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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해명(解明)왕자는 로마 장군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이다.
글쓴이:한부울
궁금해 물을 것인다.
삼한(三韓)의 역사가 그렇게도 대단한 것인가?
그렇다, 대단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일제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1875-1953)'가 스스로 탄복해서 발설한 말이 아래 나온다.
"보라! 실로 조선(朝鮮)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다..." 라고 적대국 괴수가 우리의 삼한 역사를 이렇게 흠모해 마지않았다.
위대(偉大)하는 것은 크게 뛰어나고 훌륭하다라는 것이고 찬란(燦爛)하다는 것은 눈부시게 빛나다 란 뜻이며 찬영(燦榮)하다는 융성(隆盛), 창성(昌盛)하여 빛나다란 뜻이다.
이러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은 곧 조선(朝鮮)은 현재 한반도역사에 갇혀있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고 위대한 체제의 국가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과거 로마(Rome)를 이렇게 찬사하였을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식민지역사로 흠결이 났지만 이것이 진짜 삼한(三韓)역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삼한(三韓)이어야 하고 삼한(三韓)이 세계사를 이끌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서 볼 때 한반도만의 한국인 아닌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백인종과도 연관된다는 사실은 삼한(三韓)역사가 곧 세계를 지배한 역사임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다.
다민족을 관할하지 않으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漢)이란 명칭과 청나라(清國)라는 실체에서 삼한(三韓)은 어떤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한(漢)과 청(清)은 삼한(三韓)의 부칭일뿐이다.
때문에 한(漢)과 청(清)은 삼한(三韓)을 대신하거나 가로 막고 있는 헛개비이름라고 할 수 있다.
한(漢)족은 허구란 사실은 이래저래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때문에 한(漢)은 결코 중국이 될 수 없으며 청나라 역시 중국이 아니며 다만 근세기에 동양사를 새롭게 판짜기 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삼한(三韓)을 지우고 그 자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지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어느 화교(華僑)역사학자의 양심고백에서
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
즉 한족(漢族)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蕃)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고 하는 매우 간단명료한 글을 볼 수가 있다.
또 아래에 내용을 보면
中國」一辭在西周初年出現,當時是指首都,是地區名辭而非地理名辭。毛傳:「中國,京師也」,是最好的註腳。1912年孫文創立中華民國之後,中國」才有近代國家正式名稱的意義,是政治名辭 也是地理名辭。清末很多國家在非正式場合稱滿清為 中國,但在正式文書上仍稱「清國」,例如馬關條約 日文版第二條,清國將左記土地主權(遼東半島、台灣澎湖)及其上的城壘兵器製造所官有物永遠割給日本」。
‘中國’이란 말은 西周 初에 출현한 것이다. 당시의 수도를 가리키고 지역이름이며 지리명사가 아니다. ’毛傳’에 "中國은 京師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912년 손문이 중화민국을 창립한 이후 ‘중국’은 근대국가의 정식명칭으로서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명사이며 지리명사다. 청 말에 많은 나라가 있었고 정식은 아니지만 만청(滿淸)을 합해 중국이라 했다. 다만 정식 문서상의 이름은 ‘청국’이었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 일문판제2조에 "청국은 장차 아래 토지주권(요동반도, 대만 팽호) 및 그 위의 성루병기제조소관물을 영구히 일본에 떼어준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한(漢)족이 허구란 사실과 함께 중국(中國)이란 것도 당시 수도(Capital)를 가르키는 지역이름이라고 하였으며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영(民勞)편 모전(毛詩故訓傳)에 "中國은 京師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천자 거주지(天子之所居也)인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백리 이내의 땅을 기(畿)라고 하였고 중심인 왕성이 있는 지역을 경사(京師)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청나라의 만주원류고에서는 중국을 봉성(奉省)이라고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덧 붙인다면 20세기 초에 세계전지역에서 대조선을 대신한 신생서양세력에 의해 주도된 역사판짜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동아시아대륙에서도 동양사가 만들어진다.
