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인물

그리스 오톤왕(Othon)이 철종인가?

한부울 2011. 10.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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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오톤왕(Othon)이 철종인가?

 

글쓴이:한부울

 

그리스의 상징이라고도 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비잔틴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그래도 제대로 갖춘 시기가 대체로 서기 330년에서 1453년까지라고 한다.

이후 프랑크인들이 십자군의 지원을 받아 그리스를 지배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1920경에 철저하게 꾸민 것이라고 보면 1453년부터는 오스만제국 점령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 역사도 따지고 보면 고구려와 엮이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고구려 왕이라고 하는 훈족 아틸라가 동유럽을 강타하면서 콘스탄티노플까지 들어갔겠는가 그렇지않았겠는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상황이다..

어쨌거나 그 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역중심지이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라고 해야 맞다. 아틸라가 전 유럽을 공략하면서 이곳만 두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821년에 근대그리스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그리스 땅 대부분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역사에서 이 시기를 "투르크인의 지배(Tourkokratia)"라고 하면서 오스만의 그리스(Ottoman Greece)로도 불린다.

"Kratia means power"

즉 뜻을 풀이 하면 투르크인의 지배는 투르크의 힘이 엄청나게 강했다는 이야기를 들여 주는 듯하다.

투르크(Tourk)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삼한의 역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바로 근세기에 감쪽같이 사라진 역사이며 서양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변질 되어버린 수수께끼역사가 아닌가 한다.

서양인들이 그냥 투르크(Tourk)라 했던 그 실체는 그들이 속이고 싶어하는 실체일 것이다.

 

 

오스만(Ottoman)이란 명칭은 오스만을 세운 왕의 이름이다.

셀주크, 사만, 서산 등 서양사에 나오는 정복제국들은 하나같이 국명에 시조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것은 근세기(1920-23년경)에 세계사를 만들면서 생성된 명칭이란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오스만제국이라고 불리기전에 무슨 명칭을 사용했었는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오늘 인터넷뉴스를 보니 찰스왕태자가 조상이 드라큐라 집안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는 기사내용이 있다.

도대체 찰스왕태자의 계보가 어떻게 엮여 길래 이런 말을 하나 싶어 그들의 계보를 살펴보다가 그리스와 한사코 연결하고자 하는 계보 가지를 보면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파고드니 그리스 독립국 초대왕인 오톤왕(Othon, 1815-1867)이 발견된 것이다.

느낌에 이 오톤(otto)왕이 바로 철종이라는 사실을 눈치 첼 수 있었다.

드라큐라(Dracula)는 잘 알다시피 루마니아의 중서부 지역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의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에 기거하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귀족 드라큐라 백작(Count Dracula)을 말하는 것이고 아일랜드의 흡혈귀 전설도 있다 하고 있다.

찰스왕태자가 조상이 드라큐라고 하니 왕족들이 어떤 대의에 의해 Royal intermarriage, 다른 귀족 간 근친 혈혼(近親, 血婚)으로 왕족끼리 피를 섞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찰스황태자의 어머니 엘리자베스2세(Elizabeth II, 1926~ , 재위:1952~현재)여왕의 계보를 뒤져 보다가 의도적으로 영국왕실이 그리스계 왕조와 근세기(1863)에 엮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루마니아의 중서부 지역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의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

 

바로 근친, 혈혼을 바탕으로 근세기에 그리스왕을 세운 것이다.

1863년이라면 철종이 졸(卒)하던 시기이다.

이상하다 싶어 더 파고드니 그리스만이 아니라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왕족들과 혈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찰스황태자의 아버지 필립공의 부계는 그리스와 덴마크이고 모계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왕족들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왕국의 초대 왕 오톤(Othon, 1815-1867)은 독일 바이에른 왕족이었다.

아버지가 루트비히 1세(Ludwig I, 1786-1868)인데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이었다.

그리고 오톤(Othon)은 1863년에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폐위되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이 오톤이 바로 오스만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았던 그리스 왕이다.

