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금산(金山)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지명역사사실

한부울 2012. 7. 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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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金山)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지명역사사실

 

글쓴이:한부울

 

골드러시(gold rush)와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 號)사건

http://blog.daum.net/han0114/17050516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가 금산(金山)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가 금산(金山)이란 지명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관심밖에 일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구(舊)금산(金山)”이라고 지금도 구글지도에 옛날지명으로 표시가 되어있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 대한 느낌은 이상스럽기도 하고 이채롭기까지 하다.

 

 

[골드러시가 시작된 곳-Sutter, Mill]   

 

그것뿐만 아니라 골든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라고 하는 금문교(金門橋)에서 그 웅장함보다는 금문교(金門橋)라고 명칭한 그 상징성이 금산(金山)이라는 명칭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금광이 즐비한 곳에 금(金)더미를 캐로 들어가는 관 문(門)이라고 옛 사람들이 가식없이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미대륙에서 처음으로 금(金)이 발견된 것은 1820년 말 미국 아이오와주(Iowa 州), 와펠로카운티(Wapello County), 달로네가(Dahlonega)근처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달로네가(Dahlonega)는 골드러시라 하여 광풍을 몰게 한 샌프란시스코 보다 외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본 블로그가 밝혀보았던 사실에서 보면 삼한 신라(新羅)에 금(金)이 많았다는 아랍인들의 기록과 함께 그곳에 가면 회교인들이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이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신라역사와 연관 시켜 볼 수 있는 장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라 하면 스페인이 지배한 사실에서 스페인을 매개로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신라가 스페인이라고 주장한 사실에서 보면 직접적으로도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사실과 일치 할 수 있는 배경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골드러시를 엘도라도 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단언코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엘도라도가 근거 없이 설로서 끝날 상징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반드시 근거를 삼는다면 바로 샌프란시스코나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골드러시의 현실적인 문제를 대입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인들과 서양역사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가 1853년에 골든 러시에 의해 금(金)이 감소되고 고갈되었다고는 하나 금산(金山)이라는 명칭에서 주는 역사적인 의미는 절대로 무시 할 수 없는 것이고 이미 기록과 상관없이 그 때 사람들에게 깊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에서 역사성을 중요하게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전자에 주지한 것처럼 골드러시는 1848년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강(Sacramento江)근처에 있는 존 서터(Johann Sutter)의 제재소에서 시작되었으며 1848년 1월 24일 존 서터가 제재소를 건설하고 있는 동안 그의 목수인 제임스 마셜(JamesW.Marshall)이 우연히 금(金)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다.

그러니 본격적인 골드러시는 1849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북아메리카 동남부 애틀랜타(Atlanta)북동부에 위치한 달로네가(Dahlonega)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대규모골드러시의 시초라고 하는 'First Major Gold Rush'가 광고 안내 문구이다.

1828년 벤저민 파크(Benjamin Parks)가 사슴 사냥을 하던 중 미국 조지아주(Georgia州) 북부의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 山脈)에 있는 강으로 채터후치강(Chattahoochee River)의 주요 지류인 체스터티강(Chestatee River)동쪽에서 금(金)을 발견한 이후, 1년 사이에 노다지의 꿈을 쫒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1만5천여명의 광부들이 달로네가로 몰려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1848년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보다 20년을 앞서 금광이 발견된 달로네가(Dahlonega)는 그동안 'First Gold Rush'로 명성을 쌓아왔지만 또 애틀란타(Atlanta)서부의 비야리카(Villa Rica)의 도전을 받았다는데 이 비야리카(Villa Rica)는 달로네가(Dahlonega)보다 먼저 금(金)을 발견하고서도 주정부의 규제조치로 인해 명성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도시는 서로가 먼저라고 하면서도 달로네가(Dahlonega)는 `미국에서 대규모(Major) 골드러시가 처음으로 발생한 지역'이란 표현으로 양보하고, 비야리카도 `조지아주의 잊혀진 골드러시 지역'이라며 한걸음 물러서서 상생의 길을 가고 있다 한다.

 

정부가 어떤 것을 못하게 규제한다는 것은 다분히 숨겨지는 역사성과 관계설정이 가능한 경우가 비일비재 한 사실도 우린 살펴보아야 할 이야기다.

