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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수도 금성(金城)은 메카(Mecca)라 했을 가능성
이 글은 2011.08.02 17:42 에 등록된 수정
글쓴이:한부울
불을 숭상하는 배화교라고도 하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拜火教)는 기원전 약 1800년경에 중동의 박트리아(Bactria) 지방에서 자라투스트라 혹은 조로아스터(Zoroaster, ca 628-551 B.C.)에 의해 세워진 종교이다. 기원전 600년경에 오늘날 이란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그리스지방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sda)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 것을 특징으로, 이러한 이원론적 교리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였고
이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던 사산왕조(Sassanid Empire, 224–651) 말기에 아랍제국을 중심으로 예언자 마호메트, 무함마드(Mohammed, Muhammad, Mahomet, 571-632)란 이슬람의 성사(聖使)가 나타나면서 칼리파 시대가 열리고 이를 정통칼리파시대(The Rightly Guided Caliphs or The Righteous Caliphs 632~661)라 하였다.
칼리프(Caliph)의 사전적 의미는 '신의 사도의 대리인'이라고 하고 이슬람 공동체를 통치하는 지위로서 최고 통치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소위 이슬람의 천자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지위명칭인 것이다. 칼리프가 이슬람 세계에 있는 국가들을 전부 관리 통솔하는 명실상부 최고 통치자의 지위란 이야기다.
그 후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 661-750), 아바스 왕조(Abbasid Caliphate 750-1258)에 세습되어 가는 과정에서 시아파가 칼리파의 권위를 부정하고 분파하여, 수니파만이 칼리파를 따르게 되었다 한다.
이상은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의 칼리프 태동의 역사이다.
사산왕조 말기 칼리프시대 초기에 정통 칼리프라하여 4인이 있었다.
정통 칼리파시대 (The Rightly Guided Caliphs or The Righteous Caliphs 632~661) Sunni Islam
1.Abu Bakr (632-634)
2.Umar ibn al-Khattab, (Umar І) (634-644)
3.Uthman ibn Affan (644-656)
4.Ali ibn Abi Talib (656-661)
무열왕(武烈王) |
태종(太宗)춘추(春秋) |
654-661 |
진지왕 손자 김용춘 아들. |
(1)아부바크르(Abu Bakr, 632-634) 무함마드(Muhammad ibn ‘Abdullāh 571-632.6.8)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교단 내부에서는 지도권을 둘러싸고 각 파가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분열을 피하여 헤지라(Hijra: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때 무함마드와 행동을 같이한 이슬람교 집단 '무하지룬(Muhajirun)'의 장로 아부바크르(Abu Bakr:632-634)에게 여론에 따라 '복종'을 맹세하였다. 그는 동로마제국과 사산조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해 군사를 일으켜 634년 첫 승리를 거둔 뒤 시리아와 이라크의 정복사업에 군대를 보내어 동요하는 종족들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 헤자즈 지방에 있는 도시 메디나(Medina)정부를 중심으로 결속시켰다.
(2)우마르(Umar ibn al-Khattāb, 586-644:재위634-644)는 이슬람교의 제2대 정통 칼리파이다. 오마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무함마드를 박해하였지만, 후에 이슬람교로 바꾸었다. 그는 제1대 칼리프의 정복사업을 이어받아, 비잔티움제국으로부터 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를 빼앗았으며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합쳐 사라센 제국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는 《꾸란》을 처음으로 편집하였으며, 622년 헤지라의 해를 이슬람 기원 원년으로 정하였다.