그것이 폐위에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영국 왕실 계보]

 

대륙조선이 누구의 조종으로 고려를 공격한다는 사실이 가능한가 물어야 하는 일이다.

다시 오톤 뒤 이어 권좌에 오른 요르요스 1세(George I of Greece, 1845-1913)는 영국과 프랑스의 비호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요르요스 1세(George I of Greece)는 일찍이 영국왕실 출신 에드워드7세(Edward VII Albert;1841-1910)와 혈혼 관계에 있었던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IX, 1818-1906) 글뤽스부르크 왕가(Glücksburg)초대의 덴마크의 국왕인 아들인 것이다.

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The Hous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가 덴마크 왕, 그리스 왕, 노르웨이 왕과 아이슬란드 왕을 배출한 가문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크리스티안 9세가 부계로 그리스계보로 이어지고 최종 지금의 엘리자베스2세의 남편인 필립공과 교묘하게 엮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영국왕실이 의도적으로 그리스왕 계보에 들어간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무엇 때문에 이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스가 근세기의 명칭이라면 그리스로 변하기전 왕국 또는 제국의 명칭이 있을 것이나 우린 알 수 없다.

그 제국은 그 때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대제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영국왕실이 이 계보를 잇고 승계하지 않으면 세계 여러 나라가 보는 관점에서 종주국이란 위상이 서지 않을 위험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위해서라도 대제국이었던 권위를 승계하거나 인수, 인계란 형식을 취하려 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힘의 질서를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만약 그리스가 실제 동방의 등불 코리아, 대륙조선이라면 그래서 전 세계를 영역 안에 두고 다스린 것이라면 신세력들이 어찌 이런 계보를 이으려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러시아가 그리스의 비잔티움이란 계보를 이으려고 무진 애를 쓴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스스로 경찰국임을 자처하고 나선적도 있다.

어떻든 그리스를 인수하는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권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여기서 오톤과 연계 할 수 있는 조선의 철종과 동일인물이라고 판단하는 함풍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대륙조선 제25대 임금 철종(哲宗, 1831-1863,재위1849-1863)과 청 왕조의 제9대 황제 함풍제(咸豊帝, 1831-1861,재위1850-1861)가 죽은 시점으로 따져 철종은 1863년인데 이 년도에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새로운 오톤 후임 그리스의 왕위에 친척인 요르요스1세(George I of Greece, 1845-1913)를 앉힌다.

이는 영국왕실과 혈혼관계에 있었던 글뤽스부르크 왕가 초대의 덴마크의 국왕의 아들이라고 앞에서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리스 오톤왕(Othon)이 철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리스 오톤왕(1815-1867)의 재위년도가 권좌에 오른 것이 1832년인데 이것은 런던회의(London Conference of 1832, 그리스에 안정적인 정부를 성립하기 위해 모인 국제회의)로 열강(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보호라는 명목 하에 대륙조선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그리스를 새 독립왕국으로 승인하면서 창건된 것이 그리스 왕국이며 글뤽스부르크 왕가 초대의 덴마크의 국왕의 아들인 오톤이 초대 국왕으로 권좌 올랐다는 이야기다.

그런 후 1850년과 1853년에 영국해군이 그리스를 봉쇄하면서 크림전쟁(Crimean War,1854-1856) 일어나자 오톤은 당시 그리스가 고려라고 판단되는 오스만제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사람이 바로 오톤이었다는 사실과 그바람에 오톤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결국 왕실과 왕비에 대한 암살시도가 일어났고 1863년 오톤(Othon)은 강제 폐위되면서 그 자리에 영국의 혈혼 관계에 있었던 왕족인 요르요스1세(George I of Greece, 1845-1913)가 영국과 프랑스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그리스의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오스만제국의 위세는 러시아를 꺾을 만큼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오스만제국을 재껴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벌리는 짓은 당시 상황이지만 이해 할 수 없는 행위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엄연히 그들과 연합국으로서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중에서 뒤퉁수를 치려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 인 것이다.