 

체로키 인디언의 말로 `Yellow Money'(노란 돈)라는 뜻을 지닌 달로네가는 아담한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한 금 박물관과 광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옛 금광터가 지금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면 북아메리카에서만도 이미 세군데가 골드러시의 광풍에 휘몰아친 곳이 들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북아메리카대륙은 샌프란시스코의 금의 고갈과 상관없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금이 많이 나온 곳으로 알려져 전 세계인들에게 무섭게 각인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니 골드러시가 엘도라도가 다르지 않다는 상황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골드러시가 엘도라도인가 하는 문제이다.

때문에 금 노다지가 있다는 곳 즉 엘도라도(El Dorado)는 인류가 여태 가지 못하고 갈 수 없는 상상세계를 떠올리며 막연하게 꿈으로 존재하게 하고 신비감만을 증폭시키고자 하는 단어였던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근세기 이러한 사실을 속이고 북아메리카를 신천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가 없었을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14세기 마르코 폴로의 주장대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엘도라도(El Dorado)는 북아메리카의 어느곳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도 거짓말이는 사실이다.

괜히 황금향이라고 하여 일본이 마치 황금천지처럼 만들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열도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금이 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들어난 형상만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지팡구는 다름이 아닌 북아메리카이어야 하는 것이다.

 

엘도라도(El Dorado):에스파냐어(語)에서 ‘엘’은 정관사, ‘도라도’는 ‘황금의’라는 뜻

남미 아마존 강변에 있다고 상상되었던 황금향(鄕)

아메리카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의 모험가들은 아마존강(江)과 베네수엘라를 관통하는 오리노코강(Orinoco river)의 중간쯤에 이 황금향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설(異說)도 많아서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서는 지금 일본이라고 하는 지팡구(zippangu, Jipangu)가 이에 해당한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도 황금나라의 부(富)에 끌려 신세계를 발견하였고,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Walter Raleigh, 1552-1618)도 같은 이유에서 탐험을 하였다. 남아메리카 토인의 전설에서는 콜롬비아 보고타 근교에 구아타비타호(湖)(laguna de guatavita)라고 하는 호수 근처에 황금 지붕이 늘어서 있는 마노아(Manoah)라는 거리가 있어 이곳에는 전신에 금가루를 칠한 왕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16~18세기에 이 나라를 찾아서 많은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로 건너갔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당시의 지도에는 구아타비타호의 위치가 암시되어 있다. 황금의 왕에 관한 전설의 기원은 남아메리카 북부의 산악지대에서 산출되는 운모(雲母)의 가루일 것이라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위 사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엘도라도(El Dorado)라고 하여 뚜렷하게 밝혀진 것들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허풍쟁이들이고 전부 거짓말장이들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속단 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왜냐하면 근대 서양사들이 그들의 글이나 기록을 가지고 역사를 담보했기 때문이다.

 

옛 북아메리카대륙을 신대륙이라 하여 미개인이었다는 미국인디언들을 밑에 깔고 있어 역사적으로는 허허벌판 미개지역으로 방치되었다고 보았다면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하는 문제와 그곳이 엘도라도라 하여 실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거나 했다면 금이 많이 나는 신라와 지팡구 엘도라도가 최소한 신라전성기라고 하는 7세기, 8세기때 이미 이러한 일이 발생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엘도라도란 소문이 꼬리를 물고 전세계로 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역사판짜기 할 당시인 근세기때는 이러한 기록 전부를 빼버리고 엘도라도를 황금향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것이다.

 

그것과 연장하여 북아메리카가 미국인들의 세상이 되기 전에 금산(金山)이라고 했던 사실을 왜 중요하게 보질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신대륙이기 때문인가?

북아메리카에서 산출된 금은 금이 아니었단 말인가?

실제 엘도라도를 남아메리카에 찾기보다는 오히려 북아메리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분명 북아메리카에 금이 많이 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금산(金山)이란 이름은 금을 연결하기 보다는 오랜 역사성을 내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한자음이 금산(金山)임에도 우리는 금산(金山)이라고 하지 않고 김산(金山)이라고 한다.

 

금산(金山) 김씨가 아니라 금산(金山) 금씨(金氏)가 맞는 이야기다.

같은 한문 금(金)과 김(金)을 혼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는 굳이 김(金)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 금을 김으로 불렀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김(金)이라는 말의 뜻이 기마민족의 언어인 알타이어로 금(Gold)이라는 뜻이라고 이미 확실한 정의가 내려졌다.