이런 틈새가 1882년부터인데 이 때부터 동아시아대륙을 차고 앉은 신중국세력들은 삼한(三韓)을 대신한 중국(中國)을 대칭하여야 할 역사주체를 찾았고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미 사라진 만청세력을 청국(清國)이라 등장시켜 청나라로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그에 걸맞는 사서들을 꾸며 양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완성된 시기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이 완성된 시기라고 보는데 이 책은 1931년 3월 22일 장려화(臧勵龢:1875 - ?)등에 의해서 중국인명사전(中國人名辭典)과 각종 역사서(歷史書), 지리지(地理志)등을 인용(引用)하여 엮은 것으로 무려 3년여에 걸쳐 성문화하고 교정하면서 정정하고 보완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후 4년여에 걸쳐 다시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서 완성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1940년을 넘어 이 책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 된다.
솔직히 이때까지 동양사가 정립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역사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39년부터 세계2차대전이 시작되는데 실제로 1940년대는 세계질서가 개편되던 혼란스런 시기에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이 완성되면서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치 않은 중국역사에서 동아시아대륙 신중국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분리의 역사가 비로소 완성되는 의미이고 소멸된 한(漢)족을 앞세운 신중국을 만들기 위한 철저한 기획된 작업의 끝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작성된 원본 삼한역사를 분리하여 이렇게 신중국 역사를 동아시아대륙에 심었던 것은 세계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고 세계삼한역사는 사라지고 만 것이 된다.
어쨌던 신중국에서는 이런 노력으로 말미암아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삼국지란 소설책이 졸지에 당당하게 중국역사서로 탈바꿈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漢)은 1910년 신해혁명 이후 만들어진 신조어(新造語) 가능성?
http://blog.daum.net/han0114/17044211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한국인이 과연 백인종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기로 한다.
한국인(韓)은 황인종이지만 실상은 백인종이라는 이야기다.
앞편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고려(高麗)문신 김부식(金富軾)이가 흑인(黑人), 즉 니그로이드(Negroid)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바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관점으로 볼 때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국가체제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요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다.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역사를 가진 국가가 어찌 단일민족만을 고집할 수 있었겠는가?
다문화적인 국가가 되지 않으면 세계를 통치하기가 현재나 과거 예를 보듯이 불가능한일이 틀림이 없다.
미국이 인권의 나라이었기 때문에 다문화체제의 국가를 설립한 것일까?
아니다.
대조선이 가지고 잇던 국가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민주주의체제로 완성시킨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단일민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과거 세계삼한역사에서 거대한 다문화적인 국가이였음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결국 한반도에만 집착하게 하여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도록 하려는 일제의 고도의 심리전에서 나온 장난이었을 뿐인데 그것에 오히려 함몰되어 그것이 마치 순결을 포장한 것처럼 편협적인 생각을 갖게되었다는 사실에서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이런 심리현상은 바로 일제가 우리역사에 덫을 채운 것으로서 정신적 외상(外傷)에서 발생된 트라우마(Trauma)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다.
왜 우리가 한반도 영역에만 만족해야 하는가?
삼한(三韓)이 한국인의 역사라면 편협한 반도사관에서 당장 탈피하여 역사관을 넓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삼한이란 거대한 역사에서 한국인이란 구성원에는 백인도 있을 수 있고 흑인도 있을 수 있다는 원칙에서 다음에 열거하는 다양한 예를 진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느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한국인이 백인종일 가능성의 높은 예를 찾아 들어가고자 한다.
먼저 들어나는 자료들은 한국인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는 집단을 극북제어(極北諸語 Hyperborean languages)집단 혹은 고(古)시베리아어(Paleosiberian)를 사용하는 고아시아족(古亞細亞), 그리고 인도(印度) 고다바리강(Godavari江)이남의 남인도(南印度)에 주로 거주하면서 드라비다어(語)를 사용하는 부족 드라비다족(Dravidians), 러시아연방 동남부영내의 아무르(黑龍江:Amur)강 어귀와 사할린 섬에 살고 있는 길랴크족(Gilyak, Nivkh), 퉁구스족(Tungus), 흉노족(匈奴族), 선비족(鮮卑族)등이라고 열거하고 있다.
사실 세계삼한역사 관점으로 따지고 보면 현재 아시아역사의 구성원 역시 아시아 인종 특히 흔히들 몽골계로 알고 있는 인종이 주체가 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란 조심스러움이 있다.