러시아가 그 때까지 그리스를 대신 할 대륙조선의 실체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사코 그리스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기 위해 러시아가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 바로 크림전쟁이다.

오톤이 그리스왕인데 무엇 때문에 오스만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았을까?

그리스는 본래 오스만과 같은 우익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륙조선과 고려의 실체인 것이다.

 

                                                              [Ohton-Otto]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서손이자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1785-1841)의 셋째 아들이다. 이복 형 원경의 옥사로 교동도와 강화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뒤 행상으로 살던 중 순원왕후의 명으로 덕완군에 봉해진 뒤 순조(純祖, 1790-1834,재위1800-1834)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를 이었다.

오톤왕(1815-1867)이 권좌에 오른 것이 1832년인데 철종이 권좌에 오른시기가 1834년이라고 태어난 시기를 기록에 의하면 1831년이다.

순조 대신 어린나이에 권좌에 오른 1834년이나 오톤왕의 1832년은 거의 일치한다고 해야 맞다.

비교가 무리라고 할 수 없다.

역사를 혼열, 교열하는 세력이라면 이런 것은 거의 상식에 칠 수밖에 없다.

 

오톤의 아버지 루트비히 1세(Ludwig I, 1786-1868)역시 바이에른 왕이었다.

철종은 자신의 권력을 지지해줄 남인들이 집권층인 노론벽파의 천주교 탄압으로 숙청당하고, 그 자신도 안동 김씨(영국과 프랑스)의 세도정치 속에서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색(酒色)을 가까이 하여 건강이 점점 나빠지다가 1861년 이후로는 거의 병석에 눕다시피하여 1863년 음력12월 8일에 재위14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병으로 승하하였다고 반도사는 그렇게 소설처럼 적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늘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본 블로그에서 이 상황을 정리하면서 함풍제와 연결된다고 한 적이 있다.

 

嫡子 嫡長子(夭折)

庶子 (贵人朴氏出,1854年生,早卒)

       (贵人赵氏出,1859年生,早卒)

       (贵人赵氏出,1861年生,早卒)

       (貴人李氏出,1862年生,早卒)

 

庶女 (淑仪方氏出,早卒)

       (淑仪方氏出,早卒)

       (淑仪金氏出,早卒)

        永惠翁主(淑仪范氏出)

       (淑儀朴氏出,早卒)

       (淑儀李氏出,早卒)

 

그러나 위자료를 보다시피 철종 아래 자식이 없다 하였는데 실제 자식들이 많다.

다만 어떻게 죽었다는 사실이 없을 뿐 모두 요절한 것처럼 만들어 씨를 말려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사서를 그렇게 꾸며 일부러 대를 잘랐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형태이다.

아니면 외부세력에 의하여 처참하게 전 가족이 제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인 것이다.

오톤의 아버지 루트비히 1세(Ludwig I, 1786-1868)역시 오톤(Othon, 1815-1867)과 같은 년도라 해도 상관없을 1년 차이로 죽는다.

역시 철종의 가족 몰살과 맥을 같이 한다.

오톤(Othon)은 아버지 루트비히1세(Ludwig I, 1786-1868)의 둘째 아들이지만 위에 누나가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순번은 셋째다.

철종 또한 셋째아들이다.

그런데 철종이 대가 끊어지도록 몰살했다고 여기는 것처럼 오톤 역시 왕실과 왕비에 대한 암살시도가 일어났고, 그런 상황에서 1863년에 오톤(Othon, 1815-1867)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강제 폐위되면서 물러나고 실제 그의 아버지가 오톤과 1년 차이로 죽었다는 경위가 같다는 것이다.

 

대륙조선과 고려라고 판단하는 그리스와 오스만의 관계를 보자.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第一次世界大戰, World War I, 1914-1918)중 동맹국인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불가리아, 오스만제국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져 패전국이 되었으며 전범국가로 지목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20년 8월 10일에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브르에서 연합군과 오스만제국이 체결한 조약이 세브르조약(Sèvres 條約)이다.

