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인물

김부식(金富軾)은 흑인(黑人)이다.

한부울 2013. 2. 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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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金富軾)은 흑인(黑人)이다.

 

한부울

 

무슨 망발인가 할 것이다.

그렇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잘 이해되지 않는 충격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명성황후가 백인이다’란 소릴 했다가 된통 욕만 먹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도대체 김부식이가 흑인이라니...

 

宣和奉使高麗圖經卷第八

人物

同接伴通奉大夫尙書禮部侍郞上護軍賜紫金魚袋

金富軾

金氏。世爲高麗大族。自前史已載。其與朴氏。族望相埒。故其子孫多以文學進。富軾。豐皃碩體。面黑目露。然博學强識。善屬文。知古今。爲其學士所信服。無能出其右者。其弟富轍。亦有詩譽。嘗密訪其兄弟命名之意。蓋有所慕云

선화봉사고려도경 제8권

인물(人物)

동접반 통봉대부 상서예부시랑 상호군 사자금어대

김부식(金富軾)

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큰 씨족이 되어 전사로부터 이미 실려 오는데, 그들이 박씨(朴氏)와 더불어 족망(族望)이 서로 비등하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문학(文學)으로써 진출된 사람이 많다. 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석대한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 일을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복(信服)을 받는 것이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

그의 아우 부철(富轍) 또한 시(詩)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일찍이 그의 형제들의 이름 지은 뜻을 넌지시 물어 보았는데, 대개 사모하는 바가 있었다.[한국고전번역원자료]

 

그래서 문제의 원문을 옮겨 보았다.

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나타나는 기록인데 이 사서는 송(宋)나라 사신(使臣)서긍(徐兢;1091-1153)이 고려(高麗)송도(松都)에 머물면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서 선화6년(宣和:1124)에 완성되어 휘종(徽宗)에게 헌납하였고 1167년 간행되었는데 이것을 근세기 역사판짜기 기간에 생성되었다고 보는 조선 방계조직 또는 조선중앙정부명칭이라고 판단되는 청대(淸代)때 다시 출판되어 전파되었다는 책이다.

 

먼저 이렇게 가정을 해보자.

만약 근세기 이전 대조선이 해체되기 전 그리고 신생 서양세력들이 판을 치기 전에 범어(梵語)라고 하고 즉 세계공용어였다고 판단되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 속명으로는 프라크리트(Prakrit)언어로 완벽하게 삼한역사가 기록되었다고 해보자.

이것들 중에 김부식이가 편찬한 삼국사기도 있었다고 해보자.

그러나 근세기에 갑자기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였고 이 주축 세력들이 해적, 해구들인데 이 세력들이 마침내 세계곳곳에 식민지를 확보하여 자본을 축적하였고 그 자본력을 동원하여 1881년에 이르러 기존 지배세력 대조선과 대적하여 마침내 대조선을 그들 마음대로 해체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은 대조선을 대신하여 서양신생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그들나름대로의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존 삼한역사를 없애버렸다고 해보자.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 산스크리트어 대신 다른 언어를 찾았는데 동양에서는 한문(漢文)을 서양에서는 라틴어(Latin word)식으로 표본을 만들어 결국 산스크리트어는 사어로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삼한역사 대신에 등장한 것은 한문의 동양사와 라틴어의 서양사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역사내용을 분리하는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분리하였을 것이고 마침내 가짜 동양사와 가짜 서양사가 탄생한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속에서 생각 할 때 산스크리트어가 사어가 되었다 던가 현재 삼한역사가 택도 없이 한반도 역사로 둔갑하여 축소된 사실이라 던가 현재 들어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러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가정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고 볼 때 바른 역사관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과 함께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이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 블로그에서 이러한 문제를 자그나마 해결코자 나선 것이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를 때 난감한 것은 매 일반이다.

 

이런 식의 말도 안되게 태동한 세계사가 완성된 시기는 대체적으로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1920년에 역사대관(Outline of History,歷史大觀)을 출판했고, 2년이 지난 1922년에 그것을 요약하여 간추린 세계사(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펴내 완성시킨 시점으로 볼 수 있으며 당시 인류를 도탄에 빠지게 한 세계전쟁, 1차세계대전(1914-1918)이 마침내 끝나 마무리가 될 시점 1923년까지라고 본다.