우마르 협정(Pact of Umar)은 637년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시 평화적으로 조약을 체결한 것으로서 우마르 1세가 직접 기독교인들과 체결한 것이다. 조약 체결 몇 년 전부터 칼리파가 직접 지역을 방문해 예루살렘을 찾곤 했었다. 기독교인과 아랍인 자료 모두에서 우마르가 차분히 들어왔으며 낙타를 타고 하인들과 앉아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우마르 협정을 체결한 이후에도 계약 상 그리스정교 건물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마르 재임기 동안 이슬람 군대는 처음으로 방어에서 벗어나 정복전쟁에 나서 636년 거대한 비잔틴 제국과 벌인 야무크 전쟁에서 승리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637년에는 사산조 페르시아마저 격파시켰다. 642년 사산조 페르시아을 모두 점령해 멸망시켜 이슬람 국가로 만들고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정복해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연히 적도 많이 생겨 예루살렘을 정복당한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페르시아인들의 반감을 샀고 결국 644년 기독교도 페르시아계 노예에게 암살당했다.
(3)우스만 이븐 아판(Uthmān ibn ‘Affān, ?~656:재위 644-656)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한 3대 정통 칼리파이다. 메카의 부유하고 권력있는 우마이야 가문에서 태어난 우스만은 부유한 상인이 되었는데 615년경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설교를 시작했을 때 우마이야 가문의 적개심을 야기시켰다. 그러나 5년 후인 620년 우스만은 무함마드를 받아들여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위있는 인물 중 첫 번째 개종자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딸을 우스만과 결혼시켰다.
644년 2대 칼리프 우마르가 살해당하자 우스만은 우마르가 죽지 전 조직해 놓은 선출위원회에 의해 알리를 제치고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그는 우마르의 정복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 650년~652년에 걸쳐 옛 페르시아 땅과 서쪽 이집트 땅을 정비하여 정복하고 그의 통치 시대 때 동쪽으로는 인도 인더스 강 유역과 서쪽으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이슬람 제국으로 발전되었고 꾸란을 정비하여 교리를 체계화했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 가문인 우마이야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다른 가문들의 큰 불만을 샀다.
650년 이집트와 이라크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655년 이집트의 반란군이 메디나로 진군하자 우스만은 그들을 회유하여 이집트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656년 다른 반란군이 우스만의 집을 포위했고 결국 며칠간의 싸움 끝에 우스만은 불만을 품은 타민족 폭도들에게 암살당했다.
(4)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ī ibn Abī Ṭālib, 598-661:재위656-661)은 아부 타리브의 아들로, 무함마드의 사촌자 딸 딸 파티마의 남편이었다. 이슬람의 초기 지도자이다. 수니파에서는 그를 이슬람의 네 번째 정통 칼리파로 여기고, 시아파는 첫 번째 이맘이자 첫 번째 정통 칼리파로 간주한다.
가장 빨리 마호메트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예언자의 최대 협력자가 되었다. 제3대 칼리프가 살해되자 칼리프에 선출되었는데, 메카의 유력자나 우마이야가의 무아위야의 반대를 받아 도읍을 메디나에서 쿠파로 옮겼다. 그 후 알리는 제국 통일을 위하여 무아위야와 항쟁과 타협을 했으나, 661년 정정(政情) 불안을 개탄하는 이슬람교도에게 암살을 당하여 쿠파의 회교 사원에서 쓰러졌다. 알리 및 그의 자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시아파라고 하며, 이슬람교의 일대 분파를 형성했다.
아랍 제국(칼리파 시대)의 영토
622-632: 무함마드 시대의 영토
632-661: 라시둔(Rashidun) 칼리파조에서 확장된 영토
661-750: 우마이야 칼리파조에서 확장된 영토
Califate 750(통일신라말기)
라시둔(Rashidun) 칼리파조 (632-661)
우마이야(Umayyad) 칼리파조 (661-750):라시둔(Rashidun) 칼리파의 계승자
그런데 이 정통칼리프 중 마지막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ī ibn Abī Ṭālib, 598-661:재위656-661)가 태종무열왕(654-661)과 신기하게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어 등장하는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 661-750)의 초대 칼리프, 무아위야1세(Muawiyah I ibn Abi Sufyan 661–680)가 바로 문무왕(661-681)과 또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아위야 1세 |
Muawiyah I ibn Abi Sufyan |
661–680 |
문무왕 |
30 |
문무왕(文武王) |
법민(法敏) |
661-681 |
태종무열왕 장자. |
김춘추는 602년 신라 금성에서 태어났다.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ī ibn Abī Ṭālib) 역시 서기 600~602년경에 메카(Mecca, Makkah.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에 있는 도시)에서 탄생했다 하였다. 비슷하다.