이 조약의 결과 1914년 이전의 영토를 오스만은 대부분 내놓게 되고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만을 지니게 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이후 영국, 프랑스가 독려하는 그리스한테 침공을 받아 심각하게 위협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922년경부터 터키공화국의 창시자이며 그리스출신인 '투르크인의 아버지'란 칭호를 받는 케말파샤(Mustafa Kemal Atatürk, 재임1923-1938)장군의 지휘아래 그리스군을 앙카라에서 격파하고 도주하는 그리스군을 이스탄불에서 대파함으로서 그리스영토 일부까지 실지를 회복하는 등 그 영토가 로잔조약(Treaty of Lausanne,1923)으로 영토를 회복하고 고정시켰으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6세(재위1918-1922)가 폐위됨으로서 600년 장수제국오스만은 해체되고 말며 마지막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칼리프 압뒬메지트 2세(Abdülmecid II,1868-1944) 역시 1924년 칼리프제가 폐지됨에 따라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죽는 신세가 된다.

 

그리스왕국(Kingdom of Greece, 1832-1924)은 1832년 오톤이 권좌에 오르던 시점을 건국시점으로 잡았고 1922년 오스만제국에게 패하면서 결국 그리스왕국은 오스만제국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나 오스만제국이 망하는 것은 대륙조선과 고려가 망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하고 비록 그리스와 오스만이 망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술탄인 압뒬하미트 2세(Abdul Hamid II, 1842-1918, 재위 1876-1909)가 대한제국의 존속을 연장시킨 인물이라고 판단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술탄이기 전에 아랍세계의 칼리프였다.

 

물론 그리스가 망하고 난후 러시아가 비잔티움을 차지하려고 노력한 사실도 우리는 명확하게 보고 해석해야 한다.

대륙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의 국장이 러시아 국장과 흡사하다는 것을 본 블로그에서 적시한 적이 있다.

 

그들이 결국 속이는 역사이지만 맞추어 보면 퍼즐이 맞아 들어감을 느낄 수 있다.

철종과 오톤과 함풍제가 3중으로 엮여 있지만 판단은 우리가 해야 마땅하다.

그리스가 독립을 하기전, 그리고 영국왕실이 번창하기 전인1819년 이전의 이야기를 우리는 현실적으로 알 수가 없다.

그냥 추측이나 예상정도만 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하지만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이 신라마란 사실과 여기서 이야기 한 사실이 맞아들어감을 느낀다.

그리스가 고구려라고 추정하는 재야사학자들의 판단이 거의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아직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

유럽역사 세세히 관찰할 시간도 필요하다.

영국이 무엇 때문에 그리스왕족의 피를 억지로 섞으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왕족은 대륙조선의 피보호국으로 존재한 나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또 하나 그리스출신인 터키장군이며 터키초대대통령이 되는 케말파샤(Mustafa Kemal Atatürk, 재임기간1923-1938)는 무엇 때문에 같은 그리스를 공격했을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해본다.

그가 공격할 때는 이미 같은 동족의 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황]


아시아
수마트라(중립)
자바(중립)
발리(중립)
보르네오(중립)

파푸아뉴기니

 

중동
오스만(터키) (동맹)
시리아(동맹)
이라크(동맹)
쿠웨이트(동맹)
사우디아라비아 서쪽 변(동맹)
사우디아라비아(중립)
이란(중립)
아프카니스탄(중립)

 

Africa,(阿弗利加)
카메룬(동맹)
토고(동맹)
나미비아(동맹)
탄자니아(동맹)
에디오피아(중립)
웨스턴사하라(중립)
모로코 북부(중립)

 

유럽
독일(동맹)
체코(동맹)
슬로바키아(동맹)
오스트리아(동맹)
폴란드(동맹)
리투아니아(동맹)
슬로베니아(동맹)
크로아티아(동맹)
헝가리(동맹)
루마니아(동맹)
불가리아(동맹)
콘스탄티노플(동맹)
스페인(중립)
스위스(중립)
덴마크(중립)
네덜란드(중립)
스웨덴(중립)
노르웨이(중립)
그린란드(중립)