물론 동양사는 이러한 세계사가 완성된 이후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야 맞다.

이러한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대조선이 해체된 1881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고 완성하기까지의 기간은 근 40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와 별도로 각곳에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 이후에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듯 이런 상상을 하기가 힘들지만 어쨌던 이런식으로 당시 공용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가 지워지고 사라졌다는 가정을 세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김부식이 흑인이라는 내용이던가 아니면 한국인이 백인종이라는 사실은 이렇게 볼 때 크게 어긋나지 않다고 나는 자신하고 있다.

 

솔직히 여기서 막연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누가 감흥하겠는가?

이러한 원칙이 없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라도 다 무소용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앞에 제기한 가정에 의한 상황은 쉽게 납득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하여 쉽게 동조할 입장도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다고 하여 무조건 낭설이나 헛소리로 취급해버리는 경솔함은 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혹제기는 적어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혁신적인 역사발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자 그럼 김부식이가 흑인이라고 하는 중요한 포인트 문장을 다시 옮겨본다.

富軾。豐皃碩體。面黑目露

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크고 단단한 체구,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同接伴通奉大夫尙書禮部侍郞上護軍賜紫金魚袋

그리고 위 기록과 함께 김부식의 관직명이 길게 나온다.

그 중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賜)’란 글귀가 있다.

자금어대(紫金魚袋)는 붉은 금어대(金魚袋)라고 할 수 있고 금어(金魚)는 신라 말기, 고려 시대에 공신 등 특별히 하사받은 사람이 관복을 입을 때에 차던 붕어 모양의 금빛 주머니이라고 사전에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아래는 한어 즉 중국자료에 나오는 문장인데

唐、宋官衔常有此名,紫指紫衣;金鱼袋,用以盛鲤鱼状金符。一般佩于腰右

‘당과 송의 관직에 있는 이름으로 붉은 손발가락지와 옷에 금어대를 차고 잉어가 새겨진 금부를 이용하는데 일반적으로 허리오른쪽에 찬다’란 글귀내용이다.

신라와 고려뿐만 아니라 당과 송에서도 이러한 똑 같은 관직이 있었고 똑 같이 금어대를 찼다고 하는 내용에서 보면 신라와 고려는 당과 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 역시 앞에서 언급한 산스크리트어의 삼한역사 원본을 임의적으로 근세기에 동양 한문으로 만들면서 하나의 신라와 고려역사를 당과 송으로 분리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듯 삼한을 세계사적으로 볼 때 한국인(韓國人)은 현재 분명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구성원이지만 본질의 역사에서는 이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느낄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에서 존재한 한국인이 아닌 반도역사에서 일제에 의해 축소된 의미의 한국인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 한국인이 아닌 삼한(三韓)속에 한국인을 오늘도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이다.

 

위 기록에서 보듯이 분명 이러한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에서 김부식(金富軾)은 한국인으로서의 뿐만아니라 흑인으로 존재한 것이다.

고려(高麗)의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 격인 송(宋)에서 파견한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차고 있는 김부식을 풍만한 얼굴과 크고 단단한 체구,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 나온 흑인(黑人), 니그로이드(Negroid)로 보았다는 사실이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김부식이 삼한인(三韓人)이라고 하지만 흑인이었다면 현재 동양 한문(漢文)을 사용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했다고는 쉽게 단정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삼한이 세계를 지배할 때 당시 범어(梵語) 즉 국제통용어인 산스크리트어(Sanskrit), 프라크리트(Prakrit)언어라면 비록 김부식이 흑인이라 할지라도 이 언어를 통달하였을 것이고 분명 삼한(三韓)의 3품 관직의 문신으로서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었다고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다.

唐三品以上服紫佩魚

위 자료에서 보듯이 당(唐)에서는 관직 3품 이상 붉은 옷에 금부를 찰 수 있다고 한 것이라면 흑인 김부식도 고려에서 이러한 위치에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비록 김부식이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곧 세계삼한역사의 진실이라고 할 때 또 다른 진전이라고 보았으면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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