몽골, 남송 연합군에게 무너진 여진족 추장이라고 하던 금(金:941-1234)나라 시조(始祖) 의헌경원황제(懿憲景元皇帝) 완안함보(完顔函普:941-960)가 역시 신라의 후예 김함보(金函普, 김준:경순왕의 아들)의 증손 아골타이기 때문에 나라이름 역시 금(金)이라 했지만 이 금과 김(金)이 같아 김(金)씨 왕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신라라고 하고 우리나라 역사계보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다.

어쨌던 김(金)과 금(金)은 같기 때문에 다르게 불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금은 알타이산맥과 연계됨이 물론이고 신라가 샌프란시스코 켈리포니아와 연결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지명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되었다.

바로 현 경북 김천시(金泉市)가 옛 금산(金山)이라 하였다는 사실이 있었음에도 굳이 김천이라고 한 것도 알고 보면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할 때 이웃의 지례(知禮), 개령(開寧)의 두 군과 성주군의 신곡면(薪谷面)을 합쳐 새로 김천군(金泉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산(金山):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

신라시대에는 풍무현(風茂縣)이라 하였으며, 감문군(甘文郡)의 영현이었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에 이속시키고, 공양왕 때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정종이 황악산(黃嶽山)에 어태(御胎: 임금의 태)가 봉안되었다고 하여 김산군으로 승격시켰다. 1895년(고종 32) 23부제 실시 때에는 대구부 관할의 김산군이 되었고, 그 이듬해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의 3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이웃의 지례(知禮)ㆍ개령(開寧)의 두 군과 성주군의 신곡면(薪谷面)을 합쳐 새로 김천군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옛 김산군의 영역은 김천시 조마ㆍ대항ㆍ금릉ㆍ봉산ㆍ어모ㆍ감문ㆍ감천면(위키)

 

이 김천시뿐만 아니라 1914년에 행정구역개편시(역사새판짜기과정) 한반도 지명 전체를 새롭게 명명된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김천이라고 하는 천(泉)은 샘. 샘물. 샘구멍. 지하. 땅 속 등으로 쓰여 온천과 대비되는데 지금의 김천에 온천이 많았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다.

그것도 최근에 들어 관정(管井)을 뚫어 김천부항온천이란 이름으로 2012년부터 5년간 관광개발계획으로 시작된 것으로 안다.

온천으로 유명하다고 하여 굳이 산(山)을 밀어내고 천(泉)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벌써부터 김천전역 어디가나 온천으로서의 입지환경이 절대적이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요새사람이 먼저 아는 사실이기에 현재 지명이 지질환경조건에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지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산(金山)을 김천(金泉)이라고 지명을 바꾼 것도 일제에 고약한 의도에 의한 것임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근세기 새로운 역사판짜기에 한 일환으로 서양세력들 주도하에 작업이 시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도 할 수 있다.

당시 서세앞잡이 노릇을 하던 일제가 한반도에 붙일 지명을 찾다 금산이라고 한 것을 김천이라고 쓱 바꿔치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구 금산이라고 하는 샌프란시스코하고 깊게 연관됨을 눈치 챌 수 있다.

만약 신라의 후예 완안함보(完顔函普:941-960)의 금나라가 있었다면 실제 금이 많이 나오는 곳에 태동하였을 것이란 예측을 역사를 아는 사람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이치이다.

 

이렇듯 근본적으로 금(金)이 김(金)으로 지명(地名)과 성씨(姓氏)가 마구 바뀐 시기는 일제가 한반도에 행정구역개편이란 이름으로 역사 갈아치기 하면서 부터라고 판단이 된다.

 

문득 "금산아가씨"란 노래가 생각난다.

옛 가요 김하정이 불렀던 노래 금산아가씨는 금산(金山)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비단금(錦)를 사용하는 충청남도의 금산(錦山)군이다.

금이라고 하면 금(金)을 쓴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허용되지 않는 금지조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는 김천인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필요했을까?

 

본래 근원적으로 금산(金山)이란 지칭이 바로 금(金)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금산(金山)은 금(金, Gold)이 많이 나오는 광산을 근거로 하는 지칭이었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 말이다.

전번 본 블로그 글 골드러시(gold rush)와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 號)사건 이란 제목의 글에서 한반도는 금이 나오지 않는 곳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했다.