 

중앙아메리카
멕시코(중립)
엘살바도르(중립)
도미니카(중립)

 

남아메리카

브라질(적대)
수리나미(중립)
베네주엘라(중립)
콜롬비아(중립)
에쿠아도르(중립)
페루(중립)
볼리비아(중립)
칠레(중립)
파라과이(중립)
아르헨티나(중립)

 

     [1917년 이탈리아 왕국에서 제작된 엽서로,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조선말기 대한제국의 깃발의 형태와 흡사한 깃발이 연합국 깃발과 함께 날리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는 것은 실제 정식으로 대륙 국민당 정부가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19년 10월 10일이다. 위의 그림엽서는 1917년이라 했으니 그것보다 2년 앞에 국기이다.

중화민국 국민당 국기와는 다르다.

이것은 바로 대한제국(china:1912-1929)의 국기인 것이다.

 

어쨌든 찰스왕태자의 드라큐라 집안이라는 고백을 바탕으로 세세하게 알아보았다.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갈길은 아직 멀고도 멀다.

 

결론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잘못된 역사가 탄생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긴자의 역사

근세기 서양사이고 또한 따란 간 동양사이다.

중국 대륙사가 얼마나 엉터리기에 중공역사학자가 대륙사 95%가 허구라고 주장했겠는가 하는 사실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한차례 세계전쟁으로 잘못된 역사가 탄생되었고 그서부터 뒤틀어 진 것이 틀림이 없다.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대륙조선과 대 고려가 망하게 된 것이란 추측정도는 가능하다.

알고 나니 시원한 것보다 참으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슬퍼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여태 이러한 사실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자손으로서 어찌 바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대제국이었던 역사가 서세의 농간으로 한순간 풍지 박산이 나 버렸으니 어찌 통탄할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역사가 대제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고 있는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

떳떳하게 알 수 없다는 이 현실이 얼마나 애닯은 이야긴가?

위대한 역사를 품고 있는 우리가 한반도에 쳐 박혀 일본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어찌 천지신명이나 조상님이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저 안타깝다는 말 이외 할말이 없다.

 

한 가지 더 첨부하고 마쳐야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무엇 때문에 한반도 안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평소에 많이 궁금했다

혹 안동세력은 아닌가?[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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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of Greece (1832-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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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톤의 아버지)

루트비히 1세(Ludwig I, 1786-1868)는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이다.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Maximilian Ⅰ, 1756-1825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초대 왕)와 그의 첫 번째 아내 헤센다름슈타트의 아우구스테 빌헬미네(Auguste Wilhelmine von Hessen-Darmstadt, 1765-1796)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1810년 10월 12일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의 테레제와 결혼했다. 그는 예술과 학문을 장려했고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를 지방도시 란츠후트에서 뮌헨으로 이전시키고, 조각박물관을 지었다. 1826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축한 알테 피나코테크는 현재도 뮌헨에 남아 있다. 1846년경 알게 된 배우 롤라 몬테즈와의 관계로 큰 비난을 받았고, 결국 1848년 롤라를 국외로 추방하고 자신도 아들 막시밀리안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퇴위했다. 루트비히 1세는 퇴위한 지 약 20년만인 1868년 프랑스 남부 니스(Nice)에서 죽었다.

자녀

막시밀리안 요제프(1811~1864) 바이에른 국왕

마틸데 카롤리네(1813~1862) 헤센 대공비(루트비히 3세와 결혼)

오토(1815~1867) 그리스 국왕

테오드린데(1816~1817)

루이트폴트(1821~1912) 바이에른 섭정

아델군데(1823~1914) 모데나 공비(프란체스코 5세와 결혼)

힐데가르트(1825~1864) 오스트리아 대공비(알브레히트 대공과 결혼)

알렉산드라(1826~1875)

아달베르트(1828~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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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오톤(Otto, Prince of Bavaria, then Othon, King of Greece, 1815-1867)은 1832년 런던 회의로 열강(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보호하에 그리스를 새 독립 왕국으로 승인하여 창건된 그리스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오톤은 그리스를 좋아했던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의 둘째 아들이며, 차남이었지만 신생 그리스 왕국의 왕위에 오른다.

