사주체들은 절대 노예 따위로 연연하였거나 존속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스스로가 이러한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 할 필요성이 있다.

오히려 간사하고 음흉한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에게 억하심정(抑何心情)이 강하고 적대심이 노골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지나간 오래전 역사에서 그들이 삼한역사주체에게 심한 통제(統制)와 노예적(奴隸的)신분으로 살았던 사실이 분명하게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증거들이다.

그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예가 바로 임진왜란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왜란이 발생된 동기가 그들의 자립성과 독립성을 찾기 위한 반란이었다는 점도 우리가 먼저 인식해야 함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결과 분명한 것은 스페인 땅에 우리의 삼한역사의 명칭인 코리아와 실라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스페인 땅은 우리 삼한역사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와함께 알 수 있는 것은 신라, 또는 코리아 로 통칭되던 삼한세력은 세계 역사의 주체였다는 사실이다.

그 중 코리아(coria)로 또는 신라(silla)로 명칭 되던 신라(新羅)는 비록 스페인으로 둔갑하여 우리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신라가 망하지 않고 근대사까지 그대로 존속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의 근원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맨날 허접한 왜놈들에게 허구한날 말도 안되게 이리치이고 저리치였다는 사실만 알고 낙심하거나 자학하고 그것도 모자라 열등의식까지 느꼈다는 것은 정말 마냥 웃을 수 없는 한심스러운 역사 상식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여러 가지 근본적으로 잘못된 역사로 인하여 마음이 정립할 수 없을 만치 피폐하게 되었고 역사에서 정신적인 지주를 마땅히 찾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허하게 세월만 낭비하고 말았다.

삼한이 세계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이 이렇게 명확한데도 이러한 사실조차 예측 또는 추측조차 할 수 없도록 그동안 반도역사로부터 심한 제약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누가 뭐라해도 이러한 마음의 부담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부터 명실공히 세계삼한역사의 당당한 시발을 알린다 한들 누가 말리겠는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Castle of Coria (1472-1478)

 

 

 

 

 

Castle of Coria (1472-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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