그렇다면 금성이 메카이다.
태종무열왕은 성골에 이어 진골 귀족신분으로서 최초의 왕이라고 하였다.
정통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ī ibn Abī Ṭālib) 역시 시아파로 보았을 때 최초의 칼리프가 된다.
태종무열왕은 주로 외교관으로 활약을 하여 당나라를 삼국통일에 끌어 들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갖추었다고 평가를 하는 왕이다.
알리 역시 메카의 유력자나 우마이야가의 무아위야의 반대를 받아 도읍을 메디나에서 쿠파로 옮기기 까지 하였고 아랍제국 통일을 위하여 무아위야와 항쟁과 타협을 병행하였다 했다.
알리의 아버지
아부 탈리브(Abū Ṭālib ibn ‘Abd al-Muṭṭalib, 549-619)는 무함마드의 부계(父系) 백부이다. 그 혈연관계는 아랍족의 친족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고아가 된 무함마드를 키우고 보호하였다. 하디스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백부의 대상(隊商)을 따라다닌 것으로 되어 있다. 이슬람교에 개종하였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명확치 않으나 메카에서 박해를 받은 무함마드를 보호하여 주었던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헤지라의 3년 전까지 살아 있었고 무함마드와 밀접한 생활을 하였다. 알리는 그의 아들로서 시아파가 그를 미화(美化)하였으므로 반(反)알리파들은 그가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는 하디스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다면 태종무열왕과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실로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신라가 사산왕조라 보았을 때 태종무열왕은 사산왕조의 귀족임에도 근본적으로 로선이 달랐다는 것인데 현재로 파악되는 것은 바로 종교적인 문제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 사산왕조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반하는 세력으로서 이슬람 아랍제국을 리더하던 세력이라고 구분될 수 있다고 보여지는 면이다.
그것이 반도사 조작 과정에서 성골(聖骨)과 진골(眞骨)로 나눠진 것이 아닌가 한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김춘추의 생애를 보면 아버지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또는 김용수(金龍樹)는 분명 진지왕(眞智王, ?-579:재위576-579)의 아들이라 성골(聖骨)이 틀림없고 어머니 역시 진평왕(眞平王, 565년-632:재위 579-632)의 딸 천명공주였으니 성골이다.
그런데 사료에 난데없이 김춘추 태종무열왕을 진골이라 하였으니 이는 실로 이상한 쟁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틀림없이 종교적인 구분이 필요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도사가 들어 낼 수 없는 이유로 억지로 숨기고자 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골이나 진골 따위는 반도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편집적인 방식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내면적인 것은 종교적으로 융합 될 수없는 골(骨)의 성질이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를 성골(聖骨)로, 이슬람교를 진골(眞骨)로 구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성골과 진골(聖骨, 眞骨)은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제도(骨品制度)의 등급으로, 신라사회의 최고 신분층인 왕족이라고 하였다.
분명 두 세력은 귀족인 것은 분명하나 종교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골(骨)은 불변이라는 성격이 강한 글자이다.