이 시기 그리스의 정치는 세 열강의 동맹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며, 오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각 열강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톤은 각 열강의 이익을 살펴주어야 하였다. 1850년과 1853년에 영국 해군이 그리스를 봉쇄하여 크림 전쟁 당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자 오톤의 입지가 약해졌다. 그리하여 왕실과 왕비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일어났고, 1862년 오톤은 폐위되었다. 1867년 바이에른에서 망명 중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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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톤의 왕비:올덴부르크의 아말리아(Amalia of Oldenburg, 1818-1875 밤베르크)올덴부르크의 아우구스트 1세와 안할트베른부르크샤움부르크호임의 공녀인 아델하이트의 딸이며, 1836년 11월 22일에 올덴부르크에서 오톤과 혼인하였다. 결혼식을 그리스에서 올리지 않았고,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지도 않았으며, 그리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해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1861년 그녀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을 때, 암살범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었고 이듬해 아말리아는 남편과 함께 바이에른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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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IX, 1818-1906)는 글뤽스부르크 왕가 초대의 덴마크의 국왕이다.

글뤽스부르크 공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헤센카셀 방백의 딸 루이제 카롤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1842년 6촌간인 헤센카셀의 루이세와 결혼, 덴마크 왕실에서 대여해 준 코펜하겐 시내의 집에서 생활했다. 크리스티안과 루이세 부부는 양쪽 모두 덴마크 왕실의 피를 잇고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1852년 후사가 없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의 계승자로 선택되었다. 같은 해 런던 의정서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덴마크 왕실의 승계를 인정받은 크리스티안은 1863년 덴마크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하자마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 발발하여 이듬해에는 빈 조약을 통해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넘겨주게 되었다.

자녀

프레데리크 8세(1843~1912) 덴마크 국왕

덴마크의 알렉산드라(1844~1925)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왕비

게오르기오스 1세(1845~1913)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

덴마크의 마리아 표도로브나(1847~1928)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

튀라(1853~1933) 하노버 왕국 왕태자비

발데마르(1858~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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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그리스인의 왕 요르요스 1세(George I of Greece, 1845-1913)는 그리스의 국왕이다. 그리스의 첫 번째 국왕인 오톤(Όθων)이 1863년에 폐위되자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그를 그리스의 왕위에 앉혔다.

그리스의 영토를 늘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자는 발언을 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1913년에 불가리아의 한 비밀결사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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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 1세의 왕비:올가 콘스탄티노브나(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 1851-1926)는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왕비이다.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자 알렉산드르 3세의 사촌이다.

1851년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차남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장녀로 파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 미래의 남편 요르요스 1세와 처음 만난 것은 1863년의 일로, 올가는 12세의 소녀였다. 이 해에 요르요스는 자신의 그리스 왕 즉위를 도와준 알렉산드르 2세와 만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고 4년 뒤인 1867년에는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된 여동생 마리아 표도로브나(알렉산드르 3세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다. 같은 해 올가는 요르요스와 결혼했으며 그리스의 왕비로서 자선활동과 구호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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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그리스인의 왕 콘스탄티노스 1세(Constantine I of Greece, 1868-1923)는 그리스 왕국의 국왕으로1913-1917년, 1920-1922년에 재위하였다. 그는 그리스-터키전쟁(1897) 당시 그리스 군대의 총사령관이었으며, 발칸 전쟁(1912-1913) 당시 그리스 군대를 이끌어 이 전쟁에서 그리스는 테살로니키를 점령하고 국토와 인구를 갑절로 늘렸다. 그는 부왕이 살해당한 뒤 1913년 3월 18일에 왕위를 승계하였다.