예를 들어 퉁구스족이나 선비족은 북아메리카대륙에 기인한다는 사실 또한 무시 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흉노족(匈奴族)역시 역사에서 유럽전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영역적인 면에서 유럽인종과 혼합될 수 있는 인종적인 문제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아틸라(attila:375-476)가 흉노족이라면 그는 서양인일까 동양인일 하는 문제에 봉착하였지만 서양역사학자들은 이 아틸라가 동양 고구려와 연결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밝히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코카서스인종이라는 설이다.
한간에 한국인의 종족적 기원을 탐색하기 위한 연구결과가 자료로 등장하였다는데 이것을 보면 한국인의 피수색 지수가 0.55 라는 수치에서 백인종에 가깝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 피부색 지수가 최대값인 4에 가까우면 흑인종(黑人:Negroid)이라고 할 수 있다는데 한국인의 피부색 지수는 몽골계 황색인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아 아시아의 제(諸)종족(種族)집단 중 가장 백인종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수치로서 비교하면 일본인 0.81, 북중국인 1.06, 남중국인 1.49에 비해 0.55는 실제로 반값도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피부색에서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누는데 덜 노랗다고 한들 백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먼저 알고 있는 이치이다.
하지만 여기서 대비하고 하는 것은 바로 역사성에 의한 것이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중심지는 백인종의 거주지인 유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이러한 거석문화는 유럽을 벗어날 경우 중동지역을 거쳐, 인도와 인도네시아에만 아주 미미한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에는 유럽과 같은 거석문화가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한국인의 주거문화(住居文化)에서도 특히 온돌(溫突:ondol)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온돌은 세계적으로 고대 로마(羅馬, Rome)와 한국(corea)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라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무거운 자료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오랜 시간동안 본 블로그에서 밝혀 본 것처럼 로마(羅馬, Rome)가 고구려 또는 신라이고 그리스(希臘:Greece)가 고구려 또는 고려(高麗)라는 사실이 촘촘히 밝혀진 마당에서 보면 한국인이 고대(古代) 로마(羅馬, Rome)를 건국한 집단과 부정만 할 수 없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황들이란 이야기다.
이어 더욱 놀라운 사실이 역사기록에서 밝혀지는데 이러한 유사성(類似性)은 세계삼한역사의 정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로마 제정 초기 아우구스투스 시대(Augustus:BC27-AD14)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푸블리우스 퀸틸리우스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46 BC-9AD)가 게르만족(Germanic peoples)과의 토이토부르크숲(Teutoburg Forest)전투에서 게르만 헤르스커(headquarters)의 족장 아르미니우스(Arminius)가 이끄는 게르만 부족연합군에게 철저히 패하게 되어 그가 지휘하던 로마군단(Legions, that XVII, XVIII and XIX)이 모두 괴멸 당하였고 이러한 결과에 절망한 바투스는 그 때 패장으로서 자살을 선택하였는데 이 자살방식이 공교롭게도 고구려 유리명왕(瑠璃明王:BC 38-AD18, 재위:BC19-AD18)의 아들 해명(解明: BC12-AC9)이 창을 거꾸로 꽂아놓고 그 위로 말을 달리게 하여 자결하였다는 자살방식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고구려의 해명(解明)왕자라고 인식되게 하는 퀸틸리우스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는 로마황제의 종손녀와 결혼할 정도로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고 로마제국의 주요 속주인 아프리카와 시리아의 총독을 역임한 후 서기 7년에 게르마니아(Germania)에 부임, 라인 강(Rhine River)유역에 주둔하는 5개 군단을 지휘하는 최고의 지휘관이 되었다.
이 바루스는 또한 시리아 총독 재임시 유대에서 일어난 유대인반란을 진압하면서 2천여 명의 유대인 반란군을 십자가형에 처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단할 때 거의 직선거리 8200km 거리의 지중해와 한반도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자살방식이 이렇게 같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어떻게 상식적으로 동서양 극과 극을 오가는 지형적상황에서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정보가 하나같이 소통되어 이렇듯 역사가 똑같은 기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의문이 발생한다.