물론 금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산(金山)이라고 지칭 할 정도로 대량으로 나오는 광산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서에는 금(金)자가 들어간 지명들이 많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 경세유표 제11권 지관수제(地官修制)에 진(晉)나라 때 좌사(左思)가 지은 촉도부(蜀都賦)에는, “금모래 자갈이 영창(永昌)으로 쏟아져드는데, 물에서 나는 금(金)이 마치 겨(糠)가 모래 속에 있는 것 같다.” 하였다.

 

이 표현은 마치 골드러시(gold rush)때 샌프란시스코 근방에서 금을 채취하던 모습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금가루를 강에서 채취하는 그 모습인 것이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에 보면  경기(京畿), 진위현(振威縣)을 고구려때는 부산현(釜山縣)으로서 옛 연달부곡(淵達部曲)인데, 혹 금산(金山)이라 하기도 하고, 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 하기도 한다. 하였다.

경기도 진위현이 고구려때는 부산현이었다는 사실과 그 부산현이 금산이었다는 사실 또한 위의 사실과 더불어 깊게 풀어야 할 숙제이다.

샌프란시스코가 부산일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또 한번 물어본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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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8권

경기(京畿)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

동쪽으로 여주(驪州) 경계까지 22리이고, 남쪽으로 음죽현(陰竹縣) 경계까지 40리이다. 서쪽으로 양지현(陽智縣) 경계까지 37리이고, 북쪽으로 광주(廣州) 경계까지 21리이며, 서울까지 1백 41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고구려 남천현(南川縣) 남매(南買)라고도 한다. 인데,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승격시켜 군주(軍主)를 두었으며, 경덕왕(景德王)이 황무(黃武)로 고치어,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만들었다. 고려 태조(太祖)가 남으로 정벌할 때에, 고을 사람 서목(徐穆)이 인도하여 물을 잘 건넜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주어서 군(郡)을 만들고 광주(廣州)에 예속시켰다. 인종(仁宗)이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고종(高宗) 44년에는 영창(永昌)이라 일컬었으며, 공양왕(恭讓王)은 조비(祖妣) 신씨(申氏)의 고향인 까닭으로 승격시켜 남천군(南川郡)으로 만들었다. 본조 태조 2년에는 다시 이천현으로 만들어 감무를 두었고, 태종 13년에는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만들었으며, 세종 13년에는 지현사(知縣事)로 고치었다가, 26년에 천호(千戶) 이상이므로 예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한국고전번역원]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京畿)

진위현(振威縣)

동쪽으로 양성현 경계까지 13리이고, 남쪽은 충청도 직산현 경계까지 37리이며, 서편으로는 수원부(水原府) 경계까지 12리이고, 북쪽으로 용인(龍仁)현 경계까지 33리인데, 서울과는 1백 18리의 거리이다.

[건치연혁]본래 고구려 부산현(釜山縣)인데 옛 연달부곡(淵達部曲)인데, 혹 금산(金山)이라 하기도 하고, 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 하기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수성군(水城郡) 속현으로 만들었고, 고려 때에도 그대로 두었다.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그 뒤에 영(令)으로 승격시켰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하다가, 태조(太祖) 7년에 충청도에서 떼어서 본도에 이속시켰다.

 

금의 대한 50가지 진실

1. gold 라는 단어의 어원은 옛날식 영어 gelou 에서 비롯되었다. 노란색 이라는 뜻.

2. 시간당 생산되는 강철의 양이 인류 역사상 생산된 금의 총량보다 많다.

3. 인류는 약 161000톤의 금을 채굴 하였다.

4. 금은 7개 모든 대륙에 묻혀있다.

5. 지구에 있는 모든 금중 대략 80%가량이 아직 땅속에 있다고 추정된다.

6. 10 빌리언 톤의 금이 바다에 있다. 평균 1큐빅마일 당 25톤의 금이다.

7. 세계 최초의 금 자판기는 2010년 5월 아부다비의 울트라 럭셔리 호텔에 설치되었다. 그 자판기는 24캐럿 금으로 둘러싸여 있다.

8. 대부분의 서구 경제권 화폐는 1961년까지 금본위제를 따랐다.

9. 스위스는 마지막으로 금본위제에서 탈피한 국가이다. 1999년 IMF에 합류하기 전까지, 스위스 화폐의 40%가 금으로 뒷받침 되었었다.

 

10. 미국은 금값이 온스당 $44.22 일 때 포트녹스의 금을 미국의 자산으로 규정했다.

포트 녹스(Fort Knox)는 미국 켄터키 주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입니다.