콘스탄티노스 1세는 그리스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놓고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와 불화를 빚어 국론 분열로 이어졌다. 그는 두번이나 베니젤로스를 사임케 하였으나 1917년에 영국-프랑스 군대가 아테네 폭격을 위협하자 폐위되었으며, 차남 알렉산드로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베니젤로스는 1920년 선거에서 패배하였으며 그 해에 국민 투표로 콘스탄티노스 1세가 복위하였다. 콘스탄티노스는 그리스-터키전쟁 (1919-1922)에서 그리스가 패배하면서 1922년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폐위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장남 요르요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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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알리체 폰 프로이센(Sophie Dorothea Ulrike Alice von Preußen, 1870-1932)은 그리스 왕국의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이다. 프로이센의 소피아(Sophia of Prussia)라고도 불린다. 1870년 포츠담에서 독일의 황태자 프리드리히 3세와 황태자비 빅토리아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소피아는 어려서부터 친 영국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고, 자주 영국을 방문했다. 1887년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축하하러 영국을 찾은 소피아는 그리스의 왕태자 콘스탄티노스를 만났고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인 1889년 10월 26일 아테네에서 콘스탄티노스와 결혼했다. 소피아는 그와의 사이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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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리스인의 왕 요르요스 2세(George II of Greece, 1890-1947)은 1922-1924, 1935-1947년 사이에 군림한 그리스 왕국의 국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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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 2세왕비:루마니아의 엘리사베트(Elisabeth of Romania, 1894-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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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

잉글랜드의 유목민족이었던 색슨족(Saxons:옛 게르만족의 연맹 부족)으로 871년에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849-899)을 시작으로 잉글랜드 왕국이 시작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은 1707년에 잉글랜드왕국(Kingdom of England:927-1707)과 스코틀랜드왕국(Kingdom of Scotland:1660-1707)이 합방하여 성립한 왕국이다.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과 아일랜드 왕국(Kingdom of Ireland:1542-1801)이 합병하여 성립한 왕국이다. 다른 시기의 영국과 구분하지 않을 때에는 이 나라도 그냥 영국(英國),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고 부른다

(1)1801-1820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 재위:1760-1820)하노버왕가3째

(2)1820-1830 조지 4세(George IV, 1762-1830,재위:1820-1830)하노버왕가4째

(3)1830-1837 윌리엄 4세(William IV, 1765-1837,재위:1830-1837)하노버왕가5째

(4)1837-1901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재위1837-1901)이자 인도의 여제(1877-1901)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 제국의 최전성기

‘빅토리아 시대(The Victorian)이다.

(5)1901-1910 에드워드 7세(Edw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 영국의 왕이자 인도 황제이다.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erzogtum Sachsen-Coburg und Gotha)첫째왕이다.

(6)1910-1927(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연합 왕국의 왕)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erzogtum Sachsen-Coburg und Gotha)는 베틴 왕가의 분파로, 본령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을 비롯해서, 포르투갈과 불가리아, 영국에서 왕을 배출하였으며, 현재 벨기에의 왕가이다.

(7)조지5세(George V, 1865-1936)는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왕이자(1927년부터는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인도의 황제이다(재위 1910-1936).

초대 윈저 왕가 출신의 군주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차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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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Victoria, 1819-1901)는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의 여왕(1837-1901)이자 인도의 여제(1877-1901)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1819-1861)는 영국의 빅토리아의 남편이자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아버지다

자녀

1.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The Princess Victoria, Princess Royal,1840-1901)

2.에드워드 7세 (Edward VII,1841-1910)

3.헤센 대공비 앨리스 (The Princess Alice, 1843-1878)

4.에든버러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알프레트 (Alfred,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1844-1900)

5.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자빈 헬레나 (The Princess Helena,1846-1923)

6.아가일 공작 부인 루이즈 (The Princess Louise,1848-1939)

7.코넛스트래선 공작 아서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1850-1942)

8.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Leopold, Duke of Albany,1853-1884)

9.바텐베르크 공자빈 베아트리스 (The Princess Beatrice,1857-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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