이것이 2000년에 일어난 소통으로 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좀 더 따져 들어가면 참으로 이상하게도 부왕의 명으로 고구려 왕자 해명(解明)이 자살하여 죽은 년도(AD9)와 로마 장군 바루스(Varus)가 자살한 AD9년도가 판박이처럼 같다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BC27-AD14)
퀸틸리우스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
그기다가 그들의 지배한 왕들 역시 같은 시대의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 유리명왕(瑠璃明王:BC38-AD18, 재위:BC19-AD18)과 로마 아우구스투스(Augustus:BC27-AD14) 역시 거의 시대가 같아 동일인물이라고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판단할 수있는 것은 초기 고대 로마(羅馬, Rome)가 곧 고구려(高句麗)이었음을 명확하게 알게 하는 숨은 역사 기록인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인가?
고구려가 로마라는 사실에서 고구려 영역이 아프리카, 시리아까지라니 어떻게 놀랍지 않겠는가?
로마가 백인계라면 삼한역사 주체 고구려 역시 백인계가 될 수밖에 없는 논리가 정확하게 성립된다.
또한 한국인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 전통 신발의 유형은 짚신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독특한 재질을 가진 신발은 역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백인종인 인도유럽어족(Indo-European languages)의 월씨(月氏) 토카라족(Tocharian)이 사용하던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신발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인인 고구려인들이 남긴 무덤의 벽화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복식도 이 토카리족의 옷과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근원적으로 토카라족과 고구려의 역사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본 블로그에서도 호(胡)를 이야기 하면서 분명 호(胡)가 호수 호(湖)를 이르는 명칭이라 하여 북아메리카대륙 오대호(五大湖)를 영역으로 한 집단적 호칭이라고 밝혔던 적이 있다.
여기서 월지국(月支國)의 초승달 문양은 아사달(阿斯達)문양에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해 뜨는 동방의 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아사달이 곧 태양이 뜨는 동방(東邦)에 기원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며 곧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지정하기도 했다.
또한 고 변광현 교수는 티벳(Tibet)은 고대의 대월씨국(大月氏國, 大月支)으로 씨(氏)와 지(支)가 통한다고 하면서 이는 다시 월(月)나라를 뜻하는 월지국(月支國)이 영어로 웨일즈(Wales)와 상통한다고 했으며 영국에서 웨일즈(Wales)는 이방인(異邦人)을 뜻하는 말로 여겨왔는데 앞서 언급한 서역이라고 하는 호(胡)땅의 호두(胡桃)를 뜻하는 월넛(Walnut)은 웨일즈에서 비롯한 말이라고 한 사실도 이러한 사실들이 엿가락 엮이듯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지국(月支國)은 인도유럽어족(印度歐洲語族:Indo-European languages)이라 하였고 월지(月支)는 토하리인(Tocharians)과 함께 인도스키타이(Indo-Scythians)의 일종에서 이 토하리인이 월씨(月氏)이고 토카라족(Tocharian)이라 한 것이다.
토하리인(Tocharians)은 인도유럽어족 중 제일 동(東)쪽에 위치하였다는 종족이었기 때문에 월지국(月支國)의 초승달 문양 아사달(阿斯達)이란 사실에서 "해 뜨는 동방의 땅" 곧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지정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월씨국(大月氏國, 大月支)이란 티벳도 현재 위치가 아닐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면 샴발라제국도 현 티벳에서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월씨(月氏), 토카라족(Tocharian)은 월지국(月支國), 아사달(阿斯達), 토하리인(Tocharians)은 같은 것이다.
이들은 백인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사달(阿斯達) 구성원들은 백인종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단군(檀君) 조선(朝鮮)때의 서울을 아사달(阿斯達)이라고 하였으니 조선 서울에 백인종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마찬가지로 변광현 교수의 주장인 월지국(月支國)이 웨일즈(Wales)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웨일즈가 백인종인 것은 다 잘아는 사실이다.
호(胡)는 북아메리카 대호(大湖)를 지칭한 것?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3
또 여기서 더 한다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은 일련의 한국 고유의 설화와 전설은 백인종이 거주하는 이란, 중앙아시아, 소아시아지역의 전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언급한다.