때문에 종교적으로 분리 될 수밖에 없는 상징성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산왕조 말기는 종교 변혁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
632년 무함마드 메디나에서 승천, 초대 칼리프 아부바크르 취임
634년 제2대 칼리프 우마르 취임
642년 페르시아 사산 왕조 붕괴
644년 우마르 피살, 3대 칼리프 오스만 취임
656년 오스만 피살, 4대 칼리프 알리 취임
사산왕조 말기는 전통 칼리파시대(The Rightly Guided Caliphs or The Righteous Caliphs, 632-661)를 여는 길목에 있었고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 661-750)를 성립하는 과정과 모태가 된 혼란의 시기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한반도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반을 갖추고 통일하였다는 사실과 우마이야왕조가 아랍제국을 통일하였다는 사실하고 다르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사산왕조가 신라라는 것을 전제하에 하는 말이다.
결과로 보았을 때 한반도 신라는 삼국통일을 태종무열왕이 기반을 닦아 문무왕이 이루어 신라 중대 김씨 왕조가 되었고 이슬람은 정통칼리파시대를 거쳐 우마이야왕조에 이르러 아랍제국을 통합하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같다 해야 한다.
표면적인 것은 다를 지라도 큰 줄기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종무열왕이라고 판단되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수니파에서는 그를 이슬람의 네 번째 정통 칼리파로 여기지만 시아파는 첫 번째 이맘이자 첫 번째 정통 칼리파로 간주한다.
반도사에서는 태종무열왕을 중대 김씨 시조로 분류하는데 이는 우마이야 왕조와 일치한다.
분명한 것은 태종무열왕은 신라 즉 사산왕조의 주류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현격한 종교적인 문제로 인하여 독자적인 행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즉 사산왕조가 전통적으로 고집하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의 문제가 터진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중대(김씨왕조) | ||||
대 |
묘호 및 시호 |
휘 |
재위기간 |
비고 |
29 |
무열왕(武烈王) |
태종(太宗)춘추(春秋) |
654-661 |
진지왕 손자 김용춘 아들. |
30 |
문무왕(文武王) |
법민(法敏) |
661-681 |
태종무열왕의 장자. |
31 |
신문왕(神文王) |
정명(政明) |
681-692 |
문무왕 장자. |
32 |
효소왕(孝昭王) |
이홍(理洪), 이공(理恭) |
692-702 |
신문왕 장자. |
33 |
성덕왕(聖德王) |
흥광(興光), 융기(隆基) |
702-737 |
신문왕 차남. |
34 |
효성왕(孝成王) |
승경(承慶) |
737-742 |
성덕왕 아들. |
35 |
경덕왕(景德王) |
헌영(憲英) |
742-765 |
성덕왕 아들. |
36 |
혜공왕(惠恭王) |
건운(乾運) |
765-780 |
경덕왕 아들. |
재위 년도가 어떻게 이렇게 똑 같은 수 있을까?
우마이야 왕조 (Umayyad Caliphate 661~750)
Caliphs of Damascus | |||
무아위야 1세 |
Muawiyah I ibn Abi Sufyan |
661 – 680 |
문무왕 |
야지드 1세 |
Yazid I ibn Muawiyah |
680 – 683 |
|
무아위야 2세 |
Muawiyah II ibn Yazid |
683 - 684 |
|
마르완 1세 |
Marwan I ibn al-Ḥakam |
684 – 685 |
|
아브드 알마리크 |
Abd al-Malik ibn Marwan |
685 – 705 |
|
왈리드 1세 |
al-Walid I ibn Abd al-Malik |
705 – 715 |
|
슐레이만 |
Suleiman ibn Abd al-Malik |
715 – 718 |
|
우마르 |
Umar ibn Abd al-Aziz |
717 – 720 |
|
야지드 2세 |
Yazid II ibn Abd al-Malik |
720 – 724 |
|
히삼 |
Hisham ibn Abd al-Malik |
724 – 743 |
|
왈리드 2세 |
al-Walid II ibn Yazid II |
743 – 744 |
|
야지드 3세 |
Yazid III ibn al-Walid |
744 |
|
이브라힘 |
Ibrahim ibn al-Walid |
744 |
|
마르완 2세 |
Marwan II ibn Muhammad |
744 – 7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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