연방 금괴보관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금괴의 양이 전 세계의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아실 수 있을것이다

 

 

 

11. 1941년 12월 31일 포트녹스는 649.6 밀리언 온스의 금을 보유했다.

12. 오늘날, 포트녹스는 147.3 밀리언 온스를 보유하고 있다.

13. 표준 골드바의 크기는 17.78cm * 9.21cm * 4.445 cm 이다.

14. 연금술사들은 납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5. 1캐럿은 고대 상인들이 콩의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

16. 가장 비싼 금화는 1933년 더글라스 이글코인이다. 2002년 뉴욕에서 $7.59 밀리언에 팔렸다.

17. 엘비스 프레슬리는 크롬이 있어야 할 부분에 금으로 된 차를 3개 가졌었다.

18.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전 CEO 데니스 코즈로스키는 $6000 가치의 금 고리가 달린 샤워커튼을 샀다.

19. 귀한 금속인 금은 녹슬지도, 더럽혀지지도, 알루미늄과 접촉했을 때 산화막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20. 지구의 지각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92가지 원소가 있다. 금은 그중 58번째로 드물다.

21. 금의 원소기호는 Au, 라틴어 aurum에서 파생된 것으로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이다.

22. 절대적으로 순수한 금은 너무 부드러워서 사람의 손으로 주물러서 변형시킬 수도 있다.

23. 금의 녹는점은 화씨 2063도 (섭씨 1064.58도) 이다.

24. 금은 전기가 매우 잘 통한다.

25. 금은 가장 전성/연성이 높은 물질이다.

26. 1온스의 금을 잘 누르면 100 스퀘어피트의 넓이로 늘릴 수 있다.

27. 1869년에, 호주사람 두명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골드 너겟을 발견했다. "Welcome Stranger" 라는 이름의 이 너겟은 10인치 * 25인치 크기였고 그 후 녹여졌다.

28. 현존하는 가장 큰 너겟은 "Hand of Faith" 라는 이름의, 1980년 호주에서 발견 된 것이다. 라스베가스의 골든 너겟 카지노에 전시되어 있다.

29. 지구에서 발견되는 골드 너겟은 희소성 때문에 함유된 금의 양의 값보다 3~4배 더 가치를 지닌다.

30. 기네스 레코드에 오른 가장 무거운 금화는 2004년 제작된 오스트리아 필하모닉 주화로, 31.1 킬로그램, 직경 15인치이다.

31. 2007년에 캐나다에서 100킬로그램 99.999% 금화를 제작했다. 액면가는 백만달러이다.

32. 순금은 피부 트러블을 유발하지 않는다.

33. 어떤 류머토이드 관절염 환자는 액체상태의 금을 주사맞아서 고통을 줄인다.

34. 올림픽 금메달은 1912년까지만 순금이었다.

35. 금 1온스는 60마일까지 길게 늘일 수 있다.

36. 세상 모든 금의 2/3가 남아프리카에서 나왔다.

37. 인도는 세계 제일의 금 소비국이다.

38. 남아시아의 보석은 대체로 서양의 보석보다 순도가 높아서 14캐럿이 아닌 22캐럿의 금을 사용한다.

39. 금은 캘리포니아 주와 알래스카 주의 대표 광물이다.

40. 세상 모든 금의 90%는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Sutter's Mill" 이 발견된 이후에 채굴되었다.

41.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기간중에 어떤 투자자는 1온스의 금보다 1온스의 물에 더 큰 돈을 지불했다.

42. 사우스 다코다와 네바다 주는 다른 모든 주의 금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금을 생산한다.

43. 과학자들은 금이 화성, 금성, 수성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44. 우주인 헬멧은 아주 얇은 금박(0.000002 인치)이 입혀져 있어서 태양의 눈부심과 빛을 줄여준다.

45. 금은 아즈텍어로 "teocuitatl" 이며, 신의 배설물 이라는 뜻이다.

46. 엘도라도 전설에 따르면 금으로 뒤덮인 안데스인 리더가 산속 호수에 있는 금을 제시한다고 한다.

47. 기원전 5000년에 금과 구리가 인간에게 최초로 발견된 금속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48. 리디아의 크로서스 왕은 기원전 540년 최초의 순금을 제작하였다.

49. 1934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금값을 $20.67에서 $35로 올렸을 때, 달러는 즉시 그 가치가 40% 하락했다.

50. 헨리8세, 디오클레티안, 네로는 금 순도에 장난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은 금화에 불순물을 섞어서 가치를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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