이것과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보는 문제인데 지한파로 알려진 독일학자 안드레 에카르트(Andre Eckardt:1884-1974)는 1928년에 자신의 저서(Indo-European語族과 韓國語를 결부시키는 學說)에서 한국어가 언어적으로 알타이어의 교착어가 아니라 인도-유럽어(印度歐洲語族:Indo-European languages)계통의 굴절어(屈折語:inflectional language)임을 분명히 하면서 게르만어(Germanic languages)를 비롯한 인도-유럽어족(印度歐洲語族:Indo-European languages)의 언어는 모두 ‘주어+술어+목적어’의 어순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게르만어 만은 한국어의 ‘주어+목적어+술어’ 어순처럼 똑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바로 서기 400년대에 만들어진 고대 게르만 민족이 라틴문자와 부분적으로 병용했던 24자로 이루어진 문자체계 룬문자 비문(runic alphabet)에 나타난다는 명확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이 아니라 근세기 이전 세계공용어라고 확신하는 인도아리아어(語)이며 범어(梵語)인 산스크리트어(Sanskrit)와 마찬가지로 인도-유럽어(印度歐洲語族:Indo-European languages)계통이란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 또한 바로 백인종과 연관되는 사실이다.
물론 역사자료에서 유일본(孤本)이라든가 단문고증(單文孤證) 즉 한 개의 증거(證據)가 이렇듯 충분(充分)하지 않다지만 한국인이 백인종이라고 하는 사실에서 주변 상황을 명확히 밝혀주는 방증(傍證)들이 이렇듯 널려있다는 사실은 무시되어선 안되는 일이다.
흔히들 기득권 역사학자들이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실증주의 역사해석 방법을 들먹이는데 이 실증주의를 엄밀하게 이야기 한다면 오히려 역사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기득권보호방패로서 또는 이유있는 반증이나 항의에 대한 공격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사하계에서는 이것을 실증주의라고 하지만 이미 그들이 만든 틀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원칙에서 나오는 발상이라는 사실에서 도저히 공평할 수 없는 게임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재야역사가들이 예를 들어 기존 역사와 현격하게 다른 하나의 어떤 증거를 찾았다고 해보자.
실제로 이것은 증거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어 실증이라고 해보자.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기존 사학계가 그것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사학계는 근본이 일제사학을 추종하는 친일이익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들의 자리가 한 순간 날아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아마도 기를 싸고 막을 것이 뻔한 이치이다.
이것을 실증주의라고 하고 강변한다면 어불성설이다.
한국인이 백인종이라는 설이 이렇게 다양함에도 실증이라는 틀에서 감히 배설할 수 없는 곤란함이 존재한다.
그렇더라도 또 하나의 방증(傍證)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번역책으로 잘 알려진 내용인데 바로 한국전쟁에 참가하기도 하고 러시아계미국인이며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Eastern Orthodoxy)신자 블라디미르 미케위치(Wladimir W. Mitkewich)란 사람이 쓴<코리언즈 아 화이트:Koreans are White:1956,Meador>란 책에서 한국인은 백인종이라고 분명히 역설했다는 사실을 접할 수가 있다.
내가 버지니아(Virginia)의 호프웰(Hopewell)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일하던 때는 1942년이었다. 거기에서 살 때 나는 정기적으로 그리스 정교회에 나갔다. 일요일 예배가 끝난 후 사제는 교회 앞 잔디밭에 사람들을 모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들은 "네, 네, 네"였다. 몇 년이 흘러 1947년, 나는 서울에서 미군을 위해 엔지니어로 일했다. 한국에서 나는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네, 네. 네" 였다. (위 책 87쪽)
위 글이 그의 글 일부인데 그가 미국에 있는 그리스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에서 ‘아멘’을 ‘예’라고 하는 것과 한국의 ‘예’란 음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인스피레이션(靈感:inspiration)을 얻었다는 요지인데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해괴한 주장이라고 아예 폄하해버리는 악습이 존재하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사학계란 현실이다.
아니면 어떤가?
검토하고 그에 대한 반증을 내 놓으면 그만이지 아예 해과한 주장이라고 통걸로 무시하는 처사는 속이 좁아 터진 기득권 지키기에서 나온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인에게 일갈하길 “한국인은 사기와 거짓을 일삼는 아시아인들과 같지 않다. 그들은 속으로는 백인이다. 유럽인과 미국인들이여, 한국인을 그대들의 형제자매로 동등하게 받아들일 지어다.”
얼마나 진보적인 주장인가?하지만 씁씁한 맛도 없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어쨌거나 삼한역사의 주체는 코카소이드 즉 백인종(白人種:Caucasoid)이라고 하여야 한다.
한발 물러나 인종적으로 한국인을 도저히 백인종이라고 할 수 없다면 삼한역사 속에 한국인은 코카소이드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그렇다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백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하게 확인하였다.
그것과 함께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고구려 해명(解明)왕자가 로마 장군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라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무겁게 다가온다.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삼한역사를 이리저리 분리하여 나누고 각기 짜집한 것이라고 할 때 사건 동기가 이렇게 저렇게 조작되었겠지만 두 역사인물이 하나의 인물처럼 동시에 취한 독특한 자살하는 방식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각기 다른 곳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분명이 아니다.
이것은 한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이 취한 자살방식이지 당시에 전화같은 통신이 있어 그렇게 양쪽에서 합의하고 약속 것이 아니라면 8200km나 떨어진 극동과 극서에서 동시에 이루진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인은 백인종이라고 한 블라디미르 미케위치(Wladimir W. Mitkewich)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질까봐 두려웠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몰랐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던 한반도는 로마의 식민지라고까지 하였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한반도가 로마의 식민지인가 아니면 로마가 고구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로마가 고구려라면 그것을 우리는 삼한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 속에 한국인은 백인종이라는 결론이다.
현재 우리가 한반도에 있어 황인종(黃人種:Mongoloid, Yellow race) 즉 몽골로이드란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수색 지수가 0.55 라는 수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다.
앞서 일제는 패하고 떠나면서까지 일제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1875-1953)가 스스로 "보라! 실로 조선(朝鮮)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다..." 라고 하였다는 것은 한국인의 역사가 백인종을 지배하는 역사였음을 간접적으로 읽고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실로 소름이 끼친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朝鮮)의 영광(榮光)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한국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핵심이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교육의 노예가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요점인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우리의 영혼까지 철저하게 파내고 파괴해버릴 심사였던 것이다.
그것은 삼한역사에 대한 그들의 특이한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토록 철저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일제는 떠나 망령이 되었다고 안심하겠지만 천만에 그들에게 훈련이 된 졸개들은 사학계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아직도 깊숙하게 버티고 있으며 그 졸개들이 뿌려놓은 씨앗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지금은 도도하게 기득권을 꿰차고 있을뿐만아니라 언제까지나 존재하려 한다.
식민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아베 노부유키의 장담처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결국 그들의 호언장담처럼 일제가 만든 반도역사로 인하여 종국에 가서 우리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면서 분열할 것이 훤히 보인다는 말이다.
반도역사로 인하여 결국 나라가 또 다시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삼한역사를 반도역사로 보지 말고 세계역사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백인종이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미케위치(Wladimir W. Mitkewich)가 세계인에게 한 말 “한국인은 사기와 거짓을 일삼는 아시아인들과 같지 않다. 그들은 속으로는 백인이다."란 말 속에 그들이 우리를 보는 경외로움이 분명하게 묻어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근세기에 자행한 일들을 보더라도 사기와 거짓으로 역사를 꾸민 일본이나 신중국과는 다르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측은하게 보았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속으로 백인이다 란 말에서 느끼는 것은 거대한 삼한역사의 영혼을 말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삼한역사가 결국 백인종의 역사라고 할지라도 결코 예속 될 수 없는 도도한 자존의 역사가 그 곳에 있어 분명 백인종을 다스린 역사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세계삼한역사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었다.
위대하고 찬란하였으며 찬영한 그래서 백인종을 지배한 삼한역사를 밝혀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러한 역사를 어떠한 질곡에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또한 분명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가 장담한 것처럼 우리 스스로가 반도역사에 함몰된다면 반드시 그들의 바램처럼 지리멸렬할 것이고 또 다시 국가 존패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 뻔한 이치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삼한역사 주체로서의 자존도 희망도 망실되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 틀림이 없다.
서양인들이 경외하고 일제두목이 흠모했던 말 “한국인은 사기와 거짓을 일삼는 아시아인들과 같지 않다"."조선(朝鮮)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다" 라는 말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당당한 역사주체로서 삼한역사를 지켜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세손손 이어 이 영광된 역사를 가슴에 가득 품을 수 있도록 좀 더 역사찾기에 노력하여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한다.
자랑스러운 삼한역사는 백인과 흑인을 아우르고 세계를 통치한 것이다.
이 이상 무엇을 